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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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버안보 진단](1) 4차 산업혁명 시대 이끌려면 국가 차원의 리더십 절실
    ▲ 민원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 월드에서 열린 ‘2019 정보보호의 날’ 기념식에서 사이버안보를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한국은 세계에서 ICT 인프라가 가장 발달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보안에 대한 인식은 낮아 사이버공격을 무기화하는 일부 국가나 해커 조직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다. 뉴스투데이는 한국의 사이버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와 군 차원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짚어보는 ‘사이버안보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에스토니아 대통령, 러시아에 대항해 강력한 사이버안보 리더십 발휘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미래 전쟁은 4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새로운 기술의 영향으로 전장이 우주와 사이버 영역까지 확대되고 전투수단은 무인 자율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사회 기반시설은 물론 스마트 홈·공장·도시가 출현하면서 초연결 사회가 현실이 되고 있다. 따라서 다가올 전장에서 승리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면 국가 차원의 사이버안보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다. 에스토니아는 인구 130만의 북유럽 소국이다. 하지만 2002년 전자신분증을 만들었고, 2005년 세계 최초로 전자투표를 도입한 IT 강국이다. 2012년부터 정부 운영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고 있고, 2014년부터 외국인도 100유로만 내면 전자영주권(e-residency)을 인터넷으로 발급받아 에스토니아에 회사를 설립하거나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를 구현했으며, 이와 같은 디지털 발전은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토마스 헨드리크 일베스’가 주도했다. 정부 정보시스템 디렉터인 안드루스 카렐슨은 “에스토니아의 빠른 디지털 발전은 기술 때문이 아니다. 기술은 그저 구현 요소일 뿐이고, 변화를 일으키는 정치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에스토니아는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해인 2007년 러시아로부터 대규모 사이버공격을 받았다. 이후 에스토니아는 2008년 ‘국가 사이버 시큐리티 전략’을 수립하고 2014년 다시 정비했다. 2009년 사이버 위협에 대한 비상사태법을 선포했고, ‘사이버 방어 연맹’을 구성하는 등 대통령의 사이버안보 리더십이 돋보이는 각종 조치들이 시행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보통신부 해체로 사이버안보 점차 취약해져 반면, 한국의 경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보통신부를 해체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취지였지만 정보통신 산업의 많은 부분이 위축되고 벤처기업의 신기술들이 뒷받침해줄 정부부처가 없어 사장됐다. 사이버안보가 점차 중요해지던 차에 관련 산업을 이끌어줄 공무원들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힘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사이버안보의 중요성이 현실로 대두됐다. 박 대통령은 2015년 1월 임종인 고려대 교수를 사이버안보 특보로 임명했다. 같은 해 4월에는 국가 사이버안보의 컨트롤타워로 사이버안보비서관 직책도 신설됐다. 하지만 임 특보는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비서관 직급으로는 국가 정책을 주도하기 어려웠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만들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해체한 정보통신부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청와대에 국가안보실이 생기고, 예하에 사이버안보비서관은 정보융합비서관과 통합해 ‘사이버정보비서관’으로 변경됐다. 지난 4월 국가안보실은 역대 정부 최초로 ‘국가사이버안보전략’을 발간했다. 문 대통령, 과기정통부 신설하고 ‘국가사이버안보전략’ 최초 수립 ‘국가사이버안보전략’은 사이버안보 정책의 최상위 지침서로서, 사이버안보에 관해 정부 차원에서 내놓은 최초의 전략문서다. 국가안보실은 “사이버위협 대응역량 강화, 정보보호 산업육성, 사이버안보 국제협력 강화 등에 대한 국가차원의 기본 방향을 제공하고 사이버안보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장기적 관점의 비전과 목표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버안보 전문가들은 “사이버안보를 위해 다뤄야할 모든 내용들이 총망라된 지침서로 사이버안보 환경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잘 정리된 듯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10년 전에 발간했고, 일본도 5년 전에 나와 선진국에 비해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이런 문서가 발간된 것이 다행스럽다는 반응이다. 손영동 한양대 교수는 “국가가 어떤 시각으로 사이버안보를 바라보는지가 제일 중요하다”면서 “정부가 현상을 제대로 진단했고 전략목표와 과제도 좋은데, 시행하려면 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훈령인 '사이버안전관리규정'만으로는 한계가 많아 기본법 역할을 할 '사이버안보법(가칭)'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나 여·야 합의가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사이버위협, 국가 통치자들이 직접 챙겨...문 대통령의 의지 중요 세계는 사이버 군비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미국·중국·러시아·영국·이스라엘 등 주요국들은 사이버위협을 국가·경제안보의 핵심 위험요인으로 간주해 국가 통치자들이 직접 챙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이버안보는 범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할 사안이며, 사이버위협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국가 차원의 사이버안보 리더십이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정보보호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대한민국은 이제 데이터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를 넘어 데이터를 가장 안전하게 다루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면서 “정보보호는 4차 산업혁명의 성공과 데이터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또 “역대 정부 최초로 ‘국가사이버안보전략’을 발간한 이유도 정보보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사이버 안보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사이버안보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기본법 제정 추진도 힘을 받게 되며, 사이버안보를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국정원의 역할도 제 방향을 잡고 나가면서 한국의 사이버안보는 점차 강화될 것이다. 대통령의 사이버안보 리더십이 에스토니아처럼 발휘되어 ICT 인프라와 서비스의 강국을 넘어 사이버안보 분야에서도 강국이 되길 기대한다.
    • 시큐리티
    2019.07.16 16:53
  • [방위산업 이슈 진단](3) ‘신속획득’의 성패는 ‘소요 창출’과 ‘획득기간 단축’에 달려 있다
    ▲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한국방위산업학회 사무실에서 ‘신속획득제도’를 주제로 세 번째 용산 콜로키움이 열렸다. [사진제공=한국방위산업학회] ‘뉴스투데이’는 ‘한국방위산업학회’와 공동으로 한국 방위산업의 육성과 발전을 저해하는 다양한 현상과 법적·제도적 문제들을 면밀히 진단하여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함으로써 국가안보와 방산 수출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방위산업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우수한 민간기술 신속 활용과 신속한 무기체계 획득으로 구분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한국방위산업학회의 방위산업 전문가 포럼인 ‘용산 콜로키움’은 지난 12일 ‘신속획득제도’를 주제로 세 번째 포럼을 개최했다. 채우석 학회장을 비롯해 학회 부회장인 최성빈 박사, 최기일 건국대 교수, 유형곤 안보경영연구원 방위산업실장 등과 업계를 대표한 전문가들이 패널로 참석해 열띤 토의를 벌였다. 신속획득제도는 지난해 1월 ‘방위사업 개혁 협의회’가 추진한 ‘방위사업 개혁방향’에 최초로 등장한 용어로서, 방위사업청은 국방획득체계를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이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8월에는 이를 좀 더 구체화하여 사업관리 단계에서 절차를 대폭 간소화한 구매 방식인 ‘신속시범구매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현장 지휘관이 필요로 하는 장비를 군에서 시범 적용하여 효용성을 검증 후 신속히 전력화하는 구매방식으로서, 신개념기술시범(ACTD) 사업과 유사하다. 금년 6월 국방부가 공개한 ‘2019∼2033 국방과학기술진흥정책서(안)’에는 민간의 우수기술을 신속히 군에서 활용하기 위해 ACTD 수행 절차를 간소화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실려 있다. 유형곤 실장은 “현재 군에서 생각하는 신속획득은 ① 우수한 민간기술의 신속 활용과 ② 신속한 무기체계 획득으로 구분된다”면서 “ACTD 사업은 ①번에, 긴급소요전력 획득제도는 ②번에 해당하며, 신설 예정인 신속시범구매제도도 ②번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력지원체계에서 시행 중인 우수 상용품 시범사용 제도 또한 ②번에 속한다”고 분류했다. 한 때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이 분야를 연구했던 최성빈 박사는 “현장 지휘관이 자기가 필요한 것을 직접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신속획득”이란 혁신적 의견까지 내놓으며 “기존 획득절차에 얽매이면 신속획득은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공감 얻는 소요 창출 중요...‘활용하면 좋겠다’는 정도론 어려워 아직 우리는 신속획득에 대한 정의가 마련되지 않았으나, 통상 일반 획득절차를 간소화하여 획득시간을 단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미국의 경우 신속획득(Rapid Acquisition)을 “승인된 긴급능력소요(UCR) 또는 우발능력소요(ECR)를 신속하게 생산·배치하기 위한 간소화되고 통합된 접근 방안”으로 정의하고 있다. 법규에 정통한 한 참석자는 “현행 법규 내에서도 꼭 필요한 무기체계라면 얼마든지 신속히 도입할 수 있다”면서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스파이더 미사일을 도입하는데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중요한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소요’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군에서 활용하면 좋겠다는 정도로는 소요 창출이 어렵다”고 말했다. 기득권 반발로 신기술 도입 늦어지면 패러다임 전환 지연 업계를 대표하는 한 참석자는 “신기술을 사용한 제품일 경우 해당 분야에 기존 제품이 없으면 그나마 괜찮지만 기존 제품을 배제하고 도입해야 한다면 어려움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신기술로 인해 기존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군에서 반드시 필요한 소요를 만들어내는 의사결정 과정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으면 설사 신속획득제도가 마련되더라도 제대로 이행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신속획득제도라는 용어보다는 신속획득 방법 또는 지침이란 표현이 더 좋겠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미국도 지침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획득기간 단축 검토 필요...신속획득 담당할 별도 조직도 있어야 채우석 회장은 “소요 문제와 함께 이 시점에서 검토해야 할 것은 획득기간의 단축”이라며 “장기간 소요되는 현행 획득절차가 기술발전 속도가 빠른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지 않아 무기체계를 도입해도 곧바로 기술이 진부화되는 문제가 현실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특히 정보통신체계 사업에서 이런 문제가 심각하며, 다른 무기체계들도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접목되면 점차 유사한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획득기간 단축을 위한 특단의 방안을 시급히 마련하고 관련 법규와 제도를 정비하는 등 신속획득 분야 전반을 담당할 별도의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만일 신속획득을 위한 ‘소요’와 ‘획득기간 단축’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어 검토할 것은 신속획득 분야에 사용할 예산을 확보할 방법이다. 또 양산업체 선정 기준 및 수의계약 허용 여부등도 검토돼야 한다. 예산 확보 방법, 양산업체 선정기준, 수의계약 허용 등 검토돼야 방위사업 예산에 정통한 최기일 건국대 교수는 “신속획득 전력으로 별도 예산을 배정하거나 용처를 명시하지 않는 예비비를 책정할 수도 있고, 매년 발생하는 불용 예산에 대한 전용 우선권을 주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국방부장관이 2억 달러 수준의 재원을 용도 변경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전했다. 결국 신속획득의 성패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요의 창출과 획득기간 단축에 달려 있다. 이 문제가 정리되면 예산 확보를 비롯한 나머지 부수적인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풀려나갈 것이다. 미국처럼 계속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가 아닌 한국으로서는 명확한 소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숙제로 보여 진다. 포럼을 주관한 채우석 학회장은 “지금까지 한국군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신속획득제도를 제기했지만 오늘 논의 과정을 통해 현행 획득제도 전반과 연관된 상당히 큰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이를 토대로 더욱 논의를 발전시켜 신속획득제도가 보다 실질적으로 마련돼야 성공할 수 있겠다”고 결론을 맺으면서 포럼은 마무리됐다.
