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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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0]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⑳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필자가 곧 향토사단 대대장으로 취임하여 동원 및 일반 예비군 교육을 주로 하는데 조국통일을 대비한 예비군 제도를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었고 재수술로 인한 무료할 것 만 같았던 입원 기간은 연구 논문이 육군지에 게재되는 보람을 느끼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3년전 1월 중순경 평택 집앞 도로에서 승용차와 트럭이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후송된 아버님이 중태였었다. 다행히도 성공적인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겼고, 4주 동안 무의식(코마) 상태에서 계시다가 회복되어 장기간 치료 후에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었다. 그 사고 덕분에 힘들고 외로우며 급할 때 조건없이 연락해서 만날 수 있는 ‘진정한 벗’을 확인할 기회이기도 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77)] ‘진정한 벗은 힘들고 급할 때 찾는 친구’ 참조) 그런데 필자도 교통사고후 재활치료의 위기를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한 단계씩 극복하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신(神)께서는 교만하지 말라며 일침을 가했다. 대대장으로 취임하기 열흘 전인 이번에는 아버님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시다가 또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셨다. 평택 성심병원 중환자실의 아버님은 의식은 뚜렷하셨으나 두개골에 약간 금이 갔고, 쇄골과 늑골이 골절된 상태였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근본은 역시 가족이다. 어머니와 처는 치료와 간병을 도맡아 전담했다. 그리고는 “아버님 걱정말고, 부대로 복귀해 우여곡절 끝에 얻게 된 대대장 취임 준비를 잘해라”며 등을 떠밀었고 필자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애를 쓰는 모습이 감사하고 안타까웠다. 마침 이제 초등학생이 된 큰아들이 엄마 곁에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국어사전에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음 또는 그런 일이 많이 생김’이라고 정의된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사자성어가 꼭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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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6-0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8]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⑱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대퇴부 재골절에 따른 재수술과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까지 약 3개월여 기간 동안 부대를 떠나있다가 복귀했을 때 반기는 또 한명의 선배 장교가 있었다. 그는 사단BCTP계획반장인 112연대 부연대장 구인회 중령(3사14기)으로 사단사령부가 위치한 증평 토박이였고 차기 작전참모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단BCTP(전투지휘훈련) 평가의 결과가 그의 차후 보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사단장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사단BCTP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할 추가적인 이유가 생겨 자운대 교육사령부의 BCTP단과 사단사령부를 왕복하며 데이터베이스 입력과 운용요원 교육을 주도하며 열정을 다해 준비했다. 특히 향토사단 BCTP를 처음으로 적용하는 훈련이라 소부대 단위로 분리하여 배치하는 것과 지역 주민을 고려한 포병화력 운용도 어려운 과제였다. 또한 전방 사단의 부대운용보다 상이하고 복잡한 전투 양상으로 주민소개, 유입되는 피난민 조치와 중요시설 방호까지 새롭게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다행히도 전 부대에서 야전에 최초로 적용된 BCTP(전투지휘훈련)를 총괄하여 진행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BCTP요약보고서와 참고책자를 만드는 등 약 한 달간의 준비로 시행된 향토사단 최초의 사단BCTP훈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어느덧 충용부대에 전입온 지도 6개월이 넘어 새해를 맞이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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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5-2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7]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⑰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수관리학교의 8주간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자 비록 군수관리학교장이 보낸 교육 일등 수료 서신으로 부대의 명예를 높이기는 했지만 사단장, 참모장은 목발을 짚고 있는 필자가 대대장을 제대로 할 수는 있을지 걱정하는 눈빛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단장의 부대지휘와 훈련 결과를 평가하는 전투지휘훈련(BCTP)이 코앞에 기다리고 있어 우선 투입하여 도와주도록 지시가 내려졌다. 