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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9)]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신 장군은 중장 지휘관 보직인 특전사령관을 마치고 참모 보직중 최요직인 합참 작전본부장직을 수행했으며 이때 박선우 중장 등 동기들은 군단장 등 1차 보직을 수행중이었다. 동기들보다 그동안의 직책 자력이 더 좋았고 그것도 최요직에만 발탁되었다. 대장으로 진급한 신현돈 장군은 2013년에 전역한 박성규(3사10기) 대장의 뒤를 이어 1군사령관에 취임해 성공적인 지휘를 하고 있었다. 헌데 이듬해 대비태세 기간 중이었으나 육본 지침에 의해 모교 방문 행사에 참석했다가 음주 및 민간인과의 실랑이 사건이 터졌다. 사실은 그 민간인이 복장 규정을 모르는 오해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나중에 신 장군을 만난 그는 자신의 실수에 어쩔줄 몰라하며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 장군은 보이지않는 압박도 있었지만 2014년 9월2일, 군 전체에 영향을 끼칠까 걱정하며 과감하게 책임을 지고 미련없이 스스로 전역하여 견인포가 아닌 자주포임을 증명했다. 헌데 얼마뒤 국회에서 군의 최고 계급인 대장을 정확히 확인도 안하고 무리하게 전역 조치했다는 이의도 제기된 바 있다. 또한 2014년 11월경 여러 언론에서 그의 경질이 조금은 억울한 처사라는 보도가 게재됐다. 연합TV뉴스에 따르면 당시에 신 장군은 인사불성으로 취한 것도 아니었고, 모교 행사에 방문하는 것도 사전에 육군본부에 보고하여 허가를 받은 일이며, 휴게소 화장실에서 민간인과 신체를 접촉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고 화장실에서 사람(사령관)이 쓰고 있으니 다른 곳 이용하라는 부관의 말이 왜곡된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복장이 해이했다는 신고 또한 상의를 바지에 넣지 않는 신형 전투복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이 신고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시기에 좋든 싫든 술을 마신 것이 잘한 행동은 아니어도, 국방부에서 사실관계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일단 잘라버리며 사건을 성급히 종결했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게다가 국방부 감찰관실에서도 음주 추태는 없었다며 다시 말을 바꾸었다. 이 때문에 신현돈 대장의 전역에 관해선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정짓지 않고 무작정 군 최고 계급의 장성을 전역시켰다는 국방부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허나 전역한 후에도 자주포 신현돈 장군은 청주의 모 대학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들 양성을 위해 자신의 열정과 노하우를 전수하여 가장 인기 높은 명교수로 존경을 받으며 참군인의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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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8)]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초도 업무보고시에 사단장의 극찬을 받았던 쭈구리 신현돈 대대장은 1955년 충북 괴산군 신기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목도 초등 및 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주시로 유학해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육사 35기로 입교하여 1979년 소위로 임관했다. 위관급 장교 시절에는 국군기무사령부(당시 보안사)에서 근무하다가 소령 진급하자 본인의 강력한 의사 표현을 통해 다시 야전으로 복귀했을 때 필자의 전임 작전보좌관이었다. 이후 승승 장구하여 대령시절에는 육본 기획홍보과장, 합참 합동작전과장 등을 지냈다. 준장으로 진급한 뒤 3군 작전처장과 합참 등 작전직능 보직에서 주로 근무했고, 국방부 대변인 임무 수행시에는 모언론의 ’돌발영상‘에 제일 많이 등장한 군인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소장 시절에 1사단장, 합참 작전본부 작전기획부장, 중장 시절에 특전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 군사지원본부장을 역임했다. 육사 35기 중 선두주자로 대장 진급에 가장 유력했던 커리어를 갖췄다. 동기생 중 신현돈, 박선우 2명만이 중장 1차 진급을 했으며 결국 이 두명이 대장진급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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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7)]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장이 대대장실 앞에 도착하자, 대대장직을 수행하던 신현돈 중령은 도열한 참모들과 함께 경례하며 영접을 했다. 헌데 짚차에서 내린 사단장 이영대 소장은 첫마디로 “어이, 쭈구리 그동안 잘 있었나..?”하며 신 대대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사단장 초도방문에 긴장해 있던 신 중령 본인은 어리둥절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신 중령의 별명은 생도시절에는 ‘아가리’였다. 입이 유난히 크며 말을 잘하는 달변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굴에 주름이 많은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얼굴이 주름으로 쭈글쭈글하다고 ‘쭈그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단사령부에서 예하부대까지 이동하는 동안에 필자는 사단장에게 방문할 부대의 작전 임무와 환경 및 대대장의 특징 등에 대해 보고했다. 수방사 작전장교 시절에 직속상관인 참모장으로 남태령으로 부대를 이전하는 사업에 함께 고생했던 탓인지 수행하는 필자에게 허물없이 이것저것 물어보던 사단장에게 우스갯소리로 신 대대장의 별명 ‘쭈구리’를 이야기했다. 별명을 듣던 사단장은 달리는 차가 흔들릴 정도로 호탕하게 껄껄 웃으시며 “맞어, 신현돈 중령 별명을 누가 지었는지... 잘 만들었어...ㅋ”하면서 “대대장 부임전에 사단 작전보좌관 근무했으니 업무에 빈틈이 없겠군... 잘하고 있지?”라며 신뢰 의미의 반문을 던졌다. 첫 만남의 대화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된 대대 초도 방문 업무보고는 신 중령 얼굴의 주름처럼 경험의 노하우와 의기에 가득차서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목소리부터 사단장을 매료시켰다. 