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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8] 아스팔트 수방사에서 비포장도로 무적태풍부대로 가다(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상징명칭이 ‘무적태풍부대’인 28보병사단은 6.25남침전쟁 직후인 1953년 11월18일 충남 논산에서 창설되었으며, 경례구호는 '태풍'이다. 부대마크는 태풍의 눈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폭풍우를 휘몰아치며 북진하는 태풍의 위용을 형상화한 것으로 전투에 임할때에는 북진의 교두보로서 적의 심장부를 일격에 무너뜨리겠다는 부대원의 결의를 담고 있다. 부대마크의 좌회전은 "영원불멸"을 상징하며, 바깥원은 "견적필살" "천하무적"의 총구를, 청색 바탕은 "정의"와 "평화"를, 백색은 "자유"와 "백의민족"을 의미한다. 창설 이후 강원도 사창리, 포천, 양평 등 4차례의 이동있었고 1966년 현 지역에 배치되어 중서부 전선의 최전방 GOP경계를 담당하고 있다. 부대가 위치한 연천군은 대표적인 안보관광지이다. 6·25남침전쟁 후 대부분이 수복지역으로 북쪽에서 흘러오는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한탄강 유원지와 전곡 선사시대 유적지, 재인폭포, 감악산 비룡폭포 및 GOP지역 필승교 옆의 태풍전망대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한 고려 태조와 혜종·성종·현종·문종·원종(충경왕)·충렬왕·공민왕과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 외 15인에게 제사를 지냈던 숭의전이 있고, 태풍전망대에서 보이는 비무무장지대에는 6·25남침전쟁시 치열한 전투로 유명한 김만술 소위의 베티고지도 있어 역사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헌데 부대창설 후 지난 69년 동안 44회에 걸친 대간첩작전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적 사살 63명, 생포 8명, 장비 노획 1,308점이라는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던 28보병사단은 국방개혁 2.0으로 2025년에 해체될 예정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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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5-0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7]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사짐을 모두 싣고 운전석 옆에 어린 아들과 부인과 함께 앉아 남태령 수방사 아파트에서 새 부임지인 28사단으로 출발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때 당시 직속상관이었던 작전과장 차철이 중령(육사32기)은 필자에게 “니가 전출을 가는데 이렇게 많은 장교와 부사관들이 새벽에 나와 이별을 아쉬워하며 환송해주는 것은 김 소령의 수방사 근무가 대단히 성공적이고 잘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어깨를 두드려두었다. 그런데 환송나온 선후배중에 당시 경비과장을 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가 필자에게 다가와 한가지 에피소드를 전해주겠다며 “김희철, 너는 몰랐지만 내가 추천을 해서 28사단으로 배치된 것이니 가서 잘해라”라고 말했다. 필자가 배치받을 부대의 전임자 신현돈(육사35기, 전 1군사령관) 사단작전보좌관이 대대장으로 곧 취임하게 되어 후임자를 물색하다가 육사동기인 장 선배의 추천에 따라 야전군 사령부 인사처 보임과에 요청하여 필자의 보직이 결정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덕택에 기계화부대에서 경력을 쌓을 수있는 기회를 놓쳤지만 장 선배의 호의와 환송나온 동료들에게 감사했다. 또한 필자의 후임자이며 든든한 신뢰와 존경을 갖게 만든 신원식 동기가 육군대학 교관으로 재직전에 28사단 작전장교로 근무하였고, 당시 수방사 작전과장인 차 중령이 신 동기의 상관인 작전보좌관으로 함께 있었다고 했다. 따라서 괄목상대(刮目相對)의 놀라움을 던져준 신 동기와 필자는 수방사와 28사단에서 작전관련 보직을 서로 맞교대하는 격이 된 묘한 인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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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4-2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6]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출중한 업무 능력을 견지한 자랑스런 신원식 동기가 후임자로 내정되었을 때, 필자는 다음 보직이 걱정되어 새로 부임할 야전군 사령부 인사처 보임장교로 근무하던 동기에게 전화를 했다. 생도시절 2년동안 같은 중대에서 각별하게 지냈던 그 동기는 “걱정하지 말라며 수방사 작전장교로 고생했으니 당시에 대부분 장교들이 선호하던 기계화사단으로 보직을 검토 하겠다”고 약속했다. 허나 얼마뒤에 그 동기는 다시 필자에게 “보직을 검토했는데 전방 GOP부대에 공석이 생겨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배치되었으니 양해해 달라며 선호부대인 기계화부대 배치가 불가하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앞으로 예상되는 전장 양상이 단순한 보병부대가 아닌 탱크와 장갑차를 운용하여 속도와 충격효과를 중요시한 기동전 및 미사일 등을 활용한 화력전이다. 