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군인Home >  현역군인 >  전문가 분석
-
[김희철의 Crisis M] 3차례 실제전투 영웅 김승겸 대장, 기다리던 참군인이 드디어 왔다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김승겸 합참의장이 연대장시절에 그를 가장 신뢰했던 당시 직속상관인 1사단장 신현돈 장군(육사35기, 전 1군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김승겸 합참의장은 외유내강형으로 유연하고 부하를 한없이 사랑하며 착해보이지만, 훈련 및 부대관리에는 원칙(FM)적이고 강단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오직 부하와 부대에만 불철주야로 모든 것을 집중하는 지휘관이었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사례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민통선 내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에게 월드컵 경기 시청을 금지시킨 적이 있었는데 이는 2002년 때처럼 북이 축제 분위기를 틈타 도발을 시도해 올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헌데 연대장 본인은 실내에 있으면 자기도 축구를 볼 것 같아서 경기일에는 직접 소초 순찰을 나갔고, 축구가 끝날 때까지 본부로 복귀하지 않으며 솔선수범했다. GOP후방 FEBA에 있던 장병들이 신나게 월드컵을 보고 있을 동안 GOP와 GP에서 근무하는 도라대대 장병들과 수색대원들은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도 있었다. 또한 김승겸 연대장은 수색대대원들의 수색과 매복작전도 직접 모니터링하여 DMZ진입 할 때 병사들의 간격, 진형, 위치, 수색대 투입 당시의 주변 부대의 경계작전 상태 및 보안사항 등을 직접 확인하는 등의 신뢰할 수밖에 없는 예하 지휘관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신현돈 예비역 대장이 합참근무시에도 김승겸 대령은 합작과장으로 보좌했다. 신 대장은 “상급 지휘관(본인)의 작전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하는 등 원칙과 강단이 있으며 탁월한 기획력과 논리적사고로 초지일관하는 장교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또한 “김승겸 장군은 열정과 헌신의 전투작전 전문가로 당연히 ‘은하계곡 5.22 완전작전’과 2차례의 대북 응징작전 등 실제 대침투작전 상황에서도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참군인이다”라며 극찬했다.
-
[김희철의 Crisis M] 3차례 실제전투 영웅 김승겸 대장, 기다리던 참군인이 드디어 왔다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연합사 부사령관 임명 이후 소식이 뜸하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한미연합사를 방문한데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던지라 정부 출범 이후 첫 합동참모의장으로 내정될 가능성도 있었다. 게다가 김승겸 장군의 고향 서천군은 국민의힘 충청남도지사 후보였던 김태흠 국회의원의 지역구였던지라 윤석열 대통령이 김태흠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합참의장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설도 있었다. 결국 윤석열 정부 출범 15일 만인 2022년 5월25일 첫 장군인사에서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대장이 전부 전역하는 와중에도 김승겸 대장은 유일하게 전역을 하지 않고 합동참모의장에 지명되었으며 최초로 국회 청문회 없이 7월5일 취임했다. 육사 42기 내 다른 선두주자였던 안영호 합참 작전본부장, 김정수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과 경쟁하였는데, 당시에 본인과 함께 김정수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도 대장으로 진급하여 2작전사령관을 역임했다. 이는 권오성 대장(육사 34기) 이후 9년만에 연합사 부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전역하지 않고 영전한 케이스가 되었다. 또한 정승조 대장(육사 32기) 이후 9년만에 육사 출신 합참의장이 배출되는 사례를 남겼다.(다음편 계속)
-
[김희철의 Crisis M] 3차례 실제전투 영웅 김승겸 대장, 기다리던 참군인이 드디어 왔다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김승겸 합참의장은 거의 전역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받은 한직인 국군의 날 행사단장을 마치고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으로 취임했다. 부임할 당시 직속상관인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공교롭게도 알자회 출신이었다. 허나 부사령관은 오히려 출중한 김 장군을 무척이나 아꼈다고 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고 구사일생으로 2017년 9월 장성급 장교 인사에서 중장으로 진급하여 3군단장을 역임한 후 육군참모차장으로 보임되었다. 직무를 수행 중 2020년 9월18일, 서욱 육군참모총장이 국방부장관으로 취임과 동시에 전역하자 육군총장 직무대리가 되었는데, 3일 만인 9월21일 예상대로 1차에 대장으로 진급하여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의 대장 진급 배경에는 넘사벽 아이템인 을지무공훈장 수상, 중위부터 중장까지의 진급을 모두 1차에 한 것, 중장급 인사들 가운데 비육사 출신 임관동기인 3사 21기나 학군 24기에 해당하는 인물이 없었다는 요인들이 고려되었다.(다음편 계속)
