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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77)] 잘 싸우는 장수는 상대방을 마음대로 조정하지 상대방에게 조정 당하지 않는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선전자, 치이이불치어인(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이란 손자병법(孫子兵法)의 허실편(虛實篇)에 나오는 말로 “잘 싸우는 장수는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조정하지 상대방에게 조정 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직업군인은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지만 업무나 인간관계 등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주도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평시의 일상 속에서 주도권은 법과 규정의 범주 안에서 발휘될 수 있다. 작금의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상호 분쟁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 작전장교가 정확하게 점검했으니 이해하고 진정하세요…! 녹음기에 접어 들면서 적들의 침투가 예상되자 상급부대로부터 매복작전이 철저히 시행될 수 있도록 지휘감독을 강화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어 사단에서는 매복실태를 확인 점검하게 되었다. 필자는 소대장 시절 매복작전에 투입되었던 소대원들이 대대장의 불시 현장확인에서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기대를 하며 예하부대의 매복작전 시행을 불시에 점검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각 연대는 1~2개소씩 대성산 기슭의 접근로에 매복조를 운용했다. 필자는 야간 해트라이트 불빛이 매복작전에 방해되기 때문에 짚차를 인접 부대에 대기시켜 놓고 은밀하게 매복진지에 도착하자, 매복조는 수하 및 검문도 안하고 완전히 기습을 당한 꼴이 되었다. 추정하건데 당시의 매복조는 사단 작전장교가 심야시간 불시에 점검을 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인솔장교를 포함한 모두가 야영하는 기분으로 편하게 졸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실제로 각 개인의 안면위장, 휴대장비, 진지간 신호줄 및 크레모아 설치, 실탄 휴대량 및 신호규정을 확인한 결과 모두가 엉망이었고, 심지어 인솔자의 상황판에도 매복장소에 대한 도식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도 한심해서 현지에서 모든 것을 직접 교정해주고 아침이 되어 철수할 때까지라도 매복작전을 잘하라고 당부하며 다음 점검 장소로 이동했다. 다음날 아침에 점검 결과를 참모에게 보고했고, 작성된 매복점검 결과와 앞으로 더욱 철저하게 작전에 임하라는 강조 지시를 예하부대에 하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김관진(육사28기) 작전참모의 인터폰 호출이 있었다. 참모실 앞에 도달하자 문 앞에서 결재를 대기하던 동료 장교가 예하부대 연대장이 참모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는 귀뜸을 해주었다. 작전참모 책상에는 필자가 작성하여 사단장 결재를 득한 점검결과 문서가 놓여 있었고, 그 연대장은 참모에게 이러한 점검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항의하며 얼굴이 불거진 상태였다. 참모는 연대장의 항의에 당황하면서 필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비록 대위 계급의 하급 작전장교였지만 계급이 높다고 참모를 몰아붙이는 대령 계급의 해당 연대장에게 필자의 노트를 보여주며 말문을 열었다. “연대장님, 작전 중에 점검하는 법이 어디 있으며 너무 심하게 지적한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는데, 이 노트를 보십시오…”하며 결재 받은 지적사항 이외에 추가로 지적한 주변 술병 및 과자봉지 등 전장정리와 진지 위장상태 미흡, 음어 미휴대, 신호규정 미숙지, 야간 필터를 미장착한 후레쉬 등 하달 지시문에 미포함된 추가 지적 사항을 나열하며 “차마, 이러한 추가 지적 사항은 너무 심한 것 같아서 생략했습니다”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그러자 참모는 웃으며 “작전장교가 정확하게 점검했으니 이해하고 진정하세요”라고 연대장을 달랬다. 얼굴이 더 붉어진 연대장은 한숨을 쉬며 참모에게 사정하듯 “매복작전을 내보낸 지원중대장이 이번에 진급해야 하는데 이 지적으로 누락될까 걱정이다”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 둔필승총(鈍筆勝聰)으로 상대방을 주도할 히든카드를 준비하는 것 소・중대장 시절에는 헌병(지금은 군사경찰)들에게 불시 검문 등 필요 이상의 제재를 많이 받았다. 사단 책임지역 내에서도 헌병초소를 통과하려면 휴가증 및 출장증이 반드시 있어야 했고, 병사들뿐만 아니라 장교라도 헌병 병사가 휴대품을 점검하면 아무 소리도 못하며 응해야 하는 등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헌병의 위세는 계급을 초월하여 너무도 당당했다. 사단 작전장교가 되어서는 그동안 당했던 헌병(현 군사경찰)들의 무리한 제재와 호가호위(狐假虎威)를 고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따라서 예하부대 확인 점검을 할 때마다 그 주변 헌병초소와 막사를 들러 작전태세의 미비점과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의식을 개선시키는 노력을 계속했다. 이러한 필자의 활동은 헌병대에 근무하는 장병들에게 소문이 났고 그 보고를 받은 헌병대장 역시 작전참모를 찾아와 항의를 했다. 손자가 ‘선전자, 치이이불치어인(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이란 말의 의미같이 필자는 모든 일에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법과 규정의 범주 안에서 히든카드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비록 점검 결과를 기록하고 보고는 안했지만 필자의 노트 속에는 각 초소별로 확인 점검하여 지적했던 사항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필자는 참모보다 선임이었던 헌병대장에게 초소별로 총기 및 실탄관리 부실, 초소내 음식물 비치 및 부착물 미준수, 두발 및 복장불량, 암구호 미숙지, 막사주변 화재 등 안전사고 예방 미흡 등의 지적사항들을 설명하면서 “본부의 식구이기 때문에 위로는 보고를 안하고 현지에서 시정시켜 작전에 기여하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 않냐?”고 되려 반문하여 참모의 위신을 높히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손자의 “잘 싸우는 장수는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조정하지 상대방에게 조정 당하지 않는다”는 병법을 은연중에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다산 정약용이 강조했던 둔필승총(鈍筆勝聰, 둔하고 부족한 "붓"이 총명한 머리보다 더 낫다)을 실천해 기록을 유지했던 결과였다. 