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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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큐아이,‘블루맥스 LMS’나라장터 등록…공공시장 공략 강화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시큐아이가 국가 종합 전자조달 시스템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통합로그관리플랫폼 ‘블루맥스 LMS’를 등록했다고 12일 밝혔다. 회사 측은 “블루맥스 LMS는 최신 빅데이터 처리 기술 탑재로 보안솔루션·네트워크장비·업무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대용량 로그를 1초당 120만개 이상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제품은 시큐아이의 보안 제품뿐만 아니라 타사 솔루션의 로그 및 네트워크 패킷을 연계 분석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인프라 전반의 보안 위협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제품 사용자는 로그 데이터를 자동으로 인지해 정렬해주는 스마트 파서(Smart Parser) 기능을 통해 로그 데이터를 일일이 확인하고 정렬할 필요가 없다. 직접 데이터·차트 유형·생성 주기 등을 정의하고 구성하는 맞춤형 보고서 기능이 있어 관리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 시큐아이는 이번 나라장터 등록을 통해 국내 공공시장 대상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황기영 시큐아이 대표는“공공·지자체가 블루맥스 LMS를 통해 효율적인 데이터 관리가 가능하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7-12
  • [숨은 중국 알기 (14)] 보이지 않는 ‘잠규칙(潛規則)’이 현행 법규 위에 존재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중국 지도자들은 ‘법에 의한 통치’(依法治國)를 내세운다. 이는 덩샤오핑(鄧小平) 시대부터 역대 지도자를 거치며 계속 추진돼온 방침으로 시진핑(習近平) 시대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국가를 법으로 통치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중국 지도자들이 새삼 강조하는 이유는 법으로 통치가 안 된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러면 법과 규정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우리는 잘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잠규칙(潛規則), 즉 잠수함처럼 숨어있는 규칙인 것이다. 아직도 중국 사회 곳곳에서 그리고 외교에서도 잠규칙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첫 번째, 20년 간 중국과 비즈니스를 해온 류재윤이 그의 저서 ‘지금이라도 중국을 공부하라’에서 밝힌 자신이 겪은 경험이다. 그는 중국 어느 지방에 공장을 건설하려고 규정과 방침에 따라 서류를 작성하여 행정기관에 제출했다. 그런데 담당자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계속 안 된다고만 말했다. 그가 문제 해결을 위해 인맥과 꽌시(關系)를 동원하여 수소문한 결과, 한 친구가 다음과 같이 상황을 정리해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 중국 친구는 “아마 잠규칙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잠규칙이 뭐냐고 물어보자 “우리가 공개적으로 알고 있는 규칙보다 상위에 있는 규칙이지. 보이지 않지만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거든, 하지만 숨어있는 규칙이어서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고 있어, 그런 이유로 그게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고, 공개적으로 물어봐도 절대 알려주지 않는 거야”라고 답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회사에 대해 숨어있는 규칙을 알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 결과, 드디어 잠규칙을 알아냈다. 몇 년 전에 그 지방 책임자가 자기 회사에 투자를 요청했는데, 타산이 맞지 않아 거절한 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체면이 상한 책임자는 “저 회사하고는 앞으로 어떤 거래도 하지마라”고 했다. 그 한마디가 바로 자기 회사에 대한 잠규칙이었다. 어떤 문서에도 그런 조항이 명시돼 있지는 않았지만, 그 지역 공무원들은 예외 없이 그 잠규칙을 확실하게 숙지하고 철저히 준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서에 있는 규칙을 해결해도 잠규칙에 묶여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중국의 현실이다. 