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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3)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하지만 영관영어반에서 만난 선배중에는 광주 출신의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임을 부정하고 중국인 공산주의자로 행세를 한 정율성처럼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도 있었다. 정율성이 북한과 중국에서 보였던 불손하고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지만 화려한 작곡가로서의 삶처럼 그 선배도 생도시절부터 뛰어난 지혜와 지휘생도 활약으로 후배 생도들의 존경심을 받아왔고 필자에게는 목발 및 지팡이를 짚고 있다고 해서 DJ라는 별칭을 즐겨 불러 주었다. 또한 그는 명석한 지능으로 영어 수업도 우수한 성적을 계속 유지했다. 마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정율성처럼 그의 모습은 수업시간에 뛰어난 영어 회화능력으로 교관들의 칭찬을 받아 학생장교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일과후 독신자 숙소에서도 타 선배들처럼 잦은 출타를 하거나 만취되는 일도 없이 착실한 학생장교로 돋보였고 필자는 친절하게 학업을 도와주는 그가 고맙고 존경스럽기까지 했고 대령으로 일차 진급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영관영어반 과정이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접어들 무렵에 그는 매우 힘든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동생이 사업을 하는 데 급전이 필요하고 진행상 곧 회수 가능해 일주일 뒤면 갚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필자는 현금이 있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필자도 교통사고 후에 많은 출혈이 있었고 저축한 돈도 별로 없어 죄송했다. 선배의 계속 독촉에 못이겨 현재 들고 있는 적금을 해약하면 요구한 금액의 반정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거라도 빨리 주면 바로 해결하고 일주일 뒤에 갚겠다고 다짐했다. 하는 수 없이 통장을 들고 은행을 찾아 적금을 해약한 후에 그 선배에게 전달했다. 물론 일주일 뒤에 갚는다고 해서 가족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선배에게 갚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일단 돈을 주고나니 빌려준 사람이 을이 되어 있었고, 그는 여유롭게 생활하며 빌린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결국 교육 종료 직전에 그 선배에게 아직까지도 가족에게 말을 안했으니 빌린 돈을 갚아주어야 통장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독촉했다. 그 선배는 다음주로 다시 미루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던졌는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생도시절부터 탁월한 모습으로 존경을 했던 인연은 악연으로 끝났다. 가짜 한국인 정율성처럼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그의 언행에 현혹된 필자가 부끄러웠고, 이후에는 잘 아는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금전 문제가 생길 때에는 여유가 있어 대출이 아닌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아니면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것이 돈도 잃지 않고 더구나 사람도 더 잃지 않는 길이라는 교훈을 영관영어반 교육과정에서 얻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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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2)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㉗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율성이 6·25남침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군가도 작곡했지만 인민군과 함께 서울에 내려와 점령군으로서 자유 대한민국을 유린하고 1·4 후퇴 때는 중공군과 함께 재차 서울에 내려와 조선궁정악보를 약탈해간 매국노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광주 출신이지만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 공산당원으로 변절한 자를 추모하며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추진했던 정율성 공원 조성사업은 동족상잔의 비국을 겪은 자유대한민국에서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현재도 핵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하는 북한의 군사도발을 막으려면 견고한 한미동맹이 절실한 실정이다. 필자가 다녔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북한의 재 남침에 대비해 합동참모본부의 주요부서에 근무하며 군사전략을 담당했던 용삼남(육사33기) 선배로부터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용 선배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재활치료에 전념했던 필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기도 했다. 그는 생도시절 럭비부 선수 생활을 했는데 운동중에 부상을 입어 척추가 심하게 손상되어 의사들이 판단할 때에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였으나 강한 의지로 철저하게 운동을 하여 척추 주변 근육을 강화시킴으로써 전혀 불편함 없이 더 건강하게 보였다. 