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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Crisis.M] 총성없는 전투 '대북심리전', 김정은의 '공포'
    ▲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2015년 ‘8.25 합의’ 이후 중단했던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기 위해 육군 장병들이 경기 연천군 중부전선에 있는 대북확성기 위장막을 걷어내고 있다. ⓒ국방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발행인) 총탄 대신 '사실' 쏘는 대북방송, 김정은 집단이 제일 무서워하는 대북심리전 우리군의 대북방송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최초로 중단 되었다가 2015년 8월 4일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에서 목함지뢰 도발로 우리 병사 2명에게 중상을 입혀 사과하지 않는 북한의 무책임을 응징하기 위해 11년 만에 재개되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우리군 대북확성기 방송을 통해 대북 심리전을 펼치자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우리군이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없으면 중단하지 않겠다며 방송을 이어 가자 대북방송 재개 열흘만인 같은 달 20일 우리 군의 서부전선 대북 확성기 방향으로 사격을 가하는 포격도발을 일으켰다. 우리 군도 비무장지대에 포격을 가함에 따라 남북 간 포격전이 있었고 김정은은 준 전시상태를 선포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올랐다. 전면전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북방송을 계속하자 북한은 꼬리를 내리고 대화를 제의하여 무박 4일간의 대화를 통해 북한이 목함지뢰 도발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고 준 전시상태를 해제하였다. 그때 우리는 남북 합의에 따라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전제조건으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을 8월25일 12시부터 다시 중단하였다. 역시 북한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행동은 오래가지 않고 재발 되었다. 북한이 합의를 하고서 5개월도 채 안 되어서 남북한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북한이 2016년 1월 6일 제4차 핵실험을 전격적으로 실시한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 “정부는 국제사회와 긴밀한 협력 하에 북한이 이번 핵실험에 대해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안보에 대한 중대한 도발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존과 미래를 위협하는 일이고 나아가 세계평화와 안정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면 우리는 김정은 집단이 핵폭탄 보다 더 무서워 한다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북한을 위협하는 절차를 다시 밟았다. 방송중단 136일 만인 2016년 1월 8일 GOP 10개소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 하였다. ▲ 올해 북한 군과 주민의 귀순 일지 / 그래픽=뉴스투데이 2017년 목숨 건 탈북 귀순 총 9회에 15명, 그중 군인 4명 전방의 대북방송은 김정은 체제를 안에서 흔드는 1급 대북정책 김정은 집단이 왜 대북방송을 두려워하는 지는 상기 표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군인 1명을 포함해 3회에 걸쳐 5명이 귀순한 것과 비교하면 3배가 증가한 것이다. 북한이 핵 보유국 인정을 주장하며 핵 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는 가운데 북한군과 민간인의 목숨 건 귀순은 확산 일로에 놓여 있다. 이와 관련해 유엔결의에 따른 대북제재로 북한 경제 사정이 더욱 힘들어지고 숙청 등 탄압도 가중되면서 내부 긴장이 위험 수위에 도달해 폭발 직전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에 올해 제3국을 경유해 들어온 탈북민은 961명으로 작년에 비해 16.8%감소했다. 특히 2000년 이후 2016년까지 북한군 귀순은 총 9건으로 올해만 4명이 넘어온 것은 이례적인 현상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도 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선군 정책으로 군에 먼저 식량.필수품 등이 배급이 되어 민간인 보다 나은 대접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대북심리전의 효과를 모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2000년도에 합참심리작전 담당을 했었다. 그때는 전광판, 대면작전, 전단살포, 확성기방송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선에 있는 북한 군인들과 인근 10~20Km정도거리의 마을까지 심리전을 전개했다. 특히 대형 전광판의 성과는 지대했다. 당시 귀순 병사를 신문하다보면 대부분이 우리의 심리전을 보고 듣고 귀순을 결심했다는 증언이 많았다. 야간에 전광판에 게재하는 2~3m크기의 대형 문자는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북한 군인과 민간인들은 우리의 기상 예보를 보고 다음날 행사에 참고했고, 타국에서 벌어진 체육경기 결과도 게재하여 북한 체육인의 승전보를 먼저 알려주는 등 사실(Fact) 그대로 전파하자 점차 신뢰를 하고 남한을 동경하는 심리가 확산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단살포 작전은 초코파이와 1달러 지폐를 포함하여 선전문구 전단을 풍선에 실어 보내면 북한 주민들은 초코파이와 1달러를 빼놓고 신고하면서 전단도 보게 되어 감시가 있더라도 그 효과는 높았고 북한 군인들과 주변 민간인들은 어떤 계기만 되면 목숨을 건 탈출을 과감히 시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효과 때문에 남북 협상 시 북한은 대북심리전 중단을 최우선적으로 제시하며 어떻게든 내부 붕괴를 막을려고 시도할 것이다. 북한이 우리 군의 서부전선 대북 확성기 방향으로 사격을 가하는 포격도발을 일으켰을 때, 우리 군도 단호하게 비무장지대에 포격을 가하는 포격전을 가하며 대북방송을 지속하자 김정은은 준 전시상태를 선포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올랐다. 그러나 북한은 곧 방향을 전환하면서 협상에 나왔다. 모택동이 즐겨 활용했던 손자병법의 피실격허(避實擊虛)를 항상 적용한다는 이 교훈을 잊지 말고 앞으로도 강한 북한 제재와 압박만이 평화를 지키며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한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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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17-12-27
  • [김희철의 Crisis M] '北핵'의 끝은 김정은 체제 붕괴시킬 백두산 폭발?
