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시대Home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20] 취임후 2년 동안 지속된 전술토의·시범을 급양관리로 완성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부대 주둔지 울타리는 블록담으로 설치되었는데 큰 대로변의 울타리는 블록 담장위에 원형철조망까지 설치되어 형태가 제대로 갖춰진 모습이었지만, 예비군 교장이 있는 산쪽의 노후된 울타리는 너무 오래되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전임 대대장이 담벽에 2미터 단위로 나무로 버팀목을 대어 울타리 전도를 간신히 방지한 상태로 지탱했었고, 이미 상급부대에 울타리 담벽 보강공사를 건의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방치된 채 해를 계속 넘기고 있었다. 어느날 장마 폭우가 쏟아져 결국에는 산쪽 울타리 담벽 일부가 무너졌다. 마침 충청도 전체가 장마로 피해를 많이 입은 상태가 되어 군부대 피해도 파악했는데 이를 기회로 삼았다. 주임원사와 상이하여 산쪽 노후된 울타리 담벽에 받쳐놓았던 나무들을 제거하자 나머지 울타리도 모두 전도되었고, 폭우로 피해가 발생했다고 상급부대에 보고했다. 위기는 기회가 되었다. 상급부대 울타리 보강을 역대 대대장들이 수차례 건의했지만 예산반영이 안되었는데 장마폭우로 붕괴됐다고 보고하자 행정관서 및 군부대에서 울타리 신축 예산이 바로 책정되어 산쪽 울타리 담벽을 깨끗하게 보강할 수 있었다. 이로써 수명의 전임 대대장들에 걸쳐 10여년동안 개선되지 않았던 숙원사업이 달성되어 병사들의 그동안의 장마폭우 때마다 치루던 고생을 덜 수 있었고, 급양관리시범을 위한 대대 환경개선에도 도움이 되었다. 한편 노후된 부대 환경 개선을 위해 나무껍질과 적벽돌을 활용해 카페식 분위기를 조성한 식당을 확인하며 극찬했던 신임사단장 업무보고 때문에 아마도 필자 부대가 급양관리시범을 맡게 된 결정적이 사유가 되었고,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6)] “신임사단장 업무보고, ‘때의 흐름을 잘 알아서 타야’ 실천” 참조) 추가로 취사장에서 배출되는 오폐수 처리를 위해 브레옥잠 정화조도 만들었다.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4]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⑧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상당산성 서쪽 끝자락 율량동에 있었던 ‘성심양로원’이 지금은 없어졌고 청주교구의 건물만 남아있지만, 필자가 청원대대장으로 근무할 때에는 경로수녀회 최상살 수녀님이 원장으로 봉사하던 곳으로 많은 무의탁 노인들의 마지막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오송에 위치해 뇌성마비 환자들과 무연고 걸인들을 모아 생활하고 있던 ‘믿음의 집’과 마찬가지로 ‘성심양로원’도 대대에서 군기 위반자들이 발생하면 늘 군기교육 과정으로 보내어 봉사하게 했었고, 대대원들도 일손이 부족한 양로원에 수시로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했던 곳이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2)] ‘난득호도(難得糊塗)’를 강권한 노마지지(老馬之智) 참조) 한편 필자의 고향인 평택에서 중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뒤에 집에서 소일하며 지내는 아버지가 불쑥 부대를 찾아오셨다. 우리 집은 동족상잔 비극인 6‧25남침전쟁시에 미군이 약 2만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중공군을 지연시킨 장진호 전투 덕분에 20만명이 피난할 수 있었던 흥남철수로 온 식구가 자유대한의 품에 안겼던 월남가족이다. 마침 휴일이라 부친을 모시고 동네 목욕탕을 갔다. ‘믿음의 집’과 ‘성심양노원’을 수시로 방문하여 노인들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했지만 진정 가까운 부친에게는 소홀했던 필자가 한편 부끄럽기도 했었다. 그래서 평택의 시골집에서는 목욕을 자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고 싶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다리에 피부병이 있었는데 부친도 마찬가지로 다리에 피부병을 앓고 계셨고, 본인이 참지 못하고 심하게 긁으셔서 일부는 피가 난 상처도 있었다. 필자가 그곳을 뜨거운 물로 씻겨드리자 너무도 좋아하셨다. 한참 등을 밀어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다가왔다. 목욕탕 안이라 모두 옷을 벗고 있었는데 그는 완전한 복장 차림의 목욕탕 주인이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손님, 다른 손님들에게서 항의가 들어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어르신을 모시고 즉시 나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말을 전했다. 주인의 말을 들은 필자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전염병이 아니라 유전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계속된 주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복귀했다. 