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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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전쟁사(111)] 구더기 득실한 적의 시체속에서 불사신의 곡예를 보여준 노리고지전투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혈전과 격전이 거듭된 노리고지의 산병호 속에는 쌓인 시체가 썩어 구더기들이 득실득실하여 발목까지 빠졌으며, 교통호 속에서 육박전을 벌이던 아군 병사가 포격에 메워져 버린 흙더미에 치여 중공군을 껴안은 채 그대로 죽어 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지들은 피 흘린 보람도 없이 휴전 직전 중공군의 최종공세에 의한 발악적인 맹공격을 받고 빼앗겨 지금은 대부분이 군사분계선(MDL) 이북에 들어가 있다. ■ 4개월 동안의 노리고지 두더지 생활로 ‘털보’라는 별명얻은 도상보 소위 12연대 3중대 1소대장 도상보 소위는 11연대의 격전이 끝난 후인 ‘52년 12월13일, 노리고지 방어에 투입됐다. 11월14일에는 한국 전선을 시찰중인 닉슨 미 부통령이 1사단 12연대를 방문하여 격려도 했다. 노리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는 미군 포와 탱크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당시 우리 한국군과 미군은 화력지원 협조본부(FSCC)를 설치해 놓고 보전포 협동 작전을 긴밀히 조정했다. 당시 유엔 공군은 피아식별을 위해 대공포판이 있는 곳은 회피하여 폭격을 가했다. 그래서 12연대가 확보하고 있던 소노리 고지에는 밤이 되면 대노리 고지의 중공군들이 내려와 호 속에서 손목에 끈으로 잡아매고 있던 국군 병사들의 대공포판을 뺏으려고 해 서로 끌어 잡아당기며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 두 고지는 이렇게 인접해 있어 강 이남에 주력을 둔 아군으로서는 적의 야간 공격 때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래서 미군 측에서는 이곳을 포기하고 강 남쪽으로 철수하자고 주장도 했다. 그러나 박림항 1사단장은 이 같은 의견이 제기되자 소노리 고지는 우리가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사수하겠다면서 적극 반대했다. 1사단 좌우에는 영 연방군과 미 7사단이 배치돼 있었다. 12월 중순 즈음에 도상보 소위는 12연대장 정영흥 대령의 “도 소위 소대가 투입해 소노리 고지를 방어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때부터 4개월 동안을 이 소노리 고지에서 두더지 생활을 했다. 고지에 도착해보니 호들이 거의 다 포격에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막힌 교통호를 파다가 육박전을 벌이던 아군 병사가 중공군을 끌어안은 채 그대로 죽어 있는 시체를 몇 구 발견했고, 간혹 남아 있는 호 속에는 구더기들이 꽉 차 있어 발을 넣을 수도 없었다. 밤중에 순찰을 나가 졸고 있는 듯한 동초병을 깨워 보면 어느 사이에 적 총탄을 맞고 죽어 있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공격해오는 적들이 아군 진지에 달라붙어서 진내 사격을 요청하고 호 속으로 들어갔다 나와 보니 위생병이 없어졌다. 그때 건너편 골짜기에서 그 위생병이 중공군한테 끌려가면서 “소대장님. 소대장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데 정말 못 견딜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무차별 사격을 시켰다. 사격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봤더니 부르는 소리가 들릴 듯 말듯 하더니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그 위생병은 휴전협정후에 포로 교환 때 송환돼 왔다. 도상보 소위가 ‘53년3월 하순에 이 소노리 고지에서의 임무를 교대하고 철수했는데, 수염이 둘째 단추까지 내려와 ‘털보’라는 별명이 붙었다. 수염을 깎고 나니까 소대원들도 전혀 몰라보았다고 한다. 그는 소노리 고지 방어의 전공으로 화랑 무공훈장을 받았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07-27
  • ‘제로페이’, 위메프에서 결제 가능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이하 한결원)은 위메프에서 온라인 직불 간편결제 제로페이로 결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온라인 제로페이’는 쇼핑몰 등 온라인 결제 시 이용할 수 있는 직불 간편결제 서비스다. 스마트폰에서 온라인 제로페이 앱을 설치하고, 제로페이 결제사 앱을 등록하면 숫자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 한결원은 위메프 결제 서비스를 오픈해 위메프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도 온라인 제로페이 결제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메프 모바일 쇼핑 시 상품 결제 수단 가운데 ‘제로페이’를 선택하면 온라인 제로페이 앱이 호출된다. 호출된 온라인 제로페이 앱에 등록한 숫자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결제가 완료된다. 현재 온라인 제로페이에 등록할 수 있는 결제 앱은 비플제로페이, 체크페이, 머니트리다. 한결원은 등록할 수 있는 결제 앱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윤완수 한결원 이사장은 “온라인 제로페이 출시 한 달 만에 새로운 사용처로 위메프가 추가돼 고객들의 편의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한결원은 소상공인들에게 매출 증대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온라인 제로페이 사용처와 결제사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7-26
