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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민의힘 ‘용인시병’에서 단수 공천된 고석 후보는 1960년 서울시 성북구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군 전역 후 고향이었던 전남 무안으로 이사해 함평 학다리고교를 나왔다. 육사(39기) 생도시절 공부를 잘했던 고 후보는 육사 교수요원으로 발탁되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위탁교육을 받았고,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군법무관으로 주로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등에서 복무했으며, 군 내부에서는 방위산업과 정부 계약에서 빈틈없이 탁월한 업무처리를 하여 강직하다는 평이 주류였다. 1998년에는 원용수 준위가 6백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병무비리 사건에서 병무비리 청탁자 명단을 찾아내어 병무비리를 밝혀냈다. 더불어 해묵은 병무비리들을 파헤쳐 군 내부의 기강을 바로 잡은 것으로 주목 받았는데 당시 진보정권의 미움을 받아 한직에서만 머물게 했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2008년 11월 방위사업청 법무지원팀장으로 근무하며 준장으로 진급해 육사 동기생 중 첫 번째로 별을 달았다. 이때 당시 대전지검 논산지청장으로 있던 윤석열(사법연수원 23기) 대통령이 직접 영전을 축하했었다. 이후 2009년부터 육본 법무실장을 거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역임했다. 전역 후 2013년 법무법인(유) 화우 변호사로, 2015년부터는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파트너변호사로 근무했다. 2022년 6월 ‘용인시병’ 당협위원장 공모에 신청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였던 인연이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후 2023년 6월 지역 대학교수와 전문가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여 ‘수지새미래연구원’을 창립해 원장으로 추대되었다. 2023년 8월 당협위원장으로 내정되었으며 2024년 2월16일 열린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결과 발표에서 단수공천이 확정됐다. ‘용인시병’지역은 민주당에서 문재인 정권의 국방부 대변인을 지냈고 윤석열 대통령 저격수 역할을 한 부승찬(제주생, 공사43기) 후보가 당내 경선 승리하며 확정되어 ‘육사 대 공사, 장군 대 소령의 경쟁’이 주목받고 있다. ‘용인시을’ 후보로 공천받은 이상철 후보는 용인시 백암면에서 태어나 백암중, 수원 유신고교(11회)를 졸업하고 1990년 한양대 졸업과 함께 학군사관 28기로 임관하였다. 중령~준장까지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오직 제2작전사령부 지역에서 근무한 후방지역 작전 전문가이다. 제5보병사단장에 취임하여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을 잘 마무리하여 2021년 임기제로 중장 진급과 함께 군사안보지원사령관으로 보직되었다. 하지만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대장급 인사에서 문재인 정부 수혜 인사로 분류되어 보직대기 상태가 되었고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으로 재직하다가 2023년 전역했다. 이후 2024년 1월 국민의힘에 22대 총선 국방안보분야 인재로 영입되어 ‘용인시을’ 전략공천 후보가 됐다. 본선 상대는 해당 지역구 현직인 민주당 김민기 의원의 불출마에 따라 공천된 손명수 전 국토부 2차관이다. 영주시·영양군·봉화군·울진군 지역구의 임종득 후보는 경북 영주시 출신으로 대구 청구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42기로 임관해 전략/정책 분야 참모를 맡은 전략통 군인으로 2019년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경남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이다. 2009년 대령 시절 육사 2학년이었던 아들(68기)과 함께 공수 강하훈련을 했던 일화도 있다. 2022년 8월, 건강 문제로 직에서 물러난 신인호 국가안보실 제2차장의 후임으로 임명되었고 퇴임한 2023년 10월부터 차기 총선준비를 했다. 같은 영주시 출신 정치인 장욱현 전 영주시장, 장윤석 전 국회의원 등과 경쟁해 결국 공천을 따냈다. 사실상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인 경북 지역이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다면 제22대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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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은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별고지 전투는 1952년 2월 18일 네덜란드 대대가 평강 남방 10km 지점에 위치한 중공군의 전초진지인 별고지(430고지)를 공격해포로를 포획하고 방어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고 각종 가용 지원화력의 엄호하에 공격을 전개한 전투이다. 