특히 사단 지침이 내려오기도 전에 전투준비와 교육훈련에 관련해서 본인이 착안하여 시행하며 제시한 내용들은 사단장을 흡족하게 만들었고, 사단장은 ‘부대의 임무도 중요하지만 오늘 보고를 받으니 상급 및 인접부대에 사단을 대표할 수 있는 대대이다’라며 극찬했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사단장은 필자에게 군생활에 가르침을 주는 명언을 남겼고 얼마후 지휘관회의에서도 언급했다. “신 중령은 본인이 대대장으로서 스스로 착안해서 전투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바로 이것이 軍간부의 자세이다”라면서 “軍간부는 견인포가 아닌 자주포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훗날, 신현돈 중령은 다음 사단장이 부임한 후에도 자신의 능력과 지휘통솔력을 인정받으며 대대장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사단사령부의 작전참모로 영전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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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6)]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상급부대 지휘관이 새롭게 부임하면 업무 파악을 위해 예하 부대를 방문하여 업무보고를 받으며 현장을 확인한다. 무적태풍부대 사단장 이영대(학군4기) 소장도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예하 부대 확인 방문을 시작했다. 빨리 부대를 파악하고 분석하여 임기동안 부대를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를 차상급부대 지휘관에게 업무보고를 해야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비서실장과 협조하여 중요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부터 우선 방문하도록 사단장 시간 계획에 반영했고 참모들이 번갈아 수행하도록 조치했다. 한편 군단장 및 군사령관 초도 업무보고 일정이 하달되어 사단장은 더 급해졌다. 특히 작전 계획이나 업무보고를 참모가 아닌 사단장이 직접 보고하도록 강조가 되어 연습도 필요했고, 임기동안 부대를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헌데 사단장의 예하부대 초도방문시 수행할 참모들이 업무로 바쁘다보니 필자가 수행하여 예하부대를 방문해야될 상황이 있었는데, 우연히도 그 부대를 작전보좌관 전임자 신현돈 중령이 지휘하고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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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근 군인공제회이사장, 회한의 사직 메일(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인공제회 김유근 이사장은 셋번째 사임 이유로 “최근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이사장으로서 회사업무에 전념하지 못하는 모습이 임직원 여러분에게 떳떳하지 못하며, 이런 상황이 오래가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사임 이유에 앞서 그는 “그동안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합니다. 경제가 어려워 모두가 더 합심해야 하는 준엄한 시기에 이사장이 예고 없이 사임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라며 회한을 표현했다. 그리고 “1년 반, 짧은 기간에 공제회가 놀라울 정도로 변화했습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여러분 스스로 극복한 지혜와 능력이며 결단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고민과 열정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사장이 중도에 그만두는 상황에도 공제회가 동요 없이 차분하게 업무에 전념하는 분위기가 유지되기를 희망합니다”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김유근 이사장은 재직기간에 군인공제회가 그동안의 당기순이익이 년 평균 800여억에서 작년에 예년 평균 4배, 3,500억원 달성 신화를 시스템으로 탄탄하게 구축한 것은 누가 뭐라해도 직원들의 사업능력이 대내외적으로 검증된 것으로 여기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사람은 바뀌어도 공제회는 시스템적으로 흔들림 없이 전진해야 냉혹한 경쟁현실 속에서 살아 남아 100년 기업으로 나갈 수 있다며, 임직원 모두가 지금처럼 언제나 파이팅하되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이니 '여러분의 건강과 체력이 회사의 힘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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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근 군인공제회이사장, 회한의 사직 메일(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27일 아침 군인공제회 산하 전 직원은 한통의 가슴을 울리는 이메일을 충격적으로 받았다. “임직원 여러분 ! 여러분과 함께 회사에 헌신하고 있는 ...”라고 시작된 이메일은 다름아닌 현재 군인공제회 이사장인 김유근 예비역 중장의 사임 인사 글이었다. 김유근 이사장은 충북 청주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 36기로 졸업하며 소위로 임관하여 장군진급 후에 육군본부 전력기획처장, 8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 제8군단장, 육군 참모차장, 합참 합동참모차장을 역임한 후 육군중장으로 전역하였다. 이후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단장을 잠시 거친 후인 2019년 2월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실 제1차장으로 재직했으며 2021년 2월부터 제15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근무했다. 김 이사장은 사임 인사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사임하는 소회를 피력했다. “사임하는 이유는 첫째, 새정부가 출범하고 새로운 군수뇌부가 갖추어졌습니다. 새로운 군수뇌부를 중심으로 확고한 지휘체계가 수립되어야 합니다. 공제회는 국방부의 지도, 감독을 받는 기관입니다. 신임장관에게 '지휘부담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새 술은 새 그릇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적절한 시기에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지금이 때가 된 듯 합니다. 둘째, 자리 연연하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상황이 변했는데 3년 임기를 끝까지 하려는 것 그건 욕심이고 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군과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했기에 이 정도에서 잘 마치려고 합니다. 오히려 1년 반이지만 여기서 봉직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혜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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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현충원 제2충혼당 1층 임시 사용승인…오늘부터 신규 안장 시작