  • CJ올리브네트웍스, 람다256과 손잡고 ‘NFT시장’ 진출한다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CJ올리브네트웍스가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기술 자회사 람다256과 손잡고 대체불가 토큰(NFD) 시장에 진출한다. 최근 디지털아트, 스포츠, 게임, 유튜브 등 소유권 입증이 중요한 콘텐츠 분야에 NFT 기술 적용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트렌드에 발맞춰 CJ올리브네트웍스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미디어 플랫폼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람다256과 ‘국내·외 전략적 NFT 사업협력’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양사는 국내외 NFT 사업, NFT 플랫폼 내 미디어 기술 협업, NFT 서비스 사업 분야에 협력한다. CJ올리브네트웍스의 검증된 미디어 분야 DT 기술과 람다256의 블록체인 NFT 서비스 플랫폼 및 글로벌 네트워크 기술 결합으로 NFT 시장에 대한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CJ올리브네트웍스가 보유한 방송미디어 분야 SI 기술력을 바탕으로 람다256 NFT 플랫폼에 미디어 부분을 구현한다. 대용량 미디어 데이터의 생성, 발행, 보관, 유통, 추적 등 원활한 NFT 거래를 위해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 미디어에셋 매니지먼트 시스템, 아카이빙 등 기술을 적용한다. CJ올리브네트웍스 DT연구소가 보유한 AI 기술을 기반으로 NFT IP(지식재산) 오리지널리티 검증 서비스 등 미디어 DT 서비스도 공동 개발한다. 또한 클라우드센터의 IT 인프라를 활용하여 디지털 자산 보호 서비스를 제공해 저작자와 구매자가 안심하고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기술을 지원할 예정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DT 기술 협력뿐 아니라 미디어아트 부분 IP의 NFT 발행에 나서며 유통 사업도 함께 추진한다. IP 공급자로 저작권과 소유권, IP 활용범위에 대한 보증 서비스를 제공해 NFT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람다256과 콘텐츠 가공 및 유통 프로세스에 관한 공동 연구도 추진한다. 박재현 람다256 대표는 “이번 협약이 대기업과 람다256이 맺는 첫 번째 NFT 사업협력으로 그 의미가 크다”며 “CJ올리브네트웍스의 우수한 DT 기술력을 국내외에 선보일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람다256이 함께 하겠다”고 전했다. 차인혁 CJ올리브네트웍스 대표이사는 “블록체인 기술 경쟁력과 NFT 사업 노하우를 보유한 람다256과 협력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번 MOU 체결로 NFT 플랫폼 경쟁력을 확보하고 양사의 전문성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7-26
  • 피앤피시큐어, 실시간 안면인식 인증 보안솔루션 출시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피앤피시큐어는 실시간으로 안면인식 인증을 지속 수행하는 보안 솔루션 ‘페이스락커’를 출시했다. ‘페이스락커’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지속해서 안면인식을 하는 인증 기술을 적용한 솔루션이다. 회사 측은 “이 솔루션이 안면인식을 통해 본인인증을 수행하고, 본인인증 수행후에도 지속해서 실시간 사용자 인증을 수행하기 때문에 ID 공유와 해킹 등을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용자 인증은 PC나 노트북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이뤄진다. 카메라 부재나 장애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을 위해 일회용 비밀번호(OTP)와 같은 부가 인증을 연동할 수도 있다. 외부 공격이나 인증 무력화 공격 방지를 위해 자체 보호 기능도 포함했다. 필수적으로 필요한 업무 시스템 실행 및 종료 탐지로 원격지에서의 보안 수준을 향상시켰다. 실시간 사용자 안면 탐지 중에도 화상회의를 지원해 근무 상황에 맞춰 업무 처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피앤피시큐어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자유롭게 일할 공간을 선택하는 원격근무와 그에 따른 보안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며 “새롭게 출시한 페이스락커는 끊임없이 대두되는 보안 위협 환경에서 기업 종사자는 물론 개인 사용자에게도 안전한 비대면 근무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7-26
