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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CRISIS M 기사

  • 한미안보연구회(COKUSS), 랜드연구소 베넷 박사 초청 ‘한국안보 도전과 해법’ 간담회 개최(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미안보연구회(COKUSS)는 지난 2일 오후 전쟁기념관에서 군과 학계의 안보전문가들이 미국 랜드(RAND)연구소 핵전문가 베넷 박사(Dr. Bruce Bennett)를 초청해 안보전문가 포럼을 개최했다. 베넷 박사는 북한 핵개발에 따른 ‘한국안보의 도전과 해법(Addressing the Evolving Security Challenges in Korea)’을 주제로 약 1시간 30분간 강연을 했고, 이어 김병관(육사28기) 회장, 김재창(육사18기) 전회장 및 구상진 변호사, 국민석 대위 등 20명의 전문가들과 열띤 토의가 있었다. 초청 강연에 나선 베넷 박사는 최근 한국이 직면한 안보도전을 크게 ①북한의 불안정성, ②북한 핵무기, ③제3국의 개입, ④한국군의 약화 등 4가지로 분류했다. - 북한은 경제가 불안하고, 먹을 것이 없어 주민들이 영양실조에 걸렸고. 최근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더 힘든 상황임.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통제가 잘 안 되고 있음. 김정은은 외부정보가 김 정권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는 “북한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 및 보유하고 있는 목적은 ①정권 유지, ②북한 통제하에 한반도 통일(적화통일), ③국제적 위상 강화로 (핵무기 보유시) 경제 난국도 돌파하는 등의 3가지이다”라며 북한의 도전에 따른 대응 및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다음편 계속)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2-06-06
  • 윤·바이든, 방한 일정 마지막날 KAOC 방문서도 ‘한미동맹’ 강조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흘에 걸친 바이든 대통령 방한의 마무리 일정인 22일, 양국 대통령은 한국항공우주작전본부(KAOC)를 찾아 마지막까지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미국 대통령이 KAOC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오늘 바이든 대통령과 제가 함께 이 부대를 방문한 것은 한미 간에 강력한 안보동맹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여러분의 세계 자유와 평화, 국가에 대한 애국심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KAOC는 평택의 오산 미 공군기지 지하벙커에 위치하며, 한반도 전구(戰區) 내 항공우주작전을 지휘·통제하는 우리 군의 전략사령부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한국형 3축 체계’ 가운데 킬체인(Kill Chain)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작전을 총괄하는 ‘K2 작전수행본부’도 KAOC 내에 있다. 또 윤 대통령은 “오산기지는 1950년 6월 25일 공산군이 침략한 뒤 5일 만에 트루먼 대통령이 미군 투입을 명령해 ‘스미스 부대’가 공산군과 제일 먼저 교전한 장소”라며 “그만큼 미군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최초로 피를 흘린 곳”이라고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양국의 동맹은 오래전 전쟁에서 양국의 희생으로 맺어졌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러분과 같은 훌륭한 장병들 덕분에 굳건한 한미동맹을 맺고 있다”며 “양국의 조율이나 통합은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과 앞으로도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목표”라고 밝혔다. 이날 양 정상은 오후 2시 25분경 작별 인사를 나눴고 바이든 대통령의 차량이 떠날 때 서로를 향해 엄지척 인사를 건넸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오후 3시 37분경 경기 평택 오산 미군기지에서 다음 순방지인 일본으로 떠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에 도착해 별다른 일정 없이 휴식을 취하고, 23일 나루히토 일왕과 만나며 방일 일정을 시작할 예정이다. ■ 바이든,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방한 일정 시작…‘기술동맹’ 부각 지난 20일,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후 5시22분께 ‘에어포스 원’을 타고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에 도착했다. 한국 쪽에서는 박진 외교부 장관이 영접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은 국빈 방문이 아닌 공식 방문이었지만 외교부 차관이 아닌 외교부 장관 직접 공항에 나가 맞이하며 의전 격식을 높였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첫 방문지인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정문에서 미리 기다렸다. 저녁 6시12분께 처음 만난 두 정상은 손을 맞잡은 채 대화를 나눈 뒤 기념 촬영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화 도중 윤 대통령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종이 방명록 대신 반도체 웨이퍼에 서명했다. 두 정상은 함께22분 가량 반도체 공장을 둘러본 뒤 공동 연설을 했다. 공장 안내는 재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맡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방한 일정 시작함으로서 양국의 ‘기술동맹’을 부각시켰다. ■ 첫 한-미 정상, 대북 ‘확장 억제’ 약속하고 ‘경제안보’ 손잡아 한편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개최된 첫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위협에 맞서 두 나라의 연합방위 태세를 강화하는 방안을 재확인했다. 