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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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투분석] 강은호 방위사업청장, 업계와 ‘소통’하고 해법 추진할 ‘실행력’ 갖춰야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강은호 신임 방위사업청장이 28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업무에 돌입했다. 강 청장은 처음에 차기 방사청장을 희망했으나 가능성이 멀어지는 듯하자 방사청 차장 직에서 물러나 국방과학연구소장에 응시했었다. 이후 연구소 내부 반발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다시 방사청으로 유턴해 최초의 내부 승진 방사청장이 됐다. 강 청장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정책의 완성은 성과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추진해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면 그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며 “혁신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성과 창출에 매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는 업체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현재 시급히 조치할 것이 무엇인지도 면밀히 확인해 달라고 했다. 이와 같이 취임 직후 발 빠른 행보를 시작한 강 청장은 행시33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방사청 개청 당시부터 합류한 그는 유도무기사업부장, 방산기술통제관, 기획조정관, 지휘정찰사업부장, 기반전력사업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방산 전문가다. 방사청 관계자들도 강 청장이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면서 전문지식과 아이디어가 풍부해졌다고 말한다. 따라서 감사원 출신인 왕정홍 전 청장처럼 방위사업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청에서 잔뼈가 굵어 방위사업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와 이에 대한 해법도 상당히 알고 있다. 즉 전문성이란 관점에서는 적임자 중 한 사람이 발탁된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얼마나 시장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소통’하며, 필요한 ‘실행력’을 발휘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그동안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차기 방사청장 인선 기준으로 다양한 행정경험 및 전문성에 토대를 둔 ‘대안조정 능력’과 문제에 봉착하면 적시에 필요한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겠다는 ‘도덕적 용기’ 그리고 실무자들이 외풍에 시달리지 않고 소신껏 일할 여건을 만드는 ‘직업적 사명감’ 등 3가지를 내세웠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지금 강 청장에게 요구되는 것은 ‘도덕적 용기’와 ‘직업적 사명감’이다. 향후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역량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강 청장은 임명 과정에서 일부 제기됐던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대 방사청장 중 방산업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시장을 중시한 최고의 청장이란 평을 얻을 수 있다. 최기일 상지대 교수는 “강 청장이 자주 인용한 ‘일류 방산’이란 용어가 현실화되려면 시장을 이해하려는 자세로 업계와 허심탄회한 소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저 소통하는 모습만 보이는 요식행위를 벗어나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는 신뢰 관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방위산업진흥회가 현재 추진 중인 ‘방위산업 육성 발전방안’ 10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 청장이 취임사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코로나 19 장기화에 따른 방산업체의 애로사항부터 챙기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 맞는 선진국 수준의 제도 혁신에 힘쓰고, 과도한 감사와 규제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 조성에도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방산 정책·제도를 다년간 연구해온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국민들 사이에서 방위산업이 국가의 첨단 기술이 접목된 ‘기술선도형 산업’이면서 ‘미래 유망산업’이란 인식이 싹트도록 실질적 성과 창출에 주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획득 제도와 방위산업 육성정책의 목표를 국내 조달보다 글로벌 경쟁력 향상에 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이 방산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차기 방사청장의 인선 기준이 언급되고 신임 청장에게 바라는 여러 의견과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강 청장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일부 부정적 분위기도 감지되지만 이는 강 청장이 그동안 보인 모습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으니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이제부터 강 청장이 풀어야할 핵심 과제는 첫째로 산업이란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고 업계와 얼마나 진정한 ‘소통’을 갖느냐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업계가 수평적 동반자 관계로 상생과 협력을 추구하는 대상이란 인식이 앞서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소통 창구와 소통 방식을 만들어 정부와 업계가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방향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 둘째로 이렇게 찾아진 방향과 해법을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강력히 추진할 ‘실행력’을 갖고 있느냐이다. 강 청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했듯이 성과가 있어야 성공한 것이다. 성과를 창출하려면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실행력이 중요하며, 이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도 해결해야 한다. 이 두 가지 핵심 과제에서 강 청장의 지도력이 새롭게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 방위산업
    • 종합
    2021-01-04
  • [김희철의 전쟁사 (23)] 윈스턴 처칠, "캐나다 병사와 미국의 기술력, 영국의 장교들이면 세상을 지배"로 극찬
