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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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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⑭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는 유난히도 ‘37’이라는 숫자와 많은 인연을 갖고있다. 육사 37기로 임관했고, 또 37사단의 대대장 자원으로 부임했으며, 전입후에 자만과 교만에 빠져 과신하며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불융합에 의한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37일동안 입원했다. 바로 전해 4월에 발생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한 병원치료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재활 치료 기간이 많이 남아있어 바로 대대장 취임은 어려우니 차라리 6개월간의 ‘군사영어반’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으며 재활치료를 한후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라는 제안에 따라 본의 아니게 영어교육을 받는 혜택을 누렸었다. 이번에도 퇴원을 앞두고 회복할 수 있는 재활치료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관리학교 8주간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 제95-4기’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한 작전직능의 장교가 군수분야까지 섭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지만, 제95-4기과정에 참석한 학생장교들은 대부분이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었다. 따라서 작전직능으로 군수분야 문외한(門外漢)인 필자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고 함께 교육받는 선배들과 수호천사 라파엘이었던 동기 이00중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의미하며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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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3)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하지만 영관영어반에서 만난 선배중에는 광주 출신의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임을 부정하고 중국인 공산주의자로 행세를 한 정율성처럼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도 있었다. 정율성이 북한과 중국에서 보였던 불손하고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지만 화려한 작곡가로서의 삶처럼 그 선배도 생도시절부터 뛰어난 지혜와 지휘생도 활약으로 후배 생도들의 존경심을 받아왔고 필자에게는 목발 및 지팡이를 짚고 있다고 해서 DJ라는 별칭을 즐겨 불러 주었다. 또한 그는 명석한 지능으로 영어 수업도 우수한 성적을 계속 유지했다. 마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정율성처럼 그의 모습은 수업시간에 뛰어난 영어 회화능력으로 교관들의 칭찬을 받아 학생장교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일과후 독신자 숙소에서도 타 선배들처럼 잦은 출타를 하거나 만취되는 일도 없이 착실한 학생장교로 돋보였고 필자는 친절하게 학업을 도와주는 그가 고맙고 존경스럽기까지 했고 대령으로 일차 진급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영관영어반 과정이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접어들 무렵에 그는 매우 힘든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동생이 사업을 하는 데 급전이 필요하고 진행상 곧 회수 가능해 일주일 뒤면 갚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필자는 현금이 있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필자도 교통사고 후에 많은 출혈이 있었고 저축한 돈도 별로 없어 죄송했다. 선배의 계속 독촉에 못이겨 현재 들고 있는 적금을 해약하면 요구한 금액의 반정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거라도 빨리 주면 바로 해결하고 일주일 뒤에 갚겠다고 다짐했다. 하는 수 없이 통장을 들고 은행을 찾아 적금을 해약한 후에 그 선배에게 전달했다. 물론 일주일 뒤에 갚는다고 해서 가족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선배에게 갚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일단 돈을 주고나니 빌려준 사람이 을이 되어 있었고, 그는 여유롭게 생활하며 빌린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결국 교육 종료 직전에 그 선배에게 아직까지도 가족에게 말을 안했으니 빌린 돈을 갚아주어야 통장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독촉했다. 그 선배는 다음주로 다시 미루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던졌는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생도시절부터 탁월한 모습으로 존경을 했던 인연은 악연으로 끝났다. 가짜 한국인 정율성처럼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그의 언행에 현혹된 필자가 부끄러웠고, 이후에는 잘 아는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금전 문제가 생길 때에는 여유가 있어 대출이 아닌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아니면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것이 돈도 잃지 않고 더구나 사람도 더 잃지 않는 길이라는 교훈을 영관영어반 교육과정에서 얻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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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2)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㉗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율성이 6·25남침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군가도 작곡했지만 인민군과 함께 서울에 내려와 점령군으로서 자유 대한민국을 유린하고 1·4 후퇴 때는 중공군과 함께 재차 서울에 내려와 조선궁정악보를 약탈해간 매국노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광주 출신이지만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 공산당원으로 변절한 자를 추모하며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추진했던 정율성 공원 조성사업은 동족상잔의 비국을 겪은 자유대한민국에서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현재도 핵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하는 북한의 군사도발을 막으려면 견고한 한미동맹이 절실한 실정이다. 필자가 다녔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북한의 재 남침에 대비해 합동참모본부의 주요부서에 근무하며 군사전략을 담당했던 용삼남(육사33기) 선배로부터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용 선배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재활치료에 전념했던 필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기도 했다. 그는 생도시절 럭비부 선수 생활을 했는데 운동중에 부상을 입어 척추가 심하게 손상되어 의사들이 판단할 때에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였으나 강한 의지로 철저하게 운동을 하여 척추 주변 근육을 강화시킴으로써 전혀 불편함 없이 더 건강하게 보였다. 예를 들면 합참 근무시에 매일 새벽에 가장 일찍 출근하여 책상 및 의자 정리 및 청소를 한 뒤에 책상위에 올라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300개씩 하여 근육을 강화시켰다. 그가 원주에 있는 부대에 근무할 때에는 고속도로에서 시비를 걸던 조폭을 한방의 주먹으로 넉아웃시킬 정도로 강해졌다는 여담도 남겼다. 건강한 체력은 건전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업무에 질도 고양시킬 수 있다. 건강의 이상을 극복하며 지칠줄 모르는 용 선배의 체력에 상관들은 힘든 업무도 쉽게 맡길 수 있었고 업무상 만나는 미군들과도 쉽게 친해져 한미 연합작전과 군사전략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일과후에는 독신자 숙소에서 우리의 전통악기인 대금을 연주하며 하루를 마감하여 건강상 어려운 위기를 적극 극복하는 강한 의지와 동시에 예술감까지 가진 문무를 겸비한 군인으로 끝없는 존경심을 불러 일으켜 앞으로의 군생활의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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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1)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㉖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10월2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에 세워져 있던 중국 음악가 ‘정율성 동상’이 기단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정율성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에 귀화한 음악가로, 북한·중공군 군가를 작곡한 인물인데, 광주시가 기념사업을 추진해 논란을 불렀다. 정율성 동상은 중국 청년단체가 제작해 광주 지역 청년단체에 기증한 것으로 2008년 광주 남구 양림동에 조성된 정율성 거리 입구에 세워졌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이날 재물손괴 혐의로 보수단체 회원 윤모(5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전날(1일) 오후 정율성 흉상 목 부분에 밧줄을 묶고 2.5톤 승합차에 이를 연결한 뒤 쓰러뜨리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했다. 정율성 흉상은 위의 사진처럼 약 1m 높이의 기단에서 완전히 분리된 채 기단 옆 땅바닥에 누운 모습으로 발견됐다. 