두 나라는 경제안보와 기술 협력 등에 대해서도 입장을 모으면서 ‘포괄적 전략 동맹’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정상회담을 한 뒤 발표한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한국 방어와 한미 연합방위태세에 대한 상호 공약을 재확인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핵, 재래식,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해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역량을 사용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을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두 정상은 또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기로 했다”고 뜻을 모았다. 성명문에는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가동’ 합의도 포함됐다. 한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주도의 아이피이에프 동참 의사를 확정 지으면서 두 나라의 경제 안보 협력을 강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번 성명서에는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저해하고 불안정을 야기하거나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단결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일방적인 추가적 공격을 반대한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21일 정상회담 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식만찬에서 양국 대통령이 “한미 양국은 서로 훌륭한 친구입니다”와 “같이 갑시다(Wegotogether)”라고 건배사를 주고받자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좋아하던 시를 인용하며 만찬사를 했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좋아하는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인간의 영광이 어디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생각해보라, 나의 영광은 훌륭한 친구들을 가진 데 있다’고 했다”며 “우리는 세계시민의 자유와 인권,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굳게 손잡고 함께 걸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윤 대통령은 “1950년 공산세력의 침략을 당했을 때 미국 청년들이 함께 싸우며 목숨을 바쳤다”며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에 기반한 성장을 이뤄가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돼 왔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건배사 답사에서 “예이츠 시를 인용해 얘기해준 것에 대해 매우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오늘 굉장히 생산적인 회의를 가졌다. 더욱 중요한 건 우리가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어쩌면 너무 많은 얘기를 해서 너무 많은 정보를 서로에게 준 거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며 조크를 하자 현장에서는 참석자들의 웃음보가 터졌고, 한미동맹의 밝은 미래를 예고했다.
    • 외교안보정책
    • 전문가 분석
    2022-05-23
  • [김희철의 Crisis M] 숨겨진 전쟁영웅인 '자유전사' 프랑스 몽클레어 장군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랑스군이 승리한 이후 전투 3일차에 미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은 미 9군단에 ‘지평리 연결작전’을 명령하였고, 미1기병사단 5기병연대장 크롬베즈 대령의 이름은 딴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는 전차 23대를 앞세우고 지평리로 진격하게 되었다. 한편 지평리에서는 프리만 대령의 부상이 악화돼 후송되었고, 연대장 임무를 대신하게 된 2대대장 에드워드 중령은 우선 야간에 피탈된 전선에 대하여 주간 역습을 실시하여 회복하도록 명령하고 야간작전 준비에 돌입했다. 동시에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의 연결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진지 앞에 설치한 지뢰를 제거하고 전차 4대로 중공군의 배후로 우회하여 집중적인 사격을 가하면서 기습적인 역습을 시도했다. 더불어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는 중공군의 지휘소와 탄약고 등 전투근무지원시설을 잇따라 유린하면서 파죽지세로 돌진했다. 드디어 양군의 전차가 마주치면서 연결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크롬베즈 특수임무부대의 충격적인 기동전으로 중공군들을 완전히 제압하자 적들은 패주하기 시작하였고 이 광경은 군대가 아닌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었다. 연합군은 이를 놓치지 않고 마치 풀을 베는 농부처럼 메뚜기를 사냥하듯 중공군들을 쓰러뜨렸다. 이 전투는 중공군이 6·25남침전쟁에 개입 이후 후퇴와 패배를 거듭하던 유엔군이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전투로서 그동안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던 유엔군이 거둔 최초의 완벽한 승리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몽끌레어를 비롯한 지휘관들이 전장에서 어떻게 행동했는가이다. 이들이 당시 보여준 모습은 지휘관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미 23연대 전투단의 프리만 연대장은 부상 중에도 후송을 거부하고 장병들과 생사를 함께 했는데, 미8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이 중공군의 포화를 뚫고 헬기로 전장을 방문했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바로 손자병법 모공편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의 진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58세의 프랑스군 대대장 몽끌레어 중령은 이 전투에서 상식을 초월하는 진정한 군인으로서의 모범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 장병들이 엄동설한의 꽁꽁 얼은 야지에서 구축한 진지는 그들이 흘린 땀만큼 피와 목숨으로 보답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6·25남침전쟁’의 국가적 절명 위기에서 보이지 않는 희생을 통해 나라를 지켜낸 숨겨졌던 국내의 영웅 및 애국자들에게 감사와 보은이 중요하다. 