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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전쟁 당시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인 최영섭 예비역 대령 별세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6·25 전쟁 당시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이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인 최영섭(해사 3기) 예비역 해군 대령이 8일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최 전 대령은 이날 새벽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으며,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화를 보내고,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고인은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 새벽 동해상으로 남하해 부산으로 침투하려던 북한 1천t급 무장 수송선을 대한해협에서 격침하는데 결정적 공을 세운 전쟁영웅이다. 대한해협 해전은 6·25 전쟁에서 우리나라 해군의 첫 승전 사례다. 당시 고인은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의 갑판사관(소위)이었고, 이후 인천상륙작전 등 6·25 주요 전투에도 참전해 공을 세웠으며, 1964년 우리나라 최초 구축함인 충무함의 제2대 함장이 됐다. 해군은 지난 4월 그의 일대기를 담은 ‘지략·용기·덕망을 겸비한 최영섭 대령’ 평전을 출간했다. 고인은 평전을 전달받은 자리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의 남은 가족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챙겨야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군 전사자 자녀를 위한 ‘바다사랑 장학금’으로 2018년과 2020년 각각 3천만원, 그리고 병세가 위중해진 올해 3월에도 1천만원 등 7천만원을 기부했다. 자신의 저서 판매수입과 강연료를 모은 돈이었다고 한다. 강원도 평강에서 태어난 고인은 해방 후 온 가족이 월남한 실향민이다. 대표적인 군인 명문가로, 동생 두 명은 해병대 대령과 해군 부사관으로 전역했고, 아들 넷 모두 육군 법무관 출신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비롯해 육·해·공군 장교로 복무했다. 손자 1명은 해병대 장교로 DMZ(비무장지대)에서 근무했고, 최 전 원장이 입양한 아들 2명도 병장으로 제대하여 고인은 평소 “자손들에게 가급적 최전방에서 근무하라고 했다”며 “나는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아우르는 통합사령관”이라고 자랑했다. 부친의 근무지였던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최 전 원장은 부친 간호에 진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8일 감사원장직 사퇴 이후 가족과 함께 지방에서 머무르다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경했다. 최 전 원장은 정치 참여를 선언하기 전에 부친과 상의해 결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인은 최 전 원장이 정치 참여를 상의하자 “소신껏 하라”고 당부했고, 특히 숨을 거두기 직전에는 “대한민국을 밝혀라”는 글을 적어 건넸다고 한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최 전 원장 외에 아들 재신(전 고려개발 사장), 재민(최재민소아병원장). 재완(광주대 교수) 씨가 있다. 오는 10일 발인 이후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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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9
