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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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2천800t급 신형 호위함 '서울함' 진수
    ▲ 2천800t급 해군 신형 호위함인 서울함(FFG-Ⅱ)의 일반 제원. [사진제공=해군] 전술함대지유도탄·선체고정음탐기 등 탑재…2021년 해군 인도 [시큐리티팩트=이원갑 기자] 2천800t급 해군 신형 호위함인 서울함(FFG-Ⅱ)의 진수식이 해군창설기념일인 11일 오후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열린다. 서울함은 해군에서 운용 중인 노후 호위함과 초계함을 대체하는 울산급 배치(Batch)-Ⅱ사업의 3번 함이다. 2020년대 초까지 배치-Ⅱ급 신형 호위함은 계속 건조될 계획이다. 배치는 동형 함정을 건조하는 묶음 단위를 의미하며, 건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함정에 최신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해군은 이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2천800t급인 서울함은 길이 122m, 폭 14m, 높이 35m에 5인치 함포와 근접방어무기체계, 함대함유도탄, 전술함대지유도탄 등으로 무장했고 해상작전 헬기 1대도 탑재할 수 있다. 사거리 150㎞ 이상의 전술함대지유도탄은 함정에서 적 연안과 지상의 표적을 타격하는 무기체계로, 장갑 차량을 관통할 수 있는 자탄 수백 개가 분산돼 폭발하면서 축구장 2개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다. 아울러 인천급 호위함과 비교해 대잠수함전 능력도 보강됐다. 선체고정식음탐기(HMS)와 성능이 향상된 예인형 선배열음탐기(TASS)가 탑재됐고, 가스터빈과 추진 전동기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기계·전기식) 추진 체계가 사용돼 수중 방사 소음이 감소했다. 서울함이 군함의 함명으로 사용된 것은 이번이 4번째다. 해군은 해군 전력 발전을 위한 우리 군의 노력이 해방 이후부터 이어져 온 서울함에 녹아있다는 상징성을 고려해 함명을 서울함으로 명명했다. 서울특별시 명칭을 함명으로 처음 사용한 함정은 해방 이후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안경비대에서 1946년 미국 해군으로부터 인수한 서울정이다. 서울정은 우리 해군이 함대 세력표(Fleet List)에 등록한 최초의 군함이다. 이후 서울함은 해군이 처음으로 도입했던 구축함(DD) 2번 함의 함명으로 활용됐다. 서울함(DD-912)은 1968년 미국에서 인수돼 1982년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서울함 명칭은 1984년 국내에서 건조된 울산급 호위함(FF) 2번함에서 다시 사용됐다. 해당 서울함(FF-952)은 2015년까지 활약하다 퇴역해 현재 '서울함 공원'으로 활용 중이다. 서울함(FFG-Ⅱ)은 시운전평가 기간을 거쳐 2021년 초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며, 이후 전력화 과정을 마치고 실전 배치된다. 이날 진수식에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심승섭 해군참모총장, 강은호 방위사업청 기반전력사업본부장,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등이 참석한다. 역대 서울함 함장과 서울시 관계자도 참석한다. 진수식은 사업 경과보고, 함명 선포, 한 대표이사 기념사, 정 장관 축사, 진수 및 안전항해 기원 의식 순서로 진행된다. 진수 의식은 해군 관습에 따라 주빈인 정경두 국방부장관의 부인 김영숙 여사가 진수도끼로 함정에 연결된 진수줄을 절단한다. 이는 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끊듯 새로 건조한 함정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다. 이어 정경두 국방부장관 내외가 가위로 오색테이프를 절단해 샴페인을 선체에 깨뜨리는 안전항해 기원의식이 진행된다.
    • 방위산업
    • 국내방산
    2019-11-11
  • 한화디펜스 ‘레드백’ 장갑차, 정부와 손잡고 호주 12조 시장 굳힌다
    ▲ 지난달 16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19)에서 호주 수출을 추진 중인 미래형 장갑차 '레드백(REDBACK)'이 전시돼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업체 노력 결실 맺어 최종 2개 후보 선정 1년 간 시험평가 후 업체 결정...정부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 필요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한화디펜스가 호주 수출용으로 개발 중인 ‘레드백’ 장갑차가 지난 9월 최종 2개 후보로 선정된데 이어, 사업 수주까지 자체 시험 및 현지 시험평가 등을 남겨두고 있어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화디펜스는 지난 9월 16일 호주 육군이 추진 중인 차기 장갑차 획득사업인 ‘LAND 400 Phase 3’의 최종 2개 후보(Short list)에 선정됐다. LAND 400 사업은 현재 호주 육군이 사용 중인 688대의 장갑차를 교체하는 사업으로 이 가운데 Phase 2는 차륜형 장갑차를, Phase 3는 궤도형 장갑차를 구매하는 사업이다. ‘LAND 400 Phase 3’는 1967년 미국에서 도입해 사용 중인 M113A1을 대체하는 궤도형 장갑차 획득 사업으로 보병전투장갑차 및 계열차량 8종을 포함해 총 400대의 장비 구매에만 5조원이 투입된다. 이 밖에 장갑차의 호주 국내생산 및 후속군수지원까지 포함하면 총 사업비는 8조~12조 원에 이른다. 호주 방사청은 지난 2018년 8월 ‘LAND 400 Phase 3’ 사업의 제안요청서(RFP)를 공고했고 미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장갑차 생산업체들이 뛰어들었다. 금년 3월 제안서가 제출됐는데, 미국 BAE 시스템스의 CV9030, 영국 제너럴다이나믹스의 AJAX, 독일 라인메탈의 Lynx KF41 등이 한화디펜스의 경쟁 상대였다. BAE 시스템스의 CV9030의 경우 후보군 가운데 가장 많은 1200여 대가 생산됐고, 실전 경험은 물론 유럽 5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제너럴다이나믹스의 AJAX는 영국 육군의 차기 궤도형 장갑차로 선정돼 580여 대가 도입될 예정이다. 라인메탈은 이미 Phase 2 사업을 따내 호주 육군에 잘 알려진 상태였다. 반면 레드백은 아직 개발 중인 상황이었다. 한화디펜스는 제안서 평가과정에서 경영진의 적극적 자세와 성실한 대응으로 호주군의 신뢰를 얻었다. 또 대규모 투자로 시제 4대를 제작하고 방호 솔루션도 개발했으며, 호주 포탑 제조사를 파트너로 선정하는 등 현지화 계획도 제출했다. 이 과정에 정부는 제안서 평가단 및 호주 주요 의사결정권자 방한 시 각종 행사 및 장비 대여와 함께 시험평가 참관을 지원했고, 방사청에 국제협력관을 신설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지원했다. 이런 정부와 업체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 한화디펜스의 레드백은 라인메탈의 Lynx와 함께 최종 2개 후보로 선정됐다. 레드백(REDBACK)이라는 이름은 호주 지역에 서식하며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을 가진 거미로 알려진 붉은배과부거미(redback spider)에서 따왔다. 호주 수출에 초점을 맞춰 호주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이름을 정한 것이다. 레드백 장갑차는 육군에서 검증된 K21 보병전투장갑차 개발 기술과 K9 자주포의 파워팩을 적용해 기동력, 방호력, 화력의 성능을 강화한 차세대 궤도형 장갑차다. 30mm 포탑, 대전차 유도미사일, 상황인식장치, 능동방호체계를 갖춰 근접전투능력을 획기적으로 보강했다. 또 향후 성능개량 및 확장성도 보장되며 고장 예방 진단장치도 구비해 운용 및 정비 능력을 높였다. 유럽 최강국인 독일의 대표적 방산업체 ‘라인메탈’ 누르나 성사되면 역대 최대 방산 수출...향후 확대될 시장 규모 상당 하지만 최종 경쟁 상대인 라인메탈은 독일을 대표하는 방산업체로서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특히 지난 2018년 3월 차륜형 장갑차를 도입하는 ‘LAND 400 Phase 2’ 사업을 수주했다. 1995년 도입된 ASLAV 차륜형 장갑차 257대를 대체하는 사업인데, Boxer 211대를 납품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호주 전역에 생산 및 후속 군수지원을 위한 공급망도 구축 중이다. 한화디펜스도 정부와 함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한화디펜스는 호주 포탑 제조사인 EOS사와 ‘팀 한화(Team Hanwha)’를 구성해 사업에 참가 중이며, 올해 1월 호주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현지 전문인력 채용 등 사업 수주를 위해 대대적인 현지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또 빅토리아 주정부와 협력해 현지 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등 호주 정부 최대 관심사인 자주국방에 기여하는 현지화 전략에 나서고 있다. 