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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시대의 전사들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율성은 일제강점기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활동하다가 광복 후 월북하여 북한 인민위원회, 조선노동당, 북한군 등에서 활동을 했으며, 6.25남침전쟁 기간 중에 다시 중국으로 귀화하여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해방군 등에서 군인으로 활동한 작곡가이다. 중국 바이두백과는 그를 한국 사람이 아닌 ‘근대 중국 작곡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난징을 떠나 10월 중국공산당의 본거지인 연안에 가서 본격적인 공산당 활동을 시작했다. 1938년 무렵부터 당시 중국공산당의 거물 저우언라이의 양녀 딩쉐쑹(丁雪松)과 연애를 했는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41년 결혼했다. 1939년 4월에는 오랜 심사 끝에 중국공산당 정식 가입이 승인되었다. 그 해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인민해방군진행곡)을 작곡했다. 광복이 되자 한반도 공산화을 위해 연안 팔로군 본부 소속 김무정의 명령으로 정율성은 딩쉐쑹과 딸 등 가족과 함께 1945년 12월, 소련 군정하에 있던 북한 평양에 도착해서 북조선인민위원회 소속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인민군 협주단을 데리고 북한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북한 지역주민들에게 새로 수립된 북한 사회주의 정권을 찬양하는 공연을 무려 200여 차례나 치렀고, 북한 사회주의 정권과 인민군을 찬양하는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 30여 곡을 작곡하여 김일성으로부터 포상장도 수여받았다. 1950년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 군관 신분으로 참전하였으며, 서울 점령 직후 서울에 내려와 주둔했다. 그는 개전 초기 서울 점령 직후부터 9월까지 쭉 서울에 머물렀다. 그의 아내 딩쉐쑹도 함께 서울에서 머물렀는데, 그해 8월경 돌연 가족들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갔다. 중국에서의 정율성은 마오쩌둥의 시에 곡을 붙이는 등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작품이 대부분을 작곡했다. 문화대혁명기에 그는 마오쩌둥의 시사 20편에 곡을 붙였으며 이 작품은 “그 자체가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기백이 넘쳐흐르는 교향악으로 중국혁명사의 최고탑”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가 일생동안 마오쩌둥의 시사에 곡을 붙인 편수는 34수에 달한다. 1976년 9월9일 마오쩌둥이 죽고 피바람을 불었던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소외되었던 정율성은 곧 복권되었다. 그는 이번에는 저우언라이 총리를 찬양하는 연가와 건국 50주년(정확히는 중국공산당 창당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을 만드는데 착수하며 끝까지 공산주의자 나팔수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해 12월7일 베이징 근교의 한 운하에서 낚시를 하던 도중 심장병으로 쓰러져 62세로 사망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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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87)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㉒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영관영어반 과정에 입교하자, 중학교 시절부터 영어 수업을 받았는데도 영어 강사들이 연음으로 발음하는 첫 강의 시간부터 벙어리가 되는 고문이 시작됐다. 하지만 주중 수업후 저녁시간이나 토요일 집으로 귀가하기 전에 외국인 강사 브래그돈(Bragdon)과 식사를 같이하며 나누었던 서투른 대화 덕택에 조금씩 적응되어 갔다. 또한 매주 토요일에는 동두천으로 향하는 주말부부 생활하는 덕택에 필자보다 먼저 대대장으로 취임한 동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 새롭게 무적태풍부대 공병 대대장으로 김준영, 헌병 대장으로 승장래 동기가 취임하여 축하모임이 있었다. 이미 대대장 근무를 시작한 강웅식, 김종완, 안철주, 황종수 동기들을 함께 만나 너무도 즐거운 회후의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들 새로운 부대를 지휘하면서 느꼈던 에피소드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며 필자도 재활치료를 열심히 하여 빨리 대대장으로 취임해 동기들과 합류하고픈 마음이 절실했다. 게다가 이봉엽과 김한경 동기도 전방 사단의 기무부대장으로 취임 한다는 소식도 전해져 실로 우리 동기들의 대대장 시대가 열렸음을 실감했다. 허나 주중에는 성남 종합행정학교에서 퇴근도 못하며 영어공부에 빠져있다가 모처럼 토요일 집에 와서는 동기생들의 모임이 무려 두달 동안 계속되자, 결국 건강을 회복하는 재활치료 중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에도 소홀하는 필자에 대해 아내는 못마땅한 나머지 비명소리를 터트리며 불평했다. 하지만 7년전 육군대학 소령과정에서 만났던 동기들과 다시 정을 나누는 만남이 소중하고 좋은 시간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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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시대의 전사들④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8월28일 오전 전남 순천역 광장에서‘잊혀진 영웅, ‘호남학도병들’을 기억해야합니다!’