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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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전쟁사(44)] 피를 부르는 처절한 공방전이 계속된 적근산 735(김일성)고지 전투(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소·중대장 시절에 적근산 주변의 735, 633, 602고지 등을 수색할 때 6·25남침전쟁 당시 치열했던 전흔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휴전 직전 필자의 장인(故강철 대령, 종합1기)이 11사단 중대장으로 참전했던 일화와 관련된 현장도 발견했다. 1950년 10월말 한국전에 개입한 중공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서울까지 점령 하였으나 아군의 반격으로 후퇴, 현재의 휴전선을 따라 전선이 형성되었다. 그 후로는 대대적인 공방전대신 전선일대의 요충지 탈환을 위한 국부적이고 치열한 고지전이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 735(김일성)고지의 처절한 공방전, 야릇한 고요함과 정적이 전해준 공포 1951년 8월초에 국군 2사단은 중부전선 적근산과 김화를 연결하는 산악지대에 주저항선을 형성하고 사단 좌측에 31연대, 우측에 17연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17연대 정면에 위치한 735고지는 일명 ‘김일성 고지’로도 불리웠고 피아간 상대방을 견제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따라서 쌍방이 이 고지를 점령확보하기 위해 수차에 걸쳐 뺐고 뺐기는 공방전이 전개 되었다. 2사단장 함병선 준장은 8월3일에는 사단유격대대와 17연대 1대대로 하여금 735고지를 공격, 탈취하였으나 적의 역습으로 후퇴하는 등 수 차례에 걸친 탈환전이 되풀이 되었다. 1951년 8월8일 17연대가 이 고지를 확보하자 사단 예비연대였던 32연대와 전선방어 임무를 교체하였다. 32연대는 예하 7중대를 735고지에 배치하고 그 후방 약 2km 지점에 735고지를 바라볼 수 있는 785고지정상에 2대대OP(관측소 또는 지휘소)를 설치하였다. 7중대장은 대대관측장교 윤영목 중위(현재 미국 오레곤 6.25참전 유공자 회장)와 육군종합학교 9기 동기생인 김영국 중위였고 그의 직속상관은 2대대장인 박동석 소령이었다. 최전방 요충지 735고지에는 윤중위의 후배관측장교인 이소위가 관측병, 통신병, 연락병 3명과 함께 7중대장을 위한 관측 및 포병지원임무를 맡고 있었다. 김영국 중위는 평소 친밀했던 군 동기인 관계로 수시로 윤중위에게 포지원을 잘해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참고로 당시 2사단에는 105mm 곡사포 1개대대라는 미약한 화력지원력이 전부였다. 1951년 9월, 32연대 7중대가 735고지 방어임무를 맡고 있던 중 9월1일 밤 20:30시경부터 중공군 80사단 239연대가 대대적인 기습공격을 가해왔다. 735고지에 배치된 포병관측장교 이소위는 즉시 긴박한 상황을 보고하고 동시에 포병지원사격을 요청해와 735고지 능선 넘어에서 공격해 오는 중공군에 고사계 사격으로 저지 및 선멸을 시도하였다. 동시에 적군 상공에 조명탄을 계속 발사하여 아군의 적정관찰과 방어사격을 용이하게 하였다. 그러나 적군은 극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방어하는 7중대의 6배가량 되는 2개대대 병력의 절대다수 인해전술로 물밀듯 중대경계초소와 소대방어선을 강타하며 735고지 정상을 향하여 공격해왔다. 적이 아군 주진지에 접근함에 따라 포병의 화력지원은 아군 피해를 우려해 점점 어려워졌다. 7중대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포병관측장교의 유선망도 단절돼 무전기로만 교신했다. 윤중위는 대대OP에서 보병대대장 박소령과 긴밀한 보·포협동을 유지하면서 계속 포병대대본부에 전황을 보고하여 화력지원을 요청했다. 얼마 후 735고지에 이소위와 함께 있던 관측병이 무전으로 “이소위님이 쓰러졌습니다. 적군이 중대OP 부근까지 접근해 왔으며 이 상황에서 도저히 포병 지원 임무를 수행할 수 없으니 일단 대대OP로 철수해야 되겠습니다.”라고 보고해 왔다. 사실상 적과 밀집된 이 시점에서 조명탄 이외의 포격지원이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상황을 즉시 포병대대본부에 보고하고 7중대 관측장교 이소위의 철수를 통보하였다. 