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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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콘, NH농협캐피탈 마이데이터 플랫폼 구축한다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쿠콘은 NH농협캐피탈의 마이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위한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고 24일 밝혔다. 쿠콘은 NH농협캐피탈이 마이데이터 사업자에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쿠콘 마이데이터 Open-Box를 ASP 서비스 방식으로 플랫폼 구축부터 유지·운영까지 모두 제공할 계획이다. 올 8월 마이데이터가 정식 시행되면서 개인 신용 정보 보유 기관은 마이데이터 제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쿠콘 마이데이터 플랫폼을 도입한 기업은 높은 확장성을 바탕으로 금융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쿠콘이 구축한 마이데이터 플랫폼에 추가 시스템 구축 없이 공공 마이데이터인 ‘마이꾸러미 서비스’ 연계가 가능하며, 여러 핀테크 기업과 협업하는 환경도 쉽게 조성할 수 있다. 쿠콘의 오픈API 플랫폼은 현재 우정정보센터, 우리카드, KDB생명보험, BNK저축은행과 같은 여러 금융 기관에서 도입했다. 김종현 쿠콘 대표는 “NH농협캐피탈이 안정적인 마이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도래하는 마이데이터 시대의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쿠콘의 역할을 공고히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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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합
    2021-06-24
  • [김희철의 Crisis M] 6·25남침전쟁 참전한 호주와 뉴질랜드의 한국 사랑과 바램 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호주 국립대학교 존 블랙스랜드 교수는 AISAC(국제안보교류협회)가 지난해 개최한 6·25전쟁 70주년 국제학술회의에서 ‘6·25참전 의의 재조명과 한국-참전국 간 안보교류협력 발전 방안’을 주제로 가장 먼저 화상으로 발표했다. 그는 “2차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에는 호주의 육해공군이 한반도로 갈 것 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나 6·25전쟁 발발하자 유엔의 파병 요청에 바로 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 김일성을 스탈린이 배후에서 조정하는 소련의 애완견으로 인식 1946년에 일본에 파견되었던 호주의 해군 구축함과 공군 전투기 및 수송기는 6·25전쟁 발발하자 즉각 한국의 상공과 영해 작전에 투입되었고, 육군은 새롭게 모병해서 왕립호주연대의 3개대대를 창설했는데 그들 중에는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이 많았다. 그들은 일본에서 훈련을 마치고 1950년 9월27일 부산항에 도착해서 10월10일 개성 화장산에서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인 후, 정주, 박천, 이천, 마량산, 가평 등지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두 번째로 화상발표한 뉴질랜드 이안 맥기본 역사학자는 “정부의 소형 구축함 지원 결정은 야당인 노동당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는 유엔이 대표하는 집단안보체제에 대한 확고한 지지였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노동당은 북한의 침략을 소련의 움직임으로 판단했다. 그들은 김일성을 스탈린이 배후에서 조정하는 소련의 애완견으로 인식했다. 헌데 뉴질랜드 공산당은 유일하게 한국전쟁 개입을 반대했는데 이것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한국전쟁은 스탈린의 지시로 김일성이 침략한 것이라고 굳게 믿게 만들었다. 당시 뉴질랜드는 파병 가능한 정규군 부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서 18세가 된 모든 남성은 3개월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만 했고 한국군을 지원할 병력은 급조해서 창설해야 했다. 이렇게 창설된 16야전포병연대는 1950년 12월 월링톤을 출발해 한국에 도착한 후 영연방 27여단에 배속되어 가평, 마량산, 제임스타운 전투 등에서 효과적인 화력지원을 하여 중공군 공세를 저지하는데 기여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CRISIS M
    2021-06-24
  • 안랩, 마이데이터 사업자 대상 정보보호컨설팅서비스 시작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안랩(대표 강석균)은 최근 마이데이터 사업자인 핀테크 기업의 정보보호컨설팅 사업을 수주하고 마이데이터 분야 보안 컨설팅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23일 밝혔다. 안랩에 따르면,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사업이란 산재된 개인 금융 데이터를 모아 개인이 직접 통합·관리할수 있도록 지원하고, 금융소비자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별 맞춤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2021년 8월 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안랩은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필수로 받아야하는 ‘마이데이터 서비스 시스템 보안 취약점 진단’을 수행한다. 안랩은 고객사의 웹서버, 정보보호시스템 및 데이터베이스(DB) 등 마이데이터 서비스 운영을 위한 시스템 전반에 대한 보안취약점 점검과 미비항목 조치를 지원할 예정이다. 안랩은 이번 사업을 시작으로 마이데이터 보안요구사항 점검, 서비스인허가 관련 컨설팅, 시스템 보안 취약점 진단 등 마이데이터 사업을 위한 정보보호컨설팅을 활발히 펼쳐 나갈 계획이다. 한편, 안랩은 정보보호 컨설팅 방법론인 ‘ASEM(AhnLab Security Engineering Method)’을 바탕으로 △마이데이터 보안 요구사항 점검 △신용정보법령 기반 서비스 기능 적합성 대응 컨설팅(개인신용 정보전송요구 가이드 준수, 표준 API 적합성 진단 등) △마이데이터 서비스 시스템 보안취약점 점검 등을 제공하고 있다. 김형준 안랩 서비스사업부문장(상무)은 “향후 금융소비자가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데이터 보안이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며, “안랩은 축적된 보안 역량으로 고객사가 안정적인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정보보호컨설팅을 제공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6-24
