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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97)] 육군대학,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승리부대 전출시에 사단장으로부터 승리부대 동문 장교들의 애대심(愛隊心) 고취 위한 격려회식 임무를 부여받은 필자는 본인의 미래 발전을 위한 성적 관리도 중요했지만 바빠졌다. 인접 동료들에게 물어 물어 승리부대로 부임하는 장교들을 파악했다. 그리고 승리부대 출신장교들의 시간 계획을 확인하여 모임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위의 사진과 같이 알림장과 동문 주소록도 만들었다. ■ 출신 학교와 고향 및 조별, 줄・오・대각선별 등의 모임으로 인향만리(人香萬里)를 풍겨… 육군대학 정규과정은 3개 반으로 편성되어 수료시 까지 계속되었다. 한 개 반은 약 50~60명씩으로 구성되었고 또 각반은 4개 조로 세부 편성되어 주로 조별 토의와 발표 등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교실내의 각자 자리를 기준으로 조별, 줄·오·대각선별로 모임도 있었다. 물론 출신학교, 고향, 기타 연관된 사람 간의 별도 모임은 필수였다. 마치 새로운 인연을 쌓기 위해 육군대학에 들어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드디어 ‘승리부대 동문 모임’이 개최되었다. 새로운 인연을 쌓기 위해 모임을 많이 한다는 육군대학의 특성을 이미 경험했던 사단장의 의도대로 시행된 ‘승리부대 동문 모임’은 100% 성공이었다. 사단장의 배려로 모임이 주선되었다는 소문이 퍼져 대상자는 거의 참석했고 타부대로 부임해가는 동료들 마저도 승리부대만 사단 모임을 한다고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특히 승리부대에서 근무했던 선후배들은 한잔 술을 나누면서 해우의 정을 만끽했고, 승리부대로 새로이 부임하는 장교들은 사전에 부대의 근무여건을 확인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유익했다. 특히 필자를 통해 ‘승리부대 동문 모임’을 하라고 지시한 사단장에게 감사함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육군대학 교육기간 동안 교실내의 분임조·줄·오·대각선 등 각종 모임을 통해 좋은 인연을 만들며 만난 학생장교들은 교육수료 후 다시 전후방 각 부대로 배치된다. 육군대학 교육과정에는 보병·포병·기갑·공병·통신등을 비롯한 전투병과 뿐만 아니라 병참·헌병·의무·법무 등 기타 병과 장교들도 함께 입교하며 이들은 각 반과 분임조에 고루 분포되어 수업을 진행했다. 이들이 전후방 각 부대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인접부대 간의 업무 협조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보병인 필자 같은 경우에도 부대에 리스크가 발생해 상급 및 인접부대를 방문했을 대 그 부대에 육군대학 동기가 있으면 일단 그 리스크는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육군대학에서 같이 보낸 인연이 모든 문제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원할하게 소통하며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보병병과로서 제한되는 업무에 문제가 있을 때에 헌병이나 법무 및 병참, 의무 병과의 육군대학 동기들은 엄청난 힘이 되어 주었다. 전술 지식을 포함한 군사적 식견을 배양함은 물론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서로 부대끼면서 좋은 인연이 쌓여 군생활하는 동안 시너지 효과가 있었고, 제대 후인 지금도 좋은 인연으로 만난 육대 동기 모임을 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육군대학 과정을 통해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화향백리(花香百里)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인향만리(人香萬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사자성어가 진리임이 증명되었다. 또한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자산이고 능력이며, 끈끈한 인간관계가 직업인들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육군대학 수료 후 기나긴 군생활을 하면서 체험을 통해 깨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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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2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96)] 육군대학,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육군대학 학생장교들은 전후방 각지에서 소령으로 진급한 장교 중에 평정, 지휘추천, 시험 등을 종합한 성적순으로 정규, 단기, 통신과정으로 구분되어 입교한다. 