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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5]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고향이 같은 충청북도인 사단장과 군수는 보자마자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출신인 사단장은 충북 청원군 북이면 출신의 군수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단장은 청원군수를 만나자마자 군의회 의장과 함께 훈련장을 방문해서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구매하여 기부해준 것과 지난번 낭성면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 지원, 그리고 사단에서 필요한 모래를 미호천에서 채취하도록 승인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고, 분위기는 상승고도를 탔다. 덕분에 훈련상황실에서의 현황보고는 부드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두사람은 훈련상황실에서 나와 훈련장 텐트 현장을 함께 순시했다. 모두 시간에 쫒기는 중요 직책이었으나 그들은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현장 순시를 함께하다가 대대장 텐트로 다시 들어가 못다한 환담을 지속했다. 다음날 사단 상황실의 아침 상황보고에서 사단장은 청원대대의 훈련 현장지도시 중대장과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백브리핑에 대한 칭찬의 훈시를 쏟아내며 타부대도 참고해서 훈련에 임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발표한 병사는 포상휴가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얼마뒤에 현장지도 결과가 공문으로 각 부대로 하달되어 대대원들의 사기가 최고로 고조되는 영광도 얻었다. 사단장의 동계 혹한기 훈련 현장지도 결과가 각 부대로 하달되자 연대 및 사단 실무자들과 타 부대장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단이 들썩들썩하냐?”고 의문의 전화를 필자에게 계속 날려보냈다. 육본으로 전출간 전임 사단 공병대장과 수방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연석(육사35기) 선배도 소식을 들었다며 축하 전화를 주었다. 과거 최전방 대성산 기슭의 중대장 시절에는 혹한과 폭설 속에서 얼음집을 지어 숙영하며 적응훈련을 했었지만, 향토사단 후방지역인 충청북도는 전방만큼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혹한기 훈련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단장의 극찬으로 이번 혹한기 훈련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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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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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⑭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는 유난히도 ‘37’이라는 숫자와 많은 인연을 갖고있다. 육사 37기로 임관했고, 또 37사단의 대대장 자원으로 부임했으며, 전입후에 자만과 교만에 빠져 과신하며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불융합에 의한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37일동안 입원했다. 바로 전해 4월에 발생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한 병원치료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재활 치료 기간이 많이 남아있어 바로 대대장 취임은 어려우니 차라리 6개월간의 ‘군사영어반’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으며 재활치료를 한후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라는 제안에 따라 본의 아니게 영어교육을 받는 혜택을 누렸었다. 이번에도 퇴원을 앞두고 회복할 수 있는 재활치료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관리학교 8주간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 제95-4기’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한 작전직능의 장교가 군수분야까지 섭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지만, 제95-4기과정에 참석한 학생장교들은 대부분이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었다. 따라서 작전직능으로 군수분야 문외한(門外漢)인 필자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고 함께 교육받는 선배들과 수호천사 라파엘이었던 동기 이00중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의미하며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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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3)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하지만 영관영어반에서 만난 선배중에는 광주 출신의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임을 부정하고 중국인 공산주의자로 행세를 한 정율성처럼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도 있었다. 정율성이 북한과 중국에서 보였던 불손하고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지만 화려한 작곡가로서의 삶처럼 그 선배도 생도시절부터 뛰어난 지혜와 지휘생도 활약으로 후배 생도들의 존경심을 받아왔고 필자에게는 목발 및 지팡이를 짚고 있다고 해서 DJ라는 별칭을 즐겨 불러 주었다. 또한 그는 명석한 지능으로 영어 수업도 우수한 성적을 계속 유지했다. 마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정율성처럼 그의 모습은 수업시간에 뛰어난 영어 회화능력으로 교관들의 칭찬을 받아 학생장교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일과후 독신자 숙소에서도 타 선배들처럼 잦은 출타를 하거나 만취되는 일도 없이 착실한 학생장교로 돋보였고 필자는 친절하게 학업을 도와주는 그가 고맙고 존경스럽기까지 했고 대령으로 일차 진급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영관영어반 과정이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접어들 무렵에 그는 매우 힘든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동생이 사업을 하는 데 급전이 필요하고 진행상 곧 회수 가능해 일주일 뒤면 갚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필자는 현금이 있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필자도 교통사고 후에 많은 출혈이 있었고 저축한 돈도 별로 없어 죄송했다. 