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0-27(수)

소통시대
Home >  소통시대

실시간 소통시대 기사

  • [김희철의 전쟁사(133)] 안정화 작전중이던 군사경찰, 불의의 기습을 받아... (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99년 7월, 33년전 아버지가 지휘했던 중동부 최전선 보병연대에 아들이 다시 연대장으로 지휘봉을 잡게 돼 화제가 되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화제의 주인공은 육군산악부대 예하 연대의 37대 연대장으로 7월20일 취임했던 김봉환(육사34기) 대령이었다. 김대령은 육군사관학교 생도시절 축구 골키퍼로 지금은 없어진 ’3군사관학교체전‘에서 맹활약하여 선후배에게 신화로 각인된 만능 스포츠맨으로 경호실 등 전후방 각지에서 작전전문가로 근무했다. 지난 1966년 아버지 김촌성(육사8기.예비역준장)씨가 14대 연대장으로 근무할 때 초등학교 5년생으로 장병들과 함께 생활하던 바로 그 부대에 다시 연대장이 되어 33년만에 돌아왔다. 또한 김대령이 1997년 2월 육군대학 공격학처 교관으로 부임할 당시에도 사상 첫 육군대학 2대 교관 탄생 기록을 남겼던 그는 할아버지, 아버지 및 본인 3대가 육군 장교로 근무한 전형적인 무관가문 출신이다. 아버지 김촌성장군은 1948년 육사에 입학해 ’49년 1월 육군 기병소위로 임관, 다음해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 등 많은 훈.표창을 받았으며 전후방 주요 직책을 거쳐 아들이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79년에 준장으로 예편했다. 지난 1944년 조선 신궁체육대회 중장애물 승마경기에서 일본선수를 물리치고 우승하기도 한 김장군은 예편후 LA올림픽 한국승마선수단 감독, 서울올림픽 승마경기 국제심판으로 활동했으며 국제승마협회 공인국제심판도 역임했다. 조부인 故 김인영 예비역 헌병중령(헌병3기)은 아들보다 늦게 1950년 1월, 47세의 나이에 헌병대위로 임관, 치안경비와 포로 후송을 위해 창설된 헌병사령부 예하 2대대 9중대장으로 6·25남침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당해년도 10월21일 강원도 철원군 금화읍 읍내리에서 치안경비와 포로후송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적의 기습을 받아 전사했다. 김봉환 장군은 37연대장 취임시 "어릴 적 뛰놀던, 아버지의 땀과 열정이 배어있는 부대를 지휘하게 돼 기쁘다"면서 "최강의 전투부대를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김 장군의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매년 ’금화지구 희생 헌우(군사경찰 전우) 추도식‘이 매년 지속되어 잊혀지기 쉬운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있다. 또한 후배 장병들에게 군인으로써 호국정신과 애국심 및 희생정신을 일깨워주고 있으며 3대를 잇는 육군장교 가문으로 작금의 청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10-27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⑩ 나폴레옹의 이집트를 원정시 명연설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나폴레옹은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원정하는 사이에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군의 세력 하에 들어가 있을 때 남긴 말이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준비에 만전을 기한 다음 전쟁을 일으켰는데, 천연적으로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알프스를 넘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당시 나폴레옹은 주력군의 총지휘를 모로(Moreau)에게 맡기고, 자신은 예비군을 지휘하여 이탈리아 방면으로 진격키로 했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알프스를 넘기 위해 지형정찰대를 파견했다. 그런데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정찰대장의 보고내용은 의외였다. 험난하기로 이름난 천험(天險)의 지형이라 통과가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다. 이보고를 받은 나폴레옹은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부대원들은 소수의 인마(人馬)마저 통과하기 어려운 첩첩산중을 대군이 횡단하도록 한 초 모험적인 행동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장군의 강한 의지력 때문에 오히려 사기가 더욱 앙양되었다고 한다. 또한 1797년 5월 19일 오리엔트 호(號)를 타고 이집트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이 상륙 후 찌는 듯이 무더운 사막에서 원주민의 기습을 물리친 후, 부족한 식수와 싸우면서 염열지대(炎熱地帶)를 20일 간이나 진군한 뒤 수도 카이로 성(城) 근처에서 결전을 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때 나폴레옹은 천천히 피라미드를 가리키며, “여러분! 우리 프랑스 4,000년의 역사가 저 피라미드의 정상에서 여러분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소!”라는 명언을 토했다. 이와 같은 나폴레옹의 연설은 계속된 강행군과 소규모의 전투로 피로와 갈증에 지친 장병들을 감동시켰고, 이 말을 들은 그들의 사기는 샘물처럼 솟아나서 전승을 획득했다. 