• 최종편집 2024-10-0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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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산 전문가인 최기일 상지대 교수, 민주당 국방안보특위 부위원장 임명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더불어민주당 국방안보특별위원회 부위원장에 방위산업 전문가인 최기일 상지대 교수가 임명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11일 국회 본청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제58차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국방안보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및 위원 임명안에 대한 안건을 의결했으며, 최기일 상지대학교 교수가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방산전문가이자 청년 인재로 최초 영입된 최기일 교수가 더불어민주당 국방안보 분야 컨트롤타워인 국방안보특위에 합류하면서 내년 3월 예정된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민주당의 국방안보 정책공약 밑그림 설계 행보에도 속도가 붙게 됐다. 현재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최기일 교수는 국내 방위사업학 1호 박사로 국방대학교 교수,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미드웨스트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거치면서 국내 방위산업 분야의 독보적인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민주당 국방안보특위는 이달 말, 제1차 전체 위원회의 및 조정위원회를 온라인 화상으로 개최할 예정이며, 첫 회의에서 부위원장에 임명된 최기일 교수의 발제로 “현 문재인 정부의 국방안보 추진정책 점검과 미래 국방을 위한 새로운 담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민주당 국방안보특위는 지난해 9월 이철휘 포천·가평 지역위원장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황기철 창원진해 지역위원장이 최근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됨에 따라 이철휘 위원장 단독체제로 공식 출범하면서 수석최고위원인 김종민 의원을 고문으로 추대했다. 더불어민주당 국방안보특위는 국방안보 분야 교류, 협력 이외 조사 연구, 정책 수립과 관련부처 협의 및 조율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실질적인 당내 국방안보 정책 싱크탱크다. 최 교수의 부위원장 임명으로 향후 방산 분야의 정책 발전이 기대된다.
    • 방위산업
    • 국내방산
    2021-01-18
  • 이원태 신임 인터넷진흥원장 취임…“최고의 정보보호·디지털 전문기관 만들겠다”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이원태 신임 한국인터넷진흥원장이 11일 나주본원에서 개최된 취임식에서 한국인터넷진흥원을 세계 최고의 정보보호·디지털 분야 전문기관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원태 원장은 언론계 출신으로 기자로 활동하다가 서강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인터넷윤리학회 및 한국인공지능법학회 부회장,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자문위원,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정책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지능정보사회정책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다양한 정책 연구와 경험을 통해 ICT 분야 전반에 대한 높은 전문성과 식견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원장은 김석환 전임 원장이 지난해 11월 12일부로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KISA 임원추천위원회의 심사 추천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제청을 거쳐 임명됐으며, 앞으로 3년간 한국인터넷진흥원을 이끌어갈 예정이다. 이원태 원장은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날 취임식에서 “4차 산업혁명을 완성하고 디지털 미래사회를 선도하기 위한 KISA의 역할을 강조하며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안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디지털 안전망 구축 및 안전한 개인정보 활용과 보호 ▲디지털 국가 경쟁력 제고 ▲공공기관으로서의 사회적 가치 및 혁신 경영 실현 ▲투명한 경영문화 정착 등 경영계획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진흥원을 정보보호·디지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ICT 분야 전문가다운 포부를 밝혔다. 한편,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미래사회를 선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정보보호·디지털 전문기관’으로서 2009년 7월 한국정보보호진흥원, 한국인터넷진흥원,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이 통합돼 설립됐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1-1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59)] 유사시 싸워 이기는 전투준비는 진지공사부터 / 무성의한 진지 구축은 단호하게 '불합격'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 성묘는 추석 같은 명절이나 한식에 조상의 묘를 찾아 손질하고 살피는 일이다. 조선 후기까지 4대 명절에 묘제를 지내는 풍속이 계속되었다. 한식인 음력 3월에는 개사초(改莎草)라고하여 겨울부터 봄 사이에 생긴 구덩이를 비롯하여 조상의 묘에 생긴 손상을 손질하여 바로잡는다. 이때 부족한 떼(잔디)를 다시 입혀준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한식 이후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작은 나무 등을 베거나 깎아주어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한다. ■ 성묘처럼 삶과 죽음의 교차로 되는 진지공사, 일종의 돈내기식 방식으로 경쟁 붙여 싸워 이기는 전투 준비는 한식이나 추석 성묘(省墓)처럼 봄가을에 진지공사부터 시작된다. 