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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91)] 부여된 임무 완수를 위한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고민과 두려움 느끼며 유종지미(有終之美)를 ....(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초라하다는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의 용흥사라는 절에 진존자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부처님께 기도 올리는 일이 끝나면 지푸라기로 짚신을 만들었고, 다 만든 짚신은 한 켤레씩 짝을 맞춰 산길의 나뭇가지에 매달아 두었다고 한다. 이런 행동에 궁금했던 사람들은 “먼 길 가는 사람 가운데에는 짚신이 낡은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아픈 발을 편하게 해 주려고 짚신을 매달아 두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진존자 스님의 아름다운 마음에 깊이 감동했다. 어느 날, 진존자는 처음 보는 스님과 상대방의 도(道)를 알아보는 선문답을 하게 되었는데 진존자가 한 마디 건네자 그 스님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단을 맞았네. 도를 아주 많이 닦은 스님인가 보구나”라고 생각한 진존자는 그 스님을 좋게 생각했는데 잠시 뒤 그 스님은 또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진존자는 ‘겉보기에는 용의 머리처럼 훌륭한 스님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뱀의 꼬리처럼 형편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에 소리친 스님에게 “소리를 쳤으면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마무리를 지어야지요?”라고 질문하자. 그 스님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자기가 소리를 지르면 다들 대단한 인물인 줄 알고 슬금슬금 피했는데 진존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용두사미(龍頭蛇尾)’라며 그 처음 보는 스님을 비웃었다는 것에서 유래됐다. ■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을 맺고 싶지는 않았던 격오지 부대의 장기간 근무 필자는 1981년 봄, 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해 광주 보병학교의 초등군사반 교육을 마치고 당시에 장교 유배지라고 불리웠던 최전방 격오지 부대에서 천직(天職)을 시작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사랑하는 부대원들과 함께 대성산 골짜기와 비무장지대(DMZ)를 누비며 잠깐의 성취에 자긍심과 보람을 느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부여된 임무 완수를 위해 죽음과 삶의 갈림길의 위기 속에서 고민과 두려움을 느끼며 작전수행도 했고, 같이 뒹굴던 전우를 멀리 떠나 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이렇게 한 부대에서 8년 가까이 근무하다 보니 책임지역 전체는 손바닥을 보는 것 같았고 무엇이든 맡겨만 주면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신화 같은 용(龍)이 되어있는 것으로 착각도 했다. 마치 생도시절 귀 따갑게 듣던 ‘국가의 간성’이 이미 된 줄 알고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뛰어 다녔다. 하지만 후임자에게 업무까지 인계한 사단작전 장교직 말기에는 88을지연습 참가를 위해 사단의 워게임 실시반을 이끌고 한미연합사로 파견됐다. 사단작전장교 근무를 마무리하는 순간에 소홀했다는 소리는 듣지 않도록 더욱 긴장해서 사단의 워게임 실시반 파견 임무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2주간의 88을지연습을 마치고 복귀하자 사단장(최권영 소장, 육사19기)은 타부대와 비교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워게임 파견 요원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필자의 사단작전장교직 후임자로 보임된 김종환 대위(단기사관 15기)가 매우 성실하여 상급자 및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아 필자는 여유를 갖고 육군대학으로 전출갈 준비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무엇인가 배고픔을 느꼈다. 당시에도 부대 발전을 위해 많은 일들이 쌓여 있었으나 모른 채하고 떠날 수는 없었다. 그 중에 하나가 부대 야전예규 재발간 이었다. 1984년도에 수정해서 발간한 탓에 4년이 흐르자, 환경도 바뀌고 상급부대 지침도 변경되어 많은 수정문을 첨부하여 걸레가 되어 있었다. 타부대로 전출갈 날이 2주 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후임자보다는 그동안 경험이 많은 필자가 과거와 현재의 변경된 규정을 더 잘 알고 있어 수정이 용이했기에 다시 책상에 앉았다. 격오지 부대에서의 장기간 근무를 마무리하는 순간에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을 맺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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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2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90)] 타산지석(他山之石)을 넘어서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의 교훈을 깨달게한 미군(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기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하는 의미의 ‘타산지석(他山之石)’ 이라는 고사성어도 인생에서 도움이 되지만 근본이 바로 서지 않으면 도리에 어긋나고 규칙과 체계가 없어진다는 의미의 ‘본립도생(本立道生)’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중국 한(漢)나라 때의 학자 유향은 그의 저서 ‘설원(說苑)’에서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道)가 생기는 법이다’라며 군자는 근본 세우는 일을 귀중히 여기고 처음 시작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서울 올림픽 열기가 뜨겁던 1988년 여름에 필자는 육군대학 입교를 앞두고 후임자까지 받은 상태로 현직의 작전업무는 후임자에게 인계하고 88을지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7월2일부터 23일까지 사단의 워게임 실시반을 이끌고 한미연합사로 파견됐다. 