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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소형무장헬기에 이스라엘 무인기 탑재…KAI, IAI와 유무인 복합운영체계 MOU 체결
-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과 유무인 복합운영체계(MUM-T, Manned-Unmanned -Teaming)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국산 소형 무장헬기(LAH)에 IAI가 개발한 무인기를 탑재해 유·무인 복합운영체계를 공동 시현하는 것으로, 두 기관은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 연내 이를 시현할 계획이다. KAI의 체계종합기술과 IAI의 무인체계 시스템 역량이 결합하면 LAH 헬기 임무 능력을 확대하는 새로운 개념의 방위체계가 구축될 것으로 두 기관은 기대했다. 한국 육군도 현재 유무인 복합체계 추진을 준비 중으로, 신속 시범 획득사업 등 조기 전력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LAH와 국내 개발한 무인항공기(UAV)를 연동하는 것으로 헬기에서 무인기를 조종 통제, 영상을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향후에는 유인헬기 내부공간에 캐니스터(발사관) 발사형 드론을 탑재해 군집·자율비행하며 드론에 내장된 광학 추적기로 정보수집 및 목표지정, 타격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유무인 복합운영체계는 적은 인원과 비용으로도 전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 미래 성장성도 높을 것으로 KAI 측은 예상했다. KAI는 유인 항공기와 무인기를 동시에 체계 개발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기업으로서, IAI와 공동협력 분야를 찾아 협약을 체결하게 됐다. 그동안 KAI는 IAI와 2019년 G280 주익 생산, 2020년 G280 동체 생산 계약을 체결해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보아즈 레비 IAI 사장은 "KAI와의 전략적 협력은 한국의 항공 및 방위산업에 참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양사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안현호 KAI 사장은 "유무인 복합운영체계 기술을 축적해 제품 다각화와 신규 수요 창출을 통해 수출 사업화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며 "미래 산업분야의 기술 확보를 위해 글로벌 선진업체들과 협력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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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소형무장헬기에 이스라엘 무인기 탑재…KAI, IAI와 유무인 복합운영체계 MOU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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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71)] 작전장교 일과는 사소함의 연속이지만 쌓이고 쌓여 알찬 성과 내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로 위나라 사마의가 대치하고 있는 제갈량이 보낸 사신에게서 “제갈량이 음식은 지나치게 적게 먹고, 일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손수 일일이 처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사마의는, “식소사번(食少事煩),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번거로우니 어떻게 오래 지탱할 수 있겠소”라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했다. 사실, 제갈량은 사마의를 끌어내어 빨리 승패를 결정지으려 했으나 사마의는 지구전으로 제갈량이 지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신이 돌아오자 제갈량은, “사마의가 무슨 하는 말이 없던가?” 하고 물었다. 사신은 들은 그대로 전하자 제갈량도, “중달의 말이 맞다. 나는 아무래도 오래 살 것 같지가 않다”고 말했고, 제갈량은 곧 병이 깊어져 진중에서 죽어 촉나라 군대는 철수했고 사마의는 장안성을 지켜냈다. ■ 식소사번(食少事煩)처럼 눈에 띄게 보이는 성과없이 바쁘기만 한 작전장교의 일과 “따르릉 딴따라 딴딴단…...” 요란하게 자명종이 울리는 새벽, 잠결에 손을 뻗어 자명종을 끄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이미 30분이 지났고 와이프가 흔들며 늦었다고 재촉을 했다. 벌떡 일어나 세수하고 주섬주섬 전투복으로 갈아입으며 현관을 나서는데 와이프가 손을 잡으며 아침을 먹고 가라고 했다. 두 수저정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섰다. 아직 새벽 출근길은 깜깜했다. 급하게 상황실 벙커로 들어서자 작전보좌관 김영득 소령(육사32기)이 먼저 나와 보고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늦게 출근한 필자에게 꾸짖는 눈치를 보냈다. 작전처 요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분야들을 확인하느라 분주한 시간이 절정에 이를 즈음 스피커에서 아침 체조 집합 군가가 흘러 나왔다. 또 바빠졌다. 미처 확인 못한 부분은 당직 근무자에게 강조하고 상의를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본청 앞 광장에 모였다. 참모장 박영일 대령(육사25기 예비역 소장, 전 한국민속촌 사장)이 눈을 부라리며 집합 인원들을 확인했다. 아침체조가 끝나고 사단장이 집무실로 들어가자 참모장은 모인 참모부 간부들에게 강조사항을 지시하며 아침체조에 지각한 자와 불참자를 정확하게 찍어냈다. 그들은 예외없이 참모장실에 불려가 불호령을 듣게 될 것이다. 잠시 후 참모부 주요직위자들은 다시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전일 당직근무자의 상황브리핑을 듣기 위해서 상황실 벙커에 모였다. 전일 작전결과와 당일 작전과 주요 부대운용 상황을 보고 받은 사단장이 추가 지침과 기타 강조사항을 지시하고 다음 스케줄을 위해 자리를 떴다. 이어 참모장이 사단장 지침에 대한 세부적인 지시와 잘못된 사항에 대한 질책을 했다. 