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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 악천후라는 또 하나의 적과 동거하는 DMZ매복작전
    ▲ DMZ매복작전 투입전에 주둔지에서 투입신고와 군장검사중인 국군장병 모습 [사진출처=국방부] DMZ수색과 매복작전, 70년간 보존된 '천연의 보고'를 만끽하는 혜택 침투하는 적을 색출/격멸하여 영토를 지키는 '무거운 임무' '적'으로 오인한 산짐승과 치열한 신경전으로 긴장했던 추억 고통스러운 악천후, 지휘관의 리더십 통해 '전화위복 (轉禍爲福)' 가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인적이 끊어진 DMZ(비무장지대)를 종횡무진 누빌 수 있는 특권은 세계적 권력자들에게도 없다. 오직 필자가 소속된 부대와 같은 DMZ작전부대에게만 부여되어 있다. DMZ수색과 매복작전을 담당하는 부대원들은 침투하는 적을 색출하여 격멸하고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키는 임무도 있지만 약 70년간 보존되어 온 천연의 보고를 마음껏 누리는 혜택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대원들은 항상 발톱을 숨기고 걸려들기만 기다리고 있는 지뢰폭발의 위험과 언제 출몰할지 예측 불가능한 침투조의 기습적인 도발에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리스크는 일반적인 사고와 달리 자칫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DMZ는 과거와 현재에도 많은 전우들이 발목이 잘리는 등의 부상을 입거나 치명상으로 순직하며 생명을 걸고 지켜온 땅, 천연의 보고이다. 한 겨울이 되면 온 천지가 하이얀 설국과 동토의 땅이 된다. 당시에는 매복작전 투입전 GOP통문지역의 온도가 영하 10도 이하가 되면 작전이 취소가 되었다. 그날도 오후, 눈보라 치고 매서운 바람은 소매 끝을 파고들어 문밖을 나갈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도 온도는 영하 7도였다. 할 수 없이 야간 매복작전을 위해 작전조는 오후에 취침을 하고 투입준비를 했다. 우선 동상을 대비하여 전투화 대신 방한화를 준비했고 그 안에는 두꺼운 양말을 두겹씩 신었다. 전투복안에 내복을 껴입고 방한복을 입은 모습은 완전히 눈사람이다. 목도리에 귀마개까지 하고 철모를 쓰니 고개 돌리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주둔지에서 투입전 즉각조치 사격을 하고 군장검사 후 5/4톤 트럭을 타고 GOP통문으로 향했다. 이동간 노출된 트럭위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이 옷사이를 스며들어올 때에는 아무리 두껍게 입은 방한복도 소용이 없었고 대원들의 콧 밑에는 새하얗게 고드름과 서리가 맺혔다. 일몰이 되고 사방이 깜깜해질 무렵, GOP통문에 도착했다. 군장검사를 위해 방한장갑을 벗고 소총 안전검사를 할 때에는 손가락이 떨어져나가는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온도를 체크하니 영하 9도였다. 삭풍까지 몰아치는 이 혹한에 에누리 없이 작전에 투입해야 할 기온이었다. GOP작전 대대장에게 인원장비와 군장검사 결과를 전화로 보고하려고 초소로 들어가는데 그 날 따라 격려하려고 현장에서 대기중이던 대대장 송영근 중령(훗날 기무사령관, 19대 국회의원 역임)이 초소에서 나오며 작전대원들에게 뜨거운 차를 한잔씩 나누어 주었다. 혹한에 생고생을 불평했던 대원들은 대대장의 기습적인 격려에 오히려 감동해서 이번 야간작전에서는 침투한 적을 반드시 잡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드디어 , GOP통문이 열리고 대원들은 두꺼운 동계복장 때문에 끼우뚱거리며 DMZ안에 발을 디뎠다. GOP통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대대장과 통문 소대장의 걱정어린 눈빛을 뒤로한 채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너무도 조용한 침묵 속에 인적이 끊어진 눈 덮힌 DMZ는 우리 작전조를 반겼지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대남방송과 ‘사각 사각’하는 눈 밟는 소리만이 혹한과 친구가 되었다. 약 1시간 가까이 이동하는 동안 방한복 속에서는 땀이 솟기 시작했고 결국 매복진지에 도착 했을 때는 이마에도 땀이 송송 맺혔다. 진지 내의 눈을 치우고 크레모아를 적 침투 방향으로 설치하고 인접 진지와 신호줄을 연결한 뒤, 수류탄을 꺼내 뚜껑을 개봉하여 바로 던질 수 있게 준비를 했다. 깔판을 깔고 진지에 앉으니 바로 이동간 흘렸던 땀이 식으면서 혹한이 옷자락을 스며들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앉아있는 무릅에서 열 소모가 그렇게 많은 줄은 전에는 몰랐었다. 땀이 식으면 추위를 느낄 때 무릅덮개로 허벅지와 무릅을 덮으니 꽤나 추위가 반감되었다. 군장 속에 있던 핫패드를 꺼내 배와 등에 붙히고 혹한과 싸우기 시작했다. 좌우에 있는 진지에 신호줄을 당겨 이상유무 확인했다. 온 세상이 하이얀 눈이 덮힌 한 겨울에 몰아치는 삭풍마저 괴롭히지만, 모두들 잘 견디며 두 눈을 부릅뜨고 혹시 침투하는 적을 색출하여 처단하기 위해 얼음 같은 소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얼어가는 손가락을 계속 꼼지락대며 밤을 지새웠다. 침투로만 뜷어지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삼천평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춤추는 별들과 박자를 맞추듯 대남방송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지상에선 새하얀 눈꽃들이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남과 북의 심리전 방송에 장단을 맞추는 통에 추위도 졸음도 적을 잡아야 한다는 긴장감도 잠시 사라지며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우측 진지에서 신호가 왔다. 전방에 미상 물체가 식별되었다. 숨을 죽이며 전방을 주시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며 몇 분이 흘렀다. 등에는 아까 이동하며 흘린 땀이 아니라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신호줄은 내용 전파가 한계가 있다. 옆 진지에서 판단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소대장이 직접 가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은밀하게 옆 진지로 이동했다. 소대원이 지목한 곳에 필자가 보기에도 미상 물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미동도 없다. 만약 그대로 사격을 하면 매복 위치가 노출되어 오히려 침투한 적에게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다가 미동이 없는 것도 이상했지만 산짐승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돌을 들어 그곳을 향해 던지고 바로 사격자세를 취했다. 만약 적이면 바로 사격하려고 했는데 돌에 놀라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하니 역시 산짐승이었다. ▲ DMZ 산양 및 동계 훈련하는 국군장병 모습 [사진출처=동영상 캡처 / 국방부] 발견해 보고한 대원에게 졸지 않고 근무를 잘했다는 칭찬을 하고 진지에 돌아오니 식은 땀이 추위를 더 압박해 왔다. 가장 심한 것은 발이었다. 그때 즈음이면 완전 동태가 된 것 같았다. 식은 땀 때문에 두꺼운 방한화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덧 추워와 싸우는 시간의 끝이 다가왔다. 일출 한시간 전 즈음 무전기로 대대 상황실에서 신호가 왔다. 철수신호이다. 옆 진지로 신호를 보냈다. 철수 준비도 꽤 복잡하다. 경계병을 배치하고 크레모아와 신호줄을 회수했다. 진지 깔판과 기타 흔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인원 장비를 체크했다. 통문으로 복귀하는 발걸음은 가볍다. 비록 침투하는 적이 없어 성과는 없었지만 대원 모두가 무사한 것에 다행이면서도 보람을 느꼈다. 빨리 주둔지로 복귀해서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헌데 GOP 통문에서 문제가 생겼다. 통문 소대장이 아직 도착을 안했다. 대원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통문 앞에서 한시간 가까이 기다리고야 통과했고 통문 소대장은 늦게 나와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땅거미가 걷히고 동녁이 밝아올 무렵 5/4톤 트럭을 타고 복귀할 때에는 기온이 영하 20도 가까이 됐다. 코밑에 달린 고드름도 아랑곳 없이 마음은 포근하다. 삭풍의 혹한 속에 동상의 아픔도 극복하고 임무를 완수한 보람 때문일 것이다. 한 여름 매복작전시에도 갑작스런 소나기와 모기들이 대원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적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러한 장애물을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드는 것은 지휘관의 리더십이다. 악천후와 기타 리스크도 잘만 이용하면 오히려 성공요인으로 전화위복 (轉禍爲福)시킬 수 있는 조용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DMZ매복 작전이었고 '그 날' 하루도 무사히 또 지나갔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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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 GOP후방매복조에게 포박당한 '소대장'
