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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환된 유해 DNA가 존안된 미스터 션샤인의 ‘유진 초이’ 황기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의 실존 인물인 황기환 애국지사(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의 유전자(DNA) 정보를 확보해 국가 관리기록으로 영구 보존한다”고 밝혔다. 황기환 지사의 유전자(DNA) 정보는 지난 4월10일 순국 100년 만에 고국으로 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 제7묘역에 안장된 황기환 지사의 유해를 미국 뉴욕 마운트 올리벳 묘지에서 파묘하는 과정에서 채취한 시료를 국내로 들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을 통해 확보하였다. 황기환 지사 유해는 2008년 미국 뉴욕 마운트 올리벳 묘지에서 발견되어 2013년부터 국내봉환을 10여 년에 걸쳐 추진하였으나 유족이 확인되지 않아 2차례 법원 소송을 제기하였음에도 승인을 얻지 못했으나 국가보훈부와 뉴욕총영사관의 적극적인 설득과 노력으로 지난 1월 31일 묘지 측이 파묘에 합의하면서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또한 국가보훈부는 후손이 확인되지 않은 황기환 지사 유해의 유전자(DNA) 정보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파묘 과정에서 시료를 확보해 4월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하였다. 감정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황기환 지사가 순국한 지 100년이 지나 유해의 훼손 상태가 심각해 감정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유전자(DNA)정보가 황기환 지사의 유족을 확인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기에 사명감을 갖고 다양한 분석기법을 적용해 2개월만에 어렵게 정보 획득에 성공하였다. 이에 국가보훈부는 황기환 지사의 소중한 유전자(DNA) 정보를 국가의 기록으로 영구히 보존하고, 유족을 찾는데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은 “앞으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협업해 후손이 확인되지 않는 국외 독립유공자의 유해 유전자(DNA) 정보를 기록으로 영구 보존하고 후손을 찾는 중요 단서로 활용해 이분들의 희생과 공헌이 우리사회에 영원히 계승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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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예우와 복지증진 협약 체결로 재계가 동참한 일류보훈 구현
[시크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전경련회관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 대행 등이 ‘국가유공자 예우 및 복지증진 업무협약’을 3일 10시에 체결했다. 이날 업무 협약은 대한민국 자유수호에 헌신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존경과 예우 분위기 조성, 국가유공자의 영예로운 삶 향유를 위한 복지증진, 생활안정을 위한 일자리 지원 확대 등을 목적과 주요 골자로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 업무협약에 따라 첫 번째 실천사업으로 ‘수호자의 발걸음’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이 사업은 ‘국가보훈부-전국경제인연합회-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함께 협력해 자유 수호를 위해 대한민국 곳곳을 쉼 없이 전진한 국군 및 유엔군 참전용사의 헌신에 감사드리고자 세상에 하나뿐인 맞춤형 신발을 제작해 헌정한다. 왼발과 오른발의 발볼 차이로 기성화가 안맞거나 보행 불편이 있는 6‧25참전유공자 및 재방한 유엔참전용사 등 300명 영웅의 발을 삼면측정(3D스캔)하고 그에 맞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영웅의 신발(One & Only Heroes Shoes)”를 제작해 6·25남침전쟁 정전 70주년인 7월 27일을 전후해 직접 전달한다. 또한, 맞춤형 신발 제작을 위해 취형한 발 모양과 참전영웅의 인적사항, 참전기간, 누적 발걸음 수 등이 표기된 동판을 제작해 대한민국을 지켜낸 희생과 헌신에 감사와 예우를 전하는 의미에서 11월 11일 국제추모의 날(턴투워드부산)에 맞추어 유엔평화공원에 ‘영웅의 길’을 조성할 예정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영웅을 기억하는 것은 피와 땀으로 대한민국을 지킨 모든 분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자 일류보훈으로 가는 기본” 이라며 “국가보훈부 승격에 걸맞게 품격 높은 보훈으로 국가유공자를 예우하고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경제계와 함께하는 일류보훈 동행’으로 시작된 양 기관의 상호협력은 이번 협약으로 더욱 공고화되어 향후 주거개선 및 제대군인 일자리 지원 등 국가유공자 생활안정을 위한 복지증진 사업으로 구체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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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잊혀진 모로코 6·25남침전쟁 참전용사 첫 확인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전문기자] 주모로코 한국대사관(대사 정기용)은 6·25 남침전쟁 당시 프랑스 군복을 입고 참전했던 북아프리카 모로코 군인의 후손을 처음으로 찾아냈다고 28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번에 확인된 유족은 6·25 남침전쟁에 유엔군 프랑스대대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모하메드 벤 카두르 라스리(당시 병장·실제 모로코 이름은 무흐 벤카두르 엘 아스리)의 딸인 프테탐 엘 아스리(81)씨와 손녀다. 