그해 2월 5일 미 제2사단 제 38연대 예비로 전환한 네덜란드 대대는 철원 동쪽의 하리동에 집결했고, 2월 10일~15일간 적 유인 작전인 유엔군 ‘Calm Up’ 작전이 실패하자 네덜란드 대대는 사단장으로부터 중공군 주요 전초진지인 별고지를 기습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때 별고지는 2개 소대규모 중공군이 배치돼있었고, 고지 후방에는 중대규모의 증원 병력도 있었다. 이들은 후방 472고지 일대에 구축한 강력한 지원기지로부터 화력지원까지 받고 있었다. 네덜란드 대대는 3개 포병대대, 4.2인치 중박격포 2개 중대, 전차 2개 중대, 부상자 및 탄약운반을 위한 노무자 70명과 화염방사기, 방탄복까지 지원받았다. 적진 항공정찰을 통해 전투 계획을 수립한 대대장은 2월 17일 대대 간부들을 집합시켜경사지에서의 신속한 이동을 강조하며 작전명령을 내렸다. 2월 18일 04시 B중대가 출발했다. 05시 엄호소대가 주저항선을 통과해지시된 무명고지를 점령하며, 06시 15분 후속하던 주공인 2개 소대가 공격개시선으로 진출해 모든 공격준비를 완료하자 06시 45분부터 예정된 공격준비사격이 별고지 일대에 집중됐다. 드디어 07시 B중대는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고, 포병의 오폭으로 잠시 공격이 일시 정지되기도 했지만. 우일선 소대는 경미하게 저항하는 적을 격퇴하고 별고지를 점령했다. 07시 30분경 472고지 방면으로 철수하는 적을 포병과 전차가 집중포격 실시해 많은 적을 사살했으며 09시경 연대장 지시에 따라 벙커 3개와 다량의 포탄 및 지뢰 등을 폭파하고 화력 엄호를 받으며 저항선으로 복귀하며 전투를 종료했다. 이번 별고지 전투로 5명이 전사하고29명이 부상당한 네덜란드 대대는중공군 1개 중대 이상을 완전 섬멸시키는 대성과를 올렸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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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는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횡성전투를 마친 네덜란드대대는 미 제2사단의 일부로 중동부지역 대암산~도솔산 부근 전선에 투입되었다. 대우산 전투는 방어선 전방의 감제고지인 대우산을 점령하기 위해 조공 부대로서 북한군 제27사단이 점령하고 있던 그 남쪽의 1120고지(대머리산)을 공격하여 탈취한 전투이다. 1951년 7월15일 네덜란드대대 1개월 간 부대 재정비 후 미 제38연대에 배속되어 양구 북쪽의 도솔산으로 이동하여 7월25일까지 적의 중대규모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으며 다수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1120고지를 정찰했다. 7월26일 07시30분경 네덜란드대대 공격부대인 C중대 주저항선 전방의 만정곡으로 이동하여 공격 개시하여 10시30분경 돌격선 진출하였지만 안개가 걷히며 중대가 적에게 노출되고 적이 C중대를 향해 기관총사격을 집중했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사상자가 증가하고 위험해지자 고지 중간지점으로 철수함. 이때 좌전방으로 우회 공격한 일부 병력이 고참병들의 투혼으로 1120고지로 진출해 적의 진지 일부를 탈취했으나, 적의 역습으로 다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오후 C중대 재정비 후 재공격 준비했으나, 오히려 적에게 발견되어 역습당하였고, 점점 부상자가 속출하게 되어 어두운 밤이지만 연막과 야간을 이용해 철수했다. 이후 7월29일 미군 1개 대대가 공격 주도하고 네덜란드대대는 조공으로 미군에 대한 화력을 지원했는 데 결국 대우산 점령했다. 내덜란드대대는 대우산의 방어력을 보강하기 위해 경기관총으로 증강된 소대규모를 1120고지로 투입되었으나 8월6일즈음 전선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대대는 사단예비가 되어 소양강변의 관대리로 이동하며 전투를 마감했다. 대우산 전투에서 네덜란드대대는 전사 11명과 부상 31명, 실종 1명 등의 인명손실이 발생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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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은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중공군의 2월 공세로 인해 전방의 아군부대들이 철수를 단행하자 이들에 대한 엄호임무를 부여받은 네덜란드 대대가 1951년 2월12일부터 13일까지 횡성 일원에서 중공군의 기습에 대응하는 방어전투를 전개했다. 리지웨이 미 제8군사령관이 반격의 여건을 만들기 위해 시도한 ‘썬더볼트 작전’의 일환으로 공격하던 미 제2사단이 1951년 1월23일 원주를 탈환하자 사단 예비로 있던 네덜란드 대대는 제38연대로 배속되어 원주로 진출했다. 네덜란드 대대는 2월 2일 원주 북서쪽 섬강 부근 송호리와 상장포 일대로 진출해 패잔병 소탕작전을 수행한 뒤, 홍천을 탈환하기 위해 2월 4일 사단의 명령에 따라 횡성으로 이동해 후천에 배치되어 한국군 사단의 후방 엄호를 담당했다. 1951년 2월 11일 중공군 제40군, 제66군이 서북쪽, 북한군 제5군단이 동북쪽에서 아군의 정면과 측면 공격, 일부 병력 연대 후방으로 침투해 유엔군의 주보급로를 차단하는 중공군의 네 번째 공세인 2월 공세가 단행됐다. 이때 군단장이 전 부대에 철수명령을 하달했고, 전 부대가 네덜란드 대대가 방어중인 횡성으로 몰려들자 네덜란드 대대 A중대는 본래의 위치인 횡성교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고 서쪽으로 이동했으며, 오후 15시 30분경 네덜란드 대대가 배치된 지역에 적의 박격포 공격이 집중되어, 본부중대 기능이 마비됐다. 16시경 미 제187공수여단 G중대와 전차소대로 구성된 구원부대가 한국군 1개 보병대대와 함께 돌진해 적에게 포위된 4000여 명의 병력과 합세해 작전을 전개했다. 