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3-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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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전·VR체험·호국 콘서트 등 ‘6·25전쟁 71주년 특별기획전’ 개최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국방부와 전쟁기념사업회는 22일부터 내달 1일까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2층 행사장에서 '6·25전쟁 71주년 및 호국보훈의 달 특별기획전' 행사를 공동 주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2021 닮음을 담다'라는 주제로 6·25 전쟁 당시 모습과 현재 국군 장병들의 사진을 비교해 전시하는 사진전이 열린다. VR체험관에서는 국방부에서 제작한 춘천·홍천지구 전투, 대한해협해전, 승호리 철교 차단작전 등 6·25 전쟁 주요 전투를 체험해볼 수 있다.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는 행사장에서 매일 오후 2시 '호국 콘서트'를 여는데, 피아노 5중주 연주와 성악병들이 부르는 군가 메들리를 감상할 수 있다. 현장 방문객들에게는 군인 비상식량이던 건빵이나 장진호 전투와 얽힌 일화로 이름이 알려진 캐러멜 사탕인 '투시 롤'(Tootsie Roll)을 1일 100개 한정으로 전달하는 이벤트도 진행된다. 한편, 국립서울현충원도 내달 27일까지 호국전시관 다목적실에서 전쟁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사진 30여 점(전쟁기념관 제공)을 전시할 예정이다. 또한 유엔참전국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참전국별 소개·현황 등을 담은 배너 전시와 '호국영령께 감사의 손편지 쓰기' 등 비대면 행사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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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1
  • '스무살 6·25 참전' 故고병수 하사, 발굴 10년만에 가족 품으로 귀환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스무 살에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국군 용사의 신원이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가 확보되면서 발굴 10년 만에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강원 양구 백석산 일대에서 2011년 6월 7일 발굴한 6·25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고(故) 고병수 하사로 확인됐다고 18일 밝혔다. 1931년생인 고 하사는 만 19세였던 1950년 6·25가 발발하자 같은 해 12월 자발적으로 입대했다. 이후 일주일간의 훈련만 받고 전방으로 배치됐으며, 이듬해 백석산 전투(1951.8.18∼10.1) 중 전사했다. 백석산 일대는 6·25 전쟁 기간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동부전선의 대표적 전략적 요충지 중 한 곳으로 발굴 현장에서는 고인의 좌측 정강이뼈 1점과 천조각 1개만 발견됐으며, 2011년 당시 신원은 곧바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국유단이 지난해부터 유해가 대량 발굴됐던 지역을 중심으로 자료 재분석·전사자 유가족 집중 탐문 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고 하사 유가족이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해 시료가 확보되면서 이번에 신원이 확인될 수 있었다. 고인의 동생 고병월(86) 씨는 "전쟁의 비참함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알 수 없을 것"이라며 "전사자의 희생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지켜진 것을 잊지 말고 강한 국력이 유지되도록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심경을 전했다. 국유단은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거행한 뒤 국립현충원에 유해를 안장할 계획이다. 유전자 시료 제공으로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소정의 심사를 통해 최대 1,000만원의 포상금도 지급된다. 지금까지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2000년 4월 이후 총 165명이고, 올해는 8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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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8
  • 조리용 로봇 병영 식당에 보급하고 조리병 1천명 추가 투입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군 당국이 부실 급식 문제 해결과 조리병 업무 부담 완화를 위해 조리용 로봇을 보급하고, 육군과 해병대에 1천여 명의 조리병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17일 국방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격리된 장병 급식 지원 등으로 가중된 업무 부담을 덜어주고 급식 질 향상을 위해 육군과 해병대에 1천여 명의 조리병을 추가 투입한다. 이를 위해 하반기부터 상황·통신 등 군별 필수 인력을 제외한 행정지원 인력을 적극적으로 감축해 조리병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또 올해 하반기 민간조리원을 조속히 채용해 내년에 조리 취약시간대인 평일 조식에 투입할 계획이다. 현대화된 조리 기구도 병영 식당에 보급한다. 식당에서 위험도가 높고 체력 소모가 많은 튀김 요리 등을 위해 민간에서 활용되는 '조리용 로봇'을 시범 도입하고자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하고 있다. 구이·찜 등 다양한 형태의 요리를 할 수 있고, 음식의 질도 높일 수 있는 오븐(대·중·소형)을 연말까지 모든 취사장에 설치할 예정이다. 야채류를 쉽게 다듬도록 '야채 절단기'를 확대 보급하고, 취사장 청소에 필요한 '고압세척 청소기'도 지속해서 보급하기로 했다. 또 시범 부대를 선정해 조식에 MZ세대 장병들이 선호하는 '간편 뷔페형' 식단을 제공한다. 주말과 휴일에는 장병들이 선호하는 완제품 형태의 '간편식'(찌개류·즉석밥·반찬류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현재 시행 중인 배달 음식, 브런치 등 급식 혁신 사업과 이런 대책이 병행되면 매월 24회에 이르는 토·일요일 조리 부담이 3분의 1가량 감소할 것으로 국방부는 예상했다. 