라스리씨는 1951년 3월5일 1037고지 전투 중 왼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전사했으며, 유해는 부산 유엔 공원에 안장돼 있다. 한국대사관은 지난해 9월 프랑스 군사기록원 자료를 통해 라스리씨를 포함한 8명의 모로코 군인이 프랑스군에 배속돼 6·25에 참전한 사실을 확인하고, 모로코 보훈처와 함께 참전용사 가족 찾기에 나섰다. 6·25 남침전쟁의 숨은 영웅찾기 사업을 진행하던 윤종진 보훈처 차장이 지난해 12월 현지 방문을 계기로 참전용사 가족 찾기에 적극 나선 모로코 보훈처는 몇달간의 조사와 확인 끝에 첫 성과를 냈다. 그러나 후손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라스리씨의 병적 상 이름이 실제 이름과 달리 기재된 데다, 유족들이 거주지를 옮기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소재 파악도 어려웠다. 딸인 프테탐씨가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인 군복 입은 사진이 가족관계를 확인하는 단 한 가지 단서였다. 프테탐씨는 "4살 때 입대한 뒤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고 6·25 남침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았다"며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준 한국 정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부산 유엔 공원을 꼭 방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6·25 남침전쟁 발발 당시 모로코는 프랑스의 보호령이었다. 모로코인 참전용사들이 프랑스군에 배속돼 프랑스 군복을 입고 전쟁에 투입된 이유다. 모로코 참전용사 확인 작업은 애초 2012년에 시작됐지만, 당시 모로코 측에서 관련 자료 확인에 난색을 보이면서 1년 만에 중단됐다. 그렇게 끝나는 듯했던 참전용사 확인은 2021년 정 대사가 엘렌 르 갈 당시 주모로코 프랑스 대사에게서 6.25 참전 모로코인 자료가 프랑스에 존재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재개됐다. 이후 부산 유엔공원에서 모로코 출신 참전용사 2명이 안장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이어 대사관측은 프랑스 참전용사 및 전쟁피해자 사무소(ONACVG)의 협조로 프랑스 군사 기록원에 남아있는 관련 기록을 확보, 지난해 처음으로 참전용사 8명의 존재를 찾아냈다. 정기용 대사는 "정전 70주년을 맞은 해에 모로코 출신 6·25 참전용사 가족을 찾게 돼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도 추가로 참전 용사와 가족을 찾는 한편 모로코 내 학교 교재에 이 사실을 수록하고 참전 기념비를 건립하는 등 후속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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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최초 승인한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창립식 개최(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외교관 생활을 하며 만난 미국인들은 한국인보다도 백선엽장군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라며 “백 장군님은 정전협정을 앞두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시어 현재 한미동맹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작금에 북한의 핵위협과 도발이 계속되는 속에서 출범하는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축사를 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참군인 김관진 장관이 이사장을 맡아 이 재단은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이어 박정환 육군참모총장, 틸러리 전 연합사령관, 권오성 육군협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국회 회의 때문에 늦게 도착한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은 국가를 만든 분, 백선엽 장군은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내신 분, 박정희는 오늘의 선진 경제를 만들었습니다”라고 축사를 시작했다. 이어 박 장관은 “이렇기 때문에 이 세분은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나라발전에 큰 업적을 많이 남긴 지도자입니다. 허나 지난 정권에서는 폄하되며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이 세분의 역사적인 공을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 본 장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의 일에도 분골쇄신의 각오로 절대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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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최초 승인한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창립식 개최(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재단 이사장인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은 “백선엽 장군님은 창군(創軍) 원로이자, 6.25남침전쟁시 대한민국이라는 신생국가가 존폐의 위기에 처할 때에 다부동전투 승리로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의 발판을 만드시고, 평양 선두입성, 중공군의 공세 저지, 남부군 토벌 등의 뛰어난 전공을 세우셨다”며 기념사를 시작했다. 백선엽 장군은 전쟁중에 국군 최초 4성 장군이 되어 두 번의 육군참모총장과 제10대 합참의장을 역임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헌신적인 노력을 하여 한미동맹의 초석을 다지신 구국영웅이다. 