하지만 미군 프리만, 크롬베즈, 프랑스군 몽끌레어 등 알려지지 않은 유엔군 영웅들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다시 한번 ‘지평리 전투’에서 장열히 산화한 미·프랑스군의 전몰장병들의 명복을 기원한다. 이번 한·프 국방장관회담시 우리 서욱 장관이 ‘프랑스군 6·25남침전쟁 참전기념비’와 ‘몽끌레어’장군 묘소를 찾아 헌화하고 프랑스군의 희생을 추모했다고 한다. 이 것은 매우 당연하고 잘한 일이다. 앞으로도 우리나라를 구해준 프랑스의 ‘자유의 전사부대’를 비롯한 67개 해외지원국에 감사하고 추모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명확히 부여되어 있고 우리는 그렇게 선양해야 한다.
    • 소통시대
    • CRISIS M
    2022-03-31
  • [김희철의 Crisis M] 숨겨진 전쟁영웅인 '자유전사' 프랑스 몽클레어 장군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드디어 1951년 2월11일 중공군이 횡성의 삼마치고개 일대에서 일제히 공격을 재개하여 3일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한국군 3군단이 패하면서 지평리까지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이에 지평리를 방어하던 미23연대장 프리만 대령은 퇴로가 차단돼 중공군에게 포위될 것을 우려하여 철수를 건의하였으나 철수 허가 대신 지평리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접수하였다. 사실 미23연대는 미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의 ‘라운드업 작전’속에서 '미끼 역할을 수행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것은 중공군을 찾아내어 소화기와 인력에 의존하는 중공군을 연합군의 우세한 화력과 공군력으로 섬멸코자 계획된 작전이었다. 미 23연대는 미끼로서 중공군에 던져졌고 중공군은 그 미끼를 덥썩 물게 되었으며 프리만 대령의 부대는 그 속에서 미끼 역할을 수행하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2월13일 드디어 중공군이 지평리 전방에서 대규모로 집결 중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제보로 확인되었고 어둠이 깔리면서 중공군의 신호탄이 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지평리는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다. 한겨울 지평리의 추위가 살을 에는 듯하였고 장병들은 긴장속에서 전투 준비를 갖추며 중공군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어 갈 무렵, 박격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나팔, 호각, 괭과리.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중공군은 떼를 지어 몰려들었고 장병들은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여 중공군의 1제파, 2제파, 3제파를 차례로 격퇴하였다. 중공군의 시체가 산을 이룰 지경이었다. 한편 육군 중장이었던 프랑스군 대대장은 58세의 노병으로 1, 2차 대전을 모두 경험하고 무공훈장을 17차례나 받은 백전노장이며 참 군인이었다. 본명은 ‘마그랭 버르너리(Magrin Vernery)’이었고 개명한 새이름 ‘몽끌레어’로 중령 대대장이 되어 또 명성을 날리게 된다. 이 프랑스군 대대의 장병들도 대부분 이와 같이 전쟁을 위하여 자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용맹성과 전투능력은 어느 군대보다도 강하고 철두철미했다. 프랑스군 대대 전방에서도 중공군의 피리와 꽹과리 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물밀듯이 중공군이 몰려들어 왔다. 이때 프랑스군 진지에서 난데없이 사이렌(신호 및 조기 경보용으로 중대급에 보급된 휴대용 수동식 사이렌임)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중공군의 피리 소리와 꽹과리 소리를 삼켜 버렸고 중공군은 신호 및 연락이 끊기자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일제히 화력을 집중하면서 진지를 박차고 나가 중공군을 닥치는 대로 쏘고 찌르는 육박전이 벌어졌고 중공군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15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이날 밤 중공군은 감히 재공격을 하지 못했다. 한 병사의 사이렌 울리는 기지가 대대 전체를 구하며 참으로 값진 승리를 쟁취한 순간이었다. 밤이 지나갔다. 중공군은 3개 사단 병력으로 1개 연대전투단이 방어중인 지평리를 밤새워 포위공격을 하고서도 함락하지 못한 채 시체만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퇴각하였다. 1.4후퇴 후,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자유의 전사부대’가 최초로 중공군을 격퇴시키는 ‘지평리전투’로 큰 타격을 입은 중공군은 공격을 중단하게 되었고, 연합군은 몰리던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어 북을 향해 전진하게 된다. 이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휘관 중 한명은 바로 프랑스의 ‘자유의 전사부대’ 대대장 랄프 몽끌레어 장군이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CRISIS M
    2022-03-29