심지어 잠규칙을 처음 만들어 낸 당사자가 은퇴한 후에도 한번 정해진 잠규칙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한다. 류재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퇴한 예전 책임자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는 과거에 체면을 상하게 한 ‘투자요청 거절 건’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과거에 묶여 진행되지 못하는 현재의 일을 풀어달라고 역시 정중히 부탁했다. 그 은퇴한 책임자는 손상됐던 체면을 살려주는 사과를 받아들이고 현직 공무원들에게 “내가 한 말에 신경 쓰지 말고 규칙대로 하라”고 연락을 취했다. 잠규칙이 해결되자 공장 건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외국 회사가 자신들의 투자 요청을 거절했다고 중국 사람들이 모두 잠규칙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체면이 손상됐는지 여부이다. 두 번째, 최근 우리의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이 취한 소위 한한령(限韓令) 또는 금한령(禁韓令)조치이다. 중국 정부는 “이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취하는 조치들이다”라는 입장이다. 필자가 보기에 한한령은 국가 차원의 잠규칙이다. 정부의 지시가 없음에도 나타나는 모습이 같다면 원인도 같아 보인다. 즉 중국 지도자가 체면을 손상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은 수차례 공식적으로 사드배치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우리 정부도 사드배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사드배치 발표 10일 전인 2016년 6월 29일 중국을 방문한 우리 총리도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사드배치 문제에 대해 “양국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다양한 채널로 협의를 해보자”라고 언급했다. 그러고는 2016년 7월 8일 사드를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을 충분히 설득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발표였다. 당시 필자가 만나 본 중국인들은 정부 공무원이든 일반인이든 누구나 똑 같은 이야기를 했다. “한국이 그럴 줄 몰랐다. 왜 중국을 배신하는가” 그들은 국가 지도자부터 일반인까지 체면을 손상당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중국인들의 이어지는 조치는 잠규칙이 아니겠는가? 바로 한한령인 것이다. 따라서 잠규칙, 한한령에서 벗어나려면 중국의 체면을 살려주어야 한다. 우리가 제시한 ① 사드 추가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②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③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란 3불 입장으론 손상된 체면이 회복되지 않는 모양이다. 중국은 사드배치 이전 상태 즉 사드를 철거해야 비로소 체면이 회복된다고 생각하고 한한령을 해제할 듯하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사드의 ‘단계적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한한령을 풀겠다고 중국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사드를 철거한다면 더 큰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우리 안보와 생존문제에 있어서 ‘사드 철거’와 ‘한한령 해제’는 결코 동일한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등가성(等價性)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중국의 체면도 살려주면서 사드 배치라는 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는 성숙되고 고차원적인 외교력을 왜 발휘하지 못했는지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필자는 현 정부가 3불 문제에 대해 다음 정부를 위해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3불은 당시 우리의 입장이지 중국과의 합의나 약속은 아니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당시 외교장관도 “3불은 우리가 중국에 동의해 준 사안이 아니고 기존 입장을 반복하고 확인해주었을 따름이다”라고 국회에서 밝힌 바 있다. 다음 정부는 3불이 단순 입장표명이냐 아니면 약속이냐의 소모적인 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국이 3불은 약속이며 한·중 간 합의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여 문제를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정부는 3불에서 자유로운 입장에서 출발해 중국을 상대해야 한다. 세 번째, 잠규칙은 아니지만 이에 준하는 개인 경험이 있어 소개한다. 필자가 대만에서 유학한 시기는 대만과 단교하기 1년 반 전이었다. 