미군은 지금도 백선엽 장군님을 6·25남침전쟁시에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하며 존경하고 있다. 백 장군은 전역후 약 10년 동안 중화민국, 프랑스, 캐나다 대사를 역임하며 북한의 외교 진출 공세를 철저히 막아내었고, 귀국해서 교통부 장관 재임시에는 서울지하철 1호선 건설 실현과 대한민국 화학산업을 키워내신 탁월한 외교관이자 산업근대화의 주역이기도 하다. 이에 김관진 이사장은 “백선엽 장군님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공인(公人)의 표본이자 우리 시대 ‘제복의 영웅’입니다. 그동안 뜻있는 많은 분들이 감사하게도 여러 추모 및 기념단체를 만들어 뜻을 기리고 있었습니다”라며 “이제 과거를 뛰어넘어 대한민국을 초일류국가로 도약시키기 위해 백남희 여사의 적극적인 후원과 보훈부의 도움으로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을 창립하여 새롭게 출발합니다. 이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은 장군님의 숭고한 나라사랑과 공인 정신을 선양하고 계승함으로써 미래의 주역이 될 이 땅의 젊은이들이 올바른 역사인식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밝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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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최초 승인한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창립식 개최(상)
30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소재 공군회관에서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재단 창립대회를 개최. [사진=김희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부에서 최초 승인한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은 30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소재 공군호텔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박민식 보훈부 장관, 권오성 육군협회장, 이중근 부영그룹회장, 고현석 육군참모차장, 벤플리트 장군 손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재단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창립대회는 대한민국 군가합창단(홍두승 단장)의 식전 공연에 이어 초대 재단 이사장인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과 백선엽 장군의 장녀이자 재단 명예이사장인 백남희 여사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됐다.2부에서는 김재창 장군의 ‘가까이서 본 선배 백선엽 장군’과 유광종 대표의 ‘백선엽,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 주제 발표가 있었다. 특히 다부동 대첩 및 평양입성 전투에서 고(故) 백선엽 장군과 함께 싸웠던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의 박형수(94세) 회장과 김주찬(94세) 부회장이 노구를 이끌고 참석해 전장 실상을 이야기할 때와, 재단 명예이사장인 백남희 여사가 환영사로 대한민국과 아버지의 삶을 이야기할 때는 참석자들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들며 힘찬 박수가 터져나왔다. 또한 백선엽 장군과 인연을 맺였던 청년 대표와 연평해전 전사자 서정우 하사의 모친의 플로어 맨트도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백 장군은 1952년 7월 최연소(32세)로 제7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고, 이듬해 1월엔 만 33세에 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 됐다. 정전회담 땐 국군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2020년 7월10일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다음편 계속)
실시간 군대를 말한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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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202)]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㊵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번 위트컴 장군 업적 조명 특별좌담회에 참석하고 ‘위트컴 장군의 참 정신을 따라서’라는 주제로 시민 특강을 한 박주홍 경북대 교수(전 육군 5군수지원사령관)는 위트컴 장군을 재조명하고 선양하는 사업에 대해 세 가지 의의를 강조했다. 첫째,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는 격언이 있듯이 위트컴 장군 재조명은 6·25남침전쟁 이후 전후 복구 및 재건 역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다. 둘째, 1953년 11월27일 일어난 부산역전 대화재로 집을 잃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3만 명의 이재민에게 군수 창고를 개방해 먹을 것과 잠을 잘 텐트를 제공한 휴머니즘에 기반한 장군의 리더십에 주목해야 한다. 장군은 군법을 어기고 군수물자를 민간인에게 지원했다는 이유로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등 고초를 겪고 극복했기 때문이다. 셋째, 한미동맹을 되짚어보는 계기를 제공했다. 장군은 전역 후에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한국인과 결혼했고 죽어서도 한국에 묻혔으며, ‘한미재단’을 설립해 미국에서 한국을 돕는 공공과 민간의 지원이 끊임없이 이뤄지게 했다. 