또한 중령 진급자는 대대장반, 대령 진급자는 연대장반 교육을 받는 등 모든 영관장교들의 보수교육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당시 ‘정규 45기과정’으로 입교한 동료들은 세련되며 매너도 좋아 도무지 흠 잡을 곳이 없는 우수한 장교들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군생활 동안에 시간 및 장소를 불문하고 가장 소중하며 또 오래간다. “화향백리(花香百里)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주향천리(酒香千里)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인향만리(人香萬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라며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옛 시가 절실하게 공감되는 이유이다. 필자가 초급 장교로 약 8년을 근무했던 격오지 전방의 승리부대에서 7번(36년 9개월의 군생활 동안에 총 24번 이사)째 이사를 하며 육군대학으로 내려올 때 전출신고를 받은 사단장 최권영 소장(육사19기)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격려금을 주었다. 그러나 이 격려금은 필자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위 사진의 ‘승리부대 동문 주소록’에서와 같이 육군대학 교육을 마치고 승리부대로 부임하는 학생장교들을 포함한 승리부대 동문 장교들에게 애대심(愛隊心)을 고취시키기 위한 격려회식을 하라는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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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2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95)] 최전방 격오지였던 동토의 왕국에서 따뜻한 남쪽나라로(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진해로 내려와서는 비교되는 사관학교 졸업성적 때문에 비좁고 낡으면서도 제일 높은 층의 육군대학 아파트를 배당받게 되자 아내는 연예 및 신혼시절에 느꼈던 필자에 대한 화려한 기대감이 허상이 되는 것 같은 생각에 실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쉬운 감정을 숨기며 때마침 태어난 큰아들을 업은 채 불편한 몸으로 묵묵히 짐정리를 함께했다. 필자가 1년동안 교육받은 육군대학 정규45기는 약 160명의 학생장교들로 구성됐고 그중에 사관학교 동기생은 88명이었다. 정규과정에 입교한 자들이라도 다시 성적과 투쟁을 해야 했다. 최종 수료시 교육인원 중 1/3수준의 상층 성적을 얻지 못하면 차기 진급 심사에서 불리하게 적용되었다. 이러한 실정에 따라 160명중에 적어도 53명 안에 포함되는 성적을 얻어야 향후 진로에 유리해진다. 이것을 알고 있는 장인이 현 진급에 안주하지 말고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는 주마가편(走馬加鞭)식의 독려도 했었다. 하지만 사관학교 성적이 필자보다 우수한 동기들이 80여명이나 되었다. 또한 우수한 선배 및 동료인 학생장교들이 즐비하고 사관학교 졸업 성적만 고려할 때 상층 성적을 얻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한편 당해년도 봄에 입교한 앞의 기수에는 주로 1년 선배들이 많았고 마침 사관학교의 같은 중대 출신별로 후배들을 위한 후견인이 정해져 있었다. 필자 담당 후견인은 생도시절에 같은 중대에서 함께 생활했던1년 선배인 이문보 소령(육사36기)이었다. 그는 앞서 공부하면서 꼭 필요했던 참고 자료와 공부 요령 등을 전수해 주었다. 마치 4년전에 고등군사반(OAC) 과정에서 선배들이 시험 준비했던 자료(일명 '고추가루')들을 확보하는 전쟁을 치루었던 상황이 재현되는 것 같았다. 육군대학 총장에게 입교 신고를 할 때 동기생들 뿐만 아니라 타출신 장교들의 눈빛도 보통이 아니었다. 정규과정에 선발된 우수한 장교들 답게 모두들 필자보다 똑똑하고 탁월해 보였다. 학급 조편성이 끝난 뒤에 그동안 준비했던 소양시험을 치루었다. 시험준비 자료인 고추가루를 전해준 선배들의 조언은 소양시험 성적이 과정 끝까지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주일 즈음 지난 뒤에 소양시험 성적표를 받았는데 실망이었다. 전체 평균보다는 높았지만 1/3선에는 미달되는 것 같았다. 육군대학 정규과정에 입교한 기쁨보다 소양시험 성적에 실망한 필자는 끝없는 '경쟁사회'에 대한 비애와 회의감까지 들기도 하였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2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94)] 최전방 격오지였던 동토의 왕국에서 따뜻한 남쪽나라로(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최전방 험지이자 전국 최저 기온을 기록하던 동토의 왕국에서 장장 7시간 넘는 이동을 하여 당시 따뜻한 남쪽나라 진해에 있던 육군대학에 도착했다.(현재는 육군대학이 대전시에 위치)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육사 동기 및 선배들이 환영을 해주었다. 그들의 설명을 듣고 아파트 관리실에 들려 필자의 숙소 열쇠를 받아 배정된 아파트를 확인했다. 위의 사진 속에 아파트는 선배들과 군번이 빠른 동기들이 입주하는 비교적 양호한 18평형 아파트였다. 필자에게 배정된 곳은 사진속의 비교적 양호한 아파트 뒤쪽에 위치했고 1960년대에 연탄 보일러식으로 건축한 매우 낡은 9평짜리 구형 아파트 였다. 그것도 제일 높은 4층이었다. 육군대학에서는 매년 4~6백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켜 학생장교들의 숙소 관리도 중요한 업무였다. 