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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5)]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⑨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어느덧 짧은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이 절반을 넘어 한달정도 남겨둘 때인 3월말이 되었다. 교육기간 두달동안 각별하게 가까워진 룸메이트 정수완 동기는 교육종료 후에 다시 만나기가 힘드니 포항과 영덕 사이에 위치한 청하의 자기 집에 초대했다. 그곳 인접에는 청송 주왕산이 있고 마침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상관으로 근무했던 차철이 선배가 대대장을 하고 있어 함께 찾아가기로 했다. 해발 721m인 청송 주왕산은 바위, 폭포, 계곡 등의 산세가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아름다운 절경이어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었다. 중생대의 마지막 지질 시대인 백악기에 주왕산 일대는 거대한 호수였다. 약 7천만년전 이 호수의 퇴적암층을 뚫고 엄청난 규모의 화산폭발이 최소 9차례 이상 있었는데, 뜨거운 화산재와 용암이 응집하면서 거대한 암벽이 형성됐고 이후 침식과 풍화를 거쳐 오늘날의 수려한 모습이 되었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중국 당나라 때의 주도(周鍍)는 스스로를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자 멀리 한반도의 석병(주왕)산으로 피신했다. 나중에 주왕이 신라 땅에 숨어 들어간 것을 안 당나라에서는 그를 잡아달라고 신라에 요청했다. 신라는 마일성 장군의 형제들을 필두로 진압군을 이곳 석병산으로 보내 주왕과 그의 군사들을 격퇴했다. 신라군과의 싸움에서 패한 주왕은 폭포수가 입구를 가리고 있는 주왕굴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몰래 세수를 하러 나왔던 주왕은 그만 마장군의 낚시에 걸려 생포되어 당나라 장안에서 참수되었다고 한다. 주왕이 마장군의 화살과 철퇴를 맞고 최후를 맞이했다고도 하는 전설이 남아있다. 그외에 신라 시대의 원성왕(김경신)과 왕위 계승을 다투었던 김주원이 당시 이 산에서 군사를 이끌고 농성하여 그 이름을 따 주왕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제1폭포에 있는 급수대의 안내판에 김주원(金周元)이 김경신(金敬信)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 주왕산에 대궐을 건립하였다고 적혀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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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4)]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대범함이 돋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큰 바다는 맑고 흐린 물을 버리지 않고 모두 받아드린다는 명언 ‘대해불기청탁(大海不棄淸濁)’이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마져 들었다. 김종업 선배는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마산고, 육사를 거쳐 멋있게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대령으로 예편했다. 군 생활 내내 ‘선도수련’으로 일관하여 예편과 동시에 기를 실천과 학문으로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골프, 도를 만나다’를 필두로 ‘보통사람, 나를 찾다’ 등 많은 ‘기(氣)’관련 책을 저술했으며, 가천대, 명지대 등에서 ‘명상’과 ‘단전호흡’이라는 과목으로 10여 년간 강의했다. 현재는 사단법인 ‘도나누리’의 이사장으로 개량한복 껍데기를 즐겨 걸치며 많은 제자들이 찾아와 수련하는 ‘기’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대장반 교육을 받으며 남해 대대와 거창 대대를 방문했을 선배 대대장들은 후방인 2군지역에 근무하면서 느낀 지휘 및 상하급 관계에서 지저분한 비합리성에 대해 똑같이 언급했다. 헌데 사관학교에서 ‘안일한 불의 길보다 험란한 정의의 길을 걷는다’라는 사관생도 신조를 외치며 각인됐던 두 선배들이 대처하는 방법은 상이했다. 남해의 장 선배는 정면으로 도전하며 그것을 맞부딪혀 극복하려 했고, 거창의 김 선배는 그 것 마져도 포옹해 버렸다. 당시 후방지역의 흐트러진 분위기 속에서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관료로서 썩어 문드러지는 군의 한 측면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꿋꿋이 나름대로 바르며 특색있게 추진해나가는 두 선배의 모습에서 고독과 강한 투쟁의식을 감지했다. 특히 지역 주민, 기관장들과 원활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김 선배의 능력과 배포는 정말로 높이 살만 했고, 후배들이 찾아왔을 때 무엇인가 한 가지라도 더 가르쳐줄려는 지혜와 여유를 가져야 함을 다시 한번 더 느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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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3)]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거창 대대장인 김종업(육사36기) 선배는 사관생도 시절부터 탁월한 리더십으로 선후배간에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으며 동기회장 등 요직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었고, 필자와는 육사에서 같은 생활관의 선배로서 지도를 받았고 현재까지도 각별하게 지내고 있다. 대대장 근무 2년차에 접어든 김 선배는 당시의 사조직 관련 소동과 총기오발 사건 등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마침 정수완과 김종완 동기가 함께 동행하여 위로도 해드리고 회포도 풀겸 거창골짜기를 찾았는데 우리는 그의 의연한 모습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대대장을 어떻게 해야되냐?는 우리들의 질문에 그는 “지휘는 기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욕심부리지 말고, 더 잘보일려고도 말고, 건강하게 즐기면서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해라”라며 찾아간 우리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조언을 해주었다. 