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시대Home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3)]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거창 대대장인 김종업(육사36기) 선배는 사관생도 시절부터 탁월한 리더십으로 선후배간에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으며 동기회장 등 요직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었고, 필자와는 육사에서 같은 생활관의 선배로서 지도를 받았고 현재까지도 각별하게 지내고 있다. 대대장 근무 2년차에 접어든 김 선배는 당시의 사조직 관련 소동과 총기오발 사건 등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마침 정수완과 김종완 동기가 함께 동행하여 위로도 해드리고 회포도 풀겸 거창골짜기를 찾았는데 우리는 그의 의연한 모습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대대장을 어떻게 해야되냐?는 우리들의 질문에 그는 “지휘는 기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욕심부리지 말고, 더 잘보일려고도 말고, 건강하게 즐기면서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해라”라며 찾아간 우리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조언을 해주었다. 게다가 “사향은 아무리 보자기로 싸도 냄새가 나며, 송곳은 호주머니 속에 넣어도 튀어나오는 법(囊中之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신은 선택한 자에게 시련을 주신다고 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위기가 호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정면돌파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추진력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2)]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짧은 3개월의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이지만 룸메이트인 정수완 동기와 각별하게 친해지는 12주간의 시간이었다. 정 동기가 대대장반 교육 수료후 부임할 남해대대 방문은 적지않은 교훈을 주었고 우리는 진해 인접의 다른 선배의 대대도 찾아가 장단점을 분석하고 밴치마킹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번에는 거창대대를 찾았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63~165)] ‘벤치마킹은 창조적 성공의 지름길’참조) 거창은 신라 때는 거열군(居烈郡)이라 불렀고, 거타, 거열 등의 이름이 음운상 유사성이 있어 자타국이라는 나라가 여기 있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현재 사용하는 이름인 거창군은 통일신라 경덕왕이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할 때 지은 이름이다. 이곳은 경남 서북부의 백두대간 자락에 위치하는 지역으로 산에 둘러싸인 산간분지 지역이며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3대 국립 공원 사이에 자리잡아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덕유산 국립공원과 가야산 국립공원이 이 군에 걸쳐 있다. 역사적으로는 신라, 백제, 가야 세 나라의 접경지역이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뺏고 뺏기는 전투가 삼국 통일 전까지 계속해서 있었다. 이후에도 김천, 대구, 함양 및 전라북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라는 장점이 있었으나 통영-대전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함양으로 그러한 이점이 많이 넘어간 상태이다. 6.25남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인 거창 양민 학살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거창군에는 ‘거창사건추모공원’이 존재한다. 이외에 수승대, 월성계곡, 금원산 등의 관광지가 있다. 수승대에서 월성계곡 쪽으로 가는 도로 옆으로 보이는 계곡 풍경이 정말로 장관이다.(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1)]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다음날 오전에 함께 찾아간 곳은 남해섬의 유명한 금산과 보리암이었다.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 짖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 했다. 이후 청년시절의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할 때 성공하면 비단으로 보광산을 감싸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조선왕조를 창업했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사용한 금산(錦山), 절 이름을 보리암(菩提庵)으로 바꿨다. 