당시 육군대학의 아파트와 관사는 구형과 신형으로 구분되어 있고 크기도 상이하여 입주자 선정시 공평하게 군번순으로 좋은 아파트부터 배정했다. 사관학교 졸업시 부여된 군번은 최종 졸업성적 순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군번이 빠른 사람들이 사관학교 공부도 잘했다는 것이고 학생장교들이 배정받은 아파트의 위치로 최종 졸업성적도 식별이 가능했다. ■ 흙먼지 없는 아스팔트 도로와 네온싸인 불빛으로 대낮 같은 도심의 첫날 밤이 좋아 ‘밤을 낮같이, 산악을 평지같이’라는 구호에 익숙해 있던 필자 부부는 전방 격오지의 동토에서의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도로가 아닌 아스팔트 도로와 야간에는 네온싸인 불빛으로 대낮 같은 따뜻한 도심의 첫날이 너무도 좋았다. 하지만 군번순으로 아파트를 배정함에 따라 들통난 사관학교 졸업성적에 필자는 가족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배정받은 숙소가 제일 오래됐고 좁은 아파트인데 그것도 제일 높은 층이었다. 반면에 졸업성적이 월등하여 넓고 좋은 아파트의 로얄층에 입주한 사관학교 동기생의 가족과는 너무도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4년전인 1983년 대위급을 대상으로 하는 고등군사반(OAC) 교육을 위해 전라남도 광주의 상무대로 첫 이사를 했을 때, 교육생 부부들을 위해 준비된 ‘백일아파트’로 입주하게 되었다. 그때에도 9평밖에 안되는 연탄 아궁이 아파트였지만 쥐가 왔다갔다했던 산간벽지의 낡은 관사 보다는 너무도 좋았고 아내는 “시집 잘 왔네”하며 너스레도 떨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교되는 사관학교 졸업성적 때문에 비좁고 낡으면서도 제일 높은 층의 육군대학 아파트를 배당받게 되자 아내는 연예 및 신혼시절에 느꼈던 필자에 대한 화려한 기대감이 허상이 되는 것 같은 생각에 실망을 했을지도 모른다.(하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2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93)] 최전방 격오지였던 동토의 왕국에서 따뜻한 남쪽나라로(상)
    ▲ 필자가 1988년 입주했던 창원시 진해구 옛 육군대학부지의 노후된 군인아파트 모습 [사진=동영상캡쳐]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는 36년 9개월의 군생활 동안에 총 24번의 이사를 했다. 초급 장교로 약 8년을 근무했던 격오지 전방 부대는 GOP 부대 임무 교대가 통상 1년 단위로 시행됐다. 따라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2년마다 이사를 했다. 현재는 군대의 복지제도가 발전하여 이사를 할 때면 이동 거리를 고려하여 지원되는 이사 비용 덕택에 이사짐 센터에 요청하여 편리하게 이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사 비용 지원도 없어 가족과 함께 직접 이사짐을 꾸렸고 위의 사진처럼 군용트럭을 이용하여 이사를 했다. 이러한 몇번의 이사를 통해 신혼시에 장만했던 장롱을 비롯한 가구들과 거울, 유리그릇 등은 거의 깨지고 망가져 폐품 상태가 되었다. 필자가 육군대학 입교를 위해 전방 생활을 마치고 전출갈 당시에 살던 약 18평형 군인아파트는 연탄 보일러였지만 그나마 보온이 잘되어 가족들이 덜 고생하며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 초에 살던 구형 관사는 집안에 쥐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장작을 땠지만 보온도 잘 안되어 한겨울이면 방안에 입김이 서릴 정도로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이사짐 꾸리고 정리하는 것은 이동 거리와 관계 없이 집안 전체가 전쟁터를 방불케 해 전방 GOP 부대에서 근무하는 덕택에 결혼하여 첫 신혼집인 구형 군인관사에 입주한 것을 시작으로 6번씩이나 관사와 아파트를 번갈아 가며 이사했다. 그때마다 필자는 뜻하지 않게 당직 근무를 했고, 짐을 꾸리어 군용트럭에 싣고 이사하는 것은 가족의 몫이었다. 당시의 이사는 부대 임무 교대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비록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이사짐을 꾸리고 풀어 정리하는 것은 이동 거리와는 관계 없이 힘든 일이었다. 헌데 이번에는 전국 최저 기온을 기록하던 최전방 동토의 왕국에서 따뜻한 남쪽나라인 진해로 7시간 넘도록 이동하는 장거리 이사였다. 마침 가족이 큰 아들을 출산하여 꼼짝 못하고 회복하고 있는 까닭에 육군대학 입교를 위해 이사짐을 꾸리고 정리하는 것은 필자가 홀로 전담하는 차례가 되었다. 출산에 따라 몸을 풀고 있는 가족의 전화로 코치를 받은 필자는 이번 이사가 장거리이기 때문에 민간 이사짐센터에서 전문 이사차량을 요청했다. 또한 출발하기 일주일 전부터 군 복지회관(PX)에서 종이박스를 구해와 그 속에 유리 및 사기 그릇은 신문지로 둘둘 말아 깨지지 않도록 넣었다. 장농이나 밥상 및 책상의 모서리도 흠이 생기지 않도록 보조대를 붙이는 등 이사 준비하는 동안 집안 전체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게다가 사단장에게 전출 신고를 하는 전날에 상급자 및 동료들과 진한 회식을 하여 그때 마신 술이 깨지도 않은 채였다. 아파트 밖에는 이사짐 센터 차량이 도착해 있었고 시간에 쫓기며 분주해진 필자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면서 “그동안에 가족이 혼자 이렇게 고생하며 이사를 했구나”하는 생각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슴을 메웠다.