약 1시간 후인 23:30시경에 이소위가 관측병 등에 업힌 채 통신병, 연락병과 함께 윤중위가 있는 대대OP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 당시 이소위는 완전히 실신 상태였으며 다행히 상처는 없기에 나의 야전 천막속에 눕히고 안정을 되찾도록 하였다. 7중대의 전방 관측반이 735고지에서 철수한 후부터 포병지원 임무는 전적으로 대대 관측장교인 윤 중위가가 맡게 되었고 보병대대 OP에서 대대장과 긴밀한 협조하에 모든 포병사격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하루가 지난 9월2일 자정이 넘어서도 전투는 계속됐고 01:00시경에는 735고지 도처에서 백병전이 감행되었으며 적군은 7중대 OP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김영국 중대장은 시시각각으로 대대장에게 중대의 위급상황을 보고하였으며 대대장은 수차에 걸쳐 중대장에게 “후퇴하지 말고 결코 사수하라”고 지시하였다. 그 후 01:30시경에 김영국 중대장으로부터 “적이 735고지 중대OP까지 침투했고 중대 잔여병력이 분산되었으니 이제는 아군 피해를 염려 말고 735고지 정상에 진내사격을 가해 적군을 저지해 달라”는 최후의 요청이 들어왔다. 이후 김영국 중대장과 그의 통신병과의 통신은 두절되고 02:00시경에는 쌍방의 총포성이 완전히 멈췄다. 그 후에 닥쳐온 정적,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야릇한 고요함이 공포로 밀려왔다. 이로써 735고지는 적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일부잔여 7중대원은 고지 각처에 은거하고 있었다. ■ 7중대의 원한을 갚은 6중대의 735고지 탈환전 그런데 적은 735고지를 점령한 후 새병력을 투입해서 대대OP(관측소)를 향해 계속 공격해 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2사단에서는 735고지 재탈환작전을 계획하고 역습부대로 32연대 6중대를 선정해 다음날 9월2일 06:00시에 제6중대 병력을 735고지 산기슭에 배치하고 공격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이때 대대OP에는 제2사단장 함병선 준장이 참모진과 미고문관을 대동하고 6중대 탈환전을 지휘하기 위해 도착했다. 6중대의 공격개시에 앞서 사전에 준비된 작전계획에 따라 공격준비사격으로 미군 함제 전폭기의 735고지 폭격이 시작되었다. 대대관측장교 윤 중위는 이 전폭기들을 위해 WP(백린)탄을 735고지 정상에 발사해서 목표확인을 도와주었다. 전폭기 4대 편대가 계속 교대로 날아와 고지에 새로 구축한 적의 방어진을 강타했다. 약 30분간 계속된 폭격이 끝난 다음 제2사단을 지원하는 18포병대대는 물론 인접 미9군단 예하의 8인치와 240mm 대형 장거리포까지 동원하여 포사격이 계속되었다. 공중에서의 폭격과 지상에서의 집중포격으로 735고지는 완전히 초토화 되었다. 이로 인해 지도상의 735m고지가 1m낮아진 734m고지로 부르게 되고 후일 일부 전사에도 734고지로 기록하게 되었다. 06:00시 포격이 멈추자 6중대는 일제히 735고지를 향해서 공격을 개시했다. 중대가 고지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 아군의 폭격과 포격을 피해 참호속에 피신해 있던 생존 중공군이 일제히 밖으로 나타나 소총,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반격을 가해왔다. 6중대의 공격은 일진일퇴를 거듭했으며 그 중간중간에 정밀포격지원으로 적의 반항을 약화시켰다. 6중대는 약4시간에 걸친 격전 끝에 735고지 부근에 산재해 있던 7중대원들과 합세하여 10:00시경 드디어 735고지를 탈환하였다.(하편 계속)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03-2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79)] 성공의 비결 3가지는 자기일에 정통,·미리 계획하고 행동,·항상 새로운 것을 제시(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84년 사단 사령부에 전산실이 새롭게 설치되었다. 그곳은 기온에 민감한 컴퓨터들이 있어 여름에는 에어컨으로 시원하고 겨울에는 난방이 잘되어 환경은 좋았지만 출입제한 구역이었다. 그래도 작전장교는 확인 방문이 허용되어 가끔 들려 차를 한 잔씩 했다. 전산실에서 전산 장교로부터 장비들과 업무 및 기능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생도시절 전산을 배울 때 키펀치 카드로 컴퓨터 언어를 구사했던 기억들이 새록 새록 떠올랐다. ■ 콜럼버스 달걀 같은 ‘장애물 및 장벽 전산화’로 창의성있는 전투준비 인정받아 '식소사번(食少事煩)'은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많다'는 뜻으로 제갈공명이 위나라 명장 사마의와 대치하고 있을 때 나온 사자성어이다. 사단 작전장교의 업무 중에 가장 실속없이 바쁜 것은 군단 및 군사령부에서 요구하는 현황 파악 보고였다.