게다가 “사향은 아무리 보자기로 싸도 냄새가 나며, 송곳은 호주머니 속에 넣어도 튀어나오는 법(囊中之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신은 선택한 자에게 시련을 주신다고 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위기가 호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정면돌파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추진력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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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2)]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짧은 3개월의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이지만 룸메이트인 정수완 동기와 각별하게 친해지는 12주간의 시간이었다. 정 동기가 대대장반 교육 수료후 부임할 남해대대 방문은 적지않은 교훈을 주었고 우리는 진해 인접의 다른 선배의 대대도 찾아가 장단점을 분석하고 밴치마킹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번에는 거창대대를 찾았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63~165)] ‘벤치마킹은 창조적 성공의 지름길’참조) 거창은 신라 때는 거열군(居烈郡)이라 불렀고, 거타, 거열 등의 이름이 음운상 유사성이 있어 자타국이라는 나라가 여기 있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현재 사용하는 이름인 거창군은 통일신라 경덕왕이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할 때 지은 이름이다. 이곳은 경남 서북부의 백두대간 자락에 위치하는 지역으로 산에 둘러싸인 산간분지 지역이며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3대 국립 공원 사이에 자리잡아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덕유산 국립공원과 가야산 국립공원이 이 군에 걸쳐 있다. 역사적으로는 신라, 백제, 가야 세 나라의 접경지역이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뺏고 뺏기는 전투가 삼국 통일 전까지 계속해서 있었다. 이후에도 김천, 대구, 함양 및 전라북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라는 장점이 있었으나 통영-대전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함양으로 그러한 이점이 많이 넘어간 상태이다. 6.25남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인 거창 양민 학살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거창군에는 ‘거창사건추모공원’이 존재한다. 이외에 수승대, 월성계곡, 금원산 등의 관광지가 있다. 수승대에서 월성계곡 쪽으로 가는 도로 옆으로 보이는 계곡 풍경이 정말로 장관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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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1)]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다음날 오전에 함께 찾아간 곳은 남해섬의 유명한 금산과 보리암이었다.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 짖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 했다. 이후 청년시절의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할 때 성공하면 비단으로 보광산을 감싸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조선왕조를 창업했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사용한 금산(錦山), 절 이름을 보리암(菩提庵)으로 바꿨다. 금산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보리암은 금산의 온갓 기이한 형상을 한 암석과 푸르른 남해의 경치를 한눈에 볼수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경내에는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좌선대 바위가 눈길을 끌며 부근의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은 금산 38경중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기도처의 하나로 주로 군인, 경찰들을 포함한 공무원 등 많은 신도들이 이성계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연일 줄지어 찾고 있다. 쪽빛바다와 초록빛 들녘의 조화를 내려다 볼수있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빼어난 경치와 남해의 금강, 동물형상의 바위가 많아 바위 동물원으로도 불린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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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30)] 잊혀져가는 추억의 진해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교육 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매주 일주일간의 수업이 끝나면 토요일 동두천으로 귀가하는 것을 포기하고 룸메이트인 정 동기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남해 지역을 정찰하고 전임자에게 부대 특징을 파악하며 지휘기법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장연석(육사35기) 선배 부대를 찾아갔다. 4년전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경비과장으로 근무하던 장 선배는 자신이 필자를 추천했던 무적태풍부대에서 비교적 잘 근무했다는 소문에 대해 대견해 했고, 필자는 비록 수방사 못지 않은 고생은 했지만 대과 없이 업무를 하고 진급하여 대대장반에 올 수 있게 여건을 만든 장 선배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표시를 했다. 