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인도양을 통과해 동해로 가고 있는 미국 항공 모함 USS 칼 빈슨호 ⓒ 뉴스투데이
(시큐리티팩트=강철군
기자) 북한과 한국의 북핵 계산법은 ‘산적’과 ‘나그네’의
딴소리를 닮아 워싱턴의 외교당국자들의 유화제스처에 안심하기
어려워 2017년 어느 날, 산길에서 산적이 칼을 들고 나그네를 죽이고 휴대폰 등 소지한 재물을 모두 뺏을 건지,
아니면 인질로 잡아 집에 있는 재물까지 뺏을 건지 고민 하고 있었다. 나그네는 “주머니에 있는 돈만 조금 주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과 한국의 속마음은 이처럼 완전히 딴 판인지도 모른다. 물론 산적은 북한이고 나그네는 한국이다. 6.25남침
전쟁 이후 줄 곳 핵개발을 추진해온 북한은 비핵화를 선언한 노태우, 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한국 대통령들을 화전양면 전술로 기만하며
슬프고 안타까운 블랙코미디를 연출해온 것이다. 그러고도 현재까지 핵개발 저지 실패를 통감한 대통령은 한명도 없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정말 개탄스럽다는 지적이 거세지는 추세이다. 지난 9월 3일 북한 6차 핵실험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9월 9일
전쟁설’이 퍼졌다. 북한의 정권 수립일인 9·9절에 미국이 북한을 공습하게 한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다. 소문에 따라 시중에는 금값이 폭등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한반도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되풀이된 북폭설의 하나일 뿐”이라며 “미국이 전쟁을 개시할 조짐은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는 우선 미국이 단기적으로 북한을 초토화하려면 최소한 2개 이상의 항모 전단이 한반도 근처로 와야 하고 20만
명이 넘는 주한미군부터 소개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미국 스스로 당장 전쟁을 할
뜻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워싱턴의 군사 및 외교 당국자들은 군사적 옵션도 검토하지만 “외교적 구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 “곧
폭격할 나라면 경제 제재안을 만들기 위해 중국·러시아와 저런 신경전을 벌일 이유가 없다” 등등의 유화 제스처를 쏟아 내기도
한다. 한 전역장성, “평화로 도망치면 망하고 전쟁을 각오하면 평화 찾아와”
조언 그러나 역사는 반복 된다. 중국 역사상 수퍼 부국이었던 송나라는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계속
도발하는 금나라와 화친에만 몰두하던 나머지 전쟁에 참여하면 항상 승리하는 명장 악비까지 죽이며 전쟁을 방지하려 했지만 결국
멸망했다. 조선시대 이율곡 선생이 10만양병설을 주장하며 국방력 강화를 외쳤으나, 당파 싸움 끝에 일본에 간 통신사의 의견도
제대로 반영 못하고 전쟁을 대비 못하다가 임진왜란, 정묘호란 등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카네기 국제평화단이 발간하는
“세계의 전쟁”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기원전 1496년부터 약 3357년간을 분석한 결과 평화기간은 227년이고 전쟁기간은 3357년이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도 “결코 전쟁을 피할 수는 없다. 단지 한 쪽의 이익을 위해 연기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손자병법에
“무시기불공 시오유소 불가공야(無恃其不攻 恃吾有所 不可攻也)” 글귀가 교훈이다. ‘적이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믿지 말고, 적이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대비 태세를 갖춰라’라는 뜻이다. 우리 전 국민이 전쟁을 회피하려 전전긍긍 할 때 송나라나
임진왜란처럼 전쟁은 반드시 일어난다. 하지만 “그래 한번 덤벼봐라”하고 싸울 것을 각오하고 전쟁을 대비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 전역 장성은 8일 기자와 만나 북핵 사태로 인한 한반도 전쟁위기에 대한 대책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국가 멸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건져 올린 이순신 장군의 명언이 다시 한 번 가슴을 때린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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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성주 주민들이 7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스투데이
(시큐리티팩트=강철군 기자) 김정은 1인 독재체제인 북한, 11년만에 치명적 공격무기 ‘핵 탄두’
완성단계 다원주의 토대로 한 민주주의체제인 한국, 방어무기인
사드배치 두고 2년째 갈등중 북한의 핵무장 속도전은 무서운 가속도를 내고
있다. 2006년 1차 핵실험(진도3.9)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두 차례(진도4.8, 5.0)핵실험 끝에 2017년 9월 3일 제6차
핵실험(진도5.7~6.3)으로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반면에 휴전선 건너편에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2017년 9월 7일 새벽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있었다. 사드 추가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과 시민단체
400여명이 참외와 물병을 던지고 있었고 전국에서 집결한 경찰 8,000명은 반대 집회 참가들을 해산 시키고
있었다. 이런 국론 분열 속에서 지난 3월 사드 2기가 최초 배치됐다. 장비가 국내로 반입
된지 6개월 만인 9월 7일 8시22분께 잔여4기와 발사대, 시설 공사를 위한 장비·자재를 실은 차들이 성주기지에
들어갔다. 상층고도(40~150km)에서 요격하는 시스템인 사드체계는 우리 군이 2020년
초반까지 구축하게 되는 하층고도(40km)이하의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KAMD)와 중첩방어를 담당하여 한국형 3축 체계(Kill-Chain,
KAMD, KMPR) 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미군의 사드 1개 포대 구성이 6개월 만에
마무리됐지만 앞으로도 중국과 국내 반대세력들에 의해 정치·사회적 논란 및 갈등이 크게 불거질 것이 예상된다. 이런 갈등은 총 사업비 1조 765억 원이 투입된 제주민군복합항(해군기지 포함)건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5년 3월에
기본 계획이 수립되어 공사를 시작했지만 평화와 환경 이름을 앞세운 외부 세력이 개입되면서 강정마을 인심은 갈렸다. 공사는 14개월이 지연돼 2015년 2월 준공식을 했다. 공사비 가운데 약 40%인 4,000여억 원이 지역 건설 업체로
들어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으나 공사 방해 시위로 지연되면서 275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되어 현재도
소송중이다. 주한 미군기지의 평택이전 과정에서도 시민단체와 일부 주민의 사업 반대로 사업은
3년 6개월이나 지연됐다. 이로 인해 사회적 비용 손실은 537억 원으로 추산됐다. KTX고속철도 대구-부산 구간 천성산 터널공사는 “늪지파괴로 도롱뇽 서식지가 없어지고, 지하수도 고갈될 것”이라는
환경단체의 반대로 1년 4개월간 공사가 중단됐다. 공사 뒤 오히려 더 많은 늪이 형성됐고 도롱뇽의 서식지도 보존된 것으로
확인됐다. 위험한 함정, 민주주의체제가 최선이지만 전시에는 전체주의가
유리? 이제 이런 소모적 논쟁과 갈등에서 벗어나야한다. 북한 핵개발 위협을
직시하고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다원주의를 토대로 민주주의 정착시킨 국가인 데 비해 북한은
공산당 1당, 아니 김정은 1인 독재라는 전체주의 체제이다. 인간의 삶의 질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고양되지만, 전시에는 전체주의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데 함정이 있다.
▲ 그래픽=뉴스투데이
(안보팩트=김희철 기자)
북한의 제 6차 핵실험 도발은 김정은의 내부통제 및 대미협상 카드용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3일 13시 30분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당일 12시 29분에 북한의 6차 핵실험 도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NSC 전체회의에는 정의용 안보실장, 이낙연 국무총리, 송영무 국방부장관, 강경화 외교부장관 등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이 전부 참석했다.
그 와중인 15시30분에 북한 <조선중앙TV>에서 오랜만에 재등장한 고령의 이춘희 인민방송원이 “6차 핵실험은 대륙간탄도로켓(ICBM)장착용 수소탄 시험이다.”라고 발표했다. 74세의 이춘희 북한 간판 앵커는 김정은 일가의 입으로 불리면서 노동당 간부와 불륜도 있었지만 김일성·김정일의 연이은 신뢰를 받아 각종 도발 등 중요 이슈에 꼭 등장한 인물이다.
9.9절(인민군 창건일)을 맞이하여 중요 도발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김정은은 6차 핵실험을 통해 트럼프를 위시한 국제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미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의도가 분명하였다. 또한 북한 인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춘희 인민방송원의 발표로 전 인민들을 단합시키는 내부 통제용 목적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상단 그래픽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은 2005년에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했다. 6.25남침전쟁이 끝난 후 1970년대부터 김일성은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였고 실제로 김정일 정권에서 핵실험은 시작되었으며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완성단계에 돌입했다.
미온적 대처가 더 큰 화(禍)를 불러...역대 정부의 천문학적인 '대북 송금액' 용처 불투명
북한의 대륙간 탄도로켓(ICBM)과 6차례 핵실험은 주민들의 생활상은 최악의 상태에서 모든 자금을 끌어 모아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자금을 만들기는 어려운 경제환경이다. 그런데 과거자료를 검사하다가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바로 우리나라 역대 정부별 대북 지원 금액이었다.
국회 외교통상부에서 통일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북송금액은 김영삼정부 12억2,027만달러(12%), 김대중정부 24억7,065만달러(24%), 노무현정부 43억5,632만달러(42%), 이명박정부 19억7,645만달러(19%), 박근혜정부 3억3,727만 달러(3%)로 집계되었다.
또한 핵개발 포기목적의 경수로 차관으로는 김대중정부 9,271억원, 노무현정부 4,473억원등 총 1조 4000억원을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대북지원금에는 식량과 물품이 포함되어 핵개발에 투입되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지원된 현금들의 사용출처는 우리가 확인할 수 없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우리 돈으로 북한이 핵과 수소폭탄을 개발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한 일이다.
1955년 6.25남침전쟁 휴전 후 64년 동안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북의 2,3차 핵실험 당시 자료를 보면 핵무기 개발에 쏟아 보은 돈은 66억 달러라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10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이를 중국산 옥수수 구매가격으로 환산할 경우 1,940만t을 구입할 수 있고, 북한 주민의 약 8년치 배급량에 해당된다고 한다.
북한의 핵개발 비용은 채광·정련시설·농축시설 등을 포함한 핵시설 건립에 약 20억1천만달러, 핵기술 연구개발에 3억1천만달러, 핵시설(원지로, 재처리농축시설)가동에 27억2천만달러, 핵무기 개발에 13억4천만달러, 핵실험에 2억달러 정도가 소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내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당단부단 반수기란(當斷不斷, 反受其亂)과 이이제이(以夷制夷)
이제 휴전 이후 64년 동안의 대북 관계 경험을 통해 우리는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북한의 전략은 분명하다. 화전양면(和戰兩面)과 피실격허(避實擊虛)전술 및 전략이 기본이면서 이제는 미국에는 “경고”, 일본엔 “과시”, 한국과 중국에 “무시”하는 전략으로 발전했다.
이번 9월3일 6차 핵실험처럼 7차례의 UN안보리결의와 트럼프의 강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계획대로 계속 진행하였다. 6차 핵실험을 통해 핵개발 소형화가 거의 완성된 작금에 북한의 다음 단계는 하와이와 미 본토 사이의 태평양에 실거리에 준하는 대륙간탄도로켓(ICBM)을 발사 실험하는 것만 남았다.
북한의 2016년 4차 핵실험 후속조치로 “한미 공조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한미 맞춤형 억제 전략으로 탐지(Detect), 방어(Defense), 교란(Disturb), 파괴(Destroy)의 4D작전 개념과 KAMD체제, 30분 내에 선제타격 할 수 있는 강력한 대응을 강조하였다.
사기(史記)에는 ‘당단부단 반수기란(當斷不斷, 反受其亂)’이라는 명언이 있다. 즉 당연히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여 처단하지 않으면 훗날 그로 말미암아 도리어 재화를 입게 된다는 말이다.
그 동안의 5차에 걸친 핵실험과 연평도 포격도발 천안함폭침, 무인기 영공침공 등에도 엄벌보다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개념으로 대북 경제지원 9조원이라는 당근을 제공함으로써 이번에 6차 핵실험으로 도리어 우리와 전 세계를 위협하게 되었다.