금산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보리암은 금산의 온갓 기이한 형상을 한 암석과 푸르른 남해의 경치를 한눈에 볼수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경내에는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좌선대 바위가 눈길을 끌며 부근의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은 금산 38경중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기도처의 하나로 주로 군인, 경찰들을 포함한 공무원 등 많은 신도들이 이성계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연일 줄지어 찾고 있다. 쪽빛바다와 초록빛 들녘의 조화를 내려다 볼수있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빼어난 경치와 남해의 금강, 동물형상의 바위가 많아 바위 동물원으로도 불린다. (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0)]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매주 일주일간의 수업이 끝나면 토요일 동두천으로 귀가하는 것을 포기하고 룸메이트인 정 동기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남해 지역을 정찰하고 전임자에게 부대 특징을 파악하며 지휘기법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장연석(육사35기) 선배 부대를 찾아갔다. 4년전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경비과장으로 근무하던 장 선배는 자신이 필자를 추천했던 무적태풍부대에서 비교적 잘 근무했다는 소문에 대해 대견해 했고, 필자는 비록 수방사 못지 않은 고생은 했지만 대과 없이 업무를 하고 진급하여 대대장반에 올 수 있게 여건을 만든 장 선배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표시를 했다. 정수완 동기는 자신이 취임할 대대의 전임자를 자연스럽게 만나 사전에 부대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에 고마워하며 이 것 저것 많이 질문했고 장 선배는 친절하게 답을 해주며 본인이 느꼈던 병력관리의 애로점 및 착안사항과 지역 주민, 경찰들과의 합동작전이 성패의 지름길이라는 해안 대대장 근무의 기법을 알려주며 흐뭇한 표정이었다. 부대와 지역 특성에 관한 설명을 마치고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층 더 가깝게 소통하는 기회도 되었다. 밤이 깊어 갈 무렵 장 선배는 “남해에 오면 반드시 들려야 할 명소가 있고, 얼마전에도 모 선배가 이곳을 찾았다며 다음 날인 일요일에 직접 안내하겠다”며 숙소로 돌아갔다.(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29)]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2주간의 보수교육인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에서 전략과 작전술 및 리더십 교육 등 학과수업도 중요했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어 주변에서 멋있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선배들을 찾아가 현재의 경험에 의한 실시간 지휘기법을 전수받는 일 또한 소중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독신자 숙소의 같은 방을 사용했던 정수완 동기가 남해 대대장으로 차후 근무지가 결정되어있었는데, 그곳에는 필자가 수방사 작전장교를 마치고 무적태풍부대 작전보좌관의 보직으로 가도록 강요(?)했던 장연석 선배가 근무하고 있었다. 정 동기는 자신이 몇 개월 뒤에 근무할 부대의 모습이 궁금했지만 현 남해 대대장 장 선배와 일면식이 없어 서먹서먹했다. 허나 필자는 장선배와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같이 근무했고 필자의 다음 보직을 해당부대에 추천했던 인연으로 망설일 것이 없었다. 룸메이트의 특권이라고 할까? 필자는 궁금해하는 정 동기를 위해 바로 장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궁하면 통하는 법, 반갑게 전화를 받은 장 선배도 환영했는데, 마침 자신의 후임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던 차였기 때문이었다.(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28)]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떨어진 체력 보충을 위해 고민하던중 당시 동기생중에 랭킹 1위 수준을 지닌 이제경 동기가 기꺼이 새벽에 테니스 지도를 해주겠다고 배려해줘 우선 테니스부터 시작했다. 필자가 운동신경이 부족하다보니 부대에서 테니스 수준이 매우 저조했는데 이 동기의 도움으로 기초부터 익히게 되었다. 덕분에 약해졌던 체력은 조금씩 보강되어가고 있음을 느꼈고 특전사에서 멋있게 근무했던 이제경 동기와의 우정은 점점 쌓여갔다. 소령급 실무장교로 꽉 짜여진 일정에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7년 동안의 습관이 몸에 베어버린 탓인지 진해 고급과정(대대장반)의 여유로운 삶은 필자를 맨붕에 빠지게 했었는데 새벽운동을 하면서부터는 하루 하루가 또 바쁘게 달려갔다. 특히 7년전에 소령 진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육군대학 정규과정 교육에서는 전술학 위주로 공부했었는데 당시의 고급과정에서는 전략과 작전술을 배우며 대대장으로 부대를 지휘하는 리더십 교육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입소 직전에 군단 ‘교육훈련TF’ 임무 수행시에 함께 연구했던 요원들을 포함함해서 진해에서 다시 만난 동기생들의 무서운 성장에 ‘괄목상대(刮目相對)’를 느꼈다. 