  • LG CNS, 이글루시큐리티와 함께 스마트팩토리 보안 사업 강화나선다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LG CNS가 이글루시큐리티와 손잡고 스마트팩토리 보안사업을 강화한다고 23일 밝혔다. LG CNS에 따르면, 지난 21일 마곡 본사에서 이글루시큐리티와 보안사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LG CNS는 이번 협약을 통해 이글루시큐리티와 △스마트팩토리 보안 공동사업 추진 △전문인력 교류 △보안 공동 마케팅을 실시할 계획이다. 디지털전환(DX) 가속화로 지속 성장하고 있는 스마트팩토리에는 제조운영기술(OT, Operational Technology)이 활용된다. 고객은 OT를 통해 생산공정을 모니터링하고, 생산라인에 원격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보안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랜섬웨어를 이용한 스마트팩토리 무력화가 대표적인 보안 사고다. 피해 기업은 스마트팩토리 시스템 파일이 암호화되면서 생산라인을 재가동할 수 없게 된다. 생산라인이 멈추면 기업의 금전적 손실은 시간이 갈수록 누적된다. LG CNS는 스마트팩토리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레퍼런스를 축적했다. 2018년부터 LG 계열사의 국내외 40여개 스마트팩토리에 컨설팅, 솔루션 구축, 관제 등 보안 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고객에게 안정적인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6개의 스마트팩토리 보안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다. 이글루시큐리티는 스마트팩토리 보안 솔루션을 보유한 정보보호 전문기업이다. 스마트팩토리 내 외부 침입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분석, 대처한다. 통상 고객사의 스마트팩토리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생산설비가 함께 설치된다. 생산설비는 브랜드마다 데이터 규격이 달라 상호 연동이 어려운데, 이글루시큐리티는 특화 기술로 서로 다른 데이터를 통합 관리한다. 양사는 향후 스마트시티 보안 서비스에서도 협업할 예정이다. 스마트시티에는 산업제어시스템(ICS, Industry Control System)이 적용된다. ICS는 댐의 수문을 개방하거나 발전소 전력 효율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ICS는 스마트팩토리 OT와 기술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스마트팩토리 보안 기술력이 접목된다. LG CNS는 국내 첫 MSSP(Managed Security Service Provider) 사업자로서 컨설팅, 솔루션 구축, 운영에 이르는 보안 전 단계를 책임진다. 고객에게 최적의 보안대책을 제공하기 위해 파트너십으로 보안 서비스 협업 생태계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스마트팩토리 보안 컨설팅 역량을 갖춘 삼정KPMG와 손잡았고, 지난 4월에는 안랩과 클라우드 보안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현신균 LG CNS DTI사업부장(부사장)은 “초연결 시대, 보안 전략 수립은 기업생존의 필수불가결한 핵심요소”라고 강조하고,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보안 서비스 제공할 수 있도록 보안 솔루션 특화기업 이글루시큐리티와 긴밀히 협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6-23
  • 군검찰 수사심의위, '1년 전 女중사 성추행' 준사관 기소 권고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위원들이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 모 중사를 과거에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준사관의 기소를 군검찰에 권고했다고 국방부가 23일 밝혔다.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위원들은 전날 오후 열린 제3차 회의에서 피해자를 1년 전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는 A피의자(윤 모 준위)에 대해 군인등강제추행죄로 기소하는 의견을 의결했다. 이번 심의 결과는 의견서 형태로 국방부 검찰단에 전달되며, 국방부 검찰단에서는 관련 지침에 따라 심의 의견을 존중해 처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새로 전입한 15비행단에서 피해자의 신상을 유포하는 등 2차 가해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상급자인 B피의자, C피의자에 대하여는 논의 끝에 추가 수사 후 의결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또 국방부 감사관실이 조사 중인 공군의 '늑장·축소 보고' 의혹과 관련, 성추행 피해 사실이 누락된 부분에 대해 수사 의뢰를 권고했다. 이에 따라 향후 국방부 검찰단에서 이 중사 사망 당시 공군 군사경찰이 국방부에 최초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단순 사망' 사건으로만 보고해 성추행 피해 사실이 누락된 경위를 직접 수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 군인권센터는 지난 21일 복수의 군 관계자에게서 받은 제보를 근거로 "5월 23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은 국방부 조사본부에 올릴 사건 보고서에 성추행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점을 기재했으나 군사경찰단장인 이모 대령이 이를 막았다"고 폭로했다. 수사심의위 의견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국방부 장관이 제정한 수사심의위 운영지침에 따르면 군검사는 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4차 회의는 오는 25일 열릴 예정이다.