아쉽지만 짧게라도 함께 목욕하며 등을 밀어 드린 것이 작은 보람이었고, 아마도 그때가 10여 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목욕이었다. (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3]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⑦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부모산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232m의 작은 산이다. 본래 이산은 아양산, 악양산 등으로 불리웠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춘무가 복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과 아양산(부모산)을 탈환하여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춘무에게 패전했던 왜병이 아양산에는 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산 주위를 포위하고 보급로를 차단했다. 작전이 보름 이상 길어지자 그 안에 갇힌 의병들은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게 되었는데, 의병장 박춘무의 꿈속에 지팡이를 짚은 백발노인이 나타나 소나무를 가리키며 일어나라고 소리치자, 박춘무는 꿈에서 깨어나 군사들에게 소나무를 뽑게 했다. 소나무를 뽑자 식수는 물론 말에게 목욕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물이 솟아났다. 이것을 알게 된 왜병들이 물러났고 이때부터 부모산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우물을 모유정이라고 불렀다. 옛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부모산성은 고을 서쪽 15리에 있고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2,427척, 성 안에 큰 연못이 있어 가물 때는 기우제를 지낸 연화사가 있었다. 이 산성은 오랜 세월에 많이 허물어져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둘레가 1,220m 나 되는 비교적 큰 산성으로 동서남북에 성문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있다. 현재 성 안에 우물자리인 모유정 주변 참나무에는 주술신앙의 흔적인 금줄이 매어져 있다. 성 안에서 백제계의 토기조각,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기와조각, 고려시대의 청자 파편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산성은 백제 초기에 당이산 토성과 함께 청주의 동서를 지키는 외곽방어 시설로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통일신라 및 후삼국 시대에 기능을 발휘하였고 특히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피난성의 구실을 한 유서 깊은 부모산성이다. 청주를 대표하는 상당산성과 부모산성이 함께 청주 시내를 동서로 감싸고 있고, 상당산성 서쪽 끝자락 시내에 경로수녀회가 임진왜란 때 부모산의 모유정처럼 간절하게 운영하는 성심양로원이 있었다. (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2]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뿐만 아니라, 책임지역 내의 낭성면 지파출소의 예비군 무기고는 너무 허술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불순분자에 의해 피탈이 우려되고 지역 주민들도 불안하게 생각한다며 시급히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해당 예비군 중대장도 그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재신축을 상급부대에 건의했으나 연대 및 사단에 확인한 결과 예산 반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제대로 진척이 안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고(故) 변종석 청원군수에게 자세히 설명하며 도움을 청하자 변 군수는 주저없이 군의회 의장이 낭성면 출신이니 의장과 협의해 함께 추진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의장은 깜짝 놀라며 “그러면 빨리 군수에게 건의해서 무기고 신축 예산을 의회로 제출하면 바로 심의해서 통과시키겠다”는 대답을 얻었다. 당시 예비군 무기고 신축 예산(약 2000만원)을 군청에서 받아내는 것은 타부대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사항이었지만, 군을 아끼고 사랑하는 변 군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대의 애로사항을 해결한 덕택에 낭성면 지파출소 무기고의 취약점이 보강되어 상급부대 회의시에 민관군 통합작전을 위한 효율적인 콜라보 조치로 전파되기도 했다. 또한 사단에서 개최할 ‘국군의 날’ 행사와 동계를 대비해 연병장 복토 및 정비 공사를 앞두고 모래가 많이 필요한데 미호천 모래를 채취하여 활용하려면 통제하는 정부기관의 승인이 필요했다. 육사 동기생인 사단 공병대대장은 효율적으로 민관군통합작전을 잘하는 청원대대가 청원군청에 직접 협조를 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필자는 즉시 군청으로 향했고, 청원군수 집무실에서 사단의 애로사항 설명을 들은 변 군수는 사단에서 필요한 양만큼 미호천 모래 채취를 허용하라는 지시를 바로 내렸다. 