    ▲ GOP매복작전 투입전에 즉각조치 야간사격 훈련중인 국군장병 모습 [사진출처=국방부] GOP 지역에서는 음주 불허, 소대원들과의 약속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 규정을 어긴 대가로 수색대대 매복조에게 포박당하는 수모 겪어 포박과 맞바꾼 소대원과의 술자리는 잊을 수 없는 기쁨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GOP 소대장으로 근무할 때 일이다. GP경계근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비무장지역(DMZ) 수색 매복 작전소대로 임무를 교대했지만 소대원들은 필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소대는 비록 GP에서 철수했으나 DMZ수색과 매복작전을 담당하는 부대이고, 소대 주둔지는 GOP지역이라서 사실 그 곳에서도 음주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도 GP에서의 완벽한 임무 수행을 위해 소대원들에게 금주를 지시했었다. GP철수 후 음주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GP철수 다음날은 작업이 없어서 약속대로 저녁 회식을 허락했다. 취사병은 신이 나서 저녁과 함께 회식준비를 하고 소대원들도 그동안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들떠 있었다. 헌데 술이 문제였다. 마침 부대에서 약 1시간 떨어진 민통선 안에 ‘민촌’과 ‘재건촌’이라 불리는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있는데 그 곳에서는 직접 담근 밀주를 팔고 있었다. 그 날 오후 똑똑한 선임병 등 2명에게 돈을 주고 술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돌아올 시간이 지나면서 서산에 해가 기울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본부에 알아보니 심부름 나간 이동로 상에서 수색대대의 GOP후방 매복이 계획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점점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혹시 심부름 갔던 병사들이 매복조에 걸려 붙잡힌 것은 아닌가..? 무슨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닌가? 온갖 생각에 방에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마을에서 소대로 들어오는 이동로 방향으로 마중을 나갔다. 약 20분 정도 내려왔는데 매복조를 만났다. 갑자기 능선 위에서 “손들어..!”하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필자는 “수고한다. 요 바로 위에 있는 작전 소대장인데 심부름 나간 병사들 찾으러 나왔다”하고 이야기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소총을 장전하는 ‘철컥’소리도 들렸다. “엎드려.. 움직이면 쏜다”라고 매복조는 은밀하게 외치며 미동도 안했다. 반복되는 압박에 결국 필자는 엎드렸다. 매복조 일부가 능성에서 내려와 엎드린 필자를 포박했다. 폭박된 추레닝 복장의 필자를 매복 조장인 선임하사가 다가와 확인했다. “죄송합니다. 매복 중이라 확인 전까지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마침 그날 매복조 소대는 수색대대에 근무하는 육사동기의 소대원들이었다.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일몰 후에 GOP지역에서는 이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규정을 어긴 것은 필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근무 잘하고 있다”라는 칭찬과 격려만 하면서 “복귀 후 육사 동기인 소대장에게 안부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혹시 심부름 나간 병사들을 발견하면 안전하게 통과시켜 달라”는 부탁을 하고 그대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부대 막사로 돌아오는 길에 심부름 나간 병사들이 나처럼 또 포박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소대막사에 도착하자 오히려 소대원들이 나를 걱정하고 있었고 심부름 갔던 병사들은 이미 복귀하여 회식 준비에 웃음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매복지점을 인식하고 우회하여 돌아와 있었다. 필자는 폭박 당한 수모에 대해 일체 입을 닫고 씁쓸한 미소를 띄며 소대원들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GP에서 소대원들과 약속을 할 때에도 원래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했어야 했을 것 같다는 후회도 물밀 듯 밀려왔다. 계속되는 휴식과 무료함은 또다른 스트레스와 더 안일한 휴식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힘들고 어렵게 수준 높은 임무를 수행했을 때의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임무완수 후 갖는 휴식은 일상의 휴식보다 더 큰 안식을 가져온다. 당시 어렵게 마련한 소대원들과의 술자리는 필자의 군생활 중 가장 즐거운 회식이었다. 다음날 수색대대 매복조 소대장인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너 포박 당했다며…?” 하고는 너털 웃음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필자는 전화한 동기의 소대원들이 근무를 철저하게 잘했다는 칭찬 밖에 할 수 없었고 같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포박의 수치도 모두 묻히며. 하나로 똘똘 뭉친 우리 소대원들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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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8) 트럼프와 김정은도 못들어간 DMZ천연폭포 속 '일탈의 추억'
    ▲ 군견을 앞세워 DMZ 지뢰밭을 수색하는 모습 [사진출처=국방부] 트럼프와 김정은도 구경 못한 진짜 DMZ의 이야기는 아직도 귓가에 6·25남침전쟁 이후 인적 끊긴 DMZ지역, 격전의 잔해인 철모, 실탄 등이 즐비 DMZ의 천연 계곡물에 몰래 몸을 담그기, 그 '시원했던' 일탈의 추억 화공작전으로 녹은 지뢰 밟은 사고 발생, 인명 피해 없었지만 아찔했던 순간 DMZ소대장은 어떤 상황하에서도 '임무 완수'가 중요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달 30일 역사적인 DMZ(비무장지대)회동을 단행했다. 역사는 이처럼 의표를 찌르는 돌발행동을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그러나 말이 DMZ이지, 북미정상이 실제로 50여분 동안 회담을 가진 곳은 판문점 남측 지역인 '자유의 집'이다. DMZ깊숙한 곳의 비경은 구경조차 못했다. 트럼프와 김정은도 구경못한 DMZ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소근거리는 듯 하다. 필자는 GP경계근무를 마치고 DMZ 수색 매복 작전소대로 임무를 교대했다. DMZ 작전이 있는 날에는 점심을 일찍 먹고 소대 막사에서 1차 군장검사와 즉각조치 사격을 한 뒤 GOP통문으로 이동한다. 통문 앞에서 2차 군장검사를 하며 소총에 실탄을 장전할 때 ‘철컥’거리는 소리는 유난히도 크게 들리며 다시 한번 더 긴장하게 만든다. GOP통문 소대장이 투입인원을 확인한 뒤 통문이 ‘끼익’하고 열리면 선두 경계조는 먼저 투입해 통로를 정찰한다. 경계조의 수화 신호가 오면 본대와 후미경계조는 통로로 들어선다. 지뢰밭 DMZ안으로 수색조가 모두 들어오면 GOP통문이 닫히는 또 한번의 ‘철컥’소리는 온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며 망망대해 안개바다에 표류하는 조난배가 된 기분이다. 그때부터는 모든 작전이 소대장 책임으로 이루어 진다. 태양열이 작열하는 폭염에 두꺼운 방탄복은 온몸에서 땀을 쏟아내게 하지만 지열이 더 뜨거워 온몸이 터질 지경이다. 게다가 비탈길 경사를 오를 때에는 탈진 일보직전이다. 그래도 “간첩잡아 영웅되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투입되어서 인지 모두들 바짝 긴장하며 혹시 침투하여 은거하며 기습 사격을 해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눈빛은 빛났다. 사실 2년 전에도 소대 작전 구역인 442고지에서 적과 조우하여 1명을 사살한 경우도 있었기에 더욱 주변을 살폈다. 소대의 책임지역은 우리 소대만이 담당한다. 