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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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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4]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⑭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는 유난히도 ‘37’이라는 숫자와 많은 인연을 갖고있다. 육사 37기로 임관했고, 또 37사단의 대대장 자원으로 부임했으며, 전입후에 자만과 교만에 빠져 과신하며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무리하게 다니다가 불융합에 의한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37일동안 입원했다. 바로 전해 4월에 발생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한 병원치료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을 때 주변 선배들이 재활 치료 기간이 많이 남아있어 바로 대대장 취임은 어려우니 차라리 6개월간의 ‘군사영어반’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으며 재활치료를 한후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라는 제안에 따라 본의 아니게 영어교육을 받는 혜택을 누렸었다. 이번에도 퇴원을 앞두고 회복할 수 있는 재활치료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관리학교 8주간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 제95-4기’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한 작전직능의 장교가 군수분야까지 섭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지만, 제95-4기과정에 참석한 학생장교들은 대부분이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었다. 따라서 작전직능으로 군수분야 문외한(門外漢)인 필자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고 함께 교육받는 선배들과 수호천사 라파엘이었던 동기 이00중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의미하며 고통스럽고 어려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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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3)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구안보협업연구소장] 하지만 영관영어반에서 만난 선배중에는 광주 출신의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임을 부정하고 중국인 공산주의자로 행세를 한 정율성처럼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도 있었다. 정율성이 북한과 중국에서 보였던 불손하고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지만 화려한 작곡가로서의 삶처럼 그 선배도 생도시절부터 뛰어난 지혜와 지휘생도 활약으로 후배 생도들의 존경심을 받아왔고 필자에게는 목발 및 지팡이를 짚고 있다고 해서 DJ라는 별칭을 즐겨 불러 주었다. 또한 그는 명석한 지능으로 영어 수업도 우수한 성적을 계속 유지했다. 마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정율성처럼 그의 모습은 수업시간에 뛰어난 영어 회화능력으로 교관들의 칭찬을 받아 학생장교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일과후 독신자 숙소에서도 타 선배들처럼 잦은 출타를 하거나 만취되는 일도 없이 착실한 학생장교로 돋보였고 필자는 친절하게 학업을 도와주는 그가 고맙고 존경스럽기까지 했고 대령으로 일차 진급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영관영어반 과정이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접어들 무렵에 그는 매우 힘든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필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동생이 사업을 하는 데 급전이 필요하고 진행상 곧 회수 가능해 일주일 뒤면 갚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필자는 현금이 있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필자도 교통사고 후에 많은 출혈이 있었고 저축한 돈도 별로 없어 죄송했다. 선배의 계속 독촉에 못이겨 현재 들고 있는 적금을 해약하면 요구한 금액의 반정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거라도 빨리 주면 바로 해결하고 일주일 뒤에 갚겠다고 다짐했다. 하는 수 없이 통장을 들고 은행을 찾아 적금을 해약한 후에 그 선배에게 전달했다. 물론 일주일 뒤에 갚는다고 해서 가족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선배에게 갚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일단 돈을 주고나니 빌려준 사람이 을이 되어 있었고, 그는 여유롭게 생활하며 빌린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결국 교육 종료 직전에 그 선배에게 아직까지도 가족에게 말을 안했으니 빌린 돈을 갚아주어야 통장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독촉했다. 그 선배는 다음주로 다시 미루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던졌는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생도시절부터 탁월한 모습으로 존경을 했던 인연은 악연으로 끝났다. 