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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는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6·25남침전쟁에 참전한 네덜란드 반호이츠 부대도 방문해 타르 드 부르(T. De Boer) 부대장(중령)을 만나 참전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자리에는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용사 3명과 유엔참전국 국제 교육과정(글로벌 아카데미) 일환으로 네덜란드를 방문한 수원 삼일공고 학생들도 함께 했다. 참고로 국제 교육과정(글로벌 아카데미)은 국가보훈부가 정전 70주년을 맞아 처음 추진, 국내 및 참전국 학교의 상호 방문과 6‧25전쟁 전적지 탐방 등 교류 활동을 통해 6·25전쟁의 역사와 의미를 알고, 미래 세대로 계승하기 위한 것으로, 국내 22개 학교와 유엔참전국 학교 31개교가 참여하고 있다. 이날 네덜란드군 관계자로부터 부대내 군사박물관을 소개받으면서 6·25남침전쟁 당시 폴란드인 100명이 네덜란드군에 배속돼 참전한 사실이 새롭게 알려졌다. 그동안 6·25전쟁 당시 네덜란드군에 배속돼 싸운 나라는 수리남 정도로 알고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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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3-10-20
  • [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는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①
    헤이그 특사 이준 열사의 묘적지를 삼일공고 학생들과 함께 참배하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사진=보훈부]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제보훈 교류·협력’ 등을 위해 네덜란드를 방문한 박민식 장관을 비롯한 출장단은 지난달 16일 바겐스트라트 거리에 위치한 헤이그 특사 ‘이준 열사’ 묘적지를 찾아 참배했다. 헤이그 특사 이준 열사는 1895년 서재필의 독립협회에 가담해 활동했으며, 갑오경장시 김홍집 내각이 붕괴하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귀국후에는 독립협회와 지금 서울특별시 중앙우체국 앞에 있었던 상동감리교회에서 활동을 재개했다. 상동감리교회는 전덕기 목사의 부탁을 받은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만든 우리말 문법을 가르칠 정도로 민족의식을 가진 지식인들의 공동체였다. 1902년에는 민영환의 ‘비밀 결사 개혁당’에 가담했으며, 1904년 공진회 회장을 지냈다. 공진회 활동으로 유배 생활을 한 뒤, 1905년 국민교육회 회장에 취임하고 보광학교, 오성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 계몽 운동에 힘썼다. 1907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상동교회의 전덕기, 이동휘, 이회영 등은 고종의 밀사를 파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고종에게도 신임장을 받아 특사로는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이준이 정해졌다. 이준은 고종의 신임장을 들고 만주의 이상설, 러시아의 이위종과 차례로 합류해 헤이그로 향했다. 그러나 을사조약 체결이 일본의 강제에 의한 것이었음을 폭로하려 했던 계획은 영일 동맹으로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영국의 방해로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고종이 폐위되고 순종이 즉위했으며, 이준은 헤이그의 숙소에서 순국했다. 당시 네덜란드 유력 일간지 ‘헤트·화데란트’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잔인한 탄압에 항거하기 위해 이상설, 이위종과 같이 온 특사 이준씨가 어제 숨을 거두었다. 일본의 영향으로, 그는 이미 지난 수일동안 병환중에 있다가 바겐슈트라트에 있는 호텔에서 사망했다”라고 보도했다. 오랫동안 이준이 할복 자결을 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국사편찬위원회는 1962년 할복 자결 아닌 병사 쪽으로 판단했다. 이는 당시 일제의 한민족 억압에 대한 반일적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준이 영웅화되면서 할복 자결설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으며, 유해는 본래 헤이그에 묻혀 있다가 1963년 봉환됐다. 서울 장충단 공원에 동상이 세워져 있고, 헤이그에는 이준 열사를 기념하는 이준 열사 기념교회(감리교)가 건립되어 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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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3-10-19
  • [김희철의 CrisisM] ROTC운영 108개 대학중 절반인 54곳 정원 미달(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김완섭 기획재정부 차관이 지난 21일 군부대를 방문하면서 ‘장병 지원 확대'를 강조했지만, 올해 7월 기준 육군 학군단을 운영하는 전국 108개 대학 가운데 후보생 정원이 미달한 학교는 절반인 54곳으로 집계됐다. 경인교대 학군단은 36명이 정원이지만 재학 중인 ROTC후보생은 5명에 불과했고, 교원대 학군단은 69명이 정원이나 23명의 후보생만 재학하고 있었다. 또한 한양대는 54명 정원 중 25명만, 서강대는 정원이 43명이지만 20명에 그쳤다. 이는 병사는 복무기간이 짧고 봉급이 인상되는 데 반해, 초급간부는 복무기간이 긴 데다 처우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현재 복무기간은 육군 병사는 18개월이지만 ROTC는 군별로 24∼36개월이다. 