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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을 마치고 대상을 받은 최지효 학생은 소감 발표에서 “이책을 통해 나라가 어떻게 지켜졌는 지를 분명히 알게 되면서 나라사랑 마음이 깊어졌으며, 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나라를 빛내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초등부 금상인 김세진 학생은 심사위원 및 참석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본인을 뽑아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해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며, “저의 꿈도 장차 국방과학연구원으로 자유를 수호하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당선 소감을 발표했다. 이날 1부는 국민의례에 이어 김병관 한미안보연구회 회장의 환영사,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과 김재창 명예회장의 축사에 이어 공모전 시상식으로 축제분위기가 이어졌고, 2부에서는 테너 지명훈과 싱어송라이터 이유진의 축가와 ‘할들육(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관련 퀴즈로 시작된 작가 장삼열 박사의 북콘서트가 진행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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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024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 시행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27일 “국가안보를 위해 오랜 기간 군에서 복무한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와 취업 촉진을 위해 이날부터 오는 7월26일까지 ‘2024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을 위한 신청·접수를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는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확보된 일자리에 지속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마련하고, 기업이 제대군인 채용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특히, 국가보훈부는 2021년 ‘제대군인 고용우수기업 인증제’를 법률로 명문화한 뒤, 인증제에 대한 기업의 관심 유도를 위해 행정·재정·법률적 혜택(인센티브)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제대군인 고용우수 인증기업은 시중은행의 여신지원 시 금리 우대를 비롯해 관세 조사유예, 방위사업청 및 지방자치단체 우수기업 선정 평가 시 가점 부여 등의 우대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신청 희망 기업은 오는 7월26일까지 신청서류(국가보훈부 홈페이지 공지)를 준비하여 한국경영인증원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사무국에 전자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이미 국가보훈부는 6월20일 ‘인증설명회’를 온라인(ZOOM)으로 개최하며,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제도와 인증기준 등 세부 사항을 추가로 안내할 예정이다. 또한, 신청기업을 대상으로 한국경영인증원에서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통해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여부를 심사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국가보훈부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9월 인증기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류심사와 현장실사의 평가지표는 중장기복무 제대군인 고용인 수와 우대채용 현황, 제대군인지원센터 협력 정도, 근속 기간, 근로 만족도, 기업 재무 건전성 등이다. 최종 인증기업에 대해서는 제대군인주간인 10월 둘째 주 국가보훈부 장관 인증패와 인증 현판을 수여할 계획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제대군인에 대한 사회복귀 지원은 제복근무자로서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지금도 국가수호 일선에서 땀 흘리고 있는 현역 군인들이 맡은 바 임무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라며 “국가보훈부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제대군인들의 원활한 취업을 위한 고용환경 조성을 위해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고용 우수 인증기업에 대한 우대지원제도를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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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국회 안보정책 전쟁에 투입할 22대 당선자들의 이모저모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국민의힘이 낙담하며 쇼크에 빠져 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물려받은 국민의힘 의석수는 5석 늘어나 패배가 아니라며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이 오히려 지역과 비례의원 모두 5석이 줄어 과반수 제1당 달성은 실패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늘어난 국민의힘 당선자 중에 국방전문가로 먼저 강원도 춘천·철원·화천·양구을의 한기호 국방위원장은 철원출신으로 김화중학교를 나온 뒤 서울 한양공고를 다녔다. 육사 31기로 임관하여 2사단장, 육본정보작전부장, 5군단장, 육군 교육사령관을 역임하는 등 작전분야에 정통했으며 육군중장으로 전역하였다. 한 당선자는 현역 위관시절 탁월한 지휘력과 업무추진력이 돋보여 당시 사단장 박세직 장군의 조카 사위가 되었다. 전역 후 바로 철원·화천·양구 지역에 출마하여 18, 19, 21대 국회의 국방위에서 맹활약을 했으며 장성출신으로는 드물게 4선고지를 점령했다. 