헌데 19시10분경 중공군이 한국군으로 위장하고 후방으로 침투해 아군의 철수를 엄호하고 있던 네덜란드 대대 화기중대와 대대본부를 공격했다. 이때 대대장은 수류탄 폭발로 전사했고 이러한 상황에서도 21시 30분경 화기중대장이 임시로 대대를 지휘해 끝까지 철수부대를 엄호했다. 다음날인 2월 12일 22시경 사단의 지시에 따라 한국군과 미군 철수 뒤 엄호하던 네덜란드 대대 A중대는 횡성 후방의 뒷네물 강변에, 이틑날 01시 네덜란드 대대 B중대도 뒷네물강 남쪽에, 04시경에는 원주비행장에 도착해 용맹한 네덜란드군의 명성을 드높이며 횡성전투는 종료됐다. 횡성전투로 대대장과 군목, 인사장교 등 17명 전사, 37명 부상, 차량 15대와 다수의 공용화기를 잃는 피해를 입었으나 아군의 철수 엄호작전을 완벽히 수행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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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은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달 박민식 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출장단이 ‘국제보훈 교류·협력’ 등을 위해 방문한 국가중에 네덜란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유엔회원국 중 유엔결의에 따라 제일 먼저 군사지원을 약속한 나라는 영연방국가들이었다. 그 중의 한 나라인 네덜란드는 우선 구축함 지원을 약속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으로서 근본적으로 소련의 유럽 지배에 경계심을 갖고 있었던 이들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해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유럽에서 미국의 확고한 역할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에서 미국과 함께 공산주의자들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덜란드는 해군과 육군을 파병했는데, 해군은 1950년 7월19일, 육군은 11월23일에 도착했으며, 지상군이 한반도 전투에 최초 투입된 날짜는 12월3일이다. 네덜란드는 6.25남침전쟁 당시 군사력이 매우 미약했고, 대부분의 병력마저도 인도네시아에 주둔하고 있었다. 즉각적인 지상군의 파견이 여의치 않음에 따라 우선 1척의 구축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네덜란드 구축함 ‘에베르센’호는 일본에서 운용되던 영국 극동함대에 배속되어 있었고 1950년 7월19일부터 서해안 활동을 시작했다. 네덜란드는 전쟁 기간 동안 6척의 함정을 교대로 파견해 해상작전을 지원했다. 북한군들이 계속 남하해 6.25남침전쟁이 악화됨에 따라 1950년 7월14일 유엔사무총장이 네덜란드 정부에 지상군 파견을 요청했다. 이에 네덜란드는 1950년 9월9일 636명의 1개 보병대대를 창설, 덴 오우덴 중령을 대대장으로 임명하고 11월23일 부산 도착해 현지 적응훈련 거친 후 그해 12월11일 미 제2사단에 배속되어 전투에 참가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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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는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네덜란드 반호이츠 부대내 한국전 참전비 참배를 한 박 장관은 “이번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방문은 6·25전쟁으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을 국제보훈으로 더욱 굳건히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국내 상이군경 재활체계를 비롯한 기반 시설과 관련한 정책을 점검하고 구상하는데 있어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해리왕자를 만나 세계상이군인 체육대회인 인빅터스게임의 대한민국 유치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고, 우크라이나 보훈부 장관과 향후 긴밀한 업무 협의를 통해 대한민국의 보훈정책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소중한 기회를 만들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박 장관은 “국가보훈부는 기존 22개 유엔참전국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진영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유엔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공헌을 알리는 다양한 국제보훈 정책과 사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편 계속)