    중공군, 철수하는 국군 6사단을 추격하며 가평을 점령 영연방 제27여단, 중공군 저지 위해 가평 북면 일대에 방어선을 편성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중공군이 제 5차공세의 시작인 사창리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의 방어선을 뚫고 남하해오자 영연방 제 27여단은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가평의 북면 일대에 방어선을 편성했다. 중공군이 가평을 점령해서 서울과 춘천을 잇는 46번 국도를 따라 남하해오면 서부전선의 유엔군이 측면에서 협공을 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연방 제 27여단은 사창리에서 가평으로 이어지는 75번 도로 서쪽인 북면 이곡리의 677고지에 캐나다 대대를 배치했으며, 가평천과 화악천이 합류하는 도로 북동쪽 목동리의 504고지에 호주 대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여단에 배속된 미 전차 제72대대 1개 소대를 죽둔리에 배치하였고, 미들섹스 연대 제1대대로 구성된 영국군 1개 대대를 예비부대로 편성했다. 사창리를 돌파한 중공군 20군 예하 제118사단이 4월 23일 야간공격을 재개하자, 국군 제6사단은 경계부대인 미들섹스 대대와 함께 철수하여 가평 북쪽 가평천변에 배치되었다. 중공군은 호주대대의 배치 상황을 모르고 신속히 가평을 점령할 목적으로 종대대형을 유지한 채 도로와 계곡을 따라 내려 왔다. 우전방 75번 도로 북동쪽의 북면 목동리 504고지에 배치된 호주대대는 대대의 화력은 물론 지원된 전차 및 포병화력을 기습적으로 집중하여 적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은 4월 24일 01:00경 전방에 배치되었던 전차소대가 재보급을 위해 철수하자 즉시 2개 대대로 포위공격을 기도하였다. 반면 호주대대는 통신이 두절되어 전방중대와 연락은 물론 포병의 화력지원도 요청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후방의 대대지휘소와 박격포진지마저 피탈되어 최악의 상황에서 근접전투를 펼치게 되었다. 대대는 포위된 상황에서도 일부 진지가 피탈되면 즉시 역습으로 회복하면서 새벽까지 목동리 504고지의 방어진지를 사수(死守)하였다. 날이 밝아 아군의 항공폭격과 포병사격이 집중되자, 중공군은 공격을 중지하고 다수의 사체를 유기한 채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즉시 추격작전을 펼친 영연방 제 27여단 수색대는 죽둔리 부근에서 중공군 40명을 생포도 하였다. 전반적인 상황을 분석한 영연방 여단장은 적이 일시적으로 철수하였지만 이 지역에서 장시간 체류하면 오히려 피해만 증가할 것으로 판단하고, 호주대대를 미들섹스 대대 후방으로 철수토록 하였다. 대대의 철수를 지원하기 위하여 오전에 연료 보충과 장비 점검을 완료한 미 전차 소대가 복귀하여 화력으로 중공군의 추격을 저지하였고, 제16포병연대도 연막탄과 고폭탄을 사격하여 적의 시계를 차장하고 대대의 철수를 지원하였다. 호주대대가 미들섹스 대대 후방으로 철수하자, 75번 도로 서쪽인 북면 이곡리의 677고지에 배치된 캐나다 대대도 비록 고지위에 있었지만 인해전술로 밀고 올라오는 13배가 넘는 중공군을 상대로 싸운 말도 안되는 전투를 했다. 당시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참호까지 밀고 들어오며 고전하게 되자, 뉴질랜드군 포병대대에게 자신들의 머리 위로 곧바로 포격하는 ‘진내사격’을 할 것을 요청했다. 참호 안에서 싸우는 자신들보다 엄폐물 없이 노출된 중공군의 피해가 더 클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무전을 받은 뉴질랜드군 포병대대도 처음엔 놀라 선뜻 포격하지 못하다가 결국 아군 진지 머리 위로 진내사격을 해줬고 캐나다군의 의도대로 방어에 성공했다. 4월 25일 전투 후에 미군과 한 대화는 가히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미군은 아예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가정하고는 들어온 통신이 적군의 것인 줄 알았다고 한다. 사실은 미군이 캐나다대대와 ANZAC군(호주군 뉴질랜드군)이 패배했을 것이라 지레짐작한 이유는 캐나다대대와 함께 가평을 사수하던 호주대대가 병력의 40%를 잃은 뒤 이미 후퇴를 해 실질적으로 전선을 지키던 보병 병력은 캐나다군 1개 대대의 450명이 전부였던 반해 중공군은 1개 사단 6000명이 밀고 내려오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캐나다대대는 방어에 성공했고, 10명 전사자에 23명 부상자를 낸 반면 중공군은 최소 1000명에서 최대 4000명 이하가 사상 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가평전투에서 중공군 제 20군 예하 118사단은 23일과 24일 양일 동안 비교적 기동이 용이한 75번 도로와 가평천 골짜기를 따라 진출하여 서울∼춘천 46번 도로의 차단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영연방 제 27여단의 강력한 저지작전과 포병의 화력지원에 많은 인명 피해를 입게 되자 25일 새벽 공격을 포기하고 철수하였다. 따라서 중공군의 유엔군 전선 분할 기도는 완전히 좌절되고, 유엔군은 북한강 남쪽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얻게 되었다. 영연방 제27여단은 3일간의 혈전을 종료하고 25일 밤에 양평으로 철수하였고, 부대명칭도 영연방 제28여단으로 개칭하였다. 유엔군은 국군 6사단의 사창리가 돌파되면서 가평이 크게 위협을 받게 되었으나, 영연방 제 27여단 예하 호주 및 캐나다대대가 진내사격 등의 선전으로 가평을 사수(死守)하였고 중공군 제 5차공세의 전선분할 기도는 백지화 되었다. 7000여명 파병한 호주군, 코만도작전 등 특수작전에 능해 3번째 규모인 2만 7000명 파병한 캐나다, 자국 전쟁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승리는 가평전투 호주는 6.25남침전쟁이 일어나자 그 즉시 한국에 파병을 결정했다. 1950년 6월29일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파병을 결정한 호주군은 1950년 7월 공군 제 77전투비행중대와 9월에는 호주 육군이 부산에 도착하여 참전했다. 육군, 해군, 공군 모든 분야에서 파병한 호주군은 총 1만 7천여명을 파견했다. 이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째 규모였다. 육군은 3개대대와 지원부대를 포함한 총 1만 657명(육군만 놓고 본다면 미국-영국-캐나다-터키에 이어 5번째 규모이지만 전체규모는 네번째임), 해군은 항공모함 1척, 호위함 4청 구축함 4척등 총 4500명, 공군은 1개 전투비행대대와 2개의 정비대대를 포함한 2000여명이 6.25남침전쟁에 참전하였다. 호주군은 연천 마량산전투, 평안남도 숙천 영유리전투, 평안북도 박천전투, 가평 목동리(죽둔리)전투를 용맹하게 치루었다. 이 중에서도 철수하는 국군 제 6사단을 엄호하면서 끝까지 목동리(죽둔리)를 사수(死守)하면서32명이 전사하고 3명 실종, 59명이 부상당했던 일명 ‘가평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특히 코만도작전이라는 특수작전에 능했던 호주군은 1950년~1957년까지 약 7년동안 우리나라에 주둔하였으며, 1만7000명의 병력 중 사망 339명 부상 1216명으로 1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기록하였다. 한편, 캐나다 인구는 3600만명, 미국 인구는 3억2300만명, 한국 인구는 5000만명임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는 한국전쟁때 미국-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캐나다 전체 군대 2분의 1을 한국으로 보낸 것이다. 1950년 6월30일, 캐나다 하원은 한국파병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청소년부터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던 예비역까지 포함된 2만 7천명의 캐나다 군인들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6.25남침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캐나다 전쟁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승리는 ‘51년 4월23일 캐나다군 약 700명과 중국군 5,000여명이 싸운 가평 전투라고 한다. 가평 전투의 공로로 캐나다군과 호주군은 미국 트루만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는데 이것은 캐나다군이 최초로 미국으로부터 수여 받은 표창이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캐나다를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하였고 1963년에 수교를 맺었다. 현재 캐나다에 있는 모든 전쟁 기념물과 주 의사당에는 한국 전쟁 기록이 반드시 있다. 캐나다인들은 가평 전투를 잊지 않기 위해서 캐나다군의 위니펙 주둔지를 가평(Kapyeong Barrack)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놀랍게도 캐나다 도로이름에도 가평(Kapyong Rd)이 들어가는 곳들이 다수 있기도 하다. 가평전투 후, 윈스턴 처칠은 '나에게 캐나다 병사와 미국의 기술력, 영국의 장교들이 주어졌다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캐나다군이 맹활약을 한 분야도 저격, 강습, 게릴라전 등의 소수의 병사들의 악과 깡으로 버텨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동계전투는 전세계 최고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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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4