  • 후임병 강제추행·가혹행위 등 혐의 받은 해병대 예비역 집행유예 2년 선고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해병대 복무 당시 후임 병사들에게 강제추행과 가혹행위 등을 한 20대 예비역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6일 강제추행과 특수협박, 위력행사 가혹행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22)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 보호관찰 1년과 사회봉사 120시간,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A씨는 해병대 모 부대 병장으로 복무하던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생활관 등에서 후임 병사들에게 뒷짐 지고 몸을 굽혀 머리를 땅에 박고 두 다리를 벽이나 책상에 걸치는 '메뚜기 자세'를 시키고 폭행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또 후임 병사들의 신체 일부를 만지며 추행하고, 둔기로 위협한 혐의도 받는다. A씨에게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후임 병사들은 11명에 이른다. 재판장은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대 생활에서 하급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점을 악용해 범행을 저지르는 등 죄질이 절대 가볍지 않다"며 "다만 피해자 일부와 합의했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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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6
  • 국가안보역사의 산증인 홍일식과 故 박찬세의 우정 "자네와 함께 한 세상 호기롭게 잘 살았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60년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 고려대 4·18의거의 주도자 박찬세 전 통일연수원장(고려대 교우회 고문, 향년 86세)이 코로나19 확진 후 입원 치료 중 6일 별세했다. 빈소는 11일 오후 5시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에 마련되어 13일 오전 9시 발인 후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영면에 들었다. 근세기 역사의 현장을 누비던 거목인 故 박찬세 전 통일연수원장이 영면에 들자, 박원장과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두 거인(巨人)의 우정을 지켜보며 감동하던 언론사 대표를 지낸 이강식씨(고려대 후배)가 ‘남이 봐도 되는 日記’를 보내왔다. 이를 통해 역사의 현장에서 누구에게나 가슴을 활짝 열고, 따뜻이 맞이하는 巨人이자 약하고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배려하는 大人이면서도 不義와 不敬을 용납 않는 단호한 포청천, 그래서 가는 곳마다 팬들이 북적이는 인기인이었던 故 박찬세 원장과 홍일식 전 총장 두 거인(巨人)의 우정 이야기를 공개한다. ■역사의 현장 속을 누비던 두 巨人의 감동적인 우정을 그린 ‘남이 봐도 되는 日記’ 전문 천학(淺學)인 데다, 과문(寡聞) 한 탓에 동서고금 인물들의 우정담(友情談)에 관해 아는 건 부처님과 마하가섭, 중국의 삼국지 삼 형제, 관중과 포숙, 그리고 우리나라의 유성룡-이순신, 다산-초의선사-추사, 익살맞은 치기로 우화를 남긴 오성-한음 정도일 뿐이다. 작심하고 찾아보면 꽤 있음 직도 하련만, 특히 근현대 산업화/민주화 이후 한국史에서 후세에 길이 전할 만큼 귀감이 될 '우정 교류' 얘기는 아쉽게도 얼핏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밤에 볏단을 서로 옮겨쌓는 형제의 동화가 있다만, 그것은 同氣간의 정이니, 벗들의 우정과는 좀 다르다.) 개인주의, 물질만능주의 팽배가 원인이기도 하겠으나, '우정'에 대한 절대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음은 아닐까. 말로만, 아쉬울 때만, 상대가 잘 나갈 때만 우정을 찾는 얍삭한 처세훈(處世訓)이 날로 보편화되어 그럴까. 헌데, 그런 시대 풍토에서도 이런 우정이 살아있더라. ■ 두 거인(巨人)인 박찬세 전 통일연수원장과 홍일식 전 고려대총장 한 사람은 '작은 거인'이다. 160cm가 채 안 되는 키, 말 그대로 단구(短軀) 임에도 누구나 그를 진정한 거인, '리틀 빅맨'이라 불렀으니. 또 한 사람은, 우선 외모로도 진짜 거인이다. 1950~60년대 靑年期엔 육 척 장신에 늠름한 어깨로 기골이 장대하다는 소릴 적지않이 듣기도 했단다. 두 사람 모두 '거인'으로 추앙되는 '참 이유'는 간명하다. 살아온 족적, 쌓아온 업적, 만인이 존경하는 인품 等等 족탈불급의 '큰 그릇'을 저마다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두 거인의, 부럽기 짝이 없는 '멋진 우정' 얘기를 남기고자 한다. 같이 걸으면, 누가 봐도 '언밸런스'라고 할 그들이 한 평생 우정의 꽃을 피우고, 지켜온 러브 스토리 -. 여문 작가가 소설로 엮으면 대박이 터지고 넘치리라. 1950년대 중반, 대학 저학년 시절에 만난 두 사람은 고대신문을 통한 글과 문장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고, 첫 상면 순간에 '평생의 벗'으로 점지됐음을 느꼈단다. 이후 근 70년 동안, 찰떡같은 밀애를 이어온 것이니. 그들이 서로 '통하는 바'는 '민족'이었다고 한다. 