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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역군인 인생 2막](3) 윤동일 한국열린사이버대 교수(상) 병마 이기고 ‘전쟁 인문학자’로 변신
    ▲ 2017년 39사단에서 장병들에게 강의 중인 윤동일 교수. [사진제공=윤동일 교수] 뉴스투데이는 군에서 장기간 복무 후 전역한 직업 군인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인생 2막’을 새롭게 펼쳐나가는 성공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전역 예정 장병들의 미래 설계는 물론 다른 직종에서 퇴직한 분들의 인생 후반부 준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역군인 인생 2막’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윤동일 교수, 본지와 인터뷰서 "전쟁과 인간 삶의 관련성 알리고 싶어" '전쟁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영역 개척해 '인생 2막' 점차 꽃피워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윤동일(56) 한국열린사이버대 특임교수는 전쟁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을 가진 학자다. 그는 전쟁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소위 ‘전쟁 인문학’ 분야를 한국에서 최초로 개척해 가는 인물이다. 전쟁 인문학이란 용어도 그의 개인적 견해이고, 아직까지 학문적으로는 정립되지 않았다. 윤동일 교수는 지난 달 말 뉴스투데이 서초동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전쟁에 대해 대중들이 부정적 이미지만 갖고 있어 전쟁과 인간 삶의 관련성을 알리고 싶었다"며 "아직 전쟁 인문학자로서 모든 면에 미흡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인생 2막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전쟁 인문학에 담긴 그의 시선은 독창적이다. 예컨대 올림픽 종목은 전투상황을 가정한 스포츠라고 주장한다. 마라톤은 지휘관의 명령을 전달하는 전령이 죽을힘을 다해 달렸던 전투에서 따왔고, 축구 또한 전쟁의 필요에 의해 고안된 군사훈련 종목이라고 한다. 강인한 체력으로 빠른 공격력을 구사하는 독일축구를 전차군단이라 칭하는데, 강력한 전차가 빠른 속도로 적의 핵심을 제압했던 독일군의 ‘전격전’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의 남다른 행적은 평소 가졌던 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2001년 학위가 없었던 그는 국방부 추천으로 헬싱키 경제대학원 MBA(경영학 석사) 과정에 늦깎이 학생이 됐다. 당시 교수나 원우로부터 “전략이나 리더십 관련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것이 계기가 돼 전쟁의 흔적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전쟁과 경영의 학제 간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2009년 전쟁 인문학 입문, 병마와 싸우면서 ‘인생 2막’ 방향 설정 이런 그의 관심이 싹튼 것은 2009년 경영 전문지인 ‘동아비즈니스리뷰’에 특별 기고를 하면서 시작됐다. 전쟁에서 의사소통 수단인 그림(작전상황도)을 갖고 경영에 접목하자는 내용이었는데, 반응이 좋아 후속 기고와 특강 요청을 받게 됐다. 이후 “어렵고 힘들 때 나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으로 생각해 틈만 나면 관련 연구에 몰두했다. 현직 군인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연구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즐겁게 임했다. ▲ 윤동일 교수가 2009년 경영 전문지 ‘동아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 [자료제공=윤동일 교수] 2012년 국방일보의 문을 처음 두드려 ‘군대와 스포츠’란 제목의 연재를 시작했다. 현대 스포츠는 고대 올림픽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대부분이 전투와 관련된 것이라는 주장을 관련 사료와 함께 제시했다. 불과 7개월의 연재였지만 “올림픽은 그리스군의 전투방식을 반영해 전쟁을 대비했다”는 그의 주장은 상당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글은 곧바로 문체부의 스포츠 블로그에 초청돼 스포츠 전문가들과 2년 동안 연재를 이어가기도 했다. 윤 교수는 그저 제복이 좋아 군문에 들어선 대다수 군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순탄하지 않은 군 생활로 여러 위기가 닥치면서 굴곡진 여정으로 내몰렸고, 급기야 2013년에 찾아온 갑작스런 뇌경색과 합병증은 결국 그토록 좋아했던 군을 떠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장기간 입원하며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다가 “군인의 길은 여기서 멈추지만, 군과 후배들에게 의미 있는 읽을거리 하나를 남기겠다”고 결심한다. 퇴원 후 2014년 첫 번째 책인 ‘모든 스포츠는 전쟁에서 나왔다’ 발간 2013년 말 퇴원한 윤 교수는 남은 군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군과 후배에게 남기는 메시지를 담아 ‘모든 스포츠는 전쟁에서 나왔다’란 책을 펴냈다. 