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네이버클라우드가 국내 클라우드 사업자 중 최초로 싱가포르 클라우드 보안 인증인 MTCS (Multi-Tier Cloud Security)를 획득했다.
MTCS는 싱가포르 공공 입찰 시 갖춰야 할 필수조건으로, 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 개발청(이하 IDA)이 주관하고 싱가포르 ITSC(정보 기술 표준 위원회)에서 개발한 인증제도다.
MTCS 싱가포르 표준은 여러 계층의 클라우드 보안을 다루는 세계 최초의 클라우드 보안 표준으로, ISO/IEC 27001 등 국제 표준에 기초한다. 퍼블릭 클라우드의 안전성 및 보안성을 다양한 운영 보안 수준에서 19개 분야 117개 통제항목 검증을 통해 평가가 이뤄지며, 보안 등급은 총 3단계로 나눠져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MTCS 첫 심사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등급인 ‘Tier-3’를 취득했다. 네이버 측은 “이는 네이버 클라우드를 이용하는 고객의 주요 정보시스템 및 중요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역량과 성숙도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아태지역의 헤드쿼터를 싱가포르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고 MTCS가 멀티티어 클라우드 보안을 다루는 세계 최초의 클라우드 보안 표준인만큼, APAC 내 많은 기업이 퍼블릭 클라우드 도입 시 해당 인증을 선정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번 인증으로 네이버클라우드의 보안성과 안전성을 효과적으로 입증해 싱가포르를 비롯한 APAC 유치 사례를 확보하면, 글로벌 탑 CSP(클라우드 서비스 공급업체)와의 격차는 더욱 줄어드는 한편, 국내 CSP와 더욱 확실하게 차별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원혁 네이버클라우드 클라우드 시큐리티 리더는 "이번 MTCS 취득은 그간 네이버클라우드가 가장 역점을 두고 쌓아온 강력한 보안 체계와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다시금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며 “규제가 엄격한 국내외 공공·금융 분야의 우려를 해소함으로써 신뢰를 갖춘 클라우드 강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NHN 얼굴인식 기술이 인식률 100%로 한국인터넷진흥원(이하 KISA) ‘바이오인식시스템 시험인증’기준을 통과했다.
바이오인식시스템 시험인증은 바이오인식정보시험센터(K-NBTC)가 시험하고, 이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인증하는 국내 유일의 인증 테스트다. 현재 지문인식, 얼굴인식, 홍채인식, 정맥인식 등의 성능 시험 및 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며, 검증 과정에 바이오인식정보시험센터가 자체 구축한 실제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높다.
이번 인증을 획득한 NHN 얼굴인식 알고리은 한 단계 진화된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세분화한 얼굴 이미지 데이터셋 학습 과정을 통해 자체 개발됐다. 조명, 표정, 헤어스타일 등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얼굴 고유의 특성을 추출할 수 있도록 모델 학습 과정을 보다 고도화한 점이 특징이다.
NHN 얼굴인식 기술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얼굴인식 테스트(FRVT)의 ‘출입국 심사대 사진(Border 이미지)’ 부문에서 성능 테스트 국내 2위를 기록, 유지해오며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NHN은 얼굴인식 서비스를 신한은행 비대면 재택근무 시스템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등 금융권 중심으로 적용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연내 OCR(광학문자인식), 유사 이미지 추천(패션), 카메라 검색, 패션 딥 태깅, 자동차 번호판 인식, 음성 인식, 음성 합성 등 AI 기반 서비스를 지속 상용화할 계획이다.
권경희 NHN AI전략팀장은 “이번 인증 획득은 다양한 분야에서 AI 연구를 이어온 NHN의 기술력을 한번 더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국내 AI를 대표할 수 있는 기술, 서비스를 지속 선보이며 고도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북한이 먼저 남측으로 전화를 걸어오면서 13개월간 불통됐던 남북 군 통신선이 재가동됐다.
27일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10시 서해지구 군 통신선 전원을 켜고, 먼저 전화를 해왔다. 남측도 북측이 전원을 켠 순간 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통신선은 광케이블로 연결되어 한쪽이 통신선 연결 전원을 켜면 상대 쪽에서 즉각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이어 통신선에 연결된 남측 전화기에 신호가 왔다.
북측은 먼저 전화를 걸어 "통화 품질은 어떻습니까?"라고 남측 요원에게 물었고 남측이 "양호합니다. 그쪽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좋습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북측에서 "시험 팩스를 보내겠습니다"라며 시험용 팩스가 전송됐고, 남측도 같은 방식으로 팩스를 보냈다.
북한이 지난해 6월 9일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일방적으로 단절한 지 13개월 만에 남북 군 통신선이 재가동되는 순간이었다.
군은 이날 정기통화 시간인 오후 4시에도 군 통신선으로 통화를 시도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양측 통화는 오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로 인해 서해 우발충돌 방지를 위한 서해 불법조업 선박의 정보 교환뿐만 아니라 남북군사당국 간 다양한 통지문 교환도 가능하게 됐다.