  • [김희철의 Crisis M] 숨겨진 전쟁영웅인 '자유전사' 프랑스 몽클레어 장군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랑스는 6·25남침전쟁 당시 육·해군 3421명을 파병해 이 중 262명이 전사하고, 7명이 실종됐으며 1008명이 부상하는 희생을 치렀다. 1950년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연합군을 한국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는 유엔군 파병을 결정했지만 한국에 파병할 여력이 없었다.당시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알제리 등에서의 식민지 전쟁으로 병력 보충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프랑스는 1950년 7월, 12명의 시찰단만 한국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반기를 든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몽끌레어(Ralph Monclar·1892~1964) 육군중장이다. 그는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모병(募兵)을 했다. 그 결과 전국에서 1300여명에 달하는 병력이 모였다. 몽끌레어 장군은 직접 이들을 이끌고 6·25남침전쟁에 참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당시 막스 르젠 국방차관이 “미국의 대대는 육군 중령이 지휘하는데 중장인 당신이 대대장을 맡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대했다. 이에 몽끌레어 장군은 중장 계급장을 떼고 국방차관에게 “한국전쟁에 참전할 수 있다면 육군 중령이라도 좋다. 계급을 낮춰도 좋으니 나를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몽끌레어는 결국 중령 계급장을 달고 대대장으로 이국만리의 전쟁에 참전했다. 공산군의 침략으로 백척간두 위기에 놓인 한국을 돕는 일이라면 몽끌레어 장군에게 강등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몽끌레어 장군이 한국에 왔을 때 나이는 58세였다. 그는 목숨을 걸고 6·25남침전쟁에 참전해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천상륙작전’ 못지않게 중요했던 ‘지평리전투’는 1951년 1.4후퇴 이후, 2월13일부터 15일까지 벌어진 산악 전투로 당시 중공군은 국군과 유엔군의 전선을 밀어내며 파죽지세로 남진하고 있었다. 만약에 지평리까지 무너지면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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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5
  • [김희철의 Crisis M] 숨겨진 전쟁영웅인 '자유전사' 프랑스 몽클레어 장군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2월1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장관과 양자 회담을 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때 양 장관은 2018년 한·프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국방협력을 활성화하기로 합의한 것을 구체적으로 이행해 국방 분야에서도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구현해 나가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우주·사이버·AI 등 신안보 영역에서의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서 장관은 이날 회담에 이어 크리스티앙 캉봉 프랑스 상원 외교·국방위원장과 면담을 하고 프랑스 상원이 지난달 '한국전쟁 종전선언 채택을 위한 프랑스 정부의 노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한 데 대해 사의를 표명했다. 장인이 6·25남침전쟁에 프랑스군 대대 소속으로 참전한 캉봉 위원장은 해당 결의안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한국 국방부장관의 프랑스 방문은 2016년 6월 한민구 당시 장관의 방문 이후 약 6년 만이다. 서 장관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파리 4구에 소재한 프랑스군 6·25남침전쟁 참전기념비를 찾아 헌화하고 프랑스군의 희생을 추모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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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2
  • [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⑬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미 기업연구소(AEI)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북한의 비핵화라는 국제적 목표는 사실상 폐기될 것”이라고 종전선언 이후의 미래를 우려했다. “종전선언문에 서명을 끝내자마자 유엔군사령부는 해체될 운명이고, 한·미동맹은 미국에서 더 많은 검증의 도마에 오르게 될 처지”라고도 했다. 에티오피아의 사례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종전선언과 동시에 한·미동맹도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는 종전선언이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에도 잘못된 신호를 줄 것이라고 예견했다. 일본을 비롯한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한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종전선언은 절대 해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여러 싱크탱크 소속 학자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로 김대중정부가 시행한 햇볕정책에 매우 비판적이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유지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현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이 북·미 대화의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에도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비판적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따라서 장순휘 박사와 에버스타트 연구원이 예상하는 종전선언 이후의 위험한 미래처럼 안보붕괴의 도미노 현상을 유발시켜 국가안보 최악의 위기를 맞을 것이 염려된다. 