한화디펜스 안병철 유럽·호주사업부장(상무)은 지난 6일 한국방위산업진흥회와 국회 안규백 국방위원장 주관으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방위산업 세미나에서 레드백 호주 수출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 정부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면서 향후 시험평가와 최종 수주를 위해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 활동을 요청했다. 호주 방사청은 최종 후보에 오른 한화디펜스와 라인메탈의 장갑차를 가지고 2020년 11월부터 약 1년 동안 호주 현지에서 각종 시험평가를 벌일 예정이며, 2022∼23년 장갑차를 최종 선정하고 업체와 계약할 계획이다. 현재 라인메탈이 Phase 2 사업을 추진하면서 호주와 약간의 잡음도 생겼다는 얘기가 있어 우리 정부가 한화디펜스와 함께 적극 노력하면 유리한 위치에 설 수도 있을 듯하다. 만일 한화디펜스가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이 사업을 수주할 경우 단일 무기체계 수출 중 역대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토대로 향후 확대될 차세대 장갑차 시장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럽 최강국인 독일의 대표적 방산업체와 경쟁해 승리한다는 의미도 있어 이미 독일을 꺽고 인도네시아 수출에 성공한 잠수함에 이은 두 번째 쾌거로 기록될 전망이다.
    • 방위산업
    • 국내방산
    2019-11-09
  • [단독] 한·미 현안 앞두고 미 육사 출신 표세우 주미 국방무관 소장 진급
    ▲ 지난 4월1일(현지시간) 미 국방부를 방문한 정경두 장관이 섀너핸 장관 대행과 회담하는 자리에 배석한 표세우 주미 국방무관(좌측 세 번째). [사진제공=연합뉴스] 강선영 항공학교장, 여군 첫 소장 진급시켜 항공작전사령관 임명 육사 수석 졸업한 김현종 중장 진급자 국방개혁비서관 계속 맡아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정부가 8일 단행한 하반기 장군인사에서 미국 육사인 웨스트포인트 출신의 표세우 주미 한국대사관 국방무관이 준장에서 소장 진급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주요 현안을 앞두고 미국 국방부 및 육군 내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는 웨스트포인트 출신 인사를 승진시킨 것은 비록 공사급이지만 한·미 관계에 긍정적 신호란 해석을 낳고 있다. 국방무관은 국방부장관을 대리하여 주재국에서 근무하는 군사외교관을 말하며, 주미 국방무관은 지금까지 통상 소장급이 보직돼 왔다. 따라서 준장을 주미 국방무관에 장기간 보직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며, 주재국을 소홀히 여긴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표 소장 진급자는 미국 육사를 졸업한 대한민국 최초의 주미 국방무관으로서 올해 한·미 군 수뇌부 간에 이루어진 각종 회담에 배석해 양국 간 군사외교 현안 조율에도 상당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그의 이번 소장 진급은 양국간 군사외교관계를 보더라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는 진급 후에도 워싱턴에서 계속 국방무관으로 근무할 예정이어서 향후 한·미 군사안보 현안을 풀어나가는데 일익을 담당할 예정이다. 한편, 8일 장군인사에서는 강선영(53·여군 35기) 준장을 여군 최초의 소장으로 진급시켜 육군항공작전사령관에 임명했다. 강 장군은 60항공단장과 11항공단장, 항공작전사령부 참모장에 이어 현재 항공학교장을 맡는 등 육군항공 분야 전문가다. 또 이번 인사에서는 국군심리전단장과 국방정보본부 정보기획과장을 거쳐 현재 수도방위사령부 정보처장인 김주희(53·여군 35기) 대령이 정보병과 최초의 여성 장군이 됐다. 김 준장 진급자의 큰 오빠도 김기철(해사 30기) 해군준장이어서 남매 장군이 탄생했다. 국방부는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우수한 인재 중 강선영(항공), 김주희(정보), 정의숙(간호 28기) 등 여군 3명을 선발해 여성 인력 진출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에서 강창구, 김현종, 박양동, 박정환, 허강수 육군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해 군단장 등에 보임되며, 육사를 수석 졸업한 김현종 중장 진급자는 국방개혁비서관을 계속 맡게 된다. 이밖에 육군 최인수 준장 등 15명과 해군 유근종 준장 등 2명, 공군 이영수 준장 등 4명을 포함한 21명은 소장으로 각각 진급했고, 육군 여인형 대령 등 53명과 해군 구자송 대령 등 13명, 공군 김준호 대령 등 11명을 포함한 77명이 준장으로 승진했다. 국방부는 "특정 분야에 편중되지 않은 능력 위주의 균형 인사를 구현한다는 원칙에 따라, 작년에 이어 박양동, 허강수 중장 진급자 등 비(非)사관학교 출신 중 우수자를 다수 발탁하여 사관학교 출신 편중 현상을 완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맡은 직책에서 마지막까지 묵묵히 성실하게 복무한 인원을 다수 발탁했다"며 "앞으로도 우수자는 출신·성별·특기 구분 없이 중용되도록 공정하고 균형된 인사를 적극 구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현역군인
    2019-11-08
  • 정부와 방산업체, ‘갑을 관계’ 탈피하고 ‘상생 협력’ 모색
    ▲ 지난 6일 한국방위사업진흥회와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이 공동 주최한 방위산업 세미나가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려 토론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김한경 기자] 방진회, ‘함께하는 방위산업의 오늘과 내일’ 주제로 세미나 개최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정부와 방산업체가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함께 협력하자는 의지를 다지면서 내일의 발전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방위사업진흥회(이하 방진회)와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함께하는 방위산업의 오늘과 내일’이란 주제로 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방위산업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정부부처·기관 및 각 군 관계자, 산·학·연 방산 전문가, 업체 임직원 등 4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박재민 차관이 대독한 축사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와 업체 간 상생과 협력 방안을 마련하고 진화하는 국방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기술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방산 관계자 모두가 함께 힘을 모은다면 방산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방진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정인 본부장, “정부와 업체가 방위산업 진흥 바라보는 방향 같아” 이 날 세미나에서 서정인 방진회 본부장은 주제와 관련해 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국방부 장관, 방사청장 등 최고위 정책결정자들의 어록과 사진을 제시하면서 “정부와 업체가 방위산업 진흥을 위해 바라보는 방향이 같다고 느꼈다”며 소회를 말했다. 그는 또 통계를 기반으로 “방위산업 경영 여건이 회복되는 등 방산 생태계가 점차 복원되고 있다”며 “업체 친화적인 환경 조성과 다양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업계(88개사) 설문조사도 65% 이상이 만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방위산업의 내일을 정부와 업체가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지체상금 제도 개선 이전 진행 중인 사업에도 소급 적용하고, 제안서 위주의 디브리핑을 감사 및 시험평가 결과로 확대 적용하는 등 추가로 발전시킬 사항들을 여러 가지 제시했다. 안병철 상무, “정부와 업체 함께 노력해 호주 수출 Short-list 선정” 이어서 안병철 한화디펜스 유럽 호주 사업부장(상무)이 정부와 업체가 함께 노력해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레드백 전투보병장갑차의 호주 수출 추진내용을 설명하면서 그동안 한화디펜스가 개발한 K9 자주포 등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수출에 성공한 다양한 사례들을 발표했다. 