그들은 예리한 분석력과 통찰력을 견지하며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는 간부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고 학과 시간에도 뛰어난 언변으로 자신있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받은 충격으로 필자의 능력의 한계를 느꼈고,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더 열심히 재충전하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필자는 마음만 급했다. 그동안 바빠서 포기했던 대학원 석사 논문도 준비하고 컴퓨터와 테니스도 배워야 하며 고급장교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과정 중의 핵심인 전략이론 등도 익혀야 했다.(다음편 계속)
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6)]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는 2단계 상급부대인 군단에서 통제 계획을 수립해 통상 쌍방 또는 일방으로 진행되며 연대장의 능력 평가는 군단장 책임하에 이루어진다. 또한 연대장 재임 기간에 타연대와 비교되어 서열이 매겨지며 차후 진급에도 결정적인 평가 요소가 되어 매우 중요한 훈련 평가이다. 헌데 군단 통제하에 진행되던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중에 뜻하지 않게 당시의 군사령관 윤용남 장군이 현장지도를 하겠다고 통보하며 불시에 연대지휘소를 기습 방문했다. 기습을 받아 잠시 혼돈 상태가 되었지만 정형진 연대장과 참모들은 훈련 전에 밤을 꼬박 새우며 준비했던 군사령관의 강조사항인 한반도 지형에 부합된 새로운 ‘도로견부위주 종심방어’개념과 전장정보분석(IPB) 및 ‘통합메트릭스’를 활용한 전투지휘를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었다. 곧 위기(危機)는 호기(好機)가 되었다. 연대장과 참모들의 브리핑을 듣고 훈련 현장 상황을 확인한 3군사령관 윤용남 장군은 전에 실시된 타부대의 연대전투단훈련(RCT)에서 호되게 실수를 질책하며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마치 윤 사령관이 그해 8월에 무적태풍부대를 초도방문했을 때 이영대 사단장(학군4기)의 업무보고를 받고 “사단장의 업무보고는 크게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군사령관의 평소 생각과 의도가 업무보고에 100% 모두 수용되어 있어 더 이상 할말이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라고 훈시했던 상황과 같은 분위기였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6)]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⑥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5)]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전 부대원들을 한가족처럼 지휘했던 정형진 연대장의 정성에 감동한 참모 및 장병들은 연대장 재임 기간 가장 중요한 평가인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에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밤을 꼬박 지새우며 훈련 준비를 하고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소속이 바뀌어 인접 군단 예하부대로 전환된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평가관으로 참여한 군단 간부들은 매번의 훈련상황마다 적극적으로 임하는 연대 장병들에게 박수를 보냈고 기존의 연대들과 비교하게 되었다. 특히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전장정보분석(IPB)과 통합메트릭스에 의한 전투지휘는 새로운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 못했던 군단 평가관들의 혹평과 극찬이 엇갈렸다. 헌데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중에 뜻하지 않은 기습을 받아 잠시 혼돈 상태가 되는 위기(?)에 봉착했다.(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5)]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⑤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4)]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형진 장군과 필자가 근무하던 무적태풍부대에서 근무하던 당시의 상급부대인 3군사령관은 윤용남 장군이었다. 그때 윤 사령관은 한반도 지형에 부합된 새로운 ‘도로견부위주 종심방어’개념과 ‘통합메트릭스’를 활용한 전투지휘를 강조했으며, 총장시절엔 ‘육군발전목표’를 선정해 실천을 강요했다. 마침 국방개혁 시행을 위해 기동군단이 2개로 증가함에 따라 무적태풍부대는 소속이 바뀌어 인접 군단 예하부대로 전환되었다. 헌데 정형진 장군(당시 대령)이 지휘하던 80연대는 새롭게 소속 변경된 군단 통제로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를 받아 원래 소속된 기존 연대들보다는 불리한 입장이 되었다. 