현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북한 및 이에 동조하는 좌익세력들이 유엔사 해체 및 주한 미군 철수 공세를 펼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전선언과 미군철수 등을통해 한국을 안보위기에 빠트리고 궁극적으로한반도를 적화시키는 것'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북한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소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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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⑫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상대로 “무조건 ‘종전선언’을 하면 한반도에 평화프로세스가 조기에 정착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왜냐면에티오피아가종전선언인 평화협정 체결에 성공했지만 지금도 분쟁이 계속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안보전문가와 예비역 군인들은 "종전선언을 하면 국가안보상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려된다"며,"우선 정전협정이 폐기되면 통상 평화협정으로대체되어야 하고, 전쟁이 끝난 한반도에서 임무가 종료된 유엔군사령부(UNC)가 해체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주한미군사령부(USFK)의 한반도 주둔명분이 약화된다. 이를 계기로 한미연합사(CFC ROK/US)가 해체 수순을 밟으면서 전작권이 졸속으로 전환될 것이란 얘기도나온다. 이 모든 것이 도미노 현상으로 순식간에 들이닥쳐서 ‘한미연합 작계 5015’가 무용지물이 되는 최악의 안보공백이 발생한다. 과연 문정부는 이런 워게임을 검증이나 하고추진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때를 노려오던 '반미·주한미군 철수단체'에서는 연일 ‘미군철수’를 주장할 것이고, 이를 빌미로 미군부대 앞에서 철수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한다면 미국 내 정계와 여론은 철수로 들끓게 될 것이다. 주한미군의 철수는 곧 한미동맹의 파기를 의미하고, 안보를 지탱해온 한미연합작전체제가 와해되며, 남북한 군사력 균형이 붕괴되면서 이제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전쟁 도발위협에 시달리는 망국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북한의 무력침략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전쟁보다 비겁한 평화가 낫다”는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대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DJ 정권부터 추구해온 ‘남북연합’이라는 낮은 단계의 통일로 북한과 평화적인 국가연합체를 유지하자고 할 것이다. 북한에 순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국가연합’ 상태로 가는 것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숨긴 의미는 아닌지 묻고 싶다. 평화를 지킬 힘이 없으면 ‘종전선언’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국문화안보연구원 이사인 장순휘 박사(육사 38기)는 한 언론사의 칼럼에 “종전선언은 판문점선언대로 군축부터 우선 협상하라”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는 “남북 간 ‘종전선언’을 구체적으로 명기한 것은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 ① 불가침합의 준수와 ② 단계적 군축 실현과 ③ ‘종전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및 ④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역사적 과제라고 선언하면서 등장하였으나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집착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9.19 평양공동선언’제5조 제③항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차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상응한 이행이나 ‘비핵화’를 외면한 채, 노동당 창설 제75주년 군사퍼레이드에서 소형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신형 ICBM, 신형 SLBM 북극성-4A, 장거리 다연장포, 신형 지대공미사일, 스트라이커 장갑차 등 신형무기를 대거 선보였다는 것은 대남 · 대미 군사적 협박을 노골화한 것"이라며종전선언 후의 미래를 분석했다. 장순휘 박사는 결론적으로 “종전선언은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의 실천과제를 남북협상으로 다 해결하고 해도 절대로 늦지 않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그 실천과제는 바로 불가침 재확인과 군축 합의의 약속부터 이행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협정의 선결과제이다. 그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재래식 병력무기를 감축할 ‘군축협상’부터 진지하게 진행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토로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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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2-03-16