를 주제로 한 호남학도병 현충시설 건립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기억하는가에 달려있다. 우리는 호남의 정신과 호남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끈 영웅들을 기억하고 기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호남학도병들을 기억하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유가족들의 아픔을 보듬는 것”이라며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였다. 순천역 광장은 6·25남침전쟁이 발발한 1950년,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학생들이 집결하여 ‘학도병’ 출정식을 가졌던 역사적 장소이다. 당시 순천과 여수, 광양, 벌교 등 호남지역 17개 학교 180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혈서로 입대지원서를 쓰고, 같은 해 7월13일, 순천역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이에 박 장관은 “호남의 어린 학생들이 조국을 위해 펜 대신 총을 들었고, 목숨을 건 혈투 끝에 차디찬 전장의 이슬로 스러져갔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자유 대한민국을 사수하겠다는 정신, 바로 이것이 호남의 정신”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공산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수많은 애국 영령들의 원한과 피가 아직 식지 않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눈물이 여전히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에게 공산당의 나팔수를 기억하게 하고 기리겠다는 시도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라며 광주시가 추진 중인 정율성 기념공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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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시대의 전사들③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우리가 누리는 민주와 자유는 영웅들의 피 묻은 군복 위에 서 있기 가능하다.호국의 별인 백선엽 장군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이들은 너무도 많이 있다. 그가 "나를 쏘라"며 6‧25남침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다부동 고지를 지키지 않았다면 낙동강 방어선은 무너졌다. 이를 기리기 위해 지난 7월5일 백선엽 장군의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만약 다부동 전투에서 패했다면 소련과 중공의 지원에 힘입은 북한에 의해 한반도는 적화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는 자유민주체제의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박민식 장관은 지난 6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로 모독하는 야당 의원에게 발끈했다. 박 장관은 반민특위 출범 당시 백 장군은 친일 명단에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도중에 문재인 전 대통령 부친의 흥남시 농업계장을 지낸 바 있는 이력까지 언급하며 "만주군관학교 소좌(소위)로 북간도가 첫 근무지던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라면. 그도 친일파가 아니냐?"라고 강조했다. 청산리 대첩 이후인 1921년,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와 그 일당들에 의한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들은 몰살당하며 해체됐다. 백 장군이 북간도에 부임한 1942~1943년 무렵에는 독립군들이 연해주로 쫓겨간 뒤였다. 그가 근무한 부대의 명칭이야 만주특설대로 좌파세력들의 토착왜구 몰이에 그럴싸하다. 문전 대통령은 백 장군이 숨을 거두었을 때 조화만 보냈을 뿐, 끝내 조문하지 않았다. 나라를 지킨 호국의 영웅을 친일로 모독하는 좌파 세력의 정치적 계산과 무관하지 않다. 6‧25남침전쟁 당시에 김일성이 가장 증오했던 남한의 인물이 이승만과 백선엽이었다는 것과도 묘하게 일치한다. 또한 전직 대통령도 현실 정치에 거리를 둬야 한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걸핏하면 정치적 발언을 한다. 이번에도 홍범도의 흉상과 관련해 언급이 잦았다. 자택으로 찾아온 자파 의원들과 정치를 안주 삼는다. 국가지도자를 지낸 사람답게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신중한 처신을 해야한다. 백 장군이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팩트를 부풀린 것도 아니고 아예 날조에 가깝다. 영웅의 명예를 지키려고 거야에 맞서며'1류 보훈’에 매진하는 박 장관과 레닌에게 선물받은 권총으로 독립군을 직접 사살한 소련군 장교인 홍범도의 동상 이전을 주장하는 신원식 의원(국민의힘)에게 박수 보낸다. 일부 세력들이 백 장군을 친일파로 모독하는 행각을 계속 저지르면 좌시하면 안된다. 좌파세력이 호국의 영웅 백 장군을 친일파로 몰아 모독하려는 것을 거듭 개탄하며 박민식 장관이나 신원식 국회의원처럼 적극적인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보훈의 최고 가치인 국가정체성이야말로 박 장관이나 신 의원을 비롯한 모든 국민이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내야하는 엄숙한 과제이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호국의 제단에 피를 뿌린 분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다해야 한다. 