법학도와 국문학도로 각자의 主전공은 달랐으나, 민족문제를 놓고 괴로워한 젊은이들의 심혼(心魂)이 韓민족의 분(憤)과 원(怨)과 한(恨)을 화두로 놓고 늘 분방한 담론을 펼쳤고, 그러면서 情을 쌓았더란다. 그 습관이 그대로 이어져, 米壽가 멀지 않은 지금까지 무슨 특별한 사안이 없더라도, 입과 귀가 심심할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 만나서 수작(酬酌)을 곁들여 진지한 대화를 나누곤 했단다. 작게는 대소 집안일이나 주변 지인들 근황에서부터 민족, 나라, 인류의 미래까지 주제가 마를새 없었다고. 맛있는 먹거리, 귀한 술이 생겼을 땐, 가족보다 먼저 서로를 불러, 아이들처럼 둘이서 즐기곤 했다고도 한다. ■ 박찬세는 1960년 4월 고대신문 편집국장의 신분으로, 4.19의 도화선이 된 '고대 4.18 의거 선언문'을 쓰다. "질식할 듯한 기성 독재의 최후적 발악은 바야흐로 전체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만약 이와 같은 극단의 악덕과 패륜을 포용하고 있는 이 탁류의 역사를 정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세의 영원한 저주를 면치 못하리라. 동족의 손으로 동족의 피를 뽑고 있는 이 악랄한 현실을 어찌 방관하랴. 우리는 청년학도만이 진정한 민주역사 창조의 역군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여 총궐기하자." 이 기치를 들고 거리로 나선 노도(怒濤)의 고대생들이 그날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 시위를 마치고 귀교하던 중 깡패들에게 난타를 당하고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이 다음날 朝刊에 게재되면서 전 국민이 분연히 들고일어나 4.19 혁명의 큰 불길로 확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찬세는 졸업 한참 후, 그의 文才를 모셔간 정부에서 권력 핵심의 요직을 지내기도 했으나, 결국은 수구초심, 오랜 염원인 '민족통일'을 위한 기반 사업에 헌신했다. 통일원 15년, 그중 10년을 통일연수원장으로 일했으니, 오늘날 우이동 '통일연수원'이 그의 정성 어린 작품이다. ■ 홍일식은, 새삼 形言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의 어르신 홍일식은 36년 동안 高大 '민족문화연구소'를 지켜오는 내내 오직 '민족문화'를 부여안고, 국학 중흥의 초석을 놓았다. <한국문화사 대계>, <한국 민속 대관>, <中韓대사전> 등 그의 손으로 탄생시킨 국학연구의 보배들이 즐비하다. 당연한 행로인, 민족고대 13代 총장이 되어 그가 보여준 인본(人本)과 공선사후(公先私後)의 탁월한 리더십은 명문 사학 경영의 전범으로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玄民, 南齋, 그리고 芝薰을 열과 성으로 기리는가 하면 범국민을 대상으로 孝정신 함양 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가히 국학의 本山, 인문학의 巨峯이 바로 그다. ■ 그런 두 사람은 '닮은꼴'이 많다, "나의 벗 石岳, 자네와 함께 한 세상 호기롭게 잘 살았네. 곧 다시 만나기를 바라네" 누구에게나 가슴을 활짝 열고, 따뜻이 맞이하는 巨人 / 약하고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배려하는 大人 / 그러면서도 不義와 不敬을 용납 않는 단호한 포청천 / 그래서 가는 곳마다 팬들이 북적이는 인기인이라는 점. 현모양처와 해로했고, 자식들이 성실하게 잘 자랐으며, 一家가 더 없이 화목한 점도 똑같이 닮았다. 석악(石岳) 박찬세, 가석(可石) 홍일식. 아호(雅號)에 '돌石'을 함께 지닌 것도 천연(天緣)이다. (두 사람은 만나기 이전부터 아호를 가졌더란다.) 다만, 가무 음곡에 있어서는 석악이 한 수 위라, 그의 청탁 불문 엄청난 주량과 흥겨운 시가(詩歌)는 그대로 신화가 되어 '高大夜史'에 전해오고 있으니... 때로,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야, OO는 어떻고, OO는 네 말이 맞아." 평소 책이나 서간에선 석악兄, 가석兄 하던 분들이 둘만 있을 때 "야~, 자~" 하는 모습은 되레 보기 좋더라. 石岳이 팔순을 맞은 해, 어느 회고 글의 마지막 구절. "可石이 나의 친구라는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그런, 그들의 우정,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지난 3월 6일의 悲報 – ‘石岳 박찬세 급서(急逝)’. 아니, 이럴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보름 전만 해도 호방하게 폭탄주를 즐기시던 분이, 누구보다 산행도 잘하시고, 건강장수를 다짐하시던 분이 이처럼 허무하게 떠나시다니, 이렇게 황당할 수가... 두 거인의 우정의 끈, 한쪽 걸이가 떨어졌다. 그를 알고, 존경하고, 함께 지내온 모든 사람들에겐 진정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이라. 오늘, 可石이, 몸을 추스르며, 석별의 情을 전한다. "나의 벗 石岳, 자네와 함께 한 세상 호기롭게 잘 살았네. 곧 다시 만나기를 바라네. 可石 洪 一 植 읍소" 비통(悲痛)을 넘어 오관(五官)이 먹먹하다. 이제 누구에게서 '감식초酒'를 마셔볼 수 있을 거나. 한 분의 거인만이라도 오래 우리 곁에 남아계셔서 두 분의 우정담을 간간히 들려주시길 소망할 뿐이다. 근데, 아무래도, 지금... 눈물이 자꾸 앞을 가려, 자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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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8
