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
-
라이다전문기업 에스오에스랩, 발명의 날 국무총리 표창 수상
-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에스오에스랩이 ‘제56회 발명의 날’ 기념식에서 지식 재산 창출 장려 및 첨단 기술 발명으로 자율주행용 센서 산업 성장과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한 점을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고 7일 밝혔다. 발명의 날은 발명을 통한 지식 재산 강국 실현을 위해 발명가와 과학 기술인의 사기를 진작하고자 진행되는 행사로, 1442년 세종대왕의 측우기 사용 시작일을 기념해 1957년부터 매년 5월 31일 기념식이 개최되고 있다. 라이다 전문 기업 에스오에스랩은 지식 재산 기반 경영으로 국내외 발명 대회 및 전시회에서 12회 이상 수상했으며, 투자 유치와 적극적인 연구 개발 투자를 바탕으로 국가 산업 경쟁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또 자율주행·보안·안전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라이다(LiDAR)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독자적인 기술력 확보로 국내 유일의 고정형 라이다 개발에 성공한 에스오에스랩은 국내 기업 가운데 라이다 관련 최다 특허를 보유(출원 89건·등록 37건)하고 있다. 2020년 상반기 특허청 세종대왕상을 받았으며, CES 2021 혁신상 수상 및 가트너 2021 쿨벤더 기업으로 선정되며 시장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정지성 에스오에스랩 대표는 “고정형 라이다 연구 개발에 성공한 것처럼 꾸준한 R&D 투자를 통해 글로벌 라이다 회사들과 견줄 수 있는 우수한 기술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
- 사이버보안
- 종합
-
라이다전문기업 에스오에스랩, 발명의 날 국무총리 표창 수상
-
-
코넥-위즈베이스-ISA테크, ‘K클라우드 자동 전환 사업’ 협력 나서
-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코넥은 위즈베이스, ISA테크와 함께 공공기관 및 국내 기업의 클라우드 전환 가속화를 위한 ‘K클라우드 자동 전환 사업’(원스톱 클라우드 마이그레이션 서비스 사업) 협력에 본격 나선다고 7일 밝혔다. 코넥은 각사가 보유한 솔루션과 서비스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호 시너지를 창출, 빠르게 바뀌는 IT 산업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클라우드 전환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협력에 나섰다고 협력 배경을 설명했다. 주 협력 내용은 클라우드 이전, U2L, 데이터베이스 변환 등 기술 부분에 대한 영업 기회 발굴, 솔루션 및 아키텍처 대응, 안정적인 프로젝트 완수 및 마케팅 부문의 공동 협력 등이다. 코넥은 U2L(Unix To Linux) 자동 변환 소프트웨어 ‘DX-shift’ 개발사이며, 위즈베이스는 데이터베이스(DB) 자동 변환 소프트웨어 ‘JCopy’ 개발사다. ISA테크는 ‘제트컨버터 클라우드 마이그레이션(ZConverter Cloud Migration)’을 개발했다. ISA테크는 리프트 앤 시프트 방식의 자동 클라우드 전환과 해외에서 주목받는 서버리스 클라우드 재해 복구 솔루션을 제공하고, U2L 바탕 클라우드 전환은 코넥 Dx-shift 자동 변환 툴을 사용한다. 이 기종 DB 클라우드 변환은 위즈베이스의 Jcopy 소프트웨어가 제공될 예정이다. 3사 간 사업 협력은 최근 3개월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U2L 및 리프트 앤 시프트 개념 검증(PoC)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완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오상석 코넥 대표는 “이번 협력을 통해 클라우드 전환을 준비하는 고객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유닉스, 윈도, 리눅스 서버뿐만 아니라 이 기종 DB 변환을 포함한 원스톱 클라우드 자동 전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
- 사이버보안
- 종합
-
코넥-위즈베이스-ISA테크, ‘K클라우드 자동 전환 사업’ 협력 나서
-
-
군, 성폭력예방 제도개선 TF 한시적 운영…성폭력특별조치반도 가동
-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군 당국이 공군 여성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군내 부실한 성폭력 대응체계를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또한 신고된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특별조치반도 가동됐다. 국방부는 7일 김성준 인사복지실장을 책임자로 하는 '성폭력 예방 제도개선 전담팀(TF)'을 구성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TF는 군 조직의 성폭력 사건 대응 실태와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근본적인 개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했으며, 육·해·공군 인사참모부장과 해병대사 인사처장 등이 참여하는 '협의회'와 ▲ 교육·피해자 보호 ▲ 부대운영·조직문화 ▲ 수사·조사 등 3개 분과로 구성된다. 또한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 민간위원과 여성가족부 추천 위원으로 구성된 '외부전문가 자문단'을 설치해 각 분과마다 참여함으로써 정책의 전문성을 높이고 국민들의 관심과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렴하게 했다. 