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소통시대
Home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9) ‘위·아래 막고 물 퍼내기’ 낚시식 학습방법, 교관 의도를 낚다
    ▲ 초급간부 양성과정인 육군보병학교 마크인 ‘”나를 따르라!”와 고등군사반(OAC) 과정에서 제병협동훈련하는 모습 [사진제공=국방부/동영상 캡처] 고등군사반(OAC) 과정에서 ‘새벽별 보기’식으로 공부해도 성적 안올라 '고추가루'에 의존에서 교관의 농담까지 암기하는 공부법으로 전환 교관의 의도에 맞는 답안 작성, 성적도 상층으로 진입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어린 시절에 시냇가에서 고기 잡을 때 물웅덩이를 발견하면 상류쪽에 흙을 쌓아 물을 막고 하류 쪽마저 막은 후에 물을 모두 퍼내면 물이 빠진 웅덩이에서 물고기를 쉽게 건져 올릴 수 있었다. 소위임관시에 교육받는 초등군사반(OBC) 성적은 중위 진급은 거의 가능하게 하지만, 장차 진급 심사시에 그렇게 중요하게 평가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위로 진급하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할 고등군사반(OAC)과정은 영관장교 진급 심사시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고등군사반(OAC) 259기 과정에 입교한 동기생 16명을 포함한 20여명의 육사 출신들과 삼사, 학군, 단기사관 출신 104명의 장교들은 대입시험시 ‘4당 5락’이라는 유행어처럼 밤잠을 줄여가며 새벽별 보기식 학습을 하고 있었다. 필자가 근무했던 승리부대는 최전방 산골 오지의 산악부대라 아무래도 후방 부대들 보다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정보가 늦었다. 물론 게으르고 부족한 탓이겠지만 총 24주간 과정의 1/3이 지날 즈음에도 성적은 저조했다. 고등군사반(OAC) 입교전에 대대장과 주변 선배들도, 더구나 오랜 군생활을 이미 경험하셨던 장인도 모두가 1등을 목표로 제시해 주었으나 당시 필자의 상황은 1등은 커녕 1/3수준인 ‘상층’에도 못 들어갈 위험에 놓여있었다. 입교전인 신혼초에 연대의 장용성 군종목사님이 필자 혼자 육사에서 세례 받은 것은 진정한 종교인으로 살 준비가 된 것이 아니라며, 우리 부부를 함께 부대 목욕탕 물에 담그면서 침례세례를 주시고 성경 ‘이사야서 41장 10절’을 명심하며 신앙 생활을 하라고 제시해 주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느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는 성경 귀절을 되씹으며 다시 용기를 내어 밤잠을 설치며 졸린 눈을 부릅뜨고 새벽까지 학습을 계속했다. 그래도 성적이 상승하는 변화가 없자, 그때까지 믿었던 선배들의 공부했던 자료인 일명 '고추가루'만을 중심으로 삼았던 그동안의 학습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무식한 전법으로 “막고 푸는 방법”을 택했다. 그 날 교관이 강의하며 강조했던 교리는 조사까지 그리고 농담까지도 모두 기록하며 모두 암기하기로 했다. 단지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한 성귀만을 믿었다. 웅덩이의 위와 아래를 막고 물을 퍼내어 물고기를 잡는 낚시 방법이었다. 선배들의 고추가루를 기초해서 채곡 채곡 쌓아가며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머리 속에 꽉꽉 눌러서 마구 쑤셔 넣기식” 학습으로 전환했다. 물론 이방법은 학습하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음 시험부터 달라졌다. 단지 혼자서 교범을 읽고 숙지하는 것은 나름의 지식을 배양할 수 있었으나 가르치는 교관의 의도를 읽을 수는 없었다. 막고 푸는 식으로 강의 및 토의시 한마디씩 던지는 교관의 모든 발언에는 교범의 행간에 숨어있는 교리를 깨닫게 해 주었다. 수업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농담은 당시 교리를 암기하는 중요한 연상도구가 되었고 이러한 것들은 시험 평가시 강의시 교관이 이야기했던 토시까지도 적어낼 수 있었다. 교육 역시 인간이 가르치고 그 사람이 평가하는 법이다. 따라서 가르치는 교관의 의도에 맞춰서 공부한 시험 답안지는 해당 교관이 요구한 답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성적은 한단계씩 올라갔고 동료들과 소주잔을 기울일 때에도 대화 속에서 해당 교관의 수준과 의도에 대해서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다. 어느덧 과정 종반에 접어들어 전술과목 및 제병협동(보병, 포병, 기갑, 항공, 공병 등 제 병과 통합)작전 등을 배울 때에는 드디어 성적이 상층에 포함 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12-0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8) 고등군사반의 추억, 치열한 경쟁 속 소주잔의 행복
    고등군사반(OAC) 입교를 앞두고 치열하게 입교 시험 준비하는 대위들 선배들의 공부자료 지칭하는 '고추가루' 확보해야?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軍에서는 장교로 임관할 때 초등군사반(OBC), 대위 진급하면 고등군사반(OAC), 소령 진급하면 육(해공)군대학 등의 보수교육을 필수로 이수하게 되어있다. 물론 중령, 대령, 장군으로 진급해도 직책에 맞춰서 대대장반, 연대장반, 장군반 교육을 받는다. 이 같은 육(해/공)군대학까지의 교육은 필수과정으로 졸업성적은 진급 및 보직을 검토할 때에 우수하고 능력있는 간부라고 평가받는 결정적인 고려요소가 된다. 필자의 경우, 대대장이 '입교시험' 성적이 졸업성적을 좌우한다며 부대에서의 야근을 불허하며 정시 퇴근해서 입교시험 준비에 전념하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입교 시험은 고등군사반(OAC) 교육후 중대장직 수행을 위한 것이다. 중대급부터 대대 및 연대 전술 교범과 전술 전략의 기본이 되는 ‘작전요무령’을 숙독해야 했다. 장교 임관 후 야전에서 3년 가까이 책과 거리를 두다가 다시 책상에 앉아있기는 무척 힘이 들었다. 또한, 이미 고등군사반(OAC) 교육을 수료하고 현지에서 중대장 근무를 하는 선배들의 시험 준비했던 자료(일명 '고추가루')들을 확보하는 것도 전쟁이었다. 그 선배가 몇등으로 졸업했나를 참고하여 가능하면 우수한 성적을 올린 선배의 고추가루를 얻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軍 보수교육과정의 졸업 성적은 향후 승진의 중요 변수 입교 대상자의 상관과 가족은 '대입 수험생'처럼 뒷바라지 군사교육과정의 졸업성적이 상중하에서 ‘상(대략 1/3수준)’에 포함되어야 진급 심사시 그나마 경쟁 대상이 된다. 필자도 과거 진급심사위원으로 몇번 참여를 했지만 진급 공석은 적은데 진급 대상자가 너무 많아 우수한 사람을 선발하기 보다는 결격 사유를 찾아 제외시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급심사시 대상자가 상점, 평점, 근무실적 등이 동일할 때에는 결국 군사학교 성적의 우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도 본인도 현재의 행복과 만족에 안주하기 보다는 시간과 노력을 쪼개는 희생을 감수했다. 신혼 초, 군인은 적과 잘 싸우고 근무만 잘하면 승승장구하는 줄로만 알았던 필자의 아내는 때늦은 고등군사반 입시수능(?) 준비에 몰두하는 필자를 뒷바라지하면서 훗날 아들들의 진짜 대입 수능준비를 대비한 예행 연습을 미리 했다고 할 수 있다. ‘고등군사반(OAC) 259기’로 육군보병학교에 입교 아내의 행복, 쥐 나오던 관사에서 9평 '백일 아파트'로 이사 드디어 대성산 기슭에서 천연자연의 신선한 공기와 동료 부하들의 땀냄새가 어우러져 신혼을 시작한지 1년 만에 전라도 광주의 상무대로 첫 이사를 했다.쓰러져가는 부대관사에서 교육생 부부들을 위해 준비된 ‘백일아파트’로 입주하게 되었다. 비록 9평밖에 안되는 연탄 아궁이 아파트이지만 쥐가 왔다갔다하는 산간벽지의 낡은 관사 보다는 너무도 좋았고 아내는 “시집 잘 왔네”하며 너스레도 떨었다. 총각장교들은 보병학교인 ‘상무대’ 인근 화정동에 자취방을 마련했다. 자취방 구하는 것도 전쟁이었다. 현재 노량진의 고시 학원가처럼 자취방 주인들은 6개월마다 입교하는 학생장교들을 대상으로 하숙 영업을 하고 있었다. 화정동에 가면 ‘고등군사반(OAC) 1등을 배출’라는 프랭카드가 걸려있는 하숙집도 있었다. 그곳은 역시 출신을 떠나 치열한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우수한 성적을 얻으려는 장교들의 피튀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좋은 것도 있었다. 사관학교 졸업 후 3년만에 만나는 동기생들과 선배들과의 해후였다. 그동안 야전에서 경험한 짜릿하고 아슬아슬한 위기 극복상황과 보람차고 즐거운 성공 사례들을 주고 받으면서 기울이는 소주 한잔은 치열한 경쟁을 잠시 잊게 하는 청량제였다. 