을지연습은 북한군의 불법 남침에 대비하여 한국에 주둔하는 전 미군과 미 본토에서 증원된 요원들도 포함하여 한국군 전체와 정부기관까지 참가하는 훈련으로 일부의 실제훈련을 제외하고는 전부대가 실병력 기동이 아닌 컴퓨터에서 모의된 상황에 따라 조치하는 워게임 훈련이다. ■ 미군이 세계 최강의 군대인 이유는 본립도생(本立道生) 자세 때문 미군들은 충분한 휴식 시간 보장을 위하여 별도의 공간에 숙소를 준비했다. 전방에서 야외 숙영할 때보다도 훌륭하게 당시 캠프 킴에 야전 침대를 충분하게 배치하여 취침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식사는 최상의 상태로 제시간에 제공하는 등 훈련 여건이 완벽히 보장되었다. 이러한 여건하에서도 미군들은 가장 효율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했으나, 적은 인원이 파견된 우리의 사단 요원들은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하여 피로감을 가중시켜 능률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기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하는 의미인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고사성어가 무색하게 오히려 본립도생(本立道生)이란 말처럼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는 미군들의 근무 모습이 세계 최강의 군대를 만든 근원이라는 좋은 교훈으로 얻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 한국군도 모든 훈련과 작전에서 충분한 여건을 보장해주도록 발전시키며, 각자는 부여된 임무 완수를 위해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며 요령을 피우지 말고 전념하여 최선을 다하는 기본에 충실해야 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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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89)] 타산지석(他山之石)을 넘어서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의 교훈을 깨달게한 미군(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타산지석(他山之石)’ 이라는 고사성어는 ‘시경(詩經) 소아편 학명(鶴鳴)’에 나오는 시의 한 구절로 직역하면 ‘다른 산의 돌’이라는 뜻이다. 이는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칠고 나쁜 돌이라도 숫돌로 쓰면 자기의 옥(玉)을 갈 수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기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하는 의미이다. 또한 ‘본립도생(本立道生)’이란 근본이 바로 서지 않으면 도리에 어긋나고 규칙과 체계가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중국 한(漢)나라 때의 학자 유향은 그의 저서 ‘설원(說苑)’에서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道)가 생기는 법이다’라며 군자는 근본 세우는 일을 귀중히 여기고 처음 시작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올림픽 열기가 뜨겁던 1988년 여름에 필자는 육군대학 입교를 앞두고 후임자까지 받은 상태로 현직의 작전업무는 후임자에게 인계하고 88을지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7월2일부터 23일까지 사단의 워게임 실시반을 이끌고 한미연합사로 파견됐다. 을지연습은 북한군의 불법 남침에 대비하여 한국에 주둔하는 전 미군과 미 본토에서 증원된 요원들도 포함하여 한국군 전체와 정부기관까지 참가하는 훈련으로 일부의 실제훈련을 제외하고는 전부대가 실병력 기동이 아닌 컴퓨터에서 모의된 상황에 따라 조치하는 워게임 훈련이다. ■ ‘타산지석(他山之石)‘ 정도로 예상했던 미군은 기본에 충실한 옥(玉) 필자는 예하 각연대의 대대장 대표와 작전과장, 사단 참모부의 주무 장교들과 함께 한미연합사에 도착해서 사전 교육을 받고 나름대로 실습을 했다. 예하 연대에서는 중령급 대대장이 참가하여 책임을 지고 연대를 운용하였지만 사단은 각 참모부의 실무 장교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88을지연습이 시작되자 사단에서 조치할 사항은 원거리로 이격된 사단 사령부와 통화하여 조치를 함으로 제한이 많았다. 결국 시간을 요하는 급한 위기 상황에서 조속한 판단이 필요할 경우에는 필자가 사단장 역할을 대신하며 신속히 결정하고 사전 조치를 했다. 따라서 사단작전장교로 근무하던 필자는 예하 연대처럼 3교대 근무가 불가능했다. 주요한 국면의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필자가 있어야 사단 전체 운용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었고 필자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인접 부대에 적의 공격이 집중되어 사단 상황이 한가해질 때에는 사단의 워게임 요원들은 종종 자리를 이탈해 휴식했고, 심지어 심야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서 졸고 있는 경우도 발생했다. 반면에 인접에서 워게임을 하고 있는 미군들의 사무실을 살펴보니 24시간 중 어느 때라도 근무를 이탈하는 요원은 전혀 없었고, 심지어 식사 시간에도 간편하게 햄버거나 샌드위치 등으로 해결하며 상황조치에 전념했다. 게다가 미군 간부 및 지휘자들은 미동도 없이 모니터를 주시하며 지침을 하달하고 있었으며 예하 요원 중 일부 만이 간혹 느슨해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근무 교대 시간을 준수하며, 대부분 요원들이 책임 시간에는 임무에 열중하는 등 기본에 충실한 자세를 견지했다. 연합사로 파견 나오기 전에 알고 있었던 군기가 문란하고 해이해진 미군이 아니라 모든 요원들이 법과 규정을 준수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미군이 세계 최강의 군대가 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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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1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88)] 어떤 일을 오래 접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일의 전문가가 된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우리 속담이자 고사성어인 당구풍월(堂狗風月)은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말로 어떤 일을 오래 접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일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이다. 