영주시·영양군·봉화군·울진군 지역구의 임종득 당선자는 경북 영주 출신으로 대구 청구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42기로 임관해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경남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로 전략과 정책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전략통 군인으로 2019년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2022년 8월, 국가안보실 제2차장으로 발탁되어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했고, 퇴임한 2023년 10월부터 지역구로 내려가 착실하게 차기 총선준비를 하였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임 당선자를 포함한 국회의원 25석 모두를 보수가 싹쓸이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남양주시을’ 지역의 김병주 당선자(2선)은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강릉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40기 포병장교로 임관해 미사일사령관, 3군단장을 거쳐 육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독실한 불자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재직후 전역했다. 2020년 1월,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3호로 입당해 2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이낙연 신임 당대표에 의해 안보분야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가 이재명의 열린캠프에 국방안보위원장으로 합류했다. 2022년 3월, 국방위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 건을 두고 전혀 안보 공백에 대한 계획이 없었던 것에 대해서 굉장히 격앙된 모습으로 질문했다. 육사 동기인 이종섭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된 비행금지구역 재조정에 관하여 사적인 인연과 관계없이 매섭게 몰아치기도 했다. 2023년 1월,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사건 사건에서 다양한 정부와 국방부의 실책을 비판했으나 정부여당은 북한 도발의 원인을 김 의원이 주도하여 체결한 9.19 군사합의 때문이고, 북한이 합의를 깨고 도발을 해올 때마다 훈련부족을 야기한 안보불안 합의의 책임자라며 오히려 공격을 받았다. 7월 장마 직후 해병대 일병 사망 후 수사 외압, 육사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과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도청사건, 한미일 군사훈련을 비판 등이 현역 시절과 다른 이중잣대라고 제기되면서 육사 출신들의 질책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중책을 맡으며 이재명 당대표의 신임을 받고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갑 선거구의 민홍철 당선자는 김해에서 태어나 김해고등학교를 3년 장학생으로 졸업 후 이후 부산대 법학과(80학번)에 입학했는데 군사정권이 출범에 따라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시공부를 시작해 1984년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각급 부대에서 검찰관, 송무장교, 군판사, 법무참모와 육본에서 법제·법무과장, 고등검찰부장 등을 거쳐 준장 진급 후 육본 법무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냈다. 2008년 2월 전역 후 변호사로 일하며 정치에 입문해 2009년부터 3년간 한나라당 당적을 가졌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시절 군 사법제도 개혁 과정에서 인연을 맺었던 문재인이 혁신과 통합 추진위원으로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 탈당하고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상남도 김해시 갑 선거구에 출마해 현역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정권 후보를 꺾어 당시 경남의 유일한 민주통합당 당선자가 됐다. 이후 20대 총선에도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당일에 열린 김해시장 재선거 및 시의원 보궐선거 또한 전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김해시가 사실상 민주당의 텃밭이 되었고 21대에 이어 이번에도 연속 당선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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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이승만, 안중근, 천안함 트리플 추모(상)
[시큐리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3월26일은 ‘이승만 건국 정신 계승 국민대회’가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신일이며, ‘안중근 장군 순국 114주기 추모제’와 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이 열리는 회한의 트리플 추모일이었다. 회한의 트리플 추모일 나흘 앞선 지난 22일,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9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렸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동시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국가를 위협하는 세력에 잘 맞서서 대응해야 한다”며 “어떠한 위협도 응징해야 한다”는 취지로 대화를 나눴고 “이렇게 명백하게 도발과 공격을 받았는데도 자폭이라느니 왜곡, 조작, 선동해서 희생자를 모욕하는 일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영웅들을 이렇게 모욕하고, 조작하고 선동하고 왜곡하는 세력들이 계속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반드시 막아 내야겠다”며 “저희가 잘하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마친 윤 대통령은 차에 탑승하기 전 한 위원장과 악수하며 한 위원장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던 이날 만남은 다른 의미에서 주목받았는데, 내달 총선을 앞두고 당과 대통령실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4·10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 같은 시기에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만나면서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든 상징적 장면으로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정 간 갈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 ‘부활한’ 천안함에 오른 영웅들…“이제 피격당하지 않을 것” ‘제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이 열린 26일 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생존장병들과 전사자의 유가족 등은 신형 호위함으로 다시 태어난 ‘천안함(FFG-Ⅱ, 2800톤급)’에 오르며 “많이 좋아졌어. 