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8(목)

소통시대
Home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실시간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기사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9) 사관학교 졸업식은 대통령 아닌 초임장교의 출발점
    ▲ * 세계 최초의 최대 모니터(30m x 12m, 월드미디어 제작)가 등장한 2011년 계룡대 합동임관식[사진제공=김희철] 꽃피는 봄이 오면, 땅속에 숨어 있던 다이아몬드가 지상에 올라와 빛을 발하는 사관학교 졸업식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매년 3~4월 꽃피는 봄이 오면 각군 사관학교에서는 ‘졸업식’과 빛나는 다이아몬드 소위 계급장을 모자와 양어깨에 달고 장교 ‘임관사령장’을 받는 ‘장교 임관식’이 열린다. 이명박대통령 시절부터는 졸업식은 각군 사관학교에서 진행됐고, 장교 임관식은 육해공군 사관학교와 간호사관학교, 학군장교(ROTC)출신 등을 모두 모아놓고 대통령이 임석해서 한꺼번에 장교 합동 임관식을 하는 행사로 변경되었다. 원래 각군별 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에는 대통령이 항상 주관했었다. 그런데 MB시절 대통령의 스케줄이 너무 바쁘다보니 사관학교 행사에 전부 참석하기가 힘들었다. 같은 성격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행사에는 국방부 장관이 가고, 또 다른 자리에는 참모총장이 온다면 행사 주최 측의 입장에서는 차별받는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따라서 합동임관식은 순전히 군별, 출신별 임관식 행사에 대한 형평성을 위해서 생겨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국안보협업연구소(KSCI ) 위기관리센터장인 김진형제독은 ‘“대한민국 군대를 말한다.”라는 저서에서 “이것은 행사의 의미보다 형식을 더 우선시하는 사고에서 비롯된 판단이다”면서 “장교 임관식이라는 본연의 가치에 중심을 둔다면 누가 임석하느냐는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대통령은 매년 하나의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다. 우리나라처럼 임석상관의 개념이 아닌 초청인사 자격으로 참석한다. 초청연사의 역할은 사관학교 졸업생을 위해 장교로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의미의 조언과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군과 안보에 대한 정부의 생각을 발표하는 것이다. 실제 2017년의 경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에, 펜스 부통령은 해군사관학교에, 던퍼드 합참의장은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생들을 위한 연설을 했다. 우리나라도 이젠 임석상관 참석 여부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갈등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이다. 졸업생도들이 모여 교육받는 생활관은 바로 생도대 ‘양로원’ 행사간 부동자세 유지 때문에 대통령 유시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어 졸업을 앞둔 4학년 생도들은 동계휴가를 끝내고 생도대로 복귀하면 모든 자치제도 지휘권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별도 공간에 모여 졸업전 교육을 받는다. 그때 신입생도들은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으며 생도대 전체는 새로이 편성된 간부 생도들에 의해 새로운 바람이 잔잔하게 일고 있는 상태이다. 당시에 후배 생도들은 졸업생도들이 모여 있는 생도대 4층의 별도 공간을 ‘양로원’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곳으로 올라가기를 꺼렸다. 훈육관들도 공식적인 만남의 시간 이외에는 후배들과의 접촉을 자제하도록 권장했다. 아마도 후배들이 선배의 권역에서 빨리 벗어나 자신들 만의 자치 지휘체계를 신속하게 정립시키려는 의도였다. 기초군사훈련부터 시작된 4년간의 사관생도의 제복을 벗고 빛나는 다이아몬드 소위 계급장을 부착한 군복을 입기 직전의 졸업생도들은 멋있어 보였지만 힘들기만 했던 생도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이제 더 넓은 광야로 나아가 더 험한 세파를 극복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그들이 마지막 교육과정인 2~3주간의 전방 야전지휘 실습을 마치고 생도대로 복귀하면 졸업식 행사 연습이 기다리고 있다. 본 행사에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주관하다보니 학교측에서는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 예행연습도 여러번에 걸쳐하며 사전 점검을 받는다. 생도대장, 학교장, 육군총장, 장관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절차로 리어설을 한다. 이때 생도들과 졸업생들은 만평 넓이의 화랑대 연병장의 초봄 칼바람 추위와 싸우며 행사 준비에 고생을 한다. 실제 행사간에는 해사 옥포만의 아스팔트 연병장이나 육사 화랑대 연병장 잔디에서 ‘열중쉬어’상태로 오랫동안 서서 대통령의 유시를 듣는다. 그러나 부동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느라 제대로 들어볼 수가 없었다. 행사 시작 훨씬 전부터 장시간 도열한 상태로 있다 보면, 생도들이라도 깜빡 졸다가 총을 떨어뜨리거나 심지어 주저앉거나 쓰러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앞뒤 좌우 생도들 간에 서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면서 긴장을 해소시키는 노력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대통령 유시를 들을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결국 임석상관의 연설은 행사의 주인공인 초임장교와 생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말하는 자신만의 독백 수준의 이야기로 귀결되며 언론사의 기사거리로 활용될 뿐이다. 거룩한 졸업 및 임관식의 주인공은 새로이 탄생하는 장교들이 돼어야 사관학교든 학군장교든 출신 구분 없이 국가방위의 선봉장이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갖고 한길로 달려온 졸업생도들이다. 졸업 및 임관식은 그 자체로 거룩하다. 그 가치를 빛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귀빈을 초청하여 축하와 귀감이 되는 연설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넓은 세상으로 떠나는 졸업생도들의 마음가짐을 다질 수 있게 하고 후배생도와 가족들이 축하하는 것이 임관식 행사의 더 큰 의미일 것이다. 사관학교 졸업식에 대통령이 임석하면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연합사령관, 각군 참모총장, 연합사부사령관, 해병대사령관 등이 같이 참석한다. 수행원들까지 포함하면 과도한 인원이 이동한다. 이렇게 되면 행사의 진정한 의미는 사라지고 눈도장 찍기, 겉보기 행사의 불필요한 허례허식으로 변질 된다. 졸업 및 임관식의 주인공은 임석상관이 아니라 새로 탄생하는 초임장교들이다. 이들은 임관선서를 하며 국가 수호의 최후 보루로서의 첫발을 내딛는다. 따라서 행사의 모든 중심은 졸업생도들인 초임장교여야 한다. 선진 외국의 경우, 사관학교 졸업식에서는 졸업생, 재학생, 가족들이 모두 앉아서 진행한다. 행사의 형식 보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지휘관과 초청연사의 말과 표정과 몸짓을 듣고 보면서 공감한다. 중간 중간에 감동의 박수도 보낸다. 연설자 자신만의 일방적인 만족이 아니라 참석한 생도 와 졸업생, 가족들이 듣고 공감하는 훈시의 문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이젠 정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합동임관식 보다는 문화가 다른 육해공군의 특색에 부합된 각 군별 행사로 환원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제 3월이 되면 또 각군 사관학교 졸업식과 임관식이 계속된다. 이번에는 국민의 소리를 적극 수렴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현 정부의 현명한 판단과 조치를 기대해 본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8-02-2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8)‘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하다
    ▲ 필자(김희철)의 육군사관학교 생도시절 모습 고등학교에서는 전공학과보다 대학교 브랜드가 중요하다‘16년도 어김없이 11월 17일에 대학입시 수능시험이 치루어졌다. 수시로 대학입학이 확정되는 것도 수능점수가 결정적이다. 아무리 내신 성적이 좋아도 수능점수가 나쁘면 대학입학은 어려워진다.나는 말도 많은 58년 개띠로 격동의 세월 현장에 항상 있었다.58년 개띠부터 전국 최초로 중학교 입시도 시험에서 추첨제로 바뀌었고, 고등학교 입시도 소위 뺑뺑이 추천제로 바뀌었다. 오늘날 수학능력평가처럼 그때에도 대학입시 예비고사(연합고사)가 있었다.당시 학생들의 적성과 희망직업에 대한 고려는 고등학교 입시를 담당한 선생님들에게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국의 많은 고등학교 중에서 소위 SKY대학을 몇 명이나 합격시켰느냐가 고등학교의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였다. 명문대학이라면 비인기 학과 또는 농업·예능계열을 가리지 않았다. 조금만 가능성이 있으면 학교에서 권했다. 지원학과 선택에 있어 개인의 특성은 그냥 참고사항일 뿐이었다. 특히 미술과 음악, 체육 분야에 재주가 있고 성적이 조금 높은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당해 연도에 서울대, 연대, 고대 등에 한명이라도 더 합격시키는 것이 고등학교 선생님, 학생, 그리고 부모들의 목표였다.설명회에 나온 육사 생도 선배의 '군인관'에 홀린 듯 매료돼 그런 시대 풍조에 젖은 학생이었던 나는 고교 3학년 어느 날에 인생을 결정짓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날의 경험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의 느낌과 열정은 바로 직업으로서의 군인에 대한 글을 쓰고자하는 원동력이다. 앞으로 이 글이 청소년과 청년들, 나아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층에게도 꿈을 주기를 소망한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매년 생도들을 출신고등학교에 설명회를 가짐으로써 우수한 재원들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운명의 날에도 육사에 입교한 선배 생도가 학교강당을 빌려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손에 끌려 강당 한 귀퉁이에 앉아 선배의 열띤 설명을 들었었다.눈동자가 보일 듯 말듯 눌러 쓴 사관생도 모자 밑의 생도 얼굴에서는 힘차고 차분하게 터져나오는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는 입만 보일 뿐이었다.그런데, 가슴에 꽉 꽂히는 말이 들렸다.“사관생도 신조...하나, 나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였다. 후배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명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 그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사실 그 때만 하더라도 군인 그것도 육군사관학교 생도 하면 좀 더 근육질에 우락부락하고 키도 크며 만능 스포츠맨 같은 전투적인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때문에 그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선배님, 저같은 사람도 사관학교에 갈 수 있어요?”