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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CrisisM]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전쟁철학과 한미동맹’ 국제학술회의 개최(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제1주제 ‘6·25남침전쟁 중의 백선엽 장군과 미군’을 발표한 유관종 종로문화재단 대표는 6·25남침전쟁의 모든 전투에서 전승한 지휘관은 백 장군뿐이라며 과묵하고 온화하며 겸손한 인내의 모습이 있었으나 사실은 다혈질의 특징을 지녔고 무명에서 유명한 장군이 된 것은 다부동 전투부터였다고 말했다.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우리 국방력을 강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육군참모 총장으로 방미간에 1군단장 시절 절친이었던 5순양함대사령관 알레이 버크 제독의 조언을 듣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움직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등 숨겨진 에피소드를 밝혔다. 토론에 나선 이영종·문관현 박사는 백선엽 장군은 부하들과 현장에서 동고동락한 명장이었으며, 전쟁발발 이틀만에 안보리결의 83호를 통과시켜 신속하게 유엔군사령부를 창설하고 파병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력이었음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제2주제 ‘백선엽 장군의 전장리더십과 한미동맹’을 발표한 한미안보연구회 사무총장 장삼열 박사는 전장의 흐름을 바꾸는 다부동 전투 등 주요 국면에는 백선엽 장군이 있었다며 북진과정에서도 미군보다 앞서 평양에 입성해 국군의 위상을 올렸다고 말했다. 전쟁중 한국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에게 한국군을 대표해 국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대폭 증강시키는 설득을 한 끝에 결국 군의 현대화를 앞당길 수 있었고, 미군들과 함께 연합작전을 수행했던 경험과 인적네트워크는 한미동맹 강화에 큰 힘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제3주제 ‘한미동맹은 강해지고 있는가?’는 전 한미연합사단 부사단장 유욱상 예비역 준장과 현역 부사단장 김정혁 준장이 한미연합방위체제의 변천과정을 설명하며 2012년에 당시 김상기 육군참모총장과 미2사단장 카돈 소장이 공감대를 형성한 후 2015년부터 한미연합사단을 편성해 운용함으로서 한국군 군사혁신과 한미동맹의 신뢰 강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발표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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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7-16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40]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연이은 큰 행사와 추가 임무 덕분에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고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에 긴장한 탓인지 브리핑도 미숙했지만, 예비군 교장 사열시에 예비군 중대장 보고를 사단장 옆에서 필자가 추가 설명을 간간이 병행한 것처럼 필자옆에서 신현정 연대장(삼사9기)의 적절한 보충설명이 주효하여 사단장은 만족한 표정이었다. 부대 파악 실태를 보고하면서 대대 울타리 노후와 붕괴 우려지역이 상존해 있음을 사실대로 보고하자 업무보고를 마치고는 사단장은 현장을 직접 다니며 확인했다. 사실 대부분의 부대는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잘되어 있는 것 위주로 보고하는 데 필자는 부대의 약점을 보고하자 오히려 더 신뢰를 했던 것 같다. 특히 사단장은 매우 흡족하고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우선 총기번호의 오류를 잘 발견했다며 바로 군수참모에게 사단 전체의 진공포장된 총기 박스를 해체하여 세밀하게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대대에서 최초로 적용해 시행중인 ‘151전화사서함’ 제도를 신기하게 생각하며 부대운영과 훈련 및 작전시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며 사단 작전 및 동원참모에게 검토하라는 지시도 바로 했다. 성공적인 업무보고로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던 사단장이 복귀하자 잠시 뒤에 사단 군수참모가 성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우선 총기번호의 오류를 참모보고부터 먼저 안하고 사단장에게 보고한 것을 신경질적으로 질책했다. 그는 사단장 지시대로 밴딩된 총기박스를 해체해 확인할려면 군사령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며 자세히 발견과정을 물어보았다. 전화를 끊으면서는 비록 군수처를 바쁘게 만들었지만 총번 오류를 발견한 것은 잘한 것이라며 수고했다고 격려도 해주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군사령관에게 총기번호 오류 사실이 보고되어 2군 예하 전 사단이 밴딩을 해체해 수만정의 총번을 확인했다. 사단장 초도업무보고는 사단을 포함한 군사령부 등 전 상급부대가 뒤집어질 정도로 군수분야 관계자들과 예하 전부대를 바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단에서는 보유량의 약 3,5%인 1175정의 오류를 확인하고 개선 조치를 했으며, 군사령관은 참모회의시에 결과보고를 받으며 동원전문가인 사단장 이상신 장군은 역시 다르다고 극찬을 했다고 전해졌다. 