이어 안 상무는 “레드백이 미국과 영국을 제치고 독일의 Lynx KF41와 Short-list(최종 선발 후보자 명단)에 선정돼 최종 경쟁을 남겨둔 상황”이라면서 수출 성사를 위해 정부의 지속적 관심과 함께 시험평가 지원 및 마케팅 활동 등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윤창문 과장, “법률 제정, 업체 지원 위한 방사청 정책의 결정체” 마지막 발표자인 윤창문 방사청 정책과장은 ‘방위사업 관련 법률 제·개정 방향’을 주제로 특히 ‘방위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 및 ‘국방과학기술혁신 촉진법’ 제정을 위해 그동안 추진한 상황과 법안의 핵심 내용을 소상히 설명하면서 “법률 제·개정이 그동안 방사청이 추진한 정책과 제도 개선의 결정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안이 통과되면 “업체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자율적 수출가격을 보장하고 수출 절충교역 이행 간 업체 애로사항을 해소할 수 있으며, 부품 국산화 소요를 정부가 창출해 기업의 기술혁신과 안정적 매출을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방 연구개발(R&D)에 협약을 도입하고, 모든 협약은 성실수행인정제도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김일동 국장, 업체 자율 강조하는 방향으로 모든 제도 개선 이루어져”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 김일동 국방부 전력정책관은 “업체 자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모든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정부와 업체가 한 팀이 돼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준 방사청 정책국장도 “정부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져 업계와 의견을 나눌 자세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안영수 산업연구원 방산연구센터장은 “선행연구부터 수출을 검토해 수출 전제로 제품이 개발돼야 한다”면서 “이 경우 수출시장 사전 조사 분석이 정밀해야 한다”고 주문했으며, 김태훈 SBS 기자는 “방위산업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언론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어떤 내용이 기사화되는지 사례를 곁들여 설명했다. 최평규 방진회장, “정부·업계 함께 제도개선 공유하고 발전사항 도출” 업계를 대표해서 최성빈 LIG넥스원 전문위원은 “지체상금 해결을 위해 ‘성실지체인정제도’를 도입하고, 신속한 사업 추진과 R&D 활성화를 위해 소요결정 시점에 국산화 사업임을 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중소업체가 개발한 부품일 경우 방산물자로 지정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정부와 업계가 함께 하기 위한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세미나를 공동 주최한 최평규 방진회장은 “방사청이 위기의 방산 현장을 직접 찾아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신속히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큰 힘이 되고 있다”면서 “오늘 세미나는 방위산업이 내수에서 벗어나 수출 주도로 전환하는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함께 제도개선 사항을 공유하고 내일을 향한 발전사항을 도출하는 자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방위산업
    2019-11-07
  • [김희철의 Crisis M] 모든 위기와 성공은 리더십에서 비롯된다
    ▲ 선영제 전 전쟁기념사업회장(전 육군참모차장, 예비역 중장)이 그동안의 경험과 강의를 통해 정리하여 발간한 ‘리더십이 답이다’책자 [사진=김희철] 육군참모차장 역임한 선영제 예비역 육군중장, '리더십이 답이다'출간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구 물리친 명량해전의 승리는 성공한 리더십" 모든 조직의 위기와 극복은 모두 서로 다른 리더십에서 비롯돼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결실의 계절인 10~11월 광화문과 서초동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이 거리를 메우며 대한민국은 분열되고 있다. 이것은 국가 리더십의 부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전 육군참모차장과 전쟁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한 선영제 예비역 육군 중장은 “오늘날 리더십은 풍요 속의 빈곤이며 동서고금의 사례와 방법론이 속출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다가온다”며 안타까워 했다. 따라서 본인의 군생활과 전쟁기념사업회장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의 강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리더십이 답이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선 장군은 프롤로그에서 “조직의 성패는 리더십의 성패에 달렸다”며 과거 예로 임진왜란의 국난에서 나라를 구한 것도 이순신장군의 리더십이었다. 특히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랑해전처럼 모든 조직의 성공과 위기의 본질적인 문제는 리더십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리더십이 답이다’라는 책에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가치추구, 진정, 맞춤형, 경영자 팀 리더십으로 제시하며 지금은 변화와 혁신 그리고 창의력이 경쟁력이며 융합과 협업의 시대라고 했다. 특히 리더의 9대 필수 핵심 역량으로 1. 조직관리 2.인간관계 3.소통 및 설득 4.의사결정 5.정보력 6.문제해결 7.갈등 및 분노 조절 8.위기 및 리스크 관리 9.유머 능력이 있다. 이러한 핵심역량을 갖춘 리더들의 특징은 꿈과 목표가 분명하며 성실하면서도 유능하고 좋은 습관을 지니면서도 남의 배려와 친절에 감사할 줄도 알며 경청과 소통에 능하다고 했다. 또한 효과적으로 시간과 인맥 관리를 잘하며 자신감과 적극성, 열정을 갖고 남을 섬길 줄 알고 인내심도 있는데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것 등이다. ▲ 혼돈의 시대에 표출된 광화문 민심과 선영제 전 전쟁기념사업회장이 발간한 리더십 책자 [사진제공=김희철] 저자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뛰어난 지도자가 나오면 국가는 크게 발전했고, 함량 미달 리더십을 구사하는 지도자가 나타나면 쇠락의 길, 사양의 길을 걸었다고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고 했다. 1960년대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는 필리핀과 파키스탄이었다. 당시 필리핀 기술자들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있는 우리나라에 와서 광화문에 있는 정부 청사 일부와 장충체육관을 지어주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건물도 지을 기술도 능력도 없었다. 이러한 필리핀이 불행이도 3대에 걸쳐 능력이 부족한 최고 정치지도자들을 만나면서 추락의 길을 걸었다. 또한 한국은 1963년도에 우리보다 잘사는 파키스탄으로부터 입법, 사법, 행정, 외무고시 제도 등을 벤치마킹하여 만들었을 정도였다. 이처럼 잘살았던 필리핀과 파키스탄의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선영제 장군은 이와같이 리더십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에필로그에서 “리더십 능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지 않으며 꾸준하고 오랜 노력과 성찰이 따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칭기스칸이 “한 사람의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 사회 각 분야의 리더들이 훌륭한 리더십으로 만인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꿈꾸며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리더십 또한 정답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모범 답안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며 성공할 수 있는 모범 답안을 찾아서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길 기대한다는게 선 장군이 내린 결론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CRISIS M
    2019-11-0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6) 삶은 시간의 흐름 속에 선택의 연속……..?
