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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외교안보정책 기사

  • 제6차 한-프랑스 국방전략대화 개최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김만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알리스 귀통(Alice Guitton) 프랑스 국방부 국제관계전략본부장과 제6차 한-프랑스 국방전략대화를 개최했다고 18일 밝혔다. 이 회의는 지난 2007년 양국 간 국장급 국방정책실무회의를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차관보급 국방전략대화로 격상한 이후 정례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양측은 이번 회의를 통해 한반도 및 아태지역 안보정세와 한-불 간 국방협력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가졌으며, 향후 사이버안보 등 미래지향적인 분야로 협력을 다변화하기로 했다. 또한 양측 대표는 우리 신남방정책과 프랑스의 인태전략 간 협력 접점을 찾고 다양한 다자회의 계기에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김 실장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프랑스의 지지를 당부했고, 귀통 본부장은 남북·북미 대화의 재개를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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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
    2021-11-18
  • 국방대학교, ‘제2회 세계 안보학 대회’ 개최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국방대학교는 22일부터 23일까지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안보, 국방, 군사 문제를 논의하는 ‘제2회 세계 안보학 대회’를 개최한다고 17일 밝혔다. 세계 안보학 대회는 국방대학교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가 세계 안보학 연구의 구심점이 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 교류의 중심이 되고자 지난 2019년부터 격년으로 개최하는 대회이다. 이번 대회는 국회 국방위원과 국방부·합참 정책담당자, 언론계, 주한 대사, 해외 주요 석학들과 정책 전문가들이 참석하며, ‘대전환의 시대 : 지속과 변화’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1일차에는 ‘세계질서의 변화 : 강대국 정치’ 와 ‘한국과 국제사회’를 주제로 세션이 진행되며, 2일차에는 ‘한미 동맹의 미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주제로 세션이 이어진다. 특히, 2일차에 진행되는 특별 세션에는 김병주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前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前 미국대북특별대표 조셉 윤 대사가 참여할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방대학교는 앞으로도 2년마다 세계 유수의 석학들을 초청해 안보학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글로벌화 되고 있는 안보 정세 속에 한반도가 나갈 청사진과 로드맵을 모색하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 외교안보정책
    • 국방
    2021-11-17
  • [숨은 중국 알기 (32)] 중국, 미국 견제 위해 러시아와 연합훈련 강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최근 중국은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사상 최고수준이라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거의 매년 시행되는 육·해·공군의 연합훈련이 대표적이다. 육군은 올해 8월 9일부터 13일까지 중국의 닝샤후이족(寧夏回族)자치구 칭퉁샤(靑銅峽) 전술훈련기지에서 사상 최대의 ‘서부연합-2021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명칭은 연합훈련이었지만 과거에는 각각의 지휘체계와 장비로 단독 훈련을 실시한 이후, 훈련 경험과 성과를 공유하는 수준이었다. NATO와 같이 단일 지휘통제 체계와 무기, 장비가 하나로 통합된 연합훈련이 아닌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훈련은 중·러 양국군을 NATO와 같이 혼합 편성했고, 특히 연합지휘본부를 편성해 양국 언어로 지휘정보시스템을 공동 사용했다. 또한 초청을 받은 쪽인 러시아군이 작전회의에 참가해 훈련 전 과정을 함께 했으며, 연락체계를 구축해 필요시 수시로 임무조정 회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중국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이번 훈련에서 각종 데이터를 공유하고, 작전 규칙을 통일한 것은 향후 있을 수 있는 양국군의 연합작전에 기초를 수립하는 것이었다”라고 보도했다. 중국 해군은 2012년 4월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 일대에서 ‘해상연합-2012’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와 연합훈련을 처음 실시한 후 최근까지 매년 1∼2회씩 대양에서 전투수행 능력을 배양하는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연합지휘부를 편성해 공군 지원 하에 해상 및 공중에서 적 격멸, 잠수함 사고 구조훈련, 해군육전대(해병대)의 상륙훈련 등 훈련내용은 다양하다. 양국 해군의 연합훈련에서 주목할 사항은 첫째, 중국 해군이 지중해(2015년)와 발트해(2017년)까지 진출하는 등 활동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양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고, 러시아가 유럽에서 NATO군과 충돌 시 중국군의 지원 가능성을 과시한다는 점이다. 