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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0)] 혈연, 지연 및 학연보다도 근무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결국 양 대령은 황종수 소령을 연대 작전과장으로 받았고 황 소령은 보직 걱정을 하다가 오히려 좋은 기회를 포착하고 그의 잠재능력을 충분하게 발휘하며 탁월함을 인정받게 된다. 육군사관학교 교관 경험이 말해주듯 철학적 혜안에 따른 논리성에 야전성을 겸비한 황 소령은 각종 지휘관 회의나 전술토의에서 해당 연대안을 발표할 때마다 타 부대와 비교될 정도로 돋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연대장 근무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시하는 연대전술훈련 평가에 임해서 황 소령은 대박을 터뜨렸다. 사전 철저한 지형 정찰을 통해 판단한 지역을 이용, 전차를 동반한 특수임무부대가 기습적으로 임진강을 도섭하여 상대방의 지휘소를 급습하며 포위 격멸시키는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는 성과를 올렸다. 처음에 연대 작전과장 후임자를 선발할 때 경력이 문제이고 게다가 야전 경험도 부족하며 특히 주특기가 작전직능이 아닌 기획직능이기 때문에 더 더욱 고민이라던 양 대령의 우려는 기우(杞憂)로 끝났다. 반면에 황 소령은 양 대령과 좋은 인맥을 쌓게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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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8-0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8)] 혈연, 지연 및 학연보다도 근무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해 가을 무렵에 접어들자 양 대령 연대의 중요하고 핵심적 역할을 할 참모인 작전과장이 보직을 마치고 떠나게 되어 후임자를 찾고 있었다. 연대 작전과장은 작전 업무뿐만 아니라 부대운용의 모든 분야를 총괄하기 때문에 부대의 성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해당 지휘관이 작전분야의 경험이 있는 장교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이유이다. 그래서 통상 작전과장을 보직 받기 전에 정보과장 등의 타 참모 임무를 수행하다가 능력을 인정받으면 작전과장으로 영전하면서 그해의 중령 진급 선발에도 유력한 대상이 된다. 당시 사단으로 전입 예정자 중 소령급 장교에는 동기생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양 대령도 출신을 떠나 작전분야에서 근무 경력이 있는 유능하고 탁월한 장교가 작전과장으로 보직되길 원했다. 허나 주변을 아무리 물색하고 사단으로 전입 예정인 대상자 중에 양 대령이 원하는 조건에 해당되는 자원이 없다고 판단하여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8-0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7)] 혈연, 지연 및 학연보다도 근무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무적태풍부대로 전입온 지 5개월 정도 지날 즈음에 반갑고도 존경하는 선배가 예하 연대장으로 부임했다. 사단사령부의 작전보좌관직을 수행하던 필자는 새롭게 취임한 양치규 대령(육사29기)을 승리부대 중대장 근무시에 직속상관인 대대장으로 모셨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며 도움이 되도록 노력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60)] 실전 같은 부대 검열 및 훈련평가는 승리의 첩경:‘경쟁자가 깨닫게 해준 교훈과 대대장의 리더십이 이끌어 낸 승리’ 참조) 일반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학력과 경력도 중요하지만 숨길 수 없는 사실은 당사자의 인맥이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군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헌데 그 인맥은 처음부터 혈연이나 지연 및 학연에 의해 형성되는 것보다도 같이 근무했던 인연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같이 근무하여 쌓인 좋은 인연은 그 당시에 상급자로부터 무능하다고 평가받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와 함께 인맥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맺어진 인맥으로 상급자는 진로를 안내해주거나 멘토 역할도 하지만 평가 및 진급시에도 측면에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또한 경험 즉 경력도 무시할 수 없다. 