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1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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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CRISIS M 기사

  • [김희철의 CrisisM] 서울 청계광장에서 '독도히어로즈 페스티벌'이 개최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일본의 독도 무단 침범을 격퇴한 '독도대첩' 70주년을 맞아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회장 최완근) 주관으로 지난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독도히어로즈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이날 오후 2시 개최된 독도대첩 70주년 기념식에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기념사업회 회원, 학생,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념식 외에도 학생들과 함께하는 기념공연, 독도의용수비대 소개 영상 시청 및 활동상 전시, 독도의용수비대 활동 및 독도 지형 체험, 게임·퀴즈, 독도의용수비대 캐릭터 이름 짓기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진행됐다. 독도대첩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33명의 독도의용수비대가 1954년 11월21일 독도를 무단 침범한 일본에 맞서 승리한 전투다. 당시 대원들은 일본 해상보안청의 무장순시함 헤쿠라호와 오키호를 M1소총과 가늠자 없는 박격포 등 열악한 무기로 격퇴했다. 이는 독도의용수비대가 일본과 싸워 가장 크게 승리한 전투로, 일본이 다시는 독도를 불법 침범하지 못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훈부는 설명했다. ‘독도대첩일’은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에 무단 침범한 일본과 맞선 전투 중 가장 크게 승리한 1954년 11월21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는 지난 2013년부터 ‘독도대첩일’로 명명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투혼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면서 “이번 독도대첩 7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페스티벌을 통해 서른 세분의 독도 영웅분들이 일궈낸 승리의 역사를 국민과 함께 기억·계승하는 의미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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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10-11
  • [김희철의 CrisisM] 사천 등 16개소, ‘국가관리묘역’으로 품격있는 묘역 유지·관리 추진(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지난 15일 JTBC에서 ‘매년 성묘하는데 ‘소재불명?’ 독립유공자 묘소 파악 못 하는 보훈부‘라는 보도가 있었다. 김교영 선생의 묘소는 JTBC가 유족을 통해 확인하기 전까진 어디 안장돼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고, 백영촌 선생(1990년 애국장)도 대전현충원과 대구신암선열공원에 각각 안장되어 보훈부는 “어디가 진짜 묘인지 확실하지 않다”며 “전체 독립유공자의 절반, 묘소 위치조차 파악 안된다”고 밝혔다. 이에 JTBC는 “보훈부 기본적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나온다”라고 보도했다. 국가보훈부는 2015년부터 매년 국립묘지 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묘소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전체 독립유공자 1만 8,000여 명 중 8,500여 명은 묘소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는 후손 미확인으로 인한 미등록이나 유족이 묘소를 모르는 경우 등의 이유로 묘소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수권 세대(손자녀) 이후 후손과의 연락체계를 만들고 유관기관과 협업을 통한 국민제보 확대, 그리고 정기적인 조사를 실시하여 독립유공자 산재 묘소가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국가보훈부는 대책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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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10-02
  • [김희철의 CrisisM] 사천 등 16개소, ‘국가관리묘역’으로 품격있는 묘역 유지·관리 추진(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지난 11일 경남 사천지역 출신 6·25남침전쟁 전몰군경 등이 안장되어 있는 ‘사천 국군묘지’를 국가가 직접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했다. ‘사천 국군묘지’는 경북 영천 보현산 일대 공비소탕작전과 강원 횡성북방지구 전투 등 각기 다른 전투에서 투혼을 발휘하다 전사한 사천지역 출신 6·25남침전쟁 전몰군경 등 44명을 정전협정 후인 1953년 10월15일, 사천시(당시 사천군)에서 사천공항 인근 사천읍 구암리 야산에 안장하면서 조성한 후 지금까지 관리해왔다. 