예를 들면 합참 근무시에 매일 새벽에 가장 일찍 출근하여 책상 및 의자 정리 및 청소를 한 뒤에 책상위에 올라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300개씩 하여 근육을 강화시켰다. 그가 원주에 있는 부대에 근무할 때에는 고속도로에서 시비를 걸던 조폭을 한방의 주먹으로 넉아웃시킬 정도로 강해졌다는 여담도 남겼다. 건강한 체력은 건전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업무에 질도 고양시킬 수 있다. 건강의 이상을 극복하며 지칠줄 모르는 용 선배의 체력에 상관들은 힘든 업무도 쉽게 맡길 수 있었고 업무상 만나는 미군들과도 쉽게 친해져 한미 연합작전과 군사전략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일과후에는 독신자 숙소에서 우리의 전통악기인 대금을 연주하며 하루를 마감하여 건강상 어려운 위기를 적극 극복하는 강한 의지와 동시에 예술감까지 가진 문무를 겸비한 군인으로 끝없는 존경심을 불러 일으켜 앞으로의 군생활의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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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1)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㉖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10월2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에 세워져 있던 중국 음악가 ‘정율성 동상’이 기단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정율성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에 귀화한 음악가로, 북한·중공군 군가를 작곡한 인물인데, 광주시가 기념사업을 추진해 논란을 불렀다. 정율성 동상은 중국 청년단체가 제작해 광주 지역 청년단체에 기증한 것으로 2008년 광주 남구 양림동에 조성된 정율성 거리 입구에 세워졌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이날 재물손괴 혐의로 보수단체 회원 윤모(5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전날(1일) 오후 정율성 흉상 목 부분에 밧줄을 묶고 2.5톤 승합차에 이를 연결한 뒤 쓰러뜨리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했다. 정율성 흉상은 위의 사진처럼 약 1m 높이의 기단에서 완전히 분리된 채 기단 옆 땅바닥에 누운 모습으로 발견됐다. 윤씨는 범행 직후 한 유튜브 채널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중단하라고 광주시에 요구했는데 이를 이를 수용하지 않아 강제로 (흉상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경찰에서 “내가 그랬다. 3일 오전에 경찰서로 가서 조사받겠다”며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유족 대표인 고(故)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전 광주대성여고 교장은 2일 “공산주의자 정율성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광주시가 혈세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공원을 짓는다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무조치로 일관하고 있다”며 “공원 철폐를 위한 릴레이 피켓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다. 김오복 전 교장은 “북·중공의 군가를 짓는 등 한국 침략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한 정율성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강기정 광주시장은 아무 중단 조치도 없이 정율성 공원조치를 강행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율성 공원 문제 제기에 대해 철지난 이념몰이, 색깔론, 민간외교라는 억지 논리만 되뇌고 있다”면서 “지난 한 달여 동안 보훈단체들의 집회를 관제 데모로 깎아내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과 보훈가족을 모독하고,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을 철폐하거나 대안을 만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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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0)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최근 국방부장관으로 지명된 신원식 의원(육사 37기)은 레닌에게 선물받은 권총으로 독립군을 직접 사살한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의 동상 이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영관영어반’ 과정에 다닐 즈음에는 홍범도의 존재 조차도 몰랐다. 청산리 대첩 이후인 1921년,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와 그 일당들에 의한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들은 몰살당하며 해체됐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았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소련군 복장의 공산주의자를 추모한다는 것은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인민군과 중국인민군 군가와 마오쩌뚱 찬양가 등을 수십 곡 만들며 뼈속까지 어용 공산주의자인 정율성 작곡가의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관생도를 포함한 건전한 국민들의 정체성과 대적관을 현혹시키는 잘못된 처사이다. 