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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7)]교육훈련 제일주의로 최우수부대 성과 달성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체력도 보강하고 지형 및 작전계획을 숙지토록 유도했던 한탄강 주변의 군자산, 마차산, 감악산 등 산악지역 등반은 필자에게 또다른 추가 임무를 부여했다. 산 정상에 올라 간부들에게 작전계획과 지명 유래를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간이 전술토의도 병행했다. 이를 위해 필자는 늘 한 장짜리 지명 유래 및 지역 전사 설명서를 만들어 즐건 산행이지만 간부들이 지형 숙지를 통해 작전에 보다 효율적으로 기여하는 도랑치고 가재잡는 성과를 올려야 했다. 무적태풍부대 인접인 마차산은 동두천시의 소요동과 연천군 전곡읍 천파리의 경계에 위치한 588m높이의 산으로 3번 국도와 경원선 철도를 사이에 두고 소요산과 마주보고 있다. 이제까지 소요산 유명도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마차산인데 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조망이 막힘없이 터진다. 마차산은 감악산의 지맥으로 시의 서북쪽을 감싸고 있으며 소요동 서단에 위치하면서 한북정맥과 연결되어 있다. 꼭대기에 당나라 장수 설인귀의 비가 있었는데 감악산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산 정상엔 축성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산 남쪽에 마고개가 있고 북쪽에는 옥녀봉이 솟아 있다. 산이름은 ‘광여도’ 등에는 마차산(磨嵯山)으로, ‘대동여지도’에는 마차산(摩次山), ‘팔도군현지도’에는 마차산(磨差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조선지형도’에 마차산(磨叉山)으로도 사용되어 왔다. 사진의 설명서에 있는 감악산(紺岳山)은 화악산, 송악산, 관악산,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높이는 해발 675m이다. 지명은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보인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감박산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신라시대부터 무속신앙에서 영산으로 여겨 국가적으로 소사(小祀)의 격으로 제사를 올렸다. 또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정상은 평지인데 석단이 있고 그 위에는 감악산비 혹은 비뜰왕비라 불리는 석비(石碑)가 있다. 인근의 전설에 7세기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실은 이 지역 사람이고 감악산비는 설인귀의 비석이라고 전해지지만, 이는 지역주민들이 설인귀를 동향인으로 삼은 결과일 뿐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비석은 지역 민간신앙에서 감악산신의 상징과도 같다. 대한민국에서 흔히 영산이라 불리는 산에는 사찰들이 많기 마련인데, 감악산은 감악산신 신앙이 너무나 강해서 들어섰던 사찰마저 대부분 폐찰이 되었고, 현재는 범륜사를 비롯해, 수월사, 봉암사, 미타암 등의 절이 남아있다. 하지만 인근의 수량이 풍부한 운계폭포 등으로 절경이다. 정상에서는 북쪽 방면에 있는 임진강 건너편으로 휴전선 일대가 보이며, 날이 맑으면 개성시의 송악산까지도 희미하게나마 보이곤 한다. 정상인 장군봉 바로 아래에는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하고자 숨어지냈다는 전설이 있는 ‘임꺽정굴’도 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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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6)]교육훈련 제일주의로 최우수부대 성과 달성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무적태풍부대는 종무식날에 작전항공장교(S-3Air)들을 소집하여 항공기 유도능력 측정을 하였고, 연초 시무식날에는 개인화기 사격측정을 하여 붐을 조성했던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추진했다. 교육훈련을 부대운영 중점으로 강력히 시행하자 훈련을 통해 숙달된 부대원들의 전투준비 태세는 자연스럽게 강화되었고,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려 장병들의 사기가 고양되면서 안전사고 없는 완벽한 부대관리를 하는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교육훈련 제일주의’ 강력추진 붐 조성에 따라 숙달된 부대원들은 각종 검열 및 평가에서 좋은 성적도 올리게 되었고, 그해 연말에는 전투지휘검열 최우수 및 3년 연속 대통령부대표창을 수상했다. 한편 이영대 사단장(학군4기)은 교육훈련의 일환으로 참모 및 실무자들과 함께 주둔지 및 작전지역 주변의 마차산, 감악산, 군자산 등의 중요 산악지역 등반을 통해 체력도 보강하고 지형을 숙지토록 유도했다. 그 덕분에 상급 부대에서 주관한 각종 전술토의시에 현 지형을 두발로 확인한 부대원들은 자신있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고 상하급자 사이에 느꼈던 거리감도 같이 땀을 흘리며 해소되어 자연스럽게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는 계기도 마련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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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5)] 힘들고 급할 때 찾는 친구가 진정한 벗(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자신도 모르게 공중전화 박스에 다가간 필자는 무심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리더니 “여보세요..?”하고 반가운 고등학교 미술부 동창인 이상엽 화백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필자는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고, 그는 재촉하며 “여보세요”만 반복했다. 