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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3)]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거창 대대장인 김종업(육사36기) 선배는 사관생도 시절부터 탁월한 리더십으로 선후배간에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으며 동기회장 등 요직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었고, 필자와는 육사에서 같은 생활관의 선배로서 지도를 받았고 현재까지도 각별하게 지내고 있다. 대대장 근무 2년차에 접어든 김 선배는 당시의 사조직 관련 소동과 총기오발 사건 등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마침 정수완과 김종완 동기가 함께 동행하여 위로도 해드리고 회포도 풀겸 거창골짜기를 찾았는데 우리는 그의 의연한 모습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대대장을 어떻게 해야되냐?는 우리들의 질문에 그는 “지휘는 기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욕심부리지 말고, 더 잘보일려고도 말고, 건강하게 즐기면서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해라”라며 찾아간 우리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조언을 해주었다. 게다가 “사향은 아무리 보자기로 싸도 냄새가 나며, 송곳은 호주머니 속에 넣어도 튀어나오는 법(囊中之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신은 선택한 자에게 시련을 주신다고 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위기가 호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정면돌파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추진력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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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2)]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짧은 3개월의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이지만 룸메이트인 정수완 동기와 각별하게 친해지는 12주간의 시간이었다. 정 동기가 대대장반 교육 수료후 부임할 남해대대 방문은 적지않은 교훈을 주었고 우리는 진해 인접의 다른 선배의 대대도 찾아가 장단점을 분석하고 밴치마킹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번에는 거창대대를 찾았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63~165)] ‘벤치마킹은 창조적 성공의 지름길’참조) 거창은 신라 때는 거열군(居烈郡)이라 불렀고, 거타, 거열 등의 이름이 음운상 유사성이 있어 자타국이라는 나라가 여기 있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현재 사용하는 이름인 거창군은 통일신라 경덕왕이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할 때 지은 이름이다. 이곳은 경남 서북부의 백두대간 자락에 위치하는 지역으로 산에 둘러싸인 산간분지 지역이며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3대 국립 공원 사이에 자리잡아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덕유산 국립공원과 가야산 국립공원이 이 군에 걸쳐 있다. 역사적으로는 신라, 백제, 가야 세 나라의 접경지역이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뺏고 뺏기는 전투가 삼국 통일 전까지 계속해서 있었다. 이후에도 김천, 대구, 함양 및 전라북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라는 장점이 있었으나 통영-대전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함양으로 그러한 이점이 많이 넘어간 상태이다. 6.25남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인 거창 양민 학살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거창군에는 ‘거창사건추모공원’이 존재한다. 이외에 수승대, 월성계곡, 금원산 등의 관광지가 있다. 수승대에서 월성계곡 쪽으로 가는 도로 옆으로 보이는 계곡 풍경이 정말로 장관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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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1)]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다음날 오전에 함께 찾아간 곳은 남해섬의 유명한 금산과 보리암이었다.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 짖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 했다. 이후 청년시절의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할 때 성공하면 비단으로 보광산을 감싸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조선왕조를 창업했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사용한 금산(錦山), 절 이름을 보리암(菩提庵)으로 바꿨다. 