가짜 한국인 정율성처럼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그의 언행에 현혹된 필자가 부끄러웠고, 이후에는 잘 아는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금전 문제가 생길 때에는 여유가 있어 대출이 아닌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아니면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것이 돈도 잃지 않고 더구나 사람도 더 잃지 않는 길이라는 교훈을 영관영어반 교육과정에서 얻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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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2)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㉗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율성이 6·25남침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군가도 작곡했지만 인민군과 함께 서울에 내려와 점령군으로서 자유 대한민국을 유린하고 1·4 후퇴 때는 중공군과 함께 재차 서울에 내려와 조선궁정악보를 약탈해간 매국노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광주 출신이지만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 공산당원으로 변절한 자를 추모하며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추진했던 정율성 공원 조성사업은 동족상잔의 비국을 겪은 자유대한민국에서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현재도 핵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하는 북한의 군사도발을 막으려면 견고한 한미동맹이 절실한 실정이다. 필자가 다녔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북한의 재 남침에 대비해 합동참모본부의 주요부서에 근무하며 군사전략을 담당했던 용삼남(육사33기) 선배로부터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용 선배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재활치료에 전념했던 필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기도 했다. 그는 생도시절 럭비부 선수 생활을 했는데 운동중에 부상을 입어 척추가 심하게 손상되어 의사들이 판단할 때에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였으나 강한 의지로 철저하게 운동을 하여 척추 주변 근육을 강화시킴으로써 전혀 불편함 없이 더 건강하게 보였다. 예를 들면 합참 근무시에 매일 새벽에 가장 일찍 출근하여 책상 및 의자 정리 및 청소를 한 뒤에 책상위에 올라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300개씩 하여 근육을 강화시켰다. 그가 원주에 있는 부대에 근무할 때에는 고속도로에서 시비를 걸던 조폭을 한방의 주먹으로 넉아웃시킬 정도로 강해졌다는 여담도 남겼다. 건강한 체력은 건전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며 업무에 질도 고양시킬 수 있다. 건강의 이상을 극복하며 지칠줄 모르는 용 선배의 체력에 상관들은 힘든 업무도 쉽게 맡길 수 있었고 업무상 만나는 미군들과도 쉽게 친해져 한미 연합작전과 군사전략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일과후에는 독신자 숙소에서 우리의 전통악기인 대금을 연주하며 하루를 마감하여 건강상 어려운 위기를 적극 극복하는 강한 의지와 동시에 예술감까지 가진 문무를 겸비한 군인으로 끝없는 존경심을 불러 일으켜 앞으로의 군생활의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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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1)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㉖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10월2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에 세워져 있던 중국 음악가 ‘정율성 동상’이 기단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정율성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에 귀화한 음악가로, 북한·중공군 군가를 작곡한 인물인데, 광주시가 기념사업을 추진해 논란을 불렀다. 정율성 동상은 중국 청년단체가 제작해 광주 지역 청년단체에 기증한 것으로 2008년 광주 남구 양림동에 조성된 정율성 거리 입구에 세워졌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이날 재물손괴 혐의로 보수단체 회원 윤모(5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전날(1일) 오후 정율성 흉상 목 부분에 밧줄을 묶고 2.5톤 승합차에 이를 연결한 뒤 쓰러뜨리는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했다. 정율성 흉상은 위의 사진처럼 약 1m 높이의 기단에서 완전히 분리된 채 기단 옆 땅바닥에 누운 모습으로 발견됐다. 윤씨는 범행 직후 한 유튜브 채널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중단하라고 광주시에 요구했는데 이를 이를 수용하지 않아 강제로 (흉상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경찰에서 “내가 그랬다. 3일 오전에 경찰서로 가서 조사받겠다”며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유족 대표인 고(故)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전 광주대성여고 교장은 2일 “공산주의자 정율성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광주시가 혈세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공원을 짓는다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무조치로 일관하고 있다”며 “공원 철폐를 위한 릴레이 피켓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다. 