  • [김희철의 Crisis M] 안보전문가들의 국회진출 늘어나야 '국민 안전'위한 입법 능력 강화돼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4.15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시민당이 180석, 미래통합당·한국당이 103석을 차지해 보수의 완패로 끝났다. 또한 정치 9단으로 불리우던 다선의 중진인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박주선, 손학규 의원 등이 모두 충격적인 낙선을 했다. 현재 최다선은 6선인 민주당 박병석 의원이다. 전반적으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에 당선된 21대 국회의원 300명을 직업별로 분석하니 현직 의원이 122명이고 전직의원이 27명으로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거의 50%이고 그밖에 의원 보좌관 출신 등 정치인이 78명이다. 평생 정치를 직업삼아 해 먹던 사람들이 계속 독식하여 다른 직업인이 정치에 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폐쇄적인 구조로 다양한 직업군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 그간 국회 진출 문턱을 쉽게 넘지 못했던 여성과 탈북민 등이 의미있는 약진 이번 총선에서 배출한 최다선은 6선인 민주당 박병석 의원이다. 5선인 의원은 최 연장자인 김진표(‘47년생)를 비롯한 변재일(‘48년생), 이낙연(‘52년생), 이상민, 조정식, 송영길, 설훈, 안민석 등 더불어민주당이 8명, 서병수, 정진석, 조정태, 주호영 등 미래통합당이 4명, 무소속이 홍준표 1명이다. 또한 그간 국회 진출 문턱을 쉽게 넘지 못했던 여성과 탈북민들이 당선됐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헌정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인 28살 류호정 당선인도 게임업계는 물론 젊은 청년과 여성들의 노동환경 변화를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비례대표와 지역구를 포함하면 여성 국회의원은 57명으로 전체의원 5명 중 1명 꼴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탈북민 가운데선 태구민 미래통합당 후보가 강남갑 지역구에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그는 "세계와 북한에 우리 대한민국의 포용력과 민주주의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고 소감을 말했다. 이와 함께 북한 인권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미 국회의사당에서 목발을 들어 올렸던 탈북민 지성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도 당선되면서 사상 첫 복수 탈북민 의원시대를 열었다. ‘21대 국회의원 직업현황을 살펴보면, 정치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직업군이 변호사, 판사, 검사 등 법률을 다루는 법조인이다. 이번에 초선은 20명이지만 전·현직 의원들까지 포함하면 법조계가 30%나 차지하는 기형적인 대표성은 우리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대변하기에는 한계성이 크다. 그 다음 직업군은 교육자, 기업인, 경찰, 군인 순이며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간호사, 약사, 의사 등 의료인이 약간 증가세를 보이는 직업군으로 나타났다. ■ 군(軍)출신 인사의 입법부 진출에 대한 고정관념 탈피해야/군의 정치적 중립과 다른 각도에서 접근 필요 국가안보의 첨단인 군(軍)에서 반평생을 지난 예비역 군인들이 ‘제 2의 인생’에서 국민의 선량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선증을 거머 쥔 사람은 소수이다. ‘軍출신 국회의원 현황’을 살펴보면, 18대에 8명, 19대에 11명, 20대에 5명 그리고 이번 21대에는 6명이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를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면 23대 7의 비율이다. 국가의 입법을 담당하며 국민의 대표로 행정 및 사법 기관 등을 감사해야 할 국회에 안보전문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헌데 안보 일선에서 평생을 봉사했던 군출신들이 이번 21대 국회에도 300분의 6명으로 2%이다. 너무도 적은 수가 국회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공무원들은 세가지 부류로 나뉜다 청와대를 예로 들 때 그 첫째가 ‘늘공’ 이다. 각 행정부서에서 늘 열심히 근무하다가 발탁되어 청와대에 입성한 공무원으로 다시 복귀할 때에는 통상 승진하거나 승진할 자리로 보직을 받게 된다. 둘째가 ‘어공’ 이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들로 주로 정권 인수위원회에서 활동을 하거나 언론인 출신들이 청와대에 자리 잡은 사람이다. 이들은 주로 차관, 장관으로 발탁되거나 이번 총선에서처럼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가 ‘아공’ 이다. “아직도 공무원이야?” 라는 뜻으로 정권 말기까지 청와대에 남아있는 주로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하는 순장조 비서관, 행정관들을 칭하는 말이다. 군출신 국회의원들은 ‘어공’에 가깝다. 이번 4.15 총선 전남 해남·완도·진도 선거구에서 민주당 윤재갑 예비역 제독은 3번째 도전만에 압승했고, 포천·가평 선거구의 통합당 최춘식 예비역 대위는 예비군 중대장시절부터 40년 동안 터를 닦아 당선됐다. 국회의 국방 및 안보전문가로 입법 및 감사를 통해 국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군출신들에게 더 많은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군에서는 현역 신분으로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정치나 경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터부시 해왔다. 이제는 군도 학교기관 및 군생활 속에서 인재들을 발굴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개인적인 정치의 꿈을 꺽지 말고 키워줄 필요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시킨 2020년 정부예산이 512조2504억원이고 그중 10%인 50조1527억원이 국방비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전문지식과 실제 경험이 축적된 더많은 국방 및 안보전문가들이 국회에서 활동해야 한다. 3권분립의 민주사회에서 안보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의원들이 늘어나야 제대로 국가안보정책을 책임지고 수행함으로써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외교안보정책
    • 국방
    2020-12-30
  • 전 세계 국방비 지출 증가…미국, 점유율 38% 차지해 세계 1위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국방기술품질원이 발간한 ‘2020 세계 방산시장 연감’은 세계 방산시장 동향과 국가별 방산시장 동향 등 총 두 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세계 방산시장 동향은 국방비 지출로부터 방산선진국 수출 현황에 이르기까지 총 6개 항목으로 구분되는데, 먼저 국방비 지출에 관해 알아보겠다.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은 2018년 최초로 1조8000억 달러를 초과한데 이어, 2019년에는 1988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인 1조 9170억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추정돼 전 세계 GDP 대비 2.2%를 차지했다. 국방비 지출은 세계 경제 위기 이후 2010∼2014년까지 꾸준히 감소했으나, 2015년부터는 5년 연속 증가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사용해 항상 1위를 차지해왔고, 2019년에도 세계 국방비의 38%에 달하는 7320억 달러를 지출하여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했다. 이 수치는 2∼11위 10개국의 국방비 합계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미국의 국방비 지출은 GDP의 4.9%에 불과하며 최고치에 달했던 2010년에 비하면 15% 낮아진 수준이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방비 규모가 큰 중국은 세계 국방비의 14%에 해당하는 2610억 달러를 지출했다. 