국방부는 "TF는 오는 8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면서 "현 성폭력 예방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합동 실태조사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수립하고 민간전문가 그룹과 긴밀한 소통·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정책적 개선사항을 도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TF는 공군 여군 부사관이 성폭력 고충 상담을 했는데도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했고, 공군본부가 국방부로 늑장 보고한 것 등 문제점이 드러나자 뒤늦게 개선 방안을 찾고자 마련됐다. 이와 함께 지난 3일부터 오는 16일까지 운영되는 '성폭력 특별신고 기간'에 접수되는 신고를 처리하기 위한 국방부 '성폭력 신고 특별조치반'도 이날부터 가동했다. 특별조치반은 법무관리관을 반장으로 양성평등, 인권, 감사, 군사경찰 등 관련 부서가 참여해 신고자의 요구 사항을 검토하고, 그 결과에 따라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처를 하게 된다. 신고된 사안 중 형사절차 진행이 필요한 것은 국방부 검찰단의 전담수사팀이 맡아 신속히 수사할 계획이다. 현재 15건의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이 가운데 10건은 수사·조사할 예정이며, 나머지 5건은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
- 외교안보정책
- 국방
-
군, 성폭력예방 제도개선 TF 한시적 운영…성폭력특별조치반도 가동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15)] 다부동지구 전투 전쟁영웅들의 현장 체험담 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서울 점령후 남하를 계속했던 북한군은 국군과 유엔군을 추격해 1950년 8월1일 진주∼김천∼점촌∼안동∼영덕을 연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때 북한군 전선사령부는 수안보에, 1군단은 김천에 2군단은 안동에 각각 사령부를 두고 있었고, 7월20일에는 김일성이 수안보까지 내려와 “8월15일까지는 반드시 부산을 점령하라”고 독촉했던 직후였다. 따라서 북한군 전선사령부는 매우 초조한 상태였다. 7월 말 국군과 유엔군의 낙동강 방어선을 공격하는 북한군의 작전개념은 중앙의 주력으로 경부도로를 따라 대구를 공격하고 동측은 동해안 도로를 따라 포항∼경주 방향으로, 서측은 창녕 서쪽의 낙동강 돌출부를 공격해 유엔군의 병참선을 차단함과 동시에 남해안을 따라 마산∼부산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는 4개의 공격 축선에서 동시 공격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고 부산을 점령하려는 의도였다. 1950년 8월 초 낙동강 방어선을 공격하는 북한군은 가용부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력 5개 사단을 대구 북방에 배치해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따라서 8월 공방전의 승패는 대구 북방의 전투 결과에 따라 결정될 정도였고 만약 유엔군이 패배할 때는 인천상륙작전도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었다. 대구에 있던 미 8군 사령관 월튼 워커 장군의 마음은 급했다. 실제로 맥아더 총사령관이 "낙동강 전선에서 아군이 북상하지 못하면 인천상륙작전은 그만둔다"고 했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군 중앙의 주력이 지향한 지역에 아군 방어병력은 총 3개 사단(국군 1·6사단, 미 1기병사단) 뿐이었으며, 그나마 인접 사단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적의 주접근로를 담당한 국군 1사단은 낙동리 부근으로 도하하는 적을 몇 차례 격퇴시켰으나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6사단은 북한군과 공방전을 반복하다가 결국 용기동에서 위천으로 물러났다. 왜관 일대의 미 1기병사단은 역습을 전개해 낙동강을 도하하려는 적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무렵인 8월11일 육군본부는 위의 상황도와 같이 국군의 방어선을 303고지(작오산, 왜관 북쪽) ∼다부동 ∼군위 ∼보현산을 잇는 선으로 축소 조정했다. 이에 따라 국군 1, 6사단은 다부동∼군위 선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미 극동공군사령부는 8월 16일 낙동강변 왜관 부근에 이른바 융단폭격을 단행했다. 이는 대구 정면이 위태롭다고 판단한 워커 장군의 미 8군사령부가 낙동강 대안의 적 주력부대를 제압하기 위해 유엔군사령부에 건의해 실시된 폭격이었다. 융단폭격의 성과는 명백하게 확인되지 않았으나, 북한군 지휘관들에게 대단히 큰 심리적 충격을 준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18일 가산에 침투한 적이 사격한 박격포탄이 대구역에 떨어지자 대구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그 충격으로 정부가 부산으로 이동하고 피난령이 하달되는 등 대구 일대가 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15)] 다부동지구 전투 전쟁영웅들의 현장 체험담 ③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14)] 다부동지구 전투 전쟁영웅들의 현장 체험담 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육군대학 교육도 후반기에 접어들어 막바지 성적관리에 몰입할 즈음에 시행된 전적지 답사교육은 시작 전부터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구전으로만 들어왔던 전쟁영웅들을 6.25남침전쟁시에 적과의 교전 현장에서 직접 만나 실전 체험을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그동안 책상에 앉아 지도상으로 만 수많은 전투를 간접 경험한 것에 비하면 대단히 소중한 시간이었다. 