마치 중국 역사상 경제 문화적으로 가장 융성했던 슈퍼부국 송나라가 자기의 100분의 1도 안되는 금나라와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화친에만 몰두하였던 상황과 비슷하다. 심지어 재상 진회는 금나라와 전투만 하면 승리하는 명장 악비를 전투 중에 소환하여 죽이는 등 비겁한 평화를 구걸하다가 결국 금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결의안 채택이나 비난성명 약발 없어...외교채널 동원한 '레짐 체인지' 등 검토할 시점
개미 노는 것 구경하다가 도끼자루 썩어버린 격이다. 결의안 채택, 비난, 무력시위 등 구경만 하면서 말로만 위협하는 것보다는 이제는 도끼자루 썩기 전에 개미를 잡는 따끔한 채찍이 필요한 시기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9.11테러의 주역인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제로니모 G 제지작전”과 이란의 후세인, 시리아의 카다피를 처리했던 참수작전(Decapitation strike) 을 통해 레짐체인지(Regime Change)하는 방법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때문에 섣불리 시도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방법을 제시해 본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세력 견제를 위해 북한을 내치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중·러와 협상을 하여 참수작전을 중국 또는 러시아의 힘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전력이 전개하여 전쟁 발발 일보 직전에 우리는 중·러와 긴밀한 협상으로 북한의 레짐체인지(Regime Change)가 달성되면 그들의 정치 목적에 부합되게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이런 방안이 채택될 때에는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방책이 시행되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유사시 외부 도움 없이도 우리 스스로가 국가를 지킬 수 있는 전술핵 배치 등 자주국방 구현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북한을 정확하게 인지하여 전 국민을 한뜻으로 일치단결시키고, 전술핵 배치 등 한미공조 방안을 실행하는 가운데 더욱 강화시킨 우리의 자주국방력이 바탕이 된다면 조국통일의 길은 한걸음 빨라지지 않을까?
위기(危機)는 기회 (機會)이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홍대장이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랑한데 왜적 군대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왜적군대가 막 쓰러진다” (날으는 홍범도가“ 1절)
(안보팩트=홍성덕 선임기자)
여천 홍범도는 어떤 분인가? 97년 전 일본정규군과 이뤄진 봉오동 대첩에서 홍범도장군 주도로 승전했을 뿐만 아니라, 청산리 대첩도 김좌진 장군과 함께 대승을 했으나 이 역시 주역은 홍범도장군이었다고 늦게나마 학자들이 밝히고 있다.
여천은 한마디로 부모의 덕도 나라의 덕도 전혀 보지 못했으면서 부인과 두 아들까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바친 애국자이고 독립운동가이며 신출귀몰한 게릴라전의 영웅이다.
여천은 1868년 8월 27일 평양에서 남양홍씨 홍윤식(洪允植)의 아들로 태어나 조실부모하여 머슴 노릇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15세 때 평양의 친군서영에서 나팔수로 근무하면서 사격과 전술을 배우게 된다.
23세 때에 강원도 금강산 신계사에서 이순신장군의 후손인 지담대사의 상좌로 일하면서 임진왜란 시 승병 등 애국적 전통과 의병활동을 파악하고 뒷날 아내가 된 단양 이씨를 만난다.
29세~39세 사이 함경도 북청에서 헤어졌던 단양이씨 이옥구를 만나 결혼생활, 사냥과 농업에 종사하며 양순, 용환 두 아들을 두는 등 홍장군 일생에 가장 행복한 생활을 보낸다.
39세 때 안산사 포계의 회원들과 함께 일제의 총포화약류 단속법을 거부하고, 북청에서 무장 항일의병부대를 조직한 뒤 북청과 풍산의 경계지대인 후치령에서 일본군을 섬멸한다.
40세 때 300여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갑산읍을 점령한 이후 ‘백두산 호랑이’, ’날으는 홍범도’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불행하게도 일제의 고문으로 부인 이씨가 순국하고 큰 아들 홍양순은 정평배기 전투에 참전하여 전사했다. 1908년 11월에 40여명의 의병과 함께 중국으로 간 뒤, 12월에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게 된다. 41~50세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군자금으로 모집활동과 항일단체 권업회를 조직하여 부회장, 그리고 노동회 회장으로 철도공사를 하면서 노임의 일부를 군자금으로 비축했다.
51세 되는 1919년에 대한독립군을 창설하고 총사령관으로 취임하여 ‘노령주둔 대한독립군 대장’명의 유고문을 북간도 일대에 살포 독립전쟁의 명분을 선포하였다.
1920년 52세 때 지금으로부터 95년 전 5월 최진동의 도독부, 안무의 국민회군과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를 결성하고 북로 제1군사령부 부장을 맡게 된다. 그해 6월7일 북간도 독립군 연합부대인 대한북로독군부 사령부장으로 700여명의 독립군을 지휘 일본군 월강(越江)추격대대를 매복했다가 섬멸한다. 이때 일본군 120여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이 전투가 일본 정규군과 첫 번째로 싸워 대승한 ‘봉오동대첩’인 것이다. 그 해 10월 21~28일까지 백야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와 함께 청산리 전투를 주도하여 일본군 600여명을 살상하는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를 청산리대첩이라 한다.
53세 때 4월 대종교 지도자 배포 서일 및 만주 전 독립군 연해주 일대 독립군이 연합하여 결성한 대한의용군총사령부를 ‘대한독립군’으로 개편하고 부총재에 취임한다.
54세 때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주최의 극동제민족(諸民族)대회에 한인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 소련 공산당 지도자 레닌을 만나고 모젤 권총과 금화 100루불을 수령하였다.
1926년(58세) 40세 때 첫 부인이 순국한 이래 18년 만에 러시아에서 이인복여사와 재혼한다.
69세 때 스탈린 강제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어 그 곳 크즐오르다 극장의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일기를 쓰며 연극 등을 통한 민족정신을 고양한다.
1943년 75세 때 2년 후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서거하셨다. 카자흐스탄에는 유해를 모신 홍범도장군 공원과 흉상을 세워 홍범도장군을 기리고 있다. 늦게나마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고 서거 62년 만에 ‘(사)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초대 이사장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선임했다.
광복 후 첫 추모행사를 거행한 이래 매년 봉오동 전승기념식과 추모식과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그의 독립운동정신과 애국애족정신을 선양하고 있다. 여천은 대한독립군의 양대 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전술가이다. 장군이면서 계급을 달지 않고 사병들과 같은 복장을 입고 함께 먹고 자는 자애로운 장군인 반면 군율을 어길 경우에는 가차 없이 총살하는 엄한 장군이기도 했다.
해방72주년을 맞았으나 아직도 한반도의 온전한 해방이나 독립이 아니라 반쪽의 해방과 반쪽의 독립인 것이다. 여천이 꿈꾸든 대한독립운동은 107년 전 한일합방 이전으로 국권과 영토를 회복하는 것이며 이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할 우리의 과제이며 사명인 것이다.
“왜적 놈이 게다짝을 물에 버리고 동래 부산 넘어 가는 날은 언제나 될까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왜적군대가 막 쓰러진다.”
(날으는 홍범도가 5절)
▲ 지난 28일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소장이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구재서 육군훈련소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김상규 기자)
구재서 육군훈련소 소장, 육사 선후배 관계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소장과 인터뷰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으로 훈련병 적응력 높이고, ‘우수교육부대’ 제도로 체력 증진"
“훈련병들이 호기심을 갖고 접근할 수 있도록 훈련 과정을 밟아갑니다” ‘대한민국 최대의 신병 교육기관’인 육군훈련소를 이끌어가는 구재서(54·육사 42기·사진) 육군훈련소장은 28일 한국안보협업연구소(이사장 최차규)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혔다. 안보협업연구소의 김희철 소장이 직접 진행한 이날 인터뷰에서 구재서 소장은 신병들의 훈련 과정에 대한 변화를 강조했다. 구 소장은 김 소장의 육사 후배이면서 육군본부의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등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사이이다. 구 소장은 육군훈련소가 과거 군기 잡기식으로 윽박지르고 얼차려를 주면서 터득하는 교육방식에서 자율성을 강조하는 ‘스마트한 훈련 문화’를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구 소장은 영관장교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장성이다. 육사 42기로 임관한 그는 소령으로 진급한 후 영관장교 교육기관인 육군대학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다. 이후 제2작전사령부 행정실장, 32사단 97보병연대장, 육군본부 정책실 정책기획과장, 28사단 부사단장, 육본 기획관리참모부 기획1차장,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 등의 요직을 맡았다. 육군훈련소는 구 소장의 탄탄한 경력에 걸맞게 엘리트 장병을 양성하는 군의 첨병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훈련 자료를 보니까 과거 군대와는 다른 훈련 체계가 눈에 띄는데. "지금은 훈련 자료를 미리 준다. 과거에는 처음 훈련소에 입소하면 군기잡고 소리지르거나 정신을 빼놓으면서 군기를 잡는 방식이 새 사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해서 물론 변화되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과연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훈련병들에게 바뀌는 과정을 설명해주고, 이해하도록 도와주면서 훈련병 본인이 수긍하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본인이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이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게 한다. 예전처럼 강압적으로 소리치고 얼차려주면서 터득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옛날 우리 시대는 그냥 하라면 했다. 그런데 지금은 하라고 해서 하는 세대가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름대로의 주관이 굉장히 뚜렷하고 본인이 수긍하지 못하면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의식과 문화를 갖고 있다.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군인으로 만들어갈 것이냐는 과정이 훈련소 4주, 5주 과정이다. 하지만 제대로된 군인을 만드는데 짧은 시간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민간인에서 자기만 알던 20여년의 삶을 벗고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책임지는 신분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군대문화나 가치관, 생각의 변화, 국가안보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 대해 그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공감하도록 만들어가야 훨씬 더 수용성 있게 잘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런 시스템들의 변화가 생긴거다" - 일종의 훈련 예습을 하는거 같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인가? "예를들면 내일 각개전투를 한다고 하자. 그러면 전날 각개전투가 어떤 목적이 있고 교육은 이렇게 진행된다는 핵심 내용을 사전에 알려준다. 강의자료를 만들어 나눠주고 강의장에 다같이 모여 설명해준다. 그러면 훈련병들은 각개전투가 이렇게 진행되는구나, 이런 장애물들이 있구나를 본인들이 눈으로 보고 이해를 하게되는거다. 그런 다음 조별로 모여서 각개전투에 대해 배운 것들을 이야기하고 토의를 진행한다. 거기서 모르면 교관이 다시 한 번 설명한다. 이렇게 사전에 다 알려주니까 다음날 현장에 가서 훨씬 더 부담없이 할 수 있는거다" 지난해 12월 육군훈련소장으로 부임한 구 소장은 무엇보다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훈련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해왔다. 구체적인 훈련 단계를 미리 예습하고, 토론하면서 실제 훈련에 임할 때 부담 없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실습은 훈련병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고, 처음 접하는 훈련을 받아들이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다.
▲ 구재서 육군훈련소장(육사42기)이 지난 28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안보협업연구소와 인터뷰하고 있다. ⓒ뉴스투데이
"훈련병 체력 약해 안타까워"…‘우수교육부대’ 선발제도 도입해 체력 강화 추진 - 요즘 입소하는 훈련병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지난해 12월 처음 부임하자마자 느낀 것이 훈련병들의 체력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체력을 단련하는 시간이 굉장히 부족하다. 만약 고등학교에서 공 하나 던져주고 운동하라고 한다면 그 다음날 학부모로부터 항의전화를 받고 난리가 날거다. 그게 요즘 세태다. 그렇게 체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훈련소에 입소하고 체력 검정을 받는다. 군에는 체력검정 기준이 있는데 특급, 1급, 2급, 3급, 4급으로 나뉜다. 4급 이하는 불합격인데 훈련 1주차에 70%가 불합격을 받는다. 이런 인원들은 극한 상황에서 훈련이나 전투를 받지못한다. 자기 체력하나 버거울 정도다"
- 체력 검정의 내용은 어떻게 되나? 3km 뜀걸음,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등 가장 기초적인 검정을 통해 심폐 폐활량과 근력, 복근, 팔근육을 체크한다. 체력 검정의 기준은 나이마다 다른데 팔굽혀펴기의 경우 보통 2분 이내에 60~70개 이상은 해야 합격한다.