이 수치는 2010년에 비해 85% 증가한 규모로 국방비 지출 상위 15개국 중 가장 크게 증가했다. 중국은 1994년 이후 25년간 계속해서 국방비가 증가해왔다. 3위는 2018년과 비교해 6.8% 증가한 711억 달러를 국방비로 지출한 인도가 차지했고, 4위는 2018년보다 4.5% 증가한 651억 달러를 지출한 러시아가 차지했다. 반면 2018년에 3위를 차지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16% 감소한 619억 달러를 지출해 5위에 머물렀다. 서유럽 국가 중에서는 501억 달러를 지출한 프랑스가 6위에, 493억 달러를 지출한 독일이 7위에 올랐다. 독일은 2018년 대비 10%의 증가율을 기록해 9위에서 두 계단 상승했다. 한국은 439억 달러를 지출해 2018년에 이어 10위를 유지했다. 전 세계 5개 지역(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오세아니아, 유럽, 중동) 가운데 4개 지역에서 2019년 국방비 지출이 증가했다. 유럽이 5%로 가장 높았으며, 아시아/오세아니아 4.8%, 아메리카 4.7%, 아프리카 1.7% 순이었다. 중동 지역은 자료 부족으로 정확한 비교가 어렵지만, 데이터가 있는 몇몇 국가만 고려할 때 7.5% 감소했다. 국방비가 가장 증가한 유럽의 경우, 3560억 달러로 전 세계 국방비의 19%에 해당한다. 이 지역 내 러시아(4위), 프랑스(6위), 독일(7위), 영국(8위), 이탈리아(12위) 등 5개국은 국방비 지출 상위 15개국에 포함돼 있다. 게다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중부유럽 4개국들은 2010∼2019년간 150% 이상 국방비가 증가했다. 국방비가 가장 감소한 중동의 경우, 지출 규모가 가장 큰 사우디아라비아(5위)가 2015년에 역대 최고의 국방비를 지출했으나 2016년 28% 감소하고 이후 15% 증가했다가 2019년 다시 16% 감소했다. 이란도 2018년 23% 감소한데 이어 2019년에 15% 감소한 126억 달러에 머물렀다. 반면 이스라엘과 터키는 국방비 지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국방비가 차지하는 경제적 부담을 확인하기 위해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비교하는데,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세계적으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에 의하면, 149개국 중 10개국만 GDP 대비 4% 이상 국방비를 지출했고, 13개국이 3.0∼3.9%, 24개국이 2.0∼2.9%, 99개국은 2% 미만을 지출하고 있다. GDP 대비 4% 이상 국방비를 지출하는 10개국 가운데 6개국이 중동에 위치해 있다. 오만이 8.8%로 1위이고, 이어 사우디아라비아(8.0%), 쿠웨이트(5.6%), 이스라엘(5.3%), 요르단(4.7%), 레바논(4.2%) 등이 포함된다. 나머지 4개국은 알제리(6.0%), 아르메니아(4.9%), 아제르바이잔(4.0%), 파키스탄(4.0%)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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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8
  • 신임 방위사업청장에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 차장 전격 발탁
    23일 차관급 인사에서 신임 방위사업청장으로 임명된 강은호 내정자. [사진제공=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23일 차관급 인사에서 신임 방위사업청장으로 임명된 강은호 내정자는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 내에서 주요 직위를 두루 거친 방산행정 전문가로 평가돼 방산업계도 반기는 분위기다. 1966년생인 강 방사청장 내정자는 전주 완산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행시 33회로 공직에 입문한 후 지난 2006년 방사청 개청 당시부터 합류해 최근까지 근무했다. 그는 방사청에서 유도무기사업부장, 방산기술통제관, 기획조정관, 지휘정찰사업부장, 사업관리본부장, 기반전력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한 후 지난해 12월 말 방사청 2인자에 해당하는 차장으로 승진했다. 따라서 누가 보더라도 방사청장 후보 1순위에 해당하는 경력의 소유자다. 그럼에도 강 내정자의 발탁은 매우 이례적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왜냐하면 그가 방사청 차장 승진 1년도 안 돼 지난달 초 돌연 사직서를 제출하고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직에 응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방사청장이 아닌 ADD 소장 하마평에 올랐었고, 차기 소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으며 조만간 낙점될 것으로 예측해왔다. 그런데 이번 인사로 ADD 소장을 희망하던 강 전 차장이 친정인 방사청으로 유턴해 놀랐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방위사업청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차장까지 역임한 행정 전문가"라며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 업무추진 역량을 인정받고 있어, 미래 국방기술의 선제적 확보, 방위사업의 투명성·신뢰성 강화 등 핵심 정책과제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가 인사 브리핑에서 또 다시 효율성보다 투명성을 앞세우자 방산업계는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방산 전문가 발탁을 반기면서도 “실체도 없는 방산비리 프레임에서 벗어나 업계와 원활히 소통하며 그동안 흐트러진 방위산업의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는 역할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방산 전문가들 또한 국방부 차관, 방사청장, ADD 소장 등 여러 자리에 거론된 사실이 증명하듯 행정능력도 뛰어나고 전문성도 갖췄으니 전임자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야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방사청장에 오른 당위성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강 내정자가 방사청장에 발탁되면서 그와 경쟁하던 강태원 현 ADD 부소장이 소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두 사람이 차기 소장 후보로 압축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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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5
  • [김희철의 전쟁사 (22)] 유엔군 사령관에 리지웨이, 미 8군 사령관에 밴 플리트 장군이 취임하자 중공군은 5차 공세 시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서울을 점령한 중공군은 전력을 보충한 뒤 제 4차 2월공세(’51.2.11~18)를 시작했으나, 중공군의 약점을 파악한 유엔군은 지평리 전투(“[김희철의 전쟁사](3) 유엔군의 '자유전사' 프랑스 몽클레어 장군과 미국 프리만, 크롬베즈 대령”참조)에서 사주방어 및 기동전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성공적으로 저지·격퇴시켰다. 그리고 계속 공격하여 3월15일 서울을 재탈환하고 4월 22일 리지웨이 사령관의 재반격작전의 목표를 달성하였다. ■ 베이징으로 간 펑더하이, 마오쩌둥과 독대해 대규모 병력 증원 결정 이때 중공군사령관 펑더화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들의 제 4차 2월공세가 끝나자 마자 부리나케 베이징으로 달려갔다. 얼마나 급했는지 평소에 타지않던 비행기를 이용해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펑더하이는 베이징에 도착해서 바로 마오쩌둥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때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야행성인 마오쩌둥은 자고 있었다. 펑더하이는 보초의 제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마오쩌둥이 자고 있는 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자다 일어난 마오쩌둥에게 “속결로 승리를 거두기에는 어렵다”며 전선의 상황을 단도직입적으로 보고했다. 