다만, 동해지구 군 통신선은 기술적인 문제로 지속해서 연결을 시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삼성SDS는 27일 잠정실적 공시를 통해 2분기 매출액 3조 2509억 원, 영업이익 2247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액은 26.7%, 영업이익은 14.2% 증가했다.
사업분야별로 보면 IT서비스 사업 매출액은 기업고객의 IT투자가 회복되면서 클라우드 전환 확대, ERP 사업 업종 다변화, 스마트팩토리 구축 확대, 기업 모바일 관리 솔루션(EMM) 글로벌 사업 확대, 재택근무 활성화에 따른 화상회의 솔루션(Brity Meeting)과 DT기반 고객 업무 자동화 서비스(Brity RPA) 확대 등에 따라 지난해 동기 대비 5.5% 증가한 1조 3,919억 원으로 집계됐다.
IT플랫폼 기반 물류 사업 매출액은 IT제품 물동량 증가, 해상 물류운임 상승, 대외사업 확대 등에 따라 지난해 동기 대비 49.1% 증가한 1조 8,590억 원을 기록했다.
삼성SDS는 하반기에도 IT분야에서 △고도화 된 기업향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차세대 ERP 기반 대외 사업 △스마트팩토리 사업 업종 다변화 △제조공장, 유통센터 물류자동화 추진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물류 분야에서는 하반기 예상되는 고객사 물동량 증가에 대비해 물류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제공하는 한편, Cello Square(첼로 스퀘어) IT플랫폼을 고도화하고 서비스 범위를 국제운송과 풀필먼트까지 확대해 정확하고 가시성 높은 글로벌 물류 경쟁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이더리움(ETH) 기반 대체 불가능 토큰(NFT) 거래소 ‘미르니’가 27일 서비스를 시작한다.
미르니는 크리에이터가 디지털 창작물을 등록하면, 컬렉터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이더리움으로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크립토키티 △크립토펑크 △해시마스크 △더샌드박스 등 이더리움 기반 해외 유명 NFT 구매를 한국어로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외에도 △오픈씨 △라리블 △슈퍼레어 등 해외 NFT 거래소 간 상호 거래를 할 수 있어 NFT 크리에이터와 컬렉터의 편의성·보안성을 보장한다.
이전까지 일부 NFT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거래는 자체 발행한 코인을 기반으로 진행돼 보안 및 상장 폐지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이에 반해 미르니는 시가 총액 2위 암호화폐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운영돼 보안 및 상장 폐지 위험성이 낮다.
미르니는 현재 NFT 크리에이터를 모집하고 있다. 미르니와 함께 성장할 파트너 크리에이터를 발굴해 작품 홍보 및 수익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양영석 대표는 “미르니를 NFT 크리에이터 발굴 및 육성의 등용문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 중 최초로 '유엔군 참전의 날'인 2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유엔군 참전용사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미국 참전용사인 고(故) 에밀 조세프 카폰 신부는 태극무공훈장을, 호주 참전용사 콜린 니콜라스 칸 장군은 국민훈장 석류장을 각각 받았다.
카폰 신부는 6·25전쟁에 군종신부로 파병돼 아군과 적군 구분 없이 부상병을 돌보다 1950년 7월 15일 수용소에서 사망해 '한국전쟁의 성인'으로 불린다.
고인의 유해는 올해 3월 하와이주의 국립 태평양 기념 묘지에서 발견돼 70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고인의 조카인 레이먼드 에밀 카폰 씨가 이날 대리 수상을 했다.
칸 장군은 1952년 7월 호주왕립연대 1대대 소대장으로 참전했으며 호주 귀국 후에도 6·25전쟁의 참상과 한국의 발전상을 알리는 민간외교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조카 손녀인 캐서린 엘리자베스 칸 씨가 방한해 대리 수상을 했다. 칸 장군은 소감 영상에서 "작게나마 한국 재건에 기여하고 훈장을 받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한반도의 영속적인 평화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수여식에서 "유엔은 한국전 참전으로 연대와 협력이 자유와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세계 역사에 각인했다"며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 두 분의 정신이 마음속에 영원히 각인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카폰 신부에 대해 "신부님의 생애는 미국과 한국은 물론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추모했고, 칸 장군에 대해서도 "칸 장군님과 호주 참전 용사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카폰 신부의 유족에게 '자유와 평화를 위한 거룩한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새긴 십자가 달린 철모를 선물했다. 칸 장군 가족에게는 호주군이 참전했던 가평전투를 기리는 뜻에서 가평군에서 채석된 가평석을 활용한 기념석패를 선물했다.
수여식에는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페르난도 레이스 몬시뇰 주한 교황대사 대리, 델 코르소 주한 미국대사 대리,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 등 30여명이 참석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이 글은 현역대령이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3명과 함께 배낭을 메고 DMZ를 따라 걸은 이야기다. 이들은 한 걷기 모임에서 만난 사이로 당시 전역을 앞둔 56세의 안철주 대령과 60대 1명, 70대 2명이다. 2013년 8월 파주 임진각을 출발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12일 동안 걸으면서 이들이 느낀 6·25 전쟁의 아픈 상처와 평화통일의 염원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와 따스한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안철주 박사] 8월 27일, 종주 9일째이다. 오늘은 양구군 남면 광치터널 근처의 컨테이너 숙소를 출발하여 광치령로를 따라 걸었다. 광치터널을 통과한 후 서호교를 건너 인제 읍내를 지난 다음, 합강리를 거쳐 인제군 원통면에 있는 을지회관까지 약 28㎞를 걸었다. 우리가 종주한 인제 지역에는 광치령, 인제지구 전투 전적지, 리빙스턴교 등이 있었다.
