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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도발대비 옛 비상기획위원회 복원·기능 확대 필요
    [시큐리티팩트=정찬권 국가안보재난연구원장·前국가위기관리학회장] 오늘날 코로나19 팬데믹 고충 속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로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한반도는 12회에 걸친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과 2018년에 약속했던 핵·ICBM 발사 유예를 파기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북한은 핵 보유 의지를 한층 더 다지고, 핵 없는 남한을 쉽게 보고 위협을 일삼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좌파정부의 달콤한 평화놀이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토로이 목마를 내부에 끌어들인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또한 2008년 출범한 MB정부가 비상기획위원회를 폐지하고 안전행정부의 국(局)조직으로 통합·축소시키는 우(愚)를 범한 것도 한 몫을 했다. 안보를 중시한다는 보수정권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사태 그리고 핵미사일 도발에도 전시대비조직의 활성화는 철저히 외면되었다. 오히려 세월호 사고 이후 재난안전 우선시(safety first) 풍조만 만연하였다. 풍전등화 같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지금 제2의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도발을 자행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차제에 새 정부는 그간 소홀했던 국가동원체제를 쇄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몇 가지 개선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로 국가동원 총괄조직을 복원·강화해야 한다. 전·평시 국가안보와 정부기능유지 그리고 국민생활 안정을 총괄·조정하는 조직기능과 업무체계를 MB정부 以前상태로 복원 및 활성화가 필요하다. 전시대비 계획수립, 동원자원 확보·비축, 위기대응훈련, 확인·평가 등을 관장하는 조직을 국무총리 산하의 처(청)급 조직신설 또는 NSC사무처로 통합하는 방안이다. 현행 행안부 국(局)단위 조직으로는 중과부적이다. 정무직 기관장이 지휘하는 독립조직이 필요하다. 둘째, 국가핵심기반·민방위·통합방위 등 업무를 신설조직으로 이관해야 한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에너지, 금융, 교통수송, 정보통신 등을 말한다. 이렇게 중요한 안보지탱 요소를 국정원·행안부·국방부·과기정통부가 각각 관리해 업무중복, 행정력 낭비를 낳고 있다. 또한 합참 소관의 통합방위는 문민통제와 부합하지 못하고, 국가-지자체 간 조직도 불일치해 부작용이 적지 않다. 현 민방위업무가 재난과 전시업무로 이원화는 타 부서와 중복되어 비효율적이다. 이러한 부조리 현상 해소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도 부처 간 업무 재조정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국토안보부 산하 핵심기반& 사이버안보국(cisa)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셋째, 장차 안보 리스크에 선제적인 대응책 마련이다. 우리의 대내외 여건과 시간은 그리 녹녹치 않다. 발등의 불인 군 상비병력 감축,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그리고 美증원전력(FDO/ TPFDD)전개 제한 등 예상되는 안보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특히 상비병력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가동원체제의 재정비·보강과 업무 활성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우크라이나가 국가동원령을 선포하였지만 예비군 응소율이 약 4%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동원이 제대로 안 된 까닭을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고 하겠다. 넷째, 효율적인 국가자원 운영이다. 21세기는 적 침투. 도발을 비롯한 코로나19, 기후위기, 재난 등과 같은 신흥안보위협에도 대비·대응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개별법령에 따라 국가자원을 분산관리하고 있어 자원운영의 통합성과 호환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전·평시 인적·물적 자원을 유사시 즉각적인 투사(projection)를 가로막아 피해를 가중시키는 형국이다. 이러한 비효율을 최소화하기 위해 평시 재난자원을 포함해 가칭“국가자원종합상황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동원자원과 중점관리업체 재분류·지정이다. 변화된 동원환경을 고려하여 대상자원, 업체 등을 현실에 맞게 재검토·조정하고 이행 정도를 확인·평가해야 한다. 예컨대 사이버전 수행에 필요한 전문해커의 동원지정, 단종(斷種)된 품목과 노후화 또는 내구연한 초과 장비·물자의 대체·교체·폐기와 동원품목 다변화 등 발등의 현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행안부 담당부서와 지자체의 손발, 예산 부족으로 수수방관하는 실정으로 개선이 시급하다. 다산 정약용은 ‘국가는 만일의사태에 대비하여 평소 견고한 국방력 건설(固國), 국민 훈련(練卒), 비상사태를 수습(應變)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인수위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해서 무리하게 조직을 통·폐합하다가 교각살우(矯角殺牛)해선 곤란하다.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에 필요하다면 큰 정부를 터부시할 일이 결코 아니다. 국민에게 최고의 복지(福祉)인 안보는 구조적. 비구조적 대책없이 제공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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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9
  • [숨은 중국 알기 (34)] 북한의 대중 태도 참고해 중국의 한국 장악 대비 필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최근 우리는 요소수 사태를 겪고 있다. 요소수를 중국에 약 98% 의존하고 있는 이 상황이 불안하다. 중국은 우리의 요소수 사태를 보면서, 한국은 다루기 쉬운 나라라고 판단할 것이다. 한국에는 요소수 같이 중국 의존도가 90% 이상인 폼목이 27개나 되고, 80% 이상인 품목도 1,850개나 된다고 한다. 중국의 한 지방언론은 ‘요소수 수출 제한을 약 1개월 전에 통보했는데, 한국만 유독 지금 왜 이 난리인가’라고 한국정부의 무능을 지적했다. 정부가 능력이 없어 엉뚱한데 정신이 팔려있으면 다루기가 매우 쉽다. 게다가 정치권마저 저자세를 취한다면 중국이 이런 나라를 대등한 상대로 존중해 줄지 의문이다. 중국을 탓하기 앞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요즈음 우리 학계나 사회 일각에서 ‘중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이 일고 있다. 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이라는 모호한 개념에서 벗어나 급격하게 변화해 가는 국제정세 와중에 점차 우리에게 험악하게 다가오는 중국을 제대로 보고 대책을 모색해보자는 흐름이다. 필자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간단하게 몇 마디 하려고 한다. 우선 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필자의 견해이다. 첫째,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전략적 요충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국을 한미동맹에서 이탈시켜 중화 질서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 경우 중국이 얻는 이점은 ① 미·중 패권 경쟁에서 미국의 동맹을 이탈시킨 첫 사례로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체제보다 중국식 공산당 통치방식의 우월성을 입증할 수 있다. ② 미국의 대중 포위망을 뚫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일부 정치권이 한미연합훈련 축소 및 중단 문제를 거론하는 등 한미동맹이 예전 같지 않다. 이 간격을 중국이 파고들면 주한미군 위상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③ 한미동맹이 흔들리면 미일동맹도 틈이 생길 수 있다. 일본은 미일동맹을 안보의 기축으로 삼고 있지만 결코 중국과 적대적으로 되기를 원치 않는다. 일본 전 수상 스가(菅義偉)는 쿼드가 어느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중국이 주는 경제적 이점이 계속 커진다면 일본의 고민 또한 커질 것이다. 둘째, 중국이 한국을 장악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정치권을 친중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필자가 중국 공산당 한국담당 책임자라면 정치권부터 조용히 접근하여 정치인들과 친분을 다진 다음, 한중관계 발전을 명분으로 중국에 더욱 우호적인 활동을 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이른바 ‘친중공정(親中工程)’이다. 