정신없이 바쁘기만 했던 아침 상황보고 시간이 지나자 창밖으로 완전군장의 간부들이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침체조 불참자와 상황회의시에 지적 받은 자들이 참모장실로 불려가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들은 일장 훈시를 듣고 사단 연병장에서 벌로 완전군장 보행을 할 것이 틀림 없었다. 야간에 특별히 지시 받은 업무가 있는 장교는 보고서를 챙겨 본청 참모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상황회의가 끝난 오전시간은 작전처 요원들이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 콩나물 시루에 주는 물은 빠져 나가도 콩나물은 잘 자란다. 마침 그날은 참모부 회의가 없는 날이라 새벽잠을 설치고 아침 상황회의 준비에 바삐 뛰어다닌 피로가 밀려와 책상에서 깜빡 졸 수 있는 오전시간이 되었다. 물론 회의시 사단장의 지시사항을 조치해야 하지만 단순한 지시는 작전보좌관 전결로 처리했고, 심도 깊고 중요한 사항은 참모의 추가 지침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루 중 모처럼의 휴식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상급부대 실무자였다. 인접 작전장교의 전화 통에서 쌍소리가 들려왔다. “현황을 파악해 신속히 보고 못하냐”는 질책이었다. 결국 모처럼의 휴식 시간을 빼앗긴 채 보고서를 만들어 결재 받고 상급부대로 발송했다. 사실은 결재없이 비공식적으로 보고해달라는 업무가 더 많았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간부 식당에서도 참모들 자리와 실무장교들 자리는 구분되어 있다. 참모들은 식사를 하면서 사단장과의 대화를 통해 지침을 받고 구두 결재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참모들의 식사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실무자들은 식사를 빨리 끝내고 사무실로 왔다. 선배 작전장교가 건강이 중요하니 족구를 하자고 한다. 상황실 벙커의 좁은 통로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야간 업무시에 간식내기 게임이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자 끝났다. 또 바빠졌다. 오후에 예하부대 작전장교 소집회의가 있었다. 4개월 뒤인 10월에 사단장 재임 기간에 한번 실시하는 가장 중요한 전투지휘검열과 곧 시행될 을지연습 준비 때문이었다. 이미 준비해 놓은 회의록에 전투지휘검열과 을지연습 일정, 주요 착안점들에 따른 각 부대별 준비사항들이 포함되었다. 예하부대의 건의 사항을 토론한 뒤 작전참모의 강조사항을 끝으로 소집회의는 성공적인 마무리가 되었다. 그 와중에 타 작전장교는 타 참모실을 순회하며 또다른 업무를 위해 작성된 보고서의 협조서명을 받아왔고 소집회의를 마친 작전참모는 그 보고서를 들고 사단장실로 갔다. 벌써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하기식 나팔소리가 부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단장실을 나온 참모는 보좌관을 통해 또 내일 아침에 보고할 업무를 지시했다. 역시 이날도 밤 늦게까지 사무실을 지켜야 할 것 같다. 자정이 다될 무렵, 낮의 족구게임으로 마련한 간식 라면을 둘러서서 먹을 때 누군가가 외쳤다. “작전처 모토..! 오늘일을 과감히 내일로 미룬다…ㅋ”라고 이야기하자 즉각적으로 “오케이”하고 답이 나왔다. 작전장교들은 부대 정문 앞 독립가옥의 구멍가게 일명 ‘진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빨리 들어가 자고 내일 아니 오늘 새벽에 출근해야 하므로, 짧은 시간동안 두부김치에 소주를 벌컥 벌컥 마셨다. 그러면서 상급자들을 안주삼아 푸념하면서 잠시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관사로 향하며 흥얼거렸다. “보람참 하루일 끝마치고서 ….”라는 군가였다. 식소사번(食少事煩)이라는 사자성어의 의미와 같은 일과(job)였지만, 작전처 요원들은 제갈량처럼 되지않고, 콩나물 시루에 주는 물은 빠져 나가도 콩나물은 무럭무럭 잘 자라듯이 바쁜 하루를 통해 알찬 성과를 쌓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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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71)] 작전장교 일과는 사소함의 연속이지만 쌓이고 쌓여 알찬 성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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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 귀순' 사건 관련 22사단장 보직 해임하고 8군단장 서면 경고 조치
-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군 당국은 최근 북한 남성의 '헤엄 귀순' 사건 당시 경계 실패의 책임을 물어 육군 22사단장을 보직 해임했다. 또 8군단장에 대해 서면 경고하는 등 모두 24명에 대해 대규모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 국방부는 4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22사단 해안 귀순(추정) 관련자 인사조치'를 발표했다. 표창수 22사단장(소장)은 해안경계와 대침투작전 미흡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 책임과 수문·배수로 관리 지휘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어 보직 해임했다. 해당 부대의 여단장과 전·후임 대대장, 동해 합동작전지원소장 등 4명도 같은 이유로 표 사단장과 함께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 상급부대장인 강창구 8군단장(중장)에게는 해안경계와 대침투작전 미흡에 대한 지휘 책임을 물어 육군참모총장이 서면으로 엄중 경고할 예정이다. 이 밖에 상황조치 과정과 수문·배수로 관리와 관련해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18명에 대해서는 지상작전사령부에 인사 조치를 위임했다. 과오의 경중에 따라 조처될 예정이라고 국방부는 전했다. 여기에는 병사 1명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합참과 지작사 합동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임무수행 실태, 상황조치 과정, 수문·배수로 경계시설물 관리 등 식별된 과오의 정도에 따라 관련자 24명에 대해 인사 조치를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8군단장에 대해 서면 경고에 그친 것을 두고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2년 전 북한 소형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 당시에는 8군단장의 과오가 식별돼 보직 해임하고, 육군 23사단장과 해군 1함대사령관이 견책을 받았다. 