정수완 동기는 자신이 취임할 대대의 전임자를 자연스럽게 만나 사전에 부대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에 고마워하며 이 것 저것 많이 질문했고 장 선배는 친절하게 답을 해주며 본인이 느꼈던 병력관리의 애로점 및 착안사항과 지역 주민, 경찰들과의 합동작전이 성패의 지름길이라는 해안 대대장 근무의 기법을 알려주며 흐뭇한 표정이었다. 부대와 지역 특성에 관한 설명을 마치고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층 더 가깝게 소통하는 기회도 되었다. 밤이 깊어 갈 무렵 장 선배는 “남해에 오면 반드시 들려야 할 명소가 있고, 얼마전에도 모 선배가 이곳을 찾았다며 다음 날인 일요일에 직접 안내하겠다”며 숙소로 돌아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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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8)]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 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강영훈 장군은 1921년 평북 창성군에서 태어나 청산보통학교 졸업후 영변농업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히로시마 다카다(高田)중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했다. 1941년 만주국 건국대학에 입학했으나 1944년 1월 봉천의 보병학교와 1945년 초랴오양의 예비사관학교에 다시 입교하여 그해 7월 견습사관으로 임관했다가 곧 해방을 맞았다. 8.15 광복된 후 10월이 되어서야 고향 창성으로 귀환한 그는 북한 체제에 불만을 품고 월남하여 1946년 3월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군사영어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49년 대한민국 육군 제1보병사단 12연대장으로 부임했다. 6.25남침전쟁때에 국방부 관리국 국장, 3군단 부군단장 임무를 수행한 그는 1952년부터 1년간 주한 미국 대사관 부무관을 지냈다.이후 사단장을 거쳐 1960년 포천에 있는 6군단장 시절 4.19혁명을 맞았다. 당시 상부에서 “전차를 출동시키라”고 명령을 받았으나 강 장군은 “탱크로 학생들을 깔아뭉개버리겠다는 얘기냐?”며 단호히 거부했다. 이후 제15대 육군사관학교장으로 부임했으나 1961년 5.16군사정변이 일어났을 때 그는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혁명 지지 시위 동원에 반대하였고, 곧 ‘반혁명 장성 1호’로 체포되어서, 서울형무소에 100여 일간 수감된 후에 육군중장으로 예편한 참군인이었다. 이후 군부의 권유를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62년 뉴멕시코 주립대학교에서 공부하여 1963년 USC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공산주의전략연구소 연구원으로 채용되었다. 미국에서 한국문제연구소도 설립하였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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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8)]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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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7)]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 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매년 연말이 되면 대통령, 국회의원, 기업체 회장들을 비롯하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전방 각 부대를 위문한다. 모두들 바쁘고 중요한 직책이다 보니 서울에서 근접한 GOP부대를 선호하여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문산축선의 천하 제1사단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는 현상이 종종 벌어진다. 특히 선거철을 앞두고는 표의 향방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표라도 더 얻을 수 있도록 군에서 가장 많은 장교를 양성하는 ROTC출신 지휘관 부대를 찾게 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1992년 말 대통령 선거시에 필자가 근무했던 무적태풍부대의 사단장이 덕망이 높은 이영대 장군(학군4기)이기 때문에 다소 교통이 불편하더라도 각 당의 후보들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와 적십자 총재인 강영훈 장군까지 부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사회를 좌지우지하던 권력의 실세이자 많은 국민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영광의 순간이자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부대 방문자 중 총리를 역임한 강영훈 장군은 ‘벽창호’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 말은 평안북도 벽동군과 창성군 사람 중에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강 장군의 고향이 바로 평북 창성군으로 압록강과 접한 국경지역의 교통 중심지였다. ‘벽창호’의 고향답게 창성군과 벽동군에서 기르는 한우도 예로부터 힘이 좋고 동시에 말 안 듣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강 총리의 회고록 제목에 나온 ‘벽창우’는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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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7)]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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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6)]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필자가 근무했던 무적태풍부대 사단장 이영대 소장(학군4기)은 고려대 학군단 출신으로 전후방 각지에서 근무할 때 매우 성실하며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는 위의 사진자료처럼 간부 교육을 통해 지휘여건 변화에 따른 성공비결을 강조했는데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의식 구조면에서 황금만능주의와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며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희생적 단체정신이 미약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부대관리면에서 지휘 성공요소를 의욕고치를 위한 동기부여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여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본인부터 인정있고 어려움을 헤아려 주며, 고생과 위험을 같이 하는 지휘관으로 솔선수범했다. 