또한 현재 육군 부사관학교 1개 식당에서 운영 중인 민간위탁 시범사업을 올해 후반기부터 10여 개 부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학교 급식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급식의 질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전방부대는 현재의 군단급 단위에서 사단급 단위로 급식관리 시스템을 개편하고, 학교 급식 전자조달시스템(eaT)을 단계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하반기 영양사가 배치된 부대를 선정해 'eaT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eaT 시스템'은 학교가 식자재 공급업체를 선정·계약하기 위한 체계로, 2010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경쟁방식으로 계약 업체를 결정한다. 국방부는 "이런 방향으로 급식시스템이 변화할 경우 조달된 식자재를 바탕으로 메뉴를 편성하는 방식에서 장병 선호를 고려한 메뉴 편성이 가능할 것"이며 "식자재 조달도 수의계약에서 벗어나 다수의 농협과 유통업체가 참여하는 경쟁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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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7
  • [숨은 중국 알기 (10)] 중·소 분쟁 당시 북한이 취한 ‘전략적 모호성’의 실익과 한계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이들과 우호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며, 최소한 적대관계는 피해야 한다. 주변국들이 우리에게 외교적으로나 정치·경제적인 압박을 가하면, 이를 상대해서 국익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적 압력 상황은 더욱 어렵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 관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몇 차례 중·북 관계를 언급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주변 강대국 A의 압력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강대국 B를 끌어 들였을 때, B가 과도한 요구를 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이번에는 A와 B가 우리를 배제한 채 타협을 한다면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약소국 입장에서 제일 좋은 방법은 A와 B를 상호 견제시켜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이 공간에서는 자율성이 증대돼 국익을 챙길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을까? ‘전략적 모호성’일까? ‘전략적 모호성’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만, 두 가지 치명적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모호성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 모호성을 유지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위험성 때문에 자칫 A와 B로부터 동시에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중·소 분쟁 와중에 있던 북한의 1960년대 외교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오늘날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있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북한은 중공업 위주의 경제 발전을 추진하면서 4대 군사노선에 따라 최신 군사장비를 확충하려고 했다. 소련은 북한의 중공업 분야 원조는 물론 최신 무기도 제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공산 종주국이자 UN 상임이사국이어서 북한을 외교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중국은 소련에 비해 여러모로 낙후돼 있었다. 하지만 북한에 민간 생활에 요긴한 경공업 품목을 원조하고 있었고, 북한의 정치적 성향이 소련보다 중국에 더 가까웠다. 당시 소련은 미국에 평화공존을 제기하면서 스탈린 개인우상화를 비판하고 있었으나, 중국과 북한은 미국과 평화공존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스탈린 개인우상화 비판도 마오쩌둥과 김일성의 권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금기사항이었다. 그렇지만 북한은 소련과 중국 두 나라가 모두 필요했다. 어느 한 국가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때 북한이 곤경에서 벗어나고자 택한 전략이 바로 ‘전략적 모호성’이었다. ‘전략적 모호성’이란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위험 부담을 회피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전략이라기보다는 당면한 곤란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임기응변’에 가깝다. 다시 말하자면 ‘전략 없음’을 나타내는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은 소련에 가서는 후르시초프 서기장이 듣고자 하는 발언을 했다. 후르시초프는 그 대가로 김일성이 요구하는 원조를 약속했다. 중국 마오쩌둥 앞에서는 그가 원하는 바를 언급했고 이에 만족한 마오쩌둥은 곧바로 북한에 대량의 원조를 약속했다. 중국과 소련은 북한이 자국 편에 줄서기를 요구하며 소위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북한은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중국과 소련을 오가며 필요한 것을 챙겼다. 이때의 북한 외교 형태를 등거리 외교 또는 시계추 외교라고 한다. 북한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양측에서 많은 경제적 원조를 받아내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외에도 북한은 1961년 7월 6일 소련과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고 이어서 5일 후, 7월 11일에는 중국과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다. 