아무도 그 지역을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통로에 실장애물을 설치했다. 매번 수색시마다 선두는 실장애물이 끊어졌나 확인하며 통과를 했고 이상시에는 수화신호를 보내 각별히 주변을 살폈다. 동물이 지나가다 끊어질 수도 있고 진짜 공비가 침투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소대 작전 책임지역내의 남대천은 DMZ군사분계선을 따라 북에서 내려온다. 남대천은 6·25남침전쟁 이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곳곳이 지뢰밭이다. 함부로 들어가면 잠자던 지뢰가 숨을 쉬며 언제든지 폭발하여 인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수색작전을 하며 DMZ를 돌아보면 6·25남침전쟁의 잔해들이 널려있다. 총알이 관통해버린 녹쓴 철모, 쏘다 남은 M1소총탄들과 탄띠, 수류탄, 그리고 철조망…. 치열했던 격전의 순간들이 그려진다. 반면 민가였던 곳에서는 평화롭게 살았던 집터와 맷돌 조각들이 “민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 작전소대장으로 DMZ 지뢰밭을 누비던 시절 수색조와 자연수에 목욕 후 기념 촬영모습 [사진=김희철] 능선을 넘어 계곡으로 들어서자 DMZ 계곡 물소리가 폭염에 지친 몸을 달래준다. 나무 그늘을 통과할 때의 시원한 바람은 마치 에덴동산에 온 기분이었다. 그때 후미 경계를 책임지며 따라오던 분대장이 건의를 했다. “소대장님, 잠깐 휴식하시죠? 소대원들이 더위에 지쳐있습니다.” 필자도 더위를 먹어 답답했는데 분대장의 건의를 허락하고 계곡 시냇물가에 앉았다. 바로 앞에는 작은 천연폭포가 있었고 바로 밑에는 작은 호수같은 물덩이가 있었다. 기왕에 휴식을 할 바에는 화끈하게 쉬게 해줄 생각으로 경계병을 배치하고 소대원들에게 시원한 자연수에서 목욕까지 허용했다. 군화를 벗고 아무도 찾지 않았던 DMZ자연수에 발을 담그자 오히려 발이 얼 것 같이 시원했다. 경계병도 교대시켜 전원이 목욕을 한 후 다시 수색작전에 임했다. 통문 방향으로 복귀하기 위해 시냇물을 건너는 중 이었다. 맨 후미에서 실장애물을 재설치하며 따라오던 분대장이 급하게 보고했다. 얕은 시내를 통과할 때는 주로 돌만 밟고 지나간다. 헌데 전 소대원이 밟고 지나간 조그마한 돌이 바로 폭풍지뢰였다. 봄이 되면 울창한 숲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기 때문에 북한 민경초소에서는 북풍이 불어올 때 화공작전을 한다. DMZ에 불을 질러 숲을 태워 시야를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우리 쪽은 남쪽 군사시설이 피해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맞불도 놓는다. 덕분에 산양 등 천연기념물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그 화공작전으로 플라스틱 지뢰가 열기에 녹아 뇌관부근이 딱딱하게 굳어져 마치 돌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뇌관이 녹은 지뢰는 폭발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수색작전을 계속 했다. 혹시 침투하여 은거하며 기습 사격을 해올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적을 찾기 위해…… 이 길은 내가 가야하는 길. 나에게 실패나 성공은 중요하지 않다. 필자를 믿고 따르는 소대원들의 두 눈은 나를 보고있고, 필자는 그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소대장이라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오직 나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만이 남아 있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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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0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7) 국민의 위문 손편지에 압록강 국경수비대장 꿈을 키우다…
    ▲ 방탄조끼와 우의를 입고 DMZ 안개바다 속에서 계곡과 능선을 누비는 모습[사진제공=김희철] DMZ안개바다의 孤島, 마도로스 GP장의 꿈은 DMZ가 아닌 압록강 국경수비대장.. ‘내 생명 조국을 위해…’,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정신자세로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 정성어린 국군장병 위문 손편지가 전방을 지키는 힘이 되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유난히 밝은 달빛아래 비치는 희미한 산등선과 계곡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을 찾기 위한 투쟁을 밤새도록 하면 눈은 올빼미가 되고 귀는 토끼귀가 된다. 이곳 저곳 기웃대면서 피곤에 지친 소대원들을 격려하고 졸고 있는 병사들을 깨우다 보면 어느덧 동녘은 훤하게 밝기 시작하고, 골짜기 골짜기에서 서서히 안개가 피어 오른다. 샘 솟 듯 피어나던 안개는 하나 둘 씩 모여 시내물이 되어 흐르고, 다시 모여 강이 되고, 점점 안개바다가 되어버린다. 보이던 산등선과 계곡은 안개바다에 잠기고 우뚝 솟은 GP만이 돗단배가 되며 마도로스 GP장은 홀로 외로운 항해를 떠난다. 저 멀리서 파문을 일으키며 몰려오는 안개 파도를 헤치고 낚싯줄울 길게 드리우고 월척(간첩/공비)을 찾아 잡는 고깃배 …., 필자는 그 외로운 어선의 선장이 되어 안개바다 속을 계속 항해했었다. 얼마후에는 이 배(GP)에서 하선하여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DMZ지뢰밭을 누비며 직접 수색과 매복작전을 통해 월척(간첩/공비)사냥에 나서게 된다. 관측하고 보고 만하는 마도로스에서 大漁(간첩)를 찾아 직접 잡는 마도로스 어부(작전소대)로 교대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GP를 인계하고 DMZ수색/매복작전을 담당하는 소대로 임무를 교대할 때를 앞두고 840m거리의 적 민경초소를 볼 때는 갑자기 내 눈에 살기를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도 가까운 거리의 적 민경초소에 몰래 뛰어가서 몇 놈의 목이라도 따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의(戰意)가 불타던 생도시절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지뢰밭과 마주 보는 적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을 코 앞에 둔 DMZ안개바다는 너무도 평화롭다. 生과 死의 교차로에 서있는 군인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타성에 젖은 것인가? 그래도 필자가 근무한 GP는 사단에서 적과 가장 가까운 거리의 VIP코스였다. 적을 관측하고 심리전을 전개하며, 상급 기관 및 외국 손님까지 방문하는 곳이라 바쁘게 근무하다 보니 어느덧 교대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교대를 얼마 앞두고 대대교육관 김중위에게서 전화가 왔다. 참모 중대장들과 심의를 했는데 필자가 지휘한 소대가 최우수GP소대로 선정되어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대대 본부에서는 위생병이 군생활에 회의를 품고 자살하는 사고가 있었다. 또 휴가 병사는 집에서 놀러갔다가 뱀에 물려 인접사단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도 발생하여 부대원들의 사기가 침체일로에 놓여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대대장이 방문한다는 전달이 왔다. 당시의 전기사정은 좋지 않았다. 수시로 전기가 끊어져 급수도 직접 물지게로 운반해야 할 경우도 있었다. 그날도 전기가 끊어져 대대장 방문 대비 보고서도 어쩔 수 없이 석유 호야등 밑에서 급하게 작성했다. GP내무반에까지 들어오신 대대장은 소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최우수 GP소대 표창’을 수여해 주셨다. 표창장을 받아 든 소대원들은 자신들이 前 소대장을 상급부대에 청원하여 보직해임시킨 장본인이란 것을 잊어버린 채 사기는 하늘을 찌르며 천정의 유리를 깼다. 그런데 필자는 표창장을 받아 들고도 배가 고팠다. 필자가 생도시절 “화랑대에서 동작동(현충원)까지...”를 외치며 견위수명(見危授命) 하는 자세로 지키고 싶은 곳은 남북으로 분단된 반쪽짜리 국경선이 아니라 진정한 한민족의 국경선인 ‘압록강 국경수비대’에서 군인으로 국경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의 꿈은 ‘압록강 국경수비대장’이었으나 현실은 DMZ 한 가운데 외롭게 떠있는 섬 중에 하나인 GP장이었다. 제한된 인원들과 동거동락하면서 근 6개월 가까이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을 하면 따분하고 지루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답답함을 해소시켜주고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들이 존재했다. 