- 훈련병의 체력 증진을 위해 어떤 훈련을 하는가? "올해 입소한 훈련병들의 체력이 너무 안 좋아서 어떻게 체력을 향상을 시킬까 고민하다 ‘우수교육부대 선발’ 제도를 도입했다. 육군훈련소에 총 21개 교육대대가 있는데 각 부대별로 훈련병이 입소했을 때와 수료직전 체력 검정 불합격률을 가장 많이 낮춘 교육대장을 선정을 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매일 체력을 측정하는 부대도 있고, 저녁 취침 전 윗몸일으키기를 하거나 비가 올때는 생활관 내에서 체력단련을 하는 부대도 생겨났다" "그렇게 하니까 훈련소 수료 시에는 평균 합격률이 70~80% 나왔다. 특급 이상은 아니지만 합격선인 3급 이상이 나온다. 젊은 나이다보니 4~5주동안 집중적으로 단련시키면 체력이 급격하게 올라갔다. 이런 방식으로 훈련병들의 체력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전투 기술을 익히든 다른 임무수행을 하든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체력이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구 소장은 입소하는 훈련병들의 체력과 건강에 유독 관심을 갖는 지휘관이다. 입대 전까지 학업이나 음주 등으로 체력관리가 부족해 훈련을 힘들어하는 장병들을 안타까워했다. 이런 고민에서 나온 시스템이 바로 ‘우수교육부대 선발’ 제도이다. 이 제도는 지난해 12월 부임하자마자 지시했다. 갓 입소한 훈련병의 체력검정 합격률이 현저히 낮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개인별 체력 증진에 집중한 것이다. 그 결과 첫 주차에 체력 검정 불합격률이 70%에서 수료 전에는 합격률 70~80%로 반전됐다. 5주간의 훈련기간 중 금연·금주 원칙…훈련소 수료 이후에도 금연 당부
훈련소 간부들이 앞장서 금연 실천해 훈련병의 모범 되도록 유도 - 수료식에서 훈련병과 가족에게 어떤 인사를 전하나? "수료식마다 공개적으로 당부하는 얘기가 있다. 훈련병들이 꼭 금연을 성공할 수 있도록 수료식에 참석한 부모와 지인들에게 부탁한다. 훈련기간인 5주간 금연을 했는데 본인이 조금만 의지를 가지면 금연에 성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나. 이때 방심하면 수료하는 날 대부분 담배를 핀다. 그래서 수료하는 날 공개적으로 얘기한다" "훈련병들이 5주동안 금주, 금연하고 각종 IT기기도 안했기 때문에 청정청년이 되어 있다. 훈련병들이 너무 쉽게 오염에 노출되지 않도록 가족과 친구들이 도와달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금연을 강조한 이후부터는 훈련병들의 흡연율이 많이 떨어졌다. 육군훈련소는 훈련병 뿐만 아니라 훈련소 내 일반 병사인 기간병과 간부들에게도 금연을 권유하고 있다" 구 소장은 훈련소 수료 후에도 훈련병들의 건강을 챙기는 세심한 부대장으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는 지휘관이다. 훈련병들을 정예 군인으로 만들기에 앞서 건강한 청년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책임을 다한다. 바로 육군훈련소 출신 신병들이 강한 이유다.
▲ 구재서 육군훈련소장(사진 중앙)이 수료식에서 6·25 참전용사가 손자에게 태극기를 부착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육군훈련소
연간 130만여명의 국민이 찾는 육군훈련소는 대국민 접촉부대라 불릴 정도로 국민과 가장 가까운 부대인다. 그동안 배출한 장병만 약 780만 명에 달한다. 그런만큼 군의 변화도 이 곳에서 시작되고 전파된다. 구 소장이 주도하는 육군훈련소의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다. 구 소장은 "최근 갑질문화부터 군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러한 인식의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성권 기자 priokim@news2day.co.kr]
▲ 지난 6월 30일, 홍콩의 통치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지 20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부대에서 사열하고 있다. ⓒ뉴시스
(안보팩트=문용석 전문기자)
1997년 6월 30일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지 20년이 지난 2017년 7월 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 후 처음으로 홍콩을 찾아 중국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 부대를 사열하고, 캐리 람 신임 홍콩 특별 행정구(HKSAR) 행정장관이 이끄는 새 홍콩정부 출범식을 주관했다. 홍콩 현지의 반응과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 시기에 맞추어 미국의 대만 무기판매 재개 등 중국 견제 정책 등을 중심으로 분석해 본다.
홍콩 반환 20주년 주요행사 및 특이동향
시진핑 국가주석은 부인 펑리위안 여사(총정치부 소속 소장)와 홍콩 주권 반환 20주년(7월 1일) 기념식 참석을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홍콩을 방문하였으며, 이는 국가 부주석 시절인 2008년 이후 9년만이며, 2013년 국가주석 취임 후 처음이다.
시진핑 주석은 6.30일 중국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 부대(사령관 탄본홍 중장)를 시찰하였다. 시 주석은 중산복(中山服, 중앙군사위 주석 자격으로 행사시 착용) 차림으로 홍콩 스깡(石崗)에 주둔한 인민해방군 홍콩 특별 행정구 주둔군 부대를 이례적으로 군용 지프를 타고 사열하였다. 통상적으로 중국 국가주석은 10년 주기로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거행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기념 열병식과 2015년 천안문 광장에서 실시한 전승절 열병식에서는 중국이 자체 생산한 홍치(紅旗) 검은 세단을 타고 인민해방군과 무기장비를 사열하였는데, 이번 홍콩 주둔군 사열시 중산복을 착용하고 지프차를 타고 사열한 것은 중국 정부가 상승하는 국력 과시와 복잡한 동북아 정세와 동.남중국해와 북핵문제 관련 미국과 대립하는 분위기를 감안해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열식은 홍콩 특별 행정구 사령관 탄번홍 중장의 보고 후 육.해.공군과 특종부대(우리의 특공연대와 對테러부대와유사) 그리고 기계화 부대와 유도무기 부대 등 20개 제대 3166명의 열병과 분열로 진행되었으며,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의 대규모 국경절 행사와 유사한 형식으로 진행되어 홍콩 반환 20주년의 의미를 더하였다. 2012년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주관한 홍콩 주권반환 15주년 사열식에서는 15개 제대 규모였던 것과 비교 시 이번 사열식은 인민해방군(PLA)이 홍콩 주둔 이후 가장 큰 규모이다. 향후 5년 후 시진핑 주석의 임기 말에 홍콩 반환 25주년 행사에 25개 제대로 늘어날 지는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또한 관심이 가는 것은 1997년 최초로 홍콩 주둔군이 창설될 당시 초대 사령관은 류쩐우(劉振武) 소장이었는데 현재 탄번홍 사령관은 육군 중장으로 진급시켜 총참모부의 부총참모장급 직책으로 격상시킨 것인데, 이는 一國兩制(one nation two system) 하에서 홍콩과 마카오를 관리하면서 향후 대만까지 통일하여 중국 공산당이 염원하는 완정한 통일을 위한 군사적 관심이라면 과도한 추측일까. 참고로 홍콩 주둔군의 병력 규모는 여단급 수준이며, 무기장비 면에서 는 현대화되고 증강된 규모로 볼 수 있다. 또한 중국 인민해방군 여단장과 사단장은 大校(senior colonel)이며 군단장이 소장(ONE STAR)임을 감안하면 홍콩 주둔군 사령관의 직급이 얼마나 높게 책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겠다.
7월 1일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식 등 주요 행사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발언 중 주목되는 것들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다.
중국 중앙정부는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가 안정적으로 실현되도록 보장할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주권.안전을 해치는 활동과 중앙 권력과 홍콩 기본법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홍콩을 이용해 중국 본토를 침투.파괴하려는 행위는 모두 레드 라인(Red Line, 금지선)을 넘는 것으로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홍콩의 국가 주권.안전과 발전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또한 홍콩 주민들은 역사상 어떠한 시기보다 광범위한 민주적인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있으나, 이 모든 것을 정치화하거나 의도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홍콩의 발전을 저해하고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홍콩 및 해외 주요 언론과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 홍콩 독립 움직임에 대한 시진핑 국가 주석의 경고는 전임 주석인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의 발언에 비해 훨씬 강경한 것이며, 이번 경고가 신임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 정부에 국가안전법과 국민교육법 도입이라는 두 가지 큰 숙제를 준 것이다.(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
중국의 국가 지도자가 홍콩을 겨냥해 ‘레드 라인(Red Line)이라고 표현한 것은 처음이며, 홍콩 특별 행정구에 대한 국가안전법 제정 작업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미국 뉴욕타임스, 홍콩대 윌리 람 교수 발언 인용) 과거 20년과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미래에도 홍콩 주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조연에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이며, 고도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중국 정부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많은 홍콩인들이 앞 다투어 영국 등 서방국가와 대만 등의 여권을 얻으려 하고 있다.(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홍콩의 미래를 예측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양극화되고 있는 바, 옛 중국 대륙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많은 노년층들은 홍콩이 여러 면에서 영국 통치 시절보다 좋아졌다고 하고, 중국 중앙정부가 잘돼야 홍콩의 미래가 밝다고 하는 반면, 2,30대 젊은 청년층은 反中 감정이 커지고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늘고 있으며, 전면적인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對대만 무기 판매와 국방수권법 통과 발표에 대한 중국 측 반응
홍콩 반환 20주년을 맞아 시진핑 국가주석이 최대 규모의 홍콩 주둔군 사열식을 주관하기 직전(6.29일)에 미국 국무부는 대만에 대한 13억불(약 1조 4865억원) 규모의 무기판매를 승인하였고, 미 국무부는 조기경보 레이더 관련 부품과 對레이더 미사일, 어뢰, SM-2 미사일 부품 등 7개 품목이 포함된 판매 안을 미 의회에 통보하였다.(AP통신)
미 국무부의 對대만 무기판매 승인은 시진핑 주석이 주관하는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 열기에 재를 뿌리는 상황이 되었으며,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 재직 시인 2015년 12월 이후 2년 만이며,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있는 일이다.(월 스트리트 저널, 6.28일)
6.28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는 미군 함정이 대만 항구에 기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2018년 국방수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된다면, 1979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이후 38년간 미군의 해군 함정을 대만에 정박시킨 적이 없는 미국이 지켜온 ‘하나의 중국’ 원칙에 변화가 올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외교 전문지 Diplomat)국방수권법은 한 해 미국의 국방정책과 예산 지출을 총괄하는 법으로 상원 군사위원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상원 전체회의와 하원 의결을 거치게 된다.
미국의 對대만 무기판매에 대해 추이티엔카이(崔天凱) 駐美 중국대사는 “미국의 대만 무기판매는 미.중 양국 간 상호신뢰를 해치며, 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반발하였으며, 중국의 인민일보 자매지인 環球時報도 “미국이 대만에 무기판매를 결정한 것은 중국을 분노하게 할 것”이라고 즉각 반발하였다.
6.28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가 미 함정의 대만 기항을 포함한 2018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에 중국은 즉각 거세게 반발하였으며, 중국 외교부 루캉 대변인은 “이 법안은 중국 내정에 대한 간섭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엄중한 우려와 결연한 반대를 표시한다”고 했다.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를 앞두고,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고도의 자치권, 경제. 개인적 자유, 법치주의 존중의 결과로 이룬 홍콩의 탁월한 성취를 찬양한다”면서 “홍콩 내 언론의 자유 침해를 포함한 시민의 자유 침해가 여전히 우려되며 또한 미국은 홍콩기본법에 따른 보통 선거권 이행 등 홍콩의 민주주의 체계 발전을 지지한다”며 홍콩 민주세력이 주장하는 홍콩 특별 행정구 행정장관의 완전 직선제를 지지하는 의미의 대변인 발표를 하였다.