물론 필자도 분석력과 집념을 가지고 준비한 업무보고를 통해 총기번호 오류를 정정한 유공자로 인정되어 군사령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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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7-15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9]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민관군 통합작전이 중요시되는 향토사단은 사단장이 타부대를 방문할 때 지역 기관장들이 참석하는 사례가 많이 있었다. 이번에는 상급부대에서 업무보고시에 해당 지역 기관장들을 초청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 그래서 사단장 업무보고 있다는 사항을 지역 기관장들에게 전파하지 않았고 초대도 안했는데 청원군수와 의회의장이 불쑥 찾아와 난처하게 됐다. 상급부대 지침으로 필자가 곤란하게 됐다고 청원군수에게 복귀할 것을 권했지만, 사단장을 이렇게 개별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다며 그들은 막무가내로 대대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승용차에서 내리는 사단장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는데 역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연대장과 필자가 사단장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청원군수와 의장은 한발 앞서 나서며 “사단장님, 기관장들을 초대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셨다면서요. 하지만 사단장님께서 우리 지역에 오시는데 군수가 인사를 안드리면 실례가 되고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이렇게 떼를 써서 나왔습니다. 대대장에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라는 넉살에 대대막사 현관앞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할 수 없이 막사로 들어가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라고 권했지만 청원군수와 의장은 인사드렸으면 됐고 더있으면 업무보고에 방해된다며 바로 부대를 빠져 나갔다. 나중에 확인된 사항이지만 청원군수는 사단장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하여 업무보고 후에 사단장을 모시고 식사대접까지 했다고 전해졌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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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7-1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8]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성실한 사람은 그냥 평범할 뿐이다.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4성(전문·적시·창의·현장성)’을 가지고 업무를 추진하라고 전 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이성출 대장(육사30기)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4성중 현장에 적용가능한 창의성이 타인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그동안 타부대에서 업무보고한 내용보다는 적시적이며 창의성 있는 분석 결과에 따른 앞으로의 지휘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동원분야의 전문가인 사단장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전방사단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작전적 측면보다는 향토사단에 부합된 예비군 관련 내용들을 분석하여 발전시키는 방안에 착안했고, 급하게 확인된 예비군 총기번호 오류의 발견은 매우 고무적인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또한 현역 4개중대와 예비군 23개 중대로 예하대가 많다보니 상황전파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 당시에 사회에서 막 유행하고 있던 ‘151전화사서함’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했다. 평시와 유사시 그리고 훈련시에 주기적으로 ‘151전화사서함’에 상황전파 및 지시사항을 입력하면 원거리에 떨어져 있는 예비군 중대장도 출근해서 비밀번호를 입력 후에 ‘151전화사서함’을 듣고 숙지하여 조치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매일 아침에 필자가 중요사항을 직접 전화사서함에 입력하여 예하 예비군 중대장들이 대대장 목소리를 듣고 부대운영에 반영하도록 유도하였고 원거리 다수의 예비군 중대장들이 지휘주목을 하기에도 용이했다. 지금은 부대개편으로 해체되었지만 당시 청주시 강서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청원대대에 드디어 사단장이 초도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방문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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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7-12