-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국립서울현충원은 4일부터 신규 안장되는 국가유공자를 제2충혼당에 안장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제2충혼당 1층에 대한 임시 사용승인을 얻었다고 전했다. 2006년 3월부터 사용된 기존 충혼당은 지난 2020년 7월 만장됐다. 이에 현재까지 2800위(배우자 포함 3400여위)의 유공자가 임시안치실에 안장됐다. 제2충혼당은 2018년부터 건립이 시작돼 내달 완료될 예정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3만 2744위를 안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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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현충원 제2충혼당 1층 임시 사용승인…오늘부터 신규 안장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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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이버안전연합회 혁신비전 선포식에서 최차규 전 공군총장 2대 회장으로 취임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사이버안전연합회는 지난 29일 한국폴리텍대학 서울강서캠퍼스 대강당에서 '2021 혁신비전 선포식'을 개최했고 이 행사에서 최차규 전공군참모총장이 국가사이버안전연합회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날 행사는 연합회의 재창설과 향후 비전을 공유하고, 국가사이버안전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연합회의 역할 정립, 타 단체와의 유대관계 통한 사이버 세상 안전과 발전을 주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2017년 출범한 국가사이버안전연합회는 '안전한 사이버 세상 구현'을 목표로, 범국민 계도와 사이버 관련 법체계 구축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왔다. 이번에 새로이 취임한 최차규 회장은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데, 그는 취임사를 통해 ''안전한 사이버 세상 구현으로 국민의 안전한 생활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진 혁신 비전 발표에서는 정보과학기술혁신포럼 박순모 박사가 '국가사이버거버넌스 혁신(안)'을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국가사이버안전청의 신설을 주장했다. 이송희 교수는 대국민 사이버세상 의식 및 환경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모바일 사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PC와 모바일 모두 해킹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고 발표했다. 또한 가상자산가치평가원 원장인 박재경 폴리텍대 교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변화와 혁신'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가상자산과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이버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경제질서에 관심을 갖고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2021 국가사이버안전연합회 혁신비전 선포식에는 한국안보협업연구소와 함께 한국학술정보원, 한국컴퓨터정보학회, 한국정보보호기술연구원, 가상자산가치평가원, 소프트웨어교육혁신센터 및 국가기관, 포소드, 씨앤에프시스템, 어빌리시스템즈, 에이넥스코리아 등이 참여하여 협업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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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이버안전연합회 혁신비전 선포식에서 최차규 전 공군총장 2대 회장으로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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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 접견…“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동맹” 언급
-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서욱 국방부 장관이 방한한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전우회(KDVA) 회장(전 한미연합사령관)을 접견하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 국방부가 30일 밝혔다. 국방부에 따르면, 서 장관은 전날 국방부를 방문한 브룩스 회장에게 연합사령관 재직 때와 함께 전역 후에도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해줘서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브룩스 회장은 이에 한미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동맹이라면서 연합방위태세 강화를 통한 한미동맹의 지속적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2016년 4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한미연합사령관을 지낸 그는 전역한 뒤 2020년 11월부터 KDVA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날 개최된 ‘한미동맹 미래평화 콘퍼런스’와 내달 1일 열리는 ‘한미동맹의 밤 행사’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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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 