윤씨는 범행 직후 한 유튜브 채널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중단하라고 광주시에 요구했는데 이를 이를 수용하지 않아 강제로 (흉상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경찰에서 “내가 그랬다. 3일 오전에 경찰서로 가서 조사받겠다”며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유족 대표인 고(故)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전 광주대성여고 교장은 2일 “공산주의자 정율성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광주시가 혈세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공원을 짓는다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무조치로 일관하고 있다”며 “공원 철폐를 위한 릴레이 피켓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다. 김오복 전 교장은 “북·중공의 군가를 짓는 등 한국 침략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한 정율성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강기정 광주시장은 아무 중단 조치도 없이 정율성 공원조치를 강행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율성 공원 문제 제기에 대해 철지난 이념몰이, 색깔론, 민간외교라는 억지 논리만 되뇌고 있다”면서 “지난 한 달여 동안 보훈단체들의 집회를 관제 데모로 깎아내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과 보훈가족을 모독하고,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을 철폐하거나 대안을 만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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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0)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최근 국방부장관으로 지명된 신원식 의원(육사 37기)은 레닌에게 선물받은 권총으로 독립군을 직접 사살한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의 동상 이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영관영어반’ 과정에 다닐 즈음에는 홍범도의 존재 조차도 몰랐다. 청산리 대첩 이후인 1921년,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와 그 일당들에 의한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들은 몰살당하며 해체됐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았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소련군 복장의 공산주의자를 추모한다는 것은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인민군과 중국인민군 군가와 마오쩌뚱 찬양가 등을 수십 곡 만들며 뼈속까지 어용 공산주의자인 정율성 작곡가의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관생도를 포함한 건전한 국민들의 정체성과 대적관을 현혹시키는 잘못된 처사이다. 필자가 다니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확고한 대적관을 바탕으로 견고한 한미동맹을 위한 교육이 계속되었다. 이 교육을 통해 숙달한 영어회화 능력으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 및 훈련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을 마치면 다음 보직은 연합사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 다음 보직이 충북 충용부대로 정해져 있었고, 다른 교육생들은 연합사령부 또는 예하 부대 및 연합작전/훈련을 주로 시행하는 합동참모본부로 분류되었다. 마침 합참의 중요부서에서 근무했던 선배도 함께 교육을 받고 있어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한명은 육사 33기 용삼남 중령이었다. 과거 승리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양태수, 나대일, 김형배 선배 등을 포함하여 많은 선배 동료들을 다시 만나는 해후의 시간도 만끽했으나 용 선배는 6개월 교육기간 중에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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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8)] 직업군인이란 ‘침과대적(枕戈待敵)’속에서도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줄 알아야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침과대적(枕戈待敵)’이란 창을 베고 적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항상 전투태세(戰鬪態勢)를 갖추고 있는 군인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따라서 군인은 어느 직책이든지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시간이 제한된다. 즉, 휴일이나 휴가중에도 부대에 비상이 걸리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망서리지 않고 부대로 복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 처음으로 마음 놓고 망중한(忙中閑)의 휴가 즐기다 육군소위로 임관해서부터 GP장과 대대작전항공장교, 중대장 근무를 하면서도 마음 놓고 즐기는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낸 적이 없었다. 친구를 만나거나 집안 행사에 참석하더라도 ‘침과대적(枕戈待敵)’의 마음으로 잠시 눈 도장만 찍고 부대로 복귀해야 했다. 심지어 결혼 휴가 때에도 부대 일정이 조정되어 결혼식을 마치고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바로 복귀해 훈련 평가에 참여했다.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6)] '스탭 꼬인 결혼식 날짜와 지휘관의 줄탁동시(啐啄同時)’ 참조)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된 휴가를 만끽했다. 사단에서는 이취임식을 하고 바로 출근하라고 했는데 강호갑 대대장(육사31기)의 배려로 연대장 신고 일주일전에 중대장 이취임식을 하도록 조치하여 모처럼 여유있는 휴가를 출발했다. 전방 근무를 시작하면서 친척 어른들과 친구들도 여유를 갖고 만날 수 있는 휴가를 보낸 적이 별로 없어 그들의 얼굴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따라서 이취임식을 마치자 바로 서울로 출발해 처가도 들려 중대장을 무사히 마친 인사도 드렸다. 이어서 이미 서울로 이동하여 근무하는 옛 선배와 동기들을 만나 소주잔도 기울였다. 또 작은 할아버지, 고모님들, 외삼촌….. 가능한 모든 친척을 찾아 뵙고, 고향집에서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제대로 못간 신혼여행을 보상하는 의미로 따뜻한 남쪽지방 여행도 갈 수 있었다. 연애시절 추억이 담긴 창원, 마산과 논개의 한이 서린 진주 진양호 등을 거치며 부부만의 알콩달콩한 시간도 가졌다. 이 모두는 당시 필자의 소속이 이임한 부대로 되어있으나 이미 임무를 교대했기에 부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후임자가 처리를 하고 본인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에서 망중한(忙中閑)의 휴가를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임무 교대후 전출 시와 전역할 때 뿐인 것 같다. ■ 마음 놓고 즐기는 휴가를 당분간 포기한 사단작전장교 근무 시작 휴가 복귀해서는 바빴다. 연대장에게 전출신고를 하고 아파트에 돌아와 이사짐을 싸기 시작했다. 결혼식 이후 3년4개월동안 벌써 6번째 이사이다. 최초 육단리 관사의 신혼 살림을 시작으로, 6개월간의 고등군사반 교육을 받기 위해 광주상무대 백일아파트로, 교육 수료후 다시 육단리 셋방에서 중대장을 시작하고, 당시 6개월주기의 GOP부대 교대에 따라 적근동 관사, 또 다시 삼거리 아파트로 이동했다가 이번엔 중대장을 마치고 사단본부 아파트로 이사를 준비했다. 1987년 3월말 사단본부 첫 출근을 위해 새벽에 오토바이를 운전하여 삼거리 아파트를 나서자 늦겨울이자 이른 봄의 폭설이 내렸다. 약 1시간 거리의 사단본부를 향해 출발했지만 눈길은 미끄러웠고 눈발은 점점 더 강해져 앞이 안보일 정도였다. 결국 사단본부 앞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간신히 사무실에 출근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때마침 작전처 선임 대침투장교인 진종면 대위(삼사14기)가 축구경기 중 다리가 탈골되어 춘천으로 후송을 떠나 일손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 공백을 메우느라 고생하던 정규작전장교 염철한 대위(삼사15기)는 오토바이를 타고 오느라 손발이 얼고 눈사람같이 변한 모습의 필자를 너무도 반겨주었다. 다음날 가족이 직접 군 트럭에 이사짐을 챙겨 사단본부 아파트 503호로 이사를 했고, 그렇게 마음 놓고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휴가를 당분간 포기한 사단작전장교 근무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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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8)] 직업군인이란 ‘침과대적(枕戈待敵)’속에서도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줄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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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7)] 삶이란 우주생명에 기여하고 사라지는 것/흔적을 남기지 않고 후임 중대장에게 길을 열어...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 연구소장] 하늘아래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자기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가? 그것을 생사를 걸고 찾아라! 그리고 때와 장소를 알아 찾은 것을 아낌없이 태워라! 주변을 밝히려 자신을 태우는 태우는 촛불과 같이…….세상사 마무리 또한 중요한 것이니 철근 콘크리트를 만들고 증발해 버린 물과 같이 흔적도 남기지 말고 사라져라! 남을 살리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대인(大人)의 도(道)이다. 사나이여! “대인의 길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 연속된 훈련, 평가, 검열이라는 '극한' 속에서 여유를 찾아… 인접 사단 지뢰 사고로 긴장된 가운데 6월20일에 시작된 한달간의 GOP철책을 이중화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작전지역의 급경사도로인 중고개 도로 포장공사에 투입되었다. 바로 이어 8월이 되자 4주간의 대대전술종합훈련이 있었다. 