둘째,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서 연합훈련은 해당 지역에서 영토분쟁 발생 시 중·러 연합작전의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올해 중국과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부근 해역에서 3일간 해상연합훈련을 하고 일본 쓰가루 해협을 통과한 후 일본 열도를 따라 남하하여 일본을 긴장시킨 바 있다. 중국과 러시아 공군도 2019년 7월과 2020년 12월, 한반도 부근에서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들면서 연합훈련을 했다. 2020년 12월에는 러시아가 Tu-95MS 전략 폭격기, A-500 공중조기경보기(AEW&C)와 Su-35 전투기 등 15대와 중국은 H-6K 제트형 전략 폭격기 4대 등 총 19대가 참가해 동해의 독도 상공과 남해의 이어도 상공을 왕복했다. 러시아 Su-27 전투기가 중국 H-6K 폭격기를 호위하는 훈련도 했다. 이러한 중·러의 공중정찰 활동은 한·미·일 안보태세 또는 결속력을 시험하고, 양국의 군사협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러 국방부는 “비행 중 양국 군용기는 국제법 규정을 엄격히 준수했으며 타국 영공에 진입하지 않았다”고 발표하면서 “양군의 전략협력 수준 및 연합행동 능력을 높이며 전 세계의 전략적 안정을 위한 훈련”이라고 밝혔다. 이어 “양군의 연례협력계획에 포함된 프로젝트로 제삼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무기와 군사과학기술을 도입하고 있으며, 상하이 협력기구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관련 국가들과 다자안보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이렇게 양국이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이유는 ‘미국 견제’에 국익이 일치되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가장 위험한 도전 세력으로 규정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을 억제하고 있고,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손잡고 함께 미국에 대항하고 있는 국면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2019년 양국 수교 70주년 행사에서 중·러 관계를 ‘신시대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新时代中俄全面战略协作伙伴关系)로 격상하고, 최상의 관계임을 과시했다. 중·러의 군사 협력은 ‘미국 견제’라는 양국의 공동목표에 큰 변화가 없는 한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우리에게 이 의미는 한반도 주변 공중과 해상에서 중·러의 공군기와 군함들을 더 자주 마주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중·러 양국은 이와 같은 군사협력은 물론이고 각종 국제정치 문제에서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의 사드 배치 문제. 북한 핵 문제, 미국의 한국이나 일본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미·중 패권 경쟁보다 잘 보이지 않는 다른 흐름을 간파해야 한다. 그 흐름은 중국이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미국이 일본 및 NATO와 연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일·NATO 對 중·러 구도가 대립하는 첨단에 위치하고 있다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전략적 모호성도 하나의 방법은 되겠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11-15
  • 한-러 해·공군, '핫라인' 개설…향후 우발적 충돌 예방 기여할 듯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한국과 러시아 군 당국 간 직통전화(핫라인)가 개설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내에서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는데 기여할지 주목된다. 국방부는 11일 양국이 해·공군 간 직통망 설치·운용과 관련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양해각서 체결은 김상진 국제정책관과 러시아 국가방위센터 부센터장인 칼가노프 소장이 서명했다. 양국 해군 간에는 이 직통망이 비공식적으로 존재하지만 이번에 양국이 공군 간 핫라인까지 추가해 MOU 체결을 함으로써 핫라인 설치·운용의 제도적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직통망은 해군작전사령부와 러시아의 태평양함대사령부 간, 공군 제1중앙방공통제소와 러시아 동부군관구 11항공·방공군 간에 올해 안에 각각 설치될 예정이다. 한-러 군 당국 간 핫라인 설치는 2002년 11월 '위험한 군사행동 방지협정'을 체결한 뒤 국방 당국 간 직통망 설치에 관한 협의를 시작해 거의 20년 만인 올해 상반기 양해각서 문안에 합의, 이날 최종 서명했다. 국방부는 "이번 양해각서 체결은 한-러 군사당국 간 신뢰와 소통을 강화해 공중·해상에서 우발적 충돌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역내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특히 이번에 러시아와의 공군간 직통전화 설치를 통해 KADIZ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로 작년 12월 22일 중국 군용기 4대와 러시아 군용기 15대가 이어도와 독도 인근 KADIZ에 진입했을 당시 중국은 한중 핫라인을 통해 통상적인 훈련이라고 사전 통보했지만, 비행정보 교환을 위한 직통전화가 없는 러시아는 우리 측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았다.
