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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9)]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신 장군은 중장 지휘관 보직인 특전사령관을 마치고 참모 보직중 최요직인 합참 작전본부장직을 수행했으며 이때 박선우 중장 등 동기들은 군단장 등 1차 보직을 수행중이었다. 동기들보다 그동안의 직책 자력이 더 좋았고 그것도 최요직에만 발탁되었다. 대장으로 진급한 신현돈 장군은 2013년에 전역한 박성규(3사10기) 대장의 뒤를 이어 1군사령관에 취임해 성공적인 지휘를 하고 있었다. 헌데 이듬해 대비태세 기간 중이었으나 육본 지침에 의해 모교 방문 행사에 참석했다가 음주 및 민간인과의 실랑이 사건이 터졌다. 사실은 그 민간인이 복장 규정을 모르는 오해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나중에 신 장군을 만난 그는 자신의 실수에 어쩔줄 몰라하며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 장군은 보이지않는 압박도 있었지만 2014년 9월2일, 군 전체에 영향을 끼칠까 걱정하며 과감하게 책임을 지고 미련없이 스스로 전역하여 견인포가 아닌 자주포임을 증명했다. 헌데 얼마뒤 국회에서 군의 최고 계급인 대장을 정확히 확인도 안하고 무리하게 전역 조치했다는 이의도 제기된 바 있다. 또한 2014년 11월경 여러 언론에서 그의 경질이 조금은 억울한 처사라는 보도가 게재됐다. 연합TV뉴스에 따르면 당시에 신 장군은 인사불성으로 취한 것도 아니었고, 모교 행사에 방문하는 것도 사전에 육군본부에 보고하여 허가를 받은 일이며, 휴게소 화장실에서 민간인과 신체를 접촉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고 화장실에서 사람(사령관)이 쓰고 있으니 다른 곳 이용하라는 부관의 말이 왜곡된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복장이 해이했다는 신고 또한 상의를 바지에 넣지 않는 신형 전투복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이 신고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시기에 좋든 싫든 술을 마신 것이 잘한 행동은 아니어도, 국방부에서 사실관계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일단 잘라버리며 사건을 성급히 종결했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게다가 국방부 감찰관실에서도 음주 추태는 없었다며 다시 말을 바꾸었다. 이 때문에 신현돈 대장의 전역에 관해선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정짓지 않고 무작정 군 최고 계급의 장성을 전역시켰다는 국방부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허나 전역한 후에도 자주포 신현돈 장군은 청주의 모 대학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들 양성을 위해 자신의 열정과 노하우를 전수하여 가장 인기 높은 명교수로 존경을 받으며 참군인의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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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8)]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초도 업무보고시에 사단장의 극찬을 받았던 쭈구리 신현돈 대대장은 1955년 충북 괴산군 신기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목도 초등 및 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주시로 유학해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육사 35기로 입교하여 1979년 소위로 임관했다. 위관급 장교 시절에는 국군기무사령부(당시 보안사)에서 근무하다가 소령 진급하자 본인의 강력한 의사 표현을 통해 다시 야전으로 복귀했을 때 필자의 전임 작전보좌관이었다. 이후 승승 장구하여 대령시절에는 육본 기획홍보과장, 합참 합동작전과장 등을 지냈다. 준장으로 진급한 뒤 3군 작전처장과 합참 등 작전직능 보직에서 주로 근무했고, 국방부 대변인 임무 수행시에는 모언론의 ’돌발영상‘에 제일 많이 등장한 군인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소장 시절에 1사단장, 합참 작전본부 작전기획부장, 중장 시절에 특전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 군사지원본부장을 역임했다. 육사 35기 중 선두주자로 대장 진급에 가장 유력했던 커리어를 갖췄다. 동기생 중 신현돈, 박선우 2명만이 중장 1차 진급을 했으며 결국 이 두명이 대장진급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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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7)]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장이 대대장실 앞에 도착하자, 대대장직을 수행하던 신현돈 중령은 도열한 참모들과 함께 경례하며 영접을 했다. 헌데 짚차에서 내린 사단장 이영대 소장은 첫마디로 “어이, 쭈구리 그동안 잘 있었나..?”하며 신 대대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사단장 초도방문에 긴장해 있던 신 중령 본인은 어리둥절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신 중령의 별명은 생도시절에는 ‘아가리’였다. 입이 유난히 크며 말을 잘하는 달변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굴에 주름이 많은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얼굴이 주름으로 쭈글쭈글하다고 ‘쭈그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단사령부에서 예하부대까지 이동하는 동안에 필자는 사단장에게 방문할 부대의 작전 임무와 환경 및 대대장의 특징 등에 대해 보고했다. 수방사 작전장교 시절에 직속상관인 참모장으로 남태령으로 부대를 이전하는 사업에 함께 고생했던 탓인지 수행하는 필자에게 허물없이 이것저것 물어보던 사단장에게 우스갯소리로 신 대대장의 별명 ‘쭈구리’를 이야기했다. 별명을 듣던 사단장은 달리는 차가 흔들릴 정도로 호탕하게 껄껄 웃으시며 “맞어, 신현돈 중령 별명을 누가 지었는지... 잘 만들었어...ㅋ”하면서 “대대장 부임전에 사단 작전보좌관 근무했으니 업무에 빈틈이 없겠군... 잘하고 있지?”라며 신뢰 의미의 반문을 던졌다. 첫 만남의 대화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된 대대 초도 방문 업무보고는 신 중령 얼굴의 주름처럼 경험의 노하우와 의기에 가득차서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목소리부터 사단장을 매료시켰다. 