진지는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따라 유사시 삶과 죽음의 교차로가 되어 그곳이 나의 묘자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지공사는 성묘와 같다. 춘계에는 겨울과 봄 사이에 생긴 구덩이를 메우고 무너진 떼(잔디)를 다시 입혀주고, 추계에는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작은 나무 등을 베거나 깎아주고 동계작전 준비도 같이 한다. 유사시 북한이 보유한 1만5000여문의 방사포 및 야포가 불을 뿜으면서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 군은 준비된 진지에서 초전 생존성도 보장받으며 남침해오는 적군을 격멸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부대는 약 3~4주 동안 거점에서 야영하면서 진지공사를 한다. 그래서 진지공사는 1년 중 중요한 업무였고, 통상 연말 성과분석 회의시 부대표창에도 진지공사우수부대를 포함하여 선정한다. 매년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상급부대는 당시 적상황을 분석하여 진지공사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달하고 야전부대는 그 지침에 따라 우선적으로 진지공사를 한다. 그때 강조한 공사지침은 점진적으로 진지를 전환하며 전투를 할 수 있는 오리발식 진지 구축과 야간 전투를 위한 화목단으로 조명목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상급지침과 노후된 상태의 진지를 보강하는 것만으로는 배가 고팠다. 상단의 사진과 같이 미비된 진지도 정비하면서 과거 독도 수비대가 일본의 점유 시도를 거부할 때 사용했던 기만용 위장포처럼 기만 진지도 구축하기로 했다. 당시 중대 진지의 총길이는 약 2~3km로 80년대 초 삼청교육대 인원들이 동원되어 나무를 잘라 이어 진지를 만들어 비교적 견고한 상태였으나 일부 지역이 무너지고 나무가 썩어서 기존 진지를 보수하는 공사만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했다. 부족한 시간과 인원 속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돈내기(할당받은 일을 끝내면 그 일에 대해 무조건 일당을 지급하거나 마친다는 뜻의 경상도식 표현)’ 방법 뿐이었다. 또한 소대내에서도 떼(잔디) 운반조, 진지 구축조 등으로 조편성을 하여 노동 집약적으로 공사하도록 코치를 했다. 주차별로 소대별 목표를 정하고 먼저 자기 소대진지 공사를 하면서 화목단 야간 조명목과 위장 진지에 필요한 나무와 돌들을 채집하도록 했다. 그날 해당 소대가 목표를 달성하면 필자가 상태를 확인하여 합격여부를 판명후 휴식을 보장하는 돈내기식 방법을 적용했다. 산 능선에 구축된 진지에서 호가 너무 깊으면 앞쪽 하단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관측할 수 없다. 엄폐와 관측이 가능한 깊이도 중요하지만 진지 앞의 사대 방향도 자신의 몸을 보호 받으면서도 사격이 가능하도록 위치를 잘 선정하는 것도 착안했다. 또한 진지 전방에 설치된 철조망과 기관총 사격방향이 연계된 사계청소와 크레모아 설치대도 적방향에 맞게 구축되도록 확인했다. 돈내기식 방법으로 시간에 쫒기어 생각없이 구축된 진지는 불합격 시키고 다시 공사를 시켰으며, 당일 공사량을 완벽히 끝낸 소대는 소대장 통제하에 쉴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자 점차 경쟁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자 피로와 권태감에 대원들은 지치고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필자에게는 88오토바이가 있었다. 이동시 소리가 거의 없어 기습적으로 중대장이 불시에 공사 현장에 나타나 독려를 했다. 훗날 중대장의 전령이 하소연 했는데 “현장 지도시 방심해 기습을 당했던 소대장이 중대장 이동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 질책을 했다”고 하여 미소도 지었다. 소대별 담당진지 공사가 끝나자 사전 준비한 나무와 돌들로 진지 전방에 적들이 은거하기 용이한 장소에 조명목도 설치하고 적방향에서 쉽게 관측되는 도로 교차로에 기만용 위장전차도 만들었다. 한편 추계진지 공사시에는 동계 결빙을 고려한 사전 지뢰공 설치(지뢰를 설치할 장소에 땅을 미리 파고 짚과 병으로 메우는 작업)와 동상을 대비한 깔판 그리고 풀이 마르면 노출되는 총안구에 나뭇가지 등으로 위장을 한다. 또한 동계 혹한시 숙영이 가능한 분침호를 구축하고 도로 급경사에 적사장을 설치하는 작업 등을 추가로 준비한다. ■ 사단장의 격려방식, “진짜로 앞에 오는 적을 모두 격멸할 수 있겠나..?” 공사가 어느덧 종반에 접어들자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왔다. 연대에서는 전방 부대도 있는데 예비 부대인 필자의 중대로 사단장의 현장 지도를 유도했다. 사단장 민찬기 장군(육사16기)은 중대 OP(관측소)인 A고개 헬기장으로 도착했다. 중대 진지였지만 연대장과 대대장이 사단장을 영접했고 작업복 차림의 필자는 진지공사 현황을 설명했다. 마침 그 곳은 필자가 소대장 시절에도 담당했던 지역으로 진지공사를 수차 했던 장소였다. 전방 훼바(FEBA) 지역을 통과한 적들이 책임지역까지 접근하는 정보판단을 먼저 보고하고 그 양상에 따라 오리발식 진지 첨단에서 점진적으로 주 진지까지 전환하며 적전차와 보병을 격멸하기 위한 진지와 조명목 구축 등을 자신있게 설명했다. 추가로 기존 진지공사시 착안했던 사항들과 적 기만을 위한 위장진지 구축까지 일사천리로 설명을 마치자, 사단장은 주변 진지공사 현장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준비하면 진짜로 앞에 오는 적을 모두 격멸할 수 있겠나..?”라며 격려가 담긴 질문과 미소를 남기고 복귀했다. 상급 지휘관의 지도 방문이 만족스럽게 끝나자 배석했던 연대장은 격려와 함께 앞으로 군생활을 위한 차후 보직까지 조언을 해주었고, 대대장(소장 양치규 육사29기)도 자신있게 설명한 필자에게 “야, 너는 따발총이다..ㅋㅋ”하며 기분 좋은 농담을 건넸다. 내 묘자리를 설치하는 마음으로 임한 진지공사로 유사시 초전 생존성도 보장받으며 공격해오는 적 전차 등 북한군들을 격멸할 수 있는 전투준비가 완료되어 자신감을 얻었다. 또한 사단장 등 상급지휘관들에게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선승구전(先勝求戰)을 확신시켜주는 자리도 되었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1-11
  • 방사청, 올해 880억원 투입해 무기체계 부품 국산화 사업 지원