부대가 잘되기 위해서는 해부대의 강약점을 잘 분석하여 약점을 상급부대가 보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80연대의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를 앞두고 인접 사단의 36연대에서도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가 있었다. 하지만 인접 연대의 평가시에 새로운 개념인 적전술 및 통합메트릭스를 활용한 전투지휘가 미흡함이 실수로 부각되어 육대에서 적전술 교관을 지냈던 사단 감찰참모를 연대로 보내 다시 교육하고 인접 연대의 지적 사항을 즉각 전파해 주었다. 헌데 탁월한 정 대령은 상급부대인 군사령관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적을 상정한 적이 있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 적전술 교리형판을 이용하여 적의 배치를 추정한 전장정보분석(IPB)에 따라 이것에 상응한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당시에 강조되었고 현재도 잘 활용되고 있는 통합메트릭스를 활용한 전투지휘를 위해 연대 참모들과 연대장이 직접 연구하고 반복된 수정을 통해 완벽하게 작성하여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에 임했다. 훈련 평가가 끝나고 연대 정보과장은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전에 전장정보분석(IPB)과 통합메트릭스의 개념을 숙지하고 작성하느라 며칠 밤을 꼬박 지새웠는지 훈련 전에 거의 녹초가 되었다”고 넋두리를 했다.(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4)]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④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3)]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군 최초의 자주국방 전략증강계획 '율곡'에 참여했던 윤용남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예비역 육군 대장)은 지난 2021년 8월6일 오전 6시에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윤 전 의장은 1940년 경남 의령 출신으로 1959년 부산고를 나와 1963년 육군사관학교 제19기로 임관했으며, 6사단장과 5군단장, 3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제31대), 합참의장(제27대)을 역임후 1998년에 예편한 우리 군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베트남전에도 참전했으며, 특히 1996년 9월 강원도 강릉에서의 북한군 잠수함이 침투사건 발생시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정책통인 김동진 합참의장 대신 대간첩작전 전문가인 윤용남 육군참모총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잡아라"며 윤 총장에게 지휘권을 맡긴 일화로도 유명하다. 고인은 군사정권 시절 '하나회' 장교들이 군부를 장악했을 때도 군내에서 '1차 진급'을 달렸다. 사단장 보직이 동기들에 비해 6개월 늦었던 것을 제외하곤 모두 1차 진급을 도맡았을 정도로 야전·전략·정책 등 3개 분야에서 능력을 보였다. 특히 준장 시절이던 1987년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장으로 재임시에 저술한 '기동전: 어떻게 싸울 것인가'는 미군과 독일군의 교리·전략을 한반도 전장 환경에 접목해 기술한 독자적 연구 결과물로서 독일 육사에서도 교재로 사용됐다. 故 윤용남 장군은 '기동전'을 접목한 군 구조 개편, 실전 교리 개혁, 교육 강화 등을 통해 현재 우리 군 구조·전략·역량 강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편 뒤에도 변화된 전장 환경에 맞춰 핵·포병전·특수전 등으로 연구 범위를 넓혔고, 우리 군 또한 이 같은 환경에 빠르게 변모할 것을 강조해왔다. 작고전에는 우주전·인공지능(AI)·사이버전 등 미래 전장 환경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우리의 주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정신전력 강화와 변화된 병영 환경 및 교육 등을 강조해온 고인은 '우리는 대한민국의 군인이었다'(2012)를 저술하기도 했다. 육군장으로 치러진 故 윤용남 장군의 장례식장을 찾은 정형진 장군은 연대장 시절에 큰 가르침을 주었고 군생활을 이끌어주었던 고인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정성어린 조문을 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3)]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③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2)]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빈번하던 14년 전에 장인(故 강철 대령)이 근무했던 80연대장직을 맡은 정형진 장군은 위관 시절에 승리부대 예하 9중대장을 역임했고 그 9중대를 정 대령이 성공적으로 지휘한지 7년만에 필자가 다시 인수하여 9중대장직을 수행한 특이한 인연을 갖고 있다. 정형진 장군은 지난 1974년 육사 30기로 임관하여 중령 시절에 인천 송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해안지역 대대장을 마치고 주 말레이 겸 인도 국방무관으로 부임했다. 그곳 말레이에서도 최초로 우리나라 장갑차를 해외로 수출하는 등의 많은 성과를 올리며 능력을 인정받아 해외 국방무관 근무자중에 특별하게 1차로 대령으로 진급하여 80연대장으로 부임했다. 