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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해병대 교육훈련단 총정리]전군 유일의 7주 훈련, A부터 Z까지 완전분석
- ▲ 지난 2일 경상북도 포항시에 위치한 '해병교육단'에서 열린 수료식에서 신병들이 군가를 부르고 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 (안보팩트=김성권 기자) 뉴스투데이, 한국안보협업연구소(이사장 최차규)와 함께 해병대 신병 교육 과정 취재 해병대 교육훈련단 사전 제공 자료, 현장 취재 바탕으로 훈련 과정 종합 분석.. 해병대 훈련병 및 가족 위한 완벽 설명서 기대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북 포항에 위치한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들어서면 처음 눈에 들어오는 문구이다. 누구나 될 수 없기에 해병대의 자부심과 긍지는 특별하다. 해병대는 '지옥 훈련'으로 악명(?)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지원 장병들은 '진정한 남성'과 '애국'의 길을 선택했다는 인식이 강하다. 따라서 해병이 되려면 평균 3~4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1990년대 후반에는 입대 경쟁률이 무려 24대 1까지 오를 정도로 치열했다. 오죽하면 해병대 입대 재수생까지 생겨났을까. 뉴스투데이는 지난 2일 국내 최초의 육·해·공군 퇴역장성들의 합동연구기관인 한국안보협업연구소(이사장 최차규)와 함께 해병대만이 가진 자부심의 시작이라고 불리우는 포항 해병대 교육훈련단을 찾았다. 이날 취재에는 예비역 육군 소장 출신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연구소장과 예비역 해병준장 차동길(해사 37기) 전 해병대 교육단장이 동행했다. 해병대 입대를 앞둔 예비 해병과 가족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교육훈련단 입소 과정부터 정예 해병이 되기까지의 모습을 A부터 Z까지 수요자의 장에서 세밀하게 설명했다. 약 2주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제공한 자료와 현장 취재를 종합했다. 해병대 정예 요원이 되기 위한 전군 유일의 7주 교육과정,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이 훈련대에 들어와 ‘무적해병’으로 새롭게 거듭나 오른쪽 가슴에 빨간 명찰을 달기까지의 전 과정을 수요자 입장에서 알아보자. ①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없다’▶ 해병은 모병제 아닌 지원제지만, 평균 3대1 경쟁 뚫 어야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표현은 해병대의 강인함을 상징으로 여길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전투력을 요하는 부대이다. 때문에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없다는 표어처럼 엄격한 평가를 통해 입대여부가 결정된다. 해병대 지원자의 평균 경쟁률은 3대1 안팎으로 대학생의 학기 종료 이후에는 지원자가 몰리면서 약 9대1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해병대의 선발 과정은 체력검사 외에도 자격, 면허, 전공 등의 평가를 거쳐야 한다. 지원 자격은 대한민국 18세~28세 이하 남성으로 병역판정검사 결과 신체등급 1~3급 현역병 입영대상자다. 자격을 갖추면 연간 13기수 일정으로 모집하는 해병대 정규모집에 지원하면 된다. 지원자는 서류전형 → 면접전형 → 체력검사 → 신체검사 → 범죄경력 조회를 거쳐 최종 합격된다. 이 과정에서는 고등학교 출결 비중도 주요한 요소로 작용되며 면접에서는 용모와 예절, 성장환경까지 평가된다. ▲ 입대를 앞둔 예비 해병들 ② 1~2주차▶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의 시작, ‘복종’과 ‘단결’을 테마로 해병대 적응 교육 해병대의 신병 교육과정은 타 군의 과정과는 달리 7주로 구성된다. 교육은 각 주차마다 단계별 주제(테마)로 선정돼 그에 맞는 체계적 과정으로 진행된다. 테마는 1주차 '복종'→2주차 '단결'→3주차 '충성'→4주차 '인내'→5주차 '도전'→6주차 '극기'→7주차 '명예'로 꾸려진다. 1~2주차는 타 군과 마찬가지로 기본 제식과 정신교육, 입소식을 통해 군인으로서의 조기 적응을 유도하는 단계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는 실전적인 해병대 정신의 각인 과정이 진행된다. 해병대 정신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교육 훈련장과 일상 생활에서는 눈길이 닿는 곳마다 빨간 현수막에 해병대 정신과 이를 상징하는 구호를 적어넣어 자연스럽게 해병화 되도록 정신을 고양시킨다. 과거 '악으로 깡으로' 정신을 교육시키던 주입방식을 벗어나 자연스럽게 체화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 해병대 훈련장 곳곳에 걸린 구호 ⓒ해병대 교육훈련단 2일 열렸던 수료식에서 교육 과정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둬 '무적해병상'을 수상한 나재윤 이병(24·해병 1226기)은 해병대 입소부터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 해병대라는 자긍심을 인식시킬 수 있도록 조성된 환경이 임대 초반 적응하는 데 심리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며 "해병으로서 더욱 강한 의지를 기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1~2주차에는 타 군과 마찬가지로 군 생활의 조기 적응 단계를 거친다. 걸음걸이부터 경례요령까지 줄을 맞추고 군인으로서의 자세를 잡아간다. 이 과정에서 동기, 즉 전우애와의 단결심을 배양한다. ③ 3~4주차▶ 개인화기사격, 수류탄 투척, 해병대만의 ‘ 전투수영’ 등 고강도 훈련 해병대원으로서의 본격적인 전투기술을 배우는 3~4주차 훈련은 진짜 해병의 전투요원으로서 과정을 배워가는 기간이다. 3주차에는 실제로 총을 쏘는 개인화기사격과 수류탄 투척 훈련이 진행된다. 이어 4주차는 '인내'로 불리는 혹독한 훈련이 이어진다. 전투 수영, 화생방, 구급법 등 실전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존술을 터득한다. 특히 상륙작전을 주요 임무로 수행하는 해병대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투 수영은 파도를 극복하고 파도를 이용해야 하는 고강도 훈련이다. ▲ 훈련병들이 실전에 가까운 전투요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전투 수영 훈련을 받고 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 7m 높이 배에서 뛰어내리는 훈련과 바다에 빠졌을 때 바지를 벗어 부이(buoy)로 만들고 물에 띄우는 훈련, 완전군장을 이용해 영법을 배우는 '무장 수영' 등 바다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는 생존 기술을 훈련한다. 이 과정에서 수영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신병도 기본적인 영법과 생존술을 습득하게 된다. ④ 5주차▶ ‘도전’을 테마로 고무보트로 적진에 침투하는 ‘IBS 훈련’ 등 줄지어 전투 수영을 배웠다면 해병대원의 특성화된 임무와 역할을 몸소 체험하는 상륙기습기초훈련, 공수기초훈련, 상륙장갑차(KAAV, Korean Assault Amphibious Vehicle) 탑승훈련에 돌입한다. 이 가운데 적의 해안에 은밀하게 기습침투하는 기술을 배우는 상륙기습훈련이 강도 높기로 유명하다. 이 훈련이 바로 상륙형 고무보트를 이용한 IBS(Inflatable Boat Small) 훈련이다. IBS는 약 120kg에 달하는 고무보트를 장병들이 직접 머리에 이고 이동하는 헤드케링(Head Carrying : 머리에 보트를 이고 이동하는 방법)과 바다에서 노를 저어 앞으로 이동하는 훈련인 페들링(Paddling)으로 구성된다. ▲ 훈련병들이 약 120kg에 달하는 고무보트를 직접 머리에 이고 훈련받고 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 이 과정에서 훈련병들이 상륙작전의 특성과 운용방법에 대해 이해하고, 기초적인 능력을 기르게 된다. 