제복(MIU)입은 영웅들의 명예를 짓밟는 이적행위와 망동을 당장 중단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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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386) 교통사고 위기극복의 여정㉑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일거양득(一擧兩得)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중국 전국시대에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싸운지 일년이 지나도록 화해를 하지않자 진나라 혜왕은 참모 진진에게 의견을 물었다. 진진은 “변장자(辨莊子)가 범을 찔러 죽이려 하자, 여관의 사동(使童) 아이가 말리면서, ‘두 범이 방금 막 소를 잡아서 먹는데 곧 서로 싸울 것입니다. 싸우면 큰 것은 다치고 작은 것은 죽으리니, 다친 것을 좇아서 찔러 죽이면, 한 번 들어서 두 범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잠시 후, 사동(使童)의 말대로 변장자(辨莊子)가 상한 놈을 좇아 찔러 죽여 한 번에 두 마리 범을 잡았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어 그는 “한나라와 위나라도 이와 마찬가지로 큰 나라는 상처를 입고 작은 나라는 망할 것이니 이때 상처입은 나라를 치면 둘을 한번에 얻게 됩니다”라고 건의했다. 진진의 방책을 수용한 진나라 혜왕은 기다렸다가 출병하여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사자성어 ‘일거양득(一擧兩得)’이 탄생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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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M]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시대의 전사들②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6·25남침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은 1950년 8월3일부터 9월22일까지 22km거리의 대구를 위협하는 다부동 전투에서 열세한 병력으로 유례없이 치열한 혈전을 치루었다. 화력이 우세한 미군을 피해 김일성은 국군 1사단 정면에 무려 북한군 3개 사단 2만여명의 병력을 몰아넣었다. 당시 백선엽 장군의 지휘 아래 있었던 1사단 병력은 모두 7000여명으로 병력은 3대 1, 화력은 10대 1로 북한군에게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북한군 전쟁지도부는 바로 그 점을 노렸다. 하지만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라고 독전하며 지휘한 백 장군의 1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을 격파하며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국군은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 방어에 성공하여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때 김일성의 특명으로 다부동을 버티고 있는 남한의 백선엽을 생포하고자 거액의 포상금까지 걸었고, 결국 사단사령부가 있던 다부동 후방의 동명초등학교에 북한군 1개 중대규모가 기습을 감행했다. 때마침 운동장에서 숙영하던 증원부대 8사단 10연대의 1개 대대가 재빨리 반격하여 기습한 적들을 격퇴했다. 당시에 김일성이 가장 증오했던 남한의 인물이 이승만과 백선엽이었고 제거하기 위해 포상금까지 걸었는데 묘하게도 현재 이 두 인물을 친일파 등으로 몰아 폄하시키는 모습이 개탄스럽다. 백 장군은 다부동 전투를 비롯해 평양 최초 점령, 서울 재탈환, 춘계 공세 방어, 동부 휴전선 북상 등 숱한 작전을 지휘한 6·25남침전쟁 영웅이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헌신적인 노력을 하여 한미동맹의 초석을 다졌고, 제4대 합동참모의장과 제7·10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백 장군은 전역 후 약 10년 동안 중화민국, 프랑스, 캐나다 대사를 역임하며 북한의 외교 진출 공세를 철저히 막아내었고, 귀국후에는 교통부 장관 재임하며 서울지하철 1호선 건설 실현과 대한민국 화학산업을 키워낸 ‘탁월한 외교관’이자 ‘산업근대화’의 주역으로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고귀한 헌신을 이어간 구국영웅이다. 미군들이 지금도 6·25남침전쟁시에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하며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은 2020년 100세를일기로 영면에 들었으며,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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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자결의 3가지 이유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자신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일 투신자살을 선택했다. 영장이 기각된 후에 극단적인 길을 간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는 왜 그 길을 가야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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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자결의 3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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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군의 아우성] GP철수/비행금지 등 계산된 모험(calculated risk)의 결과는?