    방위사업청은 올해 약 88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무기체계 부품 국산화 사업을 추진한다고 7일 밝혔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다양한 형태의 무기체계 부품 국산화 사업 지원에 올해 약 88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7일 밝혔다. 방사청은 그동안 부품 국산화 사업 확대를 위해 무기체계 부품 국산화 관련 규정 및 제도 개선, 관련 정부부처와 업무협약(MOU) 체결, 워킹그룹 운영 통해 국산화 과제 발굴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규정 및 제도 개선과 관련, 수출 지원을 위해 수출승인 품목(E/L 품목)의 국산화 개발 등 ‘수출 연계형 부품 국산화 개발 제도’를 신설했다. 기존에는 중소기업만 참여가 가능했다면, 이 제도는 수출 가능성과 규모 등을 고려해 중소기업과 컨소시엄(협력체계)만 구축하면 대기업과 중견기업도 참여가 가능하다. 또한 무기체계 연구개발 시 만들어진 부품을 시제품 제작, 시험평가 등을 통해 다른 체계에도 활발히 적용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고, 부품 개발 완료 후 다체계 적용 부품을 식별하여 리스트로 관리하고 관련 정보를 체계·부품 개발 업체에 제공하는 ‘국산부품 우선 활용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방사청은 방산분야 소재·부품 기술개발사업 협력을 위해 산업부와 MOU를 체결했고, K-9 자주포 엔진 및 제어장치(350억 원, 60개월) 개발 과제를 선정하는 등 속도감 있게 국산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민·관·군과 함께 KF-X(한국형 전투기) 및 K-9 자주포 등 무기체계별 워킹그룹을 운영해 부품 국산화 과제를 발굴하고, 특히 국산 무기체계에 들어가는 E/L(Export License) 품목 41종을 선제적으로 발굴해 국산화를 추진 중이다. 올해에는 약 88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부품 국산화 사업을 추진하는데, ‘부품 국산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지역기반 부품 국산화 육성 전략과 무기체계 획득사업과 결속한 부품 국산화 사업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지역 특성화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지역 내 유망 중소·벤처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지역기반 방산 생태계를 구성하는 ‘방산 혁신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지역 대학 및 연구소와 협력체계를 구축, 부품 국산화와 연계하여 추진한다. 한편, 오는 2월 시행 예정인 ‘방위산업발전법’을 근거로 국산화 부품의 방산물자 지정 범위를 확대하고, 시험 평가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방산업체에게 시제품을 무상으로 대부·양여하는 등 부품 국산화 개발을 수행하는 기업에 비용 및 기술을 적극 지원한다. 특히, 특허청과 긴밀히 협업하여 국제적으로 지식재산권이 중시되는 현재 환경을 고려해 기존 특허를 회피하는 ‘지식재산 기반 연구개발 전략’을 수립하여 지원할 예정이다. 강은호 방사청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시기에 첨단기술이 집약된 방위산업의 부품 국산화 사업을 통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고부가가치 뉴딜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방위산업
    • 국내방산
    2021-01-08
  • [뉴투분석] 강은호 방위사업청장, 업계와 ‘소통’하고 해법 추진할 ‘실행력’ 갖춰야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강은호 신임 방위사업청장이 28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업무에 돌입했다. 강 청장은 처음에 차기 방사청장을 희망했으나 가능성이 멀어지는 듯하자 방사청 차장 직에서 물러나 국방과학연구소장에 응시했었다. 이후 연구소 내부 반발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다시 방사청으로 유턴해 최초의 내부 승진 방사청장이 됐다. 강 청장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정책의 완성은 성과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추진해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면 그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며 “혁신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성과 창출에 매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는 업체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현재 시급히 조치할 것이 무엇인지도 면밀히 확인해 달라고 했다. 이와 같이 취임 직후 발 빠른 행보를 시작한 강 청장은 행시33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방사청 개청 당시부터 합류한 그는 유도무기사업부장, 방산기술통제관, 기획조정관, 지휘정찰사업부장, 기반전력사업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방산 전문가다. 방사청 관계자들도 강 청장이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면서 전문지식과 아이디어가 풍부해졌다고 말한다. 따라서 감사원 출신인 왕정홍 전 청장처럼 방위사업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청에서 잔뼈가 굵어 방위사업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와 이에 대한 해법도 상당히 알고 있다. 즉 전문성이란 관점에서는 적임자 중 한 사람이 발탁된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얼마나 시장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소통’하며, 필요한 ‘실행력’을 발휘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그동안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차기 방사청장 인선 기준으로 다양한 행정경험 및 전문성에 토대를 둔 ‘대안조정 능력’과 문제에 봉착하면 적시에 필요한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겠다는 ‘도덕적 용기’ 그리고 실무자들이 외풍에 시달리지 않고 소신껏 일할 여건을 만드는 ‘직업적 사명감’ 등 3가지를 내세웠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지금 강 청장에게 요구되는 것은 ‘도덕적 용기’와 ‘직업적 사명감’이다. 