  • [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⑪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해 11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과의 첫 통화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바이든 미대통령의 공개발언을 단서로 향후 대북정책방향성의 변화를 가늠해 볼 수있다.그는 그동안 연설과 기자회견을 통하여 ‘전통적 동맹관계 복원과 다자주의 외교 노선’을 강조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임기가 6개월도 안남은 시점인 지난 9월 21일 유엔총회에서 5번씩이나 ‘종전선언’을 촉구한 것은 국가운명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예의 주시할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종전선언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은 10월 26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종전선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냐?”는 질문에 “한국과 이견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종전선언과 관련해서는 정확한 순서(sequence), 시기(timing), 조건(conditions)에 대해한국과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이 ‘북한 비핵화협상으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유엔사와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주한미군이 철수당하는 안보붕괴의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볼턴 회고록에 의하면 “북한이 종전선언에 관심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처음에는 종전선언이 북한의 아이디어인 줄 알았다....북한은 문대통령이 바라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자신들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는 기록도 남겼다. 문 정부는이러한 북한의 기본입장을 모르지 않을텐데 왜 저리도 ‘종전선언’에 외교력을 쏟아 붓는 지 이해가 안된다.아무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은국제정치적, 남북의 군사적 변수가 되어 엄청난 후폭풍이 불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정치적 업적주의로 보여질 뿐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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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4
  • [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⑩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레임덕 속에서도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이른바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 싱크탱크 소속 전문가가 냉소적 반응을 내놓았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지난 30일 방한해 우리 정부와 종전선언 등을 놓고 담판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관련 협상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는 분석이다. 미 기업연구소(AEI)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28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한국이 평화 없는 평화 선언을 원한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공허한 말이 한반도의 평화를 앞당기기 못한다. 한반도의 전쟁 위협은 늘 그래왔듯이 북한이 만들고 있으며, 북한은 지금도 한국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리는데 전념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종전선언을 ‘평화가 빠진’ 평화 선언으로 단정 지었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일방적 종전선언을 밀어붙이면서 미국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서울발 기사들은 바이든의 (외교안보) 팀이 이 ‘연극’에 장단을 맞추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고, 한국의 햇볕정책 지지자들은 한·미 양국이 종전선언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호의적이고 조만간 선언이 이뤄질 것처럼 전하는 한국 일부 언론매체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한 셈이다. 그는 “종전선언이 문 대통령은 물론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여당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는 여당이 노리는 목적에 부합할 것”이라면서도 “전쟁이 끝난 것처럼 축하하는 척 하는 것이 한·미동맹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명박정부 시절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현 정부 초까지도 이어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온갖 도발행위를 거론했다. 2007년 평양을 방문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에서 군사적 적대 관계를 끝내고 한반도의 평화를 약속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으나 이후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음을 지적한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머드 알리 신임 총리는 2007년 북한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활용했다. 그는 2018년 에리트레아를 전격적으로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하는 등 대화 프로세스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양국은 “평화우호공동선언”을 골자로 한 종전선언인 평화협정 체결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도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공동성명을 발표했지만 북한이 계속 도발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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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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