즉 한미동맹을 견고하게 만듦으로써 한국 재건과 부흥 원조에 기여했으며, 한국인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한 벽안의 한국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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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202)]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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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201)]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㊴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박주홍 경북대 교수는 제5군수지원사령관 시절 미 육군 2군수사령관으로 6·25남침전쟁과 이후 대한민국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헌신한 리차드 위트컴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한 ‘위트컴 장군실’을 2017년 12월29일 사령부내에 개관했다. 당시 박주홍 장군은 2017년 초부터 부대 정신 강화를 위해 위트컴 장군의 업적과 대한민국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부대의 표상이자 장병들의 롤 모델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위트컴 장군실’ 개관을 추진해왔다. 위트컴 장군은 1894년 미국 캔자스에서 태어나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완벽한 군수지원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또 6·25남침전쟁 중에는 미 2군수사령관으로 부임해 유엔군에 대한 군수지원과 국군의 전력증강에 기여했다. 퇴역한 후에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전쟁고아를 돌보고 학교와 병원을 건립하는 등 우리나라의 재건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특히 1953년 부산역 대화재 당시 이재민들에게 군수물자를 제공한 사건으로 미 의회 청문회에 소환된 위트컴 장군은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고 역설해 의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 더 많은 구호물자와 함께 한국으로 귀환하기도 했다. ‘위트컴 장군실’은 1·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서의 활약상과 부산역 화재 시 군수물자 제공, 전쟁고아를 위한 고아원 설립 등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장군의 일대기가 스토리텔링식으로 구성됐다. 개관행사를 주관했던 박주홍 장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지 건설, 6·25남침전쟁 등 위트컴 장군이 보여준 군수 분야의 전문성과 폐허가 된 국가 국민의 재건을 위해 헌신한 그의 발자취는 우리 부대원들에게 큰 감동과 가르침을 주고 있다”며 “위트컴 장군실은 우리 부대가 지향하는 정신적 지표이자 한미동맹의 상징으로서 한미 양군의 우정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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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201)]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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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200)]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㊳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리차드 위트컴 장군 40주기를 맞이하여 2022년 7월8일 부산 유엔평화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위트컴(1894~1982) 장군 업적 조명 특별좌담회가 열렸다. 이 특별좌담회는 국제신문이 6·25남침전쟁 당시 미 육군 2군수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전쟁 여파와 잦은 화재로 폐허가 된 부산을 재건하는데 온몸을 던진 위트컴 장군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장군의 고귀한 인류애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강석환 위트컴희망재단 이사(부산관광협회 부회장), 김재호 부산대 전자공학과 교수, 박종왕 유엔평화기념관장, 박주홍 경북대 교수(전 육군 제5군수지원사령관), 전호환 동명대 총장(위트컴 장군 기념조형물 건립추진위원장), 진양현 부산경제진흥원장 등이 참석했다. 강석환 이사는 위트컴 장군이 국제 교류라는 부산의 정체성을 찾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그가 전후 복구 과정에서 부산대 장전캠퍼스 부지확보, 메리놀 병원 신축 등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덕분에 부산지역이 학문과 의료 분야에서 서양 문물과 교류가 활발해졌다고 발표했다. 전호환 총장은 부산역전 대화재 당시 장군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1954년 11월 대화재 발생 1주년을 맞아 장군을 기리는 공덕비를 세웠으나 안타깝게도 사라졌다고 언급했다. 그는 “잊어버린 역사를 찾아 미래의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며 ‘위트컴 장군 기념조형물’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엔평화기념관은 이날 오후 1시~3시에 김재호 부산대 교수와 박주홍 경북대 교수를 초청해 ‘위트컴 장군의 참 정신을 따라서’라는 주제로 시민 특강도 열었다. 