당시 필자의 대만 동기생들은 한국이 조만간 중국과 수교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나라가 중국과 수교하는데, 한국만 장제스(蔣介石)가 임시정부를 도와준 50여년 전 의리를 지켜 국교를 유지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필자에서 “너 언젠가 중국 갈 거지, 대만에서 공부한 거 중국에서 활용할 거지”라고 뼈있는 한마디를 던지곤 했다. 대만 친구들의 예상대로 우리는 1992년 8월 대만과 단교와 동시에 중국과 국교를 수립했다. 당시 대만인들도 모두 우리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아직까지 그 감정이 남아있다. 역시 대만의 체면을 살려주지 못한 우리 정부의 미숙함 때문에 나 자신이 정부를 대신해 미안함을 표하게 됐다. 중국인들은 ‘군자가 보복을 하는데 10년도 늦지 않다’(君子報仇十年不晩)라는 말을 하곤 한다. 뒤끝이 10년 이상 간다는 의미이다. 중국인을 대할 때, 그들의 체면을 손상해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뒤끝 즉 잠규칙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국가 관계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07-1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21)] 다부동지구 전투 전쟁영웅들의 현장 체험담 ⑨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백선엽 장군의 요청으로 증원된 마이캘리스 대령의 미 27연대는 인민군의 전차 접근로인 진목정 북쪽에 배치되어 18일에는 남하하는 T-34 전차 2대와 SU-76 자주포를 파괴하고 1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21일에는 야간침투를 시도하는 북한군 105땅크사단의 전차 7대와 자주포 3대, 기타 차량들을 모든 화포와 전차를 총동원한 끝에 격파하여 5시간만에 격퇴시켰다. 당시 미군은 북한군이 오리라 추정되는 길목에 지뢰를 묻지 않고 보란 듯이 땅위에 올려놓았는데, 이들의 예측대로 이곳으로 온 북한군 전차 행렬 중 선두 전차가 지뢰 제거를 위해 정지한 틈을 타 3.5인치 바주카 및 전차포로 총공격을 가했다. 특히 전날 투항한 북한군 포병대대장 정봉욱 중좌(훗날 논산훈련소장, 초대 3사관학교장, 7사단장 역임, 소장예편)가 적부대의 위치를 알려준 덕에 더욱 효과적인 공격이 가능했다. 미 8포병대대도 약 1600발의 포탄을 사격했고 이외에도 약 2500발의 박격포탄 사격이 실시되었다. 이날 목숨을 걸고 도로 양쪽의 참호에서 치열한 저지전을 펴며 전차전을 볼 수 있었던 참전자들은 북한군 T-34전차 및 SU-76과 미군 27연대를 지원하던 73전차대대 C중대의 M26 퍼싱이 야간에 맞교환한 포탄들이 마치 볼링장 핀을 향해 질주하는 볼링공을 연상시켜 '볼링장 전투'로 불렀는데, 이는 한국전쟁 초반에 일어난 가장 유명한 전차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중요성은 북한 인민군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넘어오려고 하였다. 때문에 자연스레 전선이 피아 혼재되었고, 전투 양상도 굉장히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7-12
  • 미디어젠, 133억원 규모 NIA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한다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음성 기반 인공지능(AI) 전문 기업 미디어젠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추진하는 ‘2021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에서 △화자 인식용 음성 데이터 구축 △아동 음성 데이터 구축 △다화자 음성합성 데이터 구축 3개 사업 주관 기관으로 선정됐다고 9일 밝혔다. 미디어젠은 지난해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1차, 2차 사업에도 선정돼 성공적으로 과제 수행을 마친 이력이 있다. 지난해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까지 2년 연속 선정돼 AI 데이터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미디어젠이 수행하는 첫 번째 사업 ‘화자 인식용 음성 데이터 구축’ 사업은 미디어젠이 주관하며 메트릭스리서치·비디·인천대학교가 참여한다. 이 사업을 통해 5000시간 분량의 화자 인식용 음성 데이터 및 4500시간 분량의 가창 데이터를 구축한다. 이는 미디어젠의 신규 사업 분야인 음성 AI 엔진과 인공지능 가수(AI Singer)에 모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두 번째 사업인 ‘아동 음성 데이터 구축’은 미디어젠이 주관하며 메트릭스리서치·비디·아이포트폴리오·방정환 재단이 참여한다. 이 사업을 통해 2500명이 넘는 아동의 한국어 음성 5000시간 분량을 수집하고, 5000명이 넘는 아동의 영어 음성을 5000시간 분량 수집한다. 세 번째 사업인 ‘다화자 음성합성 데이터 구축’은 미디어젠이 주관하며 애드사운드가 참여한다. 이 사업을 통해 4500명의 일반인 화자에 대해 1만 시간 분량의 음성을 수집하고, 12종류의 감성·스타일로 분류한 성우들의 음성 데이터를 구축한다. 미디어젠은 이번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을 통해 방대한 AI 데이터를 수집·활용해 음성 AI 엔진의 성능을 더 높일 계획이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7-09