하지만, 비행기 소음과 묘지 앞 철로로 인한 접근 불편으로 인해 유족들의 묘소 이전 건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에 따라 사천시는 국가를 위한 희생에 대한 예우와 유족들의 의견을 고려하여 2021년 사천 국군묘지 이전계획을 수립, 묘지 조성 71년 만인 올해 8월, 사천시 종합장사시설인 사천 누리원 내에 별도의 묘역을 조성해 이장했다. 이후 국가보훈부는 사천시와의 협의를 통해 새롭게 조성된 사천 국군묘지를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하고 안내판과 조경을 비롯한 체계적인 관리에 나설 계획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셨던 분들에 대한 예우로 양지바른 장소에 새롭게 묘역을 조성한 사천시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국가보훈부는 국가관리묘역으로서 품격있는 묘역 유지·관리는 물론, 묘역을 방문하는 유족분들에 대한 편의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관리묘역은 국립묘지 외의 장소에 안장된 국가유공자 등 합동묘역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난 2021년부터 지정해오고 있으며, 이번 경남사천국가관리묘역을 비롯해 현재 서울수유국가관리묘역과 거제장승포국가관리묘역, 충북괴산국가관리묘역 등 전국적으로 16곳이 지정되었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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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9-27
  • [김희철의 CrisisM] 구설수를 극복하고 취임한 신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광복회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며 이른바 '뉴라이트' 인물로 지목한 재단법인 대한민국 역사와 미래 김형석 이사장이 김형석 제13대 독립기념관장으로 지난 8일 취임했다. 이를 반발하며 식장에 들어가려는 광복회 회원들과 독립기념관 직원들이 대치해, 취임식이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열였다.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은 건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오산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주경야독으로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를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총신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 한민족복지재단 회장, 고신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하지만 친일 과거사 청산 부정과 1948년 건국절 등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독립기념관 설립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었다. 한편 8월25일 JTBC에 따르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맡았던 재단이 국가보훈부로부터 1억 9,600만원짜리 연구용역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던 것으로 파악했는데, 지난해 6월 보훈부로 승격된 뒤 진행한 40여 건의 정책연구용역 가운데 가장 높은 금액이다. 그런데 “정책연구용역비를 쓰려면, 과제 필요성과 차별성, 연구자 선정 이유 등을 보훈부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관련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특혜’이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보훈부에서는 “정책연구가 아닌 일반 학술 연구로 진행했기에 관련 절차는 필요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작 국회에서는 김 관장이 따낸 과제를 정책연구라고 보고하였고, 이에 대해 “보훈부는 의원실에서 포함시켜 보내라 해서 보낸 것이라고 해명하였다”고 밝혔다. 김형석 관장이 수주한 연구용역 과제는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 재조명 및 선양·홍보 방안 연구용역’으로, 광복 80주년 계기로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알려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2024년 4월16일부터 8월14일까지 추진하였다. 이 연구용역은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의 인지도 실태 조사, 독립유공자 인물 연구 및 선양·홍보 방안 강구 등 지식 기반 업무 용역 성격에 해당하여 ‘일반연구비’를 사용한 ‘일반연구용역’으로 진행하였다. 또한, 특정 업체를 염두하고 추진한 것이 아니며, 연구용역을 수행할 기관 선정을 위해 조달청을 통해 제한경쟁입찰을 공고하였는데 용역수행 기관으로 1개 업체만 응찰하였고, 인력·조직의 전문성, 과업 수행에 대한 이해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관련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선정하였다며 JTBC의 최초 문제 제기가 잘못되었다고 보훈부는 강조했다. 지난 8일 업무를 시작한 신임 김형석 관장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며 꿈과 미래를 심어주는 곳으로 국민이 즐겨 찾는 독립기념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중점 추진 과제로 ▲정부와 연계한 광복 80주년 행사 성공적 개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활성화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의 강화 ▲기관 경영혁신 고도화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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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0
