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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5)]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⑨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어느덧 짧은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이 절반을 넘어 한달정도 남겨둘 때인 3월말이 되었다. 교육기간 두달동안 각별하게 가까워진 룸메이트 정수완 동기는 교육종료 후에 다시 만나기가 힘드니 포항과 영덕 사이에 위치한 청하의 자기 집에 초대했다. 그곳 인접에는 청송 주왕산이 있고 마침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상관으로 근무했던 차철이 선배가 대대장을 하고 있어 함께 찾아가기로 했다. 해발 721m인 청송 주왕산은 바위, 폭포, 계곡 등의 산세가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아름다운 절경이어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었다. 중생대의 마지막 지질 시대인 백악기에 주왕산 일대는 거대한 호수였다. 약 7천만년전 이 호수의 퇴적암층을 뚫고 엄청난 규모의 화산폭발이 최소 9차례 이상 있었는데, 뜨거운 화산재와 용암이 응집하면서 거대한 암벽이 형성됐고 이후 침식과 풍화를 거쳐 오늘날의 수려한 모습이 되었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중국 당나라 때의 주도(周鍍)는 스스로를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자 멀리 한반도의 석병(주왕)산으로 피신했다. 나중에 주왕이 신라 땅에 숨어 들어간 것을 안 당나라에서는 그를 잡아달라고 신라에 요청했다. 신라는 마일성 장군의 형제들을 필두로 진압군을 이곳 석병산으로 보내 주왕과 그의 군사들을 격퇴했다. 신라군과의 싸움에서 패한 주왕은 폭포수가 입구를 가리고 있는 주왕굴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몰래 세수를 하러 나왔던 주왕은 그만 마장군의 낚시에 걸려 생포되어 당나라 장안에서 참수되었다고 한다. 주왕이 마장군의 화살과 철퇴를 맞고 최후를 맞이했다고도 하는 전설이 남아있다. 그외에 신라 시대의 원성왕(김경신)과 왕위 계승을 다투었던 김주원이 당시 이 산에서 군사를 이끌고 농성하여 그 이름을 따 주왕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제1폭포에 있는 급수대의 안내판에 김주원(金周元)이 김경신(金敬信)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 주왕산에 대궐을 건립하였다고 적혀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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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4)]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대범함이 돋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큰 바다는 맑고 흐린 물을 버리지 않고 모두 받아드린다는 명언 ‘대해불기청탁(大海不棄淸濁)’이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마져 들었다. 김종업 선배는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마산고, 육사를 거쳐 멋있게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대령으로 예편했다. 군 생활 내내 ‘선도수련’으로 일관하여 예편과 동시에 기를 실천과 학문으로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골프, 도를 만나다’를 필두로 ‘보통사람, 나를 찾다’ 등 많은 ‘기(氣)’관련 책을 저술했으며, 가천대, 명지대 등에서 ‘명상’과 ‘단전호흡’이라는 과목으로 10여 년간 강의했다. 현재는 사단법인 ‘도나누리’의 이사장으로 개량한복 껍데기를 즐겨 걸치며 많은 제자들이 찾아와 수련하는 ‘기’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대장반 교육을 받으며 남해 대대와 거창 대대를 방문했을 선배 대대장들은 후방인 2군지역에 근무하면서 느낀 지휘 및 상하급 관계에서 지저분한 비합리성에 대해 똑같이 언급했다. 헌데 사관학교에서 ‘안일한 불의 길보다 험란한 정의의 길을 걷는다’라는 사관생도 신조를 외치며 각인됐던 두 선배들이 대처하는 방법은 상이했다. 남해의 장 선배는 정면으로 도전하며 그것을 맞부딪혀 극복하려 했고, 거창의 김 선배는 그 것 마져도 포옹해 버렸다. 당시 후방지역의 흐트러진 분위기 속에서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관료로서 썩어 문드러지는 군의 한 측면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꿋꿋이 나름대로 바르며 특색있게 추진해나가는 두 선배의 모습에서 고독과 강한 투쟁의식을 감지했다. 특히 지역 주민, 기관장들과 원활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김 선배의 능력과 배포는 정말로 높이 살만 했고, 후배들이 찾아왔을 때 무엇인가 한 가지라도 더 가르쳐줄려는 지혜와 여유를 가져야 함을 다시 한번 더 느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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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3)]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거창 대대장인 김종업(육사36기) 선배는 사관생도 시절부터 탁월한 리더십으로 선후배간에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으며 동기회장 등 요직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었고, 필자와는 육사에서 같은 생활관의 선배로서 지도를 받았고 현재까지도 각별하게 지내고 있다. 