  • [김희철의 CrisisM]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전쟁철학과 한미동맹’ 국제학술회의 개최(상)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은 지난 24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20층)에서 ‘백선엽 장군의 전쟁철학과 한미동맹’이란 주제로 제1회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회의는 6·25남침전쟁 발발 74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사단장으로 전쟁을 시작해 육군참모총장으로 정전까지 전쟁의 현장에서 보여준 고(故) 백선엽장군의 전쟁철학과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한미동맹의 역사적 뿌리를 재조명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회의에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 권영해 전 국방장관, 이순진·최윤희 전 합참의장, 김상기 전 육군총장, 민병돈 전 육사교장 등 예비역 장성과 한미연합사단 부사단장 김정혁 준장 및 현역 장교, 학군후보생, 그리고 재단을 적극 지원하는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을 비롯한 후원인사 및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회의는 가장 먼저 백선엽기념재단 이사장인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의 기조사를 시작으로 한기호(4선, 육사31기)·인요한 국회의원과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의 축사 순으로 진행됐다. 한기호 국회의원은 “그동안 백선엽 장군님을 비롯해 많은 부분의 역사가 왜곡돼 알려진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청산리전투의 영웅인 김좌진 장군은 공산당에 의해 암살당했고 그나마 생존한 이범석 장군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후에 귀국해서 국방부장관 및 총리를 역임하며 숙군정책을 통해 군내 좌익세력을 척결했기 때문에 우리 군이 6·25남침전쟁에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친일파로 곡해하며 폄하시킨 백선엽 장군과 추가로 김종오 장군 등을 포함한 전쟁영웅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백선엽장군기념재단 명예이사장 백남희여사는 축사를 통해 부하사랑에 각별했던 백선엽장군의 사례를 제시하며 백 장군의 뜻을 이어받아 현재 생존한 ‘참전용사들의 소원들어주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뒤늦게 축사를 한 인요한 국회의원은 “세계 전쟁사를 볼 때 지휘관의 이름을 딴 작전은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해 남부군 이현상 등을 제압한 ‘백 야전전투사령부’가 유일하다”며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본인의 외삼촌도 참전 유엔군 후손 돕기운동을 주도한 백 장군을 존경하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일 파이낸셜뉴스 주필이 사회를 맡아 6·25남침전쟁 중의 백선엽 장군과 미군, 전장리더십과 한미동맹, 한미동맹은 강해지고 있는가? 등 3가지 주제로 발표 및 토의가 진행됐는데,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백 장군의 많은 에피소드가 가슴을 울렸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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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7-11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7]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②
    [시큐리티펙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업무보고서 초안을 거의 완성시킨 상태에서 보고연습을 하고 있는데 군수장교 역할을 겸직하고 있는 현역 중대장이 대대장실 문을 노크했다. 대대는 간편이기 때문에 각 중대장들을 현역으로 편성된 10명의 중대원들만 갖고 있고 나머지 요원들은 모두 동원되는 예비군으로 편성된다. 따라서 중대장들이 부족한 대대참모 역할을 겸직하고 있고 통합 중대장이 현역병 전체를 지휘했다. 군수장교는 사단의 지시에 의해 대대에 보유하고 있는 진공포장된 M16 총기탁본을 세밀하게 대조확인결과 중복된 총번 24정 발견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다. 필자는 업무보고 연습을 일단 중지하고 주임원사와 모든 간부들에게 대대가 보유한 진공포장된 탁본을 모두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그때부터 14시간동안 무기고를 열고 진공포장된 총기들의 탁본을 일일 확인하자 대대가 보유한 총기 4100정 중 259정이 동일하게 중복된 오류 총기번호임을 발견했다. 전산에 입력된 자료에는 동일한 총번 앞에 *표로 표시하여 구분해 놓은 것도 확인이 되었고, 동일한 총기박스는 대부분 타부대에서 인계된 무기였음을 발견했는데 주로 대부분이 국내에서 제작된 총기와 미군에게 인수받은 총기가 번호가 중복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대 실태를 파악해서 분석 결과에 따라 앞으로 지휘방향을 제시하는 업무보고서에 긴급하게 포함시켰다. 연대에도 이렇게 확인한 진공포장 M16의 총기번호 오류를 보고할 시간도 없었다. 