    • 방산기업
    2019.07.16 16:47
  • [김희철의 Crisis M]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필요한 지혜는 '모호한 전략'
    ▲ 지난 10일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이 주최한 열린 제5차 KIMA FORUM에서 우정엽 세종연 미주센터장이 주제 발표하는 모습 [사진=김희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 심층 분석하여 우리 대응 전략을 발표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보의 ‘린치핀(Linchpin, 핵심축)’ 미중간 딜레마로 한국은 연루(Entrapment)와 방기(Abandonment)의 위험에 노출돼 외교 노력으로 미국과의 인식차이 좁히고, 우리 입장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지난 10일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주최로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 안보 구축방향’ 에 대해 이상의(전 합참의장), 선영제(전 전쟁기념사업회장), 박정이, 이홍기(전 군사령관), 정연봉(전 육군참모차장), 김춘수 장군들과 교수, 안보전문가, 국회보좌관, 국방부, 각군본부 실무자 등 60여명이 참석하여 ‘제5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포럼(KIMA FORUM)’이 개최됐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원장 오창환(예비역 공군중장)의 환영사로 시작하여 이윤규(기획홍보실장) 박사의 사회로 진행된 포럼은 우정엽 박사(세종연 미주센터장)가 주제발표를 하고 김열수(안보전략실장), 홍규덕(전 국방개혁 실장), 손한별(국방대교수), 황재호(외국어대 교수) 박사들이 토론을 하였다. 우정엽 박사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안보’란 주제로 지난 6월 1일 발간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IPSR)’를 심층 분석하여 30분간 발표하였다. 오바마 1기 때만 하더라도 미국은 ‘판다 안아주기(Panda hugger)’로 표현되는 중국에 대한 유화적 접근이 지배적이었다. 오바마 2기에는 중국의 계속되는 불투명함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어 이른바 ‘용의 목베기(Dragon slayer)’라고 하는 대중 강경책이 공감대를 얻기 시작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 역조가 미국 쇄락의 원인이라고 보았고 대중 강경책이 기어가는 과정을 마감하고 걸어가기 위해 일어서기 시작했다. 해리스 주한 미대사의 최근 언급대로 인도· 태평양 전략 및 반(反) 화웨이 전선 동참 요구 등이 그 과정의 결과물로 이해된다. 우리 정부는 2017년 11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입할 필요 없다는 거부의사를 밝힌데 이어 5G 통신은 안보와 무관하다며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에 거부하는 입장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지난 6월30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 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간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 국무부 역시 트럼프 대통령 방한 설명 자료를 배포하며 “한미 정상은 강력한 한미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보의 ‘린치핀(Linchpin, 핵심축)’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미국이 한미동맹을 인도· 태평양전략의 린치핀으로 공개적으로 규정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우정엽 박사는 70쪽 분량의 인도· 태평양전략보고서가 용두사미식이라며 인도양의 내용이 부족하고 안보 보다는 무역에 중점을 두고 있고 동맹의 역할, 즉 추구하는 목표지점이 불확실하며 모호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인도· 태평양 지역의 현재 및 미래의 안보태세를 살펴보면 현재 인도· 태평양전략사령부는 2000대의 항공기와 200대의 군함 및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고 37만명 이상의 전투병, 수병, 해병, 항공대원, 행정인력, 계약인력 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미군이 가장 많이 집중되어 파견된 곳은 일본과 한국이다. 반면에 중국은 1993년 '국가안전법'을 필두로 '사이버보안법' 및 '해외 NGO법안' 등을 제정하였다. 이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낳게 하였고 이러한 우려가 미국 전략 중심에 있게 만들었다. 이런 부정적 인식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중국을 경쟁상대(Competition)로 보다는 대결상대(Confrontation)로 보는 경향이 강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상황은 결국 동맹국간에 발생하는 딜레마로 연루(Entrapment)와 방기 (Abandonment)로의 위험을 제시하였다. 그 예로 북한의 미사일발사, 미 사드배치 등은 한국이 결국 인도· 태평양전략에 연루(Entrapment)되게 만들어 중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미국은 ‘인도· 태평양전략’에서 한국을 북한 관련 한가지로 국한해 배제하면서도 ‘신남방정책’으로 한정시켜 일본, 호주, 인도 등과 비교되게 만들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긴밀한 외교관계 유지이다. 섣부른 판단으로 ‘비참여 혹은 거부’ 의사를 밝히는 것보다 부단한 외교 노력으로 미국과의 인식 차이를 좁히고 우리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우리 입장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한미동맹을 축으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 태평양전략(FOIP)'추진해야 ‘투키티데스 함정’ 에서 벗어나 중국의 장기전에 대해 ‘모호한 전략’ 유지해야 이어 패널로 참가한 김열수(육사33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미국은 전방위적 차원에서 중국을 압박하고 중국은 4차 산업혁명인 5G통신을 선도하면서 장기· 지구전 구사로 장차 패권국가가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투키티데스의 함정(1등이 2등을 좌초시키는 경우)’을 극복하고 ‘모호한 전략’보다는 한미동맹을 축으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 태평양전략(FOIP)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번째로 홍규덕(전 국방개혁 실장)교수는 주제발표자의 의견과는 달리 ‘인도· 태평양전략 보고서’에 동맹의 역할이 제시되어 있으며 일본이 제일의 파트너이고 뒤이어 문재인 정부의 참여 의지 표명에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다만 두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는 북한 문제의 시급한 해결이 물론 중요하지만 북한 이후에 대한 로드맵을 구성하는 장기전략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정부가 북한의 동시적 단계적 비핵화 과정을 수용하고 접근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안전과 핵 억제에 대한 전략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 즉 '한반도를 넘어 지역과 세계를 무대'로 동맹을 활용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고 기본의 관행에서 탈피하는 지혜와 결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국 전문가인 황재호(외국어대 교수) 박사는 우리가 80년대 말부터 아시아태평양시대에 살았지만 이제는 인도태평양(인태)시대에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인태는 중국 국력이 아태를 넘어섰음을 상징하며 미국이 아태로는 중국 견제가 역부족임을 자인한 것이다. 중국은 2010년 경제규모에서 일본을 제치고 2013년 일대일로와 AIB를 통해 신경제질서, CICA에서 아시아안보는 아시아인이 결정해야 한다는 신안전관을 주창하며 ‘신안보질서’ 수립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2049년 ‘중국몽’을 실현해 세계 초강대국 달성 목표를 분명히 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First America)와 맞서는 기존 질서 혼란 상황이 된 것이다. 중국은 중국몽 실현을 위해 지구전 및 장기전으로 버티면 승산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어느 편에도 쏠리지 않는 ‘모호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패널들의 한국의 안보 구축 방향에 대한 의견은 한미동맹을 강조한 미국의 ‘인도· 태평양전략’에 적극 참여와 미국도 중국도 아닌 ‘모호한 전략’으로 양분되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새로운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사진제공=연합뉴스]ⓒ그래픽=뉴스투데이 원로선배의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는 노마지지(老馬之智)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화해무드는 조성되는 듯 했지만 북한 비핵화는 좀더 멀어진 양상이 되어 북의 비대칭 위협은 가중되고 있다. 중국은 미·중패권 경쟁하에서 일대일로 전략 구현을 위해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국내적으로는 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져 G20중에서도 바닥을 치고 있다. 어쩌면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위기로 한걸음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훈령인 ‘국가위기관리 기본 지침’에 위기관리단계는 예방-대비-대응-복구의 4단계로 명시되어 있다. 국회의원을 지냈던 어느 예비역 장성은 국가위기관리 양태를 3가지로 분류하여 현상황을 매우 걱정하였다. 첫째가 ‘국가위기관리 기본 지침’에 위기관리단계대로 징후목록을 분석하여 위기를 식별하고 철저한 예방 및 대비를 통해 위기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징후분석을 잘못하여 위기를 인식 못하고 예방과 대비를 못하는 것이며, 셋째는 징후분석을 통해 위기를 식별했으나 타목적을 위해 위기가 아니라고 부정하며 예방 및 대비를 하지않는 양태라고 말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후 약 150개국이 독립을 하였다. 그중 대한민국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독립한 국가중 G20에 가입한 유일한 국가이며 어느 순간 세계 10대 경제대국안에도 포함되었고 K-POP은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역사상 가장 문명이 뛰어나 '삼국지연의', '수호전' 등의 명작들과 포청천의 신화들을 기록한 송나라는 자신들보다 몇배 이상 가난하고 약한 나라들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패망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병법가 ‘사마양저’가 저작한 병법 ‘사마법’에 나오는 명언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천하가 평안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위태롭다)’가 새삼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온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국방안보
    2019.07.12 17:04
  • [유니콘 보안] (1) 엠엘소프트의 Tgate SDP,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보안 해결사
    ▲ 엠엘소프트 이무성(오른쪽 위쪽) 대표. [자료제공=엠엘소프트 / 그래픽=뉴스투데이] '유니콘(Unicon)'은 신화 속에서 등장하는 ‘이마에 뿔이 하나 달린 말’을 뜻하는데, 최근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 되며 큰 성공을 거둔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뉴스투데이는 사이버보안 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유망 기업이 나오길 바라면서 훌륭한 기술력을 가진 중견·중소기업의 신제품을 소개하는 ‘유니콘 보안’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외부에서 내부망과 안전한 연결 어려워...VPN 사용하나 취약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현대인은 언제 어디서나 노트북, 스마트폰 등 휴대용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업무를 수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내부 업무망에 접속하려면 인터넷을 이용한 연결이 필요하다. 이 경우 해킹을 막을 수 있는 각별한 보안이 요구되는데, 그러한 고민을 일거에 해결한 제품이 엠엘소프트의 ‘Tgate SDP’이다. 지금까지 정부기관과 주요 기업들은 해외나 외부에서 내부망에 접속할 때 인터넷 상에 가상사설망(VPN, Virtual Private Network)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나 VPN은 인터넷에 먼저 연결된 후 인증을 받는 ‘선 접속 후 인증’ 방식이어서, 인터넷 연결 과정에 해커가 침투하면 서버가 노출되어 보안 취약성이 존재했다. Tgate SDP, ‘선 인증 후 접속’ 방식으로 해킹 원천적으로 차단 'Tgate SDP'는 VPN의 보안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해 ‘선 인증 후 접속’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단말기가 인증을 받기 위해 인터넷에 연결될 때 해커가 침투해도 서버는 물론 인증용 컴퓨터조차 볼 수 없다. 서버는 인증이 완료되고 단말기 접속이 허용된 이후에야 볼 수 있다. 따라서 해킹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외부에서 안전하게 내부망을 사용할 수 있다. 이무성 엠엘소프트 대표는 뉴스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올해 2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참석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가는 루프트한자 여객기 안에서 WiFi망 이용료를 지불하고, 스마트폰에 깔린 ‘Tgate SDP’ 앱을 통해 회사 내부망과 연결해 업무를 했다”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이무성 대표, 스페인 가는 비행기에서 회사 내부망과 연결해 업무 그는 “사용법이 쉽고 합리적인 가격의 보안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엠엘소프트의 목표”라며 “향후 모바일, 사물인터넷(IoT), 드론, 자율자동차에 이르는 다양한 기기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통제할 수 있는 보안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해외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Tgate SDP'를 만든 엠엘소프트는 1995년 설립 이래 컴퓨터 시스템의 총비용을 의미하는 TCO(Total Cost of Ownership) 개념을 한국에 소개하고 ‘데스크탑 통합관리 솔루션’ 시장을 이끌어 왔으며, 2006년부터는 줄곧 네트워크 접근제어(NAC, Network Access Control) 시스템을 개발해온 회사이다. NAC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려는 단말기들을 보안 정책에 따라 허용하거나 차단하는 시스템으로서, 조직의 내부망을 보호하는데 꼭 필요한 보안 장비다. 엠엘소프트의 NAC 제품은 전국적으로 네트워크 규모가 크고 단말기 수요가 많은 정부기관, 금융권, 군, 대기업, 병원 및 학교 등에 판매되어 인기리에 사용 중이다. 미 국방부가 사용한 방식인 SDP에 NAC를 세계 최초로 결합 SDP(Software Defined Perimeter)는 ‘소프트웨어로 정의된 경계’란 의미로 인터넷 등 외부 망에서 내부망을 접속할 때 인증 과정에서 해커가 서버를 볼 수 없게 만드는 보안 솔루션이다. 미 국방부가 전 세계에 파견된 미군을 대상으로 인터넷 기반의 안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사용했던 방식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해낸 기술이다. 엠엘소프트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SDP 기술을 이전 받은 후 자사의 차세대 NAC 제품인 ‘Tgate’와 통합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SDP와 NAC를 결합한 ‘Tgate SDP’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사용자 ID를 중심으로 설계된 네트워크 보안 솔루션으로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9’에서 첫 선을 보였다.