물론 어느 나라든 다 하는 외교활동이기는 하다. 중국이 적극적이고 집요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런 중국에 우리는 맞받아쳐야 한다. 최근 ‘神은 멀리 있고 중국은 너무 가까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정의롭고 공정한 절대자 神보다 고압적이고 험악한 중국이 우리에게 너무 가깝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神은 물론 미국은 아니다. 神보다 가까이 있는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문제가 우리의 고민이다, 필자는 북한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개발을 추진했다. 북한은 상황 변화에 따라 핵무기로 중국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도 북한의 핵탄두가 자신들을 향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북한은 2015년 12월 모란봉 악단의 베이징 공연을 전격 취소하고 철수시킨 바 있다. 김정은은 2017년 11월 시진핑 특사 송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면담을 거부했다. 중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도 “너희들이 필요해서 우리한테 주는 거 아니냐. 싫으면 주지마라” 하고 오히려 큰소리이다. 이런 배경에는 북한에게는 미국과 언제든지 손잡을 수 있다는 비장의 카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은 중국에게 한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북한에는 중국이 북한 내부를 분열시키거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북한의 태도를 참고하여 필자는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현재 우리 국민의 중국 비호감이 75%이다. 국민들은 중국의 의도와 행동을 알고 있다. 정치권이 국민들의 여망을 반영하여 중국을 상대해야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전 국민이 한 목소리로 들고 일어났던 그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이 때에 중국은 한발 뒤로 물러났다. 둘째,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사드 3불을 약속하라고 하면 중국에게 너희 미사일은 한반도를 겨냥해서는 안 된다고 해야 한다. 중국이 우리 대통령 특사를 시진핑 옆에 홍콩행정장관이 보고하는 자리에 앉혔다면, 우리는 중국 외교부장 왕이(王毅)도 그런 자리에 앉혀야 한다. 왕이 부장이 일부러 약속시간에 늦게 도착하면 우리 외교장관은 더 늦게 나타나서 그를 기다리게 해야 한다. 대통령 수행기자가 베이징에서 폭행당했다면 서울에 있는 중국 기자도 동일하게 폭행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위협이라도 줘야 한다. 시진핑이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발언했다면 우리는 만주지방과 베이징 외곽까지 우리 영토였다고 받아쳐야 한다. 상호주의를 통해서 한중관계는 정상화될 것이다. 큰 나라와 작은 나라의 관계가 아니다. 국가의 주권과 정체성, 민족의 자존심을 두고는 한 치의 양보도 있어서는 안 된다. 중국에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다음 정부의 결기를 기대한다. 셋째, 중국을 상대할 많은 전략적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 한미동맹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이며,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기술도 수단이 될 수 있다. 필자가 중국에 있을 때, 당시 한국대사관 고위인사는 “중국이 한국을 대할 때 우리 뒤에 있는 미국을 보고 대우해주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바로 무시당할 것”이라고 한 말이 요즘 새삼 떠오른다. 중국이 호주의 철광석과 석탄 수입을 중단하자 오히려 중국의 피해가 크다고 한다. 우리도 중국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첨단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상호주의도 공허하다. 3년 전, 한·중 국제세미나에서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와 편안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필자는 그로부터 “너희 한민족은 정말 억세고 기가 세다. 왜 그런가”라는 질문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가 말하는 한민족은 물론 북한과 우리를 함께 의미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이런 질문을 계속 받고 싶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그동안 관심을 가져주었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새로이 충전해 더 좋은 내용으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드린다. ◀ 임방순 프로필 ▶ 인천대 외래교수,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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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9
  • [숨은 중국 알기 (33)] 한반도 통일 위해 중국과 협의 및 합의해야 할 과제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인들이 환호하는 독일 통일의 장면을 보면서 통일된 한국이 바로 우리의 미래 모습일 것으로 생각했다. 통일한국 시대를 맞이하는 것이 이 시대 한민족의 최대 바램일 테지만 우리는 통일은 고사하고 남북한 대립과 갈등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필자는 ‘통일의 여신이 미소를 보이며 우리 옆을 지나갈 때, 우리는 그 여신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는 어느 통일문제 전문가의 평가에 동의한다. ‘우리는 스스로 통일을 이룰 준비가 되어있는가’라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숨은 중국’을 들여다보았다. 한반도 분단 원인은 두 개의 자물쇠가 잠겨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민족 내부의 이념 갈등이라는 자물쇠, 다른 하나는 민족 외부의 강대국 간 대립이라는 자물쇠다. 한반도가 통일되기 위해서는 이 두 분단의 자물쇠를 풀 수 있는 두 개의 열쇠가 필요하다. 즉, 민족 내부의 이념 갈등을 푸는 열쇠와 민족 외부의 강대국 간 이해 조정이라는 열쇠이다. 오늘 이야기는 외부 열쇠 중 한 부분인 중국에 대한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나, 통일과정 및 통일 이후 한국이 과연 자신들에게 유리한가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다. 우선 한반도 통일과정이다. 이에 대한 중국의 공식적 입장은 1992년 8월 24일 채택된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 나타나 있다. 이 성명 제5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라고 언급함으로써 한반도의 자주적·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자주를 강조하는 이유는 통일과정에서 외세, 특히 미국의 개입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개입해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미국은 한반도를 거점으로 중국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강조하는 이유는 통일 과정에서 중국의 이익이 침해받을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분쟁 혹은 불안정성의 격화는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유도하고,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구실로 작용하며, 미국의 항구적인 동북아 주둔과 개입을 가능케 하는 명분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다음은 통일 후, 통일한국의 모습이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통일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 통일 후에는 미국을 위시한 해양세력이 한반도에서 현재의 한미동맹처럼 중국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통일한국이 자국에 도움이 된다’라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에게 협력할 것이다. 이러한 중국에 대해 다음 3가지 사항을 고려해 협의하고 합의를 해야 통일의 길로 나갈 수 있다. 첫째,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역할을 조정해야 한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 중국이 동의하거나 최소한 방해를 하지 않게 하려면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한미동맹 존속과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현재 과도히 의존하고 있는 한미동맹의 성격을 점진적이고 쌍방 대등한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다. 