한편, 후임 22사단장으로는 정형균 육군본부 계획편성차장(준장·육사 48기)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차장은 GOP(일반전초) 대대장, 해안 연대장, 전방 군단 작전처장을 역임해 경계작전 경험이 풍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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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 귀순' 사건 관련 22사단장 보직 해임하고 8군단장 서면 경고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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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34)]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 가칠봉은 치열한 혈전과 사투의 역사 현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강원도 해안면에 위치한 가칠봉(1,241m고지)은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로 가칠봉이 들어가야 비로소 금강산이 1만 2천봉이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칠봉에서 '가' 자가 '더할 加'를 쓰는 만큼 가칠봉은 아름다운 산이지만 6.25남침전쟁 때에는 처절했던 격전장이자 혈전 사투의 현장이었다. 가칠봉은 제 4땅굴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다. 이웃에 있는 도솔산, 가리봉과 함께 태백산맥 중앙부를 이루는 산으로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가칠봉 동쪽에서는 침식분지로 유명한 펀치볼(해안분지)이 펼쳐져 있다. 현재 군사분계선은 가칠봉 북쪽을 지나가고 있으며 능선상에 을지전망대가 위치해 사전 신청하면 민간인의 제한된 방문도 가능하다. 백골 3사단 투입 열흘만에 가칠봉 점령, 이승만 대통령 휘호 ‘지려충순(志慮忠純)’으로 격려 2개 병단 약 54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1951년 5월16일부터 시작한 일명 ‘5월 공세’에서 중공군의 주요 공격목표는 현리 지역의 3사단과 9사단을 앞세운 국군 3군단이었다. 이 공세에서 치욕스런 패배를 당한 3군단은 해체되었다. 국군 3사단은 현리의 패배를 설욕하고자 ‘피의 능선’을 점령한 후 펀치볼 북방의 1052·가칠봉·1211·1320고지 등에서 격전을 거듭하던 5사단과 ‘51년10월 중순 진지를 교대하여 북한군과 이들 고지들을 확보키 위한 혈전에 투입되었다. 북한군은 펀치볼 일대의 요새를 계속 빼앗기자 깎아 세운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고지들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아군의 공격에 안감 힘을 다해 저항했다. 이러한 가칠봉·1052·1211·1252고지 등은 5사단이 한달 동안 맹공을 가했으나 적의 최후 발악적인 방어와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완전한 점령에는 실패한 곳이었다. 1052고지, 가칠봉, 1211고지 등에는 김일성 훈장을 받은 병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북한군 최정예 부대임을 자처하는 최현 중장(종전후 북한 민족보위상 역임)이 지휘하는 2군단의 예하 사단들이 필사적으로 아군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다. 개전초기 낙동강 전선의 ‘안강·기계전투’시 기갑연대장이었던 3사단장 백남권 장군은 진지를 교대한 후 22연대와 23연대로 하여금 1052고지와 가칠봉을 공격케 하고 18연대를 사단 예비로 운용했다. 공격개시 1주일만에 장춘권 대령이 지휘한 22연대가 적의 방어 벽을 뚫고 큰 피해 없이 1052고지를 점령해 버림으로써 3사단의 용명을 떨쳤다. 당시 장춘권 22연대장(예비역 육군 소장)은 5사단이 한달 동안 공격을 했어도 점령 못한 난공의 작전지역에 대해 사전 충분한 정찰과 분석을 했다. 공격을 위한 전술적인 계획 등을 치밀히 짜 놓은 후, 16개 대대의 사단 전 포대 약 80문의 포와 3만여 발의 포탄을 지원 받도록 협조도 했다. 연대의 공격 목표는 1052고지가 있는 능선을 따라 약4km에 걸쳐 솟아 있는 5개의 산봉우리들이었는데, 20초 사이에 봉우리마다 7천여발씩의 집중 포격을 가했다. 새벽 6시쯤 포격이 멈추는 순간 공격을 개시했는데 정오도 안돼서 5개 고지를 모두 점령해 버렸다. 어느 고지에서는 몇 번씩 육박전을 거듭하기도 했지만 큰 피해 없이 비교적 쉽게 점령했다. 공격 개시 전 1개 중대 병력의 특공대를 적 후방에 은밀히 침투시켜 보급로를 차단하고 교란시켰던 작전도 아주 주효했었고 돌격해 올라가 보니 고지의 호들은 우리 포격에 모두 부서졌고 박살이 나 버린 적병 시체만 나뒹굴어 포로를 한 명도 못 잡았다. 그러나 목표를 점령한 날밤 적의 기습적인 역습을 받아 가운데 고지를 빼앗겼었는데 밤새 전투를 벌여 새벽엔 다시 탈환했다. 이 전투에서는 공격 때보다 고지들을 방어할 때 피해가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적 진지들이 포격으로 다 파괴돼 버려 고지 점령 후 새로이 진지 구축하는 동안의 적 기습에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김종순 대령의 23연대가 가칠봉까지 점령해 버렸다. 이 두 고지 전투는 점령한 후의 영예에 앞서 눈물겨운 고투와 쓰라린 피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당시 김덕준 대령(예비역 육군준장, 한국제강협회 부회장 역임)이 지휘한 진백골18연대는 예비대로 있다가 23연대와 교대해서 가칠봉 일대의 무명 고지들을 방어했는데 북한군은 매일 밤 나팔을 불며 공격을 했다. 진지 구축전에 기습을 해오자 급한 나머지 북한군이 도주할 때 미처 수습치 못한 적의 시체들을 끌어다 참호 앞에 쌓아 방탄벽을 만들며 적 공격을 방어했다. 18연대장도 훗날 증언시 “사실, 공격 때보다 고지들을 방어할 때 피해를 더 많이 보았다”고 토로했다. 역전의 백골 3사단은 10여일 만에 1052고지와 가칠봉을 점령해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1211·1320고지 등은 천연의 지형적 조건과 북한군의 결사적인 방어 때문에 점령하지 못하고 작전임무가 끝나고 말았다. 난공불락 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가칠봉 일대에 3사단이 투입되어 이 같은 전승을 올리자, 유엔군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지려충순(志慮忠純)’이란 휘호를 써 보내 격려를 했다. 