입교시험 성적에 실망, 끝없는 '경쟁사회'에 회의감 들기도... 학교장에게 입교 신고를 하고 조편성이 끝난 뒤에 그동안 준비했던 입교시험을 치루었다. 시험준비 자료인 고추가루를 전해준 선배들의 조언은 입교 성적이 과정 끝까지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1주일 즈음 지난 뒤에 개인의 성적표가 교실 사물함에 꽂혀 있었다. 실망이었다. 꼴찌는 아니지만 1/3선에는 미달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 어떤 동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입학 기수를 잘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속한 기수는 육사 출신들이 대거 입교하는 시기라 너무 치열하여 목표한 성적을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동안 대대장님의 배려와 가족의 뒷바라지에 미안할 뿐이다. 인생을 이렇게 피튀기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회의 감도 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강의를 더 집중하고 마지막까지 더 치열하게 책과 실습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다짐만 할 뿐이었다. 한편 이런 경쟁이 없이도 행복해 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지 안타까웠다. 부부동반으로 최근 여행한 북유럽은 '평등한 행복' 누려 소주잔 기울이며 치열하게 경쟁했던 고등군사반 교육과정은 '한국인의 행복' 치열한 경쟁 속 '자기 몫'에 만족하는 태도가 행복의 길... 얼마전 필자의 부부는 북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에서 웅장한 자연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유산들을 관광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헌데 현지 한국인 여성 가이드가 어느 도심에서 안내 중에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현재 한국의 치열한 입시 및 취업 경쟁에 대해 한마디를 던졌다. “본인은 대사관 직원으로 이곳에 파견 나왔다가 결국 귀국하지 않고 정착하게 되었다”며 “한국과 이곳이 다른 점은 너무도 많은데 넓은 영토에 비해 적은 국민들로 천연자연이 풍부해 국민소득이 높은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보장제도가 최상인 복지 국가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면서 “방금 창밖에 환경미화원이 거리 청소를 하는데 옆에 왠 청년이 도와주고 있는 모습을 보셨지요?”하며 “누구 일까요?”라고 반문을 했다. 북유럽은 세금이 수익의 40~60%로 과중하지만 국민들은 전여 개의치 않고 있다며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적게 버는 사람이나 실업자는 오히려 보조금을 받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그밖의 복지혜택도 많다고 했다. 가이드는 "직업에 귀천이 없어 창밖의 환경미화원은 자기 일에 만족하며 아들도 부끄러움 없이 힘든 아버지를 도와주는 모습"이라며 "계급의 고하에 따른 차별이 없이 평등하게 행복을 추구하는 살기 좋은 복지국가"라고 설명했다. 가이드는 더불어 본인의 자식이 대학 입시와 취업 경쟁의 지옥에서 해방되어 행복하다며 미소를 띄웠다. 헌데 그녀는 버스에서 내릴 즈음에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더 던졌다. “이 나라에서 한국으로 유학가는 청년이 많이 있는데, 한국에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고 한국에 정착하는 유학생이 늘어나고 있다”며 '도전을 좋아하는 청년들'이라고 했다. 왜냐면 한국은 치열한 경쟁사회이지만 밤새도록 상점을 열어 편리하며, 여의도 광장에서 통닭과 자장면을 시켜 먹을 수 있는 서비스는 북유럽에서는 상상도 못하기 때문이라며 한국도 경쟁이 치열하지만 좋은 점도 있는 아이러니라고 덧붙였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경쟁에서 승리해 승진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삶과 주어진 현재에 만족하는 행복을 누리는 북유럽인의 삶중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고등군사반 교육과정은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었지만 오랜만에 선배 동료들을 만나 회포를 풀 수 있는 행복(幸福)도 있고, 목표한 성적을 한 단계씩 올려가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무한정 평등하지만 무미건조한 북유럽 복지 사회가 그렇게 부럽게 다가오진 않았다. 비록 경쟁은 치열하지만 마음을 비워 복(福)을 받으면 행복(幸福)하다. 왜냐면 “복(福)이라는 글자에는 한사람(ㅡ)이 먹을 수 있는(ㅁ) 밭(田)이 있어 베풀(示) 수 있으면 행복하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12-0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7) 부대 민방공 대피훈련이 관사지역 대피소동이 된 '웃지못할 사연'
    민방위훈련은 1972년 '민방공·소방의 날'이 시초 대대교육장교 시절, 열외 병사 및 간부들로 고민 오토바이 뒷좌석에 최루탄을 달고 주둔지를 돌며 훈련 유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신혼 초, 대성산 기슭의 쓰러져가는 부대관사에서 살림을 시작한 우리 부부는 쥐가 왔다갔다하는 산간벽지 방 속에서 한 겨울 연탄 아궁이 열로 방바닥 아랫목은 시꺼멓게 탔지만 이불 밖의 기온은 영하로 입김이 서렸던 추억을 갖고 있다. 현재 민방위훈련은 연간 총 5회 실시하나 국민들의 무관심으로 유명무실화 되어 있지만, 필자가 대대교육장교로 근무하던 시절인 1980년대에는 매월 15일이 되면 전부대 및 주민들이 민방공훈련을 했다. 그때 어느 달 15일에도 어김없이 민방공훈련 시간이 다가왔다. 이때 핵심은 전 부대원들이 방독면을 착용하고 적항공기 침공에 대비해 중대 및 소대별로 대공화망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또한 화재 발생 상황을 조성하여 대피 및 물자 운반, 화재진압 등 소방훈련까지 한다. 헌데 일부 간부 및 병사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훈련을 열외하는 경우가 있어 고민하다가 방법을 생각해 냈다. 방독면을 강제로 쓰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노후된 관사에서 한 겨울 추위를 잊게 했던 연탄 운반용 집게에 최류(CS)탄을 결합하여 오토바이 뒤에 달고 부대 주둔지를 한 바퀴 돌면 최류 가스 때문에 간부 및 병사들은 자동으로 방독면을 쓰고 훈련에 참가하도록 만들었다. 효과적인 훈련이 되었고 몰래 숨어 훈련 시간만 피해보려고 했던 장병들은 최류가스를 마시면 급하게 방독면을 찾아 착용했다. 또 하나의 소득이 있었다. 아마 군생활동안 요령을 피웠던 예비역들은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방독면의 정화기 마개를 열어놓아 착용시 답답함을 모면 하려고 했던 일부 병사들이 방독면을 착용했어도 최류가스가 그대로 들어오는 '재난'을 겪게 됐다. 그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마개를 닫았다. 결국 자동으로 방독면 관리 상태도 확인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제대로 훈련을 하려면 각 중대 막사마다 최류가스탄을 터뜨려야 했는데 오토바이를 이용하니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최류탄을 결합했던 연탄집게 사용하자 관사에 '최류가스 소동' 국민의 무관심과 경제논리로 소홀해지는 최근 새태 안타까워 그날 부대의 민방공훈련은 연탄 집게에 최류탄을 결합한 오토바이 운용 덕분에 방독면 관리도 확인하고 열외 없이 주둔지 내 전 병력이 제대로 훈련을 하게 되었다는 칭찬도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훈련이 끝나고 다음 일정에 바쁘게 업무를 하고있는데 관사 지역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필자의 가족이 최류(CS)탄을 결합하여 오토바이 뒤에 달고 부대 주둔지를 휘저었던 연탄 집게를 이용하여 아궁 속 연탄을 갈자, 달구어진 집게에서 최류(CS)가 나와 집안은 물론 관사지역에 퍼져 군인 가족들이 비상이 걸린 것이다. 필자는 놀라 관사에 들어가 가족들에게 사과를 했고 필자의 가족은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원망의 하소연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날은 민과 군이 제대로 통합훈련을 하게 되었던 셈이다. 