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수기로 작성되어 병력・장비・물자・진지・장애물 등의 현황이 매번 파악할 때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가장 급한 것은 전투지휘검열을 앞두고 정확한 현황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우선, 지뢰지대, 낙석, 도로대화구 등 장애물 현황을 정확히 유지하도록 고민을 하던 중에 전산실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전산장교와 상의를 했더니 전산화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비문인 장애물이력카드를 전산장교에게 건네면서 장애물 번호, 장애물 위치와 종류, 갯수 및 담당부대 등의 순으로 입력하도록 협조했다. 일주일 동안의 작업이 끝나자 전산 출력지에 장애물의 모든 현황이 입력되어 책 한권이 되었다. 이를 바로 비문으로 등재하고 전투지휘검열 시에 장려사항으로 제시하기로 했다. 전투지휘검열이 시작되자 하루 동안의 행정 검열에 이어 예하부대 별로 개인 및 공용화기 사격 측정, 그리고 비상 발령되어 부대 전체가 출동 준비를 하고 진지에 배치되었다. 사단장과 참모들이 소속된 사령부는 부여된 상황에 따라 진지 변환 및 예비 지휘소로 이동하면서 전술적 상황조치와 지휘부의 지휘절차 역량을 평가 받았다. 평가 결과 군단장 방문 시 부대 지휘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주요 현장 사진 위주로 꾸며진 새로운 방식의 보고서와 함께 1984년 당시에는 콜럼버스 달걀처럼 군 역사상 최초였던 ‘장애물 및 장벽 전산화’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창의적으로 전투준비를 한 사단장의 지휘역량이 돋보이며 검열 분위기가 칭찬 위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송영근 장군(육사27기)이 강조했던 성공하는 비결인 “첫째, 자기일에 정통하라. 둘째, 미리 계획하고 행동하라. 셋째, 항상 새로운 것을 제시하라”는 세 가지가 적용됐을 뿐만 아니라, 손자병법에 제시된 장수의 덕목과 자질인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을 실천한 김관진 작전참모(육사28기)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멋진 전투지휘검열 수검이었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3-26
  • 삼성SDS, 미래성장 동력으로‘클라우드, 물류, 보안’선정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삼성SDS가 클라우드, 물류, 보안을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정했다. 삼성SDS는 황성우 대표이사가 26일 임직원 대상 메일에서“클라우드, 물류, 보안 분야에 회사의 역량을 모으자”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삼성SDS는 세상에 꼭 필요하면서도 진입장벽이 높은 미래 사업의 단초를 가진 회사”라며“글로벌 대표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인재와 기술력 확보에 더욱 매진하자”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먼저 삼성SDS가 진정한 클라우드 회사로 거듭날 때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고객 접점에서 쌓아 온 업종 전문성과 DX(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역량, ABD(인공지능·블록체인·데이터 분석) 신기술, 스마트팩토리와 같은 솔루션 등 IT서비스 전 분야에서 클라우드 기술 기반으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삼성SDS가 보유한 클라우드 기반 솔루션(SaaS)의 사업모델을 강화하여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 가자고 했다. 보안 사업은 그 동안 고객사 보안을 지켜온 기술력과 인적 역량을 바탕으로 사업을 더 확대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보안은 클라우드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어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이다. 물류 사업은 가시성 높은 글로벌 물류 경쟁력 강화를 위해 IT 신기술 기반의 물류 플랫폼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자고 강조했다. 삼성SDS는 현재 첼로 스퀘어(Cello Square)란 물류플랫폼을 확보하고 있다. 황 대표는 “삼성SDS의 사업은 가야 할 길이 분명하다”며, “기술과 전문성으로 회사를 강인하게 만드는 선명한 여정을 함께 하자”는 당부로 마무리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3-26