금산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보리암은 금산의 온갓 기이한 형상을 한 암석과 푸르른 남해의 경치를 한눈에 볼수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경내에는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좌선대 바위가 눈길을 끌며 부근의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은 금산 38경중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기도처의 하나로 주로 군인, 경찰들을 포함한 공무원 등 많은 신도들이 이성계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연일 줄지어 찾고 있다. 쪽빛바다와 초록빛 들녘의 조화를 내려다 볼수있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빼어난 경치와 남해의 금강, 동물형상의 바위가 많아 바위 동물원으로도 불린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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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0)]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매주 일주일간의 수업이 끝나면 토요일 동두천으로 귀가하는 것을 포기하고 룸메이트인 정 동기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남해 지역을 정찰하고 전임자에게 부대 특징을 파악하며 지휘기법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장연석(육사35기) 선배 부대를 찾아갔다. 4년전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경비과장으로 근무하던 장 선배는 자신이 필자를 추천했던 무적태풍부대에서 비교적 잘 근무했다는 소문에 대해 대견해 했고, 필자는 비록 수방사 못지 않은 고생은 했지만 대과 없이 업무를 하고 진급하여 대대장반에 올 수 있게 여건을 만든 장 선배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표시를 했다. 정수완 동기는 자신이 취임할 대대의 전임자를 자연스럽게 만나 사전에 부대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에 고마워하며 이 것 저것 많이 질문했고 장 선배는 친절하게 답을 해주며 본인이 느꼈던 병력관리의 애로점 및 착안사항과 지역 주민, 경찰들과의 합동작전이 성패의 지름길이라는 해안 대대장 근무의 기법을 알려주며 흐뭇한 표정이었다. 부대와 지역 특성에 관한 설명을 마치고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층 더 가깝게 소통하는 기회도 되었다. 밤이 깊어 갈 무렵 장 선배는 “남해에 오면 반드시 들려야 할 명소가 있고, 얼마전에도 모 선배가 이곳을 찾았다며 다음 날인 일요일에 직접 안내하겠다”며 숙소로 돌아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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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29)]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2주간의 보수교육인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에서 전략과 작전술 및 리더십 교육 등 학과수업도 중요했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어 주변에서 멋있게 대대장으로 근무하는 선배들을 찾아가 현재의 경험에 의한 실시간 지휘기법을 전수받는 일 또한 소중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독신자 숙소의 같은 방을 사용했던 정수완 동기가 남해 대대장으로 차후 근무지가 결정되어있었는데, 그곳에는 필자가 수방사 작전장교를 마치고 무적태풍부대 작전보좌관의 보직으로 가도록 강요(?)했던 장연석 선배가 근무하고 있었다. 정 동기는 자신이 몇 개월 뒤에 근무할 부대의 모습이 궁금했지만 현 남해 대대장 장 선배와 일면식이 없어 서먹서먹했다. 허나 필자는 장선배와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같이 근무했고 필자의 다음 보직을 해당부대에 추천했던 인연으로 망설일 것이 없었다. 룸메이트의 특권이라고 할까? 필자는 궁금해하는 정 동기를 위해 바로 장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궁하면 통하는 법, 반갑게 전화를 받은 장 선배도 환영했는데, 마침 자신의 후임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던 차였기 때문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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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28)]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떨어진 체력 보충을 위해 고민하던중 당시 동기생중에 랭킹 1위 수준을 지닌 이제경 동기가 기꺼이 새벽에 테니스 지도를 해주겠다고 배려해줘 우선 테니스부터 시작했다. 필자가 운동신경이 부족하다보니 부대에서 테니스 수준이 매우 저조했는데 이 동기의 도움으로 기초부터 익히게 되었다. 덕분에 약해졌던 체력은 조금씩 보강되어가고 있음을 느꼈고 특전사에서 멋있게 근무했던 이제경 동기와의 우정은 점점 쌓여갔다. 