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3(금)

소통시대
Home >  소통시대  >  CRISIS M

실시간 CRISIS M 기사

  • [김희철의 CrisisM] 백선엽장군기념재단, 2025년 달력으로 6·25남침전쟁을 상기시켜(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사실 요즈음 많은 신세대 시민들과 어린이들은 74년 전에 발발한 6‧25남침전쟁을 학교 및 가정교육에서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아직까지 일부 생존한 90세가 넘어가는 6‧25남침전쟁 참전용사들만이 그때를 회상하며 몸서리 칠뿐이다. 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이는 전쟁을 원한다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에 굴복하기보다는 전쟁에 맞서 방어하라는 의미이다. 굴종은 평화가 아니다. 전쟁은 평화주의자를 노린다. 강력한 군사대비 없이 입으로만 평화를 떠드는 사람은 무책임하다. 전쟁이 발발하여 침략을 당하면 평화고 뭐고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처절하고 비참하게 피 흘리는 전쟁보다는 비겁한 평화가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따라서 남녀노소 모든 국민, 특히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남침전쟁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전쟁에 대비하여 평화를 지키려는 국민적 안보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그래야 비참하게 피 흘리는 전쟁 발발의 비극을 사전에 막아내 평화를 지키며 행복한 나라를 영위할 수 있다. ■ 백선엽기념재단의 2025년 달력은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와 촉매제가 될 것으로 확신 지난 정권에서 육군사관학교에서 조차도 전쟁사 교육이 약화되어 6‧25남침전쟁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바닥까지 떨어지며 안보의식이 희박한 안타까운 상태가 됐다. 하지만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은 북한군의 불법 남침부터 낙동강 방어작전, 유엔군 북진, 중공군 불법 개입 및 휴전에 이르는 6‧25남침전쟁 경과와 백선엽 장군의 애민 사상에 따른 활동과 육군재건 및 현대화를 위한 노력 등을 해당 월별로 표현한 2025년 달력을 제작하여 국민 안보교육에 기여했다. 지난 14일 전쟁기념관 429호실(생전에 백선엽 장군이 사용했던 곳)에 위치한 기념재단 사무실에서 이사회가 열렸다. 김관진 이사장(전 국가안보실장)과 백남희 여사(백선엽 장군의 장녀), 방기봉 회장 등 이사회에 참석자들은 팽준호 사무총장의 2025년 달력 설명을 듣고, 한결같이 6‧25남침전쟁에 대한 충분한 교육자료가 될 수 있는 잘 제작된 교육자료 달력이라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때마침 방위산업공제조합에서 조합 홍보용으로 대량 구매를 결정했고, 방기봉 회장의 협조로 어린이들 교육을 위해 색동회와 한화그룹의 방위산업체에서도 홍보 및 국민 교육용으로 구매해 분배할 것을 검토중이다. 백선엽기념재단의 2025년 달력은 편협된 측면에서 친일논란에 소용돌이에 잘못 전해진 6‧25남침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잊혀져가는 6‧25남침전쟁의 동족상잔 비극이 이 나라에서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와 촉매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2-10
  • [김희철의 CrisisM] 백선엽장군기념재단, 2025년 달력으로 6‧25남침전쟁을 상기시켜(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군의 불법 기습남침이 있자, 그해 4월22일 취임한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은 문산축선에서 3일간 방어하다가 철수하여 수원, 충북 음성, 경북 함창 일대를 거치며 축차적인 지연전을 실시했고, 결국에는 낙동강 최후 방어선인 다부동지역까지 이동했다. 8월부터 치루어진 한반도 방어의 마지막 보루였던 다부동지구 전투에서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의 공격을 저지 격멸하여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38도선을 넘어 10월19일 대동강교 동측에 최초 진입하며 평양 탈환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이미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불법 진입한 중공군이 10월26일 운산전투에서 유엔군과 최초 교전한 이후 인해전술에 밀려 남북통일할 수 있었던 북진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이듬해 1월까지 수원 ~원주~삼척에 이르는 선까지 축차적으로 철수했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11월27일부터 12월11일까지 중공군 9병단 7개 사단 12만명의 포위섬멸전에 맞서 미 10군단 1해병사단 약 3만명이 1만7천여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치룬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4만8천여명을 사살하며 포위망을 돌파했고, 중공군의 공격을 지연시킨 덕분에 약 20만명이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피난할 수 있는 흥남철수도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는 사회적 환경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남침전쟁은 많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이런 이유중에 하나는 문재인 정부시절에 국민 안보교육이 위축되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쟁사 교육이 선택 과목으로 전환되어 졸업생 30% 정도만이 6‧25남침전쟁사 교육을 받는 상태까지 되자 당시의 신원식(현 국가안보실장) 등 여러 국회의원들과 많은 안보전문가들의 맹렬한 비판과 질타가 이어졌다.(하편 계속)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2-06