육군은 올해 전반기 ROTC 후보생 지원 경쟁률이 역대 최저인 1.6대 1에 그쳐 지난 1일부터 창군 이래 처음으로 추가 모집을 받았다. 모집 인원보다 지원자가 많긴 하지만 입영 후 중도에 포기하는 후보생들이 적잖아 자칫 졸업 후 임관하는 장교 인원이 목표치를 하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ROTC 경쟁률은 2015년 4.8대 1, 2021년 2.6대 1, 2022년 2.4대 1 순으로 갈수록 하락 추세다. 이는 병봉급이 초급 간부의 급여와 대등해지고 반면에 의무복무 기간은 초급간부가 6~18개월 더길기 때문에 입대자들은 봉급과 복무기간을 고려할 때 간부의 잇점이 없어져 차라리 병으로 입대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우리 군의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 국방부가 우수한 초급장교를 확보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다. 하지만 과거 정권에서 포퓰리즘에 의한 무분별한 병 봉급 인상 및 복무기간 단축 정책의 폐해는 초급간부 지원 회피 및 국방운영예산 증가와 이로인한 전력증강 예산부족 유발 등으로 국가안보에 중요한 걸림돌이자 절대위기가 되고 있다. 정부와 국방부는 더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해당 사태의 원인 파악과 함께 학군장교 등 초급간부 충원율의 대대적 향상을 위한 혁신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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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3-10-18
  • [김희철의 CrisisM] ROTC운영 108개 대학중 절반인 54곳 정원 미달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김완섭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지난 21일 강원도 동해시 해군 제1함대를 찾아 주요 시설과 장병 생활 공간을 점검하고 장병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김 차관은 근무 시간의 대부분을 함선 안에서 보내는 장병들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면서, 병 봉급 인상 및 초급간부 단기 복무 장려금 인상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내년도 병장 기준 병 봉급이 올해 130만원(사회진출지원금 포함)에서 165만원으로 35만원 인상됐고, 초급간부 단기복무장려금도 장교 1200만원, 부사관 1000만원으로 각각 300만원과 250만원 인상한 2024년 예산안을 반영했다. 또한 김 차관은 병 봉급 인상 뿐만 아니라 노후 숙소 개선 및 주택수당 지급범위 확대, 병영 생활관 현대화 전환 등을 통해 장병 주거 여건 개선에도 힘쓰겠다고 말했고, 이에 따라 노후 숙소 개선 예산도 작년의 두배 규모인 4196억원으로 편성하는 등 국방운영비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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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3-10-09
  • [김희철의 CrisisM]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시대의 전사들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세력에 의해 희생당했던 수많은 애국 영령들의 원한과 피가 아직 뜨겁고,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눈물이 여전히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에서까지 공산주의자 나팔수 역할을 했던 정율성을 기리는 것을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 국민들의 소중한 예산은 대한민국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단 1원도 대한민국의 가치에 반(反)하는 곳에 사용될 수 없다. 오직 ‘호남학도병들’처럼, 대한민국의 영웅들을 기억하기 위한 예산만 있을 뿐이다”라며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 계획의 전면 철회를 촉구했다. 더불어“호남학도병들의 우국충절(憂國忠節)을 기억하고, 학생과 국민들이 호남학도병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계승할 수 있도록 순천역 광장에 현충시설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국가보훈부는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에 착수할 계획이고 의지를 표명했다. 이날 순천역 광장에는 6·25남침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고병현*(1929년생)님을 비롯해 고효주 6·25참전학도병 충혼선양회 회장, 그리고 전남지역 보훈단체장 10여 명이 함께했다. 박민식 장관은 순천역 광장 행사에 앞선 간담회 자리에서 호남학도병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호남학도병 대표 고병현님에게 ‘영웅의 제복’을 전달했다. 참고로 고병현님은 1950년 율촌고등공민학교 재학 중, 6‧25참전을 위해 면사무소에 군입대를 지원하였으나 거부당하자, 망치로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찍고 “이몸을 조국에 받치나이다. -무진생 고병현”이라는 혈서를 제출하였으며, 이후 육군 제5사단 15연대 학도중대에 입대하였다 한편,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날 순천역 방문에 앞서 순천 매산고등학교(1950년 당시 순천매산중학교)에 소재한 순천매산고 출신 학도병 3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6·25참전기념비와 순천지역 참전학도병 5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학교 정문 옹벽의 충혼벽화에 매산고 교장, 학생 대표들과 함께 헌화하며 진정한 보훈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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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3-10-05