    • 외교안보정책
    • 국방
    2021-11-12
  • 백마고지 참전용사 70년만에 전투 현장 방문해 증언
    [시큐리티패트=안도남 기자] 구순이 넘은 6·25 참전용사들이 실종된 전우들의 유해 발굴을 돕기 위해 약 70년 만에 전투 현장을 찾아 증언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10일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백마고지 일대에서 6·25 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한 참전용사 9명을 상대로 '증언 청취' 행사를 진행했다. 증언청취 행사는 전우를 전장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 등 6·25 참전 영웅들의 생생한 전투 경험과 유해 소재에 대한 증언을 영상과 문서로 기록하는 사업이다. 행사는 현재 진행 중인 백마고지 일대 유해발굴 간 유해 소재에 대한 참전 영웅들의 제보를 받기 위해 마련됐으며,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한 이상순(92)옹 등 9명의 참전용사가 참석했다. 이들의 증언은 향후 백마고지 일대에 묻힌 전사자 유해 발굴을 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되며, 국유단은 2015년부터 진행된 참전 영웅 증언 청취를 통해서 1천800여 건의 관련 기록을 확보했다. 허욱구 국유단장은 "성공적인 유해발굴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6·25 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 및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 채취 참여가 중요한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행사를 통해 유해발굴 사업에 대한 국가적 노력을 설명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외교안보정책
    • 국방
    2021-11-10
  • [숨은 중국 알기 (31)] 동중국해, 중국 ‘해군육전대’와 일본 ‘수륙기동단’ 간 대결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조선이 망해가던 시기인 1885년 영국이 거문도를 2년간 점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이 의미를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조선은 국제정세가 변화하는 와중에서 결국 나라를 잃었다. 오늘날의 국제정세와 아태지역 정세는 조선 말기와 유사하다. 지금의 우리는 조선 말기와 다르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주변국의 국력이 우리보다 강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동중국해 정세 변화는 다음 3가지 이유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첫째,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대상으로 경쟁하는 중국과 일본의 모습은 청일전쟁을 연상케 한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전리품으로 대만과 그 부속도서를 할양받았고,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만주 진출의 기회도 잡았다. 패배한 중국은 한반도에서 물러났을 뿐만 아니라 중국내륙도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이때처럼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승자가 동북아의 패자가 될 것이고, 그 영향은 곧바로 한반도에 미칠 것이다. 둘째, 러일 전쟁 전후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문제는 일본과 중국 간 영토분쟁이지만, 미국도 개입돼 있다. 중국은 동중국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진출하려고 한다. 궁극적으로 제1도련선 안쪽을 내해(內海)로 하고 제2도련선에서 제해권을 장악해 서태평양까지 자기 세력권으로 확장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중국의 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 시점이 곧 미국의 세기가 저물어 가는 신호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당시 패권국 영국이 일본과 1902년 영일동맹을 맺었던 모습과 유사하다. 그 결과 일본은 해양세력인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어서 조선을 병탄했다. 다시 이 지역에는 조선 말기와 동일하게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과 프랑스가 일본을 돕고 있다. 셋째, 동중국해 문제는 중국과 일본 양국이 외교적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서는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야 하고, 일본을 제압해야 한다. 중국이 ‘대만 해방’ 문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나면, 그 다음 목표는 잃어버린 영토 댜오위다오가 될 것이다. 중국은 1872년 일본에 공식적으로 병합된 오키나와에 대해서도 이 지역이 과거 류쿠 왕국(琉球王國) 시대에는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공식적인 문제 제기는 아니지만 일부 중국인은 오키나와도 과거에 중국의 일부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서는 과거의 세력권을 회복해야 한다. 오키나와까지 염두에 두는 중국에게 ‘댜오위다오’만큼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일본도 ‘센카쿠 열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고, 영토 문제에 타협의 여지를 남긴다면 국내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해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또한 러시아와 한국에 대해서도 영토 문제에서 수세에 몰릴 것이다. 