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자 선배생도(육사35기 조정)는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며 못마땅한 듯 툭 말을 던졌다. “자네는 공부 좀 하나?”개인적으로 찾아간 육사 생도 선배는 의외로 냉담한 반응어이가 없었다. 그렇게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의 길을 강조했던 선배 입에서 의외의 질문을 들었기 때문이다.“아~, 예~, 성적은 조금 괜찮아서 지금 학교 특수반에 포함되어 대입준비를 하고 있습니다.”그러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우선은 공부를 잘해서 연·고대 수준이 돼야 1차 합격할 수 있고, 그 다음은 체력이 좋아야 한다. 의지만 있으면 자네도 가능해…” 기대하지도 않고 있다는 듯 대답을 하고 떠났다.담임선생님은 특수반(성적 우수학생들만 따로 모아 일과 후에도 보충수업을 시키는 학급)에다 그림도 잘 그리니 서울대학교 미대를 갈 준비를 하라고 조언을 해주셨고 나도 별뜻없이 순종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 단계였다.그런데 육사에 입교한 선배 생도의 이 한마디에 선생님의 조언은 점점 희미해졌다. "어차피 한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그 선배처럼 직업군인의 길을 걷는다면 얼마나 매력적일까" 이런 상념을 하면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던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결국,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택하는 길보다 험난한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몇 일 뒤, 담임선생님께 육사시험에 응시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인생은 Birth(출생)과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삶이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너가는 생(生)이라고 했다. 언제나 누구에게도 아슬아슬하게 외나무다리 고비를 넘어가며 죽음의 문으로 다가간다.지옥의 세계 속에서 희망의 빛을 쫓아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는 고3 시기는 더 많은 리스크(Risk)와 유혹 그리고 장애가 버티고 있는 과정의 시간이다.육사를 지원하겠다는 말을 들은 담임선생님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라면서 단호하게 반대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가면 얼마나 너의 인생이 멋지겠느냐. 실현 예술가로서 명성도 얻으면 삶의 희망이 실현되는 것이다"라고 나를 설득했다. 선생님은 육사지원서 작성은 불가하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그러나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간신히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선생님은 학업성적 평가 차원에서 육사시험에는 응시하되 합격여부를 떠나서 서울대 미술대학은 반드시 응시하여 시험을 봐야한다는 조건이었다. 아무튼 조건부라도 육사시험원서를 작성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내었다.그 당시 가정 형편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강원도 원주의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학비가 많이 들어가는 미술대학 뒷바라지를 부탁하는 것도 사실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평택에, 필자는 서울 충정로 셋방에서 세집살림 하기에도 아버님 봉급 가지고는 빠듯한 생활이었기 때문이었다.일단은 육사로 목표를 정했다.여름방학 때 종로의 사관학교입시 전담학원에 등록했다. 마침 그 학원에는 동창생 3명이 사관학교를 목표로 함께 수업을 받게 되었다.드디어 그해 10월 육사시험에 응시했다.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기 위해서…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현)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주요 저서 및 연구-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전역군인
    2018-01-1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7)사관생도의 인턴과정 ‘야전지휘실습’서 깨달은 교훈들
    ▲필자의 4학년 생도 실습때 동행했던 육사 동기생들 ⓒ뉴스투데이 (안보팩트=김희철 기자/발행인) 사관학교 ‘장교 인턴과정’ 야전 지휘실습은 3,4학년 두 차례 실시 사관학교는 국가의 간성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그래서 미국 육군사관학교(West -point)는 2000명이 넘는 인원을 선발하여 대위로 진급하면 임관 인원의 50%를 사회로 복귀시켜 공무원 및 기업인 등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도록 시스템화하였다. 이는 올바른 국가관과 사명감을 지닌 인재들이 군에서보다도 사회 각층에서 맹활약하여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고교시절 지방 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사관학교는 군 장교를 양성하는 개념에서 국가의 일꾼들을 배출하는 일종의 인턴과정으로 전환됨으로써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 군도 한번 즈음 제고해볼 가치가 있다. 태릉골 육사는 학년별로 특화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겨울방학을 끝내고, 신입생도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시기에 2학년은 야전부대로 배치되어 분대원으로 병생활을 체험하며, 3학년 때에는 전방부대에서 소대장 지휘실습을 10일~2주간씩 진행한다. 일종의 장교 임관전의 ‘인턴과정’이라 할 수 있다. 4학년은 생도대에서 고급장교가 되기 위한 리더십과 영어 등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으며, 졸업을 앞둔 시기이라 그들이 모여 있는 별도 공간을 속칭 양로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필자의 생도 시절에는 3학년과 4학년 때 야전 지휘실습을 받았다. 3학년 실습 때 인상 깊었던 육사 선배, 예비사단 오뚜기 부대의 All cover 만능 소대장 문맹자 병장도 소대장보다 뛰어난 리더십과 숙달 수준 보여, 인간의 잠재력에 대해 깨달아 육군 부대는 전방(GOP), 예비, 향토, 동원사단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3학년 지휘실습은 예비사단에서 각 분대까지 배치되어 병 생활을 체험하며 약 2주간 진행되었다. 예비사단은 전방(GOP)사단 후방에 위치하여 GOP 경계근무 보다는 주로 교육훈련 위주로 운용된다. 당시 사단장에게 신고한 뒤 트럭에 나누어 탑승하여 실습 대대에 도착했을 때 가슴은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왜냐면 1년 뒤에 내가 지휘해야할 병사들을 직접 만나본다는 기대감에 설레였기 때문이었다. 보병중대에는 4명의 소대장이 있다. 그중 화기소대장은 선임 장교가 통상 임무를 수행한다. 주로 학군장교가 대부분이고 간혹 단기사관, 삼사, 육사출신 장교가 끼어 있다. 도착한 대대에는 다행이도 2년 선배인 35기가 1명 있었고 그는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소대장 BOQ에 짐을 풀고 소대에 배치되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 중대는 학군과 삼사 출신 소대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3학년 야전실습 때 만난 육사 선배 소대장ⓒ뉴스투데이 만나 본 병사들은 오히려 전방(GOP)사단을 선호했다. 전방(GOP)사단은 경계근무 만하고 휴식 시간이 보장되나 예비사단은 365일 계속되는 훈련에 힘들기 때문이었다. 2~6주 동안, 하계나 동계 종합훈련을 나가면 야외에서 텐트 생활을 하며 한여름 폭염과 한겨울 혹한을 이겨내야 하고, 춘추계 진지공사에 투입되면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것은 더 고역이었다. 배치된 중대 병사들의 가정형편을 파악해 보니 대부분 중학교와 고교졸업자 였고 대학생 출신은 10% 정도였으며, 50% 정도가 홀어머니, 부모이혼, 고아 등의 결손 가정이었다. 게다가 1979년 당시에는 문맹자도 중대내에 있었다. 그래도 병장이 되면 소대장보다도 오히려 리더십이나 교육훈련, 작업에 대한 지식과 숙달정도가 더 뛰어났다. 거기서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놀라움도 느꼈다. 일과를 마치고 소대장 숙소인 BOQ에 돌아와 타중대에서 실습한 동기들과 다시 모여 많은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대대에 1명 밖에 없는 육사선배의 근무모습은 All cover하는 활동 영역을 갖고 있는 만능의 맥가이버를 보는 것 같았다. 소대장 보직이지만 대대 교육장교 대리근무를 하면서 작전장교의 업무를 보좌하고 전 대대원이 모여 의식행사를 할 때에는 단상에 올라가 애국가를 지휘하고 또 소대원 교육훈련 시간에는 현장에서 지도 감독도 하였다. 태권도 유단자인 그는 상급부대 측정에 대비해서 전 대대원을 대상으로 품세와 대련 등을 일일이 지도하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대대 실습기간 마지막 전날에 그 선배는 소대장의 쥐꼬리만한 봉급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을 모아놓고 저녁을 사주며 “임관해서 야전에 나오면 육사 출신들은 맥가이버가 되어야 한다.” 고 말하며 “육사교육에 버릴 것이 없다. 특히 검도, 유도도 있지만 태권도는 반드시 유단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3금으로 음주가 불가능 하지만 선배가 주는 것이니 마셔라하며 따라준 막걸리 한잔의 그 맛과 한마디 조언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전방(GOP)사단 칠성 부대에서의 야전 지휘실습에서 느낀 ‘병사들의 투지’ 그 병사들,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와 ‘조직 관리’의 중요성 깨닫게 해줘 4학년 소대장 지휘실습은 전방(GOP)사단에서 진행되었다. 이미 3학년 하계 군사훈련 때 소대에서 대대까지 전술훈련과 주요 화기를 다루는 법까지 교육도 받았고 4학년 하훈 때에는 공수훈련까지 받은 상태라 당장이라도 소대장 근무를 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아직 정식으로 임관한 상태는 아니었다. 전방 지휘실습을 했던 1979년은 아래(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장공비가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출몰하는 시기였다. 때마침 칠성부대는 북한 무장공비가 GOP를 뚫고 내려와 아군 경계근무를 무력화 시키고 다시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모든 간부 및 병사들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 자료출처=2016 국방백서 252쪽 참조 대남 침투도발 양상은 1960년대에 1,011건의 최고점을 찍다가 1970년대 311건으로 감소하여 다음 연도부터는 직접침투 보다는 해안과 타국을 이용한 루트 등 간접침투로 전환하여 국내로 들어와 지금도 암약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사단 및 연대 신고를 하고 백암산 정상의 GOP중대로 배치를 받았다. 화랑대에서 사단까지 이동하여 신고하고 소개받는데 하루가 걸렸고 다시 연대를 거쳐 GOP중대 소초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 되었다. GOP는 산악으로 이루어져 도보로 이동을 하기에 많은 시간도 걸렸고 지치기도 했다. 수 백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니 무릎 관절도 통증이 왔다. 마침 GOP중대장이 육사 6년 선배님이었다. 