진해 육군대학에서 역사의 현장인 다부동으로 버스를 타고 2시간 넘게 이동하는 시간도 백선엽 장군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지루함을 잊을 수 있었다. 교육장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자 전쟁영웅들이 학생장교들의 열렬한 박수속에 도착해서 본인의 체험담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 1사단장(준장)으로 다부동 전투를 지휘했던 백발의 백선엽 장군과 중령으로 12연대를 지휘했던 김점곤 장군은 달변에 여유있고 풍요로움을 느끼는 듯한 인상을 풍기며 체험담을 이어갔다. 또한 자부심 넘치는 강의를 통해 유아독존적인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것 같은 그들의 공통점도 느낄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14)] 다부동지구 전투 전쟁영웅들의 현장 체험담 ②
-
-
문 대통령, 국가보훈처 창설 60주년을 맞아 “중장기 제대군인 전직 지원금 현실화”강조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통해 “국가유공자에 대한 진정한 보훈이야말로 애국심의 원천”이라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올해 국가보훈처 창설 60주년을 맞이하여 장기간 헌신한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들이 생계 걱정 없이 구직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대군인 전직 지원금’을 현실화할 것”이라며 이어 “보훈 급여금으로 인해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고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헌신의 가치가 묻혀 버리는 일이 없도록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웃을 구하기 위해 앞장서고 공동선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것이 바로 애국”이라면서 과로로 세상을 떠난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과 의사상자 묘역 최초 안장자인 채종민 등 의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했다. 더불어 “최근 군내 부실급식 사례들과 아직도 일부 남아있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을 낳은 병영문화 폐습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고 말했다. 이어 “군 장병들의 인권뿐 아니라 사기와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이를) 반드시 바로 잡겠다”면서 “우리 군 스스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고 혁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병영문화 폐습’은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엄정 수사·조치를 지시한 데 이어 군 통수권자로서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아울러 “지난 3월 광주의 계엄군 병사가 유족을 만나 직접 용서를 구한 일은 매우 역사적인 일이며,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제에 최초로 여야 정치인이 함께 참석한 일도 매우 뜻깊다”며 “4월의 제주, 5월의 광주, 6월의 현충원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하나의 마음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향해 다시 큰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도 밝혔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과 저는 강력한 ‘백신동맹’으로 코로나를 함께 극복하기로 했고, 대화와 외교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이루는 유일한 길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평화와 번영, 민주와 인권의 한미동맹을 더욱 포괄적인 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뜻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 백신 동맹 구축 등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거론한 데 이어 “정부는 튼튼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국제질서와 안보환경에 더욱 주도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 외교안보정책
- 국방
-