동중국해 영토 분쟁에서 미국의 입장이 중요하다. 미국은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보조약 5조의 적용 대상이긴 하지만, 중·일 간 영토 분쟁 개입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미국은 1971년 오키나와 반환조약에 따라 센카쿠 열도를 이양할 때 일본의 주권(sovereignty)이 아닌 ‘시정권(administration)’만 인정했다. 그 때문에 미국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의 주권 주장에는 중립적이다. 따라서 “미국이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실제로 군사력을 가동하려는 의도보다는 중국의 더 과격한 행동을 억제하려는 차원”이란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중국이 댜오위다오를 되찾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부대는 ‘해군육전대’이다. 중국은 해군육전대 사령부를 창설하고 현재 2만명 수준에서 4만명 또는 최대 10만명까지 확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해군육전대’는 대만 상륙작전을 위해 남해 함대 예하에 약 2개 여단 규모로 편성돼 있었는데, 남중국해 인공섬 방어문제와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분쟁에 대비해 점차 증강되는 추세다. 상륙장비도 도크형 상륙함(LPD)과 헬기 탑재 강습상륙함(LHD)은 물론 기동상륙플랫폼(MLP)과 공기부양정(LCAC)에 이르기까지 미 해병대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상륙 능력도 25,000t 급의 상륙함에 4척의 공기부양정, 4대의 대형수송헬기를 탑재하여 바다와 하늘에서 동시에 800여 명을 상륙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은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과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중국군이 단시간 내에 센카쿠 열도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의 대책은 두 가지이다. 첫째, 탈취당하기 전에 신속하게 병력을 전개시켜 섬을 지켜내는 작전과, 둘째, 탈취 당했다면 즉시 탈환하는 작전을 시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전담부대로 일본은 2018년 ‘수륙기동단’을 창설했다. 이 부대 창설 이전에도 일본은 2005년부터 미 해병대와 연합해 작전지역으로 신속히 전개하는 능력 숙달 및 섬 탈환 훈련을 하고 있었고 이제 자체 능력을 강화한 것이다. ‘수륙기동단’은 2100명 규모로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와 수륙양용차 ‘AAV7’ 등을 주요 장비로 갖추고 있다. 앞으로 ‘수륙기동단’ 대원 규모를 3000명 수준으로 늘리고 1개 연대는 오키나와에 배치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일본의 무력 충돌은 양국의 전담부대인 중국의 ‘해군육전대’와 일본의 ‘수륙기동단’의 싸움으로 국한될 가능성이 크고 미국의 개입도 제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이 댜오위다오 문제를 정리하고 나면 그 다음 목표는 한반도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은 또 어떤가. 일본은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는 주장을 더욱 크게 외치고 있다. 우리가 한 눈 파는 사이에 어느 날 갑자기 이어도는 중국의 ‘해군육전대’에 의해, 독도는 미국의 묵인아래 일본의 ‘수륙기동단’에 의해 점령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그러나 군사전략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11-08
  • 국방부, 가상현실(VR) 활용한 과학화 예비군훈련 혁신박람회에 출품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국방부는 '2021 대한민국 혁신박람회'에 '과학화 예비군훈련장 구축과 스마트 행정서비스 개선' 성과를 출품한다고 2일 밝혔다. 올해로 3회째인 대한민국 혁신박람회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해 범정부적 혁신성과를 보고하는 자리인 ‘혁신박람회’에는 정부부처, 지자체 등 86개 기관이 참석한다. 국방부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최신 기술을 도입한 과학화 예비군 교육훈련과 모바일 송달체계로 예비군 소집통지서를 발송하는 등의 편의성을 높인 성과를 소개한다. 영상 모의사격이나 시가전 등 과학화 예비군훈련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훈련장 입소부터 퇴소까지를 VR로 구현한 영상 등 다양한 홍보콘텐츠도 마련했다. 우리 군은 지난 2018년 동원전력사령부를 창설해 무기와 장비를 현대화하고 가상현실 기반 영상 모의사격 등 과학화된 예비군 훈련 시스템을 도입 중이다. 과학화 예비군훈련장은 2024년까지 40개소를 확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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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02