결국 필자는 미래 전장에서의 주력 부대인 기계화부대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된다는 희망과 모두들 선호했던 부대 배치의 기대감을 상실하고 초급장교 시절에 근무했던 GOP부대로 다시 배치되어 아쉬웠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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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4-27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5]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전후방 각지의 부대에서는 바쁜 업무로 교범을 가까이하며 신교리를 연구하는 것이 일부 제한되어 육군대학 교관직을 경험한 장교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왜냐면 그들은 장교들을 가르치기 위해 최신 교리를 연구하여 야전에서 근무하는 장교들보다 군사 지식을 훨씬 더 많이 쌓았기 때문이다. 수방사령관 이하 주요 간부들은 육군대학에서 최우수교관으로 선발되었던 신원식 소령에 대한 기대가 많았고, 그는 짧은 기간에 충분하게 능력을 발휘하며 인정받았다. 마침 합동근무 기간중에 필자가 새롭게 부여받은 업무를 신 소령에게 인계했는데, 그는 신교리에 따른 논리적이고 출중한 필력으로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했고 그 반응이 대단히 좋았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필자를 힘들게 만들었던 00과장(당시 상황실장 겸 작전보좌관)도 그의 신교리에 입각한 논리적인 내용의 보고서와 자신감과 소신이 차고 넘치며 거침없는 언변에 반론 제기를 못하고 꼬리를 내리며 인정했다. 육군사관학교 시절의 ‘몽사과(夢史科)’로 불리던 ‘전사과’ 수업시간 중 잠에 쉽게 빠지던 대표적인 생도였던 신원식 동기는 “선비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이라네...”라며 사자성어 괄목상대(刮目相對)를 만들게 한 여몽처럼 성장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생도시절 그는 주중에 밤낮없이 책을 읽었고, 이것도 부족해서 타생도들이 휴일 외출하여 여가를 즐기는 시간에도 도서관에 홀로 남아 계속 독서하며 키운 잠재력과 육군대학에서 충분한 학습으로 필자가 넘볼 수 없는 출중한 인물이 되었다. 곧 전방부대로 전출 가야하는 필자는 합동근무 기간 후임자 신원식 동기의 탁월한 업무 능력 과 소신과 자신감 넘치는 달변에 감복했고, 괄목상대의 놀라움은 오히려 든든한 신뢰를 갖게 했다. 전출가는 날 필자는 그에게 “앞으로 어느 곳에 있던지 언제라도 신원식 동기의 팬이 되고 편이 되어 지지하겠다”며 존경을 표했고 지금도 두터운 우정을 나누고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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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4-2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4]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통상적으로 군의 간부인 장교들은 일정 기간 지나면 보직을 옮겨야 한다. 일명 계획 인사로 당시에는 전방 생활을 어느 정도 근무하면 후방으로 가야하고, 후방 근무 2년이면 다시 전방으로 가서 근무해야한다. 전방으로 전출가기 몇 개월 전에 필자의 후임자로 이미 육군대학 교관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 신원식 동기가 거론되고 있었다. 하지만 생도시절 신원식 동기의 추억은 ‘잠원식’이었다는 것만 기억되었다. 사관학교는 일반 대학과 달리 군 특성에 부합된 ‘전사(戰史)’, 병기(兵器)‘ 등의 특별한 전공과목이 있었고, 제시된 사진과 같이 신원식 동기는 “백번을 다시 태어나도 ‘육사인’이고 싶고, 백번을 다시 생도생활을 해도 ‘전사과인’이고 싶다”고 육사 졸업앨범에 기록을 남겼다. 헌데 유별나게도 그 전공학과의 수업 시간에는 생도들이 많이 졸아서 ‘전사과’는 ‘몽사과(夢史科)’로 불렸고, 신 동기는 대표적으로 수업시간 중 잠에 쉽게 빠지던 생도로 일명 ‘잠원식’이라고도 호칭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어마무시한 독서량으로 주중에는 밤낮없이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것도 부족해서 휴일에 타생도들이 외출하여 여가를 즐기는 시간에도 도서관에 홀로 남아 계속 독서를 했다는 소문을 전해들었다. 그 덕에 수업시간에는 비록 졸았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육사를 졸업했고, 이후 전후방 각지에서 다이아몬드 이빨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논리적인 브리핑을 잘하는 장교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 덕분에 육군대학 교관중에 최우수교관으로 선발도 되었다. 