오늘 아침은 양구 휴게소 아주머니가 김치를 곁들여 끓여준 표고버섯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들이 먼 길을 걸어왔고 아직 가야할 길이 상당하다는 것을 아는 아주머니는 먼 길 떠나는 자식에게 하듯이 밥을 수북이 담은 고봉밥 여러 그릇을 식탁에 갖다 놓으며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이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아주머니와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다.
오전 6시가 되기 전에 출발했다. 구름이 약간 낀 날씨였다. 광치령로를 걸어 6시경 광치터널 입구에 도달했다. 터널을 지난 후에는 오르막길이 아니어서 걷기가 수월했다. 광치령의 표고는 약 800m이다. 양양 60㎞, 인제 12㎞라는 이정표도 보였다. 양구와 인제, 원통을 연결하는 광치령 인근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조성돼 여러 개의 폭포와 계곡들이 있었다.
우리가 오늘 걸은 광치령 길은 잘 닦여진 왕복 2차선 아스팔트 도로였지만 광치령 옛길은 오솔길이었다고 한다. 이 길은 워낙 높고 험해서 보통 사람은 걸어서 넘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 길을 북한이 6·25전쟁을 준비하며 확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1994년에는 광치 터널이 준공돼 지금은 자동차로도 수월하게 넘을 수 있게 됐다.
필자가 1981년 초등군사반 교육 후 초임지 명령을 받았을 때 특히 중동부 전선의 백두산 부대와 을지 부대로 배치되는 동기들과 위로주를 마시던 기억이 났다. 그때 우리는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 할 것이라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옛날에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는 말도 있었는데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된 지금은 그런 말이 사라진 것 같다.
38선 이북에 위치한 인제군은 1945년 광복 이후 북한이 남침하여 6·25전쟁을 일으키기 전 까지는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이 수복했다가 중공군의 개입 후에는 국군이 후퇴하여 북한에 편입되는 등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연합군은 1953년 5월 20일부터 반격작전을 전개했다.
홍천부터 진격해 소양강의 교량을 점령하면서 교두보를 확보했고, 이어 관대리와 인제를 탈환하고 6월 4일 원통리까지 북진했다. 이 전투로 중공군에게 빼앗겼던 인제와 현리 지역 등 중동부전선의 실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 산화한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58년 합강리에 인제지구 전투 전적비가 건립됐고 1997년 인제군 남북리로 이전했다.
이 지역에는 합강리와 덕산리를 잇는 리빙스턴교가 있는데, 인제지구 전투와 관련한 아픈 사연이 있다. 당시 미2사단 포병연대에 소속돼 작전을 수행하던 리빙스턴 중령은 북방 2㎞ 지점에서 매복해 있던 적군의 기습을 받았다. 리빙스턴 중령은 덕산리에서 인북천을 건너 합강리로 후퇴하기 위해 도하를 시도했으나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대다수 부대원들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적군의 총탄에 전사했다. 그도 중상을 입고 후송됐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야전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던 그는 ‘이 강에 다리가 놓여있었다면 이렇게 많은 부하들이 희생되지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말하고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사재를 털어서라도 인북천에 다리를 놓아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부인이 다리 건설에 필요한 기금을 희사해 1957년 12월 4일 길이 150m 폭 3.6m의 아이빔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목재 난간의 다리가 세워졌다. 이 다리는 리빙스턴 중령의 희생과 자유 수호를 기리는 상징물이 됐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내리쬐는 태양을 벗 삼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즐겁게 걸었다. 가끔 꽃밭을 잘 가꾼 집도 보였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과 계곡, 파란 하늘과 구름에 둘러싸인 산봉우리들은 아름다웠다. 산을 감싸고 흐르는 물줄기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산하를 기름지게 만들며 울창한 숲이 만드는 능선의 녹색 물결이 길을 걷는 우리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 국토가 베풀어주는 편안함의 이치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스페인 까미노 길을 30여일 걸으며 만났던 넓고 끝없는 평원, 이집트에서 2년간 머물면서 경험했던 생명체가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황량한 사막이 떠오르며, 우리 국토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녹색 산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설악을 품은 인제”라는 현수막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원통 읍내의 중국집에서 우동과 간짜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많이 쉬었다가 일어났다. 을지회관으로 가는 도중 한사모 회원 중 특별한 인연이 있는 정전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원통에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회관 입구에서 만나 반갑게 포옹했고, 그와의 인연이 시작된 과정이 떠올랐다.