상륙기습기초훈련이 끝나면, 상륙형돌격장갑차인 KAAV(Korean Assault Amphibious Vehicle) 탑승훈련에 들어가고, 비로소 훈련병들은 상륙작전의 임무를 경험하며 상륙군으로서 거듭난다. 5주차에는 하늘에서 열리는 공수기초훈련도 진행된다. 이는 하늘과 땅, 바다를 이용한 입체적인 훈련 과정 중 하나로 고도에 대한 공포심을 제거하고 담력 배양과 유사시 착지를 하기 위한 기본 훈련으로 실시된다. 비행기 모형에서 탈출하는 이탈자세를 배우고, 약 15m의 모형탑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이다. ⑤ 6주차▶ ‘지옥’을 테마로 식사량과 잠을 절반으로 줄인 채 ‘74km 완전군장 행군’으로 인간 한계 극복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명찰'을 수여받기 전 거쳐야하는 관문인 이 훈련주는 악명높은 해병대 훈련의 절정이기에 '지옥주'라고도 불린다. 5주간의 강도높은 훈련으로 체력이 떨어진 상태의 훈련병에게 주어지는 극한의 상황이다. 이 기간 중 훈련병들은 수면량과 식사량을 평소의 절반으로 줄이고, 각개전투훈련과 유격기초훈련 등 4박 5일간의 잔인한 훈련을 감내해야 한다. 이 기간 중 훈련병들은 74km의 거리를 완전군장으로 이동한다. 4박 5일간의 훈련이 끝나면 지옥주의 상징인 '천자봉 고지정복'훈련이 기다린다. 이 훈련은 30kg 무게의 완전군장을 지고 24km에 달하는 산길을 도보로 주파해야 한다. 천자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도전', '인내', '해병혼(魂)' 등의 문구가 이들을 격려한다. 이후 정상에서 해병대의 상징인 '팔각모 사나이'를 부르며 훈련 성공의 의식을 치른다. 지옥주의 복귀에는 선배 해병들의 뜨거운 축하 박수가 기다린다. 이 훈련이 종료된 직후에는 해병대원의 상징인 '빨간명찰' 수여식이 진행된다. 이전까지 달았던 노란명찰에서 진정한 해병자격을 얻는 의미다. ▲ 지옥주 훈련을 마친 훈련병들이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명찰'을 수여받고 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 ⑥ 7주차▶ ‘명예’를 테마로 빨간 명찰 달고 대망의 수료식, 성취감과 감동으로 눈물바다 마지막 7주차는 '명예주'로 불린다. 모든 훈련 과정을 완주하고 진정한 정예해병으로 거듭났다는 의미다. 이 주에는 훈련병의 가족과 친지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료식이 열린다. 수료식에서는 훈련병 1000여명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해병에게 '무적해병상'이 주어진다. 이 해병의 부모는 해병대 교육훈련단장인 장군과 함께 열병차량을 타고 정예 해병으로 거듭난 신병들의 사열을 받는다. ▲ 지난 2일 열린 1226기 수료식에서 무적해병상을 받은 나재윤(24) 해병의 아버지 나봉근 씨(60)가 해병대 교육단장과 함께 열병차량을 타고 정예 해병으로 거듭난 신병들의 사열을 받고 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 지난 2일 열린 1226기 수료식에서는 학사장교를 준비하다 해병대로 지원 입대한 나재윤(24) 해병이 받았다. 나 해병은 “애초에 장교가 되기 위해 준비를 했었는데 최대한 군에 가까운 모습을 찾기 위해 해병대를 지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입대 전 남매듀오로 활약한 '악동뮤지션'의 이찬혁(21)도 이날 훈련을 마치고 수료했다. 이찬혁은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예전부터 해병이 되고싶었다"며 정말 군인이 된 거 같다"고 인삿말을 남겼다. 수료식 행사가 끝나면 1000여명의 해병 가족과 친지들이 연병장으로 달려가는 장관이 펼쳐진다. 연병장 곳곳은 늠름하게 변한 아들에게 신고를 받으며 흘리는 감격의 눈물로 뜨거워진다. 이날 사열을 받은 나 해병의 아버지인 나봉근(60)씨는 “아들이 입대 전과 달리 정신 무장이 된 모습을 보니 해병대에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고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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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역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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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해병대 교육훈련단 총정리]전군 유일의 7주 훈련, A부터 Z까지 완전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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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미국의 국방개혁은 어떻게 성공했나
- ▲ 미군훈련사진 (출처:미8군 플리커) (안보팩트=최영진 / 칼럼니스트, 중앙대 교수)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국방개혁 표방, 국방부 주요 보직의 민간인 배치 등 눈길 문재인 정부는 강력한 국방개혁을 표방하고 나섰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국방개혁의 목표를 “공룡같은 군대를 표범처럼 날렵한 군대로 만들겠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국방부 주요 보직에 민간인을 배치하면서 국방개혁을 추진할 인적 동력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방개혁이 쉽게 추진될 수 있을거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의 개혁의지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다. 우리 군이 달라져야 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생각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 307계획’이 입법화에 실패했던 것도 부정적 판단의 근거가 된다. 대통령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국방부에 국방개혁실을 만들어 실장에 민간인을 보직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상급지휘구조개편과 같은 예민한 문제에 걸려 결국 입법화 단계에 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보수정부였던 이었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각 군(軍)과 국회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1986년 미국의 국방개혁, 합참의장의 권한과 역할 강화해 '강한 미군' 탄생시켜 국방개혁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86년 미국에서 입법화에 성공한 ‘골드워터-니콜스 국방부 재조직법(Goldwater–Nichols Department of Defense Reorganization Act)’이다. 이법은 1947년 미국에서 국방부와 합동참모부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국가안보법 이후 성공적인 개혁법안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국방개혁 목표가 합동참모부의 강화를 통한 합동성 강화라는 목표를 우리와 공유하기 있기 때문에 간단히 골드워터-니콜스법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무엇보다 합참의장의 권한과 역할 강화을 대폭 강화시켰다. 합참의장은 합동참모회의(의장ㆍ3군 참모총장ㆍ해병대사령관)의 대표자로서 군사적 지휘권은 없으나, 대통령 및 국방장관에 대해 최고위 군사자문 역할을 수행토록 했다. 합참의장은 통합군사령부의 소요계획 및 예산 등에 관해 국방장관의 자문 역할을 하며, 군의 합동운용을 위한 정책·훈련·교육계획을 수립토록 함은 물론 장관급 장교 임명 시 대통령·국방장관에게 당해 장교 능력 평가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합참의장의 역할 강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합참부의장(합참차장) 직위를 신설했다. 