또한 장군의 기일인 7월12일 오전 11시에는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서 추모식도 열렸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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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200)]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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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9)]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㊲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외국에서 돌아온 것과는 거꾸로 신원불상으로 유엔묘지에 안장됐다가 신원이 재확인돼 다시 고국으로 돌아간 영령도 있다. 미군 전사자였는데 1951년 4월 실종된 ‘윌리엄 비토 지오버니엘로’ 일병(사망 당시 23세)으로 확인돼 유해가 65년 만에 고향 뉴욕으로 돌아갔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 (DPAA)에 따르면 ‘지오버니엘로’ 일병은 소속 부대인 미 25사단 35연대가 1951년 4월25일 철원 서부전선에서 중국과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후퇴하던 도중 실종됐다. 유골엔 65년간 ‘무명(Unknown) X-1219’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으나 신원 확인을 위한 재조사가 이뤄져 귀국하게 됐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외국에서 전사한 군인은 반드시 고국으로 모셔 안장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2017년 9월27일에는 네덜란드 참전용사 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씨가 역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6·25남침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참전용사가 사후 국내로 되돌아와서 안장된 것은 2015년 5월 프랑스인 ‘레몽 베나르’씨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이후 6번째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전쟁의 참화를 딛고 부흥한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감격스러워 했으며, 사후에는 전우가 묻혀있는 한국 땅에 묻히길 소망하며 유언을 남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미재단’을 설립하여 한국 재건과 부흥을 위해 미국에서 한국을 돕는 공공과 민간의 끊임없는 지원과 원조를 했던 ‘한국 육군의 아버지’라 불린 밴플리트 장군과 ‘유엔기념공원’에서 영면하고 있는 ‘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 위트컴 장군도 마찬가지이다. 휴전후 귀환한 본국에서 별세했어도 한국으로 되돌아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참전용사들을 포함해 밴플리트 장군과 위트컴 장군 모두 ‘한국인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한 벽안의 한국인’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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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9)]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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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8)]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㊱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턴 투워드 부산’ 행사와 함께 기억해야 할 놀라운 사실은 6·25남침전쟁에 참전한 외국병사가 종전이 되어 본국으로 귀환해 여생을 보내다가 별세했어도 그 유해가 한국으로 되돌아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는 행사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이다. 2015년 5월, 프랑스인 ‘레몽 조셉 베나르 (Raymond Joseph Benard)’씨를 필두로 영국인 ‘로버트 맥코터’씨, 2016년 5월 12일 네덜란드인 ‘니콜라스 프란스 베설스’씨, 2016년 10월27일 프랑스인 ‘앙드레 벨라벨’씨, 2017년 9월27일 네덜란드인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씨 등이다. 또한 2015년 5월27일은 ‘유엔기념공원’의 역사에서 특별한 날이다.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인 이곳에 마련된 6·25남침전쟁 참전 미군 묘역을 찾아 처음으로 참배했기 때문이다. 2015년 ‘턴 투워드 부산’ 행사에는 앞서 언급한 영국의 참전용사 ‘로버트 맥코터’씨 유해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그는 1948년 17세의 나이에 입대해 1950년 8월~ 1952년 8월 한국에서 복무하고 제대 후 2001년 영국에서 사망했다. 맥코터씨는 생전에 기적적인 발전을 이룩한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했고, 한국에 남겨진 전우들을 그리워하며 “같이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고, 그가 사망한지 14년 만에 생전에 그리워했던 한국땅에서 영면하게 된 것이다. 맥코터씨의 아들이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부산을 향하여)’ 행사에 부친의 유해와 함께 방한하여 처음으로 안장식을 거행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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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8)]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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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7)]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㉟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곳에서 매년 11월11일 오전 11시가 되면 도시의 소음을 뚫고 싸이렌이 울리고, 6.25남침전쟁 참전국들은 시간을 맞추어 부산 방향으로 고개숙여 엄숙히 묵념을 드리는 추도 행사를 치룬다. 