스포츠의 전쟁 기원설에 대한 구체적인 주장과 세부 종목연구로는 처음이었다. ▲ 윤동일 교수가 2014년 발간한 첫 번째 책(왼쪽)과 2018년 발간한 두 번째 책 표지. [사진제공=인터파크] 이 책에서 윤 교수는 방대한 사료와 연구를 통해 “고대 스포츠는 곧 나라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전시 필요한 전투기술을 평시 숙달할 수 있도록 고안된 군사훈련”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페르시아와 몽골의 민속경기 종목이 그들의 전쟁 방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인해 보기를 권하면서 “모든 스포츠는 전쟁에서 유래한 군인들의 군사훈련”이라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이 책의 발간을 위해 전쟁 인문학 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1인 출판사도 만들었다. 전쟁의 신이자 군인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위하여”라는 그리스어 ‘아테(AΘE)’를 출판사 이름으로 정했다. 당시 일부 출판사에서 무상 인쇄 제의도 받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직접 출간하기로 결심했다. 힘들어도 자신의 뜻대로 책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건강 문제로 53세 전역, 2018년 ‘축구 전쟁’ 펴내며 전성기 돌입 이후 건강 문제 등으로 더 이상 군 생활이 어려워진 윤 교수는 2016년 53세의 나이에 중령으로 전역했다. 시력의 50퍼센트를 잃고, 장기 손상 등으로 신체능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지만 존재 이유와 같은 연구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이미 책도 한 권 펴냈고 가끔 강연 요청도 들어왔기에 그는 전역 이후 인생 2막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전쟁 관련 연구를 마음껏 하면서 본격적인 집필활동과 강의를 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 윤동일 교수가 2017년 11월부터 주 1회 패널로 출연 중인 국군방송의 ‘국방 FM이 좋다’ 프로그램. [사진제공=국군방송] 윤 교수의 연구에 대한 집념과 노력은 국방일보 기획 연재와 국군방송 출연 등으로 이어졌다. 그는 2016년 ‘전쟁과 음악’이란 제목으로, 2017년 ‘방패 & 로고’란 제목으로 국방일보에 글을 기고했다, 또 2017년 11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1회씩 국군방송의 ‘국방 FM이 좋다’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해 ‘전쟁과 문명’이라 주제로 얘기하고 있다. 국군정신전력원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도 3년째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2018년 윤 교수는 자신의 두 번째 책인 ‘축구 전쟁-축구의 또 다른 이름 전쟁’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올림픽의 기원인 고대 스포츠 종목은 전사의 개인전투기술 숙달에는 유용하지만 집단전투를 기본으로 하는 그리스 전투방식을 충족하진 못했다”면서 “그 해답이 바로 축구에 있다”고 주장했다. 즉 올림픽이 전사양성 종목이라면 축구는 부대훈련 종목이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 전역군인
    2019-05-06
  • [전역군인 인생 2막](2)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하) 안보교육을 넘어 국악 보급의 선구자로 자리매김
    ▲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문화사업 일환으로 군부대 공연을 지원하는 예술단 ‘군락’의 단원들과 공연 장면. [사진제공=국방국악문화진흥회] 뉴스투데이는 군에서 장기간 복무 후 전역한 직업 군인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인생 2막’을 새롭게 펼쳐나가는 성공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전역 예정 장병들의 미래 설계는 물론 다른 직종에서 퇴직한 분들의 인생 후반부 준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역군인 인생 2막’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국군아리랑, 대한국군 등 전통 국악 ‘軍歌’ 창작해 교육 활용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변상문 이사장은 최근 뉴스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우리 소리 즉 국악이 대한민국의 정신이며 얼이고 혼”이라면서 “그럼에도 일본 요나누키 음계의 노래가 마치 우리 것 인양 사회에서 불리고 심지어 군가(軍歌)마저도 70% 이상이 일본풍”이라고 말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그는 전통 국악으로 창작한 군가인 국군아리랑, 대한국군, 탈북아리랑, 통일아리랑 등을 만들어 장병 교육 및 공연에 활용하고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가 많이 훼손된 데다, 그 이후 학교교육을 통해서도 이를 회복시키지 못해 우리 것보다 외국 가곡 중심의 음악교육을 하는 등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변 이사장은 군의 기상나팔도 미국의 남북전쟁에 악상을 둔 트럼펫 연주라면서 “우리 젊은이들이 남북전쟁 악상에 근원을 둔 나팔 소리를 들으며 아침에 잠을 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팔 소리 대신 우리나라 북 소리를 들려주면 긍정·도전·적극적 심리를 자극해 사고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트럼펫 연주곡을 북소리로 바꿀 것을 정책 제안하여 국방부가 검토 중에 있다. 