실시간 CRISIS M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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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이번 월튼 워커 장군의 72주기 추모행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는 독전과 제2차 세계대전시 ‘유령군단’ 명성을 증명한 기동전으로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 성공해 풍전등화의 국가위기 시 대한민국을 구한 워커 장군의 전투지휘와 리더십 등 6·25남침전쟁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미동맹을 되짚어보는 계기도 제공했다. 힘의 원리가 작동되는 국제정세 속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현실을 고려할 때 워커 장군의 군인정신(Stand or Die)과 한미동맹의 밑거름을 만들며 헌신한 노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추모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동안 추모비를 찾지 못했다. 워커 장군의 상징인 ‘W’자 형태의 워커힐 건물에는 워커라는 이름은 없이 ‘피자힐’이라는 식당 간판만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추모비 안내판도 없이 피자힐 안내 표시만 눈에 띄일 정도로 관리가 되고있어 '워커 장군을 기리는 워커힐이다'라는 의미가 퇴색된 느낌이었다. 게다가 워커 장군의 72주기 기일임에도 불구하고 내려가는 입구는 제설 작업도 되지 않은 채 동절기 안전사고 예방이라며 사진에서 보듯이 막아 놓기까지 했다.얼마전 이태원 참 사와 세월호 사건으로 안타까워하던 국민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의심스러웠다. 오히려 국가 위기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머나 먼 이국땅에서 목숨을 바친 워커장군의 기일에 추모비를 부실하게 관리하는 현실이 자칫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란 말처럼 또 하나의 큰 국가 위기가 될까 걱정이 앞섰다. 때문에 우리를 위해 희생한 구국 영웅들의 발자취를 잘 보존하며 기억하는 추모행사는 보다 확대해 국민의 안보의식을 높힐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시작으로 워커 장군을 재조명하고 선양하는 학술회의 등 다양한 사업들이 앞으로 지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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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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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美 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1950년 12월23일 미군 및 영국군 순시와 유공자 훈장 수여(그의 외아들인 샘 S. 워커 대위의 은성무공훈장도 포함)를 위해 지프를 타고 미 24사단 지휘소로 이동하던 10시40분경, 현재 도봉역 2번출구 부근에서 육군 6사단 소속 차량과 추돌해 전복되는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운명했다. 우연찮게도 그를 매우 아꼈던 제2차 세계대전 영웅 패튼 장군도 독일에서 비슷한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시신은 아들에 의해 수습돼 미국 본토로 운구됐고, 이듬해 1951년 1월2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으며, 대장 계급이 추서됐다. 한편 6·25남침전쟁 당시 일선 소총중대장으로 전투에 참여했던 그의 외아들 샘 S. 워커 대위는 훗날 미군 역사상 최연소 대장으로 진급하게 된다. 이로써 미 육군 역사상 유일하게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대장에 진급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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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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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北 핵․미사일 대비한 우주군 창설로 한미동맹 강화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미군이 지난 2019년 공군우주사령부(AFSPC)를 우주사령부(United States Space Command)로 확대 개편했다. 이후 대기권 밖 미사일 탐지‧추적이 주요 임무인 미 우주사령부는 지난 11월 본토 외에 처음으로 하와이에 있는 인도‧태평양사령부에 우주군 부대를 창설했다. 지난 14일 경기도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을 대비해 주한 ‘미 우주군 부대’가 공식 출범했다. 본토 밖에서 창설된 두 번째 부대다. 또한 미군은 최근 중동·아프리카 지역을 담당하는 중부사령부 예하로 사령부가 있는 미 플로리다 탬파에서 우주군 부대를 새로 만들며 더욱 강화하고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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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北 핵․미사일 대비한 우주군 창설로 한미동맹 강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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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미 극동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맥아더는 워커가 전장에서 인상적이고 무자비한 명령을 하여 미군 장병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반대여론이 미국 의회에서 일어나자 7월26일 대구를 방문해 현장을 확인했다. 