당시 사단사령부의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던 필자도 수방사령부 작전장교로 근무했다는 경력이 무능과 유능 그리고 탁월하다고 평가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7-27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6)] 무장탈영병 소동으로 멋진 대침투작전 훈련을 치뤄...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연대가 형성한 1봉쇄선 안의 원점 부근에서 무장탈영했던 윤길영 일병을 생포했다는 보고였다. 탈영한 윤 일병은 멀리 도주하려 했으나 각 부대의 신속한 배치와 야간에 라이트를 켜고 계속 이동하는 군차량, 선무심리전 방송, 군견 짖는 소리 등으로 꼼짝 못하고 숨어있다가 지쳐서 그대로 생포되었다. 비록 밤을 꼬박 새워 피곤했지만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보람을 느꼈다. 바로 그때 사단장 탁자위에서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군단에서도 무장탈영병 사건 때문에 밤을 지새웠던 군단장의 전화였는데 일순간 무장탈영병 사고 발생에 대한 질책을 예상하며 긴장된 상황실의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최경근 군단장(갑종151기)은 ”사단장, 이번 무장탈영병을 잡기 위한 대침투작전은 시범을 보인 것과 같은 매우 표준이 되는 사례입니다”라며 말을 시작했다. “최초 상황보고 및 조치부터 신속하게 하달된 3개의 봉쇄선을 형성하는 작전명령과 전파체계 그리고 선무심리전, 항공정찰, 전제대 동시수색, 군견운용 등 통합적이고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전개한 작전수행에서 칭찬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라며 핀잔보다는 칭찬을 하였다. 이어 “훌륭한 대침투작전 훈련이었습니다. 수고했어요...ㅋ”라는 군단장의 마지막 격려 훈시 한마디에 비록 사고를 미연에 방지 못한 책임은 있었으나, 상황실에서 밤을 지새운 참모 및 실무자들의 보람찬 환성이 터져 나오며 모든 피곤함을 날려버렸다. 무장탈영병 사건 발생은 위기였지만 지휘관의 명확한 지침과 전 부대원들이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절차와 행동으로 임하여 작전에 성공함으로 부대가 단결되며 사기충천하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되었다. 무장탈영병 발생에 따른 대침투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이재관(육사21기) 소장은 사단장을 마친지 10개월 만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군단장으로 다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이후 군단장에서 영전하여 육군참모차장직을 수행하던 이 중장은 1996년 9월16일 ‘강릉 무장공비 잠수함 침투’사건이 발생하자 작전이 한창 진행중인 10월에 대장으로 진급하여 1군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한달 뒤인 11월 1군사령관 이재관 대장은 ‘연화동계곡 전투’에서 무장공비의 잔적을 소탕한 것을 끝으로 강릉 안인진리 지역으로 잠수함을 통해 침투한 북한군 무장공비를 토벌하기 위한 45일간의 대규모 작전을 마무리하여 대침투작전의 전문가로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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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7-2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5)] 무장탈영병 소동으로 멋진 대침투작전 훈련을 치뤄...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일련의 상황조치를 완료하고 사단장과 참모들은 상황실(TOC)에서 예하 각부대의 배치 및 활동을 보고 받으며 밤을 지새웠다. 허나 필자는 더 바빠졌다. 무장탈영병이 원점 지역을 포위한 1봉쇄선 안에 있으면 생포가 용이할 터인데, 혹시 더 원거리를 도주하여 2,3봉쇄선 밖으로 빠져나갔다면 상황은 사단이 아니라 군단 또는 군사령부급으로 확대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작전참모와 함께 고민하다가 날이 밝으면 봉쇄선 주요 목에는 그대로 소수 병력을 배치하며 필요한 지역엔 임시 검문소를 추가운용하고, 나머지 주병력과 군견으로 ‘전제대 동시 수색정찰’을 계획했다. 