향후 중국의 對홍콩 정책과 중 · 대만관계 전망
중국 개혁 · 개방의 총설계사인 떵샤오핑(鄧小平)은 개혁 · 개방 초기 1978년 국무원 예하에 홍콩 사무판공실을 설치하여 20여년 후의 홍콩 반환을 미리 대비하였고,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 라는 홍콩 회귀 후 통치방식을 만들었다. 1997년 영국의 통치로부터 중국에 반환된 이후, 떵샤오핑이 약속한 50년 동안 홍콩에 대한 고도의 자치는 정치제도를 제외한 경제 등 제반 분야에서는 대체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홍콩 행정장관의 직선제를 요구하는 홍콩 젊은이들의 요구는 점점 확산되고 있고, 급기야는 금번 반환 2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국가의 주권.안전을 해치는 활동과 중앙권력. 홍콩기본법 권위에 대한 도전과 홍콩을 이용해 중국 본토를 파괴하려는 행위는 모두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라며, 이전 주석들이 언급한 적이 없는 고강도 경고로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입법 추진이 예상되고 있다.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에 맞추어 미 국무부가 대만에 13억불의 조기경보 레이더 관련 부품 등 7개 품목의 판매 안을 미 의회에 통보한 것과 미 상원 군사위가 미 함정의 대만 기항을 포함한 2018년 국방수권법 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은 홍콩과 대만 문제에 대한 미.중 간 갈등이 점화될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금년 10월 19차 중국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정부는 중-대만 양안문제와 홍콩, 마카오의 一國兩制하의 원만한 관리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의 미국.일본과의 갈등관리 그리고 신장,시장 등 소수민족 문제 등 산적한 핵심이익(Core Interest)와 북핵문제와 대북 제재 등의 험난한 난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 정부가 여하히 홍콩과 대만문제를 관리하여 중국의 염원인 완정된 통일로 갈 수 있는지의 과정을 주도면밀하고 다각적으로 학습하고 관찰하는 것이 우리의 독일 통일과정에 대한 연구만큼 중요한 함의가 있다고 믿고 싶다.
-문용석-
·국방부 국제정책 분야 자문위원
·주 중국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
·前 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 필자(왼쪽)가 육사 생도 1학년 때 동기생과 함께 했던 설악산 여행모습 [사진=김희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
로버트 테일러의 ‘애수(哀愁)’, 전쟁 중 휴가로 만난 비비안 리와의 아픈 추억(哀愁)
6·25전쟁 중에 피난지인 부산과 대구에서 개봉되어 많은 관객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영화 애수(哀愁)에서는 25세의 로이(로버트 테일러) 대위가 제1차 세계대전 이 진행 중일 때 런던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연인 마리아(비비안 리)를 만나 사랑의 꽃을 피웠다는 줄거리로 시작된다.
로이 대위는 다시 전쟁터로 나갔다. 그러나 마리아는 얼마 뒤에 전사자 명단에서 로이의 이름을 발견하고 좌절한다. 그녀는 전쟁 중 어려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거리의 여자가 되었다. 1년 뒤 거리에서 로이 대위를 다시 만났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 마리아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야 만다. 훗날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중년이 된 로이 대령이 마리아를 처음 만난 워털루 다리 위에서 슬픈 과거를 회상한다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와 같이 전쟁 중에도 휴가는 시행되고 그 여행 중 소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평소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힐링과 에너지 충전을 위한 휴가 여행은 꼭 필요하다.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지만 함께 여행을 하면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여름) 정복’을 입은 하룻강아지의 단순·무모한 도전, 설악산 등반
필자는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생도 1학년 때의 설악산 여행이다. 화랑대에서 하계군사훈련을 받는 1학년 생도들의 수영교육시간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갔다.
중·고교시절 적십자에서 운용하는 수영교실을 다녔지만 당시 수영실력은 맥주병이었다. 그래서 학급 편성은 테스트를 통해 수준별로 구분한다. 그 때 유난히도 힘들게 교육을 받으면서 한 동기생과 친해져 불현 듯 하계휴가기간에 설악산 등반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첫 휴가를 출발하기 전에 2학년 상급생도에게 휴가교육을 받았다. 휴가도 생도대 생활의 연장이기 때문에 생도 명예에 손상되는 언행을 철저히 금하라는 교육이었다. 삼금(금연, 금주, 금혼)제도를 철저히 지키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기 집밖을 나와 외출 할 때는 생도신분임을 잊지 않도록 하얀 '하(여름)정복'을 입어야 한다는 강조사항엔 마음이 걸렸다.
상급생도의 강조사항은 학교정문을 나오자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 갔지만 하정복을 입으라는 상급생의 지시는 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집 밖을 나올 때부터 한여름에 정복을 입는다는 것은 참으로 제약이 많았다. 며칠 뒤 설악산 등반을 위해 약속장소인 청량리역으로 나갔다. 물론 새하얀 하정복을 입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친해진 귄oo 동기와 춘천행 열차에 올랐다.
▲ 선배의 조언을 받고 간편한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필자(왼쪽)[사진=김희철]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양구 선착장에 내렸다. 원통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갔을 때 타 중대 소속 2학년 생도를 만났다. 경례를 하고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당황하는 상급 생도의 눈빛을 느꼈다.
그 때 그 상급 생도는 전투복 차림이었다. 그는 “아니, 하정복을 입고 설악산을 넘겠다고?”라고 어이없다는 듯 질문을 하였다. 필자는 분대 2학년 선임에게 집 밖을 나올 때에는 반드시 정복을 착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자 그 선배는 아무튼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자신의 여행길로 떠났다.
백담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 등산복을 입은 키가 큰 청년이 “어이, 두 생도”하고 불렀다. 만나보니 타 중대 4학년 생도였다. 그 선배도 마찬가지로 혀를 끌끌 차면서 “2학년 상급생도가 강조를 했어도 어떻게 하정복을 입고 설악산을 넘느냐?”하고 한심한 듯 나무라며 따라오라고 했다.
하룻강아지 '리스크'를 해결하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연륜
전쟁 중에 휴가도 꿀맛이지만 그 선배의 4년 생도생활 마무리를 앞두고 떠나는 휴가여행의 의미와 소중함은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헌데, 골칫덩이 미꾸라지가 끼였다. 그것도 산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정복차림으로 설악산을 넘겠다고 한다. 사계절 무수한 조난자가 발생하고 심지어 사망사고도 일어나는데...
▲ 가운데 키 큰 생도가 서길원 전 6군단장(육군중장) 맨 앞이 필자[사진=김희철]
4학년 선배인 서길원 생도(훗날 6군단장(중장)역임)의 얼굴에서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무모한 1학년 두더지 두 명을 무사히 설악산을 넘게 도와줘야 한다는 선배로서의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야가 확보될 때 우선 수렴동 대피소까지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등산화였지만 필자는 하얀 정복에 단화를 신고 있어 산길 오르기에 무척 힘이 들었다. 드디어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필자는 007백 안에 운동화와 편히 입을 수 있는 생도셔츠 그리고 양말, 세면도구를 담아왔기에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정모와 하얀 정복 상의를 곱게 접어 백에 넣었다.
우린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는데 4학년 선배는 등산백 안에 준비한 것이 꽤 있었다. 결국 1학년 후배는 4학년 선배의 간식을 얻어먹는 웃지 못 할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창문 밖의 수많은 별들은 유난히도 빛을 발하고 있었고 떠오른 밝은 달은 설악산 방문을 환영하면서도 무모한 도전에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선배 생도들과의 짧은 만남에서 얻은 강렬한 추억
생도대 교육장이 아니라 설악산 수렴대피소 주변의 밤새와 벌레 그리고 요란한 계곡 물소리의 화음이 배경이 된 가운데 아스라한 별빛과 달빛 아래에서 선배의 생도생활과 앞으로의 군 생활에 대한 비전을 들으니 또 다른 깊은 감동이 와 닿았다.
밤은 깊어간 것 같은데 아침 태양빛이 창문을 두드렸다. 우린 휴대를 못했는데 선배의 배낭에는 간이 취사도구가 있었고 선배들이 조리한 아침을 얻어먹고 간편한 생도셔츠와 운동화 차림으로 007백을 들고 드디어 마등령으로 출발했다. 산 속에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친구가 된다.
약 6시간의 산행 길에 반대쪽에서 오는 등산인을 만나면 반갑게 안부를 묻고 화이팅을 외치며 교행한다. 체력이 좋은 생도들이라 빠른 걸음으로 추월할 때에도 인사를 나눈다. 수렴동 대피소에서 만경대·오세암을 지나 마등령 기점에 도달하니 벌써 2시간 가까이 지났다. 험하다는 마등령을 타고 금강문과 금강굴을 통과해 비선대 계곡에 도달하니 4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 생도 1학년 때 강원도 망상 해수욕장에서 수영교육 증 촬영한 사진. 맨 앞이 필자. [사진=김희철]
신흥사 입구를 지나 설악동 주차장에 도착하자 허기도 지고 매우 지쳐있었다. 그 때 4학년 선배들은 버스비까지 챙기며 우리를 쫒아내듯 버스에 태우고 그들만의 세계로 돌아갔다. 아마도 골칫덩어리 막무가내 아우들을 무사히 데리고 험한 설악산을 넘었다는 안도감과 책임감에서 해방되는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인간관계의 친밀도는 만난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1차 대령 진급심사에서 낙방한 필자, 25년만에 '설악산의 추억'을 만나 소중한 조언 얻어
최근 유행하는 건배사 중 하나가 “짧은 만남, 긴 인연...!” 이다.
양구 소양강 선착장에서 만난 2학년 선배생도나 백담사 입구에서 만난 4학년 선배 생도와는 휴가를 마치고 화랑대에 복귀했을 때에 다시 부딪히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고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런데 25년 지나 필자가 용산 합동참모부에 근무할 때 짧은 만남, 긴 인연 사건이 발생했다.
필자는 능력과 인품이 부족하여 당시 대령 1차 진급 심사에서 낙방하여 실망해있을 때, 설악산 등산길에 만났던 2학년 선배를 다시 만났다. 마침 그 선배는 국방부에 파견 나온 기무부대에 있었고 그해 진급을 해서 진급 축하 회식을 하다가 같은 식당 화장실에서 만났다.
“김 중령, 오랜만이야. 그 때 그 설악산 등반길에 하정복을 입고...”
그 선배는 산행길 짧은 만남에 가졌던 첫인상을 25년이 지난 후에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내년 진급 가능성을 고려할 때 현 보직에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고는 본인이 직접 가능성이 있는 자리에 추천을 해주었다. 그 선배의 결정적 도움으로 다음해 대령 진급할 수 있는 고생하지만 진급희망이 있는 보직을 얻을 수 있었다.
하룻강아지의 단순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선배들의 노마지지(老馬之智) 연륜으로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었고, 휴가 출발 전 직속 선배의 강조사항을 지키기 위해 새하얀 하정복을 입고 설악산을 넘으려고 했던 필자의 원칙을 준수하려는 무모한 모자람을 좋게 읽어준 덕택이었다.
▲ 생도시절 필자가 그린 백두산 천지 ⓒ김희철
상무정신(常武精神)은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이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현재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계 수영훈련장에서 만난 친구와의 설악산 등반 약속을 지켜야했지만, 외출 시 정복을 반드시 입고 다니라고 강조했던 선배의 지시사항도 어길 수 없어 원칙을 지킬려고 감행했던 그 무모한 순수함이 25년 뒤 효과를 발생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안보에 대해서는 바뀔 수가 없다. 현 문재인대통령은 합참의장 이취임식을 직접 주관하는 등 잘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율로 얻고 있다.
안보(安保)에는 여야, 보수·진보가 없다. 최근 군 수뇌부가 모두 교체되었다. 그들에게도 임전무퇴의 상무정신으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의 위기에 현명하고도 강력하게 대응하기를 당부하면서 국가와 군을 위해 큰 업적을 남기길 기대해본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위쪽)지난 9일 오전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이 열린 청와대 충무실에서 진급 장성들이 신고식을 위해 자리하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군 장성 진급자들과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청와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
문재인 정부의 첫 군 수뇌부 인사는 군대문화 혁신의 신호탄
정부는 지난 8일 국무회의를 열고 첫 군 인사에서 8개자리 중 7개가 바뀌는 대장급 인사를 의결했다. 합참의장을 제외한 여섯 자리 모두는 진급인사였다.
정경두 40대 합참의장(前공군총장)은 이양호 의장(25대, 공군), 최윤희(38대, 해군)에 이어 세 번째 비 육군 합참의장이 되어 해군장관, 공군의장 군 지휘부 라인업은 1948년 창군 이후 6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또 육사 37기와 38기는 이번 인사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이는 전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의 공관병 사건과 38기 진급 대상자에 대한 갖은 투서 남발에 대한 후유증이라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아무튼 해·공군의 진급에 비해 적체되어 있던 육군 장성 진급이 해소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동아일보 이철희 논설위원은 “8.8육치일”이라고 사설에 게재했다.