이어서 남북통일 이후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존속하되 그 임무는 중국 견제에서 벗어나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고 유지하는 평화유지 기구로서 변화해야 할 것이며, 이때는 미군보다 UN군 입장이어야 한다. 이와 관련, 한미관계에 정통한 정경영 교수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한반도 통일 후에도 계속 유지하되, 이 지역에서 평화체제를 관리하면서 전쟁을 방지하고 외세의 개입과 각축을 차단하는 역할로 변경되어야 할 것”이라며 그 이유로 “한반도 통일 후,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는 동북아 지역의 힘의 공백을 초래하여 전쟁이 발생할 위험성이 커지고, 일본과 러시아 등 외세가 각축을 벌일 수 있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둘째, 중국이 북한을 완충지역으로 삼았던 지정학적 이해를 고려해야 한다. 통일한국이 해양세력의 거점이 되면 한반도에 진출한 해양세력이 반드시 중국으로 향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중국은 잊지 않고 있어 군사개입 가능성이 높다. 과거 임진왜란, 청일전쟁, 6,25 전쟁 참전이 그 사례이며,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는 북한을 해양세력의 진입을 막아주는 완충지역으로 생각하고 있어, 중국에게 북한은 전략적 자산이다. 셋째, 통일한국은 중국에 우호적이어야 한다. 중국은 주변에 적대적인 통일국가의 출현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통일한국이 중국에 우호적일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이 세 가지 과제는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도 긴밀하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중국과 미국의 이해를 조절해 나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통일문제에서 중국을 바라보면 중국이 제일 중요한 것 같고, 미국만 쳐다보면 미국이 절대적 영향력을 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양국이 모두 중요하며, 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되 미국과 협의 및 합의가 우선임을 잊어선 안 된다. 서독도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미국이 나서 영국이나 프랑스의 독일 통일 반대 의견을 무마시켰고 소련과 협상을 할 수 있었다. 우리도 다를 바 없다. 필자가 중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부터 “너의 나라 통일이 언제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중국인 특유의 모호한 화법으로 답변을 대신했던 경험이 있다. 合久必分 分久必合(통일된지 오래되면 분열되고, 분열된지 오래되면 통일이 된다). 즉 시간이 지나면 통일이 되는데 아직 충분히 시간이 지나가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氷凍三尺 非一日之寒, 三尺氷解 非一日之暖(하루 추웠다고 빙하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하루 따뜻했다고 빙하가 녹는 것은 아니다). 빙하를 녹이려 하는 우리의 노력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국제정치 열쇠도 결국 우리의 열망과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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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 분석
    2021-11-22
  • [숨은 중국 알기 (32)] 중국, 미국 견제 위해 러시아와 연합훈련 강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최근 중국은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사상 최고수준이라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거의 매년 시행되는 육·해·공군의 연합훈련이 대표적이다. 육군은 올해 8월 9일부터 13일까지 중국의 닝샤후이족(寧夏回族)자치구 칭퉁샤(靑銅峽) 전술훈련기지에서 사상 최대의 ‘서부연합-2021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명칭은 연합훈련이었지만 과거에는 각각의 지휘체계와 장비로 단독 훈련을 실시한 이후, 훈련 경험과 성과를 공유하는 수준이었다. NATO와 같이 단일 지휘통제 체계와 무기, 장비가 하나로 통합된 연합훈련이 아닌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훈련은 중·러 양국군을 NATO와 같이 혼합 편성했고, 특히 연합지휘본부를 편성해 양국 언어로 지휘정보시스템을 공동 사용했다. 또한 초청을 받은 쪽인 러시아군이 작전회의에 참가해 훈련 전 과정을 함께 했으며, 연락체계를 구축해 필요시 수시로 임무조정 회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중국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이번 훈련에서 각종 데이터를 공유하고, 작전 규칙을 통일한 것은 향후 있을 수 있는 양국군의 연합작전에 기초를 수립하는 것이었다”라고 보도했다. 중국 해군은 2012년 4월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 일대에서 ‘해상연합-2012’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와 연합훈련을 처음 실시한 후 최근까지 매년 1∼2회씩 대양에서 전투수행 능력을 배양하는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연합지휘부를 편성해 공군 지원 하에 해상 및 공중에서 적 격멸, 잠수함 사고 구조훈련, 해군육전대(해병대)의 상륙훈련 등 훈련내용은 다양하다. 양국 해군의 연합훈련에서 주목할 사항은 첫째, 중국 해군이 지중해(2015년)와 발트해(2017년)까지 진출하는 등 활동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양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고, 러시아가 유럽에서 NATO군과 충돌 시 중국군의 지원 가능성을 과시한다는 점이다. 둘째,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서 연합훈련은 해당 지역에서 영토분쟁 발생 시 중·러 연합작전의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올해 중국과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부근 해역에서 3일간 해상연합훈련을 하고 일본 쓰가루 해협을 통과한 후 일본 열도를 따라 남하하여 일본을 긴장시킨 바 있다. 중국과 러시아 공군도 2019년 7월과 2020년 12월, 한반도 부근에서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들면서 연합훈련을 했다. 2020년 12월에는 러시아가 Tu-95MS 전략 폭격기, A-500 공중조기경보기(AEW&C)와 Su-35 전투기 등 15대와 중국은 H-6K 제트형 전략 폭격기 4대 등 총 19대가 참가해 동해의 독도 상공과 남해의 이어도 상공을 왕복했다. 러시아 Su-27 전투기가 중국 H-6K 폭격기를 호위하는 훈련도 했다. 이러한 중·러의 공중정찰 활동은 한·미·일 안보태세 또는 결속력을 시험하고, 양국의 군사협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러 국방부는 “비행 중 양국 군용기는 국제법 규정을 엄격히 준수했으며 타국 영공에 진입하지 않았다”고 발표하면서 “양군의 전략협력 수준 및 연합행동 능력을 높이며 전 세계의 전략적 안정을 위한 훈련”이라고 밝혔다. 이어 “양군의 연례협력계획에 포함된 프로젝트로 제삼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무기와 군사과학기술을 도입하고 있으며, 상하이 협력기구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관련 국가들과 다자안보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이렇게 양국이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이유는 ‘미국 견제’에 국익이 일치되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가장 위험한 도전 세력으로 규정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을 억제하고 있고,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손잡고 함께 미국에 대항하고 있는 국면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2019년 양국 수교 70주년 행사에서 중·러 관계를 ‘신시대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新时代中俄全面战略协作伙伴关系)로 격상하고, 최상의 관계임을 과시했다. 중·러의 군사 협력은 ‘미국 견제’라는 양국의 공동목표에 큰 변화가 없는 한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우리에게 이 의미는 한반도 주변 공중과 해상에서 중·러의 공군기와 군함들을 더 자주 마주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중·러 양국은 이와 같은 군사협력은 물론이고 각종 국제정치 문제에서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의 사드 배치 문제. 북한 핵 문제, 미국의 한국이나 일본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미·중 패권 경쟁보다 잘 보이지 않는 다른 흐름을 간파해야 한다. 그 흐름은 중국이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미국이 일본 및 NATO와 연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일·NATO 對 중·러 구도가 대립하는 첨단에 위치하고 있다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전략적 모호성도 하나의 방법은 되겠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11-15