    • 외교안보정책
    • 국방
    2021-06-23
  • [현역대령의 DMZ 종주기(7)] 4일차, 전쟁의 상흔 느끼며 지인들의 도움으로 발바닥 상처와 폭염 극복
    이 글은 현역대령이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3명과 함께 배낭을 메고 DMZ를 따라 걸은 이야기다. 이들은 한 걷기 모임에서 만난 사이로 당시 전역을 앞둔 56세의 안철주 대령과 60대 1명, 70대 2명이다. 2013년 8월 파주 임진각을 출발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12일 동안 걸으면서 이들이 느낀 6·25 전쟁의 아픈 상처와 평화통일의 염원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와 따스한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안철주 박사] 종주 4일째인 8월 22일이다. 오늘은 연천군 신탄리 역 근처의 고대산 가든을 출발하여 철원군에 있는 백마고지 입구, 노동당사, 고석정을 지나 한탄 대교를 건너 철원군 문혜리에 있는 승포회관까지 약 32㎞를 걸었다. 오전 5시 10분에 어제 저녁 남겨둔 오리백숙과 찰밥으로 든든한 아침 식사를 했다. 신탄리 역에서 백마고지 역까지 걸어갈 수도 있었지만 기차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기차 출발시간이 7시 46분이어서 커피도 한 잔 마신 후 여유롭게 숙소를 떠났다. 약 7분 만에 8㎞ 떨어진 백마고지 역까지 1,000원(경로 500원)의 요금만 내면 데려다 주는 기차가 신기했다. 백마고지 역부터 걷기 시작했다. 백마고지로 가는 길 입구의 월정리 초소에서 근무 중인 초병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단원들끼리 백마고지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었다. 백마고지(白馬高地)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 있는 야산이다. 백마가 누워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6·25전쟁 휴전협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백마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다. 해발 395미터의 고지는 열흘 동안 주인이 스물네 번이나 바뀌었고 사상자도 14,000명에 달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9사단은 이때부터 백마부대라고 불리게 됐다. 백마고지와 관련 있는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 Zone)’라는 말은 6·25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이던 제임스 밴플리트가 ‘적이 전선의 생명선으로 사수하려는 아이언 트라이앵글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철의 삼각지대는 철원, 평강, 김화를 잇는 축을 말하는데 중부전선의 핵심으로 철원평야가 그 가운데 위치한다. 월정리 입구 초소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철원 학 저수지 옆을 걸었다. 길을 따라 좌우측에 설치된 철조망에는 빨강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의 ‘미확인 지뢰’라는 경고판이 걸려 있고 대전차 장애물도 남아 있어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백마고지 입구를 지나 ‘금강산 가는 길’을 따라 약 30분 걸어가니 노동당사가 나왔다. 철원 지역은 8·15일 광복 후부터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 땅이었다. 노동당사는 1946년 초 철원군 노동당이 시공하여 그해 말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 노동당사는 공산치하에서 반공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잡혀와 고문과 무자비한 학살을 당했던 곳이어서 당사 뒤편에 설치된 방공호에서 사람의 유골과 실탄, 철사 줄 등이 발견되고 있다. 지금은 건물이 낡고 붕괴 위험이 있어 밖에서만 볼 수 있다. 건물 곳곳마다 6·25전쟁 당시 새겨진 총탄과 포탄 자국이 남아 있어 전쟁이 주는 상처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노동당사 앞에서 휴식 중에 재활용 쓰레기 분리 작업을 하는 분들이 잘 익은 수박과 시원한 캔 음료를 주었다. 그분들의 훈훈한 마음이 느껴져 잠시나마 목마름과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정오쯤 동송읍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어제 발바닥에 문제가 생긴 단원 때문에 신발 구매를 부탁드렸던 지인이 보낸 일행과 만났다. 새 신발과 함께 치료약까지 덤으로 보내줘 너무 고마웠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동송읍 입구에서는 한사모 회장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한밤의 사진편지를 사랑하는 모임’(약칭 한사모)은 매주 일요일 오후에 모여서 걷는 모임으로 남·여 회원 100여명의 평균 나이는 70이 넘는다. 