    • 시큐리티
    2019.07.12 16:43
  • [김희철의 전쟁이야기](5) 국군 17연대, '화령장 전투' 승리로 낙동강 방어선 구축
    ▲ 상주시 상현리에 위치한 ‘화령장지구전적비’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던 국군17연대 부대기 [사진 =동영상 캡쳐]북한군 15사단, 7월 10일 음성을 점령 후 계속 남진 국군 17연대, 상주 화령장에서 북한군 2개연대 괴멸시켜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 니스트] 김일성의 인민군은 1950년 6월 25일 불법남침을 시작했다. 9월 인천상륙작전까지 7~8월 무더위 속에 남한 전역은 피바다가 되었다. 한편, 북한군이 6월 28일 서울마저 점령하자 미국은 일본에 주둔하던 미 제8군에 소속된 제24보병사단을 우선 한국으로 파병했다. 한국군과 미군은 ‘평택-충주-울진’을 잇는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막으려 했는데, ‘안성-평택’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미군은 금강 남쪽 지역으로 후퇴했다. 국군도 소백산맥의 ‘이화령-조령-죽령’ 지역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육군본부는 ‘문경-함창-상주’로 이어지는 지역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7월 12일 함창에서 제6사단과 제8사단 병력을 중심으로 제2군단을 창설했다. 제1군단에 소속되어 청주에서 북한군과 싸우고 있던 국군 제17연대(인천상륙작전 참가)도 제2군단으로 소속이 바뀌었으며, 제6사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기 위해 함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교통의 중심지인 화령장에서 유엔군 방어의 성패를 결정하는 기습결전 시도 후송된 백인엽 대령을 대신해 김희준 중령이 지휘 맡아 '대승' 거둬 부지휘관의 중요성 재인식 계기 돼 화령장은 경상북도 상주 북부인 화서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보은과 괴산에서 상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임진왜란시에는 정기룡 장군이 의병을 조직하여 용화동 전투에서 승리하고 상주성도 탈환했던 국난극복의 현장이자 충절의 고향이기도 하다. 북한군 제2군단은 음성∼괴산 방면으로 남하한 제15사단을 상주 점령 목표로 화령장에 투입하였다. 북한군 제15사단은 동락리 전투에서 국군 6사단의 기습으로 괴멸된 예하 48연대를 재편성하여 7월 10일 음성을 점령한 후 보은 및 괴산∼상주 방면으로 계속 남하하였다. 부상을 당해 후송된 백인엽 대령 대신 부대를 지휘하여 함창으로 향하던 국군 제17연대의 부연대장 김희준 중령은 7월 17일 북한군이 괴산에서 상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갈령을 넘어 화령장 방면으로 진격해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곧 선두로 화령장 지역에 도착해 있던 1개 대대 병력으로 공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갈령 아래 하송리와 상곡리 일대에 주둔지를 편성하고 있던 북한군 제15사단 제48연대 병력을 기습공격하여 250여 명을 사살하고 30여 명을 생포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 ‘화령장지구전투 상황도’와 17연대가 북한군 포로를 심문하는 모습 [사진 =동영상 캡쳐] 다음날인 7월 19일 제17연대장 김희준 중령은 북한군 제45연대가 후속하여 화령장으로 접근하는 것을 포로의 노획문서를 통해 알았다. 이에 제17연대장은 화령초등학교에 대기 중이던 제2대대를 봉황산으로 진출시켜 봉황산(741m) 너머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의 갈령과 장자동 일대에 진지를 구축하고 매복시켰다. 예비인 제3대대는 제2대대 좌측인 장자동으로 이동하였다. 7월 20일 갈령을 넘어오는 북한군 제45연대 병력에게 오전부터 시작된 공격은 오후 2시까지 치열하게 전개되어 제2대대는 북한군 350여 명을 사살하고 26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북한군 제15사단은 예하인 제45연대가 동관리의 갈령 일대에서 기습을 받고 큰 타격을 입자, 동관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에 따라 국군 제17연대장은 북한군이 전면공세를 취할 경우 이를 막아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군단사령부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북한군 전면공세를 17연대가 긴급 투입된 1사단과 함께 격퇴 군단에서는 제1사단을 화령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7월 22일 오전 화령장으로 이동한 제1사단은 예하 11, 12, 13연대 3개 연대를 화령장 부근에 전개한 후 갈령 고개 북방으로 북한군을 격퇴하기로 하였다. 7월 23일과 24일 제11연대는 갈령 부근에서 북한군을 공격했고, 23∼25일 제12연대는 장자동 부근에서 북한군과 격전을 치뤄 결국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국군 제1사단과 제17연대가 화령장 부근에서 북한군 제15사단과 일주일 넘도록 교전을 벌이고 있던 7월 24일, 작전지역을 미군에 인계하고 안동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음으로써 화령장 전투는 끝났다. 북한군 전선사령부의 '대구 조기진출 계획' 좌절시키고 인천상륙작전 참가 북한군은 상주 화령장 전투에서 예하 제15사단의 2개 연대가 괴멸되는 참패를 당했고, 병력과 장비의 대부분을 상실하였으며 북한군의 진격이 1주일 이상 지연되었다. 이 패전으로 북한군 15사단은 해체됐고 사단장 박성철은 인책, 해임당했다고 한다. 이 전투는 소백산맥의 험준한 지형을 뚫고 상주를 점령한 후 일거에 대구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전선사령부의 계획을 좌절 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군과 유엔군이 방어 체계를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 의미 있는 전투이다. 특히 국군 제17연대(김희준 중령)는 이 전투에서 600여명 이상의 북한군을 사살하고 1천여 점의 북한군 병기를 노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공으로 연대 장병 모두가 1계급 특진의 포상을 받았다. 또한 국군17연대(수도사단장을 하던 백인엽 대령이 연대장으로 재임명 됨)는 2개월 뒤인 9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여 서울 수복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 오피니언
    2019.07.12 13:01
  • 행안부, 사이버공격 자동 학습하는 ‘지능형 보안시스템’ 내년까지 구축
    ▲ 지난 10일 개최된 ‘국제 정보보호 컨퍼런스’에서 행안부 과장이 ‘행정 분야 정보보호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한경 기자 정보보호 컨퍼런스 '정책' 트랙, 5개 정부부처 세부 정책 방향 발표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10일 ‘2019 정보보호의 날’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된 ‘국제 정보보호 컨퍼런스’에서 정부부처의 정보보호 정책 방향이 자세히 발표됐다. 특히 행안부가 ‘차세대 지능형 보안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혀 획기적 변화가 예상된다.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진로상담회, 연구개발 성과물 및 제품 전시회, 블록체인 콘퍼런스, 개인정보보호 교육 등 다채로운 행사들과 함께 열린 정보보호 컨퍼런스는 총 3개 트랙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5G 시대의 융합보안 기술’을 주제로 미국·일본·에스토니아 기관에서 발표하는 글로벌 트랙과 ‘5G 시대의 정보보호 정책 방향’을 주제로 과기정통부·행안부·방송통신위·국정원·산업부 등에서 발표하는 정책 트랙 그리고 산·학·연이 발표하는 개인정보보호 트랙 등이다. 이 가운데 특히 정책 트랙에서 행안부·과기정통부·국정원·산자부·방통위 등 정부부처 과장급들이 정보보호 정책 방향을 자세하게 발표하고 질문도 받아 주목을 끌었다. 행정안전부는 발표에서 “사이버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부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과 광주센터가, 지자체는 한국지역정보개발원과 17개 시·도 보안관제센터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면서 “향후 2021년까지 신·변종 공격을 자동 학습해 스스로 탐지·차단하는 차세대 지능형 보안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정보보호 정책 방향과 관련, “전자정부 서비스 개발보안을 확대하고, 차별화된 보안관리를 위해 정보시스템 등급제를 추진하며, 행안부가 관리하는 102개 주요정보통신기반시설의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자정부 서비스의 인증절차를 편리하게 개선하고, 정보보호 조직 보강과 인력의 전문성을 제고하는 조치들도 시행된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안전하고 경쟁력 있는 5G 융합 서비스 환경 조성을 위한 ‘융합보안 강화 방안’에 대해 발표하면서 스마트공장,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디지털 헬스케어, 실감콘텐츠 등 5대 핵심서비스를 대상으로 3가지 전략과 세부 과제 위주로 설명했다. 먼저 ‘융합서비스 보안 강화 기반 조성’을 위해 보안모델을 개발하고, 참여형 시험공간인 리빙랩을 구축하며, 선도기술 개발과 핵심인력을 양성한다. ‘융합보안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기술·제품 개발과 시장진출을 지원하며, 시큐리티 허브도 조성한다. 또 ‘융합보안 제도 정비’를 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제도 개선도 이뤄진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은 발표를 통해 “국가 정보통신망의 보안수준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 정보보안 기본지침’과 관련 분야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지자체 전산망 보안을 강화하며, 정보시스템 관리체계 등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주요 정보통신기반시설의 보안 환경을 개선하고 사이버공격 대응 역량도 고도화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하기관의 정보통신기반시설을 사이버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사이버안전센터’의 활동과 주요 성과를 소개했다. 특히 취약점 모의해킹, 해킹메일 대응 훈련, 기반시설 취약점 분석·평가, 취약기관 컨설팅 등 사이버공격 예방 활동과 함께 정보보안 최고관리자과정 및 전문 교육과정 운영, 사이버공격 대응 훈련 등 교육·훈련 활동을 설명했다. 또한 중장기 발전전략 및 신재생 에너지 보안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보안관제 프로세스를 고도화했으며 공공기관 대상 사이버보안 경진대회도 개최하는 등 지난해 사이버위기 대응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한 성과도 발표했다. 이외에도 방송통신위원회가 ‘온라인 개인정보보호 정책 방향’에 대해 발표했고, 우정사업본부만 유일하게 ‘개방형 OS를 활용한 클라우드 기반 인터넷 망분리 구축 사례’란 주제로 정책이 아닌 내용을 발표했다. 이날 정책 트랙 참석자 대부분은 “한 자리에서 정부부처별 정보보호 정책방향을 모두 들을 수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자리였다”면서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가끔 마련되면 좋겠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 시큐리티
    2019.07.11 16:39
  • 문 대통령, "2022년까지 정보보호 예산 8485억 원 투입하고 1만개 일자리 창출"
    ▲ 우리나라 정보보호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정보보호 유공자들이 훈장 및 표창을 받은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한경 기자] "데이터를 잘 활용하는 나라 넘어 가장 안전하게 다루는 나라 돼야" "세계 최고의 사이버 안보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힘 모아 달라"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부터 2022년까지 정보보호 관련 예산 8485억 원을 투입할 것과 정보보호 시장을 14조 원 규모로 확대하고 1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10일 잠실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2019 정보보호의 날' 기념식에서 서면 축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정보보호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땀이 결실을 맺도록 언제나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이제 데이터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를 넘어 데이터를 가장 안전하게 다루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면서 "정보보호는 4차 산업혁명의 성공과 데이터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또 "역대 정부 최초로 ‘국가사이버안보전략’을 발간한 이유도 정보보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사이버 보안 빅데이터 센터를 구축해 사이버 위협을 사전에 탐지하고 대응하는 역량을 강화하겠다"며 "생활과 밀접한 사물인터넷 기기의 상시적인 안전점검체계를 구축하고, 현재 7곳인 지역정보보호지원센터를 내년까지 10개소로 확대해 사이버 안전 수준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보보호 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정보보호 인증제품을 공공구매 수의계약 대상에 포함하고, 보안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신제품 개발과 상용화, 해외 진출까지 원스톱 지원을 확대·강화할 것"이라며 "각 분야별 필요한 보안 모델을 개발, 보급하고 정부의 8대 혁신성장 선도사업의 설계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보안을 필수화하겠다"고 언급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인프라를 보호하기 위해 "올해부터 2022년까지 정보보호 관련 예산 8485억 원을 투입할 것"이라며 "정보보호 시장을 14조원 규모로 확대하고, 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끝으로 "국민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의 성과를 골고루 누리며,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사이버 안보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정보보호에 힘써온 산·학·연 전문가와 관계자들에게 당부했다. 이날 행사는 '5G 초연결시대 정보보호'라는 주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행정안전부·국가정보원·방송통신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주관했다. 박춘식 아주대 교수가 녹조근정훈장을, 조영철 파이오링크 대표와 이성권 수산아이앤티 대표가 산업포장을 받는 등 우리나라 정보보호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정보보호 유공자 13명에 대한 정부 훈·포상도 수여됐다. 기념식 이후 오후부터 국제 정보보호 컨퍼런스, 진로상담회, 연구개발 성과물 및 제품 전시회, 블록체인 콘퍼런스, 개인정보보호 교육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함께 열려 성황을 이뤘다. 국제 정보보호 컨퍼런스는 '5G 시대의 융합보안 기술'을 주제로 미국·일본·에스토니아 기관에서 발표하는 글로벌 트랙과 '5G 시대의 정보보호 정책 방향'을 주제로 과기정통부·행안부·방송통신위·국정원·산업부 등에서 발표하는 정책 트랙 그리고 산·학·연이 발표하는 개인정보보호 트랙으로 나눠 심도 깊게 진행됐다.