(중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2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92)] 부여된 임무 완수를 위한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고민과 두려움 느끼며 유종지미(有終之美)를 ....((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의 육군대학 전출신고가 드디어 사단장 시간계획에 반영되었다. 소위로 임관해 첫 부대인 중부전선 격오지 부대에서 약 8년간의 근무를 끝내는 순간이었다. ‘유종지미(有終之美)’는 중국 전국시대에 진나라 무왕의 세력이 커지자 점점 자만해져서 처음 품었던 마음을 잃어버림으로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신하가 무왕에게 다음과 같이 직언한 것에 유래한다. 그 신하는 “시경에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처음이 있지 않은 것은 없고, 능히 끝이 있는 것이 적다’는 뜻으로, 처음 시작한 것을 끝까지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대왕께서 천하통일의 대업을 착실히 추진하시어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거두신다면 온 백성이 우러러볼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에서 시작된 고사성어이다. ■ 직업인의 발전은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거두며 같이 근무한 동료와 10년 이내의 선배들이 큰 역할한 덕택 필자는 88을지연습을 마치고 복귀한 뒤 2주 동안 부대 야전예규를 수정하여 책자로 만들었고, 이것을 육군대학 전출 신고 전날 사단장에게 보고했다. 사단장(최권영 소장, 육사19기)은 사단의 워게임 실시반을 이끌고 한미연합사에 파견돼 88을지연습을 성공적으로 마친 데다가 타 부대로 전출가기 전에 부대 야전예규까지 수정해 재발간한 것을 높이 치하했다. 필자는 중국 진나라의 신하가 무왕에게 직언한 ‘유종지미(有終之美)’를 잘 이루기 위해 약간의 노력을 한 것을 칭찬해준 사단장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더욱 고마운 것은 사단작전장교로 근무하던 중 지난해 운 좋게도 소령 진급자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타 부대로 떠나는 그해 가을에 정상적으로 계급장을 달면 족보에도 등재되는 영광도 얻는 당상관의 직급이 된다. 또한 다음달이면 영관장교 보수교육인 육군대학에 입교하여 1년간 안정된 후방 생활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육군대학 졸업 후에는 차기 보직이 수방사로 결정되었음을 통보 받았다. 드디어 야전 근무를 지칭하는 비포장 도로 군인이 아닌, 도심권 지역에서의 근무를 의미하는 아스팔트 군인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다. 당시 필자는 최전방 격오지에서 8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근무한 것이 인사 측면에서 공평하게 수도권 근무로 조정을 해준 요인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의 차기 보직이 수방사로 발령된 것은 최전방 격오지 부대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인연을 맺었던 선배가 이미 수방사에서 근무하며 그곳 인사관련자에게 강력히 추천한 결과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속칭 장교 유배지라는 별명이 붙은 중부전선 격오지 부대의 소대장으로 최초 부임해 최전방 야전 생활을 시작했고, 같이 전입했던 동기들은 모두 타 부대로 발탁돼 떠나고 필자만이 남아 장기간 근무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직업인의 자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남들이 회피하는 곳이라도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곳이라도 그 곳에는 인재가 있고 그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 훗날 꼭 보상이 있다는 진리이다. “썩어도 준치이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이 꼭 맞았다. 특히 학벌이나 출신 구분없이 같이 근무한 동료들과 10년 이내의 선배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인정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수방사로 차기 보직을 받은 것도 계급이 높은 10년 이상의 선배 보다는 같이 근무한 그 이내의 선배와 동료들이 큰 역할을 한 덕택이었다. ■ 현 진급에 안주하지 말고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는 주마가편(走馬加鞭)식 독려 사단장에게 육군대학 전출 신고를 마치고 관사에서 결혼 후 7번째 이사짐을 꾸리고 있을 때 장인의 전화가 왔다. 