필자가 다니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확고한 대적관을 바탕으로 견고한 한미동맹을 위한 교육이 계속되었다. 이 교육을 통해 숙달한 영어회화 능력으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 및 훈련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을 마치면 다음 보직은 연합사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 다음 보직이 충북 충용부대로 정해져 있었고, 다른 교육생들은 연합사령부 또는 예하 부대 및 연합작전/훈련을 주로 시행하는 합동참모본부로 분류되었다. 마침 합참의 중요부서에서 근무했던 선배도 함께 교육을 받고 있어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한명은 육사 33기 용삼남 중령이었다. 과거 승리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양태수, 나대일, 김형배 선배 등을 포함하여 많은 선배 동료들을 다시 만나는 해후의 시간도 만끽했으나 용 선배는 6개월 교육기간 중에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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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89)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㉔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75주년을 맞은 국군의 날은 6·25남침전쟁 당시 우리 육군의 38선 돌파를 기념하는 날이다. 추석 연휴 때문에 닷새 앞당겨 지난 26일 열린 올해 국군의 날 기념행사는 그동안 소홀히 했다가 10년 만에 대대적인 도심 시가행진으로 주목받았다. 유사시 북한 지휘부의 지하 벙커를 파괴할 고위력 현무 미사일과 한국형 사드로 불리는 장거리 지대공유도미사일, 엘샘(L-SAM) 같은 첨단무기가 대거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 위협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하며, 우리 군의 태동 시점은 1945년 광복 이후라고 언급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광복 후 제대로 된 무기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동한 우리 군은 이제는 적에게는 두려움을 안겨 주고, 국민에게는 신뢰받는 세계 속의 강군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등 역사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군의 뿌리를 독립군에서 찾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인식을 사실상 반박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국군의 날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급격하게 무너진 북한군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동부전선의 우리 육군 3사단이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한 10월1일을 기념하는 뜻에서 1956년 제정됐다. 하지만 체제 경쟁이 끝나고 남북정상회담 등이 열린 2000년대 이후론 광복군 창설일인 9월17일로 바꾸자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우리나라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헌법에 따라 군의 뿌리도 임시정부 군대인 광복군으로 정립하는 게 맞다고 민주당 등 일부는 주장하지만 확고한 대적관을 강조해온 현 정부는 선을 긋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싸웠던 광복군도 의미는 있지만, 지금 우리 군은 북한과 싸우는 군대라며 국군의 확고한 정체성을 강조했고, 여야의 인식 차는 국군의 날 메시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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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88)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㉓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6개월 기간의 ‘영관영어반’ 과정이 중간정도 지나갈 즈음에 필자는 그동안에 미루어 왔던 석사학위 논문의 마무리에 쉴 틈이 없었다. 그렇지만 ‘영관영어반’ 과정에 입교시킨 것은 능력이 부족한 필자가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주신 신의 배려와 인도라 생각되어 감사할 뿐이었다. 최종 논문심사에서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라는 필자의 논문을 검토하던 동국대학교 3명의 지도교수들은 신통하다는 표정으로 새로운 착안이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왜냐면 당시에는 독일통일에 관련한 자료와 논문은 많았지만 군사분야는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독일 통일 당시에 독일에서 군사과정을 다녔던 김영식 동기(전 1군사령관)가 제공해준 귀국보고서가 큰 바탕이 되었고, 다른 학생들은 논문들은 기존의 타 논문에서 인용하여 만들다 보니 필자의 논문보다 교수들이 참고할 사항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심사중에 지도교수들은 논문 내용보다 내 신상에 더욱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목발을 짚고 있지만 육사37기로 박지만과 동기라고 하자 그들은 ”아마도 그 동기들은 똑똑한 사람이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동기생 전체를 칭찬해주어 동기회 품격이 격상되는 이미지에 일조한 기분이 들어 보람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입교한 영관영어반 과정은 