간혹 사단 심리전부대에서 심리 요원인 여군하사들이 GP를 방문해 적 민경초소에서 잘 보이는 관측대에서 노래도 하고 병사들과 춤을 추며 심리전을 전개할 때는 GP 축제의 날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는 시절이라 부모형제나 친구들의 손편지가 사기고양에 큰 도움이 되였다. 여자 친구의 편지나 선물이 오면 본인 뿐만 아니라 타 전우들도 모두 들뜨는 분위기 였다. 특히 정성어린 어머니의 편지를 전 소대원들에게 낭독할 때에는 눈물이 글썽해지는 소대원들도 있었다. 소대장은 국가를 위하기에 앞서 동거동락하는 소대원들을 보며 그들을 위해 위험한 임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대원들은 학생들을 포함한 국민들의 장병 위문 손편지와 선물 보따리를 받을 때 외로운 고도에서 혼자만이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응원해주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임무를 다한다. 최전방에서 근무를 하다가 후방으로 재 배치 받은 동료 장교들까지도 전방 생활에 대한 애틋함과 추억에 전방 동료에게 격려와 위문을 했었다. 국민들의 위문편지처럼 장병들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군인들은 존재한다. ▲ 태릉 화랑대 대강당 입구에 있는 “내 생명 조국을 위해..”라는 기념비와 일기장[사진제공=김희철] 지금도 최전방 155마일 휴전선의 DMZ 안개바다와 푸른 하늘과 바다에서 우리의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피끓는 젊음을 불사르고 있는 많은 참군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국민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는 그들의 꿈은 아마도 ‘압록강 국경수비대’ 처럼 통일된 미래의 조국 영토를 지키는 군인이 되고 싶을 것이다. 생도시절, 태릉 화랑대 대강당 입구에 있던 “내 생명 조국을 위해..”라는 기념비 앞에서 청운(靑雲)의 꿈을 키우며 “화랑대에서 동작동(현충원)까지…”를 한없이 외쳤었다. 이 한 목숨을 국가를 위해 바치겠다는 각오를 잊지 않고 실천하는 참군인이 많아 질수록 우리나라는 더욱 번영하는 강국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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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6) 대한민국 지뢰 잔혹사를 돌파한 어벤저스들
    ▲ 목함지뢰 3발 폭발, 수색 중인 부사관 2명에게 중상 입힌 DMZ 지뢰도발 현장 [방송화면 캡처]2015년 북한군이 불법매설한 목함지뢰 밟은 우리 부사관 2명 중상 6·25전쟁 이후 지뢰매설 추정치, DMZ 남측 127만말 북측 80만발 2001년부터 민간인 지뢰사고는 40건, 군 사고는 26건이 발생, 휴전 후 4000명 피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수십년 동안 '지뢰 잔혹사'를 겪어왔다. 그 가슴 아픈 역사를 정면돌파해온 숨은 어벤저스들을 소개한다. 2015년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불법으로 침범해 서부전선 DMZ 철책 통문에 의도적으로 매설한 목함지뢰에 의해 DMZ수색작전 중 우리 부사관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사실 軍은 북한의 도발에 의해 피해도 입지만 기존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면서도 많은 인명 손실을 겪는다. 최근 국제 민간기구 ‘국제지뢰금지운동’(ICBL)도 DMZ의 경우 1㎡당 2.3개꼴의 지뢰가 매설돼, 세계 최고 수준의 지뢰 밀도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DMZ 전 지역은 6·25전쟁 이후 출입이 통제된 미확인 지대로 지뢰 매설량을 추정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것이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지뢰제거연구소는 각종 군 자료를 토대로 남측에는 127만말, 북측에는 80만발, 합계 약 200만발의 지뢰가 묻힌 것으로 추정했다. 또 남한 지역에만 DMZ에 52만발, 민통선 이북에 74만발, 민통선 이남에 1만발이 설치된 것으로 봤다. 문제는 전체 지뢰지대 중 미확인지대가 94.8%나 된다는 것이다. 특히 DMZ 내부의 경우 기확인지대가 2.7%뿐으로 사실상 모든 지역이 미확인지대다. 철책선 순찰로 옆에는 ‘들어가면 죽는다’, ‘미확인지뢰지대’ 등의 경고판이 곳곳에 있다. 국방부는 대인지뢰 90만발로는 M2, M3, M14, M16A1 등을, 대전차지뢰는 M6, M7, M15 등을 DMZ에 묻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부분이 6·25전쟁부터 1980년대까지 묻은 냉전의 산물이다. 약 40만발 묻힌 발목지뢰로 불리는 ‘M14’는 플라스틱 재질로 무게가 9.4g에 불과해 폭우가 오면 유실되곤 한다. 밟으면 발목을 앗아 간다. M16A1은 밟으면 공중으로 도약해 폭발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DMZ수색작전 중 우리 부사관 2명에게 중상을 입힌 북한의 대표 지뢰인 ‘목함지뢰’는 폭약의 파괴력이 M14의 7배다. 나무 상자에 TNT폭약을 넣었기 때문에 홍수가 나면 물에 떠서 유실되곤 한다. 2001년부터 2016년까지 민간인 지뢰사고는 40건, 군 사고는 26건이 발생했다. 휴전 후부터 따지면 4000명이 넘게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 전방지피와 지뢰제거 공병팀의 시범모습[사진제공=국방부] 1982년 GP장 시절 인근부대 지뢰제거 중 폭발로 간부 순직 및 병사 실명 1987년 지뢰제거에 솔선수범(率先垂範) 하다 순직한 故 강병식 대령 1982년부터 필자가 근무했던 승리부대는 GP현대화 및 추진철책 공사 위해 많은 부대가 DMZ에 투입됐다. GP장근무를 하면서도 GP현대화공사장 확장과 진입로 개척을 위해 주변 지뢰 제거작업을 했다. 어느날 인접 GP에서 유승한 중위(학군19기)와 한황진 중위(육사37기)가 진입로 개척을 위해 불도저까지 동원하여 지뢰 제거 및 도로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유중위는 안전을 책임지는 선탑자로서 불도저에 타서 운전병을 통제하였고, 한중위는 소대원들을 데리고 주변 경계를 하였다. 불도저의 삽날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순간 ‘꽝’하는 소리와 함께 대전차 지뢰가 터져 삽날1/3이 파편이 되어 흩어졌고 도져는 부서진 삽날을 들어 올린채 지뢰지대로 점점 더 들어갔다. 지뢰폭발로 흩어진 파편은 운전병의 양눈을 파고들었고 선탑자 유중위와 한중이도 온몸에 파편이 박혔다. 다행이 모두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치명상은 아니였지만 안면이 피범벅이 되었다. 선탑자 유중위는 양눈에서 피가 흐르는 운전병 대신 불도저를 급정거 시키고, 상급부대에 사고 보고를 했다. 아찔한 순간이 었다. 사전 지뢰탐지를 했지만 깊히 밖혀 있던 지뢰를 찾지 못한 탓에 사고가 발생했고 의무후송을 간 운전병은 실명하고 두명의 중위는 얼굴이 곰보가 되어 있었다. 필자가 GP장을 마치고 DMZ추진철책 설치를 위한 지뢰지대 개척 작업시에는 소대원들 모두 머리카락과 손톱을 깍아 유서와 함께 편지봉투에 넣어 소대에 보관하고 DMZ로 투입했었다. 인접 사단에서 중대장 근무를 하던 이충원 육사동기는 지뢰제거 작전시 지뢰폭발로 중상을 입어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았고, 훗날 유신사무관으로 나가 통일부에 근무하기도 했는데 그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 전방 민통선 이북에서 지뢰제거중인 국군장병 모습[사진제공=국방부] 1987년 필자가 사단작전장교 근무시절 당시의 전초(GP담당)대대장 고(故) 강병식대령(육사31기)은 GP주변 지뢰제거 임무를 부여받고 맨 선두에 서서 지뢰제거를 하다가 M16A1 대인지뢰 폭발로 두다리가 절단되어 순직했다. 바로 뒤에 있던 중대장과 소대장도 부상을 당해 후송되어 간신히 회복되었으나 트라우마 때문에 군생활을 다하지 못하고 조기 전역했다. 지휘관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 맨 앞에서 “나를 따르라(Follow me..!)”하는 솔선수범(率先垂範)을 보이는 위치이다. 강 대령은 대대장으로서 임무를 다하기 위해 부하들에게 지뢰제거의 선두를 맡길 수도 있었는데 너무도 부하들을 사랑한 나머지 모범을 보였고, 안중근 장군의 유묵처럼 ‘견위수명(見危授命, 위기를 보면 목숨을 바친다)’을 실천하다 순직했다. 