먼저 공지합동훈련으로 장거리 행군을 하여 장군산 훈련장에 도착한 후 작전항공장교의 유도로 공군 전투기가 표적에 폭격을 하고 우리 중대가 대대의 주공을 맡아 공격하여 목표를 점령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마침 현장지도를 나온 정성호 연대장(육사22기)은 대대장실에 중대장들을 모아 격려를 하면서 지휘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연대장은 월남전이 치열할 때 소대장으로 참전했는데 그때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상급 명령으로 어느 마을을 수색하라는 작전 지시를 받고 그 마을 입구에 도착했는데 너무 조용하여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느껴 전진을 중단시키고 적정을 다시한번 더 살피고 있었다”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때 병행 수색을 하던 인접 소대는 정지 없이 그대로 마을로 진입하다가 베트공 매복조의 집중사격을 받아 많은 피해를 입었다. 상황을 확인한 연대장의 소대는 측방 공격으로 베트공을 타격하여 전과를 올리게 되었다. 정 연대장은 지휘자의 직감과 통찰력은 부대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하고 훈련장을 떠났다. 4주간의 대대전술종합훈련이 끝나자 타부대 경계지원, 유격훈련, 추계진지공사, 사단 전투지휘검열 등이 계속 이어졌다. 연속된 훈련, 평가, 공사, 검열 속에서 어느덧 중대장 시절 막바지에 이르렀다. 생도시절 훈육관이자 대대 교육장교 시절 지휘관으로 모셨던 송영근(육사27기, 기무사령관,19대 국회의원 역임)장군이 강조했던 가르침을 실천하여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아무리 바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겸손하게 임하되, 자기일에 정통하라! 미리 계획하고 행동하라! 항상 새로운 것을 제시하라!”는 이 세 가지의 근무자세를 이후 어느 보직을 부여 받아도 변함없이 적용함으로써 극한 속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 상급 지휘관 교체 시 생존 방법은 중용지도(中庸之道) 1984년 12월부터 근 2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부대를 멋있게 지휘했던 양치규 대대장(육사29기, 32사단장, 방사청장 역임)이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3군 사령부로 영전하게 되었다. 추계진지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86년 10월 고별순시를 하시던 대대장 부부 앞에서 중대원들은 부모님과 이별하듯 아쉬워 했고 사모님은 눈가에 이슬을 감추며 그렇게 떠났다. 신뢰와 사랑을 한몸에 받던 필자도 그동안 존경했고 정들었던 대대장을 떠나보내기 싫었지만 아쉬움을 달래는 마음이 식기도 전에 신임 지휘관인 강호갑 대대장(육사31기)의 지휘방침을 따르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상급 지휘관이 바뀌었는데도 과거에 안주하면 절대 안된다. 그동안의 절차, 예절, 근무 방법 등 모든 것을 새로운 상급자에게 맞추어야 한다. 일단은 새로 부임한 상급자의 방침을 따라서 전환하는 카멜레온 같은 변신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과 관습에 익숙해 있더라도 잘 아는 것처럼 너무 나서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마침 육사 2년 선배들의 유신사무관 모집이 있었는데 사단의 7명 선배중에 6명이 동시에 응시하는 상황이 벌어져 사단이 발칵 뒤집혔다. 필자가 근무하는 사단에서 유별나게도 사무관 지원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방향을 전환한 선배들 중에는 아마도 대부분이 상급 지휘관 교체 시 적응이 어려웠던 것이 그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 즉, 상급 지휘관 교체시 생존 방법은 공자의 중용지도(中庸之道)가 정답이다. ■ 유종지미(有終之美) 얻으려면 흔적도 남기지 말도 아낌없이 비워라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새롭게 만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조직사회의 당연한 흐름이다. 대대장이 교체되자 참모들도 바뀌었다. 대대 지원장교로 보병학교에서 본부대장을 헸던 3사관사관학교 출신 지원장교가 부임했다. 군으로 따지면 3년선배인 그는 소령 진급을 못하고 전방으로 부임된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또한 직전에 근무했던 보병학교에는 전역을 앞둔 대령급 장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진급을 미끼로 부하들에게 뇌물을 요구했고 본인도 더 많이 상납한 동기에게 밀렸다며 만연된 부정부패를 한탄했다. 임관 후 계속 5년 넘게 최전방생활을 한 필자에게는 청천병력 같은 소리였다. 한편은 그런 비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최전방 오지에서 열심히 하는 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전방부대가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시간이 지나자 그의 논리비약이 심했다는 것을 그의 근무자세를 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 일부의 부정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군 전체에 만연된 것은 아니라는 게 사실이었다. 부패 체험을 못하고도 정상적으로 진급하고 전역한 필자가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도 존경하고 배울 것이 많았던 송영근 대대장님이 6사단 작전참모로 근무 중인대도 대령 심사에서 낙선을 했고, 수도권과 육군본부 등지에서 날개를 달고 실력발휘를 하는 동기생들을 비교해볼 때 최전방 좁은 영역에서 우물안의 개구리(井中之蛙)처럼 항상 우월감에 빠져있는 필자의 초라하고도 뒤쳐진 자아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한편 대대에서는 후반기 체육대회가 있었다. 전반기 체육대회에서 우승을 해([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66) ‘사선(死線)을 넘나들던 GOP철책 이중화공사’ 참조) 양보하고도 싶었지만 중대장 근무 마지막 기회이고 중대원들의 사기고양과 애대심(愛隊心)을 공고하게 만들고 싶어 철저히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계주와 줄다리기에서 우승하여 종합우승 2연패를 했다. 선승구전(先勝求戰)이었다. 송영근 장군이 강조했던 “자기일에 정통하라! 미리 계획하고 행동하라! 항상 새로운 것을 제시하라!”는 이 세가지의 근무자세를 실천한 결과였다. 계주는 함재명 소위 등 잘 뛰는 인재를 확보한 결과였고, 줄다리기는 불량한 운동화 상태가 미끄러짐을 유발시켜 힘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축구화로 미리 준비해 연습하는 등 미리 계획하고 행동하며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중대장 마지막 겨울에 3사 및 학사 초임장교 집체교육과 육사생도 전방실습 및 동계 야외종합훈련 등으로 혹한과 씨름하다보니 중대장 보직을 마칠 때가 3개월 남게 되었다. 마침 사단 작전장교로 근무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 27개월 동안 중대장으로 자기의 존재 의의를 생사를 걸고 찾아서 마치 주변을 밝히려 자신을 태우는 촛불과 같이 청춘을 아낌없이 태웠다. 또한 1987년 3월16일 성공적인 중대장 이취임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필자를 믿고 따랐던 사랑스런 부하들과 신뢰해준 상급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중대장 마무리 또한 중요한 것이기에 필자도 철근 콘크리트를 만들고 증발해 버린 물과 같이 흔적도 남기지 말고 사라져 후임 중대장의 길을 열어 놓았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대인(大人)의 도(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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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7)] 삶이란 우주생명에 기여하고 사라지는 것/흔적을 남기지 않고 후임 중대장에게 길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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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6)] 지뢰사고로 인접 사단 육사동기 이충원 대위 중상, 소대장 근무시절엔 분대장 순직하여 긴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 이번 16일 북한은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고 그곳에 포병부대 등을 주둔시키며 우리 군과 국민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중대장 시절에도 이러한 북한 도발과 위협에 대비한 경계태세 강화를 위해 GOP철책 이중화공사가 있었다. 공사를 앞두고 필자가 소속된 독수리연대의 창설기념일인 6월13일에 연대체육대회가 있었고 이를 대비하여 대대에서도 5월말에 중대 대항 체육대회를 했다. 이때 군계일학의 멀티플레이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란 무리 지어 있는 닭 가운데 있는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여러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뛰어난 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고, 멀티플레이어(multiplayer)란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분야에 지식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칭한다. ■ 연대 창설기념 체육대회 종합우승은 사선(死線)을 넘나들던 ‘GOP철책 이중화공사’에 투입시키는 미끼? 5월말 대대의 중대 대항 체육대회에서 소대장 함재명 소위(육사42기)가 달리기 등 모든 운동을 월등히 잘했고, 중대본부의 김석동 일병이 큰 키에 만능 스포츠맨이라 축구, 배구 등 모든 종목에 참가하여 배구, 족구, 줄다리기에서 우승하며 결국 종합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물론 연대 창설기념 체육대회에서도 중대가 주축이 된 종목인 ‘군무’에서 우승, ‘축구’는 준우승으로 대대가 ‘종합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하였다. 필자를 신뢰하며 아껴준 대대장에게 몫을 다한 부하의 도리를 다한 것도 좋았지만 대대와 연대에서 연속 우승함으로써 중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어쩌면 이 우승은 미끼였는지도 몰랐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시행하는 GOP철책 이중화공사에 곧 투입해야 할 대대를 우승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가졌지만 아랑곳 없이 종합우승으로 넘치는 사기속에서 우리는 다음 임무 수행에 몰입했다. 허나 2015년 GOP 철책 통문에서 북한군이 불법 매설한 목함지뢰 3발이 폭발하여 수색작전 중인 우리 부사관 2명에게 중상을 입힌 DMZ 지뢰도발 사건에서 보듯이 GOP철책 이중화공사는 매우 위험한 임무였다. ■ 인접 사단 지뢰 사고로 긴장된 가운데 시작된 GOP철책을 이중화 공사 당시 GOP철책 앞의 불모지에는 매설된 지뢰 뿔들이 식별되고 철책 뒤에는 미확인 지뢰지대였다. 