잠시 안정이 되자 “상엽아, 희철이야 ...”하고는 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사무실에서 야간 작업을 하던 그는 “무슨 일이냐?”며 울먹이는 필자의 위치를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자정이 넘어갈 즈음에 중환자실 대기실에서 웅크리고 쭈그려 앉아 아버님 수술 결과를 기다리던 필자 앞에 그 친구는 나타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이렇게 마냥 기다리지 말고 잠깐 나가자...”라며 서울시 충무로에 위치한 자신의 일러스트 회사 사무실에서 광고 디자인 작업중에 물감이 묻은 손을 내게 내밀었다. 그는 밤샘 작업을 하다가 필자의 전화를 받고 평택까지 단숨에 달려와 병원 앞 여관방에 함께 들어가 소주와 오징어포 안주를 서로 나누며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실의 빠져있는 필자를 위로했다. 그는 통이 트자 밤샘의 피곤함도 잊은 채 사업을 위해 다시 서울로 향했다. 친구중에 진정한 벗의 의미는 무엇일까? 초등학교, 중고교, 대학교 및 사회 친구 중에 본인도 모르게 전화 다이얼을 돌릴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에 필자는 행복한 놈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고교시절 미술부 반장을 하며 우정을 나누었고 졸업후 10여년 지난 뒤에 충무로 대로변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자 다짜고짜 필자를 두드려 팼던 죽마고우(竹馬故友)인 동창이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26)] ‘충무로 한복판에서 구타당한 장교’ 참조) 그 친구의 배려 덕분에 아버지는 성공적인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겼고, 4주 동안 무의식(코마) 상태에서 계시다가 회복되어 장기간 치료 후에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다. 사전적 정의인 ‘친구(親舊)’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다. 그중에는 도원의 결의처럼 같이 한날에 죽자고 약속하는 경우나 먼저 죽으면 3일장을 꼬박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는 친구도 있지만, 힘들고 외로우며 급할 때 조건없이 연락해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진정한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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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4)] 힘들고 급할 때 찾는 친구가 진정한 벗(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인생에서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좋은 일에는 방해(妨害)가 되는 안좋고 나쁜 일도 많이 생긴다. 연말 대통령 후보들의 장병 격려차 부대방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고,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강조했던 이영대 사단장(학군4기)의 지휘의도를 구현하기 위한 시무식 사격측정 등의 이벤트를 통해 장병들의 사기가 높아져 부대 분위기가 활성화될 즈음에 개인적인 악재가 터졌다. 그해 1월 중순경 이른 저녁에 어머니의 울음 섞인 전화를 받았다. 평택 집앞 도로에서 아버님의 승용차와 트럭이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아버님이 병원으로 후송중이며 중태라는 소식이었다. 최전방을 지키는 부대의 사단작전보좌관이라는 직책 때문에 멀리 갈 수 없는 입장이라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참모에게 보고하니 “바쁜 당면 업무는 작전장교에게 맡기고 빨리 아버님이 입원한 병원으로 가보라”고 배려를 해주었다. 어린 아들이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가족은 집에 대기시키고 우선 필자가 먼저 출발했는데 아버님 걱정에 눈물이 자꾸 흘러 운전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였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최대한 빨리 달려서 평택 병원에 도착하니 마침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아버님이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응급실 침대 위에 웅크리고 쓰러져 있는 아버지는 신음만 계속 내뱉으셨고, 어머니는 어찌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셨다. 수술 신청 및 동의서를 작성하자 곧바로 수술실로 들어가시는 피투성이의 아버님 모습을 지켜보며 당황하시는 어머니를 우선 진정시켜 집으로 들여보냈다. 담당 의사는 일단 응급처치를 했는데 워낙 상처가 심하고 다친 곳이 많아서 수술 시간과 생존 여부를 예측할 수 없다며, 필자에게는 멀리 가지말고 대기실에서 연락을 기다리라고 당부하고 수술을 시작했다. 평택 병원의 중환자실 대기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장기간의 간병을 통해 대부분의 가족들은 지쳐 초췌한 모습에 쪼그려 앉아 있고, 간호사의 호출에 놀라 달려가거나 환자의 상태가 안좋아 통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면서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아버님 수술 경과가 걱정되었지만 답답한 마음에 혼잡한 대기실에서 잠시 벗어나 병원 밖으로 나갔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길거리의 인적도 뜸해진 상태에서 병원 입구의 공중전화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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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3)] 힘들고 급할 때 찾는 친구가 진정한 벗(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순우리말에 ‘벗’은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이나 늘 가까이하여 심심함이나 지루함을 달래는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비슷한 의미로 교우, 동무, 벗님 등으로도 사용한다. 