다음날 사단 공병대대장은 애로사항이 해결되었다며 고마움의 전화를 보내왔다. 민관군통합작전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협조할 것이라 믿음을 주었던 고(故) 변종석 군수의 애군심(愛軍心)을 사단에서도 인정한다는 생각에 너무도 감사했고 든든했다. 사단에서도 협조를 못하는 사항을 필자가 해결할 수도 있었던 따뜻한 민관군 콜라보의 성과에 대한 뿌듯하고 흐뭇한 미소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1]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한 변종석 청원군수와 군의회 의장은 필자가 대대장으로 취임하여 시행한 예비군 교장 시범에 삼성 장군인 군단장을 비롯한 많은 장군들을 포함한 200여명의 타부대 주요직위자들이 시범참석을 위해 말단 대대까지 최초 방문한 것 등은 청원군을 빛낸 것이라고 극찬하며 덕담을 했다. 또한 국군의 날 행사 참석자들이 그동안 시범 등을 위해 고생한 대대원들에게 무한한 격려를 보내주어 대대 장병들은 보람을 느끼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대대원들은 지역 유지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며 국군의 날을 자축하기 위해 태권도, 총검술 시범, 파티 등을 함께 준비했었고, 참석자들과 행사를 준비한 모두는 매우 즐거워했다. 기념식 및 시범 관람 행사를 마치고 나무껍질로 내부 인테리어한 부대 식당에서 간단한 다과회 파티를 개최했다. 그동안 지역 기관장 및 유지들이 대대를 한두번 방문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매번 부대 출입할 때마다 정문 앞의 교통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나무껍질로 내부 인테리어한 다과회 파티장에서 재향군인회장은 한진희 경찰서장에게 부대 정문 앞의 대로에 차량 소통이 많고 과속도 하고있어 매우 위험하여 사고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역설했고, 참석한 지역 유지들도 입을 모아 대책으로 교통신호등 추가 설치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이런 의견을 접한 군의회 의장과 경찰서장은 건설교통부와 협조하여 대대 위병소 앞에 교통신호등을 추가 설치하기로 약속했다. 얼마뒤에 건설교통부와 협조한 신호등 설치가 실제로 현실화되어 부대를 출입하는 방문객들이 보다 안전한 혜택을 누리는 따뜻한 민관군 콜라보가 구현됐다.(다음편 계속)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510] 망월폐견(望月吠犬)보다는 민관군 콜라보가 더 따뜻하게 만들어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컬럼니스트] 국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에 이바지 함을 그 ‘이념’으로 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 평화의 유지에 이바지 함’이 ‘국군의 사명’으로 군인복무기본법(구 군인복무규율)에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가 37년간의 군생활 동안을 돌이켜보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국군의 사명을 이행하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근무하던 부대가 위치했던 지역의 지자체, 관공서 및 주민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을 더 많이 받았다. 필자는 지역 유지들의 도움과 적극적인 지원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려고 대대원들과 함께 태권도, 총검술 시범, 파티 등을 준비한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 그들을 초청해서 약간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준비했던 국군의 날 행사를 통해 뜻밖의 ‘부대 앞 신호등 설치’라는 또 하나의 민관군 콜라보 성과를 올려 민관군이 함께하는 보다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지고 청주대대로 통합된 청원대대는 당시에 청주시 톨게이트에서 시내 진입시에 가로수 터널을 통과해 강서동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 남쪽에 바로 위치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차량들은 과속을 많이 했고, 대대의 정문으로 진입하려면 언덕을 넘어오는 차량을 주시하며 조심하며 좌회전하고, 또 정문 앞에서 정지하여 출입자 신원 확인도 해야하기 때문에 항상 교통사고 위험이 내재된 상태였다. 필자는 국군의 날 행사에 지역 기관장 및 유지들을 포함해 당시 친 형처럼 각별하게 지냈던 경찰서장 한진희 총경(전 서울경찰청장)도 초청했었다. 물론 교통사고 위험이 있는 대대 정문 앞에는 간부를 사전에 배치해 초청 손님들의 사고 위험을 예방하는 조치도 했다. (다음편 계속)