이 단일 GOP철책을 이중화 시키려면 당연히 주변 지뢰지대를 확인하여 제거 후 공사를 시작했기에 사전 준비와 교육이 더 중요했다. 때마침 인접 사단에서 육사 동기 이충원 대위가 지뢰사고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후송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필자가 소대장 근무시절 같이 근무했던 분대장도 지뢰 사고로 안타깝게 순직했기에 필자는 중대원들 보다 더 긴장했다. 하지만 ‘인명재천(人命在天)’이고 어차피 임무는 수행해야 했다. 공사 투입할 GOP ㅇㅇ산 구 1통문 지역에 연대체육대회 1주일 뒤인 6월 20일 도착하여 숙영지를 편성했다. 약 한 달간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판단하여 완전히 야외 생활관처럼 24인용 텐트에 침상까지 준비했다. 우리 중대는 9개월전에 이미 폭우로 전도된 150m의 GOP철책 수해복구 공사를 경험했기에 타 중대 보다는 더 숙달되어 효율적으로 공사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지뢰 탐지 및 제거 작업에 투입하는 병사들에게는 사선(死線)을 넘나들어야 하기에 유서와 머리카락 등 만일의 사태에 대한 준비를 하고 단단한 각오로 공사에 임했다. 이미 경험했던 GOP철책 수해복구 공사처럼 신속히 끝내야 할 이유도 없고, GOP지역은 야간 경계근무 때문에 낮에만 작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이 있는 우리 중대의 공사 진도는 타 중대와 비교될 정도로 신속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2주일이 지나면서 긴장이 다소 이완되는 현상도 식별되어 간부들에게 안전을 재차 강조했다. ■ 완승 위해 군계일학의 멀티플레이어와 하찮아 보이던 굼벵이의 '구르는 재주'도 필요 제나라의 환공은 ‘양장불기후목(良匠不棄朽木), ‘명장무유일능(明將無遺一能)’이란 말을 남겼다. ‘양장불기후목(良匠不棄朽木)’은 훌륭한 장인은 썩은 나무라도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고, ‘명장무유일능(明將無遺一能)’이란 현명한 장수는 단 한가지 재능 있는 자라도 버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떤 조직이든 군계일학의 멀티플레이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완벽한 마무리로 최종 승리하기 위해서는 제나라 환공의 말처럼 인재를 아끼며, 하찮아 보이던 굼벵이의 '구르는 재주'도 필요하다. 소대장과 분대장 및 고참병사들은 9개월전에 GOP철책 수해복구 공사의 경험으로 지시를 내리기 전에 다음일들을 찾아 스스로 할 수 있었고, 그들의 경험에 따른 지휘통제 아래 하찮은 굼벵이같은 하급자들도 적극적이고 성실한 자세로 나름대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사 기간중 사단장, 부사단장, 연대장의 현장지도가 수시로 있었는데, 지역 터줏대감인 필자의 공사 현장에 집중되었고 지뢰확인, 공사 조편성, 경계 및 안전 대책 등의 설명을 듣고 현장 확인후에는 모두 ‘안심하며 고생한다’는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당시에 대대의 간부들이 이용했던 오토바이는 대부분 125cc였는데 필자는 전출간 권성룡 군의관이 사용하다가 넘겨준 88cc의 작은 스쿠터였지만, 좁고 긴 담당구역을 쉽게 넘나들며 전 중대원을 지휘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퇴근을 못하는 시간이 한달이나 되어 기간 중 휴식 및 취침 시간에 88cc의 작은 스쿠터를 이용하여 독수공방하는 가족을 만나러 잠시 빠져나가는 일탈도 할 수 있었다. 그때 안전 걱정만 하고 있던 남편의 기습 방문에 반가워하며 안심하던 가족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느덧 공사를 시작한지 한달이 지나 7월22일이 되자, 다행이도 타 부대와 같은 안전사고 한 건도 없이 대북 경계태세를 강화시키는 GOP ㅇㅇ산 구 1통문 지역의 철책 이중화 공사는 마무리 되었고, 그 이후 우리가 공사한 지역으로 북한군이 침투에 성공한 사례 역시 한 건도 없었다. ‘양장불기후목(良匠不棄朽木)’, ‘명장무유일능(明將無遺一能)’의 마음으로 능력 여부를 떠나 모든 부대원들을 아꼈고, 또한 전 중대원이 일치단결하여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을 추구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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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6)] 지뢰사고로 인접 사단 육사동기 이충원 대위 중상, 소대장 근무시절엔 분대장 순직하여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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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5)] 기쁜 일 고된 일 다 함께 겪는 '우리'는 전우애로 굳게 뭉쳐진 방패들
- [시큐리티팩크=김희철 기자] 군가 ‘전우’의 가사에는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우리는 젊음을 함께 사르며 깨끗이 피고 진 무궁화 꽃이다. 한가치 담배도 나눠 피우고 … ”라는 구절이 있다.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즐겨 부르는 군가 ‘전우’의 가사처럼 “한가치 담배도 나눠 피우고 기쁜 일 고된 일 다 함께 겪는 우리는 전우애로 굳게 뭉쳐진 책임을 다하는 방패들”이었기에 군생활 동안 만난 전우들은 평생을 함께한다. ■ 고락을 같이했던 전역자·후배 전우들과 함께 나눈 정(情)/묵묵히 감수하는 아내에게 고마움 느껴 중대장을 18개월 정도 근무할 때 즈음 고비가 찾아왔다. 중대의 일꾼으로 성실했던 김충한 상병이 전투일일결산을 위해 매복용 실탄을 점검 중 훈련용 크레모아 뇌관이 터져 얼굴에 파편상을 입어 의무대로 입실했다. 그는 일년 전에도 가스통 폭발로 화상을 입어 후송을 다녀온 병사였다. 연대에서는 병력 관리를 잘 못했다고 경고장을 하달했다. 중대장 근무 1년만에 선봉중대가 되어 한층 사기가 올라있던 즈음에 발생한 사고로 중대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어수선했다. 헌데 8개월전에 전역한 홍성천·배영환 예비역병장이 민가에서 한시간 떨어진 예상동 부대까지 면회를 와서 중대원들을 격려하는 바람에 다시 분위기는 즐거운 병영생활로 바뀌어갔다. 고마운 전우들이었다. 전방 격오지에서 신혼살림을 하던 필자에게도 개인적으로 사관학교시절 각별히 아꼈던 후배가 관사로 찾아와 오랫만에 회포를 풀며 소대장과 중대장 근무의 노하우를 전수하느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신혼살림 속에서도 남편의 술상을 준비해야하는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묵묵이 감수하는 그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꼈다. 어떤 후배는 전방에서 보기 힘든 어항을 선물해주어 가족의 지루함을 달래주어 고맙기도 했지만 필자가 총각시절 선배집에 쳐들어가 신세를 졌던 것을 되갚고있는 셈이라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어떤 휴일엔 수색대대 중대장으로 근무하는 김광우 동기에게서 연락이 와서 오토바이를 타고 한시간 달려 민촌 관사에 갔다. 그곳에는 서울 육사에 근무 중인 고장호, 김권희와 인접 3사단의 유종렬, 선종률 그리고 같은 사단에 있는 한황진, 강성묵, 김선권도 참석해 오랜만에 동기들과 기울이는 한잔 술에 전방 오지의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었다. ■ 제3사관사관학교 학부과정’에서 ‘제1군 야전 중대장근무 성공사례’ 강의 1986년 5월, 육군 제3사관사관학교출신 중·대위들의 학부과정에서 ‘야전부대 지휘관 초빙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필자가 ‘제1군 야전중대장 체험담’을 교육하라는 지시를 전화로 받았다. 사단은 일주일 뒤의 강의라 미처 공문으로 지시를 못했다. 때문에 필자는 사단에 직접 들어가 위 사진과 같이 상급부대 공문의 강의 내용을 적으며 확인했다. 그런데 더 황당하게도 3일 뒤 작전참모에게 강의 내용을 검토받으라고 했다. 자대로 복귀해 대대장에게 보고하고, 중대장 부임전 고등군사반(OAC)과정에서 공부하는 방법과 중대장 근무요령 및 실제 사고 및 대침투작전 성공 사례 등을 준비해서 사단 검토를 받았다. 중대장 기존임무를 수행하면서 강의 준비 및 상급 검토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같은 계급의 후배들인 학부과정 540명에게 ‘제1군 야전중대장 체험담’을 통해 필자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도 느꼈다. 게다가 이번 교육 덕택에 중대장근무를 시작한 지 18개월째 만에 얻는 첫 휴가로 고향집과 처가에도 들려 인사도 할 수 있었다. 마침 3사관사관학교에 후배 정한기 대위(육사39기)가 교관을 하고 있어 사전 정보를 얻기 위해 강의 하루전에 영천에 미리 도착해서 복지회관에 여장을 풀었다. 정후배와 저녁을 하면서 당시 학교에서 강조되는 사항과 주요 직위자의 특징 등을 파악했다. 강의 당일 교수부장을 만나니 예상했던 바와 같이 강의시에 추가요구사항이 있었다. 최초 ‘야전부대 지휘관 초빙교육’ 프로그램에서 필요했던 것은 학부과정 학생들에게 중대장을 성공적으로 하기위한 체험담 교육이었는데 당시 강조되던 ‘신좌경사상’에 대한 비판이 추가되었다. 야전에서도 ‘신좌경사상’에 대한 비판이 강조되어 교관 경연대회도 개최하고 지휘관이 직접 교육하도록 강조하여 이미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터라 별 걱정은 안했다. 사전 대화를 나누던 교수부장은 새롭게 강조되던 ‘신좌경사상’에 대한 비판에 관련된 필자의 설명에 안심이 되었는지 중대장 근무시에 꼭 필요한 내용이라며 강의시간을 4시간으로 증가시켰다. 사실 정훈참모부에서 하달된 교육자료만 가지고는 부대원들을 이해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신좌경사상’을 알려주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침 중대에 학생운동을 하다가 입대한 김찬석 상병(현 청주대교수)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의 지식을 역이용하여 비판하도록 준비시켜 직접 강의하니 병사들에게는 더 효과가 있었고 필자도 그를 통해 지식을 배양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강의 도중 학부과정의 학생들의 두 눈이 반짝거리며 주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하루전에 도착해 후배 정대위를 통해 습득한 정보로 학교에서 강조하는 사항과 교수부장 및 주요 간부의 별명을 활용하니 학생들의 웃음과 함께 한 호흡이 될 수 있어 강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 유제현 대령의 다정한 편지, 후배 중대장의 불운/모든 만남과 아픈 정(情)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 3사관사관학교 학부과정의 강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중대로 복귀하니 낮 익은 글씨의 손편지 등기가 도착했다. 당시 중대장으로 근무하는 지역인 예상동에서 소대장 시절에 모셨던 대대장 유제현 대령(육사23기)의 정(情)이 듬뿍 담긴 글이었다. “가족과 부하의 나쁜 버릇은 장점이 되도록 애정으로 감싸주고, 교육도 시간 떼우기 보다는 성과위주로 하며, 바쁜 가운데에서도 미래를 위해 틈틈이 공부하라”는 조언과 함께 자신이 근무하며 지휘했던 지역에서 또다시 근무하는 필자에게 부하들과 부대 발전에 보태라며 10만원을 동봉해 주셨다. 