필자가 DMZ추진철책 설치를 위한 지뢰지대 개척 작업 임무를 수행하다가 상급부대 명령에 의해 대대본부 작전항공장교 보직을 받고 소대장직을 인계한 후 얼마되지 않아서 그 소대의 선임하사도 지뢰폭발로 운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군인들의 위국헌신(爲國獻身)하는 자세는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국민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두려움을 감수하면서 국가를 위해 임무를 완수하는 군인들과 운명을 달리한 순직자들에게 감사하고 추모하며 보답을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순직한 이들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 대통령은 지난 11월 ‘연평도 포격도발8주기 추모식’과 이번 3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현충일 천안함-연평해전 유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놓고 김정은 사진 테이블에 올려놓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 씨 등 가족들을 울먹이게 만들었다. ▲ 2019년 ‘518민주화운동기념식’에서 문대통령이 기념사하는 모습[동영상캡쳐] 하지만 문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기념식’에 참석하여 장시간의 기념사까지 하였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음의 공포 속에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을 국가통수권자가 간과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대통령은 국군의날 기념식 및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근간은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 군사력과 안보태세"이고 "이기는 군대가 돼야 한다"면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해서 강조했다. 대통령의 기념사처럼 “국가다운 국가, 싸워 이기는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나라를 위해 생사의 기로에서 주저함 없이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한 전몰장병들과 그 가족들을 최우선으로 끝까지 책임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정부의 배려와는 무관하게,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현재 이 시각에도 견위수명(見危授命)하는 우리의 자랑스런 국군장병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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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5) 호국보훈의 길에도 통하는 미스트롯을 키운 힘
    ▲ 미스트롯에서 맹활약한 가수 송가인 및 홍자[동영상 캡처] ‘미스트롯’의 최고 시청률은 송가인과 홍자간 '선의경쟁'의 힘 참군인 동기인 고(故) 한황진 중령과의 애틋한 경쟁 생각나게 해 고(故) 이현부 중장과 한 중령 헬기사고로 함께 순직해 6월 호국보훈의 달 맞아 대의를 위한 희생의 길 다짐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최근 급부상한 연애인이 미스트롯 우승자인 ‘송가인’이다. 치열한 예선전에서 기존가수인 ‘숙행’과 ‘김양’ 등의 오랜 연애인 경험을 활용한 경쟁이 경연을 재미있게 만들었고, 절대 극한의 절정은 준결승전에서 ‘홍자’와 ‘송가인’의 맞대결 경쟁(競爭)을 유도하여 극적인 긴장과 희열을 느끼게 만들었다. 필자가 GP장 근무시에도 당시의 전성수 대대장은 GP장의 선의경쟁(善意競爭)을 유도하여 자발적인 노력으로 부대발전에 기여하게 했었다. 겨울이 다되어 연말 우수부대 선발 시기가 되었다. 어느날 야간 경계작전을 마치고 아침 마도로스(GP장) 지휘보고까지 끝냈다. 소대원들의 취침상태와 오전 경계근무자를 배치를 확인한 후 오침에 들어가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방금 지휘보고를 드렸던 대대장이었다. “김중위 오늘도 수고했어 자네들 때문에 내가 발을 주~욱 벗고 잘 수 있네…”하면서 “우측 중대의 한황진 중위(육사 37기, 동기)는 GP의 경계진지에 보조 장비를 설치해 경계효과를 높이고 있던데 한번 참고해서 잘해봐...”라고 뜬금없는 소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대대장의 말이 귓전을 맴돌아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침상에서 나왔다. 바로 우측 중대의 한중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야, 어떻게 했길래 대대장이 극찬을 하며 너에게 배우라고 하냐?” 한중위는 껄껄걸 웃으면서 “웃기지 마라, 대대장님이 어제 자기 GP에 들어 오셔서는 좌측의 김희철이는 ‘이런거 저런거’ 등 색다르게 운용하여 GP원들의 사기도 높이고 경계 효과도 극대화 시킨다며 너에게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하더라 대대장의 치열한 선의경쟁(善意競爭) 유도에 우리 둘은 걸려든 것이었다. 하지만 즐거웠다. 전화를 통하며 한중위와의 우정은 더욱 돈독 해졌다. 당시 우측의 선봉 GP장이었던 고(故) 한황진 중령은 육사를 3등으로 졸업하고, 럭비부 주장까지 할 정도로 실력과 리더십이 뛰어난 군인이었다. ▲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한황진 중령 묘비[사진제공=김희철] 필자가 태풍부대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던 꼭 27년 전, 1992년 2월 14일에 경북 선산 일대 야산에서 군용헬기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평소 존경하던 7군단장 고(故) 이현부 중장과 사랑하는 동기생 한황진 중령을 떠나보낸 날이다. 이들은 전술토의 참가를 위해 헬기를 타고 이동 중 경북 선산 일대 야산에서 헬기가 추락해 탑승한 이현부 군단장 등 7명(작전참모 대령 허정봉, 군수참모 대령 이원일, 감찰참모 대령 노영건, 비서실장 소령 한황진, 전속부관 중위 서상권, 헬기승무원 상병 조규상)이 동시에 순직했다. 故 이현부 장군은 육사 졸업시 학업성적과 리더십이 가장 우수한 생도가 받는 대표화랑상을 수상했고, 군사전술과 작전지휘 능력과 리더십을 포함한 인품이 탁월하다는 정평을 얻어 군단장직책에도 동기생 중에 가장 빨리 보직됐으나, 그만 취임 두 달 만에 사고를 당했다. 이들의 죽음은 당시 그들을 군생활의 멘토로 삼고 있던 필자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또한 “추락 당시 수행원 모두가 이 장군을 끝까지 보호하려 장군을 감싸고 있었다”라는 사고수습자가 전해준 증언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숙연케 했다. 이 장군과 한 중령의 사망소식에 많은 장병의 조문이 있었으며, 전역한 병사들까지도 수많은 애도를 표해왔다. ‘시졸여애자고 가여지구사(視卒如愛子故 可與之俱死)’, 즉 “장수가 병사들을 사랑하는 아들 돌보듯 한다면 가히 생사를 같이할 수 있다”는 손자병법 지형편을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죽어서도 함께 했다. 대전 현충원의 묘비 번호를 1048번부터 1052번까지 나란히 부여 받고 안장되었고, 사랑하는 동기생 故 한 중령은 새로운 군번인 묘비번호 ‘1-203-1051번’을 부여 받았다. 故 이현부 장군과 한황진 중령은 국가를 위해 순국했다. 이들은 군에서 선후배들의 존경과 신뢰를 한없이 받았고 모범적 근무를 통해 군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기에 이들의 순국은 남을 위한 희생이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조국을 더욱 뜨겁게 사랑했던 삶은 오늘날까지 많은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필자는 대대장의 각별한 사랑을 나누어 받았던 한중령과 추억이 많았다. 임관해서 최초 임지인 승리부대의 전입 동기였고 가장 늦게까지 오랫동안 같이 근무한 전우이기도 했다. 한중령은 동기들 중에 너무도 뛰어나 수경사 육사교수부 등 주요부서에서 차출되었지만 자신마저 야전을 떠나 생활여건이 좋은 곳으로 가면 누가 전방을 지키냐며 야전을 고수했던 참군인 이었다. 필자는 매년 2월14일이 되면 대전 현충원을 찾아 군생활을 하면서 한중령이 못한 것을 내가 대신해서 군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었다. 이러한 선의경쟁(善意競爭) 파트너가 있어 좀더 최선을 다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능력도 부족한 필자가 장성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생각도 해본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면서, 선의경쟁의 파트너로 나를 책찍질하게 만든 故 한황진중령을 비롯한 옛 전우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책무를 다하는 수많은 군인들처럼 대의를 위한 희생의 길을 다시 한번 더 조용히 다짐해 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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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4) 독수리를 간첩으로 오인한 부하를 격려하는 목민관(牧民官)이 필요