유엔군사령부서는 미국 은성 훈장 3개와 동성 훈장 6개를 보내 왔다. 하루 500명 사상 낸 최악의 사투, 탄우 맞으며 육박전…적 시체로 방탄벽 쌓기도 북한군들은 휴전이 되자 “6·25전쟁 중 이 1211 고지 등과 철의 삼각 지대의 오성산은 자기들이 끝까지 사수를 했다”고 호언하며 그 감투정신을 자랑했다고 한다. 이 가칠봉과 1211 고지일대의 전투는 문자 그대로 악전 고투였으며 처참한 산악전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아군은 벼랑 아래에서 노무자들이 로프를 타고 올라와 보급해 주는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며 육박전을 계속했고, 때로는 처리치 못하고 도주한 북한군의 시체들을 주워 모아 벙커 앞의 방탄벽을 쌓기도 했다. 백골 3사단은 이 일대에서 1개 중대 병력이 40여명밖에 안 남고 하루에도 3∼5백 명의 전 사상자가 나올 때가 있었다. 가칠봉 공격시에는 전방 23연대와 방어하는 적과의 거리가 불과100야드로 대치하고 있었다. 산봉우리 위에서 감제하는 적병들은 아군이 움직이기만 하면 총격을 내리퍼부었다. 인력이 모자라 사단 본부 요원과 군악대까지 총동원해 노무자들과 함께 탄약과 보급품을 지어 나르는 데 5시간 이상 걸렸다. 따라서 사단장은 어려운 도보 보급 해결을 위해 공병대대로 펀치볼에서 가칠봉 밑의 능선까지 올라가는 도로도 개설 했다. 미군 항공 지원을 받아 가칠봉에 네이팜탄을 일주일 동안 물 붓듯 퍼붓고 공격해 올라가는데도 여전히 북한군의 사격은 계속되었다.사단장은 특공대가 고지로 돌격해 올라갈 때는 무반동총과 기관총 진지로 나가 망원경으로 확인하여 목표를 조준해주며 진두 지휘를 했다. 그리고 고지들을 점령한 후에는 적의 야간 역습에 대비하여 반듯이 해가 지기 전까지 완전 사주 방어 태세를 갖추게 했다. ‘한국의 리지웨이’ 백남권 3사단장, 자결하고 싶다며 통한의 속죄 난공불락의 1052고지와 가칠봉을 점령하자 유엔군 방송 종군기자가 3사단장 백장군을 직접 찾아와 생방송 인터뷰도 했다. 적병과 아군의 시체가 깔려 있고 구더기가 들끓는 산꼭대기에서 사단장은 제일성으로 “남의 귀한 자식들을 이렇게 죽인 것에 죄스럽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혈전 끝에 막 점령한 고지의 정상에 서서 담배를 한 대 피우니 그처럼 감회가 깊을 수가 없다. 계속 진격해서 백두산 꼭대기에 대한민국 태극기를 꽂은 후 나는 내 앞가슴에 차고 다니는 이 두개의 수류탄을 뽑아 그 동안 전장에서 죽어간 내 부하들의 죽음을 속죄하는 뜻으로 자결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①지휘관의 공명심 ②지휘관의 무지 ③지휘관의 태만에 의한 훈련 부족 등으로 인한 사병들의 희생을 항상 경계했다. 나는 오늘 많은 부하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을 딛고 영광스러운 지휘관이 됐지만 죽어 넘어진 영령들을 바라볼 때 가슴이 메어지고 속죄의 눈물이 흐름을 금할 수 가 없다”고 고지점령 소감을 술회했다. 이때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은 백남권 3사단장에게 항상 수류탄을 앞가슴 양쪽에 차고 다닌다고 ‘한국의 리지웨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우리 3사단이 단시일에 1052고지와 가칠봉을 점령한 것은 현리 패전 후 양양 FTC에서의 철저했던 훈련과 미군의 화력 및 항공 지원에 큰 힘을 입었던 겁니다”라고 승리의 원인을 사전 교육훈련과 화력지원 등 유엔군의 공로로 돌렸다. 또한 “1211고지는 여러 번 공격을 했으나 끝내 점령을 못했어요. 이 고지는 너무 가파른 절벽이라 우리 사병들이 가까스로 9부 능선까지 기어올라가 수류탄을 던지면 도로 굴러 내려와 버리더군요.이 같은 불가항력의 지형에다 적의 발악적인 저항 때문에 거의 불가능했어요”라며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역전의 3사단은 혈전의 ‘가칠봉전투’를 치루다가 미7사단과 진지를 교대하고 11월말 양구로 나왔는데 인명 피해가 1개 연대 병력에 가까운 전사3백여 명, 부상1천5백여 명이나 되었다. 백남권 3사단장은 휴전 후 1957년 육군사관학교 교장 재직시 화랑의 후예 기상을 닦는 국방의 요람지로 육사를 ‘화랑대’라고 명명한 것이 유래가 되어 현재까지도 이 별칭이 불리우고있고, 육사와 인접한 ‘태릉정류소’라고 불리던 경춘선 역을 ‘화랑대역’으로 변경하게도 만들었다. 부하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백장군은 육군보병학교장, 21사단장, 논산훈련소장, 6관구사령관 등을 거쳐 육군소장으로 전역 후 인천제철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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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34)]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 가칠봉은 치열한 혈전과 사투의 역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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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3사관학교 제56기 483명 소위 임관…부사관 복무한 최현성 소위 영예의 대통령상
- [뉴스투데이=안도남 기자] 3일 오후 육군3사관학교는 경북 영천 3사 충성연병장에서 서욱 국방부장관 참관하에 제56기 졸업 및 임관식을 개최했다. 이날 소위 계급장을 다는 483명(여군 24명 포함)은 2019년 입교해 2년 동안 일반전공과 군사학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전공에 따라 문학사, 이학사, 공학사 학위와 함께 군사학사 학위를 받는다. 행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외부인사 초청 없이 최소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참석하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 국방홍보원 유튜브와 페이스북으로 생중계 했다. 최고 성적으로 대통령상을 받는 최현성 소위는 육군 5사단 GOP(일반전초) 부대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어 이날 임관하면서 2개의 군번을 갖게 된다. 이날 최 소위는 "부사관 시절에도 군복과 어깨의 태극기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는데 장교로 임관하게 된 지금 그 자부심과 긍지가 더 확고해졌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상은 김영재 소위, 국방부장관상은 김남규 소위가 각각 수상했다. 6·25전쟁 당시 수도사단 소속이던 고(故) 서상안 하사의 외손녀인 황선영 소위는 이날 외할아버지의 화랑무공훈장을 대신 받았다. 