백암산 정상의 거친 바람과 친구가 되니 수염도 덥수룩하고 거친 모습에 피곤해 보였다. GOP는 야간 경계근무가 주로 핵심 일과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가진지를 점령했다가 은밀하게 주진지를 점령하여 적의 침투도발을 감시하는 것이다. 심심해 질려고 하면 북한의 대남 방송이 졸음을 깨웠고 전반야에는 선임하사관이, 후반야에는 소대장이 근무실태를 확인 차 순찰을 돈다. 경계근무중에 간혹 중대장과 대대장의 순찰을 접하게 된다. 병사들은 이것을 더 두려워했다. 그들로부터 근무자세 불량을 지적받으면 바로 영창행이기 때문이었다. 얼마전 경계근무에 실패하여 철책을 은밀하게 절단하고 내려와 그 침투조는 남쪽을 정찰하여 정보 수집을 다한 후 다시 강습 돌파로 철책을 뚫고 돌아갔다. 그들과 조우한 우리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반면 그 당시 인접 백두산 부대에서는 침투한 3명을 모두 사살하여 비교가 되다보니 칠성부대의 장병들은 그 일부의 실수로 치욕과 수치심에 전체가 침체되어 있었다. 해당 지휘관은 경계 실패의 책임을 지고 보직해임 되었지만 남아 있는 간부 및 병사들도 대책 강구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피곤에 절어 있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로 잘못한 자가 그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로 인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다른 자들까지 피해를 주는 것은 무언가 겉돌고 있는 모습이었다. 산 정상의 중대 본부 막사 뒤에는 몇 평정도의 평평한 공간이 있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그곳에서 사기가 충천한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군대에서 먹다 남은 밥과 반찬을 잔반이라고 부른다. 심야 근무를 끝내고 막사로 돌아올 때 그 평지 잔반통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산돼지 가족을 만났다. 사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니 매우 익숙해져 있는 모습이었다. 씩씩거리며 먹는 모습에서 침체에 빠져있는 장병들과 대조적으로 사기가 충천한 모습이었다. 부대원들은 잔반을 버려야 하는데, 오히려 멧돼지들의 먹이도 나누어주면서 잔반을 처리해줄 수 있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고 생각되었다. 사관학교 4년 동안 가장 많이 듣는 말중에 하나가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였다. 경계실패의 후유증으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칠성부대 장병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 와중에 지휘실습 나온 사관생도들에게 관심을 써주는 모습에서 오히려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를 찾을 수 있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은 당연한 것이나 군대는 사기를 먹고 사는 동물이다. 실습을 마치고 화랑대로 복귀하면서 대규모의 조직은 혼자만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특히 사람들을 잘 관리하고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느끼며, 이 부대가 조속히 수렁에서 빠져나와 사기충천한 부대가 되길 기원했다. 이러한 장교 인턴과정인 야전 지휘실습을 통해 사관생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엿한 육군 소위로 성장되어 갔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전역군인
    2018-01-1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6)미·중전쟁 위기 속에도 사관생도의 보행은 지축을 울려
    ▲육사생도들이 지축을 울리는 ‘화랑 의식’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김희철] (안보팩트=김희철 선임기자) 전 유엔주재 美 대사 볼턴의 대북 군사공격론 속 미·중전쟁 가능성 증대 트럼프 자문역인 대북 강경파 존 볼턴 전 유엔 미국대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열린 공화당 행사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때가 곧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USA Today가 지난 17일 보도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2일 “북한과 전쟁 가능성이 매일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 와중에 H-6 전략폭격기와 Su-30전투기 등 중국 군용기 5대가 지난 18일 오전 사전통보 없이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과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에 무단 진입했다. 이에 맞서 출격한 우리 공군 전투기 10대와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 10~20대가 이어도, 대마도, 독도 주변 상공에서 약 3시간 30분 동안 뒤엉키는 상황이 벌어졌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영공은 아니지만 이곳에 진입하는 외국 항공기는 관할국의 사전 허가를 받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어도 부근이 중국 방공식별구역(CADIZ)과 중첩된다는 이유로 사전 통보한 적이 없다. 이날 우리 측 핫라인을 통해 KADIZ 진입 이유를 묻자 중국 측은 “일상적인 훈련일 뿐 한국 영공을 침범할 의도는 없다”고 답했다고 합참은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 중국 국빈 방문 직후에 중국이 군사적 위협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을 굳이 한 배경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때 맞추어 최근 美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에서 “중국의 한반도 개입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은 묘한 연관성을 느끼게 한다. 이번 랜드연구소의 보고서는 한반도 유사시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현실화하면서 중국군의 남하 정도를 구분해 중국군의 개입 시나리오를 4개 상정했다. ▲ 자료=랜드연구소/방송화면 캡처 가장 깊게 내려오는 시나리오는 중국군이 평양 남쪽까지 전진해서 영변의 핵 시설을 장악하고 남포~원산을 잇는 동서길이 250Km 구간에서 한·미 연합군과 대치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평양을 포기하고 영변 핵시설 정도로 남하하는 것으로 청천강과 함흥만을 잇는 200Km 구간에서 한·미 연합군과 대치한다. 동서 전선이 비교적 짧아 가장 현실적이다. 그 밖에 완충지대를 형성할 목적만 갖고 북중 국경에서 내륙으로 100Km 진입할 경우에는 500Km, 50Km 진입할 경우에는 550Km로 대치 구간이 길어 부담을 갖게 한다. 최근 북중 접경지역에서와 남쪽 방공식별구역에서의 빈번한 중국군 활동을 볼 때, 고려시대 몽골 침입과 조선시대 임진왜란, 그리고 6.25남침전쟁 때 처럼 주변 강대국이 한반도에서 대리전을 치룰 가능성은 점점 높아만 가고 있다. 잔치에 쓰이기 위해 잘 길러온 돼지는 전쟁을 대비하는 군대와 같다. 랜드연구소의 선임 연구위원 브루스 베넷은 이번 보고서에서 “북한 급변 사태 종료 후 한국이 통일을 이룩하고 중국군의 완전 철군을 유도하려면 한국군의 독자적 작전 능력을 시급히 향상시켜야 한다.”고 했다. 4가지 시나리오 모두, 미군이 있는 한 중국군은 철군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이 철수하는 대신 미군도 서울 남쪽까지 혹은 한반도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게다가 북한이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체제생존 보장 외에도 한반도의 적화통일과 중국의 견제란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 사례로 지난 3월6일 동창리에서 사거리 1000km로 스커트ER 미사일을 동해에 발사한 것은 중국 방향으로 서북쪽 1000km내의 수많은 중국 대도시를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군도 지난 11월 북중 국경선 일대에서 한반도 투입부대로 알려진 북부전구 38집단군이 “연한-2017”훈련을 진행했다. 하와이에서도 매달 핵투발 시 대피훈련을 시작했고 일본도 민방공훈련을 강화 하였다. 그런데 실제 전쟁터가 될 수도 있는 한반도에서는 직접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민방공 대피 훈련을 강화한다는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2018년 국방예산은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인 7% 증가한 43조 1581억원으로 확정되었다. 3축체제(Kill-Chain,, KAMD, KMPR) 등 북핵 대응체계 조기 구축을 위한 방위력 개선비는 13조 5203억원이나 국방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18-2022년 국방중기계획에 제시한 목표로 향후 5년간 78조 2000억을 투입할 것에 대비할 때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주민들을 못 입히고 못 먹여 굶어 죽기까지 하면서도 핵개발과 미사일 실험을 하여 앞으로 3개월 뒤면 완성된다고 존 볼턴 전 유엔미국대사와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말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 하와이나 일본 도쿄에서도 하는 민방공훈련도 소홀히 하고 3축체계 구축도 걸음마 수준이다. 잔치에 쓰기 위해 평소에 돼지를 잘 먹여 길러야 살찐 돼지를 요리하여 풍족한 잔치가 될 수 있다. 군대도 마찬가지이다.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면 안되지만 유사시 전쟁이 일어날 때 적을 능가할 수 있는 강한 군대가 없으면 그 국가는 패망한다. 고대 로마의 장군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국가안보는 군인만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국민이 혼연일치가 되어 대비해야 한다. ▲ ⓒ육사생도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절제된 동작을 생명으로 삼고 있다. [사진=김희철] 올해 육사 등 사관학교 응시율 역대 최고 수준...사관생도의 보행은 지축을 울린다.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올해 사관학교 응시율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해사 39 : 1, 공사 38.6 : 1, 육사 32.8 : 1 등 우수한 젊은이들이 대거 사관학교로 몰렸다. 현재의 사회를 이끌어 가며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좀더 정신을 차리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 미래의 지도자들에게 보다 행복하고 발전된 국가를 인계할 책임이 기성세대들에게 있다. 새해가 되면 생도대에는 새로운 바람이 분다. 신입생도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으면 재학생들의 계급장이 쪼개질 날만 기다리게 된다. 벽돌 하나는 둘이 되고, 셋은 넷이 된다. 근무 생도들도 바뀌어 후배들을 지휘하게 된다. 필자도 학년 진급을 앞두고 임관을 앞둔 선배들의 새로운 각오의 말이 떠오른다. “첫째, 더 명예로워지자. 둘째, 최후의 제복을 사랑하자. 의지가 약한 사나이는 곧 죽은 사나이를 뜻한다. 철학이 없는 군인은 백정과 같고, 우리들이 흘리고 있는 땀방울 하나 하나는 진주가 되어 맺힐 것이다. 초인(超人)답게 의지와 인내로 현실을 극복하자.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 지축을 울리는 사관생도의 보행자세..!” 연평도 포격 도발 시 해병대 지원율이 엄청났고 지금도 해병대 입대를 위해 별도로 헬스장 등에서 체력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피끓는 젊은이를 대표하는 사관학교 응시율이 계속 최고점을 찍는 우리 대한민국 전도는 양양할 것이다. 왜냐면 화랑대를 비롯한 각군 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의 보행으로 지축이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전역군인