부의장(차장)은 합참의장과는 다른 군 소속이어야 하며, 대통령이 상원의 건의 및 동의 후 임명하게 했다. 합동참모의 역할도 강화시켰다. 합동참모의 자질 및 독립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합동특기제도 신설, △합동참모 보직의 구체적 수와 보직 명시, △합동근무를 장성 진급을 위한 필수보직으로 명시(합동부서에 근무하지 않으면 장군이 될 수 없음), △합동 보직에 대한 근무 기간 연장(장성 최소 3년· 장교 최소 3년 반), △합동교육소요의 구체화 △기타 보직에 비례하는 합동근무 보직의 진급비율(다른 직위 장교보다 합동직위에 근무한 장교의 진급율이 적어도 같도록) 등을 명시했다. 현장지휘관인 통합군사령관의 권한과 책임도 확대되었다. 통합군사령관에게 구성군 사령관의 임명 및 해임 권한을 부여해 예하부대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통합군사령관에게 부대 운용 예산 편성 시 합참의장에 대한 건의할 수 있게 하여 자원 할당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합참의장의 권한 강화로 문민통제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장치도 마련했다. 각 군 장관 및 정책·획득 부차관은 예비역 임용 전역 후 10년이 경과해야 보임할 수 있도로 했고, 국방 서열상 1~4위(국방장관, 부장관, 각군 장관, 정책·획득 부차관)는 민간인을, 5~6위(합참의장, 각군 총장)는 군인을 임용하도록 함으로써 문민우위 체제를 유지토록 했다. 이러한 조치가 제대로 추진될 수 있는 진단시스템도 갖추었다. 국방성이 의회에 제출하는 보고서의 규모는 3분의 1로 축소하되, 대통령은 국가정책과 국방정책을 통합하는 국가안보전략에 대한 상세보고서를 매년 의회에 제출해야 하며, 국방장관은 군 구조와 임무 간의 관계에 대한 보고서를 매년 의회에 제출토록 했다. 미 의회는 이러한 정기보고를 통해 국방조직 진단을 제도화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이처럼 미 의회는 골드워터-니콜스법을 통해 합참의장의 역할을 대폭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통합군사령관의 권한 및 책임을 강화해 전투 중심의 군대를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미국의 국방개혁은 우리 군이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의 기본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미국의 사정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목표를 추구한다고 해도 개혁의 내용과 방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문제의식은 공유하되 구체적 실행방법은 한국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설정해야 할 것이다. 또 달리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입법화 과정이다. 새로운 변화는 기존 질서와 제도로부터 저항을 받게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국방개혁의 주 대상이었던 국방부와 각 군으로부터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행스럽게 입법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저서가 출판되었다. 입법화 과정에서 실무책임자였던 제민스 로쳐(James R. Locher III)가 2002년에 발간한 『포토맥 강에서의 승리(Victory on the Potomac: The Goldwater-Nichols Act Unifies the Pentagon. Texas A&M University Military History Series)』는 골드워너-니콜스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입법화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보고서다. 베트남 전쟁 패배 이후 위기의 미군지휘체계, 개혁 통해 '걸프전' 승리의 토대 닦아 1980년 미군은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가 깊게 드려우진 상황에서 이란 인질 구출작전이 실패함으로써 미국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1982년에는 베이루트의 폭탄테러로 241명의 미 해병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진상조사에 나섰던 미 의회조사단은 경악했다. 제대로 된 대비는 물론 사후수습도 엉망이었다. 지휘체계는 분산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관리할 전략기획이 부재했다. 한마디로 합참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1983년 그레나다 침공에서도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방개혁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국방구조개혁의 첫 번째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는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존스(D. Johns) 장군이었다. 1982년 3월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나선 그는 합참의 의사결정과정의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위원회’ 방식으로 운영되는 합참으로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보다 일관된 지휘권의 통합이 절실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군의 분파주의 극복할 수 있는 특단의 방안이 필요했다. 합동성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방조직 개혁법안이 입법화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창군 이래 각 군은 부대운용과 작전에 있어 독자성을 누려왔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세계 최강의 군 조직이 반대한다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특히 당시 와인버거(C. Weinberger) 국방부 장관이 부정적이었다. 자신이 잘 관리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냐는 반응이었다. 국방예산 삭감을 위한 꼼수라는 의혹도 갖고 있었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도과 친밀했기 때문에 백악관의 반대도 예상되었다. 초기 미 의회도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방안보문제에 주도권을 갖고 있는 상원은 보수적인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었다. 상원의원 대부분이 장교로 복무한 경험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각 군과 친밀한 커넥션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와 군부의 저항을 이겨내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럼에도 국방개혁을 염원하는 의회 지도자들과 그 보좌진은 4년하고도 241일간의 고투 끝에 ‘골드워터-니콜스법안’을 통과시키는 역사적 결실을 거두게 된다. 존 메이어 전 합참의원을 비롯한 많은 군사전문가들은 걸프전의 승리를 비롯한 1990년대 이후 미군의 빛나는 성취가 가능했던 것은 이 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미 국방부와 합참조직을 만들어낸 1947년 국가안보법 이후 최대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법안 찬성측과 반대측이 벌였던 치열한 공방전을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법안 내용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미국과 한국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의 입법화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을 결코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군 내부의 개혁적 지도자의 존재이다. 