선배의 계속 독촉에 못이겨 현재 들고 있는 적금을 해약하면 요구한 금액의 반정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거라도 빨리 주면 바로 해결하고 일주일 뒤에 갚겠다고 다짐했다. 하는 수 없이 통장을 들고 은행을 찾아 적금을 해약한 후에 그 선배에게 전달했다. 물론 일주일 뒤에 갚는다고 해서 가족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선배에게 갚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일단 돈을 주고나니 빌려준 사람이 을이 되어 있었고, 그는 여유롭게 생활하며 빌린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결국 교육 종료 직전에 그 선배에게 아직까지도 가족에게 말을 안했으니 빌린 돈을 갚아주어야 통장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독촉했다. 그 선배는 다음주로 다시 미루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던졌는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생도시절부터 탁월한 모습으로 존경을 했던 인연은 악연으로 끝났다. 가짜 한국인 정율성처럼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그의 언행에 현혹된 필자가 부끄러웠고, 이후에는 잘 아는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금전 문제가 생길 때에는 여유가 있어 대출이 아닌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아니면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것이 돈도 잃지 않고 더구나 사람도 더 잃지 않는 길이라는 교훈을 영관영어반 교육과정에서 얻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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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2)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㉗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율성이 6·25남침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군가도 작곡했지만 인민군과 함께 서울에 내려와 점령군으로서 자유 대한민국을 유린하고 1·4 후퇴 때는 중공군과 함께 재차 서울에 내려와 조선궁정악보를 약탈해간 매국노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광주 출신이지만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 공산당원으로 변절한 자를 추모하며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추진했던 정율성 공원 조성사업은 동족상잔의 비국을 겪은 자유대한민국에서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현재도 핵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하는 북한의 군사도발을 막으려면 견고한 한미동맹이 절실한 실정이다. 필자가 다녔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북한의 재 남침에 대비해 합동참모본부의 주요부서에 근무하며 군사전략을 담당했던 용삼남(육사33기) 선배로부터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용 선배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재활치료에 전념했던 필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기도 했다. 그는 생도시절 럭비부 선수 생활을 했는데 운동중에 부상을 입어 척추가 심하게 손상되어 의사들이 판단할 때에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였으나 강한 의지로 철저하게 운동을 하여 척추 주변 근육을 강화시킴으로써 전혀 불편함 없이 더 건강하게 보였다. 예를 들면 합참 근무시에 매일 새벽에 가장 일찍 출근하여 책상 및 의자 정리 및 청소를 한 뒤에 책상위에 올라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300개씩 하여 근육을 강화시켰다. 그가 원주에 있는 부대에 근무할 때에는 고속도로에서 시비를 걸던 조폭을 한방의 주먹으로 넉아웃시킬 정도로 강해졌다는 여담도 남겼다. 건강한 체력은 건전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업무에 질도 고양시킬 수 있다. 건강의 이상을 극복하며 지칠줄 모르는 용 선배의 체력에 상관들은 힘든 업무도 쉽게 맡길 수 있었고 업무상 만나는 미군들과도 쉽게 친해져 한미 연합작전과 군사전략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일과후에는 독신자 숙소에서 우리의 전통악기인 대금을 연주하며 하루를 마감하여 건강상 어려운 위기를 적극 극복하는 강한 의지와 동시에 예술감까지 가진 문무를 겸비한 군인으로 끝없는 존경심을 불러 일으켜 앞으로의 군생활의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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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1)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㉖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10월2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에 세워져 있던 중국 음악가 ‘정율성 동상’이 기단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정율성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에 귀화한 음악가로, 북한·중공군 군가를 작곡한 인물인데, 광주시가 기념사업을 추진해 논란을 불렀다. 정율성 동상은 중국 청년단체가 제작해 광주 지역 청년단체에 기증한 것으로 2008년 광주 남구 양림동에 조성된 정율성 거리 입구에 세워졌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이날 재물손괴 혐의로 보수단체 회원 윤모(5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전날(1일) 오후 정율성 흉상 목 부분에 밧줄을 묶고 2.5톤 승합차에 이를 연결한 뒤 쓰러뜨리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했다. 정율성 흉상은 위의 사진처럼 약 1m 높이의 기단에서 완전히 분리된 채 기단 옆 땅바닥에 누운 모습으로 발견됐다. 