    ▲ 필자가 근무하던 DMZ내 GP를 위문 방문한 당시 연대장(예비역 대장 박세환), 대대장(중령 전성수)과 기념 촬영한 모습이 게재된 당시의 전우신문[사진제공=김희철] 힘이 됐던 박세환 대장의 GOP수칙, “충성, 효도, 영웅!” 리더의 약속 이행이 조직 사기 높여 독수리를 오인 관측해 전 GOP부대가 투입 소동, 연대장은 오히려 격려 적극적 실패'를 격려하는 리더가 조직의 '창의성' 키워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GP장 근무 시절 연대장은 박세환 대장(前 재향군인회장)이었다. 그분은 체구가 크셔서 짚차로 이동하실 때에 차가 한쪽으로 기울여져서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었다. GP투입 후 GP 현대화 공사로 소대원들은 경계근무에 공사 지원까지 힘들게 근무하여 거의 지쳐 있었다. 때마침 군사령관이 현대화 공사 GP 중 한 곳을 지도방문하여 격려한다는 연락이 왔고, 소대는 VIP 방문을 대비해 각 진지와 교통호 보강 공사, 생활관 환경 조성 작업 등에 불철주야 전력투구했는데, 방문 당일 기상 악화로 연기가 반복되다가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소대원들은 실망했지만 최종 VIP 방문 예정일에 위 사진처럼 연대장이 대신 GP를 격려 방문하여 그나마도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박 연대장은 대대장 시절부터 GOP부대를 지휘할 때에는 “경계잘해 충성하고, 무사고로 효도하며, 간첩잡아 영웅되자!”라는 구호를 강조 했었다. 당시 철책을 담당한 모든 부대는 연대장의 구호를 매일 복창하여 각오를 다지며 이를 생활화 했다. ▲ 동부전선의 현대화 된 GP와 통문 모습 (사진제공=국방부) 그러던 중 어느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오전 오침을 하고 있는데, 관측병이 긴급 보고를 하여 눈을 비벼 뜨며 전망대에 올랐다. 보고장소를 쌍안경으로 확인하니 새까만 복장의 미상 한명이 북쪽에서 안보이는 산 계곡에 앉아 있었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연대장의 구호처럼 “간첩잡아 충성할 기회”를 포착했다 싶어 바로 상급부대에 보고를 하고 소대원들을 전원 투입 후 일부 분대는 의명 현장으로 투입할 준비를 한 상태에서 계속 관측하였다. 발견된 지점은 군사분계선(MDL) 남쪽으로 야간에 월남하여 귀순하려는 탈북자 또는 침투한 간첩으로 판단했다. 경계강화 지시가 하달되어 GOP 전부대는 전원투입하고 상급부대 수색조도 비무장지대(DMZ)로 투입할려고 GOP 통문에 대기하는 와중에 그 물체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필자는 빨리 투입 못한 작전조가 답답했는데, 바로 그때 관측된 지점 하늘로 날개 펼친 모습이 2미터가 넘는 새까만 독수리가 날아 오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덩치 큰 독수리가 앉아 있던 모습을 사람으로 잘 못 판단한 것이었다. 난감했지만 즉각 상급부대로 수정 보고하고 일련의 긴급상황은 종료되었다. 하지만 야간 근무 후 피곤함을 풀기위해 오전 취침 중에 긴급 투입된 소대원과 인접 다른 부대원들에게는 죄송했고 상급부대 상황근무 선배들의 정확히 판단해 보고하라는 쓴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GP를 방문한 연대장은 오인 보고 상황에 대해 핀잔 보다는 보고 시기를 놓치지 않은 것을 칭찬을 하면서, 덕분에 훈련 한번 잘했다며 독수리를 오인 보고한 병사를 질타하지 말고 격려해줄 것을 지시하셨다. 사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독수리의 모습은 완벽히 사람이었고 필자가 확인했을 때에도 똑 같이 보였기 때문이었고 이를 배려해주신 연대장이 감사했다. ▲ 비무장지대(DMZ)를 찾아 온 독수리가 숲과 전신주에 앉아 휴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에디슨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며 줄기차게 도전할 것을 강조하고 실천하여 인류 과학역사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는 발명왕이 됐다. 만약 관측병의 보고를 묵살하거나 오인에 대해 질책을 했다면 아마도 다른 병사들도 보아도 못 본 척 할 수 있었을 것이다. 軍도 마찬가지이지만 사회의 CEO나 리더들도 부하가 최선을 다했지만 성과가 미흡할 때에 조치를 잘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부하 직원들도 자신의 맡은 일에 대해 창의적이고 적극인 도전적 자세로 임할 수 있다. 작금에 공무원들에게 “철밥통 공무원 호봉제를 깨고, 직무급제도 도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청백리로 훌륭하게 근무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일부의 공직자들은 자리에 연연하여 복지부동(伏地不動) 하는 자세로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공무원들을 포함한 정치인 등 CEO나 사회 리더들도 이 이런 이기적이고 나태한 관행과 태도를 과감히 버리고, 국민들과 해당 조직을 위해 어려운 일도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목민관(牧民官)자세가 된다면 더 잘살고 행복한 국가가 되는 길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05-2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 김정은에게 공포 심어줄 대북 심리전의 추억
    ▲ 중동부전선 DMZ내 아군 GP에서 북한군을 혼란시키기 위한 시각 심리전 연출모습[사진제공=김희철]‘대북 심리전’은 피 흘리지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최선의 전투기술 김정은이 제일 두려워하는 비대칭 전력 시각심리전 벌이고 북한 병사와 '체제 우월성' 논쟁 전광판 심리전은 북한 민심 흔드는 효과만점 작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손자병법 모공(謀攻)편에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는 “싸우지 않고 적을 온전히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뜻이다. 6.25남침전쟁시 중공군들의 심리전은 대단했다. 꽹과리와 징, 북, 나팔 등으로 자기 부대의 규모와 주공 방향을 감추었고 배후에서 불어댈 때에는 방어하는 UN군이 포위된 것으로 착각하게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80년대 당시의 DMZ에서는 관측보고 위주의 아군GP운용을 했으나, GP에서 전시효과를 통해 북한군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종의 심리전도 전개하였다. 그날도 위 사진같이 관측장교와 모의하여 중요인물이 GP를 방문한 것처럼 시각심리전을 구사하자, 적 민경초소에서는 군관이 나와 쌍안경으로 관측하고 예하 병력들을 증강 배치하는 등 헛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희열도 느꼈다. 2018년 4.27남북 정상회담전인 4월23일부로 대북 확성기 방송 등 모든 대북 심리전이 중단 되었지만, 필자가 GP장 재직시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비롯하여 전광판, 대면 및 전단작전 등 각종 대북 심리전을 모두 구사하는 시기였다. 이중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단연코 대북 전광판 심리전이었다. 2004년 남북합의에 의해 중단하기 전까지는 대북전광판 심리전을 전개했었다. 영상을 송출하기 보다는 6개의 대형 전광판 안에 글자들을 조합하여 대북 시각방송을 하는 장비였다. 6~8미터 높이의 글자라 1~3Km거리에서도 보일 뿐만 아니라 야간에도 적 민경초소에서 10km 이상 떨어진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까지도 숙지 가능토록 만들었다. 또한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에겐 밤에도 환하게 반짝거리는 대북 전광판은 날아가는 총탄보다 더 무서운 마음속의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 올 수 있었다. 게다가 일기예보, 국제적 뉴스나 북한내에서 벌어진 사고 등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은 일상을 통해 남측의 우월성을 인식하는 효과도 컸다. 훗날, 한·일 월드컵 속보까지 북한 주민들에게 중계해주는 역할을 수행하자 대북 심리전은 최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탈북자 증가로 이어졌다. 북한 주민들은 DMZ를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 또는 민간인들의 증언을 담은 대북 전광판 정보를 신뢰하여 동요됐다. 야간에 남쪽으로 탈출시에는 대북 확성기 소리와 함께 방향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등대역할도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전광판 심리전을 재개하면 확성기 방송과 함께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면작전은 초기에는 상호 GP간의 거리가 약 840미터정도 이격되어 육성은 잘 들리지 않아 사진 같이 깔대기를 통해 북한 적공조(심리전)요원과 대화를 했지만 당시 아군은 메가폰을 활용했다. 북한 적공조(심리전)요원은 주로 전문화 된 군관으로 편성되었다. 우리 상급부대 지침은 아군도 GP장이 직접 대응하라는 것이었다. 