동시에 부대 민방공 대피훈련이 관사지역 대피소동이 된 웃지못할 사연을 낳게 하는 추억도 남겼다. 사실 우리나라 민방위업무 및 민방공훈련은 6·25전쟁 직후인 1951년 국방부 계엄사령부에 민방공총본부가 창설되면서부터 국민과 함께 해왔다. 민방위훈련은 1972년 최초 “민방공·소방의 날” 훈련이 실시된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꾸준한 민방위활동이 유사시에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은 그동안에 있었던 수많은 전쟁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얼마전까지도 우리 국민들은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면 시민들은 민방위 대원의 안내에 따라 가까운 지하대피소, 지하보도 등 안전한 장소로 대피했다. 또한 운행 중인 차량의 경우 긴급차량 비상차로 확보를 위해 도로 오른쪽에 정차한 후 시동을 끄고 라디오 실황방송을 청취하며 대기했다. 이후 경계경보가 발령되면 시민들은 대피소에서 나와 경계태세를 유지하면서 통행하고, 경보해제 발령 후에는 정상 활동으로 복귀하고 차량 역시 차량통제 해제방송에 따라 행동하면 훈련이 종료된다. 다만 병원, 지하철, 철도, 고속화도로, 항공기, 선박 등은 훈련에서 제외되었다 작금에는 국민들의 무관심과 단순한 경제 논리에 의해 민방공훈련은 소홀하게 되는 실정이다. 앞으로는 이 제도가 제대로 부할해서 유사시를 대비한 훈련을 함으로서 국민들의 안보의식 고취시키며 이를 통해 실제 상황발생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11-1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6) 삶은 시간의 흐름 속에 선택의 연속……..?
    ▲ 지난 호국훈련 중 공중강습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UH-60 기동헬기 [사진제공=국방부] 啐啄同時(줄탁동시)란 놓쳐서는 안 될 좋은 시기를 선택함을 비유 결혼 날자를 택해 청첩장도 돌렸는데 상급부대훈련이 변경되어 난감한 처지됨 결혼도 B(birth)와 D(death) 사이에 있는 C(choice)인 인생의 선택 중 중요한 하나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啐啄同時(줄탁동시)란 병아리 우는 소리를 啐, 깨뜨리는 것을 啄이라 하는데, 어미 닭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순간 주둥이로 탁 쪼아 깨뜨려서 쉽게 나오게 한다는 의미로 놓쳐서는 안 될 좋은 시기를 비유한 사자성어이다. 엄동설한의 추위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따사한 봄이 되어 꽃이 피자 언제 삭풍을 몰아쳤냐고 되물으며 모습을 감추었다. 그 화사한 봄날에 인접 GP장의 여동생을 처음 만났다. 다시 옷깃을 여미는 가을이 되자 그 만남은 열매를 맺어 결혼식을 올리는 날짜를 잡았다. 평범한 시민들은 길일을 찾아 혼인 날짜를 정하지만 군인들은 길일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상급부대 훈련, 검열 등의 고려요소를 참고하여 가능한 날을 선정해야 한다. 필자는 대대교육장교 근무시절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연대 전투단 훈련 겸 평가일과 대대 전슬흔련 평가를 모두 마치고 여유있게 결혼 날짜를 선택했다. . 그러나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에 있는 C(choice)라고 이야기 한다. 선택을 잘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시련을 만나게 된다. ‘군단 동계작전준비 시범’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연대 전투단(RCT)훈련을 받은 뒤에 대대 전술훈련 평가(ATT)가 계획 되어 있었는데 상급부대 일정이 변경되어 연대 전투단(RCT)훈련이 대대 전술훈련 평가(ATT) 시기로 연기되어 뒤로 미루어진 대대훈련평가와 결혼 날짜가 중복 되었다. 결혼식을 한달 앞두고 이미 청첩장을 모두 발송했는데 난감했다. 고민에 말도 못하고 있는데 송영근 대대장이 호출했다. “교육장교, 니 결혼이 상급부대 일정 변경으로 대대 전술훈련 평가(ATT)와 중복되어 고민이지…..?” 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픈 곳을 콕 찌르는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어서 대대장은 “송영근이 육군 중위 한명 없다고 대대 전술훈련 평가(ATT)를 못 받을 것 같으냐?”라며 “개의치 말고 계획대로 결혼하고 휴가까지 충분하게 갔다 와라”하자 필자가 계획하고 협조한 ‘항공정찰과 연막작전’은 누가하냐고 반문했으나 막무가내로 기간에 맞추어 출발하라며 지시임을 강조했다. 대대장실을 나오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본인의 대대장 근무를 평가받는 훈련을 앞두고 부하들을 배려하는 도량에 감동의 연속이었다. 생도시절 훈육관으로 인연도 맺었지만 직속 상관으로 모시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다음주 있는 대대전술훈련 평가 전인 토요일 결혼식을 앞두고 목요일까지 훈련 준비를 한 뒤에 야간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인생에 한번 밖에 없는 결혼식도 소속된 부대훈련평가의 부담을 안고 치루게 되었다. 인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장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다. 최선의 해결방법은 필자 본인이 선택해야 했다. ▲ 필자의 결혼식 사진 [사진제공=김희철] 서울에 도착한 야밤에 처갓집 대문을 두드려 한밤자고 새벽에 다시 고향집에 내려가 부모님께 인사드린 후, 바로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때마침 다른 동기도 결혼 날짜가 중복되어 걱정했는데 성남 행정학교에서 교육받던 동기들이 많이 찾아와 풍성하고 행복한 인생 출발 행사가 되었다. 제주도 신혼여행도 간단히 마치고 월요일 밤에 부대에 도착하니 이미 전부대원은 주둔지 준비태세 평가를 마치고 야외 훈련장으로 나가 부대는 텅 비어 있었다. 복장을 준비하여 다음날 새벽에 훈련장 상황실 텐트에 도착하니 작전장교는 너무도 반가워하며 맞아 주었다. 상황실 텐트애서 필자가 떠드는 소리를 들은 송 대대장이 지휘관 텐트로 호출을 했다. 들어가자 대대장은 화를 내며 본인의 평가를 위해 부하의 인륜지 대사인 결혼을 망치게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게 되어 민망하다며 꾸중을 했지만 입가에 숨은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는 결혼식은 성황리에 잘 끝냈고 제주도 신혼여행도 다녀와서 행사는 잘 치루었다고 말씀드리고 바로 항공 정찰 시간이 되어 사단 항공대로 출발해야 된다며 급하게 대대장 텐트를 빠져나와 짚차에 올랐다. 항공대로 이동하는 짚차의 스치는 바람도 미소 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항공대에는 지금은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O-2기가 있었다. 고정익 항공기를 타고 공격 대기중인 적지역을 정찰하며 집결해 있는 적군의 위치도 파악하고 좌표를 불러주며 화력 요청한 뒤 부대로 복귀했다. 곧 통제관실에서 대항군의 항의를 접수했다고 한다. 항공기가 적군의 상공을 날자 사전 항공기 사용을 협조 안했다며 본인들이 요청 못한 것을 오히려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해 필자가 한달전에 요청한 항공정찰 중 한건을 상대방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마루리 했다. 공격간에는 대대원이 도로를 횡단하게 되어 사전에 사단화학대와 협조한 연막통을 도로에 피워 아군의 위치도 기만하면서 은폐 기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정신없이 작전항공장교의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어느덧 대대전술훈련평가(ATT)도 막을 내렸다. 이번 훈련에서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여 꼭 필요한 시기에 항공정찰과 연막을 활용한 것과 대대장의 창의적인 전술 능력이 돋보이는 훈련이었다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장수는 부하의 입장에서 배려하여 지휘해야 한다. 또한 적시에 어미 닭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순간 주둥이로 탁 쪼아 깨뜨려서 쉽게 나오게 한다는 의미의 啐啄同時(줄탁동시)가 선택의 연속인 인생에서 중요한 교훈임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11-06