  • [김희철의 CrisisM] 때늦은 ‘생계곤란 국가유공자 등 장례서비스 지원’ 본격 시행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지난 2018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생계곤란 및 무연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장례서비스 지원 사업의 안정적인 추진을 위해 국가유공자법을 비롯한 5개 법률(국가유공자법, 참전유공자법, 고엽제후유의증법, 5.18민주유공자법, 특수임무유공자법)을 개정, 지난 2월13일 공포에 이어 14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특히, 국가보훈부는 해당 법률 개정안의 후속 조치로 지원 대상과 내용, 절차 등 구체적인 사항이 담긴 ‘국가유공자 등 장례서비스 지원 지침(훈령)’을 제정했다. 지침에는 1.장례서비스 목적 및 용어에 관한 사항 2.지원 대상 및 내용에 관한 규정 3.지원 절차 및 방법에 관한 규정 4.사후관리 및 재검토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장례서비스 지원 대상은 국가유공자와 참전유공자, 특수임무유공자, 5·18민주유공자, 고엽제후유의증환자(수당지급대상자) 중 국민기초생활수급자(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에 해당하거나 연고자가 없는 경우 지원된다. 또한, 이 경우 장례지도사 등 인력지원을 비롯해 고인 용품과 빈소 용품, 상주 용품 등 물품지원과 장의차량 등을 지원한다. 장례서비스 지원 절차는 생계곤란 국가유공자 등이 사망할 경우, 장례 기간 내 유족이 거주지 관할 보훈관서 또는 상조업체에 신청하면 국가보훈부에서 선정한 상조업체를 통해 현물 장례서비스를 제공하며, 무연고자는 관할 지자체에서 보훈관서로 통보하면 해당 서비스가 지원된다. 국가보훈부는 무연고 국가유공자의 장례서비스 지원을 위해 최근 보건복지부와 부처협업으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을 개정, 지방자치단체의 무연고 국가유공자의 확인 절차를 법령에 규정하는 등 무연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장사 예우를 강화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생활이 어렵고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장례 등 마지막 예우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라면서 “국가보훈부는 장례서비스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시행에 들어가는 만큼, 국가유공자분들의 마지막을 모시는 일에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히 살피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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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8-27
  • [김희철의 CrisisM] 박두원 공군 대위, 8월의 6·25남침전쟁 영웅으로 선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6‧25남침전쟁 당시 재일학도의용군 출신으로 자원입대하여 1952년 2월부터 8월까지 황해북도 송림시에 위치한 송림제철소 폭격작전을 비롯해 총 89회에 달하는 전투 출격으로 수많은 전공을 세운 박두원 대한민국 공군 대위(당시 중위)를 ‘2024년 8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26년 7월5일 경북 경주에서 출생한 박두원 대위는 1934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 조국에서 6‧25남침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자원입대하여 재일학도의용군 제5진의 일원으로 1950년 10월18일 부산에 도착했고, 국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 훈련을 받고 헌병대에 배속됐다. 하지만 공군에서 조종사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박두원 대위는 대구의 공군본부를 직접 찾아가 입대를 청원했다. 1951년 4월1일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하여 조종하사관(일등중사) 신분으로 기초 조종 교육을 받았고, 그해 10월 F-51D 전투기로의 기종 전환 교육을 받았다. 이듬해 1952년 2월1일에 준위로 임관함과 동시에 제1전투비행단 제10전투비행전대 강릉전진부대에 배속되어 2월3일 첫 전투 출격에 나섰으며 같은 해 3월 공군소위로 임관했다. 당시 우리 공군의 강릉전진부대는 전선의 소강상태를 이용하여 전력을 비축하려는 공산군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박두원 대위는 F-51D 전투기로 출격하여 적 후방 폭격 임무에 나섰다. 특히 1952년 3월~4월 진행된 송림제철소 폭격작전은 우리 공군이 처음으로 수행한 적 산업시설에 대한 전략 폭격이었다. 그는 80회가 넘는 출격을 기록하며 강릉전진부대의 가장 왕성한 전투기 조종사 중 한 명으로 거듭났다. 1952년 8월2일, 89회째 출격한 박두원 대위는 동부전선의 공산군 주요 보급집결지였던 강원도 간성 일대의 보급품 집적소를 목표로 작전에 돌입하였다. 이날 편대는 전봉희 소령을 편대장으로 한 F-51D 전투기 4대로 편성되었다. 