윤씨는 범행 직후 한 유튜브 채널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중단하라고 광주시에 요구했는데 이를 이를 수용하지 않아 강제로 (흉상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경찰에서 “내가 그랬다. 3일 오전에 경찰서로 가서 조사받겠다”며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유족 대표인 고(故)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전 광주대성여고 교장은 2일 “공산주의자 정율성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광주시가 혈세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공원을 짓는다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무조치로 일관하고 있다”며 “공원 철폐를 위한 릴레이 피켓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다. 김오복 전 교장은 “북·중공의 군가를 짓는 등 한국 침략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한 정율성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강기정 광주시장은 아무 중단 조치도 없이 정율성 공원조치를 강행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율성 공원 문제 제기에 대해 철지난 이념몰이, 색깔론, 민간외교라는 억지 논리만 되뇌고 있다”면서 “지난 한 달여 동안 보훈단체들의 집회를 관제 데모로 깎아내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과 보훈가족을 모독하고,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을 철폐하거나 대안을 만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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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7]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상)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대대장 근무시에 담당했던 충청북도 청원군은 현재 청주시와 통합되었고 청원대대는 해체되었지만 당시에 필자의 청원대대는 14개 면대와 1개 기동대 그리고 8개 직장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때에는 각 면사무소의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에 해당 면대의 상근예비역들이 24시간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고 생활 및 근무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물론 상급부대는 대대장이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하는 것을 의무적으로 규정하거나 특별히 지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전방의 GOP철책에서 근무하는 대대장들은 매일 야간순찰을 다니는 것처럼 비록 후방지역 향토사단이지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무기고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돌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대대장 취임 후에 야간 지파출소 무기고 순찰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계속 감행했었다. 그러던 중 폭설이 내리며 혹한이 기습했던 겨울 어느날,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3시에 관사앞에서 대기하던 짚차에 올라 지역 면대 지파출소 예비군 무기고 야간순찰을 위해 출발했다. 운전병의 빙판길 운행도 걱정이었지만 혹한 속에 24시간 경계근무에 임하는 상근예비역들의 열악한 환경과 동계 초병근무에 동상이나 난방에 대한 대비는 잘되어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서 다음날 지역 면대장에게 시정 지시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병원관리였다. 이렇게 매번 순찰한 덕분에 낭성면대의 예비군 무기고를 새롭게 신축하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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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7] 지휘관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직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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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6]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동계 혹한기훈련이 끝나고 3월로 접어들자 군단장이 연대장들을 비교 평가하는 연대전투단 훈련이 바로 다가왔다. 당시 연대장의 임기중 가장 중요한 훈련이기 때문에 필자는 부하된 도리를 다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그동안 소개장, 중대장 등의 군생활에서 네 번에 걸친 연대전투단 훈련 경험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와 진수를 모두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볼 각오를 다졌다. 훈련에 임하는 신현정 연대장의 작전 마인드는 대단히 탁월했다. 부여된 상황에 대한 적시적인 작전 지침은 명쾌했고 단지 예하 부대들이 그 지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천하여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대대원들은 이미 지난 전투지휘검열시에 후방지역 작전 훈련(‘[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25)] 전투지휘검열도 끝나자 더 바빠진 청원대대(하)’ 참조)을 통해 숙달된 상태라 별로 어렵지 않았고, 훈련 결과는 또 대성공이었다. 특히 이번 훈련을 통해서 손자병법의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뜻과 의미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미 군단장과 군단 참모들은 신현정 연대장의 팬이었다. 게다가 평가의 주무를 맡은 군단 작전참모는 필자의 교통사고가 아니였으면 무적태풍부대 군자산 대대장으로 취임해 직속상관인 연대장으로 모셨을 유대우 대령(육사30기)이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90~192)] 잔인한 4월도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참조) 무적태풍부대의 군자산에서 상하급자 관계로 맺을 뻔했던 인연 때문에 유 대령이 필자를 아껴주는 모습이 확연하게 표출되는 연대전투단 훈련이었다. 