-
[김희철의 Crisis M] 3차례 실제전투 영웅 김승겸 대장, 기다리던 참군인이 드디어 왔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김승겸 중령(육사42기)은 대대장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동 사단 작전참모를 거쳐 대령으로 진급해 1보병사단 12연대장과 35사단 참모장, 합참합동작전과장을 지냈다. 특히 육사 42기의 선두주자로서 소위 임관 후부터 대장까지 모든 계급으로의 진급을 1차에 했다. 준장으로 진급해서는 21사단 부사단장, 6군단 참모장,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장을 지냈는데, 소장으로 진급하였을 때 28보병사단에서 이찬희 살인사건(윤일병 사건)으로 전임자가 경질되자, 후임 사단장으로 취임하여 어수선하게 침체된 사단의 분위기를 쇄신시켰다. 헌데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생한 ‘14년도 연천 대북전단 발원지에 대한 북한 고사총 사격도발과 ‘15년도 북한군의 서부전선 포격도발에 따른 대북응징을 과감하고 철저한 완전작전으로 수행함으로써 군내에서 명성을 쌓았다. 이로써 김승겸 장군은 병영문화도 쇄신하고, 완전작전까지 해낸 야전군인으로서의 엄청난 능력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현역 국군장성 중 유일하게 ‘은하계곡 5.22완전작전’과 두차례의 응징보복 작전 등 실제 전투경험이 3번이나 있는 장군이 되었다. 그러나 모 언론매체의 자료에 따르면 성공적인 완전작전 유공에도 불구하고 군복무 기간 중 군내 사조직인 알자회를 비판했던 김 장군은 그들에게 표적이 되는 바람에 거의 전역 직전까지 갔었는데, 이때 받은 보직이 한직인 2016년 국군의 날 행사단장이었다. (다음편 계속)
-
[김희철의 Crisis M] 3차례 실제전투 영웅 김승겸 대장, 기다리던 참군인이 드디어 왔다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회 원 구성이 장기간 지연되어 인사청문회를 못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군서열 1위인 합참의장에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김승겸(육사42기) 대장을 임명했다. 김 장군은 1963년 충남 서천군 출신으로 김영옥 예비역 중령의 아들이자 김영 예비역 대령의 조카다. 1982년 서울 오산고등학교(72회)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986년 졸업과 함께 육군 보병소위로 임관했다. 대위시절인 1992년 5월22일 야음을 틈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넘어 침투한 무장공비4명을 차단 및 수색, 교전을 통해 전원 사살한 대침투작전인 ‘은하계곡 5.22완전작전’에서 전초 13중대장으로서 결정적인 큰 공을 세워 ‘을지무공훈장’을 수훈했다. 당시 김승겸 대위의 을지무공훈장 수훈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6.25남침전쟁과 베트남전 이후 전시가 아닌 평시에 수여된 최초의 을지무공훈장이기 때문이다. 현역 군인 중 유이하게 무공훈장을 받은 군인이다.(아덴만 여명 작전에 참여한 검문검색대 공격 1팀장 김규환 해군대위가 을지무공훈장을 두 번째 수훈) 게다가 김승겸은 미 국방부가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Legion Of Merit’도 수훈받은 바 있다. 이후 소령으로 진급해 3보병사단 대대작전장교와 육군사관학교 생도대 훈육관을 역임한 후 중령 때에는 2보병사단 31연대 2대대장으로 보직을 받았는데 부임과 동시에 "싸움터에서 이기는 영웅이 되자"라는 구호와 함께 부대를 180도 바꾸어놨다. 행보관들 및 주임원사와 호형호제하던 전임 대대장과 다르게 무능한 간부를 경멸하고 병사들 보는 앞에서 연병장에서 부사관들을 완전무장 포복시키고 대강대강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했다. 미숙하다고 이등병을 배려하거나 상사나 소령을 대접하는 관행은 모조리 뿌리 뽑았으며, 훈련에 매진하는 부대로 탈바꿈시켰다. 매주 수요일 오전에는 즉각조치사격을 실시하여 실전위주의 사격능력을 향상시켰다. 당시 실제로 사단 교탄 소모량이 가장 많은 부대가 김승겸 대대였으며, 그야말로 훈련 위주의 원칙적인 교범(FM)을 따르는 부대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부식창고를 개방하여 부식, 보급품을 한꺼번에 불출함으로써 그동안 병사들에게 보급하지 않고 암암리에 빼돌리던 것을 없앴다. (다음편 계속)
-