이때 항공정찰도 병행하기 위해 상급부대에 헬기도 추가 요청했다. 사단장의 승인을 받고 일출과 동시에 작전이 개시되도록 사전에 작전명령을 하달하며 군단에도 보고했다. 각 부대는 아침해가 밝아오기 전에 조식을 모두 마치고 각 수색 책임지역으로 출발하려는 순간 무장탈영병이 발생한 부대 연대장의 긴급한 지휘보고가 올라왔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7-2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4)] 무장탈영병 소동으로 멋진 대침투작전 훈련을 치뤄...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 전지역으로 ‘진도개 하나’를 확대 발령에 따라 각 부대가 출동준비를 하는 동안 사단 상황실(TOC)에서 작전토의를 거쳐 사단장이 승인한 무장탈영병 생포 작전명령은 신속하게 각 부대로 하달되고 상급부대에도 보고됐다. 출동 준비를 마친 부대들은 때마침 하달된 작전명령에 따라 사건 발생 원점을 겹겹이 포위하는 2,3봉쇄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절묘한 시점에 명령이 하달되어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며 바로 투입하여 일단 도주하려는 탈영병과 시간 싸움에서 우위를 점령했다. 동시에 탈영병이 발생한 해당 연대는 1봉쇄선 점령을 완료하고 포위된 봉쇄선 안의 은거 가능지역을 사단 수색대대원들과 함께 군견까지 투입하여 정밀 수색했다. 이때 2,3봉쇄선에 근접한 부대들은 도보로 투입했지만, 원거리 부대원들은 사단 수송대의 차량에 포병부대의 포차까지 동원된 수송차량을 지원받아 보다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었다. 날이 저물어 야간이 되자 봉쇄선 도로를 따라 라이트를 켜고 차량을 계속 왕복 이동시켜 은거한 무장탈영병이 꼼짝 못하고 지치도록 만드는 기만작전도 시행하였다. 더불어 주민신고망을 최대로 가동시켰고, 선무심리전으로 방송차량을 활용하여 원점부근과 주변에서 무장탈영병의 안전과 복귀 방송을 계속하며 심리적 동요를 유도했고, 또한 탈영병의 부모를 현장에 도착시켜 방송차량에 탑승하여 안전한 귀가 설득 방송도 추가했다. 이 모든 조치는 이미 5년전 승리부대 근무할 때에 ‘GOP 경계근무자의 총기난동 및 무장탈영 소동’에서 경험했던 교훈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었다. 한편 상급부대인 군단에서도 무적태풍부대의 무장탈영병 발생에 따른 대침투작전 진행을 관망하면서 혹시 우려되는 탈영병의 도주를 막기 위해 인접 사단에 지시하여 주요 통로 및 목 지점을 차단하도록 조치했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7-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3)] 무장탈영병 소동으로 멋진 대침투작전 훈련을 치뤄...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연대의 무장탈영병 발생 보고가 접수되자 상황실로 각 참모들이 비상소집되었고 전화기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부대관리 위주로 부대를 지휘했던 사단장은 역시 노련하게 침착한 모습을 보였으나 어떤 지침도 없이 인상만 쓰고 있었고 부대는 혼돈에 빠진 상태였다. 그때 가장 큰 문제는 상급 부대에서 걸려오는 전화였다. 최초 보고가 끝나자마자 상급 및 차상급 부대뿐만 아니라 심지어 청와대 상황실에서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계속된 전화로 실제 사고가 발생한 연대에서의 전화는 받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무장탈영 사고 현장에는 이미 연대의 정보분석조와 헌병 및 군의관 등이 도착하여 사고 조사를 하고 있었고 다행히도 피해자는 없었다. 또한 연대 자체 병력으로 차단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연대장의 상황조치 보고도 있었다. 연대장 보고에 따르면 윤길영 무장탈영병이 소속된 해당 연대지역은 강화된 대침투작전 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상태였고, 작전참모는 정보에서 판단한 탈영병의 도주 거리를 고려하여 우선 사단 전지역으로 ‘진도개 하나’를 확대할 것을 사단장에게 건의하여 조치했다. 사건을 조기 종료하기 위해서는 무장 탈영병의 도주 거리를 고려한 작전 투입 시간과의 싸움이었으나, 가장 크게 우려되는 최악의 상황은 무장 탈영한 이 일병이 GOP철책을 넘어 월북하는 것과 도심으로 빠져나가 일반 시민들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이때 필자의 과거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지난 1987년 7월 승리부대 작전장교 근무할 당시에 발생했던 GOP 철책에서 경계근무 후 복귀하던 이진수 일병이 막사 앞에서 총기를 난사해 수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키고 무장 탈영한 한 사건의 경험이었다. 