접견…“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동맹”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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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남침전쟁의 예수와 영웅’에게 무공·국민훈장 수여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7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최초로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이하여 미국 참전용사 故 에밀 조세프 카폰(Emil Joseph Kapaun) 군종 신부와 호주 참전용사인 콜린 니콜라스 칸(Colin Nicholas Khan)장군에게 각각 태극무공훈장과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 ‘유엔군 참전용사 훈장 수여식’에서 “참전으로 맺어진 혈맹의 인연을 되새기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겠다”면서 “역대 대통령 최초로 ‘유엔군 참전의 날’에 훈장을 수여하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 ‘한국전쟁의 예수’ 故 에밀 카폰 군종 신부의 헌신적 생애 에밀 카폰 신부는 6·25남침전쟁 당시 미국 군종 신부로 참전해 '한국전쟁의 예수', ‘6.25전쟁의 성인’으로 불렸다. 이날 훈장 수여식에는 조카인 레이먼드 카폰이 대한민국 최고 등급인 태극무공훈장을 대리 수상했고, 염수정 서울대교구장 추기경과 주한 교황대사 대리인 페르난도 레이스 몬시뇰,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가 참석했다. 캔자스주 필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940년 사제 서품을 받은 카폰 신부는 1950년 7월 군종 신부로 6·25남침전쟁에 파견됐다. 그의 소속 부대인 미 1기병사단 8기병연대 3대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원산까지 진격했지만, 같은 해 11월 한국전에 불법 참전한 ‘중공군’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부대에는 곧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카폰 신부는 중공군 포위를 뚫고 탈출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부상병들을 돌보기 위해 전선에 남았다. 그는 통나무와 지푸라기로 참호를 만들어 부상병을 대피시켰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가 결국 중공군의 포로가 됐다. 하지만 포로수용소에서도 카폰 신부는 자신보다 포로가 된 동료 병사들을 돌보는 데 헌신했고, 그 와중에 이질과 폐렴에 걸려 1951년 5월23일 35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장에서 꽃핀 카폰 신부의 박애 정신은 포로가 되었다가 살아남은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고, 1954년 그의 생애를 담은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라는 책으로 발간됐다. 한국에는 1956년 당시 신학생이었던 故 정진석 추기경이 ‘종군신부 카폰’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판을 내면서 처음 소개됐다. 이후 그는 ‘한국전의 예수', ‘6·25 전쟁의 성인'으로 불리워왔다. 故 정 추기경은 ‘지난 3월 미국 하와이주 국립태평양 묘지에 안장된 신원 미상의 참전용사 유해 중에서 카폰 신부의 유골이 확인됐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고, 출간된 개정판의 서문에 추가하는 구술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카폰 신부는 전쟁터에서 인류애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미국 정부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교황청 시성성(순교·증거자의 시복·시성 담당)은 1993년 카폰 신부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했고, 카폰 신부 출신 교구가 성인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염 추기경은 “카폰 신부님이 태극무공훈장을 받게 돼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고 감사하다”며 “이 땅에서 전쟁 중 목숨을 바친 분들, 우리나라를 위해 참전한 유엔군 청년들의 고귀한 죽음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에밀 카폰 신부 유족에게 6.25전쟁 당시 카폰 신부가 착용하던 십자가가 달린 철모를 구현한 기념물을 선물하였다. 대리 수상한 레이먼드 카폰은 “이 훈장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6.25남침전쟁 참전용사 및 전사자들께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며 “다시 한번 저희 삼촌을 대신하여 감사드린다. 대한민국은 저의 마음속에 특별한 자리로 남았기 때문에 꼭 다시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 호주 왕립연대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콜린 칸 장군,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문 대통령은 이어진 수여식에서 한국전쟁 때 파병된 호주군의 업적을 말하며 “호주왕립연대 소대장이었던 칸 장군님은 죽음의 고비를 넘긴 뒤 전쟁 후에는 대한민국 발전상을 호주 전역에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며 “전쟁 때 함께 싸웠고, 전후 복구에도 큰 힘이 되어준 장군님과 호주 참전용사들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은 칸 장군의 조카 손녀인 캐서린 엘리자베스 칸(Katherine Elisabeth Khan)이 대리 수상했다. 문 대통령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칸 장군의 유족에게도 호주군이 참전했던 가평전투를 기리는 가평석 기념석패를 선물했다. 칸 장군의 조카 증손녀 이매진 스미스는 “콜린 칸 증조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오늘 훈장 수여식 참석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한국어로 말한 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참석하지 못해 굉장히 아쉬워하셨는데, 이 영광스러운 상과 영예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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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남침전쟁의 예수와 영웅’에게 무공·국민훈장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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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인 최영섭 예비역 대령 별세