그리고 ‘업무수행지침’을 손수 작성하여 간부들에게 나누어 주고 “상하 골육지정으로 철석같이 단결하여 교육훈련 질적 개혁의 꾸준한 추진과 좋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자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긍정적이고 실천적인 생활을 하자”고 강조했다. 또한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내가 근무하는 기간에 전쟁이 일어난다(적이 온다)”는 각오로 대비하는 전투적 사고를 견지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지휘철학은 결국 교육훈련을 통해 강한 전투부대 육성에 결정적 요소가 되었고 사단장 재임 기간인 1992년 말 대통령 선거시에 각 당의 후보들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와 적십자 총재인 강영훈 장군까지 학군단 출신인 이영대 장군의 부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결국 그 여세를 몰아 다음해에는 사단장 3대에 걸쳐 대통령 부대표창을 연속 받는 성과를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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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6)]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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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5)]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무적태풍부대의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기동훈련 및 전투지휘검열 등 주요 훈련 및 검열이 성공적으로 마치면 통상 사단에서는 고생한 참모 및 실무자들을 위해 격려 만찬을 했다. 이때도 학군장교 출신의 예비역들이 군의 현역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지원과 위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체험할 수 있었다. 당시 사단장 이영대 소장(학군4기)은 격려행사를 할 때에 학군장교 후배이자 가장 인기 사회자였던 뽀빠이 이상용(학군5기)와 소설 ‘인간시장’ 작가 김홍신(학군9기) 등이 자리를 함께하여 부대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며 행사를 빛냈다. 이러한 학군장교 출신들의 저력은 해당 지휘관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게 만들었고 국가 및 사회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군의 현역에 남았는 학군장교들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부대를 발전시키는 데 전념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 및 군사령관 등 8명의 대장과 16명의 중장을 포함하여 약 150명의 학군장교들이 장성으로 진급하며 군발전을 위해 활약하게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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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5)]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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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4)]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육사, 3사, 학사 등 장교양성과정 중 가장 많은 약 23만명의 장교를 배출한 학군장교 출신 예비역들은 사회 각 곳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우수자원들은 국회의원, 기업체 사장 등 사회 지도층이 되어 봉사하며 이들은 군의 현역에 남아있는 후배 동료들에게 지원과 위문을 아끼지 않는다. 게다가 단기 자원들이 2년간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할 때에는 각 사업체에서 강한 책임감과 리더십을 견지하며 건전하고 국가관이 투철한 이들을 채용하기 위해 취업박람회 등에서 채용전쟁이 벌어진다. 필자가 장교 임관 초임지인 승리부대에서 GP장(소대장)직을 수행할 때 당시 연대장도 학군 1기인 박세환 대령이었다. 박 대령은 고려대학교 출신으로 전후방 각지에서 맹활약하여 능력과 인품을 인정받아 학군장교 최초의 대장이 되어 2군사령관을 역임했고, 전역 후에는 국회의원 및 재향군인회장으로 국가와 군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연대장 시절에 고려대 출신 동문들의 엄청난 지원과 위문을 받아 GOP철책에 배치된 각 소대에 매달 밀가루 한포씩을 매월 제공해 수제비와 붙임개를 만들어 먹도록하여 GOP 경계근무의 피로에 쌓인 부대원의 사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고양된 적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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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4)]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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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3)]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현재 군에서 가장 많은 장교를 양성하는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는 군 내부에서는 학군 또는 학군단으로 불리고, 교육과정 중에 있는 장교후보생에게는 공식적으로 '학군사관후보생'이라고 호칭된다. ROTC는 대학 재학생 중에서 우수자를 선발하여, 2년간의 군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대학의 전공학문 완성과 더불어 소정의 군사지식과 실무능력 등 문무를 겸비한 장교를 양성하여 활용할 수 있는 효율성이 매우 높은 제도로서 미국의 ROTC 제도를 모델로 하여 시행되었다. 