이 배라면 서해 나가서 두 번 다시 피격당하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야”라며 반겼다. 또 다른 유가족은 "벌써 14년이 지났지만 단 하루도 천안함 사건과 내 아들을 잊은 날이 없다"라며 "이름을 이어간 천안함 장병은 물론이고 국군 모두가 다시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고, 또한 유족회장은 “새 국회에선 천안함 괴담 방지 특별법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호위함 천안함은 '천안'을 함명으로 사용한 해군의 세 번째 함정이다. 천안함은 초계함(PCC, 1000톤급)보다 크기와 무장, 방어능력을 대폭 증가했다. 천안함은 길이 122m, 폭 14m, 높이 35m 크기에 최고속력은 30노트(시속 55㎞)이며, 해상작전헬기 1대를 탑재할 수 있다. 주요 무장으론 5인치 함포와 함대함유도탄, 한국형 수직발사체계(KVLS)로 발사하는 함대지유도탄·장거리 대잠어뢰(홍상어)·유도탄방어유도탄 등이 탑재돼 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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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22대 총선 전쟁에 투입된 별들의 실체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민의힘 ‘용인시병’에서 단수 공천된 고석 후보는 1960년 서울시 성북구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군 전역 후 고향이었던 전남 무안으로 이사해 함평 학다리고교를 나왔다. 육사(39기) 생도시절 공부를 잘했던 고 후보는 육사 교수요원으로 발탁되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위탁교육을 받았고,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군법무관으로 주로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등에서 복무했으며, 군 내부에서는 방위산업과 정부 계약에서 빈틈없이 탁월한 업무처리를 하여 강직하다는 평이 주류였다. 1998년에는 원용수 준위가 6백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병무비리 사건에서 병무비리 청탁자 명단을 찾아내어 병무비리를 밝혀냈다. 더불어 해묵은 병무비리들을 파헤쳐 군 내부의 기강을 바로 잡은 것으로 주목 받았는데 당시 진보정권의 미움을 받아 한직에서만 머물게 했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2008년 11월 방위사업청 법무지원팀장으로 근무하며 준장으로 진급해 육사 동기생 중 첫 번째로 별을 달았다. 이때 당시 대전지검 논산지청장으로 있던 윤석열(사법연수원 23기) 대통령이 직접 영전을 축하했었다. 이후 2009년부터 육본 법무실장을 거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역임했다. 전역 후 2013년 법무법인(유) 화우 변호사로, 2015년부터는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파트너변호사로 근무했다. 2022년 6월 ‘용인시병’ 당협위원장 공모에 신청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였던 인연이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후 2023년 6월 지역 대학교수와 전문가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여 ‘수지새미래연구원’을 창립해 원장으로 추대되었다. 2023년 8월 당협위원장으로 내정되었으며 2024년 2월16일 열린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결과 발표에서 단수공천이 확정됐다. ‘용인시병’지역은 민주당에서 문재인 정권의 국방부 대변인을 지냈고 윤석열 대통령 저격수 역할을 한 부승찬(제주생, 공사43기) 후보가 당내 경선 승리하며 확정되어 ‘육사 대 공사, 장군 대 소령의 경쟁’이 주목받고 있다. ‘용인시을’ 후보로 공천받은 이상철 후보는 용인시 백암면에서 태어나 백암중, 수원 유신고교(11회)를 졸업하고 1990년 한양대 졸업과 함께 학군사관 28기로 임관하였다. 중령~준장까지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오직 제2작전사령부 지역에서 근무한 후방지역 작전 전문가이다. 제5보병사단장에 취임하여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을 잘 마무리하여 2021년 임기제로 중장 진급과 함께 군사안보지원사령관으로 보직되었다. 하지만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대장급 인사에서 문재인 정부 수혜 인사로 분류되어 보직대기 상태가 되었고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으로 재직하다가 2023년 전역했다. 이후 2024년 1월 국민의힘에 22대 총선 국방안보분야 인재로 영입되어 ‘용인시을’ 전략공천 후보가 됐다. 본선 상대는 해당 지역구 현직인 민주당 김민기 의원의 불출마에 따라 공천된 손명수 전 국토부 2차관이다. 영주시·영양군·봉화군·울진군 지역구의 임종득 후보는 경북 영주시 출신으로 대구 청구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42기로 임관해 전략/정책 분야 참모를 맡은 전략통 군인으로 2019년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경남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이다. 2009년 대령 시절 육사 2학년이었던 아들(68기)과 함께 공수 강하훈련을 했던 일화도 있다. 2022년 8월, 건강 문제로 직에서 물러난 신인호 국가안보실 제2차장의 후임으로 임명되었고 퇴임한 2023년 10월부터 차기 총선준비를 했다. 같은 영주시 출신 정치인 장욱현 전 영주시장, 장윤석 전 국회의원 등과 경쟁해 결국 공천을 따냈다. 사실상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인 경북 지역이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다면 제22대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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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네덜란드군은 6·25남침전쟁의 숨은 영웅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별고지 전투는 1952년 2월 18일 네덜란드 대대가 평강 남방 10km 지점에 위치한 중공군의 전초진지인 별고지(430고지)를 공격해포로를 포획하고 방어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고 각종 가용 지원화력의 엄호하에 공격을 전개한 전투이다. 