전·후방 각급 부대에서 정보분야 참모 직책을 두루 역임하였던 정형진 대령은 연대전투단훈련 평가(RCT)최우수부대를 수상하는 등 성공적인 연대장을 마치면서 사단 참모장직까지 탁월하게 끝내고 결국 장군으로 진급했다. 이어 합참정보융합실장,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 육군정보학교장 등 주요보직을 역임한 뒤 육군소장으로 전역했고, 이후 단국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를 거쳐 2020년 1월부터는 김포대학교 총장까지 역임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2)]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②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1)]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60년대와 70년에는 수많은 간첩사건과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에 따라 남한의 혼란을 유도하고 지하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시도가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1968년 1.21사태와 10월~11월 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침투사건, 1969년 3월16일에 주문진에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6월에는 흑산도에 무장공비 침투사건도 있었다. 이렇게 연달아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하자 박정희 정권은 미국에 보복공격을 요청하는 한편 국민의 반공체제 강화에 주력하여 1968년 4월에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 때를 맞춰 1969년 GOP 경계를 담당했던 무적태풍부대에서도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있었고 사단예하 80연대의 작전지역에서 논두렁에서 비트를 파고 숨어있던 무장공비를 연대지원 포병부대 병사들이 발견하여 사살하는 전과도 올렸다. 필자가 근무하던 1993년에 80연대장은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의 정형진 대령(육사30기)이었다. 그는 필자가 처음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던 중동부 전선의 승리부대에서 성공적인 중대장 근무를 했는데 7년 뒤에 우연하게도 필자가 그 중대장으로 보직되는 등 유독 인연이 많았던 선배였다. 게다가 정 대령이 지휘한 80연대는 수많은 간첩사건과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던 1969년도에 필자의 장인이 연대장으로 재직했던 부대이기도 했다. 필자의 장인 故강철 대령은 평북 정주군 출신으로 해방후에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서북청년회 활동을 했는데 공산당의 폭정이 너무도 가혹해 결국 38선을 넘어 월남했다. 이후 신흥대학(현 경희대학교) 정경학부에서 공부하다가 6사단 7연대에서 병사로 입대했을 때 6.25남침전쟁이 발발했다. 헌데 입대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응시했던 보병학교 간부후보생 3기생에 합격 통지서를 받아 종합학교(전시사관학교)1기로 교육받고 소위로 임관하여 11사단에서 일선 소대장, 대대참모, 소총중대장으로 생사의 갈림길인 치열한 전투에 참전하다가 휴전을 맞이했다. 이후 비둘기부대 작전참모로 2년 동안 월남전을 참전하여 대령으로 진급한 장인은 80연대장을 마치고 특전사 작전참모, 육군본부 교육과장직을 수행했다. 마지막 보직인 1사단 부사단장으로 땅굴탐지 작전을 지휘하다가 25년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는데, 2년 뒤에 시추했던 그곳에서 제3땅굴이 발견됐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1)] 통합메트릭스 신화를 만든 정형진 장군①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0)]교육훈련 제일주의로 최우수부대 성과 달성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당시의 국방개혁 시행을 위해 기동군단이 2개로 증가함에 따라 무적태풍부대는 소속이 바뀌어 인접 군단 예하부대로 전환되었다. 이에 소속 변경에 따른 미흡한 분야를 보완하고 개선 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소속 부대의 지휘관이 임석하여 각 지역별로 전술토의를 했다. 그날도 변경된 상급부대의 지휘관인 조성태 군단장(육사20기)이 임진강과 한탄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감제고지에서 예하 사단장들과 전술토의를 했다. 필자는 이영대 사단장을 수행하여 참가했다. 무적태풍부대는 책임지역이 광적면에 사선형 방어를 하고 있어 사진속의 그림과 같이 계단형 진지를 구축하여 방어하고 있었다. 전술토의에서 사단장의 지침을 받은 필자는 가용병력을 고려시에 임진강 이남의 거점까지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조 군단장은 사단의 개념을 수용하며 인접 부대에 해당 거점 방어책임을 넘겨 주었다. 성공적인 토의를 마치고 복귀하는 짚차안에서 사단장은 필자에게 발표를 잘했다고 격려했다. 