이를 예상이라도 한 듯 문재인 대통령은 진급 보직 신고식에서 “軍중심은 육군, 육사가 근간이란 것을 국민이 안다”며 “육군·육사 섭섭해 하지 말라”고 말하며 군 인권 침해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군대 문화 혁신을 기대했다.
▲ 그래픽=뉴스투데이
노무현 정부 시절 남재준 총장의 실질적인 군대문화 혁신이 귀감돼야
생일선물도 되돌려 보내는 '청렴결백'을 실천한 남재준식 솔선수범이 필요할 때
군 개혁, 군대문화 혁신은 창군 이래 70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장 잘 써먹는 정책기조였다.
김영삼 정부가 군 개혁이란 미명으로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국민과 군의 호응을 얻어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도 군 개혁을 위해 유임시켜 임명한 첫 번째 육군참모총장은 전 국정원장인 남재준 대장이었다.
필자도 40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체감한 군 개혁을 손꼽으라면 남재준 총장이 솔선수범하면서 시행한 군대 문화 개선이었다.
남 총장은 초급 장교 시절부터 「원칙주의자」로 소문이 난 선비였다. “군 장교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신적, 도덕적 용기이지 요령 있는 처세를 의미하는 융통성이 아니다”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전형적인 야전군인으로서 자신의 생일날 부하 장교가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선물을 준비해오자 그는 그것을 돌려보냈다. 청렴결백한 그는 현재까지도 단 한 칸의 아파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총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대대급 이상 주둔지에 간부체력단련을 위해 설치된 테니스장에 근무하는 사병을 없앴다. “볼을 전투를 위한 사병들이 주우면 안 되고 간부들이 직접 주어라, 심판도 간부들이 봐라.”라고 했으며, 전출입하는 간부들이 지휘관 숙소를 방문하는 것과 본부대장과 군인 가족이 공관에 출입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이것을 어길 시에는 사단장이라도 보직해임을 공헌하여 군내 잘못된 관행을 일소 시키고 군 본연의 임무수행에 전념토록 기풍을 조성하였다.
필자가 참모로 근무할 시절, 인사참모가 지휘관에게 전입 인사 갈 것을 충고할 때 몹시 당황했었다. 지휘관 공관으로 인사갈 때 선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또한 남재준 총장은 인사 청탁하는 자에게는 불이익을 부여하도록 강조했고 군대 내의 학연·지연·혈연 등을 없애는데 주력하였다.
그런 그에게 2004년 국방부 앞에는 ‘남재준 총장이 자기 사조직 인사들을 지난 10월 인사 때 대거 장성으로 진급시켰다’는 괴문서가 뿌려졌다. 군 검찰은 진급심사를 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를 사상 처음으로 압수수색했다. 이에 반발한 남 총장은 전역 지원서를 냈으나 반려됐다. 괴문서 사건은 결국 그가 개입한 정황이 없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군 내부에서는 당시 군 인사, 군 사법개혁 정도를 걷던 남 총장에 대해 일부 세력이 그를 흔들기 위한 공작을 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이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문구를 완전히 삭제할 방침을 세웠을 때도 남 총장은 ‘북한 주적론’을 고수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참모총장 시절 남긴 이 말은 지금까지도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다. “나는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다. 나는 조국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나는 조국에 대한 헌신과 봉사가 나의 최고의 가치가 아닌 순간, 조국을 위해 과감히 군복을 벗겠다.”
또한 2003년 육군 장교들을 대상으로 ‘장교의 도’를 강연하며 다음 같이 강조한 바 있다.
“장교는 절대적 자유혼을 지닌 자유인으로서 스스로 선택한 장교의 책무를 다해야 하며, 이것이 장교가 갖추어야 할 가치관이다.”
남재준 대장은 2005년 4월 육군참모총장 이임식을 마치고 전직 총장에게 관행적으로 제공되는 관용차를 마다하고, 본인이 직접 20년된 소형 승용차를 운전하여 떠났던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뜻은 이러했다.
“국가예산을 한 푼도 허투루 사용할 수 없다.”
총장 재직 시절 그는 군의 정치적 중립과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의 삶을 실천하여 '참군인'으로 후배장교의 존경을 받았다. 또한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고 부하들과 동거동락을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골프를 배우지 않고 달리기로 체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회식 때에는 군가를 즐겨 부르며 군인임을 잊지 않았다.
그는 군을 떠났지만 강직하고 소신껏 참 군인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 얽힌 에피소드들은 과거 “한신”, “채명신”장군과 함께 참군인의 표상으로 후배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 (왼쪽)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과 이기식 전 25대 해군작전사령관 [사진-해군작전사]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 이기식 제독을 휴일 방문했던 추억이 남긴 교훈
지휘관 승용차 반납하고 소형 개인 승용차 사용 … 공사(公私) 구분으로 해군 전투력 강화
이기식 前해군작전사령관(중장)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직후부터 약 두 달간 천안함 브리핑을 맡았다.
당시 합참 정보작전처장(준장)으로 재직 중 대잠수함 작전 전문가였기에 가장 적임자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천안함 브리핑 당시 그는 많은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천안함이 침몰돼 바닷속에 있는 것만 확인 됐을 뿐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는 40년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좌초설, 기뢰 충돌설, 미군 잠수함 충돌설부터 자작극이라는 말까지 천안함 괴담이 확산됐을 때라고 고백한다. 가짜뉴스가 언론에 도배돼 괴담이 확산되고 남남갈등이 초래된 때문이다.
훗날 중앙일보의 천안함 폭침사건 7주기 대담 취재에서 그는 “북한이 어뢰로 공격하기로 결정한 것은 기존처럼 수상전을 반복해서는 한국 해군을 이겨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며 “잠수정 어뢰로 은밀하게 공격해 물증을 남기지 않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이유에 대해 이 제독은 두 차례의 연평해전(1999년·2002년)과 대청해전(2009년)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기습 공격을 했지만 한국보다 더 큰 피해를 보고 패전했다”며 “그 때부터 복수를 다짐하고 다양하게 준비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제독은 “천안함 폭침사건의 경우도 끈질긴 수색작전을 통해 우리가 어뢰를 찾아내 결정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었다”며 “북한은 우리가 어뢰를 찾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희생 장병과 유족을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고 또한 감사하다”며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순직한 한주호 준위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하며 “이들의 투철한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한동안 말을 잊었다. 그러곤 눈물을 쏟아 급히 손으로 닦았다. “천안함 생존자들이 아직도 심리적 충격으로 고통 받고 있다. 국가는 희생자 유족과 생존 장병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폭침사건 발생 2년 뒤인 2012년 천안함이 소속된 2함대사령관(해군소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한 일간지에서는 그의 2함대 발령을 두고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 부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2함대사령관 재직 시 필자는 사관학교 동기생인 이 제독을 격려하기 위해 2함대사령부를 방문했었다. 사적인 방문이라 휴일을 택해 이 제독과 고교동창인 학군장교출신 친구와 함께 그를 찾았다.
부대 정문앞에 도착하여 초병에게 사령관을 만나러 왔다하자 초병은 연락을 받았다며 정문 밖에 있는 사령관 공관 방향을 안내해 주었다.
공관에 도착하자 이 제독 부부는 반갑게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런데 주차장에 조그마한 소형차가 서있었고, 이 제독은 그 차를 타라는 것이었다. 당시는 휴일이기 때문에 운전병도 휴식을 취해야 하고 사적 방문이기 때문에 부대 지휘관 승용차를 쓸 수 없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필자와 같이 방문한 친구들은 몽둥이로 얻어맞은 충격을 받았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공관병의 노예사병 사건은 이런 군인이 있는데 왜 발생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사령관이 직접 운전을 해서 전시된 천안함을 관람하고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추모비에서 묵념도 했다. 부대 소개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정문 옆에 있는 복지회관에 도착했다.
그 때 복지회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비서실장과 부관에게 이 제독은 점잖게 타이르는 것이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매우 화난 표정이었다. 공식행사가 아닌데 휴일 날 비서실장과 부관이 왜 나왔냐고 질책을 하며 바로 복귀하여 가족과 함께 휴무를 즐기라는 엄명이었다.
잘 준비하기 위해 성의를 표한 비서실장을 질책하는 이 제독이 얄미웠지만(?)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이제독이 한편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 제독은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을 거쳐 1차로 3성장군이 되어 해군사관학교장으로 부임했고 그곳에서도 공사(公私)를 명확히 구분하며 부하를 한결같이 아꼈다고 한다.
그리고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 역할을 위해 25대 해군작전사령관으로 보직을 옮겨 “상비필승”의 기치아래 최고도의 전투태세 확립을 추진하고 엄정한 작전기강 유지 및 원칙에 입각한 합리적인 부대운영을 통해 해군 전투력 강화에 기여했다.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 명예롭게…지휘관은 ‘어항속의 금붕어’임을 깨달아야
지난 11일엔 육군 및 공군참모총장 이·취임식이 계룡대에서 거행됐고 그 전날까지 신임 1·2·3군사령관이 취임을 하였다.
노예사병 논란으로 4성 장군이 전역도 연기된 채 군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고 매스컴에서는 계속적으로 기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 간부들은 한신, 채명신, 남재준 장군과 이기식 제독처럼 참군인으로 군 명예를 위해 노심초사하면서 국가와 군을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15년 계룡대 해군간부들을 대상으로 ‘군인의 길’이란 강연을 했던 남재준 장군은 41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세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나 자신이 두려웠다. 사소한 이익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경계했다. 둘째, 내가 부하들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상관인지 성찰했다. 끝으로 내 자식들이 두려웠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서 내 자식이 손가락질을 받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에 대한 이런 일화를 보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은 군 지휘관을 위한 것이 아닐까 미소 짓게 한다.
특히, 모든 조직사회에서 상관은 속일 수 있어도 부하를 속일 수는 없다. 가장 측근에 있는 공관병 같은 부하들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다. 그래서 지휘관은 ‘어항속의 금붕어’에 비유되기도 한다.
손자병법에도 ‘시졸여애자 고가여지구사(視卒如愛子 故可與之俱死)’ 라며 병사보기를 사랑하는 자식같이 해야 한다. 그러면 함께 죽을 수 있다. 라고 장수의 지휘통솔기법을 알려주었다. 이를 실천한 많은 지휘관들은 이런 자세로 근무한 결과 현직 및 전역한 후에도 부하 장병의 결혼 주례를 도맡아 하기도 한다.