또한 비전문가도 전문가와 오래 생활하다 보면 전문가에 버금가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시 필자는 속칭 장교 유배지라는 별명이 붙은 중부전선 격오지 부대의 소대장으로 부임해 최전방 야전 생활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7년이 다가왔다. GOP부대는 매년 임무교대를 했다. 따라서 대성산을 세바퀴나 돌면서 부대교대를 하게 되었고 지역내의 구석 구석까지 발로 다니면서 직접 확인하며 근무하다 보니 사단작전장교로 근무 당시에는 인접 부대의 작전계획까지 모두 습득할 수 있었다. 또한 중대장을 마치고 사단에서 전투지휘검열을 대비해 책임지역내의 모든 지뢰지대, 낙석, 도로대화구 등 장애물 현황을 정확히 유지하도록 장애물이력카드를 전산화를 시키는 작업을 하여 장애물을 포함한 모든 현황까지 머리 속에 입력되며 본인도 모르게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79)] “성공하려면 항상 새로운 것을 제시하라”참조) ■ 40년전 사창리전투의 치욕스런 패배와 유사하게 인접부대간의 협조 문제점 식별 사단작전장교 2년차에 접어든 필자는 당구풍월(堂狗風月)이란 속담처럼 자연스럽게 지역내의 모든 작전계획 뿐만 아니라 진지위치 및 상태까지 숙지한 상태가 되었다. 이때 매년 한미 연합훈련으로 실시했던 을지연습을 앞두고 인접부대와 협조회의가 있었다. 마침 한여름인 그해 8월에 필자는 정규육대를 입교하기 때문에 후임자로 김종환 대위(단기사관 15기)를 받은 상태라 여유가 있어 작전참모를 대신해서 인접 군단에서 실시하는 협조회의에 사단 대표로 참석하였다. 인접군단 작전참모가 주관하여 시작된 회의에서 해당 부대의 작전계획 설명이 끝나고 인접부대의 작전계획을 설명하는 차례가 되었다. 당시 대위였던 필자는 곧 장군이 될 대령 참모가 주관하며 영관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토론에 참석하여 발표한다는 것에 다소 긴장은 되었으나 필자 보다 우리 부대의 작전계획을 더 잘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필자가 소속된 부대의 작전계획 설명이 끝나자 역시 인접부대의 협조선상에는 부대 배치의 공백과 화력 및 장애물운용 등의 취약점이 발견되었고 신랄한 토의가 진행되었다. 6.25 남침전쟁시 장도영 장군이 지휘했던 6사단의 사창리 전투에서 인접 미 24사단과 협조선(전투지경선)이었던 산악과 하오고개를 통해 후방으로 침투 공격한 중공군들에게 치욕스런 패배를 당했다. ([김희철의 전쟁사(23)] ‘중공군 입장에서 본 한국전쟁, 제 5차 공세 사창리 전투에서 치욕적 패배’ 참조) 그런데 약 40년이 지난 당시에도 사창리 전투 사례와 유사하게 양개 인접부대간의 협조에 문제가 있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란 말처럼 사창리 전투의 패배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식별된 병력 배치, 화력 및 장애물 운용에 대한 미비점을 양개 부대가 상호 보완하기로 협조했다. ■ 가기 꺼려했던 장교 유배지인 중부전선 격오지 부대의 7년 장기근무가 오히려 전화위복 저녁 무렵까지 계속된 인접부대 협조회의가 끝나자 인접 군단 및 사단 참모들은 을지연습을 앞두고 사창리 전투의 패배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협조점의 미비점들을 발표한 필자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회의를 마치고 각 참모들이 잠시모여 차를 한잔하며 환담을 하는 사이에 인접부대 참모를 수행해 따라온 육사동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동기는 중대장을 늦게 마치고 사단작전장교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는 시기였다. 회의장에서 브리핑을 하며 영관급 선배장교들의 질문에 거침없이 답하는 필자의 모습을 부러워하던 그에게서 처음 작전장교를 시작할 때 문서 작성 요령부터 새로 배우며 적응하려 애쓰던 필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모두들 가기를 꺼려했던, 속칭 장교 유배지라는 별명이 붙은 중부전선 격오지 부대의 소대장으로 최초 부임해 같이 전입했던 동기들은 모두 타부대로 발탁되어 떠나고 필자만이 남아 7년 넘게 한부대에 근무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셈이다. 비록 타고난 능력은 부족하지만 어떤 일을 오래 접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일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이며, 비전문가도 전문가와 오래 생활하다 보면 전문가에 버금가게 된다는 뜻이기도 한 ‘당구풍월(堂狗風月)’이 인접부대 작전회의에서 적용되어 오히려 빛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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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1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87)]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를 구하고 장렬하게 순직한 솔선수범의 표상 고(故) 강병식 대령(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5사단은 故 강 대령의 숭고한 애국심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군인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5년 5월4일 강병식 추모비에서 승암고개 입구까지 ‘강병식로’로 명명했다. 이 길은 그가 순직한 GOP로 향하는 길이고, 근처에 진지공사 시 도로낙석 맨 꼭대기의 위험한 현장에서 직접 작업을 하며 솔선수범(率先垂範)했던 장소도 있어 더 의미가 깊다. 이 당시 15사단장인 최영철 소장은 “故 강병식 대령의 정신이 사단의 역사와 함께 면면히 이어져 후배 전우들의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이 길을 ‘강병식로’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승리부대는 2014년 11월부터 사단의 잊혀진 전쟁영웅을 찾기 시작해 총 15명의 선배 전우를 선정하고, 최종적으로 5명을 엄선했다. 