합참조직의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 사람은 존스 합참의장이었다.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고 합참의장과 통합군사령관의 권능을 강화하자는 주장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각 군의 독자성과 분파성을 약해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군의 출신의 존슨은 합참의장 4년을 포함 모두 8년간 합참에서 지냈다. 누구보다도 합참의 현실을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청문회에서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보다 체계화 논문을 발표해서 공감을 이끌어냈다. 가장 강력한 저항 거점인 해군에서도 의미있는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태평양함대 사령관이 크로우(B. Crowe) 제독이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220척의 함정과 8백여 대의 항공기, 55개의 기지에 22만 명의 병력을 관장하는 해군 최고의 지휘관이 나선 것이다. 군부 일각의 문제제기를 수용한 의회지도자의 초당적 협력이 개혁의 원동력 이러한 군부 일각의 문제제기를 받아 준 것은 백악관이 아니라 미 의회였다. 하원 군사위원회 니콜스(W. Nicols) 위원장이 먼저 나섰다. 1982년과 83년의 법안상정은 니콜스 의원의 공이다. 이러한 노력이 상원의 무관심과 지능적인 저항에 실패하자,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을 등장한 골드워터(B. Goldwater) 공화당 상원의원이 나섰다. 그는 상원으로서 마지막 임기를 남기고 있었지만, 국방개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마지막 과업을 생각하고 깃발을 들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 문제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야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의 파트너로 함께 한 이가 넌(S. Nunn)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다. 이들은 1985년 1월부터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진 그날까지 함께 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초당적 협력은 지난 50년간 미국 의회를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법이 미 의회 군사위원회가 통과시킨 가장 중요한 법안으로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58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국방개혁은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의회가 주도할 때 더 성과가 좋았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법안 입법화의 가장 어려운 시간은 1986년 2월부터 시작된 상원 군사위원회의 법안축조심사과정이었다. 반대측을 대표했던 공화당의 워너(J. Warner) 의원은 13개의 수정안을 내며 공세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회의를 주관하던 골드워터 의원은 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고수했다. 골드워터와 넌 의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토론을 보장하기로 마음먹었다. 찬반의 입장은 분명했지만 상대편의 발언권을 제한하는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가능한 당파적 입장에서 벗어나려 했다. 반대의견을 충분히 토론하게 했고, 그 결과 오히려 찬성측의 주장이 설득력있게 보였다. 저자는 워너의 수정안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법안은 더욱 정교해지고 완벽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반대측의 전략은 군사위원회에서 10대9 정도로 지더라도 전체회의에서 뒤엎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사위원회의 공개투표 결과는 19대0으로 압도적 찬성이었다. 찬성측도 놀라운 결과였다. 물론 몇 개의 타협책으로 반대측 의원을 설득한 점도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만장일치의 결과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빛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국회에서의 합의야 말로 이 법의 성공적인 실행에 결정적인 조건이라는 점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리 기억해야 또 하나의 성공요인은 보좌진이다.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하여 리차드 핀(Richard Finn), 제프리 스미스(Jeffry Smith), 아치 배럿(Archie Barrett)과 같은 보좌관들이 수행한 역할이다. 골드워트와 넌 의원이 지휘관이라면 이들은 탁월한 전사들이었다. 조사보고서와 법안을 실제 작성한 것은 이들이었다. 이들 없었다면 청문회나 법안축조심의 과정에서 효과적인 대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제임스 로쳐은 미 육사 출신으로 미 상원 군사위원회 보좌관(staffer)으로 입법화 작업의 실무책임을 맡았다. 반대진영에서 이 법안을 ‘로쳐 법안’으로 부를 정도로 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반대측에서 이들을 실제적인 공격 목표로 삼았던 것도 이들이 담당한 역할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4년 241일의 고투끝에 이루어진 미군 상층 지휘구조 개편, 개혁적 군 지도자들이 산파 역할 1986년 10월1일 레이건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졌다. 말 그대로 4년하고 241일간의 고투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다. 상층지휘구조개편에만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빛나는 성취를 이룩한 인간의 의지와 노력, 그 열정에 경외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미국의 국방개혁은 상층지휘구조개편에 주력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국방개혁보다 제한적인 목표를 추구했지만, 거의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의회지도부의 일관적 개혁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결의가 있었기에 보좌진 또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더욱 중요한 것은 군의 문제를 직시하고 변화를 추구했던 개혁적 군 지도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존스 합참의장의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의원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해군 내부의 문제를 솔직하게 얘기해줄 수 있는 크로우 제독과 같은 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멋진 일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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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미국의 국방개혁은 어떻게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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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북핵의 대항마, 탄도탄 방어전략 변천과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개념