  • [숨은 중국 알기 (31)] 동중국해, 중국 ‘해군육전대’와 일본 ‘수륙기동단’ 간 대결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조선이 망해가던 시기인 1885년 영국이 거문도를 2년간 점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이 의미를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조선은 국제정세가 변화하는 와중에서 결국 나라를 잃었다. 오늘날의 국제정세와 아태지역 정세는 조선 말기와 유사하다. 지금의 우리는 조선 말기와 다르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주변국의 국력이 우리보다 강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동중국해 정세 변화는 다음 3가지 이유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첫째,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대상으로 경쟁하는 중국과 일본의 모습은 청일전쟁을 연상케 한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전리품으로 대만과 그 부속도서를 할양받았고,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만주 진출의 기회도 잡았다. 패배한 중국은 한반도에서 물러났을 뿐만 아니라 중국내륙도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이때처럼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승자가 동북아의 패자가 될 것이고, 그 영향은 곧바로 한반도에 미칠 것이다. 둘째, 러일 전쟁 전후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문제는 일본과 중국 간 영토분쟁이지만, 미국도 개입돼 있다. 중국은 동중국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진출하려고 한다. 궁극적으로 제1도련선 안쪽을 내해(內海)로 하고 제2도련선에서 제해권을 장악해 서태평양까지 자기 세력권으로 확장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중국의 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 시점이 곧 미국의 세기가 저물어 가는 신호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당시 패권국 영국이 일본과 1902년 영일동맹을 맺었던 모습과 유사하다. 그 결과 일본은 해양세력인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어서 조선을 병탄했다. 다시 이 지역에는 조선 말기와 동일하게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과 프랑스가 일본을 돕고 있다. 셋째, 동중국해 문제는 중국과 일본 양국이 외교적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서는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야 하고, 일본을 제압해야 한다. 중국이 ‘대만 해방’ 문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나면, 그 다음 목표는 잃어버린 영토 댜오위다오가 될 것이다. 중국은 1872년 일본에 공식적으로 병합된 오키나와에 대해서도 이 지역이 과거 류쿠 왕국(琉球王國) 시대에는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식적인 문제 제기는 아니지만 일부 중국인은 오키나와도 과거에 중국의 일부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서는 과거의 세력권을 회복해야 한다. 오키나와까지 염두에 두는 중국에게 ‘댜오위다오’만큼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일본도 ‘센카쿠 열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고, 영토 문제에 타협의 여지를 남긴다면 국내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해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또한 러시아와 한국에 대해서도 영토 문제에서 수세에 몰릴 것이다. 동중국해 영토 분쟁에서 미국의 입장이 중요하다. 미국은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보조약 5조의 적용 대상이긴 하지만, 중·일 간 영토 분쟁 개입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미국은 1971년 오키나와 반환조약에 따라 센카쿠 열도를 이양할 때 일본의 주권(sovereignty)이 아닌 ‘시정권(administration)’만 인정했다. 그 때문에 미국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의 주권 주장에는 중립적이다. 따라서 “미국이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실제로 군사력을 가동하려는 의도보다는 중국의 더 과격한 행동을 억제하려는 차원”이란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중국이 댜오위다오를 되찾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부대는 ‘해군육전대’이다. 중국은 해군육전대 사령부를 창설하고 현재 2만명 수준에서 4만명 또는 최대 10만명까지 확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해군육전대’는 대만 상륙작전을 위해 남해 함대 예하에 약 2개 여단 규모로 편성돼 있었는데, 남중국해 인공섬 방어문제와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분쟁에 대비해 점차 증강되는 추세다. 상륙장비도 도크형 상륙함(LPD)과 헬기 탑재 강습상륙함(LHD)은 물론 기동상륙플랫폼(MLP)과 공기부양정(LCAC)에 이르기까지 미 해병대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상륙 능력도 25,000t 급의 상륙함에 4척의 공기부양정, 4대의 대형수송헬기를 탑재하여 바다와 하늘에서 동시에 800여 명을 상륙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은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과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중국군이 단시간 내에 센카쿠 열도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의 대책은 두 가지이다. 첫째, 탈취당하기 전에 신속하게 병력을 전개시켜 섬을 지켜내는 작전과, 둘째, 탈취 당했다면 즉시 탈환하는 작전을 시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전담부대로 일본은 2018년 ‘수륙기동단’을 창설했다. 이 부대 창설 이전에도 일본은 2005년부터 미 해병대와 연합해 작전지역으로 신속히 전개하는 능력 숙달 및 섬 탈환 훈련을 하고 있었고 이제 자체 능력을 강화한 것이다. ‘수륙기동단’은 2100명 규모로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와 수륙양용차 ‘AAV7’ 등을 주요 장비로 갖추고 있다. 앞으로 ‘수륙기동단’ 대원 규모를 3000명 수준으로 늘리고 1개 연대는 오키나와에 배치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일본의 무력 충돌은 양국의 전담부대인 중국의 ‘해군육전대’와 일본의 ‘수륙기동단’의 싸움으로 국한될 가능성이 크고 미국의 개입도 제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이 댜오위다오 문제를 정리하고 나면 그 다음 목표는 한반도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은 또 어떤가. 일본은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는 주장을 더욱 크게 외치고 있다. 우리가 한 눈 파는 사이에 어느 날 갑자기 이어도는 중국의 ‘해군육전대’에 의해, 독도는 미국의 묵인아래 일본의 ‘수륙기동단’에 의해 점령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그러나 군사전략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11-08
