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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7)] 필동 도로길 한복판에서 구타당한 장교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대부분 부대의 작전분야 보직자들은 정상 출퇴근이 어렵다. 주변 상황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항상 대기하고 전방이나 후방에서 불미스런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상황실에 위치하여 긴급 초동조치를 한다. 당시 수방사도 마찬가지로 북한의 불법 도발뿐만 아니라 도심에서 발생하는 우발사태를 항상 관찰하고 부대운용을 검토하여 지휘관에게 건의하여 결심을 받은 후 예하부대의 시행을 확인하며 통제까지 해야한다. 특히 수방사의 소요진압 임무를 담당했던 필자는 경찰과도 긴밀하게 협조하며 적시적인 상황조치를 할 수 있도록 24시간 대기 상태로 생활했다. 부대 전입한지 수개월째 지날 즈음, 작전과 선임 장교가 그동안 고생했다며 후배장교의 육군대학 입교 축하 및 전출 회식을 겸해서 격려 자리를 주선했다. 퇴근 시간이 다되어 하루 일과를 정리한 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당직 근무자들에게 비상 연락체계를 재차 확인한 다음에 모처럼의 회포를 풀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작전과의 근무 여건상 오후 9시가 넘어서 사무실을 나왔다. ‘88서울올림픽’이 끝나고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였지만 정치는 시끄러웠고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시위는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되었다. 그래도 충무로와 명동은 여유를 즐기는 취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경제 발전으로 인해 윤택해지는 국민들의 삶은 눈에 띄게 선진화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충무로의 구석의 비교적 조용한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하며 조촐한 술자리가 펼쳐졌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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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11-0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6)] 필동 도로길 한복판에서 구타당한 장교 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라는 법화경의 명언처럼 충무로 한복판에서 우연히 보고 싶었던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 입시를 위해 과외수업 등으로 바쁘고 힘든 일정이었지만 필자는 수업시간에 필자의 그림을 체크한 故 조성국 미술선생님의 강권으로 미술반에 차출되어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특히 고교동기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학교의 재정지원도 없이 자비를 털어 전시회를 하면서 선후배들 간의 우애가 돈독해지기도 했다. 당시의 미술부원들은 대부분 서울대 및 홍익대를 비롯한 미술대학으로 진학했고 현재까지도 중앙대 김선두 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동창들이 저명한 화가 또는 디자인 업종 관련자로 활약하고 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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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11-0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5)]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대원들을 태우고 복귀하는 버스가 매산리 읍내를 벗어나 서울시내 필동의 수방사령부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잠시 공수훈련의 옛 추억을 회상하며 즐거웠던 시간은 흘러가고 또다시 바쁜 업무가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인지하게 했다. 공수훈련, 소요진압 및 경호업무와 부가적인 집단축구 등을 비롯한 수방사의 색다른 추가 과업들은 업무 시간을 빼앗는 불편은 있었지만 부대원들에게 추가적인 혜택도 병행되었다. 분기별로 공수낙하(점프)를 하면 특전부대원들이 수령하는 점프수당이 훈련에 참여한 대원들에게 지급된다. 또한 경호업무를 수행하다보니 청와대 경호실에서도 야전부대원들이 못 받는 약간의 경호 수당도 매월 받았다. 하지만 액수가 적다보니 간부들 사이에는 ’쥐꼬리 수당‘이라고 불렸다. 공수훈련 후 처음 받아보는 특전사 점프수당과 경호부대 특별수당(쥐꼬리)의 단 맛, 이것이 야전에서 동경하던 수방사 근위부대 혹은 아스팔트 군인의 진면목인지 모르겠으나 이 수당들은 간간히 동료들과 소주 한잔 정도는 할 수 있어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물론 가족에게는 비밀로 한 채 당분간 사용했는데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간부들이 군인 아파트에 같이 살다보니 필자의 가족도 다른 동료의 가족을 통해 ’쥐꼬리 수당‘에 대해 알아버렸다. 그날 ”수당을 받고 왜 감추었냐?“고 추궁했지만 결국 수당을 필자의 용돈으로 인정을 해주어 다행히 해결되었다. 