  • [숨은 중국 알기 (16)] 영원한 2인자 저우언라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발탁해 오늘의 중국 이뤄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필자가 베이징 근무시절, 한반도 전문가인 한 연구원의 초대를 받아 어느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가 주문한 음식은 소고기를 다진 완자 즉 미트볼이었다. 메뉴판에는 ‘사자머리 완자’라고 적혀있었다. 평범하고 소박한 이 음식이 그 연구원의 설명을 듣게 되자 갑자기 달리 보였다. 그는 “이 음식은 저우언라이 총리가 평소 즐겨 드시던 음식입니다. 서거하시기 며칠 전 이 음식을 보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라며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우 총리는 옆에 있던 주방장에게 ‘자네 그동안 수고 많았네. 앞으로 이 음식 언제 먹어보나’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고 소개했다. 필자는 당시 사자머리 완자를 보면서 저우가 사망한지 30여년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중국인들의 그리움과 애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마오쩌둥은 중국을 세웠고(建起來), 덩샤오핑은 중국을 부유하게 했으며(富起來), 시진핑은 중국을 강하게 만들었다(强起來)”라고 평가한다. 다분히 국가주석인 시진핑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전 차원의 말이다. 하지만 시진핑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퇴임 이후 가능할 것이다. 중국 속담에 “관에 뚜껑 덮은 후에야 평가할 수 있다(蓋棺論定)”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했던 저우언라이는 마오 및 덩과 달리 자기 시대를 만들지 못했고 자신의 사상과 이론도 펼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저우가 없었다면 마오도 없었고 덩도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마오와 덩에 비해 손색없는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저우는 비록 영원한 2인자였지만, 중국 공산혁명이라는 큰 역사의 무대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 박수 받으며 퇴장한 훌륭한 주연 중 한 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도 중국인들 마음속에 청렴하고 친밀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오늘은 영원한 2인자이자 중국 인민의 총리 저우언라이를 찾아가 보겠다. 그는 청나라 말기인 1898년 3월 5일 짱수성 화이안시(江蘇省 淮安市)에서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 직후 5촌 아저씨의 양자로 입적됐지만 10살 무렵 고아가 돼 선양(瀋陽)에 있는 친척집에 머물렀다. 1913년 텐진(天津)의 난카이 중학교에 입학해 1917년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고학으로 도쿄 호세이(法政) 대학 부속전문학교에 이어 메이지(明治) 대학에 들어갔지만 학업을 포기하고 1919년 귀국한다. 이후 난카이 대학 재학 중 5.4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그리고 192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과 동시에 유럽지부 조직책을 맡았다. 그는 프랑스에서 4년간 머물다가 1924년 26세의 나이로 귀국한다. 일본과 프랑스 유학 경험을 통해 저우는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을 넓혔다. 즉 나와 다른 세계를 보면서 타인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반면, 마오는 1949년 12월 신중국 건국 선포 직후 스탈린과 회담하기 위해 소련을 방문한 것 외에는 외국 경험이 없다. 따라서 저우가 폭넓은 국제감각을 토대로 중국 국민당과 2차 국공합작 협상, 미국과 수교 협상, 월남전 평화협정 등 주요 협상을 맡으며 마오를 보좌했다. 저우는 난카이 대학 시절 두 가지 인연을 만난다. 하나는 평생 동지이자 반려자인 덩잉차오(鄧潁超)이다. 5.4 학생운동 과정에서 만나 평생을 같이했다. 비록 슬하에 자식은 없었지만 저우와 덩은 서로에게 충실했고 한눈팔지 않았다. 저우는 친척들에게 자애로웠지만 불법과 부정 그리고 특권은 용납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사생활은 조금도 흠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조카 1명이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장학금 지급을 중단시키고 자신의 월급에서 그 비용을 지불해주었다고 한다. 친척들 어느 누구도 총리와의 관계를 밝히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고, 친척들도 저우의 이러한 당부를 충실히 지켰다고 한다. 