그해 2월 5일 미 제2사단 제 38연대 예비로 전환한 네덜란드 대대는 철원 동쪽의 하리동에 집결했고, 2월 10일~15일간 적 유인 작전인 유엔군 ‘Calm Up’ 작전이 실패하자 네덜란드 대대는 사단장으로부터 중공군 주요 전초진지인 별고지를 기습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때 별고지는 2개 소대규모 중공군이 배치돼있었고, 고지 후방에는 중대규모의 증원 병력도 있었다. 이들은 후방 472고지 일대에 구축한 강력한 지원기지로부터 화력지원까지 받고 있었다. 네덜란드 대대는 3개 포병대대, 4.2인치 중박격포 2개 중대, 전차 2개 중대, 부상자 및 탄약운반을 위한 노무자 70명과 화염방사기, 방탄복까지 지원받았다. 적진 항공정찰을 통해 전투 계획을 수립한 대대장은 2월 17일 대대 간부들을 집합시켜경사지에서의 신속한 이동을 강조하며 작전명령을 내렸다. 2월 18일 04시 B중대가 출발했다. 05시 엄호소대가 주저항선을 통과해지시된 무명고지를 점령하며, 06시 15분 후속하던 주공인 2개 소대가 공격개시선으로 진출해 모든 공격준비를 완료하자 06시 45분부터 예정된 공격준비사격이 별고지 일대에 집중됐다. 드디어 07시 B중대는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고, 포병의 오폭으로 잠시 공격이 일시 정지되기도 했지만. 우일선 소대는 경미하게 저항하는 적을 격퇴하고 별고지를 점령했다. 07시 30분경 472고지 방면으로 철수하는 적을 포병과 전차가 집중포격 실시해 많은 적을 사살했으며 09시경 연대장 지시에 따라 벙커 3개와 다량의 포탄 및 지뢰 등을 폭파하고 화력 엄호를 받으며 저항선으로 복귀하며 전투를 종료했다. 이번 별고지 전투로 5명이 전사하고29명이 부상당한 네덜란드 대대는중공군 1개 중대 이상을 완전 섬멸시키는 대성과를 올렸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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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우크라이나 사태와 제20대 대통령 선거(하)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재명 후보의 국방정책이 ‘스마트 강군’ 육성과 선택적 모병제라면 윤석열 후보는 한마디로 “AI(인공지능) 과학기술 강군 건설이다”라고 윤 후보 측 외교안보정책본부 국방정책위원장인 김용현 장군이 밝혔다. 그는 기존의 병력 중심의 전투방식으론 미래전장에서 싸워 이길 수 없으며 ‘AI가 접목된 첨단과학기술의 무인로봇전투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인구절벽에 따른 심각한 병력자원 감소 문제를 해소하면서 전시에 인명 손실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그렇게 되면 전문전투요원은 모병하고, 나머지는 징병하는 징모혼합제가 가능하며 모병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도 있다. 그런 면에서 박물관에 가야 할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 2.0은 폐기하고 ‘완전한 비핵화와 한미동맹 재건’을 내세우며 새로운 ‘국방혁신 4.0’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국방혁신 4.0’이다. 이에 따라 “패트리엇으론 막기 어려운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이나 고각 발사 미사일로부터 수도권을 보호하기 위해선 사드 추가 배치가 필요하다”라며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 개발한 것처럼 한국형 아이언돔을 개발해 조기 배치하고,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면 정당한 방위적 조치를 할 수 있는 선제타격을 공언하여 북한의 도발의지를 꺾어야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전작권을 빨리 전환해야 한다는 건 주권국가로 당연하지만 선제타격 능력을 포함한 전작권 전환 3가지 조건이 충족되고, 미국과 연합방위태세가 굳건하며 국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상태에서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병 복지측면에서는 MZ세대를 위한 맞춤형 복지 등의 병영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병사 월급 200만원 이상 보장, 2~4인이 거주하는 편안한 병영생활관 제공, 군 복무경력 인정 법제화, 현역병 국민연급 가입기간 확대, 민간 주택청약 및 공공 임대주택 가산점 부여 등을 제시했다. 이와 같은 국방 공약의 확실한 추진을 위해 총리 직속의 ‘신흥안보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 "비겁한 평화는 없다’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진리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의 장병 복지를 위한 병영체계 구축 공약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대북 정책과 북핵 문제 및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온도 차이를 보이며 해법에도 상대적이다. 이제 양 공약을 접한 국민들이 선택할 시기가 도래했다. 과거 일본 막부시대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위장 평화에 속아 비극의 역사로 남은 ‘오사카 성 전투’가 있다. 치열한 전투 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인 오사카 성주 히데요리는 평화의 상징으로 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를 메우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위장 평화인 거짓 화친을 받아들인다. 그동안 오사카성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방어물인 해자를 메우자마자 도쿠가와는 본색을 드러내 순식간에 성을 함락시켰고, 적의 말을 순진하게 믿었던 히데요리는 성을 빼앗긴 후 22세의 젊은 나이에 결국 자결했다. 오늘날 이상주의적 평화론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일화다. 2월24일 푸틴은 국경에 배치된 15만명의 러시아 병력은 훈련 중이라며 절대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쟁 발발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러시아군의 침공목표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달성되지 못했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많은 도시와 중요시설들이 파괴되고 민간민 약 2000여명이 희생됐으며 러시아군도 500여명이 전사했다고 알려졌다. 