대대장 근무 2년차에 접어든 김 선배는 당시의 사조직 관련 소동과 총기오발 사건 등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마침 정수완과 김종완 동기가 함께 동행하여 위로도 해드리고 회포도 풀겸 거창골짜기를 찾았는데 우리는 그의 의연한 모습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대대장을 어떻게 해야되냐?는 우리들의 질문에 그는 “지휘는 기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욕심부리지 말고, 더 잘보일려고도 말고, 건강하게 즐기면서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해라”라며 찾아간 우리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조언을 해주었다. 게다가 “사향은 아무리 보자기로 싸도 냄새가 나며, 송곳은 호주머니 속에 넣어도 튀어나오는 법(囊中之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신은 선택한 자에게 시련을 주신다고 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위기가 호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정면돌파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추진력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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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2)]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짧은 3개월의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이지만 룸메이트인 정수완 동기와 각별하게 친해지는 12주간의 시간이었다. 정 동기가 대대장반 교육 수료후 부임할 남해대대 방문은 적지않은 교훈을 주었고 우리는 진해 인접의 다른 선배의 대대도 찾아가 장단점을 분석하고 밴치마킹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번에는 거창대대를 찾았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63~165)] ‘벤치마킹은 창조적 성공의 지름길’참조) 거창은 신라 때는 거열군(居烈郡)이라 불렀고, 거타, 거열 등의 이름이 음운상 유사성이 있어 자타국이라는 나라가 여기 있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현재 사용하는 이름인 거창군은 통일신라 경덕왕이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할 때 지은 이름이다. 이곳은 경남 서북부의 백두대간 자락에 위치하는 지역으로 산에 둘러싸인 산간분지 지역이며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3대 국립 공원 사이에 자리잡아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덕유산 국립공원과 가야산 국립공원이 이 군에 걸쳐 있다. 역사적으로는 신라, 백제, 가야 세 나라의 접경지역이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뺏고 뺏기는 전투가 삼국 통일 전까지 계속해서 있었다. 이후에도 김천, 대구, 함양 및 전라북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라는 장점이 있었으나 통영-대전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함양으로 그러한 이점이 많이 넘어간 상태이다. 6.25남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인 거창 양민 학살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거창군에는 ‘거창사건추모공원’이 존재한다. 이외에 수승대, 월성계곡, 금원산 등의 관광지가 있다. 수승대에서 월성계곡 쪽으로 가는 도로 옆으로 보이는 계곡 풍경이 정말로 장관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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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1)]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다음날 오전에 함께 찾아간 곳은 남해섬의 유명한 금산과 보리암이었다.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 짖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 했다. 이후 청년시절의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할 때 성공하면 비단으로 보광산을 감싸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조선왕조를 창업했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사용한 금산(錦山), 절 이름을 보리암(菩提庵)으로 바꿨다. 