주말부부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됨과 동시에 이미 취임해 맹활약하는 동기생들을 만나 회포도 풀었지만 대대장 근무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계기가 되었고, 영관영어반 수료증과 동국대학교 석사학위기를 받아 내실을 기하는 일거다득(一擧多得)의 결실을 얻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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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8] 아스팔트 수방사에서 비포장도로 무적태풍부대로 가다(상)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상징명칭이 ‘무적태풍부대’인 28보병사단은 6.25남침전쟁 직후인 1953년 11월18일 충남 논산에서 창설되었으며, 경례구호는 '태풍'이다. 부대마크는 태풍의 눈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폭풍우를 휘몰아치며 북진하는 태풍의 위용을 형상화한 것으로 전투에 임할때에는 북진의 교두보로서 적의 심장부를 일격에 무너뜨리겠다는 부대원의 결의를 담고 있다. 부대마크의 좌회전은 "영원불멸"을 상징하며, 바깥원은 "견적필살" "천하무적"의 총구를, 청색 바탕은 "정의"와 "평화"를, 백색은 "자유"와 "백의민족"을 의미한다. 창설 이후 강원도 사창리, 포천, 양평 등 4차례의 이동있었고 1966년 현 지역에 배치되어 중서부 전선의 최전방 GOP경계를 담당하고 있다. 부대가 위치한 연천군은 대표적인 안보관광지이다. 6·25남침전쟁 후 대부분이 수복지역으로 북쪽에서 흘러오는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한탄강 유원지와 전곡 선사시대 유적지, 재인폭포, 감악산 비룡폭포 및 GOP지역 필승교 옆의 태풍전망대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한 고려 태조와 혜종·성종·현종·문종·원종(충경왕)·충렬왕·공민왕과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 외 15인에게 제사를 지냈던 숭의전이 있고, 태풍전망대에서 보이는 비무무장지대에는 6·25남침전쟁시 치열한 전투로 유명한 김만술 소위의 베티고지도 있어 역사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헌데 부대창설 후 지난 69년 동안 44회에 걸친 대간첩작전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적 사살 63명, 생포 8명, 장비 노획 1,308점이라는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던 28보병사단은 국방개혁 2.0으로 2025년에 해체될 예정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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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8] 아스팔트 수방사에서 비포장도로 무적태풍부대로 가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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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7]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사짐을 모두 싣고 운전석 옆에 어린 아들과 부인과 함께 앉아 남태령 수방사 아파트에서 새 부임지인 28사단으로 출발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때 당시 직속상관이었던 작전과장 차철이 중령(육사32기)은 필자에게 “니가 전출을 가는데 이렇게 많은 장교와 부사관들이 새벽에 나와 이별을 아쉬워하며 환송해주는 것은 김 소령의 수방사 근무가 대단히 성공적이고 잘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어깨를 두드려두었다. 그런데 환송나온 선후배중에 당시 경비과장을 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가 필자에게 다가와 한가지 에피소드를 전해주겠다며 “김희철, 너는 몰랐지만 내가 추천을 해서 28사단으로 배치된 것이니 가서 잘해라”라고 말했다. 필자가 배치받을 부대의 전임자 신현돈(육사35기, 전 1군사령관) 사단작전보좌관이 대대장으로 곧 취임하게 되어 후임자를 물색하다가 육사동기인 장 선배의 추천에 따라 야전군 사령부 인사처 보임과에 요청하여 필자의 보직이 결정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덕택에 기계화부대에서 경력을 쌓을 수있는 기회를 놓쳤지만 장 선배의 호의와 환송나온 동료들에게 감사했다. 또한 필자의 후임자이며 든든한 신뢰와 존경을 갖게 만든 신원식 동기가 육군대학 교관으로 재직전에 28사단 작전장교로 근무하였고, 당시 수방사 작전과장인 차 중령이 신 동기의 상관인 작전보좌관으로 함께 있었다고 했다. 따라서 괄목상대(刮目相對)의 놀라움을 던져준 신 동기와 필자는 수방사와 28사단에서 작전관련 보직을 서로 맞교대하는 격이 된 묘한 인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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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7]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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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6]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출중한 업무 능력을 견지한 자랑스런 신원식 동기가 후임자로 내정되었을 때, 필자는 다음 보직이 걱정되어 새로 부임할 야전군 사령부 인사처 보임장교로 근무하던 동기에게 전화를 했다. 생도시절 2년동안 같은 중대에서 각별하게 지냈던 그 동기는 “걱정하지 말라며 수방사 작전장교로 고생했으니 당시에 대부분 장교들이 선호하던 기계화사단으로 보직을 검토 하겠다”고 약속했다. 