반면에 ‘친구(親舊)’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또는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로 유의어로 교우, 동료로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친구 관련 사자성어에는 관포지교(管鮑之交, 옛날 중국의 관중과 포숙처럼 친구 사이가 다정함을 이르는 말, 매우 다정하고 허물없는 친구사이), 막역지우(莫逆之友, 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르는 일이 없는,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친밀한 벗), 죽마고우(竹馬故友, 대말을 타고 놀던 벗이라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벗, 불알동무, 불알친구, 소꿉동무)가 있다. 또한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라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귐), 금란지교(金蘭之交,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와 같은 사귐이라는 뜻으로, 우정이 깊은 사귐) 등으로 친구 관계를 표현한다. 그밖에 백아절현(伯牙絶絃,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말)이란 흔치 않은 고사성어도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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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02)] 참모의 충성스런 직언과 지휘관의 탁월한 결심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93년 첫날 시무식을 마치고 상황회의 시간에 이영대 사단장은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사단 사령부의 전간부는 앞서 제시한 대로 단독군장을 하고 사격장에 집결하여 개인화기 사격측정을 하면서 ‘교육훈련 제일주의’ 첫날을 시작했다. 헌데 사단장과 김형배 작전참모의 사전 담판이 있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김 작전참모는 사단장의 부대운영 중점을 정하기 전에 사단장실에서 독대하며 “사단장님의 색깔은 어떤 색이십니가?”라고 질문하자, 사단장은 “치밀한 ‘부대관리’를 통해 부대가 안정된 상태에서 강인한 ‘교육훈련’을 하여 완벽한 ‘전투준비’를 한다”라고 포괄적으로 답했다. 참고로 지난번 무적태풍부대 지휘관이었던 이재관 사단장(육사21기)은 사고를 예방하는 ‘부대관리’, 그 앞 김길부 사단장(육사20기)은 ‘전투준비’, 그전인 이상호 사단장은 ‘교육훈련’을 가장 우선하는 부대운용 중점을 선정했었다. 사단장의 의중을 파악한 김 참모는 “모든 것을 취하려 함은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역대 사단장들의 부대운용 중점을 비교하며 우선적으로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부대운용 중점으로 할 것을 재차 건의를 했다. 참모의 건전한 판단에 의한 정확한 건의을 청취한 이영대 사단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심을 하여 ‘교육훈련 제일주의’가 탄생되었다. 철저한 교육훈련을 통해 안정된 부대관리도 할 수 있고 그 성과로 전투준비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사단장은 ‘간부는 견인포가 아닌 자주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기본적으로 전투적인 사고를 견지하고,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준비를 위해 스스로 어떻게 효과적인 교육훈련을 할 것인가 생각하며 모두 창의적·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자”고 덧붙였다. 사단장의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체 부대원들의 참여가 중요했다. 따라서 참모는 ‘교육훈련 제일주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타부대와 달리 유일하게 12월31일 종무식날에는 항공기 유도능력 측정을, 신년초 시무식날에는 사단 전간부의 개인화기 사격측정을 하도록 조치했다. 지휘관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난제·고충을 해결하는 것이 참모 책무라고 강조했던 김 작전참모는 ‘교육훈련 제일주의’를 부대운용 중점으로 선정하는 과정과 붐조성 위한 사격 측정 등을 통해 어떻게 임무를 수행해야 바르고 유능한 참모가 될 수 있는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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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0)] 먼저 떠난 전우들 기억이 선명해지는 ‘호국보훈의 달’(중)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발렌타인-데이(St. Valen-tine's Day)는 꼭 30년 전인 1992년 2월14일 오전 선산에서 발생한 헬기추락 사고로 평소 존경하던 7군단장 이현부 중장과 사랑하는 동기생 한황진 중령을 떠나보낸 날이기도 하다. 당시에 7군단장 이현부 중장은 참모들과 함께 UH-1H헬기를 타고 경기도 장호원을 출발해서 작전통제 부대인 포항의 해병 부대 순시에 나섰다. 헬기안에서 군수참모 이원일 대령은 군단장에게 헬기 아래 내려다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주변의 지형을 설명했고 탑승자 모두는 이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바로 이때즈음 탑승한 헬기가 경북 선산군 삼정산 7부 능선 상공을 지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에 헬기가 요동쳤다. 