금산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보리암은 금산의 온갓 기이한 형상을 한 암석과 푸르른 남해의 경치를 한눈에 볼수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경내에는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좌선대 바위가 눈길을 끌며 부근의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은 금산 38경중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기도처의 하나로 주로 군인, 경찰들을 포함한 공무원 등 많은 신도들이 이성계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연일 줄지어 찾고 있다. 쪽빛바다와 초록빛 들녘의 조화를 내려다 볼수있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빼어난 경치와 남해의 금강, 동물형상의 바위가 많아 바위 동물원으로도 불린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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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0)]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매주 일주일간의 수업이 끝나면 토요일 동두천으로 귀가하는 것을 포기하고 룸메이트인 정 동기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남해 지역을 정찰하고 전임자에게 부대 특징을 파악하며 지휘기법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장연석(육사35기) 선배 부대를 찾아갔다. 4년전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경비과장으로 근무하던 장 선배는 자신이 필자를 추천했던 무적태풍부대에서 비교적 잘 근무했다는 소문에 대해 대견해 했고, 필자는 비록 수방사 못지 않은 고생은 했지만 대과 없이 업무를 하고 진급하여 대대장반에 올 수 있게 여건을 만든 장 선배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표시를 했다. 정수완 동기는 자신이 취임할 대대의 전임자를 자연스럽게 만나 사전에 부대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에 고마워하며 이 것 저것 많이 질문했고 장 선배는 친절하게 답을 해주며 본인이 느꼈던 병력관리의 애로점 및 착안사항과 지역 주민, 경찰들과의 합동작전이 성패의 지름길이라는 해안 대대장 근무의 기법을 알려주며 흐뭇한 표정이었다. 부대와 지역 특성에 관한 설명을 마치고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층 더 가깝게 소통하는 기회도 되었다. 밤이 깊어 갈 무렵 장 선배는 “남해에 오면 반드시 들려야 할 명소가 있고, 얼마전에도 모 선배가 이곳을 찾았다며 다음 날인 일요일에 직접 안내하겠다”며 숙소로 돌아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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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8)]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초도 업무보고시에 사단장의 극찬을 받았던 쭈구리 신현돈 대대장은 1955년 충북 괴산군 신기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목도 초등 및 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주시로 유학해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육사 35기로 입교하여 1979년 소위로 임관했다. 위관급 장교 시절에는 국군기무사령부(당시 보안사)에서 근무하다가 소령 진급하자 본인의 강력한 의사 표현을 통해 다시 야전으로 복귀했을 때 필자의 전임 작전보좌관이었다. 이후 승승 장구하여 대령시절에는 육본 기획홍보과장, 합참 합동작전과장 등을 지냈다. 준장으로 진급한 뒤 3군 작전처장과 합참 등 작전직능 보직에서 주로 근무했고, 국방부 대변인 임무 수행시에는 모언론의 ’돌발영상‘에 제일 많이 등장한 군인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소장 시절에 1사단장, 합참 작전본부 작전기획부장, 중장 시절에 특전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 군사지원본부장을 역임했다. 육사 35기 중 선두주자로 대장 진급에 가장 유력했던 커리어를 갖췄다. 동기생 중 신현돈, 박선우 2명만이 중장 1차 진급을 했으며 결국 이 두명이 대장진급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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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8)]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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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7)]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장이 대대장실 앞에 도착하자, 대대장직을 수행하던 신현돈 중령은 도열한 참모들과 함께 경례하며 영접을 했다. 