향후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역량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강 청장은 임명 과정에서 일부 제기됐던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대 방사청장 중 방산업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시장을 중시한 최고의 청장이란 평을 얻을 수 있다. 최기일 상지대 교수는 “강 청장이 자주 인용한 ‘일류 방산’이란 용어가 현실화되려면 시장을 이해하려는 자세로 업계와 허심탄회한 소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저 소통하는 모습만 보이는 요식행위를 벗어나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는 신뢰 관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방위산업진흥회가 현재 추진 중인 ‘방위산업 육성 발전방안’ 10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 청장이 취임사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코로나 19 장기화에 따른 방산업체의 애로사항부터 챙기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 맞는 선진국 수준의 제도 혁신에 힘쓰고, 과도한 감사와 규제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 조성에도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방산 정책·제도를 다년간 연구해온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국민들 사이에서 방위산업이 국가의 첨단 기술이 접목된 ‘기술선도형 산업’이면서 ‘미래 유망산업’이란 인식이 싹트도록 실질적 성과 창출에 주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획득 제도와 방위산업 육성정책의 목표를 국내 조달보다 글로벌 경쟁력 향상에 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이 방산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차기 방사청장의 인선 기준이 언급되고 신임 청장에게 바라는 여러 의견과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강 청장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일부 부정적 분위기도 감지되지만 이는 강 청장이 그동안 보인 모습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으니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이제부터 강 청장이 풀어야할 핵심 과제는 첫째로 산업이란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고 업계와 얼마나 진정한 ‘소통’을 갖느냐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업계가 수평적 동반자 관계로 상생과 협력을 추구하는 대상이란 인식이 앞서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소통 창구와 소통 방식을 만들어 정부와 업계가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방향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 둘째로 이렇게 찾아진 방향과 해법을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강력히 추진할 ‘실행력’을 갖고 있느냐이다. 강 청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했듯이 성과가 있어야 성공한 것이다. 성과를 창출하려면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실행력이 중요하며, 이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도 해결해야 한다. 이 두 가지 핵심 과제에서 강 청장의 지도력이 새롭게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 방위산업
    • 종합
    2021-01-04
  • [김희철의 전쟁사 (23)] 윈스턴 처칠, "캐나다 병사와 미국의 기술력, 영국의 장교들이면 세상을 지배"로 극찬
    중공군, 철수하는 국군 6사단을 추격하며 가평을 점령 영연방 제27여단, 중공군 저지 위해 가평 북면 일대에 방어선을 편성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중공군이 제 5차공세의 시작인 사창리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의 방어선을 뚫고 남하해오자 영연방 제 27여단은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가평의 북면 일대에 방어선을 편성했다. 중공군이 가평을 점령해서 서울과 춘천을 잇는 46번 국도를 따라 남하해오면 서부전선의 유엔군이 측면에서 협공을 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연방 제 27여단은 사창리에서 가평으로 이어지는 75번 도로 서쪽인 북면 이곡리의 677고지에 캐나다 대대를 배치했으며, 가평천과 화악천이 합류하는 도로 북동쪽 목동리의 504고지에 호주 대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여단에 배속된 미 전차 제72대대 1개 소대를 죽둔리에 배치하였고, 미들섹스 연대 제1대대로 구성된 영국군 1개 대대를 예비부대로 편성했다. 사창리를 돌파한 중공군 20군 예하 제118사단이 4월 23일 야간공격을 재개하자, 국군 제6사단은 경계부대인 미들섹스 대대와 함께 철수하여 가평 북쪽 가평천변에 배치되었다. 중공군은 호주대대의 배치 상황을 모르고 신속히 가평을 점령할 목적으로 종대대형을 유지한 채 도로와 계곡을 따라 내려 왔다. 우전방 75번 도로 북동쪽의 북면 목동리 504고지에 배치된 호주대대는 대대의 화력은 물론 지원된 전차 및 포병화력을 기습적으로 집중하여 적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은 4월 24일 01:00경 전방에 배치되었던 전차소대가 재보급을 위해 철수하자 즉시 2개 대대로 포위공격을 기도하였다. 반면 호주대대는 통신이 두절되어 전방중대와 연락은 물론 포병의 화력지원도 요청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후방의 대대지휘소와 박격포진지마저 피탈되어 최악의 상황에서 근접전투를 펼치게 되었다. 대대는 포위된 상황에서도 일부 진지가 피탈되면 즉시 역습으로 회복하면서 새벽까지 목동리 504고지의 방어진지를 사수(死守)하였다. 날이 밝아 아군의 항공폭격과 포병사격이 집중되자, 중공군은 공격을 중지하고 다수의 사체를 유기한 채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즉시 추격작전을 펼친 영연방 제 27여단 수색대는 죽둔리 부근에서 중공군 40명을 생포도 하였다. 전반적인 상황을 분석한 영연방 여단장은 적이 일시적으로 철수하였지만 이 지역에서 장시간 체류하면 오히려 피해만 증가할 것으로 판단하고, 호주대대를 미들섹스 대대 후방으로 철수토록 하였다. 