    ▲ 국립방재연구원이 지난 2011년 실시한 백두산 화산폭발 모의실험 자료 화면. 당시 국립방재연구원은 백두산의 화산폭발 가능성에 대비해 모의실험을 통해 한반도 및 주변국가 영향에 대해 분석했다. [사진출처=ytn 뉴스 화면 캡쳐] ⓒ뉴스투데이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서 두 차례의 지진 관측돼 한미 정보당국 긴장 해외과학자들 “지난 3일 북핵실험의 여파로 발생” 분석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요란스러웠던 휴일이었다. 2017년 9월 23일 토요일 오후 1시 43분과 5시 24분에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6km지점에서 각각 2.6과 3.2진도의 지진이 관측되었다. 다음날 새벽에는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미국 전략 폭격기 B-1B 랜서가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발진한 F-15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동해 NLL을 넘어 북한 동해상 국제 공역까지 올라가 무력시위를 펼쳤다. 같은 날인 24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유엔연설을 통해 “참수·군사공격 기미 보이면 선제 행동으로 예방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국제 사회를 향한 전례 없는 협박과 위협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과대망상이 겹친 정신병자, 거짓말 왕초, 악의 대통령”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 냈다. ▲ 백두산 화산 폭발을 가속화 시키는 북한 핵실험 장소인 풍계리와 백두산간의 '지표면상' 거리는 불과 113km이다. 더욱이 지하의 마그마층 간의 거리로 따지면 고작 8km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출처=YTN싸이언스 캡처] 풍계리 핵실험장 위치는 백두산 마그마 본층 간의 실제 거리는 불과 8km내외? 해동성국 발해의 926년 멸망도 백두산의 대폭발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23일 풍계리 인근 자연지진을 분석한 해외 과학자들은 지난 9월 3일 북한의 핵실험 도발의 여파로 발생한 지진이라고 했다. 이번 핵실험 위치에서 백두산 마그마 본층과 연결된 위치와의 거리가 113km인 것을 감안하면 더 큰 대재앙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그 이유로 풍계리와 백두산 마그마층의 실제 거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짧다는 사실을 꼽는다. 풍계리 지표면에서 지하로 2km를 굴토하여 핵실험을 하면 그 아래 백두산 마그마 층과 연결된 마그마 층이 지하10km 지점에 있고 다시 그 아래 2층 마그마 층이 20km 내외에 존재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불과 8km 내외의 거리에 백두산과 연결된 마그마 층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해동성국으로 불리던 발해가 926년에 멸망한 이유가 백두산의 대폭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폭발 당시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일본까지 날아갈 정도로 엄청났으므로 농경지 등에 피해를 입은 발해 사람들이 나라를 버리고 망명길에 올라 발해 세자 대광현이 수만 명을 이끌고 고려에 투항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세가」,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발해가 멸망한 이후인 938년과 939년 그리고 946년과 947년에 백두산 화산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엔 백두산은 1403년, 1654년, 1668년, 1702년에 중국 기록에 따르면 1903년에도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중 1702년에는 함경도 부령과 경성지역에서 “연기와 안개 같은 기운이 서북쪽으로부터 갑자기 밀려오면서 하늘과 땅이 캄캄해지고… 흩날리는 재는 마치 눈 같이 사방으로 떨어졌는데, 그 높이가 한 치(약 3cm)쯤 되었다.”는 일이 벌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약 1000년 전 즈음에는 백두산 폭발로 뿜어져 나온 화산재 높이가 25km이상 솟구쳤으며, 상층기류에 따라 이동해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에 비처럼 내렸고 이곳에는 화산재가 5cm이상 쌓인 곳이 지금도 남아있다. ▲ 백두산 화산 폭발의 위력은? [사진출처=YTN싸이언스 캡처] 영국의 지진학자 제임스 해먼드, 2013년 백두산 용암의 활동성 주장 위험한 북핵 놀음 고집하는 김정은 체제, 선제공격 이전에 백두산 폭발로 붕괴할 수도 2013년 영국의 지진학자 제임스 해먼드를 비롯한 조사팀이 백두산에서 60km에 이르는 거리에 총 6기의 지진관측기를 설치하고 구체적으로 관측한 결과가 있다. 백두산 아래에는 부분적으로 녹은(부분용암) 암석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액체, 가스, 크리스털, 바위가 섞인 상태로 부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런 데이터는 백두산 용암이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라고 조사에 참여한 미국의 지질조사국 이아코비노씨가 말했다. 김정일 정권 아래에서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명의 아사자를 양산시켰고,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과 형 김정남을 살해하는 등 정권유지를 위해 인명존중 정신을 완전 말살시킨 북정권의 말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대재앙’의 발생 징후를 설명하는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300번의 사소한 징후, 29번의 작은 사고 발생 끝에 1번의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백두산에서는 이미 사소한 징후 끝에 이번 연속된 자연지진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로켓맨 김정은의 인명무시 정책의 끝은 참수 및 Kill-chain작전의 선제공격에 의한 북정권 소멸이 아니라 그러한 만행에 분노한 하늘이 직접 분노의 지팡이를 휘둘러 그것은 막지 못한 김정은 일가와 하수인까지도 일거에 처벌할 ‘백두산 폭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로켓맨’ 김정은은 이제 정신을 차리고 평화와 인류번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닌가?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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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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