이듬해 1월2일 사단 주요 직위자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승리 5대 전투영웅 선포식’을 거행하여 산화한 선배 전우의 숭고한 군인정신과 애국애족의 사명을 기리며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1952년 6·25남침전쟁 중 창설된 15사단은 이듬해 휴전 때까지 강원도 고성지역 북방 351고지 등에서 적 7사단을 궤멸하고, 현재의 전선을 확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러한 15사단 5대 전투영웅의 첫번째인 故 강병식 대령은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을 지닌 솔선수범(率先垂範)의 표상이며, 故 김덕련 대위, 박정옥 소위, 김기만 하사는 1953년 고성지구 351고지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고, 故 김수현 병장은 1964년 11월, 사단지역내 수피골 일대의 대침투작전 시 은거한 적을 추격하던 중 본인이 복부 관통상임에도 사투를 치루어 1명 사살, 1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전공을 세우고 장렬히 산화했다 부대는 매달 ‘이달의 승리 전투영웅’을 선정하고 헌정문을 낭독하며, 생존해 있는 유가족들을 초청해 추모 행사도 진행한다. 또 영웅들의 이름을 딴 ‘승리 5대 전투영웅 상(賞)’을 제정, 교육훈련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둬 타의 귀감이 된 장병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부대의 주요 훈련장과 시설물에 영웅의 이름을 부여해 이들의 숭고한 군인정신을 장병들이 자연스럽게 내면화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유가족들은 저마다 아픔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故 강 대령의 가족들이 아픔을 딛고 15사단에서 군복무를 했던 특별한 인연같이, 우리 국민 및 장병들도 국가가 있기에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보다 조국을 지킨다는 자세가 돼야 한다. 따라서 이 칼럼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나라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번씩 잊혀진 영웅과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시간을 갖는 애국 국민들이 확실히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1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86)]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를 구하고 장렬하게 순직한 솔선수범의 표상 고(故) 강병식 대령(중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뢰사고 발생 당시 인접 사단에서 GOP철책대대장을 했던 장광일 예비역 중장(육사31기,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2020년 12월 “고(故) 강병식 동기의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수상을 기리며”라는 기고문을 국방일보에 게재했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 “1988년 5월4일 오전에 춘천병원에서 신검을 받았는데 강병식 중령을 포함한 많은 동기생이 대대장직을 수행하다 모처럼 만나 점심을 함께 했다”고 시작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하지만 책임감 투철한 강병식 중령은 부하들의 GP 지뢰매설 작업을 지휘 감독하기 위해 신검이 끝나자 마자 혼자 부대로 복귀한 후 바로 지뢰매설 현장으로 갔다. 그 현장에서 강풍으로 경계보조물이 전도돼 지뢰가 터지는 순간 부하들에게 ‘엎드려!’라는 명령을 내리고 본인의 몸을 던져 부하를 구했다. 살신성인의 희생정신과 참군인의 진면목이 아니었다면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라며 그날 저녁에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눈물을 닦았다고 했다. 이어 장 장군은 故 강병식 동기가 뒤늦게라도 이번의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수상 등으로 재평가를 받을 수 있게 돼 다행이고 가슴이 벅차다는 내용의 감회를 기고했다. 한편 해당부대인 15사단에서는 故 강 대령이 주로 활동했던 승암고개에 추모공원과 동상을 헌정했으며, 우수 대대장에게 ‘강병식 상’을 수여하여 숭고한 뜻을 기리고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또한 사고 이듬해 故 강 대령의 모교인 이리고등학교는 교문 옆에 ‘故 강병식 대령 추념비’를 세워 감수성 많은 고등학생들의 국가관과 사생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더불어 4년간 국가관과 사생관을 길렀고, 아직도 그의 숨결이 남아 있는 육사 화랑대의 어딘가에도 그 순결하고 고귀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강병식 정신을 이어갈 기념물을 건립하기 위해 육사, 총동창회 그리고 31동기회가 공감대를 갖고 대안을 찾고있다. ■ 동생인 강병옥 예비역 대령, “형의 투철했던 희생정신, 잊지 말아줬으면…” 故 강 대령의 동생이자 당시 20사단에서 포대장(대위)직을 수행하던 강병옥 대령은 “큰형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이미 형은 싸늘하게 식은 상태였습니다. 형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용감했던 형을 군인인 내 손으로 수습해 보내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직접 염을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염을 마치고 나오니 군의관이 ‘형님의 유품입니다’라며 작은 수첩을 건넸는데 형의 심장 바로 옆, 상의 주머니에 있었던 수첩이었다. 가슴은 쓰렸지만 수첩을 받으며, “형을 보낸 마지막 순간에 울지는 않았지만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고, 형이 못다 한 임무는 내가 이어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또한 형의 순직이 군 생활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후에도 큰형이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15사단과 故 강병식 대령 가족들의 특별한 인연이 계속된 것은 마치 운명의 장난 같았다. 동생 강 대령은 지난 2006년 15사단 포병연대장으로 취임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인 강인한 씨는 2006년 15사단이 속한 2군단 포병여단에서 군 생활을 했다. 