  • [숨은 중국 알기 (30)] 남중국해, 영유권 굳혀가는 중국과 거부하는 미국의 대결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최근 남중국해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사건 2건이 있었다. 하나는 중국이 올해 8월 남중국해에 진입하는 모든 외국 선박의 신고를 의무화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을 위시하여 일본,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 6개국이 이 지역에서 항모 4척까지 동원하며 연합해상훈련을 한 것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확실히 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하고 있고, 미국은 동맹국들과 연합해 이 지역에서 자유의 항행작전 등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니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직접 이해 당사자인 동남아 국가들의 동향이 주목되고, 우리 또한 선택을 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중국은 한나라 (AD 1~3세기) 시대부터 남중국해에서 어업을 해왔고 청동기가 출토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영유권의 근거로 삼고 있다. 남중국해 지역은 중국에게 전략적 가치가 크며, 특히 군사안보 측면에서 중국남부 지역을 보호하는 완충구역이며, 중국 해군이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바시 해협(대만-필리핀 사이)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한국과 일본, 대만의 석유 수송로로 이 지역을 장악하면 미국의 동맹국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게다가, 자원의 보고여서 어업자원과 천연가스는 물론 구리, 알루미늄, 망간 등 각종 광물이 풍부하고, 석유 또한 최대 1,000억 배럴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1974년 베트남과 무력분쟁을 통해 남사군도를, 1988년 필리핀의 서사군도를 점령했다. 그 후 2013년부터 이 지역 7개의 작은 섬들을 인공적으로 확대해 군사시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 중 메이지자오(美濟礁, 미스치프)에는 H-6J 전략폭격기 이착륙이 가능한 약 3㎞ 활주로와 격납고, 방공포, 레이다 시설과 전파교란 장치 등을 설치했고, 일부 지역에 전투기와 전폭기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2012년 남중국해 서사군도에 있는 융싱도(永興島)에 싼사시(三沙市)를 개설하고 산하에 서사군도 일대를 관할하는 시사구(西沙區)와 남사군도를 관할하는 난사구(南沙區)를 설치했다. 이어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호텔·박물관·병원·은행 등 편의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또 크루즈 관광도 추진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2012년부터 자국민 여권에 남중국해와 대만을 표기하고 있다. 영유권을 기정사실화는 조치들이다. 중국이 미국에 대항하는 논리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미국이 남중국해와 관련 없는 역외세력이므로 간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로 중국이 하와이나 캘리포니아 인근에서 군사작전을 하면 미국은 가만히 있겠냐는 것이며, 셋째로 남중국해는 중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남중국해를 내해(內海)화 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 ’모래장성‘을 쌓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고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 또한 영해를 침범당하고 섬을 점령당한 상태라서 중국의 일방적 조치에 강경한 입장이다. 이들 국가는 중국을 향해 석유시추선 철수, 자국 어선 침몰 및 강제 퇴거 조치 등에 계속 항의하고 있다. 또 미항모의 다낭항 입항을 받아들였고, 미군의 자국 배치에 합의하는 등 연대도 추진 중이다. 게다가 필리핀은 2016년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은 법적 근거가 없다’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아세안 10개 회원국은 남중국해 이슈에 내부적으로 분열돼 있다. 라오스, 캄보디아 및 미얀마는 중국에 동조하는 입장이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미국의 개입을 경계하고 있으며, 태국과 싱가포르는 대체로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2018년 남중국해에서 우발적 군사충돌을 막기 위한 행동준칙(COC) 초안에 합의했다. COC는 2002년 채택한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선언(DOC)의 후속조치이다. 그렇지만 초안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고, 협상시한도 명시돼 있지 않다. 이른바 아무 법적 근거도 없는 신사협정 초안에 불과한 것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 지역의 정세 변화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첫째는 자원 수송로가 위협받기 때문이고, 둘째는 남중국해를 장악한 다음 향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와는 서해 EEZ와 이어도 문제가 있는데, 중국은 영토분쟁에서 양보한 사례가 거의 없다. 셋째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중국해 문제를 유의 깊게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11-01
  • [숨은 중국 알기 (29)]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가능성 높지만 미국 개입 여부는 의문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앞으로 무력충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현재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이 대치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부딪히는 지역이다. 전문가들은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를 드는데 이견이 없다. 필자는 앞으로 3회에 걸쳐 미·중 충돌현장을 연재하겠다. 이번은 그 첫 번째로 대만해협이다. 최근 대만 친구들과 통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이 나에게 “중국이 대만을 무력침공 할 것으로 보는지 그리고 만일 침공한다면 미국이 대만을 도와줄 것인가?”를 물었다. 그러면서 “지금 타이베이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곳은 고급 아파트, 주택단지가 아니라 바로 미국대표부 인근지역이다”라고 말했다. 대만인들은 언제라도 중국 인민해방군이 자신들 앞에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도움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대만인들은 불안한 것이다. 오늘날 대만해협 문제의 핵심은 바로 대만 친구의 질문에 담겨있다. 첫째,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가능성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집권 2기를 시작하는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대만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중국의 꿈’(中國夢) 실현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명시했다. 최근 2021년 10월 9일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식에서 “대만독립 분열은 조국 통일의 최대 장애”라고 통일 의지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시진핑은 자신의 권력 강화와 장기집권을 위해 대만통일이라는 업적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그동안 공을 들였던 평화통일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졌다는 것이다. 대만은 한때 ‘차이완’(차이나+타이완)이라고 할 정도로 중국과 경제협력을 증대시켜 나갔지만 최근에는 민진당 차잉원(蔡英文) 정부가 ‘탈중국화와 친미국화’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반관영 환구시보는 2021년 10월 4일 ‘전쟁은 실제’라는 사설에서 “미국과 민진당이 (대만독립을 추구하는) 현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중국 본토의 군사적 응징은 시작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중국은 10월 1일부터 4일간 군용기 150대를 대만 동남부 방공식별구역에 진입시켜 경고의 수위를 높힌 바 있다. 대만이 예상하는 중국의 무력침공 조건은 ① 대만의 독립선언, ② 대만의 핵무기 획득, ③ 외국군 대만 진주, ④ 내부 혼란 등이다. 주로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진척시키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의 상황은 대만이 독립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탈중국의 움직임은 활발하고, 미군이 진주는 하지 않았지만 미국 무기를 도입하는 등 군사협력은 과거에 비해 점차 증대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하겠다는 조건에 근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대만이 분리 독립을 향해 몇 발자국 더 나간다면 중국의 무력침공 가능성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다.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는 중요하다.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중국 남부를 겨냥하는 군사거점이면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고 있는 요충지이다. 