대대의 철수를 지원하기 위하여 오전에 연료 보충과 장비 점검을 완료한 미 전차 소대가 복귀하여 화력으로 중공군의 추격을 저지하였고, 제16포병연대도 연막탄과 고폭탄을 사격하여 적의 시계를 차장하고 대대의 철수를 지원하였다. 호주대대가 미들섹스 대대 후방으로 철수하자, 75번 도로 서쪽인 북면 이곡리의 677고지에 배치된 캐나다 대대도 비록 고지위에 있었지만 인해전술로 밀고 올라오는 13배가 넘는 중공군을 상대로 싸운 말도 안되는 전투를 했다. 당시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참호까지 밀고 들어오며 고전하게 되자, 뉴질랜드군 포병대대에게 자신들의 머리 위로 곧바로 포격하는 ‘진내사격’을 할 것을 요청했다. 참호 안에서 싸우는 자신들보다 엄폐물 없이 노출된 중공군의 피해가 더 클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무전을 받은 뉴질랜드군 포병대대도 처음엔 놀라 선뜻 포격하지 못하다가 결국 아군 진지 머리 위로 진내사격을 해줬고 캐나다군의 의도대로 방어에 성공했다. 4월 25일 전투 후에 미군과 한 대화는 가히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미군은 아예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가정하고는 들어온 통신이 적군의 것인 줄 알았다고 한다. 사실은 미군이 캐나다대대와 ANZAC군(호주군 뉴질랜드군)이 패배했을 것이라 지레짐작한 이유는 캐나다대대와 함께 가평을 사수하던 호주대대가 병력의 40%를 잃은 뒤 이미 후퇴를 해 실질적으로 전선을 지키던 보병 병력은 캐나다군 1개 대대의 450명이 전부였던 반해 중공군은 1개 사단 6000명이 밀고 내려오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캐나다대대는 방어에 성공했고, 10명 전사자에 23명 부상자를 낸 반면 중공군은 최소 1000명에서 최대 4000명 이하가 사상 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가평전투에서 중공군 제 20군 예하 118사단은 23일과 24일 양일 동안 비교적 기동이 용이한 75번 도로와 가평천 골짜기를 따라 진출하여 서울∼춘천 46번 도로의 차단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영연방 제 27여단의 강력한 저지작전과 포병의 화력지원에 많은 인명 피해를 입게 되자 25일 새벽 공격을 포기하고 철수하였다. 따라서 중공군의 유엔군 전선 분할 기도는 완전히 좌절되고, 유엔군은 북한강 남쪽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얻게 되었다. 영연방 제27여단은 3일간의 혈전을 종료하고 25일 밤에 양평으로 철수하였고, 부대명칭도 영연방 제28여단으로 개칭하였다. 유엔군은 국군 6사단의 사창리가 돌파되면서 가평이 크게 위협을 받게 되었으나, 영연방 제 27여단 예하 호주 및 캐나다대대가 진내사격 등의 선전으로 가평을 사수(死守)하였고 중공군 제 5차공세의 전선분할 기도는 백지화 되었다. 7000여명 파병한 호주군, 코만도작전 등 특수작전에 능해 3번째 규모인 2만 7000명 파병한 캐나다, 자국 전쟁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승리는 가평전투 호주는 6.25남침전쟁이 일어나자 그 즉시 한국에 파병을 결정했다. 1950년 6월29일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파병을 결정한 호주군은 1950년 7월 공군 제 77전투비행중대와 9월에는 호주 육군이 부산에 도착하여 참전했다. 육군, 해군, 공군 모든 분야에서 파병한 호주군은 총 1만 7천여명을 파견했다. 이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째 규모였다. 육군은 3개대대와 지원부대를 포함한 총 1만 657명(육군만 놓고 본다면 미국-영국-캐나다-터키에 이어 5번째 규모이지만 전체규모는 네번째임), 해군은 항공모함 1척, 호위함 4청 구축함 4척등 총 4500명, 공군은 1개 전투비행대대와 2개의 정비대대를 포함한 2000여명이 6.25남침전쟁에 참전하였다. 호주군은 연천 마량산전투, 평안남도 숙천 영유리전투, 평안북도 박천전투, 가평 목동리(죽둔리)전투를 용맹하게 치루었다. 이 중에서도 철수하는 국군 제 6사단을 엄호하면서 끝까지 목동리(죽둔리)를 사수(死守)하면서32명이 전사하고 3명 실종, 59명이 부상당했던 일명 ‘가평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특히 코만도작전이라는 특수작전에 능했던 호주군은 1950년~1957년까지 약 7년동안 우리나라에 주둔하였으며, 1만7000명의 병력 중 사망 339명 부상 1216명으로 1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기록하였다. 한편, 캐나다 인구는 3600만명, 미국 인구는 3억2300만명, 한국 인구는 5000만명임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는 한국전쟁때 미국-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캐나다 전체 군대 2분의 1을 한국으로 보낸 것이다. 1950년 6월30일, 캐나다 하원은 한국파병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청소년부터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던 예비역까지 포함된 2만 7천명의 캐나다 군인들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6.25남침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캐나다 전쟁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승리는 ‘51년 4월23일 캐나다군 약 700명과 중국군 5,000여명이 싸운 가평 전투라고 한다. 가평 전투의 공로로 캐나다군과 호주군은 미국 트루만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는데 이것은 캐나다군이 최초로 미국으로부터 수여 받은 표창이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캐나다를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하였고 1963년에 수교를 맺었다. 현재 캐나다에 있는 모든 전쟁 기념물과 주 의사당에는 한국 전쟁 기록이 반드시 있다. 캐나다인들은 가평 전투를 잊지 않기 위해서 캐나다군의 위니펙 주둔지를 가평(Kapyeong Barrack)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놀랍게도 캐나다 도로이름에도 가평(Kapyong Rd)이 들어가는 곳들이 다수 있기도 하다. 가평전투 후, 윈스턴 처칠은 '나에게 캐나다 병사와 미국의 기술력, 영국의 장교들이 주어졌다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캐나다군이 맹활약을 한 분야도 저격, 강습, 게릴라전 등의 소수의 병사들의 악과 깡으로 버텨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동계전투는 전세계 최고라고 전해진다.