  • [숨은 중국 알기 (30)] 남중국해, 영유권 굳혀가는 중국과 거부하는 미국의 대결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최근 남중국해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사건 2건이 있었다. 하나는 중국이 올해 8월 남중국해에 진입하는 모든 외국 선박의 신고를 의무화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을 위시하여 일본,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 6개국이 이 지역에서 항모 4척까지 동원하며 연합해상훈련을 한 것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확실히 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하고 있고, 미국은 동맹국들과 연합해 이 지역에서 자유의 항행작전 등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니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직접 이해 당사자인 동남아 국가들의 동향이 주목되고, 우리 또한 선택을 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중국은 한나라 (AD 1~3세기) 시대부터 남중국해에서 어업을 해왔고 청동기가 출토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영유권의 근거로 삼고 있다. 남중국해 지역은 중국에게 전략적 가치가 크며, 특히 군사안보 측면에서 중국남부 지역을 보호하는 완충구역이며, 중국 해군이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바시 해협(대만-필리핀 사이)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한국과 일본, 대만의 석유 수송로로 이 지역을 장악하면 미국의 동맹국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게다가, 자원의 보고여서 어업자원과 천연가스는 물론 구리, 알루미늄, 망간 등 각종 광물이 풍부하고, 석유 또한 최대 1,000억 배럴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1974년 베트남과 무력분쟁을 통해 남사군도를, 1988년 필리핀의 서사군도를 점령했다. 그 후 2013년부터 이 지역 7개의 작은 섬들을 인공적으로 확대해 군사시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 중 메이지자오(美濟礁, 미스치프)에는 H-6J 전략폭격기 이착륙이 가능한 약 3㎞ 활주로와 격납고, 방공포, 레이다 시설과 전파교란 장치 등을 설치했고, 일부 지역에 전투기와 전폭기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2012년 남중국해 서사군도에 있는 융싱도(永興島)에 싼사시(三沙市)를 개설하고 산하에 서사군도 일대를 관할하는 시사구(西沙區)와 남사군도를 관할하는 난사구(南沙區)를 설치했다. 이어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호텔·박물관·병원·은행 등 편의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또 크루즈 관광도 추진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2012년부터 자국민 여권에 남중국해와 대만을 표기하고 있다. 영유권을 기정사실화는 조치들이다. 중국이 미국에 대항하는 논리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미국이 남중국해와 관련 없는 역외세력이므로 간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로 중국이 하와이나 캘리포니아 인근에서 군사작전을 하면 미국은 가만히 있겠냐는 것이며, 셋째로 남중국해는 중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남중국해를 내해(內海)화 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 ’모래장성‘을 쌓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고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 또한 영해를 침범당하고 섬을 점령당한 상태라서 중국의 일방적 조치에 강경한 입장이다. 이들 국가는 중국을 향해 석유시추선 철수, 자국 어선 침몰 및 강제 퇴거 조치 등에 계속 항의하고 있다. 또 미항모의 다낭항 입항을 받아들였고, 미군의 자국 배치에 합의하는 등 연대도 추진 중이다. 게다가 필리핀은 2016년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은 법적 근거가 없다’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아세안 10개 회원국은 남중국해 이슈에 내부적으로 분열돼 있다. 라오스, 캄보디아 및 미얀마는 중국에 동조하는 입장이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미국의 개입을 경계하고 있으며, 태국과 싱가포르는 대체로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2018년 남중국해에서 우발적 군사충돌을 막기 위한 행동준칙(COC) 초안에 합의했다. COC는 2002년 채택한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선언(DOC)의 후속조치이다. 그렇지만 초안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고, 협상시한도 명시돼 있지 않다. 이른바 아무 법적 근거도 없는 신사협정 초안에 불과한 것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 지역의 정세 변화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첫째는 자원 수송로가 위협받기 때문이고, 둘째는 남중국해를 장악한 다음 향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와는 서해 EEZ와 이어도 문제가 있는데, 중국은 영토분쟁에서 양보한 사례가 거의 없다. 셋째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중국해 문제를 유의 깊게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11-01