또한 직업군인으로서 주도권을 갖고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있게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주도할 히든카드를 준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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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76)] 직업군인 리더의 자질은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 조직관리는 ‘인자무적(仁者無敵)’ (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인접 부대장인 이진삼 군단장(육사 15기) 주관으로 오후 2시에 시작된 대침투작전 및 진지공사 시범은 당시 상황에 적절하게 필요한 내용으로 잘 진행되었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나오는 장수의 5개 덕목인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이 시범을 주관한 이진삼 장군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게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비교하며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 위엄 있고 저돌적인 용장(勇將)인 이진삼 군단장 특히 아군 진지를 구축할 때 보기 좋게 전시효과적으로 만드는 것 보다는 침투한 적들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위치에 위장을 잘하여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실물 시범을 보인 것은 매우 유익했다. 또한 야간에 접근하는 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진지 사계 청소하면서 확보된 나무들을 모아 진지 앞 적의 접근로에 원두막식의 조명목을 설치하는 것은 모든 예하부대의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시범 준비부대의 연구개선안 발표와 신랄(辛辣)한 토의가 끝나자, 왜소하지만 당차 보이던 이진삼 군단장은 채양이 유난히도 큰 전투모에 규격보다 큰 삼성별을 달고 위엄 있게 지휘봉을 휘두르며 훈시를 시작했다. 이 장군은 609특공대장을 지낸 대위시절 응징보복작전으로 3번에 걸쳐 북으로 침투해 들어가 35명을 사살했고, 남파된 무장공비들도 본인이 포복으로 접근해 수류탄을 투척하여 척살시킨 이야기로 말문을 열어 무려 두시간 넘도록 자신의 무용담을 쏟아 냈다. 이미 석양이 들기 시작하여 다음 순서인 현장견학 시간이 촉박하게 되었다. 헌데 자신의 말에 도취된 이장군은 사단장 시절 적들이 잘 보이는 가칠봉 정상에 수영장을 만들어 적들을 현혹시키게 만들었고, 심지어 테니스 게임에서 패배한 적도 없다며 본인의 태권도 7단 실력을 과시하듯 간부들과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앞차기와 옆차기 시범도 보였다. 거품을 물며 열변을 토하던 이 군단장은 석양이 서쪽산에 걸리자 훈시를 부랴부랴 끝냈다. 물론 날이 저물어 먼 길을 이동하여 복귀할 참가자들은 현장견학을 생략한 채 출발했고, 시범을 준비한 부대원들은 훈시를 마친 이진삼 군단장이 칭찬하자 성공적인 시범이었다고 모두 자축하는 모습이었다. ■ 현재와 미래의 직업군 리더들이 조직관리 위해 꼭 필요한 인자무적(仁者無敵) 대침투작전 및 진지공사 시범에서 용장(勇將)으로서 4차원같으면서도 특별한 인상을 남겨준 이진삼 군단장은 하나회로 노태우 정부에서 승승장구하여 육군 참모총장을 거쳐 체육부 장관을 역임 후 18대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그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본인은 군인출신으로 제대후까지도 차고 있는 군번줄을 보여주면서 수감 중인 현역군인 간부들의 군번줄을 확인하며 군인의 기본자세를 강조하는 엄장(嚴將)이라는 것을 과시했고 ‘군번줄 의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반면에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취임사에서 “적의 숨통을 끊을 수 있게 준비하라”, “지휘세력을 타격하겠다.”, “개성공단 인질 억류 시 군사조치를 취하겠다”라면서도, “본인은 전쟁주의자가 아니다. 전쟁 예방 주의자이며 전쟁을 하고 싶지 않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강한 의지를 나타내며 용장(勇將)임과 동시에 엄장(嚴將)임을 밝혔다. 당시에 북한은 그를 한국사회에서 정치적·대중적·심리적으로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김관진 장관 같은 전쟁주의자가 있는 한 평화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억지 논리를 내세우며 임진왜란 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순신 장군에게 했던 것처럼 그를 끌어내리려고 했다. 또한 김 장관이 사단 작전참모 재직 시, 무장탈영병 발생하자 본인이 필자의 자리에 앉아 GOP 철책 경계를 강화시키고 봉쇄선을 3단계로 형성하여 도주로를 차단하라는 단편명령 초안을 직접 작성했으며, 그 초안을 필자에게 전해주며 사단장 결재 후 전문으로 하달하라고 신속하고도 현명하게 처리하는 등의 지장(智將)이었다. 그리고 을지연습 상황회의 브리핑에서도 순발력으로 부하들의 실수를 커버하며 순간의 위기를 넘기는 위기 극복 및 용병을 잘하는 솔연(率然)같은 리더로서, 상관에게는 신뢰와 인정을 받고 부하에게는 존경받는 신장(信將)이면서 인장(仁將)인 작전참모였다. 손자는 ‘장자, 지신인용엄(將者, 智信仁勇嚴)’이라며 장수의 5덕목을 강조했다. 허나 앞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리더의 자질을 중에 첫번째 지혜(智慧)가 가장 중요하고, 믿음(信)과 용맹(勇), 엄격(嚴)도 훌륭한 덕목이지만, 세번째인 ‘인(仁)’이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매우 필요하다. 맹자가 말한 “인자무적(仁者無敵), 어진 사람에게는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라는 명언이 가슴 속 깊이 스며들며, 남북 및 대미 등 국내외 관계를 고려한 현재와 미래의 직업군인 뿐만 아니라 일반사회 조직의 리더들에게도 산 교훈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3-2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75)] 직업군인 리더의 자질은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 조직관리는 ‘인자무적(仁者無敵)’(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사자성어는 양나라 혜왕의 질문을 받은 맹자의 답에 나온다. 혜왕은 “예전에는 천하를 호령하던 진(晉)나라가 지금은 주위 나라들에게 땅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고 있는데, 과인은 이를 수치로 여겨 그들을 물리치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질문하자, 이에 맹자는 “만일 대왕께서 어진 정치를 베푼다면 이 땅의 모든 사내들은 몽둥이 밖에 없어도 갑옷을 입고 칼을 든 적군을 물리칠 것입니다. ‘인자무적(仁者無敵)’ 어진 사람에게는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라고 답하며 명언을 남겼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시계편(始計篇)에도 ‘장자, 지신인용엄(將者, 智信仁勇嚴)’이라며 장수의 5덕중에 세번째로 ‘인(仁)을 강조했다. 인(仁)의 마음가짐은 지인기갈(知人飢渴, 부하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아는 것)과 동인노고(同人勞苦, 부하의 수고와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의 자세라고 했다. ■ 지휘세력을 타격하여 적의 숨통을 끊을 수 있게 준비하라 북한이 지난 22일 실종자 해양수산부 공무원 A(47)씨에게 총격을 가하고 불로 태워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김정은이 사과발표를 했다며 대단히 만족하는 듯한 행태가 계속되어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2010년에도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었고 우리는 k-9자주포로 대응 사격을 퍼부었는데, 이 사건으로 취임한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적의 숨통을 끊을 수 있게 준비하라”, “지휘세력을 타격하겠다.”, “개성공단 인질 억류 시 군사조치를 취하겠다.” 등으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후 4년동안 북한은 도발을 못했다. 