보내준 위문금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병사들이 이발할 때 용이하도록 당시 처음 판매한 ‘전동 바리깡’을 구입해서 대대장 존함을 새겨서 중대 이발병에게 전달했다. 최전방 오지에 전역한 병사들이 다시 찾아오고 동기, 후배들이 고생한다며 위문도 왔으며 모시던 상관이 격려의 손편지와 함께 금일봉까지 보내오니 필자 뿐만 아니라 중대원들과 가족도 사기가 치솟아 천정을 깨는 순간이었다. 헌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사자성어처럼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중대장직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사단작전 장교로 전보됐다. 후임자는 필자가 3사관사관학교 학부과정에서 ‘야전 중대장근무 성공사례’를 교육했던 후배였다. 그런데 그 후배는 6개월 뒤에 오토바이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다. 정(情)으로 수행한 중대장직을 3사관사관학교에서 교육했던 인연이 닿은 후배에게 물려주었는데 그는 멋있게 중대장직을 수행하다가 불의의 객이 되었다. 부하, 전역자, 선후배, 동기들과 좋은 정도, 아픔도 결국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즉 희로애락이 있는 현실세계의 모든 것은 매순간마다 생멸, 변화하고 있다. 거기에 모순이 있고 고(苦)가 있다. 이 모든 만남과 ‘야전 지휘관 초빙교육’의 소중하고 아픈 정(情)이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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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5)] 기쁜 일 고된 일 다 함께 겪는 '우리'는 전우애로 굳게 뭉쳐진 방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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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4)] "시근종태(始勤終怠)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니 종근여시(終勤如始)하소서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 조선시대 임금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던 한명회가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날 무렵에 임금이자 사위인 성종이 신하를 보내 내가 앞으로 왕을 하는데 무엇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한명회는 "시근종태(始勤終怠)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니 종근여시(終勤如始)하소서…"라고 답했다. 이는 “시작할때 부지런하고 끝에 태만해지는 것은 인간의 상정이니 마지막까지도 부지런하기를 시작처럼 하라”고 당부한 말이다. 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회자되는 “육군대장 위에 병장이다”라는 말처럼 병장으로 진급하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위치가 되고 군생활을 마칠 때이면 모든 것에 열외하여 전역 준비를 하는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간혹 단기근무 간부들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곤 한다. ■ 고락을 같이한 통신병 진희선(서울시 부시장)과 조진희(부산 영진어묵 사장)과 함께 한 추억의 여운(餘韻) 최근 육군 병사들의 복무기간은 21개월에서 단계적으로 18개월까지 단축되어 시행하고 있다. 필자의 중대장근무 당시에 임기는 약 30개월이었고 병사들도 30개월 복무하였다. 그래서 필자와 같이 중대로 전입한 병사들은 거의 같은 기간 동안 함께 같은 부대에서 근무를 하고 제대했다. 중대장 부임시 필자의 통신병(전령)은 처음에는 진희선 병장(현재 서울시 부시장)이었고 그다음에는 조진희 병장(현재 부산 영진어묵 사장)이 와서 중대장 보직 기간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진희선 병장은 중대장 부임초 중대 통신병으로 살을 에는 듯한 엄동설한 속에 시행된 작계시행훈련을 함께했다. 그때 대대장의 기습적인 심야 현장방문으로 침낭 속에 잠시 몸을 담았던 필자와 진병장은 급하게 옷을 추리며 일어났고 대대장은 한심한 듯 바라만 보았을 때의 난감했던 순간을 같이했던 전우이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1)] ‘분노로 떨리는 손끝에서 떨어지는 낙담의 담뱃재’ 참조) 그 때 “9중대장, 인원 장비는 이상 없나..?”라고 질문하며 추위 속에 병력관리 잘하라고 당부하고 복귀했다. 하지만 대대장은 "지휘관은 마지막까지 부하들을 확인해야한다..."는 무언의 교훈을 주는 여운을 남기고 떠났다. 이미 각 소대진지를 모두 확인하고 필자의 위치로 복귀해 쉬는 중이었지만, 제대로 훈련상황 보고도 못 드렸고 이완된 모습을 보였기에 필자도 첫 훈련에 실망을 드린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었다. 아찔한 순간이었고 통신병 진희선 병장은 “대대장님 화 나신 것은 아닌가요?”하며 걱정을 하였다.그 후 책임감이 강한 진병장은 최선을 다해 근무하다가 멋지게 제대를 했다. ■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중대를 선봉부대로 탈바꿈할 때 고락을 같이했던 중대 통신병(전령)은 조진희 병장이었다. 그들은 중대 행정병 중에 나이도 많았고 고참이었던 박균명 병장을 주축으로 송두범, 허우행, 임재린 등과 함께 병사들 입장에서 중대장에게 조언도 잘했지만, 주야 불문하고 중요한 사안이 생기면 자기일처럼 모든 일을 잘 처리했다. 그래서인지 40년 가까이 된 아직도 그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끔 마련하고 있다. 그들과 같은 군인 덕분에 필자는 성공적으로 중대장직을 마칠 수가 있었다. 30개월 가까이 중대장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병사 및 간부들이 부대를 떠났다. 그러나 유종지미(有終之美)를 잘 거두어야 하는데 간혹 제대를 앞두고 객기를 부리는 전역병들이 있어 그들을 달래거나 엄하게 다스려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이 전출 또는 제대하기 전에는 꼭 중대장 관사에 불러 저녁과 함께 소줏잔을 나누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했다. 물론 가족이 고생이 많았지만 보람도 있었다. 특히 중대통신병이 제대할 때에는 그동안의 정이 너무도 많이 쌓여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몹시도 아쉬웠다. 진희선은 전입 및 부대교대를 할 때 이주한 관사의 도배를 도맡아 해주었고, 조진희는 제대 전일 중대막사 뒤에서 서로 껴안고 눈물로 가슴을 적셨던 사연들이 여운(餘韻)을 남기며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 단기근무를 하는 학군(ROTC), 학사장교 등은 취업준비 보장이 절실 국방 의무를 다하는 것은 병사들 뿐만 아니라 간부들도 포함된다. 단기근무를 하는 학군단(ROTC), 학사장교 등도 마찬가지이다. 간부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제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얼마전에 군의관들이 제대를 앞두고 인근 병원에서 알바를 하여 문제된 것과 같이 취업 준비를 앞두고 무단 이탈을 하는 등의 행동으로 부대운용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군에서 리더십을 익힌 학군(ROTC), 학사장교 출신들을 선호한다. 인재 유치를 위해 전역전에 취업 박람회를 열어 인원을 선발하기도 한다. 군부대는 휴가증이나 출장증을 발부해 그들의 취업을 도와주나, 아무래도 최전방 군인들은 후방지역 보다 정보가 부족하고 취업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다. 그래서 매년 학군단(ROTC)장교들이 제대하는 4월이 되면 그들의 취업 준비를 보장해주기 위해 각 부대의 간부 인력이 부족한 현상이 벌어진다. 당장 당직근무 인원을 염출하기도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상급부대에서 전역 간부 관리를 잘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고 필자가 당직근무시에 마침 전역을 앞두고 일부 간부들이 무단으로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소문 해보니 전역을 앞둔 장교들이 인접 마을로 빠져나가 회식을 한다고 해서 5분대기조를 출동시켰다. 얼마후 잡혀온 간부들에게 지시사항을 들었는지 확인하고 지시사항을 위반한 장교들에게 처음으로 체벌을 하였다. 이것을 문제시하면 오히려 더 큰 사건으로 확대되어 그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어 독단으로 처벌한 조치였다. 그들 중에는 필자 중대의 소대장도 포함되었고 얼마전 필자의 신혼집에까지 방문해 술 한잔까지 나누었던 후배장교들 이었지만 엄정한 군기강 확립을 위해 어쩔 수가 없었다. 훗날 필자가 소령으로 진급하여 서울 수방사에 근무할 때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전역을 앞둔 당시에 자신들의 일탈을 눈감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을 들어 미안한 마음에 저녁도 사주고 벌주로 과음도 했었다. 하지만 비록 장교 간부들이라도 마지막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으며 당시 조치에 대해 후회는 없었고 오히려 추억이 되었다. 한명회가 "시근종태(始勤終怠)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니 종근여시(終勤如始)하소서…"라고 성종에게 당부한 말이 새삼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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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4)] "시근종태(始勤終怠)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니 종근여시(終勤如始)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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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63)] ‘호사다마(好事多魔)’나 ‘풍선효과’, 좋은 일을 추진할 때에 발생하는 역작용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 ‘호사다마(好事多魔)’란 사자성어는 “좋은 일에는 탈이 나기쉽다”는 의미이다. 또한 ‘고무풍선 논리’는 풍선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반대쪽이 튀어나온다는 것으로 어떤 일을 추진할 때에 반드시 역작용이 생긴다는 논리이다.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총선에서 정치적 협상 끝에 변형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최초로 시행하였다. 