  • CyberLink FaceMe, 매장·공공 서비스·숙박 시설 등 IoT ·AIoT 분야 안면 인식 기능 제공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인공지능(AI) 기반 안면 인식 기술의 선두 주자 사이버링크(CyberLink)는 8일 ASUS Tinker Board 2 싱글 보드 컴퓨터(SBC)에 페이스미(FaceMe®) AI 안면 인식 엔진을 탑재하는 내용의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ASUS 사물인터넷(IoT)과 CyberLink FaceMe® 팀 간 긴밀한 협업을 통해 출시되는 이 솔루션은 각종 매장, 공공 서비스, 숙박 시설 등에 보안, 출입 제어, 방문자 관리를 위한 비대면 안면 인식 기능을 바로 탑재할 수 있는 완벽한 통합 기능을 제공한다. CyberLink FaceMe® SDK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크로스 플랫폼 AI 안면 인식 엔진 가운데 하나다. IoT 하드웨어 및 AI 추론 엔진에 최적화해 여러 운영 체제를 지원하는 FaceMe®는 IoT, 사물지능(AioT) 개발자 및 시스템 통합 업체에 정확하고 유연한 안면 인식 기능을 제공해 폭넓은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Android 10 운영 체제를 지원하는 Arm® 기반 싱글 보드 컴퓨터 Tinker Board 2는 뛰어난 성능, 풍부한 유무선 연결 기능 및 듀얼 4K 화면 출력을 지원해 디지털 사이니지, 키오스크, POS 및 매장, 공공 서비스, 숙박 시설 및 의료용 출입 제어 시스템에 탑재할 수 있다. 자우 황 CyberLink CEO는 “안면 인식은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IoT 솔루션을 더 완벽하게 만들 기술 가운데 하나”라며 “IoT용 컴퓨터 하드웨어 분야의 세계적 선도 업체 ASUS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관련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쿼웨이 차오 ASUS IoT 사업부 총괄 매니저는 “에지 AI는 이제 다양한 시장에서 AIoT 애플리케이션의 핵심 기술이 됐다”며 “세계 최고의 AI 안면 인식 기술 브랜드 CyberLink와 협력해 Tinker Board 2 SBC에 안면 인식 기술을 탑재하면서 경쟁 SBC 제품보다 훨씬 뛰어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7-09
  • [김희철의 전쟁사(104)] 3대에 걸친 불멸의 한국사랑 ‘윌리엄 쇼’일가(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하얀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미국인 중에 생명을 걸고 이 나라를 사랑한 선교사와 그의 자녀들이 있었으며, 한국인은 그들을 기억하고 감사해야한다. 가장 먼저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917-2004) 박사는 연세대를 최초 건립하였고, 한국전쟁 발발로 재입대하여 인천상륙작전에 투입한 뒤 유엔군의 수석통역관으로 정전협정을 이끌어내는 등의 활약을 했다. 이후 한국의 교육 발전에 헌신했으며, 그의 아들 인요한 박사는 순천에서 태어나 현재까지도 세브란스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휴 린튼(Hugh MacIntyre Linton, 1926-1984)은 미 해군 대위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으며, 휴전 후 선교와 의료 봉사에 매진하여 한국의 결핵 퇴치에 이바지했다. 또한 하워드 마펫(Howaed Moffett, 1917-2013)은 평양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해군 군목으로 참전했으며, 휴전 후 고아와 미망인을 위한 무료 진료를 하는 등 45년간 한국에서 의료 선교에 헌신했다. 특히 윌리엄 E. 쇼(Shaw, William Earl)는 미 감리회 선교사로 1921년 내한하여 서위렴(徐偉廉)이라는 이름으로 평양, 서울, 대전 등에서 1960년까지 선교와 교육에 크게 이바지했다. ■ 윌리엄의 손자까지 3대가 선교, 군인, 장학사업으로 한국인 도와 윌리엄 E. 쇼(Shaw, William Earl, 서위렴)는 1890년 8월22일 시카고에서 출생하여, 1916년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과 콜럼비아 대학원(1921)을 졸업했다. 선교 사업에 뜻을 두고 한국 선교사가 된 다음 보스턴 신학대학원도 졸업(1927)했다. 평양에서 광성학교 교사로 봉직(1921-1926)하고, 만주와 해주 지방에서 교육과 전도사업(1927-1937)에 몰두했다. 1938년 무어(J. Z. Moore)선교사와 함께 평양요한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배출했으며, 평양소년단(보이스카웃) 단장으로도 봉사했다.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었다가 해방 후인 1947년 다시 내한했다. 1950년 6·25남침전쟁 때에는 미군 군목으로 종군하면서 피난 교역자 구호에 힘썼으며, 특히 한국군 군종 창설에 크게 기여했다. 