또한 김 장관이 북한 군부가 제일 두려워하는 존재로서 MB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많은 우여곡절 끝에 “국방부 장관에 연임된 것은 김정은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스트레스를 가하게 된 것이다”라며 기사화 되었고 그는 용장(勇將)이면서도 엄장(嚴將)임을 드러냈다. 한편 시인 김지하도 “저토록 무섭고 슬픈 눈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관진 장관의 눈은 깊고 그 빛은 강하다. 무서운 것은 강한 빛 때문이고, 슬픈 건 어떤 운명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저 깊은 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리더는 조직관리를 위해서는 지장(智將)과 인장(仁將)이 돼야 하지만 필자가 사단 작전장교 시절 8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만 모셨던 김 전(前) 국가안보실장은 두려움에 떨게 하는 냉혈한도 아니었고, 어떤 운명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저 깊고 강한 눈빛을 가진 무서운 자라고도 느낄 수 없었다. 당시 작전참모 김관진 중령은 손자의 장수 5덕중에 지(智)분야에서 탁월하면서도 의외로 소박하고 지인기갈(知人飢渴)과 동인노고(同人勞苦)의 자질을 실천하는 인장(仁將)이었다. 군에서는 가을이 오면 동계를 대비한 추계진지공사가 진행된다. 마침 인접 군단에서 대침투작전 및 진지공사 시범이 계획되어 필자는 작전참모를 수행하여 참석했다. 시범장까지는 약 3시간 가까이 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오전 회의를 마치고 비포장 도로를 따라 출발했다. 사단본부를 벗어나 고개를 몇 굽이 돌아 1시간 정도 지나자 도로가에 고장난 미군 짚차가 한대가 있었고 미군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김관진 참모는 차를 세우고 미군들에게 “What's the matter with you?”라고 물어보았다. 미군의 답을 들은 그는 필자에게 가까운 부대에 연락해서 구난차를 보내주어야 하겠다며 그들을 안심시키고 인접부대 위병소에 들려서 응급 조치를 하도록 지시했다. 다시 이동하던 중 점심시간이 되자 마을 식당으로 들어갔다. 늘 김관진 참모에게 신세를 지고있던 차에 모처럼의 좋은 기회다 싶어 화장실에 가는 척을 하고 점심값을 미리 치루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 김 참모의 인상이 구겨졌다. “야, 김희철…! 너 어디서 이런 거 배웠어? 상급자하고 같이 식사를 하면 상급자가 돈을 내는 거야…! 내가 너보다 봉급도 많이 받는데…”하며 본인의 지갑을 열어 식사값을 현금으로 필자에게 내밀었다. 당시 군부대에는 출장비가 없었다. 심지어 소·중대장 시절 임무 수행을 위해 경비가 들어가 비용을 요구하면 상급자는 “장교가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지, 어떻게 경비를 요구하나? 한심한 장교 아니야…?”하는 면박을 받기도 했었다. 짚차 뒷좌석에서 잘 먹었다는 감사 인사도 못하며 안절부절하는 사이에 인접 군단의 대침투작전 시범장에 도착했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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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74)] GOP경계근무자 총기난사 및 무장탈영 사건(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우문현답’이라는 축약된 '속어'가 한동안 유행했다. 즉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한서(漢書)’의 ‘조충국전(趙充國傳)’에는 전한(前漢)의 9대 황제 선제때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 계통의 강족의 반란을 진압하고자 하였으나 대패하였고, 고민 끝에 선제는 조충국에게 방책을 제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이때 조충국은 이미 76세의 백전노장이었지만,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며(百聞不如一見), 군사란 작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전술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므로(兵難險度), 신을 금성(지금의 간쑤성 난주 부근)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펴본 다음 방책을 아뢰겠습니다(臣願馳至金城 圖上方略)"라고 대답했다. 조충국은 선제의 윤허를 받고 현지로 달려가 지세와 적의 동태를 면밀히 살펴보고, 잡힌 포로로부터 정보를 캐낸 뒤, ‘기병보다는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방책’을 제시하였고, 이후 강족의 반란도 차차 수그러졌다고 한다. ■ 주간에 수색정찰과 야간 매복의 반복이 장기화되어 피로누적으로 작전의 효율성 저하 도주를 고려한 시간과의 싸움에서 숨이 막히게 바빴던 무장탈영병 생포작전의 첫날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작전지역은 민간인통제선 안에 있어 휴전 후 인적이 끊긴 산악 밀림 지역이고, 미확인 지뢰지대가 산재해 작전에 제한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주간에 수색조가 면밀히 수색했으나 무장탈영병 이진수 일병의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다. 주간작전후 야간에는 전원이 봉쇄선에 배치되어 무장탈영병의 도주를 차단했다. 이틀이 지나도 전방 GOP철책 너머로 도주했다는 흔적이나 후방지역에서의 주민신고가 없자, 일단 지휘부에서는 한편으로 안심하면서 봉쇄선안에 은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했다. 혹시 자해를 해서 사망 또는 실신했을 가능성도 고려하였다. 마침 한여름 폭우가 내렸다. 봉쇄선에 배치된 병사들은 주야로 계속된 작전으로 주간에 열손상 환자가, 야간에는 폭우에 의해 저체온증 환자가 생길 우려가 있었고 장기화로 피로도 누적되었다. 도주한 무장탈영병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정보참모에게 현장을 확인하도록 조치했는데, 역시 지친 상태로 봉쇄선에 배치된 병력들의 근무 상태가 엉망이었고 작전의 효율성도 떨어졌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과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있다)이란 말이 꼭 맞아떨어졌다. 이에 작전참모는 전장군기 확립을 강조하는 지시문을 작성해 하달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작전이 장기화되어 투입된 병력들이 이완된 상태이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도 필요했다. ■ 기만작전과 심리전을 전개한 끝에 탈진한 무장탈영병 생포 따라서 작전간 전장군기를 강조하고 간부들의 순찰을 강화했으며, 주간에는 주변 수색 규모를 확대하면서도 잔여 병력의 휴식을 보장하도록 강조했다. 야간에는 봉쇄선 도로를 따라 라이트를 켜고 차량을 계속 왕복 이동시켜 은거한 무장탈영병이 꼼짝 못하고 지치도록 하는 기만작전도 시행하였다. 더불어 심리전 방송차량을 활용하여 원점부근과 주변에서 방송을 하였고, 부모님을 모시고 와방송차량에 탑승시켜 설득 방송도 추가했다. 무장탈영병 생포를 위한 대침투작전을 시행한지 일주일 가까이 되어가자 지휘부도 지쳤다. 각 봉쇄선에 배치된 병력들은 장기간 작전으로 모두 초췌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고 제발 무장탈영병이 발견되기만을 고대했다. 이미 총기난사로 사상자를 발생시킨 흉악한 범죄인이 총과 실탄을 휴대해서 작전대원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잊혀져 갈 무렵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역의 인접 부대 취사장에서 아침 식사준비를 하던 병사가 용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는데 인근 숲속에서 철모도 없이 초췌한 모습에 지쳐있는 한 병사를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무장탈영병임을 감지했다. 