- 2017년 여름 이후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증가함에 따라 이와 관련한 국민의 관심은 높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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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북핵의 대항마, 탄도탄 방어전략 변천과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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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군의 아우성] 김관진 암살론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
- ▲ 지난 5월 17일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인 지난 5월 17일 대통령 취임후 처음으로 국방부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투데이 (시큐리티팩트=강철군 전문 기자)과거 정권 ‘내치 문제’로 곤경에 처한 김관진 전 국방장관 구하기 필요성 제기북한 김정은 정권이 ‘암살 타깃’으로 공언할 정도의 안보분야의 전문가스필버그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오마하 해변 전투장면의 생생한 묘사로 전쟁의 공포를 실감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의 전투장면을 모델로 두고 만든 충무로의 유사 할리우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도 천만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 모아 대히트를 했다.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과거 정권에서의 ‘내치문제’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김 전 장관을 ‘암살 타깃’으로 공언했을 정도로 안보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1989년 즈음인가(?) 합참 아이솔 막사 구석방에서 갓 대령 진급한 장교가 “818국방개혁”초안 작성을 위해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있는 지우개떡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 장교가 김관진 전 장관이다. 김관진은 국방개혁의 매순간 첨병에 서서 불철주야 머리를 짜내었다. 그의 단호하고 정확한 정책판단은 북한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게 우리 군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그가 국방부 장관이 되었을 때인 2012.10.19일 북한 인권단체가 대북전단을 발표하는 것에 대해 북한군이 “임진각을 타격하겠다.”고 협박하자 김 전 장관은 “원점까지 타격”이라고 일갈했다.그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 이렇게 강력 대응했다.“(서부전선의) 1군단 지역에도 이미 경고가 내려갔다. 적 도발에 대한 응징 태세는 완벽히 갖추고 있다. 그 사람들(북측)이 작년에도 ‘삐라를 뿌리면 원점을 포격한다.’고 위협을 했고 (북한이 실제)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 원점 지역을 포함한 지휘부까지 완전히 격멸하겠다고 했다.”그 후 김관진에 대한 북한 암살론에 대해 국내 언론들의 보도도 이어졌다. 과연 그의 국방통솔력이 얼마나 대단했고 북한 정권이 고질적으로 눈에 가시처럼 여겼을 지 보통사람이라도 짐작할 수 있다.북한의 화형식과 사격훈련 표적 대상이 된 김관진의 무섭고도 슬픈 눈언젠가 시인 김지하는 김관진에 대해 “저토록 무섭고 슬픈 눈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본다”며 “그의 눈이 무서운 것은 그 빛이 강하고 깊기 때문이고 슬퍼 보이는 것은 어떤 운명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저 깊은 눈동자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북한의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 협박에 원점까지 완전히 격멸하겠다는 경고를 쏟아낸 무섭고도 슬픈 눈을 가진 김관진 장관을 북한의 카이스트라고 불리는 김책공업종합대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은 화형식의 제물로 삼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인형을 만들어 끌고 다니며 나무에 매달고 화형식을 하는 모습이 2012년 3월7일 북한 조선중앙TV에 방영되었다.2015년 8월에는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도발을 한 북한군이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김관진 안보실장의 사진으로 만든 표적지에 실탄 사격을 하는 모습을 공개했다.2014년 9월 당시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北, 세월호 이후 더 집요해진 ‘南흔들기’…대남비방 倍로 껑충뛰어”라며 친북 사이버 기지 1,784개를 적발하였다고 말했다.우리 민족끼리, 려명, 광명사, 구국전선 등 대남선전 매체를 통해 상반기에만 7,235차례 대남 비방전을 펼쳐 하루에 40건 정도 쏟아낸 셈이라고 밝혔다. 한 의원은 “국군 사이버 사령부가 정치 개입이란 잘못된 과거를 빨리 털어내고 북한의 사이버 심리전과 사이버 공격에 대응한다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헌데 북한은 이상하게도 현재 적폐와 국정농단으로 코너에 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및 김관진 전 장관 등을 대남심리전의 표적으로 삼았다. ‘내치’와 ‘안보’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北 김정은의 역(逆)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경계해야조선중앙TV를 포함한 대남선전 매체에서는 “저 김관진 xx같은 전쟁대결 광신자들 때문에 청와대 안방 주인은 물론이고 이제 남조선 인민들도 큰 변을 당하게 될 것이다”라며 화형식 영상 등을 계속 방송했다. 결국은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제일 두려워하고 겁나는 존재가 현재는 한국사회에서 적폐의 대상이 되어있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송나라 용장 악비는 요나라와 금나라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였으나 송나라 재상 진회에 의해 처형되었다. 임진왜란 시 왜군의 끝없는 밀정의 활동을 통해 선조를 조정했고, 왕은 첩자들의 농간에 휘둘렸다. 결국 연전연승했던 이순신 장군은 임금의 진군명령을 거역한 죄로 삭탈관직 당해 권율 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했고 “전쟁이 끝나면 이순신을 반드시 죽이겠다”며 선조는 이를 갈았다.북한 인민군 사격훈련의 표적이 되었고 김책대학교 화형식 인형이 되었던 인물은 북한 김정은 집단이 제일 두려워하고 골치 아픈 사람이었다. 지금은 우리 손으로 송나라 악비나 이순신 장군처럼 처단하라고 한다.비록 내치(內治)에 큰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외치(外治)에서 능력을 발휘했던 사람을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 단지 北 김정은의 역(逆) 이이제이(以夷制夷)에 놀아나는 어리석음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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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군의 아우성] 김관진 암살론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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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18)‘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하다