왜냐면 해부대는 향토사단을 대상으로 최초 시행하는 훈련이었지만 전에 근무한 부대에서 사단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며 우수한 평가를 받도록 총괄 실무를 담당했음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향토사단 전투지휘훈련(BCTP)에 투입되기에 앞서 두달간 병원이 아닌 군수관리학교의 교육기간 동안에 대퇴부 재골절로 다시 수술을 받고 얼마나 회복됐는지 걱정하던 군의관(이진우 대위)의 호출로 통합병원에 갔다. X-ray 결과는 매우 좋았고 이 대위는 1월중에 골반쪽의 상단 고정핀을 제거하자는 진단을 내렸다. 한편 1995년 당시의 정치사회는 불신과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낙향한 고(故) 전두환 대통령이 ‘12.12, 5.18 국가반란의 수괴’라는 죄명으로 전격 구속됐다. 국가적으로는 혼돈과 혼란이 지속되었으나 반면에 필자는 성당 수녀님의 귀중한 선물로 따뜻하고 넘치는 사랑속에 있었다. 깊은 산속 청정한 냇가에서 4시간동안 수집한 ‘산골(山骨)’이었다. 수녀님의 ‘이것을 공복에 먹으면 뼈로 바로 내려가 뼈를 잇게 만드는 약제’라며 전해주는 미소 속에 산골 아줌마같이 순박한 정성과 사랑을 느끼게 했다. 1년전 뇌사 위기 상태까지 도달했던 교통사고로 인생은 물론 군생활도 포기하려 했지만 ‘산골(山骨)’까지 어렵게 수집하며 빠른 회복을 기원했던 수녀님의 정성과 주변의 많은 선후배들의 사랑과 배려가 약해지는 필자의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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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5-23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6]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⑯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편 부대에서는 이상신(갑종197기) 사단장이 필자가 37일간의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하며 부대에 들려 신고도 안하고 임의로 군수학교 교육에 입소하는 것은 소속을 무시한 괘씸한 행동이라며 인사 조치를 못한 인사참모와 군수참모에게 꾸지람을 하며 오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필자는 사단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수술후에 목발을 짚고 있는 또 모습을 보이는 것이 송구스러웠고 군수참모도 입교일이 다급하니 어느정도 회복되면 빨리 퇴원해서 우선 군수학교로 입교하라는 조언에 그만 무례를 범했다는 용서를 구했다. 또한 과거 수방사에서 사단장은 동원처장으로 필자는 작전장교로 함께 근무했음을 은근하게 표현하여 부드럽게도 만들었다. 사실 군수관리학교 교육중 휴일에 주로 찾아간 곳은 김포(현재 성남으로 이전)에 있는 수도통합병원이었다. 그곳에는 필자와 함께 당시 이상신 사단장이 대령 계급으로 동원처장으로 근무했던 수방사의 참모장이자 28사단장을 역임한 고(故) 이영대(학군4기) 장군이 췌장암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故) 이영대 장군은 필자가 수방사에 이어 28사단에서도 사단장으로 모셨다. 헌데 필자의 교통사고 당일에 박기준 장군에게 사단장직을 이임하는 이취임식이 열렸었다. 그는 사고 소식을 듣고는 후임 사단장에게 선처를 부탁한 덕에 이처럼 군수관리학교에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준 은인이었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90~192)] ‘잔인한 4월도 나에게는 축복이었다’참고) 이 장군은 육본 감찰실장으로 근무하며 중장 진급이 거의 확정적일 때 췌장암이 발견되어 병원치료를 받고 있었다. 방문 당시에는 악화된 상태로 살이 모두 빠지고 앙상한 몸이었지만 필자의 손을 잡고 여유있게 미소지으며 “희철아, 너는 스트레스를 절대 받지 말고 군생활 잘해라”라고 오히려 목발을 짚고 있는 필자의 건강을 걱정해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얼마 후 먼길로 떠나셨고, 현재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필자에게 미소를 보내며 영면에 들어있다. 한편 군수관리학교장 이상선 장군은 입교하는 학생장교들의 학습 독려를 위해 과정 수료와 동시에 개인성적표를 사단으로 보내는 방침을 시행했다. 통보된 서신에는 위의 사진과 같이 필자가 1등하여 교육사령관 표창을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방사에서 동원처장과 작전장교로 함께 고(故) 이영대 장군을 모시며 근무한 인연도 있었지만, 군수관리학교장이 보낸 서신을 보고받자 사진과 같이 ‘Good’ 표시를 하면서 오해는 풀렸다. 그러나 이상신 사단장은 이 서신을 보고 필자를 군수직능으로 계속 알고 있었다는 또다른 오해는 남아있었다는 후문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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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5-2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5]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⑮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8주간의 교육을 받으면서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은 군수직능의 장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략과 기획, 작전 등 모든 직능의 장교들도 알고 있어야 정책과 전략 및 작전을 수립할 때 필요하며 효율적인 통합전투력이 발휘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첫주차에 군수소요분야 교육을 받으면서 모든 직능의 장교들도 알아야 한다는 진리를 절실하게 느끼며 우선 확신했고, 그때부터는 새롭게 접하는 군수분야 수업에 재미가 붙어 교관들의 농담과 숨소리까지 노트에 모두 적으며 집중했다.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은 8주간으로 전후방 각지의 원거리 부대에서 참여한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숙식을 제공했다. 또한 본인이 원하면 수업후에 퇴근도 가능했다. 헌데 학과가 끝나고 대부분의 동료 학생들은 숙소에 남아있지 않고 매일 저녁 시내로 빠져나가 개인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필자는 재수술 치료를 받은지도 얼마되지 않아 행동도 불편하며 목발을 짚고 있어 다른 곳으로 이동이 제한되었다. 