    2017-12-20
  • 북핵실험, 개미 놀음 구경에 도끼자루 썩은 격
    ▲ 그래픽=뉴스투데이 (안보팩트=김희철 기자) 북한의 제 6차 핵실험 도발은 김정은의 내부통제 및 대미협상 카드용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3일 13시 30분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당일 12시 29분에 북한의 6차 핵실험 도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NSC 전체회의에는 정의용 안보실장, 이낙연 국무총리, 송영무 국방부장관, 강경화 외교부장관 등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이 전부 참석했다. 그 와중인 15시30분에 북한 <조선중앙TV>에서 오랜만에 재등장한 고령의 이춘희 인민방송원이 “6차 핵실험은 대륙간탄도로켓(ICBM)장착용 수소탄 시험이다.”라고 발표했다. 74세의 이춘희 북한 간판 앵커는 김정은 일가의 입으로 불리면서 노동당 간부와 불륜도 있었지만 김일성·김정일의 연이은 신뢰를 받아 각종 도발 등 중요 이슈에 꼭 등장한 인물이다. 9.9절(인민군 창건일)을 맞이하여 중요 도발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김정은은 6차 핵실험을 통해 트럼프를 위시한 국제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미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의도가 분명하였다. 또한 북한 인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춘희 인민방송원의 발표로 전 인민들을 단합시키는 내부 통제용 목적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상단 그래픽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은 2005년에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했다. 6.25남침전쟁이 끝난 후 1970년대부터 김일성은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였고 실제로 김정일 정권에서 핵실험은 시작되었으며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완성단계에 돌입했다. 미온적 대처가 더 큰 화(禍)를 불러...역대 정부의 천문학적인 '대북 송금액' 용처 불투명 북한의 대륙간 탄도로켓(ICBM)과 6차례 핵실험은 주민들의 생활상은 최악의 상태에서 모든 자금을 끌어 모아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자금을 만들기는 어려운 경제환경이다. 그런데 과거자료를 검사하다가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바로 우리나라 역대 정부별 대북 지원 금액이었다. 국회 외교통상부에서 통일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북송금액은 김영삼정부 12억2,027만달러(12%), 김대중정부 24억7,065만달러(24%), 노무현정부 43억5,632만달러(42%), 이명박정부 19억7,645만달러(19%), 박근혜정부 3억3,727만 달러(3%)로 집계되었다. 또한 핵개발 포기목적의 경수로 차관으로는 김대중정부 9,271억원, 노무현정부 4,473억원등 총 1조 4000억원을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대북지원금에는 식량과 물품이 포함되어 핵개발에 투입되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지원된 현금들의 사용출처는 우리가 확인할 수 없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우리 돈으로 북한이 핵과 수소폭탄을 개발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한 일이다. 1955년 6.25남침전쟁 휴전 후 64년 동안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북의 2,3차 핵실험 당시 자료를 보면 핵무기 개발에 쏟아 보은 돈은 66억 달러라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10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이를 중국산 옥수수 구매가격으로 환산할 경우 1,940만t을 구입할 수 있고, 북한 주민의 약 8년치 배급량에 해당된다고 한다. 북한의 핵개발 비용은 채광·정련시설·농축시설 등을 포함한 핵시설 건립에 약 20억1천만달러, 핵기술 연구개발에 3억1천만달러, 핵시설(원지로, 재처리농축시설)가동에 27억2천만달러, 핵무기 개발에 13억4천만달러, 핵실험에 2억달러 정도가 소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내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당단부단 반수기란(當斷不斷, 反受其亂)과 이이제이(以夷制夷) 이제 휴전 이후 64년 동안의 대북 관계 경험을 통해 우리는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북한의 전략은 분명하다. 화전양면(和戰兩面)과 피실격허(避實擊虛)전술 및 전략이 기본이면서 이제는 미국에는 “경고”, 일본엔 “과시”, 한국과 중국에 “무시”하는 전략으로 발전했다. 이번 9월3일 6차 핵실험처럼 7차례의 UN안보리결의와 트럼프의 강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계획대로 계속 진행하였다. 6차 핵실험을 통해 핵개발 소형화가 거의 완성된 작금에 북한의 다음 단계는 하와이와 미 본토 사이의 태평양에 실거리에 준하는 대륙간탄도로켓(ICBM)을 발사 실험하는 것만 남았다. 북한의 2016년 4차 핵실험 후속조치로 “한미 공조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한미 맞춤형 억제 전략으로 탐지(Detect), 방어(Defense), 교란(Disturb), 파괴(Destroy)의 4D작전 개념과 KAMD체제, 30분 내에 선제타격 할 수 있는 강력한 대응을 강조하였다. 사기(史記)에는 ‘당단부단 반수기란(當斷不斷, 反受其亂)’이라는 명언이 있다. 즉 당연히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여 처단하지 않으면 훗날 그로 말미암아 도리어 재화를 입게 된다는 말이다. 그 동안의 5차에 걸친 핵실험과 연평도 포격도발 천안함폭침, 무인기 영공침공 등에도 엄벌보다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개념으로 대북 경제지원 9조원이라는 당근을 제공함으로써 이번에 6차 핵실험으로 도리어 우리와 전 세계를 위협하게 되었다. 마치 중국 역사상 경제 문화적으로 가장 융성했던 슈퍼부국 송나라가 자기의 100분의 1도 안되는 금나라와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화친에만 몰두하였던 상황과 비슷하다. 심지어 재상 진회는 금나라와 전투만 하면 승리하는 명장 악비를 전투 중에 소환하여 죽이는 등 비겁한 평화를 구걸하다가 결국 금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결의안 채택이나 비난성명 약발 없어...외교채널 동원한 '레짐 체인지' 등 검토할 시점 개미 노는 것 구경하다가 도끼자루 썩어버린 격이다. 결의안 채택, 비난, 무력시위 등 구경만 하면서 말로만 위협하는 것보다는 이제는 도끼자루 썩기 전에 개미를 잡는 따끔한 채찍이 필요한 시기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9.11테러의 주역인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제로니모 G 제지작전”과 이란의 후세인, 시리아의 카다피를 처리했던 참수작전(Decapitation strike) 을 통해 레짐체인지(Regime Change)하는 방법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때문에 섣불리 시도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방법을 제시해 본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세력 견제를 위해 북한을 내치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중·러와 협상을 하여 참수작전을 중국 또는 러시아의 힘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전력이 전개하여 전쟁 발발 일보 직전에 우리는 중·러와 긴밀한 협상으로 북한의 레짐체인지(Regime Change)가 달성되면 그들의 정치 목적에 부합되게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이런 방안이 채택될 때에는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방책이 시행되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유사시 외부 도움 없이도 우리 스스로가 국가를 지킬 수 있는 전술핵 배치 등 자주국방 구현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북한을 정확하게 인지하여 전 국민을 한뜻으로 일치단결시키고, 전술핵 배치 등 한미공조 방안을 실행하는 가운데 더욱 강화시킨 우리의 자주국방력이 바탕이 된다면 조국통일의 길은 한걸음 빨라지지 않을까? 위기(危機)는 기회 (機會)이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현역군인
    • 안보·국방교육
    2017-09-0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5)육사생도의 휴가 여행, 그 추억의 위력
    ▲ 필자(왼쪽)가 육사 생도 1학년 때 동기생과 함께 했던 설악산 여행모습 [사진=김희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 로버트 테일러의 ‘애수(哀愁)’, 전쟁 중 휴가로 만난 비비안 리와의 아픈 추억(哀愁) 6·25전쟁 중에 피난지인 부산과 대구에서 개봉되어 많은 관객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영화 애수(哀愁)에서는 25세의 로이(로버트 테일러) 대위가 제1차 세계대전 이 진행 중일 때 런던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연인 마리아(비비안 리)를 만나 사랑의 꽃을 피웠다는 줄거리로 시작된다. 로이 대위는 다시 전쟁터로 나갔다. 그러나 마리아는 얼마 뒤에 전사자 명단에서 로이의 이름을 발견하고 좌절한다. 그녀는 전쟁 중 어려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거리의 여자가 되었다. 1년 뒤 거리에서 로이 대위를 다시 만났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 마리아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야 만다. 훗날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중년이 된 로이 대령이 마리아를 처음 만난 워털루 다리 위에서 슬픈 과거를 회상한다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와 같이 전쟁 중에도 휴가는 시행되고 그 여행 중 소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평소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힐링과 에너지 충전을 위한 휴가 여행은 꼭 필요하다.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지만 함께 여행을 하면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여름) 정복’을 입은 하룻강아지의 단순·무모한 도전, 설악산 등반 필자는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생도 1학년 때의 설악산 여행이다. 화랑대에서 하계군사훈련을 받는 1학년 생도들의 수영교육시간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갔다. 중·고교시절 적십자에서 운용하는 수영교실을 다녔지만 당시 수영실력은 맥주병이었다. 그래서 학급 편성은 테스트를 통해 수준별로 구분한다. 