강릉전진기지에서 이륙한 박두원 대위는 강원도 경포대, 주문진을 지나 속초 상공을 지나던 중 갑자기 기체가 폭발하여 낙하산 탈출 후 동해바다에 내렸고 주변의 민간 어선들에 의해 구조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전사한 상태였다. 6‧25남침전쟁에 자원한 ‘재일학도의용군’ 중 유일한 공군 조종사였던 박두원 대위는 F-51D 전투기 조종사로서 전사한 17명 가운데 가장 많은 전투 출격 기록을 보유한 대한민국 창공의 영웅이었다. 정부는 수많은 전투에서 공적을 세운 그에게 대위로의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1952년)을 수여하였으며, 그의 유해는 1958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014년에는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본부에 ‘재일학도의용군 위령충혼비’가 건립되어 박두원 공군 대위를 포함한 135명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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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8-20
  • [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개최(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날 기념식에선 6·25남침전쟁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유엔참전용사를 비롯해 참전용사 명예 선양과 동맹 강화에 이바지한 8명에게 정부포상이 수여했다. 6·25남침전쟁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적 진지 한가운데로 직접 비행기를 급강하여 목숨을 바쳐 적의 포병 진지를 파괴한 고 찰스 J. 로링 주니어 미국 공군 소령(참전당시 대위)에게 태극무공훈장을, 6·25전쟁에서 다리와 팔 일부를 잃었음에도 수술 후 복귀하여 현역으로 남아 NATO와 미국 육군본부에서 복무하고, 2022년 미국 워싱턴 디시(D.C.)에 6·25남침전쟁 전사자 명단을 새긴 ‘추모의 벽’ 건립 운동과 건설법안의 미 의회 통과 등을 위해 힘쓴 고 윌리엄 어니스트 웨버 육군 대령(참전당시 대위)에게 을지무공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또한, 윌리엄 로버트 블랙 캐나다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 오타와 지회장은 21명의 오타와 출신 전사자 이름이 새겨진 추모명비 건립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 3만 불을 모아 기부하는 등 최근 40년 가까이 캐나다 정계와 지역사회에 한국전쟁을 알리면서 참전용사들의 명예와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국민포장을 수여받았다 6·25남침전쟁에는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프랑스, 뉴질랜드, 필리핀, 튀르키예,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등 16개국이 전투병을 파견했고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독일 등 6개국은 의료 지원을 했다. 이는 유엔이 세계평화를 위해 유엔군을 창설한 이후 최초의 파병이었으며, 22개국의 연인원 195만7천733명이 유엔군으로 참전해 3만7천902명이 전사·사망하고 10만3천460명이 다쳤으며 3천950명이 실종되고 5천817명이 포로가 됐다. 미국이 가장 많은 178만9천명을 파병했는데 전사·사망 3만3천686명(현역 대통령 및 장성 등 고위직의 아들 142명이 참전해 전사상을 당한 35명을 포함), 부상 9만2천134명을 기록했다. 끝으로, 행사에 참석한 16명의 유엔참전용사 모두에게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청려장(명아주로 만든 가볍고(250~300g) 단단한 지팡이로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며,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어르신께 공경하는 의미)’을 전달하며 행사가 마무리됐다. 1953년 7월27일은 6·25남침전쟁 정전협정이 맺어진 날이기도 하며, 정부는 이 날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정해 유엔참전국과 유엔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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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8-13
  • [김희철의 CrisisM] ‘6·25남침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개최(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27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알림1관에서 6‧25남침전쟁에 참전하여 함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한 유엔참전용사의 공헌을 기리고, 참전국과의 우호 증진을 강화하기 위한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위 사진의 포스터와 같이 주제를 담은 행사 이미지는 유엔참전용사가 미래세대에 전달하는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을 민들레 홀씨라는 상징으로 구현, 유엔참전용사의 헌신 위에 전진하는 대한민국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다. ‘함께, 모두의 미래(Together for Our Tomorrow)’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기념식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유엔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와 자유의 가치로 다져진 굳건한 동맹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는 우리의 약속”을 메시지로 전했다. 