물론 호국충절의 고장답게 연대 책임지역내의 괴산·음성·진천군수와 청주시장이 훈련을 격려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그 중에 청원군수의 위문이 가장 눈에 띄었다. 또한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다는 말처럼 성공적인 연대전투단 훈련종료 후 필자는 훈련 유공으로 군단장 표창을 받았고, 더불어 이번 호국충절의 고향에서 치룬 동계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 훈련을 통해 전임 사단장에 이어 신임 사단장에게도 확실하게 신임을 받는 계기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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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6]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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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4]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조영호 사단장(학군7기)은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 때 만난지 2주일도 안되었지만, 동계 혹한기훈련을 잘하고 있는지 현장지도를 하기 위해 00비행장 주변에 배치된 대대의 숙영지와 훈련장을 또 방문했다. 사실 대부분의 병력이 전시에 동원자원으로 구성된 향토사단은 임무 백브리핑이 매우 중요하다. 현역 병사들이 자신의 개인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동원되는 소대장 등 간부에게 전투 임무를 전달 및 교육시키는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에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브리핑’이 반드시 필요한 전투준비이기도 하다. 훈련장을 방문한 사단장에게 필자가 훈련 진행 전반을 보고한 뒤에 동원되는 소대장에게 백브리핑을 하는 소총병이 ‘병 1인 다역화와 간부화 훈련 브리핑’을 했고, 이어 비행장 외곽을 방어하는 현역 중대장이 자신의 임무를 발표했다. 사단장 앞에서 긴장할 것으로 예상되어 연습을 많이 시켰으나 병 1인 다역화로 소대장에게 전투 임무를 전달 및 교육시키는 역할을 할 병사는 소대 방어지역의 배치와 전투준비 그리고 우발상황 발생시 대처하는 요령까지 자신있게 또박또박 발표를 하자 사단장은 놀란 듯 박수까지 치며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 오히려 중대장이 더 긴장하여 더듬거렸으나 바로 전에 탁월하게 발표한 병사의 백브리핑에 감탄의 여운이 남아있던 사단장은 중대장에게도 칭찬을 가미했다. 그때 변종석 청원군수가 상황실 텐트로 불쑥 들어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단장의 훈련장 현장지도 시간에 맞추어 바쁜 일정의 군수가 사단장을 영접하기 위해 훈련장을 또 찾은 것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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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4]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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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3]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둔지에서 비상을 발령해 출동준비태세 훈련을 하고, 각 개인을 군장 상태를 확인한 다음에 30km행군으로 이동하여 숙영지를 편성하고 첫날밤을 보냈다. 이튿날, 2월 초이지만 깜깜한 새벽 기온은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져 혹한 속에 텐트에서 취침하는 대대원들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매우 걱정되어 상황실 텐트에서 현장확인차 밖으로 나갈려고 일어섰다. 바로 그때, 불쑥 텐트 출입구 거적을 젖히며 변종석 청원군수가 들어왔다. 변 군수는 대뜸, “대대장님, 민관군 통합작전을 강조하면서, 대대가 이 혹한에 훈련하는 것을 왜 군청에 알리지 않았습니까?”하며 힐책하였다. 그리고는 수행자에게 “여기 담당 면장이 누구냐?”며 “면장은 자기 지역에 우리 대대가 훈련하는 것도 파악 못하고 뭐하는 것이냐?”고 정색을 하며 야단쳤다. 텐트 밖은 새벽별이 초롱초롱한 아직도 어두운 밤인데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책임지역 농가들의 피해가 없는지 현장 확인차 다니다가 부대 훈련 간판이 있는 것을 보고 차를 돌려 대대 훈련장으로 기습 방문한 변종석 군수의 목민관적인 자세와 군을 사랑하는 마음에 존경심이 깊어졌다. 필자는 성토하는 변 군수를 간신히 달래며 감사함을 표했다. 다음 일정 때문에 변 군수가 훈련장을 떠나고 얼마 안되어 해당 면장이 위문품으로 떡국을 끓여와 중식에는 혹한에 떨던 대대원들이 포식을 했고, “사전에 알려주시지..., 군수님에게 야단을 맞았다”며 넉두리 했다. 역시 호국충절의 고향다운 청원군임을 확인했다. 그날 밤에도 사진처럼 변종석 청원군수와 군의회 의장이 비행장 방어시에 야간 침투하는 적들을 격멸하기 위해 필요한 탐조등 35셋트(630만원 상당)을 가져와 야전 현장에서 전달식을 했다. 청원군은 과거 임진왜란 때 부모산 및 상당산성 전투와 일제 강점기 의병대장 한봉구 활약 등 애국심이 불타는 호국충절의 고장이다. 이번 동계 혹한기 훈련을 통해서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됐고, 변 군수의 기습적인 이벤트에 대대원 전체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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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3]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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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2]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 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신년 초 대대를 들썩거리게 만들며 바쁘게 준비하여 사단장을 비롯한 300여명에게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을 마치자 늦겨울 혹한 속에 동계 혹한기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1년전 대대장 취임식에서도 혹한과 폭설속에 행사를 치루고 격려차 참석한 하객들이 빙판길을 안전하게 이동해서 무사히 복귀했는지가 걱정이 되어 일일이 전화로 확인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부하들은 상관의 신뢰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이고 그 결과는 하루아침에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으로 치룬 연초 시범 덕분인지 혹한기 훈련은 사전 준비부터 숙달된 참모들이 철저하게 준비하여 혹한 속에서도 내실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유사시에 대대의 주임무는 비행장 방어이기 때문에 전면 방어가 가능하도록 각 중대의 진지는 울타리를 연하여 구축되었다. 