  • [김희철의 CrisisM] ‘압록전투’의 ‘남제평 경감’, 10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0년 7월29일,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벌어진 ‘압록 전투’에서 적의 이동 경로를 사전파악 후 매복 작전을 통해 적 정규군을 섬멸하는 놀라운 전공을 세운 남제평 경감(당시 경위)을 ‘2024년 10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18년 10월25일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출생한 남제평 경감은 1948년 11월15일 경찰 경위로 임용됐다. 1950년 곡성경찰서 정보참모로 재직 중 발발한 6‧25남침전쟁 1개월 만에 전라남도 곡성지역이 북한군에 점령당하자, 300여 명의 곡성경찰서 대원들은 북한군의 남하 저지와 관할지역 사수를 결의하고 작전지휘소를 태안사로 옮겼다. 1950년 7월29일 북한군이 경상남도 하동에서 전라북도 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곡성군 죽곡면 압록교를 통과할 예정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남제평 경감은 주변에 매복한 후 적 대열을 기습했다. 약 4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적군 52명 사살, 생포 3명, 트럭 4대를 포함한 장비 70여 점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적군의 이동을 일주일 이상 지연시킴으로써 아군의 낙동강 방어작전에 크게 공헌했다. 압록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북한군은 보복을 위해 8월6일 08시경 곡성경찰서 주둔지인 태안사를 포위 공격했다. 1개 연대에 달하는 적을 상대로 남제평 경감과 47명의 경찰관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함으로써 살신보국(殺身報國)을 실천했다. 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1950년 12월, 경감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하였다. 한편, 전라남도 경찰국은 1985년 8월 곡성군 죽곡면에 태안사 전투에서 전사한 경찰관 48명의 넋을 추모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경찰충혼탑을 건립하였으며, 전남경찰청에서는 매년 8월6일을 전후해 경찰충혼탑에서 태안사 작전 전몰경찰관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0-29
  • [김희철의 CrisisM]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최초 한국계 사령관으로 금의환향한 춘천 소년(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지난 7월11일 오후 2시30분 대구시청을 방문한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 박 준장과 환담했다. 진 H.박(Jin H.Pak) 준장은 홍준표 대구광역시장과의 환담에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근무했던 대구에 다시 돌아와 근무할 수 있게 돼 영광이다”고 말했다. 이에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최초로 한국계 사령관이 부임한데 대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대구에서 근무하는 동안 상호 우호 관계가 증진되고 임무 수행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 장군이 부임한 미 19지원사령부에는 한때 한국계 미국인인 류선 육군중령이 498전투유지지원대대장으로도 근무했었다. 류선 육군중령은 2023년 3월 부임 당시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저에게 ‘또 하나의 조국’이기도 하고요. ‘우리의 한미동맹(Our ROK-U.S. alliance)’이 오늘날처럼 강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다시 한국에서 복무하며 한미동맹 강화에 일조하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거의 20년 전, 저는 이곳 한국에서 미군에 입대했습니다. 한국에서 제 경력을 시작한 것에 늘 감사하고 있죠. 그리고 지금 저는 멋진 조직을 지휘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 온 제가 받은 환대는 정말 각별했죠”라고 언급했다. 이어 “저는 엄격한 환경에서 이뤄지는 한미 연합훈련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현실적인 훈련은 장병들에게 더 큰 효과를 주죠. 저와 저희 대대 장병 모두는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의 상시 임전태세를 유지하고자 합니다”라며 완벽한 연합대비태세 유지에 힘을 보태겠다는 각오도 밝혔었다. 미 19지원사령부는 미 육군서 유일하게 전진 배치된 군수야전사령부로 ‘한반도 안보·평화 유지’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 19지원사령부에서 다시 근무하게 된 신임 사령관 박 준장도 미국 이민자 집안 출신이 최초로 주한미군 장성급 지휘관으로 부임하는 것이어서 관심이 모아지며, 보다 강력해진 한미연합방위 태세 공고화가 기대된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0-22