미국을 의식해서 북한과 조약 체결을 계속 미루던 소련과 중국을 북한이 압박한 결과였다. 즉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The tail is wagging the dog)이 발생한 것이다. 약소국 생존론에 의하면 약소국은 두 가지 조건을 갖추었을 때, 강대국에 대하여 외교적 자율의 공간이 넓어진다고 한다. 첫째는 대립하고 있는 두 강대국이 나를 중심으로 경쟁할 때, 둘째는 국내에서 한 목소리가 나올 때이다. 당시 북한은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전략적 모호성’은 여기까지였다. 북한이 소련의 요구를 거부하고 1962년부터 중국과 점차 가까워지자 소련은 이를 용납하지 않고 곧바로 제재를 가했다. 소련의 요구는 북한이 중국의 ‘인민공사’나 ‘대약진 운동’과 같은 대중동원 방식을 버리고 소련이 제창한 ‘동유럽공산국가 경제협력기구(COMECON)’ 분업체계에 합류하여 중공업이 아닌 경공업을 발전시키라는 것이었다. 소련은 우선 후르시초프가 북한에 약속한 중공업 경제 원조를 취소했다. 그리고 동구 공산권국가들에게 북한과 교역을 제한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그 여파는 예상보다 컸다. 소련의 원조를 전제로 수립된 북한의 ‘7개년 인민경제발전계획(1961년~1967년)’은 차질을 빚었다. 중국이 제공하는 경공업 위주의 원조는 소련의 중공업 원조를 대체할 수 없었다. 북한은 큰 타격을 입고 경제발전 목표량을 하향 조정하면서 목표년도도 3년 연장했지만 달성할 수 없었다. 당시 북한은 소련의 경제적 원조가 절실했다. 1965년 무렵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발생하자 이번에는 북한이 중국과 소원해지면서 소련에 접근했다. 경제적 원인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은 북한이 우호관계 재개 신호를 보냄에 따라 취소했던 원조를 재개했다. 소련도 중국과 분쟁상황에서 북한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중국이 가만있지 않았다. 중국은 김일성을 수정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중국과 북한 대사를 소환하고 국경을 폐쇄하는 등 양국관계는 급격히 악화됐다. 중국이 약속했던 경제원조는 당연히 취소됐다. 당시 소련도 대외원조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상황이어서 소련의 원조만으로는 북한에게 충분하지 않았다. 국제정치에 공짜는 없다. ‘조금 주고 많이 챙기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북한이 중국과 소련에 대해서 챙길 것은 다 챙기면서 ‘전략적 모호성’으로 이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당연히 견제와 보복이 뒤따른다. 이 현상이 미·중 패권경쟁 시대인 2020년대와 중·소 분쟁 시대인 1960년대가 다르겠는가,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다르겠는가. 북한은 ’전략적 모호성‘의 한계를 깨달았다. 즉 모호한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언젠가는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리고 A쪽으로 쏠린다면 B의 견제는 불가피하고, B로 쏠린다면 이번에는 A의 보복을 감수해야 한다는 국제정치의 속성도 알기 시작했다. 이 속성은 공산주의 이념을 넘어서는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중국이나 소련, 어느 한쪽으로 편향돼서는 안 되겠다는 취지로 자주노선을 채택하게 된다. 그리고 외교의 대상을 중국과 소련을 넘어 제3세계 비동맹 국가로 넓혀나갔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런 북한의 정책 전환을 비판한다. 비동맹외교는 친구는 많이 사귈지 모르겠지만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꼭 필요한 친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당시 북한이 경제적 자립 즉 자력갱생보다는 자본과 기술을 갖춘 서구로 방향을 돌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전략적 모호성은 상황에 따라 필요하지만 그 한계도 잘 알아야 한다. 모호성의 유효기간은 짧아서 지속될 수 없고, 언젠가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는 한계 말이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06-14
  • 사상 첫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출범…위원장에 김소영 전 대법관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사상 첫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출범했다. 국방부는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본관에서 위원들을 위촉하고 제1차 심의위원회를 개최했다고 11일 밝혔다. 김소영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은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시민단체, 학계, 법조계, 언론계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위촉됐다. 수사심의위 설치와 개최는 최근 발생한 공군 이모 중사 성폭력 피해 사망 사건에 대해 제기되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수사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대검찰청 등 민간 수사기관에서도 수사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수사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수사심의위에서는 군 검찰의 수사 계속 여부, 공소 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 수사 적정·적법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한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위촉장을 수여한 자리에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수사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해줄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군 검찰 수사심의위는 '정의'와 '인권' 위에 새로운 병영문화를 재구축하는 튼튼한 초석이 될 것"이라며 "군의 사법 정의 구현과 장병 인권보장을 위해서도 위원들의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해 달라"고 당부했다.