이어 헬기의 뒷날개가 떨어져 나가더니 균형을 잃고 급하강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공포와 당혹감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추락현장을 발견한 마을주민과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때 이현부 군단장은 “부락을 피해라”고 지시했고 이에 정조종사 이지성 대위는 좌측으로 쏠리며 급강하하는 헬기가 부락을 피하도록 조종간을 잡고 안간힘을 썼다. 또한 참모들과 수행원들은 군단장을 살리기 위해 이 중장의 몸을 겹겹이 껴안았다. 그러나 결국 헬기는 인근 과수원으로 추락했다. 사고 당시 배터리의 전원을 떼어내려다가 우측 문밖으로 튕겨져 나온 부조종사 이수호 대위는 헬기추락 현장에 나타난 마을 주민들에게 “빨리 배터리를 제거해라. 그렇지 않으면 기체가 폭발한다. 군단장님을 살려야 한다”고 절규한 후 실신했다. 이 사고로 탑승장병 10명 중 7명이 현장에서 순직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끝까지 군단장을 껴안으며 지키려고 했던 작전참모 허정봉 대령, 군수참모 이원일 대령, 감찰참모 노용건 중령, 비서실장 한황진 소령, 전속부관 서상권 중위와 조규성 상병은 머리를 다친 군단장과 함께 그 자리에서 순직했다. 군단장 지시에 따라 추락하는 헬기가 부락을 피하기 위해 조종간을 잡고 안간힘을 썼던 조종사 이지성·이수호 대위와 보조승무원 문기남 상병 등 3명은 다행히 목숨을 건지며 부상을 입었지만, 정조종사 이지성 대위는 사고 후유증으로 한달 만에 군단장 곁으로 떠났다. 육군 사고조사반은 ‘사고 원인을 기상이변에 의한 프로펠러 손상’이라고 발표했고, 순직 장병들은 영결식을 거쳐 이현부 장군은 국립서울현충원에 다른 순직자들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중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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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30)] 먼저 떠난 전우들 기억이 선명해지는 ‘호국보훈의 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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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9)] 먼저 떠난 전우들 기억이 선명해지는 ‘호국보훈의 달’(상)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육군사관학교는 매년 통상 300명 정도가 입교한다. 필자의 동기들도 약 290명이 청운의 꿈을 안고 입교했으나 45년 동안 불의의 사고 등으로 16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전체 인원의 약 5% 정도 즉 20명 중 1명이 순직 및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중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출중했고 충성심도 강했지만 국가 안위를 위해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다가 순국한 동기생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무적태풍부대에서 새로운 임무를 시작한 지 100일이 넘어 4개월째 되는 1992년 2월이 되었다. 2월14일은 발렌타인-데이(St. Valen-tine's Day)이고 이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군(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여성에 대한 사랑이 전투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에 청년 군인들에게 결혼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황제의 명을 거역하고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결혼시켜 주던 사제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발렌티누스였다. 그는 곧 반역죄인으로 지목돼 서기 269년 2월14일 순교했고, 이를 기념해 연인에게 사랑을 전하는 풍습으로 전해지게 됐다. 당시 발렌티누스는 군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반역자였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그는 수많은 젊은이의 사랑을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병영에도 매년 이맘때면 예쁜 초콜릿과 사탕, 애인 사진 등이 곳곳에 전해져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서도 장병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중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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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9)] 먼저 떠난 전우들 기억이 선명해지는 ‘호국보훈의 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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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8)]등하불명(燈下不明)이 된 정보/기무 출신의 보안태세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최근 군사안보지원사령부(전 기무사령부)는 북한 해커의 지령을 받아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군의 지상전술C4I체계(ATCIS), 한국군합동지휘통제체계(KJCCS) 해킹 시도에 도움을 준 정보분야 업무를 담당한 A대위를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4월28일 구속 기소했다. 수사 결과 A대위는 장교 임관 후 2020년 3월쯤 민간인 대학 동기 소개로 북한 해커와 서로 연락하게 됐고,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포섭됐다. 