바로 다음날이 계획된 사단장 초도업무보고일이기 때문이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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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7-10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6] 준비 시간도 부족해 더 긴장했던 초도 업무보고의 반전 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사령관 조성태(육사20기) 대장이 주관한 군사령부 전술토의에 이어 향토사단 대대의 연초 가장 중요한 예비군 교장 사열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바로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취임후 첫 업무보고도 하기 전에 사단장 이상신 장군을 이미 여러번 만나 보고를 한 상태라 첫 보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대의 실태를 파악한 후에 대대장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초도 업무보고를 통해 밝히고 사단장의 추가 지침을 받아야 하는 관례상의 과정이었다. 먼저 전입와서 이미 부대를 잘 파악하고 있는 부대대장과 주임원사를 통해 예하 예비군 중대장들의 특성을 전해 듣고 본인이 직접 예비군 중대 사무실 23개소를 모두 방문하고 실태를 확인한 후에 사단장 초도 업무보고를 준비했다. 본인이 직접 방문하며 확인해보니 대대본부 막사뿐만 아니라 예하부대에도 많은 문제점들을 식별할 수 있었고 이들을 해결할 방도를 보고서에 담았다. 군사령부 전술토의와 예비군 교장 사열 준비에 혼신을 다해 고생한 대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짜피 예정된 업무라 가능한 대대원들에게는 덜 수고하도록 필자와 참모들만에게만 임무를 주어 고민하며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무래도 대대원들도 막사 주변 정리 등에 애를 많이 썼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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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024-07-09
  • [김희철의 CrisisM] 故 김웅수 육군 소장, 7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3년 6월29일부터 7월11일까지 강원도 철원군에서 벌어진 ‘화살머리고지(281고지)전투‘에서 탁월한 지휘력으로 중공군의 맹렬한 공격을 끝까지 막아내어 적의 의도를 좌절시킨 김웅수 대한민국 육군 소장(당시 준장)을 ‘2024년 7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3년 출생한 김웅수 소장은 1946년 군사경비대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6‧25남침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1952년 6월 제2군단 참모장을 거쳐 1953년 5월 국군 제2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1953년 6월, 적은 휴전에 반대하는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최대한 많은 땅을 빼앗기 위해 ‘중공군 6월 공세 제2단계 작전’을 감행했다. 이때 중부전선 철원평야 ‘철의 삼각지’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거점인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확보하려는 중공군의 공세가 거셌다. 그중 화살머리고지는 아군이 1951년 10월 ‘코만도 작전’에서 획득한 고지로 백마고지와 함께 임진강의 지류인 역곡천의 북안에 위치한 요충지로, 국군 제2사단은 1952년 12월 29일 철원지역에 투입되어 1953년 6월29일과 30일에 걸쳐 중공군 제73사단이 화살머리고지 2개 전초진지를 공격하자 치열한 공방전 끝에 이들을 격퇴하였다. 이 전투에서 약 400여 명의 인명 손실을 입고 물러간 중공군 제73사단은 1953년 7월6일, 1개 대대 병력으로 재차 공격에 나섰다. 7월11일까지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아군은 화살머리고지를 사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휴전 조인을 앞두고 국군 제2사단이 거둔 마지막 승전이었던 이 전투에서 김웅수 소장은 초반에 적에게 빼앗긴 전초 진지를 탈환하기 위해 거듭 공격에 나섰음에도 실패하자 전략을 바꿨다. 좁은 공간에 소수 병력을 나누어 투입하는 대신 각 연대에 2개 중대씩 차출한 뒤 적의 진지에 대한 정면공격과 함께 후방에 대한 동시 기습작전을 펼쳤다. 또한 적이 예상하지 못하도록 심야에 공격함으로써 결국 적을 몰아내고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의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태극무공훈장(1954년)을 수여하였다. 1961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김웅수 소장은 이후 미국 가톨릭대학교와 건양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역임하였으며, 2018년 2월 향년 95세로 별세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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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7-08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435]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과 동굴 수색을 추가한 예비군교장 사열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드디어 사단장이 부대를 방문하며 그해 예비군 교육을 위해 교장 준비 사열이 시작됐다. 