김오복 전 교장은 “북·중공의 군가를 짓는 등 한국 침략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한 정율성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강기정 광주시장은 아무 중단 조치도 없이 정율성 공원조치를 강행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율성 공원 문제 제기에 대해 철지난 이념몰이, 색깔론, 민간외교라는 억지 논리만 되뇌고 있다”면서 “지난 한 달여 동안 보훈단체들의 집회를 관제 데모로 깎아내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과 보훈가족을 모독하고,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을 철폐하거나 대안을 만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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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90)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최근 국방부장관으로 지명된 신원식 의원(육사 37기)은 레닌에게 선물받은 권총으로 독립군을 직접 사살한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의 동상 이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영관영어반’ 과정에 다닐 즈음에는 홍범도의 존재 조차도 몰랐다. 청산리 대첩 이후인 1921년,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와 그 일당들에 의한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들은 몰살당하며 해체됐다는 사실도 최근에 알았다.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소련군 복장의 공산주의자를 추모한다는 것은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인민군과 중국인민군 군가와 마오쩌뚱 찬양가 등을 수십 곡 만들며 뼈속까지 어용 공산주의자인 정율성 작곡가의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관생도를 포함한 건전한 국민들의 정체성과 대적관을 현혹시키는 잘못된 처사이다. 필자가 다니던 ‘영관영어반’ 과정에서도 확고한 대적관을 바탕으로 견고한 한미동맹을 위한 교육이 계속되었다. 이 교육을 통해 숙달한 영어회화 능력으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 및 훈련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을 마치면 다음 보직은 연합사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 다음 보직이 충북 충용부대로 정해져 있었고, 다른 교육생들은 연합사령부 또는 예하 부대 및 연합작전/훈련을 주로 시행하는 합동참모본부로 분류되었다. 마침 합참의 중요부서에서 근무했던 선배도 함께 교육을 받고 있어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한명은 육사 33기 용삼남 중령이었다. 과거 승리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양태수, 나대일, 김형배 선배 등을 포함하여 많은 선배 동료들을 다시 만나는 해후의 시간도 만끽했으나 용 선배는 6개월 교육기간 중에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다음편 계속)
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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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0]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대대장 취임후에 시작된 읍면대의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의 경계초소 새벽순찰을 매주 다니면서, 특히 낭성면 무기고가 협소하고 허술하며 노후되어 피탈우려도 있고 파출소 직원 및 경계근무자가 관리가 어려운 상태로 파악되어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해당 예비군 중대장도 그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재신축을 상급부대에 건의했으나 진척이 않되어 관심이 촉구되다고 했다. 연대 및 사단에 확인한 결과 예산 반영이 어렵다는 대답이었다. 할 수 없이 변종석 청원군수에게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하자 변 군수는 주저없이 군의회 의장이 낭성면 출신이니 의장과 협의해 함께 추진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필자는 바로 군의회 의장을 만나 낭성면 예비군무기고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불순분자에 의해 피탈이 우려되고 지역 주민들도 불안하게 생각한다며 시급히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현실태를 설명했다. 의장은 놀라며 “그러면 빨리 청원군수에게 무기고 신축 예산을 의회로 건의하면 바로 심의해서 통과시키겠다”는 대답을 얻었다. 