장인인 고(故) 강철 예비역 대령은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해방후 인접 옥천에서 초등학교 선생을 하다가 공산당의 학대를 피해 홀홀 단신으로 월남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학업을 준비하던 중 간부호보생 3기로 합격하였으나 6·25 남침전쟁 발발로 병으로 입대하여 국군 6사단 7연대에서 춘천지구 전투를 치루었고, 그해 육군 종합학교 1기생으로 임관하여 전쟁기간 동안 소・중대장과 참모직을 수행했다. 이후 보병학교 교관, 미국 고등군사반 유학, 대대장, 12사단 및 주월 비둘기부대 작전참모, 28사단 연대장 및 육본 교육과장 등을 역임 후에 예편하여 방산업체에서 15년을 근무했다. 그는 치열한 격전 속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워 충무・화랑 등 무공훈장을 5개씩이나 받은 전쟁 영웅이었다. 과거 육군대학을 1등으로 졸업했지만 장군의 반열에 못 올랐던 장인은 필자에게 육군대학 졸업 성적은 앞으로 진급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내 원한을 갚아 줘야 되지…, 김 장군 …?”이라고 육군대학 입교를 앞둔 사위에게 격려의 전화를 건넸다. 육군대학 교육은 학교의 수용인원을 고려하여 1년의 정규과정과 3~6개월의 단기과정 그리고 통신과정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정규과정은 시험과 근무 성적을 고려하여 일부 인원만 선발하고 나머지는 단기 및 통신과정에 입교하는 제도였다. 정규과정에 입교한 자들이라도 다시 성적과 투쟁을 해야 했다. 최종 수료시 교육인원 중 1/3수준의 상층 성적을 얻지 못하면 진급 심사에서 불리하게 적용되었다. 이러한 실정을 잘 알고 있는 장인이 현 진급에 안주하지 말고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는 주마가편(走馬加鞭)식의 독려였다. 그런데 필자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육군대학에 들어갔을 때에도 앞서 입교한 선배기수 중에 같이 근무했던 선배와 동료들이 꼭 필요한 참고 자료와 공부 요령 등을 전수해 주었다. 덕택에 장인처럼 1등은 못했지만 무사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학벌이나 출신 구분없이 같이 근무한 동료들과 10년 이내의 선배들이 중요하다”라는 진리는 직장(부대) 생활 뿐만 아니라 육군대학에서 조차 또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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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2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91)] 부여된 임무 완수를 위한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고민과 두려움 느끼며 유종지미(有終之美)를 ....(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초라하다는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의 용흥사라는 절에 진존자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부처님께 기도 올리는 일이 끝나면 지푸라기로 짚신을 만들었고, 다 만든 짚신은 한 켤레씩 짝을 맞춰 산길의 나뭇가지에 매달아 두었다고 한다. 이런 행동에 궁금했던 사람들은 “먼 길 가는 사람 가운데에는 짚신이 낡은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아픈 발을 편하게 해 주려고 짚신을 매달아 두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진존자 스님의 아름다운 마음에 깊이 감동했다. 어느 날, 진존자는 처음 보는 스님과 상대방의 도(道)를 알아보는 선문답을 하게 되었는데 진존자가 한 마디 건네자 그 스님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단을 맞았네. 도를 아주 많이 닦은 스님인가 보구나”라고 생각한 진존자는 그 스님을 좋게 생각했는데 잠시 뒤 그 스님은 또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진존자는 ‘겉보기에는 용의 머리처럼 훌륭한 스님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뱀의 꼬리처럼 형편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에 소리친 스님에게 “소리를 쳤으면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마무리를 지어야지요?”라고 질문하자. 그 스님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자기가 소리를 지르면 다들 대단한 인물인 줄 알고 슬금슬금 피했는데 진존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용두사미(龍頭蛇尾)’라며 그 처음 보는 스님을 비웃었다는 것에서 유래됐다. ■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을 맺고 싶지는 않았던 격오지 부대의 장기간 근무 필자는 1981년 봄, 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해 광주 보병학교의 초등군사반 교육을 마치고 당시에 장교 유배지라고 불리웠던 최전방 격오지 부대에서 천직(天職)을 시작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사랑하는 부대원들과 함께 대성산 골짜기와 비무장지대(DMZ)를 누비며 잠깐의 성취에 자긍심과 보람을 느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부여된 임무 완수를 위해 죽음과 삶의 갈림길의 위기 속에서 고민과 두려움을 느끼며 작전수행도 했고, 같이 뒹굴던 전우를 멀리 떠나 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이렇게 한 부대에서 8년 가까이 근무하다 보니 책임지역 전체는 손바닥을 보는 것 같았고 무엇이든 맡겨만 주면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신화 같은 용(龍)이 되어있는 것으로 착각도 했다. 