원래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 출마하는 후보자가 아깝게 떨어지면 유권자들 표의 약 3분의 2가 사표가 되는데 정당 득표율이 충족되면 상당 수가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민의를 매우 잘 수용할 수 있는 좋은 선거방법이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등을 만들어 본래의 훌륭한 취지가 퇴색되었다. ■ 하인리히 법칙을 걱정하며 부하들을 입창시킨 그날 밤, 잠 설치며 안타까워 해… 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덧 중대장 근무도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부대에서는 오랫동안 곪아왔던 고참 병사와 하사 분대장의 갈등이 결국 터졌다. ‘골목대장형 분대장 정예화’ 제도는 당시 정호용 육군참모총장이 '창끝 전투력'의 지휘자인 분대장 정예화를 새롭게 추진하며 또한 간부들에게는 전술토의, 지식/지휘능력 배양 등의 교육훈련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창군이래 가장 높은 전투력을 보유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었다.. 이것은 전투부대의 첨단 지휘자인 분대장을 강하게 양성하여 정예화시키고자 신병교육대 및 자대의 신병 중에 골목대장감 분대장 후보를 선발하여 상병까지 조기 진급시킨 후, 분대장 교육대에 입소시켜 교육을 마치면 하사 계급장을 달아주고 남은 의무복무 기간 동안인 1년~6개월간 분대장 근무를 하는 제도였다. 하지만 ‘풍선효과’처럼 일부 역작용이 발생했다. 상병 또는 병장 계급의 일부 고참들은 자신보다 후임병이지만 조기 진급한 하사분대장 밑에 근무하게 되자, 그들의 질투와 질시는 부대 운용을 어렵게 만들었다. 심지어 분대장의 지시에 복종하는 후임병들에게 압박을 가해 분대장 말보다 자신들의 지시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편 군을 경험한 사람들은 육군 대장 위에 병장이라는 말들을 종종 한다. 의무 복무를 하는 병사들은 병장으로 진급하여 군생활을 마칠 때 즈음이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위치가 된다. 즉 모든 것에 열외하여 전역 준비를 하는 혜택을 누리며, 부대에서도 여건보장 등의 대우를 해주기 때문이다 결국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병장이 후임인 상병에게 지시하여 분대장의 명령을 거부하고 지시하는 분대장과 싸우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이것은 상급자에 대한 분명한 항명이었고, 보고를 받은 필자는 ‘골목대장형 분대장 정예화’ 제도의 성과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련된 병사 모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5명을 한꺼번에 영창을 보냈다. 회자되고 있는 하인리히의 ‘1:29:300법칙’은 대형 산업 재해가 발생하여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논리이다. 이는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힌 것으로, 큰 사고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하인리히 법칙에 따라 더 큰 사고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했으나 그들을 입창시킨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 했다. 그들 중에는 정말 신뢰하고 아끼는 병사도 포함됐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타부대에서도 종종 발생했다. 결국 창군이래 가장 높은 전투력을 보유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었던 ‘골목대장형 분대장 정예화’ 제도는 정 총장이 바뀌고 후임 총장이 취임하자 얼마 안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도루묵이 되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골목대장형 분대장 정예화’와 같은 좋은 시스템을 구현하겠다는 대의와 조직을 위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정말 어렵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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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63)] ‘호사다마(好事多魔)’나 ‘풍선효과’, 좋은 일을 추진할 때에 발생하는 역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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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2)] 선봉중대는 전중대원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달려온 결과
-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민이 힘겨워 할 때, TV에서의 ‘미스터트롯 경연’은 큰 위로가 되었다. 그중 ‘세계 태권도 자유품세 1위’인 나태주는 경연 1대1 매치에서 태권무와 공중돌기 격파 등을 선보이며 ‘너는 내남자’라는 노래를 불러 찬사를 받았고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필자의 중대장 근무 시절에도 태권도와 태권군무가 부대 활동과 평가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또한 상급부대에서는 태권군무 사열과 측정 등을 통해 활성화된 부대를 운용하도록 유도했다. 중대장 근무 30개월 중 한 때는 전중대원이 태권도 유단자가 되기도 했지만 태권도 경험이 없는 전입 신병의 계속적인 보충으로 지속적으로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군인 가족들까지 혼연일체가 된 완전군장 10km 뜀걸음 평가 연대전투단(RCT) 훈련이 11월에 성공적으로 끝나자 동계작전 준비로 바쁘게 몰두했는데 상급부대인 사단에서는 예하부대에 마음의 여유를 주지 않고 바로 태권·군무 사열계획을 추가로 하달했다. 사단의 태권·군무 사열 준비로 병력들이 연병장에서 함성을 지르며 단체로 품세연습을 하는 와중에 군단에서는 부대별 위관반 측정이 시작되어 군의관을 포함한 대대의 전 위관장교는 개인화기 사격과 10km완전군장 뜀걸음도 평가를 받았다. 대대를 평가하는 측정이기에 선임 중대장을 맡은 필자는 사격장과 뜀걸음 코스에서 간부들의 실력향상을 위해 계속 앞장서서 연습을 유도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군의관이었다. 매번 의무차량을 타고 환자들을 치료하여 체력과 연습량 부족으로 낙오가 분명해 보였다. 측정 당일 대대의 위관장교들이 10km완전군장 뜀걸음 출발선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군의관의 얼굴이 사색이었다. 마침 군단 측정관으로 특공연대에 근무하는 동기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간부가 1시간안에 모두 들어와야 합격하는데 걱정이었다. 드디어 측정관의 출발 호각이 울리고 보조를 맞춰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5km즈음 뛰었을 때 군의관은 낙오 직전이었다. 할 수없이 군장을 대신 메고 뒤에서 밀고 앞에서 당기며 함께 뛰었다. 측정관으로 나온 동기생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시간안에만 모두 들어오라고 당부하였다. 목표를 1km남기는 지점까지 겨우 도달하여 마지막 힘을 내고 있었으나 필자도 군장을 두개를 메고 뛰다보니 낙오 직전이었다. 그런데 그 장소에 대대 간부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부터는 가족들도 같이 뛰면서 “파이팅, 하나, 둘…”구령을 붙였다. 그중 군의관 아내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낙오 직전까지의 상태였던 간부들은 가족들도 같이 뛰자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뛰어 간신히 목표시간에 모두 통과하였다. 골인점 통과 후 지쳐 쓰러진 간부들은 함께한 가족들이 전해주는 시원한 얼음물로 흘린 땀과 가쁜 호흡 그리고 뭉친 다리근육의 고통을 날려보낼 수 있었다. 또한 가족들과 혼연일체가 된 위관장교들의 10km완전군장 뜀걸음은 참가한 간부 부부의 백년해로(百年偕老)를 약속하는 사랑의 징표가 되었다. ■ 감동적인 미스터트롯 나태주의 태권무, 군 시절의 열정 떠올리게 해 고통스러웠지만 사랑의 징표와 감동의 추억을 남긴 10km완전군장 뜀걸음 측정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대 태권군무 측정대회가 열렸다. 우리 중대는 ‘전원 태권도 유단자화’ 목표로 그동안 추진해왔기 때문에 타 중대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어 사단장 태권군무 사열에서도 우리 중대가 대대를 책임지고 준비하여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 모두는 중대의 ‘태양분대 선발’ 시스템으로 지속적으로 분대장 중심으로 태권도 수준 등을 평가하며 단련해온 결과였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대대장의 호출이 있어 대대장실로 집합했다. 대대장은 방금 사단의 우수대대 선발심의에서 우리 대대가 선봉 또는 ATT우수대대로 선정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고생했다고 격려의 차를 마시며 덕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중대와 대대 전술훈련평가(ATT), 연대전투단(RCT) 훈련평가를 통해 개인 훈련부터 전술훈련까지 숙달되고 사단장 태권군무 사열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은 부대원들은 지금 전쟁이 발발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전의가 불타오르며 자신감이 샘솟는 순간이었다. ■ 중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선봉·RCT·태권도·군무 우수 등 8개 분야에서 우수중대 수상 그해 12월 말, 연대에서도 연말 성과분석회의가 열려 한해를 평가하고 다음해 비약을 다짐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등병부터 중대장까지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일년을 달려온 결과, 보람은 있었지만 최전방 연대의 특성상 전방 경계를 담당한 GOP부대에게 선봉중대가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참석했다. 그런데 연대 선봉중대를 2개 선정하는 유사이래 첫 사례가 나왔다. 연대 참모들이 평가한 결과 GOP부대가 아닌 예비부대인 필자 중대가 우수하다고 나오자 GOP선봉과 예비부대 선봉으로 우수부대를 추가로 선발했다. 게다가 우리 중대는 전 부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선봉·RCT·태권도·군무 우수 등 8개 분야의 우수중대 표창을 받게 되었다. 더불어 중대원의 반이나 되는 63명 분량의 포상휴가증과 벽시계·트로피들도 부상으로 받았다. 