  • 국방부 고위직과 중장급 이상 장성 평균재산 11억원대…지난해보다 7.9% 증가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국방부 등의 고위직 공무원과 육·해·공군 중장급 이상 장성의 평균 재산이 지난해보다 7.9% 증가한 11억원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관보에 게재된 공직자 재산 변동 현황에 따르면 국방부, 방위사업청, 병무청, 국가보훈처 고위직 공무원과 합동참모본부, 육·해·공군, 해병대의 중장급 이상 장성 46명의 평균 재산은 11억2792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평균은 10억4553만원이었다. 이들의 재산은 대체로 부동산과 예금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다만 최근 투기 의혹이 불거진 3기 신도시 등지에 토지를 보유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총 46명 가운데 36명은 지난 1년 동안 재산이 늘었고, 10명은 줄었다.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이 가장 많이 늘어 5억4천795만원 증가한 6억4926만원을 신고했다. 강 청장은 경기도 과천시 과천지식정보타운 공공주택지구 르센토 데시앙 건물(107.87㎡)의 청약 당첨에 따른 분양권(2억8389만원) 취득과 저축 증가 등으로 재산이 증가했다. 다음은 서욱 국방부 장관으로 작년보다 4억4828만원이 증가한 8억489만원을 신고했다. 서 장관은 월급 저축과 퇴직수당 수령, 홍은동 아파트 매도대금으로 채무 상환 후 잔금 저축 등 늘어난 예금 재산이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은 정진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장으로 43억1254만원이었다. 이어 박정환 합참 작전본부장(25억9076만원), 이창희 국방기술품질원장(20억5794만원), 조복연 병무청 차장(18억4114만원), 모종화 병무청장(18억3174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원인철 합참의장은 17억4717만원으로 일곱 번째로 재산이 많았고, 각 군 참모총장은 남영신 육군총장(17억6986만원), 부석종 해군총장(10억6254만원), 이성용 공군총장(10억4990만원) 순이었다.
    • 현역군인
    • 종합
    2021-03-26
  • SK텔레콤-서울경찰청, 보이스피싱 범죄예방 ‘번호차단 서비스’ 제공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SK텔레콤과 서울경찰청은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범죄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보이스피싱 번호차단 서비스' 민관 협력 MOU를 체결했다. 보이스피싱 번호차단 서비스는 경찰에 피해신고가 접수된 보이스피싱 번호를 서울경찰청이 SK텔레콤에 공유하면, SK텔레콤이 최근 개발한 보이스피싱 번호차단 시스템에서 해당 번호를 고객이 전화를 받거나 걸 수 없도록 차단한다. 보이스피싱 의심 전화를 받거나 낯선 문자메시지를 받은 후 경찰에 해당 번호를 신고하면, SK텔레콤과 서울경찰청이 보이스피싱 번호를 확인해 전화를 차단하게 되는 구조다. 지난 2월부터 시범운영해 500여개 보이스피싱 의심번호를 차단하는 성과를 거뒀다. SK텔레콤은 서울경찰청과의 협력에 앞서 국내 유일의 금융권 보안전문기관인 금융보안원과 공동으로 보이스피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20년 4월 MOU를 체결한 후, 지난 2월부터 본격적인 보이스피싱 번호차단 시스템도 가동 중이다. SK텔레콤이 금융보안원과 협의를 통해 차단하는 보이스피싱 번호는 금융기관을 사칭해 피해자 휴대폰에 악성 앱을 설치한 뒤, 금융기관 전화 연결을 가로채 범죄를 저지를 때 사용되는 번호다. SK텔레콤과 금융보안원은 현재까지 약 60여 개의 번호에 대해 940여 건의 전화를 차단했다. SK텔레콤은 딥러닝 기반의 지능형 차단시스템을 도입해 스팸 및 스미싱 문자에 대응하고 있으며, 다중 스팸필터링 시스템도 적용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또한 T전화에 스팸이나 보이스피싱 신고가 많은 전화를 자동으로 차단해주는 안심통화와 안심차단 기능과 함께 안심벨소리 기능을 통해 스팸전화와 보이스피싱 전화를 미리 알려주고, 고위험 번호로 오는 전화에 대해 자동으로 통화를 녹음해 주는 안심녹음 기능을 제공하는 등 고객의 금융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뿐만 아니라 스팸과 스미싱 문자로 인한 고객 피해를 막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며 "사회적 난제를 민관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ESG경영을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3-25