문 대통령, 국가보훈처 창설 60주년을 맞아 “중장기 제대군인 전직 지원금 현실화”강조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13)] 다부동지구 전투 전쟁영웅들의 현장 체험담 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전쟁(戰爭, war, warfare) 이란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 단체 사이에 무력을 사용하여 싸움하는 것을 의미하며, 전투(戰鬪, combat, battle, fight, engagement)는 두 편의 군대가 조직적으로 무장하여 싸움하는 것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반면에 육군대학의 군사학 교육을 통하여 전쟁을 운용하는 술(術)이 전투, 전술(戰術, tactics), 작전술(作戰術, operation(al) art), 전략(戰略, strategy) 등 세부적으로 구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전쟁 또는 전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기술과 방법인 전술(戰術, tactics)은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전망을 갖는 전략의 하위 개념으로써 주로 위관장교시절 보병학교에서 학습을 했고, 전투는 사관학교나 신병교육대 및 부사관학교 등에서 숙달한다. 육군대학에서는 사단급 이하 제대의 용병술인 전술에 추가하여 전쟁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이나 책략으로 전술보다 상위의 개념이자 통상 군단급 제대의 작전술(作戰術)도 학습했다. 필자는 새롭게 접했던 전술과 전략사이의 용병술 개념인 작전술을 이해하고 적용시키는 것이 어려웠지만 매우 흥미를 느꼈다. 사단급의 공격 및 방어 전술교육을 통해 전술 담임교관들의 지식을 전수 받으며 어느정도 군사전문가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생각될 즈음에 실제로 전적지 답사교육을 하게 되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13)] 다부동지구 전투 전쟁영웅들의 현장 체험담 ①
-
-
[김희철의 전쟁사(93)] 중공군도 패배를 인정한 김종오 장군의 백마고지 전투 ⑧
- [시큐리티팩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6·25남침전쟁에서 한국군이 치른 전투 중 ‘백마고지(395m) 전투’를 가장 높게 평가했다. 그는 6·25전쟁 중에 이 전투에 대한 연구를 미 육군에 지시하고 미 9군단 작전처는 사후 검토보고서(AAR)를 작성해 전 미군 부대에 배포도 했다. 유엔군과의 전투를 거의 연전연승으로 날조하는 중공군 역시 6·25남침전쟁을 기록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경험 총결’에서 유일하게 패배를 인정했고, 적이었던 중공군과 북한군이 김종오 장군을 ‘군신(軍神)’으로 부르며 위명을 떨치게 된 전투이기도 하다. 당시 전투에 참전했던 용사의 말에 의하면 야간에 백병전을 할 때 머리카락 길이로 피아 여부를 판별 했다고 한다. 중공군은 머리를 박박 깎았고 국군은 머리가 길었기 때문이었다. 야간에 전혀 안보이는 상태에서 한손으로는 눈앞에 있는 사람의 머리를 만져 길면 살려주고 짧으면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대검으로 베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 위에 손을 턱~ 하고 올려서 만졌는데 순간 가슴이 철렁 했다고 한다. 왜냐면 그가 죽일 가능성이 50:50 이었으므로. 다행히 아군이었는지 자신을 놔두고 다른 사람 머리 만지러 떠났다고도 했다. 그만큼 치열한 전투였다는 에피소드는 물론 실제 고지전 혹은 점령전하에서 야간백병전은 피아식별이 되지 않는 총검이나 군용삽을 이용한 무차별적인 난투극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6․25남침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백마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휘관이 전쟁영웅이자 한국 육군사의 전설적인 명장 김종오 장군이다. 그는 일본 주오(中央)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4년 24살의 나이에 일본군에게 학도병으로 강제 징용되었으나 다행히 일본의 패망으로 참전하기 직전에 해방된 조국으로 귀국하여 1946년 1월 군사영어학교 졸업과 동시에 육군 참위(소위, 군번 10031)로 임관했다. 그 후, 1949년 육군 대령으로 진급하여 북한군 1대대를 유인 섬멸한 사직리전투 등 큰 전공을 세웠고, 이후 6․25남침전쟁을 불과 며칠 앞둔 1950년 6월10일 29세의 나이로 6사단장으로 보직되어 춘천·홍천 방면으로 공격해 오는 북한군의 진격을 5일간이나 지연시켜 김일성의 남침계획에 큰 차질을 가져오게 했다. 또한 충북 음성군 동락리에서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기습하여 사살 1천 명, 포로 97명과 수많은 장비를 빼앗는 등 개전 이래 최초·최대의 전과를 올렸으며, 같은 해 9월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 작전에 나선 김종오 장군의 6사단은 10월26일 초산을 점령, 한만 국경에 최초로 태극기를 꽂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나, ‘51년 3사단장 재직시 현리전투에서 쓰라린 패배도 겪었다. 허나 이후에도 백마고지전투 승리 등 6․25남침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한국군의 전설적인 명장이자 영웅으로 불렸던 그는 종전 후, 육사교장, 1·5군단장, 1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 및 합동참모회의 의장 등 군의 요직을 지냈다. 그러나 수만의 적군을 물리친 그였지만 몸속 깊이 찾아온 병마와의 싸움에서는 끝내 이기지 못하고 1966년, 45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김종오 장군은 마지막 병상에서 조차 ‘더 일할 나이에 조국통일도 못 보고 눈을 감으니 한스럽고 죄송할 뿐이니, 평생의 소원인 통일 성업을 꼭 이뤄 달라’는 유언을 대통령에게 남기며 일평생 조국을 향한 애국과 충절을 보여주었다.