황 소위는 "국가에 헌신한 외할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이어가게 돼 명예롭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한 할아버지 故 박영윤 중령과 육군 중위로 전역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육군 장교의 길을 걷게 된 박인준 소위는 3대 군인가족이다. 박 소위는 태권도 4단, 특공무술 3단, 합기도 3단, 용무도 2단, 킥복싱 1단 등 도합 13단의 무도 단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968년 정예 초급장교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육군 3사관학교는 대학 3·4학년 과정에 편입해 정예 장교로 임관하는 세계 유일의 편입학 사관학교로 지난 50여 년 동안 15만여 명의 장교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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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3사관학교 제56기 483명 소위 임관…부사관 복무한 최현성 소위 영예의 대통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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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위, 의견수렴 위한 현장 방문 나서
-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는 데이터 경제의 핵심인 가명정보의 안전한 활용을 지원하기 위하여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3일 밝혔다. 이번 방문은 가명정보 처리와 관련하여 기관‧기업 등 현장의 의견을 직접 청취하고 제도에 반영하기 위함이다. 결합전문기관인 삼성SDS를 시작으로 가명정보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업 등 총 10여곳을 선정해 방문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등으로 현장방문이 어려운 기업은 온라인을 통한 의견수렴도 병행한다. 이번 현장방문에서는 개인정보위와 기관의 가명정보 처리·결합 담당자가 현장의 애로사항 및 건의사항을 자유롭게 논의하여 현장지원 및 제도개선을 병행 추진한다. 개인정보위는 결합전문기관에서 추진중인 가명정보 결합 시범사례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와 결합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지원사항을 확인하고, 민간기업 등에서 현재 가명정보를 활용하고 있는지와 가명정보를 활용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들어 제도개선사항을 확인해 해결해나갈 계획이다. 개인정보위는 이번 현장방문이 가명정보 이용자의 입장을 반영한 가명정보 제도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앞으로도 관계기관‧기업과의 소통을 활성화하는데 더욱 노력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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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위, 의견수렴 위한 현장 방문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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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70)] 사관특채(유신사무관), 선후배 등까지도 일(jop)을 위한 든든한 자산이자 잠재능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인생(Life)은 B(탄생, Birth)과 D(죽음, Death) 사이에 있는 C(선택, Choice)의 연속이라고 한다. 사관학교에 입학해 군복을 입은 지 어언 10년이 되자 동료들의 진로가 확연하게 차이나는 시비 쌍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동기생 40명이 사관특채(유신사무관)으로 지원하여 군복을 벗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라는 법화경의 글귀처럼 청운의 꿈을 향한 각자의 길을 선택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 자신의 운명(運命)에 따라 사회 각층의 직업(jop)분야에서 그 꿈을 실현 세상에 태어난 것도 선택이다. 수만개의 정자 중에서 발탁되어 엄마의 뱃속에서 꿈을 키워 우렁차게 울면서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그 선택의 결과로 어떤 이는 재벌의 2세가 되어, 또 어떤 자는 가난한 가정 등에서 나름대로 성장했다. 결국 자신의 운명(運命)에 따라 사회 각층의 직업(jop)분야에서 그 꿈을 실현해 간다. 당시 중대장을 마치고 사단작전장교가 되어 정신없이 밀려오는 업무의 파도 속에 허부적거리다 보니 태릉골(육사)에서 군복을 처음 입어본 지 10년이 지났고, 약 290명의 동기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첨단 실무자들이 되어있었다. 돌이켜보니 좌우 인접 사단에도 동기들이 작전장교 및 인사장교 보직을 수행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약 40명이 사관특채(유신사무관)로 지원하였다. 사실 이 사관특채(유신사무관)제도는 필자가 사관학교 입교 시험을 볼 때 최초로 생긴 제도로 당시 육사 25기가 최초로 사무관으로 임용되어 각 분야의 공무원 활동을 시작했다. 사관특채(유신사무관) 1기인 권경석 전 의원(17·18대 국회의원)은 "관료조직이 타성과 부패에 빠지는 여느 개발도상국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제도라면서 지원자를 모집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한마디로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수단의 하나"라는 것이 권 전 의원의 평가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점점 심해지는 군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1977년 1기부터 1988년 11기로 폐지될 때까지 배출된 인원은 총 784명. 육사 기수로는 25∼37기에 해당한다. 