당시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을 군청에서 받아내는 것은 타부대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사항이었지만, 군을 아끼고 사랑하는 청원군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대의 애로사항을 해결한 덕택에 낭성면 지파출소 무기고의 취약점이 신축보강되어 상급부대 회의시에 민관군 통합작전을 위한 효율적인 협업 조치로 전파되기도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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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0]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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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9]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비록 우의를 입었지만 세차게 쏟아붓는 폭우는 온몸을 적셨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비를 흠뻑 맞은 변종석 청원군수도 집중폭우로 인한 피해 현장에서 약속이나 한 듯 우연히 만나 청원군을 아끼는 마음을 서로 같이 한 것에 대한 공감대와 희열을 느끼며 각자의 사무실로 돌아가 후속조치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 필자의 긴급 지휘보고를 받은 연대장은 수해 현장에서 청원군수를 만나 피해복구 지원 대책을 상의한 것을 칭찬하며 즉각 사단에 보고하였다. 사단 기동대대 전원이 기상과 동시에 청원군 미호천 수해지역으로 우선 투입되어 수해복구를 시작했다. 이는 청원군청과 청원대대의 확고한 민관군 통합작전 태세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집중폭우으로 인한 수해복구에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한 결과로 부대와 기관 및 지역 주민들은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날 육사 동기생인 사단 공병대대장 권태환 중령이 급하게 필자를 찾는 전화가 왔다. 예비군 교육 현장을 확인하다가 사무실에 들어와서 권 동기의 전화를 받았을 때 충북도청, 청원군청과의 실무협조가 잘 않되어 도움이 필요하다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 지역 대대장이 해결할 임무인가?’ 하면서도 왠지 사단에서도 협조를 못하는 사항을 필자가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뿌듯함에 흐뭇한 미소를 띄웠다. 동시에 군부대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적극 협조할 것이라 믿음을 주는 변종석 청원군수를 사단에서도 신뢰한다는 생각에 그가 너무도 감사했고 든든했다. 사단 공병대대장의 협조 요구사항은 곧 개최할 ‘국군의 날’ 행사와 동계를 대비해 연병장 복토 및 정비 공사를 앞두고 모래가 많이 필요한데 미호천 모래를 채취하여 활용하려면 정부기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며, 효율적으로 민관군통합작전을 잘하는 대대가 청원군청에 직접 협조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필자는 즉시 군청으로 향했고, 집무실에서 사단의 애로사항 설명을 들은 변 군수는 해당 과장을 바로 호출해 이번 집중호우에서도 사단 기동대대원들의 지원으로 피해복구 시간이 단축되었는데 사단에서 필요한 양만큼 모래 채취를 허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음날 사단 공병대대장은 애로사항이 해결되었다며 고마움의 전화를 보내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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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9]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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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8]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현재 청원군은 청주시와 통합되었고 청원대대는 해체되었지만 당시에 필자의 청원대대는 14개 면대와 1개 기동대 그리고 8개 직장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면대의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에 상근예비역들이 24시간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상급부대에서 대대장의 경계초소 야간순찰을 지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전방의 GOP철책에서 근무하는 대대장들은 매일 야간 순찰을 다니는 것처럼 후방지역 향토사단에 근무하는 필자도 당연히 야간 순찰을 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대장 취임 후에 야간 지파출소 무기고 순찰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계속 감행했었다. 그러던 중에 한여름 청주 지역에 폭우가 심하게 내렸던 어느날 새벽 3시 즈음에 야간순찰을 위해 관사 앞에 대기하던 짚차에 올랐을 때 불연듯 폭우로 인해 미호천의 범람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교량이 떠올랐다. 필자는 폭우속에서 출발하려는 운전병에게 지파출소에 설치된 예비군 무기고 순찰에 앞서 강내면 미호천 교량으로 가자고 방향을 전환시켰다. 새벽 4시즈음 미호천 교량 옆 공터에 도착해 범람의 위험을 확인하러 차에서 내리자 깜깜한 심야임에도 불구하고 그 공터에 일부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변종석 청원군수와 직원들이었다. 군수는 차에서 내리는 필자를 확인하고는 대뜸 “아니 대대장님이 폭우가 쏟아지는 이 새벽에 어쩐 일이냐?”고 놀라며 말을 던졌다. 그리고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띄웠다. 폭우로 인한 미호천 범람이 우려되어 현장을 확인하려는 똑같은 마음에 서로가 감사하며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범람으로 피해가 발생한 지역의 대민지원 소요를 판단했고, 변 군수는 대대의 병력이 적으니 바로 사단 기동대대를 투입시키는 것이 좋겠다며 군청에서도 지원 요청을 할 터이니 대대장도 사단에 건의해서 재빠르게 피해지역 복구하자고 협조했다. 