그 날도 필자가 GP방문자로 시각심리전을 펼치자 북한 민경초소의 적공조요원이 깔대기에 대고 대면작전을 걸어왔다. “어~이, 철수친구, 오늘 높은 군관이 방문했나 보구나?”하며 돼지 뒷다리를 들고 나와 자기들은 항상 고기 반찬을 해먹는다고 자랑을 했다. 우리측 작전요원의 이름은 ‘철수’였고, 적공조 요원의 가칭은 ‘칠복’이었다. 필자도 대응 했다. “칠복이 우린 사령관이 오셔서 소고기, 초쿄파이 등 많은 것을 위문해주시고 가셨어 …”하며, “요즈음은 돼지 고기보다 소고기를 매일 먹어서 돼지고기 생각은 별로 없는데 칠복이는 모처럼 맛있게 잘 먹어”라고 응수하였다. 하루에 두세번 대면작전을 하면 그 대화 내용을 정리하여 상급부대로 보고했다. 한달 정도의 기간이 지나자 국방부 정보본부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대면작전을 통해 북한군의 현 실태를 알 수 있었고 이를 종합하여 중요 정보를 생산할 수 있어 표창을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상급부대 과장이 장관 표창을, 필자는 연대장 표창을 수상하는 성과도 올렸다. 총탄이 날아가고 피흘리는 전투 없이도 적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 심리전이다. 대북 심리전은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남측의 비대칭 전력이다. 대북 심리전을 통해 북한과 비교할 수 없게 발전한 우리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경제상황을 알려주어, 최전방에 배치된 북한 병사들 뿐만 아니라 그 후방의 주민들에게 까지 자유대한에 대한 동경심을 유발시켜 남쪽으로 귀순케 하고 북한군 내부의 동요까지도 조성할 수 있다. 최근에는 공식적으로는 남북간에 심리전을 중단하자고 합의되어 이러한 아까운 기회를 놓쳤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사이버 심리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변함없는 야욕을 갖고 행동해왔던 북한의 과거 태도를 볼 때 대북 심리전이 재개 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언제라도 재개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 심리전은 손자가 모공(謀攻)편에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싸우지 않고 적을 온전히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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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05-2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2) DMZ지뢰밭에서 ‘캡틴큐’ 찾던 아찔한 악몽의 순간
    ▲ 중동부전선 DMZ내 태극기 걸려있는 아군 GP와 840m 북한군 GP인 인공기가 걸려있는 민경초소 [사진제공=연합뉴스] ‘본립도생(本立道生)’은 기본이 서면 도(道)가 생긴다는 뜻 GP주변 지뢰밭에 캡틴큐 양주를 찾으러 들어갔었던 아찔한 순간의 악몽 기무부대는 동전의 양면(兩面)성 같이 꼭 있어야 할 필요악(必要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논어 학이편에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君子務本 本立而道生)’이란 말이 있다. “군자는 기본에 힘쓴다. 기본이 서면 도(道)가 생긴다”라는 뜻으로 기본적인 원칙 준수를 강조한 명언이다. 공자의 제자 유자는 “군자는 먼저 자신의 근본적인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근본적인 직무인 기본이 서면 도(道)가 생긴다.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얘기하면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GP장으로 취임하여 소대 실상을 파악해보니 간부부터 분대장, 막내 이등병까지도 그동안의 타성에 젖어 규정을 지키기 보다는 관행에 의한 순간의 융통성이 만연되어 있었다. 전방 GOP부대는 항상 실탄을 휴대하여 생활하며 생활관 밖을 나갈 때에는 반드시 3인조행동으로 이동하도록 규정화 되어있다. 이는 근접하여 눈앞에서 대치하고있는 북한군이 도발할 때에 즉각 조치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전방 GOP부대는 금주가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었다. 특히 북한군 민경초소와 84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GP안에서도 당연히 적용되는 것 이었다. 필자는 대원들에게 기본 원칙과 규정을 준수하도록 지시했으며 그 중에서도 음주는 특별히 엄금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의 대원들이 은밀히 음주했다는 정보도 들었기 때문에 과거의 관행과 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꼭 집어서 언급했다. GP에 부임한지도 어느덧 한 달 정도 지나갈 즈음, 일주일에 두번씩 추진되는 부식차에 연대 기무부대장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GP로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통상 하루전에 다음날 GP를 방문하는 인원을 사전에 통보하는 데 필자가 처음 GP에 들어올 때와 같이 불시에 들어오는 상황이라 걱정 되었다. 오전 취침이 끝나고 점심을 마친 뒤에 분대장이 인솔하는 도로 정찰 및 경계조가 GP투입로 상에 배치되었다. GOP통문이 열리고 출발한 5/4톤 트럭이 먼지를 내면서 통로를 따라 GP통문 앞에 도착했다. GP통문을 열고 맞이한 트럭에서 내린 기무부대장은 “부식과 전달한 문서 및 편지들은 선임하사관이 확인해서 인수하고 GP장은 자기와 같이 울타리 순찰을 하자”고 필자에게 제안했다. ▲ DMZ내 아군 GP의 통로에서 작업중인 용사들과 ‘90년대 전후로 유행하던 국산 양주인 ‘캡틴큐’ [사진제공 =국방부/연합뉴스] GP에는 교통호를 따라 대원들의 진지와 순찰로가 구축되어 있고, 순찰로 앞에는 2중 철책으로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밖에는 적의 침투를 거부하기 위해 M16 및 폭풍(발목)지뢰로 장애물지대를 형성해 놓은 상태였다. 기무부대장은 물자 및 부식 인수 확인을 선임하사관에게 맡긴 필자를 데리고 거침없이 울타리 순찰로를 따라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필자는 통문밖의 도로 경계조와 부식 인수조, 상황실 및 관측소의 배치된 대원들까지 염두에 두고 각 무전기 교신에 촉각을 세우며 따라갔다. 동측 교통로상의 한 진지에 멈춰 서서 기무부대장은 미소를 띄우며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김중위, 갑자기 불려와 GP장으로 취임하여 고생이 많지…?”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아찔하고도 충격적인 사항을 전달했다. 기무부대장이 멈춰 선 진지는 바로 몇일 전에 휴가 복귀한 분대장과 이야기를 했던 장소였다. 그 날은 전반야 근무시간이었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전령이 방문을 노크했다. 선임하사관이 잠깐 나오시라고 건의했다고 해서 식당에 가보니 분대장과 최선임 병장들이 닭도리탕과 켑틴큐를 식탁위에 차려놓고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로운 고도(孤島)에서 회식을 준비하고 GP장을 부른 것은 고마운 일이나 금주를 엄중히 지시했는데, 선임하사관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야단치면 선임하사관의 위상이 손상될 까봐 잠시 멈칫 하다가 “이자리는 선임하사관이 주관하시요 …”하고 인상을 쓰며 난 방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휴가 복귀한 분대장과 선임하사관이 방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회식자리를 해산했고 술자리를 준비한 것이 죄송하다며 용서를 빌었다. 필자는 선임하사관에게는 전반야 근무 통제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하고, 분대장을 데리고 교통호로 나갔다. 바로 기무부대장과 함께 서있는 그 진지 앞이었다. ‘캡틴큐’를 몰래 휴대하여 휴가복귀한 분대장에게 전 GP장 해임 과정과 GOP부대의 음주 엄금 규정 등을 다시 한 번 강조한 뒤, 몰래 가지고 온 캡틴큐 2병을 울타리 밖 지뢰지대로 던지라고 지시했다. 여기까지는 기무부대장이 잘했다고 격려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고참 병장 한명이 다음날 아침 통문/도로순찰 시 그 ‘캡틴큐’를 찾으러 울타리 밖 지뢰지대로 들어갔었다고 했다. 분명하게 아침에 도로정찰 출발하는 분대원들도 확인하고 통문도 잠갔는데 언제 그 고참병장은 지뢰밭에 들어갔었는지 의문스러웠다. 또 술병을 찾다가 지뢰를 밟아 폭발 사고라도 당했으면, 그 ‘캡틴큐’ 때문에 아까운 소대원도 잃어버릴 뻔한 아찔한 악몽의 순간이었다. 기무부대장은 진지 앞 지뢰지대를 가리키며 “김중위의 규정을 준수하자고 지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현장을 확인 또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것 때문에 소대원들을 더이상 문책하지 말고, 기무부대장 말을 참고로 실태를 직시하면서 아무도 과신하지 말고 현장을 직접 확인하라고 강조했다. 