훗날 수방사령관을 역임했던 육사동기 신소령은 육군대학 교관 보직을 마치고 이동하여 필자의 전방부대 전출을 앞두고 수방사 작전과 사무실에서 한달 동안 합동근무를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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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4-2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3]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괄목상대(刮目相對)란 사자성어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 상대를 대(對)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학식이나 업적이 크게 진보하고 발전한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촉·위·오나라 삼국이 서로 대립하고 있을 당시 오나라 손권의 부하 중에 병졸에서 전쟁의 공으로 장군까지 된 여몽있었는데 무식했다. 그러나 손권은 그가 이론적인 병법까지 알고 능통해지기를 원해서 학문을 깨우치도록 충고했다. 이때부터 그는 전장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공부했다. 얼마 후 뛰어난 학식을 가진 노숙이 여몽과 의논할 일이 있어 찾아갔다. 노숙은 여몽과 막역한 친구였고 무식했지만 전투를 잘하던 여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의 박식함에 깜짝 놀라면서 “이 사람 언제 그렇게 공부했나? 이제 오나라의 여몽(呂蒙)이 아닐세...”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선비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이라네...”라고 대답하여 ‘괄목상대(刮目相對)’의 유래가 되었고, 훗날 탁월해진 여몽은 불세출의 영웅인 촉나라 관우와 싸워 승리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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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4-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2]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생뚱맞고 갑작스런 모임 마무리로 00경비대장은 “군생활을 먼저 경험한 선배로 후배들에게 지금부터는 군의 중견 간부로 현직책에서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대통령과 국가에 대해 충성하는 것이다”라며 “혹시 업무 중에 애로점이나 도움이 필요하면 배석한 선배나 본인에게 연락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당부하며 생뚱맞은 호출에 당황했던 모임을 끝냈다. 하림각 현관에서 그는 안내한 선배와 함께 대기중이던 전용 승용차에 탑승하고 출발하자 얼큰하게 상기된 얼굴의 우리는 “충성!”하고 승용차를 향해 경례를 했다. 그런데 승용차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어떤 동기생이 “부대업무에 바빠 죽겠는데 오늘 우리를 왜 부른 거야?”라며 “밥 사주거나 얻어 먹고도 기분 나쁜 경우가 있는데, 이게 후배를 사랑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위세 과시인지? 의문이네...”라며 불평하는 말을 툭 던졌다. 그 동기가 무심코 내뱉은 말을 듣는 순간, 필자가 느꼈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접부대에서 근무하는 후배들을 불러 격려의 자리를 마련해준 것에 대해 매우 감격했고 감사했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충격을 받았다. 옛날 이야기 중에 “사자와 황소가 서로 사랑을 했는데 사자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슴을, 항소는 즐겨 먹던 부드럽고 맛있는 풀을 서로에게 선물했지만 불편하여 결국 이별했다”는 우화가 있다.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으니라”라고 가르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의미가 귓가에 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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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4-1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1]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우리를 호출했던 00경비대 인사과장인 선배의 안내를 받으며 방에 들어온 00경비대장은 다부지고 건장하며 부리부리한 눈이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그를 주목했을 때 생뚱맞은 갑작스런 호출에 생소한 생면부지의 얼굴들이 겸연쩍은지 대통령을 근접에서 모시는 선배로서 수도권의 중요부서에서 중책을 수행하는 후배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각부대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려고 자리를 마련했다며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때 하림각의 최고급 요리가 코스별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반주도 곁들어 한잔씩하게 됐다. 그는 잔을 들면서 “대통령님을 잘보좌하고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건배를 제의하고는 음식을 들었다. 필자는 대통령을 측근에서 경호하고 부대관리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접부대에서 근무하는 후배들을 불러 격려의 자리를 마련해준 것에 대해 매우 감격했고 감사했다. 