-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
[김희철의 전쟁사(93)] 중공군도 패배를 인정한 김종오 장군의 백마고지 전투 ⑧
-
-
[김희철의 전쟁사(92)] 중공군도 패배를 인정한 김종오 장군의 백마고지 전투 ⑦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열흘간의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의 손실은 전사 8234명, 포로 5097명으로 38군 전체가 공격력을 상실했고 아군은 3428명이 전사했다. 현리 전투를 비롯해 그동안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번번이 실망스러운 졸전을 거듭했던 한국군은 1951년 후반부터 밴플리트 8군사령관의 ‘야전훈련사령부(FTC)’ 운용에 따라 부대 전체의 재교육 등 내실을 다지기 위해 힘썼는데,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는 데 성공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은 21만 9954발, 중공군은 5만 5000발, 총 27만 4954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6·25남침전쟁 중 단일 최다 포탄을 소모했다. 국군은 겨우 1개 사단이 중공군 최정예 3개 사단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압도적인 병력 열세에 있었지만, 9사단은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목표 탈취를 위해 강인한 투지를 견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투기간중 적시 적절한 예비대의 투입 및 부대교대 등으로 부대원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또한 강력한 포병 및 항공화력을 지을 받을 수 있어 4배의 포탄을 퍼부어댄 것이 승리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이는 국군의 또 다른 대승인 용문산 전투 이후 병력의 열세를 화력의 우세로 메꿀 수 있음을 또 다시 증명한 사례가 되었다. 결국 이러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9사단은 철의 삼각지를 지배하려던 중공군의 전략 기도를 꺾고 끝내 백마고지를 확보하였다. 이 전투로 중공군 팽더화이 사령관에게 "제38군 만세!"라는 축전을 받아 그때부터 만세군으로 불릴 정도로 중공군 내에서는 최정예 부대인 38군(江擁輝)은 궤멸상태가 되어 중공군 23군과 교대한 후 후방으로 물러났다. 현재 철원에는 백마고지 전적지가 세워져 있으며 여기서 1.5km 떨어진 곳에 백마고지 전투의 승리로 확보된 북한군의 노동당사가 위치해 있다. 현재 백마고지는 5사단 관할로 근처에 열쇠전망대가 있으며 신청하면 둘러볼 수 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
[김희철의 전쟁사(92)] 중공군도 패배를 인정한 김종오 장군의 백마고지 전투 ⑦
-
-
[현역대령의 DMZ 종주기(4)] 첫날 종주 힘들었지만 어려움 극복하고 완주하겠다는 의지도 확인
- 이 글은 현역대령이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 3명과 함께 배낭을 메고 DMZ를 따라 걸은 이야기다. 이들은 한 걷기 모임에서 만난 사이로 당시 전역을 앞둔 56세의 안철주 대령과 60대 1명, 70대 2명이다. 2013년 8월 파주 임진각을 출발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12일 동안 걸으면서 이들이 느낀 6·25 전쟁의 아픈 상처와 평화통일의 염원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와 따스한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안철주 박사] 오늘 걸은 거리가 약 24㎞ 정도이다. 이른 새벽 집을 출발해 임진각까지 왔고 임진각부터 숙소가 있는 감악산 펜션까지 장거리를 더운 날 걸어와서 인지 단원들 모두가 아주 힘들어 했다. 그래서 숙소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때 근처 가게의 아주머니가 우리들에게 걷는 사연을 물었다. 단원 한 명이 걷는 취지와 오늘 임진각부터 걸어왔다고 설명하면서 시원한 물을 좀 마시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커다란 양푼에 얼음물을 가득 갖다 주셨다.(아마도 냉장고에 있는 얼음을 다 꺼내 가져온 것 같았다). 시원한 물을 마시며 그 아주머니의 훈훈함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이 종주 첫째 날이어서 원래 계획은 숙소에 도착하면 근처 음식점에서 단합을 다지는 의미로 성대한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숙소에 도착했을 때 모두들 지쳐서 음식점으로 이동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저녁식사는 숙소 주인이 권하는 중국집에서 음식을 배달 시켜 먹었다. 