그 때 유난히도 힘들게 교육을 받으면서 한 동기생과 친해져 불현 듯 하계휴가기간에 설악산 등반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첫 휴가를 출발하기 전에 2학년 상급생도에게 휴가교육을 받았다. 휴가도 생도대 생활의 연장이기 때문에 생도 명예에 손상되는 언행을 철저히 금하라는 교육이었다. 삼금(금연, 금주, 금혼)제도를 철저히 지키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기 집밖을 나와 외출 할 때는 생도신분임을 잊지 않도록 하얀 '하(여름)정복'을 입어야 한다는 강조사항엔 마음이 걸렸다. 상급생도의 강조사항은 학교정문을 나오자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 갔지만 하정복을 입으라는 상급생의 지시는 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집 밖을 나올 때부터 한여름에 정복을 입는다는 것은 참으로 제약이 많았다. 며칠 뒤 설악산 등반을 위해 약속장소인 청량리역으로 나갔다. 물론 새하얀 하정복을 입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친해진 귄oo 동기와 춘천행 열차에 올랐다. ▲ 선배의 조언을 받고 간편한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필자(왼쪽)[사진=김희철]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양구 선착장에 내렸다. 원통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갔을 때 타 중대 소속 2학년 생도를 만났다. 경례를 하고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당황하는 상급 생도의 눈빛을 느꼈다. 그 때 그 상급 생도는 전투복 차림이었다. 그는 “아니, 하정복을 입고 설악산을 넘겠다고?”라고 어이없다는 듯 질문을 하였다. 필자는 분대 2학년 선임에게 집 밖을 나올 때에는 반드시 정복을 착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자 그 선배는 아무튼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자신의 여행길로 떠났다. 백담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 등산복을 입은 키가 큰 청년이 “어이, 두 생도”하고 불렀다. 만나보니 타 중대 4학년 생도였다. 그 선배도 마찬가지로 혀를 끌끌 차면서 “2학년 상급생도가 강조를 했어도 어떻게 하정복을 입고 설악산을 넘느냐?”하고 한심한 듯 나무라며 따라오라고 했다. 하룻강아지 '리스크'를 해결하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연륜 전쟁 중에 휴가도 꿀맛이지만 그 선배의 4년 생도생활 마무리를 앞두고 떠나는 휴가여행의 의미와 소중함은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헌데, 골칫덩이 미꾸라지가 끼였다. 그것도 산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정복차림으로 설악산을 넘겠다고 한다. 사계절 무수한 조난자가 발생하고 심지어 사망사고도 일어나는데... ▲ 가운데 키 큰 생도가 서길원 전 6군단장(육군중장) 맨 앞이 필자[사진=김희철] 4학년 선배인 서길원 생도(훗날 6군단장(중장)역임)의 얼굴에서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무모한 1학년 두더지 두 명을 무사히 설악산을 넘게 도와줘야 한다는 선배로서의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야가 확보될 때 우선 수렴동 대피소까지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등산화였지만 필자는 하얀 정복에 단화를 신고 있어 산길 오르기에 무척 힘이 들었다. 드디어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필자는 007백 안에 운동화와 편히 입을 수 있는 생도셔츠 그리고 양말, 세면도구를 담아왔기에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정모와 하얀 정복 상의를 곱게 접어 백에 넣었다. 우린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는데 4학년 선배는 등산백 안에 준비한 것이 꽤 있었다. 결국 1학년 후배는 4학년 선배의 간식을 얻어먹는 웃지 못 할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창문 밖의 수많은 별들은 유난히도 빛을 발하고 있었고 떠오른 밝은 달은 설악산 방문을 환영하면서도 무모한 도전에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선배 생도들과의 짧은 만남에서 얻은 강렬한 추억 생도대 교육장이 아니라 설악산 수렴대피소 주변의 밤새와 벌레 그리고 요란한 계곡 물소리의 화음이 배경이 된 가운데 아스라한 별빛과 달빛 아래에서 선배의 생도생활과 앞으로의 군 생활에 대한 비전을 들으니 또 다른 깊은 감동이 와 닿았다. 밤은 깊어간 것 같은데 아침 태양빛이 창문을 두드렸다. 우린 휴대를 못했는데 선배의 배낭에는 간이 취사도구가 있었고 선배들이 조리한 아침을 얻어먹고 간편한 생도셔츠와 운동화 차림으로 007백을 들고 드디어 마등령으로 출발했다. 산 속에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친구가 된다. 약 6시간의 산행 길에 반대쪽에서 오는 등산인을 만나면 반갑게 안부를 묻고 화이팅을 외치며 교행한다. 체력이 좋은 생도들이라 빠른 걸음으로 추월할 때에도 인사를 나눈다. 수렴동 대피소에서 만경대·오세암을 지나 마등령 기점에 도달하니 벌써 2시간 가까이 지났다. 험하다는 마등령을 타고 금강문과 금강굴을 통과해 비선대 계곡에 도달하니 4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 생도 1학년 때 강원도 망상 해수욕장에서 수영교육 증 촬영한 사진. 맨 앞이 필자. [사진=김희철] 신흥사 입구를 지나 설악동 주차장에 도착하자 허기도 지고 매우 지쳐있었다. 그 때 4학년 선배들은 버스비까지 챙기며 우리를 쫒아내듯 버스에 태우고 그들만의 세계로 돌아갔다. 아마도 골칫덩어리 막무가내 아우들을 무사히 데리고 험한 설악산을 넘었다는 안도감과 책임감에서 해방되는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인간관계의 친밀도는 만난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1차 대령 진급심사에서 낙방한 필자, 25년만에 '설악산의 추억'을 만나 소중한 조언 얻어 최근 유행하는 건배사 중 하나가 “짧은 만남, 긴 인연...!” 이다. 양구 소양강 선착장에서 만난 2학년 선배생도나 백담사 입구에서 만난 4학년 선배 생도와는 휴가를 마치고 화랑대에 복귀했을 때에 다시 부딪히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고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런데 25년 지나 필자가 용산 합동참모부에 근무할 때 짧은 만남, 긴 인연 사건이 발생했다. 필자는 능력과 인품이 부족하여 당시 대령 1차 진급 심사에서 낙방하여 실망해있을 때, 설악산 등산길에 만났던 2학년 선배를 다시 만났다. 마침 그 선배는 국방부에 파견 나온 기무부대에 있었고 그해 진급을 해서 진급 축하 회식을 하다가 같은 식당 화장실에서 만났다. “김 중령, 오랜만이야. 그 때 그 설악산 등반길에 하정복을 입고...” 그 선배는 산행길 짧은 만남에 가졌던 첫인상을 25년이 지난 후에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내년 진급 가능성을 고려할 때 현 보직에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고는 본인이 직접 가능성이 있는 자리에 추천을 해주었다. 그 선배의 결정적 도움으로 다음해 대령 진급할 수 있는 고생하지만 진급희망이 있는 보직을 얻을 수 있었다. 하룻강아지의 단순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선배들의 노마지지(老馬之智) 연륜으로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었고, 휴가 출발 전 직속 선배의 강조사항을 지키기 위해 새하얀 하정복을 입고 설악산을 넘으려고 했던 필자의 원칙을 준수하려는 무모한 모자람을 좋게 읽어준 덕택이었다. ▲ 생도시절 필자가 그린 백두산 천지 ⓒ김희철 상무정신(常武精神)은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이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현재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계 수영훈련장에서 만난 친구와의 설악산 등반 약속을 지켜야했지만, 외출 시 정복을 반드시 입고 다니라고 강조했던 선배의 지시사항도 어길 수 없어 원칙을 지킬려고 감행했던 그 무모한 순수함이 25년 뒤 효과를 발생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안보에 대해서는 바뀔 수가 없다. 현 문재인대통령은 합참의장 이취임식을 직접 주관하는 등 잘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율로 얻고 있다. 안보(安保)에는 여야, 보수·진보가 없다. 최근 군 수뇌부가 모두 교체되었다. 그들에게도 임전무퇴의 상무정신으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의 위기에 현명하고도 강력하게 대응하기를 당부하면서 국가와 군을 위해 큰 업적을 남기길 기대해본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소통시대
    2017-08-2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4) ‘노예 공관병’ 논란의 해법, 남재준과 이기식
    ▲ (위쪽)지난 9일 오전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이 열린 청와대 충무실에서 진급 장성들이 신고식을 위해 자리하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군 장성 진급자들과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청와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 문재인 정부의 첫 군 수뇌부 인사는 군대문화 혁신의 신호탄 정부는 지난 8일 국무회의를 열고 첫 군 인사에서 8개자리 중 7개가 바뀌는 대장급 인사를 의결했다. 합참의장을 제외한 여섯 자리 모두는 진급인사였다. 정경두 40대 합참의장(前공군총장)은 이양호 의장(25대, 공군), 최윤희(38대, 해군)에 이어 세 번째 비 육군 합참의장이 되어 해군장관, 공군의장 군 지휘부 라인업은 1948년 창군 이후 6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또 육사 37기와 38기는 이번 인사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이는 전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의 공관병 사건과 38기 진급 대상자에 대한 갖은 투서 남발에 대한 후유증이라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아무튼 해·공군의 진급에 비해 적체되어 있던 육군 장성 진급이 해소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동아일보 이철희 논설위원은 “8.8육치일”이라고 사설에 게재했다. 이를 예상이라도 한 듯 문재인 대통령은 진급 보직 신고식에서 “軍중심은 육군, 육사가 근간이란 것을 국민이 안다”며 “육군·육사 섭섭해 하지 말라”고 말하며 군 인권 침해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군대 문화 혁신을 기대했다. ▲ 그래픽=뉴스투데이 노무현 정부 시절 남재준 총장의 실질적인 군대문화 혁신이 귀감돼야 생일선물도 되돌려 보내는 '청렴결백'을 실천한 남재준식 솔선수범이 필요할 때 군 개혁, 군대문화 혁신은 창군 이래 70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장 잘 써먹는 정책기조였다. 김영삼 정부가 군 개혁이란 미명으로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국민과 군의 호응을 얻어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도 군 개혁을 위해 유임시켜 임명한 첫 번째 육군참모총장은 전 국정원장인 남재준 대장이었다. 필자도 40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하면서 실제로 체감한 군 개혁을 손꼽으라면 남재준 총장이 솔선수범하면서 시행한 군대 문화 개선이었다. 