[김희철의 전쟁사(63)] 이승만 대통령과 역대 유엔군 총사령관의 치열한 밀당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6·25 남침전쟁이 지루한 고지전이 계속되면서 워싱턴의 미군 수뇌부는 ‘승리’보다는 ‘패하지 않는 전쟁’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밴플리트와 사관학교 동기인 브래들리 미 합참의장이나 콜린스 육군참모총장도 마찬가지였다. 미군 수뇌부 대부분이 한국에서의 전쟁을 모양새 있게 마무리하는 데 급급했다. 밴플리트는 그런 분위기를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대상이 미 육사인 웨스트포인트 동기생이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였다. 그런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했기에 곧 분위기를 돌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그에게는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 밴플리트는 승리 위해 싸웠던 군인이자 한미 관계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 그는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아이젠하워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한국군 전력증강에 관한 브리핑을 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선거전에서 ‘전쟁 끝내기’를 공약했고,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소련과 동유럽 및 중국 등 사회주의 세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전략 구도를 구상했던 워싱턴 미군 수뇌부의 심경에도 변화가 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1953년 1월 현역에서 은퇴하여 그해 2월 한국을 떠나는 밴플리트의 심정이 편할 리 없었다. 순천폭격 비행 중에 실종되어 사랑하는 외아들 지미 대위를 잃었던 전선으로부터 이제 떠나야 하는 아비의 심정도 있었을 것이고, 군인으로써 못내 이루지 못한 전선에서의 온전한 승리가 아쉽다는 정한도 배어 있는 듯했다. 그런 그는 당시의 고별 기자회견에서 1951년 10월과 11월 벌인 공세의 좌절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 공세를 지속적으로 이어갔다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은퇴 후 미국에 도착한 밴플리트는 각종 환영행사 등에 참석하면서도 아이젠하워 등 요인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 전선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며 끝까지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그는 맥아더와 같은 전형적인 군인이었다. 맥아더는 워싱턴의 ‘사려 깊은 외교적 시야’를 우습게 본 사람이었다. 공산주의자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믿음과 전쟁을 벌였다면 상대의 수도까지 진격해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닌 장군이었다. 그러나 워싱턴의 정가에서는 밴플리트를 의심하고 있었다. 콜린스 육군참모총장은 그의 그런 언행을 두고 “정치판에 뛰어들려고 한다”고 발언했고, 이 말을 전해들은 밴플리트는 “도대체 그가 왜 그런 발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이라며 아쉬워했다. 한편 밴플리트가 고향인 플로리다에 막 정착했을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 정부에서 국무부 차관에 올랐던 월터 스미스가 플로리다 목장의 밴플리트를 찾아와 “이승만 대통령은 단독 북진까지 주장하며 정전협정 체결에 반대하고 있다. 이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장군께서 주한 미 대사를 맡아주면 좋겠다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말했다”는 취지로 주한 미 대사를 맡아 주기를 제안했다. 밴플리트는 즉석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이 대통령이 당신들의 말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정전 자체에 반대하는 내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래도 월터 스미스는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도 장군의 의견이라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설득했다. 군인의 순수한 입장으로 ‘한국 전선에서의 승리’를 주장했던 밴플리트는 확고했다. 그는 “결코 안되는 일이다. 당신은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사표를 내야 할 것”이라며 제안을 일축했다. 완고한 밴플리트의 입장을 전해들은 아이젠하워는 결국 대사 임명 계획을 철회했다. ■ 저돌적인 ‘직진 스타일’ 군인 성격의 밴플리트는 ‘의리의 사나이 돌쇠’ 제2차 세계대전과 그리스 반군 게릴라 소탕 작전에서 성공적 임무수행에 이어 한국 전선에서 이름을 높였던 밴플리트는 고향 플로리다의 유명인사 대접을 받으며 목장과 관련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때 플로리다의 많은 유지들에게서 “주지사 선거에 나가라. 당신 정도면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정치 입문 권유를 받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냥 당신들이 나가라. 나는 그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퉁명스럽게 되받곤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밴플리트는 한국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계속 키웠다. 