시행 초기 5년간 100명 안팎을 선발했지만 전두환 정권 3년차인 1982년부터 50명 내외로 인원이 줄었다. ■ 미꾸라지 어항에 천적 메기를 넣어두면 미꾸라지들이 더 생기 있다는 '메기효과' 유신사무관들은 사관학교에서 배운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라는 ‘사관생도신조’로 무장을 하고, 전후방 각지에서 소·중대장직을 체험하여 조직관리능력과 리더십을 배양한 상태라 각종 비리와 불합리와 맞서 싸워 많은 신화를 창조했었다. 헌데 '유신사무관 폐지'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약속대로 이 제도를 없애 버렸다. 민주화 열망이 분출하던 1987년, 안타깝게도 유신사무관은 군사독재의 주요 상징으로 척결대상에 꼽혔기 때문이다. 군이라는 특정 집단에서만 사무관을 한 해 100명 넘게 선발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였다. 반대로 공직사회와 민간에는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왔다. 유신사무관 106명을 임용한 1977년 당시 행정고시(21회) 선발인원이 134명이었으니, 당시 공직사회 안팎에서 느꼈을 경계심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필자의 육사입교 시험시 입시요강에 최초 공고됐었는데, 결국 육사입교시 첫 대상이었던 필자 동기들을 끝으로 1989년에 폐지되어 1978년에 입교한 육사 38기부터는 유신사무관 선발이 없어졌고, 40여년이 지난 작금에는 공무원 조직중에 유신사무관들은 모두 퇴직하여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수단으로 시작된 제도였지만 시행 후, 행정고시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획일적·폐쇄적인 관료사회에 다양성을 더하는 자극제였다고도 볼 수 있다. “미꾸라지 어항에 천적 메기를 넣어두면 미꾸라지들이 더 생기 있다”는 '메기효과'와 비슷한 논리이다. 마지막 사관특채(유신사무관) 11기인 한문철(육사37기) 전 서울시의회 사무처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특혜 논란과 유신사무관이라며 평가절하하고 견제하는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사관특채(유신사무관)의 존재가치는 일부가 주장했던 부정적인 측면도 보다는 소속된 조직을 정화시키고 확고한 국가관과 사명감으로 공무원 사회를 변화시킨 신화로 남아있다. ■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의미처럼 떠나간 자들까지도 인맥형성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라는 법화경의 의미처럼, 4년 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사관학교를 졸업해 장교로 임관했고, 야전에 배치되어 5년이란 시간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동기들의 일부가 사회로 환원됐다. 그 와중에 필자보다 늦게 전입 왔던 선후배와 동료 등도 차기 보직을 위해 먼저 전출갔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들을 아쉬워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나머지 250명의 동기생들은 또다시 경주마가 되어 군생활이라는 트랙을 질주해야만 했다. 한편 ‘거자필반(去者必返)’ 즉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의미처럼, 생도시절 훈육관 이었던 선영제 대령(육사25기)이 연대장으로 전입 왔으며 친 동생처럼 가르쳤던 한설, 신경철, 김상철(육사40기) 후배들도 휴가를 이용해 방문해 해후의 정도 나누었다. 인생(Life)은 C(선택, Choice)의 연속이다. 물론 그 선택 속에서 일부 악연도 있었으나, 대부분 새로운 만남을 통해 서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또다른 인맥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먼저 사회로 환원된 사관특채(유신사무관)까지도 포함한 좋은 관계의 인맥은 필자의 군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법화경 한 구절의 의미가 새삼 가슴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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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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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70)] 사관특채(유신사무관), 선후배 등까지도 일(jop)을 위한 든든한 자산이자 잠재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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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분석] 얼굴인식 출입보안 솔루션 출시‘봇물’
-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매장입장부터 결제까지 논스톱으로 처리한다. 아파트 출입도 얼굴 인식만으로 가능하다. 출퇴근하면서 출입 카드가 필요없는‘얼굴이 바로 출입카드’인 시대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유통, 건설, 제조 및 서비스 등 모든 업종에서 얼굴 인식을 활용한 출입보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최신 기술을 적용한 얼굴인식 출입보안 솔루션 출시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LG CNS는 지난해 AI 얼굴 인식 출입보안 기술을 개발해 LG싸이언스파크에 위치한 본사 출입게이트와 LG화학, LG디스플레이에 설치했다. LG CNS의 출입통제 기술에 중국 AI기업 센스타임의 얼굴 인식 기술이 더해진 이 솔루션은 마스크를 착용해도 0.3초만에 얼굴 정확도를 99% 인식할 수 있고 발열감지와 마스크 착용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특히 이 기술은 마스크를 턱에 걸치는 '턱스크'까지 감지해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으면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포스코ICT는 자체 개발한 얼굴 인식 솔루션 '페이스로'(Facero)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이용자 정보에 대한 보안을 한층 강화했다. 