비록 수해복구였지만 적시적이고 효율적인 민관군 통합작전이 이루어졌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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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8]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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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7]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대대장 취임식에서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는 필자를 보고 한없이 걱정했던 변종석 청원군수는 대대장 임기 기간 내내 필자와 돈독하게 지냈다. 변 군수는 1933년 충청북도 청주군 북일면 초정리에서 태어나 청주농업고등학교, 청주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1970년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냈고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농민당 후보로 충청북도 청주시-청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정종택 후보와 한국국민당 윤석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충청북도 청원군수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필자가 대대장을 끝낼 무렵인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당선되어 군수를 재선했다. 그러나 1997년 당시 초정약수 스파텔 건립과 관련하여 모 건설회사와의 뇌물수수혐의로 2001년 징역 3년, 추징금 1,160만원을 확정 판결받아 군수직을 상실하였다. 영어(囹圄)생활을 하던 그는 2003년 8월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되었으나 이듬해 2004년 12월21일 초정노인병원(현 초정노인요양원)에서 71세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대대장 근무시에 고(故) 변종석 군수는 필자보다도 나이가 25세 정도 많고 운동을 좋아하며 적극적인 성격이라 지역 주민들의 인기가 높았다. 필자는 대대장 재임기간동안 명절이 되면 군납양주 한 병을 들고 군수의 자택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고는 더 많은 선물도 받아오곤 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런데 변 군수는 과거 5공화국 시절 삼청교육대가 운용될 때 축구선수로 지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중 경찰에 밉보여 삼청교육대 대상으로 체포되어 경찰서로 끌려갔는데, 당시 대대장이 경찰서를 찾아와 변 군수를 보증하며 꺼내주어 위기를 모면한 덕택에 우리 군에 항상 감사해하며 애군심(愛軍心)을 갖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민관군 통합작전 태세 공고화에 큰 기여를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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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7] 군을 사랑했던 사나이 변종석 청원군수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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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6]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⑨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전국시대 진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나라 혜문왕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 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명을 뽑지못한 채 고심했다. 이 때에 모수라는 식객이 데려가 달라고 했다. 평원군은 어이없어 하며,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낭중지추:囊中之錐).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일이 없지 않소?’ 하고 반문했다. 모수는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신다면 끝 뿐이 아니라 자루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하고 재치있는 답변을 했다.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뽑았고,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으로 환대받고, 구원군도 얻을 수 있었다는 사례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가 유래됐다. 창조는 모방이다. 중대장겸 정보장교인 이지현 대위가 정보분석조 임무를 수행하며 전투지휘검열을 받다가 정보분석조 가방이 너무 불편하여 등산용 조끼의 주머니에 장비들을 넣고 가방없이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건의했다. 좋은 착안이라며 극찬을 해주었는데 지금은 전부대가 활용하고 있고 대대가 최초로 개발한 부대가 되었다. 또한 마침 상급부대 불시 검열시에 제시하였는데 검열관도 감탄하며 전군에 전파하겠다고 칭찬했으며, 이어 기무부대장, 연대장 그리고 대대를 갑자기 방문한 부사단장에게도 보고하자 부사단장은 사단장에게 보고하겠다며 정보분석조 조끼를 사단으로 가져갔다. 