-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6·25 전쟁 당시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이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인 최영섭(해사 3기) 예비역 해군 대령이 8일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최 전 대령은 이날 새벽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으며,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화를 보내고,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고인은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 새벽 동해상으로 남하해 부산으로 침투하려던 북한 1천t급 무장 수송선을 대한해협에서 격침하는데 결정적 공을 세운 전쟁영웅이다. 대한해협 해전은 6·25 전쟁에서 우리나라 해군의 첫 승전 사례다. 당시 고인은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의 갑판사관(소위)이었고, 이후 인천상륙작전 등 6·25 주요 전투에도 참전해 공을 세웠으며, 1964년 우리나라 최초 구축함인 충무함의 제2대 함장이 됐다. 해군은 지난 4월 그의 일대기를 담은 ‘지략·용기·덕망을 겸비한 최영섭 대령’ 평전을 출간했다. 고인은 평전을 전달받은 자리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의 남은 가족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챙겨야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군 전사자 자녀를 위한 ‘바다사랑 장학금’으로 2018년과 2020년 각각 3천만원, 그리고 병세가 위중해진 올해 3월에도 1천만원 등 7천만원을 기부했다. 자신의 저서 판매수입과 강연료를 모은 돈이었다고 한다. 강원도 평강에서 태어난 고인은 해방 후 온 가족이 월남한 실향민이다. 대표적인 군인 명문가로, 동생 두 명은 해병대 대령과 해군 부사관으로 전역했고, 아들 넷 모두 육군 법무관 출신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비롯해 육·해·공군 장교로 복무했다. 손자 1명은 해병대 장교로 DMZ(비무장지대)에서 근무했고, 최 전 원장이 입양한 아들 2명도 병장으로 제대하여 고인은 평소 “자손들에게 가급적 최전방에서 근무하라고 했다”며 “나는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아우르는 통합사령관”이라고 자랑했다. 부친의 근무지였던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최 전 원장은 부친 간호에 진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8일 감사원장직 사퇴 이후 가족과 함께 지방에서 머무르다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경했다. 최 전 원장은 정치 참여를 선언하기 전에 부친과 상의해 결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인은 최 전 원장이 정치 참여를 상의하자 “소신껏 하라”고 당부했고, 특히 숨을 거두기 직전에는 “대한민국을 밝혀라”는 글을 적어 건넸다고 한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최 전 원장 외에 아들 재신(전 고려개발 사장), 재민(최재민소아병원장). 재완(광주대 교수) 씨가 있다. 오는 10일 발인 이후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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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인 최영섭 예비역 대령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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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병 강제추행·가혹행위 등 혐의 받은 해병대 예비역 집행유예 2년 선고
-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해병대 복무 당시 후임 병사들에게 강제추행과 가혹행위 등을 한 20대 예비역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6일 강제추행과 특수협박, 위력행사 가혹행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22)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 보호관찰 1년과 사회봉사 120시간,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A씨는 해병대 모 부대 병장으로 복무하던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생활관 등에서 후임 병사들에게 뒷짐 지고 몸을 굽혀 머리를 땅에 박고 두 다리를 벽이나 책상에 걸치는 '메뚜기 자세'를 시키고 폭행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또 후임 병사들의 신체 일부를 만지며 추행하고, 둔기로 위협한 혐의도 받는다. A씨에게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후임 병사들은 11명에 이른다. 재판장은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대 생활에서 하급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점을 악용해 범행을 저지르는 등 죄질이 절대 가볍지 않다"며 "다만 피해자 일부와 합의했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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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병 강제추행·가혹행위 등 혐의 받은 해병대 예비역 집행유예 2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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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역사의 산증인 홍일식과 故 박찬세의 우정 "자네와 함께 한 세상 호기롭게 잘 살았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60년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 고려대 4·18의거의 주도자 박찬세 전 통일연수원장(고려대 교우회 고문, 향년 86세)이 코로나19 확진 후 입원 치료 중 6일 별세했다. 