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6]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하)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조성태(육사20기) 대장은 창군이래 대표적인 정책 및 전략통 장교로 평가받으며 대령 시절에는 이 분야 요직인 육군본부 전략기획과장으로 2차 율곡계획 작성에 참여하며 군사력 건설, 기획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했다. 다만 하나회 출신들에 밀려 대령, 준장, 소장 진급은 2차에 걸쳐서야 이루어졌다. 연대장 시절에는 자신의 부대에서 지뢰 사고로 장병 5명이 부상을 당해 하마터면 군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끝낼 뻔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재능을 눈여겨 봤던 이종구 육군참모총장이 국방장관에 임명되면서 1991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으로 발탁되었다. 1992년에는 중장 진급과 함께 제1군단장이 되었고, 군단장 재임 1년만에 이전에도 그랬듯 빠르게 국방부 참모로 발탁되어 1993년부터 중장 보직 중 정책통이 맡는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직을 역임하고, 1995년에는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2군사령관으로 재직한 후 이듬해 전역했다. 군복을 벗은 후 잠시 국방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다가, 율곡사업 시절 상관이었던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추천으로 1999년 김대중 정부의 2번째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9월에 제주도에서 북한 김일철 인민부력부장과 사상 첫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개최했다. 1999년 6월 제1연평해전에서의 성공적 대응으로 군 내외의 찬사를 받았고, 당시 개발이 막 끝난 K-9 자주포를 연평도, 백령도의 해병 부대에 가장 먼저 배치시켰다. 덕분에 2010년 11월23일 벌어진 북한과의연평도 포격전당시 해병대가 반격을 할 수 있었다. 이때 필자는 사단작전참모를 마치고 합동참모본부 민사심리전 참모부의 실무자로 전군 최초로 사이버 심리작전을 시행하는 대북심리작전 개선 계획을 보고하여 조성태 장관의 ‘절대동의’를 받어내는 성과를 달성하며 다시 만났다. 장관직을 떠난 후인 2004년~2007년에는 열린우리당의 공천으로 제17대 국회의 국방위 소속 비례대표로 활동했다. 그러나 당시노무현 정부의 전작권 전환 추진에 반대했고, 2007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공론화된 북방한계선(NLL) 의제화 여부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공직 생활이었다. 2021년 8월14일 향년 79세로 사망하여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6]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하)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5]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중)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 와중에 대전에 위치한 BCTP단으로 열흘 동안 파견되어 사단 BCTP(전투지휘훈련) 워게임요원으로 사단이 우수평가를 받는데 기여했다. 복귀하자마자 다시 연대본부로 합류하여 ‘공군기지 방어 전술토의’ 준비를 했다. 사실은 연대 참모들이 중심이 되어 연대장을 보좌하며 준비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연대 참모들보다 하루라도 더 많이 작전분야에 근무했고 책임지역내에 비행장 경계를 담당하는 예하부대 대대장이었던 필자의 도움이 필요했었다. 결국 상급부대에 준비된 토의 계획의 보고와 실제 전술토의 전날은 연대본부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사단장과 군사령부에 성공적으로 계획보고를 마친 연대장은 탁월한 지휘기법의 소유자였다. 연대장은 함께 며칠밤을 설쳐가면서 준비했던 까닭에 필자는 인정받음을 느끼게 했다. 또 칭찬을 아끼지 않는 연대장의 믿음에 송구스럽기까지 했고 더욱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BCTP(전투지휘훈련) 워게임요원 파견의 피로도 가시전에 투입되어 연대장이 발표하며 진행하는 전술토의의 리허설까지 했으나, 2군사령관의 일정상 몇 번이나 연기되어 짜증과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그러나 대성공이었다. 공군 비행단장은 전술토의(3월22일)를 통해 개전초기 북한군의 공격양상을 재평가하고 공군의 자체 병력만으로 기지방어가 어렵다는 것을 확신하며 군사령관의 지침에 따라 육군부대의 지원받는 실질적인 합동작전을 수용했다. 또한 후방지역에서 전략적인 작전 수행에 기여하기 위해서 육군부대는 다소 위험이 잔존하더라도 우선적으로 공군기지 방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북한의 초전 공격에 대비하며 우리의 공군력을 보존시켜야 됨을 확실하게 인식했다. 이로써 창군이래 전통을 이어오는 대표적인 전략가로 평가받는 제2군사령관 조성태(육사20기) 대장의 구상이 구현되어 육군 및 공군의 작전 계획을 변경했고, 한반도 내의 전 공군기지에 적용하도록 대통령 훈령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5]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중)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4]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상)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휘관은 일단 취임식에서 부대기를 인수한 그 순간부터 부대의 성패를 모두 책임진다. 