둘째 형인 강병용의 아들 강경래는 백부의 이름을 딴 강병식 대대를 나와 조교 생활을 했고, 심지어 故 강병식 대령의 큰아들인 강준혁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15사단에서 군사기본교육을 받았다. 동생 강 대령은 “큰형이 가족들에게 자신이 지켰던 ‘화천 축선’을 대신 지키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라며 “故 강 대령의 영혼이 지켜줘서인지, 가족들은 모두 동부전선을 잘 지켜내고 당당히 전역했다”고 말했다. 그는 15사단 포병연대장 시절, 비포장도로였던 ‘강병식로’를 오르내리며 큰형에 대한 추억을 다시 떠올리곤 했다며 “사단 장병들이 ‘강병식로’를 통해 나라와 부하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형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이 매우 뜻 깊고 감사하다”고 강조했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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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0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85)]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를 구하고 장렬하게 순직한 솔선수범의 표상 고(故) 강병식 대령(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88년 5월4일 오전, 필자는 사단 작전처 벙커 사무실에서 군단에 보낼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내용은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전방 경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비무장지대(DMZ)와 후방 FEBA지역의 장애물 보강작전 결과보고서였다. 물론 그날 계획된 폐쇄 감시초소(GP)에 대한 지뢰 매설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을 예상했던 보고서였다. 헌데 정신없이 작성하는 중에 고개를 들어보니 오후 지뢰매설 작전에 투입할 예정인 전초대대장 강병식 중령이 사무실 책상 앞에 서서 필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대대장님 오후에 폐쇄 GP 지뢰매설 작전에 투입하셔야 하는데 어떻게 이 자리에..?”하며 당황하는 필자에게 그는 “오전에 정기 신검(건강검진)이 계획되어 있어 춘천병원으로 가는 중에 걱정하지 말라고 잠깐 들렸어…”라고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 책임감 투철한 강 중령은 부하들의 GP 지뢰매설 작업을 지휘 감독하기 위해 신검이 끝나자 마자 부대로 복귀 폐쇄 GP의 지뢰매설 작전명령을 작성해 전초대대에 하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중대장 근무시에 지뢰제거 작전을 경험한 필자는 안전에 최대한 유의하고 가장 우수한 소대장을 선발해서 작전에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신병교육대장 시절부터 친 형같이 필자를 아껴주던 선배 강병식 중령은 “오후의 작전에는 신검(건강검진)을 마치고 내가 직접 현장에서 지휘할꺼니까 걱정하지마, 안전하게 이상없이 임무 완수할께…”라는 말을 남기고 춘천으로 향했다. 대대장직을 수행하던 강중령의 많은 동기생들이 5월4일 오전에 춘천병원에서 신검을 받았는데 모처럼 만난 그들은 점심을 함께 했다. 그러나 책임감이 투철한 그는 부하들의 GP 지뢰매설 작업을 지휘 감독하기 위해 신검이 끝나자 마자 홀로 부대로 복귀했다. ■ “모두 엎드려!”라고 외치던 이 짧은 순간이 16명의 운명을 갈라 놓았다. 신검(건강검진)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한 강 중령은 중대장과 함께 소대장 이동진 중위와 14명의 소대원들의 군장 상태를 확인하고 GOP 통문을 통과해 폐쇄 GP가 있는 DMZ안으로 투입했다. 지뢰를 매설할 폐쇄 GP에 도착한 강중령은 주변에 경계병을 배치하고 지뢰운반조와 매설조를 투입하려다가 그의 본능적인 부하를 사랑하는 솔선수범(率先垂範)의 정신이 되살아났다. 전년도 추계진지공사시 도로 낙석 보강작업을 하던 현장의 위험한 낙석 맨 꼭대기에서도 직접 작업했던 강 중령은 위험한 곳에 사랑하는 부하만을 보내기가 싫었다. 그는 “나를 따르라(Follow me!)”는 보병학교의 구호처럼 지뢰운반과 경계는 중대장이 통제하는 부하들에게 맡기고 본인과 소대장 이중위 둘이서 직접 지뢰매설을 하기로 했다. 그날은 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날’ 이었다. 아침부터 바람이 몹시 불었다. M14폭풍지뢰, M16대인지뢰 등 매설해야 할 지뢰도 많았다.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면이 40도 이상 기운 급경사가 나타났다. 전초대대장 강 중령과 소대장 이 중위는 앞에서 뇌관을 제거한 뒤 지뢰를 매설하고 있었고 뒤따르는 중대장과 소대원들은 다음에 매설할 지뢰들을 들고 있었다. 긴장한 가운데 시간이 흐르며 이마엔 땀방울도 맺혔다. 그때 DMZ 골짜기의 텃새바람인 매서운 돌풍이 산꼭대기 폐쇄 GP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돌풍은 GP 철책선 상단 2m위에 걸려 있던 애꿎은 경보 보조물을 건드렸다. 보조물은 땅에 떨어졌고, 매설했던 지뢰 뇌관을 건드렸다. 5월4일 15시15분, 선두에 있던 전초대대장 강 중령과 소대장 이 중위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이 짧은 순간이 이들 16명의 운명을 갈라 놓았다. 그 둘은 소리쳤다. “모두 엎드려!” 모두가 일제히 땅 위에 엎드렸다. 반면에 강 중령과 이 중위, 두 사람이 몸을 던진 곳은 터지는 지뢰 위였다. 전초대대장 강병식 중령은 사랑하는 소대장과 부하들을 위해, 소대장 이동진 중위는 존경하는 대대장을 보호하려고 서로가 덮친 것이다. 강병식 중령은 육군사관생도 시절 수기부 및 응원단장으로 활약하면서, 어떤 어려운 일이든 주저하지 않았고 선두에서 진두지휘를 했다. 1975년 육사 31기로 졸업·임관 후 36사단 소대장을 시작으로 5사단 중대장·교육보좌관·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성격이 올곧고 대쪽 같았으며 부하를 끔찍이 사랑했던 그는 1987년 4월15일 15사단 독수리연대 1대대장으로 부임해 전초대대장 직을 수행하는 등 상관의 신뢰와 부하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다. 또한 부산수산대(현 부경대학교)를 졸업하며 학군단 24기 소위로 임관한 이동진 중위는 전역을 두 달 앞두고 있었고 졸업 전 국내 굴지의 기업 공채에 합격해 부모를 기쁘게 했던 전도가 양양한 25살의 건실한 청년이었다. ■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따르라(Follow me!)”