  • 마크베이스, 국제 사물인터넷 평가 신기록 수립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마크베이스가 국제 공인인증기관 TPC의 사물인터넷(IoT) 평가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마크베이스는 자사의 시계열 데이터베이스(TSDB)가 국제 공인인증기관 TPC(Transaction Processing Performance Council) 사물인터넷 평가에서 신기록을 수립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회사는 TPC의 TPCx-IoT 지표에서 초당 340만건의 데이터 처리 속도로 종전 최고 기록인 248만건보다 약 40% 빠른 기록을 세웠다. 161만 IoTps를 기록하고 있는 2위 업체와는 두 배 이상 격차가 난다는게 회사 설명이다. TPC는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글로벌 기업 20여곳이 기반 소프트웨어(SW)와 장비 성능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비영리 기구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TTA가 멤버로 참여해 국산 SW의 표준 등재 및 평가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업계 유일의 국제 공인 벤치마크로, 마크베이스는 이번 신기록을 포함해 TPCx-IoT 지표가 만들어진 이래 처음으로 4년 연속 1위를 달성했다. TPCx-IoT는 사물인터넷이 생성하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속도와 안정성을 평가하는 지표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주관한 이번 테스트는 지난해에 이어 AMD의 제안으로 추진됐다. AMD가 최근 공개한 Zen 3 아키텍처 기반 CPU와 마크베이스 6.5 버전을 결합해 성능을 측정했다. 김성진 마크베이스 대표는 “이번 테스트는 자사의 기존 성적을 갱신한 것이지만, 마크베이스 TSDB의 지속적 성장에 대한 신뢰를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산 시스템 소프트웨어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기술 혁신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3-25
  • 타이거컴퍼니, 업무용 협업툴 ‘티그리스’ 출시 10주년 고객 이벤트 개최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타이거컴퍼니는 자사의 업무용 올인원 협업툴 ‘티그리스’ 서비스 출시 10주년을 맞아 고객 대상 이벤트를 실시한다고 25일 밝혔다. 티그리스는 국내에 SNS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11년 출시한 이후 300개 이상의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이용중이다. 누적 유료 사용자는 10만명을 넘는다. 티그리스는 웹과 모바일에서 동시에 업무를 진행할 수 있고 △게시물 공유 △일정 관리 △메신저 △화상 회의 등 협업툴 기능은 물론 △이메일 △전자 결재 △인사·근태 관리 연동과 무제한 용량을 제공한다. 이밖에도 회계관리 서비스 ‘뉴젠케이랩’, 고객관계관리(CRM) 서비스 ‘세일즈포인트’의 기능을 연동해 폭넓은 업무 영역을 제공한다. 김범진 타이거컴퍼니 대표는 “국내 최초로 협업툴 시장을 개척한 것에 구성원 모두가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티그리스가 10년간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용자의 관심과 무엇보다 구성원의 노력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며 “앞으로 단순한 협업툴을 넘어 기업별 최적의 업무 환경을 제공하고, 나아가 종합 워크 플랫폼으로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3-25