이어 “한국전선의 중국인민지원군 병사들은 잠도 식사도 제대로 못 자고 탄약도 없으며 동상자들이 속출하고 있고 채소는 구경도 못해 야간전투가 많은 병사들로서는 야맹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더욱이 조선 청년들은 모두 달아나 동원하기 어렵고 겨울에는 동서의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이 겹쳐 무척이나 춥고 피해가 늘어 인원보충이 즉각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상태로는 도저히 싸울 수 없다”며 부대의 어려운 현상황을 솔직히 보고 하였다. 사태를 파악한 마오쩌둥은 즉시 대책을 강구했다. 대규모의 중공군을 보충하였고 포병부대와 대공포 부대도 증원하였다. 식량 및 탄약도 부족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도 포함 시켰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주도권 장악은 물론이고 수도 서울을 다시 무력으로 빼앗아 전세를 만회하겠다며 펑더하이와 마오쩌둥은 다짐을 했다. 이것이 중공군의 제 5차 4월공세(’51.4.22~27)였다. 이는 전열을 가다듬은 중공군과 재반격작전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국군과 유엔군의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였다. 한편 유엔군 상황으로 리지웨이가 8군 사령관에 부임한 후부터 맥아더의 입지는 무척 좁아졌고 그는 계속해서 워싱턴과 반대되는 견해를 내놓았으며 트루먼 대통령을 별로 존중하지 않는 듯했다. 결정타는 1951년 4월 5일 공화당 마틴 의원에게 보낸 편지가 하원에서 낭독된 것이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트루먼은 맥아더를 해임하기로 결심했다. ■ 해임된 맥아더 장군, 하원 연설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많은 망설임과 혼란 속에서 백악관은 4월 9일 새벽에 맥아더의 해임을 공표했고, 이로 인해 트루먼 행정부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특히 4월 19일 맥아더가 하원에서 행한 연설은 그를 미국의 영웅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당시만 해도 맥아더가 출마를 하면 바로 대통령이라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후에 맥아더가 상원 청문회에 나와 전쟁에 대한 증언을 하면서 그의 인기는 급락했다. 아마도 하원에서의 연설이 맥아더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고 한다. 맥아더의 후임(유엔군 사령관)으로는 8군 사령관 리지웨이가 임명되었고 리지웨이의 자리는 밴 플리트(Van Fleet) 장군이 맡았다. 밴 플리트가 8군 사령관으로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4월 22일 중공군은 5차 공세(춘계공세)가 시작되었다. ■ 설마리 전투, 영국 글로스터셔 연대가 중공군 제 5차 공세 저지에 기여 유엔군이 4월에는 기존의 38선 지역까지 진출했었다. 이에 중공군은 서울을 다시 점령하기 위해 7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켰다. 중공군은 제19병단으로 국군 제1사단과 영국군 제29여단이 지키는 문산-파주 방면을 공격하고, 제3병단은 미 제3사단과 터키여단이 지키는 연천-동두천 방면을 공격해서 서울을 포위하고 점령한다는 5차 공세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1951년 4월 22일 중공군 제19병단이 문산-파주 지역을 공격함으로서 제 5차 공세가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군 제29여단은 임진강 하류인 파주 적성면 일대의 방어를 맡고 있었는데, 특히 글로스터셔 연대(Gloucestershire Regiment)의 제1대대가 지키는 감악산 북서쪽인 마지리 일대를 집중 공격했다.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는 마지리일대의 235고지에서 이틀 동안 분전을 하며 중공군 제63군의 진격을 저지했으나 결국 감악산 기슭인 설마리 일대의 고지로 물러났다.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가 설마리에서 중공군에 포위되자 미 제1군단 사령부는 국군 제1사단과 미 제3사단 등의 병력을 보내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구출하려 했다. 하지만 모든 전선에서 중공군의 파상적인 공세가 계속되고 있었으므로 구출 작전은 실패했다. 4월 25일, 대대가 전멸할 위기에 놓이자 진지를 포기하고 탈출하라는 사령부의 명령을 받은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는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60여 명만이 탈출에 성공하고 500여 명이 전사 또는 포로가 되었다. 설마리 전투에서 영국군 제29여단은 1개 대대 병력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고, 여단 전체로는 1,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는 3일 동안 중공군의 진격을 처절한 피로써 지연시켜 중공군의 서울 침공 의도를 저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훗날, 영국군 제29여단 소속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가 중공군과 맞서 싸운 235고지를 '글로스터(Gloster Hill)'고지라고 명명하고 인접 도로가에 추모공원과 전적비를 세워 영혼을 달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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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58)] 선승구전(先勝求戰), 먼저 승리를 만들어 놓은 이후 전쟁을 해야
    [시큐리트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의 왕 도공(悼公)에게는 사마위강(司馬魏絳)이라는 유능한 신하가 있었다. 사마위강은 "편안할 때에 위기를 생각하십시오(居安思危). 그러면 대비를 하게 되며(思則有備), 대비태세가 되어 있으면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有備則無患)"라고 왕인 도공에게 건의하여 강한 나라로 유지했다는 이야기가 ‘서경(書經)’과 ‘좌씨전(左氏傳)’을 통해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명언으로 회자된다. 또한 손자병법 ‘군형(軍形)’편의 ‘선승이후구전(先勝而後求戰)은 “먼저 승리를 만들어 놓은 이후에 전쟁을 한다”는 의미이다. ■ 편안할 때 위기 생각하고(居安思危). 대비태세 되어 있으면 근심 사라진다(有備則無患) 군대에서는 모든 것이 경쟁이다. 항상 승패나 성공 및 실패가 붙어 다닌다. 특히 쌍방 훈련에서는 대부분 판결이 난다. 따라서 승리하기 위해 각 부대는 자체 훈련도 강화하고 장비 손질 정비에도 최선을 다하여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당시 필자의 연대장은 전쟁시를 대비하여 교육훈련 중에 행군과 태권도를 매우 강조했다. 연대장 지침에 의해 매주 50km정도씩 주야행군을 계속했다. 그 결과 우리 중대 뿐만 아니라 전 연대원들의 행군 능력은 어느 타부대와 비교해도 월등히 우수했다. 그러나 강한 행군능력을 보유하는 대신 중대행정보급관의 고민과 애로는 반대로 늘어만 갔다. 많은 행군으로 병사들의 전투화(군화)가 빨리 닳아 구멍난 신발을 신고 행군하니 물도 들어오고 또 군화못도 튀어 나와 중대원들의 발은 상처투성이었다. 그래서 각 중대는 군화 정비공을 임명하여 군화의 바닥도 교체하고 헤져 구멍난 곳을 꿰매어 다시 신을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태권도 교육을 강조함에 따라 전 중대원을 유단자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하려면 보급되는 태권도복과 급수에 따른 색깔별의 띠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중대행정보급관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헌데 필자에게는 소위로 임관하여 한 개 연대에서 5년에 걸쳐 오랫동안 근무했다는 잇점이 있었다. 연대에 근무하는 부사관 및 장교들을 거의 알고 있었다. 특히 연대 군수분야를 담당한 간부들과는 각별히 지낸 탓에 연대 보급창고를 수시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원래 정상적인 보급절차는 대대에서 각 중대를 종합하여 연대에 보고하면 연대에서 각 대대를 고려하여 분배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당시에 열악한 환경의 중대원들을 위해서는 필자는 이기적일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안면을 이용하여 절차 준수를 잠깐 뒤로하고 연대와 직접 상대하였다. 