빈소는 11일 오후 5시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3호에 마련되어 13일 오전 9시 발인 후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영면에 들었다. 근세기 역사의 현장을 누비던 거목인 故 박찬세 전 통일연수원장이 영면에 들자, 박원장과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두 거인(巨人)의 우정을 지켜보며 감동하던 언론사 대표를 지낸 이강식씨(고려대 후배)가 ‘남이 봐도 되는 日記’를 보내왔다. 이를 통해 역사의 현장에서 누구에게나 가슴을 활짝 열고, 따뜻이 맞이하는 巨人이자 약하고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배려하는 大人이면서도 不義와 不敬을 용납 않는 단호한 포청천, 그래서 가는 곳마다 팬들이 북적이는 인기인이었던 故 박찬세 원장과 홍일식 전 총장 두 거인(巨人)의 우정 이야기를 공개한다. ■역사의 현장 속을 누비던 두 巨人의 감동적인 우정을 그린 ‘남이 봐도 되는 日記’ 전문 천학(淺學)인 데다, 과문(寡聞) 한 탓에 동서고금 인물들의 우정담(友情談)에 관해 아는 건 부처님과 마하가섭, 중국의 삼국지 삼 형제, 관중과 포숙, 그리고 우리나라의 유성룡-이순신, 다산-초의선사-추사, 익살맞은 치기로 우화를 남긴 오성-한음 정도일 뿐이다. 작심하고 찾아보면 꽤 있음 직도 하련만, 특히 근현대 산업화/민주화 이후 한국史에서 후세에 길이 전할 만큼 귀감이 될 '우정 교류' 얘기는 아쉽게도 얼핏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밤에 볏단을 서로 옮겨쌓는 형제의 동화가 있다만, 그것은 同氣간의 정이니, 벗들의 우정과는 좀 다르다.) 개인주의, 물질만능주의 팽배가 원인이기도 하겠으나, '우정'에 대한 절대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음은 아닐까. 말로만, 아쉬울 때만, 상대가 잘 나갈 때만 우정을 찾는 얍삭한 처세훈(處世訓)이 날로 보편화되어 그럴까. 헌데, 그런 시대 풍토에서도 이런 우정이 살아있더라. ■ 두 거인(巨人)인 박찬세 전 통일연수원장과 홍일식 전 고려대총장 한 사람은 '작은 거인'이다. 160cm가 채 안 되는 키, 말 그대로 단구(短軀) 임에도 누구나 그를 진정한 거인, '리틀 빅맨'이라 불렀으니. 또 한 사람은, 우선 외모로도 진짜 거인이다. 1950~60년대 靑年期엔 육 척 장신에 늠름한 어깨로 기골이 장대하다는 소릴 적지않이 듣기도 했단다. 두 사람 모두 '거인'으로 추앙되는 '참 이유'는 간명하다. 살아온 족적, 쌓아온 업적, 만인이 존경하는 인품 等等 족탈불급의 '큰 그릇'을 저마다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두 거인의, 부럽기 짝이 없는 '멋진 우정' 얘기를 남기고자 한다. 같이 걸으면, 누가 봐도 '언밸런스'라고 할 그들이 한 평생 우정의 꽃을 피우고, 지켜온 러브 스토리 -. 여문 작가가 소설로 엮으면 대박이 터지고 넘치리라. 1950년대 중반, 대학 저학년 시절에 만난 두 사람은 고대신문을 통한 글과 문장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고, 첫 상면 순간에 '평생의 벗'으로 점지됐음을 느꼈단다. 이후 근 70년 동안, 찰떡같은 밀애를 이어온 것이니. 그들이 서로 '통하는 바'는 '민족'이었다고 한다. 법학도와 국문학도로 각자의 主전공은 달랐으나, 민족문제를 놓고 괴로워한 젊은이들의 심혼(心魂)이 韓민족의 분(憤)과 원(怨)과 한(恨)을 화두로 놓고 늘 분방한 담론을 펼쳤고, 그러면서 情을 쌓았더란다. 그 습관이 그대로 이어져, 米壽가 멀지 않은 지금까지 무슨 특별한 사안이 없더라도, 입과 귀가 심심할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 만나서 수작(酬酌)을 곁들여 진지한 대화를 나누곤 했단다. 작게는 대소 집안일이나 주변 지인들 근황에서부터 민족, 나라, 인류의 미래까지 주제가 마를새 없었다고. 맛있는 먹거리, 귀한 술이 생겼을 땐, 가족보다 먼저 서로를 불러, 아이들처럼 둘이서 즐기곤 했다고도 한다. ■ 박찬세는 1960년 4월 고대신문 편집국장의 신분으로, 4.19의 도화선이 된 '고대 4.18 의거 선언문'을 쓰다. "질식할 듯한 기성 독재의 최후적 발악은 바야흐로 전체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만약 이와 같은 극단의 악덕과 패륜을 포용하고 있는 이 탁류의 역사를 정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세의 영원한 저주를 면치 못하리라. 동족의 손으로 동족의 피를 뽑고 있는 이 악랄한 현실을 어찌 방관하랴. 우리는 청년학도만이 진정한 민주역사 창조의 역군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여 총궐기하자." 이 기치를 들고 거리로 나선 노도(怒濤)의 고대생들이 그날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 시위를 마치고 귀교하던 중 깡패들에게 난타를 당하고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이 다음날 朝刊에 게재되면서 전 국민이 분연히 들고일어나 4.19 혁명의 큰 불길로 확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찬세는 졸업 한참 후, 그의 文才를 모셔간 정부에서 권력 핵심의 요직을 지내기도 했으나, 결국은 수구초심, 오랜 염원인 '민족통일'을 위한 기반 사업에 헌신했다. 통일원 15년, 그중 10년을 통일연수원장으로 일했으니, 오늘날 우이동 '통일연수원'이 그의 정성 어린 작품이다. ■ 홍일식은, 새삼 形言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의 어르신 홍일식은 36년 동안 高大 '민족문화연구소'를 지켜오는 내내 오직 '민족문화'를 부여안고, 국학 중흥의 초석을 놓았다. <한국문화사 대계>, <한국 민속 대관>, <中韓대사전> 등 그의 손으로 탄생시킨 국학연구의 보배들이 즐비하다. 당연한 행로인, 민족고대 13代 총장이 되어 그가 보여준 인본(人本)과 공선사후(公先私後)의 탁월한 리더십은 명문 사학 경영의 전범으로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玄民, 南齋, 그리고 芝薰을 열과 성으로 기리는가 하면 범국민을 대상으로 孝정신 함양 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가히 국학의 本山, 인문학의 巨峯이 바로 그다. ■ 그런 두 사람은 '닮은꼴'이 많다, "나의 벗 石岳, 자네와 함께 한 세상 호기롭게 잘 살았네. 곧 다시 만나기를 바라네" 누구에게나 가슴을 활짝 열고, 따뜻이 맞이하는 巨人 / 약하고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배려하는 大人 / 그러면서도 不義와 不敬을 용납 않는 단호한 포청천 / 그래서 가는 곳마다 팬들이 북적이는 인기인이라는 점. 현모양처와 해로했고, 자식들이 성실하게 잘 자랐으며, 一家가 더 없이 화목한 점도 똑같이 닮았다. 석악(石岳) 박찬세, 가석(可石) 홍일식. 아호(雅號)에 '돌石'을 함께 지닌 것도 천연(天緣)이다. (두 사람은 만나기 이전부터 아호를 가졌더란다.) 다만, 가무 음곡에 있어서는 석악이 한 수 위라, 그의 청탁 불문 엄청난 주량과 흥겨운 시가(詩歌)는 그대로 신화가 되어 '高大夜史'에 전해오고 있으니... 때로,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야, OO는 어떻고, OO는 네 말이 맞아." 평소 책이나 서간에선 석악兄, 가석兄 하던 분들이 둘만 있을 때 "야~, 자~" 하는 모습은 되레 보기 좋더라. 