소령급 실무장교로 꽉 짜여진 일정에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7년 동안의 습관이 몸에 베어버린 탓인지 진해 고급과정(대대장반)의 여유로운 삶은 필자를 맨붕에 빠지게 했었는데 새벽운동을 하면서부터는 하루 하루가 또 바쁘게 달려갔다. 특히 7년전에 소령 진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육군대학 정규과정 교육에서는 전술학 위주로 공부했었는데 당시의 고급과정에서는 전략과 작전술을 배우며 대대장으로 부대를 지휘하는 리더십 교육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입소 직전에 군단 ‘교육훈련TF’ 임무 수행시에 함께 연구했던 요원들을 포함함해서 진해에서 다시 만난 동기생들의 무서운 성장에 ‘괄목상대(刮目相對)’를 느꼈다. 그들은 예리한 분석력과 통찰력을 견지하며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는 간부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고 학과 시간에도 뛰어난 언변으로 자신있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받은 충격으로 필자의 능력의 한계를 느꼈고,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더 열심히 재충전하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필자는 마음만 급했다. 그동안 바빠서 포기했던 대학원 석사 논문도 준비하고 컴퓨터와 테니스도 배워야 하며 고급장교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과정 중의 핵심인 전략이론 등도 익혀야 했다.(다음편 계속)
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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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5) 연대전술훈련 평가서 '쉽게' 달성된 '남북통일'
- ▲ 연대전투단 훈련(RCT)평가시 산악침투하는 소대원들 [국방부 자료사진]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 훈련중에 만난 옛 친구와의 해후, 적군 역할 맡은 소대장이지만 오랫만에 회포 풀어 훈련통제관, 규정위반이지만 "남북통일 됐다"면서 눈감아 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논어(論語) 맨 첫장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라는 뜻이다. 일주일간의 RCT 중 화악산 방향으로 공격을 마치고 방어 국면으로 전환 되었을 때 우리 소대는 강원도 사창리에 있는 두류산 정상에서 급편방어를 하고 있었다. 화악산까지 공격했을 때 사모님들이 주둔지에 오셔서 전 대대원들에게 저녁을 제공해주었던 따뜻한 고마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부대는 철수 명령을 받고 가을비 내리는 야음을 이용하여 급하게 두류산으로 이동했다. 우의는 걸쳤지만 장거리 이동으로 옷은 모두 젖었고 늦가을 추위는 마치 엄동설한 처럼 피부를 파고 들었다. 뜬 눈으로 덜덜 떨면서 밤을 지새워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날이 밝자 동녁으로 떠오른 태양이 젖은 옷과 마음을 말리고 있는데 두류산 서쪽 하단부에 배치된 3소대장 박정수소위의 전화가 왔다. “김소위 방어진지 편성 완료됐냐? 그러면 3소대 진지쪽으로 순찰 와봐라…”하고 대답도 듣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난 무슨 중대한 정보를 교환할 것이 있나해서 통신병과 함께 인접 3소대 협조점으로 내려갔다. 박소위는 나의 손을 잡으며 밤새 고생했는데 진전 정찰을 나가자고 제의했다. 쌍방훈련이기 때문에 상대인 11사단에서 정찰나온 팀을 체포했나? 하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방어진지를 넘어 상대연대가 진출해왔을 수도 있는 능선까지 갔다. 마침 그곳은 양지녁에 무덤이 있어 햇볕이 따사하게 내리쬐는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 까…무덤에 도착하자 숲속에서 11사단 정찰조가 튀어 나왔다. 상황이 묘해지려는 순간 “어..? 용호야..!”하고 반가운 나머지 훈련 평가중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서로 포옹을 했다. 잠시후 무덤 주변으로 각 소대장의 통신병들로 사주경계를 시키고 적군 소대장과 잔디에 털썩 주저앉아 회포를 풀었다. 상대 연대에서 정찰나온 소대장은 마침 육사 동기생이었고 3소대장과는 대구 대륜고교 동창생이라 서로가 잘아는 친구들이었다. 우리 셋은 둘러앉아 건빵을 안주삼아 수통에 담겨있던 소주를 나누어 먹으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해후의 기쁨도 잠깐 때마침 지나가던 훈련통제관에게 들키고 말았다. 통제관 완장을 찬 고참 소령이 피아가 다정하게 담소하는 희안한 광경을 목격하고 “귀관들 지금 뭐하고 있나?”하며 다가왔다. 당황한 우리는 “죄송합니다. 마침 정찰나온 적 소대장과 서로 잘아는 사이고 오랬만에 만나다 보니, 잠시 인사를 나누는 중이고 곧 제위치로 돌아가겠습니다.”하고 복장을 챙겨 일어섰다. 통제관은 살짝 웃으며 “못본 걸로 할 테니 빨리 정위치해서 훈련평가에 임하게..” 하고 돌아서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적과 아군이 반갑게 만나는 모습을 보니 여기는 남북통일 되었구만 .. ㅎㅎ” 같은 한민족인 남북간 통일도 이처럼 쉽게 풀리길 기대해본다. 끝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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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5) 연대전술훈련 평가서 '쉽게' 달성된 '남북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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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 허무하게 떠나보낸 전우