기념식에는 19개국에서 방한한 유엔참전용사 및 유·가족을 비롯해 참전국 주한 외교사절, 6‧25참전유공자, 정부 주요인사, 시민, 학생, 군장병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참전 국기 입장, 국민의례, 참전국 대표 인사 말씀, 헌정 공연, 정부포상, 기념사, 기념공연, 감사선물 전달 순으로 50분간 거행됐다. 기념식은 먼저, 참전 영웅들을 깨우는 유엔군 나팔수의 기상나팔에 이어지는 국방부 군악대대 나팔수의 개식 나팔과 국방부 팡파르대의 연주로 새로운 희망의 의미를 담아 기념식의 시작을 알렸다. 이때 미 8군 군악대와 국방부 군악대대 성악병이 정전협정을 조인하고 귀환하던 대표단을 위해 미군이 연주했던 우리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을 연주했다. 이어 22개 유엔참전국 국기와 태극기, 유엔기가 입장하고 국민의례가 진행됐다. 국기에 대한 경례 맹세문은 고(故) 지규근 참전용사의 손자 지상곤 육군 중령(진)이 낭독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 없이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설명할 수 없다"며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유엔군 195만명에게 빚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어 "유엔 참전용사를 한 분이라도 더 한국으로 모시고, 현지로 직접 찾아가 감사를 전하는 데 정성을 다할 것"이라며 "세계에서 유일한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전우들과 함께 평안히 영면하시도록 최선을 다해 모시겠다"고 밝혔다. 또 “오늘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뜻깊고 감격스러운 ‘한국전쟁 추모의 벽’ 준공식이 열린다”며, “오는 11월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과 내년 '정전 70주년'을 맞이하는 기념식도 최고의 예우로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 총리는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에서 큰 활약을 펼쳤던 '스티븐 옴스테드' 미 해병대 예비역 장군이 지난 20일 별세한 소식을 전하면서,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과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 추모의 마음을 바친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북한은 지금도 한반도의 안전을 위협하며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 정부는 확고한 한미동맹과 튼튼한 국방으로 안보를 굳건히 지켜나가겠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길이자 참전용사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참전국을 대표하여 데렉 맥컬레이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의 인사 말씀 후 이어진 헌정 공연은 6·25남침전쟁 당시 흑백 사진 너머 우리가 알지 못했던 유엔참전용사의 위대한 헌신과 공훈을 영상으로 이야기하고, 자유 가치를 추구했던 젊은 날의 유엔참전용사를 위한 헌정곡 ‘One Moment in Time’을 가수 박기영의 목소리로 전달했다. 이때 가상 미디어(virtual media) 기법을 활용한 흑백 사진 영상인 ‘위대한 약속’에서 유엔참전용사 후손으로 국내에서 교육 중인 튀르키예(터키) 출신 ‘일라이다 아심길’(여)이 부산항, 낙동강 방어선 전투,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고지전, 정전협정으로 이어지는 6·25남침전쟁 현장을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맡아,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의 위대한 여정을 생동감있게 표현했다. 기념공연에서는 참전국과의 결속과 자유의 가치를 함께 밝혀가겠다는 미래세대의 약속으로 리틀엔젤스 예술단 어린이들이 22개국 참전국 국기가 새겨진 청사초롱을 들고 참전국 후손들과 함께 차례대로 입장하는 ‘평화의 등불’을 연출하고, 마지막으로 미8군 군악대, 리틀엔젤스, 국방부 군악대대가 “We Go Together”를 합창하며 참전국과의 우정을 담아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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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8-07
  • [김희철의 CrisisM]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 개최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김남수)는 지난 7월19일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대한민국 건국과 6·25남침전쟁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로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제59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강정애·박민식 전현직 국가보훈부 장관과 김황식·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한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시민 등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상시청, 추모사, 추모의 노래, 헌화·분향 및 유족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1875년 황해도 출생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896년 서울에서 협성회를 조직하고 협성회보와 매일신문을 발행하여 주필로 활동하였다. 