당시 필자는 55세였는데, 100세 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할지 보여주는 선구자 같은 분들로 생각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약 10여분을 함께 걸어 근사한 식당으로 갔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폭염에 주의하라는 TV 방송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런 상황인데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낮 시간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고 있을 뿐 아니라 한 단원은 발바닥 때문에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사모 회장님은 “자네는 현역 대령이고 나이도 젊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일 모래 면 80살이 될 사람들인데 이렇게 강행군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면서 안전을 신신당부하셨다. 그리고 “오늘만은 특별히 배낭을 숙소에 미리 갖다 놓겠다”며 우리들의 배낭을 자신의 차에 싣고 오늘 저녁 묵을 숙소를 향해 떠나셨다. 우리는 식당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배낭 없이 가볍게 한탄강을 바라보며 걸었다. 한탄강은 평균 하폭 약 60미터에 길이가 110㎞에 이르며, 강 유역이 현무암지대로서 다른 하천과 달리 깊이 20-30m의 협곡이 형성돼 있다. 굽이굽이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비경을 갖고 있고 사시사철 맑은 물과 풍부한 수량으로 각종 민물고기의 서식처일 뿐만 아니라 철원 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젖줄이기도하다. 고석정은 한탄강 중류에 있는데 철원 8경의 하나로 정자와 그 일대의 현무암 계곡을 총칭한다. 강 중앙에 위치한 10미터 높이의 기암봉 동굴에는 임꺽정이 은신했었다고 전해진다. 승일교는 한탄강 중류 지점에 있는 폭 6m, 길이 120m의 다리로 이름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6·25전쟁 전에 김일성이 만들기 시작했으나 그 후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완성돼 이승만 대통령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합친 승일교란 얘기가 있고, 다른 하나는 6·25전쟁 당시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다가 전사한 박승일 대령을 기리기 위하여 명명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데, 현재는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오늘은 기차도 타고 신발도 바꾸고 격려도 받은 특별한 날이었다. 멀리 서울에서 방문해 주신 한사모 함수곤 회장님과 박현자·김영신·윤정자 회원님께 특히 감사했다. 덕분에 좋은 음식 잘 먹고 잘 쉬었으며, 무거운 배낭을 숙소까지 운반해 주셔서 쉽게 걸었다. 그리고 숙소인 군 복지회관 근무자에게 다음 날 숙소(육단리 승리회관)까지 배낭 운반을 당부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오늘 하루동안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여정에 관심을 갖는 분들의 우려도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DMZ 종주는 지금 진행 중이고 기온, 나이, 피로도 축적 등을 포함해서 여러 난관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나는 단장으로서 무사히 목적지까지 걸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되 새겼다. ◀ 안철주 심리경영학 박사 프로필 ▶ 예비역 육군대령. 대한민국 걷기지도자로 100㎞ 걷기대회를 7회 완보한 ‘그랜드슬래머’이며, 스페인 순례길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완주한 걷기 애호가
    • 전역군인
    • 인생 2막
    2021-06-23
  • [김희철의 전쟁사(101)] 중공군도 승리했다고 선전하는 ‘저격능선전투’의 진실은?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52년 10월, 미 8군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오성산을 점령하기보다는 전초진지 전반에 걸쳐 아군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소규모 공격작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쇼다운(Show Down) 작전’이라고 칭한 대대규모의 병력으로 제한된 목표를 탈취하는 작전을 전개했다 이에 따른 저격능선 전투는 개시 42일만인 11월24일에 끝났다. 엄청난 희생을 치루며 공격한 미9군단 예하 국군 2사단은 저격능선의 고지 셋(A·Y·돌바위) 중 두 곳(80%)을 확보했고, 중공군은 삼각고지를 방어했지만 저격능선에서 패퇴했다. 故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나를 쏴라’에서 “저격능선에서 중공군은 패배했고 희생도 아군의 2배로 막대했다. 