연대창고에 남아있거나 새롭게 보급되는 태권도복이나 군화를 우리 중대가 우선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물론 보급품 수불에 따른 문서 처리는 나중에 정리하였다. 그리고 중대원들의 사격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사격용 표적(E, F)이 필요했다. 사격연습을 많이 하면 표적에 총탄 구멍이 많아져 다시 종이를 잘라 표적구멍을 메우고 사격을 할 정도로 표적이 부족했다. 이 또한 사단에 오랫동안 근무했다는 잇점을 이용했다. 연대 교보재 창고에 표적이 없으면 대대에 5분의 4톤차를 신청하여 사단본부로 갔다. 마침 사단 교육장교가 잘 알고 있는 후배라 사단 교보재 창고에 들려 사격용 표적(E, F)과 목재, 시멘트 등을 확보하여 대대에 일부 제공하고 중대에서 활용했다. 그래도 중대원들에게 넉넉한 보급품을 제공하기에는 부족했다. 마침 육사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생도들이 사용하고 남은 태권도복도 얻어서 분배도 했다. 고교 축구부에 연락해서 선수들이 사용하다 낡아서 바꿔 신은 축구화도 협조하여 가져와 나눠주니 대원들은 훨훨 날으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에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구해서 중대원들에게 제공한 정성은 곧 상급부대 검열, 측정 및 평가에서 진가가 발휘되었다. 사단 전투지휘검열시 사격 측정은 중대가 대표선수가 되었고, 각종 행군에서도 보수 정비한 군화를 신고 자신감 있게 임할 수 있었다. 태권도 유단자는 제일 많았고, 체육대회에서도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중대원들이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었다. 평시에 모든 것을 앉아서 기다리면 늦어진다. 쫓아다니면서 중대원들의 보급품과 교보재들이 부족하지 않도록 확보했고, 그것이 안될 때는 군화 정비소 등을 만들어 보수 및 정비를 했다. 즉 ‘유비무환(有備無患)’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하여 훈련하면서 대비하고 있으니 각종 검열, 평가 및 측정에서 나가 싸우라고 했다. 손자가 강조한 ‘선승구전(先勝求戰)’을 실천했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0-12-1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57)]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와 ‘피실격허(避實擊虛)’는 전쟁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손자병법 ‘허실(虛實)’편의 ‘무소불비 무소불과 (無所不備 無所不寡)’는 “준비가 부족한 곳이 하나도 없게 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라고 풀이된다. 즉 “전부를 다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은 전부가 부실하게 된다”는 뜻이다. 또 ‘피실격허 (避實擊虛)’는 “적의 강한 곳을 피하여 약한 곳을 공격한다”라는 뜻으로 선택과 집중, 집중과 절약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와 ‘피실격허(避實擊虛)’는 전쟁시 피아가 치열하게 전투를 할 때 전략 및 전술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허나 평시에는 사단 책임지역내 심심산골에 인적이 드문 지역이 산재되어 있어 그곳에서 침투한 간첩들이 은거해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취약지로 분류해 관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집중과 절약을 해야 한다는 손자병법의 의미와 상충되는 전 지역을 커버하는 취약지 관리가 필요했다 이러한 취약지역에 소대 또는 중대 단위로 상주하면서 주변 수색정찰도 하고 매복 및 전술훈련을 하면서 병사들의 훈련 수준도 배양하고 침투한 간첩 및 불순세력의 은거도 거부하는 ‘취약지 상주훈련’을 시행했다. 통상 ‘취약지 상주훈련’을 시행할 때에는 부대의 지휘권을 벗어난 타지역에서 해당 소·중대장의 독단적 판단에 의한 행동이 요구되어 반드시 차상급 지휘관에게 훈련계획을 사전에 보고했다. 필자도 사전 토의와 현장 확인을 통해 1주일간의 취약지 훈련계획을 준비하여 보고하자 연대장은 해당 지역이 격오지로 도로도 불량하여 이동 및 소통에 제한이 많기 때문에 적 접촉시 작전조치와 폭우 피해 및 환자 발생 등 우발상황에 철저히 대비하며 병력관리를 잘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 장거리 행군에 따른 허기 심해, 설익은 밥도 꿀맛 훈련출발 당일 먼저 선발대를 보냈다. 취사장 설치와 통신선 개설을 위해 중대 행정보급관(인사계)가 취사병, 통신병들을 대동하여 4분의 5톤 통신차를 타고 화천군 백적산(883.5m) 북방 구운리 만산동 계곡으로 출발했다. 군장검사를 마친 중대원들은 취약지역인 만산동 계곡까지 30km행군을 시작했다. 다행히 이규환 연대장님이 평소 행군과 태권도를 강조하여 매주 행군 훈련을 했던 덕분에 병사들은 행군에 익숙해 있었다. 필자는 전방 GOP연대 소속이었으나 이번 ‘취약지 상주훈련’ 장소는 사단 후방 인접사단과 근접한 지역으로 최전방 부대가 사단 책임지역의 최후방으로 이동하여 훈련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행군이 시작되었다. 중대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관불령을 넘어 신월동과 삼거리라고 불리는 봉오리를 통과해 다시 덕고개를 힘차게 넘었다. 필자가 근무한 지역은 첩첩산중(疊疊山中)이라는 단어가 꼭 맞는 산악지역이라 조금만 이동해도 길옆에 절벽과 벼랑 등 아찔하게 만드는 고개들이 산재해 있다. 행군 간에는 통상 50분 걷고 10분 휴식한다. 그러나 시간이 되어도 아찔한 벼랑 옆에서는 휴식을 하는 것이 위험하여 그나마 비교적 평탄한 곳을 정해야 했다. 쉬고 있다가 자칫 계곡 및 벼랑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대 행정보급관과 취사병들이 선발대로 투입된 탓에 점심은 주먹밥으로 대체했다. 행군 간에는 배가 든든해야 잘 걸을 수 있는데 허기가 지면 낙오할 수도 있어 건빵을 추가로 휴대했지만 20대 청년들의 허기를 채울 수는 없었다. 오후 늦게 만산동 골짜기에 도착했다. 군장을 풀고 바로 주변 능선에 소대별로 개인 텐트를 설치하며 숙영준비를 했다. 그때 먼저 도착해 준비한 저녁식사가 분배되었다. 야전에서의 취사에 숙달되지 않은 취사병들이라 설익은 밥이었지만 꿀맛이었다. 미식별 천연동굴서 은거흔적 발견, 불온전단 회수하고 독립가옥 신원확인 박영일 중령의 노마지지(老馬之智), 정확한 취약점을 찾아내 “마음은 언제나 태양..!”, 의기에 차 정열을 불태웠던 시절 중대 상황실 텐트에 당직 소대장을 근무시키고 야간 야외점호를 한 뒤 취침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조 점호 후에 계획된 주변 취약지역 수색정찰을 시작했다. 모든 일에는 분명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소대장들에게 경쟁을 붙였다. 각자의 수색 책임지역에서 미식별된 은거가능한 천연동굴이나 은거 흔적을 찾으라고 했으며 북에서 뿌려진 불온전단을 가능한 많이 회수하고, 심신 산골에 홀로 있는 독립가옥은 필히 방문해서 신원을 확인하도록 강조했다. 각 소대를 수색정찰에 투입시키고 숙영지 텐트 상태를 재점검하고 있는데 멀리서 짚차 한대가 오는 것이 보였다. 사단 작전참모 박영일 중령(육사25기, 소장 예편)이었다. 필자는 취약지 상주훈련 계획과 현재 각 소대가 수색정찰 중임을 설명하면서 숙영지를 안내했다. 그런데 사단 작전참모는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훈련 계획은 잘 수립했으나 취사장 위치가 잘못 되었다며(상단의 만산동계곡 사진을 참고로) “숙영지와 분리하여 계곡 건너에 취사장을 설치하면 만약 집중 호우 발생시에 계곡물이 불어나 식사추진 및 철수시 위험할 수 있으니 조정하라”는 것이었다. 각 텐트는 능선쪽으로 올려 있어 안전하지만 취사를 위해 급수가 용이한 물이 흐르는 계곡 건너에 설치된 취사장의 안전 취약점을 지적하며 추가로 사단에서 만산동으로 이동하는 도로가 부실하니 도로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지시를 하고는 어깨를 두드리며 현장을 떠났다. 작전참모는 그해 가을에 대령으로 진급하여 사단의 참모장을 거친 뒤 훗날 인접 연대장으로 취임했다. 필자보다 선배로서 지내온 많은 군생활 경험이 정확한 취약점을 찾아냈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사자성어처럼 선배는 역시 선배였다. 필자는 유선으로 대대장에게 작전참모의 방문과 지적 및 추가 지시사항을 보고했고 대대장은 즉시 시정 후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오후가 되자 소대별로 복귀를 했다. 역시 결과 위주의 훈련을 강조한 탓에 수개의 은거 가능한 천연동굴을 찾아냈고, 많은 불온전단들을 수거하는 성과도 올렸다. 저녁 식사 준비시간인 자유시간에는 아직 유단증을 못 받은 중대원들을 모아 태권도 교육도 병행했다. 