헌데 짚차에서 내린 사단장 이영대 소장은 첫마디로 “어이, 쭈구리 그동안 잘 있었나..?”하며 신 대대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사단장 초도방문에 긴장해 있던 신 중령 본인은 어리둥절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신 중령의 별명은 생도시절에는 ‘아가리’였다. 입이 유난히 크며 말을 잘하는 달변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굴에 주름이 많은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얼굴이 주름으로 쭈글쭈글하다고 ‘쭈그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단사령부에서 예하부대까지 이동하는 동안에 필자는 사단장에게 방문할 부대의 작전 임무와 환경 및 대대장의 특징 등에 대해 보고했다. 수방사 작전장교 시절에 직속상관인 참모장으로 남태령으로 부대를 이전하는 사업에 함께 고생했던 탓인지 수행하는 필자에게 허물없이 이것저것 물어보던 사단장에게 우스갯소리로 신 대대장의 별명 ‘쭈구리’를 이야기했다. 별명을 듣던 사단장은 달리는 차가 흔들릴 정도로 호탕하게 껄껄 웃으시며 “맞어, 신현돈 중령 별명을 누가 지었는지... 잘 만들었어...ㅋ”하면서 “대대장 부임전에 사단 작전보좌관 근무했으니 업무에 빈틈이 없겠군... 잘하고 있지?”라며 신뢰 의미의 반문을 던졌다. 첫 만남의 대화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된 대대 초도 방문 업무보고는 신 중령 얼굴의 주름처럼 경험의 노하우와 의기에 가득차서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목소리부터 사단장을 매료시켰다. 특히 사단 지침이 내려오기도 전에 전투준비와 교육훈련에 관련해서 본인이 착안하여 시행하며 제시한 내용들은 사단장을 흡족하게 만들었고, 사단장은 ‘부대의 임무도 중요하지만 오늘 보고를 받으니 상급 및 인접부대에 사단을 대표할 수 있는 대대이다’라며 극찬했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사단장은 필자에게 군생활에 가르침을 주는 명언을 남겼고 얼마후 지휘관회의에서도 언급했다. “신 중령은 본인이 대대장으로서 스스로 착안해서 전투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바로 이것이 軍간부의 자세이다”라면서 “軍간부는 견인포가 아닌 자주포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훗날, 신현돈 중령은 다음 사단장이 부임한 후에도 자신의 능력과 지휘통솔력을 인정받으며 대대장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사단사령부의 작전참모로 영전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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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7)]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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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6)]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상급부대 지휘관이 새롭게 부임하면 업무 파악을 위해 예하 부대를 방문하여 업무보고를 받으며 현장을 확인한다. 무적태풍부대 사단장 이영대(학군4기) 소장도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예하 부대 확인 방문을 시작했다. 빨리 부대를 파악하고 분석하여 임기동안 부대를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를 차상급부대 지휘관에게 업무보고를 해야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비서실장과 협조하여 중요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부터 우선 방문하도록 사단장 시간 계획에 반영했고 참모들이 번갈아 수행하도록 조치했다. 한편 군단장 및 군사령관 초도 업무보고 일정이 하달되어 사단장은 더 급해졌다. 특히 작전 계획이나 업무보고를 참모가 아닌 사단장이 직접 보고하도록 강조가 되어 연습도 필요했고, 임기동안 부대를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헌데 사단장의 예하부대 초도방문시 수행할 참모들이 업무로 바쁘다보니 필자가 수행하여 예하부대를 방문해야될 상황이 있었는데, 우연히도 그 부대를 작전보좌관 전임자 신현돈 중령이 지휘하고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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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6)] 자주포 장군임을 증명한 신현돈 군사령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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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5)] 힘 솟게 만드는 소나무숲의 기분 좋은 만남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어느날 참모의 인터폰이 울려 통화를 했는데 기무부대에서 호출이 왔다. 