    ▲ 지난 호국훈련 중 공중강습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UH-60 기동헬기 [사진제공=국방부] 啐啄同時(줄탁동시)란 놓쳐서는 안 될 좋은 시기를 선택함을 비유 결혼 날자를 택해 청첩장도 돌렸는데 상급부대훈련이 변경되어 난감한 처지됨 결혼도 B(birth)와 D(death) 사이에 있는 C(choice)인 인생의 선택 중 중요한 하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啐啄同時(줄탁동시)란 병아리 우는 소리를 啐, 깨뜨리는 것을 啄이라 하는데, 어미 닭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순간 주둥이로 탁 쪼아 깨뜨려서 쉽게 나오게 한다는 의미로 놓쳐서는 안 될 좋은 시기를 비유한 사자성어이다. 엄동설한의 추위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따사한 봄이 되어 꽃이 피자 언제 삭풍을 몰아쳤냐고 되물으며 모습을 감추었다. 그 화사한 봄날에 인접 GP장의 여동생을 처음 만났다. 다시 옷깃을 여미는 가을이 되자 그 만남은 열매를 맺어 결혼식을 올리는 날짜를 잡았다. 평범한 시민들은 길일을 찾아 혼인 날짜를 정하지만 군인들은 길일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상급부대 훈련, 검열 등의 고려요소를 참고하여 가능한 날을 선정해야 한다. 필자는 대대교육장교 근무시절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연대 전투단 훈련 겸 평가일과 대대 전슬흔련 평가를 모두 마치고 여유있게 결혼 날짜를 선택했다. . 그러나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에 있는 C(choice)라고 이야기 한다. 선택을 잘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시련을 만나게 된다. ‘군단 동계작전준비 시범’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연대 전투단(RCT)훈련을 받은 뒤에 대대 전술훈련 평가(ATT)가 계획 되어 있었는데 상급부대 일정이 변경되어 연대 전투단(RCT)훈련이 대대 전술훈련 평가(ATT) 시기로 연기되어 뒤로 미루어진 대대훈련평가와 결혼 날짜가 중복 되었다. 결혼식을 한달 앞두고 이미 청첩장을 모두 발송했는데 난감했다. 고민에 말도 못하고 있는데 송영근 대대장이 호출했다. “교육장교, 니 결혼이 상급부대 일정 변경으로 대대 전술훈련 평가(ATT)와 중복되어 고민이지…..?” 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픈 곳을 콕 찌르는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어서 대대장은 “송영근이 육군 중위 한명 없다고 대대 전술훈련 평가(ATT)를 못 받을 것 같으냐?”라며 “개의치 말고 계획대로 결혼하고 휴가까지 충분하게 갔다 와라”하자 필자가 계획하고 협조한 ‘항공정찰과 연막작전’은 누가하냐고 반문했으나 막무가내로 기간에 맞추어 출발하라며 지시임을 강조했다. 대대장실을 나오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본인의 대대장 근무를 평가받는 훈련을 앞두고 부하들을 배려하는 도량에 감동의 연속이었다. 생도시절 훈육관으로 인연도 맺었지만 직속 상관으로 모시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다음주 있는 대대전술훈련 평가 전인 토요일 결혼식을 앞두고 목요일까지 훈련 준비를 한 뒤에 야간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인생에 한번 밖에 없는 결혼식도 소속된 부대훈련평가의 부담을 안고 치루게 되었다. 인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장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다. 최선의 해결방법은 필자 본인이 선택해야 했다. ▲ 필자의 결혼식 사진 [사진제공=김희철] 서울에 도착한 야밤에 처갓집 대문을 두드려 한밤자고 새벽에 다시 고향집에 내려가 부모님께 인사드린 후, 바로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때마침 다른 동기도 결혼 날짜가 중복되어 걱정했는데 성남 행정학교에서 교육받던 동기들이 많이 찾아와 풍성하고 행복한 인생 출발 행사가 되었다. 제주도 신혼여행도 간단히 마치고 월요일 밤에 부대에 도착하니 이미 전부대원은 주둔지 준비태세 평가를 마치고 야외 훈련장으로 나가 부대는 텅 비어 있었다. 복장을 준비하여 다음날 새벽에 훈련장 상황실 텐트에 도착하니 작전장교는 너무도 반가워하며 맞아 주었다. 상황실 텐트애서 필자가 떠드는 소리를 들은 송 대대장이 지휘관 텐트로 호출을 했다. 들어가자 대대장은 화를 내며 본인의 평가를 위해 부하의 인륜지 대사인 결혼을 망치게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게 되어 민망하다며 꾸중을 했지만 입가에 숨은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는 결혼식은 성황리에 잘 끝냈고 제주도 신혼여행도 다녀와서 행사는 잘 치루었다고 말씀드리고 바로 항공 정찰 시간이 되어 사단 항공대로 출발해야 된다며 급하게 대대장 텐트를 빠져나와 짚차에 올랐다. 항공대로 이동하는 짚차의 스치는 바람도 미소 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항공대에는 지금은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O-2기가 있었다. 고정익 항공기를 타고 공격 대기중인 적지역을 정찰하며 집결해 있는 적군의 위치도 파악하고 좌표를 불러주며 화력 요청한 뒤 부대로 복귀했다. 곧 통제관실에서 대항군의 항의를 접수했다고 한다. 항공기가 적군의 상공을 날자 사전 항공기 사용을 협조 안했다며 본인들이 요청 못한 것을 오히려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해 필자가 한달전에 요청한 항공정찰 중 한건을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마루리 했다. 공격간에는 대대원이 도로를 횡단하게 되어 사전에 사단화학대와 협조한 연막통을 도로에 피워 아군의 위치도 기만하면서 은폐 기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정신없이 작전항공장교의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어느덧 대대전술훈련평가(ATT)도 막을 내렸다. 이번 훈련에서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여 꼭 필요한 시기에 항공정찰과 연막을 활용한 것과 대대장의 창의적인 전술 능력이 돋보이는 훈련이었다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장수는 부하의 입장에서 배려하여 지휘해야 한다. 또한 적시에 어미 닭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순간 주둥이로 탁 쪼아 깨뜨려서 쉽게 나오게 한다는 의미의 啐啄同時(줄탁동시)가 선택의 연속인 인생에서 중요한 교훈임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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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6
  • [김희철의 전쟁이야기](13) ‘평양탈환작전’의 영광보다 전략적 실패 분석이 중요