- ▲ 연대전투단 훈련(RCT) 평가시 수색정찰하는 중대원들 [국방부 자료사진] 줄담배 연기 속에 허무하게 떠나보낸 전우에 대한 안타까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1981년 늦가을, 겨울 삭풍은 아니지만 산골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중대본부 화목난로 앞에 앉아 계속해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중대장의 손은 떨고 있었다. 지난밤 연대전투훈련 평가(RCT) 준비를 위해 물품을 구입하러 외출 나갔던 김하사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그날 오후에 평가준비 최종 군장검사가 연대장 주관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다음 대대로 조정되었고, 대대장에게는 사고 수습에 우선하라는 지시가 떨어 졌다. 훈련 평가를 위해서는 사소한 준비가 모두 필요했다. 특히 야간방어를 위해 견인 및 신호줄과 후레쉬 야간 필터, 건전지, 위장크림 등은 보급이 되지만 부족해서 필요수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추가 구입이 필요했다. 어제 늦은 오후, 김하사는 내게 와서 우리 소대가 필요한 물품 목록을 달라고 했고 분대장들과 상의해서 군장검사시 추가로 필요한 목록을 넘겨주었다. 그는 목록을 받고 중대행보관이 바쁘기 때문에 자기가 대신 다녀온다며 뜻밖의 외출을 즐거워 했다. 부대에서 한시간 정도 내려가면 주변의 부대원들을 위한 구멍가게가 있다. 사실 없는 것이 없는 만물상이었다. 이미 RCT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필요한 품목들을 이미 준비해 놓고 있었다. 물론 간부들이 퇴근하다가 가게에 들려 간단한 안주와 소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휴식처이기도 했다. 물품을 모두 구입한 김하사는 그냥 복귀하기가 서운했는지 소주 한잔을 했고,내무반에 남아있는 동료들 생각에 소주 댓병을 추가로 구입해 등에 지고 부대로 복귀하고 있었다. 어느덧 야간 점호 시간이 되어도 김하사가 복귀를 안하자 대대에서는 걱정이되어 교육관에게 짚차를 내주어 찾아보라고 보냈다. 한편 김하사는 취기가 오린 채 복귀하다가 부대 쪽에서 짚차가 내려오자 음주를 들킬까봐 도로 옆 숲으로 숨었는데 마침 개울물이 흐르고 있어 몸을 숙여 물을 마실려다가 그대로 발목도 차지않는 개울에 얼굴을 박고 정신을 잃었다. 김하사의 복귀가 늦어지자 결국 전대대원을 기상시켜 주변 수색을 나갔다. 헌데 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로가 옆 개울에 그대로 얼굴을 박고 죽어 있는 김하사를 발견했다. 군에서 각개병사들은 거의 매달 상급부대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우선 분대평가가 매분기에 있고 소대, 중대, 연대전술훈련 평가도 매년 있으며, 사단 및 군단급 부대는 지휘관 재임기간 치루는 전투지휘검열로 소대원들은 매번 시험 평가에 시달린다. 게다가 큰 훈련을 앞두고는 사전 예행연습 및 숙달과 준비사열이 더 피로를 가중시킨다. 이번에도 연대장 재임 기간 한번 있는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상사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 중에는 신혼의 단꿈을 꾸던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도 있었다. 울고불고하는 가족들 앞에서 중대장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군대는 그대로 흘러간다. 직업군인으로 한 개인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순간의 음주로 발생한 불행은 안타깝지만 조직 전체는 부여된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한다.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고 했던가? 장례를 치루고 전우의 허무한 죽음도 뒤로한 채, 연대전술훈련 평가는 시작되었다. 끝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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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4) 허무하게 떠나보낸 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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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 '마지막 삼청교육대'의 저리는 슬픔