부대 주둔지로 복귀했을 때, 중대원들의 환영은 너무도 뜨거웠고 높아지는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전술훈련평가(ATT), 연대전투단(RCT) 훈련 뿐만 아니라 사단장 태권군무 사열, 개인화기 사격과 10km완전군장 뜀걸음 측정 등에서 몸과 마음은 지쳤지만 마지막까지 잘해준 중대원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적근산 골짜기의 엄동설한속에서도 축하의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중대 행정반 앞에서 기념촬영을 할 때는 천하를 얻은 것 같은 뜨거운 기운이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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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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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2)] 선봉중대는 전중대원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달려온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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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61)] '허위 보고'의 유혹 떨쳐내고 고지위로 총돌격, 거기서 만난 사람은?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안보전문기자] 전방의 11월은 완전한 겨울이다. 새벽이 되면 손발이 얼 정도이다. 중대와 대대 전술훈련 평가가 10월 중에 종료되고 11월 중순이 되자 연대전투단(RCT : Regimant Combat Team) 훈련 평가가 일주일간 시행되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에는 여름내내 햇볕과 싸워온 비닐과 남겨진 벼이삭만이 뒹굴고 덕분에 훈련에 따른 농가의 대민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 ■ 연대전투단(RCT)훈련의 피날레를 장식한 '진실의 힘', 평가단장인 이준 준장이 지켜봐 훈련평가에 임하기 전에 상급부대에서는 준비 사열도 하지만 중요하게 적용시킬 사항에대해 시범식 교육도 시행한다. 당시 다수의 활성교보재가 개발되어 훈련간 잘 활용하도록 대대에 시범지시가 하달됐다. 장기호 군단장을 모시고 예하 연대장 및 사단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활성 교보재 시범’도 보였다. 선승구전(先勝求戰)이었다. 군단 시범까지 보이고 임하는 연대전투단(RCT) 훈련평가는 이미 이겨놓고 싸우는 격이 되었다. 게다가 상대 연대는 홍천에 있는 11사단에서 사창리까지 행군으로 이동하여 그 피로 때문에 우리 연대가 더 유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훈련만을 전담하는 연대로 강원도 어느 지역이든지 이동해서 임무 및 훈련을 수행하는 터라 만만하지는 않았다. 연대전투단(RCT) 훈련평가 첫날 새벽에 출동준비태세 훈련을 마치고 완전군장을 짊어진 중대원들은 적근동에서 직선거리로 40km떨어진 화악산까지 하루종일 행군하여 숙영지에 도착했다. 훈련도 시작되기 전에 모두 지쳐버렸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틀간 쌍방으로 상대연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어훈련을 잘 해냈다. 이어 하룻동안 재편성을 하면서 상호 공격 및 방어준비를 하고 다음날 실내고개로 공격하는 진행으로 평가가 계속 되었다. 56번도로 양쪽으로 2개 대대병진으로 공격했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중대에게 앞선 중대를 초월하여 탱크와 보전협동으로 실내고개 최종 목표를 탈취하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연대전투단(RCT) 훈련평가의 마지막날 최종 피날레를 중대가 장식하게 되었다. 지난 1주일간의 긴장된 훈련에 중대원들은 모두 지쳐 있었으나 초겨울 추위도 아랑곳 없이 이마와 등줄기엔 땀이 줄줄 흐르며 실내고개 정상을 향해 뛰어 갔다. 1개 소대는 도로에서 보전협동으로 1개소대는 능선을 타고 고지 정상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대대본부에서 작전장교가 “아직도 못 올라갔냐?”며 독촉 무전교신을 해왔다. 대대의 재촉이 반복되자 소대장은 특공조를 먼저 보내 정상에서 신호탄을 쏘는 것으로 마무리하자고 건의했다. 필자도 힘들지만 중대원들도 지쳐있어 나머지는 밑에서 천천히 가고 몇 명만 올려보내고 점령했다고 허위보고를 하고 싶었지만, 중대전술훈련 평가시 동네 전쟁놀이로 만든 과오가 다시 반복될까 싶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상적으로 전병력이 전술적 행동을 하기로 했다. 드디어 선두 소대가 고지 밑 돌격선에 도달하여 전열을 갖춘 후 ‘돌격 앞으로’ 함성과 함께 고지를 점령했다. 소대장이 고지에서 목표탈취 신호탄을 공중으로 쏘아올리며 적의 역습을 대비하기 위해 전사면에 진지 재편성을 하는 와중에 필자는 뒤따라 고지로 올라 갔는데 깜짝 놀라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지 정상에는 통제관 완장을 찬 장군이 우리의 전술적 행동 실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헐떡거리며 그 장군께 경례를 하고 현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군단 참모장 이준 준장(육사19기, 전 국방부 장관)으로 이번 연대전투단(RCT) 훈련 평가단장이었다. 그도 일부 병력만 올려보내고는 목표를 탈취했다고 허위로 보고하는 비전술적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예상하고 고지 정상인 현장에서 제대로 훈련하는가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단참모장은 중대 병력들이 정상적으로 고지를 점령하고 진지강화까지 하는 행동절차를 확인한 뒤에 필자에게 “수고했어, 마지막 병력관리를 잘해라”고 당부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 군인 가족들의 기도와 정성이 성공적인 연대전투단(RCT) 훈련을 만들어 연대전투단(RCT) 훈련 평가단장이 자리를 떠난 뒤 대대로부터 훈련 종료 연락이 왔다. 일주일간의 연대전투단(RCT) 훈련으로 몸은 지쳐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잘해준 중대원들이 자랑스러웠다. 각 소대의 인원장비를 확인하고 철수 준비를 했다. 그때부터 부대 주둔지 막사까지 또 긴 복귀행군을 시작했다. 그래도 야외 노숙을 하다가 이젠 두발을 죽 뻗고 잘 수 있는 생활관으로 복귀한다는 생각에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각개 병사의 건강상태를 확인해 행군이 불가한 병사들을 중대행정보급관이 식사 추진차에 태워 먼저 출발을 시켰다. 훈련 첫날 40km행군을 하여 화악산 숙영지에 도착했을 때 각 대대의 숙영지 야전취사장에서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대대별로 장교 부사관 가족들이 고생하는 장병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땀에 절어있는 전투복을 입은 채 가족들이 만들어 준 식사에 엄청 기대를 했었다. 헌데 취사장 화구에서 실수가 있었는지 만들어 준 육계장에서 기름 냄새가 나 약간 먹다가 포기하고 건빵으로 떼웠다. 그래도 간부 가족들의 정성이 고마웠고 그 마음과 기도 덕분에 연대전투단(RCT) 훈련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귀하는 길에도 이벤트가 있었다. 연대본부가 있는 마을에는 관사와 아파트가 밀집되어있어 지역주민에는 군인가족들도 대다수 포함된다. 복귀행군이 거의 끝나가면서 연대본부가 있는 마을을 통과하는 데 지역주민들과 왠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도열을 하면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동네 주점 아가씨들이었다. 사탕과 빵을 나누어 주면서 노고를 격려해주는 모습이 꼭 머언 바다에 고기잡으러 갔다가 만선을 한 채 고향 항구로 도착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네 같았다. 화장을 진하게 한 어떤 아가씨는 인접 소대장에게는 달려가 꼬옥 안아주며 수고했다고 하여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인접 부대의 큰 훈련을 격려하는 지역 주민들을 볼 때, 민과 군이 한 몸이 되어 민군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따뜻한 풍경이었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군인으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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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61)] '허위 보고'의 유혹 떨쳐내고 고지위로 총돌격, 거기서 만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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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0)] 경쟁자가 깨닫게 해준 교훈과 대대장의 리더십이 이끌어 낸 승리
- [시큐리트팩트=김희철 안보전문기자] 모든 사회 조직에서는 항상 평가, 검열 및 감사가 존재한다. 그 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받거나 승진도 하지만 징계 또는 처벌을 받거나 해임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공무원 사회는 감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팽배하다. 간혹 확실한 성과가 예상되더라도 무리한 도전을 하다가 감사에서 문책을 당하기 보다는 법규를 핑개대며 안일하게 모험을 회피하는 복지부동의 행태가 만연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군(軍)도 마찬가지로 각급 제대별로 주기적인 검열 및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군대에서 제대별로 시행되는 전술훈련평가는 통상 쌍방으로 진행되어 경쟁이 치열하다. 또한 그 결과가 부대의 성과로 직결되어 제대별 연말 우수부대 선발의 기준으로 반영 되기도 한다. 각개 병사들은 분·소대장이 평가하여 진급 및 휴가에 영향을 끼친다. 부대는 통상 2차 상급부대에서 평가를 하는데 이렇게 하다 보면 하급 제대중 특별한 임무를 담당하거나 특정 지역을 책임지는 부대일수록 1년 내내 검열 및 평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어이없는 비전술적 행동에 당한 중대 전술훈련평가(ATT) 필자도 중대장 근무 당시 2차 상급부대인 연대 참모들이 평가관으로 편성된 중대 전술훈련평가(ATT)를 받았다. 이 결과가 추후 진급 심사시에도 영향이 있고 1년에 한번씩 받는 평정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대장 본인도 중요하지만 간부와 병사들은 자기 중대의 평가를 잘 받기위해 각별히 신경을 쓴다. 당시는 연대가 GOP를 담당하고 있어 실제 전술훈련 평가를 받는 중대는 GOP대대를 제외한 2개 예비대대 예하의 6개중대였다. 마침 훈련주기를 고려하여 필자의 중대는 같은 대대에 있는 인접 중대와 쌍방훈련을 하게 되었다. 비록 같은 대대에 속한 중대였지만 상호 경쟁의식은 치열했다. 개다가 필자가 경쟁상대의 중대장보다는 연대에서 더 오랫동안 근무하여 누가 봐도 유리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주둔지에서 출동준비태세 평가를 받고 상호 공방을 위해 주변 야지로 전술적 행군을 하며 또 평가를 받았다. 이동해 숙영지 편성을 하면서 통제부에서 하달된 중대 공격명령을 수령했다. 통제관들이 참관한 가운데 작전지역을 분석하여 중대 공격명령을 하달하고 다음날 여명 공격을 위해 야간 숙영에 들었다. 자정이 좀 넘어갈 즈음 갑자기 텐트밖이 시끄러웠다. 