  • 서욱 장관, 故 변희수 전 하사 관련 "트랜스젠더 군 복무 연구 필요" 밝혀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서욱 국방부 장관은 16일 성전환 후 강제전역 조치된 고(故) 변희수(23) 전 하사와 관련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문제에 대한 정책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서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국방부가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성전환수술 비용 지원 등과 관련해 연구를 한 사실이 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질문에 "아직은 없는데 이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미국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지에 대해서는 "트럼프 정부에서 안 됐다가, 바이든 정부 들어와 (허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서 장관은 "30개국 정도가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안보 환경이 우리나라와 비슷한데도 허용된다"는 김 의원의 지적에 대해 "정부마다 다른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고(故) 변희수(23) 전 하사는 2019년 휴가 중 외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와 계속 복무를 희망했으나 육군은 규정에 따라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리고 지난해 1월 전역을 결정했다. 전역 조치된 후 지난해 8월 육군을 상대로 복직 행정소송을 진행하던 중 지난 3일 오후 청주시 상당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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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6
  • [팩트포토] 정광식 예비역 대령-신원식 의원, “故 이재수 장군 명예회복 촉구” 1인 릴레이 시위…입춘한파 속 우정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정광식 예비역 대령과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입춘한파 속에 지난 2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故 이재수 장군 명예회복 촉구'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특히 정광식 예비역 대령은 이재수 장군과 육사37기 동기로 이 장군이 53사단장 시절 같은 부대의 부사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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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57)]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와 ‘피실격허(避實擊虛)’는 전쟁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손자병법 ‘허실(虛實)’편의 ‘무소불비 무소불과 (無所不備 無所不寡)’는 “준비가 부족한 곳이 하나도 없게 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라고 풀이된다. 즉 “전부를 다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은 전부가 부실하게 된다”는 뜻이다. 