군 특성에 맞는 ‘풍물놀이’ 개발해 문체부와 군부대 교육사업 진행 변 이사장은 “2014년 10월 유네스코에 세계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풍물놀이가 군사훈련 모습을 전통 놀이 형식의 종합 국악으로 표현한 예술”이라면서 “군에서 풍물놀이를 생활화하면 전통문화 보존과 함께 부대 단합을 도모하고 전우애도 고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 특성에 맞는 풍물놀이 상품을 이미 개발해 2015년부터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 군부대를 대상으로 풍물 교육 사업을 진행 중이다. ▲ 국방국악문화진흥회는 2015년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군부대를 대상으로 풍물놀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방국악문화진흥회] 2016년에는 서울시 주최로 일반 시민 및 학생을 대상으로 역사문화 탐방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 변 이사장은 3·1 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아리랑과 뽕짝, 100년을 노래하다’란 교육공연 상품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세종연구소에서 연수 중인 고위공무원단, 국제대학교 재학생, 서울시 종로구 골목 해설사 등을 대상으로 실시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외에도, 과거 안보교육 위주였던 민방위 교육이 서울시와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인문학 교육으로 대치되자 이에 맞는 찾아가는 인문학 공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일제 강점기 의열투쟁사를 그린 ‘음악극 뉴스 스페셜’과 의병·독립군·광복군 이야기인 ‘주파수 1919’ 등으로 2017년부터 서울시 광진구·양천구 등을 대상으로 공연을 곁들인 민방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 의병·독립군·광복군 이야기인 ‘주파수 1919’의 첫 장면. 12가지 인문학 공연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사진제공=국방국악문화진흥회] 다음 달 새롭게 시작하는 창작극 공연에선 ‘辯士’로 직접 출연 그는 오는 5월 11일 돈화문 국악당에서 ‘작금(昨今)의 소리, 나(我), 성(聲), 사(史)’를 공연 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연이다. ‘소리’를 의인화 하여 우주가 열린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와 문화를 ‘소리’라는 주인공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다. 출연진, 관객이 ‘소리’라는 나로 변신한 배우가 돼 함께 진행하며, 변 이사장은 변사(辯士)로 공연을 이끌어 간다. 또한 변 이사장은 평양 기생 왕수복 공연을 기획하며 통일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있다. 왕수복은 1930년대 서도소리를 하는 기생이었으나 우리 소리가 대중가요에 밀리면서 대중가수로 변신한다. 요즘 말로 10대 가수왕에 등극한 인물이다. 광복 후 월북하여 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 교수 김광진과 결혼했고 북한 공훈배우로 대접 받다가 2004년에 이승을 떠났다. 그의 삶 속에 우리의 근·현대사가 농축돼 있다. 그녀의 삶을 통해 남과 북의 같은 문화가 무엇인지 조명하면서 오랜 분단의 시기를 극복하는 것이 공연 의도이다. “무대 위에 올린 사연과 풍류는 통일을 향한 민족의 염원을 담은 것”이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 금년 5월부터 공연하는 ‘작금의 소리, 나, 성, 사’의 출연진. 좌로부터 변 이사장, 판소리꾼 최한이, 경기민요 김보성, 해금연주 윤세비. [사진제공=국방국악문화진흥회] 한반도 전쟁 역사에서 희생된 군인들 위무하는 ‘굿판’ 무대 추진 변 이사장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 역사에서 죽은 군인들의 넋을 달래는 굿판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6·25전쟁 때 죽은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군인들을 위무하는 민속 문화 행사를 전쟁기념관 마당에서 개최하는 것이 중장기 목표이자 꿈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서울 굿(국가 무형문화재 104호)을 비롯한 12개 굿판을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는 “굿이 문화재로 보일 때 유·무형 문화재의 본질이 가슴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사무실을 나올 때, 인터뷰 도중 그가 던진 한 마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마음을 흔들었다. “모두가 대중가요를 따라갈 때, 누군가는 국악의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우리의 역사가, 우리의 문화가 살아서 숨 쉬지 않을까요?”
    • 전역군인
    2019-04-21
  • [전역군인 인생 2막] (2)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상) 국악인을 ‘군통령’ 만드는 안보교육 전문가