5년전 승리부대 작전장교 근무시에 업무가 미숙했던 필자는 작전명령서를 적시에 작성조차 못해 작전참모(전 김관진 국방장관)가 직접 초안을 잡아 조치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작전을 담당했던 필자는 우선 서울 방향인 남쪽이나 GOP철책 방향인 북쪽으로 향하는 모든 통로에 검문소 운용강화 지시를 하달했다. 그리고 조용히 책상에 앉아서 지도에 작전 상황도를 그리며 명령을 작성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73)] ‘숨막혔던 GOP 경계근무자의 총기난동 및 무장탈영 소동’ 참조) 그리고는 준비한 작전계획을 PPT로 띄우며 작전상황실(TOC)에서 대책을 논의하던 사단장과 참모들에게 설명했다. 1봉쇄선은 해당 연대장이 이미 하달한 지시를 참고하여 최대한 변동이 없도록 도식했고, 2봉쇄선과 3봉쇄선은 가용병력을 고려하여 인접 연대, 포병 및 작전통제 부대까지 투입시켜 점령하며 원점부근에는 지역을 잘 아는 해당 부대와 수색대대로 탐색하여 체포하는 계획이었다.(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7-1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2)] 무장탈영병 소동으로 멋진 대침투작전 훈련을 치뤄...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를 무적태풍부대 사단작전보좌관으로 끌어와 새로운 경험을 쌓게 해준 전임자 신현돈 중령(육사35기, 예비역 대장)이 1992년 2월말에 군자산 대대장으로 취임했다. 신 중령의 전임은 필자의 초임지였던 승리부대부터 인연이 있었고, 현 부대로 배치받아 다시 만났을 때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라고 일침을 놓았던 김형배 중령(육사34기)으로 대대장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사단 정보참모로 부임했다. 마침 필자가 모시던 직속상관인 작전참모는 강수명 중령(육사31기, 예비역 준장)으로 그해 가을에 대령 진급이 거의 확실시 되는 분위기이라 김 중령은 차기 작전참모로 영전할 것이라고 모두들 예상했다. 하지만 인생은 세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듯이 예측 불허의 상황이라 각자 긴장하며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고, 군자산 대대장으로 취임한 신 중령만이 신바람을 날리며 부대를 마음껏 활기차게 지휘하고 있었다. 겨울의 추위가 조금씩 걷혀가는 3월13일 금요일, 상급부대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예루살렘’의 확산 경고가 내려져 필자의 주 활동무대였던 상황실은 비상이 걸려 각별히 조심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석양이 기우는 저녁 시간이 되자 지난 연말 지휘관 회의에서 가장 우수한 선봉대대로 선정되었던 임진강 주변의 부대에 소속된 윤길영 일병이 총기를 휴대하고 부대를 이탈한 무장 탈영병 사건이 발생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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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7-13
  • [김희철의 전쟁사(185)]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㉓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위트컴 장군은 부산 주재 미 군수사령관으로 1953년부터 1954년 12월까지 한국군과 부산 재건 임무를 맡았다. 그는 이를 위해 스스로 미육군한국지원프로그램(AFAK)을 만들어 부산대 등 교육시설, 메리놀병원 성분도병원 등 각종 의료시설, 고아원 건립, 양정과 청학동 주택단지 건립, 도로 교량 건설, 부산역전 대화재 이재민 구호를 포함한 수많은 인도적 사업을 열정적으로 펼쳤다. 의료시설 재원이 부족해지자 위트컴 장군은 자선 바자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직접 한복을 입고 홍보 행렬에 참여했고 예하 부대별로 고아원 등 후생시설에 자매결연으로 후원과 기부를 유도했다. 대구에 있는 5군수지원사령관을 역임한 박주홍(육사42기) 장군은 “위트컴 장군은 당시 한국 기업의 어려움을 정성을 다해 본국에 알렸고, 이는 전후 복구와 우리 기업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고 증언했다. 