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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면접시험에는 ‘정답’이 없다
    ▲ 면접시험장 ⓒ뉴스투데이 (시큐리티팩트=김희철 기자/발행인)신입사원 채용 면접 시 명문대·자격증 등 스펙이 전부가 아니다현재의 모든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발굴 채용하는 것이 회사 미래와 성패를 결정짓는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대학생들은 '인재의 객관적 조건'으로 생각되는 스펙을 쌓기 위해 졸업을 늦추어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해외연수를 택한다.필자가 소속된 군인공제회는 6년 전부터 매년 공채로 신입사원을 뽑기 시작했다. ‘15년 신입사원 공채 시에는 5명 선발에 523명이 지원하여 104.8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16년에도 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채5기가 선발되었다.많은 지원자를 모두 면접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각 대학별로 1~5명씩 학교 성적 등을 참고로 컴퓨터로 돌려서 뽑았다. 이렇게 뽑힌 사람들을 다시 서류로 심사하여 5배수 정도로 압축시켰다. 이때까지는 스펙이 필요했다. 졸업성적도 B+ 이상이 되는 지원자들로 추렸다. 1차 면접은 본부장·팀장급이 심사위원이었다.면접에 나온 서류전형 합격자들은 공인회계사, 건축 및 토목 기사에 토익은 850점 이상 등과 같은 탁월한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각 학교에서 1명씩 뽑았으니 지방대 출신이라도 그 능력은 탁월했다.허나 면접을 하면서 우열이 가려졌다.명문대 출신의 교만은 패착, '절실함'이 면접위원 마음 사로잡아가장 중요한 것은 “절실한 사람”이었다.보통 다섯 번 이상 채용시험에 응시했던 지원자들이라 자기소개시간에 발표는 흠잡을 때가 없었다.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SKY 출신들의 자세에서는 우월의식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으나, 여기 아니면 다른 곳에서도 자신을 채용할 것이라는 교만감은 패착이었다.모든 기업은 애사심(愛社心)을 갖고 회사를 위해 평생을 함께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을 선호한다.공채 1~3기는 주로 명문대 출신위주로 선발했으나, 결국 2~3년 경력을 쌓고는 다른 업체로 옮겨갔다. 그래서 “절실한 사람”이 훌륭한 스펙을 갖고 있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다.2.5배수로 압축된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2차 면접이 시작되었다.회사의 이사들과 기조실장이 심사위원이었다. 2차에서 놀라운 것은 1차 면접 시 우수한 지원자가 의외의 실망스런 성적이 된다는 것이다.요즈음 면접요령을 교육시키는 학원과정이 많이 생기다보니 1차 면접 시에는 연습한대로 능숙하게 하다가 2차 면접에는 교육받은 내용이 아닌 다른 것을 질문하니 당황하여 실수하는 지원자가 생겼다. 반면 오히려 2차 면접 시 소신있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지원자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면접시험에는 정답이 없다.그동안 공부하고 평소 가진 소견을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성이 있고 신뢰를 받을 수가 있었다. ▲ 체력측정 시험장 ⓒ뉴스투데이 체력이 약했던 필자, 목표에 대한 절박감으로 육사 체력측정 시험 통과필자는 육사입학시험에서 체력이 가장 걱정이었다.여름방학 때 종로의 육사전담학원에서 공부한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해 10월 서울 청량리공고에서 필기시험을 볼 때 한 교실에 40명 씩 시험을 봤으나 최종합격자는 2명 뿐이었다.필기시험 하루 전날, 학교수업 휴식시간에 짝꿍이었던 이일성(현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교수)이 교실 밖으로 불러냈다. 나보고 뒤로 돌라고 했는데 부시럭 소리가 나더니 접시만한 엿을 주면서 비어먹으라고 했다. 소중한 짝꿍의 합격기원이었다.1차 필기시험을 치루고 필자는 체력보강을 위해 매일 새벽에 남산을 올랐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려면 체력이 우선이다”라는 생각을 되씹으며 남산계단을 뛰어올랐다.충정로 미동초교 옆에서 셋방살이를 했으니 남산까지의 왕복은 2시간이 족히 걸렸으나 육사합격이란 목표는 악과 깡을 배양시켜주었다.체력측정 시 월등한 체력은 아니었지만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고 드디어 면접시험을 보게 되었다.육사 골키퍼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소신 답변'도 면접 합격국가관과 인생관에 대한 건전한 사고와 심성을 갖고 있는지 성격에 결함은 없는지와 같은 질문이었고 별로 어려움도 없었다.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은 미리 준비하고 있어서 이순신과 나폴레옹이라고 거침없이 이야기 했다.훗날 육사에 합격한 동기생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기도 했다.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 동기생은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현재 육사에 재학 중인 김봉환 생도입니다”라는 대답을 했는데 면접 채점관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그 친구는 축구를 너무도 좋아했는데 삼사체육대회 시 육사 축구부의 골키퍼로서 육사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김봉환 생도를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친구도 육사에 거뜬하게 합격했다.