    ▲ 1사단에서 국악공연 후 국방TV와 인터뷰 중인 변상문 이사장. [사진제공=국방국악문화진흥회] 뉴스투데이는 군에서 장기간 복무 후 전역한 직업 군인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인생 2막’을 새롭게 펼쳐나가는 성공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전역 예정 장병들의 미래 설계는 물론 다른 직종에서 퇴직한 분들의 인생 후반부 준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역군인 인생 2막’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기무부대장 출신 변 이사장, 안보 강의에 국악공연 곁들인 독창적 정신교육 창안 뉴스투데이와 인터뷰서 “국악과 전통문화 알려 민족정기와 얼 살리겠다” 밝혀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국방국악문화진흥회 변상문 이사장은 ‘발상의 전환’이라는 수식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만큼 파격적인 ‘인생 2막’을 실현했다. 기무부대장 출신이면서 ‘국악의 세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그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국방과 국악의 접목을 시도했다. 국방국악문화진흥회는 2013년 12월 9일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국방부 설립 허가를 받은 교육·연구·문화공연 전문 단체이다. 법인 설립 후, 매년 국방부 사업계획에 따라 장병 정신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금년에도 국방부 및 육·해·공군의 다양한 부대에서 상당히 많은 횟수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교육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군인의 안보의식과 군인정신 고취를 위한 강의 컨텐츠를 만든 후, 이 구성에 맞는 국악과 판소리 등 전통가요를 적절히 곁들여 강의와 공연이 접목되는 독특한 형태로 실시된다. 즉 안보강사와 20대 공연자가 함께 만드는 매우 독창적인 교육 방식이어서 장병들의 호응도 좋다고 한다. ▲ 변상문 이사장과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안보강사들. [사진제공=국방국악문화진흥회] 기자가 국방국악문화진흥회를 방문한 지난 4월 초순 변상문 이사장은 금년도 강의 컨텐츠에 대한 강사들의 연구강의를 받고 있었다. 강사들은 시나리오대로 연기하는 배우처럼 강의 컨텐츠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고, 강의에 참여하는 공연자와 호흡도 맞춰야 했다. 변 이사장은 본인이 직접 시연하면서 강사의 강의 진행기술을 지도했다. 12가지 교육·공연 프로그램 개발하고 ‘군락’ 등 자체 예술단 공연 진행 또한 국방국악문화진흥회에서는 자체 개발한 12가지 교육·공연 프로그램을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각급 부대에서 이 내용을 보고 부대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교육을 지원하기도 한다. 안성맞춤형 눈높이 교육이다. 이외에, 자체 예술단인 ‘군락(軍樂)’은 매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는 문화사업에 참여하여 대대급 이하 부대를 대상으로 전통국악 공연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역시 자체 예술단인 ‘두빛들이’와 ‘세빛들이’에서는 군 장병과 일반인 대상으로 전통국악과 대중가요를 융합한 공연도 진행한다. ▲ 예술단 ‘군락(軍樂)’의 공연에서 진도북춤을 추는 ‘군통령’ 구명서 명무. [사진제공=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와 같이 장병 정신교육의 대부분을 담당하며 단기간에 성장한 국방국악문화진흥회는 변상문 이사장이 이끌고 있다. 그는 3사관학교를 졸업(19기)하고 소위로 임관해 기무부대에서 대부분의 군 생활을 했다. 2000년 당시 35사단 기무부대장으로 재직하며 우연히 판소리를 접한 후 문화적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우리 소리와 악기에 관심을 갖고 배우기 시작했다. 국악과 판소리에 빠져 행복한 자신 느껴...‘장금도’ 명무 만나며 결심 굳혀 국악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2012년 32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대령으로 전역할 때 육군회관에서 국악공연으로 전역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 동국대 대학원에서 국악이론을 전공하며 전문지식도 넓혔지만 그 정도로는 자신 안에 내재된 국악과 판소리에 대한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국악과 판소리에 미쳐 10여년 이상 전국 팔도를 돌며 우리나라의 예인들을 만나고 그 문화 속에 빠져 지냈다. 그들과 어울려 국악의 향연에 빠질 때마다 행복한 자신을 느끼면서 국악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는 “한국문화재재단이 진행한 프로그램 ‘꽃 마중 길에 만난 마지막 해어화’를 통해 일제 강점기 기생조합인 권번 출신 ‘장금도’ 명무(名舞)를 만난 것이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장금도는 기생이라서 군산시 개복동에 깊이 숨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민살풀이춤(살풀이 장단에 맞춰 수건 없이 맨손으로 추는 춤) 명무가 돼 국립국악원 무대에 올랐다. 그 날 기생인 어미를 부끄럽게 여겨 의절했던 아들이 꽃다발을 들고 어미 장금도를 축하해 줬다. 50년 만에 이뤄진 엄마와 아들의 화해였다. ▲ 지난 2007년 10월 제1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호남 민살풀이춤을 선보이는 조갑녀(84), 장금도(79, 오른쪽) 등 두 사람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춤 인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그랬던 아들은 2년 후 월남전 참전 고엽제 후유증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어미는 그 아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기 위해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 민살풀이춤을 췄다. 