는 솔선수범(率先垂範)의 희생정신 그날 오후 늦은 시각, 사단 사령부는 혼돈에 빠졌다. 헌병대장과 감찰참모가 현장 확인을 위해 출동하고 사단 의무대 헬기장에는 강중령과 이중위의 시신이 도착했는데 처참한 광경이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그들은 영안실로 옮겨졌고 사단장실에서 긴급 회의가 열렸다. 작전 및 정훈 참모와 참모장이 직접 발표문을 준비했다. 상급부대에서는 아마도 이번 사고에 대한 문책도 예상되었다. 하지만 전초대대장 강 중령의 확고한 사생관과 솔선수범(率先垂範)하는 리더십 그리고 책임감 및 희생정신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사실 인간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한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군인이 임무를 수행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가장 숭고한 가치이지만 전투에 임하는 군인일지라도 죽음을 깃털처럼 가볍게 여기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평소 사생관에 대한 자세가 확고하지 못하면 행동이 따르지 못할 것이다. 지뢰가 터지는 순간 부하를 위해 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평소부터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과 “나를 따르라(Follow me!)”는 솔선수범(率先垂範) 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 중령은 생도 시절부터 이순신 장군과 강재구 선배를 흠모하고 표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부하들에게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를 강조한 것은 본인 스스로에게도 결연한 다짐이고 각오였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초연했기에 독전을 통해 13대300승리의 신화를 만들 수 있었다. 부하가 던진 수류탄이 잘못 떨어지자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를 구하고 본인은 장렬하게 순직했던 강재구 소령도 그의 일기에 “부하들을 위해 내 몸을 바쳐서라도 좋은 지휘관이 되리라”고 기록했다. 故 강병식 중령과 이동진 중위는 흠모하고 표상으로 삼았던 이순신 장군과 강재구 선배를 따라 몸을 던져 부하들을 구했다. 같은 달 12일, 이들은 보국훈장 삼일장과 함께 각각 중령에서 대령으로, 중위에서 대위로 추서됐고 다음 달 국립대전현충원 장교 제1묘역에 나란히 안장됐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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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0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84)]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를 구하고 장렬하게 순직한 솔선수범의 표상 고(故) 강병식 대령(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공병장병들의 구호는 ‘First In, Last out…!’이다. 왜냐면 적들이 설치해 놓은 장애물을 공병이 먼저 투입하여 제거한 후에 전투부대가 진입할 수 있고 철수할 때는 맨 나중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빠져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육군장교들이 필수로 입교하여 교육받는 보병학교의 모토는 “나를 따르라(Follow me!)”이다. 간부가 되면 ‘First In, Last out…!’구호의 공병보다도 더 솔선수범(率先垂範)하는 자세를 견지하여 필히 “부하들을 위해 내 몸을 바쳐서라도 좋은 지휘관이 되리라”는 각오로 사랑하는 부하들을 지휘통솔해야 한다. 이러한 솔선수범의 표상인 故 강병식 대령은 1988년 5월4일 15:15에 15사단 전방DMZ(비무장지대) 내에 GP에서 지뢰가 터지는 순간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를 구하고 본인은 장렬하게 순직했다. ■ 남북은 시범철수 대상인 GP 22곳의 병력과 화기 철수 완료 후 폭파 정전협정에는 DMZ 안에 군사시설물 설치나 군사장비 반입을 불허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DMZ 내에 감시초소(GP)를 설치하기 시작하면서 경쟁적으로 GP가 증가했다.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던 시기에 우리 군은 60여 개, 북한군은 160여 개의 GP를 각각 설치해 운용 중이었다. 남북 GP 중 가장 가까운 거리는 700여m였고, 남북 GP에 근무하는 병력은 모두 1만2000여명 이었다. 남북은 지난 2018년 9월19일 평양에서 열린 제3차 정상회담에서 지상과 해상, 공중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한 바 있다. DMZ 내 GP 시범 철수도 그 일환이다. 60여 개 GP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1개 GP를 없애는 것도 한국군의 휴전선 일대 감시체계에 구멍을 내는 일이다. 그런데 주한미군 측이 가장 불만족스러워하는 것은 군사분계선 부근을 비행금지구역으로 묶은 조항이다. 휴전선 일대는 계곡이 많고 휘어진 능선으로 인해 인공위성 사각지대가 많아 군단급부터 연대급까지 무인기를 띄워 북한군의 동향을 감시해왔는데,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돼 이것이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한미연합사 정보 분야에서 근무한 모 예비역장성은 “북한군 장사정포는 고지 후사면(보이지 않는 후면의 경사면)에 배치돼 있어서 중고도 정찰과 고고도 정찰로 탐지해야 하는데 이마저 못하게 됐다. 전방 지역은 이제 깜깜이가 됐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조치는 감시-정찰수단과 정밀타격 능력을 현저히 제한한다”며 “이제 한국군은 북한군의 장사정포가 갱도에서 나오는지, 북한군이 이동하는지를 제때에 알 수 없게 됐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계산된 모험(calculated risk)이라 추정하지만, 남북 양측은 군사분계선(MDL) 1㎞ 이내에 근접한 남북 GP 각각 10개소의 화기와 장비 그리고 근무 인원을 철수한 후 11월 30일부로 시설물을 완전 파괴했고, 나머지 1곳에 대해서는 병력과 장비를 철수하되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 또한 그해 12월 말까지 상호 방문해 GP 철수 및 파괴 상태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했다. 