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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군대를 말한다 기사

  • [김희철의 전쟁사(202)]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㊵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번 위트컴 장군 업적 조명 특별좌담회에 참석하고 ‘위트컴 장군의 참 정신을 따라서’라는 주제로 시민 특강을 한 박주홍 경북대 교수(전 육군 5군수지원사령관)는 위트컴 장군을 재조명하고 선양하는 사업에 대해 세 가지 의의를 강조했다. 첫째,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는 격언이 있듯이 위트컴 장군 재조명은 6·25남침전쟁 이후 전후 복구 및 재건 역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다. 둘째, 1953년 11월27일 일어난 부산역전 대화재로 집을 잃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3만 명의 이재민에게 군수 창고를 개방해 먹을 것과 잠을 잘 텐트를 제공한 휴머니즘에 기반한 장군의 리더십에 주목해야 한다. 장군은 군법을 어기고 군수물자를 민간인에게 지원했다는 이유로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등 고초를 겪고 극복했기 때문이다. 셋째, 한미동맹을 되짚어보는 계기를 제공했다. 장군은 전역 후에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한국인과 결혼했고 죽어서도 한국에 묻혔으며, ‘한미재단’을 설립해 미국에서 한국을 돕는 공공과 민간의 지원이 끊임없이 이뤄지게 했다. 즉 한미동맹을 견고하게 만듦으로써 한국 재건과 부흥 원조에 기여했으며, 한국인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한 벽안의 한국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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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6
  • [김희철의 전쟁사(201)]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박주홍 경북대 교수는 제5군수지원사령관 시절 미 육군 2군수사령관으로 6·25남침전쟁과 이후 대한민국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헌신한 리차드 위트컴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한 ‘위트컴 장군실’을 2017년 12월29일 사령부내에 개관했다. 당시 박주홍 장군은 2017년 초부터 부대 정신 강화를 위해 위트컴 장군의 업적과 대한민국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부대의 표상이자 장병들의 롤 모델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위트컴 장군실’ 개관을 추진해왔다. 위트컴 장군은 1894년 미국 캔자스에서 태어나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완벽한 군수지원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또 6·25남침전쟁 중에는 미 2군수사령관으로 부임해 유엔군에 대한 군수지원과 국군의 전력증강에 기여했다. 퇴역한 후에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전쟁고아를 돌보고 학교와 병원을 건립하는 등 우리나라의 재건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특히 1953년 부산역 대화재 당시 이재민들에게 군수물자를 제공한 사건으로 미 의회 청문회에 소환된 위트컴 장군은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고 역설해 의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 더 많은 구호물자와 함께 한국으로 귀환하기도 했다. ‘위트컴 장군실’은 1·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서의 활약상과 부산역 화재 시 군수물자 제공, 전쟁고아를 위한 고아원 설립 등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장군의 일대기가 스토리텔링식으로 구성됐다. 개관행사를 주관했던 박주홍 장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지 건설, 6·25남침전쟁 등 위트컴 장군이 보여준 군수 분야의 전문성과 폐허가 된 국가 국민의 재건을 위해 헌신한 그의 발자취는 우리 부대원들에게 큰 감동과 가르침을 주고 있다”며 “위트컴 장군실은 우리 부대가 지향하는 정신적 지표이자 한미동맹의 상징으로서 한미 양군의 우정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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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4
  • [김희철의 전쟁사(200)]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㊳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리차드 위트컴 장군 40주기를 맞이하여 2022년 7월8일 부산 유엔평화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위트컴(1894~1982) 장군 업적 조명 특별좌담회가 열렸다. 이 특별좌담회는 국제신문이 6·25남침전쟁 당시 미 육군 2군수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전쟁 여파와 잦은 화재로 폐허가 된 부산을 재건하는데 온몸을 던진 위트컴 장군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장군의 고귀한 인류애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강석환 위트컴희망재단 이사(부산관광협회 부회장), 김재호 부산대 전자공학과 교수, 박종왕 유엔평화기념관장, 박주홍 경북대 교수(전 육군 제5군수지원사령관), 전호환 동명대 총장(위트컴 장군 기념조형물 건립추진위원장), 진양현 부산경제진흥원장 등이 참석했다. 