사단장 이상신 장군은 갑종 197기로 수방사령부 동원처장 근무시에 장군으로 진급한 동원분야의 대가였다. 전체적인 예비군 교장 개선 사항을 필자가 보고했으나 현장에서는 과목별 담당교관인 예비군 중대장들이 직접 보고했다. 물론 사단장 옆에서 필자가 추가 설명도 간간이 병행했다. 하지만 과목별 교장을 직접 만든 해당 예비군 중대장들이 자신있게 사단장에게 보고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부대대장 이완목 소령이 얼마나 혹독하게 사전 훈련시켰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타부대에 비해 유독 많이 설치된 간판과 샌드백, 섬건너뛰기 등 보조물들과 블록 및 폐타이어를 이용한 계단식 강의장 좌석 등 정성어린 훈련준비를 한 현장의 흔적들도 사단장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당시 동원장교였던 장석우 대위의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와 주임원사와 예비군 중대장들을 비롯한 전 대대원이 휴일까지 반납하며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실이고 그 덕분에 청원대대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추후 실제 예비군 훈련시 교장별 이동코스에 설치된 ‘김정일 얼굴이 그려진 샌드백’을 한 대 치고 지나가던 예비군이 “야! 니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훈련받느라 고생한다!”라고 외치자 함께 훈련받던 예비군들이 한바탕 웃는 모습을 보면서 대적관도 덩달아 확고해지는 보람도 느꼈다. 과목별로 보고를 받던 사단장은 직접 준비한 예비군 중대장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또한 사열을 마치고 대대장실에서 차를 마시며 필자에게 수고했다고 격려금도 주었고, 수행한 동원참모에게 이미 사열을 받은 대대들도 다시 이곳을 견학해서 교장 준비 상태를 참고해 추가 발전시키도록 지시했다. 대대의 연초 가장 중요한 예비군 교장 사열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그냥 조용하게 지나갈 수가 없었다. 사단장이 복귀하자 주임원사는 발빠르게 거창한 대대 회식을 준비했다. 지팡이를 짚은 DJ 대대장인 필자도 그동안 고생해서 첫 성과를 올린 부하들의 격려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은 어쩔 수 없이 필자도 대대장 취임후 첫 번째로 취할 정도의 과음을 했지만, 휴일까지 반납했던 대대원들과 함께 즐겁고 보람을 느끼며 하나가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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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김희철의 CrisisM]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 독후감 시상식과 북콘서트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작가 장삼열 한미안보연구회 사무총장은 북콘서트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우리 6·25전쟁만큼은 바르게 알게 됐으면 합니다”며 발간 배경 및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하지만 동존상잔의 비극이었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학교에서는 왜곡 축소하여 미흡한 실정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들을 다음 세대에 알리기 위해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삽화와 사진 등과 함께 쉽게 대화체로 풀어낸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전쟁 이야기’를 4년동안 준비해 지난 1월에 출간했다”고 말했다. 전쟁사를 전공한 정치학 박사이자 예비역 대령인 장삼열 한미안보연구회 사무총장(68)은 1979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소위로 임관한 뒤 줄곧 전쟁사 연구에 매진해왔다. 육군대학에서 전쟁사 교관과 육군군사연구소 한국전쟁연구과장을 거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국방사부장을 지냈다. 또한 작가는 6·25남침전쟁을 직접 겪진 못했지만 1994년 소말리아 내전에 7개월, 2006년 이라크 전쟁에서 1년 1개월 등 해외 전쟁에 파견돼 참전한 경험이 6·25전쟁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줬다며 눈앞에서 총알이 날라다니는 모습에 익숙해지자 전쟁이 무엇인지 체감했다고 했다. 책은 6·25남침전쟁의 발발부터 휴전협상과 한미상호방위조약까지 이어지는 1129일간의 전쟁을 인천상륙작전 등 개별 전투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학도병 등 어린 나이에도 총을 잡은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부터 유엔군의 도움과 보훈의 필요성도 빼먹지 않고 조명했다. 작가는 “미래 세대가 6·25남침전쟁을 올바르게 알고 나라를 위해 희생과 헌신한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며 북콘서트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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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SIS M
    20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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