  • [숨은 중국 알기 (29)]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가능성 높지만 미국 개입 여부는 의문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앞으로 무력충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현재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이 대치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부딪히는 지역이다. 전문가들은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를 드는데 이견이 없다. 필자는 앞으로 3회에 걸쳐 미·중 충돌현장을 연재하겠다. 이번은 그 첫 번째로 대만해협이다. 최근 대만 친구들과 통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이 나에게 “중국이 대만을 무력침공 할 것으로 보는지 그리고 만일 침공한다면 미국이 대만을 도와줄 것인가?”를 물었다. 그러면서 “지금 타이베이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곳은 고급 아파트, 주택단지가 아니라 바로 미국대표부 인근지역이다”라고 말했다. 대만인들은 언제라도 중국 인민해방군이 자신들 앞에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도움에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대만인들은 불안한 것이다. 오늘날 대만해협 문제의 핵심은 바로 대만 친구의 질문에 담겨있다. 첫째,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가능성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집권 2기를 시작하는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대만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중국의 꿈’(中國夢) 실현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명시했다. 최근 2021년 10월 9일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식에서 “대만독립 분열은 조국 통일의 최대 장애”라고 통일 의지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시진핑은 자신의 권력 강화와 장기집권을 위해 대만통일이라는 업적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그동안 공을 들였던 평화통일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졌다는 것이다. 대만은 한때 ‘차이완’(차이나+타이완)이라고 할 정도로 중국과 경제협력을 증대시켜 나갔지만 최근에는 민진당 차잉원(蔡英文) 정부가 ‘탈중국화와 친미국화’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반관영 환구시보는 2021년 10월 4일 ‘전쟁은 실제’라는 사설에서 “미국과 민진당이 (대만독립을 추구하는) 현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중국 본토의 군사적 응징은 시작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중국은 10월 1일부터 4일간 군용기 150대를 대만 동남부 방공식별구역에 진입시켜 경고의 수위를 높힌 바 있다. 대만이 예상하는 중국의 무력침공 조건은 ① 대만의 독립선언, ② 대만의 핵무기 획득, ③ 외국군 대만 진주, ④ 내부 혼란 등이다. 주로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진척시키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의 상황은 대만이 독립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탈중국의 움직임은 활발하고, 미군이 진주는 하지 않았지만 미국 무기를 도입하는 등 군사협력은 과거에 비해 점차 증대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하겠다는 조건에 근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대만이 분리 독립을 향해 몇 발자국 더 나간다면 중국의 무력침공 가능성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다.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는 중요하다.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중국 남부를 겨냥하는 군사거점이면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고 있는 요충지이다. 중국 해군이 최단거리로 태평양으로 진출할 때에 대만 북쪽에 있는 미야코(宮古) 해협을 통과하거나 또는 대만 남쪽의 바시(巴士) 해협을 경유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대만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이 증대되면서 미국의 압도적 우세가 감소되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은 국내 한 칼럼에서 “중국 본토의 해안을 따라 집중 배치된 고성능 미사일, 전투기, 레이더 등이 대만해협에 진입하려는 미군을 저지할 수 있고, 중국이 사이버공격으로 미국의 조기경보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후 신속히 대만을 점령하면 미국은 손쓰기 힘들어 진다”라고 스탠퍼드대 마스트로 교수의 견해를 인용했다. 대만 점령을 기정사실화 한다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대만에서 발간된 ‘24小時 解放 臺灣? 中共攻臺的 N種可能與想定’(중국이 대만을 24시간 내에 해방? 중국의 각종 수단과 예상 시나리오) 책자에서는 24시간 이내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고, 2018년 중국 인민해방군 중장 王洪光(왕홍광)의 ‘武統, 台湾到底怎么打? 解放军中将:六种战法,三天拿下’(대만 무력통일은 6가지 작전으로 3일 이내에 완료한다)의 기고문이 인터넷 사이트 환추왕(环球网)에 게재된 바 있다. 미국의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워게임 결과 비슷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미국 해군연구소(U.S. Naval Institute)가 발행하는 월간지 ‘프로시딩스(Procedings)’ 2020년 8월호에는 ‘The War that Never Was?’