참고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때도 군목으로 유럽 전선에 종군했었다. 외아들 해밀턴 쇼가 6·25남침전쟁에서 전사하자 미국 본토에서 5,925명의 신자들이 보내준 14,500불의 헌금으로 쇼 기념교회를 대전에 건립했다. 1955년 목회자들의 수련을 위하여 쉐파트(Shepard) 부인이 헌금한 6,000불을 기초로 목자관을 건립하여 관장으로 봉직했다. 감리교대전신학원(목원대) 창립 이사(1954-1960)로 참여했고, 신약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크게 존경을 받았다. 1961년 선교사직에서 은퇴한 뒤, 귀국하여 1967년 10월 5일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병원에서 별세하자 유해는 그의 유언에 따라 부인이 안고 와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제2묘역 라-6)에 안장됐다. 부인 아데린 H. 쇼(Shaw, Adeline Hamilton,1895-1971) 선교사는 1895년 7월 2일 출생하여 1919년 7월 4일 윌리엄 쇼와 결혼하고, 1921년 내한하여 남편을 내조하면서 숭덕여학교 교사 등으로 1960년까지 교육에 헌신했다. 1971년 5월 8일 캘리포니아에서 별세했으며, 양화진 (제2묘역 라-5) 남편의 묘 옆에 안장됐다. 며느리 조니타 로빈슨 쇼(Shaw,Juanita Robinson)는 1943년 외아들 해밀턴 쇼와 결혼했으며,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세브란스 병원에 사회사업실(Medical-social)을 개설했다. 서울외국인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했으며, 1968년 귀국하여 미국 코네티켓에서 사회봉사 사업을 마치고 은퇴했다. 서위렴의 큰손자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은 1944년에 출생하여 서울외국인학교를 다녔다.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1977)를 받고, 내한하여 훌브라이트(Fulbright) 장학사업을 추진했고, 한국 대학생을 위한 하버드 대학 법률연구센터와 교류에 힘썼다. 1966년 캐롤 C. 쇼(Carol Cameron Shaw)와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다. 1993년 심장 질환으로 버지니아 스프링필드에서 별세했다.(다음편 계속)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07-0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20)] 다부동지구 전투 전쟁영웅들의 현장 체험담 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다부동으로 몰려오는 북한군의 집중공세가 심상치 않음을 판단한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왜관 및 다부동에 융단 폭격을 명령했다. 16일 오키나와 기지에서 출격한 B-29폭격기 98대는 960톤의 폭탄을 목표에 투하하였으나 인민군의 포격이 다소 줄어든 것 이외에는 별 성과가 없었다. 다만 백선엽 장군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포로를 심문한 결과, 이날의 융단폭격을 기점으로 적들의 기세가 결정적으로 꺾였다. 어쨌든 19일 실시 예정이었던 2차 폭격은 취소되었다. 한편 백선엽 1사단장은 중과부적으로 현 진지의 방어가 힘들 것으로 판단하여 사단 고문관 메이 중위를 미 8군 사령부에 보내 증원을 건의하게 하였다. 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백선엽 장군의 요청에 경산에 있던 미군 27연대, 37포병대대, 8포병대대를 진목정으로, 23연대를 두모동으로 투입하여 종심을 강화하였다. 17일 국군 11, 12연대는 유학산을 공격하여 적 1,500명을 사살했으나 11연대 11중대가 지키고 있던 673고지가 기습을 받아 뚫리는 바람에 유학산 탈환에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한편 15연대는 융단폭격의 영향으로 인민군이 침묵하고 있는 사이 공격을 재개하여 적을 낙동강 서안으로 몰아내고 328고지를 탈환하였다. ■ 백선엽, 적 특공대의 사단 사령부 기습 등 위기에 다시 직접 권총을 빼들고 선두 지휘… 그러나 사단 우측에 벌어진 간격으로 북한군이 침투하여 가산성을 점령했고 이로 인해 동쪽이 노출된 틈을 타서 18일 적의 특공대가 사단 사령부를 기습했으나 다행히 백선엽 및 사단 주요인물들을 사살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 전선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2군단장 유재흥 장군은 19일 'Y'선을 견고하게 하기 휘해 국군8사단 10연대를 1사단에 배속시켰다. 반면에 다행스럽게도 국군 1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 북한군은 유학산을 방어하고 있던 15사단을 20일 영천으로 돌렸다. 21일 백선엽은 증원병력을 받자 'Y'선 완전 회복을 결심하고 12연대와 10연대로 하여금 수암산 및 유학산을 공격하게 하는 한편 11연대로 신주막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번 공격도 수약산과 유학산을 점령하는데 그치고 11연대는 공격 초반부터 북한군의 반격에 부딪혀 점차 후퇴하고 있었다. 이에 격분한 백선엽은 다시 직접 권총을 들고 선두지휘하여 힘겹게 원위치를 확보하였다. 또한 이 날 북한군 포병대대장 정봉욱 중좌(훗날 논산훈련소장 역임, 소장 예편)가 휘하 병력을 이끌고 국군에 투항하여 적 포병대 배치를 알려주어 반격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7-09