중국이 최고 승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체 선전일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1957년 7월 김종오 5군단장이 철원 쉬리공원 옆 동산에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오만한 적 중공군과 용감히 싸운 불멸의 투혼’이라고 단호하게 새겨져 있다. 참전했던 한 노병은 "중공군은 국군의 전투력을 깔보았고 저격능선에서 오만함이 드디어 분쇄됐다”고 말했지만 그의 낯빛이 씁쓸해진다.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한 김국헌 장군(육사28기)도 ‘다시쓰는 6·25’에서 미9군단의 저격능선 전투는 무모한 공격으로 실패로 끝났으며, 국군 9사단의 백마고지전투가 필사의 방어로 성공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승전 기록은 미군 격퇴, 오성산 방어에 맞추었다. 지하갱도의 고난은 신화의 소재로 “동굴진지는 물이 적어 겨와 풀을 먹으며 버텼고, 그 정신으로 미군을 제압했다”며 ‘상감령 전투’를 고전 영화로도 제작하며 최대 승리라고 주장한다. 한편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는 ‘화웨이 사태가 점화한 '상감령' 역사기억의 전쟁··· 승자는?’라는 칼럼에서 “중국은 한국군 전과를 깔아뭉갠다. 2사단의 저격능선 공략은 미완성이다. 하지만 중국의 상감령 신화도 절반의 진실이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한반도는 기억의 전쟁터이지만 한국은 그런 문화전투에서 부실하다. 보수우파의 그런 기량은 미흡하다. 그 전투에서 밀리면 치명적이다. 가짜 평화론이 득세한다. ‘정의로운 평화’의 요소는 군사력과 안보 의지이다. 그것 없는 평화는 비굴하고 수세적이다”라고 언급했다. ‘상감령’은 역사의 시위이고 북·중 결속의 원동력이다. 한·미동맹의 기억은 소홀해졌고 그로 인한 손실은 결정적이다. 중국은 한국을 얕잡아보며 북한도 한국을 무시한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시대는 혼돈이 됐고, 조 바이든이 미대통령에 당선된 지금은 새로운 선택의 전환점이다. 결론적으로 박 대기자는 “역사 기억은 리더십에 지혜와 투지를 넣는다. 국민적 단합을 투사한다. 저격능선의 기억은 당당하고 상감령의 위세는 그 앞에서 주춤한다”라고 강조했다.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06-23
  • ADD,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에 따라 ‘국방우주기술센터’신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미 양국 정상이 지난달 22일 1979년 체결한 미사일 지침을 종료하여 한국군 미사일 사거리 800㎞ 제한을 해제함에 합의함에 따라 국방 과학 분야에서도 후속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ADD는 미사일연구원과 국방첨단과학기술연구원, 국방시험연구원 등 3축 중심의 첨단국방과학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중심 조직으로 개편을 지난 18일 완료하고, 국방우주기술센터를 신설했다고 21일에 밝혔다. ADD는 향후 국방부, 방위사업청, 방산 기업 등과 함께 국방우주 전력 연구개발(R&D)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도한 이번 주 내로 국방우주기술센터에서 추진하는 방위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린다. 이를 위해 방위사업청 차장을 TF 팀장으로 내정할 예정이다. ADD 관계자는 "국방부, 방위사업청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우주 분야 국방과학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중추 기관이 되겠다"며 "앞으로 위성과 발사체 분야의 장기적인 목표, 단기적인 성과 모두 중요한 만큼 전 분야에서 연구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 서욱 국방부 장관,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에 따라 정찰위성 등의 우주전력 증강과 우주작전 수행체계를 정립 ADD는 21일 발표시 “북한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WMD) 등 대외적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기밀무기 개발과 신기술 및 신개념 무기 개발을 위한 첨단국방과학기술 연구에 역량을 집중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ADD의 조직 개편은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로 한국군 미사일 사거리 800㎞ 제한을 해제한 이후 군이 미사일 전력 강화와 국방 우주 분야 연구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4월 신설된 ‘미사일연구원’이 이 후속 조치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탄두 중량 2t 규모의 ‘현무 4-1’(사거리 800㎞ 이상) 미사일을 비롯해 함대지 탄도미사일 ‘현무 4-2’,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잠대지 탄도미사일(SLBM) ‘현무 4-4’ 등을 개발했다. 사거리 800㎞, 탄두 중량 2t 이상으로 전술 핵무기에 버금가는 위력으로 ‘괴물미사일’로 불리는 ‘현무4’ 개발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ADD는 2018년부터 마하 5 이상의 지상발사형 극초음속 비행체를 개발하고 있고, 2023년까지 비행 시험을 완료할 것으로 전해졌다. 