이 행사는 2007년 6·25남침전쟁에 참전했던 캐나다 용사인 빈센트 커트니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는데, 이는 참전용사의 유해가 한국땅에 안장된 영령들을 추모하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염원으로 열리는 너무나 뜻깊고 소중한 행사이다. 이 행사는 2007년부터 시작됐지만 정부가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로 격상시켜 2020년부터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지구의 어느 곳에 있는 나라인지 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북한 공산당의 불법 남침으로 비롯된 6·25남침전쟁에 참전하여 홀연히 전사한 영령들을 위로 추모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이란 이름의 행사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극동의 작은 나라 전쟁에 참전하여 희생된 고귀한 생명이 그만큼 많다는 것은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대가가 얼마만큼 크고 비싼지를 깨닫게 하는 시금석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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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7)]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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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6)]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㉞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故 위트컴 장군 부부가 영면하고 있는 ‘유엔기념공원’은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가 부산시 남구 대연동 13만4000㎡의 넓은 부지에 전사자의 공동묘지로 조성했으며, 1955년 유엔총회가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로 의결했다. 6.25남침전쟁 당시 참전국은 유엔군으로 파병한 16개국과 장비, 물자, 의료를 지원한 나라까지 67개국이었다. 이 사실은 안재철 월드피스자유연합 이사장의 노력으로 2010년 9월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의 파병 및 지원기록으로 등재됐다. 이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참전한 유엔군의 피해는 전사 3만 5737명, 부상 11만 5068명, 실종 1554명으로 총 15만 2359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유엔군 중 아이젠하워 대통령,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밴플리트 8군사령관, 해리스 해병 1항공사단장 등 미군 고위장성들의 아들 142명이 참전했다. 그들 중 35명이 전사, 실종 혹은 부상을 당했다.([김희철의 전쟁사](37) ‘보훈의 달, 잊혀가는 영웅들과 지도자의 자세’ 참조) 현재 부산에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UNMCK)에는 처음에 16개 파병국의 1만1000위가 봉안돼 있었으나 대부분 자국으로 송환되고 일부 유해만 남아 있다. 현재 이곳에는 영국 885명을 비롯, 터키 462명, 캐나다 378명, 호주 281명, 네델란드 117명, 프랑스 44명, 미국 36명, 뉴질랜드 34명, 남아공 11명 등 11개국 2311구의 유해가 안장돼 전쟁이 끝난 후까지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 땅에 잠들어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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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6)]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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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5)]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㉝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묘숙 여사는 북한 조국평통일위원장 허담의 초청으로 1990년 6월 북한땅을 처음 방문한 뒤, 이중간첩으로 오인받아 김포공항으로 귀국하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의 조사를 받으면서도 장진호 전투의 미군 유해발굴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었다. 허나 건강이 악화되어 서울에서 거주해온 한묘숙 여사(위트컴 희망재단 이사장)가 입원 치료 중 2017년 1월1일 오후 9시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故 한묘숙 여사는 부산대학교가 설립 초기 장전캠퍼스 부지 제공과 공사 등 국립 부산대학교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크게 공헌하며 도움을 준 故 위트컴 前 유엔군 군수사령관의 미망인이다. 대학측은 그 공적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유족과 협의를 거쳐 당시 전호환 총장을 장례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한 여사의 장례를 부산대학교장(葬)으로 치르기로 했다. 이에 따라 부산대는 故 한묘숙 여사의 빈소를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4분향소에 마련했다. 이와 별도로 장전캠퍼스 대학본부동 1층에도 분향소를 설치해 고인을 추모했다. 