결국 정보분석조 조끼는 사단에 통일되어 활용하게 됐고, 이지현 대위는 낭중지추(囊中之錐)가 되었으며 이로인해 잠수하려던 난득호도(難得糊塗) 실천은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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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6]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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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5]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⑧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아보협업연구소장] 행사를 위해 60여명밖에 안되는 대대원들이었지만 부지런히 연습해 태권도와 군무 시범도 보이면 참석한 기관장들과 어린이들의 환성과 박수에 시범을 보인 대대원들은 사기도 고양되었다. 어떨 때는 지역 태껸도장 사범과 협조해 단원들을 초청하여 태껸 시범을 모이면 참석한 주민들도 매우 즐거워했다. 국군의 날 행사를 하면서 단풍이 시작되고 결실의 계절인 가을도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1994년 4월 대대장반 교육시에 대구 팔달천변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입원하며 시작된 병원 생활이 또 재골절 수술까지 무려 8개월이나 됐다. 그동안 군사영어반 6개월, 군수학교 2개월 등 비정상적인 보직에서 벗어나 대대장으로 취임한지 9개월을 포함해 31개월이나 되었다. 그중에 정체된 시간이었던 22개월의 재활기간 동안 이룬 군생활의 아쉬움을 지난 9개월 동안 원없이 바쁘고 보람차게 달려왔다. 대대장 취임후 천군만마가 된 이완목 부대대장의 잠수(潛水)하라는 조언을 명심하고 몇 개월 동안 소리없이 부대 내실을 기하며 지역 주민들과 호흡을 함께하는 민관군 통합작전을 위한 대민활동에만 집중했었다. 하지만 ‘일부러 바보인 척하기도 참 어렵다’라는 의미의 정판교가 남긴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고사성어처럼 경쟁하는 인접부대를 자극하는 불쑥 튀어나오는 일이 또 발생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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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5]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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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4]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⑦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매년 10월1일 즈음에 대대에서 연례적으로 준비하는 ‘국군의 날’ 행사는 큰 보람을 느끼게 한다. 믿음의 집 뇌성마비자와 희망원 고아들, 보이스카웃단원들 그리고 지역 기관장들을 초청해서 민관군이 하나가 되는 행사를 치루었다. 국군의 날처럼 민관군초청 행사외에도 지역 기관장들과는 주기적으로 모임을 했다. 특히 지역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변종석 청원군수와는 형제나 부자(父子)처럼 더욱 각별하게 지냈다. 변 군수는 필자보다도 나이가 20세 정도 많고 운동을 좋아하며 적극적인 성격이라 지역 주민들의 인기가 높았다. 필자는 대대장 재임기간동안 명절이 되면 군납양부 한병을 들고 군수의 자택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고는 더많은 선물도 받아오곤 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런데 변 군수는 과거 5공화국 시절 삼청교육대가 운용될 때 축구선수로 지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중 경찰에 밉보여 삼청교육대 대상으로 체포되어 경찰서로 끌려갔는데, 당시 대대장이 경찰서를 찾아와 변 군수를 보증하며 꺼내주어 위기를 모면한 덕택에 우리 군에 항상 감사해하며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었다. 또한 서부경찰서장인 한진희 총경(훗날 서울경찰청장 역임)은 청주에 혼자 내려와 살고 있었는데 수시로 관사를 찾아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냈고 덕분에 대대정문 앞 가로수 터널에 신호등을 설치하도록 협조를 해주어 보다 안전하게 차량들이 부대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한편 당시의 지검장은 나름대로 지식인임을 자처하며 필자에게 각별했는데 기관장 회식시에 술에 취해 “한국에서는 숨만쉬면 구속가능하다”는 농담도 하여 필자를 당황시켰고, 실제로 타지역 출신 교육감이 얼마 뒤에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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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4]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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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3]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믿음의 집’ 박선규 목사님은 자비를 털어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무연고 걸인과 정신박약아, 뇌성마비자들을 믿음의 집으로 데려와 숙식을 제공하는 복지시설을 운용하며 사회에서 버려지고 어두운 곳의 빛과 소금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목사님의 믿음의 집은 정부에서 아직도 복지시설 인가를 못 받아 어려움이 많았고, 대대에서 도로보수, 주변 청소 및 봉사활동 등을 수시로 제공하는 작은 도움에 고마움을 느끼며 대대의 일이라면 발벋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지역 주민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군부대 역할에 큰 힘이 되고 있었다. 얼차려와 정신교육을 받은 사고 및 문제병사들을 2박3일 동안 믿음의 집으로 보내 봉사활동을 의무적으로 하게 만들었다. 