허나 그는 그동안의 허기와 노숙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발견한 병사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니가 이진수냐….?”하고 질문하니 그는 힘없이 고개를 끄떡거렸다. 결국 부대원들과 주변 일반시민들까지 긴장시켰던 일주일간의 작전은 더 이상의 피해없이 막을 내렸다. 이는 비록 사고를 미연에 방지 못한 책임은 있으나, 사건 발생 이후 지휘관 및 참모들이 사건을 정확히 분석하고 대책 강구하여 전방 사단전술지휘소 운용과 기만 및 심리작전 등 일련의 조치들로 차분하고 체계적으로 작전을 수행한 성과였다. 특히 현장을 철저히 확인하여 미비점을 보완하고, ‘형인이아무형 즉아전이적분 (形人而我無形, 則我專而敵分)’이란 손자병법을 적용하여 무장탈영병이 꼼짝없이 갇히게 만든 것과 이를 위해 간부와 병사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악조건에서도 각자의 임무를 완수한 결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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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3-17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73)] GOP 경계근무자의 총기 난사 및 무장탈영 사건(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선전자 치인이불치어인(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이란 말은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적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적에게 조정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형인이아무형 즉아전이적분 (形人而我無形, 則我專而敵分)’이란 “적은 형체를 드러내 보이나 우리가 실제로 형체가 보이지 않게 하면, 우리는 집중할 수 있고 적은 분산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 심야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불길한 소식의 신호탄 1987년 7월 어느날, 작전장교의 폭주하는 업무 속에 지쳐 깊은 꿈속에 빠져있던 심야에 아파트 숙소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하지만 잠이든지 몇시간도 안되는 시점이라 전혀 들리지 않았다. 가족이 놀라 필자를 흔들어 깨웠다. 졸린 눈을 비비며 수화기를 들자 당직 근무자의 전달에 눈이 번쩍 뜨여지며 토끼 눈이 됨과 동시에 주섬주섬 군복을 입으며 통화를 했다. 잠시 후 사단 상황실에는 사단장을 위시하여 모든 참모들이 모였다. 당직 근무자가 GOP 철책에서 초병근무 후 복귀하던 이진수 일병이 막사 앞에서 총기를 난사해 수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무장 탈영한 후 도주하여 행방이 묘연하다는 보고를 했고 이미 강화된 대침투작전 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상태였다. 이어 정보참모가 도주 가능 거리를 분석해 보고했고, 현장에는 연대의 정보분석조와 헌병 및 군의관 등이 이미 도착하여 사고 조사와 응급 조치를 하고 있었다. 또한 연대 자체 병력으로 차단선을 형성했다는 연대장의 상황조치 보고도 있었다. 무장 탈영한 이 일병의 도주 거리를 고려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참모들과 대책을 논의하던 김관진(육사 28기) 작전참모는 참모장과 상의 후, 신속하게 GOP 전초대대 상황실에 사단 전술지휘소를 설치 운용할 것을 민찬기(육사 16기) 사단장에게 건의했다. 그리고 각 연대장들에게 전화하여 기상과 동시에 가용 병력을 직접지원 포병부대의 포차를 활용하여 GOP 작전지역으로 이동시킬 것을 지시했다. ■ GOP철책 경계를 강화시키고 봉쇄선을 3단계로 형성하여 도주로 차단 가장 크게 우려되는 최악의 상황은 무장 탈영한 이 일병이 GOP 철책을 넘어 월북하는 것과 도심으로 빠져나가 일반 시민들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전방의 사단전술지휘소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작전참모는 단편명령 작성을 지시했다. 필자는 그동안에 작전참모가 각 부대에 지시했던 사항들을 되씹으며 단편명령서 초안을 구상했다. 전초대대 상황실에 도착해서 바로 책상에 앉아 초안을 작성하는데 참모의 독촉이 심해졌다. 결국 참모는 필자에게 다가와 작성 중인 초안을 보더니, 본인이 필자의 자리에 앉아 GOP 철책 경계를 강화시키고 봉쇄선을 3단계로 형성하여 도주로를 차단하라는 단편명령 초안을 직접 작성하여 필자에게 전해주며 신속하게 타자를 쳐서 사단장 결재 후 전문으로 하달하라고 지시했다. 필자는 창피했다. 사단작전장교이면서 단편명령서도 신속하게 제대로 작성 못해 참모가 직접 초안을 작성하게 만들어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참모가 직접 작성한 덕분에 시간이 단축되어 아침에 각 연대 병력들이 작전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단편명령은 하달되었다. 이에 따라 포병부대 차량을 활용해 이동한 부대들을 신속하게 GOP 철책 무명고지 총기난동 원점지역을 중심으로 먼저 연대 자체 병력이 이미 운용된 차단선을 기준으로 1봉쇄선을 선정 배치하였다. 또한 원점을 중심으로 식별이 용이한 도로를 따라 2봉쇄선을, 민간인 통제선을 연하는 지역에 3봉쇄선까지 작전배치를 완료했다. 그리고 인접 및 후방부대에도 차단선 형성과 함께 검문 검색 및 주민신고를 강화하도록 협조했다. 이것은 손자병법(孫子兵法)의 허실편(虛實篇)에 나오는 ‘선전자 치인이불치어인(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이란 말처럼 무장 탈영한 이진수 일병이 마음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작전부대가 그에게 조정 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의도였다.(하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3-1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72)] 군인들은 잔칫날 위해 살찌우는 돼지처럼, 전쟁 등의 국가위기에 목숨을 바칠 각오로 훈련에 전념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손자병법 구지(九地)편에 나오는 ‘선용병자 비여솔연, 솔연자 상산지사(善用兵者 譬如率然, 率然者 常山之蛇)’는 용병을 잘하는 자는 솔연에 비유함과 같으니, 솔연이란 상산에 사는 뱀이라고 직역이 된다. 이는 머리를 치면 꼬리가 달려들고, 그 꼬리를 치면 머리가 달려들며, 가운데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달려드는 솔연이라는 뱀처럼 몸이 하나가 되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적을 무찔러야함을 강조한 병법의 한가지이다. ■ 잔칫날 위해 살찌우는 돼지처럼 전쟁 등 국가위기 대비해 훈련하는 군인들 일부 전략가들은 군인들을 평소 잘 먹여 키워서 잔칫날 가족들과 손님들이 맛있게 즐기며 먹을 수 있는 돼지에 비유한다. 이는 군인들이 잔칫날 위해 살찌우는 돼지처럼 평시에 끊임없이 교육훈련을 하고 무기체계를 발전시켜 전쟁 등의 국가위기가 도래하면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단급 부대에서도 동계 혹한기훈련이 끝나고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시작되면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다. 3~4월이면 현재의 키리졸브훈련과 비슷한 ‘비호훈련’이 시작되고, 전방을 포함한 야전부대에서 예비군들까지 동원되어 현역군인들과 함께 훈련을 했다. 더불어 4주간 진지에서 숙영하며 춘계 진지보수 공사도 진행됐다. 7~8월 즈음에 민관군 전체가 을지연습을 한다. 이를 위해 각급 제대는 사전에 부대별로 전술토의 등의 훈련 준비를 했고 상급 지휘관은 전술토의 시 각 부대의 발표 내용을 통해 얼마나 개념 있는 훈련 준비를 하는지 평가했다. ■ 전술토의는 융통성이 발휘된 창의력 싸움 “타타탁 드루룩~ 타탁 ……” 이처럼 심야에 상황실에서 들려오는 김덕수의 사물놀이 같은 연타음은 상급 및 예하부대에서 날라오는 전문을 타자로 찍어내는 소리이다. 