저녁식사 후 단원들의 발바닥 상태를 포함한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문제는 없었지만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제일 젊은 나에게도 오늘은 무척 힘든 하루였다. 출발 전에 우리들을 엄청 아끼고 사랑하는 주위의 여러분들로부터 진심 어린 우려의 말씀을 많이 들었다. 나이가 70이 넘은 사람들이 300㎞가 넘는 먼 거리를 12일 동안 장기간 걷는 것은 무리다. 또 만약에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 아주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라며 걱정을 하신 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걷기로 했고, 이렇게 시작된 대장정의 첫날이 지나면서 화살은 시위를 떠나 목표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힘든 하루였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완주하겠다는 의지와 소망을 서로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걷기의 궁극적 목표가 건강 유지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평상시 신념과 함께 고령인 단원들의 피로가 젊은이들과 다를 것이라 여겨져 “내일 단원들의 걷는 모습을 세밀히 지켜보며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목표 지점인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도착하기 전이라도 단원 중 누군가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판단되면 아무런 미련 없이 즉시 모든 일정을 중단하겠다”라는 종주 가이드라인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오늘 걸으면서 금년(2013년) 초 아내와 함께 약 40일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여정이 기억났다. 한겨울에 걸었기 때문에 길은 몹시 미끄러운데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겨울임에도 비가 자주 내렸다. 날씨가 추웠고 잠자리도 불편해 순례길 걷기를 시작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앞서면서 계획대로 목적지까지 걸을 수 있을지 약간의 걱정도 됐다. 그러나 며칠을 걸으면서 환경에 적응됐고 처음의 후회와 걱정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리고 추위와 불편함에도 즐거울 수 있었다. 그러자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친절함과 훈훈함이 느껴지면서 행복했다. “그동안 내가 반복된 일상에 감각이 무디어져 이런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너무 두꺼운 옷을 입고 다녀서 주변 사람들의 훈훈함과 친절함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었겠다”라고 생각했다. 특히 종착지가 가까워오면서 순례길에 머무는 것이 너무 좋고 곧 끝나는 것이 아쉬워 10㎞도 되지 않는 거리를 걷고 숙소를 정했던 기억도 났다. 순례길을 걸은 후 나는 “과거는 감사, 현재는 행복, 미래는 설레임”이란 문구를 염두에 두고 생활하고 있다. 오늘 DMZ 종주단의 첫날 걷기는 매우 힘들었다. 단원들의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하여 걱정도 됐다. 그러나 평화누리길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준비해준 얼음물이 시원함과 함께 훈훈한 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번 DMZ 종주도 어려움은 있을 테지만 걷고 나면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라고 막연한 상상을 해보았다. 그래서 마음의 눈을 활짝 열고 환경에 순응하면서 즐겁게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첫날 비록 힘은 들었지만 계획대로 잘 걸은 것처럼 마지막 날까지 모두 잘 걸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단원들은 모두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 안철주 심리경영학 박사 프로필 ▶ 예비역 육군대령. 대한민국 걷기지도자로 100㎞ 걷기대회를 7회 완보한 ‘그랜드슬래머’이며, 스페인 순례길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완주한 걷기 애호가
-
- 전역군인
- 인생 2막
-
[현역대령의 DMZ 종주기(4)] 첫날 종주 힘들었지만 어려움 극복하고 완주하겠다는 의지도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