변 이사장은 “장금도 명무의 삶 자체가 대한민국의 근대사이고 현대사”라면서 “그 분의 삶을 보며 전통문화와 국악 역사에 몰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일 위해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 개척 국방국악문화진흥회는 이와 같이 자기 내면의 소리에 충실히 응답했던 한 사람이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든 결정체로서, 뜻을 같이 하는 지인 몇몇이 그의 결단에 힘을 보태어 탄생했다. 그는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일을 위해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즉 이전에 없던 새로운 직업을 창조한 것이다. 변 이사장은 “매년 20만 명의 민간인이 군인이 되고 같은 규모의 군인이 민간인이 된다”면서 “장병들에게 국악과 전통문화를 알려 민족의 정기와 얼을 되살려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전역 이후 돈을 버는 경제의 길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가치의 길에서 고민했다”며 “후자를 선택했으니 온 정성을 다해 제2의 인생을 살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 편에 계속)
    • 전역군인
    2019-04-14
  • [전역군인 인생 2막] (1) 강웅식 한국이집트발전협회(KEDA) 회장(하) 이집트와 소통하며 ‘사업 분야’ 다각화
    ▲ 지난해 11월 강웅식 회장(왼쪽 두 번째)이 학술 교류가 활발히 진행 중인 BUC 대학을 방문해 엘 칼라 BUC 총장(왼쪽 네 번째) 및 총리 출신의 아브라함 마흐렙 이집트 KEDA 명예회장(오른쪽 세 번째)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KEDA] 뉴스투데이는 군에서 장기간 복무 후 전역한 직업 군인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인생 2막’을 새롭게 펼쳐나가는 성공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전역 예정 장병들의 미래 설계는 물론 다른 직종에서 퇴직한 분들의 인생 후반부 준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역군인 인생 2막’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언청이 환자 수술, 인천대-BUC 간 학생 교환 등 다양한 자선봉사와 학술 교류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한국이집트발전협회(KEDA)는 2018년 11월 가난한 이집트 장애인 환자들을 위한 진료소 설립에 현지 콥트교 교황을 통해 2만 달러를 기부했다. 또 빈곤한 농가들이 재정적 자립을 할 수 있게 친환경 양계장 2개소를 설립하는 시범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이어 한국 최고의 언청이 수술 전문의인 정필훈 전 서울대 치과대학원장이 자신을 후원하는 단체의 예산으로 언청이 환자 21명을 무료 수술하는 행사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자선봉사 활동을 추진하였다. KEDA는 또한 학술문화 교류 활동으로 2018년 12월 인천대와 카이로 바드르(BUC) 대학 간 2 2 학생교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인천대와 BUC 대학에서 각각 2년씩 교육받으면 졸업 시 양 대학으로부터 복수학위를 받는 프로그램이다. 또 인천대 의과대학 일부를 BUC 대학에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또 BUC 대학 석좌교수로 위촉된 강 회장은 대학 내에 한국어과와 한국문화연구센터를 개설하기 위해 안철주 KEDA 수석부회장을 2018년 7월부터 BUC 장학생으로 아랍어과에서 수업 받게 하는 등 관련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 지난해 11월 정필훈 전 서울대 치과대학원장이 이집트 아인 샴스 치과대학에서 언청이 수술을 집도하고 환자의 상태를 살펴본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KEDA] 한국기업 선호도 높고 정부 분위기도 가장 우호적...비즈니스 성과 나오는 중 강 회장은 "이집트 정부는 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외국 기업의 진출을 적극적으로 반기고 있다"면서 "그중에서도 한국 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무척 높아 엘시시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분위기가 역대 가장 우호적이다"고 말했다. 양국 산업 발전을 위해 KEDA가 지금까지 추진한 비즈니스도 서서히 성과가 나오고 있다. 2018년 11월 아랍산업화기구인 AOI(Arab Organization for industrialization)와 KEDA는 "상호 합작사업 시 각각을 창구로 한다"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AOI는 국방 및 민수물자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평시 이사회를 통해 중요 의사결정을 하는데, 이사회 회장은 이집트 대통령이며 국무총리, 국방장관, 외교부장관, 산자부장관, 투자부장관, 방산물자부(MOMP) 장관이 상임이사다. 이집트 방산협회(AOI)와 KEDA 간 MOU 체결..."상호 합작사업 창구로" "프로젝트 제안은 AOI에서, 기술은 한국에서, 자금은 아랍국가에서 제공한다"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AOI와 KEDA의 MOU 체결식에 사우디 알나임 그룹의 회장과 AOI에 1조 달러를 투자한 바레인의 Albaraka Banking Group 대표도 참석했다. AOI를 통해 공급 시 관세 30%가 면제된다. 