한국과 미국의 최고 교류단체인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발족과 발전을 주도했다. 아울러 한국의 전후 지원 문제를 두고 미 행정부의 자문역을 맡아 활동하는가 하면 실제 집행과정을 감독하기 위한 순회대사로도 활동했다. 그는 퇴임 뒤에도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 그의 후임 미 8군사령관인 맥스웰 테일러 장군은 사실 그 점이 매우 거북했다고 한다. 전임자가 자신의 임지에 자주 나타나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00마일로 차를 모는 ‘직진 스타일’ 군인 성격의 밴플리트는 그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고 자신의 열정 그대로 한국을 돕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오직 승리만을 위해 뛰었던 미국의 장군이었다. 공산주의 위협에 직면했던 대한민국에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과의 우의가 아주 깊을 수 밖에 없었다. 훗날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망명객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밴플리트는 주저 없이 이 대통령의 곁으로 달려갔고, 그의 유해를 직접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던 ‘의리의 사나이 돌쇠’이기도 했다.(다음편 계속)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
실시간 전문가 분석 기사
-
-
[전문가 분석] 합참의장 및 육군총장 인선 두고 '깜짝 인사' 관측
- 정경두 합참의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됨에 따라 후임 합참의장 인사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합참의장 인선의 향배에 따라 육군총장에 의외의 인물이 기용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등 하마평이 무성하다.
-
- 현역군인
- 전문가 분석
-
[전문가 분석] 합참의장 및 육군총장 인선 두고 '깜짝 인사' 관측
-
-
[전문가 분석] 정경두 국방장관 내정, 후임 합참의장과 육군총장은 누구?
-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국방부 장관에 내정된 정경두 합참의장의 후임 인선을 필두로 군 대장급 인사가 곧 단행될 전망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30일 "후속 대장급 인사가 곧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
- 현역군인
- 전문가 분석
-
[전문가 분석] 정경두 국방장관 내정, 후임 합참의장과 육군총장은 누구?
-
-
[전문가 분석] 기무사 대체하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정치개입 등 4개의 금지령이 핵심
- (김한경 총괄 에디터) 국방부가 6일 입법 예고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령(대통령령) 제정안을 보면 기존 국군기무사령부령과 달리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을 엄격히 금지하는 조항이 신설된 것이 특징이다.
-
- 현역군인
- 전문가 분석
-
[전문가 분석] 기무사 대체하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정치개입 등 4개의 금지령이 핵심
-
-
[전문가 분석] 기무사 개혁안은 '해체 수준' …민정수석 보고 '운용 방안'이 관건
- (김한경 총괄 에디터) 국방부 기무사개혁위원회가 2일 발표한 기무사개혁안은 기무사령부 간판을 떼고 관련 법령을 폐기토록 하는 등 기무사를 사실상 해체하고 새로 정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
[전문가 분석] 기무사 개혁안은 '해체 수준' …민정수석 보고 '운용 방안'이 관건
-
-
[전문가 분석] 기무사 문건은 내란 음모? “실행 문건이라면 실행 문서와 실행 세력 증명해야”
-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문건이 공개된 뒤 여러 논란이 이어지고 있고, 국회 국방위에서 진실 공방까지 벌어져 국민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다"면서 "문제의 본질은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왜 이런 문서를 만들었고 어디까지 실행하려 했는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
- 현역군인
- 전문가 분석
-
[전문가 분석] 기무사 문건은 내란 음모? “실행 문건이라면 실행 문서와 실행 세력 증명해야”
-
-
[전문가 분석] 기무사 계엄령 문건의 배후설과 3가지 가능성
-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기무사 계엄령 문건은 지난해 3월 탄핵 정국이 정점에 다다르던 시점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최초 8쪽 자리 자료가 공개됐을 때만 하더라도 군이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다면 검토해 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상당수 있었다.