남 총장은 초급 장교 시절부터 「원칙주의자」로 소문이 난 선비였다. “군 장교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신적, 도덕적 용기이지 요령 있는 처세를 의미하는 융통성이 아니다”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전형적인 야전군인으로서 자신의 생일날 부하 장교가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선물을 준비해오자 그는 그것을 돌려보냈다. 청렴결백한 그는 현재까지도 단 한 칸의 아파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총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대대급 이상 주둔지에 간부체력단련을 위해 설치된 테니스장에 근무하는 사병을 없앴다. “볼을 전투를 위한 사병들이 주우면 안 되고 간부들이 직접 주어라, 심판도 간부들이 봐라.”라고 했으며, 전출입하는 간부들이 지휘관 숙소를 방문하는 것과 본부대장과 군인 가족이 공관에 출입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이것을 어길 시에는 사단장이라도 보직해임을 공헌하여 군내 잘못된 관행을 일소 시키고 군 본연의 임무수행에 전념토록 기풍을 조성하였다. 필자가 참모로 근무할 시절, 인사참모가 지휘관에게 전입 인사 갈 것을 충고할 때 몹시 당황했었다. 지휘관 공관으로 인사갈 때 선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또한 남재준 총장은 인사 청탁하는 자에게는 불이익을 부여하도록 강조했고 군대 내의 학연·지연·혈연 등을 없애는데 주력하였다. 그런 그에게 2004년 국방부 앞에는 ‘남재준 총장이 자기 사조직 인사들을 지난 10월 인사 때 대거 장성으로 진급시켰다’는 괴문서가 뿌려졌다. 군 검찰은 진급심사를 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를 사상 처음으로 압수수색했다. 이에 반발한 남 총장은 전역 지원서를 냈으나 반려됐다. 괴문서 사건은 결국 그가 개입한 정황이 없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군 내부에서는 당시 군 인사, 군 사법개혁 정도를 걷던 남 총장에 대해 일부 세력이 그를 흔들기 위한 공작을 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이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문구를 완전히 삭제할 방침을 세웠을 때도 남 총장은 ‘북한 주적론’을 고수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참모총장 시절 남긴 이 말은 지금까지도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다. “나는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다. 나는 조국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나는 조국에 대한 헌신과 봉사가 나의 최고의 가치가 아닌 순간, 조국을 위해 과감히 군복을 벗겠다.” 또한 2003년 육군 장교들을 대상으로 ‘장교의 도’를 강연하며 다음 같이 강조한 바 있다. “장교는 절대적 자유혼을 지닌 자유인으로서 스스로 선택한 장교의 책무를 다해야 하며, 이것이 장교가 갖추어야 할 가치관이다.” 남재준 대장은 2005년 4월 육군참모총장 이임식을 마치고 전직 총장에게 관행적으로 제공되는 관용차를 마다하고, 본인이 직접 20년된 소형 승용차를 운전하여 떠났던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뜻은 이러했다. “국가예산을 한 푼도 허투루 사용할 수 없다.” 총장 재직 시절 그는 군의 정치적 중립과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의 삶을 실천하여 '참군인'으로 후배장교의 존경을 받았다. 또한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고 부하들과 동거동락을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골프를 배우지 않고 달리기로 체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회식 때에는 군가를 즐겨 부르며 군인임을 잊지 않았다. 그는 군을 떠났지만 강직하고 소신껏 참 군인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 얽힌 에피소드들은 과거 “한신”, “채명신”장군과 함께 참군인의 표상으로 후배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 (왼쪽)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과 이기식 전 25대 해군작전사령관 [사진-해군작전사]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 이기식 제독을 휴일 방문했던 추억이 남긴 교훈 지휘관 승용차 반납하고 소형 개인 승용차 사용 … 공사(公私) 구분으로 해군 전투력 강화 이기식 前해군작전사령관(중장)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직후부터 약 두 달간 천안함 브리핑을 맡았다. 당시 합참 정보작전처장(준장)으로 재직 중 대잠수함 작전 전문가였기에 가장 적임자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천안함 브리핑 당시 그는 많은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천안함이 침몰돼 바닷속에 있는 것만 확인 됐을 뿐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는 40년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좌초설, 기뢰 충돌설, 미군 잠수함 충돌설부터 자작극이라는 말까지 천안함 괴담이 확산됐을 때라고 고백한다. 가짜뉴스가 언론에 도배돼 괴담이 확산되고 남남갈등이 초래된 때문이다. 훗날 중앙일보의 천안함 폭침사건 7주기 대담 취재에서 그는 “북한이 어뢰로 공격하기로 결정한 것은 기존처럼 수상전을 반복해서는 한국 해군을 이겨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며 “잠수정 어뢰로 은밀하게 공격해 물증을 남기지 않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이유에 대해 이 제독은 두 차례의 연평해전(1999년·2002년)과 대청해전(2009년)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기습 공격을 했지만 한국보다 더 큰 피해를 보고 패전했다”며 “그 때부터 복수를 다짐하고 다양하게 준비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제독은 “천안함 폭침사건의 경우도 끈질긴 수색작전을 통해 우리가 어뢰를 찾아내 결정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었다”며 “북한은 우리가 어뢰를 찾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희생 장병과 유족을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고 또한 감사하다”며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순직한 한주호 준위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하며 “이들의 투철한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한동안 말을 잊었다. 그러곤 눈물을 쏟아 급히 손으로 닦았다. “천안함 생존자들이 아직도 심리적 충격으로 고통 받고 있다. 국가는 희생자 유족과 생존 장병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폭침사건 발생 2년 뒤인 2012년 천안함이 소속된 2함대사령관(해군소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한 일간지에서는 그의 2함대 발령을 두고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 부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2함대사령관 재직 시 필자는 사관학교 동기생인 이 제독을 격려하기 위해 2함대사령부를 방문했었다. 사적인 방문이라 휴일을 택해 이 제독과 고교동창인 학군장교출신 친구와 함께 그를 찾았다. 부대 정문앞에 도착하여 초병에게 사령관을 만나러 왔다하자 초병은 연락을 받았다며 정문 밖에 있는 사령관 공관 방향을 안내해 주었다. 공관에 도착하자 이 제독 부부는 반갑게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런데 주차장에 조그마한 소형차가 서있었고, 이 제독은 그 차를 타라는 것이었다. 당시는 휴일이기 때문에 운전병도 휴식을 취해야 하고 사적 방문이기 때문에 부대 지휘관 승용차를 쓸 수 없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필자와 같이 방문한 친구들은 몽둥이로 얻어맞은 충격을 받았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공관병의 노예사병 사건은 이런 군인이 있는데 왜 발생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사령관이 직접 운전을 해서 전시된 천안함을 관람하고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추모비에서 묵념도 했다. 부대 소개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정문 옆에 있는 복지회관에 도착했다. 그 때 복지회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비서실장과 부관에게 이 제독은 점잖게 타이르는 것이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매우 화난 표정이었다. 공식행사가 아닌데 휴일 날 비서실장과 부관이 왜 나왔냐고 질책을 하며 바로 복귀하여 가족과 함께 휴무를 즐기라는 엄명이었다. 잘 준비하기 위해 성의를 표한 비서실장을 질책하는 이 제독이 얄미웠지만(?)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는 이제독이 한편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 제독은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을 거쳐 1차로 3성장군이 되어 해군사관학교장으로 부임했고 그곳에서도 공사(公私)를 명확히 구분하며 부하를 한결같이 아꼈다고 한다. 그리고 “천안함 최후의 종결자” 역할을 위해 25대 해군작전사령관으로 보직을 옮겨 “상비필승”의 기치아래 최고도의 전투태세 확립을 추진하고 엄정한 작전기강 유지 및 원칙에 입각한 합리적인 부대운영을 통해 해군 전투력 강화에 기여했다.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 명예롭게…지휘관은 ‘어항속의 금붕어’임을 깨달아야 지난 11일엔 육군 및 공군참모총장 이·취임식이 계룡대에서 거행됐고 그 전날까지 신임 1·2·3군사령관이 취임을 하였다. 노예사병 논란으로 4성 장군이 전역도 연기된 채 군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고 매스컴에서는 계속적으로 기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 간부들은 한신, 채명신, 남재준 장군과 이기식 제독처럼 참군인으로 군 명예를 위해 노심초사하면서 국가와 군을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15년 계룡대 해군간부들을 대상으로 ‘군인의 길’이란 강연을 했던 남재준 장군은 41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세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나 자신이 두려웠다. 사소한 이익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경계했다. 둘째, 내가 부하들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상관인지 성찰했다. 끝으로 내 자식들이 두려웠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서 내 자식이 손가락질을 받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에 대한 이런 일화를 보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은 군 지휘관을 위한 것이 아닐까 미소 짓게 한다. 특히, 모든 조직사회에서 상관은 속일 수 있어도 부하를 속일 수는 없다. 가장 측근에 있는 공관병 같은 부하들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다. 그래서 지휘관은 ‘어항속의 금붕어’에 비유되기도 한다. 손자병법에도 ‘시졸여애자 고가여지구사(視卒如愛子 故可與之俱死)’ 라며 병사보기를 사랑하는 자식같이 해야 한다. 그러면 함께 죽을 수 있다. 라고 장수의 지휘통솔기법을 알려주었다. 이를 실천한 많은 지휘관들은 이런 자세로 근무한 결과 현직 및 전역한 후에도 부하 장병의 결혼 주례를 도맡아 하기도 한다. 그렇다. 사관생도들은 4년 동안 귀가 따갑도록 국가관과 리더십을 교육받고 체험한다. 그래서 많은 장군 및 군 간부들은 “화랑대에서 동작동까지 명예롭게…” 라는 구호를 마음속에 다지며 군 생활이 끝나고 전역 후에도 애국하는 자세로 살아간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소통시대