아뭏든 근위부대인 수방사의 추가과업은 웃고 우는 많은 애피소드를 남긴 채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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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11-0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4)]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관생도 시절에 특전사 공수교육시 4회의 기본 공수낙하(점프)를 해보고 거의 9년 만에 다시 하늘에서 낙하산을 펼쳐며 뛰어내렸다. 선배들의 손에 끌려 교육대장실에서 환담을 하는 바람에 사전 준비운동도 안전교육도 없이 공수낙하(점프)를 하게 되어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창공을 박차고 뛰어내리자 잠시 후 낙하산이 펼쳐지고 아래를 내려볼 때의 쾌감은 24시간 대기하며 근무하는 수방사 작전장교의 스트레스를 한번에 날려보내고 심기일전하여 다시 힘차게 일을 시작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게다가 착지할 때 골절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9년 전 수료한 공수교육시에 조교들이 혹독하게 훈련을 시킨 덕택으로 동작을 잊지 않고 땅에 닿자마자 몸을 굴리며 다친 곳 하나도 없이 공수낙하(점프)를 종료했다. 헌데 육대에 입교 예정인 한 장교가 지상으로 착지 중에 발목 골절 부상을 당해 급하게 병원으로 후송하는 사고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간부들은 성공적으로 공수낙하(점프)를 종료하고 복귀하기 위해 대기하는 차량에 올라타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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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10-2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3)]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특수전학교에 도착하자 사관학교 1년 선배인 공수교육대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버스에 내리면서 일부 선배들은 반가운 동기를 만나 악수를 하며 대장실에 들어가 차 한잔을 했다. 필자는 다른 간부들과 함께 낙하산을 확인하려 이동하려다가 교육대장이 같이 오라고 해서 동석했다. 차를 한잔하면서 교육대장은 안전을 위해 몸상태가 안좋은 요원은 공수낙하(점프)시키지 않고 참관만 시킨다고 이야기할 때 솔직히 열외하고 싶었다. 일단 교육대에 입소하면 훈련에 참가한 것이 되기 때문에 기록만으로 훈련에 참가하는 요령을 피우는 일명 ‘볼펜 점프’였다. 하지만 같이 차를 마시던 선배들은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뛰고 가야지..”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특전사 간부가 교육대장실에 들어와 수방사 요원들의 공수낙하(점프)훈련 준비를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훈련장에 도착하자 나머지 간부들은 헬멧과 낙하산을 착용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교육대장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준비운동과 안전교육을 마치고 낙하할 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였다. 이동버스안에서 공수낙하훈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긴장하며 눈만 말똥말똥한 상태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던 필자는 이미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과 교육대장실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무 준비도 못한 상태라 두려움이 가중되고 있있다. 하지만 내색도 못한 채 일행을 따라갔다. 필자는 오로지 9년전 공수훈련 받을 때의 기억만으로 공수낙하(점프)를 하게 되었다. 1차로 선배들이 먼저 6명씩 기구에 탔다. 기구가 1200피트(360미터) 정도 올라가자 하나 둘씩 뛰어 내리며 낙하산이 활짝 펴졌다. 환담을 하는 바람에 사전 준비운동도 안전교육도 없이 훈련에 임했지만 역시 선배들은 선배였다. 능숙하게 착지하고 낙하산을 접어 복귀했다. 필자의 차례가 되었다. 1미터, 2미터..... 기구가 하늘로 오를 때 손잡이를 잡은 필자의 손에는 긴장으로 땀이 흥건히 배여 손잡이가 흠뻑 젖을 정도였다. 그러나 옆 동료들과 지상에서 지켜보는 후배 간부들의 기대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통제하는 교관의 낙하준비 통제 소리에 이여 ‘낙하’하는 구령에 기구를 박차고 매산리 하늘에 뛰어내렸다. 낙하동작에 따라 주욱 뻗은 무릅사이로 바람이 통과하며 “타.타.타.닥...‘ 전투복 하의 자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필자가 생도시절 4회 공수낙하(점프)시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완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쾌감을 만끽했다. 잠시 후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낚아채며 낙하산이 펴지자 안도감에 긴장이 풀렸고,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장관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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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10-2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2)]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 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야전부대와 다르게 수방사의 색다른 또 하나의 추가 과업은 주기적으로 반드시 수행할 공수훈련이었다. 