    • 시큐리티
    2019.07.11 16:3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 GOP후방매복조에게 포박당한 '소대장'
    ▲ GOP매복작전 투입전에 즉각조치 야간사격 훈련중인 국군장병 모습 [사진출처=국방부] GOP 지역에서는 음주 불허, 소대원들과의 약속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 규정을 어긴 대가로 수색대대 매복조에게 포박당하는 수모 겪어 포박과 맞바꾼 소대원과의 술자리는 잊을 수 없는 기쁨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GOP 소대장으로 근무할 때 일이다. GP경계근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비무장지역(DMZ) 수색 매복 작전소대로 임무를 교대했지만 소대원들은 필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소대는 비록 GP에서 철수했으나 DMZ수색과 매복작전을 담당하는 부대이고, 소대 주둔지는 GOP지역이라서 사실 그 곳에서도 음주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도 GP에서의 완벽한 임무 수행을 위해 소대원들에게 금주를 지시했었다. GP철수 후 음주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GP철수 다음날은 작업이 없어서 약속대로 저녁 회식을 허락했다. 취사병은 신이 나서 저녁과 함께 회식준비를 하고 소대원들도 그동안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들떠 있었다. 헌데 술이 문제였다. 마침 부대에서 약 1시간 떨어진 민통선 안에 ‘민촌’과 ‘재건촌’이라 불리는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있는데 그 곳에서는 직접 담근 밀주를 팔고 있었다. 그 날 오후 똑똑한 선임병 등 2명에게 돈을 주고 술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돌아올 시간이 지나면서 서산에 해가 기울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본부에 알아보니 심부름 나간 이동로 상에서 수색대대의 GOP후방 매복이 계획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점점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혹시 심부름 갔던 병사들이 매복조에 걸려 붙잡힌 것은 아닌가..? 무슨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닌가? 온갖 생각에 방에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마을에서 소대로 들어오는 이동로 방향으로 마중을 나갔다. 약 20분 정도 내려왔는데 매복조를 만났다. 갑자기 능선 위에서 “손들어..!”하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필자는 “수고한다. 요 바로 위에 있는 작전 소대장인데 심부름 나간 병사들 찾으러 나왔다”하고 이야기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소총을 장전하는 ‘철컥’소리도 들렸다. “엎드려.. 움직이면 쏜다”라고 매복조는 은밀하게 외치며 미동도 안했다. 반복되는 압박에 결국 필자는 엎드렸다. 매복조 일부가 능성에서 내려와 엎드린 필자를 포박했다. 폭박된 추레닝 복장의 필자를 매복 조장인 선임하사가 다가와 확인했다. “죄송합니다. 매복 중이라 확인 전까지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마침 그날 매복조 소대는 수색대대에 근무하는 육사동기의 소대원들이었다.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일몰 후에 GOP지역에서는 이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규정을 어긴 것은 필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근무 잘하고 있다”라는 칭찬과 격려만 하면서 “복귀 후 육사 동기인 소대장에게 안부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혹시 심부름 나간 병사들을 발견하면 안전하게 통과시켜 달라”는 부탁을 하고 그대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부대 막사로 돌아오는 길에 심부름 나간 병사들이 나처럼 또 포박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소대막사에 도착하자 오히려 소대원들이 나를 걱정하고 있었고 심부름 갔던 병사들은 이미 복귀하여 회식 준비에 웃음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매복지점을 인식하고 우회하여 돌아와 있었다. 필자는 폭박 당한 수모에 대해 일체 입을 닫고 씁쓸한 미소를 띄며 소대원들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GP에서 소대원들과 약속을 할 때에도 원래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했어야 했을 것 같다는 후회도 물밀 듯 밀려왔다. 계속되는 휴식과 무료함은 또다른 스트레스와 더 안일한 휴식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힘들고 어렵게 수준 높은 임무를 수행했을 때의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임무완수 후 갖는 휴식은 일상의 휴식보다 더 큰 안식을 가져온다. 당시 어렵게 마련한 소대원들과의 술자리는 필자의 군생활 중 가장 즐거운 회식이었다. 다음날 수색대대 매복조 소대장인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너 포박 당했다며…?” 하고는 너털 웃음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필자는 전화한 동기의 소대원들이 근무를 철저하게 잘했다는 칭찬 밖에 할 수 없었고 같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포박의 수치도 모두 묻히며. 하나로 똘똘 뭉친 우리 소대원들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오피니언
    2019.07.11 14:36
  • 북한 소형목선 사건 군 관련자 문책 두고 ‘타당성’ 논란
    ▲ 정경두 국방부 장관(왼쪽)과 박한기 합참의장이 지난 3일 오후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제8군단장 보직해임 등 조치 해상·해안 경계작전 실정 무시 지적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국방부가 지난 3일 북한 소형목선 삼척항 입항 사건과 관련해 제8군단장 보직해임 등의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한국군의 해상·해안 경계작전 실정을 무시한 조치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축소·은폐 의혹은 없다고 결론짓는 반면 해상·해안 경계태세 문제에 따른 문책 조치를 발표했다. 최병환 국무1차장은 “평시 해안경계태세 유지의 과실이 식별된 제8군단장을 보직 해임하고 통합방위태세 유지에 과오가 식별된 제23사단장과 제1함대사령관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고 밝혔다. 동해 NLL 200마일 넘어 울릉도 동북방 돌아오면 발견 못해 이와 관련, 해군작전사령관을 역임한 한 예비역 해군제독은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동해 북방한계선(NLL)은 200마일이 넘는데, 해군은 연안으로부터 50∼70마일을 겨우 2∼3척의 함정으로 커버한다”면서 “이번처럼 울릉도 동북방으로 돌아오면 해군 함정이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해군의 담당구역 안으로 들어와도 NLL을 넘는 순간에 우리 함정이나 해상초계기가 포착하지 못하면, 우리 어선과 중국 어선(수십∼수백 척)들에 뒤섞여 레이더로는 분간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즉 해상 경계작전은 정규전에 대비해 적의 함정이나 잠수함에 대응하도록 맞춰진 것이지 소형 목선까지 찾아내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육군 해안감시레이더, 북한 목선과 우리 어선 구별 불가능 육군의 해안 경계작전도 핵심 장비는 해안감시레이더인데, 이것 또한 함정 레이더와 같이 북한 목선과 우리 어선을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지능형 영상감시시스템(IVS)은 구별이 가능하나 운용요원이 경험이 없으면 이번처럼 목선이 삼척항으로 진입하는 장면을 보고 낚시배로 판단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해경과 제23사단 간에 일부 협조가 미흡한 부분과 군부대 내부에서 보고가 제 때 이루어지지 않은 등 사소한 문제들은 있었지만 경계근무자들이 태만했거나 제 역할을 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난달 17일 최초 브리핑 시 국방부가 “조사 결과, 해상·해안 경계작전에 문제가 없었다”고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이 정치·사회적 비판 대상으로 전락하며 희생양 만들어져 그럼에도 군사 문제가 정치 문제로 비화되면서 사실은 사라지고 군이 정치·사회적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해 희생양이 만들어진다. 다수의 예비역 장성 및 장교들은 “NLL 전체를 지킬 수 있는 해상 전력이 없고 해안 경계작전도 한계가 많은데, 무조건 현장 지휘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정 장관이 축소·은폐 의혹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서 자기만 살기 위해 현장 지휘관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류제승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예비역 육군 중장)은 “본래 군사 활동에는 무수한 마찰요인이 내재돼 ‘무결점’ 달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사회의 관심과 응원을 당부했다.