허나 얼마뒤에 그 동기는 다시 필자에게 “보직을 검토했는데 전방 GOP부대에 공석이 생겨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배치되었으니 양해해 달라며 선호부대인 기계화부대 배치가 불가하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앞으로 예상되는 전장 양상이 단순한 보병부대가 아닌 탱크와 장갑차를 운용하여 속도와 충격효과를 중요시한 기동전 및 미사일 등을 활용한 화력전이다. 결국 필자는 미래 전장에서의 주력 부대인 기계화부대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된다는 희망과 모두들 선호했던 부대 배치의 기대감을 상실하고 초급장교 시절에 근무했던 GOP부대로 다시 배치되어 아쉬웠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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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6]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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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5]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전후방 각지의 부대에서는 바쁜 업무로 교범을 가까이하며 신교리를 연구하는 것이 일부 제한되어 육군대학 교관직을 경험한 장교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왜냐면 그들은 장교들을 가르치기 위해 최신 교리를 연구하여 야전에서 근무하는 장교들보다 군사 지식을 훨씬 더 많이 쌓았기 때문이다. 수방사령관 이하 주요 간부들은 육군대학에서 최우수교관으로 선발되었던 신원식 소령에 대한 기대가 많았고, 그는 짧은 기간에 충분하게 능력을 발휘하며 인정받았다. 마침 합동근무 기간중에 필자가 새롭게 부여받은 업무를 신 소령에게 인계했는데, 그는 신교리에 따른 논리적이고 출중한 필력으로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했고 그 반응이 대단히 좋았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필자를 힘들게 만들었던 00과장(당시 상황실장 겸 작전보좌관)도 그의 신교리에 입각한 논리적인 내용의 보고서와 자신감과 소신이 차고 넘치며 거침없는 언변에 반론 제기를 못하고 꼬리를 내리며 인정했다. 육군사관학교 시절의 ‘몽사과(夢史科)’로 불리던 ‘전사과’ 수업시간 중 잠에 쉽게 빠지던 대표적인 생도였던 신원식 동기는 “선비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이라네...”라며 사자성어 괄목상대(刮目相對)를 만들게 한 여몽처럼 성장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생도시절 그는 주중에 밤낮없이 책을 읽었고, 이것도 부족해서 타생도들이 휴일 외출하여 여가를 즐기는 시간에도 도서관에 홀로 남아 계속 독서하며 키운 잠재력과 육군대학에서 충분한 학습으로 필자가 넘볼 수 없는 출중한 인물이 되었다. 곧 전방부대로 전출 가야하는 필자는 합동근무 기간 후임자 신원식 동기의 탁월한 업무 능력 과 소신과 자신감 넘치는 달변에 감복했고, 괄목상대의 놀라움은 오히려 든든한 신뢰를 갖게 했다. 전출가는 날 필자는 그에게 “앞으로 어느 곳에 있던지 언제라도 신원식 동기의 팬이 되고 편이 되어 지지하겠다”며 존경을 표했고 지금도 두터운 우정을 나누고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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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5]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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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4]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통상적으로 군의 간부인 장교들은 일정 기간 지나면 보직을 옮겨야 한다. 일명 계획 인사로 당시에는 전방 생활을 어느 정도 근무하면 후방으로 가야하고, 후방 근무 2년이면 다시 전방으로 가서 근무해야한다. 전방으로 전출가기 몇 개월 전에 필자의 후임자로 이미 육군대학 교관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 신원식 동기가 거론되고 있었다. 하지만 생도시절 신원식 동기의 추억은 ‘잠원식’이었다는 것만 기억되었다. 사관학교는 일반 대학과 달리 군 특성에 부합된 ‘전사(戰史)’, 병기(兵器)‘ 등의 특별한 전공과목이 있었고, 제시된 사진과 같이 신원식 동기는 “백번을 다시 태어나도 ‘육사인’이고 싶고, 백번을 다시 생도생활을 해도 ‘전사과인’이고 싶다”고 육사 졸업앨범에 기록을 남겼다. 헌데 유별나게도 그 전공학과의 수업 시간에는 생도들이 많이 졸아서 ‘전사과’는 ‘몽사과(夢史科)’로 불렸고, 신 동기는 대표적으로 수업시간 중 잠에 쉽게 빠지던 생도로 일명 ‘잠원식’이라고도 호칭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어마무시한 독서량으로 주중에는 밤낮없이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것도 부족해서 휴일에 타생도들이 외출하여 여가를 즐기는 시간에도 도서관에 홀로 남아 계속 독서를 했다는 소문을 전해들었다. 그 덕에 수업시간에는 비록 졸았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육사를 졸업했고, 이후 전후방 각지에서 다이아몬드 이빨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논리적인 브리핑을 잘하는 장교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 덕분에 육군대학 교관중에 최우수교관으로 선발도 되었다. 