    ▲ 평양입성 직후인 1950년 10월 19일 밀번 미 1군단장에게 평양 탈환 작전을 설명하는 백선엽 국군1사단장(왼쪽)과 10월 29일 오전 11시 평양시청 앞 ‘이승만대통령 평양입성 환영/탈환기념식’ (오른쪽) [사진제공=국방부] 이승만, “평양 만큼은 국군이 먼저”, 평양탈환으로 전술적 승리의 영광 38선 돌파/북진 10여 일 지체와 간접접근 전략구현 미흡으로 전략적 실패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38선 돌파시 맥아더는 북한 진공의 기본구상을 다음과 같이 결정하고 있었다. “1. 제8군으로 서울 북방 지역에서 38선을 돌파, 평양을 향해 진공한다. 2. 제10군단은 인천과 부산에서 승선한 후 원산에 상륙, 미 해병 제1사단은 중국과의 국경으로 북진케 하고, 미 제7사단은 평양 북쪽을 향해 서진케 한다.” 한편 인천상륙작전으로 주력이 붕괴된 북한군은 평양을 지켜낼 수단이 거의 없자 후방의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3개 사단을 새로 편성, 우선적으로 평양 진입의 요충지인 금천 일대에 북한군 19ㆍ27사단을 배치하고, 해주 일대에 74사단을 배치했다. 따라서 평양과 원산항을 제외한 기타지역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따라서 북한의 전쟁지도부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국군이 38도선을 돌파하더라도 유엔군은 38선 남쪽에서 멈춰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기대와 달리 가장 먼저 10월 1일, 국군 1군단이 동해안에서 38선을 돌파했고, 유엔군은 10월 9일, 서부지역에서 38선을 돌파하며 북진을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평양이었다. 평양 점령을 위한 주공부대인 1기병사단은 최단거리 접근로인 개성-금천-사리원-평양으로 이어지는 1번 도로 축선을 따라 진격했다. 조공인 국군 1사단은 임진강의 고랑포 일대에서 시변리-신계-상원 축선을 따라 평양의 동측방으로 향했다. 최초 군단의 예비임무를 부여받았던 백선엽 국군1사단장은 군단장 밀번 소장에게 건의했다. “한국군과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할 때 적의 수도 평양을 공격하는 데 한국군 부대가 빠져서는 안 된다.” 백선엽의 건의에 따라 최초 조공부대로 편성됐던 미 24사단은 군단의 예비가 됐다. 또한 국군 1사단이 공격 첫날부터 난관에 부딪치면서 군단장 밀번 소장에게 전차증원을 요청하자, 그는 흔쾌히 전차 1개 중대를 보내줘 미군사단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케 했다. 미 1군단의 북진은 10월 9일 오전 9시, 제1기병사단이 북한군 2개 사단이 배치된 금천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금천은 평양방어를 위한 최후의 보루였기 때문에 북한군의 항전은 결사적이었다. 곳곳에는 지뢰가 대량으로 매설돼 있어 11일까지 기병사단 공격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기병사단은 북한군 주력에 대한 정면공격과 병행해 2개 연대를 북한군 좌·우측으로 우회시켰다. 그리고 10월 12일 아침, 마침내 기병사단의 2개 연대가 북한군의 후방 한포리를 점령했고 14일까지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 2개 사단을 섬멸했다. 결사적인 북한군의 평양방어와 국군과 유엔군의 선두부대 경쟁 1950년 10월 14일, 금천에서 북한군 2개 사단을 격멸한 유엔군은 평양을 향해 파죽지세의 진격을 계속했다. 북한의 전쟁지도부는 물론 중국까지도 국군과 유엔군의 진격속도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북한군의 결사적인 저항은 평양을 방위하기 위한 것보다는 북한 수뇌부를 비롯한 주요기관과 부대의 철수시간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미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는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금천전투가 치열할 때 강계로 피신할 준비를 하고 10월 16일 새벽 2시경 평양을 빠져나갔다. 이는 김일성을 호위하던 군관 한 명이 희천에서 국군7연대에 투항하여 알게 됐다. 김정일은 당시 10세였는데, 10일 전 이미 만주 장춘으로 피난했다. 평양에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던 그날 새벽, 평양을 출발한 김일성은 볼가라는 소련제 고급승용차를 이용하여 순천~개천을 거쳐 청천강을 건넜다. 그리고 희천에 이르렀을 때 난관에 부닥쳤다. 폭격으로 도로가 파손되어 승용차길이 막히고, 그때까지 지하에서 활동하던 반공애국주민들이 습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엔군의 북진 소식을 전해 듣고 내무서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 북한군 패잔병들을 공격했다. 김일성은 겁에 질려 찻길을 포기하고 산길을 이용해 10월 26일 강계 근처 별오리에 도착했다. 이후 김일성은 중공군 개입 후인 1950년 12월 별오리에서 개전 이후 6개월간의 전쟁을 분석하고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평양진격 작전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물론이고 각 사단, 사단 내의 각 연대까지도 서로 먼저 평양을 점령하겠다는 경쟁심에 불타 있었다. 특히 미 1군단 내에서 1기병사단과 국군 1사단의 경쟁이 치열했다. 미 1기병사단의 우측에서 공격하는 국군 1사단은 차량 부족으로 11일 아침에야 고랑포 정면의 38선 진지를 돌파할 수 있었다. 그 후 시변리(13일)-신계(14일)-수안(16일)-상원·율리(17일)-평양 동남쪽 지동리(18일)-대동강 동쪽 도달(19일 아침)까지 미 1기병사단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진격을 계속했다. 국군 1사단 12연대와 미 1기병사단의 선두부대가 대동강변에 도달할 무렵인 19일 오전 11시쯤 북한군은 대동강 인도교와 복선철교를 폭파했다. 미군 1개 대대가 교량에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그들의 폭파작전은 시기적으로 매우 정확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대동강을 도하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도하장비를 준비해야 했고 그 동안의 지체가 불가피하게 됐다. 10월 20일, 날이 밝자 대동강 남쪽에서 공격하는 미군은 부교를 가설하고 본격적인 도하를 감행했다. 반면 국군 1사단의 백선엽 사단장은 자신이 어릴 때 수영을 배웠던 이 지역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1사단은 도섭지점을 도하장비가 도착하기 전에 찾아 급속도하를 감행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9일 밤에는 15연대가 도하장비를 기다리고 있던 미군을 제치고 대동강을 건너 본평양에 진출했다. 이로써 국군 1사단은 제11ㆍ12연대가 동평양에, 제15연대가 본평양을 점령한 부대로 역사에 기록되게 됐다. 백선엽 장군이 말하는 평양탈환작전, 감청 당한 적 통신병 “도망쳐야갔시요.” 아무리 쫓기는 군대라지만, 평양만은 내줄 수 없다는 듯 적의 저항은 제법 완강했던 10월 18일 밤이었다. 적은 나지막한 언덕마다 견고한 토치카를 구축하고 폭 넓고 종심이 깊은 방어선을 형성했다. 도로에는 갖가지 장애물을 설치하고 지뢰를 촘촘히 매설해 1사단의 접근을 막았다. 한동안의 공격에도 지동리는 좀체 뚫리지 않았다. 밤새도록 적진에 포격을 가했다. 고사포와 전차포를 총동원해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적진이 조용해졌다. 진지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백장군은 시가지에 무차별 포격을 막기 위해 각 부대 지휘관들에게 “평양에는 대동문, 을밀대, 연광정 같은 귀중한 문화재가 많으니, 그런 곳에는 절대 포격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태평양 전쟁 때 미국이 일본의 교토만은 폭격에서 제외해 문화재를 지킨 사례를 알고 있었던 미군 지휘관들은 내 요청을 이해하고 잘 협조해 줬다. 평양 동남쪽 지동리를 돌파해 대동교를 향해 진격하다 통신참모 윤혁표 대위가 버려진 적 진지에서 전화선을 발견, 인민군 총사령부와의 통신을 감청하다 적 통신병과 통화가 됐다. 