따라서 이집트는 물론 중동·아프리카에 수요가 많은 제품을 AOI를 통해 무관세로 공급한 후 수출하면 중국제품과도 가격 경쟁력이 있게 된다. ▲ 지난해 11월 AOI와 KEDA 간 MOU 체결식에서 강웅식 회장(오른쪽)이 서명하고 있다. [사진제공=KEDA] MOU 체결식에 참여한 6개 한국기업은 모두 AOI의 CEO와 각 기업별로 MOU를 체결했고, 이에 상응하는 후속조치를 진행 중이다. AOI와 MOU 체결로 KEDA의 모든 회원사는 향후 이집트는 물론 중동·아프리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을 갖게 됐다. 이집트, MENA 전초기지이자 유럽 허브로 16억 명 시장 진출할 교두보 MENA(아프리카·중동)의 전초기지이자 유럽의 허브인 이집트 정부가 투자 문호를 개방한 지금이 진출 적기라고 강조한 강 회장은 "이집트는 범아랍무역자유지대(GAFTA) 17개 회원국, 동남아프리카공동시장(COMESA) 19개 회원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어 이 나라에 기반을 둔다는 것은 3개 대륙 16억 명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6월 엘시시 대통령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국민의 성원과 추앙을 받아 연임이 결정됐고, 현재 이집트가 IMF체제 하에 있지만 120억 달러의 IMF 자금을 4회에 걸쳐 벌써 절반이나 갚았다"고 소개하면서 "2017년에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가진 천연가스가 이집트 연안에서 발견되는 등 정부가 국민에게 제시한 비전이 마무리되는 2030년에는 세계 7대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강 회장, 한 달에 절반 이상 이집트 체류..."이집트인과 가족처럼 관계 맺어야" 강 회장의 향후 행보가 어디까지 어떻게 미칠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 강 회장은 한 달에 절반 이상을 이집트에 체류하며 회원(사)들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현지 활동 사항을 공유하고 있다. 그는 평소 한국이집트발전협회의 정례 연찬회 등을 통해 250여 명의 정회원과 50여개 회원사 대표들에게 "이집트와 경제 교류에 앞서 이집트인들과 가족처럼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지난해 11월 BUC 대학을 방문한 이희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자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한국경제 발전에 대한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KEDA] 자신보다 나라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고 돈보다는 사람을 우선 생각하는 강 회장은 한번 맺은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겼고 그런 인생관이 점차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 북한과 매우 친밀했던 이집트가 엘시시 대통령 취임 이후 2회에 걸친 한국 방문과 정상회담 등으로 친한(親韓) 국가로 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한 이희범 KEDA 명예회장은 "강 회장은 진짜 애국자다. 강 회장의 활동을 보면서 한 나라를 상대로 꾸준히 사랑한다는 것이 진짜 중요한 일임을 실감하며, 돈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강 회장을 존경하게 된다"면서 "이집트가 한 때 세계 최대강국이었고, 6.25 참전국이란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 전역군인
    2019-03-28
  • [전역군인 인생 2막] (1) 강웅식 한국이집트발전협회(KEDA) 회장(상) 영국 유학 시절 엘시시 대통령과의 우정이 만든 힘
    ▲ 지난 2018년 10월 이집트 아랍여성 투자그룹 초청 비즈포럼에서 영어로 연설하는 강웅식 회장. 뒤로 엘시시 대통령 사진이 담긴 대형 조형물이 보인다 [사진제공=KEDA] 뉴스투데이는 군에서 장기간 복무 후 전역한 직업 군인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인생 2막’을 새롭게 펼쳐나가는 성공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전역 예정 장병들의 미래 설계는 물론 다른 직종에서 퇴직한 분들의 인생 후반부 준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역군인 인생 2막’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1991년 영국 왕립육군대학에 유학 온 엘시시 소령과 만나 영어교육 함께 받아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안보전문기자] 2017년 10월 19일 모하메드 사이드 엘아싸르 이집트 방산물자부(MOMP) 장관이 서울 르메르디앙 호텔에 모습을 보였다.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방위산업 전시회'에 참가 차 방한 중인 그는 이집트에 진출 예정인 국내 중소기업 대표들과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디스플레이 솔루션 기업인 'KREMS', 산업용 배터리를 만드는 IBT배터리, 의료기기 제조사인 메디컬젠바디, 전기 절연체를 생산하는 고려애자 등이 그들이다. KREMS는 이미 방산물자부와 계약을 체결해 이집트에 공장을 세우고 있으며 내년부터 태블릿PC와 LED 패널 생산에 들어간다. 나머지 3개 기업은 엘아싸르 장관에게 궁금한 사항을 묻고 애로사항을 건의했다. 국내 중소기업의 이집트 진출을 주선한 사람은 강웅식(60) 한국이집트발전협회(KEDA) 회장이다. 