부임초 시간을 쪼개어 예하 23개 예비군 중대를 방문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항간에 혹자는 대대장직을 마칠 때까지 예하부대를 한번씩이라도 모두 방문하면 성공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헌데 대대장으로 취임했지만 예하부대를 방문하며 업무 파악에 주력하기보다는 BCTP(전투지휘훈련) 워게임요원 파견, 군사령부 ‘공군기지방어 전술토의’ 준비 등 당면한 추가임무들이 폭주해 기본 업무도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연초에는 일년 동안 진행할 예비군 교육을 위한 예비군 교장 사열 준비가 가장 중요한 임무였지만, 대대 책임지역내에 있는 공군전투비행장에서 다음달 군사령부 전술토의가 계획되어 연대장(신현정 대령, 삼사9기)과 거의 매일 토의준비에 시간을 보냈다. 다행인 것은 예비군 관리대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이완목 부대대장이 주관이 되어 착실하게 부대내에서 교장을 정비하며 사단장의 예비군 교장 사열 준비를 하였고, 반면에 임관후 줄곧 작전분야에서 근무한 필자는 대대가 아니라 연대본부에 들어가 연대장이 발표하고 진행할 전술토의 준비에 매진했다. 사단장과 연대장도 상급부대장인 군사령관이 임석하여 진행할 공군기지 방어 전술토의가 훨씬 더 중요해 모든 관심은 상급부대의 전술토의준비에 집중되었다. 특히 군사령관은 토의 장소를 비행장 안에서 공군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하도록 강조하여 책임 대대장인 필자는 비행단장을 직접 만나 협조도 구했다. 대대장 취임후 거의 한달 가까이 연대장과 매일 접하며 군사령관이 요구하는 전투비행단 방어지침에 따라 어떻게 준비해서 토의를 진행해야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상의했는데 필자와 마찬가지로 연대장도 작전직능으로 서로 공감하면서 잘 소통이 되었다. 하지만 기본 임무인 연초 예비군 교장 사열 준비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대대보다 먼저 시행한 타부대의 사단장 사열에서 성공적인 평가를 받은 인접 대대를 틈틈이 방문해 벤치마킹하면서 대대내에서 교장사열 준비를 주관하는 부대대장에게 보다 창의적이고 효율적이며 재미있는 교장을 만들도록 지침을 하달하며 분주하게 보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4] 대대장 취임후 첫 히트작인 군사령부 전술토의(상)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3]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③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향토사단은 새해가 되면 가장 큰 이슈가 봄부터 시작되는 예비군 교육 준비이다. 그중에서도 겨울 동안 혹한 속에 방치되었던 교장을 신년 상급부대의 지침에 따라 새롭게 정비하여 사단장의 교장사열을 받는 것이 한 해의 시작부터 연말까지의 성과를 결정하는 최대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필자는 그동안 작전분야에서만 근무하여 생소한 임무였기 때문에 기존 참모들의 조언대로 시행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분분이 필자보다 군 선배인 15명의 지역예비군 중대장과 8개의 직장예비군 중대장을 지휘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처럼 필자 옆에서 결정적으로 큰 힘이 되어준 고마운 전우가 있었다. 바로 부대대장 고(故) 이완목 소령(삼사14기, 전역후 마포부근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운명)이었다. 그는 전역을 앞둔 소령이었지만 필자보다는 약 3년 군선배였다. 이미 청원대대에 부임전에 경기도 일산 부근에서 예비군 관리대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필자를 대신해서 현장을 발로 뛰어주었다. 또한 예하 23명의 예비군 중대장들을 완전 장악하고 대대의 임무수행에 지휘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사단장 교장 사열을 앞두고는 공휴일에도 직접 교장에 나와 현장을 확인하여 예하 예비군중대장들도 어쩔수 없이 따라나와 교장 보수 및 정비작업을 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이완목 부대대장은 필자가 취임할 것을 대비해 사전에 먼저 대대로 부임하여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처럼 적시에 천군만마(千軍萬馬)역할을 해주며 청원대대를 빛나게 만든 고마운 선배였다.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3]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③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2]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②