  • 시큐아이, 2021년 파트너스데이 행사 개최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정보보안 전문기업 시큐아이(대표 황기영, 삼성SDS 자회사)는 지난 24일 국내 파트너사를 대상으로‘2021년 파트너스데이’를 개최했다고 25일 밝혔다. 시큐아이는 지난 13년부터 사업계획을 파트너사와 공유하고, 최고의 실적을 거둔 우수 파트너사에게 시상을 하는 파트너스데이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대신정보통신, 아이티윈, 에스피정보기술, 엔에스솔루션, 한결피아이에프, 인스테크 등 6개사가 최우수 파트너사로 선정되었다. 황기영 시큐아이 대표이사는“어려운 여건에서도 시큐아이와 함께 성장한 파트너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시상식을 진행했다”며 “앞으로도 파트너사와 소통하며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21-03-2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78)] 성공의 비결 3가지는 자기일에 정통,·미리 계획하고 행동,·항상 새로운 것을 제시.(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성공한 인물들에게는 항상 훌륭한 스승과 탁월한 참모가 있었다. 그들의 조언과 질책이 있었기에 소수의 엘리트들이 역사를 바꿀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삶을 주면서 사회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직업군인도 마찬가지이다. 모시던 상관의 조언과 꾸지람이 더 훌륭한 후배를 양성하게 만든다. 기무사령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송영근 장군(육사27기)은 부하 및 후배들에게 항상 다음과 같이 세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자기일에 정통하라. 둘째, 미리 계획하고 행동하라. 셋째, 항상 새로운 것을 제시하라. ■ 연락이 두절된 작전장교의 행방은 춘천 공지천 뱃놀이… 사단장 재임기간 중 가장 중요한 업무는 단연코 전투지휘검열로 사단장 재임기간 중에 딱 한번 계획되어 있고 사단장의 지휘역량과 성과를 평가받는 검열이다. 게다가 전투지휘검열 수검 준비와 병행해서 군단장의 방문이 계획되어 있어 작전참모 지침에 따라 부대 지휘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주요 현장 사진을 위주로 꾸며진 새로운 방식의 보고서를 준비했다. 당시 전방부대에는 진지공사가 한창이었고 각 연대로부터 구축한 진지, 새롭게 설치한 낙석 장애물, 화목으로 제작한 조명목, 전투준비 시간 단축을 위한 보조물과 기동로 개설 등의 사진들을 모아서 보고서에 붙였다. 특히 진지 앞에 우거진 녹음을 제거하는 사계청소가 관심 사항이었다. 필자는 대성산 북쪽 방향에 편성된 진지 앞 사계청소 실태를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사진 인화 설비가 없는 전방부대이다 보니 사진을 인화하려면 춘천시로 가야 했다. 토요일 아침에 필름을 들고 춘천을 가면서 가족과 같이 동행했다. 버스안에서 두손을 꼭잡은 가족과 결혼 후 모처럼 허가된(?) 여행을 떠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인화하는 동안에 점심을 먹고 공지천에서 뱃놀이도 즐겼다. 저녁 무렵 준비한 사진들을 들고 부대로 복귀했는데, 선배 작전장교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오후에 갑자기 보고서를 점검하겠다는 사단장(민찬기 소장, 육사16기)의 호출이 있었고 참모는 사진 준비를 확인하고 필자에게 연락해 빨리 복귀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나 당시에 핸드폰도 없는 상황에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급해진 참모(김관진 중령, 육사28기)는 사진 자리에 박스만 그려 놓고 그대로 사단장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필자는 늦게 복귀한 것에 대해 질책을 받을 각오를 하고 초주검 상태가 되어 인화해 온 사진을 들고 참모실로 향했다. 그런데 인접 장교들에게 호통을 치면서 화를 냈었다는 참모의 표정은 온데 간데 없고 그냥 사진들을 보면서 “잘 찍었네. 앵글도 좋고… 수고 했다. 내일 아침에 사진을 부착하여 제대로 된 보고서를 공관으로 넣어 드리자”라고 편안하게 필자를 대해주셨다. 손자가 “지식(智)이 있어야 전략을 수립할 수 있고, 신의(信)가 있어야 상벌을 공정히 할 수 있으며, 인애(仁)가 있어야 부하를 사랑할 수 있고, 용기(勇)가 있어야 싸울 수 있으며, 위엄(嚴)을 갖추어야 장수의 위치에 임할 수 있다”라고 병법에 제시한 장수의 덕목과 자질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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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5