이 소리에 반주를 맞춰가며 작전병 김병진(현재 한남대 조형예술학부 교수) 상병은 전술토의 시 슬라이드 유리판에 붙일 아스테지에 글씨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상황실 야간 당직근무자는 전화기 옆에 앉아 졸린 눈을 비비며 대기하고 있으나, 김상병의 두 눈은 반짝이며 손놀림은 학이 춤추는 것 같았다. 다음날 오전에 사단장의 전술토의 발표내용 점검이 있었다. 각 연대의 발표내용을 참고했으나 종국에는 독일 군사학교에서 전술지식을 배웠고 보병학교에서 교관을 역임한 김관진 작전참모(육사28기, 전 국방부 장관)의 아이디어 위주로 착안되어 작성됐다. 발표내용은 인접부대 협조점을 통해 아군 진지로 유입되는 적 주력의 첨단을 장애물과 공격헬기로 저지하고 주변에 배치된 부대들이 진입하는 적의 옆구리를 치는 촌단 공격이 핵심이었다. 이에 더해 지평리 전투에서 크롬베즈 TF(특수임무부대)가 충격적인 돌진으로 중공군들을 완전히 제압했던 것처럼 최종적으로 전차를 동반한 TF(특수임무부대)가 스와핑 작전을 통해 적을 완전히 격멸하는 계획으로 전술토의를 준비했다. ([김희철의 전쟁사](3) “유엔군의 '자유전사' 프랑스 몽클레어 장군과 미국 프리만, 크롬베즈 대령” 참조) 이러한 발표내용은 김 상병의 미적 감각이 더해져 빔프로젝터로 화면에 비출 때 완전한 예술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옥에 티가 있었다. 상황판 뒤에서 작전참모의 발표에 맞추어 슬라이드를 집어주던 교육장교가 슬라이드를 꺼꾸로 넣어 화면이 뒤집혀버렸다. 순간 모두 당황했으나 작전참모는 “교육장교가 어젯밤 밤을 새워 준비하느라 피곤해서 실수한 것 같다”며 보고하자 사단장은 지금은 예행연습이니 실제 발표할 때 실수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미소 지으며 내용이 잘 됐다는 칭찬을 보내 실수가 오히려 사기 고양이 되었다. 결국 군단장을 모시고 시행된 전술토의에서는 우리 사단 발표가 단연 돋보였다. 우선 내용이 창의적으로 신선했고 김 상병의 미적 감각으로 화면이 멋있게 연출되었기 때문이었다. ■ 을지연습에서도 ‘솔연자 상산지사(率然者 常山之蛇)’ 개념을 실천한 작전참모 전술토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실제 을지연습이 시작되었다. 사단 예비지휘소 벙커에서 숙영을 하며 훈련에 임했는데 환기가 잘 안되어 벽에 물방울이 생기는 결로 현상이 심하게 나타났고 습기로 인해 보고하는 차트도 축축히 젖어 있었다. 한 여름이지만 벙커 안에서는 침낭속에 들어가 잠을 청해야 가능했고 눈을 뜨면 침낭은 습기로 젖어 있었다. 군대에서는 “업무를 보고로 시작해서 보고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하루에 두 번씩 사단장에게 그동안 훈련 상황을 보고하는 것이 참모부 훈련의 중요한 일과였다. 적이 공격을 개시해 GOP가 돌파되고 FEBA전단에서 방어를 지속하다가 상급부대 훈련 유도에따라 방어 종심까지 돌파되는 상황이 되면 각 참모부는 매우 바빠진다. 전투로 피해를 입은 병력과 장비를 보충하기 위해 상급부대에 추가 지원도 요청하고 역습계획 등 우발계획을 수립해 보고해야 했다. 오전 상황회의에 야간 상황을 종합해서 보고하는데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미처 작전참모의 검토도 못 받아 참모의 질책을 받았으나, 회의시간이 되어 초안 그대로 사단장 주관 상황회의에 임하게 되었다. 역시 작전의 대가답게 김관진 작전참모는 사전 검토는 못했지만 능숙하게 지도판과 차트를 활용하여 야간 상황을 보고했다. 그런데 다음 상황 차트를 넘기자 당시 상황에 부합되지 않는 오자가 눈에 들어와 아찔한 순간을 접하게 되었다. 참모의 표정은 속으로 “이놈들 사전에 검토 받으라고 했는데 시기도 놓쳐 미리 확인도 못해서…”하며 실무자들을 질책하는 것 같았다. 그때 참모는 오자가 있는 차트판을 몸으로 가린 후 자연스럽게 옆 지도판을 지시봉으로 가리키며 보고를 이어갔고 재빨리 다음 차트로 넘겼다. 참모의 순발력으로 위기를 넘기고 상황회의는 무사히 끝났다. 전술토의에서 발표했던 상산의 솔연(率然者 常山之蛇)이란 뱀처럼 머리를 치면 꼬리가 달려들고, 그 꼬리를 치면 머리가 달려들며, 가운데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달려들어 공격하듯 융통성 있고 창의적인 촌단 공격 및 스와핑 작전이 훈련간 시도된 것을 보고했다. 또한 상황회의에서도 순발력으로 부하들의 실수를 커버하며 순간의 위기를 넘기는 위기 극복 및 용병을 잘하는 솔연(率然)같은 리더가 작전참모였고 이러한 그의 업무 스타일은 작전처 후배 장교들에게 산 교육이 되었다. 마치 전쟁 등의 국가위기가 발생하면 잔칫날 목숨을 바치는 돼지가 평소 살을 찌우는 것처럼 전쟁에서 목숨을 바칠 각오로 융통성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솔연 같은 군인이 되기 위해 평소 교육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3-0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71)] 작전장교 일과는 사소함의 연속이지만 쌓이고 쌓여 알찬 성과 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로 위나라 사마의가 대치하고 있는 제갈량이 보낸 사신에게서 “제갈량이 음식은 지나치게 적게 먹고, 일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손수 일일이 처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사마의는, “식소사번(食少事煩),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번거로우니 어떻게 오래 지탱할 수 있겠소”라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했다. 사실, 제갈량은 사마의를 끌어내어 빨리 승패를 결정지으려 했으나 사마의는 지구전으로 제갈량이 지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신이 돌아오자 제갈량은, “사마의가 무슨 하는 말이 없던가?” 하고 물었다. 사신은 들은 그대로 전하자 제갈량도, “중달의 말이 맞다. 나는 아무래도 오래 살 것 같지가 않다”고 말했고, 제갈량은 곧 병이 깊어져 진중에서 죽어 촉나라 군대는 철수했고 사마의는 장안성을 지켜냈다. ■ 식소사번(食少事煩)처럼 눈에 띄게 보이는 성과없이 바쁘기만 한 작전장교의 일과 “따르릉 딴따라 딴딴단…...” 요란하게 자명종이 울리는 새벽, 잠결에 손을 뻗어 자명종을 끄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이미 30분이 지났고 와이프가 흔들며 늦었다고 재촉을 했다. 벌떡 일어나 세수하고 주섬주섬 전투복으로 갈아입으며 현관을 나서는데 와이프가 손을 잡으며 아침을 먹고 가라고 했다. 두 수저정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섰다. 아직 새벽 출근길은 깜깜했다. 급하게 상황실 벙커로 들어서자 작전보좌관 김영득 소령(육사32기)이 먼저 나와 보고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늦게 출근한 필자에게 꾸짖는 눈치를 보냈다. 작전처 요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분야들을 확인하느라 분주한 시간이 절정에 이를 즈음 스피커에서 아침 체조 집합 군가가 흘러 나왔다. 또 바빠졌다. 미처 확인 못한 부분은 당직 근무자에게 강조하고 상의를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본청 앞 광장에 모였다. 참모장 박영일 대령(육사25기 예비역 소장, 전 한국민속촌 사장)이 눈을 부라리며 집합 인원들을 확인했다. 아침체조가 끝나고 사단장이 집무실로 들어가자 참모장은 모인 참모부 간부들에게 강조사항을 지시하며 아침체조에 지각한 자와 불참자를 정확하게 찍어냈다. 그들은 예외없이 참모장실에 불려가 불호령을 듣게 될 것이다. 잠시 후 참모부 주요직위자들은 다시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전일 당직근무자의 상황브리핑을 듣기 위해서 상황실 벙커에 모였다. 전일 작전결과와 당일 작전과 주요 부대운용 상황을 보고 받은 사단장이 추가 지침과 기타 강조사항을 지시하고 다음 스케줄을 위해 자리를 떴다. 이어 참모장이 사단장 지침에 대한 세부적인 지시와 잘못된 사항에 대한 질책을 했다. 