마치 생도시절 귀 따갑게 듣던 ‘국가의 간성’이 이미 된 줄 알고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뛰어 다녔다. 하지만 후임자에게 업무까지 인계한 사단작전 장교직 말기에는 88을지연습 참가를 위해 사단의 워게임 실시반을 이끌고 한미연합사로 파견됐다. 사단작전장교 근무를 마무리하는 순간에 소홀했다는 소리는 듣지 않도록 더욱 긴장해서 사단의 워게임 실시반 파견 임무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2주간의 88을지연습을 마치고 복귀하자 사단장(최권영 소장, 육사19기)은 타부대와 비교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워게임 파견 요원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필자의 사단작전장교직 후임자로 보임된 김종환 대위(단기사관 15기)가 매우 성실하여 상급자 및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아 필자는 여유를 갖고 육군대학으로 전출갈 준비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무엇인가 배고픔을 느꼈다. 당시에도 부대 발전을 위해 많은 일들이 쌓여 있었으나 모른 채하고 떠날 수는 없었다. 그 중에 하나가 부대 야전예규 재발간 이었다. 1984년도에 수정해서 발간한 탓에 4년이 흐르자, 환경도 바뀌고 상급부대 지침도 변경되어 많은 수정문을 첨부하여 걸레가 되어 있었다. 타부대로 전출갈 날이 2주 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후임자보다는 그동안 경험이 많은 필자가 과거와 현재의 변경된 규정을 더 잘 알고 있어 수정이 용이했기에 다시 책상에 앉았다. 격오지 부대에서의 장기간 근무를 마무리하는 순간에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을 맺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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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2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90)] 타산지석(他山之石)을 넘어서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의 교훈을 깨달게한 미군(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기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하는 의미의 ‘타산지석(他山之石)’ 이라는 고사성어도 인생에서 도움이 되지만 근본이 바로 서지 않으면 도리에 어긋나고 규칙과 체계가 없어진다는 의미의 ‘본립도생(本立道生)’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중국 한(漢)나라 때의 학자 유향은 그의 저서 ‘설원(說苑)’에서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道)가 생기는 법이다’라며 군자는 근본 세우는 일을 귀중히 여기고 처음 시작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서울 올림픽 열기가 뜨겁던 1988년 여름에 필자는 육군대학 입교를 앞두고 후임자까지 받은 상태로 현직의 작전업무는 후임자에게 인계하고 88을지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7월2일부터 23일까지 사단의 워게임 실시반을 이끌고 한미연합사로 파견됐다. 을지연습은 북한군의 불법 남침에 대비하여 한국에 주둔하는 전 미군과 미 본토에서 증원된 요원들도 포함하여 한국군 전체와 정부기관까지 참가하는 훈련으로 일부의 실제훈련을 제외하고는 전부대가 실병력 기동이 아닌 컴퓨터에서 모의된 상황에 따라 조치하는 워게임 훈련이다. ■ 미군이 세계 최강의 군대인 이유는 본립도생(本立道生) 자세 때문 미군들은 충분한 휴식 시간 보장을 위하여 별도의 공간에 숙소를 준비했다. 전방에서 야외 숙영할 때보다도 훌륭하게 당시 캠프 킴에 야전 침대를 충분하게 배치하여 취침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식사는 최상의 상태로 제시간에 제공하는 등 훈련 여건이 완벽히 보장되었다. 