하지만 병력 통제와 원활한 훈련 진행을 위해 한곳을 정하여 대대 전체가 모여 숙영하고 있었다. 민가가 많은 향토사단 후방지역 특성을 고려해 과거 전방 GOP부대 근무시 훈련처럼 분침호까지 구축하는 무리였고, 대신에 텐트안의 보온을 위해 핫패드를 많이 준비했다. 특히 비행장을 주타격 목표로 저공침투하는 북한 저격여단을 격퇴하기 위해 야간에 낙하하는 적들을 공중에서 격멸하도록 탐조등을 중대별로 준비해 훈련에 임했으나 전시에 대대전체가 동원되어 실전에 임할 때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필자가 대대장 취임후 바로 시행했던 군사령부 주관 공군기지방어 전술토의에서 대통령 훈령까지 변경시키도록 획기적으로 발전 방안을 제시해 전투태세를 강화했다. 하지만 야간에 침투하는 적들을 격퇴하기 위한 탐조등 구입 예산이 턱었이 부족한 상태였고, 군청에서 지원이 가능한지 은근히 부탁도 했으나 어려움이 많았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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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2] 혹한기훈련과 연대전투단훈련으로 호국충절의 고장임을 증명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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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1]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⑧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조영호 사단장은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을 마치며 참관자들 앞에서 시범 준비를 한 청원대대를 극찬했다. 동시에 2개의 시범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사단에 건의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필자에게 어필했던 대대 참모들은 성공적으로 행사가 끝나자 희열을 느끼며 보람과 성취감을 만끽했다. 그리고 대대원을 비롯한 사단의 전부대에 청원대대가 확고부동한 최고 수준의 선봉부대임을 재확인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사단장이 복귀하자 신현정 연대장은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시범의 대성공 때문에 인접 연대장이 농담처럼 “청원대대장을 업어주라....ㅋ”라는 말을 하였다며, 경쟁의식 속에 몹시도 자신을 견제하는 것을 느꼈다고 즐거운 불평도 했다. 헌데 그 불평의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움찔하며 긴장했다. 인접 연대장의 농담이 어떻게 변화되어 필자에게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긴 재활치료의 아픔을 이겨내며 성공해도 불안한 것은 정답이 없기 때문인가? 확실히 정답은 없었지만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은 진리였다. 고(故) 이완목 부대대장과 참모들 그리고 23명의 예비군 중대장과 현역 대대원들이 긴 재활치료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쩔뚝거리며 노력하는 부족한 DJ대대장을 믿고 따라와준 열성에 감사할 뿐이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2개 분야의 동시 시범은 사단의 많은 인원이 분야별 시범을 위해 반복해서 타지역으로 이동해서 소집하는 노력을 감소시켰고, 대대원들의 불평을 감안해서 배려해준 해당 참모의 토의 진행으로 동시에 사단의 지침을 명확하게 전파하는 기회도 되었다. 세월은 쏜 살같이 날아간다. 시범이 끝나자 벌써 대대장 취임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의 대대장 근무도 ‘정비공’ 건배사처럼 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는 이 세상에서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으로 자랑스럽고 충성스러운 대대원들과 함께 또다시 헤쳐나갈 것이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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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1]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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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0]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⑦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왜란 및 병자호란의 후유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많은 사상자와 가옥 파괴 및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생겨났고, 특히 청군이 철수하면서 끌고 간 50만 명에 달하는 조선 여성의 문제가 심각하였다. 청군이 여자들을 끌고 간 목적이 포로교환 명목의 속가를 받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싸도 25~30냥이었고, 대게 150~250냥이었으며, 비싼 경우에는 1,500냥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런 때문에 청군은 양민보다도 양반집 여자를 더 선호해 포로로 데려갔다고 한다. 일부 비싼 값을 치르고 아내 및 딸들을 찾아온 경우도 있지만, 되돌아온 대부분의 환향녀(還鄕女)들이 순결을 지키지 못한 것은 조상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 하여 이혼의 문제가 조선 정치 및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그 뒤로부터 남의 남자와 잠을 잔 여자를 ‘화냥년’이라 부르게 되었고, ‘호로자식’은 제풀로 자란, 교양이 없는 사람을 욕하는 말로 버릇없는 놈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포로로 끌려간 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국방력 강화를 소홀하여 전쟁에서 패배하며 나라와 백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정치가들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위로받고 보상을 받아야할 환향녀(還鄕女) 등 희생자들에게 도리어 책임을 떠넘긴 꼴이 되었다. 