특히 사단 지침이 내려오기도 전에 전투준비와 교육훈련에 관련해서 본인이 착안하여 시행하며 제시한 내용들은 사단장을 흡족하게 만들었고, 사단장은 ‘부대의 임무도 중요하지만 오늘 보고를 받으니 상급 및 인접부대에 사단을 대표할 수 있는 대대이다’라며 극찬했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사단장은 필자에게 군생활에 가르침을 주는 명언을 남겼고 얼마후 지휘관회의에서도 언급했다. “신 중령은 본인이 대대장으로서 스스로 착안해서 전투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바로 이것이 軍간부의 자세이다”라면서 “軍간부는 견인포가 아닌 자주포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훗날, 신현돈 중령은 다음 사단장이 부임한 후에도 자신의 능력과 지휘통솔력을 인정받으며 대대장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사단사령부의 작전참모로 영전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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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6)]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상급부대 지휘관이 새롭게 부임하면 업무 파악을 위해 예하 부대를 방문하여 업무보고를 받으며 현장을 확인한다. 무적태풍부대 사단장 이영대(학군4기) 소장도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예하 부대 확인 방문을 시작했다. 빨리 부대를 파악하고 분석하여 임기동안 부대를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를 차상급부대 지휘관에게 업무보고를 해야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비서실장과 협조하여 중요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부터 우선 방문하도록 사단장 시간 계획에 반영했고 참모들이 번갈아 수행하도록 조치했다. 한편 군단장 및 군사령관 초도 업무보고 일정이 하달되어 사단장은 더 급해졌다. 특히 작전 계획이나 업무보고를 참모가 아닌 사단장이 직접 보고하도록 강조가 되어 연습도 필요했고, 임기동안 부대를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헌데 사단장의 예하부대 초도방문시 수행할 참모들이 업무로 바쁘다보니 필자가 수행하여 예하부대를 방문해야될 상황이 있었는데, 우연히도 그 부대를 작전보좌관 전임자 신현돈 중령이 지휘하고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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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근 군인공제회이사장, 회한의 사직 메일(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인공제회 김유근 이사장은 셋번째 사임 이유로 “최근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이사장으로서 회사업무에 전념하지 못하는 모습이 임직원 여러분에게 떳떳하지 못하며, 이런 상황이 오래가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사임 이유에 앞서 그는 “그동안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합니다. 경제가 어려워 모두가 더 합심해야 하는 준엄한 시기에 이사장이 예고 없이 사임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라며 회한을 표현했다. 그리고 “1년 반, 짧은 기간에 공제회가 놀라울 정도로 변화했습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여러분 스스로 극복한 지혜와 능력이며 결단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고민과 열정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사장이 중도에 그만두는 상황에도 공제회가 동요 없이 차분하게 업무에 전념하는 분위기가 유지되기를 희망합니다”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김유근 이사장은 재직기간에 군인공제회가 그동안의 당기순이익이 년 평균 800여억에서 작년에 예년 평균 4배, 3,500억원 달성 신화를 시스템으로 탄탄하게 구축한 것은 누가 뭐라해도 직원들의 사업능력이 대내외적으로 검증된 것으로 여기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사람은 바뀌어도 공제회는 시스템적으로 흔들림 없이 전진해야 냉혹한 경쟁현실 속에서 살아 남아 100년 기업으로 나갈 수 있다며, 임직원 모두가 지금처럼 언제나 파이팅하되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이니 '여러분의 건강과 체력이 회사의 힘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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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근 군인공제회이사장, 회한의 사직 메일(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27일 아침 군인공제회 산하 전 직원은 한통의 가슴을 울리는 이메일을 충격적으로 받았다. “임직원 여러분 ! 여러분과 함께 회사에 헌신하고 있는 ...”라고 시작된 이메일은 다름아닌 현재 군인공제회 이사장인 김유근 예비역 중장의 사임 인사 글이었다. 김유근 이사장은 충북 청주출생으로 육군사관학교 36기로 졸업하며 소위로 임관하여 장군진급 후에 육군본부 전력기획처장, 8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 제8군단장, 육군 참모차장, 합참 합동참모차장을 역임한 후 육군중장으로 전역하였다. 이후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 단장을 잠시 거친 후인 2019년 2월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실 제1차장으로 재직했으며 2021년 2월부터 제15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근무했다. 김 이사장은 사임 인사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사임하는 소회를 피력했다. “사임하는 이유는 첫째, 새정부가 출범하고 새로운 군수뇌부가 갖추어졌습니다. 새로운 군수뇌부를 중심으로 확고한 지휘체계가 수립되어야 합니다. 공제회는 국방부의 지도, 감독을 받는 기관입니다. 신임장관에게 '지휘부담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새 술은 새 그릇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적절한 시기에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지금이 때가 된 듯 합니다. 