상대 중대장의 경쟁의식이 강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필자는 역시 도발을 하였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경계병을 배치해 사주경계를 하면서 숙영을 하고 있었는데 상대 중대의 특공조 1명이 비무장으로 은밀하게 다가와서 중대장 텐트 옆에 꽂아 놓은 중대기를 탈취해 달아났다. 경계병은 발견했지만 막무가내로 뛰어 달아나는 그 병사를 잡을 수 없었고, 본격적인 전술훈련 평가가 시작되기도 전에 상대방의 치졸한 경쟁심이 권위있는 전술훈련을 비전술적 동네 전쟁놀이로 전락시킨 순간이었다. 통제관에게 비전술적 행동에 대한 항의도 하고 이의도 제기해 무마는 되었지만, 이후 훈련은 맥이 빠진 상태가 되었다. 치밀한 기동 및 화력 그리고 기만작전 계획과 그 시행 등으로 공격 및 방어훈련간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중대기를 빼앗긴 중대전술훈련 평가로 막을 내렸다. 아무튼 이 훈련으로 필자에게는 군생활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꼭 간직하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손자병법 병세편의 ‘범전자 이정합 이기승(凡戰者 以正合 以奇勝)’는 “무릇 전쟁은 정공법으로 대결하고 기습으로써 승리한다”라는 의미이다. 사회속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은 친구도 되지만 적도 될 수 있고, 모든 상황에서 항상 정공법(正攻法)과 기공법(奇功法)이 존재함을 예측해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대대장의 신임에 보답하기 위해 전력투구한 대대 전술훈련평가(ATT) 중대전술훈련 평가가 끝나기 무섭게 바로 대대전술훈련평가가 이어졌다. 손자병법 모공편의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 즉 “전쟁에서는 장수와 병사가 같은 목표를 가지면 승리한다”는 뜻이다. 이 병법처럼 중대전술훈련 평가시 앙금이 채 가시지는 않았지만, 같은 소속의 대대평가를 잘 받기 위해 어제의 적이었던 상대 중대와 어쩔 수 없이 뭉쳐야 했다. 그동안 필자를 아껴준 대대장의 신임에 보답하기 위해 전력투구한 대대 전술훈련평가(ATT)였다. 과거 6·25남침전쟁시 양구 펀치볼(해안분지)에서 약 221일 동안 벌어졌던 주요 전투를 분석하면 고지를 공격이나 방어할 때 대부분 중·소대장들은 유선 전화기로 상하급 제대간에 소통을 했다. 무선 교신은 적들에 의해 감청이 가능했고 난청 지역도 많았으며 전장 소음으로 인해 정확한 의사전달이 제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대대장은 공격시 지휘조의 장비휴대 복장을 통일 시켰다. 중대장은 무선 교신을 위해 P-77무전기를 메고 직접 교신하며, 통신병은 중대장 인접에서 전화기를 바로 연결할 수 있도록 방차통을 메고 유선을 풀어가며 전진했다. 후방 관측소(OP)에서 대대장이 전방 중대의 전진을 확인하며 긴급하게 변해가는 적 상황에 따라 유무선을 활용하여 즉각적으로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양치규 대대장(육사 29기, 예비역 소장)의 치밀한 계획과 방차통 휴대와 같은 야전적인 아이디어가 가미된 기동 및 화력지원 그리고 기만작전 등으로 공격 및 방어훈련간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작전계획 작성, 상황조치, 그리고 각개 병사 및 예하 중·소대의 전술적 행동에서 상대 대대보다 월등하다는 평을 받았고, 존경하는 대대장의 부하로서 약간의 도리는 했다는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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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60)] 경쟁자가 깨닫게 해준 교훈과 대대장의 리더십이 이끌어 낸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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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59)] 유사시 싸워 이기는 전투준비는 진지공사부터 / 무성의한 진지 구축은 단호하게 '불합격'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 성묘는 추석 같은 명절이나 한식에 조상의 묘를 찾아 손질하고 살피는 일이다. 조선 후기까지 4대 명절에 묘제를 지내는 풍속이 계속되었다. 한식인 음력 3월에는 개사초(改莎草)라고하여 겨울부터 봄 사이에 생긴 구덩이를 비롯하여 조상의 묘에 생긴 손상을 손질하여 바로잡는다. 이때 부족한 떼(잔디)를 다시 입혀준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한식 이후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작은 나무 등을 베거나 깎아주어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한다. ■ 성묘처럼 삶과 죽음의 교차로 되는 진지공사, 일종의 돈내기식 방식으로 경쟁 붙여 싸워 이기는 전투 준비는 한식이나 추석 성묘(省墓)처럼 봄가을에 진지공사부터 시작된다. 진지는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따라 유사시 삶과 죽음의 교차로가 되어 그곳이 나의 묘자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지공사는 성묘와 같다. 춘계에는 겨울과 봄 사이에 생긴 구덩이를 메우고 무너진 떼(잔디)를 다시 입혀주고, 추계에는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작은 나무 등을 베거나 깎아주고 동계작전 준비도 같이 한다. 유사시 북한이 보유한 1만5000여문의 방사포 및 야포가 불을 뿜으면서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 군은 준비된 진지에서 초전 생존성도 보장받으며 남침해오는 적군을 격멸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부대는 약 3~4주 동안 거점에서 야영하면서 진지공사를 한다. 그래서 진지공사는 1년 중 중요한 업무였고, 통상 연말 성과분석 회의시 부대표창에도 진지공사우수부대를 포함하여 선정한다. 매년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상급부대는 당시 적상황을 분석하여 진지공사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달하고 야전부대는 그 지침에 따라 우선적으로 진지공사를 한다. 그때 강조한 공사지침은 점진적으로 진지를 전환하며 전투를 할 수 있는 오리발식 진지 구축과 야간 전투를 위한 화목단으로 조명목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상급지침과 노후된 상태의 진지를 보강하는 것만으로는 배가 고팠다. 상단의 사진과 같이 미비된 진지도 정비하면서 과거 독도 수비대가 일본의 점유 시도를 거부할 때 사용했던 기만용 위장포처럼 기만 진지도 구축하기로 했다. 당시 중대 진지의 총길이는 약 2~3km로 80년대 초 삼청교육대 인원들이 동원되어 나무를 잘라 이어 진지를 만들어 비교적 견고한 상태였으나 일부 지역이 무너지고 나무가 썩어서 기존 진지를 보수하는 공사만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했다. 부족한 시간과 인원 속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돈내기(할당받은 일을 끝내면 그 일에 대해 무조건 일당을 지급하거나 마친다는 뜻의 경상도식 표현)’ 방법 뿐이었다. 또한 소대내에서도 떼(잔디) 운반조, 진지 구축조 등으로 조편성을 하여 노동 집약적으로 공사하도록 코치를 했다. 주차별로 소대별 목표를 정하고 먼저 자기 소대진지 공사를 하면서 화목단 야간 조명목과 위장 진지에 필요한 나무와 돌들을 채집하도록 했다. 그날 해당 소대가 목표를 달성하면 필자가 상태를 확인하여 합격여부를 판명후 휴식을 보장하는 돈내기식 방법을 적용했다. 산 능선에 구축된 진지에서 호가 너무 깊으면 앞쪽 하단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관측할 수 없다. 엄폐와 관측이 가능한 깊이도 중요하지만 진지 앞의 사대 방향도 자신의 몸을 보호 받으면서도 사격이 가능하도록 위치를 잘 선정하는 것도 착안했다. 또한 진지 전방에 설치된 철조망과 기관총 사격방향이 연계된 사계청소와 크레모아 설치대도 적방향에 맞게 구축되도록 확인했다. 돈내기식 방법으로 시간에 쫒기어 생각없이 구축된 진지는 불합격 시키고 다시 공사를 시켰으며, 당일 공사량을 완벽히 끝낸 소대는 소대장 통제하에 쉴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자 점차 경쟁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자 피로와 권태감에 대원들은 지치고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필자에게는 88오토바이가 있었다. 이동시 소리가 거의 없어 기습적으로 중대장이 불시에 공사 현장에 나타나 독려를 했다. 훗날 중대장의 전령이 하소연 했는데 “현장 지도시 방심해 기습을 당했던 소대장이 중대장 이동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 질책을 했다”고 하여 미소도 지었다. 소대별 담당진지 공사가 끝나자 사전 준비한 나무와 돌들로 진지 전방에 적들이 은거하기 용이한 장소에 조명목도 설치하고 적방향에서 쉽게 관측되는 도로 교차로에 기만용 위장전차도 만들었다. 한편 추계진지 공사시에는 동계 결빙을 고려한 사전 지뢰공 설치(지뢰를 설치할 장소에 땅을 미리 파고 짚과 병으로 메우는 작업)와 동상을 대비한 깔판 그리고 풀이 마르면 노출되는 총안구에 나뭇가지 등으로 위장을 한다. 또한 동계 혹한시 숙영이 가능한 분침호를 구축하고 도로 급경사에 적사장을 설치하는 작업 등을 추가로 준비한다. ■ 사단장의 격려방식, “진짜로 앞에 오는 적을 모두 격멸할 수 있겠나..?” 공사가 어느덧 종반에 접어들자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왔다. 연대에서는 전방 부대도 있는데 예비 부대인 필자의 중대로 사단장의 현장 지도를 유도했다. 사단장 민찬기 장군(육사16기)은 중대 OP(관측소)인 A고개 헬기장으로 도착했다. 중대 진지였지만 연대장과 대대장이 사단장을 영접했고 작업복 차림의 필자는 진지공사 현황을 설명했다. 마침 그 곳은 필자가 소대장 시절에도 담당했던 지역으로 진지공사를 수차 했던 장소였다. 전방 훼바(FEBA) 지역을 통과한 적들이 책임지역까지 접근하는 정보판단을 먼저 보고하고 그 양상에 따라 오리발식 진지 첨단에서 점진적으로 주 진지까지 전환하며 적전차와 보병을 격멸하기 위한 진지와 조명목 구축 등을 자신있게 설명했다. 추가로 기존 진지공사시 착안했던 사항들과 적 기만을 위한 위장진지 구축까지 일사천리로 설명을 마치자, 사단장은 주변 진지공사 현장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준비하면 진짜로 앞에 오는 적을 모두 격멸할 수 있겠나..?”라며 격려가 담긴 질문과 미소를 남기고 복귀했다. 상급 지휘관의 지도 방문이 만족스럽게 끝나자 배석했던 연대장은 격려와 함께 앞으로 군생활을 위한 차후 보직까지 조언을 해주었고, 대대장(소장 양치규 육사29기)도 자신있게 설명한 필자에게 “야, 너는 따발총이다..ㅋㅋ”하며 기분 좋은 농담을 건넸다. 내 묘자리를 설치하는 마음으로 임한 진지공사로 유사시 초전 생존성도 보장받으며 공격해오는 적 전차 등 북한군들을 격멸할 수 있는 전투준비가 완료되어 자신감을 얻었다. 또한 사단장 등 상급지휘관들에게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선승구전(先勝求戰)을 확신시켜주는 자리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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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59)] 유사시 싸워 이기는 전투준비는 진지공사부터 / 무성의한 진지 구축은 단호하게 '불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