이러한 여건하에서도 미군들은 가장 효율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했으나, 적은 인원이 파견된 우리의 사단 요원들은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하여 피로감을 가중시켜 능률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기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하는 의미인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고사성어가 무색하게 오히려 본립도생(本立道生)이란 말처럼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는 미군들의 근무 모습이 세계 최강의 군대를 만든 근원이라는 좋은 교훈으로 얻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 한국군도 모든 훈련과 작전에서 충분한 여건을 보장해주도록 발전시키며, 각자는 부여된 임무 완수를 위해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며 요령을 피우지 말고 전념하여 최선을 다하는 기본에 충실해야 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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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89)] 타산지석(他山之石)을 넘어서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의 교훈을 깨달게한 미군(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타산지석(他山之石)’ 이라는 고사성어는 ‘시경(詩經) 소아편 학명(鶴鳴)’에 나오는 시의 한 구절로 직역하면 ‘다른 산의 돌’이라는 뜻이다. 이는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칠고 나쁜 돌이라도 숫돌로 쓰면 자기의 옥(玉)을 갈 수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기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하는 의미이다. 또한 ‘본립도생(本立道生)’이란 근본이 바로 서지 않으면 도리에 어긋나고 규칙과 체계가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중국 한(漢)나라 때의 학자 유향은 그의 저서 ‘설원(說苑)’에서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道)가 생기는 법이다’라며 군자는 근본 세우는 일을 귀중히 여기고 처음 시작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올림픽 열기가 뜨겁던 1988년 여름에 필자는 육군대학 입교를 앞두고 후임자까지 받은 상태로 현직의 작전업무는 후임자에게 인계하고 88을지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7월2일부터 23일까지 사단의 워게임 실시반을 이끌고 한미연합사로 파견됐다. 을지연습은 북한군의 불법 남침에 대비하여 한국에 주둔하는 전 미군과 미 본토에서 증원된 요원들도 포함하여 한국군 전체와 정부기관까지 참가하는 훈련으로 일부의 실제훈련을 제외하고는 전부대가 실병력 기동이 아닌 컴퓨터에서 모의된 상황에 따라 조치하는 워게임 훈련이다. ■ ‘타산지석(他山之石)‘ 정도로 예상했던 미군은 기본에 충실한 옥(玉) 필자는 예하 각연대의 대대장 대표와 작전과장, 사단 참모부의 주무 장교들과 함께 한미연합사에 도착해서 사전 교육을 받고 나름대로 실습을 했다. 예하 연대에서는 중령급 대대장이 참가하여 책임을 지고 연대를 운용하였지만 사단은 각 참모부의 실무 장교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88을지연습이 시작되자 사단에서 조치할 사항은 원거리로 이격된 사단 사령부와 통화하여 조치를 함으로 제한이 많았다. 결국 시간을 요하는 급한 위기 상황에서 조속한 판단이 필요할 경우에는 필자가 사단장 역할을 대신하며 신속히 결정하고 사전 조치를 했다. 따라서 사단작전장교로 근무하던 필자는 예하 연대처럼 3교대 근무가 불가능했다. 주요한 국면의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필자가 있어야 사단 전체 운용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었고 필자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인접 부대에 적의 공격이 집중되어 사단 상황이 한가해질 때에는 사단의 워게임 요원들은 종종 자리를 이탈해 휴식했고, 심지어 심야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서 졸고 있는 경우도 발생했다. 반면에 인접에서 워게임을 하고 있는 미군들의 사무실을 살펴보니 24시간 중 어느 때라도 근무를 이탈하는 요원은 전혀 없었고, 심지어 식사 시간에도 간편하게 햄버거나 샌드위치 등으로 해결하며 상황조치에 전념했다. 게다가 미군 간부 및 지휘자들은 미동도 없이 모니터를 주시하며 지침을 하달하고 있었으며 예하 요원 중 일부 만이 간혹 느슨해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근무 교대 시간을 준수하며, 대부분 요원들이 책임 시간에는 임무에 열중하는 등 기본에 충실한 자세를 견지했다. 연합사로 파견 나오기 전에 알고 있었던 군기가 문란하고 해이해진 미군이 아니라 모든 요원들이 법과 규정을 준수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미군이 세계 최강의 군대가 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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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1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88)] 어떤 일을 오래 접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일의 전문가가 된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우리 속담이자 고사성어인 당구풍월(堂狗風月)은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말로 어떤 일을 오래 접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일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이다. 