둘째, 자리 연연하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상황이 변했는데 3년 임기를 끝까지 하려는 것 그건 욕심이고 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군과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했기에 이 정도에서 잘 마치려고 합니다. 오히려 1년 반이지만 여기서 봉직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혜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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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③ 조직에서 만난 고교동창 에피소드와 교훈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삼국지의 불세출의 천하무적 관운장을 사로잡은 오나라 여몽은 원래 무예에는 능했지만 일자무식이라 손권이 “장차 큰일을 할려면 학문에 뜻을 두어야 한다”고 충고하자, 날마다 책을 읽고 지식을 넓혀왔다. 훗날 지식이 뛰어난 노숙이 친구 여몽을 만났을 때 예전과는 달리 똑똑해진 것을 보고 감짝 놀라며 刮目相對(괄목상대)라고 한 것이 이 사자성어의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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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③ 조직에서 만난 고교동창 에피소드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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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② 대한민국 육군소위 김희철이다
- 첫인상이 평생을 좌우하고 선입견을 깰려면 몇배의 노력이 필요, 사단 신고를 마치고 명월리 사단본부를 출발하여 실내고개-다목리-덕고개를 거쳐 봉오삼거리에 있는 연대본부에 도착하자 생도 2학년 시절 부사관학교에서 우리를 지도했던 선배가 연대장을 하고 있었다. 연대장실에서 기대어린 일장 훈시를 듣고, 하나 둘씩 각자의 대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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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② 대한민국 육군소위 김희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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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전 대장 '뇌물'혐의 일부 유죄로 집유 1년 선고
- (시큐리티팩트=전승혁 기자) '공관병 갑질 논란'을 일으켜 군 검찰 수사를 받게 됐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1심에서 지인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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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전 대장 '뇌물'혐의 일부 유죄로 집유 1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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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① 소대장으로 부임하던 날, ‘대성산 이상무’의 추억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16주 동안의 초등군사반 교육을 마치고 대 장정을 출발하기 전 각자의 집에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아쉬움을 달래는 시간도 가족들과 함께 가졌다. 입영열차’ 노래의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어머님께 큰 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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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① 소대장으로 부임하던 날, ‘대성산 이상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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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무관 프리즘] ③ 조국위해 희생한 세계 최초 재외국민 '재일 학도의용군'의 역사혼 재조명
- (시큐리티팩트=권태환 前 駐일본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국방외교의 현장에서 교류와 협력의 가교 역할을 하는 국방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전략적 선택과 현실적 여건 사이에서 고민했던 기억들이 새롭다. 하지만 일본 근무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재일 학도의용군 회장이신 당시 93세의 이봉남 할아버지와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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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무관 프리즘] ③ 조국위해 희생한 세계 최초 재외국민 '재일 학도의용군'의 역사혼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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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정부 지원 14개 보훈단체장 정치에 개입하면 처벌 추진
- (시큐리티팩트=김효진 기자) 국가보훈처는 재향군인회를 비롯해 정부 지원을 받는 14개 보훈단체가 정치에 개입하면 해당 단체의 장(長)을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23일 보훈처가 입법 예고한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등 5개 관련법 개정안에 따르면 이런 내용이 명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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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정부 지원 14개 보훈단체장 정치에 개입하면 처벌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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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 명예선언’ 김 중위 등 파면 취소...당사자 적절한 보상 요구