훗날 수방사령관을 역임했던 육사동기 신소령은 육군대학 교관 보직을 마치고 이동하여 필자의 전방부대 전출을 앞두고 수방사 작전과 사무실에서 한달 동안 합동근무를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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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4]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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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3]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괄목상대(刮目相對)란 사자성어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 상대를 대(對)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학식이나 업적이 크게 진보하고 발전한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촉·위·오나라 삼국이 서로 대립하고 있을 당시 오나라 손권의 부하 중에 병졸에서 전쟁의 공으로 장군까지 된 여몽있었는데 무식했다. 그러나 손권은 그가 이론적인 병법까지 알고 능통해지기를 원해서 학문을 깨우치도록 충고했다. 이때부터 그는 전장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공부했다. 얼마 후 뛰어난 학식을 가진 노숙이 여몽과 의논할 일이 있어 찾아갔다. 노숙은 여몽과 막역한 친구였고 무식했지만 전투를 잘하던 여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의 박식함에 깜짝 놀라면서 “이 사람 언제 그렇게 공부했나? 이제 오나라의 여몽(呂蒙)이 아닐세...”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선비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이라네...”라고 대답하여 ‘괄목상대(刮目相對)’의 유래가 되었고, 훗날 탁월해진 여몽은 불세출의 영웅인 촉나라 관우와 싸워 승리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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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3] 애환의 수방사를 떠나며 얻은 영원한 친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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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2]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생뚱맞고 갑작스런 모임 마무리로 00경비대장은 “군생활을 먼저 경험한 선배로 후배들에게 지금부터는 군의 중견 간부로 현직책에서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대통령과 국가에 대해 충성하는 것이다”라며 “혹시 업무 중에 애로점이나 도움이 필요하면 배석한 선배나 본인에게 연락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당부하며 생뚱맞은 호출에 당황했던 모임을 끝냈다. 하림각 현관에서 그는 안내한 선배와 함께 대기중이던 전용 승용차에 탑승하고 출발하자 얼큰하게 상기된 얼굴의 우리는 “충성!”하고 승용차를 향해 경례를 했다. 그런데 승용차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어떤 동기생이 “부대업무에 바빠 죽겠는데 오늘 우리를 왜 부른 거야?”라며 “밥 사주거나 얻어 먹고도 기분 나쁜 경우가 있는데, 이게 후배를 사랑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위세 과시인지? 의문이네...”라며 불평하는 말을 툭 던졌다. 그 동기가 무심코 내뱉은 말을 듣는 순간, 필자가 느꼈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접부대에서 근무하는 후배들을 불러 격려의 자리를 마련해준 것에 대해 매우 감격했고 감사했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충격을 받았다. 옛날 이야기 중에 “사자와 황소가 서로 사랑을 했는데 사자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슴을, 항소는 즐겨 먹던 부드럽고 맛있는 풀을 서로에게 선물했지만 불편하여 결국 이별했다”는 우화가 있다.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으니라”라고 가르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의미가 귓가에 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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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2]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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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1]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우리를 호출했던 00경비대 인사과장인 선배의 안내를 받으며 방에 들어온 00경비대장은 다부지고 건장하며 부리부리한 눈이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그를 주목했을 때 생뚱맞은 갑작스런 호출에 생소한 생면부지의 얼굴들이 겸연쩍은지 대통령을 근접에서 모시는 선배로서 수도권의 중요부서에서 중책을 수행하는 후배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각부대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려고 자리를 마련했다며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때 하림각의 최고급 요리가 코스별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반주도 곁들어 한잔씩하게 됐다. 그는 잔을 들면서 “대통령님을 잘보좌하고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건배를 제의하고는 음식을 들었다. 필자는 대통령을 측근에서 경호하고 부대관리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접부대에서 근무하는 후배들을 불러 격려의 자리를 마련해준 것에 대해 매우 감격했고 감사했다. 