- ▲ 필자(김희철)의 육군사관학교 생도시절 모습 고등학교에서는 전공학과보다 대학교 브랜드가 중요하다‘16년도 어김없이 11월 17일에 대학입시 수능시험이 치루어졌다. 수시로 대학입학이 확정되는 것도 수능점수가 결정적이다. 아무리 내신 성적이 좋아도 수능점수가 나쁘면 대학입학은 어려워진다.나는 말도 많은 58년 개띠로 격동의 세월 현장에 항상 있었다.58년 개띠부터 전국 최초로 중학교 입시도 시험에서 추첨제로 바뀌었고, 고등학교 입시도 소위 뺑뺑이 추천제로 바뀌었다. 오늘날 수학능력평가처럼 그때에도 대학입시 예비고사(연합고사)가 있었다.당시 학생들의 적성과 희망직업에 대한 고려는 고등학교 입시를 담당한 선생님들에게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국의 많은 고등학교 중에서 소위 SKY대학을 몇 명이나 합격시켰느냐가 고등학교의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였다. 명문대학이라면 비인기 학과 또는 농업·예능계열을 가리지 않았다. 조금만 가능성이 있으면 학교에서 권했다. 지원학과 선택에 있어 개인의 특성은 그냥 참고사항일 뿐이었다. 특히 미술과 음악, 체육 분야에 재주가 있고 성적이 조금 높은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당해 연도에 서울대, 연대, 고대 등에 한명이라도 더 합격시키는 것이 고등학교 선생님, 학생, 그리고 부모들의 목표였다.설명회에 나온 육사 생도 선배의 '군인관'에 홀린 듯 매료돼 그런 시대 풍조에 젖은 학생이었던 나는 고교 3학년 어느 날에 인생을 결정짓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날의 경험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의 느낌과 열정은 바로 직업으로서의 군인에 대한 글을 쓰고자하는 원동력이다. 앞으로 이 글이 청소년과 청년들, 나아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층에게도 꿈을 주기를 소망한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매년 생도들을 출신고등학교에 설명회를 가짐으로써 우수한 재원들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운명의 날에도 육사에 입교한 선배 생도가 학교강당을 빌려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손에 끌려 강당 한 귀퉁이에 앉아 선배의 열띤 설명을 들었었다.눈동자가 보일 듯 말듯 눌러 쓴 사관생도 모자 밑의 생도 얼굴에서는 힘차고 차분하게 터져나오는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는 입만 보일 뿐이었다.그런데, 가슴에 꽉 꽂히는 말이 들렸다.“사관생도 신조...하나, 나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였다. 후배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명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 그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사실 그 때만 하더라도 군인 그것도 육군사관학교 생도 하면 좀 더 근육질에 우락부락하고 키도 크며 만능 스포츠맨 같은 전투적인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때문에 그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선배님, 저같은 사람도 사관학교에 갈 수 있어요?”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자 선배생도(육사35기 조정)는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며 못마땅한 듯 툭 말을 던졌다. “자네는 공부 좀 하나?”개인적으로 찾아간 육사 생도 선배는 의외로 냉담한 반응어이가 없었다. 그렇게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의 길을 강조했던 선배 입에서 의외의 질문을 들었기 때문이다.“아~, 예~, 성적은 조금 괜찮아서 지금 학교 특수반에 포함되어 대입준비를 하고 있습니다.”그러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우선은 공부를 잘해서 연·고대 수준이 돼야 1차 합격할 수 있고, 그 다음은 체력이 좋아야 한다. 의지만 있으면 자네도 가능해…” 기대하지도 않고 있다는 듯 대답을 하고 떠났다.담임선생님은 특수반(성적 우수학생들만 따로 모아 일과 후에도 보충수업을 시키는 학급)에다 그림도 잘 그리니 서울대학교 미대를 갈 준비를 하라고 조언을 해주셨고 나도 별뜻없이 순종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 단계였다.그런데 육사에 입교한 선배 생도의 이 한마디에 선생님의 조언은 점점 희미해졌다. "어차피 한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그 선배처럼 직업군인의 길을 걷는다면 얼마나 매력적일까" 이런 상념을 하면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던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결국,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택하는 길보다 험난한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몇 일 뒤, 담임선생님께 육사시험에 응시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인생은 Birth(출생)과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삶이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너가는 생(生)이라고 했다. 언제나 누구에게도 아슬아슬하게 외나무다리 고비를 넘어가며 죽음의 문으로 다가간다.지옥의 세계 속에서 희망의 빛을 쫓아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는 고3 시기는 더 많은 리스크(Risk)와 유혹 그리고 장애가 버티고 있는 과정의 시간이다.육사를 지원하겠다는 말을 들은 담임선생님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라면서 단호하게 반대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가면 얼마나 너의 인생이 멋지겠느냐. 실현 예술가로서 명성도 얻으면 삶의 희망이 실현되는 것이다"라고 나를 설득했다. 선생님은 육사지원서 작성은 불가하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그러나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간신히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선생님은 학업성적 평가 차원에서 육사시험에는 응시하되 합격여부를 떠나서 서울대 미술대학은 반드시 응시하여 시험을 봐야한다는 조건이었다. 아무튼 조건부라도 육사시험원서를 작성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내었다.그 당시 가정 형편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강원도 원주의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학비가 많이 들어가는 미술대학 뒷바라지를 부탁하는 것도 사실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평택에, 필자는 서울 충정로 셋방에서 세집살림 하기에도 아버님 봉급 가지고는 빠듯한 생활이었기 때문이었다.일단은 육사로 목표를 정했다.여름방학 때 종로의 사관학교입시 전담학원에 등록했다. 마침 그 학원에는 동창생 3명이 사관학교를 목표로 함께 수업을 받게 되었다.드디어 그해 10월 육사시험에 응시했다.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기 위해서…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현)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주요 저서 및 연구-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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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18)‘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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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⑤전문가들 "정부 주도 ‘사이버 안보 리더십’ 필요"