중국 해군이 최단거리로 태평양으로 진출할 때에 대만 북쪽에 있는 미야코(宮古) 해협을 통과하거나 또는 대만 남쪽의 바시(巴士) 해협을 경유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대만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이 증대되면서 미국의 압도적 우세가 감소되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은 국내 한 칼럼에서 “중국 본토의 해안을 따라 집중 배치된 고성능 미사일, 전투기, 레이더 등이 대만해협에 진입하려는 미군을 저지할 수 있고, 중국이 사이버공격으로 미국의 조기경보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후 신속히 대만을 점령하면 미국은 손쓰기 힘들어 진다”라고 스탠퍼드대 마스트로 교수의 견해를 인용했다. 대만 점령을 기정사실화 한다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대만에서 발간된 ‘24小時 解放 臺灣? 中共攻臺的 N種可能與想定’(중국이 대만을 24시간 내에 해방? 중국의 각종 수단과 예상 시나리오) 책자에서는 24시간 이내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고, 2018년 중국 인민해방군 중장 王洪光(왕홍광)의 ‘武統, 台湾到底怎么打? 解放军中将:六种战法,三天拿下’(대만 무력통일은 6가지 작전으로 3일 이내에 완료한다)의 기고문이 인터넷 사이트 환추왕(环球网)에 게재된 바 있다. 미국의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워게임 결과 비슷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미국 해군연구소(U.S. Naval Institute)가 발행하는 월간지 ‘프로시딩스(Procedings)’ 2020년 8월호에는 ‘The War that Never Was?’(지금까지 없었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게재됐다. 시나리오 결과 중국군의 전격적인 행동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이 속수무책의 입장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아프카니스탄 사태를 비유하여 “오늘의 카블 공항은 내일의 타이베이 송산 공항이다”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고, 또한 그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기정사실화하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미국은 대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어쩌면 능력이 안 될 수도 있다. 셋째,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중국이 미국의 개입을 억제하고 대만을 통일한다면 동북아의 패권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제1 도련선을 넘어 제2 도련선과 서태평양으로 진출할 것이며 우리는 중국에 포위되는 형국을 맞이할 것이다. 미국은 이런 상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패권 지위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월 21일(현지시각) 볼티모어에서 CNN이 주최한 타운홀에서 “대만이 중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방어하겠다”라고 말했다. 미 정부가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을 깨는 발언이다. 이번 발언 또한 공식적인 정책 전환으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대만에서 고조되고 있는 중국의 군사적 압력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미국 내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참새는 서로 싸울 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정치권이 내부 문제로 사생결단하듯 서로 다툴 때, 국제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변 강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피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구한말에는 그랬던 것 같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10-25
  • [숨은 중국 알기 (28)] 마오쩌둥, 김일성의 '철군' 요구 수용하며 우호관계 도모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외국군대는 언젠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북한 땅에 들어 온 중공군은 1958년 10월 전부 철수했다. 김일성의 요청을 마오쩌둥이 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중국군대가 북한의 안보를 보장해 주는 측면보다 자신의 권력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더 컸다. 실제로 북한 내부의 정치 동향과 동구 공산권의 사례를 볼 때, 김일성의 우려는 타당했다. 게다가 중국도 30만의 대병력을 북한에 계속 주둔시킬 필요가 없었다. 김일성의 철군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김일성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북한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오늘은 중공군 철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첫째, 우선 북한 내부 상황이다. 김일성이 비록 최고 권력자이지만 여러 정치파벌이 존재하고 있었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만주파는 동북항일연군 같은 부대 출신으로 결속력이 강했고 소련의 지지도 받았다. 그 다음은 중국공산당에 기반을 둔 연안파로 그들과 함께 항일전과 국공내전에 참가한 경력도 있다. 특히 김무정은 중공 팔로군 포병사령관을 역임했다. 하지만 그는 1951년 김일성에 의해 한직으로 좌천됐다가 다음해 병으로 사망했다. 소련파도 있었다. 소련에서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지만 단일 정치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주로 개인별로 활동했다. 그리고 남한 지역에서 좌익 활동을 했던 남조선노동당(남로당)파가 있었는데 이들은 6.25 전쟁 중 1952년에 대부분 숙청당했고, 박헌영은 중국과 소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56년 김일성에 의해 처형당했다. 연안파와 소련파는 김일성 우상화와 중공업 위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소련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탈린 격하운동을 보면서 김일성 권력 강화를 견제해야 하고 주민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경공업도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들은 1956년 8월, 조선로동당 3기 2차 전원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주장하며 김일성을 비판했다. 그리고 곧바로 중국이나 소련으로 도주했다. 김일성은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도주한 연안파와 소련파 간부를 출당시키고 직위도 박탈했다. 이 사건이 ‘8월 전원회의 사건’ 또는 ‘8월 종파사건’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비판한 연안파와 소련파 간부들을 종파분자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해 중국과 소련은 공동으로 압력을 행사한다. 중국공산당 8차 대회에 참석한 소련 미코얀 부수상과 중국 국방부장 펑더화이가 9월 북한에 가서 김일성에게 연안파와 소련파 간부들을 복당시키고 직위를 회복시킴과 동시에 김일성이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김일성은 이들 앞에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시간을 끌면서 유야무야됐다. 이 사건으로 김일성은 외세 개입으로 자신의 권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특히 연안파들이 자기에게 도전할 가능성을 더욱 경계하기 시작했다. 둘째, 중공군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북한에 주둔한 중공군은 전쟁 직후에는 북한의 전후복구 사업에 참여해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북한이 전후복구기를 지나 경제발전기에 진입하자, 중공군은 주둔하는 것 말고는 역할이 없었다. 오히려 대민피해가 증가해 주민들의 반감이 날로 증가했다. 중국측 자료에 의하면, 중공군이 1954년부터 1956년 8월까지 북한주민은 물론이고 공무원을 구금·모욕한 사건은 355건에 이르고 이 과정에서 417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심각한 사건은 사냥을 하려고 중공군 관할 구역에 들어간 북한 고위층인 남일, 방학세, 박정애 등을 구금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북한주민을 수색, 체포, 심문하고 교통사고, 강간 및 폭행 등의 사건이 빈발했으며, 군사시설 건설 용도로 농경지를 무단 점유하고 묘지를 파헤치는 등 치외법권적 행동을 했다고 한다. 