  • [직업군인사용설명서](45) YTT(yesterday, today, tomorrow)에도 통하는 별보고 영어하는 능력
    ▲ 좌측 KM180 도로대화구 폭파킷(Cratering Demolition Kit) 등을 이용해 도로를 폭파한 우측장면 [사진제공=국방부] 대성산 계곡 2천평 하늘엔 은하수 등 수 많은 별들이 수고했다고 격려….. ‘군단 동계작전준비 시범’을 창의적으로 준비하여 성공적 개최 어제, 오늘, 내일도 통하는 별보고 영어하는 근무는 성공의 지름길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인생에 있어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은 성공의 첩경이다. 필자가 초급장교로 대대교육장교로 근무할 때 사관생도시절 훈육관 송영근 중령(전 기무사령관/국회의원)을 지휘관으로 모시며 군생활의 기본을 다졌다. 당시 대대장은 영어에도 능통하여 연합사에서 고위 방문객이 오면 사단에서는 당연히 대대작전지역으로 안내하여 작전계획과 전투준비를 설명하게 유도했다. 가을이 다가오자 군단에서 동계작전준비 시범을 보이라는 지시가 사단으로 떨어졌고 자연스레 필자가 소속된 송영근 대대가 그 책임을 맡았다. 사실 겨울이 다가오면 전방 부대원들은 몹시도 바빠진다. 당시에는 생활관 창문이 허술해 비닐을 구입하여 문풍지를 발라 혹한의 추위에 대비하고 난방용 베치카에 사용할 조개탄 등 석탄도 창고에 쌓아 저장해야 한다. 또한 눈이 내리면 도로 개통을 위해 산에서 싸리를 채취해 빗자루를 만들고 넉가래도 추가로 제작한다. 특히 격오지는 차량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겨울내내 먹을 식량과 유류도 미리 공급받아 비축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만약 동계에 북한군이 침투하거나 남침전쟁을 재발하면 막아낼 수 있도록 경계진지에 보온 발판을 준비하고 주요 접근로에 지뢰공(겨울에 땅이 얼기 때문에 미리 구멍을 파놓고 짚이나 병으로 채워 놓는 것)을 중대별로 수백개씩 설치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특히 도로에 큰 웅덩이가 패어 있다면 자동차는 물론 전차나 장갑차 등도 계속 앞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다. 비행장의 활주로에 패어 있다면 항공기는 당연히 이·착륙할 수 없다. 이처럼 도로나 비행장 등을 이용하려는 적의 기동을 ‘차단’하거나 ‘거부’하기 위해 폭약(폭탄)으로 만든 웅덩이를 대화구(大火口, 분화구, Crater)라 하며 이를 설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동계작전 준비였다. 그날도 대대장과 작전장교와 함께 실물을 준비하는 것을 포함하여 어떻게 효율적으로 많은 인원들에게 설명을 할 것인가에 대해 토의를 했다. 어느덧 자정이 넘어 다음날 일과도 고려해 일단 퇴근하기로 했다. 피곤함이 양어깨를 짓누르지만 부대 옆에 있는 관사를 향해 같이 걸어나오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대성산 계곡 2천평 하늘엔 은하수 같이 셀 수 없는 많은 별들이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것 같았다. ▲ 좌측 동계에 근무중인 GOP 초소와 보급로상에서 넉가래와 빗자루(필자근무시에는 싸리빗자루)로 제설 작업하는 모습[사진제공=국방부] 일단 시범준비를 하여 대대장은 사단장께 계획보고를 했고 잘 준비했다는 칭찬을 들었으나 왠지 배가 고팠다. 사단보고를 마치고 다시 얼굴을 맞대고 고민을 했다. 보다 창의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결국 ‘도로대화구 설치킷’을 준비하기로 했다. 도로대화구를 설치하면 전선이 도로에 노출되어 장갑차들이 통과하면 절단되어 기능을 발휘 못할 수도 있었다. 여기에 착안하여 철파이프를 준비하여 사전에 전선을 넣고 매설하면 절단을 방지할 수 있었다. 시범당일 많은 인원들이 모였다. 인접 사단장을 비롯해 모든 지휘관 참모들이 두눈을 반짝거리면서 지켜보았다. 지금은 대형스크린이 있어 빔으로 쏘면 충분히 볼수 있었으나 당시에는 돌림판을 이용하여 전지 3장을 붙여 큰 글씨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준비했다. 대대장의 브리핑을 하면 화면을 돌려 다음화면이 나오게 하고 현화면을 설명하는 동안 뒤에서 설명이 끝난 자료를 제거하고 새판이 나오도록 해야하는 일은 필자의 몫 이었다. 브리핑이 끝나고 전시물을 관람할 때에는 정말 흐뭇했다. 매년 연중행사로 반복되는 시범이 아니라 동계작전 및 전투준비를 고민하고 ‘도로대화구 설치킷’을 최초로 창안하여 제시한 것이 대히트였다. 인접 지휘관들은 부하들에게 시범과 똑같이 동계작전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는 모습에서 밤하늘 별을 보면서 치밀하게 준비했던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보다 창의적으로 착안하는 송영근 대대장의 혼신의 노력에 존경심을 같게 했다. YTT(yesterday, today, tomorrow)어제, 오늘, 내일도 통하는 별보고 근무하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영어도 잘하는 능력은 성공의 지름길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10-1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 이웅평의 미그19기 귀순사건이 만들어낸 '불타는 용사'의 교훈
    ▲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조선인민군 공군 이웅평 상위가 지난 1983년 3월 4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과 그가 몰고온 미그 19 전투기. [사진제공=국방부] 미그기를 타고 귀순한 북한공군 고(故) 이웅평 상위 천문학적인 보상금과 명예 얻었으나 수술 부작용으로 48세에 요절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1983년 2월 25일 당시 조선인민군 공군 상위(대한민국 공군의 대위에 해당)였던 고(故)이웅평은 미그 19 전투기를 몰고 월남하였다. 로켓 사격 훈련을 위해 10시 30분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을 이륙한 미그19 전투기는 갑자기 편대를 이탈하여 남쪽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행로를 이탈한 미그기는 레이다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50~100m를 유지하면서 시속 920km의 전속력으로 남하, 10시 45분 황해남도 해주시 상공을 지나 연평도 상공의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었다. 미그 19 전투기가 남한영역에 들어오자 놀란 민방위 관계자는 그날 오전 10시 58분경에 "여기는 민방위본부입니다. 지금 서울, 인천, 경기도 지역에 공습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북한기들이 인천을 폭격하고 있습니다."라는 경보 방송을 울렸고, 일선 군부대에서도 무장을 갖추는 소동이 있었다. 당시 팀스피리트 훈련을 하고 있던 대한민국의 방공망에 미그19 전투기가 포착되자 공군의 F-5 전투기들이 요격에 나섰다. 그러나 미그기는 날개를 흔들어 귀순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F-5기는 미그기를 유도해 11시 4분 수원 비행장에 착륙하여 귀순하였다. 미그기를 타고 귀순한 이웅평은 귀순하여 천문학적인 보상금(공산 진영의 군수품을 가지고 올 경우 장비에 대한 보상을 하도록 한 법률에 따라 MiG-19기로 무려 15억 6천만 원, 현재 가치로 대략 수백억 원 수준)도 받고, 결혼도 하고, 대령으로 진급하여 공군대학교관으로 명예까지 부족할 것 없는 선택과 삶이었는데 간이식수술 부작용으로 48세로 요절했다. ▲ 조선인민군 공군 상위 이웅평의 귀순 당시모습과 대령 진급후 공군대학 교관 시절 모습[사진제공=김희철] 타성에 젖은 매복작전으로 납득이 안되는 교통사고 발생 진지 투입시 무거운 실탄 대신 종이 카드 수령하기도 필자가 소대장을 마치고 대대 작전항공장교(교육장교로 통칭) 직책을 시작했을 때 GOP후방종심 매복작전에 투입했던 병사가 야간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도 오후 늦게 상급부대의 추가 업무사항이 하달되어 보고서 준비 때문에 야근을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매복작전조에서 긴급 무전이 날라왔다. 작전중이던 병사가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 앰블란스를 보내달라는 전문이었다. 대대장에게 보고를 하고 군의관과 앰블란스를 보냈다. 현장에 긴급 출동한 해당 중대장은 다행이 피해자는 어깨가 골절만 되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보고를 해왔다. 