마하 5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남한 상공에서 발사하면 2분 이내에 북한의 주요 목표물 상공에 도달할 수 있다. ‘국방첨단과학기술연구원’은 미래 전장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첨단 국방 신기술과 국방 원천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데 주력하기 위해 산·학·연의 국방연구 과제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민간선도 기술의 인큐베이팅을 통해 성숙한 기술을 분야별 기술센터로 이관할 것이라고 ADD는 전했다. ‘국방시험연구원’은 개발된 무기체계를 시험하는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이밖에 ADD는 국방우주를 비롯해 국방인공지능, 사이버·네트워크, 레이더·전자전, 화학·생물(Chem-Bio), 에너지 등 분야별 기술센터도 설립했다. ‘국방우주기술센터’는 미사일지침 해제와 동시에 국방우주력 발전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신설된 조직인 만큼 국방우주력 건설과 관련한 무기체계 개발에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정찰용 영상레이더 위성, 적외선 카메라, 위성 관제 및 수신처리체계 등을 개발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역시 타 기관과 연계를 통한 우주 방위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전담 TF를 이번 주 안에 출범시킨다는 목표다. 한편, 서욱 국방부 장관은 ADD가 21일 오후 국회에서 개최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우주산업을 발전을 위한 토론회’에서 축사를 통해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를 발판으로 정찰위성 등의 우주전력 증강과 우주작전 수행체계를 정립할 것”이라 했다. 더불어 서 장관은 “군이 개발한 군사위성을 민간기업이 발사하는 선순환으로 국가 우주산업 역량이 강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외교안보정책
    • 국방
    2021-06-22
  • [숨은 중국 알기 (11)] 중국의 북한 다루기 알면 우리도 '갑질 외교' 가능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필자가 2003년도 중국에 있을 때, 한 한반도 연구자가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북조선 친구들 참 골치 아픕니다. 그들은 우리한테 원조를 받아가면서도 오히려 큰 소리를 칩니다. 유류를 더 많이 지원해 달라, 이번에는 왜 현금을 안 주는가 등 요구가 끝이 없습니다. 충분히 주는데도 더 달라고 합니다”라고. 그는 정부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 당국은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며 두둔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갑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甲과 乙이 뒤바뀐 중국과 북한 관계에 대해 2007년도에 중국에서 한 권의 책이 발간됐다. 제목은 ‘조선진상(朝鮮眞相)’, 조선의 실제 모습이라는 의미다. 이 책은 곧 이어 일본에서 ‘대북조선·중국 기밀파일(對北朝鮮·中國機密ファイル)’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고, 국내에서도 이듬해인 2008년 ‘중국의 대북조선 기밀파일’로 출판됐다. 주요 내용은 “북한을 중국 편으로 계속 남겨놓기 위해서 그들을 비난하지 말라. 비리조차도 문제 삼지 말라”라는 북한에 대한 중국 정책의 감춰진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책에서는 이 정책을 기조정책(忌朝政策 : 북한문제로 곤란해지지 않도록 북한을 기피하는 정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중국에 아무리 갑질을 해도, 북한을 특별대우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를 수록하고 있다. 중·북 관계에서 甲과 乙이 뒤바뀌었다면 의문이 뒤따른다. ‘중국이 북한을 특별대우해서 얻는 것은 무엇이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가’이다. 우선 중국이 북한에 양보하거나 전폭 지원 및 배려한 대표적 사례를 알아보자. 첫째, 1962년 중국은 북한과 중·북 국경협약(中朝边界条约)을 맺는다. 중국은 이 협약에서 백두산 천지 분할 및 압록강과 두만강의 섬 귀속 문제에 대해 북한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했다. 중국은 북한에 양보한 내용이 밝혀지는 부담 때문에 이 협약을 공개하지 않지만 중국이 영토 문제에서 양보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한다. 둘째, 1962년 중국은 대약진 운동의 후유증으로 자국 경제 발전에도 힘이 부쳤다. 그럼에도 이 때 중국의 자원 배분은 북한이 우선이었다. 