필자는 2012년 4월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100㎞ 걷기대회’에 처음 참가해 완보했다. 그 후 2017년까지 6년 연속 완보했고, 올해 다시 참가해 현재 7회를 완보했다. 100㎞ 완보는 엄청난 경험이었으며, ‘나는 100㎞ 완보 후 내 인생이 바뀌었다’라고 여러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매년 주변의 지인들에게 함께 걷기를 권했고, 정전택님과는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다.
그는 한사모 주말걷기 회원이었고, 매주 일요일 함께 걷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필자가 그랜드슬램 워커가 된 사실을 알게 됐다. 2013년 어느 날 그는 100㎞ 걷기에 도전한다고 선언했다. 나이를 고려해 부인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2014년 100㎞ 걷기대회에 참가해 거뜬히 완보했다. 그리고 그해 7월 ‘제주도 250㎞걷기 대회’와 9월 ‘군산 새만금방조제 66㎞ 걷기대회’에 참가해 여러 사람의 박수를 받으며 여유롭게 완보했다.
대한걷기연맹에서는 그에게 ‘2014년 그랜드슬램 워커’라는 타이틀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가 대한민국 최고령 그랜드슬램 워커라고 발표했다. 2014년 당시 그분의 나이는 77세였다. 정전택님은 “걷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충분히 준비하면 나이는 커다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선구자였다.
정전택님과 우리들은 수다를 떨며 걷기와 관련한 여러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여기 걷고 있는 사람들이 몇 년 후에 다시 이 코스를 걸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때는 나이가 80이 넘은 사람도 있을 테니 그때는 ’6780 순례단‘이란 이름으로 걷자”라는 얘기도 했다. 어떤 분은 “젊은이들을 동참시키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 40대가 포함된 4080단을 만들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현대인 중 적절한 운동 없이 건강 유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아주 오랫동안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운동 부족으로 건강함을 잃어버리는 시대이기도하다. 그리고 건강을 얘기하면 건강관리를 말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 운동을 실천해야만 건강이 관리될 수 있다. 걷기는 모든 사람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운동임이 분명하다. 남다르게 건강관리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정전택님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우리들이 가볍게 나눈 대화이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에 어떤 형태로든 다시 한 번 더 이 길을 걸을 기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저녁은 회관 식당에서 오리 백숙을 시켜 잘 먹었다. 정전택님은 다음날 우리가 먹을 햇반과 반찬, 포도주 팩 등을 가져오셨다. 걷기대회 경험이 많으셔서 그런지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맛있는 저녁도 사주셨다. 지면으로나마 다시 그 때의 감사했던 마음을 전한다.
◀ 안철주 심리경영학 박사 프로필 ▶ 예비역 육군대령. 대한민국 걷기지도자로 100㎞ 걷기대회를 7회 완보한 ‘그랜드슬래머’이며, 스페인 순례길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완주한 걷기 애호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혈전과 격전이 거듭된 노리고지의 산병호 속에는 쌓인 시체가 썩어 구더기들이 득실득실하여 발목까지 빠졌으며, 교통호 속에서 육박전을 벌이던 아군 병사가 포격에 메워져 버린 흙더미에 치여 중공군을 껴안은 채 그대로 죽어 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지들은 피 흘린 보람도 없이 휴전 직전 중공군의 최종공세에 의한 발악적인 맹공격을 받고 빼앗겨 지금은 대부분이 군사분계선(MDL) 이북에 들어가 있다.
■ 4개월 동안의 노리고지 두더지 생활로 ‘털보’라는 별명얻은 도상보 소위
12연대 3중대 1소대장 도상보 소위는 11연대의 격전이 끝난 후인 ‘52년 12월13일, 노리고지 방어에 투입됐다. 11월14일에는 한국 전선을 시찰중인 닉슨 미 부통령이 1사단 12연대를 방문하여 격려도 했다.
노리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는 미군 포와 탱크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당시 우리 한국군과 미군은 화력지원 협조본부(FSCC)를 설치해 놓고 보전포 협동 작전을 긴밀히 조정했다.
당시 유엔 공군은 피아식별을 위해 대공포판이 있는 곳은 회피하여 폭격을 가했다. 그래서 12연대가 확보하고 있던 소노리 고지에는 밤이 되면 대노리 고지의 중공군들이 내려와 호 속에서 손목에 끈으로 잡아매고 있던 국군 병사들의 대공포판을 뺏으려고 해 서로 끌어 잡아당기며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 두 고지는 이렇게 인접해 있어 강 이남에 주력을 둔 아군으로서는 적의 야간 공격 때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래서 미군 측에서는 이곳을 포기하고 강 남쪽으로 철수하자고 주장도 했다.
그러나 박림항 1사단장은 이 같은 의견이 제기되자 소노리 고지는 우리가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사수하겠다면서 적극 반대했다. 1사단 좌우에는 영 연방군과 미 7사단이 배치돼 있었다.
12월 중순 즈음에 도상보 소위는 12연대장 정영흥 대령의 “도 소위 소대가 투입해 소노리 고지를 방어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때부터 4개월 동안을 이 소노리 고지에서 두더지 생활을 했다. 고지에 도착해보니 호들이 거의 다 포격에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막힌 교통호를 파다가 육박전을 벌이던 아군 병사가 중공군을 끌어안은 채 그대로 죽어 있는 시체를 몇 구 발견했고, 간혹 남아 있는 호 속에는 구더기들이 꽉 차 있어 발을 넣을 수도 없었다.