정신없이 바쁘기만 했던 아침 상황보고 시간이 지나자 창밖으로 완전군장의 간부들이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침체조 불참자와 상황회의시에 지적 받은 자들이 참모장실로 불려가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들은 일장 훈시를 듣고 사단 연병장에서 벌로 완전군장 보행을 할 것이 틀림 없었다. 야간에 특별히 지시 받은 업무가 있는 장교는 보고서를 챙겨 본청 참모실로 내려갔다. 하지만 상황회의가 끝난 오전시간은 작전처 요원들이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 콩나물 시루에 주는 물은 빠져 나가도 콩나물은 잘 자란다. 마침 그날은 참모부 회의가 없는 날이라 새벽잠을 설치고 아침 상황회의 준비에 바삐 뛰어다닌 피로가 밀려와 책상에서 깜빡 졸 수 있는 오전시간이 되었다. 물론 회의시 사단장의 지시사항을 조치해야 하지만 단순한 지시는 작전보좌관 전결로 처리했고, 심도 깊고 중요한 사항은 참모의 추가 지침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루 중 모처럼의 휴식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상급부대 실무자였다. 인접 작전장교의 전화 통에서 쌍소리가 들려왔다. “현황을 파악해 신속히 보고 못하냐”는 질책이었다. 결국 모처럼의 휴식 시간을 빼앗긴 채 보고서를 만들어 결재 받고 상급부대로 발송했다. 사실은 결재없이 비공식적으로 보고해달라는 업무가 더 많았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간부 식당에서도 참모들 자리와 실무장교들 자리는 구분되어 있다. 참모들은 식사를 하면서 사단장과의 대화를 통해 지침을 받고 구두 결재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참모들의 식사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실무자들은 식사를 빨리 끝내고 사무실로 왔다. 선배 작전장교가 건강이 중요하니 족구를 하자고 한다. 상황실 벙커의 좁은 통로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야간 업무시에 간식내기 게임이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자 끝났다. 또 바빠졌다. 오후에 예하부대 작전장교 소집회의가 있었다. 4개월 뒤인 10월에 사단장 재임 기간에 한번 실시하는 가장 중요한 전투지휘검열과 곧 시행될 을지연습 준비 때문이었다. 이미 준비해 놓은 회의록에 전투지휘검열과 을지연습 일정, 주요 착안점들에 따른 각 부대별 준비사항들이 포함되었다. 예하부대의 건의 사항을 토론한 뒤 작전참모의 강조사항을 끝으로 소집회의는 성공적인 마무리가 되었다. 그 와중에 타 작전장교는 타 참모실을 순회하며 또다른 업무를 위해 작성된 보고서의 협조서명을 받아왔고 소집회의를 마친 작전참모는 그 보고서를 들고 사단장실로 갔다. 벌써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하기식 나팔소리가 부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단장실을 나온 참모는 보좌관을 통해 또 내일 아침에 보고할 업무를 지시했다. 역시 이날도 밤 늦게까지 사무실을 지켜야 할 것 같다. 자정이 다될 무렵, 낮의 족구게임으로 마련한 간식 라면을 둘러서서 먹을 때 누군가가 외쳤다. “작전처 모토..! 오늘일을 과감히 내일로 미룬다…ㅋ”라고 이야기하자 즉각적으로 “오케이”하고 답이 나왔다. 작전장교들은 부대 정문 앞 독립가옥의 구멍가게 일명 ‘진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빨리 들어가 자고 내일 아니 오늘 새벽에 출근해야 하므로, 짧은 시간동안 두부김치에 소주를 벌컥 벌컥 마셨다. 그러면서 상급자들을 안주삼아 푸념하면서 잠시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관사로 향하며 흥얼거렸다. “보람참 하루일 끝마치고서 ….”라는 군가였다. 식소사번(食少事煩)이라는 사자성어의 의미와 같은 일과(job)였지만, 작전처 요원들은 제갈량처럼 되지않고, 콩나물 시루에 주는 물은 빠져 나가도 콩나물은 무럭무럭 잘 자라듯이 바쁜 하루를 통해 알찬 성과를 쌓아가고 있었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3-0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70)] 사관특채(유신사무관), 선후배 등까지도 일(jop)을 위한 든든한 자산이자 잠재능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인생(Life)은 B(탄생, Birth)과 D(죽음, Death) 사이에 있는 C(선택, Choice)의 연속이라고 한다. 사관학교에 입학해 군복을 입은 지 어언 10년이 되자 동료들의 진로가 확연하게 차이나는 시비 쌍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동기생 40명이 사관특채(유신사무관)으로 지원하여 군복을 벗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라는 법화경의 글귀처럼 청운의 꿈을 향한 각자의 길을 선택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 자신의 운명(運命)에 따라 사회 각층의 직업(jop)분야에서 그 꿈을 실현 세상에 태어난 것도 선택이다. 수만개의 정자 중에서 발탁되어 엄마의 뱃속에서 꿈을 키워 우렁차게 울면서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그 선택의 결과로 어떤 이는 재벌의 2세가 되어, 또 어떤 자는 가난한 가정 등에서 나름대로 성장했다. 결국 자신의 운명(運命)에 따라 사회 각층의 직업(jop)분야에서 그 꿈을 실현해 간다. 당시 중대장을 마치고 사단작전장교가 되어 정신없이 밀려오는 업무의 파도 속에 허부적거리다 보니 태릉골(육사)에서 군복을 처음 입어본 지 10년이 지났고, 약 290명의 동기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첨단 실무자들이 되어있었다. 돌이켜보니 좌우 인접 사단에도 동기들이 작전장교 및 인사장교 보직을 수행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약 40명이 사관특채(유신사무관)로 지원하였다. 사실 이 사관특채(유신사무관)제도는 필자가 사관학교 입교 시험을 볼 때 최초로 생긴 제도로 당시 육사 25기가 최초로 사무관으로 임용되어 각 분야의 공무원 활동을 시작했다. 사관특채(유신사무관) 1기인 권경석 전 의원(17·18대 국회의원)은 "관료조직이 타성과 부패에 빠지는 여느 개발도상국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제도라면서 지원자를 모집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한마디로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수단의 하나"라는 것이 권 전 의원의 평가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점점 심해지는 군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1977년 1기부터 1988년 11기로 폐지될 때까지 배출된 인원은 총 784명. 육사 기수로는 25∼37기에 해당한다. 시행 초기 5년간 100명 안팎을 선발했지만 전두환 정권 3년차인 1982년부터 50명 내외로 인원이 줄었다. ■ 미꾸라지 어항에 천적 메기를 넣어두면 미꾸라지들이 더 생기 있다는 '메기효과' 유신사무관들은 사관학교에서 배운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라는 ‘사관생도신조’로 무장을 하고, 전후방 각지에서 소·중대장직을 체험하여 조직관리능력과 리더십을 배양한 상태라 각종 비리와 불합리와 맞서 싸워 많은 신화를 창조했었다. 헌데 '유신사무관 폐지'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약속대로 이 제도를 없애 버렸다. 민주화 열망이 분출하던 1987년, 안타깝게도 유신사무관은 군사독재의 주요 상징으로 척결대상에 꼽혔기 때문이다. 군이라는 특정 집단에서만 사무관을 한 해 100명 넘게 선발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였다. 반대로 공직사회와 민간에는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왔다. 