(지금까지 없었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게재됐다. 시나리오 결과 중국군의 전격적인 행동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이 속수무책의 입장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아프카니스탄 사태를 비유하여 “오늘의 카블 공항은 내일의 타이베이 송산 공항이다”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고, 또한 그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기정사실화하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미국은 대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어쩌면 능력이 안 될 수도 있다. 셋째,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중국이 미국의 개입을 억제하고 대만을 통일한다면 동북아의 패권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제1 도련선을 넘어 제2 도련선과 서태평양으로 진출할 것이며 우리는 중국에 포위되는 형국을 맞이할 것이다. 미국은 이런 상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패권 지위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월 21일(현지시각) 볼티모어에서 CNN이 주최한 타운홀에서 “대만이 중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방어하겠다”라고 말했다. 미 정부가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을 깨는 발언이다. 이번 발언 또한 공식적인 정책 전환으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대만에서 고조되고 있는 중국의 군사적 압력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미국 내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참새는 서로 싸울 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정치권이 내부 문제로 사생결단하듯 서로 다툴 때, 국제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변 강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피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구한말에는 그랬던 것 같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10-25
  • [숨은 중국 알기 (28)] 마오쩌둥, 김일성의 '철군' 요구 수용하며 우호관계 도모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외국군대는 언젠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북한 땅에 들어 온 중공군은 1958년 10월 전부 철수했다. 김일성의 요청을 마오쩌둥이 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중국군대가 북한의 안보를 보장해 주는 측면보다 자신의 권력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더 컸다. 실제로 북한 내부의 정치 동향과 동구 공산권의 사례를 볼 때, 김일성의 우려는 타당했다. 게다가 중국도 30만의 대병력을 북한에 계속 주둔시킬 필요가 없었다. 김일성의 철군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김일성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북한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오늘은 중공군 철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첫째, 우선 북한 내부 상황이다. 김일성이 비록 최고 권력자이지만 여러 정치파벌이 존재하고 있었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만주파는 동북항일연군 같은 부대 출신으로 결속력이 강했고 소련의 지지도 받았다. 그 다음은 중국공산당에 기반을 둔 연안파로 그들과 함께 항일전과 국공내전에 참가한 경력도 있다. 특히 김무정은 중공 팔로군 포병사령관을 역임했다. 하지만 그는 1951년 김일성에 의해 한직으로 좌천됐다가 다음해 병으로 사망했다. 소련파도 있었다. 소련에서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지만 단일 정치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주로 개인별로 활동했다. 그리고 남한 지역에서 좌익 활동을 했던 남조선노동당(남로당)파가 있었는데 이들은 6.25 전쟁 중 1952년에 대부분 숙청당했고, 박헌영은 중국과 소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56년 김일성에 의해 처형당했다. 연안파와 소련파는 김일성 우상화와 중공업 위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소련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탈린 격하운동을 보면서 김일성 권력 강화를 견제해야 하고 주민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경공업도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들은 1956년 8월, 조선로동당 3기 2차 전원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주장하며 김일성을 비판했다. 그리고 곧바로 중국이나 소련으로 도주했다. 김일성은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도주한 연안파와 소련파 간부를 출당시키고 직위도 박탈했다. 