강석환 이사는 위트컴 장군이 국제 교류라는 부산의 정체성을 찾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그가 전후 복구 과정에서 부산대 장전캠퍼스 부지확보, 메리놀 병원 신축 등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덕분에 부산지역이 학문과 의료 분야에서 서양 문물과 교류가 활발해졌다고 발표했다. 전호환 총장은 부산역전 대화재 당시 장군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1954년 11월 대화재 발생 1주년을 맞아 장군을 기리는 공덕비를 세웠으나 안타깝게도 사라졌다고 언급했다. 그는 “잊어버린 역사를 찾아 미래의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며 ‘위트컴 장군 기념조형물’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엔평화기념관은 이날 오후 1시~3시에 김재호 부산대 교수와 박주홍 경북대 교수를 초청해 ‘위트컴 장군의 참 정신을 따라서’라는 주제로 시민 특강도 열었다. 또한 장군의 기일인 7월12일 오전 11시에는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서 추모식도 열렸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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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2
  • [김희철의 전쟁사(199)]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㊲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외국에서 돌아온 것과는 거꾸로 신원불상으로 유엔묘지에 안장됐다가 신원이 재확인돼 다시 고국으로 돌아간 영령도 있다. 미군 전사자였는데 1951년 4월 실종된 ‘윌리엄 비토 지오버니엘로’ 일병(사망 당시 23세)으로 확인돼 유해가 65년 만에 고향 뉴욕으로 돌아갔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 (DPAA)에 따르면 ‘지오버니엘로’ 일병은 소속 부대인 미 25사단 35연대가 1951년 4월25일 철원 서부전선에서 중국과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후퇴하던 도중 실종됐다. 유골엔 65년간 ‘무명(Unknown) X-1219’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으나 신원 확인을 위한 재조사가 이뤄져 귀국하게 됐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외국에서 전사한 군인은 반드시 고국으로 모셔 안장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2017년 9월27일에는 네덜란드 참전용사 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씨가 역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6·25남침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참전용사가 사후 국내로 되돌아와서 안장된 것은 2015년 5월 프랑스인 ‘레몽 베나르’씨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이후 6번째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전쟁의 참화를 딛고 부흥한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감격스러워 했으며, 사후에는 전우가 묻혀있는 한국 땅에 묻히길 소망하며 유언을 남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미재단’을 설립하여 한국 재건과 부흥을 위해 미국에서 한국을 돕는 공공과 민간의 끊임없는 지원과 원조를 했던 ‘한국 육군의 아버지’라 불린 밴플리트 장군과 ‘유엔기념공원’에서 영면하고 있는 ‘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 위트컴 장군도 마찬가지이다. 휴전후 귀환한 본국에서 별세했어도 한국으로 되돌아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참전용사들을 포함해 밴플리트 장군과 위트컴 장군 모두 ‘한국인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한 벽안의 한국인’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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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8
  • [김희철의 전쟁사(198)]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㊱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턴 투워드 부산’ 행사와 함께 기억해야 할 놀라운 사실은 6·25남침전쟁에 참전한 외국병사가 종전이 되어 본국으로 귀환해 여생을 보내다가 별세했어도 그 유해가 한국으로 되돌아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는 행사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이다. 2015년 5월, 프랑스인 ‘레몽 조셉 베나르 (Raymond Joseph Benard)’씨를 필두로 영국인 ‘로버트 맥코터’씨, 2016년 5월 12일 네덜란드인 ‘니콜라스 프란스 베설스’씨, 2016년 10월27일 프랑스인 ‘앙드레 벨라벨’씨, 2017년 9월27일 네덜란드인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씨 등이다. 또한 2015년 5월27일은 ‘유엔기념공원’의 역사에서 특별한 날이다.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인 이곳에 마련된 6·25남침전쟁 참전 미군 묘역을 찾아 처음으로 참배했기 때문이다. 2015년 ‘턴 투워드 부산’ 행사에는 앞서 언급한 영국의 참전용사 ‘로버트 맥코터’씨 유해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그는 1948년 17세의 나이에 입대해 1950년 8월~ 1952년 8월 한국에서 복무하고 제대 후 2001년 영국에서 사망했다. 맥코터씨는 생전에 기적적인 발전을 이룩한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했고, 한국에 남겨진 전우들을 그리워하며 “같이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고, 그가 사망한지 14년 만에 생전에 그리워했던 한국땅에서 영면하게 된 것이다. 