-
- 현역군인
- 전문가 분석
-
[전문가 분석] 기무사 계엄령 문건의 배후설과 3가지 가능성
-
-
[전문가 분석] 다문화 소위 임관, '인구절벽' 속 한국군 전력 유지에 시사점 던져
- ▲2월 28일 충북 괴산군 육군학생군사학교 대연명장에서 열린 2018년 학군장교 임관식에서 신임장교들이 임관선서하는 모습 (국방일보 제공) (안보팩트=강철군 안보전문기자) 2018년 학군장교임관식의 군계일학 다니엘 해병소위...러시아 국적 포기하고 한국에 귀화해 장교의 길 선택 박승리·윤채은 육군소위는 최초의 기갑 여군장교 2018년 학군장교임관식은 김용우 육군참모총장(대장, 육사39기)이 주관한 가운데 2월 마지막 날 충북 괴산군 육군학생군사학교 대연병장에서 열렸다. 이날 4100명의 신임 소위가 영예로운 대한민국장교로 힘찬 출발을 하였다. 이번 임관식은 예년과 달리 2011년부터 시행한 합동임관식을 폐지하고 각군과 학교별로 개최한 첫 행사였다. 임관식에는 각 군 주요인사와 전국 117개 대학교 총장, 임관장교 가족·친지, 지역 주민 등 2만5000여 명이 참석해 신임 장교들의 임관을 축하하고 격려했다. 이날 임관한 장교들은 육군학생군사학교와 해군1군사교육단, 공군기본군사훈련단, 해병대교육훈련단 등에서 소정의 군사교육을 마치고 임관종합평가를 통과한 자들이었다. 이날 학교측에서 행사 참석자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학군단 임관식 기획단이 다양한 노력을 한 것이 돋보였다. 기획단은 원활한 행사 진행과 교통불편 해소를 위해 행사 안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e-book(전자책)을 개발, 홍보했다. 또 주차장을 확대 설치했으며 청주공항과 버스터미널에서 임관식장까지 운행하는 순환버스를 지원했다. 군경 합동 교통통제소도 운영했다. 이날 임관식에서는 다양한 화제의 인물이 탄생했다. 박승리·윤채은 육군소위는 최초의 기갑 여군장교가 됐다. 육군은 지난 2014년 기갑, 포병, 방공, 군종병과를 여군에게 개방하면서 모든 병과에 남녀제한을 없앴다. 2015년 기갑병과 여군 부사관 4명이 임관했으며, 여군장교가 임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육군11사단에서 병사로 군 복무를 마친 이준형 육군소위는 이날 임관으로 두 개의 군번을 갖게 됐다. 김태진·태현 쌍둥이 형제는 각각 해군과 육군 소위로, 윤수영·선영 쌍둥이 자매는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주병수 육군소위는 아버지 주순린(학군 25기) 육군예비역 중령과 형 주병준(육사 70기) 육군대위의 뒤를 이어 장교의 길을 걷게 됐다. 누나 주민정(3사 53기) 소위도 임관을 앞두고 있다. 특히 군계일학으로 러시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파나마료브 다니엘(Ponomarev Daniel) 해병소위는 8세 때 러시아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에 귀화한 뒤 장교의 길을 선택했다. 현재 다문화 청년 1천명 현역 근무, 2025년부터 매년 8천여명 입대 예상 2020년 이후부터는 입대 장정 매년 2~3만명이 부족 2014년 육군 소대 전투병에 다문화가정 출신이 처음 선발된 데 이어 이듬해 4월 최전방 GOP(일반전초) 소대에 투입됐으며, 8월에는 다문화 후보생 3명이 육군 특수전교육단 특전부사관으로 처음 임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다문화 출신 국회의원 1호이자 '완득이 엄마'로 알려진 이자스민(41) 전의원의 아들 '이승근(21)씨가 2016년 9월 전북 임실의 육군 35사단 신병교육대에서 6주간 교육을 받고 자대에 배치되면서 이군은 "당연히 가야하는 길이다"라고 했고 이자스민은 "의무를 다해야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심경을 표현했다. 저출산 고령화로 2026년까지 만 15~64세 생산 가능 인구가 218만 3천명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감소 인원중 87%가 20대 청년이다. 그렇다고 청년층의 고용사정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고령인구가 은퇴를 하면서 청년층의 고용시장 진출을 막아 청년 고용난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고용노동부는 중장기 인력 수급 전망 및 시사점을 국무회의에서 보고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인력 공급 측면에서 15세 이상 전체 인구 중 일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2021년 까지 122만 8천명, 2026년까지 206만 9천명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고용지표상 한창 일할 나이로 분류하는 15~64세의 생산가능 인구는 2021년 46만3천명 줄더니 2026년에는 218만 3천명으로 감소 폭이 확 커진다. 60세 이상 인구 증가(533만 명)가 전체 인구 증가세를 이끌면서 일할 수 있는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층의 비중이 두꺼워진다는 것이다. 반면에 줄어드는 20대 청년 생산가능 인구는 전체 감소인원의 87%인 189만7천명에 달한다. 해가 거듭될 수록 신규 인력난이 심각해 진다는 뜻이다. 