중공군의 횡포로 북한 주민의 분노가 증가하는 문제는 북한과 중국 모두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셋째, 동구권 상황이다. 1956년 10월 헝가리에서 반정부 운동이 발생하자 소련군은 탱크를 앞세워 진압하고 친소 정권을 수립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김일성은 외국 군대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주권을 유린할 수 있다는 것을 현실로 목도한 것이다. 넷째, 중국의 상황이다. 중국은 북한 주둔 중공군을 배경으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도 큰 효과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소련이 동구 공산국가에 군대를 주둔시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북한에는 통하지 않았다. 김일성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중국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북한의 8월 전원회의 관련 중소 합동 대표단 파견 시 마오쩌둥은 미코얀에게 “이번 일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북한은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영향력의 한계를 노출했다. 그리고 중국도 내부적으로 경제발전이 시급한 문제였다. 외국에 대병력을 주둔시킬 여유가 별로 없었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한국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었지만 전쟁발발 가능성은 낮은 상태였다. 게다가 중공군이 철수함으로써 한국과 미국에 ‘미군도 철수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은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즉각 압록강을 건너 올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배경아래 김일성은 1957년 11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세계 공산당 대표대회에서 마오쩌둥에게 철군을 요청했고 마오쩌둥은 이를 수용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1년 전 북한에 가한 압력에 대해 “작년 9월 펑더화이가 조선에 갔던 일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모든 당은 과업 수행 중에 잘못과 결점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조선로동당에 반대하는 인물들을 이용할 생각이 없다”라고 자신의 과오를 언급했다고 한다. 일종의 사과일 수도 있고 유감 표명일 수 있지만 마오쩌둥은 김일성의 우려를 해소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자 했다. 이 방법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김정은을 통하지 않고는 북한에 중국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김정은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시 할 것으로 보인다. 중공군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1958년 3월부터 철수를 시작했고, 그 해 10월 모두 북한 땅을 떠났다. 그렇지만 중국은 언제라도 필요하면 다시 한반도로 건너 올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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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8
  • [숨은 중국 알기 (27)] 6.25 전쟁 참전을 통해 중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중국은 6.25전쟁 참전이 당연하고 필요했다고 평가한다. 국가안보 관점에서 북한을 점령한 미국과 압록강을 경계로 직접 대치하는 상황은 허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6.25전쟁이 없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입장이다. 그것은 전쟁을 통해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이 더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6.25전쟁이 없었더라면 많은 인명이 희생되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와도 적대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침략자로 인식돼 1979년 미국과 수교하기 이전까지 서방세계로부터 거의 고립돼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 대만을 해방시켰다면 오늘날과 같은 대만문제도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향후 자신들을 곤란하게 할 제2의 6.25전쟁 같은 무력충돌은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에 강한 유감을 갖고 있었다. 1956년 9월, 중국공산당 8차 대회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북한대표단 단장 최용건에게 마오쩌둥은 “나는 김일성에게 이 전쟁은 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라고 질책한다. 이어서 펑더화이는 “6.25전쟁은 도대체 누가 일으킨 것이냐? 미 제국주의가 일으킨 것인가, 아니면 당신들이 일으킨 것인가?”라고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대표단에 배석한 주중 북한대사 이주연은 “왜 이 문제를 제기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러면 중국 입장에서 6.25 전쟁 참전으로 잃은 것부터 알아보겠다. 첫째, 소위 대만해방 기회의 상실이다. 중국은 1949년 10월 1일 신중국을 선포했지만 대만으로 이전한 국민당은 건재했다. 중국공산당은 해·공군 전력이 미흡한 상태에서 푸지엔성(福建省) 일대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고 대만해협을 건너 진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이 공산주의의 확산 저지를 위해 대만에 제7함대를 주둔시키자, 중국공산당은 대만해방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둘째, 서방국가들로부터 침략자로 인식돼 장기간 고립됐다. 미국이나 유럽은 마오쩌둥의 신중국에 대해 초기에는 적대적이지 않았다. 유엔에서도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장제스의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돼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었다. 그러나 6.25 전쟁 참전으로 평화파괴자라는 프레임에 갇히면서 서방세계로부터 고립됐고, 결국 소련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셋째, 많은 인명 손실이 발생했다. 중국 측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병력 손실은 42만 6000명에 달하며 그 가운데 전사자만 11만 400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연대장급 이상 지휘관도 2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경제발전 지연이다. 중국공산당은 오랜 내전을 끝내고 경제발전에 전념하기 위해 국방비를 대폭 감축하기로 했다. 신중국 건국 다음 해인 1950년 국방예산은 정부예산의 43%를 차지했지만 1951년에는 30% 수준으로 대폭 낮추고자 했다. 하지만 6.25전쟁 참전이 장기화되면서 45.64%까지 증가했다. 중국이 6.25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개혁개방도 앞당겨졌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은 최근 ‘6.25전쟁을 언제 끝냈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대다수 희생자는 초기작전이 아니라 유엔군의 반격과 고지전에서 발생했으며, 3년 가까이 전쟁이 지속되면서 경제적인 타격도 지대했다. 중국 화동사범대학 국제냉전사연구센터의 선쯔화(沈志華)에 의하면, 전쟁종료 시점을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37도선까지 밀고 내려온 3차 전역 직후, 즉 1951년도 초반으로 보고 있다. 1951년 1월 13일 유엔 총회 정치위원회는 6.25전쟁의 즉각적인 정전을 건의한 13개 국가의 제안을 통과시킨다. 국제적으로 전쟁의 장기화를 원하지 않아 미국이 ‘전쟁 계속’을 주장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한반도에서 ‘미군 축출’이라는 최초 목표에 집착해 이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미국에게 ‘전쟁 계속’의 명분을 주었고 서방진영도 적대적으로 돌아서게 된다. 이후 6.25전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2년 6개월가량 지속됐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승부로 정전협정이 체결된다. 이어서 미국은 대만에 군사원조를 증가하는 한편, 1955년에 미·대만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후속조치로 미군사령부와 육·해·공군을 배치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점차 가중되는 상황이었다. 중국은 6.25전쟁에서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렀지만 얻은 것도 적지 않다. 