    • 소통시대
    • 종합
    2021-01-04
  • [김희철의 Crisis M] 안보전문가들의 국회진출 늘어나야 '국민 안전'위한 입법 능력 강화돼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4.15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시민당이 180석, 미래통합당·한국당이 103석을 차지해 보수의 완패로 끝났다. 또한 정치 9단으로 불리우던 다선의 중진인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박주선, 손학규 의원 등이 모두 충격적인 낙선을 했다. 현재 최다선은 6선인 민주당 박병석 의원이다. 전반적으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에 당선된 21대 국회의원 300명을 직업별로 분석하니 현직 의원이 122명이고 전직의원이 27명으로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거의 50%이고 그밖에 의원 보좌관 출신 등 정치인이 78명이다. 평생 정치를 직업삼아 해 먹던 사람들이 계속 독식하여 다른 직업인이 정치에 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폐쇄적인 구조로 다양한 직업군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 그간 국회 진출 문턱을 쉽게 넘지 못했던 여성과 탈북민 등이 의미있는 약진 이번 총선에서 배출한 최다선은 6선인 민주당 박병석 의원이다. 5선인 의원은 최 연장자인 김진표(‘47년생)를 비롯한 변재일(‘48년생), 이낙연(‘52년생), 이상민, 조정식, 송영길, 설훈, 안민석 등 더불어민주당이 8명, 서병수, 정진석, 조정태, 주호영 등 미래통합당이 4명, 무소속이 홍준표 1명이다. 또한 그간 국회 진출 문턱을 쉽게 넘지 못했던 여성과 탈북민들이 당선됐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헌정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인 28살 류호정 당선인도 게임업계는 물론 젊은 청년과 여성들의 노동환경 변화를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비례대표와 지역구를 포함하면 여성 국회의원은 57명으로 전체의원 5명 중 1명 꼴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탈북민 가운데선 태구민 미래통합당 후보가 강남갑 지역구에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그는 "세계와 북한에 우리 대한민국의 포용력과 민주주의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고 소감을 말했다. 이와 함께 북한 인권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미 국회의사당에서 목발을 들어 올렸던 탈북민 지성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도 당선되면서 사상 첫 복수 탈북민 의원시대를 열었다. ‘21대 국회의원 직업현황을 살펴보면, 정치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직업군이 변호사, 판사, 검사 등 법률을 다루는 법조인이다. 이번에 초선은 20명이지만 전·현직 의원들까지 포함하면 법조계가 30%나 차지하는 기형적인 대표성은 우리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대변하기에는 한계성이 크다. 그 다음 직업군은 교육자, 기업인, 경찰, 군인 순이며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간호사, 약사, 의사 등 의료인이 약간 증가세를 보이는 직업군으로 나타났다. ■ 군(軍)출신 인사의 입법부 진출에 대한 고정관념 탈피해야/군의 정치적 중립과 다른 각도에서 접근 필요 국가안보의 첨단인 군(軍)에서 반평생을 지난 예비역 군인들이 ‘제 2의 인생’에서 국민의 선량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선증을 거머 쥔 사람은 소수이다. ‘軍출신 국회의원 현황’을 살펴보면, 18대에 8명, 19대에 11명, 20대에 5명 그리고 이번 21대에는 6명이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를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면 23대 7의 비율이다. 국가의 입법을 담당하며 국민의 대표로 행정 및 사법 기관 등을 감사해야 할 국회에 안보전문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헌데 안보 일선에서 평생을 봉사했던 군출신들이 이번 21대 국회에도 300분의 6명으로 2%이다. 너무도 적은 수가 국회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공무원들은 세가지 부류로 나뉜다 청와대를 예로 들 때 그 첫째가 ‘늘공’ 이다. 각 행정부서에서 늘 열심히 근무하다가 발탁되어 청와대에 입성한 공무원으로 다시 복귀할 때에는 통상 승진하거나 승진할 자리로 보직을 받게 된다. 둘째가 ‘어공’ 이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들로 주로 정권 인수위원회에서 활동을 하거나 언론인 출신들이 청와대에 자리 잡은 사람이다. 이들은 주로 차관, 장관으로 발탁되거나 이번 총선에서처럼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가 ‘아공’ 이다. “아직도 공무원이야?” 라는 뜻으로 정권 말기까지 청와대에 남아있는 주로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하는 순장조 비서관, 행정관들을 칭하는 말이다. 군출신 국회의원들은 ‘어공’에 가깝다. 이번 4.15 총선 전남 해남·완도·진도 선거구에서 민주당 윤재갑 예비역 제독은 3번째 도전만에 압승했고, 포천·가평 선거구의 통합당 최춘식 예비역 대위는 예비군 중대장시절부터 40년 동안 터를 닦아 당선됐다. 국회의 국방 및 안보전문가로 입법 및 감사를 통해 국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군출신들에게 더 많은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군에서는 현역 신분으로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정치나 경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터부시 해왔다. 이제는 군도 학교기관 및 군생활 속에서 인재들을 발굴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개인적인 정치의 꿈을 꺽지 말고 키워줄 필요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시킨 2020년 정부예산이 512조2504억원이고 그중 10%인 50조1527억원이 국방비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전문지식과 실제 경험이 축적된 더많은 국방 및 안보전문가들이 국회에서 활동해야 한다. 3권분립의 민주사회에서 안보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의원들이 늘어나야 제대로 국가안보정책을 책임지고 수행함으로써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외교안보정책
    • 국방
    2020-12-30