  • 6·25 전쟁 당시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인 최영섭 예비역 대령 별세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6·25 전쟁 당시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이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인 최영섭(해사 3기) 예비역 해군 대령이 8일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최 전 대령은 이날 새벽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으며,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화를 보내고,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고인은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 새벽 동해상으로 남하해 부산으로 침투하려던 북한 1천t급 무장 수송선을 대한해협에서 격침하는데 결정적 공을 세운 전쟁영웅이다. 대한해협 해전은 6·25 전쟁에서 우리나라 해군의 첫 승전 사례다. 당시 고인은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의 갑판사관(소위)이었고, 이후 인천상륙작전 등 6·25 주요 전투에도 참전해 공을 세웠으며, 1964년 우리나라 최초 구축함인 충무함의 제2대 함장이 됐다. 해군은 지난 4월 그의 일대기를 담은 ‘지략·용기·덕망을 겸비한 최영섭 대령’ 평전을 출간했다. 고인은 평전을 전달받은 자리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의 남은 가족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챙겨야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군 전사자 자녀를 위한 ‘바다사랑 장학금’으로 2018년과 2020년 각각 3천만원, 그리고 병세가 위중해진 올해 3월에도 1천만원 등 7천만원을 기부했다. 자신의 저서 판매수입과 강연료를 모은 돈이었다고 한다. 강원도 평강에서 태어난 고인은 해방 후 온 가족이 월남한 실향민이다. 대표적인 군인 명문가로, 동생 두 명은 해병대 대령과 해군 부사관으로 전역했고, 아들 넷 모두 육군 법무관 출신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비롯해 육·해·공군 장교로 복무했다. 손자 1명은 해병대 장교로 DMZ(비무장지대)에서 근무했고, 최 전 원장이 입양한 아들 2명도 병장으로 제대하여 고인은 평소 “자손들에게 가급적 최전방에서 근무하라고 했다”며 “나는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아우르는 통합사령관”이라고 자랑했다. 부친의 근무지였던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최 전 원장은 부친 간호에 진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8일 감사원장직 사퇴 이후 가족과 함께 지방에서 머무르다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경했다. 최 전 원장은 정치 참여를 선언하기 전에 부친과 상의해 결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인은 최 전 원장이 정치 참여를 상의하자 “소신껏 하라”고 당부했고, 특히 숨을 거두기 직전에는 “대한민국을 밝혀라”는 글을 적어 건넸다고 한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최 전 원장 외에 아들 재신(전 고려개발 사장), 재민(최재민소아병원장). 재완(광주대 교수) 씨가 있다. 오는 10일 발인 이후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 전역군인
    • 종합
    2021-07-09
  • [김희철의 전쟁사(103)] 캐롤송도 없이 핏빛만 가득했던 ‘크리스마스고지 전투’(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차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다음해인 1952년, 대위로 진급한 이순호는 국군 7사단 3연대 3대대 9중대장으로 보직 받아 강원도 양구군 백석산 전방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진지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휴전회담이 계속 진행되던 중, 1차 크리스마스고지 전투에서 패배한 중공군 204사단은 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못하고 10월 6일 기습 공격했고 6일간의 전투에서 아군은 또 다시 크리스마스고지를 피탈 당하기도 했다. 