- (시큐리티팩트=김효진 기자) 국방부는 과거 ‘장교 명예선언 기자회견’으로 파면된 김종대 예비역 중위 등에 대한 파면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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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 명예선언’ 김 중위 등 파면 취소...당사자 적절한 보상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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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무관 프리즘] ③ 한·미동맹 견고해야 중국 컨트롤 가능해져
- ▲ 베이징 주재 외국무관들과 연락을 담당하는 중국 국방부 외사판공실 담당자와 중국 공군 비행기지에서 한 컷. 시큐리티팩트는 군사외교관으로 활동했던 한국군 장교들이 해외에서 근무하며 겪은 생생한 체험담과 뒷 이야기를 소개하는 [해외무관 프리즘] 코너를 신설한다.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가 이들을 통해 전격 공개될 예정이다. <편집자 註>--------------------------------------------------------------------------------------------------------------------------------------------------------------------------------------------------------------------------------------------------------------------------------------- (시큐리티팩트=임방순 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한국군에 관한 긴급 자료 요청을 통해 중국군의 향후 전력증강 방향 예측 2018년 현재 중국군의 목표는 2049년에 세계 최고의 군대가 되는 것이다. 마오쩌둥이 중국을 공산화한 1949년을 기점으로 100년이 지난 시점에 미군에 필적하는 군대를 육성하겠다는 이른바 강군꿈(强軍夢)이다. 이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시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즉 ‘중국꿈’(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내가 중국에서 무관으로 근무하던 2002년에는 중국군 입에서 세계 최고의 군대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군 내부에서는 미국을 가상 적국으로 보고 차근차근 세계 최고의 군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03년 어느 날, 중국 국방부에서 베이징 주재 외국무관들과 연락을 담당하는 외사판공실 담당자가 내게 전화를 했다. 당시는 한·중 군사교류가 확대되던 시점이어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임 무관, 애로사항이 있는데 도와주세요. 우리 국방부에서 급하게 한국군 자료를 구해달라고 하는데...” 그는 말을 중간에 끊고 잠시 뜸을 들였다.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군 담당자와는 각종 교류문제로 자주 협조하는 사이였기에 따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무슨 자료가 필요한지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육군항공의 전술적 운용과 해병대의 상륙작전 관련 자료가 필요해요. 그리고 한국군 정보화 계획 관련 자료도 참고했으면 하구요”라고 말했다. 사실 중국군이 한국군 자료가 필요하면 서울에 주재하는 중국무관들에게 파악하라고 지시할 사항이지, 베이징에 있는 한국무관에게 요청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당시 중국 국방부는 우리와 업무적인 협조가 원활했기에 요청을 하면 자료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 같다. 내가 ‘본부에 보고하겠다.’라고 원칙적인 답변을 하자, 그는 재촉하면서 “우리 국방부에서 급히 자료를 요구하는데, 정상 절차를 거치면 시간이 너무 걸려서 적시에 사용할 수 없어요. 임 무관이 아는 동료나 선후배를 통해서 신속히 구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일단 “알겠고, 노력해보겠다”라는 외교적 답변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중국 국방부가 요청한 자료는 결국 제공하지 못했다. 한국군 작전과 관련된 내용이니 섣불리 제공할 수도 없는 자료였다. 이를 계기로 당시 중국군의 현실과 비교해서 살펴보니 요청 자료는 중국군 전력증강 방향과 관계가 있었다. 나는 중국군이 향후 육군항공을 증강하고, 해병대를 강화해 대만 침공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며, 정보화에 매진할 것이란 예측을 했고 그런 판단을 토대로 우수한 첩보를 작성할 수 있었다. 주한미군 동향에 관심 지대...미군기지 평택 이전에 불쾌감 표명도 김하중 주중 대사, 한·미 관계 좋아야 중국에서 외교적 영향력 생겨 무관은 한국군 대표단의 중국 방문도 수행하지만 중국군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할 경우에도 간혹 수행하여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중국군 정보관계자들이 서울을 방문하면 숙소인 호텔에서 한국 국방부 청사를 오가며 용산의 한미연합사령부 부근을 지나간다. 그들은 한미연합사령부를 지나칠 때마다 하나라도 더 관찰하려고 눈길을 떼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에게 “임 무관, 미군들이 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거요? 외국군대가 이렇게 다른 나라의 수도에 있는 게 괜찮은 거요?”라고 묻는다. 이어 “언제쯤 미군이 철수할 것 같아요?”라고 내 의중을 떠본다. 그들은 내 대답을 기다리기보다 미군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다는 심중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곤 했다. 내가 자주 접촉했던 중국 국책연구소의 한반도 담당자 또한 주한미군의 이전 예정지인 평택을 둘러보았다면서 “왜 미군이 동해안 지역이 아닌 중국과 가까운 서해안 지역의 평택으로 이전해 오는가?”라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우리가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있듯이 중국도 우리를 통해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과 동맹 관계이고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한국군과 수시로 훈련을 하는 것은 중국에게도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다. 