  • 전 세계 국방비 지출 증가…미국, 점유율 38% 차지해 세계 1위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국방기술품질원이 발간한 ‘2020 세계 방산시장 연감’은 세계 방산시장 동향과 국가별 방산시장 동향 등 총 두 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세계 방산시장 동향은 국방비 지출로부터 방산선진국 수출 현황에 이르기까지 총 6개 항목으로 구분되는데, 먼저 국방비 지출에 관해 알아보겠다.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은 2018년 최초로 1조8000억 달러를 초과한데 이어, 2019년에는 1988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인 1조 9170억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추정돼 전 세계 GDP 대비 2.2%를 차지했다. 국방비 지출은 세계 경제 위기 이후 2010∼2014년까지 꾸준히 감소했으나, 2015년부터는 5년 연속 증가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사용해 항상 1위를 차지해왔고, 2019년에도 세계 국방비의 38%에 달하는 7320억 달러를 지출하여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했다. 이 수치는 2∼11위 10개국의 국방비 합계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미국의 국방비 지출은 GDP의 4.9%에 불과하며 최고치에 달했던 2010년에 비하면 15% 낮아진 수준이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방비 규모가 큰 중국은 세계 국방비의 14%에 해당하는 2610억 달러를 지출했다. 이 수치는 2010년에 비해 85% 증가한 규모로 국방비 지출 상위 15개국 중 가장 크게 증가했다. 중국은 1994년 이후 25년간 계속해서 국방비가 증가해왔다. 3위는 2018년과 비교해 6.8% 증가한 711억 달러를 국방비로 지출한 인도가 차지했고, 4위는 2018년보다 4.5% 증가한 651억 달러를 지출한 러시아가 차지했다. 반면 2018년에 3위를 차지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16% 감소한 619억 달러를 지출해 5위에 머물렀다. 서유럽 국가 중에서는 501억 달러를 지출한 프랑스가 6위에, 493억 달러를 지출한 독일이 7위에 올랐다. 독일은 2018년 대비 10%의 증가율을 기록해 9위에서 두 계단 상승했다. 한국은 439억 달러를 지출해 2018년에 이어 10위를 유지했다. 전 세계 5개 지역(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오세아니아, 유럽, 중동) 가운데 4개 지역에서 2019년 국방비 지출이 증가했다. 유럽이 5%로 가장 높았으며, 아시아/오세아니아 4.8%, 아메리카 4.7%, 아프리카 1.7% 순이었다. 중동 지역은 자료 부족으로 정확한 비교가 어렵지만, 데이터가 있는 몇몇 국가만 고려할 때 7.5% 감소했다. 국방비가 가장 증가한 유럽의 경우, 3560억 달러로 전 세계 국방비의 19%에 해당한다. 이 지역 내 러시아(4위), 프랑스(6위), 독일(7위), 영국(8위), 이탈리아(12위) 등 5개국은 국방비 지출 상위 15개국에 포함돼 있다. 게다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중부유럽 4개국들은 2010∼2019년간 150% 이상 국방비가 증가했다. 국방비가 가장 감소한 중동의 경우, 지출 규모가 가장 큰 사우디아라비아(5위)가 2015년에 역대 최고의 국방비를 지출했으나 2016년 28% 감소하고 이후 15% 증가했다가 2019년 다시 16% 감소했다. 이란도 2018년 23% 감소한데 이어 2019년에 15% 감소한 126억 달러에 머물렀다. 반면 이스라엘과 터키는 국방비 지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국방비가 차지하는 경제적 부담을 확인하기 위해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비교하는데,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세계적으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에 의하면, 149개국 중 10개국만 GDP 대비 4% 이상 국방비를 지출했고, 13개국이 3.0∼3.9%, 24개국이 2.0∼2.9%, 99개국은 2% 미만을 지출하고 있다. GDP 대비 4% 이상 국방비를 지출하는 10개국 가운데 6개국이 중동에 위치해 있다. 오만이 8.8%로 1위이고, 이어 사우디아라비아(8.0%), 쿠웨이트(5.6%), 이스라엘(5.3%), 요르단(4.7%), 레바논(4.2%) 등이 포함된다. 나머지 4개국은 알제리(6.0%), 아르메니아(4.9%), 아제르바이잔(4.0%), 파키스탄(4.0%) 등이다.
    • 방위산업
    • 종합
    2020-12-28
  • 신임 방위사업청장에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 차장 전격 발탁
    23일 차관급 인사에서 신임 방위사업청장으로 임명된 강은호 내정자. [사진제공=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23일 차관급 인사에서 신임 방위사업청장으로 임명된 강은호 내정자는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 내에서 주요 직위를 두루 거친 방산행정 전문가로 평가돼 방산업계도 반기는 분위기다. 1966년생인 강 방사청장 내정자는 전주 완산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행시 33회로 공직에 입문한 후 지난 2006년 방사청 개청 당시부터 합류해 최근까지 근무했다. 그는 방사청에서 유도무기사업부장, 방산기술통제관, 기획조정관, 지휘정찰사업부장, 사업관리본부장, 기반전력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한 후 지난해 12월 말 방사청 2인자에 해당하는 차장으로 승진했다. 따라서 누가 보더라도 방사청장 후보 1순위에 해당하는 경력의 소유자다. 그럼에도 강 내정자의 발탁은 매우 이례적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왜냐하면 그가 방사청 차장 승진 1년도 안 돼 지난달 초 돌연 사직서를 제출하고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직에 응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방사청장이 아닌 ADD 소장 하마평에 올랐었고, 차기 소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으며 조만간 낙점될 것으로 예측해왔다. 그런데 이번 인사로 ADD 소장을 희망하던 강 전 차장이 친정인 방사청으로 유턴해 놀랐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방위사업청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차장까지 역임한 행정 전문가"라며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 업무추진 역량을 인정받고 있어, 미래 국방기술의 선제적 확보, 방위사업의 투명성·신뢰성 강화 등 핵심 정책과제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가 인사 브리핑에서 또 다시 효율성보다 투명성을 앞세우자 방산업계는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방산 전문가 발탁을 반기면서도 “실체도 없는 방산비리 프레임에서 벗어나 업계와 원활히 소통하며 그동안 흐트러진 방위산업의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는 역할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방산 전문가들 또한 국방부 차관, 방사청장, ADD 소장 등 여러 자리에 거론된 사실이 증명하듯 행정능력도 뛰어나고 전문성도 갖췄으니 전임자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야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방사청장에 오른 당위성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강 내정자가 방사청장에 발탁되면서 그와 경쟁하던 강태원 현 ADD 부소장이 소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두 사람이 차기 소장 후보로 압축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방위산업
    • 국내방산