페이스로는 이용자 얼굴로 인증해 출입을 관리하거나, 소액결제, 출결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에 적용 가능한 솔루션이다. 페이스로는 지난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으로부터 99.9%의 정확도를 인증받았으며 얼굴 인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대여할 수 없다. 회사 관계자는 “페이스로는 AI기반 딥러닝 기술이 적용돼 등록된 얼굴의 미세한 변화까지 반복 학습해 사용하면 할수록 정확도가 향상된다는 특징을 갖고있다.”고 말했다. 에스원은 AI와 생체인식 기술을 탑재한 발열감지 솔루션인‘에스원 히트스캔’을 출시했다. 히트스캔은 인공지능이 출입자의 얼굴을 인식해 출입을 관리하고, 얼굴인식 단계에서 AI가 마스크 착용 여부도 검출한다. 보안시스템과 연동해 출입자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거나, 감염병 의심 기준에 해당하는 발열이 확인될ㅈ 경우 출입을 통제한다. 턱에 걸치는 등 호흡기의 일부만 가리는 불성실한 마스크 착용 방식도 잡아낸다. 에스원 관계자는“60만건의 실험을 통해 마스크 착용 유무를 99% 이상 검출해내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리드원 또한 최근 방문객을 자동으로 구분하는‘비지터체커(Visitor Checker)’의 연구개발을 마쳤다. 비지터체커는 딥러닝을 기반으로 한 AI를 통해 한명씩 멈추지 않고, 동시 입장하는 각 개인을 약 97%의 정확도로 실시간 구별한다. 마스크를 쓴 얼굴 역시 약 94% 이상 정확하게 구분 가능하다. 방문객 정보를 미리 등록할 필요가 없이 다중 방문객을 실시간으로 구분하여 출입 기록을 제공한다. 회사 측은 “페이스 아이디(FaceID) 기능을 제공하여 특정 방문자를 별도 등록할 수 있어 등록된 방문자와 단순 방문자를 분류하여 인식하고 재방문객도 구분할 수 있어 그중 출입 빈도가 높은 방문자는 분류하여 방문 기록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한편 산학 협동을 통한 연구 개발도 활발하다. 한국전기연구원(KERI)은 AI 전문 업체인 ㈜아이이에스, ㈜아디아랩과 공동으로 출입자 인식과 발열 체크는 물론, 인물에 대한 각종 정보까지 한 번에 확보할 수 있는 'AI 얼굴인식과 출입자 관리 시스템'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KERI 측 연구팀에 따르면, 다양한 상황의 알고리즘 분석 연구를 통해 기존 상용제품의 안면 인식률인 68~94%를 훨씬 뛰어넘는 98~99%를 달성했다.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도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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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분석] 얼굴인식 출입보안 솔루션 출시‘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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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33)] 펀치볼 전투 승리 영광과 환희의 색깔보다는 남겨진 상처와 고통을 성찰해야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실제로 6·25남침 전쟁사는 양구 펀치볼(해안분지)의 고지들에서 약 221일 동안 벌어졌던 주요 전투를 9개, 사상자 수를 약 25만 여명으로 압축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백석산, 도솔산, 단장 및 피의 능선, 펀치볼, 가칠봉 등 핵심 전투들이 벌어진 고지들의 이름을 딴 양구군 월운리의 ‘펀치볼지구전적비’, 만대리의 ‘가칠봉전투전적비’ 등 많은 ‘전적비’속에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전쟁기념물은 선별되고 구성된 기억을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목적이 전제돼 있어 종종 전쟁이 남긴 상처와 고통에 대한 성찰적 기억보다는, 전쟁 승리의 영광과 환희를 채색하는 방식과 가깝게 세워졌다. 미 8군 사령관인 밴 플리트 중장은 7월21일 미 10군단과 국군 1군단에 양구의 펀치볼(해안분지) 일대를 공격하게 했다. 그곳은 지난 6월19일 ‘도솔산 전투’에서 국군 1해병연대에게 패한 북한군들이 도주한 대우산이 포함된 지역이었다. 미 2사단이 7월27일 펀치볼(해안분지) 서쪽의 대우산(1179m)을 점령하기에 이르렀으나, 장마 때문에 공격은 중단되었다. 8월 중순이 되어 장마가 끝나자 미 10군단의 군단장인 바이어스 소장은 펀치볼(해안분지) 북쪽의 고지들을 연결한 선에 작전통제선 헤이스(Hays)라인을 설정하고 다시 각 사단에 공격을 명령했다. 8월18일부터 서측엔 국군 7사단이 백석산(1142m) 기슭인 양구 방산면 송현리의 554고지·901고지 공격에 나섰으며, 중앙 미 2사단과 국군 5사단은 이른바 ‘피의 능선’이라고 불리는 983고지·940고지·773고지 공격에 나섰다. 그리고 국군 8사단은 해안분지 동북쪽인 인제군 서화면 노전평의 1031고지·965고지 공격에 나섰다. 서측 국군 7사단은 8월26일 554고지를 점령했고, 국군 8사단도 1주일 동안 격전을 벌인 끝에 노전평전투에서 승리해 1031고지와 965고지를 확보했다. 하지만 미 2사단과 국군 5사단 병력이 투입된 피의 능선전투는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미 10군단은 북한군의 병력과 화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8월29일 예비부대로 편성되어 있던 미 해병 1사단을 해안분지 북쪽의 고지 공격에 새롭게 투입했다. ■ ‘헬기공중기동 작전’ 최초 시도로 격찬 받은 미 해병 1사단의 ‘펀치볼전투’ 화채그릇처럼 움푹 파인 모양을 하고 있어서 펀치볼(Punch Bowl)이라고도 불리는 해안분지는 1천m가 넘는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당시 북한군은 부대 교대를 실시하여 북한군 3군단이 2군단 지역을 인수하고 3군단 예하1사단이 해안분지 북쪽의 924고지와 1026고지를 각각 ‘김일성 고지’와 ‘모택동 고지’라고 부르면서 방어진지를 공고히 구축하고 있었다. 이 고지들에 대한 공격 임무를 맡은 미 해병 1사단장 토마스 소장은 당시 사단에 배속되어 있던 국군 해병 1연대로 하여금 김일성(924m)고지와 모택동(1026m)고지를, 미 해병 7연대에게는 해안분지 동북쪽의 702고지와 660고지를 공격하게 했다. 8월 31일 공격을 시작한 국군 해병 1연대는 산악의 특징상 기동로가 제한됨을 고려하여 정면보다는 측방으로 우회, 좁은 공간에서 목표를 공격하여 9월 2일 김일성(924m)고지를 점령했으며, 9월 3일에는 모택동(1026m)고지도 점령했다. 미 해병 7연대도 9월 1일 702고지를 점령했으며, 9월 2일에는 660고지도 확보했다. 