사단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매복작전간 교통사고에 대해 감찰조사가 나왔다. 감찰조사 확인 결과 매복지점 산 정상에는 있는 미군의 라지트 기지로 투입하는 차량이 도로에 인접한 매복조를 발견하고 노출을 피해 차량 라이트를 소등하고 이동하다가 매복진지에서 팔을 내놓고 가면을 취하던 병사의 어깨를 치었던 것이었다. 마침 차량의 진지방향에 있던 차폭등이 꺼져 미군 운전병이 병사를 식별 못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차량 바퀴가 1센티만 더 들어 갔으면 머리를 치고 지나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매복진지 선정의 부적절함과 매복작전 중이던 병사들의 타성이 또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비상이 발령되어 진지에 투입할 때는 탄약을 휴대해야 하는데 통상 훈련시에는 실제 탄약 대신 탄약고에서 종이 카드를 수령하여 지참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는 탄약을 꺼내는 것도 복잡하지만 산 정상에 배치된 진지까지 휴대하고 이동하면 분실 및 관리에 어려움 때문이었다. 또한 병사들도 완전군장에 식량, 탄약까지 무겁게 휴대하고 1시간 넘도록 산정상 진지로 올라가야 함으로 실제 탄약보다는 종이카드를 선호했다. 말 그대로 타성과 관례에 젖어 훈련 및 작전에 임하니 매복작전간 웃지 못할 교통사고도 발생하는 실정이었다. 이웅평 월남 당시 경고방송은 "실제 상황입니다, 북한기들이 인천을 폭격" 타성과 게으름에 젖었던 '철없는 병사들' 탄약과 수류탄 더 받으려고 아우성 하지만 1983년 2월 25일 방송에서 "서울, 인천, 경기도 지역에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북한기들이 인천을 폭격하고 있습니다."라고 발표하고 상급부대에서 비상이 발령되자 상황은 달라 졌다. 당시 부대는 이웅평이 미그 19 전투기를 몰고 월남한 사실이 전파되지는 않은 상태로 전쟁이 곧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병사들은 완전군장으로 진지로 투입되기 시작하자 탄약고를 관리하던 병기관이 바빠졌다. 종이카드로 탄약을 대치했던 과거 훈련시의 모습은 없어지고 각개병사들은 훈련시 무거워서 카드로 대치했던 탄약과 수류탄을 한발이라도 더 받아서 진지에 투입하려고 아우성이었다. 타성에 젖어 안일과 편리함만을 추구했던 게으르고 요령만 피우던 철없는 병사들은 찾을 수가 없었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임무를 완수할 차비에 매진하는 용사들의 불타는 전투의지만 보였다. 반드시 훈련은 실전 같이 해야 한다. 따라서 간부와 리더들의 훈련 및 업무에 임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군대나 사회조직에는 “나쁜 부대는 없다. 오직 나쁜 리더만 있을 뿐이다.(There are no bad troops. What is there are only bad leaders.)”라는 영어 격언이 떠오른다. 작금의 국제정세와 대북관계가 어려운 상황에 접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현명한 리더와 미그기 귀순 사건시 보여준 것처럼 불타는 전투의지의 용사들이 꼭 필요한 때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09-2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 국제신사를 '철면피'로 만든 최전방 오지
    ▲ 사관생도 시절 스스로를 '국제신사'라고 칭했던 육군 소위들은 전방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결혼한 선배의 집에 찾아가 물펌프질을 해주고 '회포' 푸는 '철면피'가 되곤 했다. [사진제공=김희철/동영상캡처] 군부대 자유시간 핸드폰 허용, 필자의 초급 장교 시절엔 상상도 못할 일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금년 4월부터 군에 복무하는 병사들에게 일과 후 자유시간과 휴무일에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게 허용되었다. 덕분에 가족들과 연락을 할 수 있고 또 자신의 발전을 위해 정보도 쉽게 접촉하게 되어 병사들은 대단히 만족한다. 하지만 음란물 시청, 도박, 부대 보안에 취약함 등이 제기되어 재검토가 필요한 실정이다. 게다가 병사들의 평일 외출도 허용되었고 위수지역 통제도 지역 개념에서 2시간 내 지역으로 완화되었다. 하지만 필자가 최전방에서 근무할 때에는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세상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필자가 초급장교 시절, 당시에는 지금의 혜택은 생각도 못 했고 서울에서 부대까지 이동하려면 마장동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무수한 검문소에서 헌병과 마주치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서울로 나올 때는 더욱 검문을 심하게 했다. 게다가 비포장 도로로 덜컹거리는 덕택에 흙먼지가 밀려들어오는 차안에서 멀미와 싸우며 긴 시간을 가야했다. 부모님이나 애인이 면회를 갈려면 하룻 밤을 잘 각오로 가야했다. 특히 최전방 GOP지역에서는 출입 통제로 가족들을 볼려면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식당없는 전방 오지 근무, 결혼한 선배집을 선술집으로 만든 '철면피' 되기도 식당이나 주점이 거의 없는 전방 격오지의 퇴근 후에나 휴일에는 마땅하게 소일할 거리가 없었다. 서울까지 나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했다. 같은 대대에 통신대장으로 함께 근무하던 동기(안철주 중위)와 1시간을 걸어 민간마을로 내려가면 마땅히 들릴 곳이 없어 쉽게 찾는 곳은 결혼한 동기생집 이나 선배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방문한 집에 동기나 선배가 없더라도 가족은 반갑게 맞이하면서 남편 없이도 저녁 밥을 차려주어 대접을 했다. 시골 쪽방 셋집에서 고생하는 선배/동기의 가족이 안스러워 물가에 가서 펌프질을 하여 식수나 용수를 길어주는 등 약간의 봉사만 하면 그날은 맛있는 삼겹살로 배불리 한 끼를 때우고 늦게 퇴근한 선배와 소주까지 곁들여 회포를 푸는 날이었다. 사관생도 시절 국제신사라고 자부했던 육군 소위들은 철면피와 철판으로 변해 있었다. 식당 없는 전방 오지의 선배와 동기집을 하도 자주 찾아가서 선배집을 선술집으로 만들었고, 신사도와 체면도 없는 철면피/철판 인간이 되어 폐를 끼쳤다. 몇 년이 지나 필자가 결혼하자, 내가 했던 행동은 그대로 나에게 적용되었다. 전방을 찾아오거나 전입온 선후배들도 똑같이 결혼 후 마련한 필자의 셋방집을 수시로 찾아왔다. 그 동기와는 지금도 철판, 철면피라고 서로 부르며 미소를 짓고, 내 집사람도 그때 일들을 회상하면 힘들지만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한다. ▲ 철면피와 철판이었던 동기생 안철주와 시외버스에서 헌병이 검문하는 모습 [사진제공=김희철/동영상캡처] 지나친 규제는 위법을 양산하고, 이완된 규율은 방종과 무질서를 낳아 국제신사를 철면피와 철판으로까지 만들며 폐를 끼쳤던 선배의 가족은 아직 짝이 없는 후배가 안타까워 대학 후배나 친척을 소개 시켜주어 평생 반려자가 된 사례도 많았다. 필자도 인접 소대장 유승한중위(학군19기)의 동생을 소개 받아 지금의 내 짝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만남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최전방에서 결혼했다면 우선은 이상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간혹 근무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지금의 처남)는 내게 소개를 해주기 위해 휴일에 서울을 다녀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엄격한 위수지역 통제로 서울을 갈려면 증명서가 필요했다. 무수한 검문소에서 헌병들이 증명서를 확인하기 때문이었다. 출장을 신청하여 증명서를 발급받으려면 복잡하고 잠깐 휴일을 이용해서 다녀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행정권이 있는 연대나 포병대대의 인사장교들에게서 출장증을 몇장씩 확보하고 비표를 확인하여 증명서를 임시로 작성하여 이용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마침 선배 소대장이 증명서를 제공해주어 그 친구는 무사히 서울에서 지금 내 가족의 사진을 가져왔고 필자는 사진을 보고 만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위수지역이 시간개념으로 교통도 편리해져 2시간내 복귀할 수 있는 서울을 나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당시의 지나친 규제는 헌병 검문을 통과하기 위한 또다른 위법을 양산하고 있었다. 