나무위키와 ‘대한민국ROTC중앙회’ 자료에 따른면 대한민국 국군의 최초 학군단은 1959년 한국해양대학교에 창설된 해군 제1001학생군사교육단이다. 2년 뒤인 1961년 육군이 18개 학군단을 창설하였으며, 2011년말 육군기준으로 101(서울대학교)부터 218(성신여자대학교)까지 전국에 110개 학군단으로 확대되어, 매년 임관하는 학군장교의 수는 약 4,000명 정도로 현재까지 약 23만명의 장교를 배출했다. 그동안 학군1기 박세환(고려대) 등 5명의 2작전사령관, 2기 김진호(고려대)21기 박한기(서울시립대) 2명의 합참의장, 23기 남영신(동아대) 육군참모총장 등 8명의 대장과 3기 임재문(건국대) 기무사령관 등 16명의 중장을 포함하여 약 150명의 학군장교들이 장성대열에 합류했다. 학군단 상징인 마크의 외곽테두리는 조국수호의 방패를, 백색은 백의민족의 평화 애호 정신을, 청색은 청년 대학생을, 별은 육군을, 칼과 펜은 진리 탐구와 유사시 국가 수호를 담당하는 고국 학생으로서 문무를 겸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음편 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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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3)] 장성 150여명을 배출한 ROTC(학군단) 파워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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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2)]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⑥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을지훈련이 끝나고 함께 고생했던 작전장교는 소령으로 진급하여 다음 보직으로 영전했고 후임 작전장교로 육사후배 백창진 대위(육사40기)가 전입을 왔다. 필자도 을지훈련시 부르튼 입술이 터져서 부어오르는 먹지 위장크림효과로 사단장 및 참모 등 상급자들에게 각인되며 인정받아 심사 대상자가 되는 다음해에 진급하는 영광을 얻었다. 또한 사단기동훈련이 끝나고 진급시즌 막바지인 11월에 이르자 사단에서 그렇게도 갈망했던 강수명 작전참모(육사31기)가 드디어 진급하여 병과의 장인 대령반열에 올랐다. 사실 대령 진급은 사단급 부대에서 매우 힘든 사례였다. 통상 대대장과 사단참모 보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군단급 이상의 부대에서 중요 보직을 수행해야 진급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 아니면 군단급 이상의 부대에서 주요보직을 마치고 필수 보직인 사단 작전참모로 근무하면 간혹의 진급하는 기회를 주어지기도 했는데 당시 참모는 후자의 사례였다. 강수명 대령 진급 예정자는 작전참모 보직을 정보참모 임무를 수행하던 김형배 중령(육사34기)에게 인계하고 65동원사단 연대장으로 영전했다. 이후 장군으로 진급하는 그는 육군대학 교수부장직을 역임하고 전역하여 평택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한편 새로 부임한 백창진 대위는 탁월하게 작전 장교 임무를 수행해 필자와 같은 해에 소령으로 진급했다. 그는 그해 12월2일, 신임 작전참모인 김형재 중령에게 업무보고를 준비하여 능력을 인정받으며 작전처 총괄 선임장교로 활발하게 임무를 수행했는데 김 중령으로부터 무서운 후배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탁월을 넘어 출중했다. 희비애환(喜悲哀歡)을 느끼는 인생과 진급은 ‘운7기3(運七技三)’이지만 어떻게 보면 본인의 능력과 업적을 우선 쌓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폐결핵이 만연하던 1928년, 포도상구균 배양중에 실수로 오염된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하여 최초의 항생제 개발에 성공한 영국의 플레밍 박사는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말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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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2)]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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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1)]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⑤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진급심사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에는 심지어 생도생활까지 비교하여 선발하는 것을 보면 언제 어디서나 항상 바르고 정의롭게 최선을 다하며 인정을 받아야 한다. 헌데 상급자에게 평가를 통해 인정을 받는 과정도 ‘운7기3(運七技三)’이다. 필자가 사단 작전보좌관 근무하며 을지연습에 임했을 때 ‘운7기3’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 필자는 당시에 유별나게 입술이 잘 부르트고 물집이 생겼다. 주야 불문하고 작전 상황유지에 전념했던 피로감도 있었지만, 습관적으로 너무도 쉽게 입술이 부르트는 일이 잦아 신경이 쓰였다. 대위급 작전장교의 심사가 시작되어 신경이 쓰이던 을지연습 기간에 비상이 발령되고 군장을 결속하는 등의 출동준비테세 훈련을 하면서 안면 위장을 해야 했다. 그때에는 위장크림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터이라 우선 급해서 복사용 먹지로 얼굴에 발랐다. 을지훈련 시작 준비하다보니 정신이 없었는데 사단 참모들이 상황실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사단장도 안면위장을 한 채 좌정하자 훈련 상황 첫회의가 시작되어 필자는 당시까지 부여된 상황과 각 부대의 훈련 진행을 보고했다. 필자의 보고를 마치고 다음 참모부의 보고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 사단장이 말문을 열었다. “작전참모, 작전보좌관 너무 고생시키는 거 아니야?”