육사 출신인 강 회장의 이집트와 인연은 압델 파타 엘시시 현 대통령을 만난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당시 육군 소령이었고, 국방부 파견으로 영국 왕립육군대학에서 1년 동안 유학하면서 엘시시 소령을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 강웅식 회장이 지난 2017년 10월 19일 서울 르메르디앙 호텔에서 방한한 모하메드 사이드 엘아싸르 이집트 방산물자부 장관과 간담회를 가진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KEDA] 그는 “당시 50여 개국에서 외국군 장교들이 왔는데 이 중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16개국은 본 교육 시작 전 2개월간 별도의 영어교육을 받았다”면서 “교육장소가 학생장교들이 머무는 관사 지역에서 100km 떨어져 유일하게 차를 갖고 있던 내가 이집트의 엘시시 소령을 비롯해 오만, 요르단, 모로코 장교들을 태워 먼 거리를 통학했다”고 설명했다. 엘시시 소령과 함께 통학하면서 우정이 싹트고 가족 간에도 깊은 교분 쌓아 비록 중고차지만 강 소령은 이들을 정성껏 태우고 다녔다. 강 회장은 “날씨가 추운 날 가끔 시동이 꺼졌는데, 함께 차를 밀면서 더욱 각별한 우정이 싹텄다”고 회고했다. 이런 우정은 본 교육이 시작되면서 강 소령이 엘시시 소령의 가족을 초청해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아이들까지 같은 학교에 다니며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등 가족 간 교류로 확대되어 더욱 깊어졌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1년의 영국 유학기간이 끝나고 강 소령과 엘시시 소령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군 생활의 특성상 수시로 부대를 옮기다보니 서로에게 연락할 여유도 없이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 소령은 2013년 3월 기갑여단장직을 마치고 대령으로 전역했다. 강 회장은 “그 해 7월쯤 우연히 뉴스를 보다가 이집트에 군사혁명이 발생했고 엘시시 소령이 국방장관인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지난 1991년 영국 유학시절 당시 엘시시 소령(오른쪽 두 번째)이 강 소령(왼쪽 두 번째) 숙소에 놀러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KEDA] 강 회장은 엘시시 장관과 연락하기 위해 여러 경로로 노력하던 중 북경 주재 이집트 대사관의 국방무관이 장관과 친구라서 그를 통하면 연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4년 2월 엘시시 장관을 만나러 가는 이집트 국방무관 편으로 편지와 함께 23년 전 엘시시 소령 가족과 찍은 사진 10여 장을 동봉했다. 이 사진을 본 엘시시 장관은 너무 기뻐하며 “강 소령 가족을 대통령 취임 후 이집트로 초청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엘시시 장관, 연락받고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 당선된 후 강 소령 가족 초청 엘시시 대통령 요청 받아 한국 산업화 경험 이집트 도입 위해 KEDA 설립 2014년 5월 97.5%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엘시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강 회장 가족을 초청했다. 취임 직전 했던 약속을 대통령이 되어 지킨 것이다. 강 회장 가족이 이집트에 도착하자 공항에는 벤츠 차량과 경호원이 나왔고, 숙소는 대통령 궁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마련돼 있었다. 대통령 궁에 초청된 강 회장 가족은 엘시시 대통령 가족과 만찬을 하면서 옛날 얘기로 꽃을 피웠다. 이 때 강 회장 아들이 23년 전 학교에서 그린 엘시시 대통령 아들의 그림을 꺼냈다. 당시 선생님이 가장 친한 친구를 그려보라고 해서 그렸던 것을 지금까지 간직해왔다가 이번에 가져온 것이다. 엘시시 대통령과 가족들은 그 그림을 보면서 매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엘시시 대통령은 강 회장에게 "한국식 산업화 경험을 이집트에 도입하고 싶다. 한국 기업이 이집트 기업과 합작투자 형태로 진출할 수 있도록 앞장서 달라"고 요청했다. 강 회장도 엘시시 대통령을 만나러 이집트에 가면서 "기회가 주어지면 양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며 준비한 내용이 있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 지난 2016년 한국이집트발전협회란 이름으로 실시한 최초의 정기총회 기념사진. [사진제공=KEDA] 강 회장은 이집트에서 귀국 후 엘시시 대통령의 부탁을 실현하기 위해 2015년 8월 24일 산자부 승인하에 '한국이집트발전협회(KEDA)'를 설립했다. 전 산업자원부 장관 출신인 이희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대표적 중동 진출 기업인 봉경건설의 주봉노 회장, 총리 출신의 아브라함 마흐렙 이집트 대통령 경제고문을 명예회장으로 위촉해 중량감을 더했다. 또 협회 업무를 보다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현지에 이집트한국발전협회(회장 하산 엘 칼라)도 2017년 9월 설립했다. 강 회장은 지금까지 35차례 이집트를 방문했고, 양국의 산업 발전을 위한 가교 역할에 집중하면서 자선봉사 활동과 학술문화 교류 등 상호 우호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실이 2018년에 이르러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 전역군인
    2019-03-2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2) ‘마음은 언제나 태양..!’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마음을 녹이는 ‘마음은 언제나 태양’구호로 上下同欲者勝을..손자병법 제3편 모공(謨攻)편에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이란 말이 있다. '상관과 부하의 뜻이 같으면 승리한다' 뜻으로 지휘관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야 된다는 것으로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8-11-27
  • ‘전역’ 그것은 과연 축복일까 테러일까?