필자의 저서 제목인 ‘비겁한 평화는 없다’란 의미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4세기 로마의 병법가 베게티우스가 남긴 말이 진리임이 증명되었다.. 128만명의 북한군 중 70%가 평양~원산 이남에 배치됐으며 그 총구가 남쪽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할 때, 우리도 오사카 성과 우크라이나 비극의 재현을 방지하려면 전쟁을 대비하는 실질적인 국방에 충실해야 평화가 보장된다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이것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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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우크라이나 사태와 제20대 대통령 선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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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우크라이나 사태와 제20대 대통령 선거(상)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언연구소장]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오전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미사일 공격을 하며 침공을 시작했다. 그러자 이재명 후보는 "코미디언 출신의 초보 정치인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돼서 나토(NATO)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러시아가 침략한 것“이라고 발언했고, 윤석열 후보는 “이렇게 발언한 이재명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며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비난하고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한편 제20대 대통령 선거 1주일을 앞두고 이재명 후보는 김동연 후보와 윤석열 대선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하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의 공약을 비교할 때,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뚜렷한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4차산업혁명 첨단기술로 ‘스마트 강군’ 육성과 선택적 모병제로 정예강군을 건설하겠다며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강조했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당당한 진짜 평화, 진짜 안보인 ‘국방혁신 4.0’으로 국민을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며 ‘완전한 비핵화와 한미동맹 재건’을 내세우고 있다. ■ 이재명, 첨단기술 도입 통한 ‘스마트 강군 육성’과 ‘선택적 모병제’가 국방정책 공약의 핵심 이재명 후보의 국방정책 공약 발표문에 따르면 첨단기술 도입을 통한 ‘스마트 강군 육성’과 ‘선택적 모병제’를 핵심으로 주장하고 있다. ‘스마트 강군’은 핵심전력 강화, 인공지능(AI), 첨단 기술 투자 등을 통해 미래전을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예비 전력 내실화를 위해 군 역할 일부를 민간에 분배하고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한국형 조기경보 위성 체계 구축, 국방우주네트워크 구축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사드배치 반대와 전작권 조기 환수를 분명히 밝혔다. 두 번째로 선택적 모병제는 현행 국민개병제를 유지하면서 병역 대상자가 ‘징집병’과 ‘전투부사관 모병’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이 후보는 “우리 군은 여전히 30만 명에 달하는 징집병에 의존하고 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미래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병역 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며 “임기 내에 징집병 규모를 15만 명으로 축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세번째로 병사의 월급을 최저임금제에 맞춰 급여를 단계적으로 인상해서 2027년에는 병사 월급 200만 원 이상을 보장하고, 네번째는 국가경제력 수준과 청년의 눈높이에 맞춰서 현재의 다인실 병영생활관을 2~4인의 소인실로 바꾸는 등 장병 복무 여건의 획기적 개선이다. 이를 위해 다섯 번째로 대통령 직속의 ‘국방혁신기구’를 설치하겠다고 공약을 제시했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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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우크라이나 사태와 제20대 대통령 선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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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⑨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우리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가 종전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티그라이 및 오로모 지역 반군세력과 정부군의 무력충돌 등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잘알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뒤 정부는 집요하게 종전선언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따라 우려했던 것처럼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 간 논의가 시작되자 북한은 호기를 만난 듯 연일 유엔군사령부(유엔사) 해체라는 해묵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지난달 유엔총회 4위원회에서 “미국이 한국전쟁 당시 평화 유지를 구실로 유엔의 이름을 악용해 유엔사를 불법으로 설립했고, 유엔사를 유지해 한국에 대한 미군 점령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지난 23일 관련당국 등에 따르면 한미간 종전선언 문안 작성 협의가 굉장히 많이 조율되어 '군사적 긴장 해소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해 종전을 선언한다'는 내용이 적시될 것이라고 전해졌다. 