  • [김희철의 CrisisM]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시대의 전사들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율성은 일제강점기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활동하다가 광복 후 월북하여 북한 인민위원회, 조선노동당, 북한군 등에서 활동을 했으며, 6.25남침전쟁 기간 중에 다시 중국으로 귀화하여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해방군 등에서 군인으로 활동한 작곡가이다. 중국 바이두백과는 그를 한국 사람이 아닌 ‘근대 중국 작곡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난징을 떠나 10월 중국공산당의 본거지인 연안에 가서 본격적인 공산당 활동을 시작했다. 1938년 무렵부터 당시 중국공산당의 거물 저우언라이의 양녀 딩쉐쑹(丁雪松)과 연애를 했는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41년 결혼했다. 1939년 4월에는 오랜 심사 끝에 중국공산당 정식 가입이 승인되었다. 그 해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인민해방군진행곡)을 작곡했다. 광복이 되자 한반도 공산화을 위해 연안 팔로군 본부 소속 김무정의 명령으로 정율성은 딩쉐쑹과 딸 등 가족과 함께 1945년 12월, 소련 군정하에 있던 북한 평양에 도착해서 북조선인민위원회 소속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인민군 협주단을 데리고 북한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북한 지역주민들에게 새로 수립된 북한 사회주의 정권을 찬양하는 공연을 무려 200여 차례나 치렀고, 북한 사회주의 정권과 인민군을 찬양하는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 30여 곡을 작곡하여 김일성으로부터 포상장도 수여받았다. 1950년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 군관 신분으로 참전하였으며, 서울 점령 직후 서울에 내려와 주둔했다. 그는 개전 초기 서울 점령 직후부터 9월까지 쭉 서울에 머물렀다. 그의 아내 딩쉐쑹도 함께 서울에서 머물렀는데, 그해 8월경 돌연 가족들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갔다. 중국에서의 정율성은 마오쩌둥의 시에 곡을 붙이는 등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작품이 대부분을 작곡했다. 문화대혁명기에 그는 마오쩌둥의 시사 20편에 곡을 붙였으며 이 작품은 “그 자체가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기백이 넘쳐흐르는 교향악으로 중국혁명사의 최고탑”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가 일생동안 마오쩌둥의 시사에 곡을 붙인 편수는 34수에 달한다. 1976년 9월9일 마오쩌둥이 죽고 피바람을 불었던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소외되었던 정율성은 곧 복권되었다. 그는 이번에는 저우언라이 총리를 찬양하는 연가와 건국 50주년(정확히는 중국공산당 창당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을 만드는데 착수하며 끝까지 공산주의자 나팔수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해 12월7일 베이징 근교의 한 운하에서 낚시를 하던 도중 심장병으로 쓰러져 62세로 사망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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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3-10-02
  • [김희철의 CrisisM]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시대의 전사들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8월28일 오전 전남 순천역 광장에서‘잊혀진 영웅, ‘호남학도병들’을 기억해야합니다!’를 주제로 한 호남학도병 현충시설 건립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기억하는가에 달려있다. 우리는 호남의 정신과 호남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끈 영웅들을 기억하고 기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호남학도병들을 기억하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유가족들의 아픔을 보듬는 것”이라며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였다. 순천역 광장은 6·25남침전쟁이 발발한 1950년,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학생들이 집결하여 ‘학도병’ 출정식을 가졌던 역사적 장소이다. 당시 순천과 여수, 광양, 벌교 등 호남지역 17개 학교 180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혈서로 입대지원서를 쓰고, 같은 해 7월13일, 순천역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이에 박 장관은 “호남의 어린 학생들이 조국을 위해 펜 대신 총을 들었고, 목숨을 건 혈투 끝에 차디찬 전장의 이슬로 스러져갔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자유 대한민국을 사수하겠다는 정신, 바로 이것이 호남의 정신”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공산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수많은 애국 영령들의 원한과 피가 아직 식지 않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눈물이 여전히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에게 공산당의 나팔수를 기억하게 하고 기리겠다는 시도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라며 광주시가 추진 중인 정율성 기념공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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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3-09-26