밤중에 순찰을 나가 졸고 있는 듯한 동초병을 깨워 보면 어느 사이에 적 총탄을 맞고 죽어 있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공격해오는 적들이 아군 진지에 달라붙어서 진내 사격을 요청하고 호 속으로 들어갔다 나와 보니 위생병이 없어졌다.
그때 건너편 골짜기에서 그 위생병이 중공군한테 끌려가면서 “소대장님. 소대장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데 정말 못 견딜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무차별 사격을 시켰다.
사격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봤더니 부르는 소리가 들릴 듯 말듯 하더니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그 위생병은 휴전협정후에 포로 교환 때 송환돼 왔다.
도상보 소위가 ‘53년3월 하순에 이 소노리 고지에서의 임무를 교대하고 철수했는데, 수염이 둘째 단추까지 내려와 ‘털보’라는 별명이 붙었다. 수염을 깎고 나니까 소대원들도 전혀 몰라보았다고 한다. 그는 소노리 고지 방어의 전공으로 화랑 무공훈장을 받았다. (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이하 한결원)은 위메프에서 온라인 직불 간편결제 제로페이로 결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온라인 제로페이’는 쇼핑몰 등 온라인 결제 시 이용할 수 있는 직불 간편결제 서비스다. 스마트폰에서 온라인 제로페이 앱을 설치하고, 제로페이 결제사 앱을 등록하면 숫자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
한결원은 위메프 결제 서비스를 오픈해 위메프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도 온라인 제로페이 결제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메프 모바일 쇼핑 시 상품 결제 수단 가운데 ‘제로페이’를 선택하면 온라인 제로페이 앱이 호출된다. 호출된 온라인 제로페이 앱에 등록한 숫자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결제가 완료된다.
현재 온라인 제로페이에 등록할 수 있는 결제 앱은 비플제로페이, 체크페이, 머니트리다. 한결원은 등록할 수 있는 결제 앱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윤완수 한결원 이사장은 “온라인 제로페이 출시 한 달 만에 새로운 사용처로 위메프가 추가돼 고객들의 편의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한결원은 소상공인들에게 매출 증대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온라인 제로페이 사용처와 결제사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CJ올리브네트웍스가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기술 자회사 람다256과 손잡고 대체불가 토큰(NFD) 시장에 진출한다.
최근 디지털아트, 스포츠, 게임, 유튜브 등 소유권 입증이 중요한 콘텐츠 분야에 NFT 기술 적용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트렌드에 발맞춰 CJ올리브네트웍스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미디어 플랫폼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람다256과 ‘국내·외 전략적 NFT 사업협력’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양사는 국내외 NFT 사업, NFT 플랫폼 내 미디어 기술 협업, NFT 서비스 사업 분야에 협력한다.
CJ올리브네트웍스의 검증된 미디어 분야 DT 기술과 람다256의 블록체인 NFT 서비스 플랫폼 및 글로벌 네트워크 기술 결합으로 NFT 시장에 대한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CJ올리브네트웍스가 보유한 방송미디어 분야 SI 기술력을 바탕으로 람다256 NFT 플랫폼에 미디어 부분을 구현한다. 대용량 미디어 데이터의 생성, 발행, 보관, 유통, 추적 등 원활한 NFT 거래를 위해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 미디어에셋 매니지먼트 시스템, 아카이빙 등 기술을 적용한다.
CJ올리브네트웍스 DT연구소가 보유한 AI 기술을 기반으로 NFT IP(지식재산) 오리지널리티 검증 서비스 등 미디어 DT 서비스도 공동 개발한다.
또한 클라우드센터의 IT 인프라를 활용하여 디지털 자산 보호 서비스를 제공해 저작자와 구매자가 안심하고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기술을 지원할 예정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DT 기술 협력뿐 아니라 미디어아트 부분 IP의 NFT 발행에 나서며 유통 사업도 함께 추진한다.
IP 공급자로 저작권과 소유권, IP 활용범위에 대한 보증 서비스를 제공해 NFT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람다256과 콘텐츠 가공 및 유통 프로세스에 관한 공동 연구도 추진한다.
박재현 람다256 대표는 “이번 협약이 대기업과 람다256이 맺는 첫 번째 NFT 사업협력으로 그 의미가 크다”며 “CJ올리브네트웍스의 우수한 DT 기술력을 국내외에 선보일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람다256이 함께 하겠다”고 전했다.
차인혁 CJ올리브네트웍스 대표이사는 “블록체인 기술 경쟁력과 NFT 사업 노하우를 보유한 람다256과 협력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번 MOU 체결로 NFT 플랫폼 경쟁력을 확보하고 양사의 전문성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피앤피시큐어는 실시간으로 안면인식 인증을 지속 수행하는 보안 솔루션 ‘페이스락커’를 출시했다. ‘페이스락커’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지속해서 안면인식을 하는 인증 기술을 적용한 솔루션이다.