하며 필자를 지목했다. “훈련 준비에 애를 쓴 보좌관이 입술이 터져서 저렇게 부어올라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훈련을 할 수 있겠어? 작전보좌관이 쓰러지면 큰일인데 ...ㅋ”하고 미소띤 얼굴로 참모장과 참모들을 돌아보자 상황실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그때 필자는 너무도 당황해서 “괜찮습니다. 제가 입술이 잘 부르트는 체형이라 건강에는 문제없습니다”라고 급하게 변명했지만, 흐뭇한 표정 속에 격려의 멘트를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껴주는 사단장을 위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이는 훈련이 시작되어 안면 위장을 할 때 사용한 복사용 먹지의 까만 독이 입술이 부르트는 곳에 닿아 심하게 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입술이 터지고 부어올라 부끄러웠지만 그 모습을 본 이영대 사단장(학군4기)은 오히려 너무 열심히 훈련 준비를 하며 쌓인 피로 때문으로 인식했고, 이는 ‘운7기3(運七技三)’의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 사단장은 필자를 더욱 신뢰하는 또하나의 기회가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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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1)]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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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0)]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세상의 어떤 조직보다도 군의 진급심사는 까다롭고 공명정대(公明正大)하다. 매 심사때마다 육군본부 진급심사실은 전후방 각 부대에서 심사위원들을 불시에 사전 통보없이 차출한다. 심사위원으로 선발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의 주변 상하급자들이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육본에서 출발한 인솔 장교는 해당 부대에 도착해서야 누구라는 것을 통보 받고 바로 선발된 심사위원을 만나 간단한 짐을 챙기게 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외부로부터 차단시킨다. 이렇게 육군본부 진급심사실에 심사위원들이 모이면 3개반으로 편성하여 각각 격리된 상태에서 각 반별 진급심사를 시작한다. 각반에서 대상자들의 평정, 경력, 전공 및 특별한 업무성과와 표창 그리고 해당 부대 지휘관의 지휘추천 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거치며 진급심사를 하여 선발된 인원들은 다시 심사위원장 주관으로 3개반 반장들이 모여 최종 심사를 받게 된다. 최종 심사에서는 3개반에서 동시에 선발된 인원은 진급이 확정된다. 통상 80~90%는 일치한다. 그때부터 나머지 대상자의 진급심사는 더 치열해진다. 동일한 평가가 나오면 전 계급의 평가를 참조하며 심지어는 임관시 및 생도시절까지도 장단점을 비교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에는 우수자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던 장점과 결함을 찾아내 비교하여 떨어뜨리는 것 위주이다. 헌데 더 중요한 것은 부대별 안배이다. 3개반에서 동시에 선발되어 진급이 확정된 자들을 부대별로 집계하면 진급자가 없는 부대가 생기는데 해당 부대의 사기를 고려하여 그 부대 대상자에게 우선순위가 부여되어 1개 반에서 올라온 자가 2개반에서 올라온 대상자를 제끼고 최종 확정되는 경우도 있다. 진급 결과에 따라 희비애환(喜悲哀歡)을 느끼지만 어떻게 보면 ‘운7기3(運七技三)’이란 말처럼 인생은 운이 70%, 기가 30%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때가 아님 안되는 경우가 생긴다. 비록 각반심사에서 일부 선발되었더라도 최종심사에서 부대안배로 진급에 누락되는 것 같이 노력 이외의 외부적인 변수, 흐름, 사람, 기운 등 컨트럴 못하는 수많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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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70)]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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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9)]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제갈량은 호로곡에서 ‘모사재인 성사재천 불가강야 (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라며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되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어서 강제로 할 수가 없다”는 뜻으로 한탄했다. 이는 제갈량이 북벌을 단행할때 호로곡에서 사마의를 상대로 화공을 펼쳐 궁지로 몰아넣었으나,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국지성 호우의 비가 내려 화공이 실패하고 사마의를 살려보내고 말았다. 이를 두고 제갈량은 "과거 적벽에서는 화공으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으나 이번에는 소나기로 인해서 실패하였으니, 일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렸구나..." 하고 탄식하며 한 말이다. 진급심사를 앞두고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또는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으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활용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라며 진급은 천운이라고 한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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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69)] 겨울을 앞당기는 희비애환(喜悲哀歡)의 진급심사 시즌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