수방사 예하에 대통령을 경호하는 55대대와 30, 33단을 포함한 사령부 간부들은 근위부대원이라는 명목으로 특전사 부대원은 아니지만 별도로 협조하여 분기에 한번씩 공수훈련을 하도록 통제했다. 사관생도 4학년때 4주간의 특전사 공수교육시 4회의 기본 낙하훈련을 해보고 거의 9년 만에 다시 하늘에서 낙하산을 펼쳐며 뛰어내려야 했다. 수방사 요원이기에 3주간의 지상훈련도 없이 생도시절 기본 낙하훈련을 했던 기억만으로 공수낙하훈련을 한다는 것이 사실 걱정이 되었다. 역시 강인한 체력과 정신무장이 철저한 근위부대의 수방사 요원들이었다. 필동 사령부에서 매산리 특수전학교로 이동하는 버스에 탑승한 대부분의 간부들은 마치 소풍가는 기분으로 태평스럽게 잡담하거나 졸고 있었다. 단지 새로이 전입간 필자만이 오랫만에 접하는 공수낙하훈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긴장하며 눈만 말똥말똥한 상태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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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10-2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1)]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사령부 참모부에 근무하는 간부들 전원이 청백팀으로 나누어 편성되어 있고, 볼이 두 개나 되는 집단축구 경기라 많은 인원이 참가해야 승리를 얻기 용이한 상황이었다. 처음 참가하는 필자는 운동신경도 둔한 편인데 그 날따라 우리 팀 참가인원이 적어 볼 두 개가 한꺼번에 골대로 몰려올 때에는 방어도 쉽지 않아 많은 점수 차이로 완패를 하였다. 게다가 승부욕이 많은 수방사 부대원들이라 게임 중에 욕설이 난무했고 심지어 골절 환자도 자주 발생했다. 게임이 끝나자 각 팀은 각자 모여 작은 요구르트 한병으로 목을 축였다. 팀을 지휘하는 처장이 참석자들에게 “다른 팀보다 왜 적은 인원이 나오냐?”며 중간 과장급 책임자에게 내일 게임에는 불참자가 없도록 전파하라고 호통을 쳤다. 이어 새로 전입온 필자를 소개했고 운동을 더 잘하라고 독려하며, 포지션별로 책임자에게 불참 인원들이 반드시 참석하도록 확인하라고 강조했다. 덕분에 일과 시간에 각 팀의 담당 과장은 불참자를 사무실로 불러 혼을 내며 다음날 축구에 꼭 참석하라고 독려했다. “살아방패 죽어충성”이라는 수방사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집단축구에서 승리하는 것이 마치 충성하는 것처럼 승부욕에 불타는 근성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이러한 근성 때문에 일부 선배들은 경기 중 과도하게 태클한 후배 장교를 사무실에 불러 예의 없다고 혼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인접 동료들과 상급자들을 쉽게 접하며 친숙해지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계기도 되었다. 그런데 작전장교인 필자는 빨리 출근해서 사령관이 주관할 상황회의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팀장의 독기서린 강조의 훈시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단지 온몸이 땀에 범벅인 채 홀짝인 요구르트의 시원함에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10-1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0)]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추가 과업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수방사로 전입와 새로운 환경에서 장교 생활을 시작하자 야전부대와 색다른 추가 과업이 여러 가지가 생겼다. 우선 반드시 매일 수행할 과업중에 하나는 조기 축구였다. 전입 신고를 위해 인사처에서 신상명세서를 작성할 때 인사장교는 사관학교 다닐 때 럭비나 축구 선수였나를 꼭 확인하고는 잠시 뒤에 청색 또는 백색 운동복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전입신고 후에 인접 사무실 동료 선배들에게 인사를 할 필요가 없고 매일 아침 운동에 참석하면 모두 볼 수 있다며 바로 다음날 새벽 6시에 연병장으로 무조건 나오라고 강조했다. 근무 첫 날 업무 파악도 잘못한 채 퇴근하여 다음날 업무를 걱정하며 장을 설친 채 새벽에 연병장에 나가자 하나 둘씩 청백의 운동복 차림의 간부들이 모였다. 이상하게도 큰 연병장 엔드라인에 청백팀이 나누어 정렬을 했고 전원 참석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잠시 뒤에 볼을 두 개가 놓인 하프라인에서 심판이 호각을 불자 각 팀은 볼을 차지하기 위해 하프라인으로 뛰어가면서 바로 집단축구가 시작되었다. 새롭게 전입온 장교라고 인사할 겨를도 없이 치열한 경기가 시작되었다. 단지 피아 구별은 청색과 백색의 운동복뿐이었고 누가 상급자이고 하급자인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뛰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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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49)] 수방사 장병들이 사랑하고 자긍심을 갖고 있었던 특별한 복장(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1연구소장] 육군대학에서 차후 근무지인 수방사 명령을 받을 때 주변 동료들의 부러워하는 눈초리를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잔디는 푹신한 침대같이 편해 보이지만 실제 잔디에 앉아 있으면 벌레와 오물이 득실거리는 불편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수방사 작전과의 근무는 특이한 카키색 복장으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같이 멋있어 보였지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을 경호하고 수도서울을 방호하는 임무는 대단히 중요하고 자긍심이 넘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견 간부인 소령이라는 계급은 단지 생도생활 시절의 1학년 생도처럼 최하급자로서 선배들의 매서운 군기와 질타 속에 근무하는 위치로 하향 보직된 기분이었다. 