    • 밀리터리
    2019.07.05 16:3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8) 트럼프와 김정은도 못들어간 DMZ천연폭포 속 '일탈의 추억'
    ▲ 군견을 앞세워 DMZ 지뢰밭을 수색하는 모습 [사진출처=국방부] 트럼프와 김정은도 구경 못한 진짜 DMZ의 이야기는 아직도 귓가에 6·25남침전쟁 이후 인적 끊긴 DMZ지역, 격전의 잔해인 철모, 실탄 등이 즐비 DMZ의 천연 계곡물에 몰래 몸을 담그기, 그 '시원했던' 일탈의 추억 화공작전으로 녹은 지뢰 밟은 사고 발생, 인명 피해 없었지만 아찔했던 순간 DMZ소대장은 어떤 상황하에서도 '임무 완수'가 중요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달 30일 역사적인 DMZ(비무장지대)회동을 단행했다. 역사는 이처럼 의표를 찌르는 돌발행동을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그러나 말이 DMZ이지, 북미정상이 실제로 50여분 동안 회담을 가진 곳은 판문점 남측 지역인 '자유의 집'이다. DMZ깊숙한 곳의 비경은 구경조차 못했다. 트럼프와 김정은도 구경못한 DMZ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소근거리는 듯 하다. 필자는 GP경계근무를 마치고 DMZ 수색 매복 작전소대로 임무를 교대했다. DMZ 작전이 있는 날에는 점심을 일찍 먹고 소대 막사에서 1차 군장검사와 즉각조치 사격을 한 뒤 GOP통문으로 이동한다. 통문 앞에서 2차 군장검사를 하며 소총에 실탄을 장전할 때 ‘철컥’거리는 소리는 유난히도 크게 들리며 다시 한번 더 긴장하게 만든다. GOP통문 소대장이 투입인원을 확인한 뒤 통문이 ‘끼익’하고 열리면 선두 경계조는 먼저 투입해 통로를 정찰한다. 경계조의 수화 신호가 오면 본대와 후미경계조는 통로로 들어선다. 지뢰밭 DMZ안으로 수색조가 모두 들어오면 GOP통문이 닫히는 또 한번의 ‘철컥’소리는 온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며 망망대해 안개바다에 표류하는 조난배가 된 기분이다. 그때부터는 모든 작전이 소대장 책임으로 이루어 진다. 태양열이 작열하는 폭염에 두꺼운 방탄복은 온몸에서 땀을 쏟아내게 하지만 지열이 더 뜨거워 온몸이 터질 지경이다. 게다가 비탈길 경사를 오를 때에는 탈진 일보직전이다. 그래도 “간첩잡아 영웅되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투입되어서 인지 모두들 바짝 긴장하며 혹시 침투하여 은거하며 기습 사격을 해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눈빛은 빛났다. 사실 2년 전에도 소대 작전 구역인 442고지에서 적과 조우하여 1명을 사살한 경우도 있었기에 더욱 주변을 살폈다. 소대의 책임지역은 우리 소대만이 담당한다. 아무도 그 지역을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통로에 실장애물을 설치했다. 매번 수색시마다 선두는 실장애물이 끊어졌나 확인하며 통과를 했고 이상시에는 수화신호를 보내 각별히 주변을 살폈다. 동물이 지나가다 끊어질 수도 있고 진짜 공비가 침투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소대 작전 책임지역내의 남대천은 DMZ군사분계선을 따라 북에서 내려온다. 남대천은 6·25남침전쟁 이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곳곳이 지뢰밭이다. 함부로 들어가면 잠자던 지뢰가 숨을 쉬며 언제든지 폭발하여 인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수색작전을 하며 DMZ를 돌아보면 6·25남침전쟁의 잔해들이 널려있다. 총알이 관통해버린 녹쓴 철모, 쏘다 남은 M1소총탄들과 탄띠, 수류탄, 그리고 철조망…. 치열했던 격전의 순간들이 그려진다. 반면 민가였던 곳에서는 평화롭게 살았던 집터와 맷돌 조각들이 “민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 작전소대장으로 DMZ 지뢰밭을 누비던 시절 수색조와 자연수에 목욕 후 기념 촬영모습 [사진=김희철] 능선을 넘어 계곡으로 들어서자 DMZ 계곡 물소리가 폭염에 지친 몸을 달래준다. 나무 그늘을 통과할 때의 시원한 바람은 마치 에덴동산에 온 기분이었다. 그때 후미 경계를 책임지며 따라오던 분대장이 건의를 했다. “소대장님, 잠깐 휴식하시죠? 소대원들이 더위에 지쳐있습니다.” 필자도 더위를 먹어 답답했는데 분대장의 건의를 허락하고 계곡 시냇물가에 앉았다. 바로 앞에는 작은 천연폭포가 있었고 바로 밑에는 작은 호수같은 물덩이가 있었다. 기왕에 휴식을 할 바에는 화끈하게 쉬게 해줄 생각으로 경계병을 배치하고 소대원들에게 시원한 자연수에서 목욕까지 허용했다. 군화를 벗고 아무도 찾지 않았던 DMZ자연수에 발을 담그자 오히려 발이 얼 것 같이 시원했다. 경계병도 교대시켜 전원이 목욕을 한 후 다시 수색작전에 임했다. 통문 방향으로 복귀하기 위해 시냇물을 건너는 중 이었다. 맨 후미에서 실장애물을 재설치하며 따라오던 분대장이 급하게 보고했다. 얕은 시내를 통과할 때는 주로 돌만 밟고 지나간다. 헌데 전 소대원이 밟고 지나간 조그마한 돌이 바로 폭풍지뢰였다. 봄이 되면 울창한 숲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기 때문에 북한 민경초소에서는 북풍이 불어올 때 화공작전을 한다. DMZ에 불을 질러 숲을 태워 시야를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우리 쪽은 남쪽 군사시설이 피해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맞불도 놓는다. 덕분에 산양 등 천연기념물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그 화공작전으로 플라스틱 지뢰가 열기에 녹아 뇌관부근이 딱딱하게 굳어져 마치 돌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뇌관이 녹은 지뢰는 폭발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수색작전을 계속 했다. 혹시 침투하여 은거하며 기습 사격을 해올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적을 찾기 위해…… 이 길은 내가 가야하는 길. 나에게 실패나 성공은 중요하지 않다. 필자를 믿고 따르는 소대원들의 두 눈은 나를 보고있고, 필자는 그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소대장이라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오직 나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만이 남아 있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오피니언
    2019.07.05 14:30
  • [김희철의 전쟁이야기](4) '조종사의 날'을 만든 한국판 가미가제, 고(故) 이근석 장군
    ▲ 공군 11전투비행단소속으로 6·25 전쟁당시 장렬히 산화한 고(故) 이근석 장군 동상에 헌화한 뒤 거수경례를 하는 前 공군군수사령관 윤우(공사28기) 장군 모습 [사진 제공=공군군수사령부] 추모해야 할 전쟁 영웅인 '한국판 가미가제' 고(故) 이근석 장군 1950년 7월 3일 F-51 무스탕 전투기 첫 출격에서 산화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 니스트]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판문점 회동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의에 따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이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66년 만에 조·미 두 나라 최고 수뇌분들께서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역사적인 악수를 하는 놀라운 현실이 펼쳐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앞으로도 긴밀히 연계해나가며 조선반도 비핵화와 조미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재개하고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합의하셨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북미 정상회담으로 인한 긍정적인 남북 대화와 화해 협력도 좋지만 69년 전 동족상잔의 비극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7월이 되면 꼭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전쟁 영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6·25 남침 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3일 경기도 수원부근 상공, 왼쪽 날개에 불이 붙은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F-51 무스탕 한 대가 연기를 내뿜으며 북한군 탱크 20여대가 있는 무리로 돌진하는 한국판 가미가제가 있었다. “3번기 도로 좌방 탄약차량 공격, 건투를 빈다! ...” 대공포 맞자 북한 전차 부대 한 복판으로 뛰어들어 공군은 11년 전 7월 3일을 '조종사의 날'로 정해 고(故) 이근석 장군(공군준장 1917. 1.17 ~ 1950. 7.3)은 평양보고를 졸업하고 17세에 일본 구마가아 비행학교에서 조종술을 배웠다. 담당 교관이 ‘비행술의 천재’라고 할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광복 후에는 한국 공군 창설에 힘을 쏟았다. 1948년 조선경비 사관학교 1기 간부후보생으로 졸업한 뒤 육군소위로 임관했다. 육군 항공기지 사령부에서 비행단장으로 근무한 뒤 육군대령으로 진급했다. 당시 한국군에는 연락기와 정찰기 30여 대만 보유하고 전투기는 없었다. 군 당국은 이 항공기로는 남하하는 북한군의 T-34 전차를 막을 수 없다 판단하고 6월 26일 이근석 대령을 포함한 10여 명의 조종사를 일본 이다쓰케 기지에 급파해 미공군으로부터 F-51 무스탕 전투기를 인수받게 했다. 체계적인 교육 훈련도 받지 못한 10여 명의 조종사들은 10대의 F-51 무스탕 전투기를 직접 조종해 현해탄을 건너오게 됐으며, 이것이 우리나라 첫 공군 전투기 조종의 시작이었다. 남침해 온 북한군에 맞서 싸울 전투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 조종사들은 경비행기 22대를 총동원해 초저고도로 비행하며 포탄을 손으로 투하해 전투를 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북한군의 서울진입을 24시간 동안이나 지연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급박한 전쟁 상황 때문에 이근석대령을 포함한 이들은 도착 다음 날인 7월 3일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 도입한 F-51 무스탕 전투기의 첫 출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 첫 비행에서 이근석 대령은 안타깝게도 적의 대공포를 맞았다. 순간적인 대공포에 엔진이 명중되자 탈출하기는커녕 적군 전차부대 한 복판으로 돌진해서 비행기와 함께 산화했다. 이근석은 “3번기 왼쪽 탄약차량 공격, 건투를 빈다”는 마지막 명령을 내린 뒤 이같은 희생적 공격을 함으로써 첫 전투기 조종사 전사자로 기록되게 됐다. 이 대령에겐 후에 최고의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이 내려지게 됐으며 공군은 2008년 7월 3일 전투기 첫 출격을 기념해 이날을 ‘조종사의 날’로 선포했다. 지금도 고 이근석 준장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용기를 기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대구에 있는 이장군 동상에서 7월 기일을 전후해 추모식을 열고 있다. 공군의장대원 군악대 50여명이 군악을 울리고 한국항공 소년단 30여명도 동상 앞에서 경례를 한다. 공군군수사령관 등 현역 공군장군들도 매년 참가한다. 대구 비행장은 이장군이 생전 마지막으로 출격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 군의 후배와 일부 국민들은 고 이근식 준장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부패 척결의 마지막 표적으로 군이 활용되고, 과거 군사정권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군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고 있다. 미국 시민들이 군을 아끼는 마음에 비하면 고 이근석 장군에 대한 추모행사는 아무것도 아니다. 음지에서 묵묵히 충성하는 많은 군인들에게 배려와 격려 필요 그래서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숨겨져 있는 전쟁 영웅들을 찾아 추모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참군인으로 존경 받던 고 한신·채명신장군, 월남전의 영웅 고 강재구·이인호 소령, DMZ에서 솔선수범하다 순직한 고 강병식 대령, 연평해전의 고 윤영하 소령을 포함한 6용사 등 숨겨져 있는 많은 영웅들을 찾아내고 추모해야 한다. 또한 현재 복무하는 군인들과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그 뜻을 이어 받도록 행사를 확대하고 고위급 정치인부터 솔선해야 한다. 둘째, 현역들 중 무기체계사업 등 많은 예산을 다루는 자들은 소탐대실(小貪大失) 명언을 명심해 정직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과거 린다김 사건으로 이미 망쳐놓은 백두금강 사업을 당시 현역 중령(現예비역 준장 서용석)이 도맡아 미 록키드사와 긴밀히 협조해가장 저렴한 예산으로 현재에 정보획득 시스템으로 발전시킨 좋은 사례도 있다. 아무튼 중용(中庸)에 있는 ‘계신호기소불도(戒愼乎其所不睹), 공구호기소불문(恐懼乎其所不聞)’라는 말처럼 보이지 않는 바에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는 바에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자세로 모든 사업에 임해야 한다. 셋째, 우리 국민들은 일부 그릇된 정치군인들이 전부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음지에서 묵묵히 충성하는 많은 군인들에게 배려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필자가 2011년 육본정책실장 근무 시 업무차 미국에 갔다가 일반 식당을 들렸는데 그곳에 있던 시민들이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보고 모두 일어서서 격려의 박수를 치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정치권에서 적폐 척결의 표적으로 군이 매도되고, 과거 군사정권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군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은 국민들이 이국 만리 생활여건이 안좋은 곳에서 해외파병부대로, 전후방 각지 격오지에서 책무를 다하는 우리 아들과 딸들에게 격려와 배려를 보내고 있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현재 이처럼 침묵하고 있는 많은 현명한 시민들도 있다는 것에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 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 오피니언
    2019.07.05 13:08
  • 육군, ‘전술적 운용’ 등 교리 정립 없이 ‘드론전사’ 양성에만 치중
    ▲ 지난 1일 경기도 광주시 육군특수전학교 드론교육센터 교육장에서 드론교관 임영민(왼쪽) 중사가 드론 운용을 위한 기초 비행 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방일보] 2020년부터 18개 드론교육센터에서 ‘드론전사’ 연간 1천여 명 배출 교리 정립돼야 필요기능 갖춘 ‘드론 획득’과 적합한 ‘부대 편성’ 가능 군사 전문가, “부대 편성 완료되는 시점 고려해 임무에 맞게 양성돼야”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육군이 연간 1천명의 ‘드론전사’ 양성을 목표로 지역 드론교육센터를 조성한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드론을 전장에서 어떻게 사용할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아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육군은 지난 1일 “2017년 정보학교, 2018년 계룡대에 이어 올해 전반기 7개 지역 드론교육센터를 새롭게 조성하고 오늘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며 “내년에도 9개 센터를 추가 개소해 총 18개 드론교육센터에서 ‘드론전사’ 양성에 박차를 가한다”고 밝혔다. 올해 신축되는 지역 드론교육센터는 수도방위사령부, 특수전사령부, 2·5군단, 31·36사단 등이고, 내년에는 수도·1·3군단, 32·35·37·39·50·53사단 등에 조성된다. 육군은 2020년까지 드론교육센터 구축이 완료되면 연간 1000여 명의 ‘드론전사’를 배출할 계획이다. 육군은 정보학교 드론교육센터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면서 드론 교육 교관을 양성하고 야전에서 적용 가능한 전투수행 기능별 드론 고등기술을 개발하면, 시뮬레이터 등 각종 훈련 장비·시설을 갖춘 지역 센터에서 부대 임무에 특화된 맞춤형 교육으로 드론전사를 양성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에 정통한 업계 소식통은 아직까지 드론의 ‘전술적 운용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 그는 “육군교육사령부가 주도하는 교리 분야의 발전이 지지부진한 상황이어서 운용개념도 없이 드론 교육이 진행되고 드론전사가 양성되는 모양새”라며 순서가 뒤바뀐 현실을 설명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교리가 정립돼야 교리에 입각해 필요한 기능을 갖춘 군사용 드론이 획득되고 기존의 부대 편성도 이에 맞게 보완되며 정비 시스템까지 갖춰진다”면서 “드론전사 양성은 군사용 드론이 확보되고 부대 편성이 완료되는 시점을 고려하여 임무에 맞게 양성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사회에 상용 드론을 운용해본 경험과 자격증까지 딴 인원이 많은데다, 드론 운용병을 따로 선발하고 있어 군에서 필요한 운용능력을 구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면서 “인력 양성에 치중하기보다 교리 정립이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드론 전문가는 “군의 장비 획득은 절차를 거쳐야 함으로 시간이 걸린다”면서 “현재 군이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드론은 3∼4년 전 기술로 만들어진 장비여서 최근 상용 제품보다 기능도 떨어지는데다, 무조건 비화(秘話) 통신을 요구해 발목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의 경우 분대나 소대급에서 사용하는 소형 드론은 영상 데이터를 전송한 후 로그 기록이 남지 않게 만들어 굳이 비화 통신을 요구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부분도 드론을 전장에서 어떻게 사용할지 정해져야 검토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육군의 드론봇 전투체계 추진과정을 살펴본 한 전문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언급하며 전장에서 필요하다고 육군참모총장부터 얘기하니까 서둘러 제품을 획득해서 한 번 사용해보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드론을 전장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군 스스로 고민해 답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육군이 기어가지도 못하면서 뛰어가는 것을 홍보하려는 자세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자신들이 답을 찾아야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군사작전을 모르는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려는 모습만 보여 안타깝다”는 반응도 제기됐다.