이처럼 나폴레옹은 항상 시기적절하게 장병을 고무하는 명연설을 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을 부여하였는데, 이는 지휘관으로서 항상 숙고해야 할 요결이라 하겠다. 여러분은 난관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 지휘관의 의지는 불가능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10-2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2)]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 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야전부대와 다르게 수방사의 색다른 또 하나의 추가 과업은 주기적으로 반드시 수행할 공수훈련이었다. 수방사 예하에 대통령을 경호하는 55대대와 30, 33단을 포함한 사령부 간부들은 근위부대원이라는 명목으로 특전사 부대원은 아니지만 별도로 협조하여 분기에 한번씩 공수훈련을 하도록 통제했다. 사관생도 4학년때 4주간의 특전사 공수교육시 4회의 기본 낙하훈련을 해보고 거의 9년 만에 다시 하늘에서 낙하산을 펼쳐며 뛰어내려야 했다. 수방사 요원이기에 3주간의 지상훈련도 없이 생도시절 기본 낙하훈련을 했던 기억만으로 공수낙하훈련을 한다는 것이 사실 걱정이 되었다. 역시 강인한 체력과 정신무장이 철저한 근위부대의 수방사 요원들이었다. 필동 사령부에서 매산리 특수전학교로 이동하는 버스에 탑승한 대부분의 간부들은 마치 소풍가는 기분으로 태평스럽게 잡담하거나 졸고 있었다. 단지 새로이 전입간 필자만이 오랫만에 접하는 공수낙하훈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긴장하며 눈만 말똥말똥한 상태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10-21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⑨오기 장군의 뜨거운 부하사랑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중국 위나라에 오기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병사와 똑 같은 옷을 입고 음식도 같이 먹었다고 한다. 잘 때도 잠자리를 따로 펴지 않으며, 행군할 때도 혼자 수레에 앉아 있지 않았고 자기 식량도 자기가 직접 가지고 다녔다. 병사들과 고락을 같이해야 한다는 오기 장군의 신념은 철저했다. 오기 장군의 병사들 중에 한 명이 종기로 몹시 괴로움을 당하고 있자 오기는 괴로워하는 병사의 모습을 보다 못해 그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었다. 훗날 이 얘기를 전해들은 병사의 어머니는 아들의 고통을 덜어준 장군의 호의를 고마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목 놓아 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상히 생각해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당신의 아들은 일개 병사에 지나지 않은데 장군이 직접 고름을 빨아준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이요? 그런데 왜 우는 것입니까?” 그 병사의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더 한층 슬피 울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지난해 장군께서 그 애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 주셨습니다. 그는 오기 장군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끝까지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고 앞장서 싸우다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제 아들의 종기마저 빨아 주셨다니···. 이제 그 아이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 물론 오기 장군이 부하를 전쟁터에서 죽게 자신의 입으로 고름을 빨아주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만약 오기 장군이 자신의 수레 위에서 한 발짝도 내려오지 않았으며, 자신의 짐을 다른 부하들에게 지우고, 전쟁 중에도 혼자서 좋은 음식에 좋은 잠자리에서 잤다면, 부하의 다리에 종기가 났는지 또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알지 못했겠지요. 또 평소에는 전혀 부하의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하는 상관이 설사 고름을 빨아준다 하더라도 부하들은 그것을 일과성이고 전시적인 것으로 받아드리고, 내심으로는 거부할 것이다. 생사가 달려 있는 전쟁터에서 부하를 모르는 상관의 명령에 목숨 바쳐 복종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아마 대개가 “왜 하필이면 제가 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도 많이 있잖습니까?”하며 불평할 것이다. 부하가 죽음을 무릅쓰고 상관의 명령에 따를 수 있게 하려면 먼저 상관 자신이 부하들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는 각오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오기 장군은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권위, 편하고자 하는 마음, 존경받고자 하는 마음,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의 수레에서 내려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마다 그곳에서 부하들의 웃음과 눈물을 보게 될 것이고 그들과 함께 웃으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기 장군의 뜨거운 부하사랑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그런 좋은 하루입니다. ◀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10-21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⑧시저(Julius Caesar)와 나팔소리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시저는 5대1로 열세인 병력을 이끌고 고올(Gaul) 지방으로 반란군 진압 차 출정했다. 