부식차와 기무부대장이 통문 밖으로 나가고 도로 정찰 및 경계조가 복귀한 뒤, 분대장을 포함한 3명이 콜라작전(GP밖 150미터 아래지역 지하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중간 벨브와 모터를 작동시키는 작업)으로 내려간다고 보고를 했다. 과거에는 물지게를 지고 물을 퍼왔으나 당시는 그래도 전기모터를 이용하는 등으로 편리해 졌다. 그래도 기무부대장 말 때문인지 작전을 내려간 대원들이 또 무슨 짓을 할지도 걱정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는 기무부대장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오랜 관행과 타성을 타파하려는 노력도 필자가 안보고 있는 상황에서는 헛수고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됐고, 그 것을 내게 코치해준 기무부대가 고맙기도 한 필요악(必要惡)이라는 현실도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필자에게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만약 선임하사관과 분대장의 음주유혹에 넘어 갔다면 급하게 GP장을 교체시키도록 조치한 기무부대장도, 필자를 대타로 투입시킨 대대장에게도 실망스런 일이 되었을 것이다. 당황스러운 돌발상황에도 원칙에 충실하고자 했던 필자의 대응방식이 '최악'을 '차선'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본립도생(本立道生: 기본이 서면 도(道)가 생긴다)은 인간사의 기본이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정치, 경제, 사회 등에는 항상 문제가 있었다.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본인은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내로남불’식으로 얘기하였고 지금도 외치고 있지만, 설득력이 없다. 타인보다 내가 먼저 ‘본립도생(本立道生)’을 명심하고 실천할 것을 유자는 강조했기 때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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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6
  • [직업군인사용설명서] (31) DMZ의 선장인 GP장이 기무부대와 동거하는 방식
    ▲ 중동부전선 GP에서 근무했던 필자와 당시 안개바다 DMZ를 스케치한 삽화 [사진제공=김희철] 새임지에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자세로 근무 GP는 마치 하이얀 안개바다 DMZ(비무장지대)에 둥둥 떠다니는 돗단배 인생은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는 정비공(正祕空)……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당나라의 선승(禪僧) 임제의현(臨濟義玄)의 ‘임제록’에 나오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은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일 수 있다면, 그가 서는 곳은 모두 참된 곳이다”라는 뜻으로 수행하는 자의 확고한 주체성을 강조한 말이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인적 없는 외딴 섬에 버려진 신세가 된 기분으로 직속상관을 내쫓은 GP대원들과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선임하사관부터 말단 이등병까지 소대원들과 지원배속된 포병 관측장교, 위생병들 모두가 긴장도 되지만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필자에게 쏟아 붓고 있었다. 그래도 북한 병사들이 경계근무하는 민경초소와 840미터 떨어진 최전방 휴전선 감시초소(GP : guard post)를 담당하는 책임자로서 오히려 필자가 더 긴장을 했을지도 모른다. GP대원들에게 책을 잡히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고, 바로 근접해 있는 북한군의 도발시 즉각 응징할 수 있는 태세를 상시 유지한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사관학교 가입교시 기초군사훈련 때의 순수한 군인정신을 되새겨 보았다. GP에 투입된 첫날밤이 되었다. 전반야는 선임하사가 후반애는 소대장이 야간 경계근무를 책임지고 지휘감독을 한다. 취임 첫 날 오후에 첫 인사말로 “GP대원들에게 직속상관을 내쫓은 배신자들”이라고 호되게 나무란 뒤라 GP장실 쪽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으나 시끄럽게 들려오는 대남방송과 긴장감에 어느덧 후반야가 되어 한잠도 못 자고 선임하사와 근무교대를 했다. 후반야 투입조의 군장 검사를 마치고 근무투입시킨 뒤에 철모를 굳게 눌러쓰고 GP를 한바퀴 돌며 순찰을 했다. 대원들은 타성이 붙어 있었다. 적이 침투하는 것을 감시해서 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을 쫓아내는 형태의 근무를 하고 있었다. 며칠 뒤 관측장교에게서 “전 GP장은 군복도 안입고 체육복차림으로 야간 순찰을 종종 했다”고 전해 들었다. 대원들은 군복에 단독군장을 하고 실탄과 수류탄까지 무겁게 지참해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GP장은 추리닝복장으로 순찰돌면서 근무자세가 나쁘다고 혼을 냈으니 자기 상관인 GP장을 쫓아낸 상황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DMZ(비무장지대)내에 타부대와 완전히 고립된 고도인 GP에서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을 어떻게 상급 기무부대장이 알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같은 GP내에 같이 근무하는 포병관측장교 신병래중위(ROTC19기)에게서 그 내막을 알 수 있었다. 부식 추진을 위해 GP로 들어오는 중대 행정보급관이나 함께 온 기무부대원이 GP에 근무하는 위생병이나 포병 등 지원배속 부대원들과 잠시 외딴 곳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때 GP장의 활동 사항을 보고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이해는 되었다. 상급 지휘관들은 초급장교인 소대장에게 홀로 떨어져 있는 GP를 맡겨 놓았지만 걱정이 될 것이다. 그래서 최전방 GP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반드시 확인 또 확인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급 지휘자를 신뢰 못하는 상급자들도 서운했고 그러한 정보원들을 데리고 대치한 적들과 상대해서 전투지휘를 한다는 것도 이율배반적인 것이었다. 지휘관(선장captain)은 “어항 속의 금붕어”로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있고, 안개바다 DMZ의 마도로스 선장인 GP장도 GP내에 있는 부하들 뿐만 아니라 숨겨 놓은 정보원에 의해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 받는 위치였다. 어느덧 새벽이 되었다. 동녁에서 붉은 태양이 고개를 내밀기 전에 GP내에 있는 높은 관측소에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장관이었다. 새벽 안개가 망망대해가 되어 있었다. 인접 GP의 모습은 마치 하이얀 안개바다 DMZ에 둥둥 떠다니는 돗단배 였다. 야간 군무를 끝낸 대원들의 안전검사를 끝내고 주간 근무로 전환하고 대대장에게 아침 지휘보고를 했다. 합동통화로 인접 GP장의 지휘보고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충성..! 한탄강 마도로스 하나, 둘, 셋 이상 없습니다. 등등…..” ‘마도로스’는 GP장을 뜻하고 ‘하나, 둘, 셋’은 인원, 장비, 물자를 의미하는 용어였다.. ▲ 중동부전선 아군GP와 대치하고 있는 MDL넘어 북한 경계지대와 산악들 [사진제공 =국방부] 하급 지휘자를 신뢰 못하는 상급자들과 믿을 수 없는 이중간첩, 배신자들인 정보원들을 데리고 대치한 적들과 상대해서 전투지휘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황 속에서도 필자는 최전방 GP를 책임지는 주인이고 확고한 주체성을 가져야 할 육군중위였다. 문득 임제스님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란 설법 말씀이 떠올랐다. 또한 최근 술자리에서 건배사로 ‘정비공(正祕空)’이 많이 활용된다고 한다. 사회생활과 사람관계에 있어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다”는 뜻이다. 軍생활 속의 지휘관도 마찬가지이지만 “인생은 정비공(正祕空)이다”라는 것이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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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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