기무부대 지하 취조실에 들어가니 담당관이 녹음한 내용을 들려주며 주요시설 명칭을 가감없이 참모에게 보고한 필자의 인터폰 통화가 군사보안을 위반했다며 진술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이후에 간접적으로 들려온 내용은 기무보좌관이 어느 특정지역의 군사보호시설 주변에 건축물의 허가를 요청했는데 필자가 작전에 제한된다고 불승인하자 본보기로 필자의 보안 위규 사례를 색출하려고 작정하고 준비한 결과였다. 결국 필자는 보안위규심의에 회부되었고 부대안의 인터폰에서 발생한 사례로 고려되어 앞으로 더욱 주의하라는 경고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덕분에 사단장의 승인을 받아 군사보호시설 업무를 인계하고 작전보좌관 본연의 업무에 매진할 수 있었다. 존경하고 믿어주는 사단장의 이러한 배려에 탄력을 받은 필자는 본인의 업무도 중요하지만 부대운용을 총괄하는 차원에서 인접 참모부의 협조가 더 필요했다. 주 1회정도는 밤 11시에 도달할 즈음에 인접 참모부를 돌면서 그 때까지 야근하는 인접 참모부 보좌관들을 끌고 부대앞 봉암리 포장마차로 이동했다. 각 보좌관들은 주로 삼사출신 선배들이 많았고 그들과 간단한 닭똥집과 꽁치구이 안주에 독한 소주를 들이키며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하지만 그날도 짧은 시간에 회식하고 복귀하여 다음날 업무에 지장이 없어야 했다. 따라서 우리는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 원샷으로 마셔 빨리 취하며 업무협조 등 일담을 나누고 급하게 귀가하며 보람찬 하루일과를 마무리했다. 특히 필자는 다음날 새벽 출근길에 보람을 느끼며 힘이 솟게 만드는 소나무숲의 기분 좋은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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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5)] 힘 솟게 만드는 소나무숲의 기분 좋은 만남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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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4)] 힘 솟게 만드는 소나무숲의 기분 좋은 만남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92년 7월에 사단장으로 부임한 이영대 장군(학군4기)은 그동안 부대관리 및 업무에 찌들려 있던 참모 및 실무자들에게 건강과 일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체육활동 활성화를 강조했다. 수방사령부 시절 조기 축구를 통해 간부들의 단합과 체력을 보강했던 것처럼 사무실 책상에만 앉아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의 업무 위주로 생활하다가 조기 축구 및 전투체육이 활성화되자 오히려 업무에도 추진력이 강화되었다. 매일 아침 체조와 일과를 마친뒤 오후에 단체 운동을 하기 때문에 주간 업무 중에 딴청을 못 피우고 시간을 아끼며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몸을 부딪히는 운동을 통해 전우애도 높아지고 상호 업무협조도 원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참모간에 협조가 원활해지자 그동안 작전보좌관 본연 업무추진의 발목을 잡았고 기무부대로부터 불필요한 업무통제까지 받아야 했던 군사보호시설 업무를 대민 업무를 주관하는 민심참모부로 이관할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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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4)] 힘 솟게 만드는 소나무숲의 기분 좋은 만남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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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3)] 힘 솟게 만드는 소나무숲의 기분 좋은 만남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당시 매일 아침 출근하면 사단장 및 주요 참모들이 상황실 벙커에 모여 상급 및 예하 부대의 야간 활동과 예정 사항을 당직사령으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그날의 일정에 대해 사단장은 상황보고를 참고로 주요지침을 하달하며 하루가 시작된다. 사단작전보좌관직을 수행했던 필자는 상황보고 내용을 검토하고 변동사항을 체크하기 위해 새벽 6시경이 되면 어김없이 상황실이 운용되던 지하벙커안의 사무실로 출근했다. 왜냐면 필자는 항상 전체 부대의 운용을 총괄하는 직책이라 변동 내용이나 중요사항들을 숙지할 수 있으나, 당직근무자들은 오랜만에 근무하여 상황보고시에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 확인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필자의 검토가 끝나고 이어 작전참모와 참모장에게 사전 보고를 한 후에 최종 수정된 정확한 내용으로 사단장에게 상황보고를 하기에 필자는 새벽부터 서둘러 출근해야 했다. 헌데 필자는 동틀 무렵에 아파트를 나와 상황실로 가는 길옆 소나무숲에서 두꺼운 아름드리 소나무 줄기에 몸을 부딪히며 아침 운동을 하는 이영대 사단장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매번 만날 때마다 “쿵...쿵..” 부딪히는 소나무의 기를 받으며 “어이 작전보좌관, 왜 이렇게 일찍 출근해... 좀 쉬면서 건강 주의해야지...수고해...”라며 격려를 해주었다. 