    2017-08-1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3)육사 37기 ‘박지만 특혜’ 오해 산 ‘꽃향수’ 공수훈련의 추억
    ▲ 훈련 도중의 휴식 시간에 박지만 생도(왼 쪽에서 다섯 번째) 등 동기들과 필자(왼쪽에서 두 번째)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희철] (안보팩트=김희철 기자)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과 동기인 육사 37기, 이런 저런 비애와 구설수 많아 언젠가 어느 월간지에 “박지만의 육사37기, 비운의 황태자 기수인가, 특혜 받은 기수인가?”라는 집중해부 기사가 게재된 적이 있었다. 기사 내용 중에 이런 글이 나온다. “박지만 생도와 그의 동기인 육사37기에 대한 특별대우는 없었을까?” 동기생들은 입을 모아 ‘특혜는커녕 대통령 아들과 동기생이라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다. 1년 후배인 육사38기의 한 대령은 ‘당시 37기의 선배기수들은 박지만 선배가 포함된 37기에 편견을 갖고, 다른 기수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더 엄격하게 얼차려를 줬다’며 ‘특히 시골에서 올라온 선배들은 정의감에 불타 유명인사 자제들의 잘못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영웅심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안되면 되게하라!” 구호를 즐기차게 외치는 특전사 공수훈련 기간에도 또 한번 37기 특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 특전사 공수훈련을 받고 있는 육사37기 생도들. [사진=김희철] ‘안되면 되게 하는’ 특전 공수훈련 기간 중 문제의 사건 발생 그 웃지못할 특혜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건은 공수훈련 기간 중에 발생했다. 특전사로 배치되면 이병부터 장군까지는 누구나 공수훈련 4주를 받아야 한다. 1주차에는 매일 아침 5~7km 구보로 시작되는 체력강화훈련과 착지훈련, 모형기체 내에서 수신호와 수신호에 따른 행동요령과 주의사항을 교육받고 각 항공기별 이탈 자세를 취하면서 비행기를 묘사한 콘크리트 모형문에서 실제로 뛰어 내리는 훈련 등을 한다. 2~3주차에는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기체탑승에서 실제 강하까지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한 종합평가와 최종숙달 훈련 및 야간강하를 대비한 야간 모형탑훈련을 한다. 모형탑(막타워)훈련은 실제 낙하 전 훈련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많이 느끼는 약 11m높이의 모형탑에서 손으로 예비 낙하산을 꼭잡아 고정시키고 얼굴과 허리를 숙이며 다리를 모으고 L자형으로 하여 실제 강하 시와 동일한 자세로 최대한 멀리 뛰어 내리면서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는 훈련이다. 막타워훈련 시에는 ‘자격강하’를 위한 최종종합평가를 하게 된다. ▲ 완전군장을 한 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공수 낙하훈련을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37기 생도들. [사진=김희철] 구령부터 비상낙하산을 펴는 시늉까지의 동작을 평균 10~15회 중 3회 이상 완벽하게 소화해야 한다. 막타워 밑에서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앞서 뛰어내린 동기생의 자세를 보면서 파안대소를 짓기도 했다. 만약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뛰어내리지 못하거나 자세나 동작이 불량한 경우 퇴교조치를 받을 수 있지만 통상 5~8회 정도에서 대부분 합격한다. 마지막으로 착륙 시 강풍으로 인해 낙하산이 끌려갈 때 신속히 몸을 뒤집고 일어나 자세를 전환하여 바람 부는 방향으로 뛰어가 낙하산을 수거해야 하는 송풍 및 낙하산 수거 훈련을 받게 된다. 종합숙달훈련이 끝난 4주차에는 실제 낙하훈련을 받게 된다. 처음엔 단독군장, 완전군장, 야간강하 등 총 4회를 점프해야 수료증과 자격증이 주어진다. ▲ 1980년 세계 미스유니버스선발대회에 참가한 각국의 미인들이 육군사관학교를 찾아 37기 생도80명이 동원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사진=김희철] 신군부 세력의 문화정치 '미스유니버스 본선'에 공수훈련 중인 37기 생도 80명 동원돼 훈련장에 남은 37기 생도들은 더욱 혹독한 훈련 받으면서 '특혜' 구설수로 가슴앓이 40년 가까이 지난 요즈음도 육사37기생들은 모이면 어김없이 1980년 세계 미스유니버스대회 이야기를 꺼낸다. 1980년 7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미스유니버스 본선 대회가 열렸다. 본선은 이 날 하루였지만 사전 행사와 예선은 6월 말부터 시작돼 3주에 걸쳐 열렸다. 본선은 美 CBS방송을 통해 위성중계 됐다. 69개국에서 온 ‘미(美)의 사절’은 신군부 세력의 ‘문화정치’, ‘스펙터클 정치’에 소도구로 동원됐다. 미녀들은 말 그대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경복궁, 불국사 같은 관광지를 찾고, 육군사관학교도 찾았다. 한 예비역 장성(37기)은 “37기 생도들은 제식훈련과 분열 시범을 보였다”며 “당시 언론은 ‘미녀들이 원더풀을 연호했다’고 보도했다”고 했다. 또한 어떤 동기생에게 홀딱 빠져버린 미녀가 호텔키를 넘겨주기까지 하여 국제결혼 사례가 될 뻔 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는 “37기생들은 거여동 공수훈련장에서 점프훈련을 받다가 ‘신장173cm이상 생도 열외하라’는 지시를 받고 80명의 생도들이 화랑대 예복을 입고 7월 8일 열린 본선(세종문화회관)에 직접 나가 참가자들을 에스코트했다”고 했다. 그는 “화랑대 예복을 입고 롯데호텔 파티장까지 가서 미녀들과 즉석 댄스도 추었다”며 “행사가 끝나자마자 점프훈련장인 거여동으로 복귀해 철모를 쓰고 다시 공수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공수훈련장에서는 25%동기생이 세종문화회관으로 빠져나가자 훈련 교관들과 조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공수훈련 역사상 중간에 열외하여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도 수료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녀선발대회에 참석한 동기생들은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하지만 생도교육 일정상 불가능 했고 국책사업이다 보니 상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훈련장에 남아있는 동기생들은 오히려 더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했지만, 꽃향기 나는 미의 제전에 차출된 80명의 동기생들로 인해 특별대우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사는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37기 생도들은 가슴앓이를 했던 것 같다. ▲ 훈련장에 남은 37기 생도들은 더욱 혹독한 훈련 받으면서 '특혜' 구설수로 가슴앓이를 하여야 했다. [사진=김희철] 하계훈련을 마친 4학년 생도들이 다는 공수휘장(Wing)의 각별한 의미 하계군사훈련이 끝나고 생도대에 복귀할 때의 각 학년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4학년 생도는 가슴과 전투모에 공수휘장을 달고 3학년 생도는 가슴에 유격(Ranger)휘장을 달고 후배들의 어깨를 한 번 툭 쳐본다. 공수휘장은 5개 종류가 있다. 공수훈련 4회를 이수하면 기본공수휘장을, 20회 이상 또는 강하조장훈련 이수 시에는 은성, 40회 이상 또는 고공기본훈련 이수 시에는 월계공수휘장을 단다. 100회 이상 시에는 휘장 안에 100회에 1개씩 금별이 추가되고, 1000회 이상 휘장은 금색(골드윙)으로 금성공수휘장이라 칭한다. 필자는 4회 기본 점프 시 특별한 추억이 있다. 당시 점프를 위해 탑승한 C-123수송기는 소음이 심하기 때문에 강하조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점등신호 불빛과 조장의 수하에 의해 행동이 이루어진다. 막상 1200피트 상공에서 문이 열리고 조장의 낙하 신호를 보면 몇 초 안에 탑승자 전원은 모두 뛰어내린다. 만약 앞선 대기자가 머뭇거리면 낙하지점을 지나 엉뚱한 곳에 떨어져 위험해 질 수도 있다. ▲ c-123 수송기에서 뛰어내려 낙하산을 펼친 채 강하하고 있는 37기 생도들. [사진=김희철] 그래서 공포에 의해 문 앞에서 머뭇거리면 조장이 강제로 떠밀어 버린다. 심지어는 발로 차기도 한다. 그래야 나머지 인원들도 안전하게 강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낙이불착(樂而不着)이라 했던가? 집착을 버리고 즐기기로 마음을 다지자 고소공포증은 사라졌다. “한번 죽지 두 번 죽나?” 내가 머뭇거리면 뒤에 따라오는 동기가 어려워진다. 살신성인(殺身成仁)까지는 아니지만 조직과 단체를 위해 몸을 창공으로 던졌다. L자로 굽어진 채 수직낙하하고 있었고 무릎 사이 전투복이 바람에 파르르 떠는 모습을 보았다. “덜컥” 낙하산이 펴지는 충격에 출렁거렸다. 이제부터는 방향을 잘 잡아 인접 동료와 충돌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착지 지점을 찾았다. 마침 배수로 공사장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골도 파여 있고 배관도 있고 그곳으로 떨어지면 최소 발목 골절을 각오해야 했다. 힘차게 낙하산을 당기며 방향을 조정하다보니 그만 발끝이 배수로 바로 옆 땅에 닿았다. 교관이 가르쳐 준대로 구를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서 버렸다. 교관이 위험하니 압력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지면에 가능하면 많이 닿게 낙법을 하라고 했는데... 마침 방향조정을 위해 낙하산을 당기고 놓고 하다 보니 월계공수휘장 받은 고공낙하 이수자가 하는 방법을 나도 모르게 한 것이었고 덕분에 난 말짱했다. 강풍이라도 불었으면 발목이 부러졌을 것이다. ▲ 공수훈련을 마친 생도들이 특전사 교관을 행거래를 치고있다. [사진=김희철] 必死卽生 必生卽死 (필사즉생 필생즉사) 마지막 점프가 끝나자 낙하지점에서 파티가 이루어졌다. 철모에 받아먹는 막걸리는 처음 마셔보지만 꿀맛이었고 새보다 자유로운 특전사 교관과 강하조장은 존경스럽게 보여 졌다. 훗날 졸업 무렵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우리를 가르쳤던 강하조장이 고공낙하 중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순직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의 정신으로 청춘을 붙태우는 특전사 요원들에게 한없는 존경과 ‘받들어 총’을 보낸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7-07-2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2) 미소를 머금게 하는 육사생도 ‘하계군사훈련’의 추억