- [시큐리티팩트=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지팡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식을 했다. 7개월 전 사단 전입 신고시에도 절뚝거리며 신고한 필자를 바라보며 불안감을 감추진 못한 사단장은 “김중령은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서 뛰어야 할 대대장직을 수행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불쑥 던지며 걱정했었다. 이취임식 행사장에서도 동기생들과 청원군수를 비롯한 많은 기관장들이 참석했지만, 그들 또한 이렇게 지팡이를 짚은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서 뛰어야 할 대대장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반면에 우여곡절(迂餘曲折)의 역경을 겪으며 어렵게 대대장으로 취임하는 필자를 축하해주기 위해 고맙게도 먼거리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하객들이 강추위가 겹쳐 미끄러운 눈길에 안전한 귀가가 걱정되었다. 아무튼 피로연까지 끝내고 예비군 중대장들을 포함한 모든 하객들이 떠나자, 주임원사는 필자에게 대대장실에 본부 간부들이 모두 집합해 대기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향토사단 대대는 전방 상비사단처럼 많은 인원이 아니라 동원되는 예비군들이 대부분인 간편 인원으로 모두 모아도 대대장실이면 충분했다. 먼저 전임 대대장을 훌륭하게 보필하여 임기를 잘 마치게 한 것과 이번 이취임식 행사 준비를 잘한 노고를 치하했다. 비록 지팡이를 짚고 있는 대대장이지만 앞으로 또 얼마나 피곤하게 만들지 아니면 사기 충천하게 만들지가 궁금하면서도 긴장된 모습의 간부들은 그 다음 말이 어떨게 나올지 귀를 종긋 세우고 있었다. 필자는 취임전에 사단사령부에서 평가단장 및 여러임무를 수행했기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임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연초 예비군교장 사열 준비부터 정신교육 VTR촬영, BCTP(전투지휘훈련) 워게임요원 파견, 군사령부 17전투비행장 전술토의 준비 등 취임 직후 약 3개월간은 정신없이 뛰어야 할 상황이었다. 물론 대대간부들도 모두 알고 있는 임무였으나 필자는 모여있는 간부들에게 첫 한마디로 ‘지휘주목’과 ‘복명복창’을 강조했다. 대대가 아닌 사단을 대표해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어 하나하나 직접 챙기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대대장에게 ‘지휘주목’해서 불필요한 업무가 반복되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하고, 한번 강조한 사항은 반드시 ‘복명복창’을 통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시행하도록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헌데 첫 마디를 내뱉으면서 필자는 미소를 띄울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전방 대성산 기슭에서의 중대장 시절에 새롭게 대대장으로 부임한 강호갑(육사31기) 선배가 취임 후 일성으로 강조했던 것을 똑같이 말하며 상급자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필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2]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②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1]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①
- 청원대대장 이취임식에서 취임사하는 필자 모습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이취임식이 열린 병자년 2월1일은 이른 봄이었지만 눈도 많이 내렸고 유난히 추웠다. 대대장 취임 전에는 연대본부에서 대기하며 인접 사단에서 개최된 ‘예비군훈련 향상방안’ 군사령부 시범식 토의도 참관했고 인접 대대에서 지휘관을 하는 선배동료들도 방문해 조언도 들었다. 청원 대대를 내실있게 발전시켜온 육사 1년 선배인 김종철(육사36기) 중령의 이임사를 들으니 3년 가까운 제31대 대대장 재임기간 동안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겪으며 수고한 순간들이 그려졌다. 필자가 3년 뒤에 이임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쏟아 낼 수 있을까? 필자는 제32대 대대장 취임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역시 쩔뚝거리며 연대장에게 인사하고 단상으로 이동해 집결해있는 대대원들을 바라보았다. 감개무량(感慨無量)한 순간이었다. 중령으로 진급해 사단의 가장 중요한 대대에 취임을 앞두고 대대장반 교육과정을 다니다가 졸업을 1주일 앞두고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큰 수술을 6번씩하고 주변인들에게 걱정을 끼치며 재활치료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군사영어반, 군수관리학교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을 이수하는 등의 애틋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원래 2년전에 무적태풍부대의 군자산 대대장으로 취임 예정이었으나 21개월 미뤘던 취임식을 최전방이 아닌 충북 향토사단에서 했다. 