- ▲ 지난 1994년 2월 15일 삼청교육대 진상규명 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국회앞에 몰려가 배상법안 마련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걸었던 5공화국 초기 삼청교육대, 수많은 희생자 낳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제 5공화국 초기인 1980년에는 사회정화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계엄포고령 13호’ 위반으로 6만명을 체포했고 그중 4만 3,599명을 삼청교육대에 입소시켰다. 이는 5.16쿠데타 당시의 ‘국토 재건단’과 마찬가지로 우리사회에 만연했던 정치 및 조직폭력배를 일거에 소탕하는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삼청교육대는 선량하거나 정치적인 희생자들이 포함된 사망자 52명, 후유증 사망자372명과 상해자 2,768명이 발생하는 아픔을 남겼다. 필자가 소대장 근무했던 승리부대도 GOP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삼청교육대를 운용하며 선의의 피해자들이 포함된 범죄자들에게 정신교육 명목의 유격훈련과 진지공사 등을 시켰다. 사회가 안정되면서 정부는 경범죄자들은 모두 퇴소시키고 ‘81년 겨울이 되자 남아있던 고질적인 범죄 전과자들을 청송감호소로 이동시켜 통합관리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삼청교육대 입소자들을 총 26개 사단에서 분산해서 운용했기 때문에 승리부대에서도 대상자 약 1500여명중 단계별로 교육 목적이 달성된 대상자들은 모두 퇴소하고 약 40명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삼청교육대 잔여인원 40명을 청송감호소 입소 전까지 관리 살인, 강간, 폭력 등 흉악범죄자 집단 관리 맡아... 삼청교육대 입소하는 심정 사단에서는 민가와 동 떨어져 있는 우리 대대에서 삼청교육대 잔여 인원을 감호소 입소전까지 관리하도록 판단했고, 명령을 받은 대대장은 필자보고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마침 대대에는 각 중대 막사들과 동떨어져 창고로 활용하던 폐 막사가 있었다. 소대원들을 데리고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물품들을 모두 옮기고 부서진 창문들과 침상을 보수하고 보온용 페치카를 정비하는 등 바쁘게 준비를 하고 대대장과 연대장의 사열까지 받았다. 하지만 필자는 그들을 사고없이 순화시켜 감호소로 보내기 위해서는 시설 정비 등 물리적인 준비 보다 소대원들의 절대적인 충성심과 복종심 등 강인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심적 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죽음의 순화교육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의 죄질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살인, 폭력, 강간, 절도, 사기 등 이었다. 이들의 신상카드를 확인하면서 사실 17살에서 53살까지 다양한 연령 층으로 구성된 악마집단과 같은 이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마치 내가 삼청교육대에 입소하게 되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사실 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50대 입소자는 부산 도로에 다니는 오토바이는 모두 자신의 것이라며 도둑질과 허풍을 당연하게 여기고, 어떤 40대는 하도 말을 잘해서 전문 사기꾼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며,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한 30대는 말조차 붙이기 험악하게 쌍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등 각양각색의 골치덩어리들이었다. 탈영자 발생으로 사단 전체에 진돗개 발령, 인간적 대우해주려고 노력했던 필자, '배신감' 느껴 자정쯤 탈영자 복귀해 "길 잃었다"고 해명 마지막 남은 입소자들에게 정상인으로 생활할 수 있게 교육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단지 그들이 사고를 저지르지 않고 무사히 감호소로 이송 시키는 것이 목표였고 소대원들에게는 공식적인 대화 이외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 대화를 못하도록 통제했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아침 점호 후 내무반 보온을 위해 대성산에 올라 화목을 준비하는 것이 모두였다. 오전에 산에 올라 2미터 정도의 나무를 운반한 후 오후에는 반복된 일과를 진행했고 경계병들에게 철저히 인원 통제해 이탈자를 없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오후, 산에 올라갔던 분대장에게서 무전 연락이 왔다. 하산을 준비하며 인원 체크를 했는데 한명이 이탈했다는 것이었다. 난 즉시 대대장에게 보고를 했고 사단은 전 부대에 ‘진돗개’를 발령하여 수색작전에 돌입했다.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며 동료의식을 심어주었는데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잡히기만 하면 엄청 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탈영자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수색조에게 실탄을 분배하며 경고를 했는데도 위협을 가하면 사격도 가능하다고 일러주었다. 훈련이 아닌 실제의 대간첩 작전이었다. 톱과 낫을 갖고 있어 수색조를 습격하면 소대원이 다치거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속이 타면서 수색조들을 지휘하다 보니 날이 어두워 졌고 사단에서는 통제를 제대로 못한 필자에게 호된 질책도 내려왔다. 