심지어 북한이 밀을 요구하자 중국은 오스트리아에서 수입해 지원했으며, 북한이 방직공장의 방직추 10만 개를 요구하자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조선이 인력을 파견하여 우리 방직공장에서 설비를 해체해서 가져가라”고 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사례다. 셋째, 1960년 소위 ‘조선해방 15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중국은 북한과 친선 축구시합을 했다. 이 때 중국 군중들이 북한 심판에게 야유를 보내는 일이 있었는데, 저우언라이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가체육위원회 간부들을 비판하면서 군중들에게 북한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심화교육을 시키라고 지시했다. 북한 축구팀이 텐진(天津)으로 이동하자 허롱(賀龍) 당시 부총리도 관계자들에게 “어떠한 불쾌한 사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중국이 북한을 특별대우한 대표적 사례이다. 1963년 5월 말, 마오쩌둥(毛澤東)은 우한(武漢)에서 김일성에게 “(중국) 동북지역 전체는 조선의 후방기지이다. 장래에 전쟁이 발생하면 이 지역을 김일성 동지에 맡겨 통일지휘를 하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1964년 9월 김일성이 동북지방을 비밀리에 방문하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선양(瀋陽)에서 영접하면서 “이 지방은 당신이 통제할 것이고 어떻게 통제할 지 분부만 내리면 된다”라고 마오쩌둥의 의사를 전달했다. 김일성은 중국 동북국 제1서기 송런치옹(宋任窮)과 중앙대외연락부 부부장 우슈취엔(伍修權)의 안내를 받으며 몇 주간 이 지역을 시찰했다. 김일성은 중국의 이러한 제안과 이어지는 환대에 만족했고, 중국은 북한의 환심을 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필자가 제시한 이 사례들은 최근에 공개됐다. 중국 션즈화(沈志華)가 2017년도에 발간한 ‘최후의 천조(天朝)-모택동·김일성 시대의 중국과 북한’이라는 책에 기술돼 있는 내용들이다. 션즈화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해제된 1960년대 비밀문서를 인용하고 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과 특별대우는 1960년대 초반 중·소 분쟁이 점차 격화되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당시 중국의 목적은 명확했다. 북한이 소련 쪽으로 기울어 반중노선을 채택할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었다. 즉 북한을 중국 편으로 잔류시키고자 하는 단 하나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중국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을 적대세력에게 넘겨줄 수는 없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중·소 분쟁이 점차 약화돼 가던 80년대와 종식된 90년대, 그리고 중국과 소련이 관계를 회복한 2000년대에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중국은 북한의 극렬한 반대와 반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한국과 국교를 수립했다. 한·중 국교 수립은 소련보다 2년 늦춘 배려는 있었지만 북한에게는 깊은 상처를 주었다. 중국에게 북한이 중요했던 시점은 북한이 소련카드를 들고 있을 때였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 그 자체는 그저 평범한 변방의 낙후된 주변국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북한은 중국이 1992년 한국과 수교하자 극도로 배신감을 느끼고 연일 비난을 퍼부었지만 덩샤오핑은 의연했다. 북한이 덩샤오핑을 ‘사회주의 배신자’라고 아무리 독설을 퍼부어도 중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중국이 약간 움찔한 때가 있었다. 북한이 대만카드를 꺼내들었을 때이다. 북한은 대만과 1997년 1월, 6만 배럴의 대만 저준위 핵폐기물을 황해북도 평산에 있는 폐광산에 옮겨 처리하는 데 합의했고, 1996년에는 대만의 관광 전세기의 북한 운항에 합의했다. 북한의 예상대로 중국은 움직였다. 중국은 당시 고난의 행군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북한에게 식량을 원조해 주는 대가로 북한이 대만과 교류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중국은 소련이든 대만이든 중국에 경쟁적이거나 적대적인 어떠한 세력도 북한에 진출하면 안 된다는 변함없는 원칙이 있다. 최근 중·북관계가 급속히 긴밀해진 시기가 있었다. 양국은 2018년~2019년 2년 사이에 정상회담을 무려 5차례나 개최했다. 이런 배경에는 중·소 분쟁과 동일한 상황이 있었다. 북한이 중국에게 미국카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북한이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기 전에 이를 차단하려고 북한에 ‘혈맹이네, 전통 우의이네’ 하면서 선수를 치고 나갔다. 미국이 북한과 협력하는 상황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인 것이다. 