주둔지가 아닌 야외라는 것이 오히려 저조자들에게 개별지도를 할 수 있게 되어 차후 심사를 대비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날이 저물자 야간 분·소대 전술훈련도 했다. 다음날부터는 작전참모 지시대로 사단본부까지 도로 보수도 병행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타중대와 함께 대대장의 통제를 받는 것을 벗어나 중대 단독으로 훈련을 하는 것이 상급 및 인접 부대의 눈치를 안보게 되어 더 효과적인 훈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훈련 마지막 날 밤이 되었다. 점호 후 전 중대원이 텐트로 들어가 취침을 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났는데 당직 소대장이 보고할 것이 있다고 해서 상황실 텐트로 나갔다. 소대장들이 모여 있었다. 책상에는 약간의 더덕이 놓여 있었고 잠시 후 행보관이 막걸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잠시 망설였으나 모처럼의 자리라 합석을 하였다. 소대별 수색활동시 전단과 함께 수거한 자연산 더덕 안주에 들이키는 막걸리가 너무도 좋았다. 더불어 그동안 함께 근무하면서 느꼈던 보람과 애로점들을 서로 나누며 한마음으로 단결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칼럼을 쓰는 지금, 중대장시절 그때 고락을 함께했던 소대장 김태정, 우광호, 변상훈, 이동호들의 의기에 찼던 그때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마음은 언제나 태양..!”구호 아래 한마음이 되어 항상 신나고 즐겁게 정열을 불태웠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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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15
  • 안보전문가들의 국회진출 늘어나야 '국민 안전'위한 입법 능력 강화돼
    [시큐리티팩트=강철군기자] 4.15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시민당이 180석, 미래통합당·한국당이 103석을 차지해 보수의 완패로 끝났다. 또한 정치 9단으로 불리우던 다선의 중진인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박주선, 손학규 의원 등이 모두 충격적인 낙선을 했다. 현재 최다선은 6선인 민주당 박병석 의원이다. 전반적으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에 당선된 21대 국회의원 300명을 직업별로 분석하니 현직 의원이 122명이고 전직의원이 27명으로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거의 50%이고 그밖에 의원 보좌관 출신 등 정치인이 78명이다. 평생 정치를 직업삼아 해 먹던 사람들이 계속 독식하여 다른 직업인이 정치에 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폐쇄적인 구조로 다양한 직업군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 문턱을 쉽게 넘지 못했던 여성과 탈북민 등이 의미있는 약진 이번 총선에서 배출한 최다선은 6선인 민주당 박병석 의원이다. 5선인 의원은 최 연장자인 김진표(‘47년생)를 비롯한 변재일(‘48년생), 이낙연(‘52년생), 이상민, 조정식, 송영길, 설훈, 안민석 등 더불어민주당이 8명, 서병수, 정진석, 조정태, 주호영 등 미래통합당이 4명, 무소속이 홍준표 1명이다. 또한 그간 국회 진출 문턱을 쉽게 넘지 못했던 여성과 탈북민들이 당선됐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헌정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인 28살 류호정 당선인도 게임업계는 물론 젊은 청년과 여성들의 노동환경 변화를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비례대표와 지역구를 포함하면 여성 국회의원은 57명으로 전체의원 5명 중 1명 꼴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탈북민 가운데선 태구민 미래통합당 후보가 강남갑 지역구에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그는 "세계와 북한에 우리 대한민국의 포용력과 민주주의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고 소감을 말했다. 이와 함께 북한 인권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미 국회의사당에서 목발을 들어 올렸던 탈북민 지성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도 당선되면서 사상 첫 복수 탈북민 의원시대를 열었다. ‘21대 국회의원 직업현황을 살펴보면, 정치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직업군이 변호사, 판사, 검사 등 법률을 다루는 법조인이다. 이번에 초선은 20명이지만 전·현직 의원들까지 포함하면 법조계가 30%나 차지하는 기형적인 대표성은 우리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대변하기에는 한계성이 크다. 그 다음 직업군은 교육자, 기업인, 경찰, 군인 순이며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간호사, 약사, 의사 등 의료인이 약간 증가세를 보이는 직업군으로 나타났다. ■ 군(軍)출신 인사의 입법부 진출에 대한 고정관념 탈피해야/군의 정치적 중립과 다른 각도에서 접근 필요 국가안보의 첨단인 군(軍)에서 반평생을 지난 예비역 군인들이 ‘제 2의 인생’에서 국민의 선량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선증을 거머 쥔 사람은 소수이다. ‘軍출신 국회의원 현황’을 살펴보면, 18대에 8명, 19대에 11명, 20대에 5명 그리고 이번 21대에는 6명이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를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면 23대 7의 비율이다. 국가의 입법을 담당하며 국민의 대표로 행정 및 사법 기관 등을 감사해야 할 국회에 안보전문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헌데 안보 일선에서 평생을 봉사했던 군출신들이 이번 21대 국회에도 300분의 6명으로 2%이다. 너무도 적은 수가 국회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공무원들은 세가지 부류로 나뉜다 청와대를 예로 들 때 그 첫째가 ‘늘공’ 이다. 각 행정부서에서 늘 열심히 근무하다가 발탁되어 청와대에 입성한 공무원으로 다시 복귀할 때에는 통상 승진하거나 승진할 자리로 보직을 받게 된다. 둘째가 ‘어공’ 이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들로 주로 정권 인수위원회에서 활동을 하거나 언론인 출신들이 청와대에 자리 잡은 사람이다. 이들은 주로 차관, 장관으로 발탁되거나 이번 총선에서처럼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가 ‘아공’ 이다. “아직도 공무원이야?” 라는 뜻으로 정권 말기까지 청와대에 남아있는 주로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하는 순장조 비서관, 행정관들을 칭하는 말이다. 군출신 국회의원들은 ‘어공’에 가깝다. 이번 4.15 총선 전남 해남·완도·진도 선거구에서 민주당 윤재갑 예비역 제독은 3번째 도전만에 압승했고, 포천·가평 선거구의 통합당 최춘식 예비역 대위는 예비군 중대장시절부터 40년 동안 터를 닦아 당선됐다. 국회의 국방 및 안보전문가로 입법 및 감사를 통해 국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군출신들에게 더 많은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군에서는 현역 신분으로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정치나 경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터부시 해왔다. 이제는 군도 학교기관 및 군생활 속에서 인재들을 발굴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개인적인 정치의 꿈을 꺽지 말고 키워줄 필요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시킨 2020년 정부예산이 512조2504억원이고 그중 10%인 50조1527억원이 국방비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전문지식과 실제 경험이 축적된 더많은 국방 및 안보전문가들이 국회에서 활동해야 한다. 3권분립의 민주사회에서 안보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의원들이 늘어나야 제대로 국가안보정책을 책임지고 수행함으로써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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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11