게다가 한 동기는 00경비대장에게 “바쁘신 가운데에도 우리 동기들을 배려하여 이렇게 고급요리로 직접 격려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너스레도 떨었다. 술이 한순배씩 돌자 생도시절과 야전 부대생활의 에피소드로 함박 웃음도 나누며 대화가 계속되었다. 하림각식당 고급 코스요리의 마지막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렸지만 특별한 이슈는 없었다. 단지 선배의 후배 사랑 마음 뿐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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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1]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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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0]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대기하던 하림각 특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생도시절의 추억과 야전부대 근무 경험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초청했던 00경비대장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7년 선배로 하나회에 소속이었고 곧 대령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김영삼 정권에 의해 하나회가 숙청되기 전인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하나회가 득세하고 있었다. 특히 수방사령부 및 청와대 경비부대에는 하나회 출신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위세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아스팔트군인으로 대표되었던 수방사 요원들은 무소불위의 위세 때문에 일부 병폐도 잔존했다. 그러나 하나회 요원들은 진급이 보장되고 그 조직간의 활동비지원 등으로 여유롭고 당당하게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었다. 심지어 비하나회 상관이 잘못된 지시를 할 때에도 오히려 소신과 자신있게 대응하는 등으로 멋있게 보여 부하들의 존경을 받는 장교도 있었다. 또한 김영삼 정권의 하나회 숙청 4년전이자 필자가 육군대학에서 교육받을 때에 벌어진 군내의 사조직 병폐 소동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필자의 동기회는 이 소동을 통해 오히려 동기애를 다지는 계기도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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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0]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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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09]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당시 필자는 2년 가까운 수방사 작전과 근무에 어느 정도 숙달이 되었으나, 급변하는 주변 상황은 늘 야근을 불러왔고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갔다. 교통이 편한 수도 서울에 근무했지만 국방부, 합참 및 인근 부대의 동기들을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처럼 힘들었다. 그날도 새벽에 출근해 야간 근무자의 상황보고 내용을 점검하고 아침 상황회의에 참석하자, 돌출하듯 갑작스레 추가로 부여된 임무가 생겼다. 회의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추가로 식별된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전화벨이 힘차게 울렸다. 청와대 영내 00경비대에서 인사과장으로 근무하는 선배의 전화였다. “김희철, 오늘 저녁 무조건 시간 비워두어... 이따가 다시 전화할테니, 그때 자세한 이야기 해줄께...”하고는 그도 아침 업무로 매우 바빴는지 필자의 대답도 듣기 전에 바로 끊었다. 오후가 되자 그 전화는 필자만이 아니라 교육과 근무하는 동기도 받았다고 전해왔다. 다시 걸어온 선배의 전화에는 자신의 부대장이 우리 둘을 갑자기 호출하여 저녁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격려하겠다는 것이었다. “사령부에 동기들이 많은 데, 왜? 우리 둘만 호출한 것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며 “서로 뭐 잘못한 것이 있냐?”고 물었지만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아무튼 과장에게 보고하고 호출한 장소로 같이 가기로 했다. 생뚱맞고 갑작스런 호출로 출발은 했지만 야근시에 할 업무를 미루고 나와 저녁후에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은 걱정이 되었지만 청와대를 지나 자하문을 통과하여 으리으리한 식당 하림각에 도착했다. 하림각 정문에 나와 있던 전화 연락을 한 선배의 안내를 받아 약속된 방에 들어가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연합사 등에 근무하는 동기들이었다. 육군대학에서 같은 기수로 교육받았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임관후 10여년만에 처음 만나보는 동기들이라 너무도 반가운 해후의 시간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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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09] 선배의 지나친 후배 사랑은 역효과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