    • 밀리터리
    2019.07.03 16:26
  • [수출 방산 명품](5)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아르헨티나 및 동남아 국가에 4조원대 수출 나서
    ▲ 지난 2016년 10월 21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경공격기 'FA-50' 출하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대한민국은 40여년 만에 전차, 장갑차, 자주포, 미사일은 물론 함정, 잠수함, 고등훈련기까지 거의 모든 무기체계를 생산하는 신흥 방산강국이 됐다. 뉴스투데이는 한국의 방산제품 중에서 세계로 수출되거나 수출 가능성이 높은 명품을 선정하여 소개하는 ‘수출 방산 명품’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김조원 사장, 아르헨티나 대통령 및 말레이시아 총리 만나 수출 논의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4월 29일 김조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은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대통령과 가브리엘라 미케티(Gabriela Micheti) 부통령 등 고위급 인사와 면담을 갖고 FA-50 수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눴다. 아르헨티나 공군은 12대 규모의 노후 전투기 교체 사업을 추진 중인데, FA-50 경공격기를 선호하고 있으며, 사업 추진을 위해 금융 지원과 산업협력 조건이 포함된 제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조원 사장은 또한 지난 3월말 말레이시아 랑카위에서 열린 '국제해양항공전(LIMA) 2019' 현장에서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를 예방하고 국방총사령관, 공군사령관 등 말레이시아 주요 의사결정권자들과 FA-50 수출을 위한 면담을 갖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공군은 36대 규모의 고등훈련기 및 경전투기(LCA) 획득사업을 추진 중이다. KAI는 올해 초 말레이시아에 FA-50 제안서를 제출했으며, 파키스탄·중국 합작의 JF-17, 인도의 테자스, 이탈리아의 M346, 러시아의 Y-130과 함께 경합 중이다. 특히 경전투기는 일부 공대공 능력과 완전한 공대지 능력을 갖춘 초음속기를 저렴한 가격에 획득해야 하는데, 이 조건을 모두 맞출 수 있는 건 사실상 FA-50 말고는 없는 상황이다. 현재 말레이시아 국방부 대변인이 FA-50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매우 고무적인 상황이기는 하다. 한국 공군은 2002년 8월 훈련기 T-50, 2011년 5월 경공격기 FA-50의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현재는 T-50 50대, 전술입문기인 TA-50 22대, 경공격기 FA-50 60대, 블랙 이글스 12대 등 총 144대를 보유하고 있고, TA-50 20대를 추가로 구매할 예정이다. 공대지 능력 갖춘 초음속기 FA-50, 2011년 최초로 인도네시아 수출 T-50/FA-50은 2011년 5월 최초로 인도네시아와 16대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총 4억 달러 규모로 저렴하게 판매했고 인도네시아 수송기인 CN-235 4대를 대응 구매하면서 성사시킨 계약이었다. 항공기의 경우 최초 수출 시 구매국에게 큰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이 관례화 돼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수출용인 ‘T-50i’은 FA-50 규격으로 생산돼 유사시 전투임무에 사용할 수 있게 레이더 경보수신기(RWR)도 장착했다. 이어 2013년 12월 이라크에 T-50 24대 수출 계약이 성사됐다. 수출 규모는 이라크 수출용인 ‘T-50IQ’ 항공기와 조종사 훈련, 후속 군수지원 등을 모두 포함해 21억 달러(한화 2조2천121억 원) 이상으로 한국 항공수출 사상 최대 규모였다. 2017년 5월 6대, 2018년 4월 및 12월에 각각 6대씩 12대가 인도되어 현재 24대중 18대가 납품됐고, 수출대금 중 일부가 제대로 회수되지 않아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2014년 3월에는 필리핀에 FA-50 12대를 정부 간 무역(G2G) 방식으로 공급하는 계약이 체결됐다. 4억2천만 달러 규모로 KOTRA가 G2G 주관기관으로 계약 체결을 이끌었으며, 방위사업청은 항공기의 품질을 보증하는 등 측면 지원했다. 공군은 실전 운용경험을 살려 필리핀 수출용인 ‘FA-50PH’의 평가비행을 돕고, 향후 조종사 및 정비사 훈련을 약속했다. 2015년 9월에는 태국에 T-50 4대(1억1천만 달러)를 수출하는 계약이 체결됐고, 2017년 7월 8대(2억6천만 달러)를 추가로 수출하는 계약이 체결됐다. 태국 수출용인 ‘T-50TH’는 고등훈련 및 전술입문기로 활용되며, 태국은 향후 추가로 4대를 더 도입해 총 16대로 비행중대를 구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이라크·필리핀·태국 등에 64대 판매, 3조 원 넘게 수출 이와 같이 T-50/FA-50은 인도네시아, 이라크, 필리핀, 태국 등에 지금까지 총 64대가 판매돼 수출 금액만 30억 달러를 상회하는 규모다. 게다가 필리핀은 12대, 태국은 4대의 FA-50을 추가로 도입할 생각도 갖고 있다. 또 리비아와 칠레도 T-50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리비아와는 수출 협상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KAI는 록히드마틴과 함께 지난해 9월 미국 공군의 훈련기 사업 입찰에 참여했으나 보잉-사브가 92억 달러라는 최저 가격을 제시해 사업을 따내면서 KAI의 원대했던 대미 수출의 꿈은 무산됐다. 최소 350대에서 최대 475대까지 구매가 예상된 사업이었고 세계훈련기 시장의 향후 판도를 좌우하는 것이어서 KAI의 타격은 컸다. T-50/FA-50은 초음속 기능과 경공격기 임무를 병행할 수 있는 등 성능이 뛰어나다. 따라서 순수한 훈련기로는 비싸고, 본격적인 전술기로는 약간 부족한 기종이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처럼 자국 내에 반군 세력이 존재하며, 인접국과 분쟁 가능성 때문에 전력을 늘려야 하는 나라는 선호하지만, 훈련 기능만 원하는 나라들에게는 비싼 가격으로 매력이 없다. 이런 연유로 순수 훈련기 버전에 비해 경공격기 버전이 상대적으로 수주 성공율이 좋은 편이다. 훈련기로는 가격대 성능비가 나쁘지만 경공격기로는 오히려 가격대 성능비가 우수한데다 유력한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전술입문기이면서 고등훈련기를 병행하는 FA-50의 기능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김조원 사장은 이와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난 3월 29일 말레이시아 전시회 현장에서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와 유럽에 적극적인 수주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며 "다목적 운용이 가능하도록 성능을 개량해 국산항공기의 경쟁 우위를 지켜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방산기업
    2019.07.03 16:20
  • [김희철의 전쟁이야기](3) 유엔군의 '자유전사' 프랑스 몽클레어 장군과 미국 프리만, 크롬베즈 대령
    ▲ 중장 계급장을 달았던 프랑스 몽클레어 장군(왼쪽)의 모습, 그리고 6.25전쟁에 참전한 몽클레어 중령(오른쪽 사진의 맨 왼쪽)이 한국전선을 방문한 맥아더 연합사령관(오른쪽 사진의 맨 오른쪽)과 만나는 모습[사진출처=보훈처] 지평리 전투의 영웅 ‘몽클레어’장군, 참전하기 위해 중장에서 중령으로 '강등' 선택 '미끼'로 던져진 미 23연대 ‘프리만’대령은 "나는 반드시 부하들을 데리고 나갈 것"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6·25남침전쟁에서 1.4후퇴 후,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 내고 중공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푸른 눈을 가진 ‘자유의 전사부대’가 있었다. 이 ‘자유의 전사부대’ 가 승리한 ‘지평리전투’로 큰 타격을 입은 중공군은 공격을 중단하게 되었고, 몰리던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어 연합군은 북을 향해 전진하게 된다.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휘관 중 한명은 바로 프랑스의 랄프 몽클레어 (Ralph Monclar·1892~1964) 장군이었다. 1950년 6월 25일,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이 남한을 기습공격하며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연합군을 한국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는 유엔군 파병을 결정했지만 한국에 파병할 여력이 없었다. 당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알제리 등에서의 식민지 전쟁으로 병력 보충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프랑스는 1950년 7월 12명의 시찰단만 한국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반기를 든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몽클레어 중장이다. 그는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모병(募兵)을 실시했다. 그 결과 전국에서 1300여명에 달하는 병력이 모였다. 몽끌레어 장군은 직접 이들을 이끌고 한국전쟁에 참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스 르젠 국방차관이 “미국의 대대는 육군 중령이 지휘하는데 중장인 당신이 대대장을 맡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대했다. 이에 몽끌레어 장군은 중장 계급장을 떼고 국방차관에게 “한국전쟁에 참전할 수 있다면 육군 중령이라도 좋다. 계급을 낮춰도 좋으니 나를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몽클레어는 결국 중령 계급장을 달고 대대장으로 이국만리의 전쟁에 참전했다. 공산군의 침략으로 백척간두에 놓인 한국을 돕는 일이라면 몽클레어 장군에게 강등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몽클레어 장군이 한국에 왔을 때 나이는 58세였다. 그는 목숨을 걸고 한국전쟁에 참전해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천상륙작전’ 못지않게 중요했던 ‘지평리전투’는 1.4후퇴 이후,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벌어진 산악 전투이다. 당시 중공군은 국군과 유엔군의 전선을 밀어내며 파죽지세로 남진하고 있었다. 그 당시 지평리까지 무너지면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유명한 명장 ‘맥아더’장군이 지휘하는 연합상륙부대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함으로서 전세를 역전시켰다. 하지만 유엔군이 파죽지세로 북진을 거듭하여 그 선두 부대가 압록강에 도달했을 무렵 중공군이 이미 10월 15부터 압록강을 건너 은밀하게 투입되어 그 역공격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그 첫 교전이 10월 25일 개시되었고 이때부터 중공군은 인간을 무기로한 인해전술(人海戰術)로 유엔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규모는 최초 18만명, 이후 40만에 이르는 중공군이 한반도 투입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중공군의 기습적인 역공격을 받은 유엔군은 혼란에 빠졌고 더욱이 중공군의 규모와 무기체계, 전술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터라 피리불고 괭과리 치면서 인해전술로 몰려드는 중공군에 심리적 공황까지 발생,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겪었다. 급기야는 1951년 그 유명한 ‘1.4후퇴’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유엔군은 한반도를 통일하고 고향에서 크리스마스휴가를 보낸다던 계획이, 우리 국군에게는 한 맻힌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려던 꿈이 무참히 깨어지면서 엄동설한에 다시금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자 전쟁수행에 대한 서구제국들의 관심이 급변하고 급기야 한반도에서의 철수와 휴전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공은 중공의 유엔 가입과 대만에서의 미군철수 등을 조건으로 내세우고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유엔군과 국군은 중공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유엔군의 재편성을 위하여 평택-원주-삼척을 연하는 선까지 일단 후퇴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금 역공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즉, 반격작전으로 중공군을 38도선 이북까지 격퇴하면서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인 ‘제한전쟁’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여 전쟁의 무제한적 폭력성을 특정한 목표로 제한하고 이를 통하여 정치적 목적인 휴전협상을 이끌어 내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는 중공군과 단절된 전선을 회복하고 철저하게 잔적을 소탕하면서 동해와 서해를 잇는 띠를 만들어 일제히 제한된 거리를 진격하는 여러 개의 작전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 지난 2016년 7월경 방한했던 몽클레어 장군의 손자(오른쪽)가 53사단 군종 참모인 김재학 소령(목사)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김재학 소령] 유엔군의 '라운드 업' 전략 속에서 중공군 섬멸을 위한 '미끼'로 던져진 미 23연대 인해전술로 덥쳐온 중공군을 3차례 전투에서 격파 지평리 전투가 있기 전에 유엔군은 작전명령 월프하운드(Wolfhound)작전, 썬더볼트(Thuderbolt)작전으로 한강선을 확보하고, 라운드엎(Round-up) 작전에 재차 돌입하였으나 중공군의 대규모 ‘2월 공세’로 홍천 남쪽에서 작전이 저지되고 중공군과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중공군은 이때 수원-이천-원주-강릉을 연하는 선까지 일부 진출해 있었고 유엔군이 반격을 개시하자 횡성과 홍천 중간지인 삼마치 고개와 지평리 일대로 병력을 집결하여 대규모의 공세를 준비 중에 있었다. 