- ▲ 사이버 안보 전문가들이 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사진 왼쪽부터 박남희 국방부 사이버정책담당관, 손영동 한양대학교 융합국방학과 초빙교수, 김한경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연구센터장, 김승주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김한성 국군사이버사령부 사이버방호센터장, 박재경 한국폴리텍대학 교수 ⓒ뉴스투데이 (안보팩트=김성권 기자)‘사이버 리더십’의 부재로 해킹 공격에 속수무책정부 차원에서 사이버 전문 인력 육성해야‘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의 두번째 세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사이버 안보에 대한 국·내외 대응 능력과 사례 비교를 통한 ‘사이버 리더십 제고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이버 침해 사례 자료가 소개됐다.김한경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연구센터장이 준비한 ‘국내·외 대응능력과 사례를 비교한 사이버리더십 제고 방안’ 자료에는 지난 2016년 9월 발생한 ‘군 국방망 해킹 사고’와 올해 3월 악성코드에 감염돼 피해를 입은 ‘현금자동인출기(ATM) 금융정보 유출’, 얼마전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공격’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고 등이 사례로 제시됐다. 미국 위성망 해킹과 영국 테스코 은행 해킹 등 해외 침해도 비교 분석됐다.다양한 형식의 사이버 침해 사례를 통해 지적한 문제는 전방위적인 공격에 대한 ‘사이버 리더십’의 부재이다. 이로 인해 대응을 위한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국가나 기관 간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대응이 절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사이버 리더십의 발전 방안으로 제안된 내용은 사이버 공간을 ‘국가 주권 수호를 위한 전장’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군·관 연계 미래로드맵을 설계해 공동으로 연구하는 한편 국가간 공동대응과 정책 공유, 사이버 전문 인력의 육성과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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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⑤전문가들 "정부 주도 ‘사이버 안보 리더십’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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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④ 김승주 교수 “모든 것이 해킹 위험에 노출된 ‘초연결사회’"
- ▲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가 오늘(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 제2세션에서 사이버전 양상과 국방 대응능력 향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투데이 (안보팩트=김성권 기자)모든 사람, 사물, 공간이 해킹 위험에 노출‘사이버 무기’ 개발과 시험·평가 체계 부재 "군 내부망 해킹은 관리 부실과 보안의식 부족이 원인" 지적 "모든 것이 연결돼 해킹 위험이 증가하는 ‘초연결사회’이다"김승주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의 발제자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김 교수가 발표한 세션의 주제는 ‘사이버전 양상과 국방 대응능력 향상 방안’이다. 김 교수는 발제를 통해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는 우리가 지켜내야 할 대상이 단순히 조직 내의 컴퓨터나 인터넷 정도가 아니라 이를 매개로 한 모든 사람과 사물, 공간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사이버 테러 위협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신 스마트TV·스마트카·항공기 등 모든 사물이 해킹의 대상이다.그는 국내 ‘사이버 무기’ 개발과 시험·평가 체계의 부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사이버 무기란 사이버 작전 수행이나 훈련용으로 운용되는 장비, 부품, 소프트웨어 등을 말한다. 사이버 무기에 대한 공격과 방어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군 전력 강화에 필수로 여겨지는데 우리나라는 재래식 무기를 제외하고 사이버무기에 대한 평가체계를 잘 갖추지 못한 상태라고 평가했다.군 내부망 해킹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공급망 보안 실패와 국방통합데이터센터(DIDC) 관리 부실, 군 실무자들의 보안의식 부족 등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또 군의 사이버테러 대응과 관련한 명확한 업무분장과 콘트롤타워의 부재도 신속한 대응에 실패한 원인으로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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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④ 김승주 교수 “모든 것이 해킹 위험에 노출된 ‘초연결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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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③정석화 실장, "북한의 사이버 테러는 24시간 진행형"