石岳이 팔순을 맞은 해, 어느 회고 글의 마지막 구절. "可石이 나의 친구라는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그런, 그들의 우정,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지난 3월 6일의 悲報 – ‘石岳 박찬세 급서(急逝)’. 아니, 이럴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보름 전만 해도 호방하게 폭탄주를 즐기시던 분이, 누구보다 산행도 잘하시고, 건강장수를 다짐하시던 분이 이처럼 허무하게 떠나시다니, 이렇게 황당할 수가... 두 거인의 우정의 끈, 한쪽 걸이가 떨어졌다. 그를 알고, 존경하고, 함께 지내온 모든 사람들에겐 진정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이라. 오늘, 可石이, 몸을 추스르며, 석별의 情을 전한다. "나의 벗 石岳, 자네와 함께 한 세상 호기롭게 잘 살았네. 곧 다시 만나기를 바라네. 可石 洪 一 植 읍소" 비통(悲痛)을 넘어 오관(五官)이 먹먹하다. 이제 누구에게서 '감식초酒'를 마셔볼 수 있을 거나. 한 분의 거인만이라도 오래 우리 곁에 남아계셔서 두 분의 우정담을 간간히 들려주시길 소망할 뿐이다. 근데, 아무래도, 지금... 눈물이 자꾸 앞을 가려, 자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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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역사의 산증인 홍일식과 故 박찬세의 우정 "자네와 함께 한 세상 호기롭게 잘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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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장관, 故 변희수 전 하사 관련 "트랜스젠더 군 복무 연구 필요" 밝혀
- [시큐리티팩트=김한경 기자] 서욱 국방부 장관은 16일 성전환 후 강제전역 조치된 고(故) 변희수(23) 전 하사와 관련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문제에 대한 정책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서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국방부가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성전환수술 비용 지원 등과 관련해 연구를 한 사실이 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질문에 "아직은 없는데 이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미국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지에 대해서는 "트럼프 정부에서 안 됐다가, 바이든 정부 들어와 (허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서 장관은 "30개국 정도가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안보 환경이 우리나라와 비슷한데도 허용된다"는 김 의원의 지적에 대해 "정부마다 다른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고(故) 변희수(23) 전 하사는 2019년 휴가 중 외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와 계속 복무를 희망했으나 육군은 규정에 따라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리고 지난해 1월 전역을 결정했다. 전역 조치된 후 지난해 8월 육군을 상대로 복직 행정소송을 진행하던 중 지난 3일 오후 청주시 상당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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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장관, 故 변희수 전 하사 관련 "트랜스젠더 군 복무 연구 필요"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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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포토] 정광식 예비역 대령-신원식 의원, “故 이재수 장군 명예회복 촉구” 1인 릴레이 시위…입춘한파 속 우정
- [시큐리티팩트=김상규 기자] 정광식 예비역 대령과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입춘한파 속에 지난 2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故 이재수 장군 명예회복 촉구'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특히 정광식 예비역 대령은 이재수 장군과 육사37기 동기로 이 장군이 53사단장 시절 같은 부대의 부사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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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포토] 정광식 예비역 대령-신원식 의원, “故 이재수 장군 명예회복 촉구” 1인 릴레이 시위…입춘한파 속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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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57)]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와 ‘피실격허(避實擊虛)’는 전쟁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손자병법 ‘허실(虛實)’편의 ‘무소불비 무소불과 (無所不備 無所不寡)’는 “준비가 부족한 곳이 하나도 없게 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라고 풀이된다. 즉 “전부를 다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은 전부가 부실하게 된다”는 뜻이다. 또 ‘피실격허 (避實擊虛)’는 “적의 강한 곳을 피하여 약한 곳을 공격한다”라는 뜻으로 선택과 집중, 집중과 절약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와 ‘피실격허(避實擊虛)’는 전쟁시 피아가 치열하게 전투를 할 때 전략 및 전술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허나 평시에는 사단 책임지역내 심심산골에 인적이 드문 지역이 산재되어 있어 그곳에서 침투한 간첩들이 은거해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취약지로 분류해 관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집중과 절약을 해야 한다는 손자병법의 의미와 상충되는 전 지역을 커버하는 취약지 관리가 필요했다 이러한 취약지역에 소대 또는 중대 단위로 상주하면서 주변 수색정찰도 하고 매복 및 전술훈련을 하면서 병사들의 훈련 수준도 배양하고 침투한 간첩 및 불순세력의 은거도 거부하는 ‘취약지 상주훈련’을 시행했다. 