이러한 반대여론에 대해 미 극동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맥아더가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라는 말로 워커 중장을 옹호하기도 했다. 고령으로 전역을 앞둔 장성이지만 명예를 위해서 ‘오기로라도 버틴다’식의 블도저이자 불독인 워커 장군의 성공적인 낙동강 방어선 전투로 북한군의 전투력은 바닥이 났다. 워커의 고군분투로 북한군 전투력이 고갈된 때를 맞추어 시도된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전세를 역전시켜 북진하게 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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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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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세계 3위 수준 북한 해커에 대한 우리의 대비책⑫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국군방첩사령부’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문재인 정부에서 ‘안보지원사령부’라는 명칭으로 변경된지 4년만인 2022년 11월1일부로 재탄생했다. 문 대통령 시절인 2018년 9월1일에 만들어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육사 출신들이 지휘부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는 국방부의 육사 독점 해소 작업일환으로 보이며 기무사를 안보사로 대체하는 과정에서인원은 3천명 수준으로 감축됐다. 게다가 사령부령에 아예 현역 군인은 70%를 초과하지 못하게 규정했고 감찰실장에는 현역 군인이 아닌 검사, 고위 감사 공무원을 임명하여 기능을 약화시켰는데 윤 정부가 제자리로 복귀시켰다. 방첩사는 군사보안, 군내 방첩, 군 관련 첩보 수집 및 처리, 특정 범죄 수사, 장성급 장교 감찰 등의 국내 관련 군 첩보 임무를 담당한다. 관련 임무는 정보업무 법령에 따라 타 국내 정보기관과 마찬가지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정기적으로 관리/감독을 받으며, 별도의 정보 예산과 업무 자산 또한 지원받는다. 또한 국군의 정보공동체 중 하나로 해외 정보를 담당하는 국방정보본부와 함께 군 정보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며 미국의 DIA산하 방첩부, 독일 제3제국의 아프베어, 구소련의 스메르쉬, 북한의 보위국등에 해당되는 군 방첩기관이다. 한편국방부는 최근 현역 장교 비밀 유출 사건 등을 계기로 자체 역량강화와 능동적이고 적법한 방첩 업무를 보장하기 위해 국군방첩사령부령 개정안을 11월14일 입법 예고했다. 이에 따라 신기술 도입에 따른 보안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 사이버·암호·전자파·위성을 군 보안업무 분야로 추가하며 방산 기술 등 군사 기밀이 북한이나 외국군에 유출되지 않도록 사전 예방 활동을 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했다. 따라서 대장급이 지휘하는 미국의 사이버사령부처럼 각국 정보기관 및 보안기관, 국제 금융 당국의 사이버 관련 부서와 협조해 북한의 사이버 침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조직 보강이 필요하다. 현재 준장이 지휘하며 전 지휘관들의 구속으로 기능이 위축된 ‘사이버작전사령부’의 일부가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라 국방부 별관에서 과천 국군방첩사령부로 이동했다. 이를 계기로 이번에 사이버 보안업무를 강화하고 게다가 군 내부 범죄에 대해서도 자체 수사권이 있는 조직인 ‘국군방첩사령부’와 ‘사이버작전사령부’를 통합하여강력한 ‘사이버방첩사령부’를 창설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북한의 사이버전에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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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세계 3위 수준 북한 해커에 대한 우리의 대비책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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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종전 후, 시카고의 제5군 사령관직을 거쳐 1948년부터 주일 미 제8군 사령관으로 재직 중이던 1950년 6월 북한에 의한 남침전쟁이 발발하자,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명령을 받아 미 24보병사단을 한국으로 이동(1950년 6월30일)시켰고 이어 워커 중장도 7월8일 한반도로 파견됐다. 