이들은 공산당 입당을 위한 신원확인 과정에서 저우와 친척임이 밝혀졌지만 어떠한 특혜도 없었다. 또 다른 인연은 연극부 동아리 활동이었다. 저우는 주로 여자 역할을 했다. 타인을 배려하는 섬세한 외교적 감각과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기질이 바로 여기서 함양됐다고 한다. 그래서 저우는 협상의 달인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저우는 공산당에 입당하고, 황푸군관학교가 설립되자 정치부 주임으로 부임한다. 이 때 교장인 장제스(蔣介石)와도 좋은 관계를 형성한다. 필자는 과문한 탓인지 저우언라이의 전 인생을 통틀어 저우를 인간적으로 싫어하거나 매도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문화혁명 시절 4인방이 저우를 제거하기 위해 그의 반역 음모를 조작해 마오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의심이 많았던 마오조차도 “그가 그럴 리 없다”라며 한마디로 일축했다. 1927년 1차 국공합작 결렬 후 저우언라이는 마오 등과 함께 공산당 활동에 몰두한다. 이 때 저우는 마오보다 당내 서열이 높았다. 1935년 대장정 기간 중 공산당의 향후 투쟁방향을 결정하는 쮼이회의(遵義會議)에서 저우는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투쟁방식을 농촌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오를 주목했다. 그는 마오를 홍군 지도자로 추대하여 관철시킨 다음 스스로 마오 휘하에 들어갔다. 저우는 공산당 내의 서열보다도 마오의 옳은 주장과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누가 중국 공산혁명을 이끌어갈 적임자인가”라는 관점에서 인물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저우에게는 서열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우가 없었다면 마오도 없었다는 말이 이때 처음으로 나왔다. 저우가 총리로서 급진적이며 이념적인 마오를 27년간 보좌한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저우는 프랑스 유학시절 덩샤오핑을 처음 만났다. 덩은 6년 프랑스 유학 후 이어 모스크바에 1년 체류한 다음 1927년 귀국하여 공산혁명 대열에 합류한다. 1974년부터 병세가 심해진 저우는 정상적인 총리 직책 수행이 어려워지자 덩샤오핑을 총리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 저우는 자신이 주창한 중국 근대화를 위한 4개 현대화 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로 덩을 눈여겨 봐두었던 것이다. 이같이 저우언라이의 기준은 “누가 중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인가”였다. 그래서 1974년 12월 입원하고 있는 병실로 덩샤오핑을 불러 “당신이 나보다 낫소. 지난 1년간 총리로서 실적이 말해줍니다. 당신을 정식 총리로 건의하겠소”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병약한 몸을 이끌고 창사(長沙)에 머물고 있는 마오를 찾아가 진지하게 덩샤오핑을 추천한다. 4인방이 득세하던 상황이었지만 저우의 추천으로 덩은 중국군 총참모장과 부주석으로 내정됐고 이어 다시 좌천됐다가 1978년 복권하게 된다. 저우가 없었다면 덩샤오핑도 없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저우가 중국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구상한 개혁개방을 덩샤오핑이 실천해 줄 것으로 믿었고, 덩샤오핑은 훗날 그런 기대에 부응했다. 저우는 1976년 1월 8일 자신의 주치의 우제핑(吳介平)에게 “우 동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소, 여긴 별 일이 없으니 빨리 가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도록 하시오. 그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소”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덩샤오핑은 장례위원장이 되어 저우의 유언에 따라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정리한다. 시신을 화장해서 자기 손으로 중국 산천에 뿌리고 남긴 재산 약 1만위엔은 당에 기부했다. 1976년 1월 15일 그의 유해가 중국 산천에 뿌려지던 날, 유엔 본부는 반기(半旗)를 게양했다. 유엔에서 반기를 게양하는 관례는 그때까지 없었다. 몇몇 회원국 대사들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죽었을 때엔 유엔 깃발이 그냥 나부꼈는데 중국의 제2인자가 죽었다고 해서 유엔에서 반기를 올리고, 또 다른 나라 국기마저 다 내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따졌다. 이에 대해 당시 쿠르트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저우언라이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고,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중국은 금은보화가 많은 나라인데 총리였던 저우언라이는 은행에 돈 한 푼이 없었다. 둘째, 중국은 인구가 10억이 넘지만 그는 평생 아내 한 사람만 사랑했고 자녀도 없다. 귀국의 지도자나 국가원수가 이 2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서거했을 때 반기를 게양하겠다”라고. 중국 텐안먼(天安門) 광장에 세워진 저우언라이의 추도비에는 “인민의 총리로 인민이 사랑하고, 인민의 총리로 인민을 사랑하고, 총리와 인민이 동고동락하며 인민과 총리의 마음이 이어졌다”라고 새겨져 있다. 필자는 여기에 “그는 마오쩌둥을 발탁하여 그 밑에서 평생 보좌했고, 덩샤오핑을 발탁하여 중국을 부유하게 만들었다”라고 추가하고 싶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07-26