  • [김희철의 CrisisM]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최초 한국계 사령관으로 금의환향한 춘천 소년(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국계 미군 장군이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된 지 46년만에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해 화제다. 1970년대는 미국이 닉슨 독트린, 베트남 철수 등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 방위력을 최소화시키는 조치가 연속된 시대였다. 대한민국 역시 1972년 주한 미 육군 7사단의 철수를 경험한 바 있었기 때문에, 유엔사 해체 결의안 통과를 시작으로 주한미군 전체가 철수하는 최악의 안보 공백 시나리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와중에 베트남의 적화는 큰 이슈였다. 그때 한미연합사의 모체라 할만한 부대가 창설되었는데, 한미혼성 제1군단이었다. 군단장은 미군, 부군단장은 한국군인 현행 체제와 비슷했고 휘하 미군 사단을 지휘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유엔사를 대신해 유사시 한국군과 미군을 총괄 지휘하는 기구의 필요성을 미국 측에 역설했고, 이 결과로 1978년 11월7일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 초대 사령관은 1976년부터 유엔군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재직 중이던 존 베시 미 육군대장이 임명되었고, 한미연합사는 오늘날까지 46년째 이르고 있다. 지난 6월5일 프레드릭 크리스트(Frederick L. Crist) 준장 후임으로 진H 박(Jin H.Pak, 52세, 한국명 박진형) 준장이 대구 남구 캠프헨리에 소재한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으로 부임해 대한민국 남부지역 작전 유지와 지휘, 물자 수송 등을 책임지고 있다. 제19지원사령부 지휘관으로 취임한 박 준장은 1957년 주한미군사령부 및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 이래 최초의 한국계 장성급 사령관이다. 1972년 태어난 그는 춘천에 거주하는 조부모 손에서 유아 시절을 보냈다. 그가 태어난 후 약사였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됐다. 6살 되던 해인 1978년 부모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 박 사령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 하늘에 비행기가 보이기만 하면 ‘와...! 비행기가 미국으로 간다’고 말했다”며 “언제나 부모님이 보고 싶은 어린아이였고 늘 미국에 가고 싶어 했다”고 당시 기억을 회상했다. 그는 뉴욕에서 성장해서 1994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수송장교로 임관했다. 이후 독일과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등 전투지역에 파병돼 활약했고, 한국에선 주한미군의 주축이자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부대인 미 2사단에서의 근무 경험도 있으며, 2012년 제19지원사령부 예하부대 대대장과 한미연합사령부 기획참모부 연합계획과장을 지내는 등 30년째 미 육군에서 복무 중이다. 금의환향(錦衣還鄕)한 박 사령관은 취임사에서 “여섯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19지원사령부와 같은 환상적인 부대의 지휘관으로 대한민국에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19지원사와 같이 갑시데이(갑시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친근감을 표시하며 한국계 미군 장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했다.(하편 계속)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0-18
  • [김희철의 CrisisM] 서울 청계광장에서 '독도히어로즈 페스티벌' 개최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일본의 독도 무단 침범을 격퇴한 '독도대첩' 70주년을 맞아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회장 최완근) 주관으로 지난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독도히어로즈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이날 오후 2시 개최된 독도대첩 70주년 기념식에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기념사업회 회원, 학생,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념식 외에도 학생들과 함께하는 기념공연, 독도의용수비대 소개 영상 시청 및 활동상 전시, 독도의용수비대 활동 및 독도 지형 체험, 게임·퀴즈, 독도의용수비대 캐릭터 이름 짓기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진행됐다. 독도대첩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33명의 독도의용수비대가 1954년 11월21일 독도를 무단 침범한 일본에 맞서 승리한 전투다. 당시 대원들은 일본 해상보안청의 무장순시함 헤쿠라호와 오키호를 M1소총과 가늠자 없는 박격포 등 열악한 무기로 격퇴했다. 이는 독도의용수비대가 일본과 싸워 가장 크게 승리한 전투로, 일본이 다시는 독도를 불법 침범하지 못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훈부는 설명했다. ‘독도대첩일’은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에 무단 침범한 일본과 맞선 전투 중 가장 크게 승리한 1954년 11월21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는 지난 2013년부터 ‘독도대첩일’로 명명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투혼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면서 “이번 독도대첩 7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페스티벌을 통해 서른 세분의 독도 영웅분들이 일궈낸 승리의 역사를 국민과 함께 기억·계승하는 의미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0-11