  • [김희철의 CrisisM]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시대의 전사들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우리가 누리는 민주와 자유는 영웅들의 피 묻은 군복 위에 서 있기 가능하다.호국의 별인 백선엽 장군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이들은 너무도 많이 있다. 그가 "나를 쏘라"며 6‧25남침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다부동 고지를 지키지 않았다면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졌다. 이를 기리기 위해 지난 7월5일 백선엽 장군의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만약 다부동 전투에서 패했다면 소련과 중공의 지원에 힘입은 북한에 의해 한반도는 적화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는 자유민주체제의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박민식 장관은 지난 6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로 모독하는 야당 의원에게 발끈했다. 박 장관은 반민특위 출범 당시 백 장군은 친일 명단에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도중에 문재인 전 대통령 부친의 흥남시 농업계장을 지낸 바 있는 이력까지 언급하며 "만주군관학교 소좌(소위)로 북간도가 첫 근무지던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라면. 그도 친일파가 아니냐?"라고 강조했다. 청산리 대첩 이후인 1921년,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와 그 일당들에 의한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들은 몰살당하며 해체됐다. 백 장군이 북간도에 부임한 1942~1943년 무렵에는 독립군들이 연해주로 쫓겨간 뒤였다. 그가 근무한 부대의 명칭이야 만주특설대로 좌파세력들의 토착왜구 몰이에 그럴싸하다. 문전 대통령은 백 장군이 숨을 거두었을 때 조화만 보냈을 뿐, 끝내 조문하지 않았다. 나라를 지킨 호국의 영웅을 친일로 모독하는 좌파 세력의 정치적 계산과 무관하지 않다. 6‧25남침전쟁 당시에 김일성이 가장 증오했던 남한의 인물이 이승만과 백선엽이었다는 것과도 묘하게 일치한다. 또한 전직 대통령도 현실 정치에 거리를 둬야 한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걸핏하면 정치적 발언을 한다. 이번에도 홍범도의 흉상과 관련해 언급이 잦았다. 자택으로 찾아온 자파 의원들과 정치를 안주 삼는다. 국가지도자를 지낸 사람답게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신중한 처신을 해야한다. 백 장군이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팩트를 부풀린 것도 아니고 아예 날조에 가깝다. 영웅의 명예를 지키려고 거야에 맞서며'1류 보훈’에 매진하는 박 장관과 레닌에게 선물받은 권총으로 독립군을 직접 사살한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의 동상 이전을 주장하는 신원식 의원(국민의힘)에게 박수 보낸다. 일부 세력들이 백 장군을 친일파로 모독하는 행각을 계속 저지르면 좌시하면 안된다. 좌파세력이 호국의 영웅 백 장군을 친일파로 몰아 모독하려는 것을 거듭 개탄하며 박민식 장관이나 신원식 국회의원처럼 적극적인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보훈의 최고 가치인 국가정체성이야말로 박 장관이나 신 의원을 비롯한 모든 국민이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내야하는 엄숙한 과제이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호국의 제단에 피를 뿌린 분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다해야 한다. 제복(MIU)입은 영웅들의 명예를 짓밟는 이적행위와 망동을 당장 중단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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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3-09-24