맥코터씨의 아들이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부산을 향하여)’ 행사에 부친의 유해와 함께 방한하여 처음으로 안장식을 거행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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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 [김희철의 전쟁사(197)]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㉟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곳에서 매년 11월11일 오전 11시가 되면 도시의 소음을 뚫고 싸이렌이 울리고, 6.25남침전쟁 참전국들은 시간을 맞추어 부산 방향으로 고개숙여 엄숙히 묵념을 드리는 추도 행사를 치룬다. 이 행사는 2007년 6·25남침전쟁에 참전했던 캐나다 용사인 빈센트 커트니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는데, 이는 참전용사의 유해가 한국땅에 안장된 영령들을 추모하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염원으로 열리는 너무나 뜻깊고 소중한 행사이다. 이 행사는 2007년부터 시작됐지만 정부가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로 격상시켜 2020년부터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지구의 어느 곳에 있는 나라인지 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북한 공산당의 불법 남침으로 비롯된 6·25남침전쟁에 참전하여 홀연히 전사한 영령들을 위로 추모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이란 이름의 행사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극동의 작은 나라 전쟁에 참전하여 희생된 고귀한 생명이 그만큼 많다는 것은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대가가 얼마만큼 크고 비싼지를 깨닫게 하는 시금석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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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0
  • [김희철의 전쟁사(196)]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㉞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故 위트컴 장군 부부가 영면하고 있는 ‘유엔기념공원’은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가 부산시 남구 대연동 13만4000㎡의 넓은 부지에 전사자의 공동묘지로 조성했으며, 1955년 유엔총회가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로 의결했다. 6.25남침전쟁 당시 참전국은 유엔군으로 파병한 16개국과 장비, 물자, 의료를 지원한 나라까지 67개국이었다. 이 사실은 안재철 월드피스자유연합 이사장의 노력으로 2010년 9월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의 파병 및 지원기록으로 등재됐다. 이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참전한 유엔군의 피해는 전사 3만 5737명, 부상 11만 5068명, 실종 1554명으로 총 15만 2359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유엔군 중 아이젠하워 대통령,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밴플리트 8군사령관, 해리스 해병 1항공사단장 등 미군 고위장성들의 아들 142명이 참전했다. 그들 중 35명이 전사, 실종 혹은 부상을 당했다.([김희철의 전쟁사](37) ‘보훈의 달, 잊혀가는 영웅들과 지도자의 자세’ 참조) 현재 부산에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UNMCK)에는 처음에 16개 파병국의 1만1000위가 봉안돼 있었으나 대부분 자국으로 송환되고 일부 유해만 남아 있다. 현재 이곳에는 영국 885명을 비롯, 터키 462명, 캐나다 378명, 호주 281명, 네델란드 117명, 프랑스 44명, 미국 36명, 뉴질랜드 34명, 남아공 11명 등 11개국 2311구의 유해가 안장돼 전쟁이 끝난 후까지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 땅에 잠들어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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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대를 말한다
    2022-08-08
  • [김희철의 전쟁사(195)]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㉝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묘숙 여사는 북한 조국평통일위원장 허담의 초청으로 1990년 6월 북한땅을 처음 방문한 뒤, 이중간첩으로 오인받아 김포공항으로 귀국하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의 조사를 받으면서도 장진호 전투의 미군 유해발굴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었다. 허나 건강이 악화되어 서울에서 거주해온 한묘숙 여사(위트컴 희망재단 이사장)가 입원 치료 중 2017년 1월1일 오후 9시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故 한묘숙 여사는 부산대학교가 설립 초기 장전캠퍼스 부지 제공과 공사 등 국립 부산대학교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크게 공헌하며 도움을 준 故 위트컴 前 유엔군 군수사령관의 미망인이다. 대학측은 그 공적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유족과 협의를 거쳐 당시 전호환 총장을 장례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한 여사의 장례를 부산대학교장(葬)으로 치르기로 했다. 