  • [김희철의 CrisisM] 사천 등 16개소, ‘국가관리묘역’으로 품격있는 묘역 유지·관리 추진(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지난 15일 JTBC에서 ‘매년 성묘하는데 ‘소재불명?’ 독립유공자 묘소 파악 못 하는 보훈부‘라는 보도가 있었다. 김교영 선생의 묘소는 JTBC가 유족을 통해 확인하기 전까진 어디 안장돼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고, 백영촌 선생(1990년 애국장)도 대전현충원과 대구신암선열공원에 각각 안장되어 보훈부는 “어디가 진짜 묘인지 확실하지 않다”며 “전체 독립유공자의 절반, 묘소 위치조차 파악 안된다”고 밝혔다. 이에 JTBC는 “보훈부 기본적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나온다”라고 보도했다. 국가보훈부는 2015년부터 매년 국립묘지 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묘소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전체 독립유공자 1만 8,000여 명 중 8,500여 명은 묘소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는 후손 미확인으로 인한 미등록이나 유족이 묘소를 모르는 경우 등의 이유로 묘소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수권 세대(손자녀) 이후 후손과의 연락체계를 만들고 유관기관과 협업을 통한 국민제보 확대, 그리고 정기적인 조사를 실시하여 독립유공자 산재 묘소가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국가보훈부는 대책을 제시했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10-02
  • [김희철의 CrisisM] 사천 등 16개소, ‘국가관리묘역’으로 품격있는 묘역 유지·관리 추진(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지난 11일 경남 사천지역 출신 6·25남침전쟁 전몰군경 등이 안장되어 있는 ‘사천 국군묘지’를 국가가 직접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했다. ‘사천 국군묘지’는 경북 영천 보현산 일대 공비소탕작전과 강원 횡성북방지구 전투 등 각기 다른 전투에서 투혼을 발휘하다 전사한 사천지역 출신 6·25남침전쟁 전몰군경 등 44명을 정전협정 후인 1953년 10월15일, 사천시(당시 사천군)에서 사천공항 인근 사천읍 구암리 야산에 안장하면서 조성한 후 지금까지 관리해왔다. 하지만, 비행기 소음과 묘지 앞 철로로 인한 접근 불편으로 인해 유족들의 묘소 이전 건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에 따라 사천시는 국가를 위한 희생에 대한 예우와 유족들의 의견을 고려하여 2021년 사천 국군묘지 이전계획을 수립, 묘지 조성 71년 만인 올해 8월, 사천시 종합장사시설인 사천 누리원 내에 별도의 묘역을 조성해 이장했다. 이후 국가보훈부는 사천시와의 협의를 통해 새롭게 조성된 사천 국군묘지를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하고 안내판과 조경을 비롯한 체계적인 관리에 나설 계획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셨던 분들에 대한 예우로 양지바른 장소에 새롭게 묘역을 조성한 사천시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국가보훈부는 국가관리묘역으로서 품격있는 묘역 유지·관리는 물론, 묘역을 방문하는 유족분들에 대한 편의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관리묘역은 국립묘지 외의 장소에 안장된 국가유공자 등 합동묘역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난 2021년부터 지정해오고 있으며, 이번 경남사천국가관리묘역을 비롯해 현재 서울수유국가관리묘역과 거제장승포국가관리묘역, 충북괴산국가관리묘역 등 전국적으로 16곳이 지정되었다.(하편 계속)
    • 소통시대
    • CRISIS M
    2024-09-27
  • [김희철의 CrisisM] 구설수를 극복하고 취임한 신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광복회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며 이른바 '뉴라이트' 인물로 지목한 재단법인 대한민국 역사와 미래 김형석 이사장이 김형석 제13대 독립기념관장으로 지난 8일 취임했다. 이를 반발하며 식장에 들어가려는 광복회 회원들과 독립기념관 직원들이 대치해, 취임식이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열였다.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은 건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오산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주경야독으로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를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총신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 한민족복지재단 회장, 고신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하지만 친일 과거사 청산 부정과 1948년 건국절 등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독립기념관 설립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었다. 