이후 최근까지 그는 북한 해커 지령에 따라 군사기밀 및 군사자료를 수회에 걸쳐 전송하고 4800만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대가로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은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을 못 찾을 때를 비유한 사자성어로 흔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의미이다 실제 등잔불 자체는 전기가 없던 시절에 방을 환하게 비출 수 있을 정도로 밝고 요긴하게 쓰였는데 등잔 밑은 그 불빛에서 나온 그림자에 가려지기 때문에 오히려 어둡다. 당시에 사무실에서 전관예우 및 텃세에 따른 기무부대 출신과의 차별화된 점검으로 필자가 소속된 요원들은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덕분에 철저한 보안태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정보분야에 근무하던 A 대위가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된 사건과 마찬가지로 보안을 가장 중시하는 정보분야 또는 기무부대 출신 장병들의 보안태세가 오히려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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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8)]등하불명(燈下不明)이 된 정보/기무 출신의 보안태세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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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7)]등하불명(燈下不明)이 된 정보/기무 출신의 보안태세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휴대용 수첩 분실 사건은 보안의식을 더욱 굳건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항상 작전계획 등의 비문을 다루는 업무를 수행하는 필자에게는 원활한 비문 관리에 매우 제한이 많았다. 평소에 참고하는 자료 및 현황이거나 새롭게 작성하는 공문이나 보고서가 대부분 비밀문서이거나 비문에 준하는 서류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부대의 보안업무를 감독하는 기무부대원들은 불시에 사무실의 보안태세 확인 점검을 계속하였다. 실무자들이 업무를 하다가 잠시 자리를 이탈하거나 퇴근 후에도 업무를 하던 책상 위에 서류, 작전계획 및 비문의 방치 또는 무단 반출 등을 확인하는 기무부대원들이 사무실에 들락거렸다. 한편 사단사령부 상황실 벙커 사무실에는 비문관리 등의 보안업무를 전담하는 정보처 간부들도 작전처와 같이 사용했다. 당시의 정보보좌관은 대위 시절에 기무부대에서 근무했던 장교였는데 필자의 부서원들과 차별화된 점검을 받았다. 그는 책상 위에 ‘정보보좌관 책상’이라고 크게 써놓고 퇴근하면 기무부대원들은 전관예우 차원에서 점검을 생략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뜨여 기무부대의 텃세가 심함을 느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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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7)]등하불명(燈下不明)이 된 정보/기무 출신의 보안태세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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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6)]등하불명(燈下不明)이 된 정보/기무 출신의 보안태세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사단작전보좌관 보직에 부임하자마자 ‘통일‘92-2워게임 훈련’에 참가한 것은 새로운 임지에서의 적응을 더 빠르게 만든 동시에 군사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재차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워게임 훈련장에는 각 부대의 작전계획에 의한 상황판과 자료들이 차고 넘쳐났다. 24시간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워게임 요원들은 임무를 교대했고, 퇴근시에 혹시 작전계획 등의 비문이 무단 반출되는지 확인하는 기무부대원들의 번쩍이는 안광은 눈부실 정도였다. ‘통일‘92-2워게임 훈련’이 끝나자 필자는 지형을 숙지를 위한 정찰을 계속했다. 마지막으로 부대 주변 봉암저수지 근처의 독립가옥 및 주요 고지 등을 살펴보다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복귀했는데 휴대용 수첩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그동안 정찰 및 워게임을 하며 기록한 사항 등은 비문 등재를 안했지만 중요 내용이 많아 만약 그 수첩이 불순분자 손에 들어가면 큰 보안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휴대용 수첩 분실이 추정되는 정찰지역으로 급하게 차를 몰고 갔다. 아마도 정찰시에 잠시 수첩을 차량 본넷트에 올려놓았다가 깜박하고 그대로 출발하여 분실한 것 같았다. 따라서 그 주변 민가의 문을 두드렸다. 한집 두집... 계속 확인했지만 모두 못 봤다는 대답이었다. 낙담하며 점심 식사했던 식당에 들어갔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동네 아저씨가 발견하고 기무부대에 신고하려고 한다”는 고마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만약 동네 아저씨가 이미 기무부대에 신고했다면 불명예스런 사건이 될 수도 있어 급하게 그 아저씨 집을 찾았다. 