면접시험관들은 지원자의 사상적 결함이나 성격에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하지만 소신과 자신감으로 똑바로 대답하는 자에게 신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면접시험을 대비해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자기생각을 정리해놓는 것이 더 중요하고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면접에는 정답이 없다.취준생을 위한 한 마디 조언, "주머니 속의 ‘송곳’은 튀어나온다"군인공제회는 회사 여건상 서류심사 후, 2번의 면접을 치루는 채용절차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 등 대기업 대부분은 3번 이상의 면접을 통해 인재를 선발한다고 한다.따라서 직업군인을 포함한 취업준비생들에게 몇 가지 참고사항을 정리해 보았다.첫째, 회사는 훌륭한 스펙을 가진 사람보다는 회사에 오랫동안 기여할 사람을 선호한다. 따라서 서울에 있는 일류 명문대보다는 오히려 지방대출신의 우수한 자가 절실하게 입사를 희망할 때 유리할 수 있다.둘째, 말을 잘하는 달변가보다는 신뢰감을 느낄 수 있게 진실을 말하는 지원자가 유리하다. 소신과 자신감은 중요하지만 자칫 교만해보이고, 더 좋은 여건이 생기면 거침없이 전직할 사람으로 느껴져 신뢰감이 상실될 수 있다. 잘 모르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개인의 소견을 진실되게 이야기해야 한다.셋째,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 평소부터 근면하게 공부하여 어느 정도 성적도 유지해야 하고, 독서량을 늘려 인문학쪽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 면접관의 전혀 의도하지 않는 질문이 나오더라도 나름대로의 논리도 갖고 있어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고, 일단 서류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성적도 중요하다. 육사 2차 시험(면접, 체력측정)을 치루더라도 결국 필기시험과 예비고사(現수능) 성적의 우열이 당락을 결정짓기 때문이다.기타 자격증 등의 스펙은 없는 것보다는 더 유리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사자성어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이다. 어떤 회사던 인재선발에서는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취업준비생들은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능력과 인성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직장을 끝까지 찾아야 한다.그래서 면접시험에는 정답이 없다. 오직 최선을 다할 뿐이다. 끝.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3군사령부 감찰참모- 8군단사령부 참모장- 육군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현)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주요 저서 및 연구-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전역군인
    2017-01-09
  • [직업군인 사용설명서](1)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하다
    ▲ 필자(김희철)의 육군사관학교 생도시절 모습 고등학교에서는 전공학과보다 대학교 브랜드가 중요하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칼럼니스트] ‘16년도 어김없이 11월 17일에 대학입시 수능시험이 치루어졌다. 수시로 대학입학이 확정되는 것도 수능점수가 결정적이다. 아무리 내신 성적이 좋아도 수능점수가 나쁘면 대학입학은 어려워진다. 나는 말도 많은 58년 개띠로 격동의 세월 현장에 항상 있었다. 58년 개띠부터 전국 최초로 중학교 입시도 시험에서 추첨제로 바뀌었고, 고등학교 입시도 소위 뺑뺑이 추천제로 바뀌었다. 오늘날 수학능력평가처럼 그때에도 대학입시 예비고사(연합고사)가 있었다. 당시 학생들의 적성과 희망직업에 대한 고려는 고등학교 입시를 담당한 선생님들에게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국의 많은 고등학교 중에서 소위 SKY대학을 몇 명이나 합격시켰느냐가 고등학교의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였다. 명문대학이라면 비인기 학과 또는 농업·예능계열을 가리지 않았다. 조금만 가능성이 있으면 학교에서 권했다. 지원학과 선택에 있어 개인의 특성은 그냥 참고사항일 뿐이었다. 특히 미술과 음악, 체육 분야에 재주가 있고 성적이 조금 높은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당해 연도에 서울대, 연대, 고대 등에 한명이라도 더 합격시키는 것이 고등학교 선생님, 학생, 그리고 부모들의 목표였다. 설명회에 나온 육사 생도 선배의 '군인관'에 홀린 듯 매료돼 그런 시대 풍조에 젖은 학생이었던 나는 고교 3학년 어느 날에 인생을 결정짓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날의 경험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의 느낌과 열정은 바로 직업으로서의 군인에 대한 글을 쓰고자하는 원동력이다. 앞으로 이 글이 청소년과 청년들, 나아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층에게도 꿈을 주기를 소망한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매년 생도들을 출신고등학교에 설명회를 가짐으로써 우수한 재원들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운명의 날에도 육사에 입교한 선배 생도가 학교강당을 빌려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손에 끌려 강당 한 귀퉁이에 앉아 선배의 열띤 설명을 들었었다. 