향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발판으로 종전에 나선다는 목적이 기록된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미국의 한 언론매체는 유엔군사령부 해체 등 종전선언이 현 정전협정 체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는 방향으로 조율 중이라고도 보도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여당의 핵심 인사들이 ‘남북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유엔사’ 또는 ‘족보 없는 유엔사’ 등으로 노골적으로 북한을 옹호하는 것이다. 유엔사의 법적 근거를 부정하는 것은 안보 자해 행위다. 유엔사는 우리나라 안보를 담보한 대북 억제력의 근간이다. 6·25남침전쟁 발발 직후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해 설치된 조직으로, 군사정전위원회 및 중립국감독위원회 운영, 비무장지대(DMZ) 내 경계초소 운영, 북한과의 장성급 회담 등 정전체제를 유지·관리하고 있다. 유엔사는 한미 연합군과 일본 자마·요코스카·후텐마 등 주일 미군의 핵심 시설 7곳의 유엔사 후방 기지를 이어주는 법적·제도적 기반이다. 이들 유엔사 후방 기지들은 일본 정부의 사전 양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지원 시설로, 한반도 유사시 유용한 군사 자산들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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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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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⑧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주류인 에리트레아는 2002년 대부분의 교회를 폐쇄한 후 수십 년 동안 기독교인들을 체포와 구금을 하여 고문하는 등 박해했다. 따라서 일부 에리트레아 기독교인들은 국경을 넘어 에티오피아로 도망쳐 난민 캠프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았지만 티그레이에서 일어난 분쟁으로 또다시 테러가 계속되는 위험에 빠졌다고 영국 CT(크리스천투데이)는 전했다. 인권 운동가이자 릴리즈 파트너인 아스멜라시 박사는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이 나라에서 계속해서 성장해 왔다”라며 “기독교인들은 에리트레아에서 가장 박해를 받아온 집단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집결을 멈추지 않고 예배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통제 밖”이라고 말했다. 아스멜라시 박사는 에리트레아 감옥에 적어도 기독교인 180여명이 구금됐고 일부는 지난해 풀려났는데, 아마도 과밀한 교도소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여름에 수십 명이 다시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아스멜라시 박사가 “정부의 정책에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라며 “정부는 이 기독교인들을 체포한다고 해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라고 말했듯이 종전선언 후에도 바드메 마을 문제와 티그라이, 오로모 지역 반군세력과 정부군의 무력충돌 및 종교박해 등의 분쟁은 지속되고 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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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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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⑦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에티오피아 종전선언을 이끌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는 2019년 12월 1일부로 인민혁명 민주전선(TPLF)의 31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번영당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20년 11월에 다민족 국가인 에티오피아는 북부 티그라이 지역에서 군 캠프가 피습을 당하자 6개월 비상상태 선포와 함께 군 병력을 투입하며 전쟁이 또 시작되었다. 티그라이 분쟁에 투입한 에티오피아군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사항이 알려져 분쟁은 더 가열되었다. 이로 인해 악숨 공항이 파괴되는 등 추가적인 타격을 입었고 티그라이 분쟁이 인접한 에리트레아까지 번지는 양상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영국의 릴리즈 인터내셔널은 성직자들이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에서 전투에 합류한 에리트레아 군부의 표적이 되어 살해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정교회 소식통은 신성한 도시 악숨에서 수백 명의 민간인이 학살되는 과정에서 최소 78명의 성직자들이 에리트레아 군에 의해 사망했다고 전했다. 전 에리트레아 기독교인 수감자였지만 현재는 종교자유 옹호자가 된 헬렌 베르헤인은 릴리즈 인터내셔널에 “에리트레아 군이 많은 성직자를 죽이고 아내를 강간하고 있다”라며 “군인들은 어떤 성직자들은 십자가를 잡고 있으면 그들의 손을 베거나 성직자들에게 모자를 벗으라고 했을 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총살한다”고 밝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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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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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후 1944년 영국과 에티오피아의 협정 체결로 이탈리아로부터 완전 해방된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를 자국 연방영토로 편입하고 급기야 1962년에는 1개 주로 강제 합병하였으나, 이에 대한 에리트레아의 분리 항쟁이 지속되었다. 결국 셀라시에 황제 시절, 에티오피아에 무력으로 합병되었던 에리트레아가 끈질긴 분쟁을 통해 1993년에 분리 ‧ 독립하였다. 하지만 에리트레아는 분리 ‧ 독립 과정에서 바드메 마을을 에리트레아에 귀속시키고자 하였으나 에티오피아는 이에 반발하였다. 결국 바드메 마을 소유권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에리트레아 분리가 완료되었으며,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이후 1997년, 양국 간 관계가 악화되었던 해당 지역의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전쟁 수준으로 갈등이 확대되었다. 