  • [김희철의 CrisisM]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시대의 전사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6·25남침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은 1950년 8월3일부터 9월22일까지 22km거리의 대구를 위협하는 다부동 전투에서 열세한 병력으로 유례없이 치열한 혈전을 치루었다. 화력이 우세한 미군을 피해 김일성은 국군 1사단 정면에 무려 북한군 3개 사단 2만여명의 병력을 몰아넣었다. 당시 백선엽 장군의 지휘 아래 있었던 1사단 병력은 모두 7000여명으로 병력은 3대 1, 화력은 10대 1로 북한군에게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북한군 전쟁지도부는 바로 그 점을 노렸다. 하지만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라고 독전하며 지휘한 백 장군의 1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을 격파하며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국군은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 방어에 성공하여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때 김일성의 특명으로 다부동을 버티고 있는 남한의 백선엽을 생포하고자 거액의 포상금까지 걸었고, 결국 사단사령부가 있던 다부동 후방의 동명초등학교에 북한군 1개 중대규모가 기습을 감행했다. 때마침 운동장에서 숙영하던 증원부대 8사단 10연대의 1개 대대가 재빨리 반격하여 기습한 적들을 격퇴했다. 당시에 김일성이 가장 증오했던 남한의 인물이 이승만과 백선엽이었고 제거하기 위해 포상금까지 걸었는데 묘하게도 현재 이 두 인물을 친일파 등으로 몰아 폄하시키는 모습이 개탄스럽다. 백 장군은 다부동 전투를 비롯해 평양 최초 점령, 서울 재탈환, 춘계 공세 방어, 동부 휴전선 북상 등 숱한 작전을 지휘한 6·25남침전쟁 영웅이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헌신적인 노력을 하여 한미동맹의 초석을 다졌고, 제4대 합동참모의장과 제7·10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백 장군은 전역 후 약 10년 동안 중화민국, 프랑스, 캐나다 대사를 역임하며 북한의 외교 진출 공세를 철저히 막아내었고, 귀국후에는 교통부 장관 재임하며 서울지하철 1호선 건설 실현과 대한민국 화학산업을 키워낸 ‘탁월한 외교관’이자 ‘산업근대화’의 주역으로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고귀한 헌신을 이어간 구국영웅이다. 미군들이 지금도 6·25남침전쟁시에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하며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은 2020년 100세를일기로 영면에 들었으며,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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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0
  • [김희철의 CrisisM]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시대의 전사들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자신의 부친을 친일파로 지칭한 박민식 보훈부 장관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이날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을 통해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올린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고소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법적 절차에 충실히 따르되 그에 따르는 수고로움은 나라를 바로 세우는데 감수해야 할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 박민식 장관의 국회 답변은 친일파에 대한'일관된 기준'을 강조한 발언...문 전 대통령의 고소는'내로남불'식 태도 박 장관은 “저는 문 전 대통령 부친 문용형 씨를 친일파로 일방적으로 몰아가거나 비판을 한 바 없다. '백선엽 장군이든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친이든 그 삶을 함부로 규정지어선 안 된다.일제 강점기라는 아픔의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는 같은 기준, 같은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전직 대통령이 법적 공격을 통해 또다시 반일 대 친일의정쟁으로 몰아가는 행태에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며 “이번 고소를 통해 도대체 무엇이 친일이고, 누가 친일파인지 보다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지는 계기가 된다면 망외의 소득이 될 것”이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같은박 장관의 입장은 소위 친일파에 대한 '일관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일제 강점기에 다수 국민이 체제순응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이 점에 있어서 문 전 대통령의 부친과 백선엽 장군의 행보는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박 장관은 지난 6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하는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 부친은 (일제시대)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는데, 친일파가 아니냐"라고 언급, 논쟁이 벌어졌다. 백선엽 장군의선택을 친일이라고 비판한다면, 같은 논리로 문 전 대통령의 부친도 친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게 박 장관의 국회 답변의 취지였던 것이다.오히려 문 전 대통령의 부친이 친일파가 아니듯이 백 장군도 친일파가 아니라는 게 박 장관의 논지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전 대통령이 박 장관을 고소한 것은자신의 부친은 친일파가 아니고 백 장군만 친일파라는 '내로남불'식 논리의 산물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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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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