이 사건이 ‘8월 전원회의 사건’ 또는 ‘8월 종파사건’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비판한 연안파와 소련파 간부들을 종파분자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해 중국과 소련은 공동으로 압력을 행사한다. 중국공산당 8차 대회에 참석한 소련 미코얀 부수상과 중국 국방부장 펑더화이가 9월 북한에 가서 김일성에게 연안파와 소련파 간부들을 복당시키고 직위를 회복시킴과 동시에 김일성이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김일성은 이들 앞에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시간을 끌면서 유야무야됐다. 이 사건으로 김일성은 외세 개입으로 자신의 권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특히 연안파들이 자기에게 도전할 가능성을 더욱 경계하기 시작했다. 둘째, 중공군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북한에 주둔한 중공군은 전쟁 직후에는 북한의 전후복구 사업에 참여해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북한이 전후복구기를 지나 경제발전기에 진입하자, 중공군은 주둔하는 것 말고는 역할이 없었다. 오히려 대민피해가 증가해 주민들의 반감이 날로 증가했다. 중국측 자료에 의하면, 중공군이 1954년부터 1956년 8월까지 북한주민은 물론이고 공무원을 구금·모욕한 사건은 355건에 이르고 이 과정에서 417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심각한 사건은 사냥을 하려고 중공군 관할 구역에 들어간 북한 고위층인 남일, 방학세, 박정애 등을 구금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북한주민을 수색, 체포, 심문하고 교통사고, 강간 및 폭행 등의 사건이 빈발했으며, 군사시설 건설 용도로 농경지를 무단 점유하고 묘지를 파헤치는 등 치외법권적 행동을 했다고 한다. 중공군의 횡포로 북한 주민의 분노가 증가하는 문제는 북한과 중국 모두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셋째, 동구권 상황이다. 1956년 10월 헝가리에서 반정부 운동이 발생하자 소련군은 탱크를 앞세워 진압하고 친소 정권을 수립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김일성은 외국 군대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주권을 유린할 수 있다는 것을 현실로 목도한 것이다. 넷째, 중국의 상황이다. 중국은 북한 주둔 중공군을 배경으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도 큰 효과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소련이 동구 공산국가에 군대를 주둔시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북한에는 통하지 않았다. 김일성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중국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북한의 8월 전원회의 관련 중소 합동 대표단 파견 시 마오쩌둥은 미코얀에게 “이번 일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북한은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라고 영향력의 한계를 노출했다. 그리고 중국도 내부적으로 경제발전이 시급한 문제였다. 외국에 대병력을 주둔시킬 여유가 별로 없었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한국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었지만 전쟁발발 가능성은 낮은 상태였다. 게다가 중공군이 철수함으로써 한국과 미국에 ‘미군도 철수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은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즉각 압록강을 건너 올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배경아래 김일성은 1957년 11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세계 공산당 대표대회에서 마오쩌둥에게 철군을 요청했고 마오쩌둥은 이를 수용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1년 전 북한에 가한 압력에 대해 “작년 9월 펑더화이가 조선에 갔던 일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모든 당은 과업 수행 중에 잘못과 결점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조선로동당에 반대하는 인물들을 이용할 생각이 없다”라고 자신의 과오를 언급했다고 한다. 일종의 사과일 수도 있고 유감 표명일 수 있지만 마오쩌둥은 김일성의 우려를 해소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자 했다. 이 방법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김정은을 통하지 않고는 북한에 중국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김정은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시 할 것으로 보인다. 중공군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1958년 3월부터 철수를 시작했고, 그 해 10월 모두 북한 땅을 떠났다. 그렇지만 중국은 언제라도 필요하면 다시 한반도로 건너 올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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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 분석
    20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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