    • 외교안보정책
    • 국방
    2021-06-11
  • [숨은 중국 알기 (9)] 중국 한반도 전문가, 정체된 북한 아쉬워하며 한국 높이 평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필자는 베이징 근무시절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나를 통해 한국의 정책과 생각을 알아보려고 했기 때문에 접촉이 필요했다. 중국의 對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싱크탱크인 그들은 향후 정책을 구상 중이었다. 1992년 한·중 수교도 자신들이 건의한 정책이었다고 한다. 내가 만난 중국인 한반도 전문가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그들은 북한에 우호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수교 이전에 북한에 유학하여 대부분 김일성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정적으로 북한과 가까웠다. 사회주의 이념을 공유하였고,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교류가 빈번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2001년 9월 북한 방문을 마치고 와서 ‘친척집에 다녀왔다(走親戚)’라고 말할 정도였다. 둘째, 북한을 경외롭게 보고 있었다. 이들이 북한에 있던 시기는 대략 70~80년대였다. 이 당시에는 북한도 경제적으로 그럭저럭 괜찮았고, 어떤 면에서는 중국보다 나았다. 한 연구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평양에 있는 대학교에 유학을 갔는데 기숙사 휴게실에서 칼라 TV를 처음보고 무척 놀랐다. 당시 중국에서 칼라 TV는 드물었다”고. 그래서 그는 “중국 인민들은 언제 칼라 TV를 볼 수 있을까? 북한이 부럽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원은 북한에 대해, “그 작은 나라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미국에 대항하는지 모르겠다. 그 결기가 대단하다”라고 느꼈다고 한다. 셋째, 한국이 북한보다 우월하다고 인정한다. 이들 연구원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서울을 몇 차례 방문하면서 점차 남북한과 한반도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립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묶은 호텔 창밖에 비친 역동적인 서울의 모습과 활기찬 야경에서 앞으로 한반도의 주인은 남한이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들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은 어둡고 정체된 평양과 도저히 비교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남북한은 같은 민족인데 평양이 왜 이정도로 발전을 못하는가 하는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이런 아쉬움은 북한과 교류했던 많은 중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사항이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연구원은 60년대와 70년대 이야기를 한다. 당시 두만강의 제방은 북한쪽이 훨씬 높고 튼튼해서 물난리가 나면 전부 중국 쪽으로 범람해서 북한은 멀쩡한데 자기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정반대로 중국 쪽 제방은 견고한데 북한쪽 제방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북한이 항상 홍수 피해를 보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연구원은 자기가 어렸을 때, 북한 학용품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북한을 왕래하는 친척들이 건네주는 북한산 연필, 공책, 책가방 등은 중국 제품과 비교할 수 없이 고급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지금은 달라져 중국 학생들은 북한산 제품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오히려 중국 학용품이 북한에서 고급품으로 인기를 누린다고 한다. 한때 북한을 좋아했던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왜 이렇게 정체되어 있는가 하고 무척 아쉬워한다. 그들은 아직도 심정적으로는 북한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떠할까? 우선 공통적으로 한국을 높게 평가했던 3가지의 사례를 들겠다. 첫째, 전 국민이 한마음이 돼 참여했던 1997년 ‘금모으기 운동’이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금목걸이, 아기 돌 기념 금반지, 포장도 풀지 않아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금수저 등을 국가를 위해서 내어 놓는 것을 보고 경탄 했다.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애국심이란 것이다. 강요된 것도 아니고 애국주의 공교육의 결과도 아니며, 국가를 위한 자발적인 마음의 발로였기 때문이다. 둘째, 2002년 서울 월드컵에서 보인 붉은 악마를 포함한 전 국민의 일치된 함성과 질서의식이다. 중국인들은 시청광장이든 호프집이든 일치단결하여 응원하는 한국인의 모습에 가슴 뭉클했고, 응원이 끝나면 자발적으로 주변을 정돈하고 깔끔하게 떠나는 질서의식에 경의를 표했다고 했다. 역시 당시 중국에서는 보기 힘든 선진화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의 동북공정에 보인 한국인들의 대응이다. 당시 우리들은 중국이 우리 고대사인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당(唐)제국의 지방정부로 격하시켜, 자국의 역사에 편입하려는 계획에 반발하고 분노했다. 이때는 여·야도 없었고 진보·보수도 안보였다. 