통상 ‘취약지 상주훈련’을 시행할 때에는 부대의 지휘권을 벗어난 타지역에서 해당 소·중대장의 독단적 판단에 의한 행동이 요구되어 반드시 차상급 지휘관에게 훈련계획을 사전에 보고했다. 필자도 사전 토의와 현장 확인을 통해 1주일간의 취약지 훈련계획을 준비하여 보고하자 연대장은 해당 지역이 격오지로 도로도 불량하여 이동 및 소통에 제한이 많기 때문에 적 접촉시 작전조치와 폭우 피해 및 환자 발생 등 우발상황에 철저히 대비하며 병력관리를 잘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 장거리 행군에 따른 허기 심해, 설익은 밥도 꿀맛 훈련출발 당일 먼저 선발대를 보냈다. 취사장 설치와 통신선 개설을 위해 중대 행정보급관(인사계)가 취사병, 통신병들을 대동하여 4분의 5톤 통신차를 타고 화천군 백적산(883.5m) 북방 구운리 만산동 계곡으로 출발했다. 군장검사를 마친 중대원들은 취약지역인 만산동 계곡까지 30km행군을 시작했다. 다행히 이규환 연대장님이 평소 행군과 태권도를 강조하여 매주 행군 훈련을 했던 덕분에 병사들은 행군에 익숙해 있었다. 필자는 전방 GOP연대 소속이었으나 이번 ‘취약지 상주훈련’ 장소는 사단 후방 인접사단과 근접한 지역으로 최전방 부대가 사단 책임지역의 최후방으로 이동하여 훈련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행군이 시작되었다. 중대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관불령을 넘어 신월동과 삼거리라고 불리는 봉오리를 통과해 다시 덕고개를 힘차게 넘었다. 필자가 근무한 지역은 첩첩산중(疊疊山中)이라는 단어가 꼭 맞는 산악지역이라 조금만 이동해도 길옆에 절벽과 벼랑 등 아찔하게 만드는 고개들이 산재해 있다. 행군 간에는 통상 50분 걷고 10분 휴식한다. 그러나 시간이 되어도 아찔한 벼랑 옆에서는 휴식을 하는 것이 위험하여 그나마 비교적 평탄한 곳을 정해야 했다. 쉬고 있다가 자칫 계곡 및 벼랑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대 행정보급관과 취사병들이 선발대로 투입된 탓에 점심은 주먹밥으로 대체했다. 행군 간에는 배가 든든해야 잘 걸을 수 있는데 허기가 지면 낙오할 수도 있어 건빵을 추가로 휴대했지만 20대 청년들의 허기를 채울 수는 없었다. 오후 늦게 만산동 골짜기에 도착했다. 군장을 풀고 바로 주변 능선에 소대별로 개인 텐트를 설치하며 숙영준비를 했다. 그때 먼저 도착해 준비한 저녁식사가 분배되었다. 야전에서의 취사에 숙달되지 않은 취사병들이라 설익은 밥이었지만 꿀맛이었다. 미식별 천연동굴서 은거흔적 발견, 불온전단 회수하고 독립가옥 신원확인 박영일 중령의 노마지지(老馬之智), 정확한 취약점을 찾아내 “마음은 언제나 태양..!”, 의기에 차 정열을 불태웠던 시절 중대 상황실 텐트에 당직 소대장을 근무시키고 야간 야외점호를 한 뒤 취침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조 점호 후에 계획된 주변 취약지역 수색정찰을 시작했다. 모든 일에는 분명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소대장들에게 경쟁을 붙였다. 각자의 수색 책임지역에서 미식별된 은거가능한 천연동굴이나 은거 흔적을 찾으라고 했으며 북에서 뿌려진 불온전단을 가능한 많이 회수하고, 심신 산골에 홀로 있는 독립가옥은 필히 방문해서 신원을 확인하도록 강조했다. 각 소대를 수색정찰에 투입시키고 숙영지 텐트 상태를 재점검하고 있는데 멀리서 짚차 한대가 오는 것이 보였다. 사단 작전참모 박영일 중령(육사25기, 소장 예편)이었다. 필자는 취약지 상주훈련 계획과 현재 각 소대가 수색정찰 중임을 설명하면서 숙영지를 안내했다. 그런데 사단 작전참모는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훈련 계획은 잘 수립했으나 취사장 위치가 잘못 되었다며(상단의 만산동계곡 사진을 참고로) “숙영지와 분리하여 계곡 건너에 취사장을 설치하면 만약 집중 호우 발생시에 계곡물이 불어나 식사추진 및 철수시 위험할 수 있으니 조정하라”는 것이었다. 각 텐트는 능선쪽으로 올려 있어 안전하지만 취사를 위해 급수가 용이한 물이 흐르는 계곡 건너에 설치된 취사장의 안전 취약점을 지적하며 추가로 사단에서 만산동으로 이동하는 도로가 부실하니 도로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지시를 하고는 어깨를 두드리며 현장을 떠났다. 작전참모는 그해 가을에 대령으로 진급하여 사단의 참모장을 거친 뒤 훗날 인접 연대장으로 취임했다. 필자보다 선배로서 지내온 많은 군생활 경험이 정확한 취약점을 찾아냈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사자성어처럼 선배는 역시 선배였다. 필자는 유선으로 대대장에게 작전참모의 방문과 지적 및 추가 지시사항을 보고했고 대대장은 즉시 시정 후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오후가 되자 소대별로 복귀를 했다. 역시 결과 위주의 훈련을 강조한 탓에 수개의 은거 가능한 천연동굴을 찾아냈고, 많은 불온전단들을 수거하는 성과도 올렸다. 저녁 식사 준비시간인 자유시간에는 아직 유단증을 못 받은 중대원들을 모아 태권도 교육도 병행했다. 주둔지가 아닌 야외라는 것이 오히려 저조자들에게 개별지도를 할 수 있게 되어 차후 심사를 대비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날이 저물자 야간 분·소대 전술훈련도 했다. 다음날부터는 작전참모 지시대로 사단본부까지 도로 보수도 병행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타중대와 함께 대대장의 통제를 받는 것을 벗어나 중대 단독으로 훈련을 하는 것이 상급 및 인접 부대의 눈치를 안보게 되어 더 효과적인 훈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훈련 마지막 날 밤이 되었다. 점호 후 전 중대원이 텐트로 들어가 취침을 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났는데 당직 소대장이 보고할 것이 있다고 해서 상황실 텐트로 나갔다. 소대장들이 모여 있었다. 책상에는 약간의 더덕이 놓여 있었고 잠시 후 행보관이 막걸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잠시 망설였으나 모처럼의 자리라 합석을 하였다. 소대별 수색활동시 전단과 함께 수거한 자연산 더덕 안주에 들이키는 막걸리가 너무도 좋았다. 더불어 그동안 함께 근무하면서 느꼈던 보람과 애로점들을 서로 나누며 한마음으로 단결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칼럼을 쓰는 지금, 중대장시절 그때 고락을 함께했던 소대장 김태정, 우광호, 변상훈, 이동호들의 의기에 찼던 그때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마음은 언제나 태양..!”구호 아래 한마음이 되어 항상 신나고 즐겁게 정열을 불태웠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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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57)]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와 ‘피실격허(避實擊虛)’는 전쟁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