그래서 8주간의 교육기간 동안에 평일은 학교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보내며 새롭게 접하며 재미를 느낀 군수분야 수업 내용을 복습하고 예습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어느덧 그해 11월도 하순으로 접어들며 군수관리학교 교육도 마지막 시험까지 치루고 수료가 며칠 안남았는데 학교본부에서는 예기치 않은 실날한 토론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필자도 놀랐다. 그동안의 시험 결과가 군수참모를 역임한 군수전문가들을 제치고 작전직능의 필자가 1등을 하여 평가 성적대로 표창하면 안된다는 논리와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대로 표창하자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결국 학교장에게까지 보고하면서 결과대로 표창하자는 것으로 결정되어 필자는 뜻하지 않은 교육사령관 표창도 받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군수분야에 문외한(門外漢)이었던 작전직능의 필자가 군수전문가 선배들과 동료들을 제치고 1등한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재활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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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5-2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3]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⑬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 동기는 전방 GOP사단에서 부하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임무를 수행해 모범적이며 성공적인 수색대대장으로 인정을 받으며 근무하여 차기 군사령부 군수참모부 실무자로 선발되어 내정됐다. 그러나 보직 만료가 얼마남지 않은 시기에 부하 선임하사관 한 명이 가정문제 등으로 고민하다가 돌연 배신하며 월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군부대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부하들의 실수에도 해당 지휘관이 책임을 져야하는 특성이 있는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조직이다. 그도 마찬가지로 지휘책임을 지고 보직해임되어 군사령부가 아닌 군수학교로 교육을 받으러 왔고 선발된 요직인 군사령부 근무도 어렵게 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굳건한 신앙심으로 버티며 의연했다. 반면에 박병준과 주충근 등 많은 동기들이 사단 선봉대대 표창을 받으며 모든 상을 싹쓸이했고, 전방 철책에서 근무하던 임방순 동기는 대대장 근무 중에 임진강으로 침투하는 공비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려 희비가 엇갈렸다. 비록 뜻하지 않은 어려운 상황에 따라 군수학교에서 함께 교육을 받게 된 의연한 모습의 이00 중령은 필자에게는 정말로 고마운 동기, 전우이자 친구였고 하늘이 선물로 보내주신 수호천사 라파엘이었다. 8주간의 교육 기간동안 목발을 짚고 이동하려면 등교시에 책가방도 들 수 없었으며 식당에서 배식받기도 제한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마다 동기 이00중령이 수호천사처럼 필자 옆에서 수발을 들며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군수 업무에 익숙하지 못한 작전 직능의 필자에게 교관의 강의 내용을 반복해서 설명을 해주어 역시 우리 동기들은 유능하고 탁월하다는 확신도 가질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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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5-1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2]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⑫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담당 군의관에게 교육 입교 날짜가 이미 정해져 있어 완치 후 퇴원보다는 군수학교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에 입교해 회복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아직 퇴원시기는 조금 이르기 때문에 무리한 행동으로 재발할 수도 있으니 교육기간 동안에 각별히 조심하라’는 군의관의 당부를 듣고 통합병원에서 퇴원해 군수학교로 향했다. 지금은 위례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신도시가 형성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특전사와 종합행정학교, 학생군사학교 등이 위치한 군사지역이었다.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도 종합행정학교내에 있었던 군수학교에서 시행되어 전반기 동안 교육받은 군사영어반에 이어 후반기 8주간도 또 위례에서 지내게 됐다. 약 20명의 군수직능 중령급 장교들로 구성된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은 이미 군수참모 직책을 경험했거나 곧 참모로 부임할 자원들이라 대부분이 선배들이었다. 필자의 동기들은 당시에 대부분이 대대장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필자처럼 작전직능의 장교도 군수과정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장교들이 전 직능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한다는 취지에 따라 잠시동안 공통 주특기로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헌데 학생장교들 중에 군수직능의 동기생이 유일하게 한명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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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5-0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1]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⑪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산넘어 산이라고 했지만 재골절 수술 회복이 빨라졌고, 며칠만 더 있으면 퇴원할 때가 다가왔는데 또 다른 걱정이 앞섰다. 