- ▲ 사이버 보안전문가들이 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사진 왼쪽부터 송정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보호정책관, 홍기융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회장, 김한경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연구센터장, 문재웅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수석부회장, 김진형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위기관리연구센터장, 정석화 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실장 ⓒ뉴스투데이 (안보팩트=김성권 기자)홍기융 회장, "산업계 신기술 적용한 사이버 안보 체계 마련해야"송정수 정책관, "인공지능(AI) 기반 위협 대응시스템 구축 필요"사이버 안보 전문가들이 4차산업혁명 시대에 직면한 사이버 안보 정책을 토론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오늘(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의 사이버 안보 정책 강화와 정책 개선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세미나의 첫 번째 세션 토론은 ‘4차산업혁명 시대의 국가 사이버 안보 정책 방향’을 논하는 자리였다. 토론에 참석한 홍기융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회장은 정부의 사이버 안보 정책 개선 방안으로 산업계 보안 신기술 도입 활성화를 제시했다.홍 회장은 "기획단계부터 산업계의 신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체계를 적극 마련하고, 관련 기관과 공유체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제품 도입과 적정 정보보호 예산 확보에 대한 방안으로는 가격보다 기술력 평가에 중요도를 중시하는 입찰체계 확립, 국방정보보호체계 구축 및 운영 예산 확보에 대한 방안을 내놨다.사이버보안 대응전략은 송정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보호정책관이 나섰다. 송 정책관은 "폭증하는 사이버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침해대응 수행체계를 정비하고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위협 대응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발생한 랜섬웨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보안내재화 촉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현장에서 느낀 사이버테러 위협의 심각성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정석화 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실장은 "북한은 24시간 해킹을 하고 있다"는 경고로 토론을 시작했다. 정 실장은 "북한의 사이버 테러가 현재 진행형"이라며 "지금까지 북한이 행한 사이버 테러는 국민들에게 알려진 것 외에 더 많다"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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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③정석화 실장, "북한의 사이버 테러는 24시간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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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② 문재웅 수석부회장 “정부에 사이버 안보 수석 필요”
- ▲ 문재웅 한국정보보호산업혐회 수석부회장이 오늘(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보보안 강화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뉴스투데이 (안보팩트=김성권 기자)사이버 보안 콘트롤타워로 ‘사이버 안보 수석’ 제안국방부 장관 직속 ‘사이버 보좌관’과 사이버 방산업체도 필요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에 참석한 문재웅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수석부회장이 제도 신설을 골자로 한 국가 사이버 보안 정책을 제안했다.문 부회장은 이날 열린 세미나 제1세션 ‘4차산업혁명시대의 국가 사이버안보 정책 방향’의 발제자로 나서 국가 사이버 보안에 대한 콘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청와대에 사이버 안보 수석이 근무하며 직접 국가 사이버 수준이나 상태, 동향, 기술 수준 등을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며 사이버 안보 수석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정책 제안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 사이버 안보 수석은 정부 기관과 국방부, 국정원, 민간 기업, 학교 등의 사이버 보안 상태를 수시로 보고받는다. 이어 수석 비서관과 전문가 수준의 행정관과 함께 동향을 정리해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방식이다. 이어 국방장관이 직접 통제 가능한 ‘사이버 보좌관’을 두고 국군 사이버작전 사령부로 개편해 사이버 전쟁에 대비하고, 민간 전문가도 대거 영입해 사이버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보보안 산업에 대한 육성 방안으로는 사이버 방산업체를 지정해 군과 함께 사이버 보안 무기 개발을 하고, 정보보안 전용 펀드 조성을 통해 기술력과 스타트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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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② 문재웅 수석부회장 “정부에 사이버 안보 수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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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① 김홍선 부행장, “분야별 전문가와 해커의 합동 공격에 대비해야”
- ▲ 보안전문가인 김홍선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부행장이 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에 기조연설자로 발표하고 있다. ⓒ뉴스투데이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김 부행장, “해킹 자금 조달 쉬워 해킹 조직 많아져”4차산업혁명시대엔 사이버공격에 대비한 소프트웨어 인력확보가 긴급 과제(안보팩트=김성권 기자)보안전문가인 김홍선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부행장은 오늘(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 열린 ‘2017년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에서 허술한 우리나라의 사이버 안보체계를 지적했다.이날 김 부행장은 ‘4차산업혁명시대와 사이버안보’를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섰다. 그는 “국가의 사이버 전략은 생존의 문제”라며 “민·관·군이 협력하는 안보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사이버 공격의 동향에 대해 "해커가 주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닌 분야별 전문가가 해커를 고용해 공격한다"고 설명했다.분야에 있어서도 가리지 않는다. 김 부행장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이버 공격자들은 공공, 금융, 에너지, 제조 등 목표 대상에 특화된 공격을 위해 업종별 전문가와 해커를 공모해 진행한다. 자금 조달도 비교적 쉬워져 조직을 구성하기도 수월하다. 이제는 총이나 칼이 아닌 ‘코드’가 무기화 된 것이다.사이버 공격의 지역적 경계도 허물어졌다. 국내는 물론 해외 기관이나 국방, 정부, 금융, 민간 등 공격 대상이 다양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나 금융거래 등 기술 플랫폼으로까지 침범했다.김 부행장은 정부가 4차산업 혁명시대 국가가 가장 먼저 대응해야할 우선 과제로 ‘사이버 안보’를 꼽아야 한다며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했다. 그는 사이버 안보력 강화를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와 사이버 안보 인력의 확보가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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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 세미나]① 김홍선 부행장, “분야별 전문가와 해커의 합동 공격에 대비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