이날의 취임식까지 교통사고, 재활치료 등 그동안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사실 이렇게 대대장을 시작하게 된 것도 기적에 가까운 행운이었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잘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1]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며 혹한속에 대대장 취임①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0]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⑳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곧 향토사단 대대장으로 취임하여 동원 및 일반 예비군 교육을 주로 하는데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 제도를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었고 재수술로 인한 무료할 것 만 같았던 입원 기간은 연구 논문이 육군지에 게재되는 보람을 느끼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3년전 1월 중순경 평택 집앞 도로에서 승용차와 트럭이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후송된 아버님이 중태였었다. 다행히도 성공적인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겼고, 4주 동안 무의식(코마) 상태에서 계시다가 회복되어 장기간 치료 후에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었다. 그 사고 덕분에 힘들고 외로우며 급할 때 조건없이 연락해서 만날 수 있는 ‘진정한 벗’을 확인할 기회이기도 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77)] ‘진정한 벗은 힘들고 급할 때 찾는 친구’ 참조) 그런데 필자도 교통사고후 재활치료의 위기를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한 단계씩 극복하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신(神)께서는 교만하지 말라며 일침을 가했다. 대대장으로 취임하기 열흘 전인 이번에는 아버님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시다가 또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셨다. 평택 성심병원 중환자실의 아버님은 의식은 뚜렷하셨으나 두개골에 약간 금이 갔고, 쇄골과 늑골이 골절된 상태였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근본은 역시 가족이다. 어머니와 처는 치료와 간병을 도맡아 전담했다. 그리고는 “아버님 걱정말고, 부대로 복귀해 우여곡절 끝에 얻게 된 대대장 취임 준비를 잘해라”며 등을 떠밀었고 필자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애를 쓰는 모습이 감사하고 안타까웠다. 마침 이제 초등학생이 된 큰아들이 엄마 곁에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국어사전에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음 또는 그런 일이 많이 생김’이라고 정의된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사자성어가 꼭 들어맞았다.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0]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⑳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연구소장] 병자년 새해가 되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목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대대장 취임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이대로 취임하면 ‘절름발이 대대장 또는 DJ 대대장’이라는 별명이 계속 따라 붙을 것 같았다. 또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어 불편하게 만드는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통합병원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진단에 따라 새해 초부터 재차 병원에 입원했다. 통합병원 도착 다음날 바로 2시간 동안의 수술을 통해 상단핀을 제거하고 다시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이미 3개월 전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만나는 간호장교와 군의관들도 모두 반기며(?) 