1898년 독립협회가 해산되자 고종황제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1904년 8월까지 5년 7개월간 한성감옥에 투옥되었으며, 감옥에서 청일전기(淸日戰紀)를 편역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하였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조지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에서 각각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1910년 귀국 후 1912년 세계감리교총회 한국 대표로 임명되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 ‘태평양잡지’, ‘태평양주보’를 발간하였으며, 박용만·안창호와 협력하여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며,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침략을 폭로하였다. 1941년 12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예언한 논문과 같이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으로 미국 대통령과 국무성을 상대로 임시정부 승인을 요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였으며, 해방후인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정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공적을 기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 특히 스탈린이 사주하고 북한의 김일성이 주도한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신속히 유엔군이 투입하도록 외교적역량을 발휘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냈으며, 정전을 앞두고는 이 대통령의 혜안과 배짱 덕택에 ‘반공포로 석방’과 “한국과 미국 어느 한쪽이 외부의 침략을 받으면 자동개입한다”는 조건을 넣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한미동맹에 따른 미국의 확고한 방위보장에 힘입어 한국은 최근까지 GNP의 4% 이내라는 비교적 적은 국방비만 쓰면서 경제개발 우선정책으로써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강한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신 분”이라며 “정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신명을 바쳐 희생·헌신하신 모든분들이 제대로 예우받을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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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8-02
  • [김희철의 CrisisM] ‘국립괴산호국원 제2묘역 준공식’ 개최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12일 오전 10시, 중부권 국가유공자 등의 마지막 예우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국립괴산호국원의 현충관에서 국가보훈부 강정애 장관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봉안시설 제2묘역 확충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준공식을 개최했다. 2019년 10월 개원한 국립괴산호국원(제1묘역)은 그동안 전체 2만 3,700여 기 중 2만 1,300여 기가 안장되어 지난 6월 말 현재 2,400여 기의 안장 여력이 남아있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부는 괴산호국원의 안장 능력 확충을 위해 지난 2022년 4월, 제2묘역 조성에 들어가 최근 공사를 완료했다. 국립괴산호국원 제2묘역은 충청북도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 산83-1번지 일원 45,000제곱미터(㎡, 약 1.4만 평)에 총사업비 160억 원을 투입해 약 2만 3,000여 기 규모의 봉안시설로 조성했다. 제2묘역 완공으로 국립괴산호국원은 제1묘역과 함께 총 4만 7,000여 기의 안장 능력을 갖추고 원활하게 국가유공자 등을 모실 수 있게 됐다. 국립괴산호국원 제2묘역은 제1묘역이 만장되면 안장에 들어갈 예정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충청도를 비롯한 중부권 국가유공자분들의 안식처가 될 국립괴산호국원 제2묘역 조성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면서 “국가보훈부는 국립괴산호국원이 안장 공간을 넘어 호국영령의 나라사랑 정신을 배우는 교육 공간이자 유족과 국민이 일상에서 즐겨 찾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국립연천현충원과 횡성·장흥호국원을 비롯한 다른 국립묘지 조성과 확충 등 추가 안장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장·차관이 주재하는 국가보훈 개혁TF를 통해 추진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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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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