오직 한 목소리로 중국을 성토했고 중국도 한걸음 물러났다. 이 문제로 한국인을 전부 반중국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2006년 9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에게 “학술연구기관의 연구 차원이라고 하지만 이런 문제가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유감을 표명하자 원자바오 총리도 “관련 학술연구기관의 일이기는 하지만, 양국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지시했으며,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화답했다. 전 국민의 지지를 받은 노 대통령의 말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고, 중국도 이를 존중한 것이다. 이 때 한국과 중국은 작은 나라 큰 나라 관계가 아니었다. 역사 문제와 국가이익을 앞에 두고 대화하는 동등한 국가 대 국가의 관계였다. 그런데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이 왜 자국 군대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는가’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국군의 맞대응을 미국이 적절히 억제함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조절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전작권 문제는 한국의 위상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필자가 중국에서 접한 중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심정적으로는 북한을 좋아했지만, 남북 경쟁의 무게 추는 한국으로 기울었다는 현실 감각을 갖고 있었다. 또한 국론이 분열되면 중국은 물론 어느 나라도 우리를 쉽게 흔들 수 있어 한 목소리가 중요함을 깨닫게 됐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1-06-08
  • 군, 성폭력예방 제도개선 TF 한시적 운영…성폭력특별조치반도 가동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군 당국이 공군 여성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군내 부실한 성폭력 대응체계를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또한 신고된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특별조치반도 가동됐다. 국방부는 7일 김성준 인사복지실장을 책임자로 하는 '성폭력 예방 제도개선 전담팀(TF)'을 구성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TF는 군 조직의 성폭력 사건 대응 실태와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근본적인 개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했으며, 육·해·공군 인사참모부장과 해병대사 인사처장 등이 참여하는 '협의회'와 ▲ 교육·피해자 보호 ▲ 부대운영·조직문화 ▲ 수사·조사 등 3개 분과로 구성된다. 또한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 민간위원과 여성가족부 추천 위원으로 구성된 '외부전문가 자문단'을 설치해 각 분과마다 참여함으로써 정책의 전문성을 높이고 국민들의 관심과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렴하게 했다. 국방부는 "TF는 오는 8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면서 "현 성폭력 예방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합동 실태조사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수립하고 민간전문가 그룹과 긴밀한 소통·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정책적 개선사항을 도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TF는 공군 여군 부사관이 성폭력 고충 상담을 했는데도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했고, 공군본부가 국방부로 늑장 보고한 것 등 문제점이 드러나자 뒤늦게 개선 방안을 찾고자 마련됐다. 이와 함께 지난 3일부터 오는 16일까지 운영되는 '성폭력 특별신고 기간'에 접수되는 신고를 처리하기 위한 국방부 '성폭력 신고 특별조치반'도 이날부터 가동했다. 특별조치반은 법무관리관을 반장으로 양성평등, 인권, 감사, 군사경찰 등 관련 부서가 참여해 신고자의 요구 사항을 검토하고, 그 결과에 따라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처를 하게 된다. 신고된 사안 중 형사절차 진행이 필요한 것은 국방부 검찰단의 전담수사팀이 맡아 신속히 수사할 계획이다. 현재 15건의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이 가운데 10건은 수사·조사할 예정이며, 나머지 5건은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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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7