수방사 참모장을 하면서 소장으로 진급한 그는 사단장으로 부임하는 첫날 필자를 보더니 “야, 김희철, 수방사에서 고생했는데 여기서 다시보네...”하며 매우 반가워했다. 필자는 자정이 다되어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일이 반복되는 과중한 업무였지만 부대 지휘관의 격려와 각별한 애정을 받고 있다는 은근한 자긍심과 보람에 더욱 부대일에 열중했고 쌓인 피로를 날려보낼 수가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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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3)] 힘 솟게 만드는 소나무숲의 기분 좋은 만남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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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2)] 힘 솟게 만드는 소나무숲의 기분 좋은 만남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재관 장군(육사21기)이 사단장직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영전하고 후임으로 이영대 소장(학군 4기)이 사단장으로 취임했다. 무적태풍부대 사단장을 그동안 육사출신 장군이 계속 수행하다가 오랜만에 학군출신 사단장이 부임하자 부대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는 분위기였다. 이영대 사단장은 고려대학교 출신 학군 4기로 1988년에 장군으로 진급했고 수방사 참모장 재직시에 부대를 필동에서 남태령으로 이전하는 사업을 주도했다. 그때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장교로 근무했던 필자의 직속상관이었다. 수도경비사령부는 1961년 창설되었으나 1984년 11대 사령관 이종구 장군 때부터 수도방위사령부로 개칭되었다. 일제시절 헌병대가 위치했던 곳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권력의 숨겨진 중심지인 부대를 필동에서 남태령으로 이전하는 사업은 만만하지 않았다. 사령관 구창회 중장(육사18기)이 대통령에게 수방사 이전 계획을 별도로 보고하고 재가를 받아 유명한 지관이 풍수지리를 고려하여 본청 위치를 확정한 후, 후임 김진선(육사 19기) 사령관이 부임한지 얼마 안돼 직할대 건물까지도 거의 완성되었다. 故이영대 준장은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소탈하게 모든 현장을 뛰어다녔고, 일일이 확인하며 지도했던 그의 근면과 철저함 덕분에 남태령 수방사는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그는 수방사 부대이전 당시에 많은 업적을 남기고 영전하여 무적태풍부대 사단장을 역임한 뒤 육본 감찰실장 근무시에 과로와 지병으로 순직하여 동작동 현충원에 묻혀 지금은 이웃 남태령 수방사의 발전을 지켜보고 있음을 기억하며 추모해야 한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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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2)] 힘 솟게 만드는 소나무숲의 기분 좋은 만남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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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1)] 화려한 사단장의 애대심이 오히려 과유불급(過猶不及) (하)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역대 5사단장은 쟁쟁한 장군들 즉 대통령,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등 역사적인 인물이 많았다. 창설 초기에 원용덕, 백선엽, 이응준과 16대 박정희(육사2기) 장군을 비롯해 채명신(육사5기), 강창성, 윤성민(육사8기), 정병주(육사9기), 김복동(육사11기), 정호근(갑종5기), 신말업(육사16기) 등이 사단장을 역임했고, 사단기동훈련 당시에는 37대 김석재(육사23기) 장군이었다. 역시 5사단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대답게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사단기동훈련에 임했다. 이는 부대운용의 실무를 총괄하는 사단 작전보좌관 김용호 소령(육사37기)을 비롯한 참모들의 정중동(靜中動) 활약 결과물이기도 했다. 특히 김석재 장군의 정확한 상황판단과 지침을 하달하는 작전 지휘력이 돋보였고, 인접 부대 사단장이었지만 선배인 이재관 장군(육사21기)을 존경하며 환대하는 모습이 후배들 보기에도 너무 좋았다. 그러나 부대의 전통과 명성이나 사단장의 유명세와는 달리 사단사령부를 포함한 부대의 전반적인 시설은 6.25남침전쟁이 끝난 후인 1953년 11월18일에 창설된 무적태풍부대보다도 열악했다. 그 이유는 대통령,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등 역사적인 인물인 쟁쟁한 장군들이 사단장을 역임하다보니 열악한 시설들을 중기계획 등의 정상적인 절차와 방법보다는 잘 아는 지인들의 협조로 당시에는 타부대에 없지만 필요한 시설들을 새롭게 만들고 보강했다 허나 군이 발전하고 현대식 건물 등을 정상적으로 중기계획에 반영할 때 미흡하지만 이미 설치된 건물이 있는 부대는 우선순위가 떨어지다보니 무적태풍부대보다도 당시의 열쇠부대 시설들이 오히려 노후되고 열악하게 된 결과가 되었다. 