회사 측은 “이 솔루션이 안면인식을 통해 본인인증을 수행하고, 본인인증 수행후에도 지속해서 실시간 사용자 인증을 수행하기 때문에 ID 공유와 해킹 등을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용자 인증은 PC나 노트북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이뤄진다. 카메라 부재나 장애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을 위해 일회용 비밀번호(OTP)와 같은 부가 인증을 연동할 수도 있다. 외부 공격이나 인증 무력화 공격 방지를 위해 자체 보호 기능도 포함했다.
필수적으로 필요한 업무 시스템 실행 및 종료 탐지로 원격지에서의 보안 수준을 향상시켰다. 실시간 사용자 안면 탐지 중에도 화상회의를 지원해 근무 상황에 맞춰 업무 처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피앤피시큐어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자유롭게 일할 공간을 선택하는 원격근무와 그에 따른 보안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며 “새롭게 출시한 페이스락커는 끊임없이 대두되는 보안 위협 환경에서 기업 종사자는 물론 개인 사용자에게도 안전한 비대면 근무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필자가 베이징 근무시절, 한반도 전문가인 한 연구원의 초대를 받아 어느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가 주문한 음식은 소고기를 다진 완자 즉 미트볼이었다. 메뉴판에는 ‘사자머리 완자’라고 적혀있었다. 평범하고 소박한 이 음식이 그 연구원의 설명을 듣게 되자 갑자기 달리 보였다.
그는 “이 음식은 저우언라이 총리가 평소 즐겨 드시던 음식입니다. 서거하시기 며칠 전 이 음식을 보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라며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우 총리는 옆에 있던 주방장에게 ‘자네 그동안 수고 많았네. 앞으로 이 음식 언제 먹어보나’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고 소개했다.
필자는 당시 사자머리 완자를 보면서 저우가 사망한지 30여년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중국인들의 그리움과 애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마오쩌둥은 중국을 세웠고(建起來), 덩샤오핑은 중국을 부유하게 했으며(富起來), 시진핑은 중국을 강하게 만들었다(强起來)”라고 평가한다. 다분히 국가주석인 시진핑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전 차원의 말이다.
하지만 시진핑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퇴임 이후 가능할 것이다. 중국 속담에 “관에 뚜껑 덮은 후에야 평가할 수 있다(蓋棺論定)”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했던 저우언라이는 마오 및 덩과 달리 자기 시대를 만들지 못했고 자신의 사상과 이론도 펼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저우가 없었다면 마오도 없었고 덩도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마오와 덩에 비해 손색없는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저우는 비록 영원한 2인자였지만, 중국 공산혁명이라는 큰 역사의 무대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 박수 받으며 퇴장한 훌륭한 주연 중 한 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도 중국인들 마음속에 청렴하고 친밀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오늘은 영원한 2인자이자 중국 인민의 총리 저우언라이를 찾아가 보겠다. 그는 청나라 말기인 1898년 3월 5일 짱수성 화이안시(江蘇省 淮安市)에서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 직후 5촌 아저씨의 양자로 입적됐지만 10살 무렵 고아가 돼 선양(瀋陽)에 있는 친척집에 머물렀다. 1913년 텐진(天津)의 난카이 중학교에 입학해 1917년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고학으로 도쿄 호세이(法政) 대학 부속전문학교에 이어 메이지(明治) 대학에 들어갔지만 학업을 포기하고 1919년 귀국한다. 이후 난카이 대학 재학 중 5.4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그리고 192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과 동시에 유럽지부 조직책을 맡았다. 그는 프랑스에서 4년간 머물다가 1924년 26세의 나이로 귀국한다.
일본과 프랑스 유학 경험을 통해 저우는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을 넓혔다. 즉 나와 다른 세계를 보면서 타인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반면, 마오는 1949년 12월 신중국 건국 선포 직후 스탈린과 회담하기 위해 소련을 방문한 것 외에는 외국 경험이 없다. 따라서 저우가 폭넓은 국제감각을 토대로 중국 국민당과 2차 국공합작 협상, 미국과 수교 협상, 월남전 평화협정 등 주요 협상을 맡으며 마오를 보좌했다.
저우는 난카이 대학 시절 두 가지 인연을 만난다. 하나는 평생 동지이자 반려자인 덩잉차오(鄧潁超)이다. 5.4 학생운동 과정에서 만나 평생을 같이했다. 비록 슬하에 자식은 없었지만 저우와 덩은 서로에게 충실했고 한눈팔지 않았다. 저우는 친척들에게 자애로웠지만 불법과 부정 그리고 특권은 용납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사생활은 조금도 흠이 없었다.
실제로 그는 조카 1명이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장학금 지급을 중단시키고 자신의 월급에서 그 비용을 지불해주었다고 한다. 친척들 어느 누구도 총리와의 관계를 밝히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고, 친척들도 저우의 이러한 당부를 충실히 지켰다고 한다. 이들은 공산당 입당을 위한 신원확인 과정에서 저우와 친척임이 밝혀졌지만 어떠한 특혜도 없었다.