또한, 10월 1일 시작된 공동 유해발굴 지역 내 지뢰 제거 작업도 30일 끝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측은 수천발, 남측은 수백발의 지뢰와 폭발물을 제거했다"며 "지뢰 제거 구역의 외곽선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표식물도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와같이 남북은 지뢰 제거 작업이 끝나면 연말까지 공동 유해발굴에 필요한 도로를 개설하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자유 왕래는 조만간 실현될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일방적 파기로 모두 무산됐다. ■ 서울올림픽 앞두고 전방 경계태세 강화 위한 지뢰매설 등 장애물 보강 서울올림픽 준비로 전국이 들썩거리던 1988년 4월경,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육군15사단 역시 세계적인 행사를 앞두고 혹여 있을지 모르는 적의 도발을 막기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특히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전방 경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GP 인근에서 장애물 보강을 위한 지뢰매설작업을 계획했다. GOP후방 지역과 FEBA지역의 장애물 보강을 끝내고 DMZ내의 GP에 대한 보강작업을 위해서는 정전위의 DMZ 출입 승인과 작업을 위한 별도의 작전명령이 필요했다. 사단 작전장교였던 필자는 5월초 폐 GP에 적들이 침투하여 활동할 것을 대비하여 장애물 보강을 위한 지뢰매설 작전명령을 작성해 전초대대에 하달했다. 당시 DMZ 와 GP작전을 담당했던 전초대대는 강병식 중령(육사31기)이 지휘하고 있었다. GOP 투입전에는 사단의 주요관심 대상인 신병교육대대를 담당했던 강 중령은 발군의 능력을 발휘해 강인한 신병들을 교육훈련시켜 사단장으로부터 신임을 얻었고, GOP 부대의 임무 교대 시 가장 중요한 지휘관인 전초대대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마침 그 당시의 사단 작전참모인 성영민 중령(육사30기)도 전초대대장 출신이라 대대장 임기를 마치면 사단의 주요 참모로 보직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전년도 가을에 진행됐던 추계진지공사 기간에는 사단장이 가장 신임하는 예하 지휘관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전방 GOP 부대의 순시를 위해 승암고개를 지나가던 사단장이 도로 낙석 보강작업을 하던 현장에서 고생하는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잠깐 멈추었을 때 솔선수범(率先垂範)의 현장을 목격하였다. 위험한 낙석 맨 꼭대기에서 작업하던 장병이 바로 강 중령이었다. 사단장은 놀라 “그 위험한 일을 대대장이 직접 하느냐?”고 걱정스레 질문하자, 강 중령은 “최근 입대한 병사들은 작업을 잘 못하고 위험해 보여서 본인이 직접 한다”며 겸연쩍어 했다.(중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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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07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83)] ‘강한 집념은 빠른 체념'이 직장인에게 필요한 생존전략’ (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중국 만리장성의 변방에 ‘새옹(塞翁)’이라고 불리던 한 노인이 살았는데, 새옹의 말(塞翁之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가 오랑캐의 뛰어난 말을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으나, 노인은 “이 일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말했다.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오랑캐의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를 다쳐 마을 사람들은 노인을 위로했는데 노인은 여전히 태연하게 “누가 알겠소, 이 일이 좋은 일이 될지?”라 했다. 1년이 흐른 어느 날, 오랑캐가 쳐들어와 마을에 있는 장정들이 나서서 싸우다 모두 죽고 말았지만 노인의 아들만은 말에서 떨어진 후 절름발이가 되었기 때문에 싸움터에 나갈 수 없어서 살아남았다. 따라서 ‘새옹지마(塞翁之馬)’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자성어이다. 길한 일이 있으면 흉한 일도 있고, 재앙이 있으면 복도 오듯이, 인생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 진급 및 승진을 했더라도 또 산 넘어 산에 봉착하는 직장생활 예하 대대장 직책을 수행하다가 더 큰 부대규모의 핵심 주무인 사단 작전참모직을 수행하는 신임참모의 스트레스가 더 많을 것이라 예상도 되었다. 하지만 동료 선후배들 중에 진급 가능성이 희박한 실무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더욱 참아내기가 힘이 들었을 것이다. 당시에 대위였던 필자는 소령 진급 명단에 포함되어 진급 예정자의 신분이라 감사한 마음에 새로운 참모의 업무 스타일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혹시 결원이 생기면 그 업무까지도 불평도 못하고 수행해야 했다. 한편 소령 진급 예정자들에겐 “진급은 과거의 업무 실적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미래의 조직 발전을 위해 더 고생하라는 의무이다”라는 말처럼 국가에 더 봉사와 고생을 하기 위해 능력을 키우는 육군대학 과정의 보수교육이 기다리고 있었다. 육군대학교육은 학교의 수용인원을 고려하여 1년의 정규과정과 3~6개월의 단기과정 그리고 통신과정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정규과정은 시험과 근무 성적을 고려하여 일부 인원만 선발하고 나머지는 단기 및 통신과정에 입교하는 제도였다. 따라서 당해년도 진급예정자들은 진급의 즐거움을 잠시 뒤로 하고, 육군대학과정 시험 준비를해야 했다. 정규과정에 선발되면 추후 중령진급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어서 더욱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88년 1월중순에 육군대학 정규과정 선발시험을 앞두고 있는 시기였는데, 당면 업무에 침몰되어 올인(All In)하는 참모와 지치고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가는 실무자들로 인해 사무실의 분위기는 시험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마침 새롭게 교체된 작전보좌관 설영형 소령(삼사7기)이 작전참모에게 건의하여 시험을 2주 앞두고 공식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배려해 주었다. 