드디어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이 ‘2월공세’로 명명된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하였다. 따라서 유엔군과 중공군이 횡성-원주일대와 지평리 일대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되었다. ▲ 한국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운 UN(프랑스)군의 지평리전투 충혼비와 상황도[사진출처=보훈처] 지평리(砥平里)는 중앙선 열차가 통과하며 원주, 이천, 장호원, 양평등으로 진출할 수 있는 주요 교통요충지로서 주변이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 분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중공군은 지평리를 점령하고 남한강을 도하하여 서울의 남쪽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었다. 이때 지평리에는 라운드 업작전에 투입되었던 미2사단 23연대가 배속된 프랑스군 대대와 미37포병대대, 82방공포대대 B포대, 503포병대대 B포대등으로 편성된 연대전투단이 지형의 잇점을 이용하여 전면방어를 편성하고 있었다. 여기에 중공군 39군 예하의 3개 사단이 지평리를 그 특유의 나팔과 괭과리를 동반한 인해전술로써 포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위기의 순간은 올가미처럼 목을 조여 오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한 미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은 즉각 미 2사단 38연대로 지평리를 증원토록 하는 한편 부대를 재배치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고 미9 군단이 지평리에 추가적인 증원부대를 급파하도록 조치 하였다. “승리는 승리를 믿는 자, 전투는 끝까지 버티는 자에게만 승리의 영광을 안겨준다”고 한다. 지평리의 병사들은 그동안의 전투에 지쳐 제각기 호를 파고 그 속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대장 프리만 대령과 그 부대원들은 철저한 준비를 이미 완료한 뒤였다. 몽클레어가 이끄는 프랑스 대대, 1일차 전투에서 대승리 드디어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이 횡성의 삼마치고개 일대에서 일제히 공격을 재개 하여 3일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한국군 3군단이 패하면서 지평리까지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이에 프리만 대령은 퇴로가 차단되어 중공군에게 포위될 것을 우려하여 철수를 건의 하였으나 철수허가 대신 지평리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접수 하였다. 사실 미23연대는 ‘라운드업 작전’ 속에서 '미끼 역할을 수행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중공군을 찾아내어 소화기와 인력에 의존하는 중공군을 연합군의 우세한 화력과 공군력으로 섬멸코자 계획된 작전이었던 것이다. 미 23연대는 미끼로서 중공군에 던져 졌고 중공군은 그 미끼를 물 게 되었으며 프리만 대령의 미23연대는 그 속에서 미끼역할을 수행하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1951년 2월 13일 드디어 중공군이 지평리 전방에서 대규모로 집결 중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제보로 확인되었고 어둠이 깔리면서 중공군의 신호탄이 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지평리는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다. 한겨울 지평리의 추위는 살을 에이는 듯하였고 장병들은 긴장속에서 전투준비를 갖추고 중공군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어 갈 무렵, 중공군의 박격포탄이 여기 저기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중공군의 그 나팔, 호각, 괭과리.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중공군은 떼를 지어 몰려들었고 장병들은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여 중공군의 1제파, 2제파, 3제파를 차례로 격퇴하였다. 중공군의 시체가 산을 이룰 지경이었다. 한편 프랑스군 대대장 몽클레어 중령은 58세의 노병으로 1, 2차 대전을 모두 경험하고 무공훈장을 17차례나 받은 백전노장이며 진정한 군인 이었다. 원래 프랑스 육군 중장 이었던 대대장의 본명은 ‘마그랭 버르너리(Magrin Vernery)’이었고 개명한 새이름 ‘몽클레어’로 또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이 프랑스군 대대의 장병들도 대부분 이와 같이 전쟁을 위하여 자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용맹성과 전투능력을 어느 군대보다도 강하고 철두철미하였다. 프랑스군 대대전방에서도 중공군의 피리와 괭과리 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물밀 듯이 중공군이 몰려들어왔다. 이때 프랑스군 진지에서 난데없이 사이렌(신호 및 조기경보 용으로 중대급에 보급된 휴대용 수동식 사이렌 임)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중공군의 피리소리와 괭과리 소리를 삼켜 버렸고 중공군은 신호 및 연락이 끊기자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일제히 화력을 집중하면서 진지를 박차고 나가 중공군을 닥치는 대로 쏘고 찌르는 육박전이 벌어졌고 중공군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15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이날밤 중공군은 감히 재공격을 하지 못하였다. 한 병사의 기지가 대대전체를 구하며 참으로 값진 승리를 쟁취한 순간이었다. 밤이 지나갔다. 중공군은 3개 사단 병력으로 1개 연대전투단이 방어중인 지평리를 밤새워 포위공격을 하고서도 함락하지 못한 채 시체만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퇴각한 것이다. 미 프리만 대령, 절름발이 상태에서 중공군 9만명을 상대로 한 2일차 전투 승리 중공군은 낮에는 유엔 공군의 폭격이 무서워 깊은 산속에 숨어 있다가 재편성을 한 다음 밤을 기다리는 듯 하였다. 한편 이날밤 전투에서 연대장 프리만 대령이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며 헬기로 탈출 치료받도록 조치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붕대를 감은 절름발이로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프리만 대령은 "내가 부하들을 이끌고 여기 왔다. 반드시 이들을 데리고 나갈 것이다"라고 전의를 북돋으며 진두지휘, 장병들의 사기를 올렸다. 제공권을 확보하고 있던 유엔군은 정오경에 수송기 편대를 이용 수십톤의 탄약과 식량 등 보급품을 공수 하였다. 이때 연대 지휘소 부근 헬기장에 ‘리지웨이’ 미8군 사령관이 날아 들어왔다. 오는 도중 중공군의 저격으로 헬기가 명중되었으나 다행이 치명적이지 않았다. 지평리의 장병들은 가슴에 매단 수류탄 두발을 보고 ‘리지웨이’ 미8군사령관이란 것을 알았지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당시 ‘리지웨이’ 미8군사령관은 가슴에 수류탄 2발을 매다는 코디로 자신을 야전군 지휘관임을 자랑스럽게 외부로 드러내고 있었다. 리지웨이 장군은 장병들과 프리만 연대장에게 오늘밤 하루만 더 버텨줄 것을 당부하고 격려 하였으나 장병들은 오히려 사령관의 귀로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필자는 비록 보지 못하였지만 이글을 쓰면서 상상만 해도 정말 흥분되고 용솟음치는 전우애를 느낄 수 있었다. 2월 14일 어둠이 채 깔리기도 전 지평리에는 기분 나쁜 피리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전날 2개사단이 동시에 공격하여 실패한 중공군은 그날 밤 새로이 3개사단과 3개연대규모를 추가하여 2일차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였다. 중공군이 남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지평리를 반드시 확보하여야 만 했기 때문에 무모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병력 수 9만여명의 중공군이 3천여명의 유엔군과 혈전을 전개하였다. 중공군이 보유한 화력은 미약했지만 인간이란 무기는 넘쳐나는 듯 했다, 유엔군의 포병과 박격포세례에 살아남은 자는 지뢰지대에서 죽고 지뢰지대를 벗어난 자는 철조망 앞에서 기관총에 죽었다. 그러나 끝이 없이 밀려드는 중공군은 마침내 유엔군의 진지 전방까지 도달하였고, 유엔군은 실탄이 바닥날 지경이었다. 날이 밝으면서 중공군은 물러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또 하룻밤이 지나갔고 지평리 외곽의 유엔군 진지 전방에는 전날에 이어 이날밤 사살된 중공군 시체가 산에 산을 이루었다. 이제 지평리에서 2일간 전투를 치룬 미 23연대전투단은 더 이상 버틸 힘도 탄약도 없었다. 그러나 다시금 진지를 보수하고 오늘밤의 결전을 대비하고 있었다. ▲ 6·25 당시 미 23연대장 프리만 대령(왼쪽. 미육군 대장 전역)과 미8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 [사진출처=보훈처] 미 5기병연대장 크롬베즈 대령, 3일차 전투에서 중공군 괴멸시켜 전투 3일차인 이때 리지웨이 사령관은 미 9군단에 ‘지평리 연결작전’을 명령하였고 9군단장은 미1기병사단 5기병연대장 크롬베즈 대령의 이름은 딴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여 전차 23대를 앞세우고 지평리로 진격을 하게 되었다.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는 대신방향에서 북쪽으로 길 게 뻗은 좁은 도로를 따라 지평리로 전속돌진 하였다. 그러나 이 좁은 길은 양쪽이 높은 고지군으로 둘러 쌓여있고 이곳은 중공군이 미23연대 전투단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는 곳이어서 중대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공군은 폭약을 들고 전차를 저지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기어들어오고 있었다. 이때 2대의 전차가 중공군의 로켓공격으로 파괴되었다. 전차의 승무원이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전차를 도로밖으로 밀어내고 후속전차가 멈추지 않도록 공격템포를 유지하면서 돌진 하였다. 한편 지평리에서는 프리만 대령의 부상이 악화되어 후송되고 2대대장 에드워드 중령이 임무를 대신하게 되었다. 에드워드 중령은 우선 야간에 피탈된 전선에 대하여 주간 역습을 실시 회복하도록 명령하고 야간작전 준비에 돌입하는 한편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의 연결작전을 지원하고 있었다. 에드워드 중령은 보유하고 있던 전차 4대로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하여 설치한 지뢰를 제거하고 중공군의 배후로 우회하여 중공군에게 집중적인 사격을 가하면서 돌진 해 들어갔다. 더불어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는 중공군의 지휘소와 탄약고등 전투근무지원시설을 잇따라 유린하면서 파죽지세로 돌진 드디어 양군의 전차가 마주치면서 연결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의 충격적인 돌진은 중공군들을 완전히 제압하였다. 중공군들은 패주하기 시작하였고 이 광경은 군대가 아닌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으로 사라져 갔다. 미군과 프랑스군은 이를 놓치지 않고 마치 풀을 베는 농부처럼 메뚜기를 사냥하듯 중공군을 쓰러뜨렸다. 소총사거리를 벗어난 중공군은 박격포와 야포의 세례를 받으면서 무수히 쓰러져갔고 ‘중공군의 2월 공세’는 그들이 자랑하는 무기 인간을 무수히 소모한채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도 큰 피해를 입었다. 최초 이 특수임무부대는 전차위에 보병 1개중대 165명을 탑승시켰으나 이중 살아남은 사람은 23명이고 나머지 142명의 장병이 전사하거나 부상 후 중공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크롬베즈 대령과 에드워드 중령을 감격의 포옹으로 전우애를 확인하였다. ‘지평리 전투’는 유엔군이 중공군에게 거둔 최초의 완벽한 승리…! 이 전투는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이후, 후퇴와 패배를 거듭하던 유엔군이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전투로서 그동안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던 유엔군이 거둔 최초의 완벽한 승리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장에서 지휘관이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 하는 지휘관의 자세에 대한 수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미 23연대 전투단의 프리만 연대장은 부상 중에도 후송을 거부하고 장병들과 생사를 함께 하였으며 미8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이 중공군의 포화를 뚫고 헬기로 포위된 전장을 방문했을 때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다. 