그렇다. 사관생도들은 4년 동안 귀가 따갑도록 국가관과 리더십을 교육받고 체험한다. 그래서 많은 장군 및 군 간부들은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 명예롭게…” 라는 구호를 마음속에 다지며 군 생활이 끝나고 전역 후에도 애국하는 자세로 살아간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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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사진 왼쪽부터
송정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보호정책관, 홍기융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회장, 김한경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연구센터장, 문재웅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수석부회장, 김진형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위기관리연구센터장, 정석화 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실장)
ⓒ뉴스투데이
(안보팩트=김성권 기자)최차규
이사장, "사이버 안보 법령 제정해 기관 간 업무분담해야 "학계
산업계 및 전현직 군 간부들이 동참한 첫 사이버 안보 토론회"사이버 안보 전문인력 확보 최우선 과제"에 모두 공감한국안보협업연구소가 주최하고 국방부가 후원하는 ‘2017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가 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는 국내 안보 전문가들이 참석해 최근 국·내외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사이버 테러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정부의 사이버 안보 정책 제안과 산업계 보안 신기술 도입 등
국가적인 사이버안보 체계 정립과 발전 방안을 제시했다.이번 세미나는 학계와 산업계 및 군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발제자 및 토론자로 참여해 사이버 안보의 현황과 문제점 및 해결책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됐다.특히 방청객으로 육해공군 장성출신 인사들 및 현역 간부들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퇴역 장성출신 참석자인 K씨는 "우리나라의 사이버 안보 문제에 대해 각계 전문가와 전현직 군 간부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첫 자리라고
생각된다"면서 "오늘 세미나를 계기로 출발 단계인 사이버 안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최차규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최근 일어나는 사이버 테러 행위에 대하
상대적으로 우리의 관심이 미약한 것이 현실"이라며 "사이버 안보와 관련된 국가법령과 규정의 제정, 정비를 통해 국가기관 간 명확한 업무조정 등
산적한 과제들을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기조연설자로 발표에 나선 보안전문가인
김홍선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부행장은 우리나라의 허술한 사이버 안보체계를 지적하며, 4차산업 혁명시대 국가가 가장 먼저 대응해야할 우선 과제로
사이버 안보를 꼽았다. 이어 사이버 안보의 핵심인 전문 인력의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세미나는 제1세션 ‘4차산업협명 시대의 국가 사이버안보 정책 방향’과 제2세션 ‘사이버전 양상과 국방 대응능력 향상 방안’으로 나눠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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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에서 청중들이 전문가의 발표를 듣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는 전, 현직 군 관계자를 비롯해 방위산업, 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뉴스투데이
▶ 제1세션, 4차산업혁명
시대 정부의 사이버 안보 책임 강조‘4차산업혁명시대의 국가 사이버안보 정책
방향’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문재웅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수석부회장은 사이버 국가 차원의 사이버 안보 콘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문 부회장은 "청와대에 사이버 안보 수석을 두고 국가 사이버 테러 동향과 기술 수준을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사이버 안보 수석’ 정책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국방부 장관이 직접 통제 가능한 ‘사이버 보좌관’을 배치해 콘트롤
타워의 정립 필요성을 강조했다.산업계의 신기술을 적용해 사이버 안보 체계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홍기융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회장은 "산업계 보안 신기술 도입을 활성화해 관련 기관과 공유체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정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보호정책관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위협 대응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제2세션, 국내 사이버 안보 실태
비판두번째 세션에서는 국내 사이버 안보의 실태와 테러 대응 실패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다. 최근 군 내부망 해킹과 금융정보 유출, 랜섬웨어 공격 대응력에 대한 부재는 실무자들의 보안의식 부족과 태만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김승주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6년 군 국방망이 해킹돼 군사자료가
탈취된 사고의 원인을 국방통합데이터센터(DIDC) 관리 부실과 군 실무자들의 보안의식 부족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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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가 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 제2세션에서
사이버전 양상과 국방 대응능력 향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투데이
전문가들은 국가적 차원의 ‘사이버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이버테러의 전방위적인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기관 간 공조가 절대적이며 사이버 공간을 ‘국가 주권
수호를 위한 전장’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이버 안보 전문 인력의 육성과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이날 세미나에는 전현직 군 관계자들이 참석해 사이버 테러의 심각성을 재인식하고 대응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공감했다. 또 방위산업계 보안업체들이 다수 참가해 4차산업혁명 시대 사이버 테러에 대응할 수 있는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과
장비들이 소개됐다.
▲ 훈련 도중의 휴식 시간에 박지만 생도(왼 쪽에서 다섯 번째) 등 동기들과 필자(왼쪽에서 두 번째)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희철]
(안보팩트=김희철 기자)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과 동기인 육사 37기, 이런 저런 비애와 구설수 많아
언젠가 어느 월간지에 “박지만의 육사37기, 비운의 황태자 기수인가, 특혜 받은 기수인가?”라는 집중해부 기사가 게재된 적이 있었다.
기사 내용 중에 이런 글이 나온다.
“박지만 생도와 그의 동기인 육사37기에 대한 특별대우는 없었을까?” 동기생들은 입을 모아 ‘특혜는커녕 대통령 아들과 동기생이라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다.
1년 후배인 육사38기의 한 대령은 ‘당시 37기의 선배기수들은 박지만 선배가 포함된 37기에 편견을 갖고, 다른 기수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더 엄격하게 얼차려를 줬다’며 ‘특히 시골에서 올라온 선배들은 정의감에 불타 유명인사 자제들의 잘못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영웅심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안되면 되게하라!” 구호를 즐기차게 외치는 특전사 공수훈련 기간에도 또 한번 37기 특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 특전사 공수훈련을 받고 있는 육사37기 생도들. [사진=김희철]
‘안되면 되게 하는’ 특전 공수훈련 기간 중 문제의 사건 발생
그 웃지못할 특혜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건은 공수훈련 기간 중에 발생했다. 특전사로 배치되면 이병부터 장군까지는 누구나 공수훈련 4주를 받아야 한다.
1주차에는 매일 아침 5~7km 구보로 시작되는 체력강화훈련과 착지훈련, 모형기체 내에서 수신호와 수신호에 따른 행동요령과 주의사항을 교육받고 각 항공기별 이탈 자세를 취하면서 비행기를 묘사한 콘크리트 모형문에서 실제로 뛰어 내리는 훈련 등을 한다.
2~3주차에는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기체탑승에서 실제 강하까지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한 종합평가와 최종숙달 훈련 및 야간강하를 대비한 야간 모형탑훈련을 한다.
모형탑(막타워)훈련은 실제 낙하 전 훈련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많이 느끼는 약 11m높이의 모형탑에서 손으로 예비 낙하산을 꼭잡아 고정시키고 얼굴과 허리를 숙이며 다리를 모으고 L자형으로 하여 실제 강하 시와 동일한 자세로 최대한 멀리 뛰어 내리면서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는 훈련이다. 막타워훈련 시에는 ‘자격강하’를 위한 최종종합평가를 하게 된다.
▲ 완전군장을 한 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공수 낙하훈련을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37기 생도들. [사진=김희철]
구령부터 비상낙하산을 펴는 시늉까지의 동작을 평균 10~15회 중 3회 이상 완벽하게 소화해야 한다. 막타워 밑에서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앞서 뛰어내린 동기생의 자세를 보면서 파안대소를 짓기도 했다.
만약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뛰어내리지 못하거나 자세나 동작이 불량한 경우 퇴교조치를 받을 수 있지만 통상 5~8회 정도에서 대부분 합격한다.
마지막으로 착륙 시 강풍으로 인해 낙하산이 끌려갈 때 신속히 몸을 뒤집고 일어나 자세를 전환하여 바람 부는 방향으로 뛰어가 낙하산을 수거해야 하는 송풍 및 낙하산 수거 훈련을 받게 된다.
종합숙달훈련이 끝난 4주차에는 실제 낙하훈련을 받게 된다. 처음엔 단독군장, 완전군장, 야간강하 등 총 4회를 점프해야 수료증과 자격증이 주어진다.
▲ 1980년 세계 미스유니버스선발대회에 참가한 각국의 미인들이 육군사관학교를 찾아 37기 생도80명이 동원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사진=김희철]
신군부 세력의 문화정치 '미스유니버스 본선'에 공수훈련 중인 37기 생도 80명 동원돼
훈련장에 남은 37기 생도들은 더욱 혹독한 훈련 받으면서 '특혜' 구설수로 가슴앓이
40년 가까이 지난 요즈음도 육사37기생들은 모이면 어김없이 1980년 세계 미스유니버스대회 이야기를 꺼낸다.
1980년 7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미스유니버스 본선 대회가 열렸다. 본선은 이 날 하루였지만 사전 행사와 예선은 6월 말부터 시작돼 3주에 걸쳐 열렸다. 본선은 美 CBS방송을 통해 위성중계 됐다.
69개국에서 온 ‘미(美)의 사절’은 신군부 세력의 ‘문화정치’, ‘스펙터클 정치’에 소도구로 동원됐다. 미녀들은 말 그대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경복궁, 불국사 같은 관광지를 찾고, 육군사관학교도 찾았다. 한 예비역 장성(37기)은 “37기 생도들은 제식훈련과 분열 시범을 보였다”며 “당시 언론은 ‘미녀들이 원더풀을 연호했다’고 보도했다”고 했다. 또한 어떤 동기생에게 홀딱 빠져버린 미녀가 호텔키를 넘겨주기까지 하여 국제결혼 사례가 될 뻔 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는 “37기생들은 거여동 공수훈련장에서 점프훈련을 받다가 ‘신장173cm이상 생도 열외하라’는 지시를 받고 80명의 생도들이 화랑대 예복을 입고 7월 8일 열린 본선(세종문화회관)에 직접 나가 참가자들을 에스코트했다”고 했다.
그는 “화랑대 예복을 입고 롯데호텔 파티장까지 가서 미녀들과 즉석 댄스도 추었다”며 “행사가 끝나자마자 점프훈련장인 거여동으로 복귀해 철모를 쓰고 다시 공수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공수훈련장에서는 25%동기생이 세종문화회관으로 빠져나가자 훈련 교관들과 조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공수훈련 역사상 중간에 열외하여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도 수료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녀선발대회에 참석한 동기생들은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하지만 생도교육 일정상 불가능 했고 국책사업이다 보니 상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훈련장에 남아있는 동기생들은 오히려 더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했지만, 꽃향기 나는 미의 제전에 차출된 80명의 동기생들로 인해 특별대우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사는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37기 생도들은 가슴앓이를 했던 것 같다.
▲ 훈련장에 남은 37기 생도들은 더욱 혹독한 훈련 받으면서 '특혜' 구설수로 가슴앓이를 하여야 했다. [사진=김희철]
하계훈련을 마친 4학년 생도들이 다는 공수휘장(Wing)의 각별한 의미
하계군사훈련이 끝나고 생도대에 복귀할 때의 각 학년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4학년 생도는 가슴과 전투모에 공수휘장을 달고 3학년 생도는 가슴에 유격(Ranger)휘장을 달고 후배들의 어깨를 한 번 툭 쳐본다.
공수휘장은 5개 종류가 있다. 공수훈련 4회를 이수하면 기본공수휘장을, 20회 이상 또는 강하조장훈련 이수 시에는 은성, 40회 이상 또는 고공기본훈련 이수 시에는 월계공수휘장을 단다. 100회 이상 시에는 휘장 안에 100회에 1개씩 금별이 추가되고, 1000회 이상 휘장은 금색(골드윙)으로 금성공수휘장이라 칭한다.
필자는 4회 기본 점프 시 특별한 추억이 있다.
당시 점프를 위해 탑승한 C-123수송기는 소음이 심하기 때문에 강하조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점등신호 불빛과 조장의 수하에 의해 행동이 이루어진다. 막상 1200피트 상공에서 문이 열리고 조장의 낙하 신호를 보면 몇 초 안에 탑승자 전원은 모두 뛰어내린다. 만약 앞선 대기자가 머뭇거리면 낙하지점을 지나 엉뚱한 곳에 떨어져 위험해 질 수도 있다.
▲ c-123 수송기에서 뛰어내려 낙하산을 펼친 채 강하하고 있는 37기 생도들. [사진=김희철]
그래서 공포에 의해 문 앞에서 머뭇거리면 조장이 강제로 떠밀어 버린다. 심지어는 발로 차기도 한다. 그래야 나머지 인원들도 안전하게 강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낙이불착(樂而不着)이라 했던가? 집착을 버리고 즐기기로 마음을 다지자 고소공포증은 사라졌다. “한번 죽지 두 번 죽나?” 내가 머뭇거리면 뒤에 따라오는 동기가 어려워진다. 살신성인(殺身成仁)까지는 아니지만 조직과 단체를 위해 몸을 창공으로 던졌다.
L자로 굽어진 채 수직낙하하고 있었고 무릎 사이 전투복이 바람에 파르르 떠는 모습을 보았다.
“덜컥” 낙하산이 펴지는 충격에 출렁거렸다. 이제부터는 방향을 잘 잡아 인접 동료와 충돌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착지 지점을 찾았다. 마침 배수로 공사장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골도 파여 있고 배관도 있고 그곳으로 떨어지면 최소 발목 골절을 각오해야 했다. 힘차게 낙하산을 당기며 방향을 조정하다보니 그만 발끝이 배수로 바로 옆 땅에 닿았다. 교관이 가르쳐 준대로 구를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서 버렸다. 교관이 위험하니 압력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지면에 가능하면 많이 닿게 낙법을 하라고 했는데...
마침 방향조정을 위해 낙하산을 당기고 놓고 하다 보니 월계공수휘장 받은 고공낙하 이수자가 하는 방법을 나도 모르게 한 것이었고 덕분에 난 말짱했다. 강풍이라도 불었으면 발목이 부러졌을 것이다.