또한 비전문가도 전문가와 오래 생활하다 보면 전문가에 버금가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시 필자는 속칭 장교 유배지라는 별명이 붙은 중부전선 격오지 부대의 소대장으로 부임해 최전방 야전 생활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7년이 다가왔다. GOP부대는 매년 임무교대를 했다. 따라서 대성산을 세바퀴나 돌면서 부대교대를 하게 되었고 지역내의 구석 구석까지 발로 다니면서 직접 확인하며 근무하다 보니 사단작전장교로 근무 당시에는 인접 부대의 작전계획까지 모두 습득할 수 있었다. 또한 중대장을 마치고 사단에서 전투지휘검열을 대비해 책임지역내의 모든 지뢰지대, 낙석, 도로대화구 등 장애물 현황을 정확히 유지하도록 장애물이력카드를 전산화를 시키는 작업을 하여 장애물을 포함한 모든 현황까지 머리 속에 입력되며 본인도 모르게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79)] “성공하려면 항상 새로운 것을 제시하라”참조) ■ 40년전 사창리전투의 치욕스런 패배와 유사하게 인접부대간의 협조 문제점 식별 사단작전장교 2년차에 접어든 필자는 당구풍월(堂狗風月)이란 속담처럼 자연스럽게 지역내의 모든 작전계획 뿐만 아니라 진지위치 및 상태까지 숙지한 상태가 되었다. 이때 매년 한미 연합훈련으로 실시했던 을지연습을 앞두고 인접부대와 협조회의가 있었다. 마침 한여름인 그해 8월에 필자는 정규육대를 입교하기 때문에 후임자로 김종환 대위(단기사관 15기)를 받은 상태라 여유가 있어 작전참모를 대신해서 인접 군단에서 실시하는 협조회의에 사단 대표로 참석하였다. 인접군단 작전참모가 주관하여 시작된 회의에서 해당 부대의 작전계획 설명이 끝나고 인접부대의 작전계획을 설명하는 차례가 되었다. 당시 대위였던 필자는 곧 장군이 될 대령 참모가 주관하며 영관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토론에 참석하여 발표한다는 것에 다소 긴장은 되었으나 필자 보다 우리 부대의 작전계획을 더 잘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필자가 소속된 부대의 작전계획 설명이 끝나자 역시 인접부대의 협조선상에는 부대 배치의 공백과 화력 및 장애물운용 등의 취약점이 발견되었고 신랄한 토의가 진행되었다. 6.25 남침전쟁시 장도영 장군이 지휘했던 6사단의 사창리 전투에서 인접 미 24사단과 협조선(전투지경선)이었던 산악과 하오고개를 통해 후방으로 침투 공격한 중공군들에게 치욕스런 패배를 당했다. ([김희철의 전쟁사(23)] ‘중공군 입장에서 본 한국전쟁, 제 5차 공세 사창리 전투에서 치욕적 패배’ 참조) 그런데 약 40년이 지난 당시에도 사창리 전투 사례와 유사하게 양개 인접부대간의 협조에 문제가 있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란 말처럼 사창리 전투의 패배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식별된 병력 배치, 화력 및 장애물 운용에 대한 미비점을 양개 부대가 상호 보완하기로 협조했다. ■ 가기 꺼려했던 장교 유배지인 중부전선 격오지 부대의 7년 장기근무가 오히려 전화위복 저녁 무렵까지 계속된 인접부대 협조회의가 끝나자 인접 군단 및 사단 참모들은 을지연습을 앞두고 사창리 전투의 패배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협조점의 미비점들을 발표한 필자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회의를 마치고 각 참모들이 잠시모여 차를 한잔하며 환담을 하는 사이에 인접부대 참모를 수행해 따라온 육사동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동기는 중대장을 늦게 마치고 사단작전장교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는 시기였다. 회의장에서 브리핑을 하며 영관급 선배장교들의 질문에 거침없이 답하는 필자의 모습을 부러워하던 그에게서 처음 작전장교를 시작할 때 문서 작성 요령부터 새로 배우며 적응하려 애쓰던 필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모두들 가기를 꺼려했던, 속칭 장교 유배지라는 별명이 붙은 중부전선 격오지 부대의 소대장으로 최초 부임해 같이 전입했던 동기들은 모두 타부대로 발탁되어 떠나고 필자만이 남아 7년 넘게 한부대에 근무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셈이다. 비록 타고난 능력은 부족하지만 어떤 일을 오래 접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일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이며, 비전문가도 전문가와 오래 생활하다 보면 전문가에 버금가게 된다는 뜻이기도 한 ‘당구풍월(堂狗風月)’이 인접부대 작전회의에서 적용되어 오히려 빛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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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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