이어 “테일러 미8군 사령관도 위트컴 장군에게 ‘귀하가 요청한 한국 재건에 필요한 자재와 장비가 곧 부산에 도착한다’는 문서를 보냈는데, 이를 통해 그가 헌신적으로 전후 복구에 임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미 군수사령관 임기를 마친 위트컴 장군은 1954년 말 전역과 함께 미국으로 귀국했으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6-2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1)] 먼저 떠난 전우들 기억이 선명해지는 ‘호국보훈의 달’(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고 현장에서 순직한 7군단장 故 이현부(육사 20기) 중장은 육사 졸업시 학업성적과 리더십이 가장 우수한 생도가 받는 ‘대표화랑’상을 수상했다. 그는 기계화부대에서 소대장~사단장등 모든 지휘관직을 역임하고 또 기동군단장에 보직되어 기계화부대 작전분야의 1인자로 통했다. 또한 군사전술과 작전지휘 능력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생활 자세와 리더십을 포함한 인품도 탁월하다는 정평을 얻어 군단장직책에도 동기생 중에 가장 빨리 보직됐으나, 그만 취임 두 달 만에 사고를 당했다. 故 한황진(육사37기) 중령 역시 육사를 3등으로 졸업하고, 럭비부 주장까지 할 정도로 실력과 리더십이 뛰어난 군인이었다. 특히 한 중령은 임관 후 첫 번째 보직부터 승리부대에서 필자와 군생활을 같이 시작해 인접 중대장직을 수행했으며, 이 장군은 당시 부사단장으로 필자와 함께 근무한 인연도 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2)] ‘전방오지 산짐승과 눈싸움 그리고 셋방살이 오강의 추억…’ 참조) 한 중령은 미국 해대원 유학 복귀 후, 필자가 근무하던 무적태풍부대의 인근부대의 대대작전장교로 배치받아 오랜만에 친분을 나눌 수 있었으나, 워낙 우수한 장교인지라 군단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헌데 보직된지 얼마 안되어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이들의 순국은 당시 그들을 군생활의 멘토로 삼고 있던 필자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또한 “추락 당시 수행원 모두가 이 장군을 끝까지 보호하려 장군을 감싸고 있었다”라는 사고수습자가 전해준 증언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숙연케 했다. 이 장군과 참모 및 동기생 한 중령을 추모하기 위해 바쁜 작전보좌관직을 수행하던 필자도 참모에게 보고후 장례식장에 참석했다. 전역한 병사들까지도 포함한 수많은 장병이 조문했던 7군단 사령부의 장례식장은 애도를 표하던 그들의 안타까운 눈물바다였다. ‘시졸여애자고 가여지구사(視卒如愛子故 可與之俱死)’, 즉 “장수가 병사들을 사랑하는 아들 돌보듯 한다면 가히 생사를 같이할 수 있다”는 손자병법 지형편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죽어서도 함께 했다. 대전 현충원의 묘비 번호를 1048번부터 1052번까지 나란히 부여받고 안장되었고, 사랑하는 동기생 한 중령은 새로운 군번인 묘비번호 ‘1-203-1051번’을 부여받았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다가오자 먼저 떠난 전우들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진다. 발렌티누스는 사랑을 위해 순교했다. 故 이현부 장군과 한황진 중령 등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순국했다. 비록 목적은 달랐으나, 이들의 순교와 순국은 남을 위한 희생이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을, 자신의 목숨보다 조국을 더욱 뜨겁게 사랑했다.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많은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오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국립 현충원을 찾아 옛 전우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면서, 전후방 각지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의를 위한 희생의 길을 정진하며 묵묵히 책무를 다하고 있는 국가 안위의 마지막 보루인 우리 국군장병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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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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