▲ 공수훈련을 마친 생도들이 특전사 교관을 행거래를 치고있다. [사진=김희철]
必死卽生 必生卽死 (필사즉생 필생즉사)
마지막 점프가 끝나자 낙하지점에서 파티가 이루어졌다. 철모에 받아먹는 막걸리는 처음 마셔보지만 꿀맛이었고 새보다 자유로운 특전사 교관과 강하조장은 존경스럽게 보여 졌다.
훗날 졸업 무렵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우리를 가르쳤던 강하조장이 고공낙하 중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순직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의 정신으로 청춘을 붙태우는 특전사 요원들에게 한없는 존경과 ‘받들어 총’을 보낸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자유한국당·국민의당 등 주요 야 3당, 국방비 GDP 3%이상에 동의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주최, 대선후보 안보특보 정책토론회서 밝혀
핵위기·일본의 재무장·중국의 군사대국화 등 주변정세 엄중함 인식
(안보팩트=전승혁 기자)
문재인 정부가 집권 기간 동안 국방예산을 현행 국민총생산(GDP)의 2.4% 수준에서 3% 수준으로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달 25일 정부 부처 업무보고에서 국방부로부터 국방예산을 과거 참여정부 수준인 연 7~8% 정도 증액하는 국방개혁안을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현 국방비 2.4%(GDP 대비)를 2.7%~2.8%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국방예산 증액방침에 대해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주요 3당이 모두 의견을 함께 하는 것으로 지난 4월 17일‘한국안보협업연구소’주최로 열린‘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안보정책특보 초청 정책토론회’에서 확인됐다.
야 3당이 국방비 증액에 관해서 정부여당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향후 국방개혁 및 예산 증액에 대한 국회 심의과정이 상대적으로 순조로울 것 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북핵위기의 고조 및 일본 자위대 재무장 그리고 중국의 군사대국화 등으로 인해 한반도 주변의 정치·군사적 정세가 날카로워짐에 따라 한국도 군비증강 및 군현대화 작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게 여야 정치권의 엄중한 판단인 것이다.
5월 ‘장미대선’직전인 지난 4월 17일 국회 의원회관 제 2소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백군기 전 의원은“전력증강을 위한 국방비 증액 규모는 GDP 대비 몇%가 적당한가”라는 조선일보 유용원 군사전문기자의 질문에 대해“국방 예산은 GDP대비 3%는 유지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은“GDP대비 2.4%인 현행 국방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면서“국방은 주변국가와 우리나라와의 군사력을 비교해서 격차를 좁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백승주 의원은 “그런 차원에서 국방예산을 국방부만의 결정으로 판단하지 말고 범 국가차원에서 전문가들이 과학적으로 군사력을 평가하는 의사결정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이성출 안보특보도“국방비는 GDP 3% 수준을 유지하되 효율적인 전력증강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고, 바른정당 신원식 안보특보는 한 걸음 더 나가“국방비가 GDP 3.5% 수준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국방비 증액의 GDP연동 방식은 적절하지 못하다 ”면서“스마트한 군대로의 체질개선과 국방개혁에 소요되는 비용은 늘려야 하지만 실효성없는 신규사업에 대한 발 담그기 식 예산증액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김 의원의 발언은 목표 달성식 국방예산 증액에는 반대하지만 군의 현대화 및 개혁을 위해 필요한 예산적 조치는 지지하는 절충적 입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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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공군교육사령부는 지난 5월 2일 연병장에서 제227기 부사관 후보생 임관식이 열린 가운데 후보생들이 임관선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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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자리 추경안' 난항 속에서 국방부 세부 분야 채용 규모 계획 발표부사관
육·해·공·해병대 1160명, 간호사 등 의무군무원 340명 선발(안보팩트=이안나 기자) 문재인 정부가 시행하겠다고 한 하반기 국가직‧지방직 공무원 1만 2000명 중엔 부사관과 군무원
1500명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의 ‘일자리 추경안’이 심의 통과되지 못하고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방부는 부사관‧군무원의 세부 분야별
채용 규모를 19일 발표했다.국방부는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라 간부중심의 병력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매년 간부를 증원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내년 채용할 인원을 일부 올해로 앞당기는 방식으로 추가 채용을 진행할 예정이다. 시급성에 따라 부사관 1160명과
무자격 의무병 대체를 위한 의무 군무원 340명을 연내 채용하게 된다.부사관 증원은 병력 감축에 따른 전투력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간부 증원의 일환이다. 동시에 청년 일자리 확보라는 이번 추경의 방향에 부합하기 위해 하위계급인 중·하사 중심으로 증원을
요구하였다.국방부는 2018년 간부 3089명(부사관 2915명) 증원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중 부사관 1160명을 올해 조기채용
할 예정이다. 이는 2018년 상반기에 개편‧창설 될 부대에 배치될 인원으로 부대개편과 첨단장비 도입에 따른 정비인력이 주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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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국방부 / 그래픽: 뉴스투데이
군무원 증원은 무자격 의무병의 의료보조행위에 대한 개선 대책으로 전문 의무인력을 충원한다. 국방부는 장병들의 안전을 고려해
가급적 신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2018년 군무원 증원을 575명(육군 235명 의무 340명)으로 계획하고 있는데,
이 중 의무인력 340명을 연내 충원한다. 약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등의 자격을 갖춘 인력을 선발할 예정이다.국방부
인사기획관리과 관계자는 "부대 배치는 내년 초반에 결정되겠지만 채용 확정만이라도 올해 안에 최대한 끝낼 예정"이라고 답했다.
국방부는 이번 추경을 통해 부사관·군무원 조기채용이 시행될 경우, 청년층 취업률 제고에 실질적인 기여를 함은 물론 간부중심
병력구조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군 의료인력의 전문성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추경이 통과되면 하반기 각 군별
채용공고 등 채용절차를 진행하여 연말까지 선발을 확정하게 되며, 선발된 인원은 내년부터 각 군 부대에 배치되어 근무하게 된다. 이번 추경에는
부사관·군무원 채용을 위한 행정비용과 부사관 양성비(약 1개월) 17억원을 요구하였으며, 인건비는 2018년 예산안에 반영될
예정이다.
▲ 3학년 생도시절 하계 유격훈련 중에 기념촬영을 한 필자(앞 줄 맨 오른쪽)와 동기생들. ⓒ김희철
(안보팩트=김희철 기자)
4년 동안 '이열치열(以熱治熱)' 선택, 여름 더위를 뜨거운 훈련으로 극복
사관학교 생도들은 4년동안 매해 여름이 되면 작렬하는 태양과 몰아치는 소나기와 친구가 되는 하계군사훈련으로 더위를 잊는다.
보통사람들이 찌는 듯한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오히려 뜨거운 민어탕이나 보신탕을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사관생도들을 포함한 군인들도 '이열치열(以熱治熱)'을 선택한다. 가장 더운 한 여름에 치열하고 강하게 훈련을 함으로써 전투력을 강화시킨다.
1학년 '두더지'생도들은 태릉골 육군사관학교에서 동급생으로 지휘부를 편성하여 자치제도를 숙달하며 기초적 훈련을 받고, 2학년 '빈대'생도들은 부사관 학교로 훈련장을 옮겨 부사관 교육과정을 숙달한다.
3학년 'DDT'생도들은 전남 상무대 보병학교로 내려가 소대장 교육과정을 밟으며 동북유격장에서 유격훈련(Ranger)코스를 체험한다. 4학년 '놀부'생도들도 특전사 교육대에 입소하여 정식으로 4주간의 공수훈련을 받는다.
1학년 '두더지'들, 호랑이선배들이 떠난 공백 속에서 '지옥훈련'거듭하며 동기애 쌓아
지금은 없어져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경춘선 화랑대역에서 초여름이 되면 상급생도 환송행사가 열린다.
4학년 생도들은 버스를 타고 특전사로 이동하지만, 2~3학년 생도들은 기차를 타고 원주 부사관학교와 광주 상무대 보병학교로 출발한다. 후배들 앞에서 폼은 잡고 있지만 사실은 호랑이 선배들도 부사관과정 교육과·보병학교의 유격훈련 그리고 특전사 공수훈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 3학년 생도시절 지옥의 유격훈련 와중에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있는 필자. ⓒ김희철
상급 생도들을 떠나보내고 난 뒤 두더지 1학년 생도들은 지난 반년(6개월)동안 선배들의 친절하고 정성스런 지도교육과 이별하는 아쉬움 보다는 빈대·DDT·놀부들에게 시달렸던 구속감에서 해방된 즐거움을 훨씬 더 크게 느낀다.
하지만 동기생들로 편성된 자치지휘제도에 의해 편성된 조직은 오히려 선배들보다도 더 까다롭게 지휘통솔하는 바람에 해방감은 곧 사라진다.
편지·보고서 작성 시 직각으로 BOX화하지 못하면 간부로 편성된 동기들이 검열하여 퇴짜를 놓는 바람에 재작성하게 되고, 시간을 못 지키거나 열외 등 잘못을 저지르면 선배들보다 더 심하게 벌점을 부여하여 자체 얼차려를 받는 상황도 발생하였다.
기초적인 병교육을 받으면서 장차 국가 간성으로 커 나가기 위해 전쟁사, 군법, 제식훈련, 각개전투, 기본전술 등의 교육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동기생들에 의한 통제가 느슨해질 때에는 훈육관·교관들이 곧바로 제재로 들어와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동기생들만 남아있는 해방감은 좋았고 동기애(同期愛)를 쌓아가는 과정이었다.
하계군사훈련의 꽃은 3학년 'DDT'생도 시절 유격훈련
훈련 직전 식중독 걸려 탈진... 빨간모자에 선글라스 낀 교관, 입맛 다시며 불호령
하계군사훈련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3학년 'DDT'생도들이 경험하는 유격훈련(Ranger)이다. 보병학교에서 소대장 교육과정을 임할 때 소대전술과 화기학, 리더십 등을 배우고, 마지막 2주는 전남 화순에 있는 동복유격장에서 유격훈련을 받는다.
▲ 3학년 생도시절 성공적인 유격훈련을 다짐하기 위해 전남 영광의 해수욕장을 찾았던 필자. ⓒ김희철
선배 생도들이 하도 겁을 주어 두려움도 있었지만 동기생들이 함께 한다는 것에 많은 의지가 되었다. 그래서 유격훈련 떠나기 전 몇몇 친한 동기들과 토·일요일을 이용하여 전남 영광에 있는 가마미 해수욕장을 찾았다. 갯벌에서 회를 곁들이며 성공적 유격훈련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필자는 식중독에 걸려 복통과 설사, 구토만 했던 기억이 난다.
식사도 못하고 탈진한 상태에서 월요일 유격훈련은 시작되었다. 동북유격장 PT교관은 빨간모자에 진한 선글라스를 쓰고 회초리 지휘봉을 들고 사열대에 버티고 서있었고 똑같은 복장의 유격조교들은 모자를 눌러써 눈동자는 보일랑 말랑하지만 사관생도 훈련생이라는 먹이감에 입맛을 다지는 듯 '썩소'를 짓고 있었다.
유난히 자극적인 호각소리에 따르지 못하는 훈련생들의 자세도 지적했지만, 빨간 모자에 진한 선글라스 교관의 불호령은 구령소리가 작다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피(P)가 나고 터(T)지는 PT체조로 시작된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길
첫날 PT체조는 말 그대로 피(P)가 나고 터(T)지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가입교 시절 기초군사훈련, 2학년 부사관학교 훈련 등을 겪은 몸이라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체력엔 자신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세불량시 지적하는 교관조교에게 불려나와 별도로 얼차려를 받는 등 정말 지옥이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텐트마다 신음소리였고 온몸은 알이 배기고 쑤셔왔다.
첫째 주 PT체조는 기본이고 기초 장애물 코스와 산악 코스의 로프와 레펠... 수직낙하, 하지만 만경대 호수위로 로프를 타고 내려올 때 두려움보다는 상쾌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매 코스를 시작하기 전 두려움을 잊게 하기 위해 조교가 “어머니”를 외치라고 할 때는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첫째 주 교육을 마치고 도피 및 탈출 교육으로 이어졌다. 2주차 교육은 한 장의 지도와 나침반으로 다음 집결지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그것도 선착순으로 서열을 부여했다.