이처럼 국가안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내용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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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0]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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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9]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해 사단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예비군 교육훈련과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동시 시범은 13시부터 시작됐다. 시범에 참석한 각부대 지휘관 및 참모, 그리고 정훈조교 병사 등 250명을 대상으로 필자의 설명과 VTR 시청 및 해당 참모 주관의 내실있는 토의, 그리고 조영호 사단장의 훈시 후에 약 1시간 30분간의 교장 현장 견학순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정신교육강화 분야의 시범시에 필자가 과거 역사로 인해 현재까지 사용되는 ‘환향녀(還鄕女)’라는 단어를 돌이키며 안보의 중요성을 설명한 것과 북한 김정일 정권의 현상태가 사이비 종교집단과 유사해 현혹되지 말고 철저히 대비하자고 강조한 내용이 효과가 있었다. 왜란 및 호란 때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일본 및 청나라로 끌려갔다. 이때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를 ‘화냥년’이라고 불렀는데 한자로는‘환향녀(還鄕女,고향에 돌아온 여자)’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화냥년’과 ‘후레자식’이란 욕이 유행하게 되었다. 화냥년은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여자란 뜻으로 환향녀에서 나온 말이고, 후레자식은 ‘호로(胡虜:오랑캐 호, 종 노)자식’으로 오랑캐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자가 낳은 자식이라는 의미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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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9]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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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8]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우선 정신교육 및 예비군 교육용 VTR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필자는 지난해 정신교육을 시켰던 자료가 충분하게 준비되어있어 녹화 촬영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편집이 문제였다. 정훈참모가 도와준다고 했으나 책임지역내에 공군사관학교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마침 공사 및 고교동기생이 공사에 근무하고 있어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직접 관련 참모와 협조해 다소 어려움이 있었으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대북우위의 확고한 대적관 확립을 위해 정신교육의 날 행사, 집중정신교육, 시사안보 교육기법 등을 부대여건을 고려해 다각도로 모색한 방안을 제시했다. 예비군 교육훈련 방안 시범은 지난해 받은 전투지휘검열 수검후에 2군사령관 조성태 대장의 지시로 9군단장 안성용 중장(육사23기)을 위시해 각 사단장 등 장군 9명(별 19개)을 포함한 100여 명이 동시에 대대 예비군 훈련장을 시범식 견학하는 등 수많은 타부대 지휘관들이 다녀간 교장이라 특별하게 추가로 준비할 것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소대장급 이상 지휘관과 정훈조교 병사 등 250명이 참석한 토의는 정훈참모 및 동원참모가 직접 진행하도록 협조해 대대에서 판을 깔아놓고 해당 참모가 사단지침 및 시행 방안을 제시하며 진행하여 더욱 효과적인 시범식 토의가 될 수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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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8]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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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7]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신교육강화 분야는 정훈 참모가 전반기 상급부대 불시 검열시에 좋은 성과를 올렸다면서 고집하는 바람에 예비군 교육훈련 분야를 포함한 두가지 시범을 동시에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사단의 이러한 지시를 받은 대대 참모들은 심한 불평을 쏟아냈다. 지난해 각고의 노력으로 준비해 높은 성과를 올리며 사단을 빛냈던 예비군 교육훈련 분야 한가지도 제대로 시범을 보일려면 엄청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데, 정신교육강화 분야까지 동시에 시범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사단에 건의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필자에게 어필했다. 이때 사단 정훈 참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대참모들이 정신교육강화 분야까지 포함한 동시 2개 시범을 거부하려는 분위기를 어떻게 감지했는지 놀랐지만 역시 ‘정비공(정답도 비밀도 공짜도 없다)’이라는 건배사의 ‘비밀도 없다’는 말처럼 그 소문이 사단참모들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 같았다. 정훈 참모는 사단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터이니 걱정말고 준비하라며 계획대로 시범을 보일 것을 간곡하게 강요했다. 부여되는 임무와 일을 겁내지 않고 좋아했던 필자는 즐거운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미소를 띄웠지만, 우선 시범 준비에 앞서 대대 참모들을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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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7] 눈물의 사단선봉대대와 정비공의 의미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