또 ‘피실격허 (避實擊虛)’는 “적의 강한 곳을 피하여 약한 곳을 공격한다”라는 뜻으로 선택과 집중, 집중과 절약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와 ‘피실격허(避實擊虛)’는 전쟁시 피아가 치열하게 전투를 할 때 전략 및 전술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허나 평시에는 사단 책임지역내 심심산골에 인적이 드문 지역이 산재되어 있어 그곳에서 침투한 간첩들이 은거해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취약지로 분류해 관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집중과 절약을 해야 한다는 손자병법의 의미와 상충되는 전 지역을 커버하는 취약지 관리가 필요했다 이러한 취약지역에 소대 또는 중대 단위로 상주하면서 주변 수색정찰도 하고 매복 및 전술훈련을 하면서 병사들의 훈련 수준도 배양하고 침투한 간첩 및 불순세력의 은거도 거부하는 ‘취약지 상주훈련’을 시행했다. 통상 ‘취약지 상주훈련’을 시행할 때에는 부대의 지휘권을 벗어난 타지역에서 해당 소·중대장의 독단적 판단에 의한 행동이 요구되어 반드시 차상급 지휘관에게 훈련계획을 사전에 보고했다. 필자도 사전 토의와 현장 확인을 통해 1주일간의 취약지 훈련계획을 준비하여 보고하자 연대장은 해당 지역이 격오지로 도로도 불량하여 이동 및 소통에 제한이 많기 때문에 적 접촉시 작전조치와 폭우 피해 및 환자 발생 등 우발상황에 철저히 대비하며 병력관리를 잘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 장거리 행군에 따른 허기 심해, 설익은 밥도 꿀맛 훈련출발 당일 먼저 선발대를 보냈다. 취사장 설치와 통신선 개설을 위해 중대 행정보급관(인사계)가 취사병, 통신병들을 대동하여 4분의 5톤 통신차를 타고 화천군 백적산(883.5m) 북방 구운리 만산동 계곡으로 출발했다. 군장검사를 마친 중대원들은 취약지역인 만산동 계곡까지 30km행군을 시작했다. 다행히 이규환 연대장님이 평소 행군과 태권도를 강조하여 매주 행군 훈련을 했던 덕분에 병사들은 행군에 익숙해 있었다. 필자는 전방 GOP연대 소속이었으나 이번 ‘취약지 상주훈련’ 장소는 사단 후방 인접사단과 근접한 지역으로 최전방 부대가 사단 책임지역의 최후방으로 이동하여 훈련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행군이 시작되었다. 중대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관불령을 넘어 신월동과 삼거리라고 불리는 봉오리를 통과해 다시 덕고개를 힘차게 넘었다. 필자가 근무한 지역은 첩첩산중(疊疊山中)이라는 단어가 꼭 맞는 산악지역이라 조금만 이동해도 길옆에 절벽과 벼랑 등 아찔하게 만드는 고개들이 산재해 있다. 행군 간에는 통상 50분 걷고 10분 휴식한다. 그러나 시간이 되어도 아찔한 벼랑 옆에서는 휴식을 하는 것이 위험하여 그나마 비교적 평탄한 곳을 정해야 했다. 쉬고 있다가 자칫 계곡 및 벼랑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대 행정보급관과 취사병들이 선발대로 투입된 탓에 점심은 주먹밥으로 대체했다. 행군 간에는 배가 든든해야 잘 걸을 수 있는데 허기가 지면 낙오할 수도 있어 건빵을 추가로 휴대했지만 20대 청년들의 허기를 채울 수는 없었다. 오후 늦게 만산동 골짜기에 도착했다. 군장을 풀고 바로 주변 능선에 소대별로 개인 텐트를 설치하며 숙영준비를 했다. 그때 먼저 도착해 준비한 저녁식사가 분배되었다. 야전에서의 취사에 숙달되지 않은 취사병들이라 설익은 밥이었지만 꿀맛이었다. 미식별 천연동굴서 은거흔적 발견, 불온전단 회수하고 독립가옥 신원확인 박영일 중령의 노마지지(老馬之智), 정확한 취약점을 찾아내 “마음은 언제나 태양..!”, 의기에 차 정열을 불태웠던 시절 중대 상황실 텐트에 당직 소대장을 근무시키고 야간 야외점호를 한 뒤 취침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조 점호 후에 계획된 주변 취약지역 수색정찰을 시작했다. 모든 일에는 분명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소대장들에게 경쟁을 붙였다. 각자의 수색 책임지역에서 미식별된 은거가능한 천연동굴이나 은거 흔적을 찾으라고 했으며 북에서 뿌려진 불온전단을 가능한 많이 회수하고, 심신 산골에 홀로 있는 독립가옥은 필히 방문해서 신원을 확인하도록 강조했다. 각 소대를 수색정찰에 투입시키고 숙영지 텐트 상태를 재점검하고 있는데 멀리서 짚차 한대가 오는 것이 보였다. 사단 작전참모 박영일 중령(육사25기, 소장 예편)이었다. 필자는 취약지 상주훈련 계획과 현재 각 소대가 수색정찰 중임을 설명하면서 숙영지를 안내했다. 그런데 사단 작전참모는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훈련 계획은 잘 수립했으나 취사장 위치가 잘못 되었다며(상단의 만산동계곡 사진을 참고로) “숙영지와 분리하여 계곡 건너에 취사장을 설치하면 만약 집중 호우 발생시에 계곡물이 불어나 식사추진 및 철수시 위험할 수 있으니 조정하라”는 것이었다. 각 텐트는 능선쪽으로 올려 있어 안전하지만 취사를 위해 급수가 용이한 물이 흐르는 계곡 건너에 설치된 취사장의 안전 취약점을 지적하며 추가로 사단에서 만산동으로 이동하는 도로가 부실하니 도로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지시를 하고는 어깨를 두드리며 현장을 떠났다. 작전참모는 그해 가을에 대령으로 진급하여 사단의 참모장을 거친 뒤 훗날 인접 연대장으로 취임했다. 