  • 문 대통령, 국가보훈처 창설 60주년을 맞아 “중장기 제대군인 전직 지원금 현실화”강조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통해 “국가유공자에 대한 진정한 보훈이야말로 애국심의 원천”이라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올해 국가보훈처 창설 60주년을 맞이하여 장기간 헌신한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들이 생계 걱정 없이 구직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대군인 전직 지원금’을 현실화할 것”이라며 이어 “보훈 급여금으로 인해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고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헌신의 가치가 묻혀 버리는 일이 없도록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웃을 구하기 위해 앞장서고 공동선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것이 바로 애국”이라면서 과로로 세상을 떠난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과 의사상자 묘역 최초 안장자인 채종민 등 의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했다. 더불어 “최근 군내 부실급식 사례들과 아직도 일부 남아있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을 낳은 병영문화 폐습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고 말했다. 이어 “군 장병들의 인권뿐 아니라 사기와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이를) 반드시 바로 잡겠다”면서 “우리 군 스스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고 혁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병영문화 폐습’은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엄정 수사·조치를 지시한 데 이어 군 통수권자로서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아울러 “지난 3월 광주의 계엄군 병사가 유족을 만나 직접 용서를 구한 일은 매우 역사적인 일이며,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제에 최초로 여야 정치인이 함께 참석한 일도 매우 뜻깊다”며 “4월의 제주, 5월의 광주, 6월의 현충원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하나의 마음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향해 다시 큰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도 밝혔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과 저는 강력한 ‘백신동맹’으로 코로나를 함께 극복하기로 했고, 대화와 외교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이루는 유일한 길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평화와 번영, 민주와 인권의 한미동맹을 더욱 포괄적인 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뜻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 백신 동맹 구축 등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거론한 데 이어 “정부는 튼튼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국제질서와 안보환경에 더욱 주도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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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7
  • [숨은 중국 알기 (8)] 실용주의자 덩샤오핑, 마오의 과오 바로잡고 새로운 방향 제시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국제적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이다. 즉 한·중 관계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등보다 상생의 우호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선 중국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큐리티팩트는 이런 취지에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군대를 알아보는 [숨은 중국 알기]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큐리티팩트=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마오가 사망하고 새롭게 등장한 덩샤오핑이 새로운 해법으로 마오가 남긴 혼란을 정리했다. 덩샤오핑은 다시는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혁명 같은 절대 권력의 폐해가 발생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절대 권력자 마오의 사례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에서도 왕조의 번성과 멸망은 황제 1인에 달려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왕조시대의 황제나 마오쩌둥 같은 절대 권력의 출현과 폭주를 억제하기 위해 마련한 정치적 제도가 바로 ‘집단지도체제’이다. 이렇게 덩샤오핑이 마련한 집단지도체제 내에서 후진타오 총서기 시절,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은 각각 자신이 담당한 분야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아홉 마리의 용이 공동으로 통치한다(九龍治水)”라는 말이 나왔다. 개개의 상무위원은 자기 담당 분야의 최고 결정권자였다. 총서기 후진타오도 최종 결정을 위한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에서는 1표에 불과했다. ‘집단지도체제’는 절대 권력의 등장과 전횡을 방지하려는 취지를 달성했다. 그렇지만 권력이 분산된 집단지도체제는 국정 수행의 강한 추진력이 부족했고, 상무위원의 독자 영역이 증대돼 월권과 부패의 소지가 있었다. 