어느 날 공격을 위한 배치를 마치고 연락장교를 불러 나팔대와 예비대에 연락용 비둘기를 띄워 즉시 이곳으로 연락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연락장교는 몹시 곤란해 하다가 “각하! 약 5백 명 가량의 예비대는 북방 16km 지점에 있고 나팔대는 정반대 방향인 남방 16km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연락을 취할 비둘기는 현재 한 마리밖에 없기 때문에 둘을 동시에 부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조용히 자기의 의견을 덧붙였다. 그러자 시저는 주저함이 없이 “아니야, 전투의 승패는 병력 수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병사들의 사기가 문제이다. 나팔대를 불러라. 나팔소리에 병사들의 사기는 충천되고 병사들은 진격하여 승리를 거둘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500여 명의 병력보다는 병사들의 사기에 직결되는 나팔소리에 반란군을 완전히 진압하는 데 성공하였다. 군 생활을 할 때 부대훈련 출발 및 복귀 시에 군악대 연주를 들으면 기분이 어떠했습니까? 전장에서 진중방송과 기도비닉과의 관계를 볼 때 어느 쪽이 전투에 유리하다고 생각합니까? ◀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10-19
  • [김희철의 Crisis M] AI, 핵개발 등 글로벌 신안보 위협의 대두에 따른 협력적 안보정책 필요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14일 조선호텔 2층에서 사단법인 국제안보교류협회가 주관한 ‘신안보위협과 국제평화협력 증진’ 세미나가 열렸다. 특히 이번 '글로벌 신안보 위협'에 대응하여 다자간 안보협력을 도모하고 국제평화협력 증진을 위한 국제학술회의는 한국 뿐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아프리카, 유럽 여러나라의 학자들이 줌(zoom)을 이용한 화상회의로 참석했다. 1993년 북한이 NPT를 탈퇴하면서 시작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비핵화 노력은 지난 30년 가까이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위협의 핵심 과제였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사이버 안보, 드론, AI, 자율살상 무기, 극초음속 무기 등의 증가로 ‘글로벌 신안보 위협’이 대두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지난 9월29일 북한이 처음으로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은 한반도에도 이러한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 나토에서 플레트홈 역할을 하여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 제1패널에서는 세종연구소 소장 이상현 박사의 사회로 진행했는데 ‘신안보 위협의 대두와 유럽의 협력적 안보정책’을 주제로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한국의 전문가들이 열띤 발표와 토의를 했다. 이때 노르웨이 국방대학교의 시거드 히데(Peal Sigurd Hide)박사는 ‘집단적 미래대비 나토와 신흥 군사기술 도전’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현재 IT기술의 발달로 빅 데이터, 어플 등을 통해 개인 정보획득이 가능해짐에 따라 자국민 통제에 활용하여 선거에 개입하는 등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가짜뉴스의 남발과 이를 적국 등을 포함한 내외부 세력들이 경쟁적으로 활용하면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노인들은 알고 있지만 공산 국가의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이 현혹되면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는 등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시거드 히데(Peal Sigurd Hide)박사는 AI와 사이버와 이를 이용한 군사기술 등에 따른 윤리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나토에서 플레트홈 역할을 하며 소통을 통해 용어와 규범을 제시하여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1-10-18