게다가 한 동기는 00경비대장에게 “바쁘신 가운데에도 우리 동기들을 배려하여 이렇게 고급요리로 직접 격려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너스레도 떨었다. 술이 한순배씩 돌자 생도시절과 야전 부대생활의 에피소드로 함박 웃음도 나누며 대화가 계속되었다. 하림각식당 고급 코스요리의 마지막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렸지만 특별한 이슈는 없었다. 단지 선배의 후배 사랑 마음 뿐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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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0]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대기하던 하림각 특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생도시절의 추억과 야전부대 근무 경험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초청했던 00경비대장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7년 선배로 하나회에 소속이었고 곧 대령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김영삼 정권에 의해 하나회가 숙청되기 전인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하나회가 득세하고 있었다. 특히 수방사령부 및 청와대 경비부대에는 하나회 출신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위세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아스팔트군인으로 대표되었던 수방사 요원들은 무소불위의 위세 때문에 일부 병폐도 잔존했다. 그러나 하나회 요원들은 진급이 보장되고 그 조직간의 활동비지원 등으로 여유롭고 당당하게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었다. 심지어 비하나회 상관이 잘못된 지시를 할 때에도 오히려 소신과 자신있게 대응하는 등으로 멋있게 보여 부하들의 존경을 받는 장교도 있었다. 또한 김영삼 정권의 하나회 숙청 4년전이자 필자가 육군대학에서 교육받을 때에 벌어진 군내의 사조직 병폐 소동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필자의 동기회는 이 소동을 통해 오히려 동기애를 다지는 계기도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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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4-1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09]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당시 필자는 2년 가까운 수방사 작전과 근무에 어느 정도 숙달이 되었으나, 급변하는 주변 상황은 늘 야근을 불러왔고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갔다. 교통이 편한 수도 서울에 근무했지만 국방부, 합참 및 인근 부대의 동기들을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처럼 힘들었다. 그날도 새벽에 출근해 야간 근무자의 상황보고 내용을 점검하고 아침 상황회의에 참석하자, 돌출하듯 갑작스레 추가로 부여된 임무가 생겼다. 회의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추가로 식별된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전화벨이 힘차게 울렸다. 청와대 영내 00경비대에서 인사과장으로 근무하는 선배의 전화였다. “김희철, 오늘 저녁 무조건 시간 비워두어... 이따가 다시 전화할테니, 그때 자세한 이야기 해줄께...”하고는 그도 아침 업무로 매우 바빴는지 필자의 대답도 듣기 전에 바로 끊었다. 오후가 되자 그 전화는 필자만이 아니라 교육과 근무하는 동기도 받았다고 전해왔다. 다시 걸어온 선배의 전화에는 자신의 부대장이 우리 둘을 갑자기 호출하여 저녁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격려하겠다는 것이었다. “사령부에 동기들이 많은 데, 왜? 우리 둘만 호출한 것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며 “서로 뭐 잘못한 것이 있냐?”고 물었지만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아무튼 과장에게 보고하고 호출한 장소로 같이 가기로 했다. 생뚱맞고 갑작스런 호출로 출발은 했지만 야근시에 할 업무를 미루고 나와 저녁후에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은 걱정이 되었지만 청와대를 지나 자하문을 통과하여 으리으리한 식당 하림각에 도착했다. 하림각 정문에 나와 있던 전화 연락을 한 선배의 안내를 받아 약속된 방에 들어가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연합사 등에 근무하는 동기들이었다. 육군대학에서 같은 기수로 교육받았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임관후 10여년만에 처음 만나보는 동기들이라 너무도 반가운 해후의 시간이었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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