  • [김희철의 전쟁사(43)] ‘벨기에군의 용맹성을 과시한 학당리 전투(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벨기에 북부 작은 마을 틸렌에 벨기에 육군 제3공수대대 병영 막사 건물이 있다. 정식 이름은 '제3공수대대, 피에르 가일리 부대'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가일리 대위는 1953년 중공군과의 잣골 전투에서 전사했다. 부대 중앙 연병장 옆 아담한 단층 건물이 ‘한국전쟁 기념박물관’이다. 한국전 참전 부대였던 제3공수대대와 참전 용사들의 오랜 노력으로 만들어진 역사의 현장이다. 아래 사진 속의 할아버지는 참전 용사 코르넬리 페이트(84)씨이다. 평생을 군에서 보내고 은퇴 이후에도 한국전 기념관을 위해 헌신해온 그에게 기념관을 소개하는 일은 필생의 과업이자 즐거운 봉사이다. ■ 벨기에 참전용사들의 한국사랑, 작은 마을에 '한국전쟁 기념박물관' 세워 1950년 당시 군사학교를 거쳐 군복무 중이던 페이트씨는 한국전쟁 참전 병사 모집 공고를 보자마자 참전을 결심했다. 참전 당시 하사였던 페이트씨는 벨룩스 대대(벨기에 대대에 룩셈부르크가 소대 병력으로 합류) 구성 초기부터 참여했다. 벨룩스 대대는 약 3개월간의 훈련을 마친 후 1950년 12월 18일 벨기에 앙베르 항에서 영국 수송선 카미나호를 타고 한국으로 향했다. 카미나호에는 당시 22살이던 페이트 하사도 타고 있었다. 페이트 씨는 필리핀 마닐라, 일본 사세보를 거쳐 1월 31일 부산항에 들어왔다. 그는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이후까지 남아 남방한계선 진지 구축 공사 등에 참여한 후 그해 9월 4일 귀국할 때까지 거의 만 3년을 한국전쟁에 복무했다. ■ 참전 용사 코르넬리 페이트, 벨기에군의 임진강・학당리・잣골 전투에 모두 참여 참전 용사 코르넬리 페이트는 기념관에 전시된 지도와 전투 지형 모형 앞에서 벨룩스 대대의 전과를 자랑스럽게 설명하며 특히 함께 싸웠던 영국군과 미군에 뒤지지 않는 벨기에군의 용맹성을 강조했다. 기념관 가운데에 놓인 패널에는 매일 매일 산 자와 죽은 자의 숫자가 표시된다. 단 한국전 참전 벨기에 병사의 총 인원은 3171명, 전사자 106명으로 이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귀국 후 죽은 전우와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수는 수시로 바뀐다. 아직 살아 있는 전우는 1075명. 사망자 비율은 66.1%. 참전 용사 대부분이 이제는 70대 후반이나 80대여서 생존자 숫자는 더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1985년 근 40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페이트씨는 1990년 옛 전우들과 함께 ‘한국전 기념관’을 만들었다. 자신들의 청춘을 바친 한국전쟁이 잊혀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한 페이트씨와 동료들은 제3공수대대의 도움으로 아담한 전시실을 마련하고 손수 전시물품을 채웠다. 그들은 옛 전우들로부터 한국전쟁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영국군 및 미군 측 자료도 구해 전시관을 꾸몄다. 페이트씨는 "처음 시작할 때는 보잘것없었지만 이후 조금씩 더 나아졌다. 처음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국전 기념관 전시실 입구에는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가일리 부대에 들어오면 한국전쟁은 결코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기념관에서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와 전쟁 직후의 한국을 기억하는 페이트씨에게 한국의 발전은 경이와 보람이다. 그는 "3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많은 한국인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준 데 대해 고마워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 인생을 이보다 더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페이트씨에게 6・25남침전쟁은 '잊혀지지 않은 전쟁'이다. 지구 반대편의 참전용사들도 잊지 않는데, 하물며 전쟁 당사자인 우리 국민들은 ‘6・25남침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 최악의 비극을 반드시 기억하고 되풀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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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대를 말한다
    202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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