덕분에 대위로 진급하여 입교한 고등군사반(OAC)과정에서 책을 잡아본 후 처음으로 각종 교범들과 씨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 ‘가방과정’인 정규보다 '단기 및 통신과정'이 오히려 전화위복된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 운이 좋은 필자는 바쁜 업무 속에서도 작전참모와 선배 및 동료의 배려 덕택에 시험 준비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 육군대학 정규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정규과정에 입교한 진급예정자들은 또다시 성적과 투쟁을 해야 했고, 최종 수료시 교육인원 중에 1/3수준의 상층 성적을 얻지 못하면 진급 심사에서 우선권이 배제되었다. 또한 정규과정의 입소자들은 주로 장군 부관 및 보좌관 출신들이 많았다. 그들은 공부할 수 있는 여건 보장이 용이했고 심사과정에서도 모시던 분들의 입장이 고려되어 야전의 일반 실무자들보다도 정규과정에 선발된 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니 어느 날부터는 정규과정을 ‘가방(부관 및 보좌관들이 장군의 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해서 불리운 호칭)과정’이라는 별명까지 붙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자 상급부대는 당시의 육군대학 과정 선발 방침을 재검토하였다. 그 결과 진급 심사 규정이 바뀌어 과정을 구분하지 않고 졸업 성적이 상층인 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되었다. 따라서 단기과정이나 통신과정에 입소한 우수한 자들이 오히려 손 쉽게 상층을 확보할 수 있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되었다. “집념이 강한자는 체념도 빠른 자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비록 정규과정 선발 시험에 고배를 마셨지만 정규과정 입소를 체념하고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 재빠르게 변신한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집념을 갖고 단기과정이나 통신과정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고, 차후 진급심사에서도 정규과정에 입소했지만 상층의 결과를 못 얻은 자들보다 우선권이 부여되었다. 이러한 체념과 변신으로 생존한 자들에게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은 정확히 적용되었다.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0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82)] ‘강한 집념은 빠른 체념'이 직장인에게 필요한 생존전략(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지나며 한파가 몰아치는 12월이 오면 새로운 한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군대에서도 야전부대 지휘관들은 이때가 되면 상급부대의 연말 지휘관회의에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 연말 지휘관회의에서는 지난 1년동안 각 분야의 성과를 분석 및 평가해서 우수부대를 선발하고 표창하며, 그 결과는 부대원들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상급자가 교체되면 새로운 환경에 재빠르게 변신하여 적응해야 생존 군 간부인 장교 및 부사관들도 당해년도의 모든 진급결과가 발표된 후인 이때가 되면, 진급자의 전출 및 보직이동에 따라 각자의 새로운 보직을 맡게 된다. 그들은 다음해 진급 심사를 대비해 어떻게 잘하면 더 탁월한 평가와 인정을 받으며 차후 진급 가능성이 높아지기 위해 고민하면서 각오를 다지고 업무에 매진한다. 비무장지대(DMZ)와 GP를 관장하며 작전하는 전초 대대장 직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사단 작전참모로 새롭게 부임한 성영민 중령(육사30기, 예비역 준장)은 주무 참모로써 사단장을 보좌하여 사단 전체의 모든 부대운영을 구상하고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하는 것에 전념하고 있었다. 물론 ‘가문의 영광’이라고도 불리는 사단 작전참모는 사단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직책임과 동시에 작전 직능의 장교들은 필히 경험해야 하고 또 진급에 우선권이 부여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전임자도 그 자리에서 1차 대령 진급을 했기에 고생스러워도 서로가 수행하고 싶은 자리였다. 그래서인지 전초 대대장 시절, ‘의리의 사나이 돌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활달하게 선후배들을 챙겨주며 돋보였던 성 중령도 작전참모 보직을 맡자 ‘일중독자(Workaholic)’가 되어 잠자는 시간외에는 상황실과 사무실을 오가며 업무에 올인(All In)했다. 때마침 군단에서 시행한 전술토의에서 타부대와 비교하여 월등히 창의적이고 세련된 준비와 발표로 칭찬을 받아 더욱 더 야간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폭주하는 업무에 시달린 예하 실무장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치고 스트레스가 점점 쌓이게 되었고, 심지어 일부 간부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출근도 못하고 또 어떤 실무자는 무단이탈까지 하는 상황이 되었다. 통상 직장인들은 직속 상급자가 교체되면 전임 상급자의 업무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던 습관을버리지 못해 적응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집념이 강한자는 체념도 빠른 자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환경에 재빠르게 변신하여 적응하는 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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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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