내무반에 있는 입소자들에게도 그동안의 인간적인 모습이 아닌 경계 소대장으로 각 조별관리를 못한 조장들을 포함해 전체에게 질책을 하고 앞으로 통제가 더 심해질 것이니 각오하라고 경고했다. 1075고지인 대성산은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첩첩산중이다. 사단 전 병력은 대성산을 중심으로 봉쇄선을 형성하고 주변 도로에는 차량을 이용 계속 순찰을 돌려 벗어나지 못하게 운용하는 등 전체가 제대로 대침투 작전 훈련을 하게 되었다. 자정 가까이 되어 수용소 경계병에게서 연락이 왔다. 탈영자가 복귀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그는 지친 모습에 어깨에는 가느다란 화목을 메고 있었다. 산에서 길을 잃어 겨우 복귀했다며 ‘탈영의혹’을 펄펄뛰며 부인했다. 설명을 들으면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끝없는 산속이라 날이 어두워져 그대로 복귀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 삼청교육대 잔여인원이 청송 감호소로 떠난 날, 그들의 침상에선 기도문구와 십자가가 발견됐다. [사진제공=김희철] 청송감호소 이송 앞둔 연대장 교육은 그들의 '반항'으로 난장판 돼 흉악범죄자들이 떠나간 침상에서 발견된 소녀 기도상과 기도 문구, 깊은 슬픔 느껴 불교교리 중 삼법인(三法印)의 하나인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이 현실세계의 모든 것은 매순간마다 생멸,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일체는 무상(無常)한데 사람은 상(常)을 바라는데 모순이 있고 거기에 고(苦)와 오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교육생들이 청송 감호소로 이동할 시기가 되었다. 대대장과 회의 결과 그들이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조용하게 탑승/이동시키는 것에 최대 중점을 두고 생활관에서 한명씩 나오면 헌병이 수갑을 채워 신속히 차량에 태우는 방법을 적용하여 경계병력을 배치시켰다. 간신히 교육생을 다 태우자 마침 도착한 연대장이 정신교육을 시키겠다며 다시 하차를 지시했다. 건의를 했지만 순수한 입장에서 인상을 좋게 해서 보내야 한다는 의견에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통제가 되질 않았다. 탑승할 때 채웠던 수갑은 모두 해체되어 있었고 고함도 질렀다. “먼저 퇴소한 사람 중에는 자신보다 더 잘못한 것이 많은 사람도 있었는데 자신을 감호소로 왜 보내냐”면서 이동하는 것을 거부하고 바로 퇴소 시키라는 항의가 거의 난동 수준에 이르렀다. 결국 우리 경계병들은 외곽 경계만 하고 있는 상태에서 헌병들이 투입하여 제압을 하고 그들을 모두 탑승시켰으나 이미 출발장은 난장판이 되었다. 순수한 의도의 연대장 정신교육은 이미 물 건너간 상태였고 그들의 난동으로 오히려 연대장 신변이 위험할 뻔했다. 소동이 끝나고 모두 출발하자 우리 소대는 뒷정리를 시작했다. 온갖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은 사무엘이 기도하는 ‘오늘도 무사히’사진과 십자가 카드가 붙어있는 침상이었다. 이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찡하게 번져오는 슬픔과 아픔을 느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했듯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법인데, 삼천교육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악마 집단인줄 알았던 그들도 인간이었다. 겉으로는 거친 말투와 상스런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켰지만 속으로는 신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순수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출발했던 그날엔 유난히도 하얀 눈이 많이 내려 마지막 삼청교육대의 저리는 슬픔을 위로해 주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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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 '마지막 삼청교육대'의 저리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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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2) ‘마음은 언제나 태양..!’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마음을 녹이는 ‘마음은 언제나 태양’구호로 上下同欲者勝을..손자병법 제3편 모공(謨攻)편에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이란 말이 있다. '상관과 부하의 뜻이 같으면 승리한다' 뜻으로 지휘관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야 된다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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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2) ‘마음은 언제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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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⑥ 忍耐하는, 餘裕있는, 確實한 軍人...!