- [시큐리티팩트 = 강철군 안보전문기자] 남북은 시범철수 대상인 GP 22곳의 병력과 화기 철수를 완료 후 폭파, 11월30일 마무리- 주한미군의 가장 불만은 군사분계선 부근을 비행금지구역으로 묶은 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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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군의 아우성] GP철수/비행금지 등 계산된 모험(calculated risk)의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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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2) ‘마음은 언제나 태양..!’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마음을 녹이는 ‘마음은 언제나 태양’구호로 上下同欲者勝을..손자병법 제3편 모공(謨攻)편에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이란 말이 있다. '상관과 부하의 뜻이 같으면 승리한다' 뜻으로 지휘관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야 된다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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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2) ‘마음은 언제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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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그것은 과연 축복일까 테러일까?
- 시큐리티팩트 = 오청훈 job전문기자 전역을 앞두고 전직기본교육에 입교한 선후배 장교들에게 “나에게 있어서 전역이란 000이다”라는 질문에 답을 하게 해보면 대부분 ‘새로운 시작’, ‘휴식’과 ‘기쁨’ 등 긍정적이고 좋은 이미지로 답변을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똑같이 물어봐 주시죠’라고 한다. 내 답변은 그들과는 사뭇 다르게 나온다. ‘나에게 있어서 전역이란? 개인에게 가해지는 일종의 테러였다’라고 과거형으로 답변을 하며 화면에는 2001. 9.11 테러 사진이 나온다. 대부분 수긍을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지만 이내 공감하는 표정으로 바뀌게 된다. 전역으로 인해 화목했던 가정이 파탄의 지경까지 오가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위기가 찾아왔으며, 하루아침에 직장도 잃게 되는 것 이것이 개인차원의 테러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런 맥락으로 내 전직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게 된다. ▲ 9.11테러 사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 강의자료 ) 아무리 힘겹고 어려운일도 지나면 추억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게도 이제 7년이나 지나버린 전역이 그러하다. 2010년 8월 경기도 파주 영어마을에서 소령 3차 진급발표 소식을 듣게 되었고, 결과는 비선이었다. 내심 기대가 컷던지라 실망도 컸다. 무엇보다도 수년간 내조를 해준 아내에게 미안함이 제일컸다. 얼마지나지 않아 아내의 권유로 예비군 지휘관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정을 했고, 주말시간을 이용해서 영등포시장역 인근의 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게 됐다. 하루 15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가며 공부하던 내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것은 시험에 한 두번 실패를 하게된다면 예비역 대위 신분으로는 5급 예비군지휘관 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제도가 개편이 된다는 소식이었다. 이러한 불안감은 내 자신감을 너무도 빠른시간에 꺽어버렸고, 그로인해 나는 시험준비를 중도에 하차하게 되었다. 되돌아 보면 이런 나의 결정이 모든 위기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결정을 아내는 좀처럼 이해하질 못했고, 관계는 점점 악화되어 결국엔 의정부 가정법원까지 오가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갑자기 시험 준비를 포기하고 나니 정말 갈곳이 없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전직기본교육과정 중에 알게된 국방부 전직컨설팅에 참여를 하게 되었고, ㈜스카우트에서 운영하는 6주 프로그램과 커리어컨설턴트 양성과정을 동시 수강하게 되었다. 과정을 우수하게 이수한 결과 ㈜스카우트에 바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벌 수 있는 돈은 4인가족의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고 전세대출금을 제외한 퇴직금 잔액과 국가보훈처 전직지원금, 회사월급을 포함해서 2011년 10월, 11월, 12월 생활비를 간신히 마련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내겐 2012년은 없었다. 하루하루 그리고 한 달을 무사히 살아내는게 일상일 뿐이었다. 이러한 뼈아픈 현실을 직시한 나는 벼랑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내 일상의 모습부터 바꿔나가게 되었다. 남양주에서 강남역까지 운행하는 1100번 광역버스 첫차를 타기위해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출근준비를 하였고, 매일 6시 30분경 회사에 도착하여 강의실과 사무실 정리를 포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닥치는대로 해 나갔다. 하루하루를 정말 치열하게 보냈고 그런 모습이 애처로웠던지 입사후 두달이 되는 시점에 함께 근무하는 선배 컨설턴트로부터 현대산업개발 비상계획팀 계약직 과장 직위 응시 추천을 받아 첫 번째 전직을 하게 되었다. 민간기업 비상대비 업무와 민방위 업무를 배워가며 관련된 교육들을 이수하고, 예비역 소령진급, 민간 석사 추가 취득 등 실무형 스펙을 쌓아가던중 현재 회사의 채용공지를 접하고 전역후 23개월간 묵묵히 쌓아온 노하우를 이용해 두 번째 전직(정규직)에 성공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직접 위기를 맞닥뜨려야만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얻는 것 같다. 물론 그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준비를 하면 좋겠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진 않은 것 같다. 