사실 그 위법 행위 덕에 필자는 평생 반려자를 만날 수 있었고 결국 결혼으로 성공했다. 전후방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의 가족들을 포함한 전우애와 의리, 선배들의 무한한 후배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지난 5월 군 수사당국이 경기도 육군 모 부대 내에서 일부 병사가 휴대폰을 이용해 스포츠도박을 한다는 제보를 입수해 5명의 병사를 적발했다. 이 중 최근 전역한 A병장은 입대 후 960차례에 걸쳐 무려 1억8000만원 액수의 도박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얼마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도박 문제에 대해 상담을 군인 상담자는 2017년 48명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 약 3배인 123명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2019년에는 5월까지 집계했음에도 117명에 달해 도박자 중 상담을 신청한 이들만 집계한 통계이기 때문에 실제 도박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휴대폰을 이용한 군 내 각종 부정·불법행위 적발은 2350건에 달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사병은 물론 부사관, 장교까지 포함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대 내에서 병사들의 일과 후 휴대폰 사용을 허용해준 뒤 사병들의 휴대폰 도박이 급증한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핸드폰 사용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비록 인생 반려자를 얻기 위해 위수지역 이탈 등의 무리한 위반 행위를 했지만 당시의 지나친 규제는 또다른 위법을 양산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핸드폰의 무분별한 허용 등 이완된 규제는 방종과 무질서를 낳기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최선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09-0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이성출 대장에게 전수받은 '탁월해지는 비법'
    ▲ GOP 전방부대에서 소대장 근무시절 필자의 모습 [사진제공=김희철] 최전방 GOP부대, 효율적인 DMZ작전 위해 주기적으로 임무 교대 소대장 근무 2년이 넘으면서 동기들과 비교 의식 생겨 상급자들, 부하들을 '무능-평범-우수-탁월'의 잣대로 평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최전방 적과 마주하는 GP장으로 DMZ작전근무가 끝나가자 소대장 보직도 마무리 되고 있었다. 최전방 GOP사단은 DMZ에서 적과 직접 접촉하는 작전근무를 하는 부대의 조화롭고 효과적인 근무를 위해 주기적으로 임무를 교대한다. 때마침 필자가 소대장을 마칠 무렵 해당 부대도 DMZ를 담당한 GOP연대의 임무를 인계하고 후방 FEBA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GOP임무교대시 현재 DMZ지역에서 GP를 담당하고 있는 소대들은 새롭게 투입되는 연대에 모두 인계되였다. 따라서 중대의 소대장 중 1/3만 함께 이동하게 되었고 나머지 동료들과는 뜻하지 않은 이별을 하게 되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DMZ지역에서 GP장과 작전소대장을 두번씩 하니 시간은 벌써 2년이 다되었고 다음해가 되면 대위 진급 심사에 임하게 되어 내자신의 경력을 돌아 볼 필요가 있었다. 다른 동기생들은 소대장직을 6개월이 지나서부터 끝내기 시작해서 이미 사단 및 연·대대 등 상급부대 참모장교로 차후 미래를 위한 경력을 쌓아가고 있어 필자는 동기들에 비해 뒤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상급부대의 부대 교대명령에 의해 목숨을 위협하는 적과 지뢰지대 및 철조망의 압박감과 불편함에서 벗어나 대성산 서측 수피령지역으로 주둔지를 옮겼다. 하지만 역시 민간인이 살고있는 마을까지는 한시간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 첩첩산중의 심신산골이었다. ‘연대 활성교보재 운용 시범’ 후 상급 및 인접 부대 참모로 보직 이동 “산 넘어 산”이라고 후방지역으로 나오자 마자 교육훈련에 전념해야 한다며 새로 부임한 신임 연대장은 대대에 ‘활성교보재 운용 시범’ 명령을 하였고 대대장은 우수 GP장으로 선발했던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 중대장에게 시범 명령을 재하달하였다. 역시 중대장은 필자에게 운용시범 준비를 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활성교보재’라는 것은 공포탄, 훈련용 수류탄/크레모아/지뢰 같이 생긴 것은 실물과 같으나 교육을 위해 작동시에는 폭음과 소규모 연막만 피어나고 실제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활성교보재는 교육훈련시에 흥미를 유발시키고 숙달에 용이한 효과적인 교육용 보조재이다. 짧은 시범준비 시간이었지만 연대와 사단, 인접 부대를 다니며 자료를 수집했고 DMZ를 누볐던 소대원들에게 창의적으로 시나리오를 써주며 연습을 시켰다. 결국 중대장과 대대교육장교의 적극적인 감독과 지원도 받은 덕택에 연대장을 모시고 시범을 성공적으로 무사히 마쳤다. 시범이 끝나자 연대 군수과와 사단 수색대대 그리고 GOP에서 GP작전을 통제했던 대대에서 참모로 오라고 통보가 왔다. 필자 소속 대대에는 중위 참모 자리에 다른 장교들이 이미 보직되어 공석이 없었다. 이성출 예비역 대장의 '4성론'은 직장인의 꿈을 이뤄줄 방법론 직장인들의 가장 큰 꿈과 희망은 ‘승진’이다. 혹자들이 감성적 철학적 표현으로 가치적 도덕적인 근무 자세를 강조했지만 궁극적으로 ‘승진’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상급자들은 부하들을 크게 4종류로 분류한다. '무능-평범-우수-탁월'이다. “성실하다, 착하다, 신뢰할 수 있다” 등은 앞서 4종류 분류 어디에도 적용될 수 있다. 때로는 무능하더라도 신뢰할 부하가 절실하게 필요할 때는 무능하지만 성실한 사람이 발탁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사회에서 4종류 중 탁월해야 승진하는데 유리하다. 군인을 포함한 많은 직장인들이 상급자로부터 탁월하다는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본인도 논리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탁월해지는 비법을 훗날 군단 작전참모 시절 이성출 군단장(육사30기, 예비역 육군대장)으로부터 정확하게 전수받을 수 있었다. ▲ 소대장 근무시절 자화상과 소대 전술훈련 모습 그림 [사진제공=김희철] 어려운 취준생 시절을 겪고 취업을 하더라도 상급자로부터 인정받아 정규직으로 장수하면서 승진도 하려면 바로 다음의 4성(性)을 체질화하는 것이 필수이다. 첫째, 전문성(專門性)으로 무장하라. 전문성은 업무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요소이다. 과거의 관행, 관례보다는 자기 업무에 관련된 법과 시행령, 예규, 방침, 지침 등을 먼저 숙지하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 또한 눈으로 보고 들은 것을 법규를 통해 확인하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둘째, 적시성(適時性)을 놓치지 마라. 완벽한 보고와 철저한 준비도 중요하지만 적시성을 놓치는 순간 모든 준비와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 훌륭한 아이디어와 보고서는 필요한 시기를 놓치면 허망한 생각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완벽한 형식과 예의 보다는 적시적인 미완의 간단한 메모 등이 오히려 효과적이고 더 중요함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창의성(創意性)으로 차별화하라. 전문성과 적시성을 갖춘 자는 성실하고 유능한 인재로 평가한다. 그러나 창의성이 가미된 업무는 탁월하다는 더 높은 평가를 받고, 나아가 꿈을 이루는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해낼 수 있다. 창의성을 기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벤치마킹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남의 장점을 잘 벤치마킹하여 자기화 한다면 본인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성과와 평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넷째, 현장성(現場性)으로 증명하라. 