  • [김희철의 전쟁사(130)] 김만술 소위의 신화, 베티고지 전투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김만술 소대장이 이끄는 2소대는 18시간 반 동안 도합 증강된 대대 약 800여명의 중공군과 수류탄, 소총사격, 백병전 그리고 4차례의 포병 진내사격을 요청하며, 지옥 같은 사선(死線)에서의 혈전과 격전을 치루어 베티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이렇게 진행된 혈투 속에 뺏고 빼앗기는 접전을 치룬 결과 6중대 2소대의 생존자는 소대장을 포함 단 12명뿐이었다. 7월16일, 날이 밝은 뒤 김만술 소위와 생존한 소대원들은 중앙봉과 동봉 일대에 퍼져 있는 메케한 화약 내음과 피비린내속에서 중공군의 시체와 엉켜 처절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소대원들의 시신을 잡고 몸부림치며 절규했다. 이 때 확인된 중공군의 시체만도 350여구에 달했고 450명을 부상시켰으며 3명을 포로로 생포했다. 반면에 아군은 24명이 전사했다. 김만술 소위와 2소대원은 백병전과 진내사격 등 치열한 혈투속에서 왕성한 책임감과 감투정신으로 베티고지를 몸으로 끝까지 지켜냈다. 1953년 7월 23일에는 베티고지 전투의 유공자 포상행사가 열렸다. 적의 매복사격으로 인한 부상을 무릅쓰고 본부로 뛰어가 전황보고와 통신을 연결한 이강로 하사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또한 각자의 역할을 다해 전투지휘했던 분대장 김순구 중사와 김흥규 중사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김만술 소위는 2계급 특진과 함께 한국과 미국의 최고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 및 십자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후 베티고지 영웅 김만술 소위는 대위로 전역했고, 그는 전투를 치룬지 28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1991년 60세로 영면하여 사랑하는 부하들의 곁으로 갔다. 그러나 故 김만술 소위의 2소대가 목숨을 바꿔가며 사수했던 베티고지는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면서 군사분계선(MDL) 북쪽에 포함되었다. 포연속으로 사라져간 전우들의 영령이 알았다면 통탄할 일이었다. 6·25남침전쟁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치열한 혈전을 전개했던 ‘36대800의 기적 같은 승리’인 베티고지 전투의 신화는 이렇게도 아쉽게 끝을 맺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렇게 포연속으로 사라져간 선배전우들이 흘렸던 피의 댓가로 지금의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10-18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⑦나폴레옹 장군과 초병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의무를 훌륭하게 이행하지 않고서는 권리를 가질 가치가 없다.” 나폴레옹이 전투 중에 있던 어느 날 밤, 아군의 경계태세를 살피기 위해 적진 가까이에 있는 진지를 순찰하고 있었다. “정지! 누구냐?” 으슥한 곳에서 보초가 명령했다. 나폴레옹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다.” 보초가 말했다. “나가 누구냐?” “나폴레옹이다! 너희들이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는가 살피기 위해서 나왔다. 어서 나를 통과시켜라!” 그러나 보초는 나폴레옹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쏜다!” “보초! 나는 나폴레옹이란 말이다. 어서 총을 내려!” “그런 소리 말고 어서 돌아가십시오! 아무리 지휘관님이라 해도 저의 직속상관의 명령 없이는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정말 안 되겠나?” “예, 절대로 안되겠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 결국 나폴레옹은 그냥 자기 막사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다음날 나폴레옹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고집불통이던 그 보초를 불렀다. “부름 받고 왔습니다!” “응, 좋아. 자네 간밤에 나를 통과시켜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하고 나폴레옹 장군은 물었다. “프랑스를 위해서 싸우는 한 군인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합니다. 간밤에 장군님을 통과시키지 않은 것이 죄라면 그에 대한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그 보초는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고집스럽고 용기 있는 그 병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하하하··· 좋아! 자네야말로 훌륭한 군인일세. 내 당장 육군소위로 승진시켜주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끝까지 밀고나가는 용기도 중요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해하고 의무를 다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군인은 다른 어떤 조직과는 달리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집단이니, 나폴레옹을 대하던 보초병에게 갈등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고집스럽게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은 자기임무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도 하지만 지켜나갈 것은 지켜나가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법을 지켜나가는 것과 도덕이나 양심도 중요하지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하겠다. ◀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10-1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1)]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사령부 참모부에 근무하는 간부들 전원이 청백팀으로 나누어 편성되어 있고, 볼이 두 개나 되는 집단축구 경기라 많은 인원이 참가해야 승리를 얻기 용이한 상황이었다. 