또 다른 인연은 연극부 동아리 활동이었다. 저우는 주로 여자 역할을 했다. 타인을 배려하는 섬세한 외교적 감각과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기질이 바로 여기서 함양됐다고 한다. 그래서 저우는 협상의 달인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저우는 공산당에 입당하고, 황푸군관학교가 설립되자 정치부 주임으로 부임한다. 이 때 교장인 장제스(蔣介石)와도 좋은 관계를 형성한다.
필자는 과문한 탓인지 저우언라이의 전 인생을 통틀어 저우를 인간적으로 싫어하거나 매도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문화혁명 시절 4인방이 저우를 제거하기 위해 그의 반역 음모를 조작해 마오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의심이 많았던 마오조차도 “그가 그럴 리 없다”라며 한마디로 일축했다.
1927년 1차 국공합작 결렬 후 저우언라이는 마오 등과 함께 공산당 활동에 몰두한다. 이 때 저우는 마오보다 당내 서열이 높았다. 1935년 대장정 기간 중 공산당의 향후 투쟁방향을 결정하는 쮼이회의(遵義會議)에서 저우는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투쟁방식을 농촌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오를 주목했다. 그는 마오를 홍군 지도자로 추대하여 관철시킨 다음 스스로 마오 휘하에 들어갔다.
저우는 공산당 내의 서열보다도 마오의 옳은 주장과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누가 중국 공산혁명을 이끌어갈 적임자인가”라는 관점에서 인물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저우에게는 서열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우가 없었다면 마오도 없었다는 말이 이때 처음으로 나왔다. 저우가 총리로서 급진적이며 이념적인 마오를 27년간 보좌한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저우는 프랑스 유학시절 덩샤오핑을 처음 만났다. 덩은 6년 프랑스 유학 후 이어 모스크바에 1년 체류한 다음 1927년 귀국하여 공산혁명 대열에 합류한다. 1974년부터 병세가 심해진 저우는 정상적인 총리 직책 수행이 어려워지자 덩샤오핑을 총리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 저우는 자신이 주창한 중국 근대화를 위한 4개 현대화 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로 덩을 눈여겨 봐두었던 것이다.
이같이 저우언라이의 기준은 “누가 중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인가”였다. 그래서 1974년 12월 입원하고 있는 병실로 덩샤오핑을 불러 “당신이 나보다 낫소. 지난 1년간 총리로서 실적이 말해줍니다. 당신을 정식 총리로 건의하겠소”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병약한 몸을 이끌고 창사(長沙)에 머물고 있는 마오를 찾아가 진지하게 덩샤오핑을 추천한다.
4인방이 득세하던 상황이었지만 저우의 추천으로 덩은 중국군 총참모장과 부주석으로 내정됐고 이어 다시 좌천됐다가 1978년 복권하게 된다. 저우가 없었다면 덩샤오핑도 없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저우가 중국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구상한 개혁개방을 덩샤오핑이 실천해 줄 것으로 믿었고, 덩샤오핑은 훗날 그런 기대에 부응했다.
저우는 1976년 1월 8일 자신의 주치의 우제핑(吳介平)에게 “우 동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소, 여긴 별 일이 없으니 빨리 가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도록 하시오. 그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소”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덩샤오핑은 장례위원장이 되어 저우의 유언에 따라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정리한다. 시신을 화장해서 자기 손으로 중국 산천에 뿌리고 남긴 재산 약 1만위엔은 당에 기부했다.
1976년 1월 15일 그의 유해가 중국 산천에 뿌려지던 날, 유엔 본부는 반기(半旗)를 게양했다. 유엔에서 반기를 게양하는 관례는 그때까지 없었다. 몇몇 회원국 대사들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죽었을 때엔 유엔 깃발이 그냥 나부꼈는데 중국의 제2인자가 죽었다고 해서 유엔에서 반기를 올리고, 또 다른 나라 국기마저 다 내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따졌다.
이에 대해 당시 쿠르트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저우언라이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고,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중국은 금은보화가 많은 나라인데 총리였던 저우언라이는 은행에 돈 한 푼이 없었다. 둘째, 중국은 인구가 10억이 넘지만 그는 평생 아내 한 사람만 사랑했고 자녀도 없다. 귀국의 지도자나 국가원수가 이 2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서거했을 때 반기를 게양하겠다”라고.
중국 텐안먼(天安門) 광장에 세워진 저우언라이의 추도비에는 “인민의 총리로 인민이 사랑하고, 인민의 총리로 인민을 사랑하고, 총리와 인민이 동고동락하며 인민과 총리의 마음이 이어졌다”라고 새겨져 있다. 필자는 여기에 “그는 마오쩌둥을 발탁하여 그 밑에서 평생 보좌했고, 덩샤오핑을 발탁하여 중국을 부유하게 만들었다”라고 추가하고 싶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여러 차례의 공방전 끝에 많은 병력이 손실돼 11연대 수색중대가 공격 작전에 추가로 투입됐다.
너무 작아서 밥풀고지라고 곳에서 출발했는데 노리고지까지는 300m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그 사이는 완전히 벌판이라 그대로 가면 적에게 노출되고 마는 불리한 입장이었다.