새로운 군단장이 우리의 건의를 수용함에 따라 사단이 후방거점의 방어 및 관리책임에서 벗어나 보다 효율적으로 작전하게 되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시기에 맞춰 지속된 각종 전술토의에서 우리 부대원들이 자신있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교육훈련 제일주의 추진에 따라 주요 산악을 등반해 작전계획과 지형을 숙지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러한 전술토의와 인접 및 상급부대 역사자료를 정리해 만든 ‘작계변천사’는 전투지휘검열시에 장려사항이 되어 우수부대 표창 수여에 기여했고, 사단장의 신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또한 합동참모본부의 중요 작전부서 과장인 옛 직속 상관(전 승리부대 작전참모)이 요구했던 합참 차출을 보류함에 따라 결국 좋은 기회를 놓쳤다. 그후 함께 근무한 경우가 전혀 없었다. 허나 그는 감사하게도 군생활을 마칠 때까지 멘토이자 스승으로 필자를 이끌어 주었다. 아마도 옛 직속 상관(전 승리부대 작전참모)이었던 그는 모두가 선호하는 합참의 좋은 보직임에도 불구하고 현 직책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보류시키다 합류 못한 필자를 오히려 좋게 평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군인은 현재 모시는 직속상관에게 충성을 다하며 복종하는 것이 바로 국가에 대한 충성이고 애국이다. 이런 군인정신으로 전장병이 무장해야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장터의 기로에서나 최악의 조건과 상황에 부딪히는 전쟁에서도 임무를 완수하며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진리이다.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10)]교육훈련 제일주의로 최우수부대 성과 달성⑤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9)]교육훈련 제일주의로 최우수부대 성과 달성④
- 전투지휘검열 평가를 받기 위해 작전지역으로 행군하는 모습과 예하 연대 훈련 평가를 위해 사단에서 지원된 화기가 장착된 짚차 [사진=국방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전투적 사고는 대단히 중요하다. 대부분의 부대가 전투준비태세를 군장결속과 물자분류에 만 우선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중요한 중요한 ‘목’지역을 적 부대가 선점하기 전에 우리 병력으로 먼저 점령해 전투준비를 하는 등의 전투적 사고가 매우 중요하다. 군인은 이런 전투적 사고로 항상 전투준비를 염두에 두고 생활해야만 하고, 그 일환으로 전술토의도 하게 된다. 이러한 전술토의를 하는 목적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현재 계획의 미흡한 분야를 보완하고 개선 발전시키기 위한 토의이다. 두 번째는 참가 대상자들이 그 내용을 잘모르기 때문에 교육 목적상 참가자들이 발표와 토의를 하는 경우이다. 마침 당해년도 가을에는 사단장 재임기간 중에 가장 중요한 평가 및 검열인 군사령부 전투지휘검열이 계획되어 있어 수검 준비를 위한 자체 전술토의도 계속 되었다. 필자는 보다 성공적인 전투지휘검열 수검준비를 위해 전술토의를 진행하면서 지휘관이 교체 될 때마다 작전계획이 바뀌는 현실을 보고 ‘작전계획 변천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고, 이를 위해 문서 보관소를 뒤지고 역대 참모 및 지휘관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었다. 바쁘게 전술토의 및 전투지휘검열 수검준비를 하던 어느날 사무실의 전화벨이 힘차게 울려 수화기를 들어보니 합동참모본부에 근무하는 옛 직속 상관(전 승리부대 작전참모)의 목소리였다. 그는 합참의 중요 작전 및 전략부서 과장으로 활약이 대단하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지금 주요업무가 많아 필자가 필요하니 당장 그곳으로 와서 함께 근무하도록 차출하겠다”는 통보였다. 필자는 너무 아쉬웠다. 작전 직능의 장교라면 누구라도 먼저 선점하고 싶은 좋은 보직이었으나 현재 부대의 상황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장 전술토의가 지속되고 곧 사단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인 전투지휘검열이 있어 존경하는 사단장의 얼굴이 순간 스쳐갔다. 필자는 “참모님, 우선 가겠습니다. 헌데 곧 있을 전투지휘검열이 끝나고 가겠습니다”라고 답하자 그는 “야, 사단이 중요해? 모든 사단을 관장하는 합참이 중요해? 우선순위를 알아야지..., 또 니가 없어도 사단의 전투지휘검열은 받을 수 있어... 우선 선조치할터이니 기다려...”라고 강요했다. 필자는 작전 직능이면 누구나 먼저 보직을 받고 싶어하는 합참의 주요 부서에서 발탁해 준 전 참모가 너무도 감사했다. 하지만, 현재의 직속상관인 이영대 사단장(학군4기)이 신뢰하며 아끼는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부하의 도리를 다해야 했고, 전술토의 등의 산적한 중요한 업무들과 특히 사단장의 중요한 평가인 전투지휘검열 수검을 위해 모든 것을 총괄하여 준비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당장 갈 수가 없어 양해를 구했다.(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9)]교육훈련 제일주의로 최우수부대 성과 달성④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8)]교육훈련 제일주의로 최우수부대 성과 달성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사령부의 간부들이 오른 산 정상에 있는 ‘감악산비’의 글자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거의 닳아 없어져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감악산비가 삼국시대에 세운 비석임은 거의 확실하다. 