  • [김희철의 전쟁사(110)] 구더기 득실한 적의 시체속에서 불사신의 곡예를 보여준 노리고지전투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여러 차례의 공방전 끝에 많은 병력이 손실돼 11연대 수색중대가 공격 작전에 추가로 투입됐다. 너무 작아서 밥풀고지라고 곳에서 출발했는데 노리고지까지는 300m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그 사이는 완전히 벌판이라 그대로 가면 적에게 노출되고 마는 불리한 입장이었다. 수색중대의 3개 소대는 야음을 이용하여 일단 고지 밑까지 접근한 다음 1소대는 소노리를, 2·3소대는 대노리 고지를 공격했다. 황병식 상사가 지휘한 1소대는 소노리 고지의 교통 호를 타고 나가다 적의 포격을 만나 모두 전사하고 생존한 10명이 계속 전진해서 대노리 고지 우측으로 도달했다. 날이 밝았는데도 포격으로 먼지와 포연이 하늘을 덮어 좌우조차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이었지만 동굴 속에서 저항하는 적들에게 수류탄을 넣어 폭사시키고 올라가 굴속을 향해 “손들고 나와라..!”라고 소리를 치니까 아군 무전병 2명이 손을 들고나왔다. 알고 보니 이 고지 쟁탈전 중 후퇴를 못한 채 동굴속에 남았던 아군이 워낙 깊고 캄캄하니까 서로 분간을 못하고 중공군과 함께 이때까지 지낸 거였다. 이 동굴을 점령하고 인원을 확인해보니 소대장 황병식 상사를 포함해 4명밖에 안 남았다. 대노리 고지 좌측을 공격한 2, 3소대는 거의 전멸한 상태였다. 오전 10시쯤 되니까 중공군이 맹렬히 반격했는데 이때 생존 전우 3명과 같이 동굴 속에 들어가 방어를 했다.수색중대 1소대장 황상사는 추가로 투입돼 고지로 올라온 2대대 6중대장 정대선 대위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12시쯤 내려왔다. 전사자들을 처리하고 있는 밥풀고지에 오니까 황상사는 이미 전사한 것으로 보고가 돼 있었다. 중공군은 물론 우리의 몇 배가되는 전사상자를 냈지만 11연대 수색중대가 거의 전멸되고 만 것은 너무도 처절한 희생이었다. 연대 수색중대와의 치열한 접전에서 전투력이 약화된 중공군은 임무를 교대해 올라온 6중대 전우들에게는 저항도 전혀 못한 채 참패를 당하고 퇴각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07-26
  • 청해부대 집단감염 경로 민·관·군 합동 역학조사 돌입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된 경로를 확인하는 민·관·군 합동 역학조사가 시작됐다. 국방부는 청해부대 34진 코로나19 감염 경로 확인을 위해 민·관·군 합동역학조사단이 국방부 감사의 일환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23일 밝혔다. 조사단은 질병관리청 중앙사고수습본부와 국군의무사령부의 역학조사 담당 부서장이 공동단장을 맡고 민간전문가 2∼3명, 질병관리청 7명, 국군의무사령부 및 해군 8명 등으로 구성됐다. 조사단은 30일까지 기초자료 수집 및 분석, 바이러스 노출 상황 평가를 위한 현장 조사 등을 통해 감염원 및 전파경로 규명을 위한 심층 조사를 진행하고 후속 조치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지난 19일부터 군 역학조사관이 현지에 도착해 함정에 동승했다"며 "함정의 구조나 승조원 이동 동선 등 국내 역학조사관에게 현장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청해부대 장병 301명 가운데 27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일각에서는 평시 기항하던 곳이 아닌 처음 간 곳에서 깜깜이 기항을 한 것이 집단감염의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 외교안보정책
    • 국방
    2021-07-23
  • 퍼블리시, ‘훈민정음 한정판NFT’ 발행…간송미술관과 협력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테크 미디어 기업 퍼블리시는 간송미술관과 ‘훈민정음해례본(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한정판 대체불가토큰(NFT)의 발행 및 기술 협력을 발표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한글 창제 목적과 원리를 밝힌 문서다. 이번 훈민정음해례본 한정판 NFT(이하 훈민정음 NFT) 발행은 1940년대 일제 강점기, 문화의 가치를 인식하고 문화유산의 보호와 연구에 힘썼던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보국 정신을 담기 위해 추진된다. 간송미술관은 전형필 선생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립 미술관이다. 