    시큐리티팩트 = 오청훈 job전문기자 전역을 앞두고 전직기본교육에 입교한 선후배 장교들에게 “나에게 있어서 전역이란 000이다”라는 질문에 답을 하게 해보면 대부분 ‘새로운 시작’, ‘휴식’과 ‘기쁨’ 등 긍정적이고 좋은 이미지로 답변을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똑같이 물어봐 주시죠’라고 한다. 내 답변은 그들과는 사뭇 다르게 나온다. ‘나에게 있어서 전역이란? 개인에게 가해지는 일종의 테러였다’라고 과거형으로 답변을 하며 화면에는 2001. 9.11 테러 사진이 나온다. 대부분 수긍을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지만 이내 공감하는 표정으로 바뀌게 된다. 전역으로 인해 화목했던 가정이 파탄의 지경까지 오가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위기가 찾아왔으며, 하루아침에 직장도 잃게 되는 것 이것이 개인차원의 테러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런 맥락으로 내 전직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게 된다. ▲ 9.11테러 사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 강의자료 ) 아무리 힘겹고 어려운일도 지나면 추억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게도 이제 7년이나 지나버린 전역이 그러하다. 2010년 8월 경기도 파주 영어마을에서 소령 3차 진급발표 소식을 듣게 되었고, 결과는 비선이었다. 내심 기대가 컷던지라 실망도 컸다. 무엇보다도 수년간 내조를 해준 아내에게 미안함이 제일컸다. 얼마지나지 않아 아내의 권유로 예비군 지휘관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정을 했고, 주말시간을 이용해서 영등포시장역 인근의 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게 됐다. 하루 15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가며 공부하던 내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것은 시험에 한 두번 실패를 하게된다면 예비역 대위 신분으로는 5급 예비군지휘관 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제도가 개편이 된다는 소식이었다. 이러한 불안감은 내 자신감을 너무도 빠른시간에 꺽어버렸고, 그로인해 나는 시험준비를 중도에 하차하게 되었다. 되돌아 보면 이런 나의 결정이 모든 위기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결정을 아내는 좀처럼 이해하질 못했고, 관계는 점점 악화되어 결국엔 의정부 가정법원까지 오가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갑자기 시험 준비를 포기하고 나니 정말 갈곳이 없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전직기본교육과정 중에 알게된 국방부 전직컨설팅에 참여를 하게 되었고, ㈜스카우트에서 운영하는 6주 프로그램과 커리어컨설턴트 양성과정을 동시 수강하게 되었다. 과정을 우수하게 이수한 결과 ㈜스카우트에 바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벌 수 있는 돈은 4인가족의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고 전세대출금을 제외한 퇴직금 잔액과 국가보훈처 전직지원금, 회사월급을 포함해서 2011년 10월, 11월, 12월 생활비를 간신히 마련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내겐 2012년은 없었다. 하루하루 그리고 한 달을 무사히 살아내는게 일상일 뿐이었다. 이러한 뼈아픈 현실을 직시한 나는 벼랑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내 일상의 모습부터 바꿔나가게 되었다. 남양주에서 강남역까지 운행하는 1100번 광역버스 첫차를 타기위해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출근준비를 하였고, 매일 6시 30분경 회사에 도착하여 강의실과 사무실 정리를 포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닥치는대로 해 나갔다. 하루하루를 정말 치열하게 보냈고 그런 모습이 애처로웠던지 입사후 두달이 되는 시점에 함께 근무하는 선배 컨설턴트로부터 현대산업개발 비상계획팀 계약직 과장 직위 응시 추천을 받아 첫 번째 전직을 하게 되었다. 민간기업 비상대비 업무와 민방위 업무를 배워가며 관련된 교육들을 이수하고, 예비역 소령진급, 민간 석사 추가 취득 등 실무형 스펙을 쌓아가던중 현재 회사의 채용공지를 접하고 전역후 23개월간 묵묵히 쌓아온 노하우를 이용해 두 번째 전직(정규직)에 성공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직접 위기를 맞닥뜨려야만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얻는 것 같다. 물론 그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준비를 하면 좋겠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진 않은 것 같다. 테러와도 같았던 전역이 현재는 축복이 되었지만 그 누구도 직접 겪어보기 전엔 감히 그 어려움을 공감하진 못할 것이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면 산에 오르기전 베이스 캠프를 잘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산의 높이가 높을수록 더 많은 베이스 캠프가 필요할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목표로 향하는 발걸음이 다소 무겁고 힘에 겹겠지만 중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생각보다 빨리 산 정상에 설 수 있을것이라 확신한다. 전직에 성공하는 방법은 단순 명료하다.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호에서는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구체적인 노하우(전직 성공을 위한 7가지 비밀이야기)에 대해 전격 공개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구독을 바란다.
    • 전역군인
    • 인생 2막
    2018-11-12
  • 5.18 계엄군 성폭력 가해자, 38년만에 사법처리 추진될 듯
    (시큐리티팩트=전승혁 기자) 수십년 동안 ‘풍문’으로 머물러왔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의혹’이 정부 공식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38년만에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수사 및 사법처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 전역군인
    • 종합
    2018-10-3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⑥ 忍耐하는, 餘裕있는, 確實한 軍人...!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필자가 승리부대에서 초급장교로 근무한 것을 따져보니 약 8년 정도였다. 소위로 임관해서 소령진급 예정자가 되어서야 아스팔트를 밟을 수 있었다. 육군대학 교육을 마치고 수도방위사령부로 보직을 받았기 됐기 때문이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8-10-30
  • 샴포 前 미 8군사령관, "남북 군사합의에 北장사정포 빠져 유감“
    (시큐리티팩트=김효진 기자) 버나드 샴포 前 미 8군 사령관이 남북 군사합의서에 북한의 장사정포를 후방으로 철수하는 문제가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26일 보도했다.
    • 전역군인
    • 종합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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