북한산 순수비와 형태가 비슷하여 진흥왕 순수비, 진평왕의 순수비 또는 설인귀비라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2019년 9월 이 비석의 몇 글자가 해독되었는데, 광(光), 벌(伐), 인(人) 등 글자들이 있었으므로 영토정벌 후 세운 순수비일 가능성에 더 무게가 쏠렸다. '이벌찬'의 벌처럼 신라의 관등명을 뜻하는 낱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근에 칠중성이 있어 고구려와 신라 간에 칠중성 전투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에 새로 글자가 확인되면서 신라 진흥왕 순수비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 논문도 나왔다. 삼국시대에도 임진강 중류를 낀 군사적 요충지였듯 6.25남침전쟁 중에 치열하게 벌어진 설마리 전투(글로스터 고지 전투 또는 임진강 전투)의 무대이기도 하다. 설마계곡 입구에는 이를 기리는 영국군 참전 기념비가 있다. ([김희철의 전쟁사](22) ‘중공군 입장에서 본 한국전쟁, 제 5차 공세 저지시킨 영국군의 설마리 전투’, 2020.02.03. 참조) 또한 휴전선과 가깝기 때문에 감악산은 현재에도 파평산과 더불어 주요 감제고지라는 군사적 요충지라 주변에 많은 군부대도 주둔하고 수시로 전술토의가 이루어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8)]교육훈련 제일주의로 최우수부대 성과 달성③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7)]교육훈련 제일주의로 최우수부대 성과 달성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체력도 보강하고 지형 및 작전계획을 숙지토록 유도했던 한탄강 주변의 군자산, 마차산, 감악산 등 산악지역 등반은 필자에게 또다른 추가 임무를 부여했다. 산 정상에 올라 간부들에게 작전계획과 지명 유래를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간이 전술토의도 병행했다. 이를 위해 필자는 늘 한 장짜리 지명 유래 및 지역 전사 설명서를 만들어 즐건 산행이지만 간부들이 지형 숙지를 통해 작전에 보다 효율적으로 기여하는 도랑치고 가재잡는 성과를 올려야 했다. 무적태풍부대 인접인 마차산은 동두천시의 소요동과 연천군 전곡읍 천파리의 경계에 위치한 588m높이의 산으로 3번 국도와 경원선 철도를 사이에 두고 소요산과 마주보고 있다. 이제까지 소요산 유명도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마차산인데 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조망이 막힘없이 터진다. 마차산은 감악산의 지맥으로 시의 서북쪽을 감싸고 있으며 소요동 서단에 위치하면서 한북정맥과 연결되어 있다. 꼭대기에 당나라 장수 설인귀의 비가 있었는데 감악산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산 정상엔 축성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산 남쪽에 마고개가 있고 북쪽에는 옥녀봉이 솟아 있다. 산이름은 ‘광여도’ 등에는 마차산(磨嵯山)으로, ‘대동여지도’에는 마차산(摩次山), ‘팔도군현지도’에는 마차산(磨差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조선지형도’에 마차산(磨叉山)으로도 사용되어 왔다. 사진의 설명서에 있는 감악산(紺岳山)은 화악산, 송악산, 관악산,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높이는 해발 675m이다. 지명은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보인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감박산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신라시대부터 무속신앙에서 영산으로 여겨 국가적으로 소사(小祀)의 격으로 제사를 올렸다. 또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정상은 평지인데 석단이 있고 그 위에는 감악산비 혹은 비뜰왕비라 불리는 석비(石碑)가 있다. 인근의 전설에 7세기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실은 이 지역 사람이고 감악산비는 설인귀의 비석이라고 전해지지만, 이는 지역주민들이 설인귀를 동향인으로 삼은 결과일 뿐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비석은 지역 민간신앙에서 감악산신의 상징과도 같다. 대한민국에서 흔히 영산이라 불리는 산에는 사찰들이 많기 마련인데, 감악산은 감악산신 신앙이 너무나 강해서 들어섰던 사찰마저 대부분 폐찰이 되었고, 현재는 범륜사를 비롯해, 수월사, 봉암사, 미타암 등의 절이 남아있다. 하지만 인근의 수량이 풍부한 운계폭포 등으로 절경이다. 정상에서는 북쪽 방면에 있는 임진강 건너편으로 휴전선 일대가 보이며, 날이 맑으면 개성시의 송악산까지도 희미하게나마 보이곤 한다. 정상인 장군봉 바로 아래에는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하고자 숨어지냈다는 전설이 있는 ‘임꺽정굴’도 있다.(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7)]교육훈련 제일주의로 최우수부대 성과 달성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