대한민국에 부임 당시 미숙했던 장병들만으로 극도로 불리했던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면서 미 8군사령관 워커중장의 각오와 의지는 "낙동강 방어선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방어한다(Stand or Die)"였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며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라고 부하들에게게 명령하면서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고 예하 미군들을 독려했다. 또한 그는 낙동강 전선 시찰 도중 차출돼 함께 전투를 하던 국군들에게는 “여기서 더 후퇴하면 내가 장례식을 치러주지 !!”라고 독설을 퍼부으며 전투의지를 강요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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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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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세계 3위 수준 북한 해커에 대한 우리의 대비책⑪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두 번째로 기능이 약화된 ’사이버작전사령부‘의 보강이다. 미국 사이버사령부(United States Cyber Command)는 미 국방부의 사이버전 담당 통합전투사령부로 사이버 자원과 사이버 공간 작전을 통합 관리하고, 미국의 군사 네트워크 방어를 담당한다. 2006년 1월공군사이버사령부가 임시로 창설되었고 2009년 6월23일 미국의 국방부 장관은 미국 전략사령관에게 미국 사이버사령부창설을 지시했다. 2010년 5월키스 알렉산더 중장은 자신의 의견을 미국 하원 국방위원회에 보고하였고, 5월21일미국 전략사령부의 네트워크전 합동기능구성군사령부(JFCC-NW)와JTF-지구권네트워크작전(JTF-GNO)을 합쳐서 미국 사이버사령부에 최초의 사이버작전 능력이 부여됐다. 이때 알렉산더 장군은 4성 장군으로 진급하여 38명의 미군 대장 중 한 명이 되었고, 포트 미드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미국의 국방부 장관 로버트 게이츠(Robert M. Gates)와 중부사령관 데이비드 피트레이어스 대장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사이버사령부의 초대사령관이 되었다. 2017년 8월18일트럼프 대통령은 사이버스페이스 작전 대응을 위해 사이버사령부를 전략사령부 예하에서 통합전투사령부로 승격시키자는 국방장관 메티스의 권고를 승인하여 2018년 5월4일미국 사이버사령부는 10번째 통합전투사령부가 되었다. 2019년 10월11일, 미국 공군부가 사이버전, 첩보, 감시, 정찰, 전자전 기능을 단일부대에서 통합해서 운영하기 위해 제24공군과 제25공군을 합쳐 제16공군으로 재편성하였다. 미국 사이버사령부의 창설은 다른 나라들도 사이버전 부대를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9년 12월대한민국은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창설을 발표했다. 또한,영국의 정부통신본부는 사이버 전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이버전에 대한 당시의 군사 동향은 미국 사이버전 정보센터의 창설을 야기시켰다. 2010년중국도 미국 사이버사령부의 창설에 대응해 방어적 사이버전과 정보 보안을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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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세계 3위 수준 북한 해커에 대한 우리의 대비책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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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889년 12월 텍사스주 벨턴에서 태어난 워커는 1912년 웨스트 포인트를 졸업한 뒤, 프레드릭 펀스턴 준장 아래에서 멕시코 베라크루스 원정에 참여했고, 멕시코 국경 순찰 임무를 수행하면서 육사 3년 후배인 아이젠하워와 긴밀한 우정을 쌓기도 했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제5보병사단 기관총대대 중대장으로 참전했으며, 2개의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종전 이후에는 1923년부터 웨스트포인트(육사) 교관을 하다가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했으며, 중국 주둔군 대대장을 역임한 후인 1936년에는 조지 마셜이 이끄는 5보병 여단 부여단장으로 근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워커 소장은 제3기갑사단장으로서 유럽 전선에 참전했다. 그는 조지 패튼 장군 휘하에서 제20군단장으로 임명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했고, 공격 시에는 당시 상상할 수도 없는 빠른 진격 속도로 선봉 역할을 수행해 ‘유령군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또한 워커 장군은 당시 메츠, 벌지전투 그리고 독일 본토 침공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십자무공훈장’도 수훈하고 중장으로 승진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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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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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23일 오전 11시 도봉역 2번출구 앞에서 6·25남침전쟁 발발 후 美 8군사령관으로 부임하여 풍전등화의 국가위기시 대한민국을 구한 워커 장군의 72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시베리아의 매서운 삭풍이 몰아치던 체감온도 영하 21도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이날 행사에는 6·25전쟁연구회, 통일한국국방포럼과 한국안보협업연구소가 공동 주관하고 방통대 황재윤(육사35기) 교수, 중앙대 김성근(육사44기) 교수 등이 참가했다. 