미 해병 1사단은 9월 8일 다시 전방의 고지들에 대한 공격에 나서 9월 20일까지 격전 끝에 749고지와 해안분지 북쪽 5km 812고지까지 추가로 점령했다. 이로써 미 10군단은 작전의 목표를 이루어 펀치볼(해안분지)을 완전히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사단은 885고지에 224명의 수색중대와 36톤의 보급품을 헬기를 이용하여 공중 투입하는 ‘헬기공중기동 작전’을 최초로 시도하여 미국 신문에 보도됐고 격찬을 받았다. 이 전투에서 미 해병 1사단은 400여 명의 전사자와 1천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북한군 2,700여 명을 사살하고 550여 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국군 해병 1연대도 100여 명의 전사자와 3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380여 명의 북한군을 사살하고 40여 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 국군 5사단의 혈전으로 고지 주인이 6번이나 바뀐 가칠봉전투 펀치볼(해안분지) 북쪽의 김일성(924m)고지와 모택동(1026m)고지 등이 미 해병 1사단에 의해 점령되자 해안분지 서쪽의 ‘피의 능선’을 방어하던 북한군은 퇴로가 차단되어 고립될 것을 우려해 이른바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이라고 불리는 방산면 문등리와 동면 사태리 일대의 894고지·931고지·851고지로 퇴각했다. 그러자 미 10군단 군단장인 바이어스 소장은 미 2사단에게 좌측 ‘단장의 능선’을 공격하게 했으며([김희철의 전쟁사](30) ‘스타크래프트 게임’ 인기맵 제목이 된 ‘단장의 능선’ 전투 참조), 국군 5사단에게는 우측에서 해안분지 북서쪽의 가칠봉(1,242m)을 병행공격하게 했다. 가칠봉 지구는 해안분지 북쪽의 분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외곽에는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이러한 지형때문에 6.25 당시에는 군 작전상 대단히 어려운 지점이었다. 북한군은 이러한 자연지형을 이용해,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해 놓고 각종 포화의 지원 하에 반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아군은 저지대에 있어 지형상 불리한 조건이었으나 5사단장 민기식 준장, 27연대장 유의준 대령 등의 지휘하에 전투에 임했다. 8월30일까지 각 부대 배치와 수색 작전을 통해 정찰을 완료하고 배치된 위치에서 진지를 구축한 후, 8월31일 작전상 유리한 지점까지 북한군을 유인하여 막대한 희생을 입히고 총공격을 개시하여 가칠봉(1241고지)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역습하는 북한군의 저항을 격퇴하면서 2일간의 부대 방어에 간신히 임했으나 다시 빼앗겼다. 9월4일 민기식 5사단장은 27연대를 선두로 가칠봉 공격을 다시 시작했다. 국군은 가칠봉을 점령하는데 또 성공했으나, 북한군이 27사단·12사단의 4개 연대 병력을 동원해 대규모 역습이 가해져 고지에서 부득이 퇴각한 후, 재차 육박전을 전개하는 등 여러 차례 진퇴를 반복하였다. 그 뒤 가칠봉에서는 10월 14일까지 40여 일 동안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고, 여섯 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전투 끝에 국군은 가칠봉과 인근의 고지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가칠봉전투’에서 패하면서 북한군은 사태리 방면의 쌍두령(雙頭嶺)으로 퇴각했다. 이 전투에서 국군 5사단은 600여 명이 전사하고 400여 명의 실종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어 ‘51년10월 중순에 국군 3사단과 임무를 교대하였다. 반면 북한군은 1천여 명이 사살 당하고 250여 명이 생포되었다. 결과적으로 국군 7, 8사단은 북한군 5군단이 방어하던 백석산을 공격해 10월1일 점령했고, 또한 5사단은 가칠봉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미 10군단은 북한군을 패퇴시키고 양구 북방의 고지를 확보해 취약했던 이 지역의 방어선을 효율적으로 구축했다. 그리고 유엔군은 중동부전선에서 전력의 우위를 입증하면서 공산군에 협상을 압박하는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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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33)] 펀치볼 전투 승리 영광과 환희의 색깔보다는 남겨진 상처와 고통을 성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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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서비스, 국내 LCC 항공사 및 중앙119구조본부와 헬기 정비계약 체결
-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자회사인 한국항공서비스㈜(이하 KAEMS)가 국내 LCC 항공기는 물론 정부기관의 헬기 정비까지 수행한다. KAEMS는 지난달 22일 중앙119구조본부와 EC-225 정비 계약을 체결했고, 23일에는 티웨이항공과 제주항공의 민항기 21대의 정비 계약을 체결했다. 그동안 해외업체가 독점해 오던 EC-225 헬기정비를 국내업체가 맡은 것은 KAEMS가 처음이다. 헬기운영 기관과 원활한 소통은 물론 정비 비용 절감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KAEMS는 2019년 B737 기종에 대한 미국 연방항공청(FAA) 정비 인증을 받은 데 이어 올해 상반기 안에 A320 계열 항공기에 대한 인증도 확보할 계획이다. 또한, KAEMS는 현재 수행 중인 해병대와 경찰청의 수리온 정비는 물론 연내에 해양경찰청, 산림청 등과도 직접 계약을 통한 정비 물량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KAEMS 고이근 상무는 “미국 FAA 정비인증 기종의 확대와 함께 태국에 정비인증(AMO)을 신청하여 심사 중”이라며 “2021년을 해외 정비물량 확보의 원년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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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서비스, 국내 LCC 항공사 및 중앙119구조본부와 헬기 정비계약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