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필자가 승리부대에서 초급장교로 근무한 것을 따져보니 약 8년 정도였다. 소위로 임관해서 소령진급 예정자가 되어서야 아스팔트를 밟을 수 있었다. 육군대학 교육을 마치고 수도방위사령부로 보직을 받았기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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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⑥ 忍耐하는, 餘裕있는, 確實한 軍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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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⑤ 대성산 진지공사장에 만개한 전우애의 추억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GOP전방에서도 최고 오지이며 장교유배지로 호칭되었던 승리부대는 대성산(1175m), 적근산(1073m)과 복주산(1057m) 등 1,000고지가 넘는 산악으로 이루어져있다. 군부대가 주둔하는 곳에는 “어둔 밤을 대낮같이, 산악을 평지 같이”라는 표어가 쉽게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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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⑤ 대성산 진지공사장에 만개한 전우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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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④ 리쿠르트가 배우는 老馬之智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춘추시대 오패(五覇)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은 "老馬之智(노마지지)란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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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④ 리쿠르트가 배우는 老馬之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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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③ 조직에서 만난 고교동창 에피소드와 교훈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삼국지의 불세출의 천하무적 관운장을 사로잡은 오나라 여몽은 원래 무예에는 능했지만 일자무식이라 손권이 “장차 큰일을 할려면 학문에 뜻을 두어야 한다”고 충고하자, 날마다 책을 읽고 지식을 넓혀왔다. 훗날 지식이 뛰어난 노숙이 친구 여몽을 만났을 때 예전과는 달리 똑똑해진 것을 보고 감짝 놀라며 刮目相對(괄목상대)라고 한 것이 이 사자성어의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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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③ 조직에서 만난 고교동창 에피소드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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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② 대한민국 육군소위 김희철이다
- 첫인상이 평생을 좌우하고 선입견을 깰려면 몇배의 노력이 필요, 사단 신고를 마치고 명월리 사단본부를 출발하여 실내고개-다목리-덕고개를 거쳐 봉오삼거리에 있는 연대본부에 도착하자 생도 2학년 시절 부사관학교에서 우리를 지도했던 선배가 연대장을 하고 있었다. 연대장실에서 기대어린 일장 훈시를 듣고, 하나 둘씩 각자의 대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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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② 대한민국 육군소위 김희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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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① 소대장으로 부임하던 날, ‘대성산 이상무’의 추억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16주 동안의 초등군사반 교육을 마치고 대 장정을 출발하기 전 각자의 집에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아쉬움을 달래는 시간도 가족들과 함께 가졌다. 입영열차’ 노래의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어머님께 큰 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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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① 소대장으로 부임하던 날, ‘대성산 이상무’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