유신사무관 106명을 임용한 1977년 당시 행정고시(21회) 선발인원이 134명이었으니, 당시 공직사회 안팎에서 느꼈을 경계심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필자의 육사입교 시험시 입시요강에 최초 공고됐었는데, 결국 육사입교시 첫 대상이었던 필자 동기들을 끝으로 1989년에 폐지되어 1978년에 입교한 육사 38기부터는 유신사무관 선발이 없어졌고, 40여년이 지난 작금에는 공무원 조직중에 유신사무관들은 모두 퇴직하여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수단으로 시작된 제도였지만 시행 후, 행정고시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획일적·폐쇄적인 관료사회에 다양성을 더하는 자극제였다고도 볼 수 있다. “미꾸라지 어항에 천적 메기를 넣어두면 미꾸라지들이 더 생기 있다”는 '메기효과'와 비슷한 논리이다. 마지막 사관특채(유신사무관) 11기인 한문철(육사37기) 전 서울시의회 사무처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특혜 논란과 유신사무관이라며 평가절하하고 견제하는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사관특채(유신사무관)의 존재가치는 일부가 주장했던 부정적인 측면도 보다는 소속된 조직을 정화시키고 확고한 국가관과 사명감으로 공무원 사회를 변화시킨 신화로 남아있다. ■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의미처럼 떠나간 자들까지도 인맥형성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라는 법화경의 의미처럼, 4년 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사관학교를 졸업해 장교로 임관했고, 야전에 배치되어 5년이란 시간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동기들의 일부가 사회로 환원됐다. 그 와중에 필자보다 늦게 전입 왔던 선후배와 동료 등도 차기 보직을 위해 먼저 전출갔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들을 아쉬워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나머지 250명의 동기생들은 또다시 경주마가 되어 군생활이라는 트랙을 질주해야만 했다. 한편 ‘거자필반(去者必返)’ 즉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의미처럼, 생도시절 훈육관 이었던 선영제 대령(육사25기)이 연대장으로 전입 왔으며 친 동생처럼 가르쳤던 한설, 신경철, 김상철(육사40기) 후배들도 휴가를 이용해 방문해 해후의 정도 나누었다. 인생(Life)은 C(선택, Choice)의 연속이다. 물론 그 선택 속에서 일부 악연도 있었으나, 대부분 새로운 만남을 통해 서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또다른 인맥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먼저 사회로 환원된 사관특채(유신사무관)까지도 포함한 좋은 관계의 인맥은 필자의 군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법화경 한 구절의 의미가 새삼 가슴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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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69)]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법,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공자의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옛 학문을 되풀이하여 연구하고, 현실을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을 이해하여야 비로소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근무지에서 시작하는 신입이나 전입직원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해 쩔쩔매거나, 간혹 그동안 자신의 커리어만을 믿고 앞서가다가 큰 코를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도 중대장 근무를 잘 마무리하여 자신만만하게 사단 작전처 근무를 시작했는데 실상은 매사에 실수투성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격언이 머리를 때렸다. ■ 새로운 환경인 로마의 법을 따르기 위해 친절한 스승을 만나다 초급간부와 병사들을 눈·입·발로 보고 지시하며 앞서 나아가 따라오게 하는 중대장보다 지시를 받거나 미리 예측하여 문서로 작성해 층층의 상급자(작전보좌관→작전참모→인접 참모들 협조서명→참모장→사단장)에게 각각 검토를 받고 결재 후 예하부대에 근거있게 지시하고 확인하는 상급부대의 실무장교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중대장 시절에는 업무가 부여되면 고민하여 착안한 사항들을 소대장들과 병사들에게 말로 지시하고 확인하면 됐는데 상급부대로 갈수록 구두 지시 보다는 문서로 지시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심지어는 사단장과 군단장이 구두로 지시를 했더라도 다시 정리하여 문서로 지시하는 것은 당연한 실무자의 몫이었다. 말만으로 명령하다가 매사를 문서로 지시를 하기 위해서는 문서 작성 능력이 필요했는데, 대대 교육장교를 경험했던 필자였지만 체계적인 문서작성 요령을 다시 배워야 했다. 그때 작전처의 선임장교인 염철한 대위(삼사15기)의 친절한 가르침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 ■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은 사기진작을 위한 허언(虛言) 작전장교의 일상은 새벽 상황보고 준비를 해서 사단장과 참모들에게 일일작전 상황보고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야간 작전 상황보고와 아침 상황보고 준비를 확인함으로써 끝난다. 그러다 보니 새벽별빛 아래에서 오솔길을 따라 출근하여 주간에 상급부대 현황 파악 보고와 수시 보고 준비를 하는 등 바쁘게 달리다가 자정이 다 되어야 지친 몸을 질질 끌며 숙소로 향한다. 전입 얼마 안되어 상급자나 선임장교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지만 곧 다음 일을 위해 펜대를 잡으면 앞이 망막해졌다. 얼마나 모르는 것이 이렇게도 많은 대도 “무슨 열을 아는 신입장교인가..?”하고 반성했다. 돌이켜 보면 지쳐서 사기 떨어지지 말라고 격려하는 허언(虛言)이었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펜을 들고 다음 작전보고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인터폰이 울리며 작전참모가 호출을 했다. 수첩을 챙겨 상황실 벙커에서 부리나케 본청 참모실로 갔다. 김관진 작전참모(육사28기, 전 국방부장관/국가안보실장)는 메모지에 읽기 힘든 글자 모양과 선을 그리며 지침을 주었다. “제목은 000작전인데 사단장 의도가 ~ XX ~이니까 너는 박스를 그려 현황을 넣고 다음에 실태를 제시하고, 앞으로는 ~ ~~이렇게 되도록 작성해서 가지고 와라”라며 승천하는 용 같은 지렁이 모양과 글씨 그리고 동그라미가 그려진 메모지 6장을 주고는 필자의 얼굴을 보면서 “알겠냐…?”라고 지시를 하였다. “예, 네~”하고 쉽게 대답은 했으나 상황실 벙커로 올라오며 메모지의 지렁이 기어가는 선들과 알 수 없는 글자 모양에 혼돈 만 가중되었다. 그나마 지침 없이 000작전 지시문 만들어 와라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본인이 직접 메모지에 요약하며 방향을 제시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사무실 자리에 도착해서 한숨을 쉬고 보고서 작성에 들어갔다.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고민하는 필자를 지켜보던 선임장교 진종면 대위(삼사14기)가 다가왔다. 어깨 너머로 제목과 내용을 보던 그는 “잠시 기다려봐”라는 말과 함께 후송을 다녀온 뒤라 목발을 집고 절뚝거리며 이동해 캐비넷을 뒤적이더니 문서 한뭉치를 꺼냈다. “김대위, 이것은 작년에 비슷한 내용으로 작성했던 것이야. 참고가 될꺼야…!” ■ ‘온고지신(溫故知新)’, 스펀지처럼 옛 것을 빨아드려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것보다 기존 멤버인 선임작전장교들의 지식과 자료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것을 제시하여야 한다. 