    ▲ 3학년 생도시절 하계 유격훈련 중에 기념촬영을 한 필자(앞 줄 맨 오른쪽)와 동기생들. ⓒ김희철 (안보팩트=김희철 기자) 4년 동안 '이열치열(以熱治熱)' 선택, 여름 더위를 뜨거운 훈련으로 극복 사관학교 생도들은 4년동안 매해 여름이 되면 작렬하는 태양과 몰아치는 소나기와 친구가 되는 하계군사훈련으로 더위를 잊는다. 보통사람들이 찌는 듯한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오히려 뜨거운 민어탕이나 보신탕을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사관생도들을 포함한 군인들도 '이열치열(以熱治熱)'을 선택한다. 가장 더운 한 여름에 치열하고 강하게 훈련을 함으로써 전투력을 강화시킨다. 1학년 '두더지'생도들은 태릉골 육군사관학교에서 동급생으로 지휘부를 편성하여 자치제도를 숙달하며 기초적 훈련을 받고, 2학년 '빈대'생도들은 부사관 학교로 훈련장을 옮겨 부사관 교육과정을 숙달한다. 3학년 'DDT'생도들은 전남 상무대 보병학교로 내려가 소대장 교육과정을 밟으며 동북유격장에서 유격훈련(Ranger)코스를 체험한다. 4학년 '놀부'생도들도 특전사 교육대에 입소하여 정식으로 4주간의 공수훈련을 받는다. 1학년 '두더지'들, 호랑이선배들이 떠난 공백 속에서 '지옥훈련'거듭하며 동기애 쌓아 지금은 없어져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경춘선 화랑대역에서 초여름이 되면 상급생도 환송행사가 열린다. 4학년 생도들은 버스를 타고 특전사로 이동하지만, 2~3학년 생도들은 기차를 타고 원주 부사관학교와 광주 상무대 보병학교로 출발한다. 후배들 앞에서 폼은 잡고 있지만 사실은 호랑이 선배들도 부사관과정 교육과·보병학교의 유격훈련 그리고 특전사 공수훈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 3학년 생도시절 지옥의 유격훈련 와중에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있는 필자. ⓒ김희철 상급 생도들을 떠나보내고 난 뒤 두더지 1학년 생도들은 지난 반년(6개월)동안 선배들의 친절하고 정성스런 지도교육과 이별하는 아쉬움 보다는 빈대·DDT·놀부들에게 시달렸던 구속감에서 해방된 즐거움을 훨씬 더 크게 느낀다. 하지만 동기생들로 편성된 자치지휘제도에 의해 편성된 조직은 오히려 선배들보다도 더 까다롭게 지휘통솔하는 바람에 해방감은 곧 사라진다. 편지·보고서 작성 시 직각으로 BOX화하지 못하면 간부로 편성된 동기들이 검열하여 퇴짜를 놓는 바람에 재작성하게 되고, 시간을 못 지키거나 열외 등 잘못을 저지르면 선배들보다 더 심하게 벌점을 부여하여 자체 얼차려를 받는 상황도 발생하였다. 기초적인 병교육을 받으면서 장차 국가 간성으로 커 나가기 위해 전쟁사, 군법, 제식훈련, 각개전투, 기본전술 등의 교육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동기생들에 의한 통제가 느슨해질 때에는 훈육관·교관들이 곧바로 제재로 들어와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동기생들만 남아있는 해방감은 좋았고 동기애(同期愛)를 쌓아가는 과정이었다. 하계군사훈련의 꽃은 3학년 'DDT'생도 시절 유격훈련 훈련 직전 식중독 걸려 탈진... 빨간모자에 선글라스 낀 교관, 입맛 다시며 불호령 하계군사훈련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3학년 'DDT'생도들이 경험하는 유격훈련(Ranger)이다. 보병학교에서 소대장 교육과정을 임할 때 소대전술과 화기학, 리더십 등을 배우고, 마지막 2주는 전남 화순에 있는 동복유격장에서 유격훈련을 받는다. ▲ 3학년 생도시절 성공적인 유격훈련을 다짐하기 위해 전남 영광의 해수욕장을 찾았던 필자. ⓒ김희철 선배 생도들이 하도 겁을 주어 두려움도 있었지만 동기생들이 함께 한다는 것에 많은 의지가 되었다. 그래서 유격훈련 떠나기 전 몇몇 친한 동기들과 토·일요일을 이용하여 전남 영광에 있는 가마미 해수욕장을 찾았다. 갯벌에서 회를 곁들이며 성공적 유격훈련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필자는 식중독에 걸려 복통과 설사, 구토만 했던 기억이 난다. 식사도 못하고 탈진한 상태에서 월요일 유격훈련은 시작되었다. 동북유격장 PT교관은 빨간모자에 진한 선글라스를 쓰고 회초리 지휘봉을 들고 사열대에 버티고 서있었고 똑같은 복장의 유격조교들은 모자를 눌러써 눈동자는 보일랑 말랑하지만 사관생도 훈련생이라는 먹이감에 입맛을 다지는 듯 '썩소'를 짓고 있었다. 유난히 자극적인 호각소리에 따르지 못하는 훈련생들의 자세도 지적했지만, 빨간 모자에 진한 선글라스 교관의 불호령은 구령소리가 작다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피(P)가 나고 터(T)지는 PT체조로 시작된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길 첫날 PT체조는 말 그대로 피(P)가 나고 터(T)지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가입교 시절 기초군사훈련, 2학년 부사관학교 훈련 등을 겪은 몸이라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체력엔 자신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세불량시 지적하는 교관조교에게 불려나와 별도로 얼차려를 받는 등 정말 지옥이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텐트마다 신음소리였고 온몸은 알이 배기고 쑤셔왔다. 첫째 주 PT체조는 기본이고 기초 장애물 코스와 산악 코스의 로프와 레펠... 수직낙하, 하지만 만경대 호수위로 로프를 타고 내려올 때 두려움보다는 상쾌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매 코스를 시작하기 전 두려움을 잊게 하기 위해 조교가 “어머니”를 외치라고 할 때는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첫째 주 교육을 마치고 도피 및 탈출 교육으로 이어졌다. 2주차 교육은 한 장의 지도와 나침반으로 다음 집결지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그것도 선착순으로 서열을 부여했다. 일부 동기는 걷기가 힘들고 빨리 도착하기 위해 교관의 눈을 피해 민간 트럭을 탑승하여 이동하다가 발각되어 곤욕을 치루는 경우도 있었다. 간혹 지도정치를 잘못하면 열심히 힘들게 올라간 산봉우리에서 내려와 다시 인접 산봉우리로 올라가야하기 때문에 독도법 교육도 숙달하게 되었다. ▲ 3학년 생도시절 유격훈련을 받는 필자와 동기생들. ⓒ김희철 주야로 계속된 훈련 속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에는 가장 좋은 장소가 무덤이었다, 평평하고 푹신한 잔디에 숲이 없어 벌레도 적고 가장 효과적인 휴식 장소였다. 어릴 적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모든 일이란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군대 생활을 마친 예비역 병장과 학군(ROTC)장교들에게 군생활의 가장 기억나는 추억을 물어보면 대부분이 유격훈련 이야기를 한다. 어떤 학군장교는 유격훈련을 마치고 동기생끼리 서로 끌어안고서 울면서 말했다고 한다. “절대로 아들은 낳지 말자...” 극한 속에서 여유를 느끼며 인간의 한계까지 악과 깡으로 버티었던 유격훈련(Ranger)과정을 마쳤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던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듯이 훈련을 끝낸 보람과 성취감은 그 무엇보다도 크고 기뻤다. (2부 공수훈련은 다음에 계속)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7-06-1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1) 구보는 생도들에게 잊지 못할 ‘휴식’
    ▲ 서울대 미대 지망생이었던 필자가 생도시절이었던 40여년 전에 그렸던 육사생도들의 구보 모습. ⓒ 그림=김희철 (안보팩트=김희철 기자) 5월 '생도의 날' 축제 앞두고 벌어지는 파트너 조달작전은 아련한 추억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다. 그런데 생도시절 5월은 “생도의 날” 축제가 있어 더 더욱 여왕의 계절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자 친구가 없는 생도들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다. 게다가 더 피곤한 것은 같은 조(분대)의 상급 생도이다. 주로 조(분대)별로 행동을 하게 되는데 4학년 선배들이 1학년 후배의 파트너가 없으면 2,3학년 생도들에게 후배 관리 면에서 선배 노릇도 못한다며 심한 핀잔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제 한두 달 전부터 상급 생도들은 외출을 통제 받는 1학년의 파트너를 구해주기 위해 미팅 주선으로 바빠진다. 물론 자신의 파트너도 구해야 하기도 하다. ‘생도의 날’을 앞두고 ‘파트너 조달 작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훗날 임관한 육사출신 장교의 부인들이 서울여대 출신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태릉골 육사의 길 건너편에 있는 서울여대생들과 급하게 미팅을 주선 하다가 눈이 맞아 결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필자가 1학년 생도였던 그해 5월 어느 토요일에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2학년 이상 선배들은 생도의 날 축제를 앞두고 모두 외출 외박을 나갔고 1학년 생도들만이 생활관에 남아 육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홀로 남아있는 생활관 창밖의 빗방울 소리는 더 처량하고 외롭게 들려 왔다. 그때 문뜩 몇 일전 화랑대를 떠난 친구들이 생각났다. ‘구보’와 ‘시험’이 쉴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사관학교의 교육일정은 초인적인 정신력을 요구한다. 버티지 못하고 어렵게 들어온 학교를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입교생 중에 통상 20~30%가 졸업을 못하고 퇴교 당한다. 특히 생도생활은 구보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전투복을 입고 단체로 구보를 한다. 물론 매일 아침 점호 후에도 운동복 복장으로 뛴다. 사관생도에게 구보는 생활의 일부, 어떤 시련도 이겨낼 극기 정신 키워 단체 구보는 처음엔 비무장으로, 다음엔 단독군장으로, 그 다음엔 완전군장으로 복장을 바꿔하며, 뛰는 거리도 3km, 5km, 10km씩 계속 변경 반복된다. 20kg에 달하는 완전군장을 메고 10km를 뛸 때에는 거의 반주검 상태가 된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뛰고 난 후이다. 간혹 체력 미달로 또는 배탈이 났거나 등의 이유로 낙오를 한 사람이 생기면 단체 얼차려 기합을 먼저 받고 당사자의 개별 기합도 또 받는다. 게다가 더 더욱 힘든 것은 체력 고갈로 지쳐있지만, 마냥 퍼져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될 때이다. 만약 그 다음날 정기 시험이 있으면 시험 공부도 해야 된다. 매년 전반 학기가 끝나기 전이라 아직 적응이 덜된 1학년들에게는 5월이 계절의 여왕이 아니라 지옥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즈음이 되면 벌써 10여명의 동기생들이 퇴교를 당한다. 시험에서 한 과목이라도 낙제를 하면 재시험을 치루고 거기에서도 점수가 미달이면 다른 과목을 아무리 잘하더라도 바로 퇴교이다. 중간에 퇴교 당한 친구들은 소위 SKY대학에 바로 합격하기도 한다. 혹독한 육사 생도교육과정을 경험한 사람은 사회에 나가 시련과 도전을 이겨낼 역량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 필자는 고된 훈련을 마치고 땀에 절은 생도들이 서로 찬물을 부어주며 즐거워하는 광경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 그림=김희철 '외로운' 1학년 생도들, 구보할 때 받는 시민들의 박수에 힘얻어 외출 나갔다가 일요일에 복귀하면 바로 옆자리가 비어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재시험을 통과 못해 퇴교 당한 것이다. 간혹 특이한 경우도 있다. 화려하게만 보이던 생도생활이 뛰고 또 뛰고 얼차려 받고 늘 긴장해야하는 생활이 힘들어 스스로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고 퇴교한 친구도 있다. 본인이 자퇴를 신청하면 제대로 후배 교육을 못 시켰다고 상급생도가 질책을 받고, 동기생들은 동기애가 없다고 얼차려 받는 경우가 종종 생기니까 이런 방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퇴교하는 순간에도 전우애를 발휘한 친구들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대부분의 생도들은 구보를 즐긴다. 왜냐면 육사 정문을 통과해 시내 도로길에서 군가를 부르면서 뛰고 있을 때, 시민들의 박수도 받고, 민간 버스와 택시도 볼 수 있고, 입교 전 각오와 생활을 회상하며 즐길 수 있는 시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든 구보를 하기 전에 선배들은 말한다. “뛰면서 생각해라. 구보는 군인에게 있어서 휴식이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 소통시대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17-05-22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