세상살이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이며 아이러니한 것이라고 한다. 타부대에 없는 것을 자력으로 설치할 당시에는 매우 흡족했으나, 결국 명성 높은 사단장의 애대심이 오히려 타부대보다도 낙후된 시설로 남게 된 결과라는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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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1)] 화려한 사단장의 애대심이 오히려 과유불급(過猶不及)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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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9)] 화려한 사단장의 애대심이 오히려 과유불급(過猶不及) (상)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전투위주의 강인한 교육훈련이 강조되었던 당시에는 군사령부 통제로 매년 사단기동훈련을 했다. 그때 다음번 기동훈련이 계획된 인접 타사단에서 사단장을 포함한 참모요원들이 파견 되어 관찰 및 평가 지원을 통해 자신 부대의 기동훈련시 참고하는 바람직하고 좋은 시스템도 있었다. 마침 필자가 소속된 무적태풍부대가 열쇠부대의 기동훈련의 관찰 및 평가지원 임무를 부여 받았다. 무적태풍부대 이재관 사단장의 2년 후배인 열쇠부대 사단장 김석재 장군(육사23기)은 1944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안의고등학교를 거쳐 1967년에 육군사관학교를 제23기로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김 장군은 육사 화랑대의 훈육관.연대장.생도대장을 거친 독특한 생도배출 업무경력 때문인지 온화한 성품에 상하간 격의없는 대화를 중시하는 지휘철학을 갖고 있어 부하들 신망이 두터웠다. 또한 육척장신에 외모도 서글서글했다. 허나 일선부대 요직을 두루 거친 야전통으로 서글서글한 외모와 달리 일처리가 빈틈이 없다는 평을 받으며 너무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려 해 주변에 부담을 준다는 얘기도 있었다.. 참고로 김석재 장군은 5사단장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탁월한 인품과 능력을 인정받아 육본인사참모부장, 3군단장, 1군사령관직을 끝으로 전역한 후 2002년 7월11일 개각시 비상기획위원장을 역임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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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9)] 화려한 사단장의 애대심이 오히려 과유불급(過猶不及)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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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8)] 화려한 고별행사 속에 숨겨진 우여곡절과 가슴 아픈 상처들... 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고별 방문한 신말업 군사령관을 영접할 때 사단에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차원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군대는 전투집단이기 때문에 강해야 한다. 군대는 훈련이다”라는 지휘 철학으로 일관했던 전형적인 야전 지휘관인 신말업 장군은 1972년 즈음 무적태풍부대 대대장 근무시에 필승교 부근에서 수류탄 사고로 부하를 잃었다. 백마부대 수색중대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13개월 동안 참전했을 때에도 한명의 인원 손실없이 부대원 전원이 무사히 귀국하는 등 부하 사랑이 남달랐던 신말업 장군은 대대장 시절의 불의 사고가 항상 가슴속에 아픔으로 남아있었다. 통상 타부대는 사령부에서 사단 참모 및 연대장들과 만나는 정도의 고별방문이었으나 사단은 업무보고를 간단히 마친 후 곧장 필승교로 신 사령관을 안내했다. 필승교 부근 임진강가에 조그마하게 준비한 추모 제사상 앞에 선 신말업 군사령관은 35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하는 화려한 영광 뒤에 숨겨진 우여곡절(迂餘曲折)과 부하를 잃어 가슴 속에 깊은 아픔을 간직한 회한에 잠시 고개를 숙이며 숙연해졌다. 고별방문을 마치고 복귀하는 신 사령관은 치밀하고 세심하게 배려해 준비한 사단에 감탄하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사령관 고별방문 준비는 대성공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정보참모 김형배 중령이 건의했다고 전해지며 준비지침을 하달한 사단장 이재관 장군의 혜안이 돋보였다. 이를 통해 상급자이던 하급자이던 심지어 적이라도 상대방 입장에서 고려하고 대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고사성어가 가슴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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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8)] 화려한 고별행사 속에 숨겨진 우여곡절과 가슴 아픈 상처들... 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