밤새 준비를 하여 새벽 상황보고 전에 작전보좌관 검토를 받고 참모실에 들어갔다. 작전참모는 보고서를 넘겨보더니 서명을 하고 인접 참모 협조서명을 받아오라고 지시했다. 바빠졌다. 상황보고 전에 끝내야 한다. 인접 참모실에 갔으나 이미 다른 실무자가 들어가 보고 중이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할 수 없이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보고 중이던 해당 참모부의 다른 실무자를 제끼고 필자의 보고서를 내밀면서 사단장 지시로 급하게 들어왔으니 협조서명을 부탁드린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협조서명을 무사히 마치고 작전참모에게 보고서를 가져갔다. 작전참모는 아침 일일작전 상황보고가 끝나자 곧바로 사단장을 따라 집무실로 들어갔다. 작전처의 오전은 그나마 휴식 시간이다. 밤새 보고서와 씨름해 피로가 밀려오며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때 버릇이 생겨 지금도 의자에 앉으면 졸음이 몰려온다. 특히 버스 등 차를 타면 그 진동에 바로 잠이 드는 습관이 생겼다. 깜빡 깊은 잠에 빠지는 순간 또 인터폰이 울렸다. 원래 다정했던 작전참모의 목소리가 경직되어 있는 느낌을 받고 긴장하여 참모실로 내려갔다. 다행이도 보고서에 사단장 서명이 되어 있었다. 작전참모는 전날 사단장을 수행하며 이미 소통을 하였기에 사단장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시 받은 다음날 아침에 바로 결재를 할 수 있었고 그 작전은 정상적으로 신속하게 시행되었다. 허나, 보고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빨간 펜으로 체크가 되어 있었고 그 체크는 세 군데나 더 있었다. 김관진 작전참모는 “야, 김희철..! 사단장님이 오자를 체크했는데 앞으로도 난 오자 체크는 안하고 개념만 맞으면 바로 결재 들어갈꺼다. 그러니 앞으로 오자가 또 나오면 니가 책임져…!”하고 미소띤 질책과 함께 수고했다는 말을 던졌다. 옥에 티인 그 오자가 한계였지만 오후에 지시를 받고 준비해서 다음날 아침에 결재가 나올 때의 성취감은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새로운 근무지에서 전입·신입직원의 노하우는 스펀지처럼 기존 멤버들의 지식을 흡수해서 업무를 해야한다. 더불어 탁월한 직원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마음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마치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사자성어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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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68)] 직업군인이란 ‘침과대적(枕戈待敵)’속에서도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줄 알아야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침과대적(枕戈待敵)’이란 창을 베고 적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항상 전투태세(戰鬪態勢)를 갖추고 있는 군인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따라서 군인은 어느 직책이든지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시간이 제한된다. 즉, 휴일이나 휴가중에도 부대에 비상이 걸리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망서리지 않고 부대로 복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 처음으로 마음 놓고 망중한(忙中閑)의 휴가 즐기다 육군소위로 임관해서부터 GP장과 대대작전항공장교, 중대장 근무를 하면서도 마음 놓고 즐기는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낸 적이 없었다. 친구를 만나거나 집안 행사에 참석하더라도 ‘침과대적(枕戈待敵)’의 마음으로 잠시 눈 도장만 찍고 부대로 복귀해야 했다. 심지어 결혼 휴가 때에도 부대 일정이 조정되어 결혼식을 마치고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바로 복귀해 훈련 평가에 참여했다.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6)] '스탭 꼬인 결혼식 날짜와 지휘관의 줄탁동시(啐啄同時)’ 참조)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된 휴가를 만끽했다. 사단에서는 이취임식을 하고 바로 출근하라고 했는데 강호갑 대대장(육사31기)의 배려로 연대장 신고 일주일전에 중대장 이취임식을 하도록 조치하여 모처럼 여유있는 휴가를 출발했다. 전방 근무를 시작하면서 친척 어른들과 친구들도 여유를 갖고 만날 수 있는 휴가를 보낸 적이 별로 없어 그들의 얼굴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따라서 이취임식을 마치자 바로 서울로 출발해 처가도 들려 중대장을 무사히 마친 인사도 드렸다. 이어서 이미 서울로 이동하여 근무하는 옛 선배와 동기들을 만나 소주잔도 기울였다. 또 작은 할아버지, 고모님들, 외삼촌….. 가능한 모든 친척을 찾아 뵙고, 고향집에서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제대로 못간 신혼여행을 보상하는 의미로 따뜻한 남쪽지방 여행도 갈 수 있었다. 연애시절 추억이 담긴 창원, 마산과 논개의 한이 서린 진주 진양호 등을 거치며 부부만의 알콩달콩한 시간도 가졌다. 이 모두는 당시 필자의 소속이 이임한 부대로 되어있으나 이미 임무를 교대했기에 부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후임자가 처리를 하고 본인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에서 망중한(忙中閑)의 휴가를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임무 교대후 전출 시와 전역할 때 뿐인 것 같다. ■ 마음 놓고 즐기는 휴가를 당분간 포기한 사단작전장교 근무 시작 휴가 복귀해서는 바빴다. 연대장에게 전출신고를 하고 아파트에 돌아와 이사짐을 싸기 시작했다. 결혼식 이후 3년4개월동안 벌써 6번째 이사이다. 최초 육단리 관사의 신혼 살림을 시작으로, 6개월간의 고등군사반 교육을 받기 위해 광주상무대 백일아파트로, 교육 수료후 다시 육단리 셋방에서 중대장을 시작하고, 당시 6개월주기의 GOP부대 교대에 따라 적근동 관사, 또 다시 삼거리 아파트로 이동했다가 이번엔 중대장을 마치고 사단본부 아파트로 이사를 준비했다. 1987년 3월말 사단본부 첫 출근을 위해 새벽에 오토바이를 운전하여 삼거리 아파트를 나서자 늦겨울이자 이른 봄의 폭설이 내렸다. 약 1시간 거리의 사단본부를 향해 출발했지만 눈길은 미끄러웠고 눈발은 점점 더 강해져 앞이 안보일 정도였다. 결국 사단본부 앞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간신히 사무실에 출근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때마침 작전처 선임 대침투장교인 진종면 대위(삼사14기)가 축구경기 중 다리가 탈골되어 춘천으로 후송을 떠나 일손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 공백을 메우느라 고생하던 정규작전장교 염철한 대위(삼사15기)는 오토바이를 타고 오느라 손발이 얼고 눈사람같이 변한 모습의 필자를 너무도 반겨주었다. 다음날 가족이 직접 군 트럭에 이사짐을 챙겨 사단본부 아파트 503호로 이사를 했고, 그렇게 마음 놓고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휴가를 당분간 포기한 사단작전장교 근무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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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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