백장군은 윤 대위에게서 전화기를 받아들고 “동무, 수고가 많소. 누구요”하고 물었다. 그는 통신병이라 했다. 김일성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그런 건 모른다고 했다. 백장군이 “그럼 수고하라. 마지막까지 잘 버티라우”라고 했다. 그랬더니 적 병사는 “아닙네다. 지금 미 제국주의 땅크 수백 대가 몰려오고 있습네다. 도망쳐 나두 살아야 하갔시요”라고 했다. 적의 동요와 혼란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10월 19일 지동리를 넘어선 1사단은 평양을 향해 총진격을 개시했다. 백장군은 그 광경을 “2개 보병연대가 길게 횡대로 전개해 적도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 들어간 그 순간이 아직도 나의 뇌리에 선명하다”라고 회상했다. 1950년 10월 19일 오전 10시 50분. 드디어 제1착으로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대동교 입구 선교리 로터리에 국군1사단이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이다. 이 대통령,“평양만큼은 국군이 먼저” 특명으로 국군 제7사단 제8연대도 평양 조기입성 평양에 최초로 입성한 국군부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다소의 이견이 있다. “국군 7사단 8연대가 하루 먼저 평양을 점령했다”라는 주장도 있어 소개한다. 7사단 8연대가 평양으로 진격하게 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0월 17일, 정일권 총사령관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평양만큼은 국군이 먼저 점령하라”라는 밀명을 내림으로써 국군 2군단의 7사단과 8사단이 평양진출 경쟁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중 8사단은 19일 성천을 점령하고 이어 20일 강동을 점령했으나 그때는 이미 평양이 점령된 뒤였기 때문에 사단의 진로를 돌려 덕천 방향으로 진출했다. 7사단 8연대는 18일 아침, 평양 동남쪽 40㎞ 지점의 율리를 출발해 오후 8시 쯤 삼등에 도착했다. 다음날인 19일 아침 삼등을 출발한 8연대는 삼산리에서 대동강을 급속 도하한 후 19일 밤, 김일성대학에 도착하여 1사단 15연대와 거의 같은 시간에 본평양에 진입한 것이 된다. 그런데 8연대의 김일성대학 점령 시간이 18일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7사단에서 편찬된 ‘상승부대사’는 참전용사의 증언을 기초로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 “김호규 대위가 지휘하는 8연대 3대대 9중대가 1950년 10월 18일 오후 5시, 대동강 상류를 도하, 오후 9시쯤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해 북한군 전선사령부가 있던 김일성대학 옥상에 일착으로 태극기를 게양했고, 퇴각하는 북한군 1사단 및 수도방위사단을 포위·섬멸하는 쾌거를 이룩해 사단의 용맹을 떨쳤다.”라는 증언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주장을 감안해 군사편찬연구소가 2009년에 펴낸 ‘6·25전쟁사’ 제6권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작전에는 관련내용이 다음과 같이 정리돼 있다. “평양탈환작전은 10월 9일 38도선을 돌파한 이래 만 11일 만에 국군 1사단 11·12연대가 그리고 미 제1기병사단의 5기병연대가 동평양을, 국군 1사단 15연대와 국군 7사단 8연대가 본평양을 각각 점령함으로써 종료됐다.”  ▲ 평양에 입성하는 국군 및 유엔군을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 모습 [동영상 캡처] 평양탈환 작전은 전술적 성공했으나 38선 돌파 및 북진 10여 일 지체로 전략적 실패 리델하트의 간접접근전략, 최소저항선과 최소예상선을 이용한 전략적 기동이 더욱 효과적 베트남전에서 월남의 수도 사이공이 월맹군에 의해 점령됨으로써 전쟁은 끝이 났다. 이와 같이 전쟁 시 적국의 수도를 점령하는 것은 상대편 국민들에게 전쟁패배 사실을 명확하게 심어주면서 저항의지를 상실케 하는 전략적 효과를 얻는 길이다. 반면 6·25전쟁의 사례와 같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따라서 국군의 제2군단까지 가세한 평양점령은 북한의 전쟁지도부를 차단하지 못한 이상 “북한의 중요도시를 점령했다”는 전술적 승리의 의미밖에는 없었다. 그때 만약 주력인 미 1군단이 평양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평양의 동측을 크게 우회해 평양 후방의 순천이나 숙천으로 진출해 북한의 전쟁지도부를 포위하여 김일성을 제거했다면 중공군 참전 명분도 없어지며 전쟁은 조기에 종결될 수도 있었다. 리델하트가 간접접근전략에서 제시한 최소저항선과 최소예상선을 이용한 전략적 기동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최소한 주공인 제1기병사단을 북한군이 강력히 방어하고 있는 금천 축선보다 비교적 미약한 전투력이 배치된 국군 1사단의 지역, 즉 토산-신계 축선에 투입했더라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국군 제2군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 1군단이 평양을 공격하는 동안 전속력으로 숙천-순천방향으로 진격해 북한군 철수부대의 퇴로를 차단했더라면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북한군 지도부가 안전하게 평양을 탈출할 수 있었던 보다 근본적 이유는 유엔군이 9월 30일부터 38선에 근접한 서부지역의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하기까지 10여 일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전쟁 초기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지체한 3일간의 시간을 이용해 국군이 지연전을 펼칠 여유를 회복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재연되었다. 유엔군이 지체한 단 며칠 사이에 북한군은 3개 사단을 신편한 후 금천 일대에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했던 것이다. 물론 북진을 위한 유엔총회의 결의(10월 7일)가 필요했고, 낙동강에서 38도선까지 300여㎞를 불과 10여일 만에 진출한 탓에 부대 정비에도 다소 시간이 필요 했었다. 하지만 공격작전의 기세는 단 하루, 한 시간이 중요하다. 동해안의 국군 1군단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1군단이 38선에서 지체함 없이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에 맥아더가 구상한 원산상륙 작전 부대보다 더 빠르게 동해안의 요충인 원산을 점령할 수 있었다. 굴러가는 바윗돌을 멈추게 하는 것도 어렵지만, 일단 멈춰 선 바윗돌을 다시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힘이 필요한 법이다. 이것이 공격작전의 기세유지이며 주도권 확보이다. 이제 정상적으로 성장한 우리 국군은 앞으로의 전쟁에서 전술적 승리보다 전략적 승리가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는 첩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실천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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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대를 말한다
    2019-11-06
  • [사이버안보 진단] (13) 사이버스톰에 노출된 국가기반시설, 해법은 무엇인가?