그해 7월초 사단장실에서 전입신고시에 DJ라는 별명의 필자는 차마 지팡이를 짚고 신고를 할 수 없어서 지팡이는 비서실에 놓고 약간의 통증은 있었지만 절뚝거리며 사단장 앞에 섰었다. 인사참모의 구령에 맞추어 절뚝거리며 신고한 필자를 바라보며 불안감을 감추진 못한 사단장 이상신 장군(갑종197기)은 불쑥 “김중령은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현장에서 뛰어야 할 대대장직을 수행할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던져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한달만에 대퇴부 안의 골수정이 또 뿌러지면서 재골절되어 통합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고, 9월중순에 다시 절뚝거리며 목발을 짚고 사단장 앞에 서면 5개월 뒤인 이듬해 2월에 대대장으로 취임하도록 허락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에 불안한 고민을 했다. 그때 문뜩 입원하기 전에 사단참모 회식에서 군수참모가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당시 군수참모로는 “의무적으로 군수학교의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에 입교해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업무가 많아 고민중이다”라며 상급부대의 지침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었다. 바로 군수참모에게 전화를 거니 대환영이었다. 사단은 걱정하지 말고 퇴원하면 곧바로 군수학교로 가서 본인 대신 ‘군수기능통합관리과정’에 입교하라는 전갈이었다. 필자는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생각해낸 군수학교 8주간의 교육이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반에 이어 재활치료를 위한 최후의 피난처가 되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다음편 계속)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5-02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10]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⑩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어느덧 한달즈음 지나갈 무렵, 휠체어에서 일어나 목발을 집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그동안 많은 동료와 선배들이 위문을 다녀갔다. 특히 아리랑 전집을 구해 무료한 시간을 달래게 만들어 준 인접 사단 기동대장으로 근무하는 김남홍 동기는 병실에 찾아와 대뜸 간호사에게 허락을 받았으니 환자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으라고 재촉했다. 대대장 짚에 올라 이동하면서 오랫만에 필자가 군인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만들었고 얼마되지 않은 시간이 지나자 짚은 인근 동네 목욕탕 앞에 멈추었다. 이미 수술자리는 살이 올라 괜찮았지만 필자의 몸을 김 중령이 보고는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6번의 수술로 생긴 바늘 자국을 세어보니 약 270개로 팔, 복부, 허벅지, 골반 등 온몸에 문신처럼 자리를 잡았고 그동안 운동을 못한 왼 다리는 젓가락처럼 말라 있었다. 김 중령의 부축을 받아 뜨거운 탕에 들어가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옆에 앉아 등을 밀어주는 동기생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며 감사한 감동의 시간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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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09] 재활치료의 위기를 호기로 만드는 비법⑨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그해 9월초, 날씨는 가을로 서서히 접어들고 있었는데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내리는 때늦은 폭우가 며칠간 계속됐다. 때맞춰 아들과 가족이 면회를 온다고 했는데 걱정이었다. 그날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가족이 입원해 있던 통합병원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산은 쓰고 있었지만 세찬 비바람에 온몸이 모두 젖어 있었고 일주일 만의 만남에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으로 갓 입학해 학교생활에 적응이 됐는 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던 아들은 점점 좋아지며 건강을 회복하는 필자의 모습에 안심하며 재롱을 마음껏 부렸다. 사실, 지난해 교통사고 후 장기간 입원시에 간병하던 가족이 집을 비우자 외삼촌집에서 그 기간을 지내며 아쉬웠는데, 이번에도 아빠는 다시 입원했지만 엄마와 함께 있으며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빗줄기가 멈추지 않자 동두천까지 다시 올라가야 할 가족이 걱정되어 날 밝을 때 출발할 것을 재촉했다. 같이 있다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뜸들이던 가족과 아들은 손을 흔들며 집으로 향했다.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밤 늦은 시각에 동두천 집에 도착해서 연락이 왔는데, 그동안 내린 폭우로 통합병원 앞 도로가 침수되어 택시 운행이 안되어 아들을 업고 침수지역을 건너 큰도로로 이동하여 간신히 택시를 타고 복귀했다고 한다. 흙탕물 속에서 아들을 잃어 버리까봐 조심조심 건널 때 정말로 아찔했던 순간이었다며 함박 웃는 전화소리에 가슴이 찡하며 절여왔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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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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