다행히도 그는 아직 신고를 안했고, 자신도 청년 시절에 군생활 경험이 있어서 수첩을 보고 중요한 것 같아 보관하고 있었다며 필자에게 건네주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뿜은 필자는 폴더 인사를 하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후 작전보좌관 근무를 하면서 군생활 경험에 따른 보안의식으로 불명예스런 사건 발생을 막아준 동네 아저씨를 수시로 찾아뵈었고, 덕분에 그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민원도 해결하며 친해질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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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6)]등하불명(燈下不明)이 된 정보/기무 출신의 보안태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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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5]등하불명(燈下不明)이 된 정보/기무 출신의 보안태세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필자가 대위 계급으로 사단작전장교 임무를 수행할 때에도 을지연습 기간에 워게임 요원으로 연합사로 파견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작전장교 임기 말기라 후임자가 이미 사단에 보직되어 있어 워게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소령 계급으로 무적태풍부대의 작전보좌관으로 보직되자 전임자는 중령으로 진급하여 곧 대대장 보직을 받고 대기하며 임무를 필자에게 인계 중이었고, 원래 사단작전보좌관이 통일‘92-2워게임 훈련에 참가하게 되었으나 대신하여 후임자인 필자가 파견됐다. 이번의 워게임 훈련에 필자는 대위 시절과 정반대로 임기 말기가 아닌 부임 초에 전임자를 대신하여 파견되는 야릇한 상황이었고, 따라서 이번에도 역시 훈련에 전념할 수 있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87)] ’‘88을지연습 워게임 실시단 파견서 깨달은 미군의 힘’ 참조) 전임자의 배려(?) 덕분에 워게임 파견 기간 훈련에 임하면서 부대 작전계획을 예하 부대까지 속속들이 숙지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한 군에서 새롭게 도입한 워게임에 의한 전쟁연습이 점차적으로 체계를 잡아가던 당시, 필자에게 워게임과 전투지휘체계 관련 일가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훗날 필자가 연대장 및 군단작전참모 시절에 지상전술C4I체계(ATCIS : Army Tactical Command Information System) 전력화 완성에 따른 전군 최초 디지털 군단으로 발전시킬 때에도 큰 힘이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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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5]등하불명(燈下不明)이 된 정보/기무 출신의 보안태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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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4]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④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사령부의 전투지휘검열시에도 군자산 대대장 김형배 중령은 수세적으로 검열 수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공세적인 자세로 임했다. 그는 검열관 전원에게 ‘전투지휘 검열관 초청 편지’를 사전에 보냈고 검열관들은 검열전에 상쾌한 기습을 당한 기분이었다. 당시에 대부분의 예하부대 지휘관들이 검열관들의 지적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부대로 검열나오는 것을 회피하는데, 김 중령은 오히려 자신의 부대를 검열해 달라는 적극적인 구애의 서신을 보냈기 때문이다. 전투지휘검열을 받기 직전에 발생했던 예하 부대에서의 월북사고와 맞물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군자산 대대를 방문했던 전투지휘 검열관들은 하나같이 군자산 대대를 칭찬했고, 대대장 김 중령의 노력과 우수성 및 지휘능력을 높이 치켜 세웠다. 초청편지 사건은 이후 가장 많이 회자(膾炙)되면서 신화처럼 남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사단의 각 참모부는 연말 우수부대 선정시 전 년도에 이어 군자산 대대를 ‘선봉대대’로 선정했다. 하지만 선봉대대 2연패로 인해 예상되는 타 대대장들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 ATT(전술훈련 평가) 우수부대로 조정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는 필자에게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랬동안 모셨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사귀었는가가 중요하다. 허심탄회하게 심중을 드러낼 수 있어야 인정받는 부하가 될 수 있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얼마나 깊이 사귀었는가?’라는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던 김 중령은 그 능력을 인정받아 이듬해인 1992년 3월에 대대장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사단 정보참모로 영전한 뒤에 작전참모까지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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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4]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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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3]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야전 숙영지의 비좁은 텐트 안에서 신임 작전보좌관인 필자에게 귀중한 조언을 해주던 김형배 중령은 어떠한 임무가 부여될 때, 그 과정과 결과를 통해 능력을 평가받는다며 진지공사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비록 자신 부대의 별도 임무 수행 때문에 진지공사를 늦게 시작했더라도 김 중령 대대는 타부대 보다도 일정을 앞당겨 일찍 끝낼 수가 있었다. 