인사를 해와 병원 생활을 불편없이 익숙하게 할 수 있었고, 짧은 입원 기간이기 때문에 주변의 선후배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며 가족에게도 면회오지 않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회복 및 재활치료의 무료한 시간이 계속되자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를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 수술치료, 입원 기간에 병실에 앉아 필자는 동국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인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남북한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에서 예비군분야를 발췌하여 정리한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제도 비전’이라는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⑲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8]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⑱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대퇴부 재골절에 따른 재수술과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까지 약 3개월여 기간 동안 부대를 떠나있다가 복귀했을 때 반기는 또 한명의 선배 장교가 있었다. 그는 사단BCTP계획반장인 112연대 부연대장 구인회 중령(3사14기)으로 사단사령부가 위치한 증평 토박이였고 차기 작전참모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단BCTP(전투지휘훈련) 평가의 결과가 그의 차후 보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사단장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사단BCTP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할 추가적인 이유가 생겨 자운대 교육사령부의 BCTP단과 사단사령부를 왕복하며 데이터베이스 입력과 운용요원 교육을 주도하며 열정을 다해 준비했다. 특히 향토사단 BCTP를 처음으로 적용하는 훈련이라 소부대 단위로 분리하여 배치하는 것과 지역 주민을 고려한 포병화력 운용도 어려운 과제였다. 또한 전방 사단의 부대운용보다 상이하고 복잡한 전투 양상으로 주민소개, 유입되는 피난민 조치와 중요시설 방호까지 새롭게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다행히도 전 부대에서 야전에 최초로 적용된 BCTP(전투지휘훈련)를 총괄하여 진행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BCTP요약보고서와 참고책자를 만드는 등 약 한 달간의 준비로 시행된 향토사단 최초의 사단BCTP훈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어느덧 충용부대에 전입온 지도 6개월이 넘어 새해를 맞이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8]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⑱
-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7]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⑰
-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수관리학교의 8주간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자 비록 군수관리학교장이 보낸 교육 일등 수료 서신으로 부대의 명예를 높이기는 했지만 사단장, 참모장은 목발을 짚고 있는 필자가 대대장을 제대로 할 수는 있을지 걱정하는 눈빛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단장의 부대지휘와 훈련 결과를 평가하는 전투지휘훈련(BCTP)이 코앞에 기다리고 있어 우선 투입하여 도와주도록 지시가 내려졌다. 왜냐면 해부대는 향토사단을 대상으로 최초 시행하는 훈련이었지만 전에 근무한 부대에서 사단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며 우수한 평가를 받도록 총괄 실무를 담당했음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향토사단 전투지휘훈련(BCTP)에 투입되기에 앞서 두달간 병원이 아닌 군수관리학교의 교육기간 동안에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얼마나 회복됐는지 걱정하던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호출로 통합병원에 갔다. X-ray 결과는 매우 좋았고 이 대위는 1월중에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진단을 내렸다. 한편 1995년 당시의 정치사회는 불신과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낙향한 고(故) 전두환 대통령이 ‘12.12, 5.18 국가반란의 수괴’라는 죄명으로 전격 구속됐다. 국가적으로는 혼돈과 혼란이 지속되었으나 반면에 필자는 성당 수녀님의 귀중한 선물로 따뜻하고 넘치는 사랑속에 있었다. 깊은 산속 청정한 냇가에서 4시간동안 수집한 ‘산골(山骨)’이었다. 수녀님의 ‘이것을 공복에 먹으면 뼈로 바로 내려가 뼈를 잇게 만드는 약제’라며 전해주는 미소 속에 산골 아줌마같이 순박한 정성과 사랑을 느끼게 했다. 1년전 뇌사 위기 상태까지 도달했던 교통사고로 인생은 물론 군생활도 포기하려 했지만 ‘산골(山骨)’까지 어렵게 수집하며 빠른 회복을 기원했던 수녀님의 정성과 주변의 많은 선후배들의 사랑과 배려가 약해지는 필자의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음편 계속)
-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7]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