아무리 전문성, 적시성, 창의성을 갖추었어도 실제 현장에 부합되지 않으면 “탁상공론”이 된다. 따라서 실제 상황에 꾸준히 적용․ 시행할 수 있는 업무를 위해서는 현장성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4성(性)의 체질화는 승진이나 성공의 비결이다. 또한 성공은 목표 달성을 위해 한 가지씩 성취해가는 노력의 과정인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즐기는 삶이 되어야 행복과 보람을 얻을 수 있다. 필자가 장교로 첫 배치받은 GOP최첨단 소대장 근무의 유종지미(有終之美)를 통해 깨달은 것은 이미 4성을 본인도 모르게 실행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성공적인 삶의 평범한 비법인 4性을 심신(心身)에 형틀화하여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내 몸속 형틀에 집어넣어 표출되는 말과 보고서 등 모든 업무를 처리하였다. 아니, 소대장 이후 40년 가까운 군생활을 마친 현재에도 그러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20, 30대 젊은이들도 4性을 자기 체질화 하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승진하여 상위 계급으로 진출하거나 해당 조직의 리더로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도 행복과 보람을 함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08-2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 DMZ작전소대의 마지막 임무는 아찔한 지뢰제거 작전
    ▲ DMZ내 지뢰지대 표식과 2018년 10월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에서 지뢰제거 작전 중인 국군장병 모습 [사진출처=연합뉴스] “시근종태 인지상정 종근여시(始勤終怠 人之常情 終勤如始)” 삶과 죽음의 교차로에서 맡겨진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인의 숙명! DMZ근무 끝내고 후방철수 직전에 '새 임무' 부여받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조선 성종때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날 무렵인 권신 한명회에게 그의 사위인 성종이 신하를 보내 “내가 앞으로 왕을 하는데 무엇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한명회는 “시근종태 인지상정 종근여시(始勤終怠 人之常情 終勤如始)”라고 답했다고 한다. 시작할 때는 부지런하고 끝에 태만해지는 것은 인간의 상정이니 마지막까지 부지런하기를 시작처럼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하늘이 마지막까지 태만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DMZ작전 근무를 끝내고 후방으로 철수하기 얼마전에 소대에 새로운 임무가 부여되었다. DMZ내 고지 정상에 위치한 GP의 울타리 철책은 고지 경사로 인해 울타리 철책 밖의 흙이 깍여 흘러내려 울타리 철책 내부 순찰로 하단이 자주 침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울타리 철책 밖의 지뢰지대에서 철책하단을 보강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울타리와 근접한 지뢰지대의 지뢰는 제거해야 했다. 결국 DMZ작전소대 근무를 마치고 후방으로 철수하기 전에 필자가 담당했던 GP 울타리 철책주변에 근접한 지뢰를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고 소대원들과 GP로 다시 투입하게 되었다. GP울타리 철책에서 수류탄 투척이 가능한 거리까지는 불모지로 형성되어 있는데 고지라 매우 급경사였다. 그곳에는 M16대인지뢰와 M14폭풍지뢰가 매설되어 있는데 울타리 철책 근접에는 지뢰가 흘러 내리지 않도록 실로 연결하여 M14폭풍지뢰로 매설되어 있었다. ▲ GP 및 GOP 철책 순찰 모습 [사진출처=국방홍보원] GP 담당소대는 주야간 등 기본 임무에만 전념하고 필자가 지휘한 작전소대가 아침에 GP로 들어가 일몰전까지 지뢰제거 임무를 수행하도록 지시됐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임무이다. GP 및 GOP불모지대에는 일부 M16지뢰의 삼각뿔이 지표면 위로 튀어 올라와 있어 “죽음의 사자들이 어서 오라”고 부르는 듯 했다. 지뢰제거 임무를 설명받은 소대원들, 손톱을 잘라 유서 봉투에 담아 지뢰제거 임무를 설명들은 소대원들은 조용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누구도 거부하지 않고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유서와 함께 편지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소대원들에게 세부적인 작업 계획을 제시하고 토의했다. 울타리 철책으로부터 불모지대 끝까지는 전체가 지뢰지대임으로 작업 구간을 울타리로부터 1m로 제한했다. 결국 선두만이 모든 위험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지뢰 매설한 지도 오래됐기 때문에 겉에 것을 탐지해 캐내더라도 그 밑에 또 지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무 깔판을 준비했다. 먼저 선두가 최초 탐지하여 제거하면 바로 뒷조가 나무 깔판을 전달하고, 다시 선두는 그 나무깔판을 딛고 다음 지역을 탐지 제거하며, 제거된 지뢰는 즉시 뇌관을 제거하고 후미에 전달하면 마지막 조는 뇌관과 지뢰몸통을 분리하여 보관하도록 작전을 세웠다. 그때 분대장이 자신이 선봉에 서서 탐지를 하고 지뢰를 수거하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하지만 필자는 가장 위험한 선두를 부하에게 맡길 수 없었다. 지뢰제거 첫날, 식은 땀을 흘리며 M14폭풍지뢰 제거 지뢰제거 작전 첫날, 소대원들과 DMZ통문에 도착하여 현장 지도하겠다는 중대장과 함께 GP로 들어 갔다. 항상 모든 일은 첫발이 중요하다. 필자가 먼저 지뢰탐지기를 들고 울타리 철책으로 접근했다. 모두들 긴장한 모습이었고 탐지기만을 믿을 수 없었다. M14폭풍지뢰는 플라스틱으로 지뢰탐지기로는 탐지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탐지 지역을 다시 대검으로 찔러보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필자의 바로 뒤에 있는 분대장에게서 나무깔판을 받아 탐지한 지역에 깔고 다시 대검을 45도 각도로 찌르자 무언가 딱딱한 감촉이 손끝에 전달되어 왔다. 야전삽으로 살살 흙을 퍼내자 파란 플라스틱이 보였다. 손으로 흙을 걷어내고 M14폭풍지뢰를 꺼냈다. 뇌관을 제거하고 안전핀을 재결합한 뒤에 뇌관과 몸통을 분리해서 뒷조에게 전달했다. 등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첫날 작전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하자 대대 통신대장 안철주중위(육사동기)와 인접 GP장(학군동기)에게서도 안전을 기원하는 전화가 왔다. 격려 전화를 받으면서 나의 버켓리스트(The Bucket List)가 떠올랐다. 죽기전에 개인전 한번은 할 수 있을까? 일주일 동안 105발의 지뢰를 캐내고 임무 완수 첫날 12발을 캤다. 둘째날은 7발을….. 지뢰를 캐어낼 때마다 섬짖하게 스쳐가는 사자(死者)의 휘파람 소리에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고 생사(生死)의 기로(岐路)를 넘기면서 105발의 지뢰를 캐내어 GP관리에 안전을 확보하면서 임무는 완료되었다. 삶과 죽음의 교차로에서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위해 강행해야 하는 군인!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명령하는 상급자, 위험 속에 빠져들면서도 임무를 수행하는 하급자, 이 모두가 군인다운 군인이다. 끝.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08-1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 악천후라는 또 하나의 적과 동거하는 DMZ매복작전