이 제도 역시 갈등을 초래하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후진타오의 뒤를 이은 시진핑(習近平)은 집단지도체제의 문제를 해소하고자 권력을 강화하여 시황제(習皇帝)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진핑이 강화된 권력으로 마오쩌둥의 ‘참새 박멸’ 같은 과오를 저지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혼자 달려가려는 속성상 자기 확신과 오류에 빠질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시진핑이 덩샤오핑이 정해준 10년 임기를 마치고 2022년에 물러날지 아니면 권력을 더 강화할지 그의 거취가 주목된다. 이쯤에서 마오쩌둥의 ‘참새 박멸’ 소동에 대한 정리를 해보자. 첫째, 절대 권력의 한계인 균형감각의 상실이다.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어서 누가 조언했더라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절대 권력자의 선의는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참새 박멸’도 선의로 시작했지만 참새의 긍정적 역할이 무시됨으로서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북한도 참새 박멸 같은 사례가 있었다. 예를 들면 ‘공작기계 새끼치기 운동’이다. 이 운동은 김일성 시대와 김정일 시대에 각각 전개됐다. ‘공작기계 새끼치기 운동’이란 북한이 중공업 발전을 위해 부족한 공작기계를 확보하기 위해 전개한 운동이다. 즉 ‘기존의 공작기계를 모델로 삼아 동일한 기계를 제작한다’라는 대중운동인데, 공작기계가 무슨 닭이나 소도 아닌데 어떻게 새끼를 친단 말인가. 기계제작과 금속공업 등 중공업 분야의 핵심 산업은 고도의 과학기술 발전과 자본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새끼 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세계적 기술발전 추세와 거리를 두고, 국제적 표준과 검증기준을 따르지 않았던 북한은 대중적 노력동원 운동을 통해 낮은 수준의 기계를 양적으로 생산하며, 오히려 원료와 자재를 낭비하게 되는 역효과를 동반했다, 북한은 오늘날에도 이런 폐쇄된 의식의 연장선에서 자력갱생을 크게 외치고 있다.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은 김일성에게 “개혁개방해라, 한국과 협력해라, 미국과 맞서지 마라” 등 3가지를 조언했다. 이 3가지는 자신이 추진하여 중국을 발전시킨 핵심 정책이었다. 덩샤오핑은 과거 평양 방문에서 금박 입힌 거대한 김일성 동상을 보았다. 그리고 북한 전국에 이런 동상이 세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지금 북한이 이럴 때가 아닌데” 하고 북한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절대 권력자 마오쩌둥의 참새 격멸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덩샤오핑 같은 인물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전시대 지도자의 과오를 인정하고 이런 토대위에 시대에 부합한 합리적인 발전방향을 추구할 수 있는 지도자 말이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젊은이의 사상 오염문제를 제기하면서 “자본주의 사상을 짓부수지 않으면 자멸할 것”이라고 위기감도 나타낸다. 북한의 ‘장마당 세대’는 김일성의 혁명세대, 김정일의 선군세대와 다른 생각과 가치를 추구하는데도 이들을 구시대의 틀에 가두려고 한다. 북한도 중국이 소련으로부터 참새 20만 마리를 들여왔듯이 자체적으로 문제 해결이 어려운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 ◀ 임방순 인천대 외래교수 프로필 ▶ 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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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31
  • 국방부·과기정통부, ‘제2기 과학기술전문사관’ 20명 전역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제2기 과학기술전문사관 20명(육군 16명, 해군 1명, 공군 3명)이 31일 중위로 전역한다고 국방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밝혔다. 과학기술전문사관은 2014년 이스라엘 엘리트 과학기술 전문장교 육성 프로그램인 ‘탈피오트’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만들어졌다.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우수한 이공계 학생을 선발, 국방과학기술교육·창업교육·국방과학연구소(ADD) 현장실습 등 후보생 양성과정을 거친 뒤, 현역 장교 신분으로 ADD에서 연구·개발을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매년 25명 내외의 과학기술전문사관을 선발해 군 복무로 인한 이공계 우수 인재 경력단절을 해소하고 첨단 과학기술을 토대로 군 전력 증강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번에 전역하는 제2기 과학기술전문사관 20명은 ADD에서 3년간 연구개발 장교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외 주요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거나 연구소, 기업체 등에 취업 혹은 기술 창업을 통해 국방 R&D 전문인력으로서 역량을 펼칠 계획이다. 한편, 지난 28일에는 충북 괴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제5기 과학기술전문사관 후보생 20명의 임관식이 열렸다. 이들 후보생은 6월 1일부터 ADD에 배치돼 국방 연구개발을 수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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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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