중국은 이렇게 경쟁세력이나 적대세력 등 외부세력이 북한지역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북한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중국이 기울인 정성과 노력의 결과 북한은 중국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어떠한 외세와도 손잡고 있지 않다. 중국이 북한을 잘 다루고 있는 것이다. 비록 비용은 많이 들었지만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이 보였던 대중국 외교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북한보다도 중국을 상대할 카드가 더 많다. 이미 바닥에 깔려 있어 누구나 알고 있는 미국카드가 있고, 오른손에는 쿼드(4개국 협의체)카드, 일본카드, 대만카드, 베트남 등 동남아카드를 쥐고 있다. 왼손에도 있다. 호주카드, 인도카드, 러시아카드, G7카드, 나토카드 등이다. 이게 전부 다가 아니다. 또 있다. 바로 가장 위력적인 카드인 조커로 ‘국내 한목소리 카드’이다. 이 카드가 기존카드들과 맞아 떨어지면 우리는 중국에 갑질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국내 한목소리 카드’를 내세워 중국에 갑질을 해대는 유쾌한 상상을 해본다. 우리는 결코 중국에게 을이 아니기 때문이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06-22
  • [김희철의 전쟁사(100)] 중공군도 승리했다고 선전하는 ‘저격능선전투’의 진실은?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저격능선의 삼각고지 전투에서 미 9군단 예하 미 7사단은 고전했다. 갱도작전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10월25일 미 7사단은 삼각고지 공략을 포기하고 그 임무를 한국군에 넘겼다. 그 직후 부임한 2사단장은 강문봉 장군은 고지의 가치는 낮은데 비해 희생이 많았기에 11월5일 삼각고지 작전을 중단했다. 한편 1952년 10월14일 시작된 저격능선 전투에서 갑종장교 5기생인 백낙수 소위(예비역 대위)는 2사단 32연대 1대대 중화기 중대 박격포(81밀리) 소대장으로 쉴 새없이 포를 쐈다. ■ 판초우의에 쌓인 사체 조각들 속에서 “백 소위만 살았군!” 얼마나 박격포를 많이 쏘았는지 탄피가 동산을 이루고 포신이 열을 받아 포탄이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부근에 떨어질 정도여서 할 수 없이 물통을 옆에 놓고 물을 부어가며 포신을 냉각시켰다고 했다. 포진지의 땅이 젖어 포판이 땅속으로 들어가 포를 옮겨가며 사격을 했는데, 결국 많은 사격으로 공이가 부러졌고 부속품이 바로 보충이 안 돼 나머지 4문으로만 사격해야 했다. 백 소위는 “많은 폭음과 섬광으로 고막이 터져 불러도 멍하니 서 있는 병사들이 늘어갔고 눈이 멀어버린 병사도 있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적의 반격이 주춤하자 박격포 소대는 전투 임무가 아니라 보급품 수집이나 전사자를 후송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당시 판초우의에 쌓인 사체 조각들과 터진 군화 속의 발가락들이 처절한 참상을 말해주었다. 1952년 10월 29일에는 날아오는 적 포탄이 OP 부근이나 포진지 주위에 떨어졌는데 그는 “그때 1개 포반 4명이 포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면서 전사하여 슬픔과 분노가 교차되었다. 또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놓고 포사격을 위해 달려가던 병사가 적의 저격병에게 총탄을 맞아 ‘어~머~니~’를 외치며 쓰러지던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저격능선 전투의 마지막 날인 11월24일에도 백 소위의 32연대가 저격능선 A고지와 돌바위 능선을 확보하느라 큰 피해를 입었다. 물론 중공군도 피해가 컸다. 그는 “갑종 동기생 3명 중 1명(박완섭 소위)이 전사하고 1명(강순형 소위)은 부상으로 후송돼 나 혼자 남게 되었어요. 17연대 동기생 3명도 그날 함께 전사하고 말았어요”라며 슬픔을 달랬다. 전투가 종결되고 9사단 28연대와 임무를 교대하여 집결지에 도착했을 때 부상으로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던 대대장이 다가와 “백 소위만 살았군!”하고 건넨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했다. 저격능선 전투를 마치고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던 백낙수씨는 “아직도 못 잊는 장면은 병사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면 대개 옷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전사자의 80~90%는 신병이야. 인간의 이성으로 죽음을 대하면 감당 못 해. 당시 이성이 마비되었다고 할까. 죽음을 의식 안 하고… 죽으면 죽었나 보다 그러는 거지. 동료가 죽어도 슬픔을 발산할 겨를이 없었어요”라고 쓸쓸히 덧붙였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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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대를 말한다
    20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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