게다가 2000년에 두 국가는 평화협정을 잠시 체결하였지만 바드메 마을의 에리트레아 귀속 문제를 둘러싼 의견 대립은 해소되지 않아 양국의 외교관계는 수년간 단절되어 있었다. 2018년은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머드 알리 신임 총리가 에리트레아를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하는 등 대화 프로세스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해이다. 이에 따라 양 국가는 “평화우호공동선언”을 골자로 한 종전협정인 평화협정 체결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2000년의 실패와는 달리 2018년 평화협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국내정치적 지지와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되기도 하였으나, 아비 총리의 의지와 결단력이 부재했더라면 협정 체결 및 후속조치가 신속히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미완의 종전선언 후에도 양국의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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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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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에티오피아는 전설 속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후예들이 3000년을 이어온 나라이고 아프리카에서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이지만 1882년 이탈리아가 현재 에리트레아 지역에 현지관리청을 설치하며 식민지 진출을 개시한 후, 에티오피아 요하네스 황제를 전사시키고 에리트레아 지역을 사실상 식민지화시켰다. 결국 에티오피아 메넬릭 2세는 1889년에 이탈리아와 ‘우치알리 조약’을 체결하여 에리트레아를 이탈리아에 양도하는 대신 에티오피아 영토에 대한 황제의 주권 인정,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차관 공여 및 군사지원 등을 확보하고 수도를 아디스아바바로 천도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암하라어와 이탈리아어 조약 문서에 각기 다른 조항을 넣어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메넬릭 2세가 에티오피아를 사실상 이탈리아의 보호령으로 인정하는 조약에 서명하도록 유인했다. 이를 확인한 메넬릭 2세가 1895년에 ‘우치알리 조약’ 철회를 결정하자, 이탈리아는 이를 구실삼아 에티오피아 침공을 했다. 침략을 당한 메넬릭 2세는 1896.3월에 아디스아바바 북쪽에 소재한 아드와(Adwa)에서 이탈리아를 격퇴함으로써 에티오피아의 독립을 유지하였으나,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로부터 분리되어 이탈리아의 식민지화로 굳어졌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35년 10월에는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다시 침공하여 강제 점령했고 이 과정에서 겨자 독가스 사용 등으로 에티오피아인 27만 명이 희생도 당했다. 그러나 실제로 강점 기간 내내 이탈리아 군대는 에티오피아 전역을 장악하지 못하고 저항 세력의 게릴라전에 시달렸으며, 일부 지역은 영국군 주도 연합군이 에티오피아로 진격할 때까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지지하는 에티오피아 저항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1941년 영국은 이탈리아를 공격하여 에리트레아를 접수하였으며, 그해 5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입성함에 따라 6년간의 이탈리아의 강제 점령이 종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7년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를 포함한 연합국 진영 간의 '평화 협정'에서 이탈리아의 강점은 법률적으로 그 합법성이 부정되었고, 오히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에 전쟁 배상금을 지급해야만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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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다른 위기를 불러와...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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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와...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90년 독일의 통일, 예멘의 통합,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리아 및 중국과 대만의 분쟁 등 지구상의 분단된 국가는 통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2018년 종전선언을 했던 에티오피아는 87개 종족에 290개 언어, 군병력 12만명(10만은 육군)으로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민주공화국이다. 북쪽에 에리트레아, 동북쪽에 지부티, 동쪽에 소말리아, 남쪽에 케냐, 서남쪽에 남수단, 서북쪽에 수단과 국경을 접하였다. 또한 2018년에는 인구 1억 명을 돌파해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내륙국이다. 국가별 인구 순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약 2억)에 이은 아프리카 2위의 대국이다. 이집트(약 1억)나 콩고민주공화국(약 8400만), 탄자니아(약 5900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약 5700만)보다 인구가 많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국가로도 유명하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중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이탈리아에게 패배하여 5년 정도 강점된 적이 있다. 이후 영국군 주도 연합군에 의해 이탈리아가 패배하면서 1941년 해방되었다. 그래도 강점되던 기간이 짧아 완전히 식민화됐다고 보기도 어렵고,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크게 비교되기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다. 