이와 관련, 당시 김하중 주중 대사는 무관부와 자리를 함께 할 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중국이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은 우리 뒤에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동맹 관계가 약화되면 중국은 반드시 우리를 무시할 것이며,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라고. 그는 한국 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통이었고, 한국을 대표해서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주중 대사가 마치 주미 대사가 할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김 대사의 생각이 무척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사의 혜안이 정확했다는 생각이 든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김하중 대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재외공관장 회의에서도 한·미 관계를 잘 관리해 달라고 대통령께 건의하면서 그래야 자신이 중국에서 외교적인 힘이 생겨 영향력이 커진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중국인이 한 때 부러워하던 ‘한국분’과 시간이 지나 ‘한국놈’으로 바뀐 현실 내가 베이징에 부임한 초기만 해도 한국인에 대한 중국인의 평가는 좋았다. 2002년 10월 무관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할 무렵, 숙소부근 상점 주인이 나에게 ‘한국분’이라며 매우 깍듯하게 인사했다. 중국군 국방부의 외사판공실 담당자들 또한 외교적 언사가 아니라 솔직한 심정으로 한국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들 눈에 비친 한국은 경제 발전과 한류 열풍을 제외하고도 몇 가지 배울 점이 있었다. 첫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이었다. 국가를 위해 장롱 속에 간직한 금도 꺼내는 한국인들의 국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은 경외심 그 자체였다. 중국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2002년 월드컵에 보였던 응원 모습이다. 거의 전 국민이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끝난 후 거리 청소까지 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중국인들은 유럽의 선진국 수준이라며 부러워했다. 셋째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동북공정 파문’ 때 한국인의 역사에 대한 한 목소리이다. 당시 중국인들은 한국에서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동북공정을 비난하고 고구려 역사를 지키려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았다. 중국은 한국인들의 단합된 모습을 보고 이 문제를 학술연구로 한정시켜 더 이상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중국은 비록 영토가 넓고 인구도 많은 강대국이지만 인접 국가가 일치단결해 한 목소리를 내며 강하게 대응하면 섣불리 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 당시 나는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귀임할 무렵인 2004년 8월쯤에는 우리에 대한 호칭이 ‘한국분’에서 ‘한국놈’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를 정확히 제시할 수는 없으나 우리 스스로 그런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위상을 찾을 수 있도록 개개인이 품위를 지키고 단결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인천대 외래교수 (북한학 박사)미래문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경희대 중국학연구소 연구위원前 駐중국 한국대사관 육군무관대만 지휘참모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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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무관 프리즘] ③ 한·미동맹 견고해야 중국 컨트롤 가능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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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출신 60개 기업 CEO들, 제대군인 채용에 적극 참여의사 표명
- (시큐리티팩트=안도남 기자) 육군은 정부가 추진 중인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5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육군 간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취업설명회를 겸한 간담회를 열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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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출신 60개 기업 CEO들, 제대군인 채용에 적극 참여의사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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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외교협회, 무관 포럼 통해 국방외교 네트워크의 새지평 열어
- (시큐리티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해외무관 역임자들과 주한 외국무관 등 국방외교 전문가들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방외교의 역할을 논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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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외교협회, 무관 포럼 통해 국방외교 네트워크의 새지평 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