    ▲ DMZ매복작전 투입전에 주둔지에서 투입신고와 군장검사중인 국군장병 모습 [사진출처=국방부] DMZ수색과 매복작전, 70년간 보존된 '천연의 보고'를 만끽하는 혜택 침투하는 적을 색출/격멸하여 영토를 지키는 '무거운 임무' '적'으로 오인한 산짐승과 치열한 신경전으로 긴장했던 추억 고통스러운 악천후, 지휘관의 리더십 통해 '전화위복 (轉禍爲福)' 가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인적이 끊어진 DMZ(비무장지대)를 종횡무진 누빌 수 있는 특권은 세계적 권력자들에게도 없다. 오직 필자가 소속된 부대와 같은 DMZ작전부대에게만 부여되어 있다. DMZ수색과 매복작전을 담당하는 부대원들은 침투하는 적을 색출하여 격멸하고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키는 임무도 있지만 약 70년간 보존되어 온 천연의 보고를 마음껏 누리는 혜택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대원들은 항상 발톱을 숨기고 걸려들기만 기다리고 있는 지뢰폭발의 위험과 언제 출몰할지 예측 불가능한 침투조의 기습적인 도발에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리스크는 일반적인 사고와 달리 자칫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DMZ는 과거와 현재에도 많은 전우들이 발목이 잘리는 등의 부상을 입거나 치명상으로 순직하며 생명을 걸고 지켜온 땅, 천연의 보고이다. 한 겨울이 되면 온 천지가 하이얀 설국과 동토의 땅이 된다. 당시에는 매복작전 투입전 GOP통문지역의 온도가 영하 10도 이하가 되면 작전이 취소가 되었다. 그날도 오후, 눈보라 치고 매서운 바람은 소매 끝을 파고들어 문밖을 나갈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도 온도는 영하 7도였다. 할 수 없이 야간 매복작전을 위해 작전조는 오후에 취침을 하고 투입준비를 했다. 우선 동상을 대비하여 전투화 대신 방한화를 준비했고 그 안에는 두꺼운 양말을 두겹씩 신었다. 전투복안에 내복을 껴입고 방한복을 입은 모습은 완전히 눈사람이다. 목도리에 귀마개까지 하고 철모를 쓰니 고개 돌리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주둔지에서 투입전 즉각조치 사격을 하고 군장검사 후 5/4톤 트럭을 타고 GOP통문으로 향했다. 이동간 노출된 트럭위에서 매서운 겨울바람이 옷사이를 스며들어올 때에는 아무리 두껍게 입은 방한복도 소용이 없었고 대원들의 콧 밑에는 새하얗게 고드름과 서리가 맺혔다. 일몰이 되고 사방이 깜깜해질 무렵, GOP통문에 도착했다. 군장검사를 위해 방한장갑을 벗고 소총 안전검사를 할 때에는 손가락이 떨어져나가는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온도를 체크하니 영하 9도였다. 삭풍까지 몰아치는 이 혹한에 에누리 없이 작전에 투입해야 할 기온이었다. GOP작전 대대장에게 인원장비와 군장검사 결과를 전화로 보고하려고 초소로 들어가는데 그 날 따라 격려하려고 현장에서 대기중이던 대대장 송영근 중령(훗날 기무사령관, 19대 국회의원 역임)이 초소에서 나오며 작전대원들에게 뜨거운 차를 한잔씩 나누어 주었다. 혹한에 생고생을 불평했던 대원들은 대대장의 기습적인 격려에 오히려 감동해서 이번 야간작전에서는 침투한 적을 반드시 잡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드디어 , GOP통문이 열리고 대원들은 두꺼운 동계복장 때문에 끼우뚱거리며 DMZ안에 발을 디뎠다. GOP통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대대장과 통문 소대장의 걱정어린 눈빛을 뒤로한 채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너무도 조용한 침묵 속에 인적이 끊어진 눈 덮힌 DMZ는 우리 작전조를 반겼지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대남방송과 ‘사각 사각’하는 눈 밟는 소리만이 혹한과 친구가 되었다. 약 1시간 가까이 이동하는 동안 방한복 속에서는 땀이 솟기 시작했고 결국 매복진지에 도착 했을 때는 이마에도 땀이 송송 맺혔다. 진지 내의 눈을 치우고 크레모아를 적 침투 방향으로 설치하고 인접 진지와 신호줄을 연결한 뒤, 수류탄을 꺼내 뚜껑을 개봉하여 바로 던질 수 있게 준비를 했다. 깔판을 깔고 진지에 앉으니 바로 이동간 흘렸던 땀이 식으면서 혹한이 옷자락을 스며들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앉아있는 무릅에서 열 소모가 그렇게 많은 줄은 전에는 몰랐었다. 땀이 식으면 추위를 느낄 때 무릅덮개로 허벅지와 무릅을 덮으니 꽤나 추위가 반감되었다. 군장 속에 있던 핫패드를 꺼내 배와 등에 붙히고 혹한과 싸우기 시작했다. 좌우에 있는 진지에 신호줄을 당겨 이상유무 확인했다. 온 세상이 하이얀 눈이 덮힌 한 겨울에 몰아치는 삭풍마저 괴롭히지만, 모두들 잘 견디며 두 눈을 부릅뜨고 혹시 침투하는 적을 색출하여 처단하기 위해 얼음 같은 소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얼어가는 손가락을 계속 꼼지락대며 밤을 지새웠다. 침투로만 뜷어지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삼천평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춤추는 별들과 박자를 맞추듯 대남방송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지상에선 새하얀 눈꽃들이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남과 북의 심리전 방송에 장단을 맞추는 통에 추위도 졸음도 적을 잡아야 한다는 긴장감도 잠시 사라지며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우측 진지에서 신호가 왔다. 전방에 미상 물체가 식별되었다. 숨을 죽이며 전방을 주시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며 몇 분이 흘렀다. 등에는 아까 이동하며 흘린 땀이 아니라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신호줄은 내용 전파가 한계가 있다. 옆 진지에서 판단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소대장이 직접 가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은밀하게 옆 진지로 이동했다. 소대원이 지목한 곳에 필자가 보기에도 미상 물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미동도 없다. 만약 그대로 사격을 하면 매복 위치가 노출되어 오히려 침투한 적에게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다가 미동이 없는 것도 이상했지만 산짐승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돌을 들어 그곳을 향해 던지고 바로 사격자세를 취했다. 만약 적이면 바로 사격하려고 했는데 돌에 놀라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하니 역시 산짐승이었다. ▲ DMZ 산양 및 동계 훈련하는 국군장병 모습 [사진출처=동영상 캡처 / 국방부] 발견해 보고한 대원에게 졸지 않고 근무를 잘했다는 칭찬을 하고 진지에 돌아오니 식은 땀이 추위를 더 압박해 왔다. 가장 심한 것은 발이었다. 그때 즈음이면 완전 동태가 된 것 같았다. 식은 땀 때문에 두꺼운 방한화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덧 추워와 싸우는 시간의 끝이 다가왔다. 일출 한시간 전 즈음 무전기로 대대 상황실에서 신호가 왔다. 철수신호이다. 옆 진지로 신호를 보냈다. 철수 준비도 꽤 복잡하다. 경계병을 배치하고 크레모아와 신호줄을 회수했다. 진지 깔판과 기타 흔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인원 장비를 체크했다. 통문으로 복귀하는 발걸음은 가볍다. 비록 침투하는 적이 없어 성과는 없었지만 대원 모두가 무사한 것에 다행이면서도 보람을 느꼈다. 빨리 주둔지로 복귀해서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헌데 GOP 통문에서 문제가 생겼다. 통문 소대장이 아직 도착을 안했다. 대원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통문 앞에서 한시간 가까이 기다리고야 통과했고 통문 소대장은 늦게 나와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땅거미가 걷히고 동녁이 밝아올 무렵 5/4톤 트럭을 타고 복귀할 때에는 기온이 영하 20도 가까이 됐다. 코밑에 달린 고드름도 아랑곳 없이 마음은 포근하다. 삭풍의 혹한 속에 동상의 아픔도 극복하고 임무를 완수한 보람 때문일 것이다. 한 여름 매복작전시에도 갑작스런 소나기와 모기들이 대원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적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러한 장애물을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드는 것은 지휘관의 리더십이다. 악천후와 기타 리스크도 잘만 이용하면 오히려 성공요인으로 전화위복 (轉禍爲福)시킬 수 있는 조용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DMZ매복 작전이었고 '그 날' 하루도 무사히 또 지나갔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9-07-19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