당시 9중대장인 이 대위는 패배에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반드시 재탈환하여 사수하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10월13일 저녁 중공군은 치열한 공격준비사격을 퍼부은 후, 재차 9중대 정면과측면에 각각 1개중대를 투입하여 공격해왔다. 적의 공격에 2소대 지역이 함락되면서 중대의 좌측이 뚫리고 말았다. 다급해진 중대는 수류탄과 총검으로 중공군에 맞섰지만, 적의 공세에 밀려 부대가 포위됐고 삽시간에 적과 아군이 한데 엉키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대위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끝까지 진지를 탈환할 것을 각오하고 화기 소대장에게 분산된 3소대를 수습해서 중대 지휘소로 몰려드는 적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자신은 본부요원에게 수류탄 상자를 들게 하고 직접 수류탄을 던지며 총검을 휘두르는 백병전 속으로 뛰어 들었다. 이때 투척한 수류탄은 3상자로 그의 옆에서 수류탄 통의 테이프를 입으로 뜯어주던 본부요원의 이빨이 2개나 빠질 정도였다. 이에 공격기세가 꺾인 적들이 무수한 시체들을 버리고 퇴각한 뒤에야, 이 대위는 자신이 전투 중에 부상을 입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적의 총탄이 왼쪽 팔과 우측 정강이 두 곳을 관통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부대원들의 후송 권고를 뿌리치고 압박붕대로 상처의 지혈만을 한 채 절뚝거리며 방어진지 점검에 나섰고 그 모습을 본 장병들은 가슴 깊이 감동을 받았으며 다시 한번 더 전투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이어 9중대 지역 공격에 실패한 중공군은 증원을 받아 중대 지휘소로 재차 공격을 해왔고 교전은 더욱 치열해졌으며 중대는 또다시 위기에 빠졌다. 이 대위는 중상을 입었지만 중대원들과 함께 수류탄을 던지고 총검을 휘두르는 혈투를 벌이며 끝까지 진지를 지켰으나 그의 가슴에 흉탄이 관통하면서 장렬히 전사했다. 결국 이 대위의 장렬한 죽음을 본 9중대원들은 분노에 차 혼신의 힘을 다해 야간 격전을 처절하게 버텨냈고, 이튿날 11중대의 증원을 받아 이순호 대위의 염원대로 핏빛만 가득한 크리스마스고지를 끝까지 사수할 수 있었다. 정부는 그의 전공을 기리어 1계급 특진추서와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이순호 소령은 보훈처에서 2018년 ‘7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되어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유가족과 육군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 행사도 거행됐다.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07-08
  • 삼성SDS,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형 블록체인 사업 확대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삼성SDS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형 블록체인(BaaS, Blockchain-as-a-Service) 사업 확대에 나선다. 삼성SDS는 블록체인 기술로 문서 위·변조 문제를 해결해 주는 ‘페이퍼리스’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8일 발표했다. ‘페이퍼리스’는 계약서, 동의서, 증명서 등 위·변조가 우려되는 각종 문서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안전하게 관리해주는 서비스다. 각종 증빙이 필요한 업무 또는 투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이 가능하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삼성SDS는 별도의 서버에 대용량 문서 또는 민감한 개인정보 등의 데이터를 암호화하여 저장하고, 해당 문서나 데이터에 대한 해시값만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오프체인(Off-Chain) 기술을 ‘페이퍼리스’에 적용했다. 이를 통해 대용량 문서로 인한 블록체인 속도저하를 방지할 수 있고, 일정 기간 보관 후 폐기가 필요한 문서 관리도 가능하다. 아울러 문서 생성, 변경, 폐기 등 모든 이력은 실시간 블록체인에 기록되므로 데이터에 대한 신뢰성과 투명성도 확보할 수 있다. 해시값은 복사된 데이터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파일 특성을 축약해 놓은 암호화된 수치를 말한다. 고객은 ‘페이퍼리스’ 표준 기능(API)을 통해 각종 계약ㆍ증명ㆍ투표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삼성SDS는 ‘페이퍼리스’ 서비스를 임직원 연봉계약과 사내투표, 인증서 관리 등에 적용하여 복잡한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편의성을 높였다. ‘페이퍼리스’ 서비스는 삼성SDS 홈페이지 My Trial에서 쉽게 이용 가능하다. 홍혜진 삼성SDS DT플랫폼추진단장(전무)은 “‘페이퍼리스’ 서비스를 시작으로 신원인증, 페이먼트 등 다양한 클라우드 기반의 블록체인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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