눈동자가 보일 듯 말듯 눌러 쓴 사관생도 모자 밑의 생도 얼굴에서는 힘차고 차분하게 터져나오는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는 입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가슴에 꽉 꽂히는 말이 들렸다. “사관생도 신조... 하나, 나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였다. 후배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명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 그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사실 그 때만 하더라도 군인 그것도 육군사관학교 생도 하면 좀 더 근육질에 우락부락하고 키도 크며 만능 스포츠맨 같은 전투적인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선배님, 저같은 사람도 사관학교에 갈 수 있어요?”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자 선배생도(육사35기 조정)는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며 못마땅한 듯 툭 말을 던졌다. “자네는 공부 좀 하나?” 개인적으로 찾아간 육사 생도 선배는 의외로 냉담한 반응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의 길을 강조했던 선배 입에서 의외의 질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 예~, 성적은 조금 괜찮아서 지금 학교 특수반에 포함되어 대입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우선은 공부를 잘해서 연·고대 수준이 돼야 1차 합격할 수 있고, 그 다음은 체력이 좋아야 한다. 의지만 있으면 자네도 가능해…” 기대하지도 않고 있다는 듯 대답을 하고 떠났다. 담임선생님은 특수반(성적 우수학생들만 따로 모아 일과 후에도 보충수업을 시키는 학급)에다 그림도 잘 그리니 서울대학교 미대를 갈 준비를 하라고 조언을 해주셨고 나도 별뜻없이 순종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 단계였다. 그런데 육사에 입교한 선배 생도의 이 한마디에 선생님의 조언은 점점 희미해졌다. "어차피 한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그 선배처럼 직업군인의 길을 걷는다면 얼마나 매력적일까" 이런 상념을 하면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던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택하는 길보다 험난한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몇 일 뒤, 담임선생님께 육사시험에 응시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인생은 Birth(출생)과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 삶이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너가는 생(生)이라고 했다. 언제나 누구에게도 아슬아슬하게 외나무다리 고비를 넘어가며 죽음의 문으로 다가간다. 지옥의 세계 속에서 희망의 빛을 쫓아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는 고3 시기는 더 많은 리스크(Risk)와 유혹 그리고 장애가 버티고 있는 과정의 시간이다. 육사를 지원하겠다는 말을 들은 담임선생님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라면서 단호하게 반대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가면 얼마나 너의 인생이 멋지겠느냐. 실현 예술가로서 명성도 얻으면 삶의 희망이 실현되는 것이다"라고 나를 설득했다. 선생님은 육사지원서 작성은 불가하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간신히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선생님은 학업성적 평가 차원에서 육사시험에는 응시하되 합격여부를 떠나서 서울대 미술대학은 반드시 응시하여 시험을 봐야한다는 조건이었다. 아무튼 조건부라도 육사시험원서를 작성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내었다. 그 당시 가정 형편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강원도 원주의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학비가 많이 들어가는 미술대학 뒷바라지를 부탁하는 것도 사실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평택에, 필자는 서울 충정로 셋방에서 세집살림 하기에도 아버님 봉급 가지고는 빠듯한 생활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육사로 목표를 정했다. 여름방학 때 종로의 사관학교입시 전담학원에 등록했다. 마침 그 학원에는 동창생 3명이 사관학교를 목표로 함께 수업을 받게 되었다. 드디어 그해 10월 육사시험에 응시했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기 위해서…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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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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