한편 8월25일 JTBC에 따르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맡았던 재단이 국가보훈부로부터 1억 9,600만원짜리 연구용역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던 것으로 파악했는데, 지난해 6월 보훈부로 승격된 뒤 진행한 40여 건의 정책연구용역 가운데 가장 높은 금액이다. 그런데 “정책연구용역비를 쓰려면, 과제 필요성과 차별성, 연구자 선정 이유 등을 보훈부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관련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특혜’이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보훈부에서는 “정책연구가 아닌 일반 학술 연구로 진행했기에 관련 절차는 필요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작 국회에서는 김 관장이 따낸 과제를 정책연구라고 보고하였고, 이에 대해 “보훈부는 의원실에서 포함시켜 보내라 해서 보낸 것이라고 해명하였다”고 밝혔다. 김형석 관장이 수주한 연구용역 과제는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 재조명 및 선양·홍보 방안 연구용역’으로, 광복 80주년 계기로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알려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2024년 4월16일부터 8월14일까지 추진하였다. 이 연구용역은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의 인지도 실태 조사, 독립유공자 인물 연구 및 선양·홍보 방안 강구 등 지식 기반 업무 용역 성격에 해당하여 ‘일반연구비’를 사용한 ‘일반연구용역’으로 진행하였다. 또한, 특정 업체를 염두하고 추진한 것이 아니며, 연구용역을 수행할 기관 선정을 위해 조달청을 통해 제한경쟁입찰을 공고하였는데 용역수행 기관으로 1개 업체만 응찰하였고, 인력·조직의 전문성, 과업 수행에 대한 이해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관련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선정하였다며 JTBC의 최초 문제 제기가 잘못되었다고 보훈부는 강조했다. 지난 8일 업무를 시작한 신임 김형석 관장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며 꿈과 미래를 심어주는 곳으로 국민이 즐겨 찾는 독립기념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중점 추진 과제로 ▲정부와 연계한 광복 80주년 행사 성공적 개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활성화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의 강화 ▲기관 경영혁신 고도화를 제시했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09-10
  • [김희철의 CrisisM] 때늦은 ‘생계곤란 국가유공자 등 장례서비스 지원’ 본격 시행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지난 2018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생계곤란 및 무연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장례서비스 지원 사업의 안정적인 추진을 위해 국가유공자법을 비롯한 5개 법률(국가유공자법, 참전유공자법, 고엽제후유의증법, 5.18민주유공자법, 특수임무유공자법)을 개정, 지난 2월13일 공포에 이어 14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특히, 국가보훈부는 해당 법률 개정안의 후속 조치로 지원 대상과 내용, 절차 등 구체적인 사항이 담긴 ‘국가유공자 등 장례서비스 지원 지침(훈령)’을 제정했다. 지침에는 1.장례서비스 목적 및 용어에 관한 사항 2.지원 대상 및 내용에 관한 규정 3.지원 절차 및 방법에 관한 규정 4.사후관리 및 재검토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장례서비스 지원 대상은 국가유공자와 참전유공자, 특수임무유공자, 5·18민주유공자, 고엽제후유의증환자(수당지급대상자) 중 국민기초생활수급자(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에 해당하거나 연고자가 없는 경우 지원된다. 또한, 이 경우 장례지도사 등 인력지원을 비롯해 고인 용품과 빈소 용품, 상주 용품 등 물품지원과 장의차량 등을 지원한다. 장례서비스 지원 절차는 생계곤란 국가유공자 등이 사망할 경우, 장례 기간 내 유족이 거주지 관할 보훈관서 또는 상조업체에 신청하면 국가보훈부에서 선정한 상조업체를 통해 현물 장례서비스를 제공하며, 무연고자는 관할 지자체에서 보훈관서로 통보하면 해당 서비스가 지원된다. 국가보훈부는 무연고 국가유공자의 장례서비스 지원을 위해 최근 보건복지부와 부처협업으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을 개정, 지방자치단체의 무연고 국가유공자의 확인 절차를 법령에 규정하는 등 무연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장사 예우를 강화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생활이 어렵고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장례 등 마지막 예우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라면서 “국가보훈부는 장례서비스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시행에 들어가는 만큼, 국가유공자분들의 마지막을 모시는 일에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히 살피겠다”고 밝혔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4-08-27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