그 이유는 쉬는 병력 없도록 간단없이 진지공사가 지속될 수 있게 철저한 계획과 사전 준비를 한 효율적인 ‘공정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형틀을 짜는 병사들은 대부분 병사가 잠이 들었을 때 작업을 했고, 대다수의 주력은 일과 개시와 동시에 분주하게 일했다. 이렇게 조직적인 업무 분담과 통합이 매우 중요했다. 또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높은 곳에는 간이 도르레를 이용해 시멘트와 물들을 운반시켜 병사들의 노력을 최소화 시킨 것도 유효했다고 성공담을 들려주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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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3]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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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2]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②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김형배 중령은 추계진지공사를 위해 적암삼거리 옆 공터에 설치된 야전 숙영지 텐트에 있었다. 필자는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마음에 대대장 김 중령의 텐트로 들어서자, 그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의아해하며 던진 첫 마디에 움찔해질 수밖에 없었다. “희철아, 니가 왜 여기에 왔니?” 수방사 작전장교로 근무했으면 선호하는 기계화 사단 등의 부대로 갈 수도 있었는데, GOP를 담당한 가장 평범한 부대로 배치를 받았냐하는 핀잔이었다. 그의 핀잔 속에 숨어있는 필자에 대한 진정한 아낌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가 현 부대와 수방사에서 근무했던 선배의 요청과 추천 때문이라고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당시 상황이야 어떻든 필자의 부대 배치는 과거의 일이 되었다. 허나 오히려 필자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선배임을 재확인하면서도 그를 가까이에서 벤치마킹하여 야전에서 성공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하늘이 주신 좋은 기회였다. 왜냐면 그는 수방사 경비과장을 마치고 무적태풍부대 예하 대대장으로 부임하여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부대를 지휘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그 결과로 선봉대대와 대대전술훈련 우수부대 등 많은 부대 표창을 수상하며 성공적인 대대장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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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2]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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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1]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①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단장 이재관 장군에 대한 존경심이 모락모락 피어났던 전입신고 다음날, 사단 책임지역 지형 정찰을 위해 사령부에서 출발했다. 필자는 지형 숙지를 위한 목적으로 책임지역 정찰을 출발했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만나고 싶은 선배가 있어 군자산으로 바로 향했다. 10년 전에 중동부 전선 대성산 기슭의 승리부대에서 인접 중대장직을 수행하던 그는 소대장 근무하던 필자를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이 충고를 했던 선배였다. 당시 그는 필자에게 “김소위, 방금 대대장님은 이임 전날 그동안 지휘했던 부대에 애착이 있어 돌아보시는 것인데 자네는 상급자의 의도를 모르고 계속 점호를 하면 어떻게 하나?”라고 하면서 “상급자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만은 아니다. 오히려 삼촌이나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상급자를 모셔야 한다네...”라고 말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26) “군 생활의 딜레마, 상급자는 우리의 또 다른 적인가?” 참조) 그 충고를 듣고 필자는 상급자가 하급자 지적을 통해 혼을 내며 가르치지만, 하급자는 그 지적에 오히려 감사하며 한 발 더 앞으로 다가서는 자세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군생활 뿐만 아니라 사회 조직의 험한 파도 속을 헤쳐나갈 수 있는 중요한 강점이 되었다. 또한 그의 가르침 덕분에 상하가 일치되어 '上下同欲者勝(상하동욕자승)'의 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 군생활 기간의 실천 노력으로 이렇게 ‘직업군인 이야기’ 칼럼을 쓸 수 있게도 되어 너무도 감사했다. 그 선배는 김형배(육사34기) 중령이었고 당시에 군자산 대대장으로 추계진지공사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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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21] 인정과 신뢰는 절대로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