    ▲ 북한으로 추정되는 해킹 조직으로부터 2014년 12월 15일부터 6차례 사이버공격을 받은 한수원의 층별 안내판(상)과 지난 10월 30일 사이버공격을 받은 인도 쿠단쿨람’원전(하). [사진제공=연합뉴스] 한국은 세계에서 ICT 인프라가 가장 발달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보안에 대한 인식은 낮아 사이버공격을 무기화하는 일부 국가나 해커 조직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다. 뉴스투데이는 한국의 사이버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와 군 차원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짚어보는 ‘사이버안보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잘못된 통신국사 등급 구분도 리스크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2018년 11월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로 일부 지역의 유·무선 통신이 마비됐다. 아현지사는 산하에 은평지사, 신촌지사, 용산지사, 가좌지사 등을 둔 통신국사여서 사고 파장은 컸다. 특히 군부대의 경우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의 통신이 일부 두절됐고, 군사정보통합시스템(MIMS)도 마비되는 등 국가안보체계에 장애가 발생했다. KT는 통신망의 허브 역할을 하는 통신국사를 전국에 56개 운영 및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전국망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통신국사를 A∼D등급으로 나뉘며, 이 중 A∼C등급은 통신망 장애를 대비해 백업망을 구축하게 한다. 백업망이 있으면 통신망이 훼손되더라도 다른 망으로 우회 통신이 가능한데, 아현지사는 D등급이어서 백업망이 없었다. D등급일 경우 백업망 설치는 기업 자율에 맡기며, KT는 D등급 지사를 27개 갖고 있다. 이 경우 기업은 비용 부담 때문에 통상 백업망을 설치하지 않는다. 문제는 안보에 치명적인 통신선로가 지나가는 지사가 D등급으로 분류돼 백업망이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방방재시설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아 피해가 커졌고 복구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북한 추정 해커조직의 원전 공격, 물리적 망분리가 안전판 아냐 이와는 별개로, 한국수력원자력(이후 한수원)은 지난 2014년 12월 15일부터 2015년 3월 12일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북한으로 추정되는 해킹 조직으로부터 원전 가동을 중단하라는 협박을 받았다. 해커는 이메일에 피싱(phishing) 메일을 보내 한수원 관계자들의 이메일 비밀번호를 수집한 뒤 이메일 계정에서 자료들을 빼내는 등 범행을 미리 치밀하게 준비했다. 해커는 지난 2014년 12월 9일∼12일 한수원 직원 3571명에게 5986통의 악성코드 이메일을 발송해 PC 디스크 등의 파괴를 시도했다. 하지만 한수원 PC 8대만 감염되고, 그 중 5대의 하드 디스크가 초기화되는 정도에 그쳤고, 원전 운용이나 안전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메일 공격이 실패하자 앞서 해킹 등으로 취득한 한수원 자료를 공개하며 협박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도에서도 원전이 사이버공격을 받은 사례가 발생했다. 인도 원자력공사(NPCIL)는 지난 10월 30일 ‘쿠단쿨람’ 원전의 한 시스템에서 악성코드가 발견됐다고 밝히면서 “감염된 PC는 인터넷에 연결된 행정용 컴퓨터로 (원전) 내부 네트워크와는 분리돼 발전 시스템은 영향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안 전문가들은 원전을 뚫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악성코드로 보인다며 북한과 연루된 해킹조직인 ‘라자루스’의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수원과 인도 원전 모두 관할 당국은 원전제어망이 뚫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원전은 통상 인터넷망, 내부 업무망, 원전제어망 등 3개의 물리적으로 분리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해킹은 불가하지만 의도를 갖고 접근하면 물리적 망분리가 됐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다양한 공격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들을 전문적으로 검색해주는 엔진인 ‘쇼단(shodan)’ 사이트에 들어가면 분리된 네트워크들이 인터넷에 연결된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쇼단은 조직 내 취약한 시스템을 확인해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됐다. 하지만 해커들이 물리적으로 분리된 네트워크가 인터넷과 연결된 상태를 확인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악성코드 감염 경로 상상 초월...부품에 심어 수년 뒤 사이버공격 악성코드 감염은 여러 경로로 가능하다. 하드웨어 공급자가 기기 제조공정이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과정에서, 데이터 통신 과정에서, 아니면 내부자를 이용하거나 USB를 이용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또 고장 발생 시 장비 제조사의 원격 정비가 필요할 경우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상황도 생기며, 외부에서 원격제어시스템(SCADA)을 해킹할 수도 있다. 2017년 3월 뉴욕타임즈는 미국이 2014년부터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겨냥해 발사 전에 교란시키는 ‘Left of Launch’ 작전을 은밀히 진행해 왔다고 보도했다. 이 작전은 악성코드, 고출력 전자기파 등으로 미사일 통제시스템을 교란해 발사 전에 무력화시키는 것으로서, 작전이 시작된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패 확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북한 미사일의 경우, 북한이 생산할 수 없는 부품을 외국에서 들여올 때 그 공장에 사전 침투해 부품에 악성코드를 심어놓으면 충분히 사이버공격이 가능하다. 실제로 악성코드 중에는 5∼6년을 잠복했다가 어떤 특정 조건이 맞았을 때 가동되는 경우도 발견된다. 2010년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지연시킨 ‘스턱스넷’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같이 해커들은 인터넷과 분리된 컴퓨터에서 정보를 빼내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찾고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미 국가안보국(NSA)의 ‘퀀텀 프로그램’은 무선주파수 발신 기능을 내장한 휴대용 저장장치를 컴퓨터에 꽂아 13km 거리에서도 정보를 꺼내올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통신방법을 이용해 폐쇄망을 우회하는 기법은 공개된 것만 10가지가 넘는다. 미국 ‘국토안보부’ 같은 국가기반시설의 컨트롤타워 구축해야 유사시 KT 지하 통신구 화재처럼 물리적 피해로 군의 C4I 체계 운용에 문제가 생기면 작전임무 수행이 불가하다. 따라서 군 자체적으로 위성 또는 마이크로웨이브(M/W)를 활용한 백업망 구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네트워크 전문가들은 “노후된 기존 M/W망을 신기술로 고도화하여 예비망으로 운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조언한다. 국가기반시설을 목표로 한 사이버공격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매튜 매서가 쓴 소설 ‘사이버 스톰(CYBER STORM)’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회가 사이버공격으로 기반시설이 마비될 때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맞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은 국가기반시설 보호를 사이버안전 관점에서 해당 부처의 관할 조직에 위임해 놓은 상태다. 이로 인해 미국의 ‘국토안보부(DHS)’ 같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기반시설 보호를 총괄하고 책임질 부서나 사람이 없다. 또 관련 부서의 임무와 역할 또한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전쟁을 지원하는 국가기반시설을 유사시 군이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도 준비가 미흡하다. 전문가들은 “사이버방어에 앞서가는 미국을 벤치마킹해 적절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이버보안