바로 손자병법 모공편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의 진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프랑스군 대대장 몽클레어 중령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는 진정한 군인으로서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 장병들이 엄동설한의 꽁꽁 얼은 야지에서 구축한 진지는 그들이 흘린 땀만큼 피와 목숨으로 보답한다는 교훈을 얻게 해 주었다. 그렇다 방어작전시 승패는 누가 더 깊이 견고하게 진지를 구축하고 가용한 화력과 장애물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전투결과로서 보여주었다. 한편 중공군이 대규모의 병력으로 완전히 포위하고 3일간 치열한 전투를 치루면서도 패배하였던 원인은 중공군에게는 인간이 무기인 인해전술만 있었지 곡사화기를 이용한 화력지원체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중공군의 신호 및 연락 수단이었던 피리, 괭과리. 북, 호각 등 의 소음은 야간전투에서 심리적인 효과까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군 대대 어느 병사의 수동식 사이렌 작동으로 완전히 차단함으로서 예상치 못한 커다란 성과를 달성한 것은 전장에서 창의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6·25남침전쟁’의 국가적 절명 위기에서 보이지 않는 희생을 통해 나라를 지켜낸 숨겨졌던 국내의 영웅들과 애국자분들에게 감사와 보은도 중요하다. 그런데 미 8군사령관 ‘리지웨이’장군과 ‘프리만’, ‘크롬베즈’대령, 프랑스군 대대장 ‘몽클레어’장군 등 연합군의 알려지지 않은 유엔군 영웅들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다시한번 더 ‘지평리 전투’에서 장열히 산화한 미군과 프랑스군의 전몰 장병들의 명복을 기원한다. 또한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인 67개국이 단일 연합군으로 우리나라를 구해준 해외지원국에 대한 감사하고 기억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명확히 부여되어 있고 우리는 그렇게 선양해야 한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오피니언
    2019.06.28 13:14
  • [김희철의 전쟁이야기](2)'구월산 여장군' 이정숙과 '동락리 전투'의 김재옥
    ▲ ‘군번 없는 여(女)전사’들과 이정숙(오른쪽) 여장군 [사진출처=국가보훈처] '구월산 유격대 女將軍’으로 불린 고(故) 이정숙, 남편 김종벽 대위와 함께 반공 유격전 구월산 유격대 생존자, 정부에게 16만원 보조받아 ‘김원봉 복권/서훈’ 보다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들 선양사업을 우선해야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6·25남침전쟁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서해무장대를 조직, ‘구월산 유격대 여장군(女將軍)’으로 불린 고(故) 이정숙도 있었다. 6·25 당시 구월산 유격대를 창설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남편 고(故) 김종벽 대위에 이어 부부가 동시에 일반적인 공로훈장이 아닌 무공훈장 수훈자로 건국 이래 처음이고 부부무공훈장 수훈은 전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사례이다. 이정숙은 1922년 2월 함흥태생으로 6·25남침전쟁 직전 공산군 손에 부모와 남편을 잃었다. 본인도 복역하다가 탈출에 성공하여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서해무장대'를 조직, 무장대원 70여명과 농민군을 진두지휘하여 북한군과 싸웠다. 이후 서해무장대는 김종벽 대위가 이끄는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하였다. 일명 동키 제2부대로 불린 구월산 유격대는 동년10월 중순,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과 이도면 등의 반공청년들로 조직된 '연풍부대'를 모태로 하여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의 김종벽 대위가 후퇴 중 반공청년들의 자생적 무장조직을 규합한 최초 150여명으로 1950년 12월7일 창설한 유격대이다.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한 뒤 이정숙은 김종벽 대위의 보좌관 직책을 맡아 다양한 특수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특히 1951년1월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였고, 이외에도 월사리 반도 상류작전, 어양리 지역 상륙작전 등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전쟁중에 육군참모총장 표창도 받았고 “구월산의 여장군”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여성 유격대의 상징으로 꼽히는 이정숙 구월산 여장군의 활약상은 1960년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바 있으며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서도 생생하게 그려져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나, 최근 보수와 진보의 정치논쟁 속에서 전쟁영웅들의 활약상이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구월산 유격대와 더불어 백령도를 근거로 반공유격전을 펼쳤던 일명 “8240동키부대”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윤보선 대통령이 1961년 8월 한국일보 사장 장기영의 협조를 받아 백령도에 “반공유격전적비”를 세웠던 것이다. 제 8240 동키부대는 황해도 일대의 마을 청년들이 스스로 조직한 결사대가 모체이다. 이름도 계급도 없는 유격대가 되어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중공군, 인민군들과 거의 맨손으로 싸워온 구월산 유격대에 감동한 미군이 이들이 지낼 수 있는 막사와 싸울 수 있는 무기를 공급하면서 조직한 부대이다. 따라서 구월산 유격대는 그때부터 무소속, 무계급의 유격대가 아닌 ‘제 8240부대 동키부대’ 소속이 되었고, 1951년 초에는 2500명으로 늘어났고 휴전 직후 해체될 때까지 800명 규모를 유지했다. 그들은 각종 유격전투를 하는 동안 적 사살 4000여명 생포 57명의 놀라운 전과를 올렸으며, 1954년 백령도로 철수하기 전까지 아군과 연합군들의 사기를 올리고 작전수행에 큰 시너지를 제공했다. 하지만 지금의 옹진군 백석면 형제 바위가 있는 비산곶 전투에서 이들이 탄 배가 적 포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175명 중 171명이 전사하고, 백령도를 사수하기 위해 싸우다 결국 516명이 목숨을 바친 것은 너무도 안타깝다. 그런데 정말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러한 분명한 역사가 존재하지만 구월산 유격대의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보상 또한 미흡하다는 점이다. 구월산 유격대 박부서 회장은 “구월산 유격대 생존자들에게는 정부에서 1인당 16만원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과연 이것이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 혹은 생존자들에게 주는 합당한 보상이냐?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희생덕택에 오늘의 평안을 누리는 우리들은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서 정부와 국회 그리고 언론들은 이러한 현실을 널리 알리고 적정한 보상이 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충주 여교사 협의회에서 고(故) 김재옥 여교사의 추모를 기리기 위해 설립한 비문 [사진=김희철] 민간인 최초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고(故) 김재옥 여교사와 '동락리 전투' 김재옥이 제공한 북한군 정보를 활용해 기습한 국군, '화려한' 첫 승리 거둬 1966년 임권택 감독이 영화 '전쟁과 여교사' 만들어 빅히트 동락리 전투는 6·25 남침전쟁 초기 후퇴를 거듭하던 우리 국군에게 희망을 심어준 첫 번째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전투경과를 보면, 7월 4일 9시 충주중학교를 출발한 제6사단 7연대 2대대(대대장 소령 김종수)는 저녁에 충주 신덕 저수지에 이르러 진지를 점령했다. 제7연대장(중령 임부택)은 음성 방어가 긴급하다는 판단 하에 제1, 2대대를 무주리와 음성으로 이동 배치하고, 제3대대는 생극으로 전진시켰다. 7월 6일 북한군 제48연대는 “국군이 차를 타고 도망쳤다”라는 동락초교 ‘김재옥’ 여선생과 주민들의 말을 듣고 신양리까지 수색한 결과 국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후 안심한 듯 동락리에 진출한 야포의 엄호 아래 신양리를 경유하고 음성으로 진출하기 위해 야음을 이용, 주력부대가 차량으로 7월 7일 새벽 5시경 동락리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때 국군 제7연대 3대대장은 공격 명령을 내렸고 적은 크게 당황하여 혼란에 빠졌다. 한편 가섭산 북쪽 644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제2대대는 7일 새벽 5시 고지 아래로 신속히 내려가 6시에 공격을 개시하자 기습을 받은 북한군은 당황하며 동락초등학교 교정에서 국군 제 3대대 방향으로 사격을 하던 적의 야포가 2대대 방향으로 포구를 돌리고 있었다. 이때 제2대대 8중대장 신용관 대위는 81mm 박격포 1문으로 사격을 개시했다. 이에 북한군의 포진지를 파괴했고 후속탄에 의해 야적된 포탄 상자도 연쇄 폭발됐다. 이후 제 2대대는 북한군의 저항이 거의 없이 잔적을 소탕할 수 있었다. 동락리전투에서 국군은 ▲적 사살 2186명 ▲포로 132명 ▲122mm 곡사포 6문 ▲76mm 박격포 18문 ▲기관총 32정 ▲소총 1956정 ▲장갑차 4대 ▲1/2톤 트럭 60대 ▲1/4톤 짚차 15대 ▲사이드카 7대 ▲무전기/전화기 16대 ▲말 24필과 상당량의 탄약 등을 노획하며 6·25 남침전쟁 발발 이후 최초 승리이자 최고의 전과를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에 비해 국군의 손실은 전사 9명, 부상 53명뿐이었다. 노획장비는 대전에서 국민에게 전시함으로써 국군의 승리를 국민에게 널리 알렸다. 노획품은 소련 제품이라는 표시가 있어, 소련이 6·25전쟁에 개입했다는 증거로 유엔에 보내졌다. 승전 보고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제 7연대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주었다. 이 동락리 전투의 승리는 북한군의 통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북한군 실태를 국군에게 알린 동락초등학교 여교사였던 ‘김재옥’ 선생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민간인으로서 '태극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전투는 ‘포화속으로’, ‘피어린 구월산’과 마찬가지로 1966년에 임권택 감독이 당대의 최고 스타배우 김진규와 엄앵란을 기용해 ‘전쟁과 여교사’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해 대히트도 했다. 학도의용군, 불암산 호랑이, 구월산 유격대 등 잊혀진 이름들을 다시 기억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참여한 것을 강조하면서 "통합된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 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김원봉 복권 및 서훈’을 한 때 진행했었다. 한반도를 침공하여 ‘흥남철수’, ‘1.4후퇴’ 등 동족상잔의 비극을 더욱 심화시킨 중공군의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이 이번 20일 북한을 국빈 방문했다. 정부는 이번 방북으로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이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인 상황에서 이뤄져 북미대화 재개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들은 잊은 채 남침의 책임자 중 한 명인 김원봉 서훈과 시진핑 방북 결과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원봉 복권 및 서훈’ 보다 오히려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들의 고귀한 영혼을 기리는 선양사업을 거국적이고 최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조선시대의 의병과 6·25 남침전쟁시 학도의용군, 불암산호랑이, 구월산유격대 등 처럼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난 '숨은 영웅들'에 대한 선양사업은 국가의 가치를 재확인시켜주는 의미가 크다. 매년 치러지는 구월산 유격대 추모행사시 제단 앞의 액자(박정희 대통령 휘호)에 적혀있는 명언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처럼 “세상이 아무리 평안해도 전쟁을 잊고 있으면 국가에 위기가 닥친다”는 뜻의 사마법의 명언을 6·25남침전쟁 70주년을 한 해 앞둔 시점에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오피니언
    2019.06.2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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