수용된 어려운 사람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며 청소와 심부름을 하도록 한 뒤에 소감문을 받으면 대부분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고 건강한 신체에 감사를 느끼고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국군의 날 등 지역 주민 초청행사시에 대대를 방문한 믿음의 집 가족들이 군기교육시에 봉사 활동을 한 병사들을 다시 만나면 너무도 반가워하며 고마워해 그들은 감동과 보람을 느끼게 됐고, 오히려 봉사활동을 하여 혜택을 주기보다는 사고 및 문제 사병들 관리에도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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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3]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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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2]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후방지역의 군부대는 원할한 민관군 통합작전을 위해 대민관계가 중요하다. 상근예비역이 사고를 내면 군사경찰(헌병) 보다 인근 파출소에서 먼저 사고를 접수하고 처리한다. 이후에 군사경찰이 현장과 파출소에 도착해 피의자를 인수하여 조사한다. 역시 노마지지(老馬之智)였다. 대대 주임원사는 이미 지역내 모든 파출소장과 친분이 있었고 지역 상근예비역들이 사고를 내면 파출소에서는 바로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해줘 대대는 신속한 사후처리를 할 수 있었다. 주임원사는 지혜롭게 대민관계를 유지하며 군입장에서 대대원들을 보호했다. 사고친 병사들은 대대 군기교육대에 입소시켜 얼차려와 정신교육을 병행했다. 그 방법중에 대대 작전지역내에 위치한 복지시설 ‘믿음의 집’을 최대로 활용했다. 필자는 고교 졸업후 육군사관학교 입교전의 한달 시간동안 신촌 세브란스병원 재활원에서 봉사했던 추억이 있다. 그때 건강한 신체를 허락해 사관학교에 응시할 수 있었고, 몸이 불편한 뇌성마비 환자들에게 봉사하는 기회를 만들어준 하느님께 너무도 감사했고, 험하고 힘든 군생활을 이겨내는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과거 소중했던 추억을 되살리며 사전에 지역 면대장에게 사회복지시설 정보를 입수해 가족과 아들을 데리고 먼저 뇌성마비 환자들과 무연고 걸인들을 모아 생활하고 있는 ‘믿음의 집’을 방문했을 때 감동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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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2]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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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1]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변 어려운 사람들을 조용히 도우며 조용히 민관군 협업에만 중점을 두고 부대운용을 하다보니 잠수시기(潛水時期)가 자연스레 도래했다. 사람은 잘잘못을 떠나 처지가 딱하고 한가로우며 외롭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사서오경의 하나인 대학(大學)에서는 이렇게 답한다. 군자는 반드시 혼자 한가로이 있을 때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항상 자신의 언동을 점검하지만 (君子必愼基獨也/군자필신기독야), 소인은 그러할 때 착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다(小人閒居爲不善/소인한거위불선)고 했다. 신독(愼獨)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해야 군자라고 중용(中庸)에서도 가르친다. 맹자(孟子)는 같은 맥락으로 홀로 어렵게 되었을 때 의(義)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아직도 계속 진행되고 있었지만 10월이 되자 장군 인사가 있었다. 필자가 작전보좌관 시절에 사단장으로 모셨던 이재관 대장(육사 21기)이 대침투작전중인 1군사령관으로 취임했고, 뒤이은 인사로 지팡이를 짚고 DJ대대장 취임을 허락하며 재도약의 기회를 만들어준 이상신 장군도 사단장직을 인계하게 됐다. 더불어 신현정 대령이 연대장 보직전에 군사령부의 본부사령으로 근무한 인연으로 든든한 뒷백이 되어준 조성태 대장(육사20기)도 2군사령관 임기를 마치고 야인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인정과 칭찬을 들었던 신 연대장도 신뢰하던 상급 지휘관들의 교체로 실망이 몹시 큰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잦은 연대 지휘관 참모 회식자리에서도 일부 불협화음이 들려왔다. 정신없이 바쁘게 임무수행하다가 한가로운 여유를 찾게 될 때 더욱 신중하라(신독/愼獨)는 사서오경의 하나인 대학(大學)의 명언이 가슴 깊히 파고든다. 게다가 대대의 유격훈련이 시작될 즈음 예하 면대에서 상근예비역 무단결근과 휴가미귀자가 발생했다. 인접 대대에서 현지탈영 사고에 이어 필자의 대대에서도 사고가 계속되자 연대장은 사단으로부터 더욱 불편한 입장이 되었다. 이완목(삼사14기) 부대대장의 조언에 따라 잠수하며 내실을 기하는 부대관리에 집중했으나 난관에 봉착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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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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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1] 난득호도(難得糊塗) 가면을 벗겨버린 낭중지추(囊中之錐)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