    2019-11-05
  • 인도 원전 컴퓨터에서 '악성코드' 발견…북한 연루 해킹조직 소행 의심
    ▲ 악성코드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인도 쿠단쿨람 원자력발전소. [사진제공=연합뉴스] 인터넷 연결된 행정용 컴퓨터 감염…원전제어시스템은 영향 없어" [시큐리티팩트=이원갑 기자] 인도 원자력발전소 컴퓨터에서 악성코드(멀웨어)가 발견돼 북한 해킹조직이 사이버 공격을 한 것이 아닌지 의심받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인디아투데이 등에 따르면 최근 불거진 원전 해킹 피해설을 부인하던 인도 원자력공사(NPCIL)가 전날 성명을 통해 "원전 시스템에서 멀웨어가 발견된 것은 사실"이라며 "발견 즉시 전문가들이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어 "감염된 PC는 행정용으로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이며, (원전) 중요 내부 네트워크와는 분리돼 있다"며 "발전 시스템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감염된 컴퓨터가 어느 원전과 관련된 것인지, 어떤 악성코드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앞서 인도의 타밀나두 주에 있는 쿠단쿨람 원전의 제어시스템이 'DTrack'이라는 악성코드에 감염돼 2기 중 1기가 가동을 중단했다는 뉴스가 퍼졌다. 쿠단쿨람 원전은 성명을 통해 "인도 원전제어시스템은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구축돼 있어 사이버 공격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해명했으나 논란이 계속되자 원자력공사가 자세한 설명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원전 컴퓨터가 악성코드에 감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도의 야당 의원 등은 "디지털 인도를 만든다더니 사이버 보안이 이렇게 허술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DTrack이라는 악성코드가 거론되면서 북한의 소행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보안업체 카스퍼스키는 인도 내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발견된 DTrack을 추적한 결과, 북한 연루 해킹그룹 '라자루스'가 나왔다고 앞서 밝혔다. 라자루스는 2014년 미국 소니픽처스,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사건, 2017년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유포 사건의 배후로도 꼽히며, 지난 9월 미국 재무부에 의해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 사이버보안 전문가들은 인도 원전 사건을 두고 우발적인 바이러스 감염이라기보다는 표적형 공격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보안 업체 드라고스의 세르지오 칼타지론 국장은 "쿠단쿨람 원전을 뚫기 위해 (악성코드가) 특별히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사이버보안
    • 종합
    2019-11-01
  • 북한, 초대형 방사포 연속시험사격 성공...조문 따로 협상 따로
    ▲ 북한이 지난달 31일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공개한 시험사격 모습. [사진제공=연합뉴스] 김정은, 결과 보고받고 큰 만족"…美 자극 줄이려고 현장 가지 않아 "연속사격체계 완벽성 검증…새 전술유도무기와 함께 핵심무기" [시큐리티팩트=김성권 기자] 북한이 지난달 31일 초대형 방사포의 세 번째 연속시험사격을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평가해 성능 검증을 마치고 조만간 실전 배치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 모친상에 조의문을 보내 성의를 보인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겨냥해 초대형 방사포 시험발사를 예정대로 단행한 것이다. 중앙통신은 1일 "국방과학원은 10월 31일 오후 또 한 차례의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성과적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은 지난 9월 10일과 8월 24일에 이어 세 번째다. 통신은 "국방과학원에서는 초대형 방사포의 연속사격체계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한데 목적을 두고 시험사격을 조직하였다"며 "연속사격체계의 안전성 검열을 통해 유일무이한 우리 식 초대형 방사포 무기체계의 전투적 성능과 실전능력 완벽성이 확증되었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번 시험사격을 통하여 연속사격체계의 완벽성까지 검증됨으로써 초대형 방사포 무기체계의 기습적인 타격으로 적의 집단목표나 지정된 목표구역을 초강력으로 초토화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초대형 방사포는 최근 새로 개발된 전술유도무기들과 함께 적의 위협적인 모든 움직임을 억제하고 제거하기 위한 조선인민군의 핵심무기로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지난달 31일 오후 4시 35분경, 4시 38분경 평안남도 순천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상의 단거리 발사체 2발을 발사했으며, 최대 비행거리는 약 370㎞, 고도는 약 90㎞로 탐지됐다고 밝혔다. 앞서 북한은 지난 9월 10일에도 초대형 방사포 2발을 발사했으나, 한 발이 내륙에 낙하해 실패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 후 무기 성능 검증이 만족할 수준에 도달하자 이번에 내륙을 가로 질러 동해로 발사하는 '내륙 관통' 시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 관영매체는 이번과 달리 '성공했다'는 언급이 없었고 현장에 갔던 김정은 위원장은 "연발 사격시험만 진행하면 될 것"이라고 평가해 추가 발사를 시사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번 시험발사 현장에 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통신은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에 대한 국방과학원의 군사기술적 평가를 보고받으시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나라의 자위적 군사력 발전과 우리 무력의 강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해 가고 있는 국방과학자들에게 축하를 보내셨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7년 진행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무기 시험은 물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전까지 올해 5∼9월에 진행된 10여 차례의 전술무기 시험도 빠짐없이 지도했다. 하지만 지난달 2일 신형 SLBM '북극성-3형' 시험발사 때는 참석하지 않았고, 이번 발사 현장에도 불참했다. 미국에 연말까지 협상 시한을 제시한 상황에서 국방력 강화를 위한 재래식 무기 개발은 계속하더라도 불필요한 자극은 줄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여·야 정치권은 김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문 대통령 모친 별세에 조의문을 보낸 다음날 시험사격을 한 것에 대해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특히 야당은 “이것이 앞에서는 손을 내밀고 뒤로는 뒤통수를 치는 진짜 북한의 모습”이라며 “지금이라도 북한의 본 모습을 똑바로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2009년 5월 25일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조의문을 보냈다고 발표한 지 4시간여 만에 2차 핵실험을 단행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전례를 보더라도 북한은 문 대통령 모친상에 '최소한의 도리'를 표하는 것과는 별개로 미국과의 협상 등을 고려해 개발 계획에 따라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 외교안보정책
    • 통일경제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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