테러와도 같았던 전역이 현재는 축복이 되었지만 그 누구도 직접 겪어보기 전엔 감히 그 어려움을 공감하진 못할 것이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면 산에 오르기전 베이스 캠프를 잘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산의 높이가 높을수록 더 많은 베이스 캠프가 필요할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목표로 향하는 발걸음이 다소 무겁고 힘에 겹겠지만 중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생각보다 빨리 산 정상에 설 수 있을것이라 확신한다. 전직에 성공하는 방법은 단순 명료하다.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호에서는 베이스캠프에서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구체적인 노하우(전직 성공을 위한 7가지 비밀이야기)에 대해 전격 공개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구독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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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그것은 과연 축복일까 테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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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IS가 주도하는 '4세대 전쟁'의 창시자는 독립운동가 김원봉 선생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美, 이란과의 핵합의 타결로 완화됐던 제재를 3년 만에 원유 수출과 금융거래 차단하는 강도 높은 2단계로 복원, 바둑, 골프, 축구 등이 세계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은 정부에 관련 부서가 없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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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IS가 주도하는 '4세대 전쟁'의 창시자는 독립운동가 김원봉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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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⑥ 忍耐하는, 餘裕있는, 確實한 軍人...!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필자가 승리부대에서 초급장교로 근무한 것을 따져보니 약 8년 정도였다. 소위로 임관해서 소령진급 예정자가 되어서야 아스팔트를 밟을 수 있었다. 육군대학 교육을 마치고 수도방위사령부로 보직을 받았기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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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1) ⑥ 忍耐하는, 餘裕있는, 確實한 軍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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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⑤ 대성산 진지공사장에 만개한 전우애의 추억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GOP전방에서도 최고 오지이며 장교유배지로 호칭되었던 승리부대는 대성산(1175m), 적근산(1073m)과 복주산(1057m) 등 1,000고지가 넘는 산악으로 이루어져있다. 군부대가 주둔하는 곳에는 “어둔 밤을 대낮같이, 산악을 평지 같이”라는 표어가 쉽게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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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⑤ 대성산 진지공사장에 만개한 전우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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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④ 리쿠르트가 배우는 老馬之智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춘추시대 오패(五覇)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은 "老馬之智(노마지지)란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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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④ 리쿠르트가 배우는 老馬之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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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변화와 한국의 대응전략 세미나] 중국의 한반도 통일인식과 독일의 달라진 북한정책 주목돼
- (시큐리티팩트 = 김비오 안보전문기자) “안보도 협업이다“라는 모토에 부합된 ‘동북아시아 정세변화와 한국의 대응전략’ 세미나로 성과 배가, 감상적인 과거사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실리를 추구하도록 보다 더 소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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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변화와 한국의 대응전략 세미나] 중국의 한반도 통일인식과 독일의 달라진 북한정책 주목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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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③ 조직에서 만난 고교동창 에피소드와 교훈
- (시큐리티팩트 = 김희철 안보전문기자) 삼국지의 불세출의 천하무적 관운장을 사로잡은 오나라 여몽은 원래 무예에는 능했지만 일자무식이라 손권이 “장차 큰일을 할려면 학문에 뜻을 두어야 한다”고 충고하자, 날마다 책을 읽고 지식을 넓혀왔다. 훗날 지식이 뛰어난 노숙이 친구 여몽을 만났을 때 예전과는 달리 똑똑해진 것을 보고 감짝 놀라며 刮目相對(괄목상대)라고 한 것이 이 사자성어의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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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 (21)③ 조직에서 만난 고교동창 에피소드와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