중국은 약 1세기 동안 서방과 일본에 연속으로 패전하여 국토가 침략당하고 반식민지상태로 전락했지만 6.25전쟁 참전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첫째, 북한이라는 완충지역을 확보했고 청일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상실한 영향력을 점차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둘째, 미국과 대등한 강대국의 위치에 올랐다. 중국은 세계 최강 미군과 33개월 간 전쟁을 치르며 끝까지 견디어 내었고 미국 대표와 동등한 입장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중국이 ‘미군은 북위 17도선을 넘지마라’고 경고했을 때, 미군은 중국과 무력충돌을 우려해서 작전에 신중했다고 한다. 셋째, 중공군 실전 경험 축적 및 현대화 추진의 계기가 됐다. 중공군은 6.25전쟁 기간 중 소련으로부터 대량의 현대식 무기를 지원받았고 미군과 2년 반 동안 전투를 하면서 유격전 수준의 군대가 해·공군과 화력이 결합된 현대전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후 미군을 모델로 군비증강 및 군사개혁을 시도하게 됐다. 최근 들어 우리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6.25전쟁 참전을 정의의 전쟁이라고 미화하면서 중국이 얻은 점을 강조하고 있는 사항에 유념해야 한다. 이것은 한반도에서 더욱 공세적으로 나오겠다는 신호이다. 시진핑은 마오쩌둥이 이루지 못한 ‘한반도에서 미군 축출’이라는 과제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10-13
  • [숨은 중국 알기 (26)] 6·25전쟁 당시 중공군은 약한 군대가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필자는 60년대에 초등학교 다닐 때 “무찌르고 말테야 중공 오랑캐 ~ ♬” 라는 전시 동요를 자주 들었다. 그 때부터 중공군은 오랑캐 군대이고 인해전술을 주로 사용하는 형편없는 군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사를 연구하면서 중공군은 그런 군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당혹스러웠다. 6.25 당시 중공군이 어떠했는지 그들이 수행한 5차례의 전역을 통해 알아보겠다. 중공군은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유엔군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평안남도 영원-덕천 일대에서 방어를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유엔군과 한국군의 진출 속도가 너무 빨라 중공군이 설정한 방어선 도달 전에 통과할 것으로 보고 계획을 변경해 공격으로 전환했다. 1차 전역인 이 공격작전은 유엔군과 한국군을 청천강 너머 적유령 산맥 앞에서 저지시키는데 성공했다. 이후 중공군은 공격을 멈추고 적유령 산맥 일대에서 웅크리고 유엔군과 한국군이 계속 도로를 통해 북진하기를 기다렸다. 덫을 놓고 걸려들기만 기다리는 매복의 형국이었다. 또 1차 전역에서 생포한 포로를 풀어주면서 중공군은 소규모로 곧 철수할 것이라는 허위 정보까지 유포하는 미끼도 던졌다. 유엔군은 중공군과 교전이 있었지만 소규모의 중공군이 참전한 것으로 판단하여 계속 북진을 결심한다.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가겠다는 성급한 마음이 냉정함을 가렸기 때문이다. 곧이어 중공군은 매복에 걸린 유엔군과 한국군을 유린하였고, 이것이 2차 전역이다. 유엔군과 한국군은 전략적 후퇴를 하면서 평양을 내주고 38선 부근까지 철수했다. 중공군이 1, 2차 전역에서 보여준 전투력은 유엔군을 긴장시켰다. 첫째, 야간 이동능력이다. 중공군 제1진 약 25만 명은 압록강을 건너면서 유엔군의 항공정찰을 피하기 위해 야간에만 산길로 이동해 전선에 투입됐다. 이런 대규모 병력이 일주일 정도 노출되지 않고 이동한 것은 전사에도 드문 일이다. 둘째, 심리전이다, 중공군은 깊은 밤 무당 굿판 같이 꽹과리치고 피리불며 나타나는 등 귀기어린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 생소한 전투방식에 유엔군은 초기에 공포감으로 전의를 상실했다. 주민 선무에도 능해 중공군은 가급적 민가에서 숙영하지 않았다. 또한 서울 점령 시 환영인파 없이 적막한 거리를 보고 “너희들이 어떻게 하여 서울 시민들이 다 남쪽으로 내려갔나. 이게 해방인가”라며 북한군을 질책했다고 한다. 셋째, 자신들의 장점인 우회기동, 매복, 포위, 측후방 차단 등의 유격전법을 사용했다. 당시 중공군 부사령원 홍쉐쯔(洪學智)는 항미원조전쟁회억(抗美援朝戰爭回憶, 1991년)이라는 회고록을 발간했는데 ‘중국이 본 한국전쟁(홍인표 역)’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번역됐다. 이 책속에 미군 중대장 5명이 중공군의 전술과 전투력에 관해서 홍 부사령원과 나눈 대화가 나온다. 원문을 인용하면, 홍 부사령원이 먼저 “중공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허심탄회하게 말씀 좀 해보시오”하자, 어느 중대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당신들 전술은 대단합니다. 나는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지만 우리 작전은 포병화력 공격부터 시작해 비행기가 대량 폭격을 퍼부은 뒤 보병이 나중에 갑니다. 그런데 반해 중공군은 바로 우리 등 뒤로 접근해 배후를 강타하지 않습니까. 이런 전투는 처음 겪어봅니다.” 홍 부사령원은 “당신네들 전투는 밀어붙이는 것이고 우리는 지형을 이용해서 분할, 우회, 포위로 이루어지는 거죠.” 다른 중대장이 거들었다. “중공군의 그와 같은 전법은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당신네들 병사들은 용감합니다. 우리는 모두 중대 및 대대 단위로 움직이지요. 중공군은 어떻게 3~5명씩 작전을 벌일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옆의 중대장이 말을 이었다. “중공군들은 독립작전에 능합니다. 각개전투 능력은 우리가 당신들보다 못합니다.” 또 다른 중대장이 말했다. “전투는 낮에 하고 밤에는 쉬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신들은 밤에 공격해 오니 우리는 언제 기습을 받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형편입니다.” 홍 부사령원이 결론을 내린다. “무슨 방법을 쓰든 아군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고 당신네들을 이길 수만 있으면 좋다는 생각이오.” 중공군은 1930년대부터 20여 년간 국공내전과 항일전을 거치며 단련된 백전노병들로서 매복, 야간기습, 우회기동, 측후방 차단, 포위 등 유격전의 대가들이다. 중공군은 3차 전역을 전개해서 1950년 1월 서울을 점령했고 북위 37도선까지 진출했지만 유엔군은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남한강-횡성-강릉선까지 북진한다. 중공군은 유엔군의 반격에 대한 대응으로 4차 공세를 펼쳤지만 지평리 전투에서 패배함으로 한계를 노출했다. 유엔군은 강력한 화력을 바탕으로 중공군을 몰아부처 서울을 수복하고 38선 일대를 회복했다. 이후 중공군은 5차 전역을 펼쳤지만 일시적인 성공에 그쳤고, 1951년 6월 말부터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38선 일대에서 고지전으로 전환됐다. 유광종의 저서 ‘백선엽의 6.25 전쟁 징비록’에는 중공군에 대한 백 장군의 증언이 실려 있다. “중공군은 약한 군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싸움의 때를 가려 나설 줄 알았고, 적절한 시점을 선택해 물러설 줄도 알았다. 약한 상대를 고를 줄 알았고, 강한 상대를 피할 줄 알았으며, 상대가 가장 아파하는 곳을 골라 사정없이 때릴 줄 알았다. 화력이 강한 미군에게는 은폐와 엄호로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았고 전투력이 약한 국군에게는 사나운 맹수가 달려들 듯 덮쳤다.” 한국군을 덮친 대표적 사례가 5차 전역이 벌어진 1951년 5월 중순 현리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 3군단은 중공군에 의해 오마치 고개라는 보급로가 차단당하자 조직적인 작전활동을 포기하고 중장비를 파기한 뒤 분산하여 1400고지 방태산 등을 넘어 무질서하게 후퇴했다. 산을 넘어왔지만 이곳에는 중공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 중공군에게 등을 보이며 1600고지 계방산 일대를 넘어가야 했다. 이 패배로 3군단은 해체됐다. 그렇지만 한국군이 중공군을 격멸시킨 빛나는 승리도 있었다. 중공군 5차 전역에서 우리 6사단이 용문산에서 중공군 1개 군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화천 북방까지 추격하여 격멸시킨 파로호 전투이다. 파로호는 화천댐으로 생긴 인공호수인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대승을 기념하여 ‘중공 오랑캐를 격파했다’는 의미로 파로호(破虜湖)로 바꾸었다. 주민들은 파로호의 물고기를 중공군 시신을 먹고 자랐다는 거부감 때문에 10년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패배의 교훈을 잊어서도 안 되지만 승리의 기억을 왜곡시켜서도 안 된다. 승리의 기억은 우리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원천이다. 용문산과 파로호에서 중공군을 격멸시켰던 우리 앞 세대의 강한 의지를 오늘날에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 앞에는 과거의 중공군이 아니라 새로운 상대 즉 ‘중국의 영향력’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 임방순 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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