이날 11시부터 워커 장군의 전사지인 도봉역 2번출구 건너편에서 현지추모식으로 시작된 추모행사는 이후 워커 장군의 추모기념비가 있는 워커힐 호텔로 이동해 14시부터는 추모비 주변 청소와 크리스마스 트리 설치 및 헌화 등으로 진행됐다. 통일한국국방포럼 대표 송재익(육사35기) 박사는 “61세의 나이로 6·25남침전쟁에 참전한 워커 대장은 최후 방어선이자 생명선인 낙동강 전선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헌신의 리더십과 뛰어난 기동전으로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여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을 제공하고 대한민국이 건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세상을 떠신지 72주년이 되는 오늘, 워커 장군님도 먼 하늘나라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봐주시며 하늘나라에서나마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기를 기원드리고, 현재도 불철주야로 근무하는 주한미군 장병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추모사를 낭독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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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영웅 워커 대장 72주기의 부끄러운 모습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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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세계 3위 수준 북한 해커에 대한 우리의 대비책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국정원 국가사이버안보센터(National Cyber Security Center)는 1·25 인터넷 대란을 계기로 국가기간통신망을 보호하기 위해 2004년 2월 설립되었는데, 이도IT에 대한 지식이 탁월하며 의지가 확고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었고 오늘날 사이버보안의 초석을놓았다. 2011년 8월 25일, 국정원이 이례적으로 국가사이버안보센터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 센터가 관리·통제하고 있는 공공기관은 4천500개에 이르며 하루 수집하는 사이버 공격 정보는 평균 2억5천만 건이나 된다. 상황실 정면에 LCD(액정표시장치) 모니터 80개로 만들어진 대형 관제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는 전세계에서 실시간으로 해커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는 IP의 지역이 표시된다. 붉은색으로 표시되는 공격지역으로 볼 때 미국발 혹은 중국발 해킹 공격이 활발하다. 이곳에서 요원들은 사고관리시스템, 예보시스템, 통합정보공유시스템 등을 운용해 24시간 해킹 위험을 감시한다. 센터 관계자는 "1천800개의 탐지 기술을 이용해 해킹 정도를 파악한다"며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문자메시지로 즉시 관련 기관에 통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15년 3월 10일, 미국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이자 미래 범죄 이론가인 마크 굿맨은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CCGA) 초청 강연회에서 우리 정부 차원의 사이버 보안 시스템에 대해 "한국은 국가사이버안보센터(NCSC)와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수준 높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인터폴과의 공조 체제도 잘 구축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NCSC의 원조인 영국은 정보국인 GCHQ 산하기관으로 영국 NCSC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이버보안 및 인프라 보안국 법률에 의거해서 CISA(사이버보안 및 인프라 보안국)를 국토안보부에 설립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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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세계 3위 수준 북한 해커에 대한 우리의 대비책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