이에 따라 부산대는 故 한묘숙 여사의 빈소를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4분향소에 마련했다. 이와 별도로 장전캠퍼스 대학본부동 1층에도 분향소를 설치해 고인을 추모했다. 故 한묘숙 여사의 유족으로는 자녀 민태정, 자부 민옥린, 손자/녀 민경동/민영동이 있으며, 부산대 전자공학과 김재호 교수가 양자로서 빈소를 지켰다. 4일 오전 10시 부산대학교 내 10.16기념관에서 거행된 故 한묘숙 여사의 영결식은 개식,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와 추모영상 상영 및 부산대 총장의 조사와 추도사 및 추모곡 순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부산시장을 비롯한 주요 기관장들과 부산대 전임 총장단, 주한 미국대사와 부산 미국영사, 주한 미8군 사령관과 주한 미해군 사령관 및 유엔평화기념관장과 메리놀병원장, 위트컴 희망재단 관련 인사 등이 참석했다. 故 한묘숙 여사는 10.16기념관에서 영결식을 거행한 뒤 오후 3시경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묘지’ 내 故 위트컴 장군 묘역에 함께 안장되었고 이곳에 유일하게 잠들어 있는 민간인 신분의 한국 여인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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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9)] 혈연, 지연 및 학연보다도 근무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때마침 사단으로 전입오게 된 동기생 황종수 소령(육사37기)은 11사단에서 중대장을 마치고 육군사관학교 교관요원으로 선발되어 후배를 가르치다가 야전으로 나오게 되었다. 헌데 중령 진급에 유력한 자리인 타 연대 작전과장엔 이미 모두 예정된 대기자들이 있었고 당시 공석이 된 양 대령 연대의 작전과장 자리도 유경험자를 원하기 때문에 보직을 받기가 몹시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양 대령에게 동기생인 황 소령을 추천했으나 그는 몹시 곤란한 표정으로 경력이 문제이고 게다가 육사 교관을 수행하여 야전 경험도 부족하며, 특히 주특기가 작전직능이 아닌 기획직능이기 때문에 더 더욱 고민이라며 쉽게 대답을 안했다. 필자는 양 대령 연대를 찾아갔다. 그리고 필자의 사단 작전장교 시절에 목격했던 황 소령의 중대장 근무 시에 탁월했던 야전성을 설명했다. 당시 황 대위는 11사단 중대장으로 연대전술훈련 평가를 위해 연대의 최전방 중대로 100km가까운 행군을 하여 필자의 아파트 옆에 있던 공터에 주둔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마침 퇴근하던 필자는 훈련에 참여한 병사에게 중대장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동기생인 황종수 대위라고 하여 아파트에서 커피를 타가지고 중대장 텐트를 찾았다. 텐트안에 있던 황 대위는 기습적인 방문에 놀람과 동시에 어쩔 줄 모르며 반가워했다. 그때 필자는 이미 중대장 근무도 마치고 사단 작전장교로 보직받아 숙달되어 가던 차이라 위탁교육을 받고 늦게 중대장직을 수행하는 동기생을 격려하겠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헌데 숙영지 편성을 보고 깜작 놀랐다. 필자가 중대장 시절에 편성했던 모습과는 몇단계 향상된 배치와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는 훈련에 임해서 상대 연대와 공격, 방어 전투에서 창의적으로 대처하여 완승을 거둔 체험담을 이야기했다. 생도시절 철학을 전공했던 그답게 입담도 좋았지만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한 상황조치로 상대방은 허를 찔렸고 상급자로부터는 극찬을 받았다는 성공담도 늘어놓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탁월하게 맹활약하는 동기생이 너무도 자랑스러웠고 필자도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도 되었다. 다음날 새벽에 출근하다가 황 대위의 숙영지를 보니 아무도 없었다. 연대전술훈련 평가를 위해 이미 야간에 타지역으로 이동했는데 그들이 떠난 자리를 보고 또한번 놀랐다. 전장정리를 철저히 하여 티끌만한 흔적도 남지 않았다. 역시 자랑스럽고 탁월한 동기생 황종수 대위였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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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3
  • [김희철의 전쟁사(194)]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㉜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2012년 국제신문에 위트컴 장군을 조명하는 기획시리즈 기사가 보도된 이후 부산시가 그해 10월24일 유엔의날 기념행사에 맞춰 부산시민의 감사 뜻을 담은 감사패를 故 위트컴 장군 부인 한묘숙 여사에게 전달했다. 오늘의 부산은 세계와 무역하며 해운과 수산의 중심지로 역할하고 있다. 또한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도 유용한 교류의 관문이며 오랜 기간 시행된 국제영화제 행사 등 수많은 국제 교류 역사가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열린 세계인의 마음과 인류애를 바탕으로 상생하는 협력과 선행의 표상인 故 위트컴 장군의 모습은 세계시민의 역할을 자부하는 부산시민들에게 인류공영에 어떻게 이바지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부산시민들은 자신들의 DNA가 위트컴 장군과 너무도 일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트컴 장군, 그는 영원한 한국인, 부산인이다”라고 추앙하며 자랑스러워한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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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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