    2020-12-25
  • [김희철의 전쟁사 (22)] 유엔군 사령관에 리지웨이, 미 8군 사령관에 밴 플리트 장군이 취임하자 중공군은 5차 공세 시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서울을 점령한 중공군은 전력을 보충한 뒤 제 4차 2월공세(’51.2.11~18)를 시작했으나, 중공군의 약점을 파악한 유엔군은 지평리 전투(“[김희철의 전쟁사](3) 유엔군의 '자유전사' 프랑스 몽클레어 장군과 미국 프리만, 크롬베즈 대령”참조)에서 사주방어 및 기동전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성공적으로 저지·격퇴시켰다. 그리고 계속 공격하여 3월15일 서울을 재탈환하고 4월 22일 리지웨이 사령관의 재반격작전의 목표를 달성하였다. ■ 베이징으로 간 펑더하이, 마오쩌둥과 독대해 대규모 병력 증원 결정 이때 중공군사령관 펑더화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들의 제 4차 2월공세가 끝나자 마자 부리나케 베이징으로 달려갔다. 얼마나 급했는지 평소에 타지않던 비행기를 이용해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펑더하이는 베이징에 도착해서 바로 마오쩌둥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때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야행성인 마오쩌둥은 자고 있었다. 펑더하이는 보초의 제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마오쩌둥이 자고 있는 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자다 일어난 마오쩌둥에게 “속결로 승리를 거두기에는 어렵다”며 전선의 상황을 단도직입적으로 보고했다. 이어 “한국전선의 중국인민지원군 병사들은 잠도 식사도 제대로 못 자고 탄약도 없으며 동상자들이 속출하고 있고 채소는 구경도 못해 야간전투가 많은 병사들로서는 야맹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더욱이 조선 청년들은 모두 달아나 동원하기 어렵고 겨울에는 동서의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이 겹쳐 무척이나 춥고 피해가 늘어 인원보충이 즉각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상태로는 도저히 싸울 수 없다”며 부대의 어려운 현상황을 솔직히 보고 하였다. 사태를 파악한 마오쩌둥은 즉시 대책을 강구했다. 대규모의 중공군을 보충하였고 포병부대와 대공포 부대도 증원하였다. 식량 및 탄약도 부족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도 포함 시켰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주도권 장악은 물론이고 수도 서울을 다시 무력으로 빼앗아 전세를 만회하겠다며 펑더하이와 마오쩌둥은 다짐을 했다. 이것이 중공군의 제 5차 4월공세(’51.4.22~27)였다. 이는 전열을 가다듬은 중공군과 재반격작전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국군과 유엔군의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였다. 한편 유엔군 상황으로 리지웨이가 8군 사령관에 부임한 후부터 맥아더의 입지는 무척 좁아졌고 그는 계속해서 워싱턴과 반대되는 견해를 내놓았으며 트루먼 대통령을 별로 존중하지 않는 듯했다. 결정타는 1951년 4월 5일 공화당 마틴 의원에게 보낸 편지가 하원에서 낭독된 것이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트루먼은 맥아더를 해임하기로 결심했다. ■ 해임된 맥아더 장군, 하원 연설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많은 망설임과 혼란 속에서 백악관은 4월 9일 새벽에 맥아더의 해임을 공표했고, 이로 인해 트루먼 행정부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특히 4월 19일 맥아더가 하원에서 행한 연설은 그를 미국의 영웅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당시만 해도 맥아더가 출마를 하면 바로 대통령이라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후에 맥아더가 상원 청문회에 나와 전쟁에 대한 증언을 하면서 그의 인기는 급락했다. 아마도 하원에서의 연설이 맥아더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고 한다. 맥아더의 후임(유엔군 사령관)으로는 8군 사령관 리지웨이가 임명되었고 리지웨이의 자리는 밴 플리트(Van Fleet) 장군이 맡았다. 밴 플리트가 8군 사령관으로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4월 22일 중공군은 5차 공세(춘계공세)가 시작되었다. ■ 설마리 전투, 영국 글로스터셔 연대가 중공군 제 5차 공세 저지에 기여 유엔군이 4월에는 기존의 38선 지역까지 진출했었다. 이에 중공군은 서울을 다시 점령하기 위해 7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켰다. 중공군은 제19병단으로 국군 제1사단과 영국군 제29여단이 지키는 문산-파주 방면을 공격하고, 제3병단은 미 제3사단과 터키여단이 지키는 연천-동두천 방면을 공격해서 서울을 포위하고 점령한다는 5차 공세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1951년 4월 22일 중공군 제19병단이 문산-파주 지역을 공격함으로서 제 5차 공세가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군 제29여단은 임진강 하류인 파주 적성면 일대의 방어를 맡고 있었는데, 특히 글로스터셔 연대(Gloucestershire Regiment)의 제1대대가 지키는 감악산 북서쪽인 마지리 일대를 집중 공격했다.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는 마지리일대의 235고지에서 이틀 동안 분전을 하며 중공군 제63군의 진격을 저지했으나 결국 감악산 기슭인 설마리 일대의 고지로 물러났다.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가 설마리에서 중공군에 포위되자 미 제1군단 사령부는 국군 제1사단과 미 제3사단 등의 병력을 보내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구출하려 했다. 하지만 모든 전선에서 중공군의 파상적인 공세가 계속되고 있었으므로 구출 작전은 실패했다. 4월 25일, 대대가 전멸할 위기에 놓이자 진지를 포기하고 탈출하라는 사령부의 명령을 받은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는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60여 명만이 탈출에 성공하고 500여 명이 전사 또는 포로가 되었다. 설마리 전투에서 영국군 제29여단은 1개 대대 병력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고, 여단 전체로는 1,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는 3일 동안 중공군의 진격을 처절한 피로써 지연시켜 중공군의 서울 침공 의도를 저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훗날, 영국군 제29여단 소속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가 중공군과 맞서 싸운 235고지를 '글로스터(Gloster Hill)'고지라고 명명하고 인접 도로가에 추모공원과 전적비를 세워 영혼을 달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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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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