일부 동기는 걷기가 힘들고 빨리 도착하기 위해 교관의 눈을 피해 민간 트럭을 탑승하여 이동하다가 발각되어 곤욕을 치루는 경우도 있었다. 간혹 지도정치를 잘못하면 열심히 힘들게 올라간 산봉우리에서 내려와 다시 인접 산봉우리로 올라가야하기 때문에 독도법 교육도 숙달하게 되었다.
▲ 3학년 생도시절 유격훈련을 받는 필자와 동기생들. ⓒ김희철
주야로 계속된 훈련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에는 가장 좋은 장소가 무덤이었다, 평평하고 푹신한 잔디에 숲이 없어 벌레도 적고 가장 효과적인 휴식 장소였다. 어릴 적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모든 일이란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군대 생활을 마친 예비역 병장과 학군(ROTC)장교들에게 군생활의 가장 기억나는 추억을 물어보면 대부분이 유격훈련 이야기를 한다. 어떤 학군장교는 유격훈련을 마치고 동기생끼리 서로 끌어안고서 울면서 말했다고 한다.
“절대로 아들은 낳지 말자...”
극한 속에서 여유를 느끼며 인간의 한계까지 악과 깡으로 버티었던 유격훈련(Ranger)과정을 마쳤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던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듯이 훈련을 끝낸 보람과 성취감은 그 무엇보다도 크고 기뻤다.
(2부 공수훈련은 다음에 계속)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서울대 미대 지망생이었던 필자가 생도시절이었던 40여년 전에 그렸던 육사생도들의 구보 모습. ⓒ 그림=김희철
(안보팩트=김희철 기자)
5월 '생도의 날' 축제 앞두고 벌어지는 파트너 조달작전은 아련한 추억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다. 그런데 생도시절 5월은 “생도의 날” 축제가 있어 더 더욱 여왕의 계절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자 친구가 없는 생도들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다. 게다가 더 피곤한 것은 같은 조(분대)의 상급 생도이다.
주로 조(분대)별로 행동을 하게 되는데 4학년 선배들이 1학년 후배의 파트너가 없으면 2,3학년 생도들에게 후배 관리 면에서 선배 노릇도 못한다며 심한 핀잔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제 한두 달 전부터 상급 생도들은 외출을 통제 받는 1학년의 파트너를 구해주기 위해 미팅 주선으로 바빠진다. 물론 자신의 파트너도 구해야 하기도 하다.
‘생도의 날’을 앞두고 ‘파트너 조달 작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훗날 임관한 육사출신 장교의 부인들이 서울여대 출신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태릉골 육사의 길 건너편에 있는 서울여대생들과 급하게 미팅을 주선 하다가 눈이 맞아 결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필자가 1학년 생도였던 그해 5월 어느 토요일에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2학년 이상 선배들은 생도의 날 축제를 앞두고 모두 외출 외박을 나갔고 1학년 생도들만이 생활관에 남아 육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홀로 남아있는 생활관 창밖의 빗방울 소리는 더 처량하고 외롭게 들려 왔다.
그때 문뜩 몇 일전 화랑대를 떠난 친구들이 생각났다. ‘구보’와 ‘시험’이 쉴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사관학교의 교육일정은 초인적인 정신력을 요구한다. 버티지 못하고 어렵게 들어온 학교를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입교생 중에 통상 20~30%가 졸업을 못하고 퇴교 당한다.
특히 생도생활은 구보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전투복을 입고 단체로 구보를 한다. 물론 매일 아침 점호 후에도 운동복 복장으로 뛴다.
사관생도에게 구보는 생활의 일부, 어떤 시련도 이겨낼 극기 정신 키워
단체 구보는 처음엔 비무장으로, 다음엔 단독군장으로, 그 다음엔 완전군장으로 복장을 바꿔하며, 뛰는 거리도 3km, 5km, 10km씩 계속 변경 반복된다. 20kg에 달하는 완전군장을 메고 10km를 뛸 때에는 거의 반주검 상태가 된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뛰고 난 후이다. 간혹 체력 미달로 또는 배탈이 났거나 등의 이유로 낙오를 한 사람이 생기면 단체 얼차려 기합을 먼저 받고 당사자의 개별 기합도 또 받는다.
게다가 더 더욱 힘든 것은 체력 고갈로 지쳐있지만, 마냥 퍼져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될 때이다. 만약 그 다음날 정기 시험이 있으면 시험 공부도 해야 된다.
매년 전반 학기가 끝나기 전이라 아직 적응이 덜된 1학년들에게는 5월이 계절의 여왕이 아니라 지옥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즈음이 되면 벌써 10여명의 동기생들이 퇴교를 당한다.
시험에서 한 과목이라도 낙제를 하면 재시험을 치루고 거기에서도 점수가 미달이면 다른 과목을 아무리 잘하더라도 바로 퇴교이다. 중간에 퇴교 당한 친구들은 소위 SKY대학에 바로 합격하기도 한다. 혹독한 육사 생도교육과정을 경험한 사람은 사회에 나가 시련과 도전을 이겨낼 역량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 필자는 고된 훈련을 마치고 땀에 절은 생도들이 서로 찬물을 부어주며 즐거워하는 광경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 그림=김희철
'외로운' 1학년 생도들, 구보할 때 받는 시민들의 박수에 힘얻어
외출 나갔다가 일요일에 복귀하면 바로 옆자리가 비어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재시험을 통과 못해 퇴교 당한 것이다.
간혹 특이한 경우도 있다. 화려하게만 보이던 생도생활이 뛰고 또 뛰고 얼차려 받고 늘 긴장해야하는 생활이 힘들어 스스로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고 퇴교한 친구도 있다.
본인이 자퇴를 신청하면 제대로 후배 교육을 못 시켰다고 상급생도가 질책을 받고, 동기생들은 동기애가 없다고 얼차려 받는 경우가 종종 생기니까 이런 방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퇴교하는 순간에도 전우애를 발휘한 친구들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대부분의 생도들은 구보를 즐긴다. 왜냐면 육사 정문을 통과해 시내 도로길에서 군가를 부르면서 뛰고 있을 때, 시민들의 박수도 받고, 민간 버스와 택시도 볼 수 있고, 입교 전 각오와 생활을 회상하며 즐길 수 있는 시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든 구보를 하기 전에 선배들은 말한다. “뛰면서 생각해라. 구보는 군인에게 있어서 휴식이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5일 인민군 창건일 85주년을 맞아 열린 군종합동 타격시위를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타격시위에는 황병서 총정치국장, 리명수 총참모장, 박영식 인민무력상과 리영길, 조남진, 렴철설, 조경철 등 인민군당위원회 집행위원들이 참석했다. [출처=노동신문]
(안보팩트=김희철 기자)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던 '4월 위기설'도 역사의 뒤안길로...
4월 25일 북한군 창건일 관련 북의 도발을 대비해서 미국 오하이오급(1만8천톤) 핵잠수함 미시간호가 부산항에 입항했다. 이날 한·미 해군은 서해에서 연합해상 훈련을 실시했다. 최강의 전투력을 과시하는 미 핵추진 항공모함 캘빈슨함(CVN-70) 항공모함전단은 일본 근해에서 미·일 연합훈련을 해왔다. 한·미 해군은 이번 주말에 갤빈슨함 전단과 동해에서 항모강습단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북한은 지난 해에도 북한군 창건일 이틀 전에 미국을 압박하고 북한 내부를 통제하기 위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연례행사처럼 호전적 태도를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의례적인 도발로 보기 어렵다. 의도가 다른 것 같다.
박영식 인민무력부장은 조선중앙TV가 녹화 방송한 북한군 창건 경축 중앙보고대회에서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팰 우리 식의 초정밀화되고 지능화된 위대한 타격수단들이 이미 실전 배치됐다”고 밝히면서 미 캘빈슨 항공모함과 주·일 미군기지를 타격할 핵공격 수단들이 발사대기 상태에 있으며 6차 핵실험도 감행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추가 도발 시 원유 공급 중단’과 중국관영매체의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용인’보도 등 전례 없이 강력한 경고 메시지 영향탓인지 노골적인 도발 대신 강원도 원산에서 화력훈련을 하는 것으로 창건일 행사를 마쳤다.
자신들이 호언해 왔던 전략 무기 도발을 주춤했다고, 북한이 도발 카드를 완전히 접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미·중의 압박이 다소 완화되길 기다렸다가 기습 도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트럼프의 선제타격설과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이후 대선 기간 중 유발되었던 4월 위기설은 역사의 뒤안길로 잠복하였다.
아무튼 4월은 잔인한 달이다.
▲ [사진=김희철]
사관학교 생도들, 5월 생도의 날 기대하며 ‘잔인한 4월’이겨내
직업군인에게는 왼어깨가 올라가는 고질병이 있다.
각군 사관생도들은 매일 4번의 퍼레이드를 한다. 오전 오후 학과 출장 및 복귀 행진 때문이다. 4시간 분량의 책을 가방에 넣고 왼쪽 팔에 끼우고 오른손을 힘차게 90도씩 올리며 중대별로 대오를 맞추어 15분 정도 퍼레이드를 하며 공부하러 교수부에 간다.
4년 동안 계속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왼어깨가 올라가는 기이한 체형으로 바뀐다. 졸업 후 내 체형이 비뚤어졌구나 하고 돌이켜 생각하니 이 고질병은 바로 책가방을 왼팔에 끼우고 행진했던 것도 원인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하급생도 입장에서 퍼레이드는 기이 체형 형성을 걱정할 틈조차 없는 지옥 같은 시간이다. 4학년인 분대장 생도가 맨 앞에 그 뒤로 1학년, 2학년, 3학년 순으로 대열을 갖추다 보면 뒤에 따라오는 상급 생도가 “팔다리 높이가 틀리다.”, “열, 오, 대각선이 안맞는다.”며 행진간 잔소리를 계속 듣게 된다.
심지어는 휴식 또는 자유 시간에 상급생도 방으로 호출당하여 심한 질책과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특히 5월 생도의 날 축제 시 예복을 입고 퍼레이드 하는 행사인 화랑의식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습한다는 미명하에 상급생도의 지적 강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었다.
▲ [사진=김희철]
키는 작지만 땅달하고 다부졌던 어떤 상급생도가 “군인은 천당과 지옥도 인솔하여 간다. 하물며 사관생도들이 단체의식 없이 발도 틀리고 열도 못 맞추는가?”하며 정신을 차리라고 호되게 교육시키던 일이 기억난다.
그래도 퍼레이드를 하면서 부르던 “4월의 노래(박목월 작사)”는 봄을 느끼게 하며 스트레스를 날려주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차기 대통령, 불임의 4월 딛고 주도적으로 한반도 평화 잉태하길
잔인한 4월은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1922년작)에 나오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이하생략)”라는 구절에서 인용된 말이다.
어느 평론가는 이 부정의 의미는 시인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을 불임의 숙명에 처한 어부왕의 심정과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생명의 부활을 약속받는 이 찬란한 봄의 계절에, 죽은 목숨만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것은 잔인한 운명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시를 모두 읽고 나면 ‘4월이 잔인하다.’고 말한 것은 역설적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봄의 생명력을 찬양한 문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번 4월 위기설은 미·중·일이 합심하여 북한을 압박한 결과이고 TV의 대선토론회에서도 언급이 있었지만 대북 제제의 성공은 완벽한 경제제재(economic sanctions)로 만이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 중국의 원유공급 중단 발표로 알 수 있었다.
손자병법 6편 허실(虛實)의 고선전자 치인이 불치어인(故善戰者 致人而 不致於人)처럼 ‘잘 싸우는 자는 적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지 적에게 조정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이하면서 화랑대의 사관생도들은 생도의 날 축제를 기대하면서 잔인한 4월을 극복한다. 5월 9일 선출될 19대 대통령 당선자는 북한이나 주변 열강에 휘둘리지 말고 위기의 잔인한 4월을 겪으며 북한의 도발을 억지한 미국과 중국처럼 주도권을 갖기를 기대해 본다. 북한에 조정 당하지 말고 우리가 북한을 조정할 수 있는 외교안보 정책을 구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