수색중대의 3개 소대는 야음을 이용하여 일단 고지 밑까지 접근한 다음 1소대는 소노리를, 2·3소대는 대노리 고지를 공격했다.
황병식 상사가 지휘한 1소대는 소노리 고지의 교통 호를 타고 나가다 적의 포격을 만나 모두 전사하고 생존한 10명이 계속 전진해서 대노리 고지 우측으로 도달했다.
날이 밝았는데도 포격으로 먼지와 포연이 하늘을 덮어 좌우조차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이었지만 동굴 속에서 저항하는 적들에게 수류탄을 넣어 폭사시키고 올라가 굴속을 향해 “손들고 나와라..!”라고 소리를 치니까 아군 무전병 2명이 손을 들고나왔다.
알고 보니 이 고지 쟁탈전 중 후퇴를 못한 채 동굴속에 남았던 아군이 워낙 깊고 캄캄하니까 서로 분간을 못하고 중공군과 함께 이때까지 지낸 거였다. 이 동굴을 점령하고 인원을 확인해보니 소대장 황병식 상사를 포함해 4명밖에 안 남았다.
대노리 고지 좌측을 공격한 2, 3소대는 거의 전멸한 상태였다. 오전 10시쯤 되니까 중공군이 맹렬히 반격했는데 이때 생존 전우 3명과 같이 동굴 속에 들어가 방어를 했다.수색중대 1소대장 황상사는 추가로 투입돼 고지로 올라온 2대대 6중대장 정대선 대위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12시쯤 내려왔다.
전사자들을 처리하고 있는 밥풀고지에 오니까 황상사는 이미 전사한 것으로 보고가 돼 있었다. 중공군은 물론 우리의 몇 배가되는 전사상자를 냈지만 11연대 수색중대가 거의 전멸되고 만 것은 너무도 처절한 희생이었다.
연대 수색중대와의 치열한 접전에서 전투력이 약화된 중공군은 임무를 교대해 올라온 6중대 전우들에게는 저항도 전혀 못한 채 참패를 당하고 퇴각했다. (다음편 계속)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된 경로를 확인하는 민·관·군 합동 역학조사가 시작됐다.
국방부는 청해부대 34진 코로나19 감염 경로 확인을 위해 민·관·군 합동역학조사단이 국방부 감사의 일환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23일 밝혔다.
조사단은 질병관리청 중앙사고수습본부와 국군의무사령부의 역학조사 담당 부서장이 공동단장을 맡고 민간전문가 2∼3명, 질병관리청 7명, 국군의무사령부 및 해군 8명 등으로 구성됐다.
조사단은 30일까지 기초자료 수집 및 분석, 바이러스 노출 상황 평가를 위한 현장 조사 등을 통해 감염원 및 전파경로 규명을 위한 심층 조사를 진행하고 후속 조치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지난 19일부터 군 역학조사관이 현지에 도착해 함정에 동승했다"며 "함정의 구조나 승조원 이동 동선 등 국내 역학조사관에게 현장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청해부대 장병 301명 가운데 27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일각에서는 평시 기항하던 곳이 아닌 처음 간 곳에서 깜깜이 기항을 한 것이 집단감염의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테크 미디어 기업 퍼블리시는 간송미술관과 ‘훈민정음해례본(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한정판 대체불가토큰(NFT)의 발행 및 기술 협력을 발표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한글 창제 목적과 원리를 밝힌 문서다. 이번 훈민정음해례본 한정판 NFT(이하 훈민정음 NFT) 발행은 1940년대 일제 강점기, 문화의 가치를 인식하고 문화유산의 보호와 연구에 힘썼던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보국 정신을 담기 위해 추진된다. 간송미술관은 전형필 선생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립 미술관이다.
훈민정음 NFT는 총 100개가 발행되며, 001번부터 100번까지 고유 번호가 붙는다. 원본 소장 기관인 간송미술관은 해당 NFT가 훈민정음해례본을 발행 대상물로 삼아 한정 발행됐음을 보증하고, 훈민정음 본연의 정통성·희소성을 증명해 디지털 자산으로서 가치를 인정한다.
훈민정음 NFT는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간송의 뜻을 깊이 공감한 우리 문화재 수호·보존·승계에 대한 의지 표명이다. 간송과 함께 문화보국을 실천·공유하려는 인사들과 뜻깊은 교류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 훈민정음 NFT는 헤리티지아트가 기획했다. 헤리티지아트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첨단 디지털 기술의 활용으로, 대중이 더 가까이에서 문화재를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간송미술관이 설립했다.
퍼블리시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훈민정음 한정판 NFT 발행과 기술 협력을 담당한다. 퍼블리시는 미디어 산업 혁신을 목표로 언론사를 위한 차세대 블록체인 솔루션 제품군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블록체인 기반 언론사 맞춤형 콘텐츠 매니지먼트 솔루션 ‘퍼블리시소프트(PUBLISHsoft)’ △언론인을 위한 블록체인 기반 분산 신원 증명(DID) 솔루션 ‘퍼블리시아이디(PUBLISHid)’ △미디어 창작자를 위한 NFT 플랫폼 ‘퍼블리시NFT(PUBLISHnft)’ 등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