처음 참가하는 필자는 운동신경도 둔한 편인데 그 날따라 우리 팀 참가인원이 적어 볼 두 개가 한꺼번에 골대로 몰려올 때에는 방어도 쉽지 않아 많은 점수 차이로 완패를 하였다. 게다가 승부욕이 많은 수방사 부대원들이라 게임 중에 욕설이 난무했고 심지어 골절 환자도 자주 발생했다. 게임이 끝나자 각 팀은 각자 모여 작은 요구르트 한병으로 목을 축였다. 팀을 지휘하는 처장이 참석자들에게 “다른 팀보다 왜 적은 인원이 나오냐?”며 중간 과장급 책임자에게 내일 게임에는 불참자가 없도록 전파하라고 호통을 쳤다. 이어 새로 전입온 필자를 소개했고 운동을 더 잘하라고 독려하며, 포지션별로 책임자에게 불참 인원들이 반드시 참석하도록 확인하라고 강조했다. 덕분에 일과 시간에 각 팀의 담당 과장은 불참자를 사무실로 불러 혼을 내며 다음날 축구에 꼭 참석하라고 독려했다. “살아방패 죽어충성”이라는 수방사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집단축구에서 승리하는 것이 마치 충성하는 것처럼 승부욕에 불타는 근성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이러한 근성 때문에 일부 선배들은 경기 중 과도하게 태클한 후배 장교를 사무실에 불러 예의 없다고 혼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인접 동료들과 상급자들을 쉽게 접하며 친숙해지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계기도 되었다. 그런데 작전장교인 필자는 빨리 출근해서 사령관이 주관할 상황회의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팀장의 독기서린 강조의 훈시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단지 온몸이 땀에 범벅인 채 홀짝인 요구르트의 시원함에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10-15
  • [유철상의 동서양 전사에서 배우는 교훈] ⑥용기와 의로움이 있는 신사 라이트 대위
    [시큐리티팩트=유철상 칼럼니스트] 아프리카 해안을 항해하던 버큰헤드 호의 조난은 백 오십년도 넘은 일이지만 영국 사람들은 이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1852년 2월 27일 버큰헤드 호는 472명의 군인과 162명의 부녀자 그리고 아이들을 태우고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항해하고 있었다. 새벽 2시, 모든 사람들이 곤히 잠든 시간에 절망적인 일이 벌어졌다. 남아프리카 희망봉 앞바다에서 암초에 부딪혀 바닥에 구멍이 나 바닷물이 솟구쳐 배가 침몰 직전에 이른 것이다. 사방에서 북을 두드렸다. 군인들은 갑판 위에 집합했다. 순식간에 열병식이라도 벌이듯이 갑판에 질서정연하게 집합한 이들에게 “서둘러 부녀자와 아이들을 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상어가 우글거리는 밤바다에서 풍랑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배는 자꾸만 가라앉아 갔다. 배의 뒷쪽에 보트가 세 척 있었다. 한 척에 탈 수 있는 사람은 60명이니 다 해야 180명밖에 탈 수 없었다. 군인들은 신속히 배 밑으로 달려가 대부분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부녀자와 아이들을 끌어올려 갑판 위의 보트에 태워 바다로 띄워 보냈다. 거의 모든 부녀자와 아이들이 구출되었다. 이때 선장은 군인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대들도 헤엄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바다로 뛰어내려 저 보트에 타라!” 그러나 제91스코틀랜드 연대의 라이트 대위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정한 군인이면 내 말을 들어라! 너희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보트에 매달리면 혼란이 일어난다. 보트는 가라앉고 말 것이다. 국민을 아끼고 지키는 군인이라면 이 자리에 서 있어라!”라고 명령했다. 이 용감한 대위는 꼼짝도 않은 채 그대로 서있었다. 바닷물은 어느새 갑판 위로 올라와 무릎을 적시고 있었으며 남아 있는 보트도 없고 어떤 희망도 없었다. 병사들은 대위의 말을 따랐다. 배가 가라앉는 순간까지 불평하는 군인, 몸부림치는 군인은 한사람도 없었다. 한 생존자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배는 마지막 순간에 축포를 울리면서 이들 군인과 함께 바닷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고..... 군인은 끝까지 신사여야 한다. 신사는 기사도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기사도는 곧 용기와 의협심과 사랑을 말한다. 위험을 외면하지 않고, 적 앞에 비굴하지 않으며, 부하와 전우에게 친절하고, 이웃을 따뜻하게 보호하며···,신사다운 군인은 바로 이런 기사도를 가진 사람이다. 신사는 계급이나 돈과는 상관없다. 가난한 사람도 계급이 낮은 사람도 얼마든지 신사가 될 수 있다. 정직하고, 정중하고 침착한 사람, 그에게 용기와 의로움이 있으면 그는 신사이다. ◀유철상 프로필▶ 現시큐리티팩트 칼럼니스트, 군인공제회 대외협력팀장, 육군 군수사령부·훈련소·소말리아·이라크파견부대·9군단 정훈공보참모, 한미연합사령부 공보실장 / 주요저서 : ‘향기로운 삶의 지혜’(2011년, 플래닛 미디어)·
    • 소통시대
    • 군대를 말한다
    2021-10-1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