훈민정음 NFT는 총 100개가 발행되며, 001번부터 100번까지 고유 번호가 붙는다. 원본 소장 기관인 간송미술관은 해당 NFT가 훈민정음해례본을 발행 대상물로 삼아 한정 발행됐음을 보증하고, 훈민정음 본연의 정통성·희소성을 증명해 디지털 자산으로서 가치를 인정한다. 훈민정음 NFT는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간송의 뜻을 깊이 공감한 우리 문화재 수호·보존·승계에 대한 의지 표명이다. 간송과 함께 문화보국을 실천·공유하려는 인사들과 뜻깊은 교류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 훈민정음 NFT는 헤리티지아트가 기획했다. 헤리티지아트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첨단 디지털 기술의 활용으로, 대중이 더 가까이에서 문화재를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간송미술관이 설립했다. 퍼블리시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훈민정음 한정판 NFT 발행과 기술 협력을 담당한다. 퍼블리시는 미디어 산업 혁신을 목표로 언론사를 위한 차세대 블록체인 솔루션 제품군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블록체인 기반 언론사 맞춤형 콘텐츠 매니지먼트 솔루션 ‘퍼블리시소프트(PUBLISHsoft)’ △언론인을 위한 블록체인 기반 분산 신원 증명(DID) 솔루션 ‘퍼블리시아이디(PUBLISHid)’ △미디어 창작자를 위한 NFT 플랫폼 ‘퍼블리시NFT(PUBLISHnft)’ 등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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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3
  •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 출범…민간 주도 메타버스 얼라이언스 구심점 역할 기대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이하 KoVRA),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이하 MOIBA)가 최근 전 세계에서 새로운 혁신 플랫폼으로 떠오르는 메타버스 산업 활성화를 위해 통합을 결정하고, 산업 생태계 확장 및 협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 22일 가상 현실(VR)·증강 현실(AR) 대표 사업자 단체인 KoVRA와 모바일 게임·웹툰 등 콘텐츠 및 앱 관련 국내 최대 사업자 단체 MOIBA는 메타버스 산업 발전 및 관련 기업의 협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두 협회를 통합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를 설립하는 데 합의하는 양해 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양 협회는 통합 협회 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빠르게 통합을 마무리하고, 올해 말까지 메타버스 관련 기업들에 문호를 개방, 회원사를 확대해 메타버스 산업을 대표하는 협회를 설립할 계획이다. 메타버스는 게임·엔터테인먼트 영역을 넘어 혁신적인 사회 생활·업무 플랫폼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 여러 지식 재산권(IP) 사업자와 협력,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 등으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조사 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25년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현재 6배가 넘는 약 270억 달러(약 3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성장세를 고려해 정부도 올해 5월 18일 메타버스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민간이 주도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바탕으로 여러 서비스가 개발·제공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민관 협력 체계인 ‘메타버스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킨 바 있다.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는 앞으로 메타버스 관련 다양한 기업의 참여를 바탕으로 메타버스 얼라이언스의 혁신 프로젝트 발굴과 사업화 지원 등 메타버스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구심점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수정 KoVRA 회장은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 설립을 통해 VR·AR 등 메타버스 관련 기업에 더 많은 사업 기회·정보를 제공해 국내외 경쟁력 강화 및 산업 활성화를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진 MOIBA 회장은 “이번에 출범하는 협회가 민간 메타버스 사업자의 역량을 결집해 콘텐츠(C)-플랫폼(P)-이동통신(N)-부품·장비(D) 업체 간 협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새로운 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협회 출범에 정부도 기대를 표시했다. 