국방부는 저출산 고령화로 군입대 가능 장정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나마 2025년부터 2031년 사이에 연평균 8천518명의 다문화 출신 장정이 입대할 것으로 추정했지만 2020년 이후부터는 매년 2~3만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군 입대 가능 청년 감소 및 군복무 기간 단축은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주의 수호에 '적신호' 다문화가정 출신 소위 임관은 저출산 시대의 '군사력 유지'와 관련된 중대한 시사점 내포 국방부에서는 군입대 가능인원 전망을 2020년 33만 1천명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MBC에 따르면 오는 7월 3일 제대하는 군 입대자들부터 순차적으로 군복무기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해 2020년 육군 입대자의 복무 기간은 현재의 21개월에서 18개월로 줄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과 공군도 마찬가지로 3개월씩 복무 기간을 단축해 해군은 20개월, 공군은 21개월로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MBC는 전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2017년 8월 국방부 자료를 인용 "2017년 30만 5000명의 현역가용 자원은 저출산에 따른 급격한 인구감소로 2022년 23만4000명으로 추락하고 2023년 이후부터 연평균 2만3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역병 복무 기간을 단축하는 것은 병력부족 문제를 외면한 위험한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이어 "우리 군의 전투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된 현역병의 복무 기간을 행정부의 재량적인 결정만으로 최대 6개월이나 단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안보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이뤄진 것"이라고 혹평했다. 복무 기간 단축과 관련해 시대의 흐름이라는 찬성 입장과 안보 포퓰리즘이라는 반대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찬성 쪽에서 주장하는 것은 ▲ 현대전 양상을 고려시 굳이 대군(大軍)을 유지할 필요 없다는 점 ▲ 무력흡수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어 모병제로 가야 강군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예로 든다. 현대전에서는 다양한 원거리 타격을 통해 이미 초토화시키고 보병을 투입하는 식의 전투라 현재처럼 63만의 대군을 배치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애초 60만이 넘는 대군주의를 고수하는 데는 북한 급변 사태 발생 시 흡수통일을 목표로 한다는 목적에 그 이유가 있는데 이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북한 급변사태의 발생 가능성도 극히 낮고 오히려 이를 빌미로 군사를 투입했다가, 타국의 전쟁참여 명분을 줘서 더욱 심각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억지로 끌려가는 느낌의 군대가 아니고 사병이나 장교의 숫자를 줄여 재원을 충당, 장병 복지를 늘려 `가고 싶은 군대`,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군대`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군복무기간 단축을 통한 병력 감축은 국방비를 늘리지 않고 군사력 현대화 재원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과 사병의 사명감을 늘릴 수 있는 장점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군복무 기간 단축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병력 부족`, `안보 포퓰리즘`이라는 근거를 내세운다. ▲2018년 첫 입영행사가 열린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입소장병이 경례하는 모습 군 생활 15년 차인 이모 상사는 "대한민국 군대에 인원이 많이 필요한 이유가 전쟁 시 병력수가 부족해서인가?"라고 반문하며 "결국 여기저기 일에 동원되는 값싼 노동자 아닌가. 군대를 다녀왔다면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저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상사는 이어 "국방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병력부족을 걱정하지 말고, 군 장성 비리를 때려잡고 대한민국 군대 자체의 체질개선을 고민하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고민은 전혀 안 하고 단순 숫자놀음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부연했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방백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군은 62.5만명인데, 북한군은 128만명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휴전상태고 안보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그 안보가 단순히 병력 숫자에 비례해서 안보 더욱 지켜질 수 있는가라는 부분에서는 물음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측의 설득력은 부족하다는 평가이다. 북한과의 전쟁상황에서 숫적 열세인 병력으로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 역사는 흐르고 시대는 변하듯, 전쟁과 전투도 진화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군 복무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북한이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우리의 강력한 대비로 도발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아닐까 묻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손자는 말했다. "무시기불공 시오유소 불가공야(無恃其不攻 恃吾有所 不可攻也)"-적이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 믿지 말고 적이 감히 침공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대비하라.!