故 한묘숙 여사의 유족으로는 자녀 민태정, 자부 민옥린, 손자/녀 민경동/민영동이 있으며, 부산대 전자공학과 김재호 교수가 양자로서 빈소를 지켰다. 4일 오전 10시 부산대학교 내 10.16기념관에서 거행된 故 한묘숙 여사의 영결식은 개식,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와 추모영상 상영 및 부산대 총장의 조사와 추도사 및 추모곡 순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부산시장을 비롯한 주요 기관장들과 부산대 전임 총장단, 주한 미국대사와 부산 미국영사, 주한 미8군 사령관과 주한 미해군 사령관 및 유엔평화기념관장과 메리놀병원장, 위트컴 희망재단 관련 인사 등이 참석했다. 故 한묘숙 여사는 10.16기념관에서 영결식을 거행한 뒤 오후 3시경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묘지’ 내 故 위트컴 장군 묘역에 함께 안장되었고 이곳에 유일하게 잠들어 있는 민간인 신분의 한국 여인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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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5)]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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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9)] 혈연, 지연 및 학연보다도 근무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때마침 사단으로 전입오게 된 동기생 황종수 소령(육사37기)은 11사단에서 중대장을 마치고 육군사관학교 교관요원으로 선발되어 후배를 가르치다가 야전으로 나오게 되었다. 헌데 중령 진급에 유력한 자리인 타 연대 작전과장엔 이미 모두 예정된 대기자들이 있었고 당시 공석이 된 양 대령 연대의 작전과장 자리도 유경험자를 원하기 때문에 보직을 받기가 몹시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양 대령에게 동기생인 황 소령을 추천했으나 그는 몹시 곤란한 표정으로 경력이 문제이고 게다가 육사 교관을 수행하여 야전 경험도 부족하며, 특히 주특기가 작전직능이 아닌 기획직능이기 때문에 더 더욱 고민이라며 쉽게 대답을 안했다. 필자는 양 대령 연대를 찾아갔다. 그리고 필자의 사단 작전장교 시절에 목격했던 황 소령의 중대장 근무 시에 탁월했던 야전성을 설명했다. 당시 황 대위는 11사단 중대장으로 연대전술훈련 평가를 위해 연대의 최전방 중대로 100km가까운 행군을 하여 필자의 아파트 옆에 있던 공터에 주둔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마침 퇴근하던 필자는 훈련에 참여한 병사에게 중대장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동기생인 황종수 대위라고 하여 아파트에서 커피를 타가지고 중대장 텐트를 찾았다. 텐트안에 있던 황 대위는 기습적인 방문에 놀람과 동시에 어쩔 줄 모르며 반가워했다. 그때 필자는 이미 중대장 근무도 마치고 사단 작전장교로 보직받아 숙달되어 가던 차이라 위탁교육을 받고 늦게 중대장직을 수행하는 동기생을 격려하겠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헌데 숙영지 편성을 보고 깜작 놀랐다. 필자가 중대장 시절에 편성했던 모습과는 몇단계 향상된 배치와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는 훈련에 임해서 상대 연대와 공격, 방어 전투에서 창의적으로 대처하여 완승을 거둔 체험담을 이야기했다. 생도시절 철학을 전공했던 그답게 입담도 좋았지만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한 상황조치로 상대방은 허를 찔렸고 상급자로부터는 극찬을 받았다는 성공담도 늘어놓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탁월하게 맹활약하는 동기생이 너무도 자랑스러웠고 필자도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도 되었다. 다음날 새벽에 출근하다가 황 대위의 숙영지를 보니 아무도 없었다. 연대전술훈련 평가를 위해 이미 야간에 타지역으로 이동했는데 그들이 떠난 자리를 보고 또한번 놀랐다. 전장정리를 철저히 하여 티끌만한 흔적도 남지 않았다. 역시 자랑스럽고 탁월한 동기생 황종수 대위였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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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9)] 혈연, 지연 및 학연보다도 근무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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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4)]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㉜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2012년 국제신문에 위트컴 장군을 조명하는 기획시리즈 기사가 보도된 이후 부산시가 그해 10월24일 유엔의날 기념행사에 맞춰 부산시민의 감사 뜻을 담은 감사패를 故 위트컴 장군 부인 한묘숙 여사에게 전달했다. 오늘의 부산은 세계와 무역하며 해운과 수산의 중심지로 역할하고 있다. 또한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도 유용한 교류의 관문이며 오랜 기간 시행된 국제영화제 행사 등 수많은 국제 교류 역사가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열린 세계인의 마음과 인류애를 바탕으로 상생하는 협력과 선행의 표상인 故 위트컴 장군의 모습은 세계시민의 역할을 자부하는 부산시민들에게 인류공영에 어떻게 이바지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부산시민들은 자신들의 DNA가 위트컴 장군과 너무도 일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트컴 장군, 그는 영원한 한국인, 부산인이다”라고 추앙하며 자랑스러워한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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