반면에 에리트리아는 현재 인구 350만, 9개 종족, 2개 언어, 군병력 4만6000명으로 1889년 에티오피아로부터 양도받은 이탈리아가 식민지로 지배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는 1944년 영국과 에티오피아 협정 체결로 에티오피아와 함께 이탈리아로부터 완전 해방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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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와...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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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와...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어ㅂ연구소장] 에티오피아에 7년간의 극심한 가뭄이 들자 1974년 쿠테타가 일어나 공산독재정권이 들어섰다. 공산주의 쿠데타 주동자 ‘멩기스투’는 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를 폐위시켰고, 이 고마운 ‘강뉴부대’ 용사들은 공산주의와 싸웠다는 이유로 사회의 최빈곤층으로 전락하여 지금까지도 어려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반면에 6.25남침전쟁에서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혈맹의 황제와 용사들이 17년간 지속된 멩기스투 공산독재정권에 의하여 허망하게 사라지는 동안 우리는 부끄럽게도 너무나도 긴 세월을 그들에 대해서 잊고 살아왔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방문과 함께 최정예 황실근위대였던 ‘강뉴부대’의 6.25남침전쟁에 참전에 대한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많은 NGO 및 보훈단체들이 모금활동을 통해 지원을 했으며, 최근에는 코로나의 위기 속에 마스크를 보내주기도 했다 한편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던 1990년 소련의 지원이 중단되자 사회주의 멩기스투 공산독재정권은 붕괴의 위기에 처했다. 이에 시장경제제도를 도입하는 등 과감한 개혁정책을 단행함과 동시에 1990년3월 에티오피아노동당을 에티오피아민주통일당(EDUP)으로 고치고, 비(非)마르크스주의자도 당원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였다. 허나 1991년 2월 정부군과 반군세력 사이의 평화협상이 결렬되고 무력충돌이 격화되어 4월에는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이 주요도시를 장악하였으며, 5월 멩기스투가 국외로 탈출한 가운데 반군 세력이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였다. 이로써 1974년 군사쿠데타 이후 17년간 지속된 사회주의 공산독재정권이 붕괴되고 다당제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신정권이 수립되었다. 1991년 7월 반군세력은 국민평의회를 구성하고, EPRDF의 지도자 멜레스 제나위(MelesZenawi)를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하지만 각 지역에 할거하고 있는 반군세력들간의 갈등과 인종간의 대립으로 신정권의 권력기반은 취약한 편이다. 특히 미완의 종전선언에 따른 에리트레아의 잔존한 항쟁 및 오로모 지역 반군세력과 정부군의 무력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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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와...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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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섣부른 종전선언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와...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미 종전선언을 했던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한 빈국(貧國)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6.25남침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오늘날과 달리 1950년대에 우리의 국민소득이 100달러 미만일 때 이미 3000달러 수준의 부국(富國)이었다. 한창 전쟁 중이었던 1951년,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 6000명의 최정예 용사들을’ 파병해준 나라이기도 했다. 에티오피아는 전설 속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후예들이 삼천 년을 이어온 나라였지만 1935년 이탈리아의 침공으로 국민 27만명이 희생되고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 1세는 영국으로 망명했었다. 그 후에도 투쟁은 계속됐고, 1941년 영국군의 도움으로 이탈리아군을 몰아냈다. 다시 집권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을 겪는 나라가 없도록 집단안보를 주창하는 평화주의자였다.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여 유엔의 파병 요청을 받자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라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에티오피아 제국 최정예 용사인 황실근위대로 ‘강뉴부대’를 편성해 파병하였다. 대한민국으로 파병온 그들의 이름인 ‘강뉴(Kagnew)’는 암하라어로 ‘평정(平定)’과 ‘초전박살(初戰撲殺)’이라는 뜻이다. 1951년 7월 한국으로 온 ‘강뉴부대’는 미군 7사단에 배치되어 그해 9월에 벌어진 ‘적근산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이후 한국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였던 ‘철의 삼각지 전투’에 투입되어 ‘강뉴’ 이름의 의미처럼 단 한 번도 고지를 적에게 넘겨준 적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뽐내며 파병 동안 무려 253전 253승이라는 무패의 신화를 이루었다. ‘강뉴부대’ 용사의 활약은 전쟁터에서 그치지 않았다. 1953년 이후 그들은 우리의 재건을 위하여 월급을 모아서 서울 동두천에 ‘보화 고아원’을 설립하여 전쟁고아들을 1956년까지 보살피며 그야말로 진정한 영웅의 상(像)을 보여주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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