필자보다 선배로서 지내온 많은 군생활 경험이 정확한 취약점을 찾아냈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사자성어처럼 선배는 역시 선배였다. 필자는 유선으로 대대장에게 작전참모의 방문과 지적 및 추가 지시사항을 보고했고 대대장은 즉시 시정 후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오후가 되자 소대별로 복귀를 했다. 역시 결과 위주의 훈련을 강조한 탓에 수개의 은거 가능한 천연동굴을 찾아냈고, 많은 불온전단들을 수거하는 성과도 올렸다. 저녁 식사 준비시간인 자유시간에는 아직 유단증을 못 받은 중대원들을 모아 태권도 교육도 병행했다. 주둔지가 아닌 야외라는 것이 오히려 저조자들에게 개별지도를 할 수 있게 되어 차후 심사를 대비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날이 저물자 야간 분·소대 전술훈련도 했다. 다음날부터는 작전참모 지시대로 사단본부까지 도로 보수도 병행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타중대와 함께 대대장의 통제를 받는 것을 벗어나 중대 단독으로 훈련을 하는 것이 상급 및 인접 부대의 눈치를 안보게 되어 더 효과적인 훈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훈련 마지막 날 밤이 되었다. 점호 후 전 중대원이 텐트로 들어가 취침을 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났는데 당직 소대장이 보고할 것이 있다고 해서 상황실 텐트로 나갔다. 소대장들이 모여 있었다. 책상에는 약간의 더덕이 놓여 있었고 잠시 후 행보관이 막걸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잠시 망설였으나 모처럼의 자리라 합석을 하였다. 소대별 수색활동시 전단과 함께 수거한 자연산 더덕 안주에 들이키는 막걸리가 너무도 좋았다. 더불어 그동안 함께 근무하면서 느꼈던 보람과 애로점들을 서로 나누며 한마음으로 단결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칼럼을 쓰는 지금, 중대장시절 그때 고락을 함께했던 소대장 김태정, 우광호, 변상훈, 이동호들의 의기에 찼던 그때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마음은 언제나 태양..!”구호 아래 한마음이 되어 항상 신나고 즐겁게 정열을 불태웠던 시간이었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0-12-1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2) ‘마음은 언제나 태양..!’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마음을 녹이는 ‘마음은 언제나 태양’구호로 上下同欲者勝을..손자병법 제3편 모공(謨攻)편에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이란 말이 있다. '상관과 부하의 뜻이 같으면 승리한다' 뜻으로 지휘관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야 된다는 것으로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8-11-27
  • 5.18 계엄군 성폭력 가해자, 38년만에 사법처리 추진될 듯
    (시큐리티팩트=전승혁 기자) 수십년 동안 ‘풍문’으로 머물러왔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의혹’이 정부 공식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38년만에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수사 및 사법처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 전역군인
    • 종합
    2018-10-3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⑥ 忍耐하는, 餘裕있는, 確實한 軍人...!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필자가 승리부대에서 초급장교로 근무한 것을 따져보니 약 8년 정도였다. 소위로 임관해서 소령진급 예정자가 되어서야 아스팔트를 밟을 수 있었다. 육군대학 교육을 마치고 수도방위사령부로 보직을 받았기 됐기 때문이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8-10-30
  • 샴포 前 미 8군사령관, "남북 군사합의에 北장사정포 빠져 유감“
    (시큐리티팩트=김효진 기자) 버나드 샴포 前 미 8군 사령관이 남북 군사합의서에 북한의 장사정포를 후방으로 철수하는 문제가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26일 보도했다.
    • 전역군인
    • 종합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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