  • [김희철의 Cricis M] 김정은 군사행동 보류, 문 대통령은 단호한 대응과 상생의 남북한 '대리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지난 6월16일,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됐다. 이를 지시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탈북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가 주도한 대북전단을 남한정부가 막지 못했다며 강한 어조로 비난하면서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등 공동선언도 백지화 되었다고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맞선 것은 전군 구국동지 연합회이다. 이 단체 주관으로 열린 ‘6.25남침 70주년 자유대한수호 결의대회’는 “김일성 종북주의를 척결하고 자랑스러운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자!”라고 맞받아쳤다. 김여정과 남한의 군인단체가 남북에서 각각 악역을 담당하며 치열한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남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향후 대화재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치열한 대리전에 담긴 '숨은 밑그림'이다. ■ 김정은 위원장은 군사행동 보류, 문 대통령은 단호한 대응과 상생의 메시지 강조 북한군 총참모부는 지난 17일 대변인 발표를 통해 금강산·개성공업지구 군대 전개 등 군사행동계획을 밝혔으나,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7기 5차 회의 예비회의를 주재, 이 계획들을 보류했다. 이에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결정적인 단계에서 군사 조치를 보류한 것, 그 행위 자체는 긍정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며 "향후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서로 대화를 통해 상호 관심사들이 협의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면서 북한의 최근 입장 변화는 "긍정적인 신호의 출발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5일 저녁 서울공항에서 열린 미국에서 보내온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의 봉환식’과 함께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우리는 두 번 다시 단 한 뼘의 영토, 영해, 영공도 침탈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강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굳건한 한미동맹 위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도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여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확고한 태세를 갖추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어 문 대통령은 "우리는 전쟁을 반대한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어야 한다"며 "남북 간 체제 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우리의 체제를 북한에 강요할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또한 문 대통령은 통일에 앞서 평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평화를 통해 남북 상생의 길을 찾아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반드시 이뤄야 할 책무이다. 8천만 겨레 모두의 숙원이다. 따라서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북한도 담대하게 나서주길 바란다"며 북한의 태도 변화도 촉구했다. ■ 하형규 회장,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수호에 함께 동참하자!” 지난 25일 오후 4시에 교대역 부근 검찰청 앞에서 전군 구국동지 연합회 주관으로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 대령연합회, 자유대연합 등의 단체에서 500여명이 참여하여 ‘6.25남침 70주년 자유대한수호 결의대회’가 개최됐다. 전군 구국동지연합회 및 육사 총구국동지회 하형규(예비역 대령, 육사30기)회장은 대회사에서 “70년이 지난 지금도 6‧25는 끝나지 않았으며 지금도 체제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김일성을 추종하는 소위 주사파 세력이 준동하여 현충일에 국군을 추모하기보다는 김일성과 함께 적화 통일을 획책했던 김원봉을 추모하는 기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백선엽 장군은 미군도 존경하는 전쟁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그분을 현충원에 안장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며 “지금 대한민국은, 70년 전 6‧25 당시처럼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왔다. ‘죽느냐, 사느냐’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목소리를 높히기도 했다. 하 회장은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지킬 수 없다면 공산주의 전체주의 독재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6‧25 남침을 맨주먹으로 말하는 막아낸 위대한 대한민국을 다시 건설하자! 우리 모두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 다 함께 동참하자!”라며 대회사의 끝을 맺었다. 사실 1950년 6‧25 남침 이래 북괴의 도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서해에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남북공동 연락사무소 폭파 등에서 나타나듯이 북한은 틈만 나면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 대한 공갈·협박으로 일관하고 있다. ■ 문 대통령, 확고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대화의 고삐를 놓지 않아야 김여정 부부장과 구국동지연합회 하회장 및 박상학 대표 등이 악역을 담당하며 치열한 대리전을 치루는 가운데 우리는 한가지 역사적 진실을 상기해야 한다. 과거 일본 막부시대의 치열한 전투 중 오사카 성주였던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거짓 화친을 받아들여 성을 튼튼하게 지켜주던 방어물인 해자를 메우고 비겁한 평화를 보장받으려다 결국 함락되어 자결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가장 무서워했던 군인인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은 지난 25일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작성관련 항소심 법정에서 혐의 내용을 모두 부인하면서도 “국방 문제의 정점에 장관의 책임이 있다”며 부하들에게 책임을 미루지 않았다. 그는 “전쟁을 잊은 군대는 그 존재 가치가 없다. 평화는 강력한 힘에 의해 지켜진다. 훈련하고 또 훈련하여 적의 어떠한 도발 위협에도 당당하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정예 강군이 되기를 기원한다”며 최후진술을 했다. 김관진 전 장관의 발언처럼 '정예 강군'은 한반도 분단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평화유지수단이다. 이 같은 힘의 우위를 기반으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대화 고삐를 놓지 않는 것이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밑그림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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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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