-
- 현역군인
- 전문가 분석
-
[전문가 분석] 다문화 소위 임관, '인구절벽' 속 한국군 전력 유지에 시사점 던져
-
-
[전문가 분석] 장교합동임관식 폐지와 각 군별 행사로 환원된 사관학교 임관식
- ▲ * 2017년 3월 계룡대에서 거행된 장교 합동임관식(국방일보 제공) (안보팩트=강철군 안보전문기자) 일정 많았던 이명박 대통령, 각군별 임관식 참석 어렵자 '장교합동임관식' 제도 시행 장교합동임관식, 일체감 조성 및 자부심 고양 등의 장점에도 임관 예정 장교 및 가족 3만2000여 명의 이동에 따른 문제점 발생 올해부터 각군·학교별로 졸업·임관식 거행...사관학교별 특색있는 임관식 기대 금년부터 장교 합동임관식이 사라진다. 대신 각군·학교별로 졸업 및 임관식을 함께 실시하는 이전 방식으로 환원된다. 국방부는 “2018년부터 장교 합동임관식을 폐지하고, 각군 및 학교별로 졸업 및 임관식을 함께 실시하는 이전 방식으로 환원한다”고 밝혔다. 이명박대통령 시절인 2011년 부터 졸업식은 각군 사관학교에서 진행됐고, 합동성 강화와 행사 효율성 등을 이유로 계룡대에서 장교 합동임관식을 시행해 왔다. 이에 매년 육·해(해병대)·공군 사관학교와 3사관학교, 학군, 국군간호사관학교의 신임장교 5000여 명이 계룡대에 모여 합동임관식을 거행했다. 원래 각군별 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에는 대통령이 항상 주관했었다. 그런데 MB시절 대통령의 스케줄이 너무 바쁘다보니 사관학교 행사에 전부 참석하기가 힘들었다. 같은 성격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행사에는 국방부 장관이 가고, 또 다른 자리에는 참모총장이 온다면 행사 주최 측의 입장에서는 차별받는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따라서 합동임관식은 순전히 군별, 출신별 임관식 행사에 대한 형평성을 위해서 생겨난 것으로도 볼 수도 있다. 6년간 진행된 합동임관식은 각군의 일체감을 조성하고 매년 대통령의 직접 참석에 따른 임관 장교들의 자부심을 높여준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매년 임관 예정 장교 및 가족 3만2000여 명이 행사 참석을 위해 계룡대로 이동함에 따라 각종 안전사고 발생 위험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또한, 각종 편의시설 부족과 교통체증 등으로 불편이 컸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더불어 각군 및 학교별 역사·전통 유지가 어렵고, 졸업식과 임관식이 별도로 진행되는 번거로움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다. 일부 주요 인사들을 위한 편의 위주 및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비판과 함께 약 일주일의 시차를 두고 졸업식과 별도로 임관식을 진행하는 번거로움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미국은 합동임관식을 안하고 대통령이 매년 한 개의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다. 우리나라처럼 임석상관의 개념이 아닌 초청연사 자격으로 참석한다. 초청연사의 역할은 사관학교 졸업생을 위해 장교로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의미의 조언과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군과 안보에 대한 정부의 생각을 발표하는 것이다. 실제 2017년의 경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육군사관하교에, 펜스 부통령은 해군사관학교에, 던퍼드 합참의장은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초청연사로 참석해 졸업생들을 위한 연설을 했다. 이에 국방부는 금년부터는 각군 및 학교별 졸업 및 임관식으로 환원하기로 결정했다. 국방부는 “환원 후 각군 사관학교 및 학생군사학교는 학교별 전통을 살리면서 신임장교와 가족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구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육·해·공사와 3사관학교, 국군간호사관학교, 학군교는 다시 환원된 행사를 위해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각 학교들은 졸업·임관식의 학교별 환원에 따라 3~4월 중 환원 후 첫 졸업 및 임관식을 실시할 예정으로, 각 특성을 살리는 행사를 위해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합동임관식은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중 행사로 거행돼 임관 장교 및 부모님들의 부담이 있었다”며 “학교 자체 행사를 치르게 돼 그러한 불편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학교별 자체 졸업 및 임관식 통합으로 행사 의미를 살리고 출신별로 특색 있는 임관식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 현역군인
- 전문가 분석
-
[전문가 분석] 장교합동임관식 폐지와 각 군별 행사로 환원된 사관학교 임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