지난 8년간의 GOP 전방부대 생활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고 보람차게 근무하여 자신감이 넘쳤었다. 하지만 기존에 근무하는 많은 장교들이 위관 시절 그곳에서의 근무 경험이 있어 그들만의 기득권을 뛰어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필자의 성공적인 야전부대 작전분야 경력이 고려되어 수방사령부로 보직을 받았는데, 이곳의 임무는 북쪽의 적에 대응하며 전투준비를 하는 것에 추가하여 소요진압 및 시가지 전투준비 등 야전부대 근무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대침투작전 및 소요진압 관련 임무를 수행하는 필자에게는 다른 장교들과 달리 추가로 휴대하는 장비가 있었다. 서울 시내의 시위 및 소요발생시 경찰력이 부족할 때 소요진압부대로 출동할 것에 대비하여 경찰의 출동 사항을 항상 감지하는 경찰 무전기였다. 아마도 지금은 이러한 시스템이 군부대에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 정권 당시에는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는 수방사 영내에 있는 비석의 문구처럼 5공 시절의 잔재가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경찰 무전기는 24시간 동안 개의 목줄같은 역할을 하며 필자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새벽에 출근해서 아침 상황회의 준비로 하루를 시작해 자정이 넘어가는 시각에 퇴근할 때까지 시내의 시위 상황과 경찰 출동 현황을 확인하고 대응하는 것이 추가로 부여된 임무였다. 그래도 개인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24시간 대기하며 바쁘게 달리는 직책이었지만 대통령의 근위부대로 자긍심을 심어주는 특이한 카키색 및 고동색 유니폼을 점점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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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10-07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48)] 수방사 장병들이 사랑하고 자긍심을 갖고 있었던 특별한 복장(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현재의 얼룩무늬 복장으로 바뀌기 전인 민밋한 국방색의 전투복 차림으로 사무실에 첫 출근을 하자 필자는 외톨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당시 수방사는 아래의 사진과 같이 하계에는 카키색의 복장을, 동계에는 어두운 갈색인 고동색의 복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육군 전부대원들이 착용하고 있던 민밋한 국방색의 전투복장에 수방사 마크를 달고 있는 필자가 새로 전입온 장교임을 기존에 근무하고 있는 수방사 장교·부사관들은 한눈에 알아보고 지나칠 때마다 환영한다는 말들을 해주었다. 일부 병사들이 휴가를 출발할 때 사회 친구들을 만나면 과시하고 싶은 마음으로 부대에서 나오면 군장점에 들려 공수마크, 특수전 마크 등을 민밋한 국방색의 전투복장에 추가로 붙이고 고향으로 향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물론 복장 규정을 위반했던 그들이 휴가 복귀시에는 추가로 붙인 마크들을 모두 떼어내고 부대로 돌아왔지만 군인들은 유니폼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특히 수방사에서 복무했던 장병들은 카키색 및 고동색 복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심지어 인터넷의 각종 동호회 사이트를 검색하면 수방사에 복무했던 전역병들이 특별한 수방사 복장을 얼마나 사랑하고 자긍심을 갖고 있었는지 금방 알수 있다. ■ “아주 좋은 부대로 발령받으셨네요”하며 출세길이 열린다고 한 수방사 근무가 시작돼 육군대학 교육을 마치고 부임한 수방사에서 첫 근무를 시작할 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낯설었지만 필자가 근무할 작전과에는 육군사관학교 시절 같은 중대에서 생활했던 선배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다행이었다. 필자가 육군사관학교 1학년 시절에 선임부분대장 생도로 근무했던 이윤배 소령(육사35기, 예비역 소장)은 작전과의 최선임 장교로, 분대 2학년이었던 김영주 소령(육사36기)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여 안심되며 든든했다. 또한 고향 후배인 최병로 대위(육사38기, 예비역 중장)는 이미 소령으로 진급하여 육군대학 입교를 앞두고 잠시동안 함께 근무하게 되어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다. 88서울올림픽이 끝나고 그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았던 1989년 7월, 육군대학에서 서울 필동을 거쳐 육사에 있는 아파트 모델하우스까지 애환의 이사할 때(‘[직업군인 사용설명서(145)] 직업군인들의 잦은 이동에 따른 웃픈 애환’ 참조) 운전기사가 “아주 좋은 부대로 발령받으셨네요..”하며 출세길이 열린다고 덕담을 한 수방사에서의 근무가 시작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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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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