김정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정책관은 이번 MOU 체결에 대해 “가상과 현실이 연결된 환경에서 여러 경제·사회 활동이 이뤄지는 메타버스의 활성화와 국내 업체가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주도적인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새롭게 출범하는 협회가 민간의 혁신적 활동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길 기대한다”는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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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3
  • ABB, ASTI 모바일 로보틱스 그룹 인수…자율주행 이송 로봇으로 차세대 유연한 자동화 주도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ABB가 선도적인 글로벌 자율주행 이송 로봇(AMR) 제조사 ASTI Mobile Robotics Group(ASTI)을 인수했다. ABB 로봇 자동화의 인수 결정은 새로운 분야인 로봇 자동화로 시장 확대하고, 로봇 신규 고객용 신제품 ‘GoFa™’과 ‘SWIFTI™’ 협동 로봇 제품군 론칭 및 건설 업계 자동화를 앞당긴다는 발표 직후 이뤄졌다. ASTI는 소프트웨어 제품군이 모든 주요 분야에 걸쳐 지원되는 광범위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인수로 ABB는 로봇 및 자동화 제품을 확장해 차세대 유연한 자동화를 위한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유일한 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인수는 ABB 대외 성장 전략의 하나로 7월 19일 서명됐고, 올여름 중반에 완료될 것으로 예상한다. 양 사는 세부적인 거래 가격을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ASTI 자율주행 로봇 포트폴리오는 △자율 견인 차량 △물품을 사람에게 자율 운반해주는 솔루션 △완제품 세트 운반 및 박스 이송 △차량 내비게이션·제어 △운송·주문 관리 △클라우드 기반 이력 추적 시스템 등 포괄적인 소프트웨어를 포함한다. ASTI 제품은 ABB 로봇, 기계 자동화, 모듈형 솔루션, RobotStudio®(로봇스튜디오, ABB 로봇 시뮬레이션·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소프트웨어 제품군과 통합돼 ABB 고객에게 고유의 특별한 종합적 자동화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ABB와 ASTI는 자동차, 식음료, 소비재 같은 제조업은 물론 물류, 전자 상거래, 소매, 의료 등 신성장 분야에서도 깊이 있는 전문 지식을 제공한다. 1982년 설립된 ASTI는 스페인 부르고스에 본사가 있으며 스페인, 프랑스, 독일에서 30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ASTI는 현재 유럽 최대 AMR 운송 시스템 가운데 한 곳을 지원하고 있으며, 20개국에서 자동차·물류·식음료 및 제약 분야에 걸쳐 폭넓은 고객 기반을 갖추고 있다. 2015년 이후 매년 30%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 AMR은 생산, 물류, 작업 공간 내 물류 및 주문 처리부터 소매 및 의료 환경에 이르기까지 독보적인 유연성을 지원한다. 또 ABB와 ASTI의 공통된 비전을 실현하는 매개체다. 현재의 순차적인 생산 라인을 완전히 유연한 네트워크로 대체하도록 돕는다. 공장, 물류 센터, 실험실, 상점, 병원 내 네트워크에서 지능형 자율주행 로봇은 연결된 스마트한 작업 공간 사이에서 자재·부품·완제품을 자율적으로 처리한다. AMR의 전 세계 매출은 2025년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 20%를 기록해, 약 14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ABB는 전 세계 53개국으로 AMR 영업 및 서비스 지원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ABB 로봇 자동화 총괄대표 사미 아티아 사장은 “ASTI는 업계 최고 포트폴리오와 종합적인